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효·김양규 국방대 교수와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동맹이 직면한 진정한 위기는 탈냉전 30년의 미국을 전제로 한 인식과 전략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들은 동맹 현대화를 방기의 신호로만 읽거나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국론 분열과 불필요한 역외 연루라는 상반된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에 실제 위기에서 작동하는 한미동맹의 능력에 주목하고, 미국이 한국을 계속 필요로 하게 만드는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동맹 논의의 틀을 바꿀 것을 촉구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의 대 전략 변화와 동맹 현대화가 한미동맹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분석하고, 한국의 안보전략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한미동맹 프로젝트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식되고 있으나, 그 변화의 본질이 한미동맹의 작동 원리와 한국의 안보에 어떠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지난 30년의 미국을 기준으로 오늘의 미국을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지체가 한국 안보전략의 가장 큰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글로벌 다중위기의 상시화, 전진 배치된 미군의 취약성과 방산 공급망의 한계는 미국이 모든 위기를 동시에 관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6년 이란 전쟁과 인공지능·무인체계 중심의 미래전 양상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제한된 전략자원을 핵심 지점에 집중하고, 동맹을 일방적인 안보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분업과 교환의 제도로 재설계하고자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는 이러한 대 전략 차원의 재편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사례입니다.
이제 한미동맹의 미래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한국이 미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고 보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변화를 동맹 약화로만 읽게 되면 안보 불안과 국론 분열에 빠질 수 있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연루 위험과 강압적 협상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 다영역 특임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산업 협력, 확장억제의 실효성, 대만사태와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 등 핵심 의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이러한 쟁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변화하는 동맹의 방향과 조건을 한국의 국익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을 논의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주도적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발간 목록]
① 인식의 지체와 진정한 위기, 김양규·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②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맹 현대화, 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
Ⅰ. 문제의식: 인식의 지체
미국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다. 변화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한미동맹과 한국의 안보 전략에 어떠한 구조적 압력을 가하고 있는가에 대한 우리의 분석과 담론이 여전히 지체되어 있다는 데 진정한 문제가 있다. 국제질서와 미국의 전략은 이미 새로운 단계로 전환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지난 시대의 경험과 개념으로 오늘의 변화를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현실과 인식 사이의 이 간극이 커질수록 미래를 이끌어 갈 전략의 오류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한국은 오랫동안 탈냉전 30년의 미국을 전제로 한미동맹을 이해해 왔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자유주의 국제질서, 개방된 세계 경제, 전 세계에 전진 배치된 미군과 광범위한 동맹 네트워크를 결합하여 사실상 세계질서의 최종 보증자로 행동했다.[1]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에서 동시에 위기를 관리할 수 있었고, 필요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하여 지역 질서를 복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하였다.
한국의 안보 역시 이러한 미국을 전제로 구축되었다. 주한미군의 존재,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방위체제, 유사시 대규모 증원전력, 그리고 핵을 포함한 확장억제는 한국 안보의 가장 안정적인 토대로 인식되었다. 미국의 군사력을 가능한 한 한반도 가까이에, 그리고 한미연합방위체제 깊숙이 묶어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안보 전략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고 강하게 형성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공식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과거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이미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미국은 더 이상 지난 30년의 미국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경제·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국가도 갖지 못한 글로벌 동맹망을 유지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힘의 절대량보다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방식이다. 미국은 이제 모든 전구에서 동시에 압도적인 질서를 제공하는 국가가 아닌, 제한된 전략자원을 가장 결정적인 지역과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 국가가 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장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중동 위기의 반복과 2026년 이란 전쟁의 충격,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 그리고 미국 제조업 기반과 방산 공급망의 취약성은 서로 다른 현상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문제로 수렴된다. 미국은 더 이상 모든 위험을 동시에, 동일한 강도로 관리할 수 없다. 문제는 미국이 약해졌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어느 전구에 얼마만큼의 군사력과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다.[2]
따라서 오늘 미국의 변화를 단순한 ‘쇠퇴’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변화의 핵심은 미국의 선택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미국은 모든 지역에서 모든 책임을 떠안는 대신, 자국의 핵심 이익을 선별하고 그 이익을 지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집중하려 한다. 반대로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진 지역에서는 동맹국이 더 많은 책임과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의 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이 훨씬 선택적이고 계산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동맹을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을 역사적 관계와 규범적 연대만으로 자동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로 이해하지 않는다. 동맹은 미국의 전략목표 달성에 필요한 능력과 비용,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전략적 분업의 제도로 재정의되고 있다. 동맹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만큼이나 미국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고 있으며, 동맹의 가치는 지리적 위치나 정치적 충성뿐 아니라 군사적 능력, 산업기반, 기술력, 군수지원 능력,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역할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3]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거칠고 노골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방위비와 국방비 증액, 동맹국의 자국 방위 책임 확대, 주둔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역내 역할 확대 요구는 모두 거래적 언어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트럼프 개인의 협상 스타일이나 일시적인 압박전술로만 이해하면 변화의 본질을 놓친다. 그 이면에는 미중 경쟁의 심화, 미국의 전략자원 제약,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능력으로 인한 전진배치 미군의 취약성, 글로벌 다중위기의 상시화라는 훨씬 깊고 구조적인 조건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동맹 현대화는 단순한 방위비 분담 압박도, 특정 행정부의 일시적인 협상전술도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제한된 전략자원을 재배분하고, 동맹국의 역할과 책임, 주둔태세와 지휘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대전략 차원의 재편이다.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어디에 놓일 것인지, 미군이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고 운용될 것인지, 동맹국이 어느 수준까지 자국 방위를 책임하고 역내 안보에 기여할 것인지가 하나의 패키지로 재조정되고 있는 것이다.[4]
문제는 한국의 담론이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여전히 동맹을 ‘강화’와 ‘약화’, ‘자주’와 ‘동맹’, ‘전략적 모호성’과 ‘전략적 명확성’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한미군의 일부 조정은 곧 철수의 전조로, 한국군의 역할 확대는 미국의 책임 회피로, 전작권 전환은 미국의 안보공약 약화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만으로는 변화하는 미국의 전략과 미래전의 군사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특히 미래의 동맹을 과거의 물리적 형태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앞으로 미국의 안보공약을 판단하는 핵심은 주한미군이 몇 명 남아 있는가에만 있지 않다. 어떤 정보감시정찰 능력이 한국과 공유되는지, 어떠한 지휘통제체계로 양국의 전력이 연결되는지, 미사일방어와 장거리 정밀타격, 전략자산과 핵전력이 어떤 절차와 조건에 따라 한국 방어에 결합되는지, 그리고 장기전에서 탄약과 군수·정비 지원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외부에 드러나는 형태를 공약으로 착각하면 형태를 지키고도 억제력을 잃을 수 있다.
인식의 지체가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분석이 부정확해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현실을 잘못 읽으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동맹 현대화를 모두 미국의 방기 신호로 해석하면 국내적 불안과 국론 분열이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요구를 동맹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할 조건으로만 받아들이면 한국의 국익과 무관한 역외 역할 확대와 연루 위험에 노출된다. 변화의 구조를 읽지 못하면 방기와 연루라는 서로 반대되는 두 위험에 동시에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에 대한 막연한 낙관도, 과도한 비관도 아니다. 보다 높은 전략적 시각에서 미국이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줄이려 하는지, 미국이 한국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이며 동시에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위험만큼이나 기회도 정확히 식별해야 한다. 미국이 자원 제약을 느낄수록 자국 방위를 스스로 책임하면서 미국의 군사적·산업적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동맹의 가치는 오히려 커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과거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를 필요로 했던 냉전 초기의 국가가 아니다. 세계적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과 방위산업, 조선과 제조업, 탄약과 미사일 생산능력, 반도체·배터리·정보통신과 같은 첨단기술 역량을 동시에 갖춘 국가이다. 북한을 직접 억제하면서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력과 전쟁 지속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맹국이기도 하다. 미국의 제약이 커진다는 것은 한국에게 위험인 동시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 보고서의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지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미국이 여전히 한국을 지켜줄 것인가”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질문은 변화한 미국이 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국을 계속 필요로 하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한국은 미국의 힘과 동맹을 자신의 안보와 국가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동맹의 미래는 미국의 선의나 과거의 약속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동맹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양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미래에도 존재해야 한다. 결국 가장 강한 동맹은 가장 많은 약속을 받은 동맹이 아니라, 서로의 전략에서 결코 제거하기 어려운 필요성이 된 동맹이다. 변화한 미국을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도 이제 과거의 형태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변화된 환경 하에서도 한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이 직면한 진정한 위기는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현실은 이미 변했는데 우리의 인식과 전략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위기이다. 문제의 정확한 규정 없이는 어떠한 올바른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현재의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서 본 보고서의 논의를 출발하고자 한다.
Ⅱ. 핵심 논지: 동맹 현대화의 본질과 한미동맹 재설계
본 보고서의 핵심 논지는 명료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동맹 전략 변화는 트럼프 개인의 일탈도, 동맹국에 대한 단순한 비용 청구도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구조적 심화, 글로벌 다중위기의 상시화, 미국의 전략자원 제약, 그리고 장거리 정밀타격과 인공지능·무인체계로 대표되는 군사기술 환경의 변화가 중첩되면서 미국의 대전략과 동맹 운용 방식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접적이고 거래적인 언어로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 한미동맹은 미국의 압도적 전진 배치와 한국의 안보 의존을 중심으로 작동하였다. 미국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의 주요 전략거점에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고, 한국은 기지와 접근권을 제공하였다. 유사시에는 미국의 압도적 해·공군력과 증원 전력이 투입되어 전쟁을 조기에 유리하게 전환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위의 문법이었다. 미국의 힘을 가능한 한 가까이에 묶어두는 것이 곧 억제를 강화하는 첩경이라는 인식도 이 구조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공식의 전략적 전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억제에 더 많은 자원과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과 중동, 인도-태평양에서는 복수의 위기와 전쟁이 동시에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동시성 문제(strategic simultaneity)’ 아래에서 미국은 과거와 같이 규칙과 규범의 유지를 위해 세계 모든 지역에서 거의 동일한 수준의 개입 능력을 제공하기 어렵다. 제한된 전력을 가장 중요한 전구와 임무에 집중하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동맹과 우방국이 더 많은 방위책임을 부담하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이 추진하는 동맹 재편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전략적 집중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역할의 재분배로 보아야 한다. 미국이 어느 지역에서 더 많은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서 누군가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동맹국의 자국 방어역량 강화와 추가적 역내 기여가 미국에게 더 이상 선택적인 요구가 아니라 대전략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는 이유이다.
군사기술의 변화는 이러한 압력을 더욱 강화한다. 중국의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 대규모 미사일 전력, 우주·사이버·전자전 역량, 해양거부 능력이 발전하면서 전진 배치된 미군은 억제의 상징인 동시에 전쟁 초기 집중타격의 표적이 되는 역설에 직면하였다. 전력이 가까이 있을수록 억제가 강해진다는 과거의 명제는 더 이상 모든 상황에서 성립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조건에서는 과도하게 집중된 전방전력이 상대에게 초기 기습을 통한 기정사실화의 유인을 제공하고, 미국의 작전 선택지를 오히려 제한할 수 있다.[5]
이른바 ‘전진 배치의 역설(Forward Presence Paradox)’은 향후 한미동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한미군의 일부 조정이나 후방 분산, 지휘구조의 변화, 전작권 전환, 유엔사 역할의 재조정 가능성은 한국 사회에서 곧바로 미국의 안보공약 약화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변화된 작전환경에서 현재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더 강한 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오히려 무엇이 실제 전쟁에서 생존하고 작동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동맹의 구조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적의 정밀타격권 안에 고가치 전력을 계속 밀집시켜 두는 것이 더 안전한가, 아니면 한국군이 초기 방어와 억제를 주도하면서 보다 생존성이 높은 후방의 미군 전력과 전략자산이 결정적 순간에 결합되는 구조가 더 안정적인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전략의 목적은 익숙한 형태를 보존하는 데 있지 않다. 변화된 환경에서도 필요한 효과를 유지하는 데 있다. ‘형태의 보존’보다 ‘효과의 보존’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맹 현대화는 동맹을 약화시키는 과정이라기보다 동맹의 작동 원리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미국은 대규모 전진 배치와 신속한 압도적 개입에 의존하던 ‘압도 억제’에서, 생존성·분산성·복원력과 동맹국의 자력 방어능력을 결합하여 상대의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부 억제’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그 결과 동맹국에게도 자국 방위의 1차적 책임과 지역 안정에 대한 실질적인 추가 기여가 요구된다.[6]
한국의 과제는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것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추종하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미국이 왜 변하고 있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히 읽고, 그 필요를 한국의 능력과 권한을 확대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동맹 현대화가 불가피하다면 한국은 그 재편의 대상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방향과 조건을 함께 설계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게 더 많은 방위비와 군사적 역할을 요구한다면, 한국은 이에 상응하는 전략적 이익을 확보해야 한다. 지휘통제와 정보·감시·정찰 능력, 장거리 정밀타격과 통합미사일방어, 사이버·우주 역량, 탄약과 군수의 지속능력,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포함한 첨단 해양전력 협력, 방산 공급망과 첨단기술 공동개발, 그리고 확장억제의 실제 운용과 공동기획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한국의 능력 발전과 연결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일방적 희생과 전략적 교환의 차이이다. 더 많이 부담한다는 사실 자체가 동맹의 성숙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하는 대신 더 많은 능력과 권한, 더 확실한 지원을 확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부담은 전략적 투자로 전환된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부담과 역할 확대를 지휘권·기술·능력·제도적 보장과 교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동맹은 선의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역사와 가치, 신뢰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국가의 장기적 전략행동을 보장할 수는 없다. 동맹은 서로의 필요성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그 필요성이 작전계획과 지휘구조, 공동훈련과 산업협력, 제도와 관행 속에 숙성될 때 가장 강해진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의 공약을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약속을 반복해서 확인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미국 자신의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스스로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대만사태와 한반도 위기의 연계는 이 논리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억제하고 유사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회주의적 도발을 반드시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억제가 무너지면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고강도 전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전략적 동시성의 악몽에 직면하게 된다.[7] 따라서 한반도의 안정은 한국만의 국익이 아니며 미국의 대중국 억제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전략적 조건이 된다.
이 점에서 한국의 자주국방은 동맹 강화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형 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 선제 조건이다.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주도적으로 억제하고 한반도의 안정성을 유지할수록 미국은 중국과 대만이라는 상위 전략과제에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은 미국을 밀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결정적 지원을 계속 한반도에 묶어두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 자율성은 동맹 이탈의 수순이 아니라 동맹 지속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북한 핵위협과 미국의 확장억제에도 적용된다. 북한이 극히 제한적인 형태로라도 실제 핵사용에 나선다면 동북아의 핵사용 문턱은 급격히 낮아질 수 있다. 동시에 대만사태에서 중국이 제한 핵사용이나 핵강압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려 할 경우, 미국은 두 개의 핵위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더욱 어려운 전략적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반도 핵억제는 단순한 한국 방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핵억제와 인도-태평양 전체의 위기관리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를 단순히 동맹국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약속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미국 자신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북한의 핵사용은 반드시 억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한 동맹 현대화와 주둔 태세 재편이 진행되더라도 미국이 대(對) 한국 확장억제를 쉽게 약화시킬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 공약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신뢰성 있는 작전 능력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이유로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라는 단선적인 해법에 논의를 한정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미국의 확장억제가 왜 일정한 구조적 실효성을 갖는가, 그리고 그 실효성을 한국이 어떻게 더욱 단단한 제도로 만들어 갈 것인가이다. 확장억제는 더 이상 ‘미국이 필요할 때 핵을 사용해 줄 것인가’라는 심리적 안심의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재래식-핵 통합(CNI), 위기관리, 지휘통제, 전략자산 운용, 정보공유와 한미 공동기획이 결합된 ‘제도화된 능력’으로 발전해야 한다.[8]
동시에 본 보고서는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이 불필요한 연루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의 전략적 목적은 대만사태 발생 시 자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우선적인 역할은 북한을 확실히 억제하고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역내 연쇄 위기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대만사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동맹 기여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이 한반도 방어를 주도하고, 주한미군의 역외 직접 투입 가능성과 조건을 정교하게 관리하며,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결정적 지원을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일정 수준 보장하면서도 한국의 불필요한 연루를 줄이고, 중국과의 우발적 군사충돌과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동시에 낮추는 현실적인 균형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동맹의 약화를 주장하는 중립론도 아니며, 중국을 상대로 한 무모한 대결론도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한미동맹을 한국 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과 선택의 공간을 확대하려는 현실주의적 전략이다. 강한 동맹과 높은 자율성은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스스로 더 많은 능력을 보유할수록 동맹에서 더 큰 역할과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만큼 동맹은 일방적 의존에서 상호 필요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가치외교 역시 이러한 현실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와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한국 외교의 중요한 정체성이며, 한미동맹의 정치적 정당성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가치가 전략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가치의 언어만으로 군사력 배치와 지휘구조, 확장억제, 방위비와 역외 역할의 비용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치가 힘의 구조와 연결될 때 비로소 전략이 되고, 힘이 가치의 방향을 가질 때 비로소 동맹은 지속 가능한 정치적 정당성을 갖는다.
결국 본 보고서가 제안하는 한미동맹의 재설계 방향은 명확하다. 한국은 미국에 더 의존할 것인가, 더 멀어질 것인가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스스로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책임을 담당하면서, 그 능력을 미국의 전략적 필요와 결합하여 미국의 결정적 지원을 더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것,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동맹 강화의 경로이다. 동맹의 미래는 과거의 형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가가 아니라, 변화한 현실 속에서도 양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다시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
Ⅲ. 연구 질문과 본문의 구성
본 보고서는 다섯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 트럼프 2기 미국의 동맹 현대화는 일시적인 강압과 비용 전가인가, 아니면 미중 전략경쟁과 전략적 동시성에 대응하기 위한 대전략 차원의 구조적 재편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동맹 현대화를 단기적인 협상 현상으로 볼 것인지, 향후 한미동맹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장기적 변화로 볼 것인지를 결정한다.
둘째, 패권 변동과 비대칭 동맹에 관한 국제관계이론은 현재의 동맹 현대화를 어떻게 설명하며, 변화된 환경에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동맹 조정의 원칙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특히 패권국의 공약과 자원 사이의 불균형, 방기와 연루의 위험,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미국의 역할 변화가 곧바로 동맹 약화를 의미하는지, 또는 새로운 조건에서 책임·능력·권한·공약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분석한다.
셋째, 인도-태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군의 주둔태세 변화와 전진 배치의 조정은 한미동맹 약화의 신호인가, 아니면 변화된 군사 환경에서 전력의 생존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거부 억제(deterrence by denial) 전략으로의 전환인가를 묻는다. 중국의 장거리 정밀타격과 A2/AD 능력이 발전한 상황에서는 미군이 얼마나 많이 전진 배치되어 있는가보다,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아 얼마나 신속하게 다시 전투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동맹 현대화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국이 한반도의 재래식 억제와 핵 억제를 유지해야 할 구조적 유인은 무엇인가를 분석한다. 특히 대만사태와 한반도 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할 때, 북한의 기회주의적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한국만의 국익이 아니라 미국이 인도-태평양의 핵심 전구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한 필수적인 군사적 조건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과 확장억제에 어떠한 지속성을 부여하는지를 검토한다.
다섯째, 이란 전쟁과 전장 무인화, AI 기반 작전수행, 정밀타격 전력의 급속한 소진, 방산 공급망 재편이라는 새로운 전쟁환경 속에서 한국은 어떠한 전략적 가치를 보유해야 하며, 이를 어떻게 동맹 협상의 지렛대로 전환할 것인가를 묻는다. 미래 동맹의 가치는 더 이상 기지와 병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탄약과 군수, 조선·MRO, 첨단 제조업, AI·반도체와 같은 산업·기술적 능력까지 동맹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9]
이상의 네 가지 질문은 서로 분리된 현안이 아니다. 하나의 전략적 연쇄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대전략 전환은 인도-태평양 주둔태세의 조정을 낳고, 주둔태세의 변화는 대만사태와 한반도 억제를 연결하며, 이 연결은 다시 북한 핵위협과 미국 확장억제의 실효성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AI·무인화·정밀타격과 방산 공급망 경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결국 각각의 문제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개별 안보 현안을 병렬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미국 대전략의 변화에서 출발하여 한미동맹의 구조적 재편, 인도-태평양 군사력 균형과 주둔태세 변화, 대만사태와 한반도의 연계, 북한 핵위협과 확장억제, 이란 전쟁과 미래전의 변화, 그리고 한국의 새로운 동맹전략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논리적 흐름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는 변화한 국제질서와 전쟁환경에 부합하는 한국 안보 전략의 새로운 사고 틀과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제2장에서는 미국이 왜 변하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과 국가국방전략(NDS), 전략적 동시성의 문제, 미국 우선주의의 구조적 성격과 ‘그레이트 게임 2.0’, 그리고 동맹 현대화의 전략적 논리를 검토한다. 핵심은 현재의 동맹 재편이 특정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을 넘어 미국의 국가전략 변화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제3장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대전략 변화가 동맹관계에 어떠한 조정을 발생시키는지를 국제관계이론과 동맹이론의 관점에서 검토한다. 길핀의 패권 변동론, 스나이더의 방기-연루 딜레마, 모로우의 비대칭 동맹과 안보-자율성 교환모형을 결합하여 패권 변동기 동맹 조정의 구조를 분석한다. 또한 연루와 방기를 기계적으로 대칭적인 위험으로 간주하는 기존 담론을 재검토하고, 위험의 구체적 경로와 시계열, 상호 필요성과 전략적 가치에 기초하여 한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동맹 조정의 원칙을 도출한다.
제4장과 제5장, 제6장에서는 그 변화가 한미동맹과 인도-태평양의 군사질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중국의 A2/AD와 전진 배치의 역설, 미군의 후방·분산 배치와 거부 억제,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전작권 전환, 대만사태와 한반도 위기의 연계, 역내 더블 컨틴전시를 차례로 다룬다. 이를 통해 주둔태세와 지휘구조의 변화가 반드시 동맹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변화된 군사환경에 맞는 새로운 억제체제로의 전환일 수 있음을 검토한다.
제7장과 제8장에서는 북한 핵위협과 미래전 환경 속에서 한국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북한 핵무력정책의 실질과 심리전적 효과, 미국의 재래식-핵 통합(CNI), 역내 다중 핵위기와 확장억제, 전술핵 재배치가 내포하는 위험을 분석한다. 이어 이란 전쟁을 통해 현실화된 AI 기반 전쟁수행과 정밀타격 전력의 조기 소진, 방산 공급망과 산업기반의 전략적 가치를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동맹전략과 안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최종적으로 본 보고서는 한국의 안보전략이 세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동맹의 자동성을 전제로 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맹은 존재 그 자체로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 필요성을 재생산할 때 지속된다. 둘째,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되 동맹을 약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능력과 자율성을 높여 미국이 한국을 더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을 감당하더라도 이를 단순한 비용으로 소비하지 않고 전력·기술·제도·공급망·확장억제의 보장으로 교환하는 능동적 동맹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결코 쉽지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담론에서 단순한 외교·안보 제도를 넘어 거의 고정된 전제로 기능해 왔다. 동맹의 형태 변화를 말하면 동맹 약화로, 자주국방을 강조하면 반미로, 연루 위험을 지적하면 안보 현실을 회피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오래된 이분법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낡은 구분이 아니다. 문제는 동맹을 믿느냐 의심하느냐가 아니라, 변화한 현실 속에서 동맹이 작동할 새로운 논리를 설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동맹을 신앙의 대상으로 남겨두면 변화는 언제나 불안의 원천이 된다. 반대로 동맹을 국가 이익을 실현하는 전략적 도구로 보면, 변화는 협상의 공간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략적 기회로 다가온다.
변했다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변화를 모른 척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 전진 배치만으로 억제를 보장하던 시대가 변화하고 있고, 압도 억제에서 거부 억제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보호받는 동맹에서 책임을 함께 부담하는 동맹으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의 변화보다 더 위험한 것은 현실이 변했는데도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이 변화의 객체로 남아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의 미래는 워싱턴의 결정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서울이 어떤 군사·산업·기술 능력을 갖추고, 어떤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며, 어떤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만들고 제도화하는가에 따라 동맹의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선택을 기다리는 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선택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
[1]Wohlforth, William C. 1999. “The Stability of a Unipolar World.” International Security, 24(1): 5-41.
[2]The White House. 2025a.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ovember. 1-4.; U.S. Department of War. 2026. “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 January. 13-14.
[3]The White House 2025a, 10-12; U.S. Department of War 2026, 13-14.
[4]The White House. 2025b.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November 13.
[5]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2024.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4.” U.S. Department of Defense. December 18. 87-88.; Grieco, Kelly A., Hunter Slingbaum, and Jonathan M. Walker. 2024. “Cratering Effects: Chinese Missile Threats to US Air Bases in the Indo-Pacific.” Stimson Center. December 12.
[6]U.S. Department of War 2026, 18-21.
[7]Kim, Sung-han and Beom June Kim. 2025. “ROK–U.S.–Japan ‘Operational’ Security Cooperation for Responding to a Two-Front Crisis.”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37(4): 479-500.
[8]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2022. “2022 Nuclear Posture Review.” U.S. Department of Defense. October 27. 8, 10-11, 16.; U.S. Department of Defense. 2024. “56th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Joint Communique.” October 30. 4-5.
[9]Cancian, Mark F. and Chris H. Park. 2026. “Last Rounds? Status of Key Munitions at the Iran War Ceasefir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April 21.
■저자: 김양규_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부 교수.
■저자: 설인효_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저자: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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