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③ 2026 일본외교의 플랜B와 한일관계: 대미 의존과 대중 갈등의 사이에서
손열
EAI 석좌 연구위원; 연세대 교수

Editor's Note

손열(EAI 석좌연구위원, 연세대)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패권 재조정 전략으로 인해 일본이 직면한 안보적 불신과 외교적 위기 상황을 진단합니다. 저자는 일본이 기존의 대미 추종 노선인 '플랜A'에서 벗어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대미 의존도를 낮추는 '플랜B'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손 교수는 나아가 미중 유화 국면과 중일 갈등이 교차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일 양국이 미국 리스크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한일 플랜B 협력'의 필요성을 제안합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


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


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2. 미국

3. 일본

4. 중국

5. 인도·태평양

6. 국제정치경제

7. 인공지능(AI)

8. 국방

9. 북한

10.  유럽


  

I. 들어가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환심 사기 외교로 조롱을 받으면서도 미일관계 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인 일본은 지난 9월 굴욕적인 관세 협상을 거치면서 동맹을 거래로 보는 미국에 자국의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12월 공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 2025)”은 이런 인식을 재확인해 주었다. 미국은 더 이상 패권국으로서의 책무 즉, 지구적 의제를 추진하거나 질서 유지에 기여할 의지가 없이 본토 방위와 서반구 관리에 치중하는 자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 그리고 일본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는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이 약화되고 유화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음을 그대로 노정했다.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이자 미국의 유일한 경쟁상대라 지목한 바이든 행정부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일본은 깨달았다.

 

NSS 2025를 보는 일본의 낙담(落膽)은 기존 외교노선의 전환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패권 재조정에 대한 전향적 대응으로서 미국과 적정한 상호의존 관계로의 재균형, 자체 방위력 강화, 동지국(한국, 호주, 나토 등)과의 협력 확대, 중국과 전략적 소통 강화 등 전략적 모색이 나오고 있다. 1월 3일 미국이 군사 공격으로 마두라 베네주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는 사태를 보면서 일본의 논의는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그 전도는 일본의 대미 의존을 고착화하려는 미국의 태세에 대한 일본내 정치 동학, 그리고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으로 악화된 중일관계의 전개 여부에 달려 있다. 미일 관세 합의와 방위비 분담 합의, 중일관계 악화, 중국의 강압외교는 과연 일본외교의 플랜B를 가져올 것인가. 한일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2020년 이래 한일 국민 상호인식이 지속적으로 호전되는 아래로부터 (bottom-up) 추동력과 정부간 관계 회복 노력(top-down)이 겹치면서 이루어진 양국관계 개선 추세는 2026년에도 이어질 것인가. 변수는 무엇인가.

 

II. 상승하는 대미 불신 속의 미일관계

 

2025년 한 해 일본외교가 마주한 최대 도전은 트럼프 2기 정권이 추진하는 패권 재조정 전략 속에서 미일관계의 안정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트럼프 2기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권리와 이에 따른 이득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의무를 가능한 한 동맹국 및 파트너국에 이양하고자 한다. 달러 패권의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반면 관세를 핵심 수단으로 동원하여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회복하고자 하고, 대외 군사 개입을 자제하면서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 및 분담, 첨단기술 통제 등 패권의 책무를 전가하는 것이다.

 

당초 일본은 미국 패권 회복/유지를 위한 조력자 역할을 담당한다는 외교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아베 정권과 기시다 정권을 거치며 일본은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 패권적 지위 유지를 돕기 위해 안보면에서 군사력 증강과 미일동맹 강화로 미국의 부담을 경감하는 한편, 동남아와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지구 남반구) 관여 등으로 국제적 안정과 평화를 향한 공공재 제공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손열 2024). 이는 일본외교의 기본인 ‘플랜A’라 할 수 있다.

 

트럼프 2기의 등장에 따라 일본이 가장 크게 우려한 바는 미국 스스로 고립주의에 빠지거나 모순적이고 자멸적인 조치로 국제사회의 신뢰와 리더쉽을 상실하는 사태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패권적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무모한 관세 부과와 동맹 흔들기, 잦은 정책 변경, 국제 규칙과 규범 위반을 거듭한다면 미국에 대한 동맹국의 신뢰 하락과 이탈 위험성이 커지고 패권 쇠퇴가 가속화하여 ‘미국 없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공백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란 시나리오이다. 따라서 패권 추종 노선인 플랜A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플랜B’ 수립이 필요해진다. 후자의 필요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치며 강화되었다.

 

첫째는 연초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JD 밴스 부통령의 발언이다. 루비오는 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미국 중심 자유주의 국제질서 대신 다극화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우선주의 외교를 추구할 것이라 공언하였고, 이어 뮌헨안보회의에서 밴스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에 부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발언은 미국이 더 이상 패권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의지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자유무역 포기를 넘어서 동맹과 확장억제 제공 등 안보 공약, 국제개발원조, 기후변화 협력 등 국제공공재 제공을 현격히 축소하는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분출했다 (古城佳子 外 2025).

 

둘째는 미일 양자 협상 과정에서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거래중심적, 강압적 태도이다. 이시바 시게루 수상은 트럼프 2기 정권 출범 직후인 2월 정상회담에서 1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투자 약속을 선물하며 안정적인 미일관계를 조성하고자 하였으나,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관세 조치(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25%,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 25%, 그리고 상호관세 24% 부과)를 발표하자 당혹감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동맹국에 대한 예의를 무시한 처사로서 일본이 희롱당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협상 중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면서 국방비 대폭 증액을 압박했다. 이미 2022년 기시다 정부가 GDP 대비 1% 국방비를 2027년까지 2%로 증액을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3.5% 인상을 요구하여 관계당국에 충격을 주었다, 결국 9월 4일 상호관세율을 15%로 감축한 대신 5,500억불 규모의 대미투자를 약속하는 굴욕적인 관세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일본이 얻은 뼈저린 교훈은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맹을 거래로 여기는 트럼프와 협상에서 일본은 안보면에서 미국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경제 협상력의 비대칭성을 초래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셋째는 12월 공표한 NSS 2025이다. 대외 개입을 축소하여 미국의 핵심이익이 분명한 경우에 한하여 개입하며 미국 본토와 서반구 관리를 중시한다는 선언은 일종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구상에 가깝다. 미국의 베네주엘라 공격에서 보듯이 세력권 정책은 강대국이 권역 내 국가들의 실질적 주권을 제약하는 행동을 정당화한다. 미주 대륙에서 이민, 마약 및 초국적 범죄 억제, 중국의 침투 차단 등 상업적 이권과 전략적 요충지 확보를 명분으로 국제법상 근거가 희박한 행동이 빈발할 수 있다. 실제로 1월 3일 미국의 베네주엘라 공격과 대통령 연행, 베네주엘라 '운영’ 선언 등 일련의 사태가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민주주의 등 기본적 가치와 국제법 원칙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FOIP)’로 대표되는 규칙기반 국제질서와 가치 외교 등 일본외교의 기본원리가 완벽히 무시당했음을 절감하고 있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위협세력에 대한 규정이 빠져있다(전재성 2026).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세력을 안심시키고 동맹국을 낙담하게 한다는 일본측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石井正文 2025). 물론 미국은 인태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고 패권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태평양에서 제1도련선 방어력 구축을 위한 동맹국간 집단적 방위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방점은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 즉, 미국과 무역 재균형(rebalance) 추진, 핵심 공급망 안정 및 전략물자 수급 확보의 상대라는 데 두고 있다. 대중 위협인식은 “지구상 유일한 전략적 경쟁 상대”로 규정한 바이든 정부에 비해 현격히 약화되었다. 일본으로서는 위협인식의 공유로 성립되는 동맹관계에 불안과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경위로 일본 조야에서는 미국 패권을 전제로 한, 혹은 미국 패권의 복원 가능성을 전제로 한, 플랜A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B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III. 일본의 플랜B

 

미국의 동맹국에게 플랜B 논의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 문제로 귀결된다. 유럽의 경우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예산을 증액, 미국의 공약을 확인하여 나토 체제를 지키는 것이 플랜A라면, 플랜B는 미국의 군사 개입 없이 자강(自强)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 유럽이 러시아에 대해 군사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과 달리 일본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에 대해 군사적 자립 노력으로 군사적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대안이 부재하다. ‘반핵’에 대한 국내적 지지도 여전히 강고하다. 2025년 8월 실시한 EAI-API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67.5% 전후가 자국 핵무장을 지지하는 반면 일본의 경우는 23.7%에 불과하다(손열 외 2025).

 

따라서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자유와 개방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장 미국 이외 대안이 없고 미국 없는 국제질서 모색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일본외교의 플랜B는 미국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미국 추수 외교에서 벗어나 군사력과 외교력의 신장으로 미국(과 중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축소하여 적정한 상호의존 상태를 이루고 그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秋田浩之 2024; 森聡, 細谷雄一, 鶴岡路人, 2025; 佐橋 亮 2025). 플랜A가 미국 패권의 복원 및 유지를 전제로 한다면 플랜B 논의는 이를 회의적으로 보고 미국에 의존해 온 부분을 축소하는 대미 디리스킹 전략에 가깝다. 따라서 플랜A가 미일관계에서 일본의 역할을 미국에 대한 보완재로 정의한다면, 플랜B는 미국의 필수재―즉, 상호의존 네트워크 속에서 대체 불가한 노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보면에서 플랜A가 군사력 증강을 통한 전략적 유연성의 확보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플랜B는 군사력 증강 통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 경제안보 면에서 플랜B는 기간산업 보호와 인프라 안전망 확보로 전략적 자율성 향상, 그리고 핵심산업 및 기술 육성으로 미국 및 중국의 강압이나 보복에 대한 억지력 혹은 협상력을 가져다 주는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가 될 것이다. 외교면에서는 플랜A가 동지국(同志國)과의 안보 연대 강화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소다자협력이라면(미-일-호, 한-미-일, 미-일-필리핀, 그리고 쿼드(Quad) 등), 플랜B는 호주, 한국, 필리핀, 뉴질랜드, 나토 가맹국 등과 미국 없는 안보협력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확보하는 과제도 포함된다. 특별히 환태평양포괄전진동반자협정(CPTPP)의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미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분산하는 조치이면서 ‘미국 없는 다자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재료로 인식되고 있다.

 

표 1. 일본외교의 플랜A와 플랜B


플랜 A

플랜 B

정책 목표

미국 패권 질서 복원과 유지를 돕는 파트너쉽

패권으로부터 디리스킹

미일관계

미국의 보완재로서 필수불가결한 동맹

(indispensable ally)

미국의 필수재로서 필수불가결한 동맹

군사안보

군사력 증강, 반격능력 신장,

전략적 유연성 확보.

군사력 증강, 반격능력 신장,

전략적 자율성 확보

경제안보

대중 전략적 자율성,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

대중 및 대미 전략적 자율성,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

외교지평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FOIP) 복원,

미국 포함 소다자협력 강화

동남아, 인도 중심 지구남반구(global south) 협력 강화, 미국 없는 소다자협력 추진


 

IV. 다카이치 정권의 딜레마: 대미의존과 대중갈등 사이에서

 

2026년 일본 외교를 전망할 때 주요 관전 포인트는 트럼프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선택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자국에 대한 일본의 과잉 의존구조를 활용하여 협상력의 비대칭적 우위를 지키고자 한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주문하면서 미국 무기 수출을 확대하고 미군과 자위대 간 지휘통제 통합을 진전시켜 일본의 대미의존성을 유지, 강화하는 한편,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해상수송로를 방위하기 위해 제1도련선의 집단 방위에 일본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면에서도 미일 상호의존의 네트워크를 확장, 심화하고자 한다. 일본의 대미 직접투자(5,500억불 상당)가 자국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제조업 기반 확보, 고용 증진에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은 비대칭적 상호의존 구조를 활용하여 자국의 안보 및 경제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의 플랜A를 선호한다.

 

이런 점에서 작년 10월 출범한 다카이치 정권에게 플랜B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선택이다. 다카이치 수상은 동맹을 중시하는 보수 연립정권의 수장으로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안정적 관계 유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인간관계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기성 노선(플랜A)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노선(플랜B)로 전환은 정치적 설득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다카이치 수상은 플랜B가 과거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우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같은 일본 자립 노선이 아님을, 그리고 플랜B는 플랜A로부터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진화 과정임을, 국내정치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교한 전환의 비전과 로드맵도 마련되어야 한다.

 

또다른 변수는 대외변수로서 중일갈등이다. 11월 7일 국회에서 다카이치 수상의 대만 관련 발언은 중일관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대만 유사시 미국이 개입하고 중국이 미군에 공격을 가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은 ‘존립위기사태’로 인정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존립위기사태’란 동맹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경우에 한하는 것으로서, 역대 일본 정부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사례를 들어 답변하는 것을 회피해 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수상은 대중 강경파로서 본심을 드러내어 사태를 촉발했고 중국은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것으로 간주하여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일본 여행 금지 경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정지와 같은 경제 보복 조치에 이어 과거 전랑외교를 방불케 하는 외교 선전전(宣傳戰)을 전개했고, 군사적 위협 단계에 진입하여 중국 항공모함 함재기가 자위대 전투기에 레이더를 조사(照射)하고, 함재기가 30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 러시아 폭격기와 함께 일본 주변을 공동 비행하는 등 제1도련선 주변에서 군사적 압박을 높이고 있다.

 

사실 다카이치 수상은 아베 정부의 대중 스탠스인 ‘전략적 호혜관계’를 계승하여 “중요한 이웃으로서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지향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일중정상회담(10.31)에 임했었다. 시진핑 주석 역시 관계 안정화를 지지한 바 있다. 중국은 미국우선주의가 노골화되자 주변 지역에서 영향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주변 외교를 전략의 중심축으로 격상시켰다. 이에 따라 호주, 한국과의 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일본에 대해서도 이시바 정권 출범 이후 미래지향적 양자관계 발전의 모멘텀을 찾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수입을 중단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중국이 전향적 조치를 검토했고, 일본인의 중국 관광객에 대해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이러한 협력적 분위기가 갈등으로 전환되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다카이치 수상은 11월 11일 “특정 사례를 가정하여 발언한 것은 반성할 점”이라 한발 물러났고, 12월 16일 “기존 정부 입장을 넘어선 발언으로 받아들여진 점을 반성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한다”며 한발짝 더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수상이 중국측의 요구사항인 사과와 발언 철회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대중 강경론자로서 “대만유사시는 일본유사시”라는 평소 지론에 대한 자민당과 보수층의 단단한 지지가 유지되고 있는데다, 중국의 보복에 따라 국민감정이 악화되면서 다카이치 내각에 대한 국민 여론이 70% 전후의 높은 지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수상의 고민은 유화 국면에 진입한 미중관계에 있다. 트럼프 1기 정부의 대중 정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로 하고 관세, 투자규제, 인권 비판, 공산당 독재 비판 등 무역, 투자, 가치, 체제 등 전방위 공세를 펼쳤다면 앞서 기술하였듯이 2기는 의외로 경제면에 국한된 경쟁과 타협을 보여왔다. 중국에 대해 지난 4월 사실상 금수 조치인 145% 관세 폭탄을 공언하였다가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 보복 조치를 취하자 관세 부과를 3개월 유예하며 후퇴하였다. 결국 10월 부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중국이 희토류 및 기타 핵심 광물 수출통제 조치를 1년 연장하는 대가로 관세 유예 조치를 1년 연장하고, 펜타닐 관련 징벌적 관세를 10% 삭감해 주었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에 정치생명이 달려있는 트럼프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계하며 협조적 자세를 지속할 것이며, 시진핑 주석도 침체된 경제 부양을 위해 대미관계의 안정화를 이어갈 전망이다. 양국은 4월 예정된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을 거치며 유화 국면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배경에서 트럼프는 다카이치 수상에게 대만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언급했고, 미국은 일본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백악관의 발언도 나왔다.

 

2026년의 기묘한 구도는 현상유지 세력인 일본과 현상변경 세력인 중국이 미국과 동시적으로 우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화 국면을 이어가려는 미중관계와 갈등 국면의 중일관계가 병존, 교차하는 가운데 다카이치 정권의 딜레마는 깊어갈 것이다. 미중관계의 유화적 국면에 따른 대미 불신은 일본으로 하여금 플랜B를 선택하게 하는 유인이 되는 반면, 중국과의 대립 구도는 미국 의존성을 증가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의 군사적, 경제적 위협과 보복이 강화될수록 일본은 더욱 미일동맹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중일갈등이 대미의존을 증대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V. 한일관계 전망

 

패권 재조정기 미국과의 관계 정립에 고뇌하고 악화된 대중 관계 개선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다카이치 정권에게 한일관계 안정화는 필수적이다.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수상은 재임 기간 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번은 하겠다는 입장이나 현재와 같은 외교적 난관 속에서 중국 및 한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신사 참배를 결행할 개연성은 낮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의 시금석으로 한일관계를 관리하고 있고, 셔틀 외교는 복원되었다.

 

한국의 경우, 국내 여론 역시 한일관계 안정화에 긍정적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일본의 파트너 기관 (겐론 NPO, 2013-2023; API, 2025)과 2013년부터 실시한 한일국민상호인식 조사 데이터 중 2025년 지난 8월 18-20일 실시한 국민상호인식조사 결과를 회귀 분석해 보면, 한일관계 개선에 영향을 주는 유의미한 독립변수는 일본 지도자에 대한 인상, 일본에 대한 인상, 미국에 대한 신뢰도이다. 일본 지도자(수상)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수록,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수록, 그리고 미국을 신뢰할수록 한일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Sohn and Lee, mimeo).

 

표 2. 한일관계 개선의 변인 분석(2025)


종속변수: 한일관계 개선

모델 (4) AME

P-value

일본 지도자 인상

+0.104***

(0.013)

< 0.001

일본인상

+0.053***

(0.011)

< 0.001

미국 신뢰

U.S. as Trustworthy Partner

+0.033***

(0.010)

< 0.001


 

[표 3]에서 보듯이 한국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2020년 12.3%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5년 52.3%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2020년 25.4%에서 2023년 37.4%로 상승한 후 2025년 24.8%로 하락했다. 비호감도는 46.3%에서 51%로 올랐다([표 4]). 일본의 대조적인 결과는 일정하게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국민의 39.2%는 이 대통령에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10.5%에 불과하다([표 5]). 과거 진보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반면 한국 국민의 이시바 수상에 대한 좋은 인상은 32.5%로 나쁜 인상을 추월했다([표 6]).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실용외교를 강조하면서 위안부 합의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국가간의 약속을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고, 역사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협력을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일본의 조야(朝野)에 과거 야당 지도자 시절 형성된 자신의 반일(反日) 이미지를 지우려는 의도라 하겠다. 이어 이시바 수상과 3차례, 다카이치 수상과 2차례 등 취임 이래 총 5회의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정상간 우호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국민의 이 대통령 이미지가 개선 국면에 들어설 지 주목된다. 마찬가지로 우익 이미지의 다카이치 수상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인상 추이도 주목할 점이다. 한국 국민에게 유화적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다카이치 수상의 노력에 국민적 반응이 어떻게 형성될 지도 주목 포인트이다.

 

끝으로 미국변수이다. 미국을 신뢰할수록 한일관계 개선감을 갖는다는 것은 동맹에 대한신뢰가 높을수록 한일관계 개선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일 관계 개선을 향한 미국 즉, 위로부터의(top-down) 압력은 지속적으로 작용해 왔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은 일관되게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수단으로 한미일 협력을 설정하여 한일관계 개선을 압박해 왔다. 한일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도전이 점증하자 미국과 안보 결속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압력을 수용하게 된 과정을 갖고 있다.

 

2026년에도 미국 요인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이는 한일 양국의 미국에 대한 신뢰 정도와 관련이 있다. [표 7]에서 보듯이 2022년을 기점으로 대미 신뢰도는 현격히 하락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신뢰 저하 추세는 지속될 것인가. 신뢰 저하는 한일 간 협력을 저해할 것인가. 아니면 양국이 플랜B 마련 차원에서 새로운 협력을 이루게 될 것인가. 기로에 선 2026년이라 하겠다.

 


[표 3] 상대국에 대한 인상 (2013~2025 한국)

 

[표 4] 상대국에 대한 인상 (2013~2025 일본)

 

[표 5] 상대국에 지도자에 대한 인상 (2014~2025 한국)

 

[표 6]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인상 (2014~2025)

 

[표 7] 상대국 신뢰 여부 (2017~2025) 한국)

 

VI. 한일 플랜B 협력의 가능성

 

국제질서의 설계자이자 질서 유지의 최대 부담자였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일본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미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미국이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회복하여 정상 괘도로 재진입할 것이란 전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음을 2025년이 똑똑히 보여주었다. 동시에 외교, 안보, 경제면에서 미국이 일본의 대체 불가한 동맹국이란 사실에 변함이 없다는 점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따라서 일본의 향후 도전과제는 마치 미국이 동맹관계를 거래로, 동맹 파트너를 도구로 보듯이 일본도 미일동맹을 거래로, 미국을 도구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미관계에 거래중심적, 도구적, 실용적 현실주의를 의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플랜B의 모색이 가능하다.

 

한국 역시 대미 관계에 한해서는 유사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형 플랜B의 모색이 그것이다. 지난 수년간 한일 협력은 한미일 협력의 틀 속에서 미국의 후원/후견 하에 진전을 보았다면, 이제는 미국 리스크를 경감하는 데 한일 양국이 협력할 방도를 모색해야 할 때다. 적정한 대미 상호의존으로의 조정, 미국에 대한 대체 불가한 필수재 혹은 급소(chokepoint) 마련 등 ‘한일 플랜B 협력’을 향한 전략적 소통을 본격화할 시점에 왔다. ■ 

 

참고문헌

 

손열 외. 2025. “[EAI 여론브리핑] 2025년 EAI-API-KEI 제1회 한미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및 제12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 분석” https://www.eai.or.kr/press/press_01_view.php?no=13370

 

손열. 2024.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실천하는 2024년 한일관계: 과제와 전망.” EAI 논평. 1월 11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299&board=kor_issuebriefing

 

전재성, 2026.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2026년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와 국제질서” https://www.eai.or.kr/press/press_01_view.php?no=13462

 

秋田浩之, “プランBを迫られる世界 「トランプの米国」頼みは続かず” (2024.11.7.)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CD0694V0W4A101C2000000/

 

石井正文,”モンロー主義の米国家安保戦略に日本はどう対応?元外務省幹部に聞く” (2025.12.24) https://digital.asahi.com/member_scrapbook/detail.html?aid=ASTDR2S63TDRUTFK008M&cflag=0&psub=1&page=1&limit=20&sort=regtime.desc

 

古城佳子 外 “脱「米国依存」の国際秩序と日本外交” 『外交』 vol 91, May/June 2025.

 

佐橋亮,「米国のいる世界」と「米国のいない世界」 『中央公論』 12月.

 

森聡, 細谷雄一, 鶴岡路人, 「トランプ政権に翻弄される世界」グローバルトレンド#3 Foresight. (2025.7.1) https://www.fsight.jp/articles/-/51468

 

Yul Sohn and Ahlim Lee, "Determinants of the Improved Japan-Korea Relationship.” (mimeo)

 

 


 

■ 손열_EAI 석좌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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