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장은 지난 9월 DMZ 지뢰 폭발 사고가 북한이 '남부경계선'을 내세워 추진하는 국경화 작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사한 군사분계선 분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습니다. 저자는 북한이 '두 개 국가' 노선을 헌법에 반영하며 냉전기에 등장한 '분단체제'를 한국보다 먼저 뛰어넘으려 한다고 진단합니다. 박 원장은 이번 사건이 한국에 주어진 시험대일 수 있으며, 기존의 남북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통일방안과 사회적 합의 등 다양한 과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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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로 인해 우리 군장병 3명이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한국군은 유엔군사령부와 합동조사팀을 꾸려서 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9월 30일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지뢰 폭발은 북한이 최근 들어 DMZ 일대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소위 '국경화 작업'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고, 따라서 북한은 관련 활동을 즉각 중단함은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관련해서 사건 발생 한달만인 10월 22일 우리 정부는 이번 지뢰 폭발 사고를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 국제안보적 차원에서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내용을 공유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생겨난 휴전선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동시에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자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비무장지대(DMZ)을 설정해서 공동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 2024년 10월 즈음부터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남부경계선'이라고 부르며, 이 경계선 이북 지역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남쪽 지역을 '한국'의 영토로 지칭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를 '한국' 대신 '괴뢰 한국'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남부경계선'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비무장지대(DMZ)라는 완충 지대가 사라지고 있으며, 북한은 기존의 북한쪽 비무장지대 2km에 해당하는 지역을 무시하고, '남부경계선'을 중심으로 철책, 지뢰지대, 전술 도로 등의 설치에 집중하면서, 소위 '국경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2월말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국경 개념으로 공식화했고, 북한식 방식을 통해 개정 헌법 안에 '영토 조항'을 포함시켰으니,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국경화 작업'은 향후 더욱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전쟁 이후 휴전협정을 바탕으로 한 남북한 간 관계 설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남북한 사이가 완전히 단절되었지만, 5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도 있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으로 상징되는 적극적인 대북한 관여정책도 있었다. 또한 한반도 분단상황의 개선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도 2차례나 진행된 바 있고, 이산가족 상봉과 각종 남북한 문화교류 사업도 전개된 바 있다. 북한의 핵무기 완성 혹은 북중러 권위주의 연대 강화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동시에 핵문제가 너무 상징적이어서 다른 모든 성과가 가려져 있을 뿐, 북한의 장마당 경제의 등장이나 한국 문화의 암묵적 전파와 같은 효과가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추진한 노력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 관계의 설정을 가리키는 가장 상징적인 표현으로 우리는 '분단체제'라는 사회구조적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정전체제에 기반한 남북한 두 세력의 적대감이 일종의 사회 에너지로 작용하면서, 각자 사회 내부에 구조화되었고, 정치 체제, 경제 활동, 사회 시스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영역이 북한이라는 적대 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한 사회적 작동이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분단체제'는 냉전 시대에 생겨난 개념이고, 사회과학적으로 완결된 개념이 아니어서,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보편성을 확보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국가안보 개념,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정책, 국제사회에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전략 등 모든 기준에서 '분단체제', 즉 북한과의 적대 관계를 전제로 한 사회구조화 작업은 가장 중요한 한국적 사회화의 원칙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이 아무리 강경하다고 해서, 북한이 이번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국경화 작업'은 향후에 폭발 사고와 유사하거나 혹은 다른 유형의 '군사분계선' 분쟁 사고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예고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를 인정하지 않을테니,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발생하는 사고 조사를 위해 공동조사단을 꾸리자고 북한에 제안할 수 없게 되었고, 북한의 '국경화 작업'은 강력한 무력 수단의 배치를 의미하므로, 지뢰를 포함한 더욱 위엄한 폭발물의 우발적 사고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또한 향후 우리가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진행할 다양한 작업을 향해서, 북한은 스스로 설정한 '남부경계선'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우리를 향한 무력 사용도 서슴치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 들릴 수 있지만, 북한은 '두 개 국가' 헌법 개정을 통해 한반도 '분단체제'를 뒤로 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전략을 택했다. 북한의 헌법 개정 이후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굳이 살펴보자면 지난 5월 16일 정부가 공식 발표한 '통일백서'에는 북한의 두 개 국가 주장을 어느 정도 현실론에 입각해서 수용한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국민 다수로부터 공감을 얻은 상태는 아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의 유엔총회 참석을 포함한 각종 해외 순방을 통해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 남북 긴장 관계 해소, 한반도 통일 등과 같은 기존의 원칙론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정확한 해석이 아닐 수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북한 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국가 과제를 놓고서 역할 분담을 한 듯한 생각마저 드는 상황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해 등장했던 '분단체제' 개념은 한반도 상황을 설명하기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분단체제' 개념 등장 이후 냉전이 종식되었고, 세계화 이후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경과했으며,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분단체제가 고착화되는 과정이 의도하지 않게 다양한 국가이익으로 전환되었던 한국의 경우와 달리, 북한은 분단체제가 야기하는 근원적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자 치열하게 몸부림쳤다. 그 결과 핵무력을 완성했고, 중국 및 러시아와 함께 권위주의 연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450여개의 장마당을 활용한 국가 경제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세력 관계에서 강자가 관계 설정을 주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약자가 관계 설정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 훨씬 뒤처진 국력을 보유한 북한은, 세계화가 가져온 취약점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불리하게 작용했던 '분단체제'를 과감하게 뛰어넘는 선택을 우리보다 먼저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군사분계선 일대의 폭발 사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실험일 수 있다.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을 상대로 기존의 남북한 관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 절실해 보인다. 우리 헌법을 수정해야 할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전면 수정해야 할지, 우리 사회 내부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일종의 사회 협약을 만들어 할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의 교훈을 수용해야 할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도 많다. 위기가 기회라는 교훈을 되새기며, 새롭게 제기된 통일 관련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
■ 저자: 박인휘_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장.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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