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효 국방대 교수와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질수록 대만사태와 북한의 기회주의적 도발이 겹치는 ‘역내 이중 동시 위기’에서 한반도 억제의 가치도 함께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저자들은 확전 위험과 한반도 방위 공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역할은 개입이 아닌 두 번째 전쟁을 막는 ‘억제 안정자’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 중국의 강압을 견딜 수 있는 전략적 거부능력을 갖추고, 그 대가로 미국의 결정적 지원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제언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의 대 전략 변화와 동맹 현대화가 한미동맹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분석하고, 한국의 안보전략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한미동맹 프로젝트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식되고 있으나, 그 변화의 본질이 한미동맹의 작동 원리와 한국의 안보에 어떠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지난 30년의 미국을 기준으로 오늘의 미국을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지체가 한국 안보전략의 가장 큰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글로벌 다중위기의 상시화, 전진 배치된 미군의 취약성과 방산 공급망의 한계는 미국이 모든 위기를 동시에 관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6년 이란 전쟁과 인공지능·무인체계 중심의 미래전 양상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제한된 전략자원을 핵심 지점에 집중하고, 동맹을 일방적인 안보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분업과 교환의 제도로 재설계하고자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는 이러한 대 전략 차원의 재편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사례입니다.
이제 한미동맹의 미래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한국이 미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고 보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변화를 동맹 약화로만 읽게 되면 안보 불안과 국론 분열에 빠질 수 있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연루 위험과 강압적 협상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 다영역 특임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산업 협력, 확장억제의 실효성, 대만사태와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 등 핵심 의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이러한 쟁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변화하는 동맹의 방향과 조건을 한국의 국익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을 논의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주도적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발간 목록]
① 인식의 지체와 진정한 위기, 김양규·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②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맹 현대화, 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③ 이론적 검토: 패권 변동기 동맹 조정과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 설인효·전재우·김양규 [워킹페이퍼 읽기] ④ 인태지역 군사력 균형 변화와 억제 패러다임 전환, 설인효 [워킹페이퍼 읽기] ⑤ 주둔태세 재편과 한미동맹: 위험과 기회의 구조, 설인효 [워킹페이퍼 읽기] ⑥ 대만사태와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 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
Ⅰ. 미국 대전략의 핵심 지역으로서 대만
트럼프 2기 미국 대전략을 전반적으로 보면 가장 우선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미 본토에 대한 강조이다. 국경 통제, 미 본토 방어, 핵전력과 미사일방어, 방위산업 기반 복원, 서반구에서의 중국 영향력 차단이 과거 어느 행정부보다 직접적인 언어로 강조되고 있다.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은 미국의 영토와 국민, 경제와 생활방식의 보호를 국가전략의 출발점으로 제시하고, 서반구에서 적대세력의 주요 거점 확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트럼프판 먼로주의’, 즉 ‘돈로주의’를 핵심 우선순위로 제시한다.[1]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미국이 인도-태평양에서 물러나려는 신호로 읽는 것은 전략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본토를 우선한다는 것과 핵심 해외지역의 세력균형을 포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명제이다. 오히려 미국이 모든 지역의 질서를 동일한 강도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자신의 안보와 번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서는 경쟁국의 패권을 더욱 확실하게 저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2025 NSS는 이 점을 매우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어느 한 국가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정도로 지배적인 지위를 확보하도록 허용할 수 없으며, 동맹과 파트너를 활용하여 세계적·지역적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적대적 패권국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2] 이는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가 고립주의나 해외 균형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미국이 세계 전체를 무제한적으로 떠받치는 역할은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더라도, 미국 자신에게 결정적인 지역에서 경쟁국이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선택적 균형전략’에 더 가깝다.
미 전쟁부 정책차관 콜비가 제시한 바 있는 거부전략 역시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지역을 직접 지배하는 것이 아니며, 중국과 같은 경쟁국이 핵심 지역에서 패권을 획득하여 미국의 안보·자유·번영을 장기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방지, 거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유리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역내 동맹국들과 반 패권 연합을 형성하여 중국의 지역적 지배를 거부해야 한다.[3] 본토 중심주의와 역외 균형은 서로 반대되는 전략이 아니며, 제한된 자원으로 본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하나의 전략이다. 만일 경쟁국이 자신이 속한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 더 본격적으로 미 본토를 위협할 여력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 지역이 바로 인도-태평양이다. 2025 NSS는 인도-태평양이 이미 구매력 기준 세계 GDP의 거의 절반, 명목 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앞으로도 그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이 지역을 21세기의 핵심적인 경제적·지정학적 경쟁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미국 국내의 번영을 위해서도 이 지역에서 경쟁에 성공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핵심 해상교통로의 항행 자유, 안정적인 공급망과 핵심광물 접근 역시 미국의 ‘핵심적·사활적 국가이익’에 포함되어 있다.[4]
따라서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단순한 해외 개입의 관성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성장 지역이 경쟁국의 배타적 영향권으로 편입될 경우 미국의 시장 접근과 공급망, 기술경쟁력과 해양 활동의 자유, 나아가 동맹체제의 지속 가능성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해외의 모든 분쟁을 자신의 분쟁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지만, 세계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중심이 집중된 지역의 균형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이 구조 속에서 대만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흥미롭게도 2025 NSS는 대만의 중요성을 반도체 생산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문서는 대만이 제2도련으로의 직접적인 접근을 제공하고 동북아와 동남아를 두 개의 작전 공간으로 나누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명시한다. 이어 대만을 둘러싼 충돌 억제를 우선적 과제로 규정하고, 제1도련에서 어떠한 침략도 거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축하며, 동맹국들의 항만·시설 접근과 방위능력을 연계하여 대만의 강제적 장악이나 미국에게 극도로 불리한 군사력 균형이 형성되는 것을 막겠다고 밝힌다.[5]
이것은 대만 문제가 미국 외교에서 민주주의 가치나 동맹 신뢰성의 상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만은 제1도련의 중앙에 위치한 군사·해양적 결절 점이며, 미국의 대중국 거부 전략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핵심 공간이다. 일봄 열도에서 대만을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제1도련은 중국 해군이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통과해야 하는 일련의 해협과 해양공간을 형성한다. 중국의 전략 담론에서도 이러한 도련 개념은 전략적 포위에 대한 우려,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 해군의 작전 선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6]
이 점에서 대만의 지리적 가치를 과소평가하기는 어렵다. 현재 대만이 중국 본토와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민해방군이 대만해협을 넘어 대규모 상륙작전을 준비해야 하고, 중국 해·공군이 제1도련 내부의 제한된 해협과 통로를 고려하면서 작전하도록 만든다. 반대로 중국이 대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장기간 군사 기지화 할 경우, 중국은 기존 본토 해안보다 동쪽에서 잠수함·항공기·센서와 각종 미사일 체계를 운용할 수 있는 추가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그린(Brendan Rittenhouse Green)과 탈마지(Caitlin Talmadge)의 연구는 이 가운데 특히 잠수함과 해양 감시 능력에 주목한다. 중국이 대만에 잠수함 전력을 배치할 수 있게 되면 미 해군 수상 전력에 대한 공격 기회가 증가하고 중국 잠수함의 생존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대만 동부 해역에 수중 감시 체계를 설치할 경우 필리핀해에서 미국 해군을 탐지·추적하기 위한 중국의 장거리 킬체인이 강화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7] 이는 대만의 통제가 중국에게 단순히 영토 하나를 추가하는 것보다 훨씬 큰 해양 작전상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만의 군사적 가치를 지나치게 결정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카발리(Jonathan Caverley)는 중국이 이미 장거리 미사일과 우주 기반 ISR을 통해 상당한 범위의 서태평양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대만 장악 자체가 지역 전체의 작전적 군사 균형을 단숨에 뒤집는다는 주장은 과장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8] 대만이 중국의 함정과 잠수함을 태평양으로 풀어주는 단순한 ‘병마개(cork)’라는 고전적 은유는 현대 정밀타격·우주전 시대에는 제한적으로만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오히려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한다. 대만이 중요하다는 것과 대만 하나가 서태평양 군사력 균형을 결정한다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은 지리적 위치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정치적·경제적 효과가 중첩되는 데 있다. 대만의 자율성이 유지되는 한 중국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군사작전 가운데 하나인 대규모 해협 횡단 작전을 준비하는 데 막대한 자원과 관심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
카발리 자신도 이 점을 중요한 전략적 효과로 인정한다. 대만이 독립적인 정치·군사적 실체로 남아 있는 한 인민해방군은 일본과 필리핀에 대한 강압이나 글로벌 공공영역에서의 경쟁에 더 많은 자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고, 대만 통일이라는 고난도의 군사적 과제에 지속적으로 집중해야 한다.[9] 이러한 의미에서 대만은 단순한 ‘지리적 장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만은 중국의 군사력과 전략적 관심을 서태평양의 핵심 전장에 계속 묶어두는 전략적 고정점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의 본토 방어와 대만 억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장악한다고 해서 다음 날 곧바로 미국 본토를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이 단순한 인과관계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제1도련에서 훨씬 유리한 군사적 위치를 확보한다면, 장기적으로 일본·필리핀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고 보다 많은 군사적·경제적 자원을 다른 지역에 투사할 수 있는 전략적 여지가 커질 수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서태평양에만 머무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 해군이 곧바로 미국 연안에 출현하는 단순한 군사적 시나리오만이 아니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훨씬 유리한 세력균형을 확보하면, 해양 전력과 경제·금융·기술 자원을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투입하고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서반구의 항만·인프라·통신·핵심자산에도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핵심지역에서 경쟁국을 묶어두는 것은 그 경쟁국이 다른 지역에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제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토를 지키려면 아시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는 미국 대전략의 실제 구조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본토를 우선하기 때문에 모든 해외지역을 동일하게 지키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도-태평양과 같은 결정적 지역의 균형은 더욱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대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해외 개입의 총량이 아니라 무엇을 핵심으로 선택하는가이며, 현재 미국의 공식 전략은 인도-태평양을 그 핵심 가운데 하나로 명확히 선택하고 있다.
2026년 국가국방전략(NDS)은 이러한 전략적 우선순위를 군사적 언어로 더욱 분명하게 전환하고 있다. 미 전쟁부는 중국을 지배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중국이 미국이나 동맹을 지배할 수 없도록 인도-태평양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규정한다. 이를 위해 제1도련을 따라 ‘강력한 거부방어(strong denial defense)’를 구축하고, 동맹·파트너가 집단방위에 더 많은 능력을 제공하도록 지원하며, 중국이 공격을 시도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만들겠다고 명시한다.[10]
2025 NSS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과 한국을 직접 언급한다. 두 국가가 방위비를 확대하는 것뿐 아니라 제1도련을 보호하고 침략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능력에 투자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는 미국의 대만전략과 한미동맹 현대화가 별개의 의제가 아니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국이 한국에게 북한 방어의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인도-태평양 연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희소한 전력을 대중국 억제라는 최우선 과제에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전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매우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대만이 미국 전략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이 곧 한국군이 대만 방어에 직접 투입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만 억제에 한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해야 하는가는 별도의 전략적 질문이다. 대만의 중요성과 한국의 직접 개입 여부를 하나의 문제로 묶으면 미국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한국의 국익에 맞는 선택지를 설계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미국의 대만전략을 깊이 이해할수록 한반도의 독자적인 전략적 가치가 더 분명해질 수 있다. 대만 위기와 동시에 북한이 기회주의적 도발에 나설 경우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고강도 전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에게는 한국군을 대만 전장으로 직접 이동시키는 것 못지않게, 또는 상황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중요하게 한국이 북한을 확실히 억제하여 한반도라는 두 번째 전구가 열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11]
이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전작권 전환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꾼다. 미국이 한국에게 한반도 방위의 1차적 책임을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한국이 스스로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억제할수록 미국은 대만과 제1도련에 더 많은 전략적 관심과 희소 전력을 집중할 수 있다. 반대로 한반도 억제가 불안정하다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인도-태평양 과제 역시 성공하기 어려워진다. 대만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한반도 안정의 미국 전략상 가치도 함께 커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만사태는 한국 안보 연구의 부차적인 장이 아니다. 대만은 미국이 왜 중국을 최우선 군사적 경쟁자로 규정하는지, 왜 제1도련의 거부 방어를 강조하는지, 왜 주둔태세를 분산·생존성 중심으로 재편하는지, 왜 동맹국의 자국 방위 책임을 확대하려 하는지를 하나의 논리로 연결해 주는 결절점이다. 대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국의 동맹 현대화가 왜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대만 논의도 질문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만사태가 발생하면 한국은 참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라 훨씬 뒤에 놓여야 할 질문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대만이 미국의 대전략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을 둘러싼 미국의 전략이 한반도의 군사적 가치와 한미동맹의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은 대만사태를 미국의 전쟁에 끌려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방어적 선택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대만을 억제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필요를 한국의 안보와 동맹 내 전략적 가치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이다. 다음 절에서 다룰 대만사태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이중 위기(double contingencies)’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Ⅱ. 역내 동시 위기 구조: 한반도 억제는 미국의 핵심 군사이익
많은 한국 국민들은 여전히 주한미군의 태세와 규모의 변화가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 한미동맹 파기와 같은 미국 안보 공약의 극적 축소나 폐지로 이어질 것을 우려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국제 안보 질서 및 역내 군사력 균형의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부터 발생한 지나친 기우다. 미국이 직면한 ‘전략적 동시성’의 문제는 글로벌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도-태평양에서는 훨씬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위기가 군사적으로 연결되면서 더욱 직접적이고 위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대만해협과 한반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분쟁 공간이지만, 미국이 실제 전쟁을 수행하는 관점에서 보면 항공모함, 잠수함, 전략폭격기, 공중급유기,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 방어, ISR, 탄약과 군수 능력을 서로 경쟁적으로 요구하는 하나의 ‘제한된 군사 자원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 문제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므로, 결정적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전력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항모전단, 장거리 폭격기, 공중급유기, THAAD와 Patriot 같은 미사일방어체계, Tomahawk·JASSM과 같은 장거리 정밀타격수단, 고성능 ISR과 군수수송 능력은 여러 전구가 동시에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희소 자산이다. 2026년 미 NDS가 별도의 절을 할애하여 ‘동시성 문제(the simultaneity problem)’를 제기하고, 복수의 잠재적 적대국이 서로 협조하거나 또는 기회주의적으로 여러 전구에서 동시에 행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공식 전략의 수준에서 인정한 것이다.[12]
2026년 2월 발발한 이란 전쟁은 이 문제를 추상적, 이론적 가정이 아니라 현실의 제약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포탄과 방공미사일, 정밀유도무기의 막대한 소모를 보여주었고, 중동의 반복된 위기는 미 해·공군과 미사일방어 전력의 지속적인 투입을 요구하였다. 특히 2026년 이란 전쟁은 한 전구에서의 대규모 탄약 사용이 다른 전구의 전쟁 준비 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캔시안(Mark F. Cancian)과 박(Chris H. Park)의 분석에 따르면 이란 전쟁에서 사용된 일부 장거리 타격·미사일방어 탄약은 전쟁 이전부터 대중국 고강도 전쟁에 충분하지 않았으며, 소모된 재고를 다시 충족시키는 데 수년이 필요할 수 있다.[13] 조네스(Seth Jones) 역시 미국이 중국과의 장기전에 필요한 장거리 정밀 탄약과 방공 요격 체계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개 이상의 전구를 동시에 감당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평가한다.[14]
따라서 오늘날의 전략적 동시성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이 “여러 지역을 동시에 걱정해야 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한 전구에서 사용한 한 발의 미사일, 한 척의 함정, 한 개의 방공포대가 다른 전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다중 전구 전략의 냉혹한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미국조차도 모든 지역에 최고 수준의 전력을 동시에 집중할 수는 없다.
이러한 글로벌 동시성의 구조가 인도-태평양 지역 내부로 내려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군사위기가 발생할 경우 미국은 일본과 괌을 중심으로 상당한 해·공군력과 ISR, 미사일 방어 및 군수 자산을 집중해야 한다. 동시에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면 미국은 동일한 지역 안에서 서로 가까이 있지만 작전적으로는 서로 다른 복수의 위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본 보고서는 이를 ‘역내 이중 동시 위기(Double Contingencies in the Indo-Pacific)’의 구조로 규정한다. 이것은 반드시 중국과 북한이 사전에 공동작전계획을 세워 동시에 전쟁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위험은 조정된 동시행동(coordination)보다 ‘기회주의적 동시행동(opportunism)’에서 발생할 수 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행동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분산되는 순간을 자신의 전략적 기회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두 전구의 위기는 서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최근의 연구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김성한과 김범준은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안보가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속에서 더 이상 분리된 전구로 이해되기 어렵다고 분석하고, 중국과 북한이 미국과 동맹의 취약성을 이용하여 동시 또는 연속적인 위기를 조성할 경우 일종의 ‘전략적 풍선효과(strategic balloon effect)’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구에 압력이 집중될수록 다른 전구에서 억제의 여유가 줄어드는 구조이다.[15] 이들이 한반도와 대만해협을 공식적으로 하나의 통합전구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사실상 하나의 전구처럼 고려하는 ‘사실상의 단일 전구(de facto one-theater)’ 전략을 제안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 북한은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된 국지적 위협이 아니다. 대만사태에서 미국의 군사적 선택지를 제약할 수 있는 전략적 변수가 된다.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 위기가 고조될 경우 북한은 미국의 주요 전력이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유리한 환경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반드시 전면전을 선택할 필요도 없다. 미사일 발사, 서해와 NLL에서의 제한적 충돌, 사이버 공격, 무인기 침투, 핵 사용 위협과 같은 낮은 수준의 도발만으로도 한국과 미국의 정보·지휘·방공·정밀타격 자원을 한반도에 묶어 둘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대만위기 발생 시 반드시 군사행동을 감행할 것이라는 경험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략은 상대가 반드시 그렇게 행동한다고 예측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할 유인이 커지는 조건을 미리 식별하는 일이다. 미국의 역내 군사적 대응능력이 대만에 집중되고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북한 지도부가 판단할 경우, 제한적 모험주의의 기대수익이 평시보다 높아질 가능성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미국의 전문가 분석에서도 명확하게 제기되고 있다. 존스톤(Christopher Johnstone)은 미 의회 산하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에 제출한 증언에서 한미동맹의 중요한 전략적 기능 중 하나가 대만 위기에서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북한의 기회주의적 공격을 억제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데 있다고 평가하였다.[16]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한미동맹의 대만 관련 가치는 한국군을 대만해협으로 이동시키는 데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묶어두는 것 자체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억제가 실패할 때이다. 대만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이 대규모 재래식 공격을 감행하거나 핵 사용 가능성이 있는 심각한 군사위기를 조성한다면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고강도 위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이때 미국의 선택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한국은 조약 동맹국이므로 한반도 위기를 외면할 수 없지만, 동시에 대만에서 중국의 군사적 기정사실화를 허용하는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즉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고 대만만 지킬 수도 없고, 대만을 포기하고 한반도에만 집중하기도 어려운 구조적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대만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군사적 메커니즘이다.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미국의 제한된 전략자산과 시간, 의사결정 능력을 동시에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하나의 전략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반도 억제의 의미를 한국의 안보이익만으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한반도 억제의 성공은 미국이 대만과 제1도련에서 자유롭게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군사적 조건이기도 하다. 한국이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안정적으로 억제하고 초기 위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면 미국은 자신의 희소한 해·공군과 장거리타격·ISR 자산을 대만사태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이 한반도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면 미국은 대만억제에 필요한 전력을 한반도에 남겨두거나 분산시켜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반도 안정은 미국 대만전략의 후방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군이 반드시 대만에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이 한반도를 확실하게 지켜내는 것은 미국이 대만에서 싸우지 않고 억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중요하다. 대만 억제와 한반도 억제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략적 수준에서는 오히려 상호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2026년 NDS의 한반도 관련 문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NDS는 한국이 강력한 군사력, 높은 국방비, 견고한 방위산업 기반과 징병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북한 억제의 ‘1차적 책임(primary responsibility)’을 담당할 수 있으며, 미국은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U.S. support)’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책임의 균형을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가 주한미군의 태세를 미국의 전체 국방 우선순위에 맞게 갱신하려는 이해와 부합한다고 밝히고 있다.[17]
이 문구만을 분리해서 읽으면 한국에게는 상당히 불안하게 들릴 수 있다. ‘1차 책임’은 미국의 책임 이전으로, ‘보다 제한적인 지원’은 공약 축소로, ‘주둔태세 갱신’은 주한미군 감축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NDS의 바로 앞 절이 복수의 적대세력이 여러 전구에서 협조적 또는 기회주의적으로 동시에 행동하는 문제를 ‘동시성 문제’라고 명시한다는 사실을 함께 읽어야 한다. 두 문장을 연결하면 전략적 의도는 보다 분명해진다. 미국은 한반도를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북한 억제의 전면을 보다 강력하게 담당하고 미국이 결정적인 조력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한반도라는 두 번째 전구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한국에게 부담의 증가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억제 성공이 미국 자신의 핵심 전략 수행에 직접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석은 미국의 공식 문서만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김성한·김범준의 연구는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동시위기가 미국과 동맹의 억제태세를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간 정보공유와 연합연습, 사이버·우주·핵 영역의 작전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18] 존스톤 역시 한국군의 강력한 대북 억제능력이 미국의 대만 대응에서 중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제한한다고 평가한다.[19]
이러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강한 한국군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덜 필요해지는 조건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이 더 중요해지는 조건이다. 탈냉전기 동안 제2의 한국전쟁을 억제하는 것과 미중 경쟁 심화 기 대만의 현상 유지 중 미국의 국가이익에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를 자문해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이 점은 한국의 대만 정책을 둘러싼 논의를 크게 바꿀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대만사태에서 한국이 미국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여를 곧바로 전투 병력, 전투기, 함정의 직접 투입으로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할 뿐 아니라 한미 양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 미국의 군사적 관점에서 한국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역할은 한반도에서 추가적인 전쟁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인태지역 군사력 균형을 분석할 때 매우 중요한 기여다. 더불어 전쟁 초기부터 한국이 직접적으로 군사적으로 개입되는 것은 한국의 위험부담이 클 뿐 아니라, 주한미군 기지와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인접성을 고려할 때 핵전쟁 유발 가능성을 높이는 등 한미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한 선택지도 아니다.
한국의 북한 억제는 결코 소극적인 역할이 아니다. 한반도에는 상당한 규모의 북한군과 대규모 포병, 탄도·순항미사일, 전술핵과 전략 핵 전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위협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억제하면서 미국이 최소한의 결정적 조력 능력만으로도 한반도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국은 대중국 억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다. 한국이 한 전구를 닫아놓는 것 자체가 다른 전구에서 미국의 힘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이것이 역내 이중 동시 위기에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가치이다. 한국은 대만 전장에서 싸우는 추가적인 전력 제공자이기 이전에, 대만사태가 한반도라는 두 번째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억제 안정자(deterrence stabilizer)’가 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역할이 아니라, 한국이 이미 보유한 군사력과 지리적 위치를 미국의 전략적 필요와 결합하여 새로운 동맹 가치로 만드는 접근이다.
여기에는 동맹 현대화의 중요한 역설이 존재한다. 한국이 한반도 방위를 더 많이 담당할수록 미국의 일상적 역할은 일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지켜냄으로써 미국의 대만 억제와 인도-태평양 세력균형 유지에 기여한다면, 미국이 한국의 억제 실패를 방치해서는 안 되는 전략적 이유는 오히려 더 커진다. 한국에 대한 지원은 단순한 동맹국 보호의 비용이 아니라 미국 자신의 가장 중요한 지역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한 투자로 바뀐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는 사실과 “미국의 한반도 이익이 감소한다”는 명제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의 희소한 전력을 중국 억제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지만, 바로 그 중국 억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책임은 이전될 수 있지만 이해관계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면 한국의 협상 방향도 달라진다. 한국은 미국에게 단순히 “한반도에서 떠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한반도 억제를 확실하게 담당하면 미국이 대만과 제1도련에서 얻는 전략적 이익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략적 이익을 미국의 ISR, 장거리 타격, 미사일 방어, 핵 억제, 군수·증원과 같은 결정적 지원의 제도화와 교환해야 한다. 이 점에서 한반도 억제는 단순한 비용 분담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교환의 문제가 된다. 한국은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고, 미국은 한국이 혼자 제공하기 어려운 결정적 능력을 보장한다. 미국은 대만에 집중할 전략적 자유를 얻고,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할 보다 강력한 연합능력을 확보한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물리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역내 동시 위기의 시대에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만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한반도에 추가적인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 자체의 가치가 커진다. 미국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은 대만에서 중국과 대치하는 동안 한국에 대한 방위책임까지 동시에 폭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한반도 억제는 한국의 생존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미국의 대만전략과 인도-태평양 군사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군사적 조건이 된다. 이것이 치열한 미중 전략 경쟁 시대 한반도의 새로운 지정학적 가치이다.
이 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대만이 미국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대만이 중요해 질수록 한반도를 안정시켜야 할 미국의 전략적 필요도 함께 커진다. 따라서 한국은 동맹 현대화의 과정을 도전적으로만 인식하고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새로운 전략적 역할은 바로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를 대만전쟁의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인도-태평양의 두 번째 전쟁을 막는 억제 안정자로 자리매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Ⅲ. 대만사태의 시나리오와 한국: 한반도 직접 개입의 위험성
대만사태를 논의할 때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하나의 전쟁 모습을 미리 정해놓고 한국의 역할을 역산하는 접근이다. 대만 위기는 전면적인 상륙 침공으로 시작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회색지대 압박에서 출발하여 검역(quarantine), 봉쇄(blockade), 외곽도서 점령, 제한적 정밀타격, 사이버·정보전, 장기적인 강압 작전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만사태’는 하나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목적과 확전 위험을 가진 일련의 위기 스펙트럼이다.
미 전쟁부 역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만 관련 군사행동을 단일한 침공계획으로 보지 않는다. 미 전쟁부의 2024년 중국 군사력 보고서는 공중·해상봉쇄, 제한적 무력 및 강압작전, 합동화력타격, 전면적인 상륙 침공, 외곽도서 점령 등을 서로 독립적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로 제시한다. 특히 봉쇄에는 미사일 공격, 전자전, 네트워크 공격과 정보전이 결합될 수 있으며, 제한적 강압은 정치·경제적 압박과 사이버 및 제한적 물리적 타격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20]
최근의 연구는 전면 침공보다 더 애매한 형태의 강압이 오히려 정책적으로 어려운 문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린(Bonny Lin) 등이 분석한 ‘검역(quarantine) 시나리오’는 중국 해경과 법집행기관이 중심이 되어 특정 선박과 물자의 대만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명시적인 전쟁상태에 진입하지 않고도 중국의 주권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방식이다.[21] 반면 2025년 CSIS의 대만 봉쇄 워게임은 군사적 봉쇄가 시작될 경우 중국이 대만에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지만, 봉쇄 자체가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불러오고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강한 확전 압력을 내포한다고 분석하였다.[22]
따라서 한국이 대만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별 선택지’이다. 특정 연도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가정이나,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즉각 전면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그 경우 한국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식의 선형적인 시나리오는 실제 위기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검역과 상륙 침공은 국제법적 성격도, 미국의 대응 수준도, 한국에게 요구될 역할도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모든 시나리오를 관통하는 하나의 본질은 존재한다. 대만사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핵 강대국이 서로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중대한 정치·군사적 이해를 가지고 충돌하는 위기라는 점이다. 중국에게 대만은 단순한 영토분쟁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의 국가통일 담론과 정권 정당성, 민족주의, 인민해방군의 핵심 군사임무와 연결되어 있으며, 군사적으로는 제1도련과 중국의 서태평양 접근이라는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미국 역시 대만과의 공식적인 상호방위조약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는 인도-태평양 세력균형과 제1도련 거부방어, 미국 동맹의 신뢰성, 첨단기술 공급망과 지역 패권 저지라는 여러 이해 및 국가 대 전략 목표와 상호 긴밀히 중첩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대만전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전쟁을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결정하기가 훨씬 중요하다는 데 있다. 미중 어느 한쪽도 상대의 완전한 굴복을 쉽게 강요할 수 없으며, 양국 모두 상당한 재래식 전력과 생존 가능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대만전쟁은 본질적으로 제한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재래식 전쟁으로 시작하더라도, 전쟁의 전 과정에서 상대의 전략자산·지휘통제·본토기지·핵 관련 체계를 공격해야 할 필요가 커지면서 수직적·수평적 확전의 위험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대만사태를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교하는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지만 신중해야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위기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대만사태가 그것보다 반드시 ‘더 위험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확전 관리의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만사태가 쿠바 위기에 못지 않고 일부 측면에서는 훨씬 더 어려운 위기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쿠바 위기는 핵무기의 배치를 둘러싼 고강도 위기였지만 미소 정규군이 대규모로 직접 교전하는 전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대만전쟁에서는 해·공군과 장거리 미사일, 우주·사이버·전자전, 동맹기지와 핵전력이 하나의 실제 전쟁 공간 안에서 동시에 상호작용할 수 있다.
대만전쟁의 핵 확전 문제를 다룬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위험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페티존(Stacie L. Pettyjohn)과 데니스(Hannah Dennis)의 워게임 연구는 미중 재래식 전쟁에서 양측이 상대의 지휘통제와 전략적 능력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핵 레드 라인을 의도하지 않게 넘을 수 있고, 중국의 핵전력 현대화가 위기 중 핵 강압과 제한 핵사용을 둘러싼 선택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23] 2024년 CSIS–MIT의 핵 워게임은 중국의 대만침공이 좌절되고 정권의 정치적 생존까지 위협받는다고 중국측 참가자들이 판단했을 때 핵 사용 압력이 가장 높아졌으며, 총 15차례 게임 가운데 일부는 실제 핵 교환으로까지 확대되었다.[24]
최근 학술연구 역시 미국의 전술 핵 선제사용 위협을 대만 방어의 해법으로 삼는 접근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키언(David Kearn)은 제한 핵전쟁 전략이 중국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반면,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대만해협을 넘어서는 위험한 확전 동학을 촉발하고 지역동맹국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25] 핵위협은 대만전쟁을 통제하는 최종 안전판이라기보다, 통제 실패 시 전쟁 전체의 성격을 바꾸는 가장 위험한 변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2023년 CSIS의 대만침공 워게임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단순한 승패에 있지 않다. 24차례의 게임 가운데 대부분의 기본 시나리오에서 미국·대만·일본은 중국의 상륙 침공을 격퇴했지만, 미국과 동맹은 수십 척의 함정과 수백 대의 항공기, 수만 명의 병력을 잃었으며 대만 경제는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미국의 세계적 군사적 지위 역시 장기간 손상될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났다.[26]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전쟁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대만사태에서 미국의 최우선 관심 가운데 하나는 승리 만큼이나 확전 통제(escalation management)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미국의 직접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일본·호주·한국 등 미국 동맹의 참여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전쟁을 관리 가능한 공간 안에 유지하려 할 유인이 크다. 미국은 반대로 대만에서 중국의 기정사실화를 저지하면서도 중국 본토 깊숙한 지역에 대한 공격이나 핵·지휘통제체계에 대한 위협이 핵 사용 문턱을 낮춰 핵 사용 또는 그 위협을 유발하고, 실제로 핵 전역으로 전환하지 않도록 군사 목표와 공격 범위를 세심하게 조정하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직접 군사개입이 결코 자동적인 선택지가 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한국군이나 한국 내 미군기지의 활용 범위가 커질수록 전쟁의 지리적 범위가 대만해협과 일본 남서부에서 한반도·서해까지 확대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센서·항공기·미사일·군수기지가 전쟁에 추가되는 것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공격할 수 있는 동맹 영토와 기지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핵 확전으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지만, 분명히 새로운 수평적 확전 경로와 표적 집합을 추가하는 선택이다. 무엇보다 한국 내 미 전력의 주요 주둔 기지와 베이징 사이의 지리적 거리를 고려할 때 전쟁은 전혀 다른 성격으로 격상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임박한 상태가 된다. 이는 순식간에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음을 뜻한다.
한국의 직접 개입에는 두 번째로 한반도 억제라는 훨씬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한국군의 전력구조와 작전계획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대규모 재래식 전력과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유사시 한반도를 방어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해·공군과 ISR, 미사일방어와 장거리 정밀타격은 대만전쟁에서도 활용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바로 그 전력들이 북한 억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같은 전력을 두 전구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다. 김광진의 연구는 대만해협 전쟁 시 주한미군의 일부 전투기와 이동식 미사일 방어 전력이 역외로 이동하고, 미국이 한국의 해·공군과 ISR 능력에 대한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을 분석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한반도 방위 공백과 북한의 전략적 기회주의가 중요한 위험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27] 박기태 역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가 역내 집단억제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한국에게 한반도 방위공백과 원하지 않는 역외분쟁 개입이라는 위험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한다.[28]
세 번째 문제는 한반도라는 두 번째 전구가 열릴 가능성이다. 앞 절에서 분석했듯이 미국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은 중국과 대만을 둘러싸고 고강도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북한이 기회주의적으로 군사행동에 나서는 경우이다. 따라서 한국의 핵심 전력을 대만 전장으로 이동시키거나, 주한미군의 핵심 대북 억제 전력을 대규모로 차출하는 것은 미국에게도 반드시 이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억제력이 낮아져 북한이 움직인다면 대만에 몇 개의 추가 전력을 투입하여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전략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한국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한국이 실제로 수행해야 할 역할을 ‘참전 여부’ 하나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미국 내에서 한국이 대만억제에 보다 명확하게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리프(Adam Liff)의 비교연구는 최근 미국이 일본과 한국 등 전방 동맹국에게 대만해협 억제에 더 많은 정치적·군사적 역할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안보환경과 북한이라는 독자적 위협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대만 관련 역할은 동일하게 설계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한다.[29]
여(Andrew Yeo)와 포어만(Hanna Foreman) 역시 대만사태의 성격에 따라 한국의 역할은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평가한다. 회색지대 또는 낮은 수준의 봉쇄에서는 외교·경제적 대응과 비전투 지원이 중심이 될 수 있지만, 중국이 미국 또는 한국 내 미군기지를 직접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군사적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일반적인 고강도 대만전쟁에서 한국군이 대규모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정치·군사적 제약 때문에 현실성이 낮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30]
이와 같은 본격적인 군사적 분석을 포함한 연구를 제외한 일반적인 기여 확대의 요구는 안보적, 정치적 의도에 의한 측면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일단 실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기 전까지 더 많은 국가들의 참전 의지 표명은 억제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대만 현상 유지의 중요성과 그 곤란성이 일반적인 안보전문가들에게 추가적 행동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하여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국가들에게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와 목소리는 군사적 상황과 맥락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고려를 포함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그 한계점을 뚜렷이 인식하면서 향후 논의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만전략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참전계획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일이 아니며, 사태의 성격과 한국의 역할을 연동하는 원칙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소통해 나가는 것이 한미 양국의 국가이익에 모두 부합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위기가 발생한 뒤 미국과 중국 양측의 압력을 동시에 받으면서 국가 내부적으로 급박하게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원칙의 첫째는 현상유지와 평화적 해결의 원칙이어야 한다. 한국은 대만해협의 일방적 현상 변경과 무력 사용에 반대하고, 항행의 자유와 지역 안정을 지지한다는 기존의 외교적 원칙을 명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한반도 억제 우선의 원칙이다. 어떠한 역외 역할도 북한에게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정도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핵심 억제능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단계적·조건부 기여의 원칙이다. 낮은 수준의 위기에서는 외교·경제·정보·사이버 협력을 중심으로 하고, 군사적 위기가 상승할수록 군수·정비·후방지원과 같은 간접적 기여를 검토하되, 직접 전투 참여는 별도의 국가적 판단을 요구하는 최고 수준의 선택지로 남겨두어야 한다. 한국의 대만 관련 역할이 위기 수준과 무관하게 사전에 하나로 고정될 이유는 없다.
넷째는 사전협의와 확전 관리의 원칙이다. 특히 주한미군의 역외 활용과 한국 내 기지의 사용은 미국만의 군사적 효율성 문제가 될 수 없다. 중국의 표적 선정과 북한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미 간 사전협의와 상황별 역할 구분, 전력 복귀와 증원계획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과 전략적 자동성을 허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접근은 대만사태에서 한국이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역할과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하는 역할을 구분하자는 주장이다. 대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곧바로 한국군의 직접 투입을 요구하는 것은 대만전쟁이 갖는 핵 확전 위험과 한반도–대만 동시 위기라는 작전적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다. 실제로 미국에게도 한국군의 직접적인 대만 전투 참여가 모든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중국의 회색지대 강압이나 제한봉쇄 단계에서 한국군의 직접 투입은 불필요하게 위기를 군사화 할 수 있고, 전면전 단계에서는 한국의 핵심 전력을 대만으로 이동시킨 결과 북한이 움직인다면 미국의 전구 전체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한국군 한 부대를 대만으로 보내 얻는 전술적 이익보다 한반도라는 두 번째 전쟁을 막음으로써 얻는 전략적 이익이 더 클 수 있는 상황이 충분히 존재한다.
한국이 전쟁 초기부터 직접 참전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적 이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인 제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31]
위 조항에 따르면 조약 의무상 한국이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합법적 지배하에 있는 영토에 무력 공격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즉 중국이 미국령 괌을 직접 공격할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 상 한국의 참전 의무가 발생한다. 대만사태에서 중대한 분수령 중 하나는 사태가 확대, 격상되는 과정에서 중국이 괌을 직접 타격하거나 타격 위협을 가하는 단계이다. 이때 한국이 여전히 참전하지 않은 상태일 경우 중국이 괌을 공격하면, 한국이 참전하게 되고 베이징에서 1000km 이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규모 재래식 전력을 보유한 한국의 참전을 불러올 괌 타격을 더욱 신중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즉 전쟁 초기 단계부터 한국이 참전하지 않는 것이 중국의 괌 공격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이 지향해 나가야 할 최적의 상태는 ‘전략적 모호성’과 ‘무조건적 전략적 명확성’ 사이의 ‘원칙 있는 조건부성(principled conditionality)’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는 정치적 입장은 명확히 하되, 구체적인 군사적 기여의 수준은 위기의 원인과 성격, 중국의 공격 범위, 미국의 대응 수준, 한반도 억제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이는 결정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사전에 구조화 하되 전략적으로 한미 양국 모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수준에서 ‘조건부화’를 통해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다시 한반도로 돌아온다.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클수록 미국은 중국의 기정사실화를 저지하기 위해 더 많은 군사력과 정치적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바로 그 순간 북한이 한반도에서 또 다른 기정사실화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미국에게도 결정적으로 중요해 진다. 대만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한반도 억제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커진다.
따라서 동맹 현대화와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의 일부 태세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미국이 한반도 억제를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미국 자신의 전략적 이해와도 부합하기 어렵다. 한국이 한반도 억제를 더 많이 담당하는 방향으로 역할은 변할 수 있지만, 미국은 대만에서 전략적 행동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ISR·장거리타격·미사일방어·핵억제와 같은 결정적 능력의 제공을 통해 한반도의 억제 실패를 방지할 강한 이해를 갖는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구조를 낙관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해와 한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이 한반도 억제를 주도하되 미국의 결정적 지원이 자동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만들고, 대만사태에서의 역외기여는 한반도 억제에 공백을 만들지 않는 범위에서 단계적이고 조건부로 설계해야 한다. 즉 이러한 설계를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
결국 대만사태에 대한 한국의 전략은 ‘참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위기에서, 어떤 역할이 한국과 미국의 공동 억제에 가장 큰 전략적 효과를 제공하면서 가장 위험한 확전과 한반도 공백을 피할 수 있는가”이다. 대만이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게 필요한 한국의 첫 번째 역할도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군을 대만으로 보내는 것보다 북한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대만전쟁에 하나의 전력을 더하는 것보다 한반도라는 두 번째 전쟁을 열리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대만사태를 동맹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군사전략의 논리로 바라볼 때 도출되는 한국의 우선적 역할이다.
Ⅳ. 한국의 대응 방향
본 장의 결론에는 하나의 중요한 역설이 존재한다. 대만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요해 질수록 한국의 전략적 가치도 커지지만, 그 가치가 반드시 한국군의 대만 직접 개입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만사태가 미중 간 고강도 군사위기로 발전할수록 미국에게 필요한 한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반도에서 북한을 확실하게 억제하여 또 하나의 전쟁이 열리지 않도록 하는 데 있을 수 있다. 한국군의 대만 투입 여부보다 한반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가 미국의 전체 전구 전략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만과 한반도는 더 이상 완전히 분리된 전략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만 위기가 발생하면 미국의 해·공군과 ISR, 미사일 방어, 장거리 정밀타격과 군수 능력이 대만 및 제1도련으로 집중되고,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관심과 전력 분산을 기회로 활용할 유인을 갖게 된다. 앞서 살펴본 최근 연구들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의 동시 위기를 미국과 동맹의 억제력을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는 ‘two-front crisis’로 분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전략적 연결성’과 ‘작전적 통합’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대만사태가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대만 전장 투입을 자동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이 핵심 전력을 대만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주한미군의 주요 대북 억제 전력이 무차별적으로 역외로 빠져나가는 순간 북한이 이를 억제의 공백으로 판단할 수 있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의 직접 참여를 미국의 대중국 전쟁이 한반도로 확대된 것으로 인식하여 한국의 기지·지휘시설·군수망을 새로운 압박 또는 타격 대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미국이 직면하는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대만에서 중국의 기정사실화를 저지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 북한을 억제해야 하고, 거기에 위기 관리에 실패하여 핵 전쟁으로 나아갈 가능성마저 발생한다. 한국의 참여가 미국에게 하나의 전력을 더해주는 대신 하나의 전구를 더 열어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신중함을 곧 소극성이나 동맹 기여의 회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경우에 따라 이는 오히려 확전을 제한하는 적극적인 전략일 수 있다. 미국의 전력이 대만에 집중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이 북한의 기회주의적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면,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고강도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존스톤이 미 의회 증언에서 한미동맹의 중요한 대만 관련 역할 가운데 하나로 북한의 기회주의적 공격을 억제하여 미국의 대만 대응력을 분산시키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러한 군사적 논리이다.[32]
그렇다면 대만사태에서 한국의 전략적 역할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연결되어 있으되 자동적으로 편입되지는 않는다”는 원칙이다. 한국은 한반도가 인도-태평양 전체의 군사력 균형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 일본과 괌의 기지 체계, 유엔사 후방기지, 역내 군수·정보 네트워크는 이미 한반도 안보와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이 한국의 모든 군사능력과 기지를 대만전쟁에 자동적으로 투입하는 구조로 발전할 필요는 없으며 한미의 실질적 군사이익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전략적 동시성의 시대에는 동맹 기여의 문법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의 동맹 기여는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어느 정도의 병력과 전투력을 보내는가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러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고 희소한 전략자산과 탄약·군수능력이 여러 전구에서 경쟁하는 시대에는 반드시 특정 전장에 병력을 보내는 것만이 기여가 아니다. 한 지역을 안정시켜 추가적인 전쟁의 발생을 막고,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맹 전력이 계속 싸울 수 있도록 후방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군사적 기여가 된다.[33]
한국이 북한을 확실하게 억제하고,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와 지휘통제체계를 방호하며, 탄약·정비·조선·MRO·정보·사이버·미사일경보 능력을 제공하고, 일본·괌 및 유엔사 후방 기지와 연결되는 군수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쟁수행능력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한국의 세계적 수준의 조선·제조업과 방위산업 기반이 미국의 공급망과 군사적 지속능력을 보완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은 최근 한미 방산협력 연구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직접 싸우는 전력만이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는 전력이 계속 싸울 수 있게 만드는 국가 역시 전쟁의 결과를 결정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금까지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존재한다. 한국이 이러한 인도-태평양의 군수·정보·지휘통제·산업 허브가 되는 순간 한국은 미국에게 더 중요한 동맹이 되는 동시에 중국에게도 더 중요한 강압·마비 대상이 된다. 중국의 관점에서 한국의 항만과 비행장, 탄약과 MRO 시설, ISR·C2 네트워크가 미군의 전구작전을 지속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면 이들 시설의 전략적 가치와 함께 군사적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이 역내 거부 네트워크에 더 깊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자신이 중국에게 ‘공격하기 매우 까다로운 국가’, 더 정확히 말하면 공격하기에는 비용이 지나치게 크고 강압하기에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국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에게 필요한 보다 넓은 의미의 전략적 거부능력(strategic denial capability)이다.
전략적 거부 능력의 목표는 중국과 대등한 군사력을 갖추거나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규모 공세 전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위기 발생 시 한국의 핵심 기지와 지휘통제체계를 단기간에 마비시키고, 해양·공중 접근을 차단하며, 군사·경제적 강압을 통해 한국의 정책적 선택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중국에게 한국에 대한 군사적 기정사실화를 허용하지 않는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군사적 강압 하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전략적 억제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 논리는 한미동맹의 미래와도 직접 연결된다. 미국이 한국에게 북한 방어의 더 큰 책임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제1도련을 중심으로 한 역내 거부 전략에 더 많은 기여를 기대한다면, 한국이 그 역할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거부 능력을 갖추도록 미국도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2026년 NDS가 단순히 동맹국에게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핵심 지역의 동맹·파트너가 집단방위에 더 많이 기여하도록 미국이 “독려하고 지원(urge and enable)”하겠다고 명시한 점은 중요하다. 같은 전략은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이 무기 판매, 방산 협력, 정보공유와 작전기획을 통해 더 큰 방위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34]
이것은 미 전쟁부 정책차관 콜비의 거부 전략 논리와도 정확하게 연결된다. 콜비가 구상하는 반 패권 연합은 미국이 모든 동맹국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동맹국들이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반 패권 연합에 계속 참여하도록 하려면 미국이 각 동맹국을 실제로 방어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이 특정 동맹국을 제한적 군사행동이나 강압을 통해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국가는 미국의 지역 거부 전략에 참여하기 어려워지고, 반 패권 연합 전체의 신뢰성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35]
이 논리를 한국에 적용하면 중요한 전략적 교환관계가 도출된다. 미국이 한국에게 더 많은 지역적 역할을 요구할수록, 한국이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강압을 견딜 능력도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의 위험을 증가시키면서 이를 감당할 능력은 제한해 둔 채 더 큰 역할만 요구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동맹전략이 될 수 없다. 실제로 2025년 미국 NSS도 한국과 일본에게 단순한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대세력을 억제하고 제1도련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능력(new capabilities)’에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36]
이 문구를 한국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한국의 제1도련 거부전략 기여를 원한다면 한국에게 필요한 장거리타격, 미사일방어, ISR, 지휘통제, 사이버·우주, 해양거부와 생존성·복원력 능력의 발전 역시 동맹 현대화의 정당한 의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은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가 만들어 내는 논리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지역적 역할 확대를 요구 받는 대신 위험을 감수한다”는 수동적인 교환구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다 전략적인 교환은 “한국이 한반도 억제를 주도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미국의 지역 거부 전략에 기여하는 대신, 미국은 한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적·비군사적 강압에도 독자적으로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한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의 대미 의존을 줄이는 것과 동맹 강화가 반드시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미국 입장에서 이상적인 동맹국은 미국이 모든 방위를 대신해 주어야 하는 국가가 아니다. 스스로 주요 위협을 억제하고, 경쟁국의 강압을 견디며, 그 결과 미국의 역내 전략에 자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국가이다. 2026년 NDS가 한국의 강력한 군사력과 국방비, 방위산업 기반을 근거로 북한 억제의 1차적 책임을 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방향을 보여준다.[37]
더 나아가 한국이 중국의 직접적인 강압에 취약한 상태에서는 한국 정부가 대만사태에서 미국에게 의미 있는 지원을 제공하기가 국내 정치적으로도 어렵다. 한국의 항만과 비행장을 사용할수록 중국의 타격위험이 급증하고, 군수·MRO를 제공할수록 중국의 경제·군사적 보복에 쉽게 노출된다면 어떠한 정부라도 역내 역할 확대를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국이 충분한 거부 능력과 복원력을 갖추고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거나 강압하는 비용이 크게 올라간다면, 한국의 전략적 선택의 폭 자체가 넓어진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전략적 자율성은 중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압박을 거부할 수 없는 국가는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강압을 견딜 능력을 가진 국가는 동맹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 위험한 요구에는 제한을 설정할 수도 있다. 한국의 전략적 거부능력 강화는 따라서 미국으로부터의 이탈을 위한 자율성이 아니라 동맹 안에서 더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위한 자율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대만사태 대응은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 억제 우선의 원칙이다. 어떠한 대만사태에서도 한국군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북한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억제하고 한반도에서 두 번째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만 대응과 인도-태평양 군사전략의 자유도를 확보하는 역할이다. 둘째는 철저한 조건부 제한적 역외 지원의 원칙이다. 대만 관련 지원은 자동적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되며, 위기의 원인과 수준, 한반도 억제상황, 중국의 보복 및 확전 가능성, 미국의 대 한국 지원 보장, 국내적 정당성과 국제법적 근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평시와 회색지대 위기에서는 외교·경제·정보협력, 위기가 상승하면 군수·정비·정보·사이버와 같은 간접지원, 직접적인 무력사용은 한국에 대한 공격이나 극단적인 지역전쟁 등 별도의 국가적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셋째는 전역 안정자(theater stabilizer)의 원칙이다. 한국은 대만전쟁의 직접 전투국가가 되는 것을 기본목표로 하기보다, 북한 억제와 기지방호, 정보·사이버·미사일경보, 조선·MRO·탄약·군수·산업 공급망을 통해 인도-태평양 전력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이 가진 방위산업과 조선·첨단 제조업의 결합은 미국의 전쟁지속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동맹국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러한 역할들은 모두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기보다 상당 부분 수렴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군이 대만전장에 몇 개의 부대를 추가로 투입하는 것보다, 한국이 북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미군기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미군의 함정과 항공기를 정비하고 탄약과 부품을 공급할 경우 더 큰 전략적 효과를 얻는 상황이 충분히 존재한다. 한국의 높은 재래식 군사력과 방위산업·산업기반을 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미국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미국이 한국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게 만드는 핵심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 나가야 한다.[38]
여기서 한국의 목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미국의 모든 지역전략에 자동적으로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연결을 거부하는 전략이 아니라 연결의 조건을 통제하는 전략이다. 한반도가 인도-태평양 전략공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되, 한국이 제공할 기능과 범위, 시기와 조건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미국에게 제공하는 것과 미국으로부터 확보해야 하는 것을 하나의 동맹 현대화 패키지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반도 방위의 더 큰 책임, 군수·MRO·탄약·산업기반 지원과 제한적인 역내 기여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대신 미국은 확장억제와 ISR·장거리 정밀타격·미사일방어·CJADC2 지원을 보다 제도화하고, 한국이 장거리, 해양, 사이버, 우주, 무인체계와 생존성 높은 지휘통제 등 독자적인 전략적 거부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술, 정보, 무기체계, 공동개발 측면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무기 획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의 지역 거부 전략에서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한다면, 그 위험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도 함께 확대되어야 한다. 책임만 커지고 능력과 권한은 그대로라면 그것은 동맹 현대화가 아니라 부담 이전이다. 반대로 책임의 확대가 한국의 전략적 능력과 선택권의 확대를 동반한다면, 동맹 현대화는 한국 안보 전략의 질적 도약으로 전환될 수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전략적 거부 능력의 확보가 공격적인 대중국 전략으로의 전환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목표는 중국과 군비경쟁을 벌이거나 중국의 본토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마비시키거나 경제·군사적 강압만으로 한국의 국가적 선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부억제는 상대를 정복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능력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콜비가 제시한 거부방어와 2026 NDS의 제1도련 거부전략이 강조하는 핵심 역시 바로 상대의 승리 가능성을 부정하는 데 있다.
이러한 역량을 갖춘 한국은 미국에게도 다른 의미의 동맹이 된다. 중국의 위협이 커질 때마다 더 많은 미국 전력을 요구하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북한을 억제하고 중국의 강압을 견디면서도 필요한 경우 미국의 지역 거부전략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 미국에 덜 의존하기 때문에 미국에게 덜 중요한 동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덜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더 활용하고 협력할 수 있는 동맹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보호를 기다리는 전방기지에 머물 필요가 없다. 북한에게는 전쟁을 시작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확신을 주고, 중국에게는 한국을 강압하거나 공격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판단을 심어주며, 미국에게는 한국 없이 인도-태평양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은 대만사태에 불필요하게 직접 연루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역내 억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억제를 책임지고, 중국의 강압에는 스스로 버틸 수 있으며, 전역 차원에서는 동맹의 군수·산업·정보망을 지탱하는 국가. 이것이 대만사태와 전략적 동시성의 시대에 한국이 지향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전략적 위상이다.■
[1]The White House. 2025.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ovember, 3-6.
[2]The White House 2025, 10. NSS는 “Balance of Power”를 독립된 전략원칙으로 제시하면서 어느 국가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정도로 지배적인 위치를 획득해서는 안 되며, 미국은 동맹·파트너와 함께 세계적·지역적 세력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3]Colby, Elbridge A. 2021. The Strategy of Denial: American Defense in an Age of Great Power Conflic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6-64, 147-170. 콜비는 미국의 핵심 전략목적을 중국의 아시아 지역패권을 저지하는 데 두고, 미국이 역내 반패권 연합의 외부 핵심균형자(external cornerstone balancer)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The White House 2025, 20-22.
[5]The White House 2025, 24-25.
[6]Yoshihara, Toshi. 2012. “China’s Vision of Its Seascape: The First Island Chain and Chinese Seapower.” Asian Politics & Policy, 4, 3: 293-314; 정호섭. 2024. “미·중 해양 패권경쟁: 서태평양 해역의 도련(島鏈) 개념을 중심으로.” 『국가안보와 전략』 24, 3: 5-66.
[7]Green, Brendan Rittenhouse and Caitlin Talmadge. 2022. “Then What? Assessing the Military Implications of Chinese Control of Taiwan.” International Security, 47, 1: 7-45.
[8]Caverley, Jonathan D. 2025. “So What? Reassessing the Military Implications of Chinese Control of Taiwan.” Texas National Security Review, 8, 3: 28-53.
[9]Caverley 2025, 28-53.
[10]U.S. Department of War 2026, 18.
[11]Seol 2026, 26-29. 동 연구는 대만사태와 한반도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이중 위기(double contingency)’ 상황에서 한반도 억제의 실패가 미국의 대만 방어 선택지를 심각하게 제약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가장 중요한 기여가 대만 전장에 대한 직접투입보다 북한의 기회주의적 도발을 억제하여 한반도 전구를 안정시키는 데 있을 수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12]U.S. Department of War 2026, 13-14. 동 전략은 잠재적 적대국들이 복수 전구에서 “coordinated or opportunistic fashion”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동시성 문제’의 핵심으로 명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동맹국의 방위책임 확대를 제시한다.
[13]Cancian, Mark F. and Chris H. Park. 2026. Last Rounds? Status of Key Munitions at the Iran War Ceasefire. Washington, D.C.: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April, 1-3, 9-10. 이 연구는 이란전쟁에서 사용된 Tomahawk, JASSM, THAAD, Patriot 등 핵심 탄약이 서태평양 고강도 분쟁에서도 필수적이며, 일부 재고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복구하는 데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14]Jones, Seth G. 2026. Is the United States Prepared for a War with China? Washington, D.C.: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May, 1-3.
[15]Kim, Sung-han and Beom June Kim. 2025. “ROK–U.S.–Japan ‘Operational’ Security Cooperation for Responding to a Two-Front Crisis.”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37, 4: 479-500.
[16]Johnstone, Christopher B. 2024. “China’s Evolving Counter-Intervention Capabilities and Implications for the United States and Indo-Pacific Allies and Partners.” Written Testimony before the 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 March 21, 3.
[17]U.S. Department of War 2026, 18-20.
[18]Kim and Kim 2025, 479-500.
[19]Johnstone 2024, 3.
[20]U.S. Department of Defense. 2024.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4.” Washington, D.C.: U.S. Department of Defense, 124-126.
[21]Lin, Bonny, Brian Hart, Matthew P. Funaiole, Samantha Lu, and Truly Tinsley. 2024. How China Could Quarantine Taiwan: Mapping Out Two Possible Scenarios. Washington, D.C.: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June, 1-7.
[22]Cancian, Mark F., Matthew F. Cancian, and Eric Heginbotham. 2025. Lights Out? Wargaming a Chinese Blockade of Taiwan. Washington, D.C.: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vii-xv, 132-145. 총 26회의 워게임을 통해 대만 봉쇄가 중국에게도 낮은 비용·낮은 위험의 선택지가 아니며, 봉쇄과정 자체가 통제하기 어려운 확전압력을 발생시켜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분석한다.
[23]Pettyjohn, Stacie L. and Hannah Dennis. 2023. Avoiding the Brink: Escalation Management in a War to Defend Taiwan. Washington, D.C.: 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 February, 5-10, 25-32. 동 연구는 대만전쟁에서 재래식 군사작전이 중국의 핵 레드라인과 충돌할 수 있는 여러 경로와 중국 핵전력 현대화가 핵 강압·확전 관리 선택지를 확대할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다.
[24]Cancian, Mark F., Matthew F. Cancian, and Eric Heginbotham. 2024. Confronting Armageddon: Wargaming Nuclear Deterrence and Its Failures in a U.S.-China Conflict over Taiwan. Washington, D.C.: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and MIT Security Studies Program, December, 1-7, 69-78. 연구진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만침공 워게임을 15회 실시했으며, 중국의 재래식 작전 실패가 정권 존립의 위기로 인식될 때 핵 사용 압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25]Kearn, David W. 2025. “Limited Nuclear War and the Defense of Taiwan.”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1-24.
[26]Cancian, Mark F., Matthew F. Cancian, and Eric Heginbotham. 2023. The First Battle of the Next War: Wargaming a Chinese Invasion of Taiwan. Washington, D.C.: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1-4, 83-88, 142-145.
[27]김광진. 2024. “미국의 대만사태 대응 전망과 한국의 안보.” 『전략연구』 31, 2: 57-115.
[28]박기태 2025, 67-96.
[29]Liff, Adam P. 2025. “Beyond Territorial Defense…? The U.S.-Japan and U.S.-ROK Alliances and a ‘Taiwan Strait Contingency.’” The Pacific Review, 38, 3: 443-472. 미국이 일본과 한국 등 지역동맹국의 대만해협 억제 기여 확대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이 처한 위협환경·국내정치 및 동맹의 제도적 차이로 양국의 역할이 동일하게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비교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
[30]Yeo, Andrew and Hanna Foreman. 2025. “Is South Korea Ready to Define Its Role in a Taiwan Strait Contingency?” Brookings Institution. March 28.
[31]국가기록포털. www.archives.go.kr/next. 본 조항의 영문은 다음과 같다. “Article 3 Each Party recognizes that an armed attack in the Pacific area on either of the Parties in territories now under their respective administrative control, or hereafter recognized by one of the Parties as lawfully brought under the administrative control of the other, would be dangerous to its own peace and safety and declares that it would act to meet the common danger 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32]Johnstone 2024, 3.
[33]이를 과거의 ‘직접적 기여’와 비교하여 역내 억제 구조에 대한 ‘구조적 기여’라 할 만하다. 한국은 앞으로 미국뿐 아니라 지역 국가들에게 한국의 한반도 억제가 갖는 ‘구조적 기여’를 이해시키고 이에 대한 충분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4]U.S. Department of War 2026, 4, 19-21.
[35]Colby 2021, 38-64, 147-170.
[36]The White House 2025, 23-24.
[37]U.S. Department of War 2026, 19-21.
[38]Seol 2026, 25-30. 동 연구는 한국의 높은 재래식 방위능력과 장기간의 전작권 전환 준비, 방위산업·조선·제조업 기반을 미국의 부담을 줄이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동맹자산으로 평가하고, 동맹 현대화를 책임 확대와 미국의 결정적 지원을 교환하는 과정으로 설계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저자: 설인효_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저자: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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