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북한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 ① 2021~2025년 북한경제의 위기와 대응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ditor's Note

최지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박사는 대북제재 강화와 코로나19 국경봉쇄라는 이중고 속에서 북한이 직면했던 2021~2025년 경제 위기의 실태와 이에 대한 정권의 대응 방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저자는 이번 위기가 1990년대의 충격과 유사하면서도, 식량 위기에는 즉각적이고 집중적으로, 재정 위기에는 점진적이고 다각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별화된 전략이 구사되었음을 조명합니다. 최 박사는 나아가 국가 주도의 통제 강화와 북러 협력을 통해 거둔 부분적인 회복세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며, 향후 제9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북한 경제가 직면할 과제를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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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참여한 다음 연구보고서의 3장 내용을 토대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최지영 외(2025), 『북한 사회체제의 위기와 대응: 2021~2025년』, 통일연구원.)

 

1. 서론

 

2021년 제8차 당대회 당시 북한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2020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4.5%로,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마이너스 성장은 2022년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북한은 1인당 소득수준이 천 달러 내외인 저소득국이며,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은 과도한 국방비 지출에 있다는 점에서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은 2021~2025년 갑자기 부상한 것은 아니다. 제8차 당대회 당시 북한경제의 어려움이 심화된 것은 기존의 구조적 위기에 새로운 충격이 더해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강화와 코로나19 국경봉쇄에 따른 무역 충격이었다.

 

지난 5년 북한경제의 위기는 무역 충격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이 1990년대 위기와 상당 부분 닮아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강화는 수출 충격을, 코로나 국경봉쇄는 수입 충격을 불러왔고, 2020~2021년 북한의 무역규모 자체는 구사회주의권 붕괴 직후인 1990년대 초반보다 축소되었다. 사실상 폐쇄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한은 1987~1993년 제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인정한 이후, 처음으로 2016~2020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목표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2] 했다고 인정했다. 무역 충격이 경제계획 실패를 낳았다는 점에서도, 제8차 당대회 당시 북한경제 위기는 1990년대 위기와 상당 부분 닮아있다.

 

무역 충격으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북한경제를 운영하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자원인 식량과 재정의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도 1990년대와의 유사성이 높다. 수입 충격은 곡물 도입량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비료와 같은 농업 원자재의 공급 감소를 통해 국내 곡물 생산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출 충격은 북한의 외화 획득량 감소를 의미하는데, 수출의 상당 부분이 당・군 산하 기업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재정 여건 악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여러 지표들에서 지난 5년 식량위기와 재정위기의 심화를 관찰할 수 있는데, 주목할 것은 북한의 위기 대응 방식이다. 지난 5년 북한정권은 다양한 정책들을 통해 경제위기에 비교적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는데, 이는 1990년대 미온적인 정책 대응과는 차이가 있다. 1993년 제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인정한 이후, 북한은 1994~1996년을 완충기로 설정하였을 뿐, 구체적인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반면, 국가경제발전 계획(2021~2025년)은 기존 5개년 계획(2016~2020년)의 실패 이후 곧바로 수립되었으며, ‘12개 중요고지’와 같은 중요 생산물들의 목표 달성이 강조되었다. 식량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도 꽤 구체적인 조치들로 채워졌다. 이 글은 지난 5년 북한 식량위기, 재정위기의 전개과정과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다.

 

2. 식량위기의 전개와 대응

 

1) 식량위기의 전개과정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직후 북한은 국경을 봉쇄하고 강력한 방역 정책을 단행했다. 북한의 취약한 보건・의료 인프라를 감안할 때, 전염병 위기는 상당한 인구손실을 촉발할 우려가 있었다. 북한정권은 보건위기가 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러운 국경 봉쇄와 이동 통제는 특히, 식량부족을 심화시켰는데, 국경봉쇄는 수입 감소를 통해 식량 가용성(availability)을 축소시켰고 이동 통제에 따른 경제활동 참여 저하는 구매력 감소를 통해 식량 접근성(access)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식량안보(food security)는 식량의 가용성, 접근성, 활용성, 안정성 측면에서 평가[3]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처분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라 할 수 있는 가용성은 식량안보의 출발점이 된다. 북한은 가용성 측면에서 수요 대비 공급이 늘 부족한 만성적인 식량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공급량의 일시적 감소에도 매우 취약하다. 제8차 당대회가 개최된 2021년 북한의 식량안보는 크게 악화되었는데, 국내 생산량과 외부 도입량 축소로 식량 가용성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식량작물 생산량은 통상 450~480만 톤 사이였으나 2020년에는 440만 톤으로 최저치를 기록했고 외부 도입량도 2021년 가장 적었다. 즉, 북한 전체의 식량 가용성은 2021년 가장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생산된 곡물이 유통되는 해이면서, 외부 도입량이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그림 1> 북한의 식량공급(국내 생산량과 외부 도입량) 


 국내 식량작물 생산량

 외부 도입량

 

 

주: 1) 좌측 그림은 한국농촌진흥청의 북한 식량작물 생산량 추정치

      2) 외부 도입량은 UN comtrade의 2012~2023년 각 국 대북 수출 통계(HS 1003, 1005, 1006, 1008, 1101, 1108) (Accessed 2025.5.12.)

출처: 국가데이터처 북한통계포털 (검색일: 2025.11.4.); UN comtrade (검색일: 2025.11.4.).

 

식량 접근성 악화는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통제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발생 직후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2020.1.24.)하고, 「비상방역법」을 채택(2020.8.22.)하였으며, 2021년 하반기에는 비상방역의 ‘장기화’ 대비 태세로 전환하였다. 2021년 하반기부터는 많은 국가들이 백신접종을 시작하면서 이동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했으나, 북한은 당시 코벡스가 제공한 백신 지원을 거부하였고 2022년 상반기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 진정되는 기간까지 엄격한 방역 정책을 유지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시장의 매대 간 간격을 확대하는 조치[4]를 취했으며, 실제 오미크론 확산 당시에는 시장을 폐쇄하거나 운영시간을 축소하기도 했다.[5] 이러한 방역 강화 정책은 경제활동 참여를 어렵게 함으로써 소득 창출 기회를 차단하여 식량의 획득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6][7] 또한, 시장 거래, 지역 간 이동에 대한 통제 강화는 식량가격의 변동성을 확대시킴으로써 식량의 안정성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2021년 북한시장의 주요 곡물가격은 상대적으로 급등했고, 지역 간 가격 편차가 확대되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식량의 활용성도 대체로 낮아졌다. 국경봉쇄는 곡물 도입뿐만 아니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용유, 설탕, 밀가루와 같은 식료가공품의 공급도 축소시켰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조사 대상 가구의 식이 다양성(dietary diversity)는 2019년 대비 악화되었다.[8]

 

이와 같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북한의 식량안보는 상당 부분 후퇴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보건 위기 대응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정책 선택을 해야 했는데, 취약한 보건의료 인프라와 코로나 백신 획득의 어려움은 북한으로 하여금 혹독할 만큼의 과잉 대응을 선택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보건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은 식량위기 측면에서는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는데, 주목한 것은 이에 대한 북한정권의 대응이다. 2021년 식량 부족이 심화된 직후, 북한정권은 위기를 인정하고 “특별 명령서” 발령을 통해 즉각적으로 대응[9]했으며, 연말 전원회의를 통해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농업・농촌 집중 정책을 제시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북한의 식량위기가 1990년대만큼 심화되지 않은 것은 보건위기의 일시적 성격, 시장이라는 새로운 유통 경로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정책 대응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2) 식량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

 

2021~2025년 북한의 식량위기 대응은 즉각적이고 집중적이었는데, 이는 1990년대 미온적 정책 대응과 대비를 이룬다. 정책 대응은 크게 식량의 생산과 유통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각각 식량안보의 ‘가용성’과 ‘접근성’을 제고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가. 식량 생산 정책: ‘새시대 사회주의 농촌혁명 강령’

 

우선, 식량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 대응을 살펴보자. 북한은 2021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새시대 사회주의 농촌혁명 강령’이라는 10년의 장기 계획을 채택했는데, 농업 부문에 노동력과 자본 투입을 확대하는 한편, 농촌 살림집 건설과 같은 농민 대상 유인 부여 정책이 다양하게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농업・농촌 집중 정책’이라 할 만하다. 우선, 자본 투입 확대를 살펴보자. 2022년 북한은 전체 예산 규모가 1% 내외로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농업·농촌 부문에 대한 예산 항목을 별도로 편성하고, 전년대비 지출을 대폭 확대했다.[10] 농업·농촌 부문에 대한 예산 지출 확대는 2023년에도 14.7%로 전체 증가율 계획인 1.7%를 큰 폭으로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하였다. 2022~2023년 북한의 예산 지출 구조는 식량 문제 해결에 대한 정책적 관심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농업・농촌 부문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농장의 ‘미상환 대부’를 탕감하는 금융 조치도 단행되었다. ‘새시대 사회주의 농촌혁명강령’이 제시된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협동농장의 전반적인 재정실태를 세세히 분석”하고, 농장들의 “경제적 토대를 보강해주기 위한 중요한 대책의 일환”으로 협동농장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자금을 “면제할 데 대한 특혜조치”가 선포되었다.[11] 이 조치는 농업 생산단위의 재정여건을 개선하는 동시에 농업 노동자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고라는 의미도 갖는다.[12] 노동력 투입 확대에 대한 정책은 공식 문헌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이탈주민 구술에서는 2021~2023년 농장에 대한 노동력 동원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음이 확인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2021년 무렵부터 농촌의 농장원 부락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을 단속하여 농장원과 노동자를 분리하기 시작했으며, “농장부락에 사는 노동계급이라도 농장에 나가서 일을 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도시로 이주한 농장원 출신에 대한 검열과 단속이 시작되었고, 2023년 8월에는 대대적인 농장원 복귀 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된다.[13]

 

식량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농업 부문의 노동력과 자본 확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북한 당국의 정책 대응에는 제약이 컸을 가능성도 있다. 재정위기가 심화된 상황에서 농업·농촌 부문에 예산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타 부문의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정책대응은 식량 위기의 완화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2021~2023년 노동력과 자본 투입을 확대한 결과, 2023년 북한의 국내 곡물생산량은 비교적 큰 폭으로 반등(+6,9%)하기 시작했다.[14]

 

나. 식량 유통 정책: 국가 양정체계 강화

 

‘새시대 사회주의 농촌혁명강령’이 식량 생산 측면의 정책 대응이라면, 양정법 개정과 양곡판매소 확대・설치를 통한 국가 양정체계 강화 정책은 식량 유통 측면의 대응이다. 북한의 식량유통 경로는 1990년대 위기 이후, 국가공급(배급)과 시장판매로 크게 이원화되었다. 국가 양정체계에는 원래 국가공급(배급)만이 포함되었지만, 양정법 개정으로 양곡의 국가판매 경로가 추가되었다. 북한은 공식부문의 양곡유통 경로를 강화하기 위해, 농장법과 양정법을 개정하고, 양곡관리법을 채택하는 등 양곡의 수매, 유통, 공급, 판매, 소비와 관련된 법령 전반을 정비했다. 농장법 개정을 통해서는 ‘국가알곡의무수매계획’ 달성의 우선 순위가 한층 더 강조되고, 협동농장이 자체적으로 처분할 수 있었던 양곡의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15]

 

양정법 개정을 통해서는 양곡의 ‘국가판매’를 신설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유통 경로로 ‘양곡판매소 설치’를 의무화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의 시・군・구역 단위마다 전국적으로 220여 개 양곡판매소가 확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탈주민들에 따르면, 지역별・시기별로 차이는 있으나 2020년 이전에도 양곡판매소는 부분적으로 가동되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즉, 공식부문의 양곡 유통 경로를 복구하려는 정책은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곡의 국가판매를 명문화하거나, 전국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국가 양정체계 강화 조치는 다소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양곡판매소는 3년여 이상 그 운영이 지속되고 있고, 지난해 ‘지방발전 20×10 정책’에서는 ‘양곡관리시설’이 ‘3대 필수 건설’로 포함되었다. 올해에도 국가 양정체계 강화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2월 양곡관리성을 신설하였고, 9월 제14기 제13차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양곡관리법을 채택하여, “량곡의 보관, 가공, 공급 및 판매, 소비와 관련한 제반 문제”들을 규율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 양정체계 강화 정책의 의도는 무엇일까? 동 정책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시장 통제 정책과 병행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양곡의 ‘국가판매’는 ‘시장판매’를 대체하려는 목적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공공분배제도(public distribution system)로서 식량배급제는 1990년대 식량위기 이후, 당・군・내각의 주요 간부나 일부 기업소에 한하여 차등적으로만 작동하고 있고, 이로부터 배제된 대다수 일반 주민들은 시장에서 곡물을 구입해 왔다. 양곡판매소 운영은 차등적 식량공급제에서 배제된 일반 주민들을 국가 양정체계로 편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식량을 국가가 판매하는 것은 일반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양곡판매소의 운영 실태를 조사해 보면, 지역별・시기별 편차는 있으나 판매가격은 국정가격보다 훨씬 높고 시장가격보다는 낮은 수준이고, 가구별・개인별 최대 판매량이 정해져 있으며, 우대가구에 대한 혜택이 포함되어 있다. 즉, 저소득 계층과 취약 계층의 식량 접근성을 비교적 완화하는 효과를 일부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16] 우대가구 혜택의 경우, 다자녀 가구, 수재민 가구 등 취약계층에 대한 혜택도 일부 있지만, 전쟁노병, 교원 등 북한정권이 정치적으로 우대하는 그룹에 대한 혜택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취약계층’ 보호가 주된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양곡의 국가판매는 기존 시장 판매자가 얻던 양곡 거래 이익을 공식 부문이 흡수함으로써 재정여건을 확충하는 데도 기여한다. 2024년 초 북한은 식량의 공급(배급) 가격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북한의 식량 공급 가격은 2009년 말 화폐개혁, 그 이후 시장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48북한원/kg 수준을 유지한 바 있으나, 2024년초 2,000북한원/kg으로 인상되었다. 이와 같이 무상에 가까운 식량 공급 가격을 인상하고, 양곡 유통 체계를 수정하여 국가판매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대북제재 장기화에 따른 재정위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재정위기의 전개와 대응

 

1) 재정위기의 전개과정

 

제재 대상국의 국가재정 악화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경제제재는 무역제재와 금융제재로 일반적으로 구분된다. 각종 무역제재는 국제공급망으로부터 제재 대상국을 분리하여 무역수지 적자를 확대시키나, 금융제재로 국제금융시장 접근도 여의치 않게 된다. 생산실적 하락으로 재정수입은 축소되나 민생여건이 악화되면서 재정지출 수요는 증가하여, 재정수지 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재정위기 또한, 2016~2017년 강화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북한 재정위기의 신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수출액 감소이다. 수출액은 2016년 28.2억 달러에서 2017년 17.7억 달러로, 2018년에는 2.4억 달러로 감소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제재로 급감한 수출을 더 축소시켰는데, 2020~2021년 수출액은 8~9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대북제재 강화 이전 북한의 주요 수출은 당, 군과 같은 국가기관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수출 감소는 이들 기관의 소득 감소를 통해 재정위기로 이어졌을 것이다. 또한, 수출은 외화 소득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공식 부문의 외화 보유량이 급감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둘째, 공식적인 조세의 규모 변화이다. 북한은 재정규모 자체를 밝히지는 않지만, 매년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수입과 지출 측면의 예산 증가율 계획을 발표한다. 물론, 김정은 집권 이후 예산의 수입·지출 증가율 계획은 매년 소폭이라도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재정규모가 절대적으로 축소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러나, 2013~2020년 4~6% 수준이던 예산 수입·지출 증가율 계획은 2021~2023년 1% 내외로 크게 둔화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림 2> 북한의 예산 수입・지출 증가율 계획

 

출처: 노동신문(최고인민회의 예산보고를 토대로 필자 작성)

 

셋째, 북한언론을 통해 드러난 재정문제에 대한 언급이다. 주요 경제정책이 결정되는 당, 내각의 주요 행사에서는 재정위기에 대한 정권 차원의 인식이 관찰된다.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는 ‘재정, 금융, 가격’과 같은 경제적 공간 활용이라는 언급도 등장하였고, 2023년 2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는 ‘국가재정금융사업 개선’이 의제로 상정되기도 했다. 최고인민회의 예산보고에서도 재정여건 악화의 징후를 부분적으로 읽을 수 있다. 2021~2024년 연이어 일부 단위들에서 예산수입 계획, ‘국가납부계획을 미달’했다고 언급되었는데, 국가예산집행에 있어서의 ‘결함’을 지적하는 내용의 비중은 2021년 가장 두드러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2025년 예산보고에서 2021~2024년과 마찬가지로 국가예산집행과정의 결함과 경제지도 기관, 일군들에 대한 지적은 있었지만 국가납부계획을 미달했다는 언급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전체 예산 수입, 지출 증가율 계획은 2021~2023년 1% 내외로 하락한 이후, 2024년부터 2~3%대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식량위기와 마찬가지로 재정위기 또한 2021~2023년 가장 심화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21~2023년 재정여건 악화의 근본적 원인은 대북제재 강화에 따른 해외 수요 단절이지만, 2020~2022년 코로나 국경봉쇄로 국내 생산 여건이 악화되면서 내수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2020년 이전에는 자본재 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수입은 유지되었기 때문에 광업과 중공업을 제외한 산업 생산이 크게 위축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2020년 국경봉쇄로 원자재 수입이 중단되면서 제조업의 후퇴는 경공업까지 크게 확산되었고, 방역 강화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생산 위축은 두 가지 주요 재정수입, 즉 상품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수입금과 생산단위 이익에 대한 과세인 국가기업이득(익)금의 규모 축소로 이어진다. 시장경제가 확산되었다고 하더라도, 농업, 경공업, 서비스업을 제외한 여타 산업에서 계획경제의 관여는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되는바, 산업 생산의 전반적 정체는 국가기관들의 재정 여건을 빠르게 악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2022년 하반기 이후 수입 확대, 코로나 엔데믹으로의 전환은 국내 생산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는 재정위기 완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2023년과 2024년 각각 3.1%, 3.7%를 기록하였다. 북한은 2023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12개 중요고지를 비롯하여, 인민경제 전반의 생산실적이 2020년 대비 큰 폭 회복되었음을 선전하기도 했다. 2025년 초 예산보고에서, 2021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납부계획 미달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기관, 기업소의 순소득이 국가납부금 계획을 충족시킬 만큼 양호했다는 것으로 북한이 최악의 재정위기 상황에서 탈출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23년 9월 이후 북러 협력 확대도 북한이 재정위기를 부분적이나마 타개할 수 있는 기회를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대러 군수물자 수출은 제재 강화에 따른 수출 감소를 부분적으로 상쇄했고, 북한의 제재 회피, 위반도 보다 용이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는 식량위기에 비해 더 먼저 시작된 것이고, 더 극복하기 어려운 충격이다. 매년 수확기마다 공급되는 곡물과 달리 새로운 외화소득 원천을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북러 협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군수물자를 제외한 상품 수출은 유의미한 증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2) 재정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

 

식량위기에 대한 정책대응이 즉각적·집중적이었다면, 재정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은 점진적·다각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2009년 급진적 화폐개혁의 엄청난 부작용을 감안할 때, 다양한 정책 수단 활용과 점진적인 접근은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으나, 재정위기 대응은 식량위기 대응과 비교하여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하에서는 북한의 재정위기 대응을 ‘재정, 금융, 가격’의 경제적 공간 활용이라는 제8차 당대회 정책 방향에 비추어 살펴본다.

 

가. 재정 측면의 정책 대응

 

국가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 개입은 2021~2022년 집중적으로 관찰되었는데, 대체로 기존 법령을 소폭 개정하여 재정수입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첫째, 2021년 북한은 재정법을 개정하였다. 생산단위가 국가납부몫을 바친 이후, 자체적인 경영활동을 위해 유보할 수 있었던 자체충당금, 장려금, 상금기금과 같은 명목들이 삭제되었고, “계획기간에 채 쓰지 못한 자체과학기술발전자금, 상금기금 같은 자체로 쓰게 된 자금은 국가예산에 동원하지 않는다”는 문구도 삭제되었다. 또한, ‘부문예산제’를 실시하여, 중앙예산의 부문별 수입과 지출을 “자체적으로 맞”출 것을 추가하였으며, 재정법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기도 하였다. 재정법 개정은 생산단위의 유보 이윤을 축소, 국가의 재정수입을 확대하여 재정수지 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둘째, 2022년 최고인민회의 예산보고에서는 생산단위에 대한 과세 명칭 변화와 시장 경제활동 소득에 대한 과세인 ‘집금수입’의 확대(전년대비 6.8배 증가)가 관찰된다. 생산단위 이익공제금의 명칭은 기존 국가기업이익금(협동단체이익금)으로부터 국가기업이득금(협동단체 이득금)으로 변화되었는데, 예전 사례에 기초해 볼 때, 징수방식을 변경하거나 납부대상을 조정함으로써 재정수입의 중앙집중적 동원을 확대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집금수입’ 증가도 재정여건 확충을 위해 시장 경제활동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17]

 

유의할 것은 국가 재정수입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집권 초기 도입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핵심은 기업의 자체적인 자금조달과 운용 권한인 ‘재정관리권’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개정으로, 기존 기업소법에만 포함되어 있었던 재정관리권이 재정법에도 반영되었다. 이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경제관리방법이 큰 틀에서 지속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필요에 따른 미세조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방향은 기업의 유보 이윤을 축소하고 국가 재정수입을 확대하는 데 있다.

 

나. 금융 측면의 정책 대응

 

금융 측면에서도 예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다양한 정책 개입이 눈에 띈다. 제재 장기화와 국경봉쇄에 따른 경기 악화로 국가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절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정책 개입으로는 2021년 말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협동농장의 미상환 대부를 “면제할 데 대한 특혜조치를 선포”한 것과 2023년 대부법, 금융감독법을 제정, 2022~2023년 중앙은행법을 개정한 조치들이다. 이외에도 법령과 같이 공식적인 확인은 어렵지만, ‘중앙은행 돈표’라는 임시화폐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협동농장 미상환 대부 탕감 조치는 식량위기 대응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식량부족이 심화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예산 지출 확대라는 재정 정책과 미상환 대부 탕감이라는 금융 정책을 병행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원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금융은 재정에 종속되는 성격이 강하고, 재정이 부족할 경우 이를 대부로 보완하는 방식의 정책이 이루어진다. ‘새시대 사회주의 농촌혁명 강령’을 제안하며, 북한 당국은 공식 재정금융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대부법과 금융감독법의 제정은 북한의 재정위기 대응이 다각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부와 같은 상업은행 기능과 중앙은행의 금융감독에 대한 조항들은 기존 상업은행법과 중앙은행법에만 포함되어 있었는데, 대부법과 금융감독법이 제정되면서 금융기관의 의무와 권한은 한층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법령들이 제정된 배경은 무엇일까?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기업의 재정관리권을 부여하여 자체적인 자금조달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였다. 또한, 상업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을 활용하여 민간 자금을 흡수하고, 이를 생산단위 운영 자금으로 대부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제재 장기화에 따른 국가 재정여건 악화는 기업의 은행 대부 의존도를 확대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한 관리와 감독 책임을 부여할 필요성이 요청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부법과 금융감독법 제정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금융 부문의 정책 대응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중앙은행을 통한 개입인데, 이는 중앙은행법의 개정과 ‘중앙은행 돈표’ 발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앙은행법 개정에서는 전자결제체계 구축과 외화준비금 조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전자결제체계를 표준화하여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전자결제중심”을 구축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통화안정에 필요한 외화준비금을 조성·관리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금융감독법이 금융 거래에 대한 정보 장악을 규정한다면, 중앙은행법은 상품 거래에 수반되는 결제 정보를 전자화할 것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정보화는 2021~2025년 북한의 재정위기 대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책 가운데 하나로, 재정누수를 방지하고 민간이 보유한 자금을 흡수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독립된 조문으로 추가된 외화준비금은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 다른 나라에 대한 지불을 위하여 보유하고 있는 금 및 전환성 외화”[18]로 정의된다. 북한문헌에서는 이를 ‘외화예비’라고도 표현하는데, 우리의 외환보유액에 가까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19] 외환보유액의 조성, 운용은 중앙은행의 기본적인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법령에는 포함되지 않았다가 2022~2023년 개정에 추가되었다. 제재 강화 이후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확대됨에 따라, 북한의 외화보유량이 축소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은행의 외화준비금 조성 필요성도 확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중앙은행 돈표’ 발행을 살펴보자. “중앙은행 돈표는 국가가 담보하고 발행하는 현금과 같은 지위를 가지는 림시통화”[20]인데, 북한은 2021년 액면금액이 5천원인 중앙은행 돈표를 발행한 데 이어, 2022년에는 5만원권을 발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중앙은행 돈표는 그 발행이 확인된 직후, 그 성격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으나, 가계와 기업이 사용을 기피하여 유통이 활발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21]

 

그러나, 최근 2023~2024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들로부터 채집한 구술에 따르면, 중앙은행 돈표는 임금 명목으로 지급되거나 일상 거래에서 비교적 활발히 사용되었으며 북한주민들은 고액권인 5만원권 발행을 오히려 선호하기도 했다.[22] 물론, 구술자들의 증언만으로 북한의 정책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중앙은행 돈표’가 기존 현금과 구분 없이 일상에서 거래되었다거나 고액권의 발행을 선호했다는 구술은 동 조치가 상당 부분 통화증발의 경로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노동자 임금으로 ‘중앙은행 돈표’가 지급되는 비중이 높았다면, 2023년 하반기~2024년 초 국정임금 인상은 통화량을 크게 증가시키는 계기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시장환율은 2023년 하반기 이후 급등하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중앙은행 돈표 발행에 따라 통화량이 증가했다면 시장환율 급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표 1> 2021~2025년 ‘재정, 금융, 가격’ 부문의 정책 변화

부문

정책 변화

재정

재정법 개정(2021.8.17.)

국가기업이익금·협동단체이익금국가기업이득금·협동단체이득금 집금수입 증대(최고인민회의 14 6 회의, 2022.2.6-7)

국가재정금융사업 개선( 전원회의, 8 7, 2023.2.26-3.1.)

금융

협동농장 미상환대부 탕감( 전원회의, 8 4, 2021.12.27.-31.)

대부법 제정(2023.2) 금융감독법 제정(2023.10.19.)

중앙은행법 개정(2022.8.23.; 2023.7.13.)

가격

령수증법 제정(2021.10.29.)

전자결제법 ·개정(2021.10.29., 2023.7.13.)

가격법 개정(2022.3.1.),

국정가격 국정임금 인상(2023 하반기~2024 )

국가유일가격표 배포(2024 상반기)

 출처: 국정원(2024), 『북한법령집』, 노동신문, NK 경제, RFA, 아시아프레스

 

다. 가격 측면의 정책 대응

 

가격 측면의 정책 대응도 다음의 측면에서 재정수입 확대와 연관된다. 첫째, 가격과 연관된 정보 수집을 위한 플랫폼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2021년 령수증법과 전자결제법의 제정, 2023년 가격법 개정은 일상 거래와 관련된 결제 인프라를 현대화함으로써 가격, 매출, 이윤 등의 정보를 국가가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가격법은 생산자로 하여금 상품의 가격을 등록하도록 강제하고, 전자결제법은 상품의 전자결제 정보를 ‘은행전자결제체계’로 수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로를 거쳐 상품 거래에 대한 전자결제 정보는 중앙은행법 개정에 반영된 ‘통일적인 전자결제중심’으로 수집된다. 가격 정보는 판매자의 매출과 이윤을 파악하여 재정수입의 근거를 확보하는 기초 자료라는 점에서, 재정누수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재정당국의 의도가 반영된 셈이다.[23] 둘째, 국가 유통 강화를 위한 가격 관리가 관찰된다. 2023년 하반기~2024년초 북한은 국정가격을 인상하고, ‘국가유일가격표’를 배포했다. 국정가격 인상은 식량 공급(배급) 가격의 인상을 의미하는 데, 이는 양곡판매소 가격과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국가유일가격표는 상품의 종류, 규격, 브랜드별 ‘정가’를 책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정법’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상업법’ 개정으로 소비재의 국가판매 경로로 새롭게 신설되었음을 감안할 때, 국영 상업망내 가격 한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4. 결론

 

이 글은 지난 5년 북한경제의 위기를 식량과 재정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북한경제의 저발전은 적대적인 안보정책과 그에 따른 경제적 고립에 있으나, 대북제재 강화와 코로나 팬데믹은 이를 더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0~2022년 북한경제의 위기는 무역충격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중후반의 위기와 상당 부분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위기 돌파를 위한 정책 대응의 측면에서는 차별성도 관찰된다. 식량위기에 대한 대응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이었으며, 재정위기에 대한 대응도 점진적이고 다각적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비해, 북한은 확실히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하여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물론, 북한정권의 이러한 정책 개입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거둔 것은 아니다. 식량위기 완화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관찰되지만, 재정위기를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식량위기 측면에서는 농업·농촌 발전에 노동력, 자본을 집중하는 정책 개입으로 2023~2024년 국내 곡물생산량이 증가하는 등 부분적인 성과가 나타난다. 식량의 ‘가용성’은 식량안보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농업·농촌 집중정책의 성과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식량의 ‘접근성’ 측면에서 양곡의 국가유통 강화 정책의 결과는 다소 불확실하다. 양곡의 국가판매는 옥수수 등 저가 곡물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부분적인 취약계층 보호 효과도 있지만, 공식 부문으로 곡물이 집중되며 여전히 시장의 곡물가격은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재정위기 측면에서는 제재의 부정적 영향은 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화폐개혁과 같은 극단적인 정책 대신 점진적인 법령 제·개정, 임시 화폐 발행, 정보화 수단과 같은 다양한 정책을 활용한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나, 이러한 정책만으로 무역수지와 재정수지 적자를 상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난 5년 북한정권의 경제위기 대응은 다양한 긍, 부정의 파급효과를 낳고 있으나, 종합적인 경제실적은 2023년 이후 연 3%를 상회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최악의 경제여건을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 데는 정책 대응과 함께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도 기여하였다. 2023년과 2024년 북한의 중화학공업은 각각 8.1%, 10.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는 데, 팬데믹 기간의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군수산업의 가동률 증가가 제조업의 부분적으로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곡물과 정제유 공급 증가도 식량부족을 완화하고 수송 등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지난 5년 북한이 심각한 경제적 고립 속에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데는 다양한 정책 대응과 대외관계 개선이라는 요소가 작용했다.

 

제9차 당대회는 북한경제가 최근의 회복세를 이어가느냐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지난 5년 시도한 정책들의 안정화가, 대외적으로는 중·러와의 경제협력이 관건이다. 양곡과 화폐 유통에 대한 국가의 통제 강화 정책이 연착륙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외화획득 경로 창출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제9차 당대회에서는 관광산업 활성화, 수출산업 육성 등 다양한 대외경제 사업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중․러와의 협력에도 여러 변수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우 전쟁이 종료된다면 북러 협력에 따른 경제적 수혜는 그 내용과 규모가 달라질 수 있고, 중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 변화도 확실하지 않다. 현재로선, 러우 전쟁 종료 이후, 북러 협력은 북한의 해외노동자 파견을 중심으로 전환되고, 북중 협력도 관광산업 등 제재하에서 가능한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해외노동자 파견이 확대되고, 해외 관광객 유치가 증가한다면, 북한의 대외 경제관계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유사하거나 소폭 개선될 것으로 보이며 1~2% 수준의 경제성장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경제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지만 저소득 수준을 탈피하는 성장의 기회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35년 사회주의 강국 실현을 공언하고 있지만, 경제강국 건설은 “제재하에서 자력갱생”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2]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한 개회사,” 『로동신문』, 2021년 1월 6일.

[3] 가용성(availability)은 생산, 재고, 수입 등 식량의 공급 측면을, 접근성(access)은 소득, 지출, 시장, 가격 등가구 수준의 식량안보 보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의미한다. 안정성(stability)은 안정적인 식량 접근에 영향을 미치는 날씨, 가격, 정치·경제적 요인을, 활용성(utilization)은 충분한 에너지와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의미한다.

[4] “북 주민, 장마당 매대 격일제 이용 조치에 반발,” 『RFA』, 2021.4.27.

[5] “코로나 종식 선언 후 北 시장 운영시간 확대..,민심 관리하나,” 『데일리NK』, 2022.8.19.

[6] 당시, 북한의 광산, 기업들의 상당수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소득 창출 경로가 차단되었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 사례 J 인터뷰. 최지영 외(2024), 『북한 식량 안보 실태 연구: 90년대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통일부 정책연구용역보고서, 통일연구원, p. 180.

[7] 북한이탈주민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북한당국은 산, 바다 출입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농업을 제외한 어업, 임업 관련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노동자들의 피해가 컸다. 북한이탈주민 사례 9 인터뷰(2025.7.2., 통일연구원).

[8] WFP(2021a) Household food security in the DPRK, 재인용:이지순 외(2024) 『북한의 식량체제의 변화와 한반도 식량교환 프로그램』,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총서.

[9] 제8기 제3차 당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은 지난해 국가알곡수매계획 미달로 인민들의 ‘식량형편이 긴장’해졌다고 이례적으로 언급하였고,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특별명령서’를 발령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개최,” 『로동신문』, 2021.6.16.;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3일회의 진행,” 『로동신문』, 2021.6.18.

[10] 최고인민회의 예산보고에서 제시되는 수치는 당해연도 증가율에 대한 “계획”이다.

[11]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 『로동신문』, 2022.1.1.

[12] 당시, 협동농장의 미상환 대부 면제 조치는 북한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호응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탈주민 인터뷰에 따르면, 협동농장의 대부는 농업 원자재 구입 명목으로 이루어지는데, 수확 이후 대부를 상환하고 나면 농장원들의 분배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가 미상환 대부를 탕감해 준 조치로 인해 “가을에 가면 조금이라도 농장원들한테 배급이 좀 더 들어”가는 혜택이라는 점에서 농업 노동자들의 생산성 제고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탈주민 사례 9 인터뷰(2025.7.2., 통일연구원).

[13] 북한이탈주민 사례 1 인터뷰(2025.4.11., 통일연구원).

[14] <그림 Ⅲ-2>에서 확인되듯이, 북한의 국내 식량작물 생산량은 2020년 440만 톤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으며, 2022년에도 450만 톤에 불과하였으나, 2023년에는 482만 톤으로 회복되었으며 2024년에도 478만 톤 수준을 유지했다.

[15] 최지영·김수정·최은주(2023),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소비재 생산과 유통 실태』, 통일연구원, pp. 120~130.

[16] 우대가구 혜택의 경우, 다자녀 가구, 수재민 가구 등 취약계층에 대한 혜택도 일부 있지만, 전쟁노병, 교원 등 북한정권이 정치적으로 우대하는 그룹에 대한 혜택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취약계층’ 보호가 주된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7] 최지영·양문수·이혜진(2022),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재정금융 제도 변화』, 통일연구원, pp. 155~187.

[18] 신성주(2015), 『현대재정금융사전』, 사회과학출판사, p. 1382.

[19] 일반적으로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대외지급준비자산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액은 금, 특별인출권, IMF 포지션, 외환으로 구성된다. 한국은행(2023), 『한국의 외환시장과 외환제도』, p. 157.

[20] “북한 <절대비밀> 문서 입수...재정 악화로 지폐 발행 정지 인정, 임시 금권 ‘돈표’로 인한 혼란도 적나라,” 『아시아프레스』, 2021.11.13., 재인용: 최지영·양문수·이혜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재정금융 제도 변화』, p. 195.

[21] 최지영·양문수·이혜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재정금융 제도 변화』, pp. 193~198.

[22] 북한이탈주민 인터뷰를 통해 ‘중앙은행 돈표’ 사용 경험을 확인한 바는 다음과 같다. 사례 1은 노임을 외화, 내화, 중앙은행 돈표로 혼합되어 받았는데, 시장 거래에서도 특별히 돈표를 기피하지 않았고 구술했다. 사례 7은 액면가 5만원권인 중앙은행 돈표를 내화 고액권의 신규 발행으로 인지할 정도로, 중앙은행 돈표와 현금을 구분하지 않고 있었으며, 사례 8과 사례 9도 일상 거래에서 중앙은행 돈표가 활발하게 사용되었다고 구술했다. 북한이탈주민 인터뷰(사례 1, 2025.03.25.; 사례 7, 2025.6.24.; 사례 8, 2025.6.27.; 사례 9, 2025.7.2., 통일연구원).

[23] 최지영(2025), “북한의 정보화 기반 적극적 경제관리정책: 현황과 시사점.” KINU 온라인시리즈 25-24, 통일연구원.

 


 

■ 최지영_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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