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진 인하대 교수는 다원화되는 한국의 정치 스펙트럼을 분석합니다. 구체적으로 구 교수는 기존의 경제-안보 중심의 1차원적 스펙트럼에서 사회-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차원의 스펙트럼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새로운 지지층이 부상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나아가 저자는 청년층의 사회-문화 보수화는 새로운 이념 균열의 징후이기에, 이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함을 제시합니다.
Ⅰ. 서론
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 선택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념은 투표 선택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주목받아 왔다. 한국 정치에서도 이념 요인이 유권자의 투표 선택에 미치는 효과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확인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유권자의 이념과 투표행태에 대한 선구적 저작인 강원택(2003)의 <한국의 선거정치: 이념, 지역, 세대와 미디어>는 지역주의가 압도했던 1997년 대선에서도 이념 변수가 일정 부분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후 다수의 후속 연구에 의해 이념이 한국 선거 결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김성연 2022, 2023; Kim, Choi, and Cho 2008; 이내영 2009; 김정 2022; 강원택 2013; Kang 2008).
그렇다면 2025년 상반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슈를 둘러싸고 전국이 극심하게 분열된 끝에 실시된 6.3 보궐대선에서, 이념은 어떤 방식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갈라놓았을까? 이 선거는 양대 주요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가진 채 후보를 냈으며, 국민의힘에서 파생된 신생 정당의 후보와 의회 밖 진보정당 후보도 이들과 경쟁했다. 더구나 당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원과 국회 등 제도에 직접적 폭력을 행사하며 선거부정론과 같은 음모론을 지지하는, ‘자유우파’를 자처하는 극우 세력의 부상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한편 2024년 12월 계엄사태 이전부터 이미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으로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적 대립이 지목된 바 있으며(이혜인 2025), 여러 다른 자료와 연구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증폭되어 왔음을 직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이동한 2025; 임재형 2024; 가상준·유성진 2023). 따라서 비록 탄핵과 계엄이라는 구체적인 이슈들이 선거를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 구도가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에 여전히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본 연구는 기존에 널리 활용된 단일한 진보-보수 이념 스펙트럼이 현재 한국 유권자들의 이념 지형을 포착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고, 이를 보완할 다차원적 이념 공간을 탐색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대선 직후 실시된 2025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 데이터를 활용하여 복수의 정책태도 문항으로부터 두 개의 독립적인 잠재 이념 차원을 추출하고, 각 후보 지지층이 이념적으로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시각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일차원 스펙트럼에서 스스로 중도에 가깝게 위치한다고 평가한 이준석 후보의 지지층이 다차원적 이념 공간에서 결코 중도가 아님을 밝힐 것이다. 또한 회귀분석을 통해 이념적 요인들과 기타 변수들이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에 미친 독립적 영향을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조직적 뿌리와 보수적 이념을 공유하는 김문수와 이준석 후보 간의 투표 선택을 가른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중도보수를 표방하면서 윤석열 탄핵 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재명과 이준석 후보 간 유권자 선택은 어떠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Ⅱ. 자료와 변수
1. 이념과 균열
이념(ideology)이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에 대한 비전을 의미한다(Downs 1957; Hinich and Munger 1994; Heywood 2021). 가장 일반적으로 오래된 이념 구분 방식은 좌-우 스펙트럼으로,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고 보편적으로 구조화하는 일종의 ‘정치적 에스페란토어’로 자리 잡았다(Laponce 1981). 전통적으로 좌-우 구분은 자유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정도나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국가 지원 수준 등, 경제적 이슈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다운스(Downs 1957)의 중위유권자 이론(median voter theory) 역시 단일한 좌우 이념 축을 전제한 것으로, 이 차원에서의 유권자 이념 분포에 따라 정당들이 전략적으로 이념적 위치를 조정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 정치의 현실은 다차원적이어서 단일 차원의 좌우 스펙트럼으로는 복잡한 이념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정당들이 경제적 이슈에서는 모두 우파적 입장을 취하더라도, 낙태나 성소수자 권리와 같은 사회문화적 이슈에서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Benoit and Laver 2006), 급진우파 정당들이 문화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등 오히려 좌파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Bornschier 2010).
균열 이론(cleavage theory)은 이러한 다차원적 정치적 경쟁을 이해하기 위한 고전적 출발점을 제공한다. 립셋과 록칸(Lipset and Rokkan 1967)은 정당 체계가 사회의 근본적인 갈등 구조를 반영한다고 보았는데, 근대 국가 형성과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중심-주변, 교회-국가, 도시-농촌, 자본-노동이라는 네 가지 주요 균열이 정당 간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서구의 정당 체계를 장기간 '동결(freezing)'시켰다고 보았다.
그러나 균열 이론에 대해, 사회적 균열이 곧바로 정당 경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엘리트와 정당이 특정 갈등을 전략적으로 동원함으로써 비로소 정치적 균열이 형성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Sartori 1969, 1990; Evans 1999). 또한 유권자의 태도가 다차원적일지라도 실제 정당 경쟁은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한 단일한 좌우 구도로 수렴된다는 관점도 제기되었다(Sartori 1976; Mair 2007). 크뉫센(Knutsen 1995) 역시 모든 정치적 균열이 기본적으로 좌우 구도로 연결되며, 균열은 뿌리 깊은 사회적 이해관계보다는 심리적 특성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정당과 유권자 간의 연계가 점차 약화되는 탈정렬(dealignment) 현상이 보고되어 왔다(Pedersen 1979; Dalton et al. 1984). 탈정렬은 유권자의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 약해지면서 투표 선택의 변동성(volatility)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크뉫센과 스카버러(Knutsen and Scarborough 1995)는 사회적 균열과 집단 정체성보다는 개인의 가치 지향이 투표 결정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달튼(Dalton 1984, 2000)은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판단과 선택 능력이 높아지는 '인지적 동원(cognitive mobilization)'의 증가로 설명한다. 즉, 사회적 자유주의 확산과 개인적 가치의 부각으로 인해 균열 이론의 핵심 전제였던 사회집단 내부의 동질성이 약화되고, 유권자 투표 선택이 개인화되었다는 것이다(Kriesi 2010).
한편, 이러한 변화를 기존 균열의 약화로 보기보다는 새로운 가치 기반 균열의 등장으로 인한 재정렬(realignment)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잉글하트(Inglehart 1977, 1990)는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t) 가치의 부상으로 정치 균열 구조가 전통적인 경제적 균열에서 가치·문화 갈등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연구들은 유럽의 정당체계가 유로 위기와 난민 위기와 같은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호흐와 마크스(Hooghe and Marks 2018)는 글로벌화 관련 이슈들이 기존의 국가주권 및 문화적 정체성 문제와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 균열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화에 따른 이익과 손해에 따라 유권자들의 정치적 태도가 갈라지면서 초국적 균열(transnational cleavage)이라는 새로운 분열선이 등장한 것이다. 이 균열의 양극단에는 국가주권과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급진우파 정당과, 개방성 및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내세우는 녹색당과 같은 정치세력이 각각 자리 잡았다. 이는 균열 이론의 중심이 전통적인 사회구조적 접근에서 가치와 태도를 강조하는 인지적 접근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현대 정치에서 이념을 단순히 좌우 스펙트럼이라는 일차원적 틀로만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특정 사회집단이 공통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경험을 바탕으로 동질적 투표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개개인의 가치와 경험이 보다 다양해지면서 정치적 선택도 개인화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적 이념과 균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다양한 가치 지향과 사회적 경험을 포괄할 수 있는 다차원적이고 가치 중심적인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2. 한국의 이념 균열과 이념 측정 방법
1997년 15대 대선을 계기로, 한국 정치에서 이념의 영향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강원택 1998). 이후 2000년대 여러 선거에서 투표 선택에서의 진보–보수 이념이 유권자 선택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었다(정진민 2003; 이내영 2009; 강원택 2003; Kim, Choi, and Cho 2008; 이갑윤·이현우 2008). 이제 지역주의와 함께 진보-보수의 이념은 선거 분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주요 변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념이 선거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에 대해 여전히 학계의 견해 차가 존재한다. 특히, 특정 단기적 이슈가 선거를 압도할 경우에도 이념이 여전히 의미 있는 변수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김성연(2022)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보궐대선에서 이념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나아가 20대 대선에서도 이념이 이재명 후보에 대한 투표에는 유의미하게 작용했으나 윤석열 후보에 대한 투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이는 이념이 언제나 일관되게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확고한 근거가 아직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쟁점은 이념 성향의 측정 문제이다. 국내 선거 연구에서는 유권자에게 본인의 이념을 11점 척도(0–10)로 묻는 방식이 널리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적 이념 척도는 응답자마다 기준이 달라 절대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신뢰성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이내영 2009; 이갑윤·이현우 2008). 더구나 이렇게 측정하는 방식은 일차원 상에서 갖는 강도와 방향만을 보여줄 뿐, 정책 선호의 내용이나 일관성을 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류재성 2013). 따라서 이념 측정에 있어 좀 더 구체적인 정책 선호 문항 활용과 같은 대안적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정책 또는 이슈에 대한 태도의 종합적인 점수를 주관적 보수-진보 이념 위치와 병행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는 선거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보수의 이념이 반영하는 구체적인 갈등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 완전히 합의되진 않았다. 다만,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들은 대북관계와 안보 이슈와 관련된 태도가 한국의 보수-진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대표적으로 강원택(2005)은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 엘리트들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하여, 가장 첨예하게 집단 간 시각차를 드러내는 이슈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태도와 관련 있다고 보고했다. 윤성이와 이민규(2014)의 연구도 대북 정책에 대한 태도가 주관적 이념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요소임을 밝힌다.
강원택(2011)은 립셋과 록칸(Lipset and Rokkan 1967)의 균열 이론을 활용하여 한국 정치 균열의 양상과 그 기원을 분석하는 데, 여기에서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갈등이 강조된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진행된 국민국가 건설 과정에서 부각된 민족 또는 체제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진보와 보수 간의 정당 경쟁으로 발전했고, 2000년대 이후 정치적으로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주관적 이념 평가의 의미 문제에 천착한 연구들은 대부분 대북 및 안보 이슈가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정책과 세금, 복지 이슈에 대한 태도 역시 이념의 주요 구성요소임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윤성이와 이민규(2014)는 청년 세대로 국한한다면 경제적 분배와 성장에 대한 태도가 주관적 이념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밝혔고, 조우와 구(Jou and Koo 2019)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민주주의 국가 시민들 사이에서 경제적 이슈에 대한 태도와 주관적 이념 평가 간의 상관관계가 과거보다 더 강해진 것을 관찰했다. 한편,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해 강원택(2011)은 아직 이를 둘러싼 갈등이 미미하다고 진단했으나, 최근의 연구들은 정치경제 영역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탈물질주의와 관련된 영역, 그리고 젠더 관련 쟁점들에서 유권자들 사이의 이념적 분화를 보고하고 있다(구본상 2024; 박영득·김한나 2022).
정책태도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대체로 이념 균열이 일차원적이라는 전제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해왔다. 또한 선거에서 좀 더 구체적인 이슈나 정책에 대한 태도가 투표 선택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목한다(김성연·김준석·길정아 2013; 이갑윤·이현우 2008; 구본상 2024). 그러나 기존 연구들은 복수의 정책태도 문항들을 활용하여 대안적인 이념 지표로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분야의 정책들을 단일 차원의 이념 스펙트럼으로 요약하거나 분야별로 비슷한 주제의 문항들을 묶어서 각 분야별 요약을 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고전적 검사기법(classical test theory)을 사용하여 단순하게 응답 값의 평균을 구하는 방식을 썼다. 이 경우, 해석이 용이하고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난이도, 변별도와 같은 문항별 특성이 응답자의 능력(또는 태도)에 의존하여 응답자 집단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일반화가 어렵다. 이를 보완하는 연구로 최효노(2022)는 문항반응이론(item response theory)을 적용하여 정책태도를 측정했는데, 이때에도 여러 정책태도 문항들을 단일차원으로 종합했다는 한계가 있다.
문항반응이론(IRT)을 사용하면 응답자의 능력을 측정할 때, 문항의 난이도나 변별도와 같은 특성이 특정 응답자 집단이나 문항 구성에 덜 민감하며, 비교적 고정된 파라미터로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추정된 잠재적 특성 점수는 특정 표본 내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보다는, 문항 및 표본 특성에 구애받지 않고 일반화 가능한 척도로 표현된다. 또한 개별 문항에 대한 응답 패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다 정교한 측정이 가능하다(Hambleton, Swaminathan, and Rogers 1991).[1]
그러나 단일 차원 문항반응이론(unidimensional IRT)을 활용하여 서로 이질적인 정책 문항들을 하나의 차원으로 축약하거나, 정책 영역별로 별개의 단일 차원을 설정하는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경제, 안보, 사회문화 등 서로 상이한 정책 영역의 문항을 무리하게 하나의 차원으로 통합하면 각 영역 고유의 이념적 내용이 희석되어, 해석의 정확성이 떨어진다(Treier and Hillygus 2009). 둘째, 특정 정책 영역 내에서도 문항들이 본질적으로 복수의 잠재 차원을 반영할 때 이를 단일 차원으로 강제하면 모형의 단일차원성 가정이 위배되어 모형 적합도와 신뢰성이 저하된다(Embretson and Reise 2000). 결국 현실의 다차원적 이념 구조를 정확히 포착하려면, 후술할 다차원 문항반응이론(multidimensional IRT; MIRT)을 활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Ⅲ. 데이터와 연구방법
21대 대선에서 이념에 따른 후보 선택의 정렬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주관적 자기이념과 구별되는 정책 태도에 기반한 유권자들의 당파적 정렬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살펴보겠다.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는 2025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 응답자료이다. 이 설문조사는 21대 대선 직후 이틀간(2025년 6월 4-5일) 웹 조사 방식으로 수행되었고, 지역별, 성별, 연령별 비례할당 표집을 통해 최종적으로 1509명의 응답을 수집하였다(응답률 22.5%). 이 중 투표에 참여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1451명이며, 후보별 투표 분포는 다음과 같다: 이재명 48.7%, 김문수 33.9%, 이준석 6.2%, 권영국 1.5%. 그 외에 투표 대상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9.1%, 기타 후보 및 모름/무응답을 합친 응답이 0.7%였다.
주요 독립변수인 이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측정한다. 우선, 기존 연구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방식인 진보(0)~보수(10)의 일차원적 척도를 통해 유권자들이 주관적으로 스스로의 이념적 위치를 평가한 응답을 활용한다. 각 후보의 투표층별로 주관적 이념의 분포를 비교하여, 과연 이번 선거가 진보와 보수로 유권자가 양극화되어 당파적으로 정렬된 선거였는지 평가할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는 보수, 이재명과 이준석 후보는 공통적으로 중도보수를 각각 표방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각 후보 투표층의 이념 분포에 정당과 후보자들의 이러한 명목상 이념이 반영되었을까? 아니면 최근 이념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심각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실제 유권자의 이념 분포에 더욱 반영되었을까?
다음으로, 주관적 자기이념과 별개로 정책태도에서 나타나는 이념적 차이를 살펴본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진보-보수 이념의 주요 축을 이루었던 대북 안보 및 경제 정책 태도 문항들과, 최근 수년간 사회적으로 새로운 갈등 이슈로 부각된 소수자, 젠더, 기후위기 관련 정책 태도 문항들을 활용하여 다차원적 이념 균열을 탐색할 것이다. 고전적 검사기법이나 단일차원 IRT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본 연구는 복수의 잠재 차원을 동시에 추정해 문항 간 구조적 관계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MIRT를 적용한다. 이렇게 측정된 이념의 이차원 공간에서 후보별 투표층의 분포를 시각적으로 비교하여 이념에 따라 투표가 어떻게 갈렸는지 드러낼 것이다. 이는 유권자들이 선택한 후보에 따라 이념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졌다는 것뿐 아니라, 그동안 기존 연구가 상대적으로 간과하거나 저평가했던 탈물질주의적 가치들, 즉, 사회정의, 성평등, 환경과 같은 사회문화적 이슈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균열의 차원으로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통해 다른 변인들을 통제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이념이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통계적으로 검증할 것이다. 경제·안보와 사회문화의 각 이념 차원에서 유권자의 이념적 위치에 따라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 확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특히,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여 사표가 예상되는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이 왜 김문수나 이재명이 아니라 이준석에 투표했는지, 이들의 투표 선택을 가른 요인들은 무엇인지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Ⅳ. 분석결과
1. 진보-보수로 양극화된 대선?
<그림 1(a)-(d)>는 11점 척도로 측정된 주관적 이념 분포를 각 후보별 투표층으로 나누어 시각화한 결과이다. 이 결과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유권자들이 후보 선택에 따라 이념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먼저, 이재명 후보 투표층의 주관적 이념 분포는 0-4까지, 즉, 흔히 진보로 분류되는 값이 과반수인 55%가 집중된 반면, 6-10 (보수 성향) 구간 응답은 14.5%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념적 편향은 김문수 후보 투표층에서 그 반대 방향으로, 더 심화되어 재생된다. 김문수 투표층 중 0-4 구간의 비율은 5.4%에 불과한 반면, 6-10 구간이 전체의 72.8%를 차지하며 보수로 극심하게 편향된 분포를 나타낸다. 김문수 후보와 동일한 정당으로부터 파생된 개혁신당의 이준석 후보 투표층은 김문수 투표층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편향성이 두드러지게 완화된 양상을 보인다. 이준석 투표층은 0-4 구간이 14.6%, 6-10 구간이 44.9%를 차지했다. 유일하게 진보를 표방했던 권영국 후보 투표층은 0-4 구간이 55.6%, 6-10 구간이 5.6%로, 이재명 투표층보다 더 왼쪽으로 편향된 응답 패턴을 나타냈다.[2]
이러한 차이는 <그림 1(e)>에 나타난 각 후보 투표층의 중위값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위값이 이재명 4, 김문수 7, 이준석 5, 권영국 3.5로 유권자들이 후보 선택에 있어 이념에 따라 뚜렷하게 정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국회 의석의 대부분을 함께 차지하면서 교대로 대통령직을 차지해 온 두 주요 정당 후보의 지지층이 이념적으로 극명하게 양분되어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학계 내외에서 자주 제기된 ‘이념적 양극화 현상’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준석 투표층의 이념적 분포가 이재명과 김문수 투표층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이준석 투표층 중, 11점 척도의 정중앙인 5를 택한 비율이 40.4%로, 다른 후보 투표층보다 높게 나타난다. 이들은 스스로를 중도 또는 중도보수로 여긴다. 이준석 투표층은 중도에 집중되어 있으면서도(해당 표본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불구하고) 분포의 폭이 좁아, 내부의 이념적 동질성이 매우 강한 특성을 나타낸다.
<그림 1(a)-(e)> 후보별 투표층의 주관적 자기이념 분포: 진보(0)~보수(10) 단일 스펙트럼
한편, <그림 1(e)>에서 보이듯, 이준석 투표층과는 대조적으로 권영국 투표층은 주관적 자기이념 측면에서 내부적 이질성이 두드러진다. 이는 일차적으로 권영국 투표층의 표본 크기가 전체 표본 대비 지극히 작다는 점(18명)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18명).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권영국 투표층이 가지고 있는 이념적 특성이, 주관적 자기이념 척도가 전제하는 일차원적 구도로는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복합적인 성격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2. 중도의 이준석? 이재명-김문수 사이, 이준석 투표층의 자리
그렇다면 스스로를 중도에 가장 가깝게 규정하면서 내부의 이념적 동질성이 매우 높은 이준석 투표층을 이념적 중도라고 보아야 할까? 이준석 후보와 그 지지층은 과연 중도를 대표하며 나아가 이념적 양극화의 폐해를 해결할 만한 가능성을 가진 집단인가?
이준석 투표층의 성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전체 연령층과 39세 이하 청년층으로 구분하여 이준석 투표층의 이념 분포를 세밀히 살펴보았다. <그림 2(a)>를 통해 전체 연령층에서의 중위값은 5로 정중앙에 위치했지만, 39세 이하 청년층의 중위값은 6으로 나타나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전체 이준석 투표층 중 스스로를 극단적 보수(8-10 구간)로 규정한 응답자의 비율은 14.6%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39세 이하 청년층으로 한정하면 이 비율이 21.8%로 증가했다(<그림 2(b)>). 특히 이준석 투표층 내 극단적 보수 성향을 보이는 응답자의 대다수가 39세 이하 청년층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3] 다시 말해, 이준석 투표층의 중도성은 연령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특히 청년층 내에는 강경 보수적 성향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2 (a-b)> 이준석 투표층 내부의 주관적 자기이념 분포: 전연령대 vs. 39세 이하
물론 이러한 분석만으로 이준석 후보 지지층을 보수 또는 심지어 극우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다만, 세대별 개표 결과를 보면 이준석 후보가 청년층에서 유독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고, 특히 30대 이하 남성들이 이 후보의 핵심 지지층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준석 후보와 그의 지지층이 한국 정치에서 중도의 대안으로 기능할 가능성과 한계를 보다 신중하고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3. 정책태도 문항을 통해 본 후보 별 투표층의 이념
다음으로, 사회문화 분야와 경제안보 분야를 포괄하는 6개의 정책태도 문항들을 통해 후보별 투표층의 정책 태도를 비교해 보자. 이 문항들은 계엄, 연금개혁, 부동산 폭등 등, 시의적이고 단기적인 정책 이슈들과는 달리,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가치 지향이 담겨 있어 진보-보수의 이념으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 사회문화 정책 태도는 사회적 소수자(동성애자·외국인노동자·장애인)에 대한 권리보장(포용 및 사회정의), 기후위기 대응(환경), 여성 차별 해소(성평등)와 관련된 문항으로 측정하였고, 경제안보 분야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비 강화(대북 안보), 시장과 기업의 경쟁력 우선(시장주의), 불평등 수용(능력주의) 문항들로 구성되었다. 사회문화 분야 문항들의 경우,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을 산정하여, 각 문항별로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유권자들의 비율을 구했다.
<표 1>의 결과를 보면, 후보자 투표층 간의 정책적 성향에서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김문수와 이준석 지지층은 안보 및 경제 능력주의 이슈에서 강력한 보수적 성향을 공유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강경 대응과 능력에 따른 불평등 수용에 있어서 김문수 투표층은 각각 81.5%, 60.7%, 이준석 투표층은 각각 70.8%, 60.7%로 나타났다. 다만, 시장과 기업의 경쟁력을 노동권과 근로조건 개선보다 중요시하는 비율에서 김문수 투표층은 60.3%로 매우 높았던 반면, 이준석 투표층은 40.4%로 이재명 투표층(38.2%)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이 문항에서는 전통적인 경제적 보수 성향이 상대적으로 약함을 나타냈다.
<표 1> 6개 정책태도문항별 보수 응답의 비율: 후보 별 투표층 비교
그러나 이 두 후보 투표층은 사회문화적 이슈에서 미묘하지만 눈에 띄는 차이를 드러냈다. 소수자 권리 보호 정책에 대한 반대 비율은 김문수 지지자가 과반을 넘긴 52.4%로 나타났지만, 이준석 투표층은 43.8%로 그보다 약간 낮았다. 반면 여성 차별 해소 정책에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비율은 이준석 투표층(40.4%)이 김문수 투표층(18.8%)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서도, 보수 비율은 김문수 투표층(14.3%)에 비해 이준석 투표층이 25.8%로 1.8배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이재명과 권영국 투표층은 사회문화적 이슈에서 뚜렷한 진보적 가치를 공유했다. 이재명 투표층의 경우 소수자 권리(21.7%), 성평등(8.4%), 기후위기 대응(4.4%) 등에서 보수적 입장을 보이는 비율이 매우 낮아 전반적으로 강력한 진보적 성향을 나타냈다. 권영국 투표층의 경우, 개인 성과 기반의 능력주의 수용 항목에서 44.4%가 보수적 입장을 보여, 이재명 지지층(35.5%)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지만, 전반적으로 진보적 가치에 우호적이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안보 문항에서 이재명 투표층의 39.9%가 보수성향인데 비해 권영국 투표층은 16.7%로 가장 낮아, 전통적으로 강력한 이념 구성요인으로 꼽혀온 대북안보 이슈에서 두 후보 투표층 간의 입장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종합적으로 보면, 김문수와 이준석 투표층은 안보 및 경제 능력주의 분야에서 대체로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사회문화적 이슈에서는 보수성향의 정도와 방향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이재명과 권영국 투표층은 전반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면서도 시장주의, 대북안보, 기후위기 등의 이슈에서 각각 뚜렷한 개별적 특성을 드러냈다.
4. 사회문화-경제안보의 2차원 이념 구조
이념 성향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6개 정책태도 문항에 대해 차원의 수를 전제하지 않은 채 탐색적 다차원 문항반응이론(MIRT) 분석을 실시하였다. MIRT는 각 문항이 여러 잠재요인(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추정함으로써, 단일 차원 IRT보다 더 풍부한 이념 구조 정보를 제공한다(Hassan and Miller 2022).
분석 결과, 문항들은 ‘사회·환경·젠더’와 ‘안보·시장·능력주의’라는 두 가지 주요 차원을 중심으로 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2>). 2차원 등급반응모형(Graded Response Model)을 적용한 결과, 두 요인 간 상관계수는 0.112로 낮아 각 요인이 독립적으로 작동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 문항의 공통분산(communality)은 평균적으로 0.50 내외로, 두 잠재요인이 문항 변동의 절반 이상을 설명하고 있었고, 두 요인의 SS loadings도 1.5~1.6 수준으로 전체 분산을 균등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한계신뢰도는 F1(0.358), F2(0.363)로 다소 낮은 편이나 탐색적 분석 단계에서 허용되는 범위였다. 한편, 정책 이념 요인과 주관적 자기이념 간의 상관관계는 사회문화 이념(F1)과 r = 0.25(p < 0.01), 경제안보 이념(F2)과 r = 0.36(p < 0.01)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대북 안보 및 경제적 차원이 주관적 자기이념 인식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기존 문헌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표2> 6개 정책태도 문항의 2차원 등급반응모형 (GRM) 요인적재량 및 공통분산
MIRT를 활용해 사회문화 차원과 경제안보 차원별로 각 투표자의 위치(θ값)를 추정하였다. 이때 추정된 θ값의 분포는 이론적으로 평균 0, 표준편차 1의 정규분포에 근접하지만, 실제 표본의 특성과 문항 구성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그림 3(a)-(b)>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후보별 투표층을 색상으로 구분해 2차원 이념 공간에 시각화한 결과이다. 사회문화적 차원(F1, Y축)은 위로 갈수록 보수적이고, 경제안보 차원(F2, X축)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 성향이 강함을 나타낸다. 각 집단의 응답자들이 밀집된 영역은 커널 밀도 추정(kernel density estimation)으로 산출한 밀도 값이 상위 25%에 해당하는 고밀도 지점만을 이용해 볼록껍질(convex hull)로 표시하였다. 이는 몇몇 극단적인 데이터(이상치)의 영향을 줄이면서 데이터의 핵심 분포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먼저 전체 연령층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그림 3(a)>에서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투표층의 볼록껍질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넓게 분포해 명확히 구분되지만, 중간 영역에서는 두 집단이 상당히 중첩된다. 각 투표층별 x값, y값의 평균점(centroid)을 굵은 X자로 표시해 보면, 두 투표층의 센트로이드가 원점(0, 0)을 기준으로 1사분면과 3사분면에 거의 대칭적으로 위치한다. 즉, 두 후보 투표층은 사회문화 차원보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더 뚜렷한 이념적 차이를 보이지만, 사회문화 차원에서도 일정한 구분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그림 3(b)>에 나타난 권영국 투표층은 두 차원 모두에서 센트로이드가 음(-)의 값을 보여 일관된 진보 성향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다만 표본 규모가 매우 작아 분산이 커, 명확한 패턴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주목할 만한 집단은 이준석 투표층이다. <그림 3(b)>에서 이준석 투표층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분포가 좁고 중도에 집중적으로 위치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경제안보 이념 축으로는 이들을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으로 명확히 치우쳤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이준석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을 프랑스의 중도우파 정치인 마크롱,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한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좌우를 아우르는 대연정을 주장하며 때때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고 비판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빗대어 중도적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데이터상에서도 이준석 투표층은 경제안보 축에서 중도 또는 중도우파에 해당한다.
<그림 3(a)-(b)> 2차원 정책태도이념 분포: 각 후보 투표층별 비교 (전체 연령대)
반면, 이들의 사회문화적 이념 분포는 위아래로 훨씬 넓고, 특히 보수적 방향으로 뚜렷하게 편중되어 있다. 이준석 후보는 기존의 경제안보 중심 이념 구도로는 차별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문화적 차원—즉 포용, 개방성,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둘러싼 이슈—에서 보수적 유권자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며 새로운 정치적 균열을 성공적으로 동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념 축에서 넓은 지지 기반을 나누어 가지면서도, 동시에 중간 지대를 상당 부분 공동으로 점유하고 정책적으로 수렴하는 상황에서, 이준석 후보가 차별화된 지지층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보다 더 오른쪽으로 위치할 경우 극우라는 비판에 즉각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즉, 이준석 후보는 경제안보 차원에서는 중도적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동시에,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보수적 유권자를 결집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 2차원 이념 공간에서 분열된 청년층
2025년 대선 결과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제3 후보인 이준석 후보에 투표한 유권자 비율이 20-30대 청년층에서 유독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소위 ‘이대남’의 ‘보수화’, 나아가 ‘극우화’ 현상이라는 주장이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층의 이념 분포를 후보 투표층별로 비교할 때, 그 양상은 전체 유권자와 비교하여 어떻게 다를까? <그림 4(a)-(b)>는 39세 이하의 투표자만을 대상으로, 위와 동일한 2차원 이념 공간을 재구성한 결과이다.
이재명과 김문수 후보의 청년 투표층을 비교하면, 두 집단 간 분포가 중첩되는 정도가 전체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다. 이준석과 권영국 투표층의 경우, 상위 25% 밀집지역이 전혀 겹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집단의 센트로이드 간 거리 역시, 청년층에서 더 크게 벌어져, 이념적 분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 분열은 좌우(경제안보)보다는 사회문화적 차원, 즉 Y축 방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이준석 투표층은 이재명 투표층과는 밀집 지역이 완전히 분리되어 나타나는 반면, 김문수 투표층과는 중도에 가까운 영역에서 넓게 겹치는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사회문화 차원의 보수성이 이준석 투표층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편, 정의당은 노동자 중심 정체성이 약화됐다는 내부적 비판에 직면해왔는데, 대선 직전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변경하여 ‘노동’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후위기, 페미니즘, 차별금지법 등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인 이슈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실제로 39세 이하의 권영국 투표층은(해당되는 표본이 극소수임을 고려하더라도) 사회문화와 경제안보 차원 모두에서 진보적 성향을 보여,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정치적 균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음을 시사한다. 종합하면, 이러한 결과는 청년층에서 이념적 분화 및 이념에 따른 당파적 정렬에 있어 사회문화적 차원이 중요해졌음을 시사한다.
<그림 4(a)-(b)> 2차원 정책 태도 이념 분포: 후보 투표층별 비교 (39세 이하만)
6. 왜 이재명이나 김문수가 아니라, 이준석에 투표했는가?
투표자의 후보 선택 결정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이항 로지스틱 회귀분석(binary logistic regression)을 사용하였다. 다항 로지스틱 회귀분석(multinomial logistic regression)의 경우, 분석 대상인 세 후보의 투표자 수가 각각 이재명 705명, 김문수 496명, 이준석 89명으로 현저히 불균형하여, 특히 이준석 투표층의 비율(7%)이 매우 낮았다. 이러한 표본 불균형은 다항 로짓 모형에서 소수 범주(이준석)에 대한 회귀계수 추정의 불안정성 증가, p-값 왜곡, 그리고 과적합(overfitting)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이에 따라 분석의 안정성과 해석의 명료성을 높이기 위해, 본문에서는 이준석과 김문수, 그리고 이준석과 이재명 후보 간 각각의 이항 로지스틱 모형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각 후보 간 선택 결정 요인을 보다 안정적이고 명확하게 분석하고자 하였다.
먼저, 이념적으로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나타난 김문수와 이준석 투표층만을 대상으로 살펴보겠다. <표 3>의 이준석(=1) 대 김문수(=0) 분석에서, 후보 간 투표 선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변수는 비상계엄에 대한 인식(1=계엄선포는 정당하지 않음, 0=보통 또는 정당함)이었다. 계엄을 정당하지 않다고 평가한 유권자는 그렇지 않은 유권자에 비해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할 오즈가 약 4-6배 정도 높았다. 또한, 주관적 자기이념과 경제안보 차원 이념에서 덜 보수적일수록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주관적 자기 이념이나 경제안보 차원의 정책 태도 이념에서 덜 보수적일수록 김문수 후보보다는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확률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문화 차원에서는 보수적일수록 이준석 후보 투표 확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모형 3). 다른 요인들을 고정했을 때, 사회문화적 이념 위치가 0에서 1로 보수적 방향으로 이동하면, 이준석 후보 투표 오즈는 약 42% 증가하였다. 그 외에, 39세 이하 청년, 남성일수록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표 4>의 이준석 대 이재명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상계엄 인식이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상계엄을 정당하지 않다고 평가할수록 이재명 후보 선택 오즈가 이준석 후보에 비해 3-4배 높았다. 또한 주관적 자기이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및 경제안보 차원 모두에서 보수적 성향이 강할수록 이재명이 아니라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확률이 매우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특히 이 세 이념 중 가장 설명력이 강하게 나타난 것은 사회문화 차원 이념으로, 이 값이 0에서 1로 더 보수적 방향으로 이동하면 이준석 후보 투표 오즈가 2.5-2.7배 증가한다. 한편, 연령이 40대 이상이거나, 여성이거나 이준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몇 가지 흥미로운 발견들이 더 있다. 먼저, 주관적 계층인식에서 스스로를 상층 또는 중상층으로 인식할수록 이재명보다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변수는 이준석-김문수 비교에서는 유의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이준석 투표층은 적어도 이재명 투표층보다는 경제적으로 상층에 가까운 집단으로 볼 수 있다.
<표 3> 이준석 vs. 김문수 투표 선택 이항 로짓 회귀분석 결과
<표 4> 이준석 vs. 이재명 투표 선택 이항 로짓 회귀분석 결과
다음으로, 외적 정치 효능감이 높을수록 이준석이 아닌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이준석 지지층이 적극적 '행위자'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망자'에 가까울 가능성을 시사한다. 흥미롭게도, 언론과 일부 평론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준석 지지층—특히 청년 남성 유권자 그룹—의 정치 효능감이 급상승했다고 평가해 왔다. 예컨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선출을 계기로 청년층이 정치적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20대 대선에서는 밈(meme)이나 쇼츠(shorts) 등의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생산하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는 분석이 있다(고혜지 2022). 나아가 2025년 상반기 탄핵 국면에서는 "청년 우파들이 얻은 정치적 효능감과 자신감이 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이동수 2025). 그러나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이러한 평가와 달리, 적어도 외적 효능감이 높은 응답자들은 이준석보다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음을 보여준다.
지역적 맥락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균열인 영남–호남 축을 식별하기 위해, 기준 범주를 호남, 비교 범주를 영남과 기타(수도권·충청·강원·제주)로 더미화하여 거주 지역을 통제하였다. 분석 결과, 다른 요인을 모두 통제했을 때, 호남 거주자는 김문수보다 이준석을, 영남 거주자는 이재명보다 이준석을 선택하는 경향이 미약하게나마 확인되었다. 이는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가 여전히 강력한 한국 선거에서—비록 각 지역의 압도적 1위 후보에 비하면 매우 미약한 수준이긴 하지만—이준석 후보가 일부 유권자들에게 대안적 선택지로 고려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에는 사회문화적 차원 이념이 이준석 후보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살펴보겠다. <표 3-4>의 모형 3에 포함된 변수들을 다음과 같이 고정시킨 후 시뮬레이션하여 이준석 후보 선택 예측 확률을 계산했다. 연령은 39세 이하, 성별은 남성, 거주지역은 호남·영남을 제외한 기타 지역, 그리고 경제·안보 이념, 주관적 자기 이념, 내적·외적 정치 효능감, 주관적 계층인식, 4년제 대학 재학 이상 여부 등 나머지 변수는 모두 표본 전체의 평균값을 적용했다. 아울러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평가를 4–5점(부정적으로 인식)과 1–3점(중립 또는 정당한 조치)으로 구분하여, 두 집단별로 이준석 후보 선택 확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했다. 이처럼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통제함으로써, 순수하게 사회문화 이념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일 때 이준석 후보 선택 확률이 어떻게 변하는지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림 5 (a)>는 이준석 vs 김문수 경쟁 구도에서 사회문화적 이념 성향이 –2.5(매우 진보)에서 +2.5(매우 보수)로 이동할 때,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할 확률의 변화를 나타낸다. 비상계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모두, 사회문화 차원의 이념이 매우 보수일 때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확률이 매우 진보일 때보다 각각 약 39%, 18%만큼 상승한다. 특히 사회문화적 이념이 매우 보수(+2.5)이면서, 계엄을 비판적으로 보는 39세 이하 남성 (영호남 이외)의 경우,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확률이 약 60%에 달한다. 또 비상계엄에 대해 그리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보수적 사회문화 이념을 지녔다면 이준석 투표 확률은 최대 23%까지 높아진다.
<그림 5(b)>는 이준석 vs 이재명 구도에서 사회문화적 이념이 보수적일수록 이준석 후보 지지 확률이 더욱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이는 이재명과 이준석 사이에서 고민하는 유권자들이 투표 선택을 할 때 사회문화적 이념 성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회문화적으로 매우 진보적(-2.5)인 유권자는 비상계엄에 대한 인식과 상관없이 95% 이상의 확률로 이재명 후보를 선택한다. 그러나 이 차원의 이념이 매우 보수적(+2.5)이라면 이준석 후보를 선택할 확률이 84% (비상계엄을 중립 또는 정당하게 보는 경우)까지 치솟는다.
이 집단은 비상계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더라도 이재명보다는 이준석에게 투표할 확률이 약 61%로 나타난다. 다만 <그림 5 (a)>와 대조적으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중립적 입장이거나 정당한 조치로 보는 집단(기타)이 부정적으로 보는 집단에 비해 모든 이념 구간에 걸쳐 더 높은 이준석 투표 확률을 보인다. 매우 보수적인 사회문화 이념 성향을 가졌지만, 계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는 이준석 후보 선택 확률이 약 23% 정도 차이가 난다.
<그림 5 (a)-(b)> 사회문화 이념 점수 변화에 따른 이준석 후보 투표 확률 시뮬레이션(비상계엄에 대한 인식별 비교)
주목할 만한 점은, 사회문화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비상계엄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게 이준석 후보에게 등을 돌리고 이재명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정치 행태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탈물질적 가치, 포용, 개방성과 같은 사회문화적 이념이, 유권자의 투표 결정에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어떤 유권자들에게는 이 이념 성향이 최근 수개월간 한국 사회를 극렬하게 분열시켰던 특정 정치적 사건에 대한 평가조차 압도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사회문화적으로 뚜렷하게 진보적인 유권자들의 경우, 이준석 후보가 제시하는 정치적 메시지나 정책적 입장이 근본적으로 그들의 신념 체계와 충돌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비상계엄과 같은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견해와 무관하게 거의 자동적으로 그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최근 한국 정치 지형에서 등장한 새로운 이념 균열이 단순히 개별 정책이나 특정 정치 사건에 대한 태도를 넘어 보다 심층적인 가치관 및 세계관에 뿌리를 둔, 근본적이고 견고한 정치적 분할선을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Ⅴ. 결론
본 연구는 2025년 보궐대선에서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이 ‘이념’임을 확인하였다. 유권자들은 주관적 이념 척도 상에서 기성 양당 후보의 투표층이 각각 진보와 보수의 양극단으로 명확하게 나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한국 유권자의 투표 선택이 이념적으로 뚜렷하게 분화된 진영 경쟁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나아가 본 연구는, 이념을 측정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일차원 상의 주관적 이념 대신, 복수의 정책태도 문항을 활용하여 2025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이념 구조가 최소한 두 가지 차원으로 분리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보였다.
첫 번째 차원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핵심적인 이념 구성 요소로 자리잡은 대북 안보 및 시장주의와 능력주의를 포함하는 경제안보 차원이며, 두 번째 차원은 소수자 권리, 환경, 성평등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는 사회문화적 차원이다. 이재명과 김문수 후보 투표층은 경제안보 차원 상에서 상대방 진영과의 이념적 거리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동시에 이 축의 중간 지대를 중심으로 두 후보의 투표층 간 이념이 상당 부분 중첩되어 분포했다. 다시 말해, 기성 양당의 투표층은 이념적으로 대립적이지만 완전히 분리된 양극이 아니라, 중도 주변에서 상대 정당 유권자들과 정책 태도와 가치 지향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이들도 적잖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념적 양극화, 또는 이념의 당파적 정렬이 극심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 섞인 인식이 학계 내외에 있지만,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극단적인 소수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어 우리 사회에 메아리 치고 있을 가능성을 더 뒷받침한다.
이차원적 이념 공간에서 부각된 집단은, 이번 대선에서 제3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투표층이었다. 이들은 경제안보 차원에서는 대체로 보수 성향이지만 중도 가까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기존의 양대 정당 지지층과 상당 부분 겹쳤다. 경제안보 차원, 즉 일반적으로 한국의 좌-우 이념을 구성한다고 인식되는 차원에서 볼 때, 이준석 투표층은 세 정당 중 가장 중도에 가까운 유권자 집단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념 축인 사회문화 차원에서 이 집단은 상당히 강한 보수 성향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개방성, 포용,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반대하면서 보수적 정책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즉, 경제와 안보 같은 전통적 보수 이념에서는 중도의 가면을 쓴 채, 새롭게 형성되어 주요한 갈등 축으로 떠오른 사회문화적 이념 차원에서는 확고히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유권자 집단이 2025년 보궐 대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본 연구의 분석 결과 만으로는 이 집단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처음 한국 정치에 등장했는지 밝히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유권자의 이념 지형이 반공 이데올로기의 수용 대 거부나 자유시장 대 정부 개입과 같은 전통적인 균열에 기반한 대립을 넘어, 개개인의 가치와 경험에 따라 갈라지는 이념 차원이 새롭게 추가됨으로써 더욱 복합적인 이념 구조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새로운 이념 균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뚜렷한 분화를 경험하고 있는 유권자 집단은 다름 아닌 청년층이다. 기존의 진보–보수 균열이 주로 거대 담론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형성되었다면, 새로운 균열은 정체성, 개인의 가치관 및 라이프 스타일 등을 둘러싼 미시적 차원의 균열이다. 그렇기에 청년층은 한국 사회의 갈등을 일상에서 직접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 불공정과 같은 구체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로 체감할 수 있다. 현재의 청년들은 앞으로도 사회문화적 이념 차원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분화하며 정치화될 가능성이 높고, 지금의 경험은 향후 이들이 장년층이 되었을 때의 정치적 태도까지도 규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이념 균열이 더욱 첨예한 갈등과 사회적 긴장으로 확대되기 전에, 포용과 다원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규범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교육하고 정착시킬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특정 이념 집단의 제도적 대표성 문제를 넘어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에 관한 보다 근본적이고 전환적인 논의를 요구한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니며, 이에 따라 몇 가지 후속 연구 과제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2025년 보궐대선이라는 단일 시점에서의 데이터를 활용한 단면적 분석에 그쳤기에, 새로운 균열이 얼마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수적이다. 둘째, 본 연구에서 사용한 소수의 정책 태도 문항만으로는 유권자의 복합적 이념 구조를 완전하게 포착하기 어렵기에, 향후 연구에서는 이론적 검토에 기반하여 추가 문항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확장된 문항을 바탕으로 다차원 문항반응이론 모형을 적합하면 각 요인의 정보량을 강화함으로써 응답자의 위치 추정값인 θ값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으며 한계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본 연구는 선거 개표 직후의 횡단면 조사 데이터를 사용하므로, 주요 정치적 태도 변수(주관적 자기이념, 비상계엄 인식, 정책태도이념)의 값들이 투표선택 이후 사후적 합리화(post-hoc rationalization) 또는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변수와 투표선택 간 관계에 대한 인과적 관계가 밝혀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보다 엄밀한 인과적 추론을 위해서는 선거 전·후 패널 데이터나 무작위 실험 등의 대안적 설계가 필요하다. 넷째, 본 연구에서는 일부 청년층의 사회문화적 보수주의와 이들의 투표 선택 간의 관계를 밝혔지만, 이러한 태도가 어떤 경험과 조건에서 형성되는지는 향후 연구에서 미시적인 메커니즘을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결과가 한국적 맥락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사회문화적 균열이 나타나는 글로벌한 흐름의 일환인지,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호주 사례에서 Z세대 남성이 윗 세대 남성이나 또래 여성보다 전통적 성역할 신념을 더 강하게 고수한다는 보고나(Clarke 2025), 유럽 27개국에서 극우정당의 성과가 청년 남성의 지지에 크게 의존하며, 청년 세대 극우정당 지지의 성별 격차가 2020년 이후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Milosav et al. 2025)은, 청년 남성의 보수 성향 강화가 특정 국가에 한정된 예외가 아닐 가능성을 시사한다. 향후 동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수 사례 비교 연구와 함께 세계 가치관조사 데이터 등을 활용한 다국가 비교 연구를 수행하여, 한국 사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판별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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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개표 결과는 이재명 49.2%, 김문수 41.15%, 이준석 8.34%, 권영국 0.98%로, 설문조사 결과와 약간 차이가 있다.
[2] 다만 권영국 투표층의 표본 크기가 매우 작아 통계적 추정의 신뢰도가 낮으므로, 해당 결과는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3] 이준석 투표층의 전체 연령대에서 주관적 이념 8-10 구간에 위치하는 이들은 총 14명이다. 그런데 이들 중 13명이 39세 이하이다. 물론 여기에는 표본 크기의 부족 문제(표본에서 이준석 투표자 수 89명)를 고려하여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하다.
■ 저자: 구세진 _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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