워킹페이퍼
[한미동맹 프로젝트] ②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맹 현대화
설인효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ditor's Note

설인효 국방대 교수와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가 2025년 국가안보전략서(NSS)와 2026년 국방전략서(NDS)로 제도화된 대전략의 전환이며, 그 배경에는 복수 전구의 위기가 겹치는 '전략적 동시성'이 있다고 짚습니다. 저자들은 동맹 현대화가 동맹의 해체가 아니라, 동맹국이 자국 방위의 1차적 책임을 맡고 미국은 결정적 능력을 보완하는 '전략적 분업'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이 늘어나는 부담과 역할을 지휘통제·정보·정밀타격 능력 강화와 확장억제의 제도화로 교환하는 데 협상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의 대 전략 변화와 동맹 현대화가 한미동맹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분석하고, 한국의 안보전략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한미동맹 프로젝트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식되고 있으나, 그 변화의 본질이 한미동맹의 작동 원리와 한국의 안보에 어떠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지난 30년의 미국을 기준으로 오늘의 미국을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지체가 한국 안보전략의 가장 큰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글로벌 다중위기의 상시화, 전진 배치된 미군의 취약성과 방산 공급망의 한계는 미국이 모든 위기를 동시에 관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6년 이란 전쟁과 인공지능·무인체계 중심의 미래전 양상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제한된 전략자원을 핵심 지점에 집중하고, 동맹을 일방적인 안보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분업과 교환의 제도로 재설계하고자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는 이러한 대 전략 차원의 재편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사례입니다.

 

이제 한미동맹의 미래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한국이 미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고 보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변화를 동맹 약화로만 읽게 되면 안보 불안과 국론 분열에 빠질 수 있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연루 위험과 강압적 협상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 다영역 특임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산업 협력, 확장억제의 실효성, 대만사태와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 등 핵심 의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이러한 쟁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변화하는 동맹의 방향과 조건을 한국의 국익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을 논의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주도적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발간 목록]

 

① 인식의 지체와 진정한 위기, 김양규·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②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맹 현대화, 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Ⅰ. 미국 우선주의의 구조화: 단순한 구호가 아닌 대전략의 전환

 

트럼프 2기 미국 대외전략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지역과 모든 위기, 모든 동맹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전략적 관심과 군사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로부터 물러나는 전통적 의미의 고립주의보다, 미국의 제한된 전략자원을 핵심 이익과 핵심 지역에 집중하기 위한 본격적인 우선순위 재정렬(prioritization)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경제·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힘을 전 세계에 균등하게 배분하기보다 본토와 서반구의 안전, 인도-태평양에서의 대(對) 중국 세력균형이라는 핵심 목표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려 하고 있다.

 

2025년 국가안보전략서(NSS)는 이러한 변화를 매우 직접적으로 선언한다. 문서는 전략을 목표와 수단을 현실적으로 연결하는 계획으로 정의하면서 전략은 반드시 대상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며, 모든 국가와 지역, 이슈가 미국 전략의 초점이 될 수는 없다고 명시한다. 동시에 탈냉전 이후 미국의 대외전략이 세계적 패권을 무기한 유지하려는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미국 국민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은 글로벌 부담까지 떠안았으며,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이름 아래 미국의 중산층과 산업기반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한다. 동맹국들이 자국 방위비용을 미국에 전가하고 미국을 주변적 분쟁에 끌어들였다는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1] 이것은 단순한 수사의 변화가 아니다. 미국이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더 이상 동일한 비용으로 지키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계산방식의 변화이다.

 

2026년 국방전략서(NDS)는 이 원칙을 군사전략의 차원에서 한층 더 구체화하였다. NDS가 제시한 네 가지 핵심 노력선(lines of effort)은 ① 미국 본토 방어, ②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억제, ③ 동맹·파트너의 부담 확대, ④ 미국 방위산업 기반의 재건으로 명확하게 순서가 지정되어 있다. 특히 NDS는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를 미국이 직접 담당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배치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동맹국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은 필요한 핵심 지원만을 제공하는 구조를 제시한다. 동시에 이러한 전략이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의 구체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선택적 관여(focused engagement)’라고 명시하고, 중국을 억제하고 다른 지역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동맹국의 역할이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2] 따라서 트럼프 2기 전략의 요체는 동맹의 폐기가 아니라 미국이 직접 담당할 임무와 동맹국에게 이전할 임무를 철저히 구분하는 전략적 분업의 재설계이다.

 

이러한 전환은 미국 대외전략을 정당화하는 언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후 미국의 국제주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동맹과 다자제도, 개방경제,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을 미국의 이익과 결합하는 논리로 발전해 왔다.[3] 그러나 2025 NSS는 이러한 규범적 목표를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상대적 위계를 크게 낮추고 있다. 대신 미국 국민의 안전, 주권과 국경, 제조업과 산업기반, 핵심 공급망, 기술우위, 경제안보와 본토 방어를 대외전략의 전면에 배치한다. 특히 경제력과 산업기반을 군사력의 토대로 명시하고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와 공급망 통제를 국가안보의 핵심과제로 설정한다. 이는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이 증진된다는 기존 논리에서, 개별 정책과 대외공약이 현재 미국의 국력과 국민에게 어떠한 구체적 편익을 제공하는가를 직접 계산하는 방식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맹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와 함께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025 NSS는 세계 주요 전략지역에 구축된 광범위한 동맹망을 미국이 가진 핵심적인 국력 자산 가운데 하나로 명시하며, 경쟁국이 특정 지역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동맹·파트너와 함께 세력균형을 유지한다는 원칙도 분명하게 제시한다. 2026 NDS 역시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국의 기여가 ‘필수적’이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동맹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동맹의 가치가 평가되는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신뢰와 가치의 공유만으로 동맹의 역할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동맹이 미국의 안보·군사·경제·기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떠한 실질적 능력과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점차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가 트럼프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 전략학계에서는 이미 상당 기간 동안 탈냉전기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과도한 비용과 군사적 과잉 개입을 비판하고, 미국의 핵심이익을 엄격하게 선별하여 동맹국이 더 많은 지역방위 책임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의가 축적되어 왔다. 포젠(Barry Posen)의 ‘절제(restraint)’ 전략과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월트(Stephen Walt)의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은 이러한 논쟁을 대표하는 개념들이며, 현 미 전쟁부 정책 차관이기도 한 콜비(Elbridge Colby)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부차적 임무를 축소하고 인도-태평양에서의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의 물질적 힘만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경제적 기반 약화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가용한 힘(usable power)’이 감소하고 있다는 연구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였다.[4] 트럼프 2기의 특징은 이러한 오랜 전략논쟁 가운데 선택과 집중, 동맹 부담 확대, 산업기반 복원을 중시하는 흐름을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를 넘어 NSS와 NDS라는 공식 국가전략으로 구조화했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트럼프의 강압적인 협상방식과 예측하기 어려운 언행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미국의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정책수행 방식은 이전 대통령들과 확연히 다르지만, 그가 제기하는 질문은 훨씬 오래된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어디까지를 직접 방어해야 하는가, 제한된 군사력을 어느 지역에 우선 투입해야 하는가, 무엇은 동맹국에게 맡길 수 있는가, 동맹국은 어느 수준의 비용과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가, 그리고 장기적인 패권경쟁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의 산업기반을 어느 수준까지 복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 전략 논쟁의 핵심 의제였다. 이제 그것이 백악관과 전쟁부의 공식 전략문서의 중심으로 이동한 것일 뿐이다.

 

또한 이를 ‘미국 국민이 동맹의 축소나 폐기를 광범위하게 지지한다’는 의미로 확대해석해서도 안 된다. 2025년 여론조사에서도 미국 국민의 동맹 자체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면 동맹국이 자국 방위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요구와 미국의 대외정책이 보다 직접적인 국가이익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은 특히 공화당 지지층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5] 따라서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갖는 정치적 지속성은 ‘동맹을 버리자’는 국민적 합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동맹과 국제질서의 비용을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상당한 정치적 기반에서 찾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이러한 대전략의 변화는 한미동맹에도 직접 적용되고 있다. 실제 한미 양국은 이미 ‘동맹 현대화’를 국방비와 역할 분담에만 한정하지 않고 전작권 전환, 한국군의 재래식 방위역량 강화, 미국의 지역 억제태세, 방위산업 협력, 사이버·우주·AI 협력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6] 따라서 앞으로 한미동맹의 변화 역시 ‘동맹이 강화되는가, 약화되는가’라는 단선적인 기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동맹의 목표와 임무, 비용과 역할 분담, 지휘구조, 주둔 태세와 전력운용 방식, 그리고 역내 전략에서 한국과 미국이 담당할 기능을 함께 조정하는 전면적인 재설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즉 동맹 현대화는 정치·안보, 국방전략, 군사전략이 결합한 ‘다층적 재편 프로그램’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7]

 

결국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대통령의 거친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 뒤에 놓인 전략적 계산을 읽는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복수 전구의 위기, 제한된 군사 자원, 산업기반과 공급망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이 지속되는 한 미국은 어느 행정부이든 목표와 공약의 우선순위를 더욱 엄격하게 설정해야 할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는 그 문제를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공식화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진행되는 변화의 본질은 미국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직접 힘을 사용하고 어디에서 동맹의 힘을 활용할 것인가를 새롭게 계산하는 대전략으로의 전환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새로운 계산법 위에서 트럼프 2기의 동맹 현대화가 출발하고 있다.

 

Ⅱ. 전략적 동시성의 문제: 왜 동맹 현대화가 불가피한가?

 

트럼프 2기 미국 대전략의 전환을 추동하는 보다 직접적인 군사전략적 배경은 ‘전략적 동시성(strategic simultaneity)’의 심화이다. 전략적 동시성이란 미국이 가장 중요한 장기적 경쟁자인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동시에, 유럽의 러시아, 중동의 이란과 그 연계세력, 한반도의 북한 등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위협과 분쟁에도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위협의 수가 우연히 증가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보유한 군사력, 탄약, 전략수송, ISR, 방공·미사일방어와 방위산업 생산능력은 유한한 반면, 미국이 억제해야 하는 잠재적 적대국들은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고 이들이 동시에 또는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경우 하나의 전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다른 전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과 전략적 선택지를 감소시키게 된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동시성은 단순한 위협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대 전략, 군사력 기획(force planning), 동맹전략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구조적 압력이 되는 것이다.[8]

 

이 문제는 트럼프 2기 들어 처음 발견된 것은 아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의 NDS 역시 중국을 미국의 ‘추격하는 도전(pacing challenge)’으로 규정하면서도 러시아를 ‘급박한 위협(acute threat)’으로 평가하고, 동시에 북한과 이란을 ‘지속적인 지역위협’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정치적·군사적 협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이 어느 한 국가와 위기나 전쟁에 개입할 경우 다른 국가가 다른 지역에서 전략적 딜레마를 조성할 수 있다고 이미 지적하였다. 또한 핵전략 차원에서도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개의 현대적 핵 강대국을 동시에 억제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9] 즉 복수의 경쟁국과 복수 전구에서 발생하는 동시적 도전 자체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국 전략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2기 행정부 사이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2022 NDS의 핵심 개념이었던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는 복잡해진 위협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군사·비군사적 수단을 영역과 정부기관, 전구, 동맹국 차원에서 보다 긴밀하게 결합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군사적으로는 핵과 재래식 전력, 우주·사이버·미사일방어, 장거리 타격과 회복력을 결합하고, 국가전략 차원에서는 외교·경제·정보수단을 통합하며, 국제적으로는 동맹국과 파트너의 역량을 미국 전략에 보다 깊숙이 연결하고자 하였다. 2022 NDS는 실제로 동맹국을 방위계획의 모든 단계에 포함시키고, 정보공유·연합기획·기술 공동개발·다국적 훈련과 상호운용성을 확대하겠다고 명시하였다.[10] 당시의 기본 해법은 미국과 동맹의 역량을 보다 밀접하게 ‘통합’함으로써 복합적인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일한 동시성 문제를 매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2026 NDS는 목차에서부터 “동시성 문제와 동맹 역할 분담에 대한 함의(The Simultaneity Problem and Implications for Allied Burden-Sharing)”를 독립된 항목으로 설정하고, 동시성 문제를 동맹의 부담 재조정과 직접 연결한다. 문서는 하나 이상의 잠재적 적대국이 여러 전구에서 협조적으로 또는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후,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처럼 심각해진 중요한 이유로 동맹국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충분한 방위 투자를 하지 않은 사실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의존관계를 용인하고 조장한 과거 미국 정책에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11] 즉 트럼프 2기 전략은 동시성을 단순한 국제 안보 환경의 악화나 미국 능력의 한계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미국이 지나치게 많은 방위책임을 직접 부담하고 동맹국이 충분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 기존 동맹구조의 문제로 재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압축하면 트럼프 2기의 인과 경로는 ‘동시성의 문제화 → 동맹의 무임승차와 의존성에 대한 비판 → 부담 공유를 넘어선 부담 이전의 제도화 → 동맹국에 대한 자국 방위 책임 및 추가적 지역·기능적 기여 요구’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2026 NDS는 미국의 동맹망이 유라시아를 둘러싼 방어선이자 잠재적 경쟁국 전체보다 훨씬 큰 경제적 자원을 보유한 전략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동맹국이 충분한 국방투자를 실시한다면 미국과 동맹 전체는 잠재적 적대국들이 동시에 행동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2기 전략의 계산이다. 미국이 모든 전구에 추가 병력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의 잠재력을 실제 군사력으로 전환함으로써 전략적 동시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 점에서 2026 NDS가 제시한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미국의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U.S. support)”이라는 표현은 향후 미국 동맹전략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 될 것이다. NDS는 미국이 본토 방어와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억제에 우선적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동안 유럽·중동·한반도에서는 해당 동맹국들이 자신이 직접 직면한 위협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담당하고 미국은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된 지원을 제공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미국이 동맹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동맹국이 전구방위의 주력(primary force provider)이 되고 미국은 동맹국이 자체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결정적 능력을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새로운 전략적 분업을 지향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2026 NDS는 이러한 역할 재조정을 오히려 동맹을 보다 강하고 상호 호혜적이며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미국의 군사력 기획 논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두 개의 주요 지역분쟁을 거의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2개 전쟁(two-war)’ 능력을 군사력 규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전력기획 기준은 한 개의 주요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다른 지역의 위기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점차 축소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과 함께 복수의 주요전쟁이 중첩될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었지만, 이를 모두 미군의 규모 확대만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산업적 비용이 요구된다. 의회조사국(CRS)이 지적하듯이 어떠한 동시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사력을 구성할 것인가는 미국 국방예산과 전력구조 전체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12] 2026 NDS의 독특한 해법은 미군 자체를 다시 완전한 ‘2개 전쟁 군대’로 복원하는 대신, 두 번째와 부차적 전구의 상당 부분을 동맹의 군사력으로 보완하려는 데 있다. 이는 동맹의 부담 확대가 트럼프의 협상전술만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력 기획과 직결된 전략적 요구임을 의미한다.

 

인도-태평양에서는 이러한 역할분담의 성격이 더욱 분명하다. 미국은 중국을 다른 지역의 위협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장기적 국력과 경제적 번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우선 군사적 경쟁자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26 NDS는 제1도련선을 중심으로 강력한 거부 억제(denial deterrence)를 구축하고, 주요 역내 동맹·파트너들이 이러한 집단방위에 더 많이 기여하도록 ‘촉구하고 가능하게(urge and enable)’ 하겠다고 명시한다. 미국이 중국 억제의 중심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첨단 전력과 지역 동맹국의 지리·군사적 능력을 결합하여 중국이 단기간에 기정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2기의 동맹 현대화가 단순히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미국이 중국에 더 효과적으로 집중하기 위해 주변 전구와 역내 동맹의 역할을 재 배분하는 전략임을 보여준다.

 

한미동맹은 바로 이러한 변화가 가장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2026 NDS는 한국이 높은 국방비, 강력한 군사력, 방위산업과 병역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북한 억제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담당할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미국은 이에 대해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명시한다. 동시에 이러한 ‘책임의 균형 변화(shift in the balance of responsibility)’가 한반도 미군태세를 조정하려는 미국의 이해와 부합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트럼프 2기의 동맹 현대화가 한국에 대해서도 방위비 증액만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니라 작전책임, 군사능력, 지휘구조와 미군태세를 함께 변화시키는 문제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13]

 

동시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한반도 방위에만 한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025년 한미 정상 공동 팩트 시트에서도 한국의 연합 재래식 방위 주도 능력 강화와 함께 미국의 역내 재래식 억제 태세, 한미일 협력, 사이버·우주·AI, 방위산업과 조선 협력이 동시에 제시되었다. 따라서 전략적 동시성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요구는 ① 한국의 한반도 방위책임 증대, ② 역내 억제에 대한 보다 큰 기여, ③ 미국과 동맹 전체의 전쟁 지속 능력을 보강할 방산·군수·기술협력이라는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것이 한국군의 모든 역외분쟁 직접 참여를 의미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기여의 형태와 범위는 향후 한미 간 협상의 핵심 대상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다. 미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에서 수행해 온 직접적인 역할을 줄이고 미군 태세를 조정한다면, 전환과정에서 억제력과 공약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발생할 수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미국이 대(對) 중국 억제를 위해 한국의 지역적 역할과 기지·전력 운용의 유연성을 확대하려 할 경우 한국이 원하지 않는 지역위기에 연루될 가능성도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한국에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단순히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변화는 중요한 전략적 기회도 제공한다. 책임의 확대에는 권한과 능력의 확대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억제와 방위를 보다 주도적으로 담당한다면, 이에 필요한 연합 지휘통제 능력, 독자적 ISR, 장거리 정밀타격, 통합 방공·미사일방어, 사이버·우주 능력, 군수지속성과 방산생산 능력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면 한국 역시 그 역할 수행에 필요한 정보공유, 기술협력, 연합작전 권한, 전략자산 운용 및 확장억제 제도화를 요구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갖게 된다. 실제 2025년 한미 정상 합의에서도 전작권 전환과 한국군의 연합 재래식 방위 주도능력 강화가 첨단 미국 무기체계 획득, 방산협력, 사이버·우주·AI 협력 및 확장억제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는 점은 이러한 ‘역할과 능력의 교환’이 이미 동맹 현대화의 현실적 의제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의 변화를 단순히 ‘동맹 약화’ 또는 ‘방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한 접근은 미국이 왜 역할 재조정을 요구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과거의 동맹구조를 방어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소진하게 만들 수 있다. 국내적으로도 미국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는 입장과 자주성 확대를 주장하는 입장이 다시 이분법적으로 충돌하면서, 실제로 필요한 역할·능력·권한·공약의 새로운 조합을 설계하는 논의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전략적 동시성을 미국이 처한 불가피한 구조적 문제로 냉정하게 이해하면 한국의 협상공간은 오히려 넓어진다. 미국은 한국에게 더 많은 안보책임을 맡기지 않고서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에 필요한 전략적 여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국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핵확장억제, 전략 ISR, 첨단 군사기술과 일부 결정적 전력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양국의 이해관계는 단순한 ‘미국의 부담이전 → 한국의 수용’이라는 일방향 구조가 아니라, ‘한국의 부담 및 역할 확대 ↔ 한국의 능력·자율성 확대와 미국의 핵심지원 제도화’라는 새로운 교환관계로 재구성될 수 있다.

 

결국 전략적 동시성은 미국에게는 전략자원과 공약 사이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부담의 위기이지만, 한국에게는 미래 동맹의 조건을 새롭게 협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이 줄이려는 부담을 그대로 인수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부담 경감에 기여하는 만큼 한국이 독자적으로 한반도 안보를 담당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확대하고, 한국이 대체하기 어려운 미국의 핵심 능력과 공약을 보다 명확하고 제도적인 형태로 확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동맹 현대화는 단순한 부담분담의 조정이 아니라, 패권경쟁과 전략적 동시성의 시대에 한미동맹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책임·능력·권한·공약의 전면적인 재조정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Ⅲ. 동맹 현대화의 본질: 자동적 보호에서 전략적 분업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하는 동맹 현대화(alliance modernization)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국방비 증액과 같은 개별 정책의 집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현재 진행되는 변화는 동맹의 목표와 역할, 군사적 책임, 지휘구조와 주둔태세, 핵·재래식 억제, 방위산업과 군수지원, 그리고 지역안보에서의 역할까지 서로 연결하여 조정하는 다층적 재편 프로그램에 가깝다. 한미동맹을 기준으로 보면 국방비 확대, 한국군의 한반도 방위책임 증대와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의 운용과 미국의 역내 재래식 억제태세, 유엔사와 다국적 증원체계, 핵협의그룹(NCG)을 통한 확장억제 제도화, 인도-태평양 지역협력, 방산·조선·MRO 및 첨단기술 협력은 서로 독립된 의제가 아니다. 미국이 무엇을 직접 담당하고 무엇을 한국이 담당할 것인지, 그리고 그 새로운 역할분담을 어떠한 능력과 제도로 뒷받침할 것인지라는 하나의 문제의 서로 다른 측면들이다.[14]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2기의 동맹 현대화는 갑자기 등장한 정책도 아니다. 트럼프 1기 때에는 방위비와 ‘공정한 몫(fair share)’의 문제가 가장 가시적으로 부각되었지만, 당시 미국 국방전략에서는 이미 동맹을 단순한 비용분담의 대상이 아니라 대(對) 중국·대(對) 러시아 경쟁에서 실제 군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전력의 일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2018 NDS는 동맹과 파트너를 미국이 경쟁국에 대해 갖는 전략적 우위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방위 기여 확대와 상호운용성을 강조하였다. 이후 2020년 미 국방부가 처음 마련한 ‘동맹·파트너 발전지침(Guidance for Development of Alliances and Partnerships)’은 미래 전력기획 과정에서 동맹국이 담당해야 할 우선적인 전쟁수행 역할(priority ally and partner warfighting roles)을 보다 명확히 식별하고, 해당 국가의 군사력을 그러한 역할에 적합하도록 발전시키겠다는 방향까지 제시하였다.[15] 즉 트럼프 1기의 비용분담 압박 뒤에서 이미 ‘얼마를 부담할 것인가’에서 ‘실제로 무엇을 담당할 것인가’로 동맹 논리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사고는 트럼프 1기 이후에 보다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2018 NDS 수립을 주도했던 콜비(Elbridge Colby)는 이후 미국이 중국과의 핵심적인 군사 경쟁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부차적인 지역과 임무의 우선순위를 낮추고, 동맹국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더 큰 군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의 논리’를 체계화하였다.[16] 콜비는 중국의 아시아 지역 패권을 방지하는 것을 미국의 핵심 전략목표로 두고, 미국의 자원을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동시에 지역 동맹국들이 효과적인 반 패권 연합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olby는 2017-2018년 미 국방부 전략·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로서 2018 NDS 수립을 주도하였고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정책담당 전쟁부 차관으로서 행정부의 국방전략을 주도하는 핵심 전략가 중 한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트럼프 2기 정책의 유일한 지적 기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2026 NDS가 제1도련선을 중심으로 거부 억제를 구축하고 동맹국의 부담과 전쟁수행 능력을 확대하며 미국의 직접적인 부담을 재조정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략논의와 상당한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2기의 특징은 1기에 부분적으로 제기되었던 비용·역할·전력 운용의 문제를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라는 명확한 우선순위 아래 하나의 동맹 재편 논리로 결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동맹 현대화의 본질은 기존 동맹의 폐기보다 변화된 전략환경에서 동맹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전후 한미동맹의 군사적 구조는 미국의 전진배치, 한국의 기지·시설 제공, 유사시 대규모 미 증원전력, 그리고 미국의 핵·재래식 우위에 기초한 억제공약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한국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상당한 군사력을 축적하면서 동맹 내 역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지만, 동맹의 궁극적인 군사적 보증은 상당 부분 미국의 압도적인 추가 전력과 확장억제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한미동맹은 단순한 조약관계를 넘어 위기 시 미국의 결정적 개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정치적·전략적 기대와 결합되어 발전해 왔다.

 

2026 NDS는 이러한 관계의 기본 방향을 상당히 명시적으로 재조정하고 있다. 문서는 동맹국이 이전 세대처럼 미국에 의존하는 존재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동맹국들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에 대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힌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력과 국방비, 강력한 군사력, 방위산업과 병역제도를 근거로 북한에 대한 재래식 억제와 방위에서 보다 큰 책임을 담당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이에 상응하여 미국은 동맹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support)’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조정하려 한다.[17] 이는 보호의 철회를 의미한다기보다 동맹국이 전구 방위의 더 큰 부분을 담당하고 미국은 결정적 능력을 제공하는 전략적 분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역할의 변화가 반드시 한국에게 일방적인 부담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능력 없이 책임만 확대된다면 동맹 현대화는 부담이지만, 필요한 능력과 권한을 확보하면서 책임을 확대한다면 그것은 전략적 교환이 된다. 따라서 한국의 핵심 과제는 미국이 요구하는 변화를 단순히 저지하거나 축소하는 데 있기보다, 그 요구를 한국의 자주적 안보역량을 강화하고 동맹의 제도적 구조를 보다 상호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기회로 전환하는 데 있다. 미국이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면 한국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capability), 권한(authority), 정보(access), 기술(technology), 그리고 미국의 핵심적인 지원(commitment)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첫째, 국방비 증액은 지출 규모보다 그 지출이 어떠한 군사적 자립 능력으로 전환되는가가 중요하다. 2025년 한미 정상 공동 팩트 시트에서 한국은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제시하고, 연합 재래식 방위를 주도하기 위한 군사능력 강화와 첨단 미국 무기체계 획득을 함께 추진하기로 하였다.[18] 그러나 국방비 확대가 단순히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거나 미국산 무기를 추가 구입하는 데 머무른다면 전략적 의미는 제한적이다. 한국의 추가적인 국방투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독자적으로 탐지·결심·타격할 수 있는 ISR과 C4ISR, 장거리 정밀타격, 통합 방공·미사일방어, 무인·자율체계, 우주·사이버, AI 기반 지휘결심, 충분한 탄약과 전쟁지속능력 등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도 한반도 재래식 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담의 확대가 의존의 확대가 아니라 자율성의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

 

둘째, 주한미군의 운용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 역시 일방적 허용이나 거부가 아니라 상호적인 전략적 교환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2025년 한미 정상 합의는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과 대한방위공약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재래식 억제태세를 북한뿐 아니라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all regional threats to the Alliance)’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기로 하고, 2006년 이후 관련된 한미 간 이해를 재확인하였다.[19] 이는 향후 주한미군과 한반도 내 미국 자산의 역할이 보다 넓은 지역전략과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한반도 위기 시 미국 증원전력의 가용성, 전략자산의 전개와 접근,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와의 작전협조, 핵·재래식 통합기획 및 위기 시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에게만 필요한 자유가 아니라 한국에게도 위기 시 미국의 결정적 능력에 접근할 수 있는 상호적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전작권 전환은 이러한 동맹 현대화의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전략적 분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제도적 수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의 일차적 책임을 확대하면서도 작전지휘와 전구 수준의 기획을 미국에 계속 의존한다면 책임과 권한 사이에 구조적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2025년 정상 공동 팩트 시트가 전작권 전환과 한국군의 연합 재래식 방위 주도능력 강화를 직접 연계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관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전작권 전환의 전략적 의미는 단순히 지휘권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보다 큰 안보책임을 담당하기 위해 필요한 지휘·기획·ISR·화력·군수 및 연합작전 역량을 갖추고, 미국은 이를 보완하는 결정적 능력을 제공하는 새로운 연합방위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는 유엔사령부(UNC)의 기능과 미래 연합지휘체계 간의 관계 역시 보다 정교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현재 공식 문서들이 전작권 전환에 따라 유엔사의 법적 권한을 확대한다고 합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유엔사는 정전협정 관리뿐 아니라 유사시 회원국 전력의 제공과 전개를 조정하는 다국적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으며, 한미 양국 역시 UNC 회원국의 참여 확대와 한국군·연합사·UNC 간 연습, 정보공유, 상호운용성 증대를 추진해 왔다. 2024년 SCM은 유엔사가 유사시 다국적 대응을 조정하는 기능을 명시하고 회원국 참여와 연합훈련 확대를 확인하였다. 2026년 UNC도 회원국들이 사이버·우주를 포함한 새로운 영역에서 추가적인 능력과 억제의 신뢰성을 제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20] 따라서 향후에는 한국이 연합방위를 주도하는 구조와 UNC를 통한 다국적 증원·지원체계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보완되도록 한국 합참–미 인도태평양사령부–연합사–유엔사 간의 지휘·지원·전력전개 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정립하는 문제가 동맹 현대화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넷째, 미국이 한국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더 큰 기여를 요구할 경우 한국은 ‘자동적 연루’가 아니라 조건부·선별적·능력기반 기여라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역내 기여가 반드시 한국군 전투부대의 직접적인 역외 투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하다. 한국은 한반도 억제 태세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정보공유, 해양상황인식, 후방 군수지원, 사이버·우주, 방산생산, 다국적 훈련과 파트너 역량구축 등 한국의 강점이 있으면서 연루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영역부터 역할을 확대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지역 기여의 범위와 조건을 사전에 제도화하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길이다.

 

다섯째, 방위산업 협력은 동맹 현대화의 주변적 경제 의제가 아니라 새로운 동맹의 핵심 군사능력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한다. 현대의 장기전은 첨단무기 자체보다 그것을 충분한 속도와 규모로 생산·정비·보급할 수 있는 산업적 지속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24년 최초의 「국가방위산업전략(NDIS)」과 지역지속지원체계(Regional Sustainment Framework)를 통해 동맹·파트너의 생산능력과 MRO를 미국 및 연합군의 전쟁지속체계에 통합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21] 2026년 트럼프 행정부의 ‘America First Arms Transfer Strategy’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무기판매를 동맹국의 자주방위 능력 확대, 미국 방산생산 증대, 공급망 강화 및 미국의 재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수단으로 명시하였다.[22] 즉 동맹의 산업기반까지 전략적 분업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게 이는 중요한 기회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이 미국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 전체가 전쟁에 필요한 전력을 더 빠르게 생산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방산협력을 완제품의 단순 구매나 미국 업체의 생산하청 수준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공동개발과 공동생산, 기술협력, 탄약·미사일 생산망, 미군 함정과 항공기의 MRO, 조선소 현대화, 반도체·배터리·AI·핵심소재 공급망까지 포괄하는 산업동맹으로 확대해야 한다. 실제 2024 SCM은 미 해군 함정의 한국 조선소 MRO와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확인하였으며, 2025년 한미 정상 합의는 조선업 투자, 미 함정의 한국 내 건조 가능성, MRO·인력양성·조선소 현대화와 공급망 협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23] 한국이 이러한 분야에서 미국에게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을 제공할수록, 한국의 동맹 내 전략적 가치는 단순한 지리적 위치와 기지 제공을 넘어 미국의 전쟁수행능력과 산업적 지속성을 보완하는 구조적 자산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섯째, 미국의 역할이 보다 선별적으로 변화할수록 오히려 핵확장억제와 전략적 정보·첨단능력 등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은 더욱 명확하게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한미 양국은 2023년 워싱턴 선언을 통해 NCG를 설립하고, 2024년에는 「한반도 핵 억제 및 핵 작전 지침」을 마련하여 핵 억제 정책과 태세에 관한 원칙과 절차를 구체화하였다.[24] 이는 동맹의 미래가 미국의 역할을 모든 분야에서 동일하게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더 많이 담당할 수 있는 재래식 방위영역과 미국의 고유한 전략적 능력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하고 후자를 보다 신뢰성 있게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동맹 현대화는 미국의 역할을 단순히 ‘줄이는’ 작업이 아니라, 미국의 역할을 보다 결정적인 영역에 집중시키고 한국의 능력을 그만큼 확대하는 재배치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 모든 변화를 하나의 원칙으로 압축하면 동맹 현대화에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더 내줄 것인가”가 아니라 “더 큰 역할을 담당하는 대신 무엇을 확보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요구를 하나씩 방어하는 방식만으로는 변화의 방향을 통제하기 어렵다. 반대로 국방비, 전작권, 미군태세, 역내 역할, 방산협력이라는 각각의 협상을 개별적으로 다룰 경우 한국이 한 분야에서 양보하고도 다른 분야에서 필요한 것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동맹 현대화는 하나의 전략적 패키지 거래(strategic package bargain)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방위 책임과 역내·산업적 기여 확대를 한국의 군사능력 강화, 전략적 자율성, 핵심기술 접근, 확장억제의 제도화, 안정적인 증원체계와 연결함으로써 전체적인 교환의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동맹 현대화는 한국 안보에 닥친 수동적인 위기만은 아니다. 한국이 변화를 거부하면서 과거의 역할분담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미국의 부담 이전과 주둔태세 조정은 한국에게 일방적인 손실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변화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한국에게 필요한 능력과 제도를 동시에 확보한다면, 동맹 현대화는 지난 수십 년간의 의존적 구조를 넘어 한국의 능력과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전제는 동맹을 바라보는 문법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동맹은 신뢰와 공동의 역사만으로 존속하지 않는다. 신뢰는 중요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신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상호 필요성과 능력, 그리고 서로의 행동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가 존재해야 한다. 동맹은 믿음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이 능력과 제도로 굳어질 때 지속된다.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한반도의 억제를 스스로 더 많이 담당하며, 미국의 전쟁지속능력과 인도-태평양 지역안보에 독자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한국의 위치도 달라진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이 일방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이 자신의 국가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반드시 유지하고 협력해야 하는 전략적 자산이 된다. 보호의 대상에서 전략의 파트너로, 의존의 동맹에서 분업의 동맹으로 이동하는 것—바로 이것이 동맹 현대화가 지향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전환이다.

 

Ⅳ. 소결: 한국에 대한 함의

 

미국 대 전략의 전환은 한국에게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한국은 한반도 억제를 어디까지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가? 둘째, 미국이 요구하는 역할 확대를 어떠한 원칙과 범위, 조건 속에서 수용할 것인가? 셋째, 미국이 한국을 계속 필요로 하도록 어떠한 전략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세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한국은 앞으로도 미국의 보호를 받는 동맹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동맹으로 진화할 것인가이다.

 

한국이 동맹 현대화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트럼프 2기 미국의 NSS와 NDS에 나타난 우선순위 재조정, 부담의 공유와 이전, 인도-태평양에서의 거부억제, 동맹국의 자국 방위 책임 확대는 서로 독립된 정책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와 다중전구 위기, 미국의 전략자원 제약 속에서 동맹의 역할과 책임을 재 배분하려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연구들도 이러한 변화를 동맹 해체나 단순한 비용 전가보다는 미국이 동맹국의 책임을 확대하면서 자신은 결정적 지원자의 역할로 이동하는 구조적 재편으로 분석하고 있다.[25]

 

한미동맹 역시 이러한 거대한 흐름의 예외로 남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맹 현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과 미국의 요구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명제이다. 미국이 동맹의 변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 변화의 방식과 조건까지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맹 현대화는 한국에게 내려지는 명령이 아니라 양국의 필요와 능력을 다시 배분하는 협상의 과정이다. 한국에게 중요한 것은 변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과 조건을 한국의 국익에 맞게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어떠한 지역과 능력을 우선하고 무엇을 동맹에게 이전하려 하는지, 반대로 어떠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미국의 개입이 불가피한지를 구분해야 한다. 비대칭동맹에서 약한 동맹국은 강대국의 전략문서를 단순한 안보공약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향후 부담 배분과 전략적 우선순위를 예고하는 기획문서로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연구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다.[26] 상대의 전략을 읽지 못하는 국가는 상대의 전략 속에서 자신의 역할도 설계할 수 없다.

 

문제는 장기간 지속된 미국에 대한 높은 의존이 이러한 능력의 발전을 오히려 제약해 왔다는 점이다. 과거 한미동맹 관리의 중심은 미국의 공약을 확인하고 그것을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전략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필요를 한국의 군사적 능력과 전략적 권한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까지 판단해야 한다. 동맹 관리의 핵심이 공약의 확인에서 필요의 분석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이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것도 이미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북한과 중국에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와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기지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과 대북 억제능력, 미사일·탄약 생산능력, 세계적 수준의 방위산업과 조선업, 반도체·배터리·원전·AI를 포함한 첨단 산업기반, 그리고 장기간 축적된 동맹 운용의 제도적 신뢰성이 새로운 전략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래전이 더 기술 집약적이고 동시에 더 소모적인 전쟁으로 변화할수록, 싸울 수 있는 국가만큼, 생산하고 수리하고 지속할 수 있는 국가의 가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방산협력에 관한 최근의 실증연구 역시 공급망과 기술협력이 향후 양국 방산협력의 핵심 요인이 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27]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미국에게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게도 새로운 전략공간을 열어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능력이 무한할 때에는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자원이 제한되고 한국의 군사·경제·기술 역량이 커질수록 관계의 비대칭성은 달라진다. 비대칭동맹에서도 약한 동맹국이 자신의 능력과 상대국의 필요를 활용해 자율성과 안보를 동시에 확대하거나 동맹 조정을 주도할 수 있다는 기존 연구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28]

 

따라서 한국의 동맹 협상은 미국의 요구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 집중하는 방어적 협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미국이 원하는 것과 한국이 필요한 것을 결합하는 공격적 협상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대가로 한국의 억제능력과 전략적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다. 상대의 요구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하는 것보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용하여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것이 더 높은 단계의 동맹관리이다.

 

한국이 더 많은 부담을 수용한다면 그 대가는 추상적인 신뢰가 아니라 구체적인 능력이어야 한다. 한반도 방위에서 더 큰 책임을 부담한다면 그만큼 독자적인 지휘통제와 ISR, 장거리 정밀타격, 통합미사일방어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더 큰 연합·역내 역할을 담당한다면 정보공유와 미군의 결정적 전력지원, 핵·재래식 통합기획, 전략자산 운용 협의, 사이버·우주 협력에 대한 접근도 함께 확대되어야 한다. 비대칭동맹에서 부담분담은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 내부의 역할과 권한, 효율성을 다시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기존 연구의 지적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29] 역외 역할 역시 같은 원칙에 따라야 한다. 한국이 대만사태를 비롯한 인도-태평양의 위기에 일정한 기여를 할 필요성이 커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식과 수준은 한반도 억제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우선순위 아래 설정되어야 한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외 역할 확대가 북한에게 기회주의적 도발의 공간을 제공한다면 미국 역시 대만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고강도 위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최근의 연구가 한반도와 대만해협을 분리된 전구가 아니라 동시위기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호 연결된 안보공간으로 분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30] 한국이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지키는 것 자체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요한 기여가 될 수 있다.

 

방산 공급망 협력 역시 단순한 생산 분담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미국의 취약한 생산능력과 군수 공급망을 보완한다면, 그 결과가 한국 방위산업의 하청화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생산·공동개발·공동표준·공동정비를 확대하고 한국 기업과 기술이 미국과 동맹의 방산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편입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산업적 역량을 일시적인 수출기회가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게 만드는 구조적 상호의존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맹 현대화는 한국에게 분명 불편한 요구이다. 더 많은 비용과 책임,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한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고착되어 온 동맹 내부의 역할과 위상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의 동맹이 미국이 안보를 제공하고 한국이 그것을 수용하는 구조였다면, 미래의 동맹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와 책임을 제도적으로 교환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동맹 현대화 자체보다 한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이 과거의 동맹 의존에 머문다면 동맹 현대화는 미국의 부담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과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책임과 비용은 늘어나지만 미국의 지원은 줄어들고,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정보와 지휘권한, 전략적 선택의 공간은 확대되지 않는 불리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능력과 권한 없이 책임만 커진다면 동맹 현대화는 결국 부담 이전에 불과하다.

 

반대로 한국이 자신의 군사·산업·기술 능력을 먼저 강화하고 이를 미국의 전략적 필요와 결합할 수 있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이 한반도 억제를 주도하면서 미국의 ISR·전략자산·장거리 정밀타격·확장억제와 같은 결정적 지원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도화하고, 동시에 미국의 방산·군수·기술 기반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능력이 커지면 미국의 부담은 줄어들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더 커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안보전략의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과거의 동맹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변화한 미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 필요를 한국의 능력과 국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미국의 지원을 붙잡기 위해 과거의 의존구조를 보존하는 것보다, 미국이 변화한 뒤에도 한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강력한 동맹전략이다.

 

동맹의 미래는 공약의 문장과 어구보다 필요의 구조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게 필요한 국가가 될수록 미국이 한국에 대한 공약을 이행할 전략적 유인은 커지고, 한미동맹도 일방적인 보호관계를 넘어 보다 안정적인 상호의존의 제도로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이 미국의 변화된 필요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역할에 머문다면, 동맹은 공통의 전략보다 비용과 부담을 둘러싼 거래에 의해 움직이는 더욱 불안정한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동맹 현대화의 시대에 한국이 붙들어야 할 전략적 원칙은 하나다. 미국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미국이 한국을 놓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

 

[1]The White House. 2025a.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ovember. 1-5, 8-13. 특히 NSS는 전략의 본질을 목표와 수단의 현실적 연결 및 우선순위 설정으로 정의하고, 탈냉전기 세계적 부담·동맹국의 방위비용 전가·산업기반 약화를 기존 전략의 핵심 문제로 지적한다.

 

[2]U.S. Department of War. 2026. “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 January 23. 3-5, 8.

 

[3]Ikenberry, G. John. 2018. “The End of Liberal International Order?” International Affairs, 94(1): 7-23.

 

[4]Posen, Barry R. 2014. Restraint: A New Foundation for U.S. Grand Strategy.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Mearsheimer, John J. and Stephen M. Walt. 2016. “The Case for Offshore Balancing: A Superior U.S. Grand Strategy.” Foreign Affairs, 95(4): 70-83.; Trubowitz, Peter and Peter Harris. 2019. “The End of the American Century? Slow Erosion of the Domestic Sources of Usable Power.” International Affairs, 95(3): 619-639.; Colby, Elbridge A. 2021. The Strategy of Denial: American Defense in an Age of Great Power Conflic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이들 연구는 접근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미국의 과도한 대외공약, 국내적 전략기반의 제약 등을 지적하면서 우선순위 설정 및 대(對) 중국 전략 집중의 필요성을 트럼프 2기 이전부터 제기해 왔다.

 

[5]Smeltz, Dina and Lama El Baz. 2025. “US Public Support for Alliances at All-Time High.” 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 October 14.; Fagan, Moira. 2025. “Americans’ Views of the War in Ukraine Continue to Differ by Party.” Pew Research Center. February 14. 전자는 2025년 미국 국민의 91%가 동맹 유지를 효과적인 외교정책 수단으로 평가했음을 보여주며, 후자는 유럽 동맹국의 국방비 증액 필요성에 대한 지지가 공화당 지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미국 여론은 동맹 자체의 폐기보다 동맹의 효용을 인정하면서 부담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복합적 성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6]The White House. 2025b.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November 13.

 

[7]설인효. 2026. “트럼프 2기 동맹 현대화와 한국의 동맹전략.” 『국제정치연구』 29, 1: 269-290.

 

[8]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2025. “Defense Primer: Geography, Strategy, and U.S. Force Design.” 이 보고서는 미국의 ‘force-planning standard’를 군이 동시에 또는 중첩하여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분쟁의 수와 유형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설명하고, 탈냉전 이후 ‘2개 주요 지역분쟁’에서 한 개의 주요전쟁 중심으로 전력기획 기준이 변화해 왔음을 정리한다. 전략적 동시성은 따라서 단순한 외교정책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군사력의 규모·구성·예산을 결정하는 전력기획의 핵심 문제이다.

 

[9]U.S. Department of Defense. 2022. “2022 National Defense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5-8.

 

[10]U.S. Department of Defense 2022, 8-14. 통합억제는 군사영역과 비군사적 국가수단, 동맹·파트너를 결합하여 억제력을 구성하는 접근이며, 2022 NDS는 동맹국을 방위기획의 모든 단계에 포함시키고 연합기획, 정보공유, 상호운용성 및 기술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11]U.S. Department of War 2026, 13-14.

 

[12]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2025; Cancian, Mark F. 2026. “The 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 by the Numbers: Radical Changes, Moderate Changes, and Some Continuitie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켄시언(Mark Cancian)은 2026 NDS가 동시전쟁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미군 자체의 완전한 2개 전쟁 수행능력을 복원하기보다 다른 전구에서 동맹국에게 더 큰 역할을 이전하는 접근을 채택한 것으로 평가한다.

 

[13]U.S. Department of War 2026, 18-21.

 

[14]The White House 2025b; U.S. Department of War 2026, 18-22. 정상 공동 팩트시트는 ‘Modernizing the U.S.-ROK Alliance’라는 항목 아래 국방비, 전작권 전환과 한국군의 연합 재래식 방위 주도능력, 미국의 역내 재래식 억제태세, 방산협력, 사이버·우주·AI를 함께 다루고 있다. 2026 NDS는 동맹 부담 확대와 방위 산업 기반을 별도의 핵심 노력선으로 설정하고 양자를 연결하고 있다.

 

[15]U.S. Department of Defense. 2018. “Summary of the 2018 National Defense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sper, Mark T. 2020. “Secretary of Defense Allies and Partners Remarks at Atlantic Council.” October 20. 에스퍼 전 장관(Mark Esper)는 국방부의 최초 ‘Guidance for Development of Alliances and Partnerships’가 안보협력을 우선순위화하고 미래 전력기획에서 동맹·파트너가 담당해야 할 우선적인 전쟁수행 역할을 식별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트럼프 1기에서도 부담분담에서 실제 군사역할 확대를 향한 제도적 움직임이 존재하였다.

 

[16]Colby 2021. Colby는 중국의 아시아 지역 패권을 방지하는 것을 미국의 핵심 전략목표로 두고, 미국의 자원을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동시에 지역 동맹국들이 효과적인 반 패권 연합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olby는 2017-2018년 미 국방부 전략·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로서 2018 NDS 수립을 주도하였고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정책담당 전쟁부 차관으로서 행정부의 국방전략을 주도하는 핵심 전략가 중 한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7]U.S. Department of War 2026, 18-21.

 

[18]The White House 2025b.

 

[19]The White House 2025b. 2025년 정상 공동 팩트 시트는 미국의 재래식 억제태세를 북한을 포함한 “all regional threats to the Alliance”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강화한다고 밝히고, 이와 관련된 2006년 이후의 양측 이해를 재확인하였다.

 

[20]U.S. Department of Defense. 2024a. “56th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Joint Communique.” October 30.

 

[21]U.S. Department of Defense. 2024b. “National Defense Industrial Strategy.”; U.S. Department of Defense. 2024c. “Department of Defense Announces the Regional Sustainment Framework.” May 15.

 

[22]The White House. 2026. “Establishing an America First Arms Transfer Strategy.” Executive Order. February 6.; The White House. 2025c. “Reforming Foreign Defense Sales to Improve Speed and Accountability.” Executive Order 14268. April 9. 두 문서는 무기이전을 동맹국의 자주방위 능력 확대뿐 아니라 미국의 방산 생산능력, 공급망, 재산업화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명시하며, 자국방위 투자와 미국 작전에서의 전략적 역할을 우선 파트너 선정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23]U.S. Department of Defense 2024a; The White House 2025b.

 

[24]U.S. Department of Defense. 2024d. “Joint Press Statement on the Signing of the Nuclear Consultative Group Guidelines.” July 11.

 

[25]설인효 2026; 담설평·김상규. 2026. “책임 분담 및 책임 전가: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과 동북아 동맹 재편.”한국동북아논총 31, 1: 155-177.

 

[26]Sohn, Hanbyeol. 2026. “Interpretive Asymmetry in Alliance Politics: How South Korea Reads U.S. Strategy Documents.” Journal of Peace and Unification, 16(2): 75-97.

 

[27]Cho, Hanchul, Jaehyuck Park, and Seokjoong Kang. 2025. “An Analysis of Factors Affecting Korea-U.S. Defense Industry Cooperation.” Korea Observer, 56(4): 595-622.; 정규평. 2024. “한-미 방산협력의 한계와 생산역량 기반 협력방안 연구.”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25, 10: 210-223.

 

[28]Park, Min-Hyoung and Kwang Ho Chun. 2015. “An Alternative to the Autonomy-Security Trade-off Model: The Case of the ROK-U.S. Alliance.”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27(1): 41-56.

 

[29]Kim, Dohee. 2020. “Case Analysis of the R.O.K.-U.S. Alliance Burden-Sharing through Theoretical Approaches to the Evolution of an Asymmetric Alliance.” Korea Observer, 51(1): 27-52.

 

[30]Kim, Sung-han and Beom June Kim. 2025. “ROK-U.S.-Japan ‘Operational’ Security Cooperation for Responding to a Two-Front Crisis.”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37(4): 479-500.

 


 

■저자: 설인효_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저자: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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