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효·김양규 국방대 교수와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전략적 여력이 제약되는 패권 변동기에 한국이 과거 수준의 자율성을 양보하더라도 이전과 동일한 안보 공약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합니다. 저자들은 방기와 연루를 대칭적 위험으로 보는 기계적 균형론을 경계하며, 위험의 현재성과 대체 가능성, 가역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나아가 자체 방위능력을 키우고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재생산하하는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을 제언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의 대 전략 변화와 동맹 현대화가 한미동맹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분석하고, 한국의 안보전략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한미동맹 프로젝트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식되고 있으나, 그 변화의 본질이 한미동맹의 작동 원리와 한국의 안보에 어떠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지난 30년의 미국을 기준으로 오늘의 미국을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지체가 한국 안보전략의 가장 큰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글로벌 다중위기의 상시화, 전진 배치된 미군의 취약성과 방산 공급망의 한계는 미국이 모든 위기를 동시에 관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6년 이란 전쟁과 인공지능·무인체계 중심의 미래전 양상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제한된 전략자원을 핵심 지점에 집중하고, 동맹을 일방적인 안보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분업과 교환의 제도로 재설계하고자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는 이러한 대 전략 차원의 재편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사례입니다.
이제 한미동맹의 미래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한국이 미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고 보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변화를 동맹 약화로만 읽게 되면 안보 불안과 국론 분열에 빠질 수 있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연루 위험과 강압적 협상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 다영역 특임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산업 협력, 확장억제의 실효성, 대만사태와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 등 핵심 의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이러한 쟁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변화하는 동맹의 방향과 조건을 한국의 국익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을 논의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주도적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미동맹 프로젝트 발간 목록]
① 인식의 지체와 진정한 위기, 김양규·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②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맹 현대화, 설인효·전재우 [워킹페이퍼 읽기] ③ 이론적 검토: 패권 변동기 동맹 조정과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 설인효·전재우·김양규 [워킹페이퍼 읽기] ④ 인태지역 군사력 균형 변화와 억제 패러다임 전환, 설인효 [워킹페이퍼 읽기] |
Ⅰ. 왜 이론적 검토가 필요한가: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1]
한미동맹은 지난 70여 년 동안 단순한 외교적 협력관계를 넘어 한국 안보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기능해 왔다. 주한미군, 연합지휘체계, 미국의 증원 전력과 확장억제는 실제 군사적 기능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국가안보를 인식하는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이 구조의 일부라도 변화할 경우 이를 단순한 군사적 효율성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주한미군의 조정은 철수의 시작으로, 한국군의 책임 확대는 미국의 방위 공약 약화로, 전작권 전환은 동맹 이완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국제질서와 군사 환경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논쟁의 강도가 더욱 커질 수 있다. 미국의 상대적 국력과 전략적 여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 변화하고 있는지, 중국의 부상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국의 동맹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될지, 그리고 분산 배치와 전략적 유연성 확대가 한반도의 억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두 높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동일한 현상을 두고 한쪽에서는 미국의 방기 가능성을 강조하고 다른 쪽에서는 한국의 연루 위험을 강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쉽게 국내 정치적 대립과 결합될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다고 해서 판단을 유보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무엇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특정 행정부나 정치지도자의 발언에 지나치게 반응하거나, 반대로 과거 70년 동안 동맹이 유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미래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모두 전략적 판단의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변화하는 현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건보다 구조를, 선언보다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단기적 조정보다 장기적인 인과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관계이론과 동맹이론의 의미가 있다. 이론은 현실을 단순화한다는 한계를 갖지만, 동시에 복잡한 현실에서 어떠한 변수가 중요한지 식별하고 서로 다른 현상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대신, 유사한 국제환경에서 국가들이 어떠한 선택을 해왔으며 그러한 행동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검토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오랫동안 유지된 동맹의 조정처럼 국민적 불안과 정치적 논란이 발생하기 쉬운 문제일수록 이러한 분석적 거리가 중요하다.
현재의 한미동맹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론적 관점이 특히 유용하다. 첫째는 패권국의 힘과 대외공약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로버트 길핀(Robert Gilpin)의 패권 변동론이다. 둘째는 동맹 내부에서 상대국의 지원을 잃을 위험과 상대국의 분쟁에 끌려갈 위험을 분석한 글렌 스나이더(Glenn Snyder)의 동맹 정치이론이다. 셋째는 비대칭 동맹을 강대국의 안보 제공과 약소국의 자율성 제공 사이의 교환관계로 이해한 제임스 모로우(James Morrow)의 비대칭 동맹론이다.[2]
세 이론은 서로 다른 분석 수준을 다룬다. 길핀은 국제체제와 패권국의 자원이라는 구조적 수준을 설명한다. 스나이더는 동맹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발생하는 협상과 방기·연루의 위험을 분석한다. 모로우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서로 다른 이익을 교환함으로써 비대칭 동맹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따라서 이를 결합하면 패권국의 전략적 여력 변화 → 동맹정책의 조정 → 방기·연루 위험의 변화 →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조건 변화 → 새로운 동맹 조정의 필요성이라는 하나의 인과적 연쇄를 구성할 수 있다. 설인효·김양규의 연구도 이러한 결합을 통해 현재의 동맹 현대화를 일시적인 정책변화가 아니라 패권 변동기에 발생하는 구조적 동맹 조정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론이 특정 정책의 정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론은 미국을 신뢰해야 하는가 의심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주지 않는다. 대신 미국은 왜 부담을 줄이려 하는지, 어떠한 부담은 이전하면서 어떠한 능력은 계속 유지하려 하는지, 한국의 어떠한 자산이 미국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한국이 어떠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어떤 안보 편익을 얻고 있는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질문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본 장의 목적은 현재의 한미동맹 조정을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서 평가하는 데 있지 않다. 패권 변동기에 동맹관계가 어떠한 원리로 변화하는지를 이론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해 향후 한미동맹 조정에서 한국이 지켜야 할 국가이익과 판단 기준을 도출하는 데 있다.
Ⅱ. 패권 변동기 비대칭 동맹의 조정: 안보와 자율성의 새로운 교환
1) 패권 변동과 공약의 조정
길핀은 국제질서가 국가들의 힘과 이를 토대로 형성된 제도·규칙·이익의 배분 사이의 일정한 균형을 통해 유지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국가별 성장률과 국력의 변화가 장기간 누적되면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한다. 패권국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국제적 공약을 유지하는 비용이 증가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할 가용자원은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문제가 나타난다.[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패권 변동이 반드시 패권국의 급격한 쇠퇴나 동맹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실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선순위의 조정이다. 패권국은 모든 공약을 동일하게 유지하기보다 핵심적 이해가 걸린 지역과 임무에는 자원을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낮거나 동맹국이 대체할 수 있는 임무에 대해서는 부담을 줄이려는 유인을 갖는다.
이러한 공약과 능력 사이의 불균형은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제시한 이른바 ‘리프먼 갭(Lippmann Gap)’의 개념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리프먼은 지속 가능한 대외정책의 기본 조건을 국가가 부담한 대외공약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힘 사이의 균형에서 찾았다. 국가가 충분한 예비역량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공약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대외정책은 ‘지불가능한(solvent)’ 상태에 있지만, 공약과 목표가 가용한 군사·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의지를 초과하면 전략적 ‘지불불능(insolvency)’ 상태에 빠지게 된다.[4] 패권국의 전략조정은 결국 이러한 간극을 축소하여 대외전략을 다시 지속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 미국의 대전략 변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미국의 군사·경제·기술력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제는 중국과의 장기 경쟁, 유럽과 중동의 위기, 북한의 핵위협, 방위산업과 군수생산 능력의 제약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미국이 모든 지역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군사력을 운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2장에서 살펴본 전략적 동시성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공약과 자원의 불균형이 현실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 2기의 동맹 현대화를 방위비 인상을 위한 협상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동맹국이 자국 방위의 일차적 책임을 확대하고, 미국은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능력에 집중하려는 방향은 패권국의 전략적 자원이 제약되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역할 조정의 논리와 상당 부분 부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트럼프 2기의 전략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는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우선순위화(prioritization)’라고 할 수 있다. 리프먼 갭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주변적 공약을 축소하거나 동맹국에게 이전하여 부담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위산업 기반과 군사역량을 확충하여 가용한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전략에서 본토와 서반구 방어, 인도-태평양의 대중국 억제에 자원을 집중하는 동시에 동맹국에게 자국 방위의 일차적 책임을 요구하고 미국의 방산·군수기반을 재건하려는 접근은 이 두 경로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5] 따라서 부담 분담(burden-sharing)에서 부담 이전(burden-shifting)으로의 이동은 개별 동맹에 대한 불만의 산물이라기보다 미국의 대외공약 전체를 다시 ‘지불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려는 대전략적 선택의 일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압력은 특정 행정부의 종료와 함께 소멸한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경쟁, 복수 전구에서의 군사적 동시성 문제, 제한된 탄약·군수 생산능력,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국내 정치적 압력은 행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맹국의 더 큰 방위기여를 요구하는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최근에는 군사비 분담을 넘어 자국 방위와 지역안보에 대한 실질적 책임의 확대라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미국 행정부가 교체될 경우 정책의 언어와 협상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전략적 우선순위와 동맹국에 대한 역할 확대 요구까지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이 동맹에 대한 부담을 무한정 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이 모든 안보 부담을 동맹국에게 넘기면 동맹국의 대미 의존이 감소하고, 그 결과 미국이 동맹국의 정책과 전략에 행사해 온 영향력 역시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의 부담 이전은 전면적인 철수보다는 선별적 조정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비용과 임무의 일부를 동맹국에게 이전하면서도 정보·지휘통제·핵전력·첨단전력·전략수송과 같이 동맹 전체의 작동을 좌우하는 능력을 계속 보유하려 할 수 있다.
2) 방기와 연루: 동맹조정의 두 위험
스나이더는 동맹 내부에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긴장을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의 딜레마로 설명하였다. 방기는 동맹국이 필요한 상황에서 약속된 지원을 제공하지 않거나 동맹에서 이탈할 위험이다. 반면 연루는 자국의 핵심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동맹국의 분쟁이나 대립에 동맹관계로 인해 끌려 들어갈 위험을 의미한다.[6] 두 위험의 배후에는 안보와 자율성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동맹국의 지원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만들면 방기의 위험은 감소할 수 있지만 상대국의 정책과 분쟁에 관여해야 할 가능성은 커진다. 반대로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동맹 공약의 범위를 줄이면 연루 위험은 감소할 수 있지만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국의 지원을 받지 못할 위험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기와 연루가 항상 동일한 크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나이더의 논리에서도 어느 위험이 더 중요한지는 동맹국 간 이익의 공유 정도, 상호의존성, 공약의 확고함과 같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과 한국이 동일한 위협을 동일한 우선순위로 인식한다면 딜레마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지만, 미국은 중국을 가장 중요한 장기적 경쟁자로 인식하고 한국은 북한의 군사·핵위협을 가장 직접적인 안보문제로 인식할 경우 양국의 우선순위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발생한다.
패권 변동기는 이러한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직접적 안보 지원은 보다 선택적으로 변하는 반면, 중국 억제와 지역안보, 방산·군수·기술 분야에서 한국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은 미국의 공약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자국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거리가 있는 갈등에 연루될 가능성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동맹 관리의 목적은 방기와 연루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위험이 실제로 더 현실적인지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각각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동맹의 범위와 조건을 조정하는 데 있다.
3) 비대칭 동맹과 안보-자율성의 교환
모로우는 비대칭 동맹을 단순히 군사력을 합산하는 제도로 보지 않았다. 강대국과 약소국은 동일한 편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이익을 교환한다.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은 강대국으로부터 안보편익(security benefits)을 얻는 반면, 강대국은 약소국의 정책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율성 편익(autonomy benefits)을 얻는다.[7] 한미동맹도 상당 기간 이러한 교환관계의 성격을 보여 왔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증원, 전략정보와 확장억제를 통해 안보 편익을 확보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기지와 접근권, 연합지휘체계, 한국의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동북아에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현실의 동맹을 하나의 교환 모형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비대칭 동맹에서 양측이 서로 다른 종류의 전략적 편익을 교환해 왔다는 점은 중요한 분석적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패권 변동기에 이 교환 조건이 변한다는 데 있다. 미국의 안보 공급 능력과 의지가 상대적으로 제약되면 한국이 과거와 동일한 수준의 자율성을 양보하더라도 과거와 동일한 수준의 미국 안보지원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이 자신의 부담을 줄이면서 한국에게 지역적·군사적·경제적 협력을 추가로 요구한다면 한국은 더 적은 안보를 제공받으면서 더 많은 정책조정을 요구 받는 불리한 교환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림 1> 패권 안정기와 변동기의 안보-자율성 교환[8]

이 도해가 갖는 핵심적 의미는 단순하다. 한국의 전략목표가 과거와 동일한 동맹 상태를 복원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환 조건 자체가 변화하였다면 과거의 균형점은 더 이상 최적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더 많은 정책적·군사적 자율성을 양보하여 미국의 공약을 가능한 한 과거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접근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기대한 수준의 안보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한국 스스로 안보를 생산할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자주적 방위역량이 증가하면 미국의 안보 공급이 일부 조정되더라도 한국의 전체 안보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이 미국에게 과거와 다른 형태의 전략적 가치를 제공한다면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고 결정적 지원을 지속할 유인 역시 높일 수 있다.
<그림 2> 한국의 국익과 패권 변동기의 동맹 조정[9]

그러나 자주국방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전에서 한국이 단기간에 자체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핵확장억제, 글로벌 ISR, 우주 기반 능력, 일부 전략수송과 첨단전력, 글로벌 군수 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새로운 동맹조정의 목표는 미국의 역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담당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의존을 줄이고, 미국이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은 더욱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이 한국에게 요구하는 전략적 가치의 내용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정학적 위치와 미군의 안정적 주둔, 기지와 접근권 제공이 중요한 동맹 자산이었다. 그러나 장거리 정밀타격과 ISR이 발전하면서 대규모 고정기지의 취약성이 높아졌고, 미중 전략경쟁과 장기전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방산생산·조선·군수지원·정비·탄약·첨단 제조업·반도체·AI와 같은 능력의 가치가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과거의 방식으로 자율성을 양보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동맹에서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그림 3> 동맹 조정 이후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10]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안보패러다임은 동맹과 자주국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자체 방위능력을 확대하여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의존을 낮추고, 동시에 미국과 동맹 전체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전략적 가치를 제공하여 미국의 지원 유인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는 미국의 핵심 능력은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결합해야 한다.
즉 안보와 자율성의 관계를 단순한 제로섬으로만 이해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능력이 충분히 커지고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확대된다면 안보와 자율성을 동시에 증대시키는 새로운 전략적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 설인효·김양규의 연구가 자주국방, 방산·조선·첨단기술, 소다자 협력을 기존 교환관계 밖의 새로운 변수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Ⅲ. 연루와 방기 심층분석: 기계적 균형에서 국가이익 중심의 동맹 조정으로
1) 방기와 연루는 대칭적인 위험인가?
앞의 이론적 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문제가 있다. 국내의 동맹담론에서는 방기와 연루가 흔히 동전의 양면처럼 제시된다. 역내 협력이나 대만사태 관련 역할 확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 “연루를 줄이면 방기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반론이 등장하고, 미국의 공약 약화를 우려하면 “동맹을 강화할수록 연루된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그 결과 정책적 결론은 흔히 양자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수준에서 끝난다.[11]
그러나 이러한 기계적 균형은 고전적 동맹이론의 정확한 적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스나이더가 강조한 것은 두 위험이 언제나 같은 크기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공유 정도, 의존성, 공약의 확실성 등 특정 조건에 따라 어느 위험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딜레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분석의 시작이지 정책적 결론이 아니다.[12]
따라서 방기든 연루든 정책적 위험으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네 가지가 특정되어야 한다. 누가 행위자인가, 어떠한 이해와 유인을 갖는가, 어떤 경로로 위험이 현실화되는가, 그리고 어느 시간대에 발생하는가이다. 위험의 구체적인 인과경로를 제시하지 않은 채 단순히 “반대쪽 위험도 있다”고 대응하는 것은 균형 있는 분석이라기보다 전략적 판단을 유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기에 패권 변동기의 특징을 추가하면 방기와 연루의 분석에는 두 변수가 더 필요하다. 첫째는 동맹국이 제공하는 자산의 대체가능성(substitutability)이다. 둘째는 특정한 역할과 제도적 약속이 일단 형성된 뒤 이를 변경할 수 있는 가역성(reversibility)이다. 패권국이 동맹국을 계속 필요로 하는 한 방기의 유인은 일정하게 제약될 수 있지만, 동맹국이 역외 군사작전이나 특정한 지휘·협의체계에 깊숙이 편입될수록 연루의 경로는 제도적으로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방기와 연루를 다음 네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① 위험의 현재성과 시계열, ② 상호 필요성과 대체가능성, ③ 부담과 통제권의 실제 배분, ④ 제도화 이후 선택의 가역성이다. 이 네 기준을 적용하면 동맹을 강화할 것인가 약화시킬 것인가라는 추상적 논쟁보다 훨씬 구체적인 국가이익의 평가가 가능하다.
2) 미국 변수와 한미일 협력의 역사적 동학
동맹 위험의 상대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한미일 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사동맹(quasi-alliance) ,개념을 활용한 연구는 한일 양국이 미국을 공동의 동맹국으로 두고 있음에도 미국의 공약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협력유인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13] 특히 냉전기 미국의 관여가 안정적일 때에는 한일 양국이 미국이 요구한 삼각 안보협력에 항상 적극적으로 응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미국의 공약이 약화될 것으로 인식한 국면에서 방기의 우려가 커지면서 양국 협력의 유인이 높아지는 경우가 나타났다.[14]
1970년대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감축, 카터 행정부의 철군 논의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 미국의 공약 변화가 한일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적 변수로 작용하면서 역사문제와 상호 불신에도 불구하고 안보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반대로 미국의 강력한 지역관여가 보장되고 일본이 대규모 외부 위협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던 기간에는 미국의 반복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삼각협력을 적극 제도화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약했다.[15]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재의 한미일 협력을 과거와 동일한 방기-연루 공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늘날 미국은 대중국 경쟁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에도 적극적이다. 즉 현재의 삼각협력은 미국의 역내 이탈 때문에 한일 양국이 서로를 찾아가는 과거 일부 시기의 패턴과 다르다. 미국의 관여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중국 전략과 동맹 네트워크가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16]
이 차이는 한국에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삼각협력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거나 위험하다는 선험적 결론보다 어떠한 임무와 작전, 지휘·협의 구조가 제도화되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의 직접적인 안보이익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를 따져야 한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정보공유, 해양상황인식, 대잠전과 미사일경보처럼 한국의 직접적인 안보에 기여하는 협력과, 미중 직접충돌에서 한국군의 군사적 역할을 자동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협력은 동일한 차원에서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한미일 협력의 쟁점 역시 ‘협력이냐 비협력이냐’가 아니다. 협력의 임무, 범위, 발동조건과 의사결정절차를 구분하고 한국의 국가이익과 연계하여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3) 연루의 현재성과 방기의 조건: 지정학적·산업적 가치
비판적 동맹담론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연루와 방기가 서로 다른 시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미중 경쟁에서 연루의 가능성은 전략문서, 지휘관의 발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미일 군사협력의 제도화와 같이 비교적 구체적인 경로를 통해 관찰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이 실제로 한국을 전략적으로 포기할 것이라는 방기의 위험은 이를 발생시킬 구조적 조건을 보다 엄밀히 따질 필요가 있다.[17]
2026년 NDS가 한국의 대북 방위책임 확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도-태평양에서의 대중국 거부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논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미국의 한반도 직접 방위부담 감소만 보면 방기 우려를 제기할 수 있지만, 동일한 정책을 주한미군의 역할과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역외 임무와 연루 가능성의 확대라는 반대 방향의 효과도 존재할 수 있다.
방기의 현실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국에서 얻는 전략적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크게 위치적 가치와 역량 기반의 가치로 구분할 수 있다. 위치적 측면에서 한반도는 오랫동안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구조에서 중요한 전략공간이었다. 냉전기에는 한반도가 소련과 공산권 세력의 남하를 억제하는 전방지역이자 일본을 후방기지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완충공간의 역할을 수행했다. 1969년 사토-닉슨 공동성명에서 한국의 안보가 일본 자신의 안보에 긴요하다고 규정한 이른바 ‘한국 조항’도 이러한 전략적 연계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18]
물론 현재의 지정학은 냉전기와 다르다. 중국은 소련과 달리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통해 직접 해양으로 진출할 수 있으며 중국의 군사력이 한반도를 경유해야만 서태평양으로 투사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냉전기와 같은 의미의 완충지대 논리를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소멸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한반도의 안정은 북한의 기회주의를 차단하여 미국이 대만·동중국해 등 다른 전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며, 한국의 군사·산업·군수능력은 미국의 역내 억제망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역량 측면의 가치는 오히려 과거보다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위산업, 탄약과 첨단 제조업에서 미국이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상당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방위산업 기반의 생산능력과 숙련인력, 일부 핵심 공급망의 취약성이 부각될수록 이러한 역량의 전략적 가치는 커진다.[19]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방기가 현실적인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치적 불만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비판적 논의에서 제시된 기준을 재구성하면 대략 세 가지이다. 첫째, 한국이 제공하는 산업·기술적 역량을 미국 또는 다른 국가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갖는 가치를 다른 배치와 네트워크를 통해 대체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미국이 한미동맹을 유지함으로써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이러한 잔여 전략적 가치를 초과해야 한다.[20] 현재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은 방기 가능성을 부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방기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분석하려면 어떤 조건이 변화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4) 산업역량의 ‘내부화’와 대체 불가능성의 관리
여기에서 특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문제제기가 미국의 산업기반 강화와 한국의 전략적 가치 사이의 관계이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조선, 첨단제조와 방산 분야에서 자국의 생산기반을 확대하면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현지투자와 기술·인력 협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이를 미국이 외부 동맹국에게 의존하던 역량을 자국의 영토와 제도적 통제 안으로 편입하는 일종의 산업역량 내부화(internalization)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시설뿐 아니라 공정지식과 숙련인력까지 미국 내부에서 재생산할 수 있게 되면 장기적으로 한국이 보유했던 일부 대체 불가능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21]
이 문제제기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한 번 확보하면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고정된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가 제공하던 능력을 후견국이 자체적으로 확보하거나 제3국이 대체할 수 있게 되면 그 국가의 협상력은 낮아질 수 있다. 전략적 가치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야 한다.
다만 산업역량의 미국 내 확대가 자동적으로 한국의 가치 하락과 방기로 연결된다고 보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가 오히려 양국 산업의 상호의존을 강화하고 미국 내에 한미협력을 지지하는 새로운 경제적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계·연구개발·핵심공정·공급망·본국 생산능력 가운데 무엇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무엇이 한국에 유지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본 보고서가 이 논의에서 받아들여야 할 핵심은 ‘산업 내부화가 결국 방기를 초래한다’는 단선적 결론이 아니다. 한국의 전략적 대체 불가능성 역시 관리와 재생산이 필요한 변수라는 점이다. 한국의 대미 산업협력은 따라서 투자 총액이나 미국 내 생산규모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핵심 설계·연구개발과 최상위 생산역량을 국내에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미국과의 공동개발과 공동생산을 확대하면서 한국이 차세대 분야에서 새로운 비교우위를 계속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능력을 보호하는 것만큼 다음 세대의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앞 절의 안보-자율성 교환모형과도 연결된다. 한국이 제공하는 산업·기술 자산은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보완하는 새로운 동맹 교환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산을 일회적으로 소진하면 장기적인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여를 확대하는 것과 전략적 가치를 보존·확대하는 것은 동일한 명제가 아니다.
5) ‘선제적 기여론’의 한계와 동맹 기여의 조건화
방기의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한국이 선제적으로 더 많은 기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도 이러한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논리의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미국이 한국 방어에 부담을 느낄수록 한국이 더 많은 군사적·경제적·지역적 기여를 제공해야 미국의 공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몇 가지 분석상의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는 방기 예방효과의 검증 가능성이다. 방기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이를 한국의 기여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반대로 방기가 발생하면 기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면 어느 수준의 기여가 실제로 필요한지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22]
둘째는 기여와 미래 공약 사이의 관계이다. 국가가 장기적으로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면 과거에 상대국이 얼마나 기여했는가 보다 앞으로 상대국이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이미 제공된 기여는 전략적 계산에서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더 많이 제공하는 것 자체가 미래의 공약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셋째는 방기를 방지하기 위한 일부 기여가 동시에 연루의 경로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외 작전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 지휘·작전계획의 일체화, 기지 사용의 자동성 확대 등이 방기 방지를 위한 ‘동맹 결속’으로 제시될 경우 한국은 미래의 불확실한 방기를 줄이기 위해 현재의 구체적인 연루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군사적·제도적 결합은 일단 형성된 뒤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23]
넷째, 산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방기를 막기 위해 대규모 산업역량과 핵심기술을 조건 없이 이전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동맹 기여가 확대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이 보유하던 대체 불가능성이 감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군사와 산업 모두에서 기여의 크기보다 기여의 구조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선제적 기여에 대한 비판이 미국과의 협력을 최소화하거나 지역적 역할을 회피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현대의 동맹은 한쪽이 보호하고 다른 쪽이 보호받는 관계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한국의 능력과 국제적 위상이 커진 만큼 더 큰 책임과 기여가 요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핵심은 이러한 기여를 조건화된 전략적 교환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이 더 큰 책임을 담당한다면 독자적 지휘·기획능력, ISR, 정밀타격, 미사일방어와 같은 능력의 확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역내 역할이 확대된다면 그 임무의 범위와 발동조건,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의 우선순위와 사전협의 절차가 명확해져야 한다. 산업협력이 확대된다면 공동개발, 공동생산, 시장접근과 기술협력이 결합되어 한국의 산업생태계 자체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동맹 조정의 기준은 ‘얼마나 더 기여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확보하며, 그 교환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능력과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각은 방기와 연루에 관한 기존 이론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패권 변동기의 특성을 반영하여 이를 보완하는 것이다. 방기-연루 딜레마에 시간성, 안보-자율성 교환에 대체가능성, 부담분담에 통제권의 배분, 동맹 제도화에 가역성이라는 변수를 추가함으로써 현재의 한미동맹 조정을 보다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다.
Ⅳ. 소결: 변화된 현실과 새로운 동맹의 문법
이상의 논의는 이후 한미동맹의 변화를 평가하기 위한 공통의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첫째, 미국의 역할이나 전진배치의 축소를 그 자체로 공약 약화와 동일시하지 않고 실제 억제효과가 유지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책임 확대가 단순한 부담 이전인지, 아니면 능력과 권한의 확대를 수반하는 새로운 역할분담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군사·산업·기술적 기여가 일회적인 비용으로 소진되는지, 아니면 미국이 한국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전략적 가치로 축적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역내 역할과 협력의 확대는 방기와 연루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임무, 의사결정권, 발동조건과 가역성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보고서가 주목하는 동맹 조정의 핵심은 기존의 안보-자율성 교환에서 하나의 최적점을 다시 찾는 데만 있지 않다. 변화한 안보환경에서는 한국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안보의 범위, 미국이 계속 제공해야 하는 대체 불가능한 능력, 한국이 미국과 지역질서에 제공하는 전략적 가치,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확보하는 정책적·군사적 권한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즉 미래 한미동맹의 핵심 변수는 ‘얼마나 많은 미국의 보호를 유지하는가’만이 아니라 한국이 얼마나 많은 안보를 스스로 생산하면서도 미국의 결정적 능력을 지속적으로 결합하고, 동시에 자신의 전략적 대체 불가능성을 얼마나 유지·확대하는가에 있다. 이는 의존의 크기를 조정하는 문제를 넘어 동맹의 작동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분석틀은 이후 장에서 구체적으로 검증된다. 인도-태평양 군사력 균형의 변화는 기존 전진배치와 억제방식이 실제로 얼마나 유효한지를 보여주며, 주둔태세와 전작권 문제는 책임·능력·권한의 새로운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검토될 수 있다. 대만사태와 북핵·확장억제는 방기와 연루, 그리고 미국의 대체 불가능한 지원을 어떠한 조건에서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미래전과 산업기반의 변화는 한국의 새로운 전략적 가치가 어디에서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다음 장에서는 그 첫 번째 단계로 인도-태평양의 군사력 균형과 억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펴본다. ■
[1]본 장의 이론적 논의는 설인효·김양규(2026)와 전재우(2026)의 논의 일부를 토대로 하되, 본 보고서의 문제의식과 전체 분석구조에 맞추어 논지를 재구성하고 발전시킨 것임을 밝혀둔다. 설인효·김양규. 2026. “동맹 이론과 패권 변동기 한국의 안보 전략.” 『국제정치연구』 29, 3: 131-157; 전재우. 2026. “미중 경쟁기 한국의 연루·방기 담론 비판.” 〈EAI Global NK Zoom & Connect〉 발표, 8월 19일.
[2]설인효·김양규 2026, 134-141. 세 이론은 분석 수준과 설명대상은 상이하지만 패권국의 역량 변화가 동맹정책 조정을 촉진하고 이것이 동맹 내부의 방기·연루 및 안보-자율성 교환조건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상호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3]Gilpin, Robert. 1981. War and Change in World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0-15, 187-194.
[4]Lippmann, Walter. 1943. U.S. Foreign Policy: Shield of the Republic. Boston: Little, Brown and Company.
[5]Colby, Elbridge A. 2021. The Strategy of Denial: American Defense in an Age of Great Power Conflic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6]Snyder, Glenn H. 1984. “The Security Dilemma in Alliance Politics.” World Politics, 36, 4: 461-495; Snyder, Glenn H. 1997. Alliance Politics. Ithaca, N. Y.: Cornell University Press.
[7]Morrow, James D. 1991. “Alliances and Asymmetry: An Alternative to the Capability Aggregation Model of Allianc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35, 4: 904-933.
[8]설인효·김양규 2026, 141.
[9]설인효·김양규 2026, 149.
[10]설인효·김양규 2026, 150.
[11]전재우 2026, 1-4.
[12]Snyder 1984, 461-495.
[13]Cha, Victor D. 1999. 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4]Jun, Jaewoo. 2024. “Underlying Dynamics for US-Japan-South Korea 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SPI Commentary, Istituto per gli Studi di Politica Internazionale. April 8.
[15]Jun 2024.
[16]전재우 2026, 4-7.
[17]전재우 2026, 7-9.
[18]Cha 1999; 전재우 2026, 10-13.
[19]U.S. Department of War. 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 January 23. https://media.defense.gov/2026/Jan/23/2003864773/-1/-1/0/2026-NATIONAL-DEFENSE-STRATEGY.PDF., 4-5; 설인효·김양규 2026, 149-154.한국의 안보 전략,” pp. 149-154.
[20]전재우 2026, 13-17.
[21]전재우 2026, 14-17.
[22]전재우 2026, 17-19.
[23]전재우 2026, 17-19.
■저자: 설인효_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저자: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저자: 김양규_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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