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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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⑤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중국의 구상과 전략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시리즈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전재성,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논평 읽기]② 김강석, 안소연,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 [논평 읽기]③ 김양규,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 [논평 읽기]④ 이승주,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 [논평 읽기]⑤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중국의 구상과 전략  I. 서론 미국–이란 전쟁은 미국의 기대와 달리 장기화되면서 중동 지역의 군사적 충돌을 넘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동맹 체제, 세계 에너지 공급망 및 핵 비확산 체제에 복합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시진핑 정부도 이 전쟁을 단순한 지역분쟁이 아니라 미국 패권의 작동 방식과 한계를 드러내면서 전환기 국제질서에 중대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 하반기 이후 미국 패권의 쇠퇴를 언급하는 한편, 미국을 향해 대등한 위치에서 실용적 차원의 거래와 협상을 통해 안정적인 공존 관계 구축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연히 터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어진 호루무즈 해협의 봉쇄는 중국에게도 분명 예상치 못한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전쟁 초기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에너지와 물류 공급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에 치중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내세우며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역설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질서와 미중관계에 예상치 못한 파장을 초래하고 이에 따라 중국도 매우 복잡한 전략적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글은 첫째, 미국–이란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평가를 정리하고, 둘째, 전쟁 이후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중국의 기대와 예상을 분석하며, 셋째, 이를 토대로 중국이 모색하려는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한 외교 구상과 전략의 특징과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미국–이란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평가  1. 미국의 이란 전쟁 실패, 구조적 원인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과 테러리즘 지원을 주요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를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주장을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기보다 군사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전쟁을 통해 이란의 군사적 능력을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이란 정권의 변화를 통해 중동 질서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고자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이란 공습이 이란의 강력한 저항과 전쟁 장기화 대비, 유럽 및 중동의 동맹국과의 사전 협의, 그리고 정치, 군사적 출구전략을 결여한 이른바 ’3무(三無)’의 무모한 행동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廖百智 唐志超 陈文鑫 陆如泉 陈庆鸿. 2026). 이러한 평가는 왕이 외교부장이 2026년 3월 양회(兩會) 기자회견에서 미국-이란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전쟁’ 이라는 언급과도 맥을 같이 한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6). 요컨대 미국은 이란의 저항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자국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짧고 강력한 군사행동으로 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교체를 달성하는 이른바 ’베네수엘라 모델’을 이란에 적용하려 했지만 오히려 장기소모전에 매몰되었다. 그 결과 국제정세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은 고조되고 국제질서에도 큰 혼돈과 충격을 주고 있다고 중국은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준비 부족과 오판이 단순히 전술적 차원이 실패가 아니고 미국 패권의 작동 방식과 한계를 드러낸 구조적 원인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그동안 미국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은 채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여 비판해왔던 일방주의, 보호주의, 패권주의 행태가 결국 이러한 실패한 전쟁을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오히려 미국의 국제적 신뢰와 동맹 네트워크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노출시켰고 미국 주도의 단극 질서가 약화되면서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국제질서의 다극화가 촉진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기다렸다는 듯 6월에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구축: 중국의 이념·제안·행동」 이라는 제하의 이른바 글로벌 거버넌스 백서를 발간했다(The State Council Information Office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6). 백서에서는 현재 국제사회의 위기가 일방주의, 보호주의, 패권주의 및 배타적 소그룹 정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백서는 강대국이 힘을 앞세워 약소국을 압박하고 주권국가에 무력을 사용하며 자국 우선주의와 이중 잣대로 국제적 정의를 훼손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경제,무역 문제의 정치화,도구화,무기화, 일방 제재와 역외 관할권의 남용을 세계적 혼란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록 미국을 직접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은 사실상 미국의 이란 공격과 전쟁 실패라는 국면을 놓치지 않고 미국 패권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패권 쇠퇴에 대한 희망적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2. 미국 패권의 신뢰와 동맹 네트워크의 약화  중국은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로 미국 패권의 물질적 손실보다 신뢰성의 훼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패권에 대한 신뢰 상실과 동맹 결속 약화라는 결정적 손실을 입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영국,프랑스,독일은 군사공격과 호위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미국 무기 수송기의 영공 통과를 거부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미국이 자국 기지를 이란 공격에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미국은 국제적 신뢰와 동맹 동원력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인도·태평양에 배치된 군사력을 중동으로 전환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하려던 세계 전략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특히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존해 왔음에도 전쟁 과정에서 오히려 이란의 우선 공격 목표가 되었다. 걸프 국가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군사,경제, 인도주의적 차원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자국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칠 군사행동에 관해 미국이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만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도 공격 목표와 최종 목적을 둘러싼 이견이 확대되면서 전쟁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극심한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은 결국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가 안보 우산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동맹체제의 역기능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아울러 이번에는 정밀타격, 무인기 및 인공지능 기반 전쟁이 전개되면서 동맹의 연루와 확전 위험은 더 증대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 군사동맹을 통해 절대적 안전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걸프 국가를 비롯한 미국의 동맹,우호국이 자체 방위력을 강화하고 대외관계를 다변화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전쟁 실패로 인해 미국 패권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하지는 않겠지만 미국 안보 공약의 신뢰성과 동맹 관리 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 패권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음을 이번 전쟁을 계기로 확인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국가에서 국제질서를 전복하고 위험을 생산하는 국가로 변하고 있고,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국제공공재를 제공하는 질서의 수호국이 아니라 에너지,공급망,식량,과학기술,사이버 영역에서 새로운 위험을 창출하고, 그 비용을 동맹국과 국제사회에 전가하는 약탈적 패권국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중국 학계에서는 세계질서와 평화를 보장한다는 패권안정론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설득력이 약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전쟁으로 한층 훼손된 패권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현재보다 더 큰 규모의 군사,경제,외교적 비용을 투입하여 패권을 재건하거나,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패권적 역할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은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 광범위한 동맹 네트워크, 금융·기술·제도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장기간에 걸친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의 상대적 약화와 다극 국제질서의 점진적 진전에 방점을 두고 대응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III. 중국 국제질서 구상과 전략의 특징  1.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담론 주도권 강화  중국은 미국-이란 전쟁에서의 미국의 실패를 중국의 글로벌 규범과 담론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기회로 포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한 패권정치와 군사동맹 중심 질서가 쇠퇴하고, 자신이 제안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서에 제시된 중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은 주권평등, 국제법 준수, 다자주의, 인간 중심, 실효성 중시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핵심으로 내세우면서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자국 이익을 우선하고 일방주의를 강행하는 무모한 패권국으로 묘사하는 반면에, 자신은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고 다자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로 대비시키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와 유엔 중심의 다자 체제를 유지하고, 평화와 발전 및 국제질서 수호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임을 적극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양자관계에서는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제안하여 직접적인 세력 충돌을 지연 또는 우회하면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식 국제질서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외교 담론과 비전을 공세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2. 미국 동맹 네트워크의 균열 도모  중국은 오랫동안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를 자국의 부상을 제약하는 핵심 구조로 인식해 왔다. 중국은 미국과 비교하면 동맹 및 긴밀한 우호국이 제한적이고, 미국이 동맹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전개하는 군사·기술·경제적 견제에 대응할 수단이 많지 않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불신과 간극은 중국에게는 결코 놓칠수 없는중요한 전략적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결속이 약화될 경우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같은 핵심 안보 영역뿐 아니라 첨단기술, 경제통상 및 글로벌 거버넌스 영역에서도 대중 견제가 완화되고 중국의 전략적 공간이 확대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중국이 다극화와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도 규범적 차원의 대안 제시 의미도 있지만, 미국 중심 동맹 구조의 응집력을 약화하고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을 직접 겨냥하여 대립,과 경쟁을 고조하기 보다는 유럽, 아세안, 글로벌 사우스, 다자 제도에 외교력을 집중시켜서 이른바 ‘중국이 주도하는 다극 질서’ 를 구축하기위해 전방위의 광폭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 12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시작으로 2026년 연초에 연이어서 미국의 전통 동맹과 우방국인 한국, 아일랜드, 캐나다, 핀란드, 영국, 우루과이, 독일 등 정상을 초청하여 연쇄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트럼프 행정부 일방주의의 반사이익을 기민하고 적극적으로 추수해 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다극 질서를 진전시키기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도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실질적 연대도 강화해 가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중재 방식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최초의 정부 간 국제기구인 국제중재원(国际调解院)을 2025년 5월 30일 공식 출범했고, 8월 29일 설립 협약이 발효됐다. 국제중재원은 중국 주도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글로벌사우스' 국가 간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거버넌스 사각지대인 인공지능(AI), 디지털 경제, 녹색 저탄소 발전 등 미래 첨단 산업 영역에서의 산업 표준과 규범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AI협력기구(世界人工智能合作组织)’ 설립도 제안했다. 중국은 이러한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회피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미국을 견제하고 대응해가는 효율적인 선택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  3. 에너지 안보와 물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해양력 확대 모색  호르무즈해협의 봉쇄와 운송 중단, 에너지 가격 상승 및 글로벌 경기 침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에도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중국은 석탄을 기초 에너지이자 최종 안전망으로 보유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석유·가스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전쟁 초기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장기적으로 원유 수입선의 다변화, 주요 해상 요충지와 물류 이동의 안정적 확보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육상 에너지 수송망 확충과 해상교통로 보호 역량을 병행하여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태양광, 풍력,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의 산업 경쟁력을 활용하여 전쟁 이후 가속될 에너지 전환의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다.  3월 16일 공산당 이론지 『구시(求是)』에서 “중국 특색의 해양 강국의 길을 걸어야 할 것”(《求是》杂志编辑部. 2026) ,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연결 국가들과 협력 메커니즘을 완비해야 할 것” (习近平. 2026) 등 2025년 7월 중앙 재경위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해양 관련 발언문을 미국-이란 전쟁 발발이후 다시 게재하였다. 시진핑은 집권 초기인 2012년 ‘해양강국’을 중요한 국정 의제로 제시했지만 그 이후 해양에서의 미국의 견제와 갈등이 고조되면서 공개적 언급이 줄어들었는데 최근 미국-이란 전쟁중에 다시 이 의제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최근 항공모함 등 해군력이 빠르게 신장하고 있어 그동안 지부티와 아덴만에 제한적 순환 배치에 그쳤던 해외 항만 시설의 군사력 투사를 더 적극화 할 가능성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중국이 해양 제해권을 강화하려는 일련의 조치가 진행되고 이것이 해양에서의 군사력 경쟁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  IⅤ. 중국 국제질서 구상과 전략의 한계  1. 중국의 중동 외교와 중재 역량의 한계  중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개혁을 주창하는 등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지만 정작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에 일대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할과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노출되었다. 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평화와 협상을 촉구하는 규범적 외교 수사를 발신하는 외에는 실질적인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서 지속적으로 즉각적 군사행동 중단, 대화·협상 복귀, 일방주의 행위 반대, 전쟁 확산 방지라는 4대 원칙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실질적 중재자로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중국은 기대를 모았던 중재 역할에 나서기 보다는 분쟁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사실상 관망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러우 전쟁에서도 유럽을 의식하여 러시아와의 실질적 군사 협력은 최소화해던 것처럼, 미국 및 중동의 친미 걸프 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중동지역의 전통 우방인 이란에 대한 군사 지원도 조심스럽게 우회적으로 진행하였다.  중국은 기존에 중국이 일관되게 역설해왔던 유엔 정신, 내정불간섭, 그리고 주권 및 영토 존중이라는 원론적 대의명분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이란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이스라엘의 유엔 안보리 승인 없는 이란 군사 공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을 지적하고, 동시에 무고한 민간인과 비군사 목표를 무차별 공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규탄했다. 그리고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란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데 대해서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헌법에 따른 결정이라며 외부세력의 내정간섭 반대와 이란의 주권·안전·영토 완전성 존중을 강조하였다.  중국은 최근 베네수엘라, 이란 전쟁 등으로 미국과의 마찰 요인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미국을 향한 직접적인 공세도 최소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기술 통제, 대만문제 등 난제들을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쟁 문제로 미국을 자극하고 갈등 전선을 확대하지 않고자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책임강국’ 이기 보다는 자국의 국익 수호에 집중하는 강대국이라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중국은 외교전략에서 여전히 관계의 균형, 대외 위험관리, 해외시장 확충을 우선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어 전면적인 질서 주도국의 외교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 규범과 담론 중심의 국제질서 주도의 한계  중국은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에 관한 주장과 담론을 적극적으로 발신하고 있지만, 실제 대안적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구체적인 행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 제시하고 있는 규범과 외교 담론 역시 그 이면에는 중국 체제 안전과 부상에 적합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예컨대 중국이 외교 무대에서 일관되게 강조해 오고 있는 대표적인 글로벌 규범이자 비전인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의 다극화와 개방적, 포용적, 포괄적인 경제 세계화’는 사실상 미국의 견제와 압박을 우회하거나 돌파하면서 대외 경제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국제분쟁의 해결, 항행 안전의 보장, 에너지 시장 안정 및 대규모 인도주의 지원처럼 질서 주도국이 제공해야 할 국제공공재 영역에서 중국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6월에 발표한 백서에서는 중국이 책임강국으로서 국제 공공재 제공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의식한 듯 중국이 제공하는 공공재들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이 제시한 국제 공공재는 AI, 사이버, 해양, 극지, 우주, 기후변화 등 사실상 중국의 미래 국가 경쟁력 강화와 주도권 선점에 중요한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서 국제사회에서 온전하게 공공재 제공 사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차별적 규범을 제시하는 것 만으로는 중국식 국제질서의 정당성이 확보되기는 어렵다. 중국이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책임 있는’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국제사회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원칙과 규범의 제시를 넘어 실제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제도적 투명성, 비용 부담 및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중국은 아직 미국의 쇠퇴에서 전략적 이익을 챙기려 하면서도 그 공백을 메우는 데 필요한 비용 부담은 최소화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3. 미국 패권 역량의 상존과 패권 경쟁에 대한 경계  중국의 글로벌 구상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쇠퇴를 전제로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적 군사 투사력, 동맹 네트워크, 달러 중심 금융체제, 첨단기술 생태계 및 국제 제도에 대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비록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첨단 기술, 군사력 등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발전을 통제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패권의 약화라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략적 자원을 세계적 확장에서 패권 유지에 필수적인 핵심 영역에 집중하고, 주요 전략 경쟁국에 대한 ‘표적 봉쇄’을 시행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특정 전쟁 실패가 곧바로 중국 중심 질서의 성립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패권 비용을 높이고 동맹의 결속을 약화하며, 다극화 담론을 확산하는 가운데 자국의 경제·기술·외교적 역량을 축적하고자 한다. 중국의 이러한 장기 전략은 신중하고 현실적이지만, 국제사회의 신뢰와 제도적 지도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일부 지역과 분야에 한정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4. 국내적 제약과 선택적 관여  중국의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 대외적 역할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 현재 시진핑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성장 둔화, 청년 고용 불안, 내수 부진 및 부채 증가는 대외정책 자원의 지속적 투입을 어렵게 한다. 시진핑 정부는 내부적으로 경제 구조개혁과 활성화, 그리고 기술 자강에 집중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와의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무역 및 기술 통제를 돌파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2027년 21차 당대회를 통해 4연임을 강행하는 중대한 정치 과제를 안고 있다. 현 상황에서 시진핑의 4연임 강행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기왕이면 경제회복과 발전을 실현하여 큰 지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연임을 이루어 내어 장기집권의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요컨대 2026년 착수하는 15.5 규획의 안정적 출범과 성패는 시진핑 체제의 4연임과 안정화 가도와 연계되어 있는 만큼 국내 경제 회복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 전선을 무리하게 확대하기보다 자국의 안전과 발전에 직접 연결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관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선택적 관여는 단기적으로 비용과 위험을 줄이는 합리적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주장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를 확대할 수 있다. 특히 중동에서 모든 주요 행위자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결정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은 외교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중국의 안보 공약과 중재 능력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V. 결론  미국–이란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쟁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가 초래한 부당한 군사행동이며, 미국의 중동 질서 재편 시도는 결과적으로 오판과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다. 둘째, 전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미국 패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동맹 네트워크가 약화된 현실을 노출시키고 더 가속화시켰다. 이로 인해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각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촉진할 것으로 희망적 전망을 하고 있다. 셋째, 이러한 변화는 중국에 외교적 공간을 제공하지만, 중국은 직면한 국내외 제약으로 인해 패권 비용을 전면적으로 부담하기보다 저비용의 담론 경쟁과 선택적 관여를 통해 기회를 활용하려 한다.  중국이 미국 패권의 쇠퇴를 포착하고 있지만 곧바로 자국 주도의 국제질서 구축 기회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미국 패권의 취약성과 약화를 강도높게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 스스로 내재하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다극화, 유엔 중심주의와 국제법 준수 및 주권 평등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차별화된 책임 있는 강대국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지만, 분쟁 중재와 국제 공공재 제공, 안보 비용 부담에는 여전히 신중하다. 이는 국내 정치 경제의 취약성, 미국의 패권 역량, 본격적인 패권경쟁으로의 조기 진입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중국의 전략은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창출하는 공간을 저비용 외교와 담론 경쟁으로 활용하면서도, 에너지 안보·공급망 안정·대만 문제 등 핵심 사안에서는 위험을 관리하는 점진주의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의 장기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내적 역량 강화. 즉 체제 안전과 국내 발전에 우선 집중하고자 한다. 향후 중국이 실제 국제질서 주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지는 미국의 추가적 쇠퇴 여부 뿐 아니라, 중국이 국제공공재를 제공하고 위기를 중재하며 자국의 규범적 주장을 일관된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  참고문헌  《求是》杂志编辑部. 2026. “走有中国特色向海图强之路.” 『求是』 第6期 (03-15)  习近平. 2026. “推动海洋经济高质量发展.” 『求是』 第6期 (03-15)  廖百智 唐志超 陈文鑫 陆如泉 陈庆鸿. 2026. “美以伊战争:中东地缘博弈与全球冲击.” 『现代国际关系』 第4期 (4月20日)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6. “王毅谈伊朗局势:停火止战,还中东和世界以和平.” 03-08 https://www.mfa.gov.cn/wjbzhd/202603/t20260308_11870443.shtml  The State Council Information Office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6. More Just and Equitable Global Governance: China’s Principles, Proposals and Actions. June.  ■ 이동률_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email protected] 

이동률 2026-07-15조회 : 380
논평이슈브리핑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④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시리즈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전재성,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논평 읽기]② 김강석, 안소연,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 [논평 읽기]③ 김양규,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 [논평 읽기]④ 이승주,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⑤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중국의 구상과 전략 [논평 읽기] 첨단 전쟁 vs. 가성비 전쟁  이란 전쟁은 21세기 첨단 전쟁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미국은 전쟁 초기 첨단 무기를 총동원하여 이란의 방공망과 해군 전력을 무력화하는 데 집중했다. 초기 군사적 목적을 달성한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였다. 미국은 경제적 타격이 누구보다 이란 스스로에 더 클 것이기 때문에, 봉쇄가 오히려 이란 지도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미국의 전방위적 공세에 이란이 맞대응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란은 생각보다 더 강한 내구력을 보였다. 경제력 면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이란은 대규모 공습이 아닌, 미국의 핵심 전략 자산을 타격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란의 대안은 미군의 고가 전략 자산을 선택적으로 타격하는 비대칭적 전략이었다. 이란은 전쟁 개시 이후 약 40일 동안 약 6,400발의 미사일과 드론을 사용하였다. 대부분 요격되었으나, 일부가 방공망을 뚫고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Qatar)에 위치한 고가의 레이더 시설을 타격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하여 비대칭적 전력의 위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 셈이다.  이란의 전략은 탁월한 가성비를 보였다. 미국은 이란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무기 재고의 상당 규모를 소진하였다. 무기별 소진율은 JASSM 25%, 토마호크(Tomahawk) 32%, 패트리어트 61%에 달한다. 이 무기들의 대당 가격은 260만 달러에서 390만 달러에 달한다. 반면, 이 공격에 동원된 이란의 드론 가격이 대당 2~5만 달러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2026년 1분기에만 총 450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군사판매(Foreign Military Sale: FMS)를 승인하였다. 이란의 공격에 무기 재고를 소진한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미국으로부터 패트리어트(Patriot) PAC-3를 포함해 9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 승인을 미국에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비대칭 전략의 성과이다.  유리 전장  이란 전쟁에서 새롭게 주목할 점은 정보, 감시, 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 ISR)이 군사 작전에 긴밀하게 통합되었다는 점이다. 이란 전쟁은 세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첫째, ISR이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정보 수집, 핵 시설에 대한 B-2 공습, 방공망 무력화, 해상 봉쇄 등 미국의 거의 모든 작전에 ISR이 동원되었다. 2026년 2월 28일 기준 통합된 상업용 위성 군은 이란의 핵 및 국방 인프라에 대한 재촬영 주기를 시간 단위로 단축시켰다. 이는 과거 그 어떤 작전과 비교해도 분쟁의 진행 속도와 영상 확보 가능성 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미국은 작전 개시 96시간 이내 GPS 교란, 전자전 대응 조치, 상업용 위성 영상 수집 확대 등 우주 공간을 활용한 작전을 다양하게 실행에 옮겼다.  21세기 전쟁은 더 이상 탄약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하던 융단 폭격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직접 교전 이전에 상대국 주요 군사 시설에 대한 고해상도, 고속 촬영 이미지의 수집에서 시작된다. 수집된 데이터를 AI를 통해 심층 분석하여 타격의 우선순위를 신속하게 결정하고, 정밀 타격을 가하는 것이 21세기 첨단 전쟁의 요체이다. 어쩌면 상대국에 대한 ISR능력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쟁의 판도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첨단 전쟁이 ‘유리 전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ISR기반의 첨단 전쟁은 불가역적 변화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ISR의 민주화와 상업화  둘째, 우주 기반의 ‘ISR의 민주화’ 가 현실이 되었다. 우주 자산을 활용한 ISR능력은 더 이상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전장에서 확인되었다. 이란,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보여주었듯이, ISR능력은 초강대국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 되었다. ISR능력은 재래식 군비는 물론, 첨단 군사 능력의 열세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셋째, ISR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상업용 위성과 서비스 업체의 향상된 기술을 적극 활용한 결과이다. 우주 공간은 군사화와 상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공간이다. 미국 스페이스 X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미국은 우주 산업에서 선두를 지키고, 이를 우주 군사 역량으로 빠르게 전환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ISR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위성 서비스 업체들이 고해상도의 고속 촬영 능력을 무기로 상업용 원격 탐사라는 틈새 시장을 주로 공략하던 과거의 사업 전략에서 벗어나, 전쟁 당사자들에게 ISR에 기반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란 전쟁의 이면: 중국의 ISR 지원  ISR의 민주화는 반드시 이란의 직접적인 접근성 확대만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란의 비대칭적 공격의 이면에는 중국의 지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 관련 정보, 특히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과 F-16 전투기 등 미국의 첨단 무기 역량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에게 있어 미국-이란 전쟁은 미국의 첨단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정보를 직접 취득, 더 나아가 테스트할 수 있는 장이었다. 특히, 이 전쟁은 미사일 및 드론에 대한 미국의 탐지–추적–요격 능력에 대한 실전 전장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중국이 이란과 협력에 적극성을 보인 또 하나의 이유이다. 중국에서 제공받은 위성 영상과 지리 공간 정보를 토대로 이란은 미국의 핵심 전력을 비교적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타격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도 활용되었다. 이러한 정보는 전력의 절대적 열세에 놓은 이란에게는 전쟁을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중국 위성 이미지 업체 미자르비전(MizarVision)이 전쟁 개시 전 미국의 군사 배치를 분석한 이미지를 이란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트로피 테크놀로지(Meentropy Technology)로 알려졌던 이 기업은 오픈 소스 정보(open source intelligence: OSINT) 스타트업이다. 민트로피 테크놀로지는 상업용 위성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미군의 이동에 대한 관측 정보를 이란에 제공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5월 민트로피 테크놀로지(Meentropy Technology), 어스 아이(Earth Eye), 창광위성 등 중국 위성 기업 세 곳에 제재를 부과하였다.  미국 정부의 제재가 예상된 조치였던 반면, 가급적 확전을 자제했던 중국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제재가 발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026년 6월 창광위성이 미국의 첨단산업의 상징인 엔비디아(Nvidia)와 애플(Apple) 본사의 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이 사진은 엔비디아와 애플의 전경은 물론, 공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고해상도 이미지였다. 창광위성이 인민해방군과 연계되어 있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에 순수한 민간 기업인지 여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지린 1호 자체는 상업용 원격 탐사 위성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민간 위성업체의 상업용 위성을 동원해 상대국의 주요 시설에 대한 정찰 능력을 과시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의 위성 정보가 군사적으로 활용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11월 중국 기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용병 바그너(Wagner)와 위성 이미지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후티 민병대에도 위성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미노 테크놀로지가 2024년 소유권을 러시아에 넘긴 위성이 우크라이나를 정찰하는 데 활용되자, 영국은 2026년 2월 우크라이나의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미노 테크놀로지를 제재하였다. 이처럼 위성 정찰을 통한 간접적 군사 협력이 최근 수 년간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중국이 ‘우주 용병’이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ISR 혁신  ISR 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다. 상업용 지리 공간 정보(Geospatial Intelligence: GEOINT) 시장을 주도하는 막사 테크놀로지(Maxar Technologies)와 플래닛 랩스(Planet Labs) 같은 미국 업체들을 미국 정부가 전장을 관찰하는 데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막사 테크놀로지와 플래닛 랩스는 ISR을 군사 작전에 통합하는 데 있어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막사 테크놀로지가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 기초 데이터로 활용되는 GEOINT의 90%를 제공하는 반면, 수백 개의 소형 위성을 운용하는 플래닛 랩스는 지구 전 지역을 매일 촬영한다. 미국 정부는 막사 테크놀로지의 고해상도 데이터와 플래닛 랩스의 전지구 관측 데이터를 결합하여 군사 장비의 식별, 타격 피해 분석, 군대의 이동 추적 등 군사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전에 이미, 막사 테크놀로지의 ISR 데이터를 통해 러시아가 군사력을 증가하고 있다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군산 복합체 2.0의 등장: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  ISR 혁신은 AI의 군사적 통합으로 더욱 빛을 발하였다. 2021년 5월 이스라엘이 AI를 활용하여 표적 식별과 무기 시스템의 운용을 군사 작전에 통합하면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세계 최초의 ‘AI 전쟁’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AI 기술을 군사 작전에 통합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자국의 AI 스타트업은 물론,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미국의 빅테크(big techs) 등 민간 기업과 협력을 추구한 노력의 결과였다.  이란 전쟁은 휴민트(HUMINT), ISR, AI를 결합한 정보 융합이 전쟁을 지배하는 요소로 등장하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이 가공할 군사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팔란티어(Palantir)와 같은 신흥 테크의 역량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결과이다. 팔란티어는 자신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은 위성과 드론 등에서 수집된 대규모의 전장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을 통합함으로써 표적 목록 작성에서 타격 우선순위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의사 결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하였다. 그 결과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란 내 1,000개의 표적을 타격하는 데 24시간이면 충분했다.  팔란티어, 스페이스 X (Space X) , 안두릴(Anduril) 등 네오 프라임(neo primes)은 군산 복합체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란의 가성비 전쟁의 효과를 톡톡히 경험한 트럼프 행정부는 빅 프라임(big primes) 중심의 전통적인 군산 복합체의 재편에 박차를 가하였다. 빅 프라임은 소진된 재고를 확충하는 데 급급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사기에 이르렀다. 이 틈을 파고 든 것이 네오 프라임이다.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로 상징되는 새로운 방산 패러다임을 기치로 내세우고, 무기 개발에 혁신적인 방식을 적극 도입하였다. 그 핵심은 상업용 기술을 수정하여 군사용 기술로 신속하게 전환하는 데 있었다. 군산 복합체 2.0의 등장이다.  한국의 대응  (1) 새로운 방산 패러다임으로 전환  첨단 전쟁의 양상을 목격한 국가들이 첨단기술의 군사적 통합을 위한 경쟁에 속속 나서고 있다. 이는 전쟁을 경험한 중동 국가들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던 사이이드 알리 하메네이조차 “AI를 정복해야 한다”고 촉구하였을 정도로 첨단기술의 군사적 통합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UAE가 국영 방산 기업인 엣지(EDGE)를 통해 이스라엘의 AI 드론 탐지 기업인 써드아이 시스템스(Thirdeye Systems)의 지분 30%를 인수하고, 미국 안두릴과 합작 투자를 통해 AI 기능이 강화된 드론을 공동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드론의 강자인 터키 또한 STM과 바이카르 디펜스(Baykar Defense)를 중심으로 AI 영상 처리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드론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첨단기술의 통합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된 만큼, 한국은 새로운 방산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전통적인 방산의 토착 혁신 역량을 제고하는 가운데, 선도적인 네오 프라임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이원적 전략이다.  (2) ISR의 군사화와 상업화에 대비  상업용의 장점이자 단점은 공유와 접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간 업체가 제공한 위성 이미지는 정보원과 수집 방식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정부 내는 물론, 동맹 및 파트너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동맹국들과 군사 협력, 더 나아가 합동 작전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민간 기업이 유료 서비스 방식으로 제공하는 ISR은 무제한적으로 접근 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은 위성 이미지와 분석을 제고하는 플랫폼이다. 밴퍼(Vantor), 플래닛 랩스, 새틀로직(Satellogic), 움브라(Umbra), 아이시아이(ICEYE) 등 50개 이상의 위성 서비스 업체들이 참여하는 스카이파이(SkyFi)가 대표적이다. 스카이파이는 자체 위성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위성 서비스 업체들의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한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 서비스의 이용자들이 필요에 따라 다양한 업체들의 이미지와 분석을 결합하여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위성 이미지 서비스의 편의성을 대폭 제고하는 동시에,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데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다. 이란과 같은 적대적인 국가 또는 비정부기구가 이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주의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군사 분야의 ISR의 군사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새로운 현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3) 국가와 민간의 새로운 경계 설정  ISR의 군사적 활용이 급증하는 것은 사실이나,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있다. 민간 업체의 이미지가 그 자체로 군사용 정보는 아니다. 위성 이미지가 군사적 가치를 가지려면, GEOINT를 토대한 분석과 군사 기밀로 분류된 정보를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존의 분절적 거버넌스가 새로운 유형의 정보 수집, 분석, 활용을 저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우선, 상업용 서비스의 군사적 도입 자체에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민간 업체가 제공하는 위성 정보를 적극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대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질적인 이행 방안을 수립하는 데 지체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업용 기술 또는 서비스의 활용이 확대될수록, 공공과 민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위에서 언급한 막사가 미군에 GEOINT의 90%를 제공한다는 점은 정부와 기업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ISR에 동원되는 막사의 시설과 장비를 사실상 국가의 핵심 인프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간의 상업용 기술과 서비스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경계를 탄력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  ■ 이승주_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email protected] 

이승주 2026-07-08조회 : 644
논평이슈브리핑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③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시리즈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전재성,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논평 읽기]② 김강석, 안소연,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 [논평 읽기]③ 김양규,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④ 이승주,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 [논평 읽기]⑤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중국의 구상과 전략 [논평 읽기] ※ 본 보고서는 공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1. 2026년 대격변: 이란 전쟁의 충격  “탈냉전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post-Cold War era is definitively over)”(Whitehouse 2022)는 선언이 나올 만큼 충격적이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 이후 4년 만에 국제질서는 다시 한 번 중대 기로에 섰다. 2026년 1월 3일 카리브해에서 벌어진 마두로(Nicolás Maduro)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작전과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을 상대로 개시한 “장대한 분노(Epic Fury)”와 “포효하는 사자(Roaring Lion)” 작전은 작게는 앞으로의 전쟁 양상을, 크게는 향후 세계질서의 향방을 결정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가장 심각한 공격이 미국 외부에서부터 가해진 사건이었다면, 2026년 이란 전쟁은 동 질서를 설계한 미국 스스로가 의회 승인 없는 군사행동, 민간 피해 책임에 대한 불명확한 태도, 국제법적 기준의 묵시적 폐기 등을 통해 규칙 기반 질서와 충돌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렸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00년 뒤 역사가들의 평가는 다를 수 있으나, 이란 전쟁이 기존 국제정치 질서에 가한 충격은 2022년보다 더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라고 판단된다.  특히 이번 이란 전쟁은 국제체제 내 가장 강력한 행위자인 미국이 전술에서부터 전략까지 의사결정 전 과정을 인공지능(AI) 결심지원으로 압축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에 더욱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물론 2022년 러-우 전쟁과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AI 기술은 다방면에서 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26년 미국이 이란 작전에서 구현한 수준의 군사 AI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1415년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 당시 영국의 장궁병이나 1917년 캄브레(Cambrai)에서 영국군의 ‘예측 사격(Predicted Fire)’이 당대 전쟁 수행 방식의 규칙을 바꾸었듯, 현대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기술·교리 혁신으로 평가될 수 있다.  개전 후 100여 일 만인 6월 14일 종전 양해각서(MOU)가 서명되었으나, 핵심 쟁점을 둘러싼 최종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전쟁으로 가시화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를 한반도 맥락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한반도 정세는 엄중하다. 2023년 말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 공식화 이후 북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북러 군사 밀착 공고화에 이어 시진핑 주석이 지난 6월 8일 7년만에 방북하며 북중 전략적 관계 복원 및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한국은 미국 주도 글로벌 동맹체제 약화와 전작권 전환이라는 전례 없는 안보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본 이슈브리핑은 우선 이번 이란 전쟁 경과를 통해 드러난 AI 기술의 군사적 사용이 군 의사결정체계 지원에서 가져온 근본적인 변화를 ‘속도의 역설’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이 이번 이란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지 전술 및 전략 차원으로 나누어 평가하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이어서 올 1월 23일 발표된 미국의 국방전략서(National Defense Strategy: NDS)를 통해 미국 국방전략의 밑그림이 공개된 이후 트럼프와 시진핑이 처음으로 만난 5월 13-15일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향후 미국의 인태지역 전략 방향을 간략히 살펴본다. 끝으로 본 보고서는 이러한 기술적·지정학적 차원의 변화를 고려할 때 한국이 취해야 할 국방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2. 이란 전쟁 평가: 속도의 혁명과 그 역설  (1) 미국의 이란 전쟁 목표와 현 상황 평가  이번 이란 전쟁의 특징에 대해 폰테인(Richard Fontaine)은 걸프전 전후 확립된 미국의 군사력 사용 원칙이 180도로 뒤집어진 “반(反) 파월 독트린(anti-Powell Doctrine)”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1) 명확한 목표와 뚜렷한 출구 전략 대신 ‘목표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2) 비폭력적 수단의 소진과 최후통첩 없이 “모호성과 기습(Ambiguity and Surprise)”을 통해 우위를 추구하며, (3) 의회의 무력 사용 승인과 대중의 확고한 지지 확인을 생략한 채, (4)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신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군사작전(Short, sharp military actions)”으로 “적당히 좋은(good enough)” 성과를 추구하고, (5) 사후 수습 책임(“Pottery Barn rule”)은 무시하는 방식으로 요약된다(Fontaine 2026).  군사작전의 성패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인 ‘목표’에 대해 트럼프는 마치 매일 변하는 과녁을 제시했기에 그 자체가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고 평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결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대체적인 수준이라도 미국의 공식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설정할 필요가 있다. 본 고는 미 전쟁부의 헤그세스 장관이 지난 3월 10일 공식적으로 제시한 미국의 4대 핵심 군사 목표를 기준점으로 삼는다(U.S. Department of War 2026c). 첫째, 이란의 탄도미사일 및 드론 역량 파괴(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발사대, 지휘통제(C2) 노드, 비축물자 파괴), 둘째, 이란 해군력 궤멸(호르무즈 해협 등에서의 전력 투사 및 상선 위협 능력 완전 제거), 셋째, 이란 국방 산업 기반(DIB) 파괴를 통해 미사일, 드론, 무기 등을 향후 몇 년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재건할 수 없도록 제조 시설 파괴, 넷째, 이란 핵무장의 영구적 차단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미국은 이 중 어떤 목표를 달성했으며 앞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를 평가하기 위해 전술(군사작전 수행)과 전략(군사작전 목적) 차원으로 구분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2) 전술적 성공: 속도 혁명  이번 전쟁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의 군사작전 진행 속도였다. 3월 5일 미 중부사령부(CENTCOM) 현지 브리핑은 72시간 동안 테헤란 주변을 포함해 이란 깊숙한 지역의 표적 약 200개를 타격했고, 그 결과 24시간 만에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은 1일차 이후 90% 감소했고, 드론 공격은 1일차 이후 83% 감소했다고 밝혔다(U.S. Department of War 2026b). 3월 10일에는 누적 타격이 5,000개 이상 표적에 이르렀고(U.S. Department of War 2026c), 3월 13일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이스라엘 공군이 합쳐 15,0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했으며 하루 ‘1,000개 이상’의 속도로 공습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U.S. Department of War 2026d). 4월 8일 휴전 시점에 헤그세스 장관은 40일도 안 되는 기간 안에 “미국 전체 전투력의 10%도 안 되는 전력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군대 중 하나를 해체했다”고 공언했다.  전술적 차원에서 미국 군사작전의 성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4월 8일 휴전 이전까지 작전에 대한 케인(Dan Caine) 합참의장의 보고 내용이 중요하다. 38일간의 주요 전투에서 미군 단독으로 13,000개 이상 표적을 타격했고, 그중 4,000개 이상이 실시간 정보를 반영한 “동적 표적(dynamic targets)”이었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 방공체계의 약 80%를 파괴했으며, 1,500개 이상의 방공 표적, 450개 이상의 탄도미사일 저장시설, 800개의 일회용 공격 드론 저장시설을 타격, 2,000개 이상의 지휘통제 노드를 파괴했고 이란 정규 함대의 90% 이상을 격침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란 무기 공장의 약 90%를 공격했고 미사일 시설의 80% 이상을 제거했으며, 이란 핵 산업 기반의 거의 80%가 타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Hosseini Khamenei) 포함 대부분의 주요 리더십(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최고지도자 군사실장, 국방장관, 이란혁명수비대사령관, 군 총참모장, 정보장관 등)이 제거되었다(U.S. Department of War 2026e).  숫자만 보면 압도적인 전술적 승리로 볼 수 있다. 특히 작전 속도, 38일 동안 평균 4분에 표적 1개 수준의 타격을 감행한 전무후무한 수준의 작전 속도가 가능했던 것은 AI 기반 결심지원 도구의 광범위한 활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란티어가 펜타곤과의 협력하에 개발한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이 위성 이미지, 드론 영상, 레이더 데이터, 신호정보, 사이버 정보, 공개출처 정보를 하나의 통합 플랫폼으로 융합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표적을 분류, 적합한 무기체계 추천, 타격 패키지 생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 대규모 언어모델(LLM) 역시 동 시스템에 내장되어 정보를 요약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과거에는 몇 시간 또는 며칠이 걸리던 작업을 몇 분으로 축소시키고, 관찰-지향-결정-행동(observe, orient, decide, act)으로 이어지는 OODA 루프를 획기적으로 압축했다(Lee 2026; Klare 2026). 이는 2026년 1월 미 전쟁부가 선언한 “인공지능 가속화 전략(AI Acceleration Strategy)”에 따라 기존의 관료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프런티어 AI 역량의 최첨단을 모든 임무 영역에 통합하여 “전례 없는 미국 군사 AI 지배의 시대”를 열겠다는 선언이 실제 전장에서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U.S. Department of War 2026a).  최근 실험연구도 이러한 속도 혁명을 잘 보여준다. 두마나스(Dimitrios Doumanas) 연구팀이 식별정보를 제거한 역사적 전투 시나리오로 인간 장교와 최신 LLM의 작전 수립 능력을 비교한 결과, 인간 장교가 1~3시간 걸린 분석을 AI 모델은 수 분 내에, 가장 빨랐던 Claude 3.7은 평균 56초 만에 완료해 인간보다 99% 이상 빠른 속도를 보였다. 다만 세부적으로 지형 제약 등 현실적인 전장 역학 등 차원의 분석에서는 인간 장교가 앞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술적 결심의 다차원적 파급효과 분석과 병과 간 충돌 조정 영역에서는 AI가 인간 장교를 압도하였다(Doumanas, Soularidis, and Kotis 2026).  (3) 전략적 실패: 전쟁 수행의 정치적 목적 달성 실패  이처럼 화려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란 전쟁 결과를 놓고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나 ‘군사 AI 혁신사례’로만 결론 내리기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 전쟁부가 제시한 작전 목적, 곧 이란의 탄도미사일 및 드론 역량 파괴, 이란 해군력 궤멸, 이란 국방 산업 기반 파괴, 이란의 핵무장 영구 차단 측면에서 비춰보면 자명하다(Azad 2026; Khan 2026; Cancian and Park 2026).  첫째, 미사일 및 드론 역량의 경우 미군의 가장 강력한 벙커버스터(GBU-57 MOP)조차 화강암반 400~1,500피트 아래에 구축된 이란의 지하 미사일 기지를 파괴하지 못했다. 미군 정보당국은 터널 입구의 77%를 파괴했다고 자평했으나, 실제 이란은 전쟁 전 탄도미사일 무기고의 70%를 보존했고, 실제로 굴착 장비를 이용해 발사대를 밖으로 꺼내 수천 발의 미사일을 발사할 능력을 유지한 점이 확인되었다.  둘째, 전통적 의미에서 이란 해군은 궤멸시켰으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작고 빠른 소형 고속정과 무인 수상정 떼로 구성된 이른바 “모기함대” 전력과 지상발사 미사일 체제를 활용하여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일부 선박들은 중국 위안화로 통행료를 지불하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미국을 우회해 이란과 직접 협상하는 등 미국의 통제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직접적인 전쟁 비용은 250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전 세계 글로벌 GDP에 끼친 손실액은 5,900억 달러에서 최대 3조 5,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셋째, 이란 국방 산업 기반 파괴의 경우 일정 수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핵무장의 경우는 긍정적 평가가 쉽지 않다. 복수의 보고서는 미국의 타격이 이란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단지 6개월 정도 지연시키는 데 그쳤다고 본다. 지하시설 기지에 대한 직접적 타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인해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종교적 칙령(Fatwa)이 사라졌고, 핵심 리더십이 붕괴한 자리에는 강경파 혁명수비대(IRGC) 인사들로 채우게 되어 핵무장을 추진할 정치적 명분은 더 강하게, 그리고 앞으로 훨씬 더 강경한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훨씬 높여버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물론, MOU에서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기로 재확인”한 것은 사실이나,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까지 우려하는 바와 같이 이란이 농축 프로그램 종료나 핵능력 폐기를 ‘선의’로 협상할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매우 어렵다.  넷째, 앞서 제시한 4가지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서도 작전 수행을 위해 치러야 했던 군사적 비용의 문제다. 직접적인 것은 무기고 고갈 문제이다. 2만~5만 달러짜리 이란의 샤헤드 드론을 격추하기 위해 미국은 400만 달러짜리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소진하는 ‘114 대 1’의 극단적인 비용 비대칭을 감내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총량 수준에서도, 헤그세스는 미군 전력의 10퍼센트만을 사용했다고 강조했지만, 실제 미사일 재고는 전체적으로 30% 이상 소진되었으며, 특히 신형 지대지 미사일(PrSM)은 거의 전량, 대체재가 없는 사드(THAAD)와 패트리어트(Patriot)는 절반 이상이 소진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된다(Cancian and Park 2026). 미 방산업체의 생산 역량 한계로 인해 이렇게 소진된 미사일을 재건하는 데는 최소 1년에서 최대 4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지할 수 있는 미국의 핵심 전략에 심각한 구조적 취약성이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군사적 비용을 넘어 정치적 비용의 문제다. 유럽 동맹국들과 사전 협의 없이 전쟁이 개시되면서 나토(NATO)와의 심각한 외교적 균열이 발생했고, 이는 실제 전쟁 수행과정에서 영공 통과 및 기지 사용 관련하여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동맹국들의 비협조를 유발했다. 반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으로 이어지는 반미 연대는 공고화되고, 러시아산 원유 제재 완화 조치와 무기 체제 재건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 효과 급증으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다. 국내정치적으로도 치솟는 유가와 전쟁 장기화로 인해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으며 국정 지지율이 30%대까지 폭락했다.  (4) 속도의 역설  아자드(Tahir Azad)는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이 1991년 이후 누려왔던 “전략적 풍요(Strategic Abundance)”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제 미국이 “전략적 파산(Strategic Insolvency)” 상태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전술적 성공이 전략적·정치적 목표 달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베트남전의 교훈이 AI 시대에도 반복되는 셈이다. 혹자는 이번 전쟁이 “베트남전 실패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고 심각할 것”이라고 평가한다(Musgrave 2026). 그렇다면 왜 인간의 인지능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속도의 혁명과 이로 인한 엄청난 전술적 성공이 전략적 수준에서는 참사 수준의 결과로 이어진 것일까?  루트왁(Edward Luttwak)은 전략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상적인 선형적 논리가 아닌, 상반된 것들이 결합하고 역전되는 “역설 논리(paradoxical logic)”의 지배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적이 절대로 예상할 수 없도록 기습 작전이 성공하려면 평탄한 기동로를 포기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험로를 통과하는 군수적 측면에서는 재앙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성공은 정점(culminating point of victory)을 지나면 그 반대로 전환”되기 마련이고, “전술적으로 좋은 길이 전략적으로는 나쁜 길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스크바를 향해 무리하게 진격했던 독일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루트왁의 ‘역설 논리’는 군사 AI 혁명 시대에도 큰 함의를 준다. 본 이슈브리핑에서 강조하는 ‘속도의 역설’이다. 첫째,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인간의 실질적 통제력을 약화시킨다. 급박한 속도로 작전이 전개되는 전장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다종·다차원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AI 권고를 듣게 되면, 충분히 숙고해서 식별 표적의 정확성과 군사적 타당성, 민간 피해 가능성, 전략적 비례성 등을 면밀하게 따져보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AI의 그것보다 더 낫다는 확신을 갖기 매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AI 기반 ‘의사결정의 압축(AI-enabled compression)’으로 감지-분석-타격에 이르는 전 과정이 고속화되면 절차적으로는 인간 감독자가 존재하더라도 그 감독 기능이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질 수 있다(Csernatoni 2026). 이스라엘 라벤더(Lavender) 시스템은 심지어 인간 분석관이 AI 추천 표적 하나를 검토하는 데 평균 20초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초의 시간 동안 어떤 수준의 신중함(prudence)이 발현될 수 있겠는가? 미 중부사령부는 이번 이란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인간 감독자는 항상 의사결정 루프 안에 있다(human-in-the-loop)고 강조했지만, 하루 수천 건의 동적 표적을 처리했다고 강조한 점을 미루어, 속도의 혁명 속 실질적 인간 통제력 유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둘째, AI 모델의 구조적 한계다. AI 모델은 학습 데이터의 편향과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고, 기계 학습의 특징상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시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의 판단 과정은 여전히 블랙박스처럼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특히 2월 28일 이란 남부 미나브의 여자 초등학교 피격 사건은 AI 표적화 체계의 오류 가능성을 시사하는 비극적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AI 기반 표적화의 과도한 활용은 기계의 통계 모델에 기반한 방책이 의미 있는 인간 통제 없이 집행되는 가운데 의도치 않은 치명적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Amaral 2026). 특히 전쟁은 정치적 목표, 민간인 피해, 적의 비대칭 대응이 뒤섞인 복잡한 현상이기 때문에, 속도나 정확도 중심 지표로는 AI 기반 군사작전의 성공 여부를 작전 수행 이전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셋째,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요인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내는 심각한 오류이다. 인간의 뇌는 정보의 질이나 진리 여부와 무관하게 단순히 더 많은 정보에 대해 “과도한 확신(fallacy of overconfidence)”을 부여한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수집된 수많은 정보를 모두 분석한 기계가 다양한 수치와 확률, 시각화된 화면을 통해 방책을 제안하면 인간은 과신의 오류에 빠져 그것이 자신의 제한적인 판단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이것이 위기나 전쟁과 같이 시간의 제약을 받는 의사결정 환경과 만나면 그 결과는 재앙적일 수 있다. 첫 번째 문제가 두 번째 문제를 심화시키고, 두 번째 문제가 첫 번째 문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의 피드백 고리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러한 속도의 역설은 6월 14일 서명된 종전 양해각서(MOU)에서 문서로 확인된다. 13,0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하고 이란 지도부를 제거하고도 미국이 받아든 조건은 전 제재의 단계적 해제, 최소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지원, 봉쇄 해제와 철군, 그리고 핵 농축 능력의 사실상 존속이었다. 전술적 정점이 전략적 양보로 귀결된 것이다(Foreign Policy 2026).  3. 미국의 전략 재편과 한국의 과제  앞서 살펴본 종전 양해각서(MOU)는, 미국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전략적 본질은 미국이 다시 ‘우선순위 기반 전략’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에서의 군사적·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인도·태평양 및 대중(對中) 견제에 자원과 관심을 재배분하려 할 것이다. 이는 지난 1월 23일 발표된 국방전략서(NDS)가 제시한 방향, 곧 본토·서반구 방어, 제1도련선에서의 거부적 억지를 통한 대중 견제, 동맹의 부담 분담 확대, 방위산업기반 강화의 맥락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귀결이다(김양규 2026a; 2026b).  다만 이란 전쟁이 드러낸 속도의 역설은 이 재편 구상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란 전쟁으로 소모된 탄약·미사일방어·항모전력의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종전 국면은 미국의 즉각적 전력 회복이 아니라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재집중하려는 의지와 실제 가용 군사력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일정 기간의 ‘취약성의 창(window of vulnerability)’을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미중 정상회담은 이러한 구조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 유가 부담, 중간선거 이전 외교적 성과 필요성, 탄약 소진이라는 전술적 부담을 안고 시진핑 주석과 만났다. 반면 중국은 희토류, 핵심광물, 공급망, 대만해협 주변 군사활동 역량 강화 등 주요 레버리지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협상에 임했다. 그 결과 미국은 에너지·농산물 구매 등 영역에서 몇 가지 가시적 성과를 얻었지만, 대만·반도체·북한 문제는 사실상 의제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중국의 강력한 요구에 대해 미국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은 현재 미중간 협상력의 우위가 어느 쪽에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란 전쟁을 통한 압도적 군사력의 과시가 곧 대중 협상 레버리지의 증대로 전환되지는 못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미동맹은 ‘방위비 분담’에서 ‘역량 분담’으로 논의의 무게중심이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한국에 단순한 비용 부담을 넘어 조선, 함정 정비(MRO), 탄약 생산, 미사일방어, 정보 공유, 후방기지, 나아가 대만 유사시 지원 등 보다 폭넓은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한반도 방위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 전략을 보조하는 주변 전구(戰區)로 기능하게 될 위험이다. 한국은 한미동맹 현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그 목적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억지력 보조’가 아니라 ‘한반도 전략 안정성 강화’로 명확히 설정하고, 감당해야 할 군사적 위험과 그에 상응하는 전략적 보상 사이의 균형을 요구해야 한다.  종전 국면은 북한 문제에도 양면적 함의를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이후 자신을 ‘전쟁종식자’이자 ‘평화중재자’로 부각하고 중간선거 이전의 외교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 문제를 다시 활용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2026년의 북한은 2018년의 북한과 다르다. 북한은 핵무력을 고도화했고,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화했으며,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재정의한 가운데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상당한 핵잠재력과 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이란조차 미국의 대규모 군사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켜본 북한은, 앞으로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력의 생존성과 분산성, 전술핵 운용 능력 제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배제된 채 진행되는 북미 간 ‘안정적 공존(stable coexistence)’ 논의(Aum and Panda 2025)는 한국 입장에서 ‘위험한 거래(dangerous bargain)’로 변질될 수 있다. 한국은 북미대화와 리스크 완화 조치 자체를 반대할 필요는 없으나,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거나 한미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 제재완화, 종전선언 등을 한국과의 사전 조율 없이 미국이 대북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결국 이란 전쟁이 한반도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속도의 우위가 그 자체로 전략적 성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점증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AI를 표적화, 감시정찰, 결심지원, 킬체인 체계에 통합하는 길로 이미 들어섰고, 그 방향 자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종심이 짧고 판단 시간이 극단적으로 압축되는 한반도에서, 북한은 한국군의 AI 기반 킬체인 역량 강화를 자국 핵자산에 대한 선제 무력화 시도로 이해할 수 있고, 상호 불신 속에서 양측은 먼저 쏘아야 유리하다는 ‘사용하거나 잃거나(use-it-or-lose-it)’의 압박을 느낄 수 있다(Kim 2025). 따라서 한국군의 AI는 ‘먼저 때리는 능력’이 아니라 ‘맞아도 살아남고, 빠르게 지휘통제를 회복하며, 확실히 대응하는 능력’에 우선 기여해야 한다. 지휘통제의 회복탄력성과 보복의 확실성을 강화하고, 한미가 AI 기반 표적화·결심지원이 북한에 보내는 신호와 의도치 않은 확전의 경로를 공동으로 평가·관리하는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제도화할 때, 비로소 AI 시대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이 가능해진다(Kim 2025; 김양규 2026c). 속도가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속도 경쟁에서의 우위가 아니라, 신중함을 내장한 확고한 억지 체계이다. ■ 참고문헌  Amaral, Nilza. “The Iran War Highlights the Creeping Use of AI in Warfare.” Chatham House (March 27, 2026).  Aum, Frank, and Ankit Panda. “Pursuing Stable Coexistence: A Reorientation of U.S. Policy Toward North Korea.”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April 2025.  Azad, Tahir. “The Cost of the Iran War for the United States: A Strategic Blunder in Five Dimensions.” Small Wars Journal, April 27, 2026.  Cancian, Mark F., and Chris H. Park. “Last Rounds? Status of Key Munitions at the Iran War Ceasefir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 April 21, 2026.  Csernatoni, Raluca. “The Fog of AI War.” Carnegie Europe (April 16, 2026).  Doumanas, Dimitrios, Andreas Soularidis, and Konstantinos Kotis. “Causal Reasoning and Large Language Models for Military Decision-Making.” AI Vol. 7, No. 1 (2026), Article 14.  Fontaine, Richard. “Trump’s Way of War.” Foreign Affairs (March 2, 2026).  Khan, Bilal. “US-Iran War 2026: Operation Epic Fury and the Hormuz Crisis.” Quwa, May 3, 2026.  Kim, Yang Gyu. “Building Conditions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Prioritizing Countervalue over Counterforce.”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34(2): 1–28, 2025.  Klare, Michael. “AI Plays Major Role in the War on Iran.” Arms Control Today, May 1, 2026.  Lee, Daniel. “AI Central in US-Iran 2026 War as Targeting Systems Speed Strikes but Spark Accuracy and Ethics.”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April 5, 2026.  Musgrave, Paul. “Iran Is a Bigger Defeat Than Vietnam.” Foreign Policy, June 16, 2026, 3:04 PM  U.S. Department of War. “War Department Launches AI Acceleration Strategy to Secure American Military AI Dominance.” Immediate Release, January 12, 2026a.  U.S. Department of War. “Secretary of War Pete Hegseth and Admiral Brad Cooper, Commander of U.S. Central Command, Hold a Press Briefing at Central Command Headquarters on U.S. Military Operations in the Middle East.” Press briefing transcript, March 5, 2026b.  U.S. Department of War. “Secretary of War Pete Hegseth and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Gen. Dan Caine Hold a Press Briefing.” Press briefing transcript, March 10, 2026c.  U.S. Department of War. “Secretary of War Pete Hegseth and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Air Force Gen. Dan Caine Hold a Press Briefing.” Press briefing transcript, March 13, 2026d.  U.S. Department of War. “Secretary of War Pete Hegseth and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Air Force Gen. Dan Caine Hold a Press Briefing.” Press briefing transcript, April 8, 2026e.  U.S. Department of War. 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 January 23, 2026.  Foreign Policy, “U.S.-Iran Memorandum of Understanding: Full Text.” June 17, 2026.  Xinhua. “Chinese, U.S. Presidents Agree on New Vision for Bilateral Ties in Beijing Talks.” May 14, 2026.  김양규. “2026 미중 군사안보 전략 변화와 한국의 국방전략.” 『EAI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⑧ , 2026년 1월 22일.  김양규. “‘일차적 책임’ 청구서와 ‘제한된 지원’의 역설: 2026 NDS와 한국의 선택.” 『RINSA 안보리뷰』 236호,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2026년 2월 28일.  김양규. 2026c. “중동전쟁이 보여준 AI 전장, 한국 국방의 과제.” 『국방일보』, 2026년 5월 19일.  ■ 김양규_국방대학교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email protected] 

김양규 2026-07-02조회 : 703
논평이슈브리핑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②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시리즈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전재성,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논평 읽기]② 김강석, 안소연,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③ 김양규,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 [논평 읽기]④ 이승주,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 [논평 읽기]⑤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중국의 구상과 전략 [논평 읽기] 서론: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2026년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은 미국과 이란 간 합의를 통해 일단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세계질서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은 중동 역내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전쟁을 통해 걸프 국가들이 오랫동안 의존해 온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었으며, GCC(걸프협력회의) 국가들 간 이해관계의 차이와 전략적 불협화음도 드러났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 역내 질서가 재편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동 국가들은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 중심 안보체제의 한계를 확인하는 한편, 자국의 군사적 억지력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안보전략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향후 중동 질서는 미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안보 파트너를 다변화하고 자구적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본고는 2026년 이란 전쟁을 계기로 나타난 중동 질서의 변화를 분석하고, 그 중심에 있는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걸프 아랍 국가들의 안보전략과 역내 질서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1. 2026년 이란 전쟁이 드러낸 걸프 안보의 불안정성  2026년 이란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전쟁에 크게 연루된 국가들은 이란과 걸프 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아랍 걸프 왕정들이었다. 1990년 제1차 걸프전쟁 이후 GCC 국가들은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통해 역내 안보 위협에 대비한다는 전략적 노선 아래 자국 영토에 미군 기지를 유치하였다. 걸프 지역의 미군 기지는 동지중해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미군 작전의 핵심 거점이자 역내 억지력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Alexander 2026). 하지만, 이러한 안보협력은 역설적으로 걸프 국가들을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미국이 중동 분쟁에 개입할 때마다 걸프 국가들 역시 분쟁에 연루되기 쉬운 구조적 한계를 창출하였다.  이러한 동맹 딜레마는 2025년 12일 전쟁 기간 이란이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를 공격한 사건에서 이미 드러났다. 당시 이란의 사전 통보로 대규모 피해는 피했지만, 이 사건은 미군 기지가 걸프 국가들의 안보 자산인 동시에 보복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걸프 국가들의 안보 취약성은 2026년 전쟁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자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등에 위치한 미군 기지는 이란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었으며, 공항과 정유시설 등 핵심 인프라까지 공격 범위가 확대되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는 걸프 국가 가운데 가장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약 2,000기의 드론과 500여 발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았으며, 이는 걸프 지역 전체를 향한 이란의 공격 가운데 약 55%에 해당하는 수치였다(Nikaeen 2026). 결과적으로 걸프 국가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미국과의 동맹으로 인해 전쟁의 최전선에 노출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번 전쟁은 기존 안보협력 체제가 지닌 구조적 불안정성과 함께 새로운 안보전략 모색의 필요성을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2. 걸프 내부의 균열과 역내 질서의 변화  이번 전쟁에서 전장의 중심으로 전락한 걸프 국가들을 중심으로 역내 질서의 변화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주목할 점은 걸프 지역 내부의 분열 가능성이다. 이는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간 긴장 고조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양국은 걸프 지역의 주요 행위자로서 협력과 경쟁을 반복해 왔으며, 2026년 전쟁 이전에도 예멘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보여 왔다. 특히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남부과도위원회(STC)를 후원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입장 차이가 부각되었다. 이는 아랍에미리트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기존 걸프 질서에 도전해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전쟁 국면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현저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는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다(Krasna 2026).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및 이란 연계 세력의 공격을 군사적 압박보다 외교적 타협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 중동 국가들 간 상호 불가침 조약 체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Middle East Eye 2026). 이는 이란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기 어렵다면, 국경 불가침과 상호 안보 보장을 통해 역내 불안정을 관리하려는 접근으로 분석할 수 있다.  반면 아랍에미리트는 필요할 경우 군사적 압박과 무력 사용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Leber 2026). 이는 외교적 타협을 우선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상이한 접근으로 평가된다. 아랍에미리트는 2020년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한 이후 안보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이번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산 아이언돔(Iron Dome) 요격체계를 이란의 미사일 격추에 사용하는 등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을 유지했다(The New Arab 2026). 특히, 2026년 5월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재개를 위한 미국의 군사작전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이란의 보복 가능성을 우려하여 미국에 군사작전의 자제를 요청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입장과 대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쟁 기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간 입장 차이가 발현되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는 OPEC+ 탈퇴를 선언하였다. 특히 이 발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GCC 긴급회의 주최 진행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랍에미리트는 OPEC 회원국 가운데 주요 산유국 중 하나로, 러시아의 OPEC+ 참여 이후 지속된 생산량 상한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Connelly 2026). 원유 생산 능력을 꾸준히 확대해 왔음에도 생산 제한으로 인해 자국의 수익 극대화에 제약을 받아왔기 때문이다(Schneider 2026).  이러한 맥락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시장의 혼란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의 OPEC+ 탈퇴는 자국의 상황에 맞는 보다 유연하고 독자적인 생산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평가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OPEC+에 불만을 표출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랍에미리트가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신호로도 간주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쟁은 GCC 내부의 전략적 균열을 더욱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대이란 전략과 역내 질서를 두고 상이한 접근을 보였으며, 이는 향후 GCC가 공동의 안보 이해관계에 토대한 단일 행위자로 기능하기보다, 회원국들 내부의 위협 인식에 따라 독자적인 안보전략을 추구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3. 동맹의 재편과 안보협력의 다변화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출범 직후인 2025년 5월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라함 협정 동참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어 2026년 5월 이란 전쟁이 휴전 국면에 접어들자 다시 아브라함 협정을 전후 중동 질서 재편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제시하였다. 2026년 5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비롯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파키스탄 등 중동 및 이슬람권 8개국 정상들과 연쇄 전화 협의를 갖고, 이란과의 종전 및 평화협상과 연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아브라함 협정 참여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Toosi 2026). 이러한 트럼프의 노선은 걸프 국가들을 이스라엘과 하나의 안보 축으로 연결하여 전후 중동 질서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려는 구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이에 대해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쟁 국면에서 반 이스라엘 정서가 고조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한 구체적 경로가 제시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성지의 수호자”로서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외면한 채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권 국가들과 대안적 안보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 이집트, 튀르키예, 파키스탄과 고위급 회담을 갖고 이란 전쟁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안보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했다(Alhasan 2026). 2025년에는 파키스탄과 전략적 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특히 파키스탄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한 JF-17 전투기와 방공미사일이 중국과의 합작 또는 중국산 첨단 무기체계라는 측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 간 군사협력이 우회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Choi 2026). 반면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 삼각 협력에 기초하여 I2U2와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으로 이어지는 아브라함 협정 네트워크를 활용해 안보 협력을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이스라엘은 최근 미국과 기존의 10년 단위 군사원조 양해각서를 대체할 보다 포괄적인 안보협정 체결을 추진하려 한다(Arnaout 2026). 이는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는 기존 틀을 뛰어넘어 군사협력을 제도적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안보체제를 모색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2025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과 전략방위협정을 체결하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F-35 전투기를 포함한 대규모 방산 패키지를 승인하며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수준의 군사 지원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그러나 2026년 이란 전쟁은 미국의 안보 공약이 동맹국 간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모두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존하는 핵심 동맹국들이지만, 전쟁 기간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군사작전에 직접 참여하며 대규모 무기 지원을 제공한 반면, 걸프 국가들에는 방어적 요격 지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차별적 대응은 걸프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미국으로부터 이스라엘과 동등한 수준의 안보 보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유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외에도 이번 전쟁은 이란의 고도화된 미사일과 드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체계 아래 구축된 통합 미사일 방어망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고조시켰다. 따라서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미국 중심 안보체제의 유지·강화를 여전히 중시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역외 행위자들과의 안보협력을 확대하는 이중 전략을 옹호할 것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서, 전후 중동 국가들의 안보전략은 미국을 중요한 안보협력의 축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안보 파트너의 대상을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4. 결론 및 한국에의 함의  이란 전쟁 이후 걸프 안보 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 체제로 수렴하기보다 자구적 안보 역량 강화와 안보협력의 다변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안보 공약이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자산임을 확인시키는 동시에 미국 중심 안보 동맹체제가 갖는 한계점도 함께 드러냈다(Azad 2026). 따라서 전후 걸프 국가들은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지속하면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안보 공급원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중시하게 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 중국이 미국의 대체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에너지·기술·인프라·금융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걸프 국가들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러시아, 유럽, 인도, 일본, 튀르키예, 한국 등 여러 국가들이 방산·첨단기술·공급망 협력의 주요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후 걸프 국가들의 안보 전략은 미국 의존성을 완화하는 방향 속에서 추진될 것이다. 이는 진영 질서에서 벗어나 기능별·이슈별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네트워크 기반 세계질서(networked world order)”가 중동에서 더욱 중요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Baharoon 2022).  전후 중동 질서의 또 다른 변화는 걸프 지역의 불안정성이 구조적으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GCC 국가들은 그동안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에 토대하여 투자가 집중되는 ‘안전지대(safe haven)’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걸프 역시 분쟁의 전선으로 번지는 전략적 공간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이란의 억지 전략 전환과 맞물려 나타났다. 과거 이란은 '전략적 고독(strategic loneliness)' 속에서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에 기반한 ‘전방위 방어(forward defense)’ 전략을 추구해 왔다고 평가된다(Reisinezhad 2026). 그러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보다 공세적 군사 전략으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과 역내 전략 인프라를 압박 대상으로 삼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개입 비용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는 걸프 지역의 상시적 안보 불안정성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Azizi 2026).  전후 중동 질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에너지 수송로를 넘어 국제 해양질서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다(International Crisis Group 2026). 과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에 과도한 비용을 초래하는 비현실적 선택지로 간주되었으나, 이번 전쟁 기간 제한적 봉쇄 및 항행 통제만으로 국제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실질적 압박 기제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봉쇄 자체는 물론 봉쇄 가능성도 새로운 전략적 수단으로 작용하게 되었으며, 이란은 통행료 부과 등 다양한 레버리지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군사적 압박 수단 이상의 전략적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International Crisis Group 2026).  이러한 전후 중동 역내 안보질서의 변화 가능성은 에너지 및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재확인된 만큼 원유 및 LNG 도입선 다변화, 전략 비축 확대 등을 통해 에너지 공급망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걸프 국가들이 네트워크 기반 세계질서 속에서 특정 강대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안보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함에 따라 한국은 이를 새로운 협력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원외교를 넘어 방산, 첨단 인프라, 소버린 AI, 데이터센터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기능적·중견국 협력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중동 외교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걸프 국가들의 안보협력 다변화 과정에서 실리적 이익을 확대하는 국익 중심의 실용적 외교 노선을 지향해야 한다. ■ 참고문헌  Alexander, K. (2026, June 1). U.S. bases in the GCC: A security model under attack. Afkār. Middle East Council on Global Affairs. https://mecouncil.org/blog_posts/u-s-bases-in-the-gcc-a-security-model-under-attack/  Alhasan, H. (2026, May 6). A new Middle Eastern quadrilateral is taking shap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https://www.iiss.org/online-analysis/online-analysis/2026/05/a-new-middle-eastern-quadrilateral-is-taking-shape/  Arnaout, A. R. D. A. R. (2026, June 5). Israel, US launch talks to draft new security cooperation framework. Anadolu Agency. https://www.aa.com.tr/en/americas/israel-us-launch-talks-to-draft-new-security-cooperation-framework/3957577  Azad, T. (2026, June 15). The new Middle East: Power, perception, and order after the Iran war. Small Wars Journal. https://smallwarsjournal.com/2026/06/15/the-new-middle-east-after-the-iran-war/  Azizi, Hamidreza. (2026. Mar 25). How Iran Rewrote Its War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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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se and decline of Iran’s Forward Defense Strategy.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3530194.2026.2627252  Schneider, F. (2026, May 5). The UAE’s OPEC exit leaves the Gulf further adrift. Afkār. Middle East Council on Global Affairs. https://mecouncil.org/publication/the-uaes-opec-exit-leaves-the-gulf-further-adrift/  The New Arab. (2026, May 12). Huckabee says Israel sent Iron Dome, personnel to UAE amid Iran war. https://www.newarab.com/news/huckabee-says-israel-sent-iron-dome-personnel-uae-amid-iran-war  Toosi, N. (2026, May 26). Join the Abraham Accords? US allies scoff at Trump’s demand. Politico. https://www.politico.com/news/2026/05/26/trump-muslim-majority-nations-abraham-accords-00936785  ■ 김강석_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안소연_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email protected] 

김강석 2026-07-01조회 : 770
논평이슈브리핑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①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미국-이란 전쟁 특별 논평 시리즈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26년 미국-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총 5편으로 구성된 특별 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탈패권 이행기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정치, 군사안보, 중동, 중국,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양한 시각이 융합된 이번 논평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안보 및 경제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능동적인 외교·안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전재성,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와 한국: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와 탈패권 이행의 시험대 ② 김강석, 안소연, 2026년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구조적 불안정성과 안보전략의 전환 [논평 읽기]③ 김양규, 이란 전쟁과 AI 전장 혁명: ‘속도의 역설’과 한국의 과제 [논평 읽기] ④ 이승주, 이란 전쟁: 우주 정보전과 군산 복합체 2.0의 부상 [논평 읽기]⑤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중국의 구상과 전략 [논평 읽기]  Ⅰ. 서론: 세 전쟁과 국제질서의 변환 2026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대상으로 감행한 군사작전은 단순히 중동 지역의 또 하나의 군사충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전쟁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가자 전쟁과 더불어, 21세기 국제질서가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변화를 드러낸 중요한 사례이다. 세 전쟁은 원인과 성격, 행위자와 전장, 국제적 파급효과에서 서로 다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온 국제질서가 지금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질문한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대체로 미국의 상대적 약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수정주의, 그리고 다극화의 진전을 중심으로 국제질서 변화를 설명해 왔다. 이러한 세력배분의 변화는 분명히 중요한 배경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냉전 직후와 같은 일방적 질서 형성 능력을 더 이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질서 변화를 세력전이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지구화와 그 결과로 나타난 국제 공공재 수요의 폭증이다. 안보, 통상, 금융, 에너지, 보건, 기후, 식량, 공급망, 사이버 공간에 이르기까지 국제질서가 관리해야 할 영역은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 질서가 제공해야 하는 안정성의 범위는 커졌지만, 이를 담당할 단일 패권국의 능력과 의지는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의 국제질서는 공공재 수요는 증가하지만 공급은 불안정해지는 구조적 불균형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분야별로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군사안보 영역에서는 세력정치와 강대국 경쟁이 빠르게 복귀하고 있다. 반면 경제와 금융 영역에서는 상호의존이 여전히 깊게 남아 있다. 기후, 보건, 에너지 영역에서는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실제 협력의 제도적 기반은 약화되고 있다. 기술 영역에서는 경쟁, 차단, 표준 설정,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질서 변화는 단순한 탈냉전의 종식도 아니고, 냉전의 반복도 아니며, 고전적 다극체제로의 회귀도 아니다. 그것은 영역별로 다른 속도와 논리가 중첩되는 비동시적이고 비대칭적인 질서 전환이다.  이란 전쟁은 탈패권 이행기의 중요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탈패권은 미국의 영향력이 단순히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이 압도적 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국제질서의 안정적 규칙과 공공재 공급으로 자동 전환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크지만, 그 힘의 사용을 둘러싼 정당성, 지속성, 예측가능성, 제도적 수용성은 약화되고 있다. 오늘의 국제질서는 미국 없는 질서라기보다, 미국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질서로 이행하고 있다.  Ⅱ. 트럼프가 시작한 전쟁: 전략 부재의 선택의 전쟁(War of Choice)  이란 전쟁의 첫 번째 특징은 명백한 예방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이란의 임박한 무력사용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란이 장차 핵능력을 완성할 가능성, 더 정확히 말하면 이란이 핵문턱 국가로서 되돌리기 어려운 전략적 지위에 도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군사행동이었다. 전쟁은 전통적 의미의 자위권 행사라기보다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군사력으로 제거하려는 예방적 무력사용에 가까웠다.  국제법적 정당성의 결여의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이 명확한 전략적 합의와 준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개시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내부의 군사·정보 분야 핵심 행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작전의 군사적 효용, 정보적 확실성, 확전 가능성, 전후 관리 비용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이러한 신중론을 충분히 흡수하거나 제도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채 추진되었다.  이란 전쟁은 미국 패권의 단순한 쇠퇴라기보다 미국 패권 운용 방식의 위기를 드러낸다. 위협을 평가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수단을 조합하고, 동맹과 파트너를 설득하며, 전후 질서를 관리하는 종합적 능력이 중요하다고 할 때 이번 전쟁은 큰 결점을 드러냈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그 힘을 일관된 정치적 목적과 안정적 질서 관리로 연결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전략적 혼선도 심각하였다. 우선 전쟁 목적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란 핵시설을 파괴하여 핵능력 자체를 제거하려는 것인지, 이란 정권의 행동을 강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정권교체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전쟁의 성공 기준도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핵시설의 파괴가 성공인지, 핵개발의 지연이 성공인지, 이란의 협상 복귀가 성공인지, 역내 억지력 회복이 성공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전쟁 목적이 불분명하면 전쟁 종결의 기준도 불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이란의 대응 방식에 대한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란은 직접적인 군사보복뿐 아니라 대리세력 활용, 해상교통 교란, 사이버 공격, 핵개발 가속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 축소 등 다양한 비대칭 수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이러한 다층적 대응 가능성을 충분히 통합한 전략적 설계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또는 교란 가능성에 대한 대응 부재는 전략 부재의 대표적 사례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과 직결된 핵심 해상교통로이며, 이란이 군사적 열세를 보완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압박 수단 중 하나이다.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는 순간, 해협 봉쇄 또는 제한적 교란은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 할 시나리오였다.  미국은 군사작전의 전술적 성공 가능성에는 집중했지만, 그 작전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 동맹국 경제,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국내 정치에 미칠 연쇄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비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전쟁을 군사문제로만 이해하고, 전쟁이 경제·기술·사회·동맹정치로 확산되는 복합위기적 성격을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현대의 전쟁은 전장 안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에너지 가격, 해상보험, 금융시장, 공급망, 국내 여론, 동맹관리로 빠르게 확산된다.  결국 이란 전쟁은 강요된 전쟁이 아니라 선택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전쟁 이전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회복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핵시설에 대한 물리적 타격은 단기적으로 이란의 핵개발 일정을 지연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핵프로그램은 건물과 장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자, 기술자, 조직, 축적된 지식, 산업기반, 정치적 의지, 안보 위협 인식의 결합체이다. 시설을 파괴한다고 해서 핵능력의 사회적·기술적 기반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오시라크 공습의 분석이 보여주듯,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 타격은 단기적 지연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지하화, 분산화, 은폐 강화, 핵무장 의지의 가속을 초래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트럼프 개인의 충동적 결정이나 중동정책의 실패로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탈패권 이행기 미국의 힘이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그 힘을 질서로 전환하는 전략적 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군사력 사용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동맹을 안정시키며, 상대의 장기적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능력이 충분히 행사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군사적 능력과 전략적 질서 형성 능력 사이의 간극이 이란 전쟁이 주는 큰 함의이다.  Ⅲ. 전쟁 종식의 어려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  이란 전쟁의 두 번째 특징은 종결되기 어려운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비종결성은 우선 전쟁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이란 전쟁은 개전 목적이 명확하지 않았고, 군사작전의 성공 기준도 불분명했으며, 전쟁 이후의 정치적 상태에 대한 설계도 충분하지 않았다. 목적이 불분명한 전쟁은 종결 기준도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란 전쟁의 종결 어려움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이란 전쟁을 관통하는 보다 구조적인 변화의 일부이다. 오늘의 전쟁은 과거처럼 일정한 군사적 승패, 영토 조정, 정전 합의, 강대국 보증을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종료되는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전쟁은 개시되지만 종결되지 않고, 휴전은 이루어지지만 평화로 전환되지 않으며, 합의는 체결되지만 재발 가능성은 제거되지 않는다. 전쟁은 전장의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이후 국내정치, 정체성, 기술, 경제안보, 국제규범, 동맹정치가 얽힌 장기적 위기 상태로 지속된다.  합리주의적 전쟁이론은 전쟁을 기본적으로 교섭의 실패로 설명한다. 국가들이 전쟁의 비용과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양측은 전쟁을 치르기보다 그 예상 결과를 반영한 협상에 도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정보의 불완전성, 상대의 결의에 대한 오판, 약속 이행의 불신, 또는 쟁점의 불가분성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전쟁의 종결은 전장에서의 비용 지불을 통해 양측의 신념이 조정되고, 힘의 분포와 의지의 수준에 대한 인식이 수렴할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오늘의 전쟁들에서는 바로 이 수렴 과정이 구조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전쟁은 정보를 생산하지만, 그 정보가 협상을 가능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적대적 정체성과 정치적 결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전쟁의 비용이 커질수록 양측이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불한 비용 때문에 후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반복된다. 이 경우 전쟁은 교섭 실패의 결과일 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과 생존 논리를 생산하는 과정이 된다.  첫째, 전쟁의 성격이 이익의 전쟁에서 정체성의 전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전쟁은 영토, 자원, 영향권, 안보 이익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이익들은 어렵더라도 협상, 보상, 분할, 단계적 이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주요 전쟁에서 핵심 쟁점은 점점 더 정체성, 역사, 체제 생존, 집단적 기억, 국가의 존재 이유와 결합되고 있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아니라 러시아적 세계관과 제국적 정체성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스라엘 정부에게 가자는 단순한 안보 위협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 생존, 집단 기억, 국내 우파 정치의 정당성과 결합되어 있다. 이란 체제에게 핵능력은 군사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혁명체제의 자율성, 서방 압력에 대한 저항, 정권 생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전쟁의 쟁점이 정체성과 결합될수록 타협의 공간은 좁아진다. 협상은 더 이상 이해관계의 조정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부정처럼 인식될 수 있다. 지도자들은 전쟁의 비용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후퇴가 국내정치적 처벌과 정권 약화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전쟁은 국가 간 교섭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와 정권의 생존 문제가 된다. 전쟁의 지속은 비합리적 고집이 아니라 지도자의 관점에서는 정치적 생존전략이 된다.  둘째, 무기체계의 변화가 약자의 전쟁 지속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20세기 전쟁에서 강자는 제공권, 장거리 정밀타격, 기갑전력, 해군력, 정보우위 등을 통해 상대의 군사능력을 압도하고 전쟁 종결을 강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전쟁들은 기술 확산이 전쟁의 비대칭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의 본격적 전장 활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드론, 저가 정밀무기, 상업위성, 분산형 통신망, 사이버 수단, 이동식 미사일, 소형 무인체계의 확산은 약자의 전쟁 지속 능력을 크게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도 드론, 미사일, 분산 방공망, 외부 정보지원, 민간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통해 강대국의 결정적 승리를 지연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란 역시 정규군 전력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비할 수 없지만, 미사일, 드론, 대리세력, 해상교란 능력, 사이버 능력, 지리적 깊이를 활용하여 장기적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 강자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약자는 전쟁을 끝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셋째, 경제안보 변수가 전쟁 종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화 시대의 전쟁은 전장에서만 수행되지 않는다. 해협, 항만, 에너지 가격, 보험료, 금융시장, 공급망, 식량 가격, 반도체와 핵심 광물의 이동이 모두 전쟁의 일부가 된다. 이란 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전쟁 종결에 관한 핵심 요인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군사적 보복수단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를 압박할 수 있는 경제안보 카드이다. 이란이 해협을 전면 봉쇄하지 않더라도, 제한적 군사행동, 선박 공격, 기뢰 위협, 보험료 상승, 시장 불안 심리만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가격과 물류 비용을 흔들 수 있다.  이처럼 경제적 상호의존은 전쟁 억제의 기반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전쟁 지속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전쟁 당사자는 상대의 군사력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취약성을 활용해 비용을 외부화한다. 에너지 수입국, 공급망 의존국, 금융시장 개방국, 무역국가는 전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전쟁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종전 협상 역시 더 이상 군사적 쟁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제재 해제, 원유 수출, 금융 접근, 항행의 자유, 재건 비용, 난민 문제, 국제기구 복귀, 핵사찰 체제 등이 모두 종결 조건의 일부가 된다.  마지막으로 종전을 보증할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의 부재의 문제가 있다. 전쟁은 당사자 간의 합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상호불신이 깊고, 전쟁 이후 재공격 가능성이 높으며, 합의 위반을 처벌할 독립적 장치가 없을 경우, 종전은 안전보장과 검증을 제공할 제3자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국제질서에서 이 보증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냉전기에는 미소 양극체제가 위험한 대리전과 지역분쟁을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강대국 간 관리와 압력의 구조가 작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냉전 직후에는 미국의 단극적 우위와 국제기구의 개입이 일부 분쟁에서 보증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보증 능력과 의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중국은 선택적 개입을 선호하며, 러시아는 질서 보증자가 아니라 수정주의적 행위자로 움직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주요 강대국 간 대립으로 마비되기 쉽고, 국제기구의 검증과 평화유지 능력은 당사자들의 정치적 수용성에 의존한다.  이란 전쟁에서도 이 문제는 결정적이다. 양해각서가 체결되고 60일 또는 그와 유사한 잠정적 시한이 설정되더라도, 그 합의를 지탱할 보증 구조가 없다면 그것은 종전이 아니라 일시적 동결에 불과하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필요로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하거나 은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검증을 요구한다. 그러나 양측 모두 상대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으며, 제3자는 그 약속을 강제할 충분한 권위와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조건에서는 정전은 가능하지만 평화는 어렵고, 협상은 가능하지만 종결은 지연되며, 위기는 완화될 수 있지만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Ⅳ. 동맹 관계의 변화: 조율 없는 전쟁의 비용  이란 전쟁의 세 번째 특징은 미국의 동맹 관계에 내재해 있던 긴장을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동맹망을 통해 세계적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동맹정치가 과거와 같은 수준의 전략적 조율, 규범적 설득, 비용 분담의 정당성을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의존하면서도, 그 군사력이 언제, 어디서,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지 충분히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걸프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에서 이란의 군사적 압박과 역내 세력균형 변화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이들에게 보호의 편익과 연루의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작전을 직접 지원하거나 최소한 묵인했지만, 그 결과 이란의 보복 위협에 가장 즉각적으로 노출되었다. 미군 기지, 에너지 시설, 항만, 해상교통로, 민간 인프라는 모두 이란과 그 대리세력이 압박할 수 있는 취약 지점이 되었다. 미국의 군사작전은 워싱턴과 텔아비브에서 결정되었지만, 보복의 지리적 비용은 걸프 동맹국들이 먼저 떠안게 된 것이다.  전후 국면에서 이들은 또 다른 부담에 직면하였다. 미국은 군사작전의 정치적 책임과 비용을 동맹국들과 분담하려 했고, 전후 안정화, 재건, 배상, 에너지 시장 안정, 해상안보 유지에 걸프 국가들의 재정적·외교적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보호는 무상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보호의 대가는 사후 청구서의 형태로 돌아와 거래적 동맹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청구서가 동맹국들이 충분히 참여하지 못한 결정의 결과라는 점이다. 결정 과정에서는 주변화되고, 비용 분담에서는 중심화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역시 단순한 공동전선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능력 억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였고, 전쟁의 개시 국면에서는 사실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양국의 이해는 점차 분기하였다. 이스라엘에게 이란의 핵능력은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군사작전의 목표는 가능한 한 장기적이고 불가역적인 핵능력 제거에 가까웠다. 반면 미국에게 이란 문제는 중동 전체의 세력균형, 에너지 시장, 국내정치, 대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동맹관리와 연결된 보다 넓은 전략적 계산의 일부였다. 양국은 같은 적을 상정했지만, 같은 전후 질서를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이 차이는 전쟁 목적과 종결 조건을 둘러싸고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핵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 압박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고, 이란 정권의 약화 또는 내부 불안정까지 전략적 성과로 간주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미국은 확전 통제, 에너지 시장 안정, 동맹국 부담 완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기회 차단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개전의 동반자였던 두 국가는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종결의 방식, 협상의 조건, 전후 감시체제, 이란 체제의 미래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선호를 드러냈다. 이는 동맹이 적의 존재만으로 자동적으로 결속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정치적 목표가 공유될 때에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럽 동맹국들도 모순적인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이란 핵문제와 중동 안정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개전 결정 과정에서 실질적 협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것인지, 국제법적 우려를 표명할 것인지, 에너지 시장 안정과 해상안보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요구받았다. 유럽은 전쟁 개시의 주체가 아니었지만, 전쟁의 외교적 정당화와 경제적 후과 관리에는 동원되었다. 그 결과 유럽 동맹국들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거리두기와 동맹 결속 유지 사이에서 어려운 균형을 찾아야 했다.  아시아 동맹국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란 전쟁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중동 에너지 의존, 해상교통로 안전, 원유 가격, 금융시장 변동, 미국의 전략적 자원 배분, 대중국 억제태세의 변화는 모두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외교적 에너지를 소모할 경우, 인도태평양에서의 억지력 유지와 동맹 공약의 신뢰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 동맹국들은 미국의 중동 개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그 개입이 자신들의 안보 환경에 미치는 비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 전쟁이 보여준 동맹정치의 핵심 문제는 조율 없이 시작된 전쟁의 비용과 비난을 동맹국들이 함께 부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동맹국들은 개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제한된 발언권만을 갖지만, 전쟁 이후의 경제적 충격, 외교적 입장 표명, 군사적 지원, 제재 이행, 해상안보 협력에서는 책임 있는 파트너로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신속한 지지와 협력을 기대하지만, 동맹국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전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갖게 된다. 이때 동맹은 전략적 공동체라기보다 위기 비용을 배분하는 정치적 장치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전쟁은 동맹의 해체를 보여준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사건이다. 동시에 그것은 동맹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동맹이 보호와 충성의 교환이었다면, 오늘의 동맹은 위험, 비용, 정보, 기술, 정당성, 국내정치적 부담을 함께 조정해야 하는 복합적 협상체가 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동맹망을 통해 세계전략을 수행하지만, 동맹국들은 더 이상 자동적 지지자가 아니다. 이란 전쟁은 동맹이 군사적 결속의 장치에서 전략적 조율의 시험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Ⅴ. 핵 비확산 질서의 동요  이란 전쟁의 네 번째 특징은 핵 비확산 질서에 심각한 역설을 남겼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능력 완성을 막기 위해 군사작전을 감행하였다. 표면적으로 이 전쟁은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오히려 비확산 질서의 규범적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핵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타격을 사용하면, 단기적으로는 특정 국가의 핵프로그램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국가들에게 핵무장의 필요성과 핵문턱 상태의 위험성을 동시에 학습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비확산 질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작동해 왔다. 하나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대신 평화적 원자력 이용권과 일정한 안보·경제적 혜택을 보장받는다는 전제이다. 다른 하나는 핵개발 의혹이 발생했을 때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협상, 외교적 보장 등을 통해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이다. 이란 핵문제 역시 오랫동안 이러한 틀 안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란은 핵개발 의혹을 받았고, 국제사회는 제재와 협상, 포괄적 공동행동계획과 같은 방식으로 이를 관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이러한 외교적·제도적 관리 방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협상과 제재가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 보고가 정치적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며, 강대국 간 합의가 국내정치 변화에 의해 흔들릴 때, 핵문제는 다시 군사적 선택지로 이동한다. 문제는 군사적 선택지가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핵문제의 성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핵시설은 파괴될 수 있지만, 핵개발에 필요한 지식과 조직, 과학기술 인력, 정치적 의지는 파괴되기 어렵다. 오히려 공격을 받은 국가는 핵무장을 체제 생존의 최후 보장수단으로 더욱 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핵잠재력을 가진 국가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이들 국가는 완성된 핵억지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핵무장에 필요한 상당한 기술과 물질적 기반을 확보한 국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는 핵확산을 우려하는 외부 세력의 예방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완성된 핵억지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확실한 보복능력도 갖지 못한다. 이 중간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핵무장을 완전히 포기하면 외부 위협에 취약해질 수 있고, 핵무장에 접근하면 예방타격의 위험이 커진다. 이란 전쟁은 바로 이 핵문턱 상태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잠재적 핵개발 국가들에게 양가적 교훈을 준다. 하나의 교훈은 핵문턱 상태에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핵능력을 충분히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에 노출되면, 군사타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교훈은 협상과 제한적 투명성이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프로그램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일부 사찰과 합의를 수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외부 공격을 막을 수 없다면, 국가들은 은폐, 지하화, 분산화, 가속화를 더 선호하게 될 수 있다. 이는 비확산 질서에 매우 부정적인 신호이다.  예방타격의 또 다른 문제는 규범적 일반화 가능성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장래의 위협이라는 이유로 타격했다면,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논리를 자신의 안보 환경에 적용하려 할 수 있다. 특정 국가가 장차 핵능력, 미사일 능력, 사이버 공격 능력, 인공지능 기반 군사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예방적 무력사용을 정당화한다면, 국제질서에서 무력사용의 문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제법은 실제 공격이나 임박한 공격에 대한 자위권을 인정하지만, 장래의 불확실한 위험을 근거로 한 예방전쟁은 매우 엄격하게 제한해 왔다. 이 기준이 약화될 경우 강대국은 자신의 위협 인식을 근거로 더 자주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핵확산을 방치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핵무기를 보유한 적대국가가 등장할 경우, 지역 안보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 핵무장은 재래식 군사균형, 동맹관계, 위기관리, 군비경쟁, 핵도미노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이란이 핵무장을 완성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집트 등 다른 중동 국가들의 핵선택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핵확산 방지는 여전히 중요한 국제 공공재이다. 문제는 이를 어떤 방식으로 달성할 것인가이다. 비확산 질서를 지키기 위해 국제법적 규범과 제도적 절차를 훼손할 경우, 비확산 질서 자체의 정당성이 약화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비확산과 억지, 강압과 협상, 사찰과 안전보장의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비확산 질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핵개발 국가를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개발을 포기하거나 제한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 국제적 지위의 개선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합의 위반에 대한 검증과 처벌도 분명해야 한다.  결국 이란 전쟁은 핵 비확산 질서가 단순한 기술통제 체제가 아니라 안보질서, 지역질서, 강대국 정치, 국제법적 정당성, 체제 생존 인식이 결합된 복합질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비확산의 미래는 핵시설의 파괴 여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핵무장을 필요 없게 만드는 안보환경과 핵합의를 신뢰하게 만드는 국제정치적 조건을 얼마나 재구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Ⅵ. 경쟁국의 시각  이란 전쟁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미국의 경쟁국들이 이 전쟁을 통해 무엇을 학습하였는가에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 전쟁에서 읽어낸 첫 번째 교훈은 미국의 물질적 한계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장거리 정밀타격, 정보·감시·정찰 능력, 항공모함 전단, 전략폭격기, 미사일 방어, 사이버 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복수의 전역에서 고강도 작전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가이다. 전쟁이 단기적 충격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 소모전으로 전환될 경우,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도 산업적 기반과 재고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중요한 전략적 정보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그 힘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정밀무기와 요격 자산은 현대전에서 가장 빠르게 소모되는 핵심 자원이다. 미사일 방어체계는 기술적으로 정교하지만 비용이 높고, 요격탄 재고는 제한적이며, 방위산업 기반의 생산 속도는 전장의 소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경쟁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미국을 직접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장기적 소모와 다중 전역 압박을 통해 약화시킬 수 있다는 신호이다.  두 번째 교훈은 미국의 의지의 한계이다. 이란 전쟁은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를 여전히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그 사용 이후의 확전과 장기전에는 신중하거나 회피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음을 드러냈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은 강한 언어와 과감한 타격을 선호하면서도, 그 타격이 대규모 지상전, 장기 점령, 막대한 재정 부담, 국내정치적 역풍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경쟁국들은 여기서 중요한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미국은 공격할 수 있지만, 오래 머물고 끝까지 관리하려 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징벌할 수 있지만, 질서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경쟁국들의 위험 감수 성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미국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계산할 때, 미국의 초기 대응 능력뿐 아니라 장기적 정치 의지를 함께 평가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을 통해 미국이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고강도 관여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판단을 강화할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이 압도적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강한 압박과 장기적 비용 부과 앞에서는 협상, 후퇴, 또는 제한적 개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식 외교가 거래, 압박, 과시, 비용 회피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경쟁국들은 미국의 의지를 일관된 전략적 공약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  세 번째 교훈은 미국 취약성의 다차원성이다. 미국의 취약성은 단순히 군사적 자산의 부족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외교적 정당성, 경제적 상호의존, 동맹의 신뢰, 국내정치의 분열, 국제규범의 수용성이라는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이란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타격이 국제적 정당성을 자동으로 획득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경제적 상호의존 역시 미국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다. 이란 전쟁은 중동의 군사위기가 원유 가격, 해상보험, 물류,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공급망 불안정으로 빠르게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졌지만, 세계경제 전체의 불안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더구나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유럽과 아시아의 에너지 수입국들은 중동 위기에 훨씬 더 취약하다. 경쟁국들은 이 점을 주목한다.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미국 동맹국들의 경제적 취약성을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경쟁은 더 이상 전장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글로벌 시장과 공급망의 취약성을 매개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모든 학습이 곧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기회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란 전쟁은 미국의 취약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경쟁국들에게도 경고를 보냈다. 첫째, 미국은 여전히 장거리 정밀타격을 감행할 수 있는 국가이다. 미국의 전략적 일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지만, 특정 조건에서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은 경쟁국에게도 부담이 된다. 트럼프식 외교의 즉흥성과 과시성은 동맹국에게 불안을 주지만, 경쟁국에게도 계산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둘째, 예방타격의 선례는 경쟁국 자신의 전략 자산도 동일한 논리의 사정권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장래의 위협이라는 이유로 타격했다면, 중국과 러시아 역시 자신들의 핵심 군사·기술 인프라, 대리세력, 회색지대 작전 기반, 또는 전략적 거점을 둘러싼 예방적 논리의 확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규범이 약화될수록 강대국에게 행동의 자유가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강대국의 전략 자산이 더 불안정한 예외상태에 노출된다.  셋째, 미국의 약점이 곧 중국이나 러시아의 질서 공급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란 전쟁이 확인시킨 가장 중요한 구조적 함의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실수를 비판하고, 미국의 이중기준을 공격하며, 미국 패권의 피로를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을 대체하여 국제 공공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능력과 신뢰를 갖추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질서의 보증자라기보다 그 파괴자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규모와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안보 공공재, 금융 안정성, 해상교통로 보호, 분쟁 종결 보증, 규범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아직 미국을 대체할 수준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오늘의 국제질서는 단순한 패권교체의 국면이 아니다. 미국의 힘은 부족해지고 있지만, 대체 패권국의 힘도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모든 문제를 단독으로 관리할 수 없지만, 중국과 러시아도 그 공백을 단독으로 메울 수는 없다.  Ⅶ. 한국에 대한 함의와 결론  이상의 분석은 한국에 대해 세 가지 층위의 함의를 갖는다. 이란 전쟁은 중동의 군사위기이지만, 그 의미는 중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패권의 작동 방식, 전쟁 종결의 어려움, 동맹 조율의 약화, 핵 비확산 질서의 취약성, 경쟁국들의 전략적 학습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다. 한국은 이 전쟁을 먼 지역의 위기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은 미국 동맹망의 핵심 구성원이며, 북한 핵위협에 직접 노출되어 있고, 에너지·공급망·기술·금융의 글로벌 상호의존 속에서 번영을 유지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이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 변화는 한국 외교안보 전략의 주변 조건이 아니라,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규정하는 핵심 환경이다.  첫째, 대미 관계의 차원에서 한국은 동맹의 성격 변화를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기축이며, 확장억제와 주한미군, 정보·감시·정찰 능력, 핵우산, 첨단 군사기술, 글로벌 금융·기술 네트워크에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미국과의 동맹이 곧 자동적 안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힘의 사용이 언제나 동맹국과 충분히 조율되거나 국제질서의 안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일방적 선택전쟁이 초래하는 비용과 연루 위험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한국의 대미 전략은 단순한 동맹강화나 거리두기의 이분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안보의 기축으로 유지하되, 그 관계를 수동적 의존에서 능동적 기여와 발언권의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동맹에서 발언권은 선언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 공유, 공동 기획, 위기 시나리오 협의, 군사·산업·기술 기여, 경제안보 협력 능력을 통해 확보된다. 한국은 북한 문제뿐 아니라 대만해협, 남중국해, 중동 위기, 에너지 안보, 공급망 충격, 사이버 공격, 군사 인공지능, 우주안보 등 한국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을 한미 전략협의의 정례 의제로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북핵 문제의 차원에서 이란 전쟁은 더욱 직접적이고 무거운 함의를 갖는다. 북한은 이란 전쟁을 가장 예민하게 관찰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 전쟁은 명확한 교훈을 제공한다. 핵을 포기한 리비아는 정권 붕괴를 피하지 못했고, 핵무기를 보유했으나 포기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으며, 협상과 제한적 핵합의를 선택했던 이란은 결국 군사타격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강대국과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며, 핵전력의 생존성을 높여 온 북한은 직접 타격을 받지 않았다. 북한이 이 비교에서 얻을 결론은 비핵화의 필요성이 아니라 핵보유의 필요성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의 북핵 정책은 보다 현실적이고 다층적인 접근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비핵화는 여전히 장기 목표로 유지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핵확산 질서의 붕괴를 수용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와 국제적 원칙 모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핵화를 장기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관리해야 할 위험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와 위협 감소라는 중간 목표를 구분해야 하면서 핵무기 수와 질의 추가 고도화 억제, 위기 시 오판 방지, 핵사용 문턱 관리, 미사일 시험과 배치의 투명성 제고, 군사적 충돌 방지 장치 복원, 우발적 확전 방지 채널 확보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 지구 거버넌스 참여의 차원에서 한국은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란 전쟁은 어느 단일 강대국도 더 이상 국제질서를 단독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국가이지만, 모든 지역의 안보위기, 경제충격, 기술규범, 비확산 문제, 기후·보건·공급망 위기를 혼자 관리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미국의 공백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공백을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울 능력과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유럽은 규범적 역량은 강하지만 군사적 집행 능력이 제한적이고, 글로벌 사우스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 통합된 질서 공급자로 작동하지 않는다. 질서의 수요는 증가하지만 질서의 공급은 분산되고 불안정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조건에서 중견국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물론 한국이 세계질서 전체를 설계하거나 강대국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질서의 공백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특정 영역에서 능력과 신뢰를 갖춘 국가들의 연합에 의해 부분적으로 메워질 수 있다. 질서의 소비자였던 한국이 질서의 조성자로 이동하는 것이 이란 전쟁 이후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한국에게 부과하는 과제이자 동시에 가능성이라고 하겠다. ■  ■ 전재성_동아시아연구원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email protected] 

전재성 2026-06-24조회 : 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