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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냉전의 추억 : 김정은 시대 영화, 드라마
전영선
건국대학교 교수

Editor's Note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김정은 시기 북한의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 편수는 급감했으나 연출과 스토리는 한층 세련되게 발전한 양상을 분석합니다. 전 교수는 특히 이 시기 작품들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수령을 지켜내는 '반탐(反探)' 서사를 핵심으로 삼아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젊은 여성 영웅을 통해 대를 이은 충성을 강조하며 냉전의 정서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북한 대중문화의 현재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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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예술의 역할

 

잘 알려진 대로 북한 문학예술은 체제 선전을 위해 존재한다. 북한 문학예술의 기본 목적은 노동당의 정책을 선전하고, 인민을 교양하는 것이다. 이 목적은 북한 정권 수립 이후 김정은 시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문학예술 중에서도 문학, 영화, 드라마와 같은 장편 서사물은 노동당이 원하는 주제와 소재로 기획된다. 주제가 정해지면,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고, 허용된 연출 방식으로 완성한다. 인민이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 영화, 드라마를 통하여, 노동당의 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일 시기와 달리 김정은 시기의 영화, 드라마 제작은 제한적이다. 2012년부터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었다. 영화, 드라마 제작 시간을 고려한다면, 김정은 시기의 영화, 드라마는 2013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이 될 것이다. 2013년 이후 2025년까지의 신작 영화, 드라마는 열 편 정도이다. 제작 편수로 본다면 김정일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영화관이나 방송 시간의 대부분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예전에 만들어진 작품을 반복해서 방영한다.

 

예술계의 부진은 김정은도 크게 질책하였던 문제이다. 김정은은 2014년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2016년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사업 총화 보고’, 2019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 등에서 문화예술의 부진 문제를 질책하기도 하였다. 제작 비용의 문제로 볼 수 없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영화, 드라마는 만들었다.

 

김정은 시기 예술이 부진한 이유는 역할 변화 때문이다. 김정일 시기에는 예술인들이 선전 사업의 핵심 자원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기의 선전 사업의 핵심은 노동당의 말단 조직이다. 세포비서나 초급당 같은 노동당의 기간 조직에서 선전 사업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생활 현장, 생산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노동당의 기간 조직에서, 현장에서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자료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선전사업을 전개한다. 예술가들에게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작품을 요구한다. 당의 정책 선전은 여러 작품을 만들어, 적당히 선전 선동에 활용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밀도 높은 작품을 요구한다.

 

실제 김정일 시기와 비교할 때 작품 편수는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작품 수준은 한 단계 높아졌다. 스토리도 탄탄해졌고, 연출도 과감해졌다. 빠른 전개와 한층 세련되고. 대중화된 연출 방식은 북한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김정은 시기 서사의 중심 ‘반탐’

 

2013년 이후에 제작된 영화는 <포성없는 전구>(2014), <우리집 이야기>(2016), <하루낮 하루밤>(2022), <72시간>(2024), <대결의 낮과 밤>(2025)이며, 드라마는 <방탄벽>(2015), <임진년의 심마니들>(2018), <마지막 한 알>(2022), <한 검찰일군의 수기>(2023), <백학벌의 새봄>(2025) 등이 있다. 북한에서 영화, 드라마를 구분하기는 하지만 장르적인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포성없는 전구>(2014)는 영화이면서도 5부작의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되었고, <72시간>(2024)은 4시간이 넘는 영화로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 공개되었다. 2025년에 창작한 <대결의 낮과 밤>은 2022년에 <하루낮 하루밤>의 후속편으로 내용이 이어진 2부작 영화이다. 2025년에 방영한 드라마 〈백학벌의 새봄〉(22부작)은 2회씩 묶어서 영화관에서 방영하였다

 

중요한 것은 주제이다.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 지가 중요하다. 김정은 시기에 제작된 영화, 드라마는 생활 현장, 경제 현장과 직접 연관된 작은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가 지향하는 정책과 연관된 주제를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반탐서사’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반탐(反探)’이란 ‘간첩을 잡는 이야기’이다. 반탐의 반대는 정보를 캐낸다는 의미의 ‘정탐(情探)’이다. 정탐물은 적진으로 들어가 속이고, 정보를 캐어오는 스파이물이다. 반탐이나 정탐은 장르적으로는 구분하지만 실제로는 분명한 경계가 없다. 때로는 음모를 막기 위해 적으로 위장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반탐물은 대중적인 매력이 있다. 속고 속이는 치밀한 두뇌게임과 액션이라는 대중성이 강한 장르이다. 속고 속이는 치밀한 전략과 희생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서사는 반전과 승리의 쾌감을 선사한다. 간첩에 대한 교양도 하고, 승리의 서사를 통해, 애국심도 심어줄 수 있어서, 교양 수단으로서는 매력적인 장르이다. 북한에서도 반탐물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많이 제작되었다.

 

김정은 시기 반탐물로는 영화 <포성없는 전구>(2014), <하루낮 하루밤>(2022), <대결의 낮과 밤>(2025), 드라마 <방탄벽>(2015), <한 검찰일군의 수기>(2023)가 있다. 김정은 시기 영화, 드라마의 절반이 반탐물이다. 이들 작품에서 간첩이 노리는 대상은 김정은 시기 간첩이 노리는 타겟은 ‘김일성’이다. 즉, 김정은 시기 반탐물은 김일성을 제거하려는 세력과 이를 막아내는 인물의 대결로 설정되었다.

 

영화 <포성없는 전구>(2014)는 1945년 광복 전후를 배경으로 한 5부작 첩보영화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미국 극동부군사령부는 일본 특무기관인 흑룡회를 이용하여, 북한을 없애는 ‘반북 작전’을 준비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자란 주인공 남희는 스미코로 위장하여, 북한을 제거하려던 ‘맥아더 11개조 훈령’을 빼낸다.

 

드라마 <방탄벽>(2015)은 1944년부터 1945년 광복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인민군 유격대 심장부를 제거하려는 독살작전에 맞서는 방패 요원의 활약을 내용으로 한 14부작 드라마이다. 1부부터 7부까지는 친일기업가라는 오명을 쓰고, 방패요원으로 활동하는 정진범의 활약이고, 8부부터 14부까지는 정진범의 딸로 아버지를 이어 방패요원이 된 정옥금이 사령부로 향하는 독화살을 제거하는 줄거리이다.

 

<하루낮 하루밤>(2022)과 <대결의 낮과 밤>(2025)은 실존 인물인 ‘공화국영웅이자 전쟁로병’ 라명희(극중에서는 라명주)를 모델로 한 영화이다. 라명주는 김일성 수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목숨 걸고 막아내는 스토리이다.

 

<한 검찰일군의 수기>(2023)는 6·25전쟁 시기인 1950년 8월에 발생한 김일성 테러 사건을 시작으로 김일성을 제거하려던 리승엽을 음모를 밝혀내는 인민군 최고검찰소 부총장 최형규의 활약을 그렸다. 모함으로 총살형을 받고, 부인과 딸까지 납치되는 상황에서도 ‘최고사령관을 호위하는 일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며, 수사를 진행한다. 인민검열위원장이며 사법상인 리승엽를 잡기 위해 죽음으로 지켜낸다.

 

대를 이은 수령, 대를 이은 수령 결사옹위

 

김정은 시기에 반탐물을 다시 제작한 것은 외부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이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핵심은 ‘수령’이고, 수령을 지켜야 ‘살 수 있다’는 수령 결사옹위 교양으로 이어진다. 수령에 대한 인민의 절대적 존경은 북한 체제에서 도덕의 기본 덕목이다. 북한에서 강조하는 도덕 중에서도 가장 높은 도덕은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자기 령도자만을 그리며 따르는”, “고결한 풍모”라고 교양한다. 최고지도자를 위한 헌신이나 희생, 사회와 집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최고의 도덕이자 가치로 교양한다.

 

김일성 수령에 대한 결사옹위는 그대로 김정은에 대한 결사옹위로 이어진다. 대를 이은 충성, 대를 이은 수령 옹위로 혁명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제 의식은 대를 이은 충성이라는 설정으로 확인된다.

 

‘혁명의 사령부’를 지키기 위해 자폭한 아버지와 그 뒤를 이어 수령을 지키는 내용의 드라마<방탄벽>이나 독립을 위해 일하다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쯔오카 스미코’로 위장하여, 맥아더의 전쟁 계획을 밝힌다는 <포성없는 전구>는 ‘대를 이어 혁명의 수뇌부를 지켜야 한다’는 ‘혁명전통 교양’을 위한 대중 교양물이다.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이후 드라마, 영화 제작은 극심한 부진을 떨치지 못한 상황에서도 반탐을 주제로 한 영화, 드라마를 지속으로 제작하였다. 반탐물이 김정은 시기에 꼭 필요한 콘텐츠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 <방탄벽>은 2015년에 첫 방영된 이후로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까지 재방영되었다. 2020년에는 두 번이나 방영하여,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방영하였다. 김정은 수령을 위한 대를 이은 충성의 교양콘텐츠로 주목한 것이다.

 

북한은 2014년 6월 4대 교양(신념교양, 계급교양, 애국주의교양, 도덕교양)을 제시하였다가, 12월에 5대 교양(위대성교양, 김정일애국주의교양, 신념교양, 계급교양, 도덕교양)으로 수정하였다. 이후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위대성 교양’과 ‘김정일 애국주의 교양’이 ‘혁명전통 교양’과 ‘충실성 교양’으로 바꾸었다. 혁명 전통을 강조하는 동시에 새로운 수령으로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 교육을 강화하였다. 김정은의 수령 추대에 맞추어, 혁명전통의 계승자인 김정은에 대한 교양을 강화하였다.

 

‘수령을 지켜야 한다’는 주제는 특히 2019년 이후에 선명해진 주제이다.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회담 직후에 개최된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군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고 하였다.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고 하였다. 김정은의 이 지시는 이후 수령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수령과 인민은 어떤 관계로 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보여준다. 적은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우리의 수령은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방식으로 교양하였다. 이렇게 2030년대 이후 북한 영화, 드라마는 수령을 절대적이고, 무결한 존재에서 인민이 보호하고 지켜야 할 존재로, 수령을 지켰던 인민을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수령을 지키는 영웅이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영화 <포성없는 전구>(2014), <하루낮 하루밤>(2022), <대결의 낮과 밤>(2025), 드라마 <방탄벽>(2015)에서 혁명의 사령부를 지키고, 수상 김일성을 지킨 인물은 모두 젊은 여성이다. 반탐물은 아니지만 <우리집 이야기>(2016)의 주인공도 18세 처녀이고, <마지막 한 알>(2022)의 주인공은 19세이다. 여리고 약한 여성으로서 수령을 지켜내고, 김정은을 위해 헌신하고, 세계 무대에서 조국을 알린 인물들이다. 청년이 본받아야 할 인물을 발굴하여,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 혁명전통의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이후, 수령 후계 계승과 위기 극복을 위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뚜렷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다. 내부 결속을 명분으로 한 통제도 질 것이다. 하지만 통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김정은 시기 영화, 드라마는 놓칠 수 없는 대중성과 수령옹위의 주제가 만난 산물이다. 그 속에서 냉전의 정서, 냉전의 감각으로 냉전의 추억을 현실화하고 있다. 

 


■ 전영선_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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