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률 EAI 시니어펠로우(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이 2026년을 다극화된 세계질서가 전면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국제사회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역사적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저자는 시진핑 정부가 '15차 5개년 규획'의 시작과 함께 대미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며,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 및 거버넌스 규범 주도를 통해 적극적인 대국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변화 속에서 한중 양국이 상호 핵심이익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층적인 소통 채널을 구축하여 관계 회복의 실질적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 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 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2. 미국 3. 일본 4. 중국 5. 인도·태평양 6. 국제정치경제 7. 인공지능(AI) 8. 국방 9. 북한 10. 유럽 |
Ⅰ. 국제정세에 대한 변화된 인식: 다극 세계질서와 중국의 주도적 역할 확대
중국은 2025년에 이어 2026년을 국제 질서 변화의 역사적 분수령이 되는 시기로 상정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단극 패권 체제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쇠퇴하면서 다극화된 세계가 전면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구체적으로 2023년 말 5년 만에 개최된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세계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를 핵심 외교 과제 및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초기에 중국은 미국이 강력하게 중국에 대한 압박과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경계하고 우려했다. 그런데 중국은 트럼프 2기 정부와 관세 문제로 거칠게 대립하면서 오히려 미국에 대한 우려는 점차 약화되었고 2025년 10월 부산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과 관계에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시진핑 정부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세계의 다극화도 상당 정도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부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여전히 다양한 도전과 위험이 복합적으로 혼재된 상태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국제무역 규범이 파괴되고 경제 세계화는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평가한다. 아울러 국지전과 국경 충돌이 2차 세계대전 이래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지정학적 불안도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시진핑 정부는 2025년을 상당한 외교 성과를 거둔 한해로 회고한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역량이 충분히 발현되고 역할도 확대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왕이 부장은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国际影响力), 혁신 선도력(创新引领力), 도의적 감화력(道义感召力)이 현저히 향상되었다고 밝히고 있다.[1]
즉, 시진핑 정부는 국제정세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역량이 커지고 역할도 더욱 부각되고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세계화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회복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중국 경제의 활력과 안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과 2026년에 연이어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역량과 새로운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2025년에는 중국이 지니고 있는 5대 국제 역량, 즉 평화, 단결, 개방, 정의, 포용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외교 성과를 소개한 바 있다. 2026년에는 한층 진화한 형태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수행한 주도적 역할을 영역별로 다섯 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상세하게 제시하였다. 예컨대 격동의 세계 정세에 중국은 ‘안정의 닻(稳定锚)역할을 하고, 새로운 주변 환경에서는 든든한 버팀목(主心骨),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길잡이 (定盘星)’역할을, 그리고 세계 경제의 발전을 견인하는 성장 엔진(主引擎) 역할과 국제 도덕 위기에 균형추(压舱石)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5년 5월 중국-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공동체 포럼 장관급 회의 주최, 8월 상하이협력기구(SCO) 톈진 정상회의, 9월 전승절 행사,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브릭스 정상회담 확대, 캄보디아-태국 분쟁 중재 등을 중국이 수행한 주도적 역할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도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 강력한 투쟁과 대화를 병행하는 대응 전략을 전개해 미중관계의 새로운 상호작용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중국은 2026년에 국제정세의 불확실성과 혼돈은 지속되지만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패권 지위도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2025년에 얻어낸 중요한 외교 성과와 자신감을 기반으로 이전과 달리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미국이 제공하는 빈 공간을 파고들어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기회로 포착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내부적으로 2026년을 '15차 5개년 규획(2026-2030)'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 해로서, 국내 경제 발전의 새로운 단계와 대외 전략적 요구가 맞물리는 중요한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기본적으로 2035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초보적으로 완성하는 중장기 발전 목표에 집중하고자 한다. 따라서 중국은 세계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내 발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렇지만 이른바 백년만에 진행되고 있는 단극의 쇠퇴라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영향력과 주도권을 확대해 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전략적 고민도 하고 있다.
II. 중국식 대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 개척: 현대화 강국 건설과 전략적 주도권 강화의 이중주
왕이 외교부장은 매년 말 '국제 정세와 중국 외교 토론회'에서 한해의 외교 성과를 정리하고 이듬해의 외교 중점 과제를 발표해 왔다. 2025년 12월 30일 발표된 연설은 우선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중국 특색 대국 외교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자.’ 는 제목에서부터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왕이 외교 부장은 2026년 중국 외교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를 7개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가발전과 민족 부흥을 위한 전략적 지원 제공, 즉 '15차 5개년 규획에 대한 견고한 외교 지원, 둘째, 대국관계, 특히 대미 관계에서 상호작용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 셋째, 주변운명공동체 구축, 넷째, 글로벌 사우스와의 공동 현대화 추진, 다섯째, 글로벌 개방과 협력 확대, 여섯째,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일곱 번째, 국익 수호로 정리하고 있다.
7대 외교 과제는 외형적으로는 기존 외교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구체적인 각론과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시진핑 정부가 외교전략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려는 기류가 읽힌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이후 그동안 대만문제 등 핵심 이익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강경하게 투쟁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저비용의 안정적인 국제관계를 지향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 발전에 집중하는 외교 전략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2025년을 경과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 역할의 확대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중국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식 현대화 강국 건설에 매진하면서 동시에 국제질서의 혼돈과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능동적으로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병행하고자 한다.
왕이 부장은 2025년 년말 연설에서 ‘역사적 주도권 강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전략적 주도권 확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위상 제고’ 등 과거 어느때 보다도 ‘주도권’을 여러 차례 역설하고 있다. 즉 다극화가 진행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중국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영향력과 주도권을 확장하는 대국 외교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담론의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외교 수사와 담론이 제시되어 왔으나 실현성과 구체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뒤따랐다. 2025년 왕이 부장의 연설에는 담론을 구체적인 정책과 전략으로 표출하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지속적으로 역설해왔던 모호한 운명공동체론이 이른바 '다섯 가지 집(五大家园)' – 평화, 안녕, 번영, 아름다움, 우호라는 구체적인 5대 지향점을 제시하며 주변국 외교의 목표를 구조화 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RCEP을 통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항(CAFTA) 3.0'의 조기 실시 등을 통해 주변국과의 융합 발전을 실현하려는 정책 의지를 보이고 있다.
III. 국가발전과 민족 중흥을 위한 외교: 15차 5개년 규획의 과제
중국은 15차 5개년 규획 기간을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고 전면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핵심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15차 5개년 규획은 기존의 5개년의 계획과는 다른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2035년 현대화 강국 건설 목표의 기초를 다지는 가늠자 일뿐 만 아니라 시진핑 주석이 4연임을 넘어 5연임으로까지 가는 길을 여는 중요한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시진핑 정부는 2026년 '15차 5개년 규획'의 원년으로서, 고품질 발전을 위한 핵심 기술의 돌파에 외교와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집중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지속되고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15.5 계획은 향후 5년 동안 경제정책의 초점을 제조업의 질적 고도화와 기술 자립 강화에 둘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중국은 인공지능(AI), 스마트 제조, 녹색 에너지 등 '신질 생산력(新质生产力)'의 발굴이 중국의 대외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은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미국 등 서방의 기술 봉쇄에 대응하고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중국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것을 중요한 외교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특히 20기 4중전회에서는 2035년 장기 비전 목표에 ‘국방력’과 ‘국제 영향력’이 도약 목표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사실상 중국이 장기적으로 군사력과 글로벌 영향력을 겸비한 종합 강대국으로의 전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요컨대 중국은 대외적 압박을 견뎌내는 단계를 지나, '15.5 규획'이라는 내부 발전 계획과 시간표에 맞춰 국제질서와 미중관계를 자국 발전에 유리하게 설계하고 주도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15.5 규획은 시진핑 체제의 안정과 직결된 만큼 야심 찬 목표와 강한 실행 의지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많은 장애를 넘어서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중국 경제의 구조 개혁과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서방의 기술 통제를 돌파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15.5 규획의 성공을 위해 외교력을 집중 투사하겠지만 반대로 규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중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대국외교가 제약 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IV.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과 미래 첨단 영역의 규범 주도
중국이 대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데 있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이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이래 지속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장해왔지만 실제로 담론 이상의 구체적인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제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개혁을 넘어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고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중국은 2026년에도 기존 국제 체제의 수호자이자 건설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여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고 유엔의 권위와 지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를 제시하여 거버넌스 체제 구축과 주도 의지도 함께 표명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중재 방식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최초의 정부 간 국제기구인 국제중재원(国际调解院)을 2025년 5월 30일 공식 출범했고, 8월 29일 설립 협약이 발효됐다. 국제중재원은 중국 주도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글로벌사우스' 국가 간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거버넌스 사각지대인 미래 첨단 분야에서의 규범을 주도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디지털 경제, 녹색 저탄소 발전 등 미래 첨단 산업 영역에서의 산업 표준과 규범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리창 중국 총리는 2025년 7월 중국 상하이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의 발전 경험과 기술을 세계 각국,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기술 역량을 높이는 데 쓸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2] 중국은 실제로 ‘세계AI협력기구(世界人工智能合作组织)’ 설립도 제안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의 AI 역량 강화에 힘쓰고, ‘지능격차’ 를 해소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사실상 AI 기술과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미국을 겨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 등 국가들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지지를 견인하고자 한다.
V. 글로벌 사우스와의 공동 현대화 추진과 글로벌 주도권 확장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도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은 기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역설하면서 연대를 강조하는 외교적 수사가 중심에 있었다면 이제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공동 현대화를 제안하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경제 유인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2026년은 중국·아프리카 수교 70주년으로서 ‘아프리카 현대화 협력 지원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공동 발전 경제동반자협정(经济伙伴关系协定) 체결을 가속화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제로 관세’ 정책의 신속한 시행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대화는 서구화를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현대화 지원이 이른바 중국식 발전 모델의 이식을 통한 중국 영향력의 구조화 시도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아울러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글로벌 거버넌스 주도권을 확장해 가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BRICS)를 글로벌 사우스 협력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상정하고 브릭스 메커니즘의 확대와 강화를 지지하고, 브릭스 국가들을 다극화 추진의 협력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중국은 서구 중심의 가치 외교에 맞서기 위해서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공동 발전'과 '현대화 공유'라는 실리 중심의 대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VI. 중국, 대미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함의와 한계
중국이 대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겠다는 논의는 사실상 대미 외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한 7대 외교 과제에서 첫번째 과제인 15.5 규획의 성패는 미국과의 관계가 주 변수가 될 것이다. 두번째 대미 외교 과제를 제외한 나머지 5대 외교 과제도 사실상 미국을 적시하지 않은 대미 외교전략의 일환이다. 즉 중국은 단기적으로 미국에 대응하고 견제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 운명공동체를 추진하고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도하고 글로벌 사우스에 현대화 연대를 제의하고, 개방과 경제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국익 수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7대 외교 과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사실상 대미 외교전략을 구성하고 있다. 요컨대 시진핑 정부가 대국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겠다는 것은 대미 전략과 미중 관계에서 새로운 모색과 시도를 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2025년 중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자 변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었다. 시진핑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초래될 복합적 도전과 불확실성, 불안정성에 강한 우려와 경계심을 가졌다. 중국은 기존의 대미 외교의 3원칙, 상호존중(相互尊重), 평화공존(和平共处), 협력상생(合作共赢)을 재삼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른바 4개 레드 라인을 제시하여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과 공세, 특히 체제, 발전권, 민주와 인권 그리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도 양보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2025년 상반기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와 수출 통제 강화, 그리고 중국의 강한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미중관계의 긴장국면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격렬한 갈등과 대립을 거친 후 양국은 예상 보다 빠르게 타협을 모색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미중간 관세 협상이 5월부터 5차례 진행되었고 2025년 10월 30일에는 마침내 부산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관세 및 수출통제를 잠정 중단하기로 타협했다.
특히 중국이 가장 경계하고 결연하게 대응을 준비해 온 대만문제는 예상과 달리 미중간의 최대의 갈등 이슈로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관세 압박은 강하게 한 반면에 1기 때와는 달리 대만 문제에서는 예상 외로 신중한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8월 초 예정되었던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이 미국을 경유하여 중남미 수교국을 순방하려던 일정이 돌연 취소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라이 총통의 뉴욕 경유를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대만 총통은 중남미 순방 시 미국 정계 고위인사와의 비공식 정치 교류를 위해 미국 경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진행 중인 관세 협상과 향후 예정된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려에서 불허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와 경계는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2026년 초에는 북경에서, 하반기에는 워싱턴에서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 및 회담이 예상되면서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한 타협이 모색될 가능성도 제기 되고 있다. 중국은 2023년과 2024년에 연이어 미국을 향해 제기했던 이른바 5불(불)과 4개 레드라인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존에 레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강하게 맞대응했던 시진핑 정부는 미국과 상호작용을 통한 새로운 관계 모델 구축을 제기하고 있다.
VII. 새로운 미중관계 패러다임 구상의 의미와 제약
왕이 부장은 주요 국가 관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더욱 효과적인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미중 관계의 갈등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안정적인 관계 모델을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중국은 안정적인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만들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기존에 언급한 ‘신형대국관계’ 또는 ‘신형국제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담론적 성격을 지닐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부가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서 대국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전제하에 대미 외교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2026년 구체적인 행보를 주시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중국의 대미 관계의 새로운 설정은 아직은 모색 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떠하 배경과 의도에서 시도되고 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상이한 두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내 최근 국제정세에 대한 변화된 인식과 판단이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국제 정세에 역사적 대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 근저에는 미국 단극 체제의 쇠퇴가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중국은 다극화로 진행되는 새로운 국제정세에서 미국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앞서 언급한대로 다극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도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실질적 연대도 강화해 가고 있다. 즉, 미국의 패권 쇠퇴의 기회를 적극 포착하여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주도권을 강화하여 미국과 새로운 균형 관계를 정립해 간다는 구상이다. 최근 중국 국내 언론에서는 미국의 자연재해 통제 실패, 정치적 무질서, 지도자 조롱, 동맹국 불만, 글로벌 영향력 약화를 반복적으로 보도하여 미국을 혼란, 쇠퇴, 무능의 국가로 묘사하면서 ‘체제 쇠락’ 서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적 강대국으로 제시되면서 이를 통해 국내 지지층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의 체제적 우월성을 부각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내부 체제 결속과 자긍심 고취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오히려 미국을 자극하여 중국이 회피하기를 원하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특히 미국은 패권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사력, 첨단 기술 등에서는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 있는 만큼 중국은 사실상 장기 전략 구상하에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주도권을 확대해 가야 한다.
둘째, 중국 국내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대미 전략에 적극 투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최소 4연임 이상의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새로 착수하는 15.5 규획의 성패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향후 최소 5년 또는 10년 기간 동안에 미국과의 본격적인 전략 경쟁을 지연 또는 회피할 필요가 있는 만큼 미국과 관계를 전술적 차원에서라도 안정적 궤도에 진입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15.5 규획의 성패는 시진핑 장기집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15.5 규획에서 상정하는 고품질의 발전을 이루어내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기술 통제를 돌파해야 할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가능한 한 회피해야 하는 현실적 고려에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은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경제적 거래에 적절하게 응답하면 적극적으로 타협을 모색하면서 현대화 강국 건설을 위한 안정적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에 호응하지 않고 미국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첨단기술과 군사 분야로 전선을 확대해 가는 경우 중국이 이를 우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시진핑 정부가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새로운 안정화 모색은 어는 경우에도 여전히 미국 트럼프 정부의 불가측하고 도발적인 정책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장기레이스로 상정하면서 체제 안정과 발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VIII. 한중관계 복원을 위한 과제
한중 정상회담이 2개월 사이에 연이어 두 번 이나 개최되었다.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지만 한중 양국 정부가 공히 관계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긍정적 신호이다. 현재 한중관계는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으며 새로운 관계 설정이 절실한 중대한 갈림길에 있다. 한중관계는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최악의 상황에서 이미 근 10년 회복의 모멘텀을 갖지 못한 채 정체되어 왔다. 인접한 양국이 자칫 만성적인 갈등 관계로 진입하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한중 양국의 국내 상황뿐만 아니라 주변 국제정세 또한 매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만큼 일단 양국관계의 회복을 위한 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연이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관계 회복의 강한 의지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양국간 여전히 상호 상이한 기대와 요구를 하는 전략적 동상이몽의 상황이 엄존한다는 것도 새삼 확인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정상회담에 이어서 다시 한번 ‘보호주의 반대와 진정한 다자주의 실천을 강조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과감하게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옳은 편에 굳게 서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고 주문했다. 중국이 한국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비록 우회적이기는 하지만 북한문제에서의 중국의 역할을 요청했다. 한국은 정상회담 의제로 북한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초점을 맟추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다분히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한국에 대해 전략적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중관계 34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양국관계의 최대 변수인 북한과 미국 요인이 다시 한번 양국의 서로 상이한 요구로 소환되었다. 비록 분명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첫 작업은 일단 상호 상이한 기대와 요구를 솔직하게 테이블에 올려 놓고 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작업에서 출발할 필요는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요구와 기대를 경청하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요구와 기대는 명확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데 한국이 과도하게 경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해협과 1도련선내에서 대중 견제에 한국에 다양한 요구와 압박이 있을 경우 한국은 기대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현재 한중간에 대화와 소통이 부재한 국면에서 오히려 갈등과 오해가 더 증폭될 우려도 있다. 한중간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뒤늦게 협의를 시도해 왔다. 그 결과 상황은 이미 한중 양자 차원을 벗어나 확대되어 사태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무엇보다 한중 양국이 상호 상정하고 있는 ‘핵심이익과 중대 우려’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상호 의사를 타진하고 상호 레드 라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상황 악화를 예방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한 양국간 소통 채널을 선제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이 중국을 향해 북한문제에서의 소위 ‘건설적’ 역할을 요청할 경우 중국이 언급하는 ‘건설적 역할’은 무엇이며 그것이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역할에 부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최근 중국의 북핵에 대한 일련의 태도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에 대해 어떤 대응을 강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우선 한중 양국은 북한(핵)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정례화하여 지속해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중 양국이 상호 인식과 정책에서의 차이를 파악하고 이를 사전에 인지하면서 협력 가능한 접점을 모색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미칠 파장에 대해 중국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중관계가 회복된다고 해도 북한문제와 관련 중국으로부터 한국이 기대하는 대화의 촉진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견인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오히려 중국이 훼방꾼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 또한 중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통한 이해와 설득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한중 양국이 북한 관련 문제에서 지니고 있는 근원적 공감대, 즉 북한 도발이 초래할 한반도 불안정의 예방과 억지, 그리고 북한 체제 안정화와 관련된 정보 교류와 조치 등에서 소통과 협력을 증진하는데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
한중관계 33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중간의 갈등이 고조되면 정부 간 공식 대화가 전면적으로 중단되고 쉽게 재개되지 못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따라서 양국간 갈등 상황 발생 시 작동하여 해결의 접점을 찾아갈 수 있는 실무급부터 최고위급까지 다층적인 전략 대화 채널 구성이 필요하다. 외생 변수의 영향으로 확장된 한반도의 불안정이 비록 한중 양자간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드 갈등 사례처럼 외부요인이 한중관계를 총체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양국 간의 긴밀한 소통과 이해 증진이 중요하다.
특히 한중간에는 정례화 되고 체계화된 공식, 또는 비공식 대화 채널이 부족하고 기존의 대화 채널도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갈등과 위기 시 작동되어야 하는 대화 채널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면 중단되면서 소통의 부재가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왔던 교훈을 상기하면서 정권을 넘어서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의 수립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
[1] 王毅出席2025年国际形势与中国外交研讨会并作主旨发言(2025-12-30) https://www.mfa.gov.cn/wjbzhd/202512/t20251230_11790364.shtml
[2] 李强出席2025世界人工智能大会暨人工智能全球治理高级别会议开幕式并致辞 (2025.07.26) https://www.mfa.gov.cn/zyxw/202507/t20250726_11677829.shtml
■ 이동률_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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