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➉ 2026 북한 전략의 결합: ‘비핵화 거부–두 국가론–CNI’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서론  2026년 1월 말 현재 북한은 제9차 당대회의 구체 일정을 공고하지 않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당대회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이며, 북한에서도 당대회를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기관으로 규정한다. 당대회는 당 강령·규약의 재·개정, 노선·정책·전략의 공식화, 총비서와 당중앙위원회 등 핵심 중앙지도기구의 선출을 통해 국가운영의 방향을 제도화하는 계기로 기능한다.[1]  그러나 북한의 당대회는 정기적 관례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1980년 김일성 시기의 제6차 당대회 이후 2016년 제7차 당대회까지 36년간 공백이 이어졌고, 북한이 공식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 적은 없다. 다만 김일성이 “의식주 문제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없이는 7차 당대회를 열 수 없다”는 취지로 언급했다는 전언이 알려져 있으며, 이는 당대회가 단지 형식적 정치행사가 아니라 체제의 성과와 노선 정당성을 총결산하는 ‘정치적 결산장’이라는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2]  이러한 맥락에서 9차 당대회는 단순한 일정 공지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가 향후 5년의 국가운영 과제를 어떤 위계와 논리로 재구성하여 제도화할지 가늠하게 하는 분기점이 된다. 특히 2021년 제8차 당대회가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포함한 중기 국가계획을 제시했다는 점을 준거로 할 때, 9차 당대회 역시 경제·군사·대외정책 지침의 재정렬을 통해 김정은 통치의 다음 국면을 확정하는 자리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당대회가 아직 열리지 않았더라도, 북한이 2026년과 그 이후 어떤 전략과 정책을 선택할지의 윤곽은 알 수 있다. 2025년 9월 제14기 제13차 최고인민회의에서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시정연설은 대외인식, 대남전략, 대미관계의 방향을 제시했고, 이후 북한 매체 보도는 군사전략으로 ‘핵무력 및 상용무력 병진’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당대회 이전 시점에서 확보 가능한 공개 자료를 토대로 2025년까지의 북한 대미·대남·군사전략을 분석·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2026년 전략 방향을 전망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북한의 대미전략이 ‘비핵화 거부–제재 해제 추구–대화 여지’라는 긴장을 어떻게 결합하는지, 둘째, ‘적대적 두 국가론’의 제도화가 대남정책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셋째, ‘핵무력 및 상용무력 병진’이 북한판 재래식–핵 통합(CNI)으로 발전하는 양상과 그 한계를 고찰한다.  북한의 대미전략  북한은 현 세계질서가 급변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일극 체제의 패권이 무너지면서 이를 지키려는 “미국의 야욕과 무절제한 힘의 남용”이 “전 지구적 불안과 총체적 위기”의 근원으로 판단한다.[3] 이로 인해 북한의 안보도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질서와 대미관을 바탕으로 김정은은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첫째,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2018∼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기간 중 김정은은 도널드 J.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2018년 8월 5일 김정은이 트럼프에 보낸 친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양국의 실무협상을 앞두고, 도발적인 연합 군사훈련은 취소되거나 최소한 연기될 것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한반도 남부에서 진행되는 연합 군사훈련은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한 것이며, 누구의 행동을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누구를 패배시키고 공격하려는 것인가?[4]  2025년 9월 김정은의 시정연설에서도 미국의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운용이 “몇 년 전과도 다르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증대되었다”면서 “각양각태의 쌍무 및 다무적 전쟁연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공간적 공백이 없이 이어지고 거기에 더욱더 많은 핵요소들이 포함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라고 강변한다.[5]  이러한 북한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는 다른 어느 때보다 실제로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가 중단될 수 있는 환경과 가능성을 읽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 한국 정부, 특히 통일부는“한·미 연합군사훈련은 한반도 평화 달성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6]  현재 한미는 ‘동맹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핵심은 한반도 방어의 주도권을 한국이 행사하고 미국은 지원하는 형태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로 국한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수차례 공개 석상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7] 이 의미는 기존의 한미동맹이 북한 위협에 대한 단일 대응에서 벗어나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인태 역내 동맹으로 역할과 범위를 확장하려 하는 것이다.  작년 연말 브런슨 사령관은 “한국은 인도·태평양의 장기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 전략적 위치를 갖추고 있다”라고도 언급하였다. [8] 이런 형태로 동맹 현대화가 심화할 경우 현재와 같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은 필요치 않게 된다. 2024년 한미가 합의하여 운용하고 있는 작전계획 5022는 이전 작계와 유사하게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을 포함한 대규모 증원군이 투사된다.[9] 그러나, 미국은 이미 이라크 전쟁 이래 해공군 위주의 종심 타격 후 최소 수준의 지상군을 파견하는 형태로 작전을 수행한다.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로 변경하는 것이므로 한반도 유사시 지상군 작전은 한국이 주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남침시 대규모 미 증원군 파견을 상정한 현 한미연합훈련은 성격과 규모, 내용이 크게 바뀔 수 있다.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인식도 영향을 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을 “비싸고 도발적인 전쟁게임”으로 규정한 바 있다.[10] 이후 1기 때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작전 비용’이라는 신규 항목을 내세워 동 비용을 청구하려 했다.[11] 그러므로,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을 위해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집요하게 이런 상황을 파고들어 한미의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등에 대해 예외 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하고 있다. [12]  둘째, 북한 비핵화 대화는 거부하면서도 제재 해제를 원한다. 김정은은 2025년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단언하건대 우리에게서 《비핵화》라는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수 없다”라고 강변한다. 북한은 핵보유를 헌법에 규정했다면서 비핵화는 “위헌행위를 하라는 것”이라 주장한다. 동시에 제재 무용론을 아래와 같이 다섯 문장 이상 언급한 바 있다.[13]  “제재를 풀자고 하겠습니까. 천만에! 천만의 말씀입니다. 적대세력들의 제재는 우리에게 보다 강해질 수 있는 학습효과를 주었으며 그 어떤 압박에도 눌리우지 않는 내성과 저항성을 키워주었습니다. 제재 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제재나 힘의 시위로써 우리를 압박하고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그들이 달라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직도 《비핵화》를 떠들면서 제재와 압력을 가하며 부질없는 짓을 계속하겠으면 하라고 합시다.”  제재와 연계하여 “선택권”은 미국에 있다면서 시간은 “자신 편”이라고 강변한다.[14] 비핵화를 요구하고 제재를 계속 부과하는 한 북한은 핵 고도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맥락에서 의미를 해석하면 북한이 제재에 대해 고통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정말 제재가 무해하다면 다섯 문장 이상을 할애하면서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객관적 자료로도 북한이 제재에 취약함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General Administration of Customs of China; UN Comtrade Database; KOTRA, 「북한 대외무역 동향」, 각 연도 자료 종합.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북제재의 효과성은 포괄적 제재가 부과되기 시작한 2017∼2018년 전후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2016년 정점을 찍은 북한의 대외 무역은 2019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하였다.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은 코로나 3년 시기가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의 대외무역량은 포괄적 제재 이전과 비교하여 30% 내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의 제재 무용론은 역설적으로 제재 해제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셋째, 미국과의 대화를 추진할 의향이 있다. 전술한 제재와 연계하여 결국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또는 담판을 통한 해제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2024년 미국 대선 기간부터 이미 북한은 대미 비판 수준을 현저히 낮췄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 때 사용되었던 ‘노망난 늙은이’(dotard) 같은 표현은 사라졌다. [15] 바이든 행정부의 비핵화 요구에 대해서 북한은 “불법 무도한 적대시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면서, “미제와는 사상으로써, 무장으로써 끝까지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도 차별화된다.[16]  대미정책을 자세히 밝힌 김정은의 작년 9월 연설에서도 “적대세력, 제국주의” 등을 소환했지만, 미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적대세력들이 우리 주변에서 무분별한 힘자랑 질을 한계 없이 계속하다가는 우리 인내심을 건드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여야 할 것입니다”라는 형태로 미국을 특정하지 않고 “적대세력”으로 통칭한다. 그러면서 널리 알려진 아래의 두 문장을 통해 미국과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17]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연설에 앞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나는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18] 북한의 대미 수사(修辭)를 고려할 때 이 정도의 표현은 사실상 대화를 원한다는 의지의 표방이다. 특히 김여정이 밝혔듯이 “핵을 보유한 두 국가가 대결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결코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최소한의 판단력은 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그러한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언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19]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사고”는 결국 비핵화 회담이 아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de facto) 인정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핵군축 협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8∼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는 분명 다르게 한반도 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가 아니라 미북이 적대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위기관리 형태의 핵군축 협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냉전 시기 미소가 온전한 평화공존이 아닌, 확전을 통한 핵전쟁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군축 협상을 한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제재를 해제 받고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나가는 것이 북한의 목표로 이해된다.  북한은 인도·파키스탄처럼 제재 해제를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원한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을 비롯하여 심지어 북한과 밀착된 러시아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1968년 비확산체제로 핵 독점권을 가진 5개 국가가 북한 핵을 인정함으로써 특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 국가가 북한 핵을 용인하는 것은 비확산체제의 붕괴로 이어져 핵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한국이 선봉에 설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북한은 인도·파키스탄처럼 제재 해제를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등극하는 경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종합하면 2026년 북한의 대미전략은 2025년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되, 실제 미북 협상 재개를 염두에 둔 보다 계산된 접근으로 진화하고 있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제재 해제를 도모하며 미국과의 담판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최소 조건으로 설정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 구도를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제재의 지속적 효과와 미 행정부의 전략 환경 변화를 동시에 활용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북한의 대남전략  북한의 대남전략은 2023년 12월 8기 9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천명한 ‘적대적 두 국가론’이 여전히 유효하고, 2026년에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선언하였다.[20]  이후 북한은 1947년 건국 이래 지속해온 하나의 민족 개념을 삭제하며,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대표적인 예가 평양에 위치했던 ‘조국통일 3대 헌장(자주·평화·민족대단결)’ 기념탑을 2024년 초 완전히 철거한 것이다. 이외에도 남북 군사분계선(MDL)을 ‘국경선화’하고, 북한 매체에서 ‘동족·통일’이라는 표현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며, 대남 통일 전담 기구도 폐지하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안인 통일 포기에 대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상징·제도·공간·군사·담론 차원에서 통일 개념 자체를 체계적으로 삭제하는 작업은 지속했지만, 왜 통일을 포기하는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비전이 무엇인지를 북한 최고 지도자 혹은 체제 차원에서 제시하지 못(안)하고 있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선대와의 단절에서 오는 부담감이 일부 작동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일성은 북한을 건국하면서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 통일’을 2대 역사적 사명으로 규정한 바 있다. 김정은의 통일 포기 선언은 김일성이 부여하는 정통성의 핵심 중 하나를 포기하는 행위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의 2025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주목된다. [21] 최고 지도자가 나서서 통일 포기에 대한 구체적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첫째, 사실상(de facto)의 두 국가론이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을 상정하며 김정은은 “우리와 대한민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두 개 국가로 존재해왔습니다”라고 주장한다. 둘째, 역사적 적대감을 초기부터 소환하며 한국 책임론을 제시한다. 이승만 정부와 대한민국 헌법 3조를 언급하며 “하나의 강토에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을 한사코 반대”한 것은 한국이라고 강변한다. 셋째, 한미의 연합훈련을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한국에 전략 자산을 끌어들이며 한국은 이러한 미국과 “야합하여 무분별한” 반북한 군사적 행동을 연합훈련 형식으로 해온다는 것이다. 넷째, 한국 정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적대적 타자로 정의한다. “현실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한국의 태생적 야망은 변한적이 없고 또 절대로 변할 수도 없으며 적은 역시 적”이라는 표현이 북한의 인식을 대변한다. 이전과는 달리 한국 정부와 한국민도 분리하지 않는다. ‘괴뢰 정부’와 ‘남조선 인민’을 차별화했던 표현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북은 철저히 이질화되어 더는 융합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 속국”으로 “사회주의 문화와 양키문화가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논거는 적대적 두 국가론이 김정은의 시정 연설시 표현처럼 “어제, 오늘 갑작스레 내린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닌”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뼈대 중 하나인 통일을 제거한 근본적 노선의 전환임을 확인할 수 있다[22]. 2026년 북한은 보다 본격적으로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적대적 두 국가론의 논거를 학습시키며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개최될 9차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이 이미 지시한 대로 북한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에 적대적 두 국가와 관련된 내용을 삽입시켜 제도화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김정은은 작년 9월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입니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23]  그러나, 북한의 문제는 김정은의 표현대로 남북관계를 “철저히 이질화되였을뿐 아니라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결국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주장할수록 오히려 체제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김정은의 주장은 남북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제1의 주적으로 적대시함으로써 결국 극복하고 승리해야 할 대상으로 타자화한 것이다. 김여정의 표현처럼 “서로 상관하지 말고 살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상대로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오히려 증대된 것이다.[24] 핵 보유를 제외한 군사·경제·사회·문화 측면에서 선진국인 한국을 상대로 한 북한이 경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통일 포기 선언은 결국 무력사용만을 선택지로 남긴다. 북한 체제에서 강조하는 대남 ‘혁명’은 표상적으로 통일, 평화, 민족을 근본으로 한다. 이를 삭제한 혁명은 김정은의 아래 선언만 남는다.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입니다.[25]  이에 따라 한국을 대상으로 한 끊임없는 군비경쟁과 군사력 강화를 추구하게 된다. 이는 완벽한 ‘선군’(先軍)의 부활로 북한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부과한다. 종합할 때 2026년 북한의 대남전략은 적대적 두 국가의 강화 및 제도화로 예상된다. 특히 본격적으로 한국을 적대시할 필요성을 북한 주민에 학습시키고, 9차 당 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를 헌법 또는 노동당 규약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북한의 노선이 제도화되므로 적어도 2026년 한 해 동안 혹은 그 이상으로 한국과는 김정은의 표현처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26]  북한 군사전략  2026년 북한 군사전략의 핵심은 ‘핵무력 및 상용무력 병진정책’으로 대변될 것이다. 김정은은 2025년 9월 국방과학원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장갑무력의 전투력이 크게 강화되었다고 평가한 뒤, “앞으로 당 제9차 대회는 국방건설 분야에서 핵무력과 상용무력 병진정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해, 핵무기 중심 노선을 핵·재래식 무기의 동시 발전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27]  이는 2021년 8차 당 대회에서 밝힌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의 핵 개발과는 차별화된다. 당시 북한은 이른바 “핵무력 건설 대업 완성”을 위한 핵기술 고도화, 핵무기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한 5대 전략 목표로 ① 극초음속 무기 개발, ② 초대형 핵탄두 생산, ③ 15,000km 사정권 내 타격 명중률 제고, ④ 수중 및 지상 고체연료 ICBM 개발, ⑤ 핵잠수함 및 SLBM 개발을 제시하였다.[28]  그러나, 2025년 들어서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 개발은 제한하고, 재래식 무기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경우 2024년 10월 화성 19형을 발사한 이래 2026년 1월 현재까지 시험 발사가 없다. 이후 모델인 화성 20형도 작년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실물만 공개했다. 반면, 김정은은 다양한 재래식 무기 개발을 현장 지도하고 있다. 해군의 경우 2025년 5월과 6월 각각 5천 톤급 최현호와 강건호를 진수하였다. 김정은은 이 함정을 “가장 강력한 무장을 탑재한 다목적 구축함”이라면서 “국가핵전쟁억제력의 일익을 담당할 해군의 핵심 전력”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최현급(5천톤급) 또는 그 이상급 구축함들을 매해 2척씩 해군에 취역시키겠다”라는 포부도 밝힌 바 있다. [29]  공군도 5월 김정은이 평양 인근의 한 “정예전투 비행사단”의 실시간 훈련을 참관하며 신형 공대공·공대지 무장 개발·배치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그 ‑ 29에 장착된 중거리 레이더 유도 공대공미사일, 또 다른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정밀유도 활강폭탄 등을 시험했다.[30] 이는 북한의 노후화된 공군력을 보완하기 위한 공군 현대화 의지의 시현으로 판단된다.  이외에도 2025년 3월에 자폭·정찰 드론 시험을 현지 지도했다. 김정은은 무인기와 인공지능을 “현대전의 기본방향”이라고 규정하고, “무인 체계와 인공지능 생산 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지능형 무인기’ 발전을 위한 종합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하였다.[31] 9월에는 전술공격 드론 성능시험을 하면서 무인 무기가 “육·해·공 전장에서 다양한 전술적 타격과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32]  김정은은 육군의 핵심전략인 기갑사단의 탱크 공장을 2025년 5월 시찰하면서 “지난 세기식 장갑무기를 최신형 탱크와 장갑차로 교체하는 것은 우리 군대의 무장장비 현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군의 장갑무기체계를 전면적으로 갱신하는 것이 당이 내세운 ‘제2차 장갑무력혁명’을 일으키는 핵심 과업”이라고도 했다.[33] 실체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한국군도 아직 개발 중인 능동방호체계가 탑재된 신형전차를 공개했다.  2025년에 보여준 북한의 노력은 ‘핵무력 및 상용무력 병진전략’으로, 분석적으로는 북한판 ‘재래식–핵 통합’(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 CNI)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재래식 전쟁과 핵전쟁을 명확히 분리하던 기존 구도를 약화시키며, 위기 상황에서 핵 사용으로의 이행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출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는 핵과 재래식 전력을 별개의 억제 수단으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 목표하에서 통합된 억제 및 전쟁 수행 체계로 기획·운용하려는 접근이다. 동 개념은 2010년대 초 미국에서 체계화되었으며, 그 사상적 기원은 1960년대 나토가 채택한 유연 반응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34]  북한이 이를 탐구하여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전구 전쟁계획과 위기·억제 계획에서 재래식 작전계획과 핵전력 운용계획을 분리하지 않고, 상호 연계된 시나리오와 선택지로 통합 설계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공개된 ‘핵방아쇠’와 ‘화산경보’ 체계는 이러한 통합 운용 구상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한미의 공격을 가정한 상황에서 재래식 전투 능력과 핵 대응 옵션을 함께 제시하여 최고지도자가 단계적·유연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조하는 체계이다. 특히 제한적 핵 사용 국면에서 지도자의 선택지가 ‘대규모 핵보복 또는 항복’이라는 양자택일로 축소되는 것을 방지하고, 재래식 지속전투와 제한적 핵 옵션 등 다양한 대응경로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한판 CNI에는 구조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을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CNI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대응 선택지를 신속하게 검토·선택하고 위기 단계에 따라 확전을 정교하게 관리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그러나 북한과 같이 수령 일인영도체제하에 정치·군사 권력이 극도로 집중된 체제에서는 이러한 운용이 본질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 및 주요 군사적 결정은 최고지도자에게 일원화되어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의사결정 권한을 하위 지휘관에게 분산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고강도 위기 국면에서는 정보 보고, 판단, 결심에 이르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시 또는 위기 상황에서 통신망이 교란되거나 지휘부가 물리적·전자적으로 타격을 받을 경우, 최고지도자의 결심이 전력 운용 체계로 전달되지 못하는 ‘결심 단절(decapitation risk)’ 위험이 발생한다. 이는 지도부 제거 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 지도부가 존재하더라도 통신·지휘 연결이 차단됨으로써 실질적인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뜻한다. 이러한 단선적·수직적 지휘체계에서는 상황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경로를 전환해야 하는 CNI의 요구인 단계적 확전 관리와 임기응변적 옵션 조정이 구조적으로 정착되기 어렵다.[35]  또한, 북한의 C4ISR 능력의 한계 역시 CNI 발전을 제약하는 핵심요인이다. C4ISR은 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s), 컴퓨터(Computers), 정보(Intelligen-ce), 감시(Surveillance), 정찰(Reconnaissance)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현대전에서 전력을 통합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정보·지휘의 신경망에 해당한다. CNI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목표 정보, 전장 전반에 대한 상황 인식, 타격 이후의 피해 평가(Battle Damage Assessment), 그리고 상대방의 의도와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 분석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제한적 수의 군사 정찰위성과 일부 전술 정찰 드론, 그리고 인적정보(HUMINT)에 대한 높은 의존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정보 수단은 범위와 정확성, 실시간 측면에서 근본적인 제약을 지니며, 특히 전자전이나 사이버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그 결과, 전구(戰區) 단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군사 상황을 하나의 통합된 그림으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래식과 핵 옵션을 연계해 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36]  가장 결정적인 취약점은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을 시간·공간적으로 정교하게 맞추는 ‘동시성(synchronization)’의 결여이다. CNI의 핵심 요구는 재래식 타격과 핵 옵션을 언제, 어디서, 어떤 신호로 결합할 것인가를 정밀하게 조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육·해·공·로켓군 간의 통합 지휘체계, 전술핵과 재래식 전력이 상호 연동되는 발사 플랫폼과 통제 체계, 그리고 실시간 정보공유가 가능한 합동 운용 구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군종 간 합동성이 제한적이며,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은 서로 다른 지휘·통제 체계 아래에서 운용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상대해야 할 대상이 미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군이 추진 중인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 Joint All-Domain Command and Control) 체계와는 질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하다. JADC2는 육·해·공·우주·사이버 영역의 모든 센서와 무기체계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해 지휘관이 즉각적으로 최적의 타격 수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인 반면, 북한은 이러한 수준의 기술적·조직적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위기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은 확전이 급속히 전개되고 조기 핵 사용에 대한 압력이 증대될 경우, 동시성을 확보하지 못한 CNI는 억제 안정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안정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37] 미국의 선제타격 유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CN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재래식 전력과 이를 뒷받침할 C4ISR 체계 구축에 필요한 기술력과 자본이 필수적이다. 이는 결국 경제적 자원을 추가로 군사 분야에 투입해야 함을 의미하며, 국방비 증액과 그에 따른 부담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북한이 추진하는 육·해·공 전력 발전은 질적·양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의 군사력과는 근본적인 격차를 보인다. 예컨대 5천 톤급 구축함 전력의 상징으로 제시되는 강건호는 2025년 5월 진수 과정에서 좌초 사고를 겪은 바 있으며, 이는 북한의 대형 수상함 건조·운용 경험이 여전히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 함정은 대잠 탐지 및 대어뢰 방어 체계 측면에서 제약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실제 전투 상황에서 생존성과 임무 수행 능력에 한계를 노출할 가능성이 크다. 공군 전력 역시 공대공·공대지 미사일을 자체 개발하고 있음에도, 북한이 보유한 가장 최신 전투기로 평가되는 미그-29 전투기는 1980년대 후반 도입된 4세대 기종으로, 한미공군이 운용하는 F-35 및 F-22와 같은 5세대 전투기와는 세대적·기술적 격차가 현저하다. 이러한 구조적 열세 속에서 북한판 CNI를 위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북한을 과도한 군비경쟁에 몰입시키고, 경제에 대한 부담을 더욱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론  2026년의 북한 전략은 ‘대화의 문을 남겨둔 채 제재 해제를 추구하고, 대남 적대 노선을 제도화하며, 핵과 재래식의 통합 운용을 통해 억제·전쟁 수행의 옵션을 확장하려는’ 방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내부적으로는 경제적 부담의 확대, 외부적으로는 위기 불안정성의 심화라는 비용을 동반한다.  한미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대응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화 국면이 열릴 가능성에 대비해 한미는 ‘협상 의제’와 ‘레드라인’을 미리 정교화해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의 사실상 인정과 제재 완화에 가깝다. 따라서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목표를 일괄 타결로 설정하기보다, 위기관리형 합의(군사 위험감소, 시험·배치 제한, 투명성 확대)를 단계적으로 쌓되, 그 과정이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제재 체계의 조건부 조정, 동맹 방위태세 유지, 검증 장치의 내재화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협상은 필요하지만, 협상의 구조는 북한이 원하는 방식(동맹 약화–제재 해제–핵보유 고착)의 순서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적대적 두 국가론’의 제도화 가능성에 대응하여 한국은 대북 메시지와 제도적 준비를 장기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북한이 통일 개념을 삭제하고 대남 적대를 제도화할수록, 단기적 화해 이벤트로 관계를 되돌리는 접근은 현실성이 낮아진다. 따라서 한국은 대북정책을 ‘대화 재개’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① 군사적 충돌 회피, ② 도발 억제, ③ 인도적 채널 유지, ④ 중장기적 통일·평화 담론의 국내 기반 강화로 재정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이 한국 정부와 국민을 분리하지 않는 담론을 강화할 경우, 한국은 오히려 북한 주민을 향한 메시지(생존·경제·미래에 대한 사실 기반 정보)를 일관되게 유지하여 ‘적대적 타자화’의 효과를 상쇄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선전전이 아니라, 체제 경쟁 국면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비용 대비 효과적인 장기 전략 중 하나이다.  셋째, 한미는 북한의 ‘연합훈련·전략자산 중단’ 요구가 협상의 최소조건으로 굳어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운용은 동맹 방위태세의 일부이자 위기 억제의 신호이므로, 이를 선제적으로 ‘거래 대상’으로 만드는 순간 북한은 협상을 ‘비핵화’가 아니라 동맹 약화와 대북 억제력 축소의 교환으로 재정의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동맹이 유연성을 전혀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양보의 형태가 아니라, 조건과 절차의 설계이다. 예컨대 훈련의 조정은 북한의 ‘정치적 요구’에 대한 상응 조치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위기 완화 조치(군사적 투명성, 특정 활동 중지, 위험감소 채널 가동 등)와 연동되어야 하며, 동맹 내부에서는 “훈련 축소=평화”라는 단선적 인식을 경계하고 훈련의 목적(억제·대비태세)과 형식(규모·공개성·시기)의 분리를 통해 정책 선택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판 CNI가 초래할 수 있는 위기 불안정성에 대비해 한미는 ‘조기 핵 사용 압력’과 ‘오판 가능성’을 낮추는 전쟁 억제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이 재래식과 핵을 연동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위기 상황에서 신호가 혼선되거나 동시성이 실패할 경우 우발적 확전의 위험은 커진다. 이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더 강한 응징’ 구호가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위기관리 장치의 확충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북한의 핵·재래식 운용을 분리하여 흔들기 위한 표적화된 비핵(非核) 억제 수단(정밀타격, 전자전, 사이버, 대드론/대미사일 방어)의 결합을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연합 차원의 경보·정보 공유 속도와 의사결정 절차를 단축하여 북한이 기대하는 ‘결심 지연’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위기 국면에서 상호 인식 오류를 줄이기 위해 군사적 핫라인, 우발 충돌 방지 메커니즘, 훈련·작전 신호의 관리(공개·비공개, 메시지 통일)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북한이 ‘옵션’을 늘리려 할수록, 한미는 옵션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억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종합할 때 2026년 한미의 대응은 ‘강경’과 ‘유연’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억제의 신뢰성을 높이면서도 위기관리와 협상 조건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복합 전략이어야 한다. ■  [1] 한국학중앙연구원, 「당대회(黨大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 [2] 통일연구원, “북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분석,” 『KINU Insight 16-01』, 2016.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4] Bob Woodward, Rage (New York: Simon & Schuster, 2020).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6] “대북정책 대미협의 주체 놓고 통일부-외교부 난데없는 기싸움,” 『연합뉴스』 2025.12.15. [7] Javier Brunson, Commander,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 remarks at the AUSA LANPAC Symposium, Honolulu, Hawaii, 15 May 2025.; Javier Brunson, Commander,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 remarks at an online discussion hosted by the Institute for Corean‑American Studies (ICAS), 27 May 2025 [8] Javier Brunson, Commander, United States Forces Korea and Combined Forces Command, keynote address at the 2nd ROK–US Combined Policy Forum, War Memorial of Korea, Seoul, 29 December 2025. [9] Yonhap News Agency, “S. Korea, U.S. inked new joint wartime contingency plan last year amid evolving N.K. threats,” Yonhap News (English service), 9 April 2025 [10] Trump White House Archives, “Press Conference by President Trump,” The White House, June 12, 2018, https://trumpwhitehouse.archives.gov/briefings-statements/press-conference-president-trump/ (검색일: 2026년 1월 22일). [11] David S. Cloud & Victoria Kim, “Trump’s demand that South Korea pay more for U.S. troops leads to impasse,” Los Angeles Times, January 11, 2019, https://www.latimes.com/nation/la-na-pol-trump-korea-troops-20190111-story.html (검색일: 2026년 1월 22일). [12]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대변인 성명, “미전략자산의 조선반도지역전개를 규탄,” 『조선신보』 2025.3.3.;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합동군사연습은 가장 적대적인 전쟁도발의지의 표현,” 『노동신문』 2025.8.19. 외 다수가 있다. [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1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15] “미국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중앙통신』 2017.9.22. [16]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조선중앙통신』 2021.5.2. [1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18] “조미사이의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뿐이다,” 『조선중앙통신』 2021.3.18. [19] “조미사이의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뿐이다,” 『조선중앙통신』 2021.3.18. [20] “조선로동당 제8기 제9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노동신문』 2023.12.31. [2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2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2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24]『조선중앙통신』 2022.8.19. [25] “조선인민군창건 76돐에 즈음하여 국방성을 축하방문하시여 하신 연설,” 『로동신문』 2024.2.9. [2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5.9.22. [27]『조선중앙통신』 2025.9.13. [28] 이호령, “북한 8차 당대회 최대 성과와 9차 당대회 전망,” 『Global NK 논평』, 동아시아연구원(EAI), 2025.12.5. [29] 『조선중앙통신』 2025.4.25.; 『조선중앙통신』 2025.6.12. [30]『조선중앙통신』 2025.5.16. [31]『조선중앙통신』 2025.3.26. [32]『조선중앙통신』 2025.9.18. [33]『조선중앙통신』 2025.5.4. [34] Justin Anderson and James R. McCue, “Deterring, Countering, and Defeating 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 Strategic Studies Quarterly 15, no. 1 (Spring 2021), Air University Press, accessed January 25, 2026, https://www.airuniversity.af.edu/Portals/10/SSQ/documents/Volume-15_Issue-1/Anderson.pdf [35] Shane Smith and Paul Bernstein, North Korean Nuclear Command and Control: Alternatives and Implications (Washington, DC: National Defense University Center for the Study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ugust 2022), accessed January 25, 2026, https://wmdcenter.ndu.edu/Portals/97/Documents/Publications/NK-Nuclear-Command-and-Control_Report.pdf [36] Markus Schiller,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Program: The Kim Jong Un Regime’s Current and Future Capabilities (Seoul: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2023), accessed January 25, 2026, https://repo.kinu.or.kr/retrieve/11859. [37] U.S. Department of Defense, Summary of the Joint All-Domain Command and Control (JADC2) Strategy (Washington, DC: Department of Defense, March 2022), accessed January 25, 2026, https://media.defense.gov/2022/Mar/17/2002958406/-1/-1/1/SUMMARY-OF-THE-JOINT-ALL-DOMAIN-COMMAND-AND-CONTROL-STRATEGY.PDF; Markus Friedrich and Eric J. Ballbach, “North Korea’s Fait Accompli: Scenarios, Drivers and Implications,” SWP Research Paper 2022/R 13 (Berlin: Germ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nd Security Affairs, August 2022), accessed January 25, 2026, https://www.swp-berlin.org/publikation/north-koreas-fait-accompli.  ■ 박원곤_EAI 북한연구센터 소장;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박원곤 2026-01-29조회 : 1922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⑨ 사면초가의 유럽: ‘돈로 독트린,’ 그린란드, 그리고 중국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1. 들어가는 말  유럽이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4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종전 협상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러시아의 서진 영토 야욕이 계속되고 있고, 나토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내놓으라며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혁신 동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고부가가치 제조업 상품 침투로 산업 기반이 잠식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단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지만 유럽 여러 나라에서 득세하는 극우세력은 정치적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안보 위협에 이어 동맹국 미국으로부터 영토 야욕 및 가치 갈등, 중국의 경제적 위협, 그리고 극우세력의 득세까지 그야말로 사면으로부터 위기 경보가 울리는 셈이다. 유럽은 대서양관계의 파국을 막고자 대미 외교에 힘쓰면서도 헤징전략의 일환으로 인도태평양지역에 손을 내밀고 있다.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이 대전환기에 유럽과 인태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과 연대가 절실하다. 이 국면에서 한국이 가치와 이익 모두에서 유럽과 연대해야 한다.  2. 대서양관계의 이완에서 파국?  돈로 독트린  유럽의 지정학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변화의 동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게 ‘전쟁 없는 평화’는 안보의 핵심 가치였다. 냉전 초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후 나토)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1949년 12개 유럽 및 북미 국가가 결성한 정치·군사 동맹으로 출범했다. 회원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이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 체제는 지속적으로 회원국을 늘려 왔고, 소련 해체 이후에도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통해 외연을 확대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평화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유럽 내에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는 사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나토의 임무도 전통적 전쟁 억지보다는 민주주의 가치 수호, 테러 대응, 사이버 안보 등 위기관리 임무로 이동해 왔다. 그러나,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당연시 되어 왔던 유럽의 평화를 깨뜨렸다. 회원국들은 냉전 종식이후 다시 러시아를 자국 및 역내 안보에 가장 중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회원국 수는 32개국으로 늘어났다.  둘째 변화 동인은 미국의 전략적 전환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가 미주 권역에 집중되면서 유럽으로부터는 멀어지고 있다. 나토의 군사적, 정치적 리더 역할을 하던 미국은 유럽 안보는 나토 회원국 스스로 짊어지라며 압박을 해오고 있다. 대서양관계의 긴장은 방위비 분담 차원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합의 이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2025년 2월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있었던 밴스(J.D. Vance) 미국 부통령의 기조연설은 유럽 지도자들에게 충격이었다.[1] 밴스는 유럽의 민주주의와 안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러시아나 중국보다 더 큰 위협은 유럽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 정책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는 전통적 안보 담론을 넘어서 ‘문화 전쟁’ 의제로 받아들여져 유럽 지도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왔다.[2]  이러한 가치 충돌은 2025년 11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3] 보고서는 유럽을 나토의 비효율적 방어 체제, 과도한 규제로 인한 경제 침체, 이민 문제와 DEI 가치 옹호 등을 이유로 유럽이 미국과는 다른 ‘문명적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20년 후의 유럽은 현재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며, 나토 회원국들 또한 비유럽계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 미국을 동맹으로 인식할지 의문이 든다고 서술한다. 보고서는 유럽과 러시아 간 전략적 안정성 조성을 위한 미국의 관여를 언급하지만, 나토의 확장에 대한 비판과 유럽의 경제·기술·통상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를 주로 하고 있다.  NSS 2025는 미국의 이익과 거리가 먼 지역에 대해서는 불간섭주의(non-interventionism)를 지향하고, 미주 지역(Western Hemisphere)에서의 패권 유지에 집중하는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으로도 불리는 이 전략 하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 마두로(Maduro)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생포해 뉴욕 법정에 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명분을 마약으로부터 미국 보호와 석유 자원 유치로 말하면서 민주주의 수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남미 좌파정권들을 향한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가 어디로 확장될지 모르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돈로 독트린에서 유럽은 뒷전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권역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만을 유익한 전략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곳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의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11월에 발표된 NSS 2025를 대서양동맹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 철회로 보고 있다.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로럴 랩(Laurel Rapp)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2017년 안보전략이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 보고서는 거래 중심의 접근과 권위주의 체제와의 타협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유럽은 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가변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재확인되었다고 인식한 만큼, 향후 파트너십 다각화를 통한 전략적 헤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4] 문화충돌에 대한 부분은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안토니우 코스타(António Costa)는 NSS 2025가 유럽 내정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동맹국은 서로의 정치적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어떤 정당이 옳고 그른지를 미국이 유럽 시민을 대신해 판단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미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한 EU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대해서도, 다원성 없는 정보 환경에서는 정보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며 유럽의 규제 자율성을 옹호했다.[5]  그린란드 병합 위협  잊을 만하면 불거지던 트럼프 대통령의 덴마크령 그린란드(Greenland) 매입 발언이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서양관계에 큰 긴장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2019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은 당시 이를 ‘터무니없다(absurd)’며 일축했는데, 이에 트럼프는 덴마크 방문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트럼프는 재집권하면서 그린란드 매입을 추진할 의사를 다시 내비치기 시작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2024년 12월부터 “미국은 그린란드 지배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2025년 1월엔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3월에는 고위급 미 대표단을 그린란드에 보냈다. 나토는 9월, 미국을 빼고 그린란드에서 군사훈련을 하면서 주권보호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12월 공화당 소속 제프 랜드리(Jeff Landry)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로 임명하여 덴마크 정부와 그린란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마두로 생포이후 트럼프가 다시 그린란드 병합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덴마크와 유럽 지도자들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미국의 서반구 팽창주의가 그린란드를 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월 4일 트럼프는 그의 전용기에서, “우리는 그린란드가 필요하다. 국가 안보 관점에서 그렇다.” "그린란드 도처가 러시아, 중국 선박으로 뒤덮여 있고, 덴마크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미국은 덴마크와 1951년 방위협정을 맺어 툴레 공군기지를 그린란드에 두고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할 수 있어 이런 논리는 계속 반박되어 왔다. 트럼프 발언 다음날인 1월 5일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다른 나토 회원국을 공격한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국제사회, 게임의 민주적 규칙,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연합인 나토가 와해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이 위협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6] 1월 6일, 나토의 7개 주요 회원국—-덴마크,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지도자들은 “그린란드의 일은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결정한다”는 공동 성명을 채택하였다. 성명은, “그린란드를 포함한 덴마크는 나토의 일부이며, 북극 안보는 미국을 포함한 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주권, 영토보전, 국경불가침을 포함하는 유엔 헌장을 지키는 가운데 집단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적었다.[7]  덴마크의 외교장관과 그린란드 관계자는 1월 14일 백악관을 방문해 밴스 부통령과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남을 가졌다. 당일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 기사에 의하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덴마크 측이 요청했던 만남이었으나 서로 다른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고 한다. 대신, 고위급 워킹그룹을 만들어 북극 안보에 관한 앞으로 논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회담에 앞서 자신의 SNS에 그린란드는 그가 구축하고 싶어 하는 미사일 방어체제인 골든 돔(Golden Dome)에 전략적 위치상 필요하며,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할 때 나토는 훨씬 강력하고도 효과적이게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이에 그린란드 방어에 연대감을 표시하고자 덴마크, 독일, 프랑스, 영국 등 8개 나토 회원국은 소수의 병력을 보냈다. 그러자 트럼프는 1월 17일 이들에 대해 2월 1일부터 10%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되면 기존 상호관세 15%에 더해져 25%의 관세를 내게 되는 셈이다.  그린란드 문제가 트럼프의 관세 위협으로 치닫자 유럽도 보다 강경해지고 있다. EU 지도자들이 지난해 대미 무역 협상 때 마련했던 160조원 규모의 보복관세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거나 미국 채권을 팔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덴마크의 한 연기금은 실제 보유하던 미 국채를 시장에 팔았다. 이에 영향을 받아 미 주식이 한때 폭락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추가 관세 대상이 된 나토 8개국은 1월 19일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추가관세 위협은 대서양관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강력히 경고했다.  이어 개막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은 트럼프 성토장이 되었다. 1월 20일 연설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법이 짓밟히며 유일하게 의미있는 법이란 가장 강한 자의 법인 무규범 상태로 들어서고 있다”며 “제국주의 야심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고 규탄했다. 21일 청중으로 꽉 채운 포럼 회의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는 북미의 일부로 당장 협상을 원하며, 무력으로는 병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진 마크 뤼터(Mark Rutte) 나토 사무총장과 회동이후 자신의 SNS에 관세 추가 부과를 철회하며, 그린란드와 북극의 미래에 관한 협상 틀에 합의했다고 썼다. 이 협상 틀은 그린란드에 미국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군기지를 건설하는 것과 광물 채굴권이 포함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뉴스에 그린란드 주민들은 나토가 자신들을 대신해 미국과 이런 방식으로 딜을 할 권한이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을 계기로 파국으로 치닫던 대서양관계는 일단 진정되는 모양새이지만 불신의 골이 깊어진 만큼 미국과 나토의 관계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의 대응  유럽 지도자들은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및 미주대륙 패권주의가 트럼프 행정부를 넘어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미·유럽 관계의 구조적 이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안보 환경에 직면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 2024년 하반기 이후 폴란드, 루마니아, 덴마크, 독일 등의 영공에 러시아산으로 추정되는 드론이 반복적으로 출몰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고, EU 지도자들은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드론 장벽’과 동부 전선 감시 체계 구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병제 부활 또는 새로운 군 복무제 도입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독일은 모병제를 유지하되 병력 부족 시 강제 징집을 가능하게 하는 병역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프랑스 역시 새로운 형태의 군 복무제 도입을 발표했다.  나토 집단방위의 전제는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보증과 작전 주도 능력이다. 미국은 GDP 대비 약 3.4% 수준의 국방비를 나토에 지출하며 동맹국에도 유사한 수준을 요구해 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나토는 각 회원국 GDP 대비 2% 국방비 지출을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했지만, 이행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의 압박 이후 유럽의 자강 노력은 가속화되고 있다. 2025년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고, 이 중 최소 3.5%는 핵심 방어 능력과 타켓 목표 공격 능력에 배정하기로 했다. EU 역시 27개 회원국 중 22개국이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군사 재무장을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2025년 ‘Readiness 2030’ 계획을 통해 군사적 기동성 강화와 방위산업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군사적 솅겐(Military Schengen)’에 가까운 목표로, 단일 승인 절차를 통한 군사 장비 이동, 긴급 패스트트랙 체제 구축, 인프라 우선 접근권 보장, 물류·수송 역량 공유, 나토 및 파트너국과의 협력 강화를 포함한다.[8]  이러한 유럽의 자강 노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재무장과 병행하여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을 유지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시에, 트럼프의 추가 관세 위협을 일단 막아낸 유럽 지도자들은 예측불허의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더 이상의 양보 없이 자신들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도모할 것이다.  3. 유럽 내 중국 위협감 확산과 대중 디리스킹 전략  유럽의 중국과의 관계는 견제와 갈등이 확산될 전망이다. EU는 2019년 3월 EU-China: A Strategic Outlook에서 설파된 3중 대중 전략을 추구해 왔다. 중국을 환경과 같은 지구적 과제의 협력자, 통상과 투자에 있어 경쟁자, 체제문제에 있어서는 권위주의 확산을 막아야 할 시스템 라이벌로 간주해 대응하는 것이다.[9]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편을 든 중국을 보면서 중국 역시 안보 위협으로 보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에 더해 중국이 유럽 산업을 공동화하고 있다는 경제적 불안감이 커졌다. 중국 제조업의 저가 과잉생산과 불공정 경쟁으로 말미암아 자동차 및 기계산업, 의약품, 반도체 등 유럽의 성장과 안정을 해칠 ‘중국 쇼크 2.0’이 휘몰아치고 있다고 본다. 유럽 제조업 경쟁력 약화는 고용과 복지를 중시하는 유럽의 사회경제 정책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대중정책이 경제안보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다.[10] ‘중국 쇼크 1.0’이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저임금 경공업 중심의 중국 수출품 범람으로 선진국 특히 미국 제조업과 고용에 충격을 주었다면, 2.0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로봇, AI, 반도체 장비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에서의 과잉생산과 수출 공세를 의미한다. 즉, 이번에는 유럽의 핵심 산업과 전략 산업 자체가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2024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EU의 3위 수출국이자 1위 수입국으로 EU의 대중 무역 적자는 수백억 유로에 달한다. EU의 대중 수출은 2023년 192억 유로, 2024년 168억 유로이지만, 같은 기간 중국으로부터 수입은 464억 유로와 441억 유로였다. 두 해 모두 매년 무역적자가 약 270억 유로에 달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서 제조업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2024년 기준으로 중국으로부터 EU가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들은 전기통신장비, 자동차 프로세싱 기계, 전기 기계 및 장치 등 제조업 품목들이다.[11] 중국 수출품 주력이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유럽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중국 전기차가 독일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힌 예는 전형적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편, 메르세데스, BMW, 아우디 등 독일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중국 시장 판매는 감소하고 있다.  중국이 유럽 산업을 공동화하고 있다는 위기인식 배후에는 집중 투자와 혁신으로 무장한 중국 제조업 부흥이 지정학적 경쟁과 맞물려 총력전 양상의 정치경제 모델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유럽의 핵심 산업을 약화시키는 소용돌이를 맞아 단일시장으로서의 스케일을 활용해 투자와 혁신을 통해 전략산업을 보호 및 육성하고 유연한 공급망 확보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2]  경제안보 측면에서 유럽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디리스킹(De-Risking)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이다. 2024년 9월 발간된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가 주도한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는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와 함께 디지털과 희귀광물 공급망 등 대외 의존도를 줄일 것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13]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유럽에 대해 전격적으로 실시되지는 않았지만 희토류 통제도 유럽 경제안보의 우려 사항이다. Rebecca Arcesati와 Jacob Gunter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통상 갈등에 대한 보복 차원을 넘어서 중국의 산업 지배력 유지, 중국으로의 생산 투자 유도, 무기 생산 억지 등과 같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민·군 분야 모두에 공급망 차단 효과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라이센스제를 도입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데 수입된 희토류 재고가 떨어지면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배터리 생산을 일시 중지하고 물량이 들어오기를 대기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는 결국 중국 전기차의 지배력을 돕기 위함이란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광물자원만이 아니라 이를 가공하는 기술까지 포함해 다른 나라들이 희토류 생산능력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는 EU가 유럽 기업들에 보조금 지원, 보호규제, 중국 희토류의 수입 쿼터 도입을 통해 중국에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4]  유럽과 미국은 중국의 제조업 과잉생산에 공동 대응해 효과성을 높이고, 핵심 첨단기술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고, 공급망 안전을 위한 협력하는 등 중국 견제를 위한 협력 어젠다가 많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관계가 위축되어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대중 공동전선을 펼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보에 있어서는 미국에게 가장 큰 중국 위협은 대만문제라면 유럽에게는 역내 중·러 밀착으로 결이 다르다. 경제 영역에서도 관세나 기술정책에 있어 파열음을 내고 있어 중국 견제에 대한 상호 협력은 선택적이고 부분적일 가능성이 높다.[15]  유럽과 미국 사이 대중 공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 주요국들이나 EU는 대중 디리스킹 전략의 일환으로 인태지역 국가들과의 협력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 경우 공급망 안정이나 사이버 안보 문제에 있어 중국에 대해 위협감을 갖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주 대상이 될 것이다. EU의 접근방식은 미국보다 다자적이고 제도적인 협력 방식을 취할 것이어서 한국, 일본, 호주 등 주요 인태지역 국가들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 우선주의에서 다각화를 꾀하는 헤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유럽과 미국의 극우 연대의 한계  유럽 내 극우 세력의 확산은 이제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 정치조류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역·분쟁·환경과 같은 초국가적 협력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이민과 인종·종교적 다원주의보다는 토착 문화 보호를 강조하는 비자유주의적 조류는 유럽과 미국 공통이어서 양측의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 이후 구성된 720석의 유럽의회는 8개 정파와 무소속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그룹은 세 개로 나뉜다. 유럽보수개혁그룹(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ECR, 78석), 유럽을 위한 애국자 그룹(Patriots for Europe, 84석), 주권국가 유럽 그룹(Europe of Sovereign Nations, ESN, 25석)이다. ECR과 Patriots는 EU 탈퇴보다는 EU를 국가 주권을 중시하는 정부 간 연합체로 개혁하는 노선을 지향한다. ECR에는 프랑스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RN), 이탈리아의 프라텔리 디탈리아(Fratelli d’Italia), 루마니아의 AUR,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 등이 속해 있다. 2024년 선거를 계기로 새롭게 결성된 Patriots 그룹은 세 번째로 큰 정파로 부상했으며, 프랑스 RN, 이탈리아의 레가(Lega), 스페인의 복스(Vox),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의 피데스(Fidesz)가 참여하고 있다. ESN 그룹에는 독일 대안당(AfD)을 비롯해 불가리아, 체코, 프랑스, 헝가리,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의 정당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급진적인 주권주의 성향의 그룹으로, EU 권한의 대폭 축소 또는 제한적 경제공동체 수준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며 환경 협력과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반대하고, 이민의 중단을 추구하는 강력한 토착 민족주의 성향을 보인다.  유럽의 극우 정당들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지방정부를 장악한 데 이어 중앙정부 차원의 집권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프랑스 RN, 영국의 개혁당(Reform UK), 독일 AfD 등은 전통적인 좌·우 정당의 지지 기반을 잠식하며 세를 불려 왔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가 이끄는 개혁당의 지지율이 노동당과 보수당을 모두 앞지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유럽 극우정당들이 단독정부를 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연립정부에 파트너로 참여해 유럽의 주류 정당들의 정책과 엇박자를 낼 가능성은 크다.  Besch와 Verma는 이러한 극우 정당들을 ‘수정주의 우파’로 규정하며, 이들이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과 광범위한 연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총리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이 MAGA 운동과 유사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들을 유럽의 대표적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특히 AfD는 MAGA 네트워크와의 유대가 두드러지는데,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고 발언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밴스 부통령과 머스크가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비판하는 입장이나, 트럼프 행정부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평가절하 하는 태도 역시 AfD를 비롯한 유럽 극우 정당들과 유사해 협력을 통해 상호 정당화를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일부 극우 정당들은 러시아산 가스 재수입 등 경제적 화해를 주장하며 나토의 대러 제재 단결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16]  그러나, 이들의 연대는 제한적일 것이다. 국가 주권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국제기구와 초국가적 연합체를 경계한다는 점에서 MAGA와 유럽 극우 세력은 유사하지만, 초강대국인 미국과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 개별 국가들 사이에는 국력과 전략적 선택지가 크게 다르다. 미국은 UN, WHO 등 주요 국제기구 재정의 최대 기여국이자 막강한 군사강국으로 다자체제에 대한 선택적 탈퇴 및 거리 두기가 가능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다자 협력에서 훨씬 더 큰 이익을 얻는 중견·중소 국가들이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브뤼셀의 간섭을 이유로 EU를 탈퇴하는 선택은 이미 버려진 카드가 되었다. 특히,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 농민과 노동자 보호를 핵심 의제로 삼는 유럽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의 이해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작년 유럽 대미 수출품에 대한 갑작스러운 추가 관세부과는 MAGA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 MAGA와 유럽 극우 세력 간의 간극은 더욱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전반에 확산된 실존적 안보 위협 인식은 나토를 구심점으로 한 집단 방위와 역내 협력 강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중국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일부 유럽 극우 세력의 태도 역시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과 상충될 여지가 있다. 그린란드 분란은 유럽의 극우세력으로 하여금 트럼프의 패권주의에 경각심을 일깨웠을 것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수정주의 우파 연대는 반이민·반다양성이라는 포스트 리버럴 가치 차원의 느슨한 연대에 그칠 것이다.  5. 유럽, 다시 인도태평양지역으로  대서양동맹의 이완은 유럽으로 하여금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국가들과 관계 강화를 도모하게 만들 것이다. 유럽의 인태지역으로의 전략적 관여 강화는 헤징전략의 논리적 귀결인 셈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2010년대 말에서 2020년 초 사이에 규칙기반 질서 옹호를 위한 인태전략에 동참한 바 있다. EU[17]를 비롯해 영국,[18] 독일,[19] 프랑스[20] 등 주요국들은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의 연계를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인태지역에서 안보, 경제, 체제 차원에서 날로 확장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는 것이 전 세계의 규칙기반 질서 확립에 핵심적이라는 생각을 미국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유럽의 인태전략이 실질적 정책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유럽으로 하여금 다시 인태지역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전쟁 발발 약 4개월 후인 2022년 6월, 나토는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이른바 IP4 국가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조치로, 당시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지지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IP4 국가들은 이후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나, 2025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는 뉴질랜드 총리만이 정상 자격으로 참석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정상 대신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나토와 인태 지역의 미 동맹 국가들 사이에 상호 협력이 심화되는 흐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이 IP4와의 협력을 지속·강화하기 위해서는, IP4 국가들에게 미국의 명시적 지지가 없이도 유럽 안보에 관여하는 것이 인태지역의 핵심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유럽은 인태 국가들의 안보문제에 유럽이 기여할 수 있는 군사적, 외교적 지원 역량이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은 군사적 협력보다는 자유와 인권, 규칙 기반 국제질서 수호라는 가치 외교를 인태 관여의 토대로 삼되 경제안보 분야를 보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군수 물자, 희귀 광물, 공급망 안정화, 디지털 및 AI 기술 협력 등 실질적 이익이 걸린 분야에서 한국·일본·호주와의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북·중·러 간 전략적 밀착과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은 유럽 안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으나, 동시에 중·러와 관계 개선도 추구하고 있어 유럽 안보를 위한 능동적인 외교는 제한적일 것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한국에게 직접적인 군사 지원보다는 유럽 방위에 기여할 수 있는 군수 물자 수출 및 방산협력,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반도체 등 공급망 협력, 다자체제 옹호 국제공조 등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6. 나가는 말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러시아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재무장과 안보 결속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대서양 동맹의 약화로 인해 인태지역과의 협력을 헤징 전략 차원에서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그린란드 병합 위협으로 미국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만큼 헤징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아가는 자유주의 유사입장국 간의 연대를 인태에서 찾으려 할 가능성도 크다. 안보나 통상 모두 아직 막강한 미국 영향력 아래 놓여 있지만 미중 경쟁에 치여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과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동인은 상당히 존재한다. 특히, 유럽은 대중 디리스킹 전략상 유럽 주요국들이 반도체, 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아시아 주요 제조업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또한 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 및 제조업 주요 부품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협력에도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들 문제는 아시아 주요 제조업 국가들도 공유하는 문제인 만큼 협력의 폭이 클 수 있다.  강대국들이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강압의 무기로 활용하거나 심지어는 영토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무질서의 시대를 맞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가 연설했듯이, 강대국에 순응하는 것이 안전을 담보하지 않으며, 중견국들은 인권 존중, 지속가능한 발전, 연대, 주권 및 영토보전과 같은 가치를 포함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힘이 있다.[21] 강대국에 편승하거나 각자도생으로는 자율성을 얻을 수 없기에 아시아의 중견국인 한국은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있는 혼돈의 시기에 상호 존중과 호혜의 다자질서가 최소한의 범위에서 작동하도록 연대하는 것이 각 나라와 세계 모두에 이롭다. 이 목표에 있어 유럽 국가들은 가장 잘 준비된 파트너일 것이다. ■  [1] MSC, Munich Security Conference 2025: Speech by JD Vance and Selected Reactions, April 2025. https://securityconference.org/assets/02_Dokumente/01_Publikationen/2025/Selected_Key_Speeches_Vol._II/MSC_Speeches_2025_Vol2_Ansicht_gek%C3%BCrzt.pdf [2] 연설 도중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던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후 열린 유럽 방위 패널에서,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되 이를 파괴하려는 극단주의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나치즘에 대한 “네버 어게인(Never Again)”이라는 독일 사회의 합의와, 민족사회주의 범죄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독일대안당(AfD)은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3]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ovember 2025. 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25/12/2025-National-Security-Strategy.pdf [4] Laurel Rapp, “Trump’s new national security strategy: Cut deals, hammer Europe, and tread gently around autocrats,” December 9, 2025. https://www.chathamhouse.org/2025/12/trumps-new-national-security-strategy-cut-deals-hammer-europe-and-tread-gently-around?utm_source=chatgpt.com [5] POLITICO, “EU’s Costa warns US against interference in Europe,” December 8, 2025. https://www.politico.eu/article/eu-council-antonio-costa-warns-us-against-interference-in-europe/ [6] Reuters, “Denmark's prime minister says Trump is serious about wanting Greenland takeover,” January 5, 2026.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denmarks-prime-minister-says-trump-is-serious-about-wanting-greenland-takeover-2026-01-05/ [7] Foreign Policy World Brief, “NATO Leaders Push Back Against Trump’s Greenland Threats,” January 6, 2026. https://foreignpolicy.com/2026/01/06/trump-annex-greenland-nato-frederiksen-denmark/ [8] EU Commission, “ Commission takes steps to modernise European defence and improve military mobility,” https://commission.europa.eu/news-and-media/news/commission-takes-steps-modernise-european-defence-and-improve-military-mobility-2025-11-19_en [9] EU Commission, EU-China: A Strategic Outlook, March 2019. https://commission.europa.eu/system/files/2019-03/communication-eu-china-a-strategic-outlook.pdf [10] Abigael Vasselier and Tara Varma, “How should Europe position itself for systemic rivalry with China?.” Brookings Commentary, December 5, 2025. https://www.brookings.edu/articles/how-should-europe-position-itself-for-systemic-rivalry-with-china/ [11] eurostat, “China-EU -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statistics,” https://ec.europa.eu/eurostat/statistics-explained/index.php?title=China-EU_-_international_trade_in_goods_statistics. [12] Jacob Gunter and Mikko Huotari, “Shockwaves Made in China,” Internationale Politik Quarterly, October 20, 2025. https://ip-quarterly.com/en/shockwaves-made-china. [13] European Commission, “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 Plan A/ A competitive strategy for Europe,” September 2024. https://commission.europa.eu/topics/competitiveness/draghi-report_en#paragraph_47059 에서 다운로드. [14] Rebecca Arcesati와 Jacob Gunter, “China’s multi-purpose export controls raise pressure on Europe to derisk,” Mercator Institute for China Studies, October 1, 2025. https://merics.org/en/comment/chinas-multi-purpose-export-controls-raise-pressure-europe-derisk. [15] Zack Cooper, “How should the United State cooperate with Europe on China strategy?.” Brookings Commentary, December 5, 2025. https://www.brookings.edu/articles/how-should-the-united-states-cooperate-with-europe-on-china-strategy/. [16] Sophia Besch and Tara Verma, “Alliance of Revisionists: A New Era for the Transatlantic Relationship,” Survival 67;2, April-May 2025, pp. 7-38. [17] The EU Strategy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 2021년 9월. [18] 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Edge: the Integrated Review of Security, Defence, Development and Foreign Policy, 2021년 [19] Policy Guideline for the Indo-Pacific Region, 2020년 [20] France’s Defence in the Indo-Pacific, 2019; France’s Partnerships in the Indo-Pacific, 2021. [21] Davos 2026: Special address by Mark Carney, Prime Minister of Canada. https://www.weforum.org/stories/2026/01/davos-2026-special-address-by-mark-carney-prime-minister-of-canada/  ■ 이숙종_EAI 석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특임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이숙종 2026-01-27조회 : 1653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⑧ 2026 미중 군사안보 전략 변화와 한국의 국방전략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1. ‘새로운 애치슨 라인’의 공포  2025년 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1년은 2차대전 이후 전후 질서를 구축해 온 미국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기부정의 시간이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핵심이익이 걸려있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여한다는 원칙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전방 방위 역할을 일본, 한국, 대만 등 동맹국에게 분담하고 미군 주력은 제2 도련선 밖으로 물러나는 방향의 안보전략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미국 정책 커뮤니티에서 높아지자(김양규 2025/09/16) 한국에서는 미국이 제2의 애치슨 라인을 그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었다(중앙일보 2025/04/01; 이백순 2025/10/22). 이러한 우려는 1950년 1월, 애치슨(Dean Acheson)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선언한 후 반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경험에서 기인한다. 동맹국들에게 국내총생산(GDP) 5% 수준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실은 미국의 핵심이익 영역에서 한반도를 배제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는 의심이 든 것이다.  그런 와중에 11월 15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통해 30년 넘게 번번이 좌절됐던 원자력추진잠수함(SSN) 건조를 트럼프 행정부가 “승인(approve)”하고,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지지를 보내자 ‘외교적 쾌거’라는 표현이 신문 지면을 가득 메웠다. 공포와 환희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가운데 12월 5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이 공개되었다. 이번에는 전략서 전문에서 북한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각되며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한반도가 배제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이유미 2025/12/06).  지난 한 해 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과도한 수준의 유연성과 다분히 거래적인 행보를 생각하면 2026년 한국이 직면할 한반도 안보 환경 또한 녹록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서반구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미국의 세력권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에 대한 세력균형을,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협상을 통한 거래적 접근을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전재성 2026/01/02)는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있을까? 미국의 2026년 국방전략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 중국은 어떤 국방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두 초강대국이 그리는 그림이 만나면 서태평양에서 형성될 군사질서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그렇다면 2026년 한국의 국방전략 과제는 무엇이며 한국은 어떤 대비가 필요할까?  2. 미국의 국방전략 변화: ‘단극시대 종식’ 속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 추구  이번에 발표된 NSS에서 강조하듯, 전략(strategy)은 “목표와 수단을 연결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이고, “평가하고, 분류하며,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업이다. 이 때문에 NSS는 트럼프 대통령의 서문을 포함하여 문서 전반에 우선순위에 대한 예민한 인식을 여러 차례 강하게 드러낸다(Whitehouse 2025). 국익을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전략에 대한 논의에서 ‘무엇이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NSS가 공개되기 이전에도 작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제기되었다.  (1) 전략적 재검토의 배경: “리프먼 갭(Lippmann Gap)”과 우선순위 논쟁  처음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제기한 사람은 콜비(Elbridge Colby)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다. 지난 2025년 3월 4일 정책차관 지명자 신분으로 참석한 의회 청문회에서 콜비는 국가가 달성하고자 하는 대외 정책 목표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자원 및 정치적 의지 사이의 불일치 문제, 즉 “리프먼 갭”(the Lippmann Gap)을 지적하며, 미국이 전 세계 모든 위협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대신, (1)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가용 자원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거부적 억지력 확보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면서 동시에 동맹국들이 자신의 안보를 위해 더 많은 국방 비용을 지불하고 책임을 분담하도록 촉구할 것과, (2) 미국 본토 방어와 국방 산업 기반의 혁신을 핵심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의 전 수석 고문이자 콜비와 함께 미국의 NDS를 함께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칼드웰(Dan Caldwell)은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역량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제1도련선 내 미군의 생존성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보았다. 이는 사실 새로운 주장이 아니며 2020년대 초 미국의 정책 커뮤니티에는 워게임을 돌려보면 제1도련선 내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시 미국이 상당히 불리한 것으로 나온다는 인식이 확산 되어 있었다. 개전 초기에는 미국이 우세하나 그 이후에는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심지어 미국이 군사적 목표 달성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1도련선 내 미중 분쟁 발생시 미국과 중국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비율이 10,000:1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Allison 2020). 따라서 주한미군 병력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등 미군 주력은 괌이나 호주 등 제2도련선으로 후퇴시켜 전력을 보존하고, 한국 등 동맹국이 전방 방위를 책임지는 방식을 제안하였다(Kavanagh and Caldwell 2025).  그러나 콜비 뿐 아니라 파파로(Samuel Paparo) 인태사령관도 미군이 제1도련선에서 물러날 경우 지역 내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압도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 중국을 견제할 동인이 급격히 줄어들어 동맹 네트워크가 붕괴될 것으로 우려했다. 콜비는 예전부터 미국이 직접적인 소모전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동맹국들이 ‘반패권 연합(Anti-hegemonic Coalition)’에 참여할 수 있는 동인을 미국이 제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고(Colby 2021), 파파로 사령관도 중국의 A2/AD 방어망 밖에서 무인 전력과 타이폰 미사일, 해군·해병대 원정 선박 차단 체계(NMESIS), B-21 스텔스 폭격기 등 장거리 타격 능력으로 제1도련선 내에서의 대중 억지력을 유지한다는 전략을 제시하였다(Paparo 2025).  따라서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 신 국방전략 방향을 두고 칼드웰 류의 논의와 콜비 류의 논의가 경쟁을 벌인 것을 알 수 있다. 전자는 미국의 군사력을 괌과 호주가 있는 제2도련선으로 후퇴시키고, 1도련선의 방어는 동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의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은 불필요한 해외 개입을 축소하고 ‘본토 방어’에 집중하자는 흐름이다. 후자의 경우 본토 방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미래 성장 동력의 핵심인 인태지역이 여전히 중요하고, 이 지역에서 중국이 패권으로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동맹국들에게 충분한 역량 제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입장을 견지하는 세력은 중국에 대한 충분한 억지력 유지, 인태지역의 동맹 네트워크 관리 등에 방점을 찍는 견해를 견지한다.  (2) 칼드웰 vs. 콜비: NSS vs. NDS?  NSS는 이같은 미 국방정책 커뮤니티 내 논쟁 맥락을 고려하여 읽어야 한다. 서문에서 트럼프는 취임 후 자신의 핵심 업적을 언급하며 국익의 우선순위를 암시하는데, 곧 (1) 미국의 국경 회복, (2) 미군 내 급진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와 ‘워크(woke) 광기’ 제거, (3) 1조 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군사력 강화, (4) 동맹 재건 및 공동 방위에 대한 동맹국들의 기여 확대, (5) 에너지 생산과 자립 회복, (6) 핵심 산업 리쇼어링이었다.  본문에서 밝히는 국가안보 우선순위(Priorities)는 이러한 트럼프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런데 (1) 대규모 이주 시대 종식과 국경보안, (2) 핵심 권리와 자유의 보호(예. ‘정치적 올바름’과 “Woke 문화” 척결), (3) 동맹국에 대한 부담 분담 및 전환(Burden-Sharing and Burden-Shifting), (4) 평화를 통한 재정렬 노력(예. 캄보디아-태국, 코소보-세르비아 등 주변부 갈등 봉합), (5) 경제 안보(예. 균형 무역, 공급망 확보, 재산업화, 에너지 우위 등)로 구성된 동 리스트에서 중국은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국내 언론은 NSS에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만 주목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다. 문서 전체를 통틀어 중국은 총 21번 언급되는데, 미국 국가안보 전략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 이 문서에서 중국을 ‘군사적 억지’의 대상으로 언급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심지어 아시아 지역 전략을 논의하는 절의 제목은 “경제적 미래 담보, 군사적 대결 방지(Win the Economic Future, Prevent Military Confrontation)”이다. 해당 절에서 이전 민주당 행정부가 가진 중국에 대한 잘못된 관점(예.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국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편입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비판, 인공지능(AI)·양자컴퓨팅·자율시스템·에너지 등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해 승리해야 한다는 내용은 언급되나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어서 등장하는 군사적 위협을 정리한 절에서도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그 중요성을 ‘반도체 생산’과 매년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남중국해의 가치와 연관되어 설명한다. 한국은 단 3차례 언급되는데, “순 해외 자산을 보유한 국가”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필요한 나라로 언급될 뿐이다(Whitehouse 2025).  따라서 NSS는 콜비 보다는 칼드웰 측 관점에 손을 더 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견제’와 ‘북한 위협 대응’이 명시되지 않은 것은 단순 누락이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경제 우선, 대결 회피, 동맹 비용 압박’이라는 핵심이익 우선순위를 더 민감하게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물론,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내용은 곧 공개될 NDS의 몫으로 남겨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3) 2026 국방전략서(NDS) 전망: 단극시대의 종결 속 압도적 군사력 유지  그렇다면 미국의 국방전략 방향을 정확히 읽기 위해서는 NSS보다 NDS 내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NDS 내용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는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연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NSS가 발표되기 이전의 2025년 5월 31일 샹그릴라 대화 연설과 NSS가 발표된 직후 12월 6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연설을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헤그세스는 미군의 3대 핵심목표로 전사 정신(Warrior Ethos) 회복, 군 재건(Rebuilding), 억지력 회복(Reestablishing Deterrence)을 꼽는다. 억지력의 우선순위로는 본토 방위와 골든돔을 먼저 언급하기는 하지만, 이후 상당히 많은 분량을 대중국 억지를 설명하는 데 할당한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시진핑이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고 군에 지시했다는 것은 공개된 정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국방부의 최우선 과제로 서태평양 지역에 “전방에 배치된 전투 신뢰성이 높은 전력(forward-postured, combat credible forces)”을 통해 제1·제2도련선을 따라 ‘거부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denial)’를 구현하는 것과 이를 위한 필리핀과의 안보 협력 방향을 제시한다. 아울러, 앞서 파파로 사령관이 밝힌 NMESIS와 같은 무기체계, 그리고 동맹국과 첨단기술 무기 플랫폼의 상호운용성 제고 등을 언급한다(Hegseth 2025a). 전반적으로 콜비가 그리는 대전략 그림에 잘 부합되는 연설이었다.  그런데 12월 연설에서는 분위기가 바뀐다. 서두에서부터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한 와인버거(Caspar Weinberger)의 이름을 딴 와인버거 독트린을 언급하여 해당 내용을 소개한다. 핵심은, 미국 또는 동맹국의 중대한 국가이익이 걸려있는 문제에서만 군을 투입하고, 명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만 군사적으로 개입하며, 군 병력의 투입은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고려한다는 것이다. 군사력의 사용은 신중해야 한다는 자제의 논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어서 군의 ‘4대 핵심 노력’으로 다음을 언급한다. (1) 미국 본토 및 서반구 방어(예. 군 병력을 투입해 국경 봉쇄, 마약 카르텔 소탕, ‘골든 돔’ 구축, 서반구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 (2) 대결이 아닌, 힘을 통한 중국 억제(예. 중국을 지배(domination)하는 것이 아닌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유지, 제1도련선에서 ‘거부에 의한 억지’ 구현,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 유지), (3) 동맹 및 파트너의 부담 분담 증대(예. GDP의 5% 국방비 지출 목표 제시), (4) 미국 방위 산업 기반의 초격차 확보(예. 역동적인 벤더(vendor) 중심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무기 생산 속도와 규모를 증대)가 그것이다(Hegseth 2025b).  5월 연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강조점에 있어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 5월에는 국내와 국외 안보 우선순위를 같이 언급하며 본토방위와 중국 억지 사이에 위계가 없는, 동시에 추진하는 목표처럼 언급되었으나 12월 연설에는 중국 억지가 두 번째 과업으로 우선순위가 확실히 규정되었다. 둘째, 5월 연설에는 미 국방력의 주요 노력 노선을 중국 억지 맥락에서 설명하였으나 12월 연설은 미사일·사이버 방어 및 3대 핵전력(nuclear triad) 현대화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군사력 강화 논의를 본토방위 맥락에서 설명한다. 셋째,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데, “단극시대는 끝났다(unipolar moment is over)”는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하면서도, 인태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매우 강력하여 (다른 국가들이) 침략을 아예 고려조차 하지 못하는(so strong that aggression is not even considered)” 구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추후 공개될 NDS가 칼드웰 류의 시각에 수렴하지는 않겠지만, 콜비가 2025년 8월 말 경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초안 버전보다는 더 NSS에 가까운 형태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더 이상 미국이 세계 패권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말과, 인태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하여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이 NDS를 관통하는 핵심 원칙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 원칙은 일견 매우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집중,” “우선순위 설정,” “목적의 명확성”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 진의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불법이민 단속과 마약문제 해결을 위한 군사력 투사와 서반구에서 압도적인 역량 유지 및 사용이 미 국방정책의 핵심이 되고, 동시에 인태지역에서는 A2/AD를 내세운 중국의 제1도련선 내 재래식 군사력 우위를 ‘상쇄’하는 전략과 이에 필요한 능력을 구비하는 그림인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파파로 사령관이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시한 “지옥도(Hellscape)” 구상이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감행할 시 수천 개의 무인 잠수정, 무인 수상정, 공중 드론(aerial drones)을 대만 해협에 즉각적으로 투입하여 동 지역을 “무인 지옥”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는 중국이 속전속결로 대만을 점령하는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을 쓰지 못하게 만들면서 중국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게 강제하는 동시에 미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이다(Washington Post 2024). 이 외에도 미국은 본토 방위에 집중하면서도 중국에 대해 압도적 군사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인데, 그 핵심은 후술하게 될 동맹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3. 중국의 국방전략 변화: ‘전략적 대체’에서 핵 강대국 경쟁으로  헤그세스가 ‘단극 시대의 종결’을 공식화한 이면에는 중국 군사력의 비약적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서태평양 제1도련선 내에서 중국의 재래식 전력과 정보화 무기체계(정밀타격, 사이버, 대(對)우주무기 등)는 이미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린 것으로 평가된다.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미국 국방비의 50%를 넘어선 중국(Robertson 2025)은 그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제1도련선 내 군사력 구축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중국이 보여주는 수직적 핵 확산의 속도는 중단기적으로 미국과의 경쟁에서 중국이 상당한 수준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확보하게 될 것을 보여준다.  (1) 제3차 대만위기(1995-1996)와 “전략적 대체” 태세 태동  제1도련선 내 중국의 군사력 증강 과정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커닝햄(Fiona S. Cunningham)이 제시한 “전략적 대체(Strategic Substitution)” 개념이다(Cunningham 2025). 지난해 4-5월 인도-파키스탄 간 군사충돌 사례와 같이 핵 보유국이 다른 핵무장 국가와 국지전 형태로 충돌할 때, 전면전은 피하면서도 자국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이론적 검토와 정책적 논의가 있었다.  핵심은 스나이더의 “안정-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 개념(Snyder 1965)에서 제시하듯, 핵 문턱을 넘지 않으면서 재래식 전력만을 사용하여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이다. 재래식 전력에서 우위에 있을 경우는 파웰(Robert Powell)의 ‘제한된 보복(limited retaliation)’ 개념에 기초한 “조정된 확전(calibrated escalation)” 태세를, 재래식 전력이 상대국보다 열세에 있을 때는 쉘링(Thomas Schelling)의 ‘우연에 의한 확전(Threat that leaves something to chance)’ 개념에 입각한 “핵 벼랑끝 전술(nuclear brinkmanship)” 태세를 채택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Kim 2023).  그런데 커닝햄은 중국이 ‘벼랑끝 전술’도, ‘조정된 확전’도 아닌 ‘제3의 길’을 택했다고 분석한다. 그 계기는 1995-96년 제3차 대만해협 위기였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급파한 두 척의 항모 전단 앞에서 중국은 대응 수단이 전무한 “레버리지 결핍(Leverage Deficit)”의 굴욕을 맛봤다. 그런데 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과 같은 고비용 플랫폼(항모 등)을 모방하는 군비 경쟁을 벌이지도,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을 파기하며 벼랑 끝 전술로 나가지도 않았다.  대신 중국은 “정보화 시대의 무기(Information-Age Weapons)”를 조합한 비대칭 역량 구축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대체’다. 중국은 항모 킬러인 DF-21D/DF-26 대함탄도미사일(ASBM), 미군의 눈과 귀인 정찰위성 및 지휘통제(C4ISR)망을 마비시키는 위성 요격 무기(ASAT), 그리고 전력망과 지휘체계(NC3)를 겨냥한 공세적 사이버 역량에 집중했다. 그 결과 중국은 제1도련선 내에서 강력한 A2/AD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미국이 전지구적으로는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을지라도,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라는 특정 전구(Theater)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거부적 억지’ 달성에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9년 미 국방부가 실시한 워게임에서는 제1도련선 내 군사적 충돌 18번 중 18번 모두 미국이 중국에 패배하여 미 정책커뮤니티에 엄청난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Kristof 2019).  (2) 수직적 핵 확산: ‘최소 억제’의 종언과 상호확증파괴(MAD) 추구  커닝햄의 설명은 흥미롭지만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핵탄두 수를 급격히 확장하는 수직적 핵확산(vertical proliferation) 국면에 있다(그림 1). 기존의 ‘전략적 대체’가 대미 재래식 전력 열세에 대응함에 있어 ‘벼랑끝 전술’ 대신 ‘비대칭 정보무기’ 개발로 상쇄하는 방어적 성격을 보였다면, 미 국방부가 우려하고 있는 급격히 빠른 속도의 핵무기 능력 증강은 중국의 안보 전략이 다시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왜 성공적인 전략적 대체 전략을 넘어 핵 능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가?  [그림1] 중국 핵탄두 추정 그래프 (SIPRI 데이터 활용, 제미나이3.0 제작)  가장 핵심적인 동인은 미국과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관계 수립을 통한 전략적 안정성 확보에 있다. 21세기 첨단기술이 추동한 군사혁신, 특히 ‘정확성’과 ‘투명성’ 혁신은 “새로운 대군사타격의 시대(the new era of counterforce)”를 열었고(Lieber and Press 2017), AI의 군사적 활용은 그 변화 속도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김양규 2024). 따라서 기존 200기 정도의 핵무기는 이미 최소 억제(Minimum Deterrence) 전략을 이행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2025년 기준 중국이 보유한 운용 가능한 핵탄두는 600기에 달하고, 2030년쯤에는 1,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2020년까지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이 200기 정도에 머물렀던 것을 기억할 때 이는 매우 가파른 성장세다(SIPRI 2025; DoD 2025). 명백히 핵탄두 과보유(redundancy)를 통한 2차 공격능력(second-strike capability) 확보 시도로 읽히는 부분이다.  질적 성장도 무서운 기세다. 2022년까지만 해도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차원에서 중국은 미사일 전력을 제외하면 미국에 상당한 열세를 보였다(Wu 2021/2022). 그러나 현재 100기 이상의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일로에 DF-31급 ICBM을 장전하여 “조기 경보 반격(Early Warning Counterstrike: EWCS)”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사거리가 약 10,000km로 추정되는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JL-3를 6척의 전략핵잠수함(SSBN) 진(Jin)급 잠수함(Type 094)에 탑재해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공중 급유 기능을 갖춘 H-6N 폭격기에 이어 H-20 스텔스 폭격기를 개발 중이다(DoD 2025).  이러한 핵 능력 증강은 앞서 언급한 ‘정보화 무기’와 결합하여 치명적인 시너지를 낸다. 특히 핵과 재래식 탄두의 신속 교체가 가능한 DF-26 미사일의 실전 배치는 ‘핵 얽힘(Entanglement)’의 딜레마를 초래한다. 국지전 상황에서 미군이 중국의 재래식 미사일을 타격하려 할 때, 중국은 이를 핵 공격 시도로 오인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use-it-or-lose-it)’는 공포 속에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는 미중 간 재래식 분쟁이 우발적 핵전쟁으로 비화할 위험을 급격히 높인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러한 공포가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만약 현재의 기조를 유지하여 중국이 미국에 대하여 신뢰성 있는 2차 공격능력을 보유하고 미중간 확고한 MAD가 형성되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하기 어려운 동학이 작동하여 동 작전 전구 내에 있는 동맹국들에게 제공하는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이는 견고한 미 동맹 네트워크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 있다.  (3) 중국의 『2025 국방백서』: 제1도련선 내 우위와 장기적 미중 군사균형 추구  급격한 군사력 증강을 통해 중국이 중장기적으로 그리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 지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2049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최종 상태(end-state)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한 3단계 군사 현대화 로드맵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2027년 건군 100주년 전까지 기계화, 정보화, 지능화의 융합을 완료하여, 제1도련선 내 분쟁, 특히 대만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전략적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역량을 완비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방어 능력 확보가 아니라, 서태평양에서 미국에 대한 ‘전략적 상쇄(Strategic Counterbalance)’를 달성하여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2035년까지는 국방 및 군대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완성하고, 2049년에는 미군과 대등하게 전 지구적 작전이 가능한 ‘세계 일류 군대(World-class forces)’를 건설하여 패권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DoD 2025).  2026년은 그 과정에 있다. 2025년 5월 발표된 『신시대의 중국 국가안보(新时代的中国 国家安全)』백서는 “총체적 국가안보관(总体国家安全观)”을 핵심지침으로 둔다(State Council Information Office 2025). 이는 안보의 개념을, 군사를 넘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기술 등 20개 이상의 영역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고품질 발전과 고수준 안보의 선순환(必须推动高质量发展和高水平安全良性互动)”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에 의하면 미국의 대중국 무역 통제와 공급망 디커플링 시도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체제 생존을 위협하는 안보 문제’가 된다. 식량, 에너지, 핵심 기술의 자립자강(self-reliance)은 곧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 되며, 역으로 강력한 군사력은 중국의 ‘발전할 권리(Right to Development)’를 외부의 강압으로부터 지켜내는 방패가 된다.  둘째, 그러면서도 중국은 핵심이익 영역을 서열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핵심이익을 “정권, 주권, 영토 완정, 인민복지, 경제·사회 지속 가능한 발전(国家政权、主权、统一和领土完整、 人民福祉、经济社会可持续发展)”으로 규정하되, “정치안보를 최우선시해야 한다(坚持把政治安全摆在 首位)”는 인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여기서 정치안보는 곧 ‘중국공산당의 영도 지위’와 ‘사회주의 체제’의 수호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문제는 타협 불가능한 ‘핵심 이익 중의 핵심’으로 격상된다. 둥쥔 국방부장은 2024년 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 핵심이익 중의 핵심(The Taiwan question is at the core of China’s core interests)”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Dong 2024). 중국에게 대만 통일은 영토의 회복을 넘어, 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정치 안보)을 증명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따라서 중국은 ‘평화 통일’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면서도, 무력 사용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여 핵 억지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하드파워를 넘어 규범 경쟁에서도 미국에 맞서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는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를 ‘냉전적 사고’이자 ‘배타적 소다자주의’라고 비판한다. “절대안보(绝对安全, absolute security)” 추구 반대, 다자주의와 ‘공동 안보’ 개념에 기초하여 대화와 협력을 통한 분쟁 해결을 주장하며 미국 주도 동맹 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Dong 2024). 이로써 미중 경쟁 사이에서 중립을 원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을 규합하려 한다. 이는 미국의 포위망을 뚫고, 중국 중심의 새로운 안보 거버넌스와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장기적인 포석이다.  결론적으로 중국 국방백서와 전략 문건들이 가리키는 2026년 이후의 미래는 명확하다. 중국은 공산당 체제 유지라는 정치 안보를 위해 대만 통일 기반을 완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최소한 제1도련선 내에서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력은 군사력을 키우는 자양분이고, 군사력은 경제 발전을 보장하는 안전판이다. 이 견고한 ‘발전-안보 복합체’가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와 충돌할 때, 서태평양에서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는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4. 중장기 동북아 군사질서 전망: 제1도련선 내 미중 ‘창과 방패’의 대결  미중의 국방전략 변화 속 중단기 동북아 군사질서는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앞서 향후 공개될 NDS는 “단극 시대는 끝났다”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비전으로 제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6년 이후 전개될 미중 군사 균형의 모습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를 핵 경쟁, 제1도련선 내 비핵무기 경쟁, 동맹네크워크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먼저 기저층위(Base)가 되는 핵 경쟁 차원에서는 여전히 중국이 미국에 비해 확실한 열세라는 점이 중요하다. 중국의 수직적 핵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현재 600여 기 수준의 핵무기로는 냉전기 미소가 형성한 수준의 MAD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정밀성과 투명성 군사혁명 시대에 MAD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핵탄두가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은 핵 능력을 ‘최후의 보루’이자 미국의 핵 강압을 차단하는 방패로 깔아두되, 실제 군사전략의 중심부에는 여전히 커닝햄이 말한 ‘전략적 대체’ 태세를 유지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핵 전면전보다는 정밀타격 미사일, 사이버, 우주무기 능력을 활용해 제1도련선 내 미국의 군사적 개입 비용을 높이는 비대칭적 거부 전략을 중국 국방전략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중 군사경쟁의 핵심은 결국 제1도련선 내 비핵 전력의 충돌, 곧 중국의 ‘접근거부(방패)’와 미국의 ‘투사/돌파(창)’의 싸움이 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정보화 시대 무기와 비대칭 전략이 중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첨단무기 경쟁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중국보다 앞서있다. ‘무인 지옥도’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중국의 A2/AD 방패를 뚫기 위해 중국이 썼던 방식 그대로, ‘비대칭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대만 해협을 수천 개의 무인 무기체계로 뒤덮어 중국의 상륙 함대를 타격하며 “한 달 동안 끔찍하게 괴롭히겠다(make their lives utterly miserable for a month)”는 이 구상은 미국 버전의 ‘반접근(Anti-Access)’ 전략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핵심은 NSS나 헤그세스도 강조한 것처럼 물량 공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산업기반, 즉 제조업 분야 경쟁력이다. 2026년 이후의 서태평양은 이처럼 미중이 서로의 군사력 투사를 거부하는, 창과 방패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교착 지대가 될 것이고, 핵심 승부처는 첨단기술 무기의 생산력에 달렸다.  한 가지 추가로 더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안보 파트너십 네트워크이다. 사실 미국이 단극 시대 종식 후에도 압도적 우위를 자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압도적 ‘기술 패권’이 아니라 ‘동맹 네트워크’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은 단순히 안보를 지키기 위해 동맹국들이 돈을 더 내라는 요구를 넘어, ‘역량 분담(Capability Shar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에 원자력추진잠수함(SSN) 건조를 승인하고, 필리핀에 중거리 미사일 발사 시스템인 타이폰(Typhon)과 이동식 정밀타격 미사일 네메시스(NMESIS) 체제를 배치하는 움직임(임화섭 2025/05/12)은 미국의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은 동맹국 역량을 강화하고 상호운용성을 높여, 동맹의 자산으로 중국을 포위하고 전방 방위망을 형성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스쿼드(S-Quad)와 같은 소다자 협의체를 촘촘히 연결하는 ‘격자형 안보 네트워크’ 구축 노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박재적 2026).  ‘동맹국의 안보 역량 증진’이 곧 ‘미국의 대중 억지력 상승’으로 연결되는 이 구상이야말로 중국에는 매우 뼈아픈 지점이다. 중국은 단순히 미군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과 합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한국, 일본, 필리핀의 정밀타격 미사일 및 해공군 전력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사적으로 지역 패권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는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를 와해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중국은 앞으로 강압과 쐐기전략(wedge strategies)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브릭스(BRICS) 및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시어티브(GGI)’를 제시하며 대안적 다자 제도를 구축하려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이동률 2026).  5. 2026 한국의 국방정책  미중간 제1도련선 내 군사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2026 한국의 국방전략은 어떤 대비가 필요할까? 트럼프 2기 행정부 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유연한 현실주의”에 기반한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고, 시진핑 주석의 중국 또한 핵심이익에 따라 국내정치적 이익을 최우선 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냉철하게 ‘국익 중심’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한미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포지셔닝 문제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1월 경주 한미정상회담의 성과인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승인을 단순히 30년 숙원 사업을 이룬 ‘외교적 쾌거’이자 자주국방의 상징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미국의 국방전략 변화 방향을 고려할 때 이는 우리에게 상당한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주는 변화이기도 하다. 미국이 반대급부로 요구한 한국 내 미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정례화는 한국의 조선소가 미 해군의 병참 기지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제1도련선 내 미중 군사 분쟁 발생 시 한국은 원치 않아도 중국의 주요 타격 목표에 오르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동맹 현대화’의 방향을 미군의 인태지역 내 억지력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SSN을 포함하여 한국군의 역량 강화의 중심 목적을 ‘지역 분쟁 개입’이 아닌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 강화’로 명확히 설정하고 대외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SSN도 대중국 견제가 아닌,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상시 추적·감시하여 대북 억지태세에 한국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연루의 위협’은 피하고 미국의 안보 부담은 덜어줌으로써 한미동맹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전작권 전환(OPCON Transfer)을 전략적 레버리지 활용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반도 방위에 있어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정책 방향과 정확히 부합하는 의제로 미측이 환영할 만한 것이다. 실제 지난 11월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 (SCM)를 통해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은 올해 중에 “미래연합군사령부 본부의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추진”하는 것에 합의하여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Conditions-based OPCON Transition Plan)’ 2단계를 마치고, 마지막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평가에 들어갈 예정이다(김호준, 이정현, 김철선 2025/11/14). 미국은 이제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고 실질적 역량을 갖춘 동맹국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원한다. 전작권 전환은 더 이상 ‘자주국방’이라는 원론적인 수준의 구호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한국은 전작권 전환 가속화를 지렛대 삼아, 한국의 실제 역량을 강화하여 대북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 감시정찰(ISR) 자산, 미사일 방어 체계, 우주 및 사이버 전력, AI의 군사적 활용 등 현재 한국군에게 부족한 핵심 능력을 구축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지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새로운 국방전략 기조에 부합하면서도 한국에게 ‘안보 역량의 퀀텀 점프’를 가져다주는 기회의 창일 수 있다.  셋째, 인구 절벽과 북·러 밀착의 구조적 압박에 대응하는 한국식 ‘전략적 대체’ 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북·러 군사협력 고도화와 계속되는 북한의 핵 능력 증강은 한국에 실존적 위협 요소임이 분명하다. 현재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지만 자구적인 노력을 확대해야 하며, 이때 중국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정보화 시대 무기에 기반한 ‘전략적 대체’ 태세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더욱이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감소의 위협 속에서 AI 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의 조기 전력화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 중 하나이다. 이는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독자적인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미국의 AI 기반 국방개혁과 연계하여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되, 우리 지형과 전장 환경에 최적화된 독자적 알고리즘과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 심화 국면에서 한국은 2026년을 혁신적인 국방력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 참고문헌  김양규. 「미국 신국방전략과 북방 삼각, 기로에 선 한국 국방」. 『국방일보』, 2025년 9월 16일.  김양규. 「인공지능-핵무기 넥서스(AI-Nuclear Nexus)와 세계군사질서 전망」. 『EAI 스페셜리포트 “AI와 신문명 표준: 군사도전 ①』.” 서울: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I), 2024.  김호준, 이정현, 김철선. 「한미 SCM성명 열흘 지나 발표…주한미군 ‘현수준 유지’ 빠져」. 『연합뉴스』, 2025년 11월 14일.  박재적. 「2026년 인도·태평양 전망과 한국의 과제」.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⑤』. 서울: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I), 2026년 1월 13일.  이동률. 「중국 외교 2026년: 다극 세계질서에 대한 기대와 글로벌 역할 확대 적극 추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④』. 서울: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I), 2026년 1월 8일.  이백순. 「[열린세상] 신애치슨 라인과 세 번째 국난」. 『서울신문』, 2025년 10월 22일.  이유미. 「‘북한’ 지워진 트럼프2기 국가안보전략…무관심인가, 유연성인가(종합)」. 『연합뉴스』, 2025년 12월 6일.  임화섭. 「대만 근처 필리핀섬에 미 최신 대함미사일…유사시 대응 핵심」. 『연합뉴스』, 2025년 5월 27일.  전재성. 「2026년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와 국제질서」.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서울: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I), 2026년 1월 2일.  중앙일보. 「[사설] ‘애치슨 라인’ 연상시키는 트럼프발 안보 파고」. 『중앙일보』, 2025년 4월 1일.  Allison, Graham. “The U.S.-China Strategic Competition: Clues from History.” In The Struggle for Power: U.S.-China Relations in the 21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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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규 2026-01-22조회 : 2002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2026 인공지능과 세계정치 회고와 전망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1.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미중 경쟁  인공지능은 군사안보, 경제성장, 사회문화규범 영역을 가로지르는 핵심 기반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혁명기의 방직기술, 냉전기의 핵무기, 탈냉전기의 컴퓨터와 인터넷 등 이제까지 기술은 직간접적으로 세계정치경제질서에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 기술이 초래하는 변화의 속도와 범위와 깊이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특정 기술과의 비교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섰다.  인공지능 기술의 최전선과 이미 도착한 미래를 엿볼 수 있는 CES 2026에서 Agentic AI, Physical AI, Embodied AI, Pragmatic AI, Digital Twin 등 기술 발전 흐름을 대변하는 많은 개념들이 제시되었는데 현실은 주요 연사들의 입이 아니라 현장을 통해 더 잘 드러났다. 인공지능이 더 이상 범용 모델의 성능 경쟁이 아니라, 일상과 생산 과정에 내장되고 활용되고 확산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이 명백해졌다.  삼성과 LG는 각각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Your Companion to AI Living)'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정(Zero Labor Home)’ 을 내세우며 Vision AI 컴패니언 플랫폼이나 홈로봇 클로이드를 통해 가정 내 AI 활용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대자동차는 CNET에 의해 올해 CES 최고의 로봇으로 선정된 아틀라스 시연을 통해 물리적 AI가 현실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동시에 아틀라스를 향후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 제조현장에 부품 정렬 및 공정 보조 임무를 수행하도록 투입할 계획을 발표하며 로봇이 보다 주도적으로 정교한 역할을 담당하는 생산시스템으로 전환될 것임을 알렸다. 엔비디아는 연산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끌어 올린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Vera Rubin)을 발표하며 피지컬 AI 시대를 겨냥한 설계의 포문을 열었다. 또 기존 자율주행 기술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로주행, 교통량, 운전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실제 세계를 흉내내는 AI 모델인 코스모스와 결합한 새로운 오픈소스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를 공개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번 CES에서 중국 기업들은 탄탄한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혁신적인 모습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로봇청소기 사로스 로버는 계단이나 고르지 않은 표면도 능숙하게 대응하여 시선을 모았다.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드러낸 CES 2026의 핵심 메시지는, 인공지능이 상상이나 모델 차원을 넘어 실생활에 침투하기 시작했으며, 독립적인 기술 제품의 형태는 물론 가정 공장 도시 수준에서 판단과 조정을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제프리 힌튼 팀의 알렉스넷(AlexNet)을 통한 딥러닝의 부상, 2014년 구글이 하사비스가 이끄는 영국 AI 스타트업 딥마인드 인수, 2015년 샘 올트먼, 그렉 브록만, 일론 머스크 등이 모여 구글의 AI 인재 및 기술 독점을 우려하며 인류 전체를 위한 안전한 AI를 개발하는 비영리 연구소 설립을 논의한 로즈우드 호텔 회동과 OpenAI 설립, 2016년 하사비스팀이 개발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강화학습 및 딥러닝의 승리, 2017년 구글연구팀 인공신경망 트랜스포머(Transformer) 구조 발표 등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거치며 인공지능 방법론과 대결 구도가 형성된 이후, 인공지능 발전의 핵심은 스케일 확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모델의 크기를 키우고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증가시키니, AI가 번역이나 코딩과 같은 가르쳐주지 않은 능력을 스스로 깨우치는 창발(Emergence)이 일어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2022년 말 발표된 GPT-3.5에 1750억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가 장착된 이후 구글, MS, 메타, 그리고 중국 기업들까지 파라미터 숫자 늘리기 경쟁에 뛰어들었고 현재까지 조 단위 파라미터를 가진 모델들이 출시되었다. 여전히 약 100-500 조 가량의 인간 뇌 시냅스 숫자에는 못 미치지만, 기계로서는 유례없는 규모다. 문제는 모델이 커질수록 여기에 들어가는 칩과 학습 비용 및 전력 사용량이 대폭 증가한다는 점이었다.  2025년 초 중국 딥시크 등장은 인공지능 경쟁의 축을 파라미터 스케일링에 토대한 학습으로부터 대답하기 전 생각하는 추론과 효율성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 모델의 10분의 1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내는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막대한 데이터나 에너지를 투입하여 지능을 산출해 내는 비싸지만 쉽고 게으른 방식에서 벗어나 최소투입으로 최대 지능을 얻을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지식 압축 및 추론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딥시크가 자신들의 기술적 세부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오픈소스 정책을 채택하면서, 폐쇄적이었던 빅테크 기업들이 압박을 받는 수세적인 입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현재 대규모 언어모델의 파라미터 경쟁은 일정 수준에서 수렴 국면으로 들어섰고, 그 대신 보다 효율적인 모델, AI 에이전트, 산업 특화 모델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은 더 이상 질문에 답하는 기술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목표를 부여받고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으며 2026년 CES는 이러한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주최 측은 이번 회의의 슬로건으로 ‘혁신가들의 등장(Innovators Show Up)’을 표명하며 그동안 실험실의 기술로 여겨졌던 AI가 우리 삶과 산업 현장에 실제 도구로 구현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다양한 국가의 혁신가들이 모여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인류의 미래에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스위스와 같은 중립지대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실제 미중의 치열한 AI 경쟁 속에서도 많은 중국 기업들이 참여하였고 중국 가전기업 TCL의 전시관이 CES의 얼굴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센트럴 홀 정중앙에 자리잡아 시선을 모았다. 오랫동안 이 자리는 삼성이 차지해왔었고 이번에 삼성은 체험몰입도를 높이고자 단독전시관을 마련하며 이 자리를 떠났다. 중국 기업 레노버(Lenovo) 대표가 기조연설을 맡아 연설 도중 무대 위로 젠슨 황이나 립부 탄(Lip-Bu Tan) 인텔 CEO 등을 소환하거나 언급하며 파트너십을 과시한 것도 중립성의 주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웨이, 센스타임 등 미국 상무성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 관계자들이 비자 발급 거부로 행사장에 오지 못했고, 홍콩 정부 사절단이 방미 직전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는 등 무대 뒤에서 미중간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사실 중국 AI 부상을 대표하는 알리바바나 텐센트나 화웨이 같은 기업이 아닌 레노버 대표를 기조연설자로 내세운 것도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 주최측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레노버는 2005년 미국 기술의 자존심이었던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하며 성장하였고 베이징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공동 본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 시장에서 수십년간 PC와 서버를 판매해 왔고 현재에도 엔비디아, 인텔, 마이크로소프트와 가장 밀접하게 협력하여 AI PC를 만들고 있는 미국적인 중국 기업이다.  CES 2026은 인공지능 기술이 담론과 상상을 넘어 실질적인 도구로 구체화되며 일상의 풍경으로 들어오는 변화가 가속화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자국이 설계한 거대한 기술적 토대와 산업 생태계 속에서 기술 표준과 인프라를 지배하는 미국의 리더십과, 월등한 하드웨어 제조력과 실행력을 토대로 약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맹렬한 추격이 맞부딪치는 역동성 속에서 기술발전과 세계정치가 밀접하게 얽혀 전개될 것임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복합적으로 얽힌,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소통하고 공존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동거가 기술과 세계정치 지형의 뉴노멀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 미·중 인공지능 정책과 발전 경로 분화  2025년 미중관계에서 양국이 각각 보유한 비대칭적 전략 자산인 AI 반도체와 희토류를 둘러싼 갈등이 두드러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첨단 AI 반도체 대중 수출을 강력히 통제하는 가운데 2025년 4월 중국 상무부가 7종의 희토류에 대해 수출허가제 및 통제 강화를 발표하였다. 2025년 중반 미국은 엔비디아 H100급 칩은 여전히 금지하되, 중국 시장 전용으로 성능을 낮춘 H20 계열은 조건부 수출을 허용하는 미세한 조정으로 통제 완화의 메시지를 보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전면 차단하기보다는 선별적으로 규제하면서 공개적 충돌을 자제하는 암묵적 협상 국면에 들어갔다. 2025년 10월 중국이 희토류 및 관련 기술 통제를 다시 강화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추가 관세와 강경 발언으로 대응했고, 이는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APEC 직전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유예하며 유연하게 운용할 여지를 남겼고, 미국은 H20 이외 H200급까지 허가된 중국 기업에 수출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미국내에서 이러한 수출 완화 조치에 대해 안보 및 경쟁력 약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미중은 상호 비대칭 전략자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경쟁을 관리하였다.  2026년 인공지능 부문에서 가장 주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향후 인공지능 발전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직후 2025년 1월 ‘미국의 인공지능 분야 리더십 강화 및 장벽 제거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미국의 글로벌 AI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연방정부 정책 기조를 설정하였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혁신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행정부의 안전 관련 AI 정책과 규제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AI 혁신 주도를 우선 순위에 놓았다. 2025년 7월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 AI 행동 계획(Winning the AI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은 연방정부의 AI 전략 로드맵으로, AI 혁신 가속화, AI 인프라 구축, AI 외교 선도라는 3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계획은 인공지능을 국가의 생존이 걸린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과거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경쟁국이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 지배력을 확보하여 미국 안보와 경제의 황금기를 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문서는 인공지능 경쟁을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밝혔듯 AI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며 미국이 이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입장이 담겨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먼저 혁신을 저해하는 모든 관료적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 기술 발전 속도를 극대화하고 미국적 가치를 반영한 오픈소스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AI 혁신 가속화’를 최우선적으로 내세웠다. 이와 동시에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제조 시설을 위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력망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여 지능 정보 사회를 뒷받침할 탄탄한 ‘물리적 AI 인프라 구축’ 필요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미국의 최첨단 AI 기술과 반도체가 적대국에 유출되지 않도록 수출 통제와 기술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AI 외교 및 안보 리더십’을 통해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기술 질서를 공고히 할 것이라 표명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어떤 정책 어젠다 보다 미국의 글로벌 인공지능 리더십 유지에 목표를 두고 미국기업의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인프라 확충 및 외교적 공세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미국의 AI 우위 유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AI 차르 데이비드 삭스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3~6개월에 불과하다고 경고하며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와 같은 강도의 도전에 처해 있다는 위기의식을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인공지능 우위를 공고화하고 미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보다 야심적인 ‘제네시스 미션(Genesis Mission)’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2025년 11월 발표된 대통령 행정명령에 명시된 제네시스 미션은 미국이 인공지능을 과학기술 안보 경제 전반의 전략 기술로 규정하고, 기존의 분절된 연구, 데이터, 컴퓨팅 체계를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행정명령은 현재의 AI 경쟁을 단순한 산업 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견되는 국가적 총력전으로 인식하며, 미국이 개별 부처나 연구소 중심의 점진적 혁신으로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제네시스 미션은 연방정부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 과학 데이터셋과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미국 과학과 안보 플랫폼(American Science and Security Platform)’으로 결집하고, 이에 토대하여 과학 기초모델(Scientific Foundation Models)과 AI 에이전트를 개발 및 운용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 플랫폼은 가설 설정, 시뮬레이션, 실험 설계, 제조 공정까지 포함하는 AI 주도 연구 및 생산 자동화를 달성하여, 에너지 반도체 양자 바이오 첨단제조 등 국가 전략 분야에서 과학 탐구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월에 발표된 행동계획이 일반적인 AI 지원 정책을 담고 있다면, 11월의 행정명령은 미국이 결정적 우위를 유지하고 이끌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묶어 총력전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난다. 미국이 보유한 과학 데이터의 우수한 질과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고려할 때 이것이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결합되면 인공지능 바이오 양자 등 각 분야의 프론티어 기술 혁신을 이끌고 유지하는데 미국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임은 명백하다.  2025년 7월 미국의 AI 액션플랜 발표 직후 중국 외교부는 각국이 공동으로 인공지능의 개방적, 포용적, 보편적, 선량한 발전을 추진해야 하며, 대립적 경쟁을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2025년 7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세계 AI대회(WAIC) 슬로건으로 '智能时代 同球共济(Global Solidarity in the AI Era)'를 내세운 것도 미국의 전략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발표된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新一代人工智能发展规划)'에서 AI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 전략 차원에서 논의되었고 이를 통해 AI 발전의 기틀이 성공적으로 마련되었다. 2024년 3월 양회 정부보고 디지털 경제 혁신 발전 항목에서 디지털 산업화를 적극 추진하고 디지털 기술과 실물 경제의 심도 있는 융합을 촉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빅데이터와 AI 부문 연구와 응용을 심화하는 ‘인공지능 플러스(AI+) 행동(人工智能+行动)’이 제시되었다. 2025년 8월 국무원은 ‘인공지능 플러스 행동 심화 실시에 관한 의견(关于深入实施‘人工智能+行动’的意见)’을 발표하며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개하였다. 이는 2024년 보고의 구체적인 실행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AI를 과학연구, 제조, 교육, 의료, 행정 등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특히 전통 산업과 AI 융합을 통해 산업 고도화 및 효율성 향상을 도모하고 새로운 질적 생산력(新质生产力)을 창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기술 표준 및 성과를 공유하고, 중국 중심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제 AI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여 기술 블록화에 대응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모호한 비전 대신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제시했는데 1차 목표인 2027년까지 차세대 스마트 단말기와 AI 에이전트의 보급률을 70%까지 확산시키고, 2030년에는 90%까지 끌어올리며, 2035년에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지능화된 지능 사회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미국이 내건 AGI 프론티어 전략에 맞서 중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다양한 분야에 보다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고 확산시키고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한다. 미국의 최첨단 반도체칩 제재로 인해 초거대 모델 학습에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AI 기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스마트팩토리, 스마트 시티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전통 산업을 AI로 완전히 재구조화하여 생산성 격차를 벌리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2025년 11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5차 5개년 계획 제정에 관한 건의안(第十五个五年规划的建议)'을 발표하였고, 이를 통해 향후 2026~2030년 중국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경제 발전 로드맵이 윤곽을 드러냈다. 제시된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은 내수 중심, 질적 향상과 양적 성장의 균형, 국가안보 중시, 기술자립 및 AI 활용 확대 등 이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5개년 계획에 국가안보가 원칙과 중점 목표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고 경제사회 발전을 안보와 연결하겠다고 명시화하였다. 중국 역시 미국의 위협이나 미국과의 경쟁을 의식하며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기술 자립과 AI 활용 확대를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14차 계획에서 간단히 언급만 되었던 AI 관련 내용이, 15차 계획에서는 AI 전략에 독자적인 섹션을 할애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특히 첨단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고, 중국이 우위를 가진 전통 산업(철강, 조선, 야금 등)을 AI와 결합하여 고도화함으로써 산업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모든 산업 분야를 AI와 융합하는 '인공지능 플러스 행동'을 가속화하여,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지능화 기반으로 재편하는 것을 강조하고 컴퓨팅 파워, 데이터, 모델의 효율적 공급을 위해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혁개방 이후 광둥성에서 낙후된 사양산업을 퇴출시키고 첨단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산업구조정책으로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는 ‘등롱환조(騰籠換鳥)’를 내걸었고 현재 선전은 중국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로 성장하였다. 중국의 인공지능 플러스(AI+)정책이나 제15차 경제계획에서 강조하고 있는 첨단기술산업 육성 및 AI와 전통산업의 융합은 AI 버전 등롱환조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략 자산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발표된 주요 인공지능 계획의 내용과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양국 AI의 지향점에 명백한 차이가 있어 흥미롭다. 미국은 가장 우선적으로 AI 칩 생산에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 보안에 이르기까지 AI 생태계의 모든 층을 수직 통합하는 풀스택 우위를 구축하고자 한다. 여기에 거대 데이터센터와 에너지망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관리하고 국립연구소와 각 부처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 데이터셋을 통합한 플랫폼을 마련하는 한편 정제된 민간 데이터와 합성 데이터를 결합하여 독점적인 고품질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완성한다. 이를 토대로 범용 인공지능(AGI)과 특화된 과학 모델을 가동시켜 과학연구는 물론 모든 영역에서 지능 우위를 확보한다. 외교적으로는 AI의 심장인 반도체와 서버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미국식 AI 풀스택을 동맹국에 수출하면서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한다. 즉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거의 신과 같은 인공지능(Frontier AGI)'을 완성하고 이에 토대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체제를 설계하는 한편 이의 확산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반면 중국은 AI를 특정 기술이나 산업 수준이 아니라 국가와 경제사회의 운영체제로 이해하며 전 사회와 산업에 AI를 내장시켜 생산력과 통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최상의 연구개발 성과나 기술 발전을 추구하기보다 가용한 기술을 활용하여 즉시 적용 가능한 영역부터 확산시키며 보급하는 접근법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수출통제와 첨단 반도체 제약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핵심기술 자립 추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대내적으로는 내수 둔화와 성장 완화에 당면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기술자립과 산업구조 고도화, 첨단 AI칩 개발 도전과 AI와 제조업 융합이 동전의 양면처럼 세트로 채택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이 실물경제 부문에서 압도적 우위를 구축해 왔고 미래 또한 실물 경제의 성공적인 고도화에 달려 있다고 보고, 세계 최고의 제조 역량과 자국이 축적해온 방대한 산업 생산 데이터를 활용하여 AI를 실제 제조 현장에 이식하는 ‘내장된 인공지능(Embedded AI)’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미국 내에도 인공지능을 산업 현장에 활용하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중국내에서도 최고의 인공지능에 도달하기 위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인공지능 발전 경로의 유형화나 차이에 대한 강조는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거대하고 복합적인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작년 하반기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논의되고 있다. 왜 이 시점에서 차이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차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배경에는 미국이 인공지능이나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점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까지 인공지능 경쟁은 하나의 결승점을 향해 가는 경주로 누가 결정적인 전략적 이점을 먼저 확보하느냐의 관점에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AGI의 도래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이것이 최종 목표 지점인지, 여기에 먼저 도달한다고 해서 과연 결정적 우위에 서고 그 이후는 게임오버가 되는 것인지 모두 모호하다.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소련의 미사일 우위를 주장했던 가이더 보고서(Gaither Report)가 핵무기 경쟁의 가속화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현재 인공지능 경쟁에서도 중국의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AI 판 가이더 보고서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내러티브가 잘못된 상황인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이 저임금과 보조금, 기술 모방만으로 이루어졌다는 피상적인 인식에 갇혀 실제 중국에서 진행되어온 항만, 철도, 전력망 등 인프라의 대대적인 확충 및 제조 현장에서 이루어진 지속적인 공정 지식 혁신과 엔지니어적 실행력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고, 나아가 중국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중국은 미국을 단순히 라이벌로만 보지 않고, 미국의 좋은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자국에 맞게 변형하는 학습을 꾸준히 진행해 온 반면 미국은 자신의 체제우위 믿음에 갇혀 중국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얼마나 진지하게 배우려 해왔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문제제기는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칩 설계에는 강하지만, 실제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더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며, 중국이 원자재와 제조를 통제한다면 미국의 기술적 우위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장기전에 대비해 미국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즉 결승점만 보고 달리는 맹목적인 속도 경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기술을 뒷받침할 물리적 기반과 자원 안보 확보와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중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과장되고 과시적인 AI정책 이니셔티브 안에서 실제로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미국 AI 정책의 목표와 방향의 점검을 위한 논의 공간을 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미중 인공지능 발전 경로는 왜 달라지고 있으며 이것이 세계정치질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원인을 간단하게 기술 수준이나 정치체제 수준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서구문명을 대표하는 미국과 아시아문명을 대표하는 중국 기술관의 차이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육휘(Yuk Hui)는 기술이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문명권의 우주에 대한 이해 및 도덕적 실천과 결합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우주(Cosmos)와 기술(Techne)을 묶어 코스모테크닉스 (Cosmotechnics)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서구 근대 문명은 기술을 자연을 정복하거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해 왔고 서구 근대문명 확장과 함께 이러한 기술관이 보편화되면서 결국 현재의 기술 가속주의와 생태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본다. 모든 문명권은 고유한 코스모테크닉스를 가지고 있는데, 예컨대 고대 중국에서 기술은 자연정복이나 효율성보다 ’도(道)’와 ‘기(器)’의 조화를 중시하는 실용적 맥락에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 발전이 서구의 논리에만 갇히지 않고, 동양이나 아프리카의 코스모테크닉스와 공존하며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는 기술다양성(Technodiversity)이 복원되고 각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서로 다른 기술적 미래가 설계되며 기술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행성적 사유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보았다.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발전 경로에 서구적 혹은 아시아적 코스모테크닉스가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코스모테크닉스나 기술다양성 논의가 제기하는 시사점은 현재의 미중 인공지능 경쟁을 단순히 누가 이기느냐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이 경쟁을 하는지, 즉 기술이 우리 삶의 방식과 우주적 질서를 어떻게 다르게 담을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상이한 기술관이나 세계관들간의 상호이해와 협력의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영역에서 중국의 뚜렷한 존재감과 미중의 발전 경로 분화가 기술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발전되고 깊어질 수 있는 지평을 열고 있다.  2026년 미·중 인공지능 경쟁은 승자독식의 단일한 기술 패권 질서로 수렴되기보다는, 서로 다른 인공지능 질서가 병존하는 구조로 전개될 것이다. 미중 인공지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 방향의 차이가 더욱 선명해 질 것인지 여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국강병이라는 근대국민국가의 내러티브가 압도적인 미중 인공지능 경쟁판에서 Frontier AGI 와 Embedded AI 가운데 무엇이 전략적 우위를 가져다 줄 지를 희미하게나마 엿볼수 있게 될 지도 궁금하다. 아울러 양국이 보유한 비대칭 전략자산인 최첨단 인공지능 칩과 희토류가 거래되면서 균형의 추가 어떻게 왔다 갔다 할지, 이 과정에서 양국의 갈등이 더욱 불거지게 될지 아니면 양국의 상호의존성과 취약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지도 주목해 볼 만한 포인트이다. 한쪽이 앞서면 오만해져 실수를 저지르고 뒤처진 쪽은 만회를 시도하는 들쑥날쑥하고 역동적인 과정이 당분간 지속되는 가운데 상호 차이에 대한 인식과 학습에 토대하여 새로운 정체성이 구성될 싹이 뿌려지고 자라날 수 있을지도 살펴 보아야 한다.  3. 한국의 인공지능 전략  글로벌 인공지능 질서 디커플링이 진행되면서 각국 인공지능 전략은 단순히 산업기술 전략 차원을 넘어 변화하는 세계정치경제질서 속에서 자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정체성을 설계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 AI 전략 역시 지정학과 안보, 주권과 경제, 가치와 철학과 정체성이 얽힌 고난도의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먼저 지정학적 및 안보적 층위에는 미중 양강 사이 전략적 선택의 압박과 긴장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담겨야 한다. 우리는 미국 AI 풀스택과 안전 및 규범 체계 확산에서 핵심적인 동맹역할을 요청받고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의 협력도 조심스럽게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이 긴장을 어떻게 관리하며 구조적 틈새에서 우리의 인공지능 역량 강화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느냐가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제이다. 경제적 층위에는 주권과 개방성, 성장과 배분 등 다양한 긴장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데이터, 알고리즘, 인프라의 자립을 모색하는 ‘소버린 AI’의 논리가 논쟁의 여지없이 정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 모델 개발에 따르는 천문학적 비용과 효과, 글로벌 생태계와의 호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어느 부문에서 어느 수준까지 자립을 선택할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동시에 AI 혁신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지만 특정 영역이나 집단에 쏠리는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함께 보편적 이득과 혜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이 둘을 개념 차원이 아니라 현실에서 동시에 추구하고 성취하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이다.  문화규범적 층위에서는 지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미국의 프론티어 AI나 권위주의적 통제 도구로 AI를 활용하는 중국식 모델을 넘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반영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AI 모델, 한국적 코스모테크닉스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물론, 한국 역사와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재 진행중인 문명사적 전환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 구체적인 정책들간의 우선 순위와 역동적 관계 및 실제 정책 효과에 대한 사회과학적 감수성과 분석이 종합적으로 요청되는 작업이다. 외세의 침입과 식민지로서의 상처를 극복하고 압축 성장을 이루어내면서 동시에 문화적 감수성과 민주적 규범을 축적해 온 한국이라는 존재의 역량이 AI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야 한다.  최근 국가 인공지능 전략위원회에서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한 국가 차원의 실행 전략으로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을 발표하였다. 계획안은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 등 3대 정책 축과 12대 전략 분야로 구성되었고 각 부처가 이행해야 할 구체적 정책 실행에 초점을 두었다. 계획안은 실로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AI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첨단 GPU와 국산 AI 반도체를 기반으로 대규모 및 강소형 데이터센터를 균형 있게 확충하고, 컴퓨팅 데이터 보안을 아우르는 AI 고속도로를 구축한다. 이외 AI 핵심 인재 및 AI 모델 확보, AI 규제 혁신, AI 보안 등도 다루고 있다. 산업부문에서는 제조 데이터를 중심으로 산업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하여 2030년 글로벌 제조 경쟁력 1위를 달성하고, 반도체와 제조 데이터를 결합한 AI 모델과 에이전트 서비스를 고도화해 제조 AI 풀스택을 수출 산업으로 확장한다. 이외 공공 지역 문화 국방 부문의 AI 활용도 강조한다. AI 기본사회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노동 복지 돌봄 등 국민 접점이 큰 영역에 AI를 선제적으로 적용해 기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의 AI 역량 강화를 통해 포용적 AI 활용 기반을 마련한다. 한국의 AI 기본 사회 모델을 국제사회에 확산하기 위한 AI 기본 사회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구축한다. 한국은 민주적 가치와 인권 존중의 원칙 아래 주요국 간 규제 격차를 조정하고 상호운용 가능한 글로벌 AI 표준과 거버넌스를 정립하는 글로벌 조율자(Global Coordinator)로서 국제 규범 형성을 선도하며, 기업의 글로벌 진출, 스타트업 성장, 공동연구를 촉진함으로써 AI 발전의 혜택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기여한다는 점 등이다.  전반적으로 계획안은 인프라 확보, 인재 양성과 규제 혁신, 산업 지원 등 인공지능 토대를 마련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고 AI 혁신 안전 포용 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립 확보와 보편적 기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 애쓴 흔적이 묻어난다. 미중 어느 한 편을 명시적으로 선택하기보다 강력한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공지능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AI 기본사회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독자적인 공간을 확장해 나가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 발전의 토대를 공고히하고 성공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인공지능 영향의 폭이 넓은 만큼 국가 전략안에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검토한 이후에 느껴지는 문제점을 간략하게 제시해 본다. 첫째 통합적인 비전의 부재 문제이다. 계획을 읽고 나서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전체 계획의 실질적인 방점이 어디에 찍혔는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획안의 핵심적인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소버린AI, 제조AX, AI 기본사회 등으로 답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과연 통합적으로 묶여 한 차원 더 높은 한국적 코스모테크닉스의 정체성을 담은 비전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론들에 힘이 들어가 있고 이들이 함께 모아지는 응집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각론들은 통합적인 비전 안에서 잘 묶일 때 오히려 의미가 잘 드러나고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AI 기본사회라는 개념도 많은 논의 끝에 채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이 개념을 전체 계획을 대표하는 것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여부이다. 왜냐하면 기본사회와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같은 정책 범주로 묶여 있고 실제로 이 개념을 중심으로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구축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이니셔티브의 주요 내용이 소버린 AI나 중견국 연대여야 하는지 AI 기본사회 인지는 전략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글로벌 AI 이니셔티브가 성공적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옳다고 생각되는 말이나 개념의 선택이 아닌 존재의 현실과 비전을 대표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선택이어야 한다. 셋째 첨단기술과 세계정치의 긴밀한 상호구성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계획은 인공지능 발전의 세계정치적 토대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고 판단된다. 글로벌 협력과 세계정치 요인은 AI 혁신 생태계 구축이나 인공지능 전환 과정에서 고려할 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한국 인공지능 전략은 인공지능 기술외교의 틀에서 전개되고 실행될 수 밖에 없다. 계획은 정작 중요한 부분의 글로벌 협력이나 외교적 고려 및 함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표준 규범 공동연구에서만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외교의 가장 중요한 의제이자 동시에 어떤 외교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인공지능 발전 방향이 규정되는 상황에서 외교와 글로벌 측면이 제한된 이슈로만 접근되는 것은 문제의 소지를 남긴다. 인공지능 전략은 한국이 어떤 국가가 되고 싶은가 혹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풀어내야 한다. 고도화된 기술 혁신 역량과 문명 전환 및 한국 정체성에 대한 독자적이고 고유한 사유의 힘이 결합될 때 한국이 AI G3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2026년에 한국 인공지능 혁신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면서 동시에 인공지능 전략에 관한 논의가 더욱 깊이있게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참고문헌  Bratton, Benjamin. The Stack: On Software and Sovereignty. The MIT Press, 2015.  Center for Humane Technology. “America and China Are Racing to Different AI Futures.” 2025.  Chatham House. “The World in 2026.” 2026.  Froman, Michael. “China, the United States, and the AI Rac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5.  Eurasia Group. “Top Risks 2026” 2026.  Hui, Yuk. Machine and Sovereignty: For a Planetary Thinking.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4.  ________.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in China. Urbanomic, 2016.  JP Morgan Chase Center for Geopolitics. "The Geopolitics of AI." JPMorgan Chase Geopolitical Analysis Series. 2025.  Kahl, Colin H. “The Myth of the AI Race: Neither America Nor China Can Achieve True Tech Dominance.” Foreign Affairs. January 2026  Wang, Dan. "2025 Letter." January 2026. https://danwang.co/2025-letter/.  _________. 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 W. W. Norton & Company, 2025.  ■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배영자 2026-01-20조회 : 1622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⑥ 관세 전쟁에서 복합 경쟁으로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2025년 회고: 관세 전쟁과 AI 광풍  2025년은 관세 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해방의 날’(Liberation Day)를 선포하며, 우방과 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관세 부과를 위협하였다. 이후의 사태 전개는 알려진 그대로다. 한국을 비롯하여, EU,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25%의 상호 관세를 낮추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해야 했다. 외견상 관세율 인하를 위한 협상이었지만, 협상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15% 관세율을 얻어내기 위한 기이한 협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투자를 연계하여 전가의 보도와 같은 거래적 접근을 동맹을 상대로 실행에 옮긴 결과였다. 그러나 대미 투자 합의가 이행으로 이어지기까지 미결의 과제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2026년 세계 질서의 한 단면을 예고한다.  2025년은 미국에게도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해였다. 반도체 수출 통제를 수단으로 AI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하게 했다는 믿음이 ‘제2의 스푸트니크 순간’(Sputnik moment)라고 불리는 ‘딥시크(DeepSeek) 충격’으로 급격하게 흔들렸다. 딥시크가 오픈 AI(OpenAI) 및 구글(Google) 등 미국 빅테크와 달리 경량화 모델을 출시하며 AI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 그대로, 미국 AI 산업에 경종이었다. 중국의 추격이 거셀수록, 첨단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의지는 그만큼 더 강해졌다. AI 산업에서 ‘풀스택(fullstack) 리더십’을 행사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선언이 이를 반영한다. 그 결과 미국 수출 통제의 제한적 완화 여부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성하려는 중국의 대응 전략 역시 돌아오기 어려운 지점을 이미 지난 것으로 보인다.  2026 세계 질서 전망  2026년은 관세 협상의 이행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한편으로는 무역 협상을 지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피지컬 AI와 디지털 화폐 등으로 전장을 확대하는 복합 경쟁이 전개될 것이다.  관세 전쟁 2.0  2026년 세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관세 전쟁 2.0에 돌입할 전망이다. 첫째, 한국, EU, 일본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들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였지만, 구체적인 이행 방식은 저마다 상이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미 투자가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행의 구속력과 책임을 둘러싸고 미국과 상대국 사이에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26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한번 승리를 주장하기 위해, 상대국에 대한 압박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없다.  또 다른 문제는 투자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관세-투자 연계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전쟁에 나선 일차적인 목적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있었다. 문제는 관세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한 미국 내 투자 유치가 규모가 커질수록 무역 불균형을 오히려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한 결과를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해석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둘째, 2026년에는 관세 전쟁의 후폭풍이 미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하고, 대외적으로 최대의 관건인 미중 무역 협상을 타결시켜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방위적인 관세 전쟁을 벌인 결과, 미국 정부의 관세 수입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관세 수입은 2025년 4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10월까지 2,050억 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1년 전인 2024년 789억 달러에 비해 2.6배 증가한 수치이다. 2025년 8월까지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9% 수준으로 당초 예상보다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로 인한 물가 인상 요인 가운데 미국 소비자 부담 비율이 30%~40% 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관세 부과의 영향이 미국 내로 본격적으로 전가되어 소비자 부담 비율이 약 60%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하면, 2026년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역시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좋지 않은 국내정치 환경이다.  미중 무역 협상과 이후  미중 무역 협상은 2026년 최대의 도전 과제이다. 2026년 중국은 더 이상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여 압박하였던 2017년의 중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1단계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원인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은 미국에 대한 반응적 전략에서 탈피하여 능동적이고 선제적 전략으로 전환을 끊임없이 준비해왔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보복 관세의 부과로 맞받아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국내적으로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수단을 업그레이드하고, 대외적으로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협력을 강화하는 입체적 전략을 추구해왔다. 국내외적 축적의 결과는 2025년 대미 협상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에 수출 통제 카드를 협상의 주요 국면마다 꺼내 들며 미국을 거꾸로 압박하였다.  수출 통제는 2026년에도 중국의 대미 전략에서 핵심적 대응 수단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주요 핵심 광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정제 후 기준으로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흑연 96%, 희토류 91%, 코발트 78%, 리튬 70%, 구리 44%, 니켈 31%에 달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단기적으로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더욱이 중국은 수출 통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 산업을 구조 조정하는 등 지난 수년 간 내실을 다져왔다. 중국 정부가 중희토류와 경희토류 공급에서 지배적 위치를 가진 중국희토류그룹과 중국북방희토를 중심으로 다수의 희토류 기업들을 통합하였다. 희토류의 무기화를 더욱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시행할 수 있는 국내적 태세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지난 9년 동안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 수단을 찾아왔듯이, 이제 미국이 중국의 역공에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은 2025년 12월 팩스 실리카(Pax Silica)로 맞서려고 한다. 단기적으로 압박과 협상의 이원적 접근을 통해 중국과 갈등을 관리하는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유사 입장국들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효과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재편  WTO가 세계무역전망(Global Trade Outlook)에서 2025년 세계 상품 무역이 2.4%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듯이, 2025년 관세 전쟁,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상품 무역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다. 관세의 직접적 영향을 덜 받는 서비스 무역 또한 당초 전망치보다는 낮으나, 4.6%라는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2026년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상품 무역과 서비스 무역이 각각 0.5%, 4.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2026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공급망 구조적 변화와 관련, 복합적인 변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공급망 교란의 영향으로 인해 지구적 가치 사슬(global values chains: GVCs)의 평균 생산 단계가 더 길어질 전망이다. 둘째, 미국, 중국, EU 등 주요국에서 리쇼어링과 지역화가 강화됨에 따라, 대외 의존도가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지정학적 균열선에 따른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중 무역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난 수년 간 미국과 중국은 상대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도를 낮추는 데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견제를 우회하여 제3국을 통해 시장 접근을 유지, 심지어 확대하는 간접적 의존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가 멕시코 및 베트남과 같은 연결 국가의 등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초기부터 이 국가들을 겨냥한 것은 중국에 대한 간접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2026년에도 상대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회로를 발굴하고, 이를 차단하려는 게임이 지속될 것이다.  새로운 전장  피지컬 AI  2026년에도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AI 분야에서 경쟁과 협력의 이중 동학을 지속할 것이다. 2025년 대규모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s) 중심으로 AI 경쟁이 펼쳐졌다면, 2026년 초부터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humanoid)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피지컬 AI 경쟁으로 이미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2025년 전기차에서 중국은 국내 공급 과잉을 수출로 밀어내며 세계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2025년 10월 기준,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포함) 판매는 1,710만대로, 전년 대비 25.5% 증가하였다. BYD가 332만대로 세계 1위를 차지하였고, 이어 중국의 지리(178만대)가 2위를 차지하였다. 반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였던 테슬라(Tesla)는 130만 8천대로 전년 대비 7.7% 감소하였다.  자율주행 자동차에서는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선두주자 테슬라에 더하여, 엔비디아(Nvidia)가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Alpamayo)를 공개하고, 새로운 경쟁 모델을 제시하였다. 휴머노이드에서도 테슬라의 3세대 옵티머스(Optimus)와 중국 유니트리(R1)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2026년 1월 CES에서 현대차 자회사 보스톤다니내믹스(Boston Dynamics)가 아틀라스(Atlas)를 선보이고 2년 내 자동차 공장에 투입할 계획을 밝히며, 차세대 휴머노이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임을 예고하였다.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경쟁의 전면은 기업 간 경쟁이지만, 이면은 국가 간 경쟁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엔비디아가 알파마요를 2025년형 벤츠 CLA에 처음 적용한 데서 나타나듯이, 기업 간 경쟁은 궁극적으로 생태계 구축 경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간 합종연횡이 지정학적 균열선에 따라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가 전략과 기업 전략 사이의 연계가 중요하다. 휴머노이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현대차는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딥마인드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인 제미나이 로보틱스(Gemini Robotics)를 아틀라스와 통합할 계획을 공개하였다. 이는 생태계 구축이 진영 내 국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스테이블코인 vs. 디지털 위안화  디지털 화폐는 미중 전략 경쟁의 또 다른 트리거(trigger)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2026년 발효됨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자산 시장을 비롯한 세계 금융 질서의 새로운 변화 요인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달러 패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스테이블 코인 및 CBDC 등 디지털 화폐를 공격적으로 규제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 코인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이미 2014년 테더(Tether; USDT)가 출범한 이래 자국의 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사용자가 5억 명을 돌파한 현실을 무시하기 어려운 데다, 달러 패권을 오히려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니어스법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상환 요청에 대비하여 달러를 포함한 현금성 자산을 준비금으로 쌓아두도록 한데다, 전체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달러 기반인 것이라는 점이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반면, 중국은 고객 신원 확인과 자금 세탁 방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금융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암호 화폐에 대해 부정적이다. 중국은 대신 달러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디지털 위안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대응 전략  2026년에도 세계 경제 질서의 불확실성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은 어떤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까? 지난 수년 동안 한국에게 경제 안보 리스크는 중국 또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은 미국 리스크가 부상하는 새로운 경제 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첫째, 한국은 무역 협상의 상시화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2025년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의 기본 방향에 합의한 이후, 수개 월의 진통을 거쳐 세부 합의에 도달하였다. EU, 일본 등과 비교할 때, 이행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그 원인의 소재와 상관없이 제2의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거래적 접근 차원에서 ‘의도적 비일관성’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안별 논리적 접근을 넘어서는 입체적 전략이 요구된다.  둘째, 2026년은 관세를 넘어 전선의 확대가 예상된다. 2025년은 좁은 의미의 관세 협상이었지만, 2026년 미국은 합의의 이행에 더하여 새로운 쟁점으로 우선순위를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한 장치는 이미 2025년 11월 타결한 한미 팩트 시트(Fact Sheet)에서 내재되어 있다. 미국산 상품의 대한국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주정부와 협력하여 “Buy America in Seoul”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나, 망 사용료와 온라인플랫폼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셋째, 미국과 중국의 무기화된 상호의존이 초래할 간접적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2017년 중국, 2019년 일본으로부터 무기화된 상호의존을 경험한 이래, 다변화, 기술 주권의 강화, 소부장 경쟁력 강화 등 다양한 대비책을 강구해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2025년 10월 희토류 수출 통제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미국뿐 아니라, 중국 기술이 사용된 제3국 제품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한 데서 나타나듯이, 무기화된 상호의존이 포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외 진출한 한국 기업이 간접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미국과 중국이 첨단산업에서 생태계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는 데 대비하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비롯한 주요 첨단산업에서 풀스택 경쟁에 이미 돌입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성하려는 추세는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세계 경제 질서의 분절화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분절화는 과거로 회귀가 아니라, 재연결이어야 한다. 한국은 유사 입장국과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가 단절로 퇴행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재연결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지향하여야 한다. ■ ■ 이승주_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사회과학대학장.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이승주 2026-01-15조회 : 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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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⑤ 2026년 인도·태평양 전망과 한국의 과제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I. 들어가면서  최근 몇 년간 급부상한 인도·태평양 공간은 상당 부분 미국에 의해 가공된 전략적 공간인바, 2025년 인도·태평양 국제질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가져온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경시와 다자 무역 질서를 파괴하는 양자 무역 협상 행태로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내구력과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 우선주의와 선택적 개입주의에 집중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대, 연결, 집단안보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안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공재 제공을 통해 역내 국가들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려는 의지도 제한적인데, 2025년 1월 초 시행된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자금 지원 중단과 7월의 USAID 폐지는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의 안보를 연계하려는 전략적 구상에도 소극적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때 미국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인도·태평양’ 대신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용어 사용 빈도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전략적 의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2025년 10월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 참석한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며, 미국이 여전히 인도·태평양을 핵심 전략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비록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 문서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는 상위 전략 문서들 내에서 우선순위가 조정된 결과이지, 인도·태평양에 대한 전략적 의지 자체가 소멸하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1기 행정부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07년 출범 이후 1년 만에 사실상 중단되었던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력)를 2017년 부활시키며 인도·태평양 시대의 본격적 도래를 선언하였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면서, 동맹국 및 안보 우호국들을 겹겹이 연결하는 ‘격자형(lattice-type)’ 안보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25년 1월 21일에 개최된 쿼드 외교장관회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유사 입장국 간 해양·경제·기술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6개월 후인 7월 1일 개최된 쿼드 외교장관회의 역시 이러한 기조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2025년 2월 10일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은 쿼드를 비롯해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등 다층적 소다자 협력 메커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록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과 이에 대응한 미국의 50% 상호관세 부과로 미·인도 관계가 악화되면서 2025년 말 인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쿼드 정상회의가 취소되었지만, 쿼드는 첨단기술, 사이버, 핵심광물, 해양안보, 물류 등 비전통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한편 전통안보 영역에서는 서태평양 제1도련선에서 중국 억제를 목표으로 하는 이른바 ‘스쿼드(S-Quad, 미·일·호주·필리핀 안보협력)’가 점차 제도화의 틀을 갖추어가고 있다.  2025년에 미국이 공개한 「잠정 국방전략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ic Guidance)」, 「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 초안, 그리고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은 모두 인도·태평양을 미국의 핵심 전략 지역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억제를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하영선 2026).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처럼 동맹국들로부터 과도한 부담을 ‘강탈당하지’ 않고 당면한 중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저비용·고효율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관리할 수 있는 안보네트워크를 유지·강화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관이나 자국 우선주의와 배치되는 선택은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는 구성국 간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특정 사안에 대한 공동 대응을 조율하는 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운영 시스템’으로서의 규칙과 규범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확산시키고 이행 여부를 다각적으로 점검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종합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안보네트워크를 매개로 한 ‘연합 패권(coalitional hegemony)’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Loke and Emmers 2025). 이에 따라 2026년을 향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변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를 어떻게 유지·관리할 것인지, 그리고 이에 대해 중국과 역내 국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가 될 것이다.  II. 2026년 인도·태평양 전략 환경  1.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지속과 조정  미국이 여전히 패권국인지, G2의 일원인지, 혹은 세계질서가 G0 또는 G- 상태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국제정치학계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아직 세계 유일의 ‘하이퍼 파워(hyper power)’라는 점을 부정하는 견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태국-캄보디아 전쟁을 포함해 진행 중이던 다수의 분쟁을 자신이 중단시켰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과장된 자화자찬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미국의 압도적 패권적 지위를 방증하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록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2025년 12월 6일 개최된 ‘레이건 국방 포럼’ 연설에서 미국의 단극 체계는 끝났다고 발언했지만, 이는 동맹국의 역할 증대를 강조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다만 문제는 미국 패권의 ‘성격 변화’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재를 제공하는 ‘선의의 패권국(benign hegemon)’이었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의 미국은 ‘악의적 패권국(malign hegemon)’의 모습을 보인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해 구축한 자유주의 다자 무역 질서의 근간을 흔들면서, 세계 각국을 상대로 양자 협상을 통해 이른바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기반해 실질적인 강제력을 수반한다. 일례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대중(對中) 압박 정책의 반사이익을 누렸던 베트남에 대해서는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통로가 되고 있다는 이유로 2025년 4월 2일 46%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베트남이 대미 무역흑자 축소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자, 미국은 7월 2일 관세율을 20%로 인하하였다. 10월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로 진행된 관련 협상에서도 미국은 아세안 국가 일부에게 무관세 적용 범위를 확대해 준 반면, 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에 19%, 베트남에 20%의 상호관세를 유지하였다. 인도의 경우, 인도의 러시아 원유 수입을 문제 삼으며 50%의 관세를 부과하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통상 압박과 함께 동맹국을 상대로 국방비 증액 요구도 강화하고 있다. 집권 초부터 나토 동맹국, 일본, 한국, 호주에게 국방비를 GDP의 5%까지 증액하라고 압박하고 있는데, 나토의 기준으로 볼 때 5% 중 3.5%는 직접적인 군사비용, 1.5%는 간접적인 안보 비용이다. 2025년 5월 30일 샹그릴라 안보대화를 계기로 개최된 미·호주 국방장관 회담에서 미국 헤그세스 장관이 호주 리차드 말스 장관에게 국방비를 GDP 대비 3.5%까지 신속히 올리라고 요구하자,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국방 정책은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며 공개 반발하였다. 한국은 2025년 10월 30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심 군사비를 GDP 대비 3.5% 수준까지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다. 2025년 12월에 발표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는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를 떠받들던 시기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동맹국들의 국방비 분담 증액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 동맹국들을 ‘무임승차 국가’로 비난하는 반면, 러시아나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미국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민주주의 및 가치 외교의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보이다.  아울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국가 자본주의적 성향을 강화하며 미국 대기업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2025년 초 미국과 베트남의 관세 협상 국면에서 베트남이 미루어왔던 미국 첨단기술 기업 스타링크(Starlink)의 베트남 사업권을 승인하기로 한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미국은 2025년 7월 ‘미국의 AI 행동 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하며 미국의 AI 제품과 플랫폼을 동맹 및 안보 우호국에 수출해 글로벌 표준과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패권적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과거 화웨이 사태가 중국 기술의 사용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둔 배제 전략이었다면, 최근 미국의 접근은 자국 기업의 기술과 제품 사용을 요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기술 패권 전략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구축해 온 안보네트워크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냉전기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태국과의 동맹을 중심으로 이른바 ‘중심축과 바큇살(hub and spoke)‘ 동맹 체제를 운영했고, 탈냉전기에는 동맹을 상호 연결하고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안보 파트너를 포함하는 다층적·복합적 안보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런데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는 미국의 ‘중심성(centrality)’을 담보하지 않는다. 냉전기 미국이 주도한 ‘중심축과 바큇살’ 동맹 체제에서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비대칭적 권력 관계로 인해 미국의 중심적 지위가 자연스럽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원칙 있는 안보 네트워크’와 바이든 행정부의 ‘격자형 안보 네트워크’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 참여국은 확대되었고,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과 가치 공유의 수준은 점차 분산·이질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기존 질서 유지와 안보 공약을 위해 제공해 온 경제적·군사적 공공재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 이를 이어받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CHIPS)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그리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은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바탕이 되었던 법의 지배, 자유무역, 민주주의와 같은 ‘자유주의 국제질서(International Liberal Order)‘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는 비교적 높은 내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네트워크상의 중심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연결 중심성(Degree Centrality)’과 ‘근접 중심성(Closeness Centrality)’에만 의존하지 않고, ‘매개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과 ‘고유벡터 중심성(Eigenvector Centrality)’까지 함께 증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Park 2023). 첫째, 미국은 ’연결 중심성‘ 측면에서 기존 동맹국뿐 아니라 과거 적대 관계에 있었거나 비동맹 성향을 지닌 국가들까지 적극적으로 네트워크에 편입시켜 왔다.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와 항공모함 기항, 인도네시아와의 포괄적 안보 파트너십 체결, 파푸아뉴기니와의 방위협정은 미국의 전략적 접근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은 안보네트워크의 외연 확장을 통해 남중국해와 남태평양을 아우르는 접근성과 중국 견제 역량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둘째, ’근접 중심성‘ 측면에서는 기능별 협력체를 중첩적으로 연결해 소지역과 의제 간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 해양영역 인식, 해저케이블, 팬데믹 대응, 물류 통합 등 쿼드(플러스)의 기능주의 협력은 네트워크의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미국의 의제 설정 능력을 강화한다. 이와 더불어 2025년 일본과 필리핀에서 제기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단일 ‘전역(theater)’으로 묶으려는 논의 역시 전통 안보 영역을 넘어 기능적 협력의 결속도를 높이는 흐름과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동맹국의 역할을 증대하고 미국의 부담을 축소하기 위해 ‘매개 중심성‘과 ‘고유벡터 중심성’을 높이고 있다. 셋째, ‘매개 중심성‘ 차원에서는 미국은 광범위하고 이질적인 인도·태평양 공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소지역 허브’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 부활한 쿼드는 일본, 호주, 인도를 각각 동북아, 남태평양, 인도양의 핵심 거점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넷째, ‘고유벡터 중심성’ 차원에서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같은 소지역 허브 국가를 적극적으로 지원·육성함으로써 간접적 영향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은 일본의 역내·외 안보 역할 확대와 한·일 관계 정상화, 호주의 남태평양 리더십 강화, 그리고 나토와 인도·태평양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IP4) 간 연계를 촉진하고 있다.  중심성’ 강화 측면에서 2026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데 있어 주목할 것은 앞서 언급한 ‘스쿼드’이다. 2025년 내내 인도의 러시아산 석유 구매 등으로 미국과 인도의 관계가 소원해진 상황에서, 미국은 쿼드를 비전통안보 중심의 ‘쿼드+’로 운영하는 한편, 인도가 제외되고 필리핀이 포함된 ‘스쿼드’를 보다 전면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스쿼드는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비전통안보를 넘어 전통안보 영역까지 협력을 확대한 소다자 안보협력체이다. 2024년 이후 4개국 간 다양한 조합의 양자·3자·4자 군사훈련과 공동 해양 순찰이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2024년 4월 개최된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과 같은 해 7월 체결된 일본·필리핀 상호접근협정은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미국은 2025년 1월 USAID 자금 동결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도 일부 예외를 설정했는데, 필리핀군 현대화 지원 예산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나아가 필리핀을 중심으로 일본과 호주뿐 아니라 영국·캐나다·프랑스 등 나토 주요국과의 군사·안보 협력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동북아시아의 일본, 남태평양의 호주, 인도양의 인도에 더해 동남아시아에서도 전략적 거점 국가를 확보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2024년 필리핀과의 연합훈련을 위해 일시적으로 배치했던 중거리 미사일을 철수하지 않았으며, 2025년에는 오히려 추가 배치하였다. 동남아 거점으로서 필리핀의 안보 역할 확대와 ‘스쿼드 (+)’는 미국이 ‘매개 중심성’과 ‘고유벡터 중심성’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2. 중국의 세력권 확장: 미·중 제도·규범 경쟁 심화  인도·태평양 국제관계 질서는 단순히 ‘군사력(power)’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Kai He와 Huiyun Feng에 따르면 국제질서는 군사력뿐 아니라 제도(institution)와 규범(norm)에도 영향을 받는다 (He and Feng 2023). 제도의 측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크게 세 가지 축이 존재한다. 첫째는 유엔(UN)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국제질서, 둘째는 아세안 중심 제도(ASEAN-led institutions), 셋째는 미국이 주도해 온 인도·태평양 안보네트워크이다. 그러나 세 가지 모두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유엔 질서는 미국 스스로가 이를 훼손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규범적 권위와 실효성이 약화하고 있다. 아세안 중심 제도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과 합의제(consensus building)를 핵심 원리로 삼고 있는데, 그 자체가 의사결정의 속도와 효율성을 제약한다.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는 동맹과 소다자 안보협력이 격자형으로 중첩되는 구조이지만, 아직 포괄적인 제도의 기제를 구비하고 있지는 못하다. 기존 제도의 결함 속에서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SCO), 러시아·인도·중국(RIC) 협력,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체(BRICS),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 (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 등 이른바 ‘중국식 다자주의’ 협의체를 통해 제도의 차원에서 세력권을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즉, 유엔, 아세안, 미국 주도의 제도가 흔들리는 틈을 활용해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시어티브(GGI)‘를 제시하며 대안적 다자 제도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률 2026).  BRICS의 경우, 2024년 말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BRICS 파트너국이 되었고, 2025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가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어진 2025년 6월 베트남의 파트너국 합류, 10월 아세안 정상회의에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의 참석은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 BRICS에 대한 관심과 관여 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2025년 5월에는 아세안–걸프협력회의(GCC)–중국 3자 정상회의가 최초로 개최되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내 이슬람 국가들이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가운데, 중국은 이 틀을 활용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였다.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SCO가 장기적으로 동남아까지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동남아 국가 중 SCO 회원국은 없지만, 경제적 연계 강화, 에너지·시장 접근, 중앙아시아 진출이라는 잠재적 이익을 고려할 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대비되게 역내 다자 무역 협력을 확대하였다. 2025년 10월 아세안 주도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아세안은 ‘중국–아세안 FTA 3.0’ 확대 개정안에 합의했다. 2020년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 체결 이후 처음으로 RCEP 정상회의도 개최되었다. 미국이 다자 무역 질서에서 이탈하는 가운데 중국이 역내 경제 질서에서 제도적 중심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2025년 10월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아세안–중국 회담에서 중국 리창 총리가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미국을 간접적으로 겨냥한 발언을 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중국이 다양한 (소)다자 협력을 촉진하며 역내 세력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전략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규범(norm), 즉 가치와 정체성의 측면에서도 중국의 세력권 확대 추세는 뚜렷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의 미국은 더 이상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선의의 패권국(benign hegemon)’으로 인식되기 어렵고, 오히려 ‘악의적 패권국(malign hegemon)’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 및 안보 우호국들과 공유해 왔던 ‘우리(we)’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치, 인권 문제, 규범 위반 행태를 부각하며 ‘타자(thou)’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우리(we)’ 정체성의 손실을 일정 부분 보완하려 한다 (Park 2025). 반면 중국은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2024년 12월 17일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심포지엄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발’을 다자협력의 핵심 기치로 내세우며 다자 영역에서 중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기회를 포착하여 중국이 세계 무대 중심으로 부상하겠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조적 약점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체계적인 지경학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개별 인프라 투자와 일본, 호주, 인도와의 양자·삼자·쿼드 협력을 통해 일대일로에 대응해 왔으나, 중국의 압도적인 자본 규모에 비해 제한적 성과에 그쳤다. 제도와 규범을 통한 중국의 세력권 확산 의도는 2025년 초 미국이 USAID 자금 동결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던 다수의 개발협력 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하자 중국은 이를 전략적 기회로 활용해 역내 다자 영역에서 미국 영향력을 약화하고 자국의 공간을 확대하려 했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2025년 4월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잇달아 방문하며 ‘미국 영향력 축소’ 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외교 행보를 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2026년 신년사에서 ‘각국과 손을 맞잡고 세계 평화 발전을 촉진하며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언했다.  중국의 매력공세가 지속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0월 개최된 아세안 주도 정상회의에 참석할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첫해를 제외하고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 지속해서 불참했었기 때문에, 2기에서도 유사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발생한 8개의 전쟁을 중단시켰다고 자평해 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캄보디아와 태국 간 휴전 협정식은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기에 적합한 무대였다. 휴전 협정식 참석을 위해 2025년 10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아세안 정상회의(아세안+1)에는 참석했으나, 역내 주요 국가들이 참여해 지역 질서 전반을 논의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는 불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적 참여는 미국의 아세안 관여가 규범과 제도를 함께 형성하는 다자주의적 접근이라기보다는 단기적 성과와 거래를 중시하는 도구적 접근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자국을 ‘다자주의의 수호자’로 차별화하면서 제도적·규범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3. 미·중 경쟁과 동남아, 남태평양, 인도양: 역내 중견국 네트워크 확장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지경학적 경쟁이 한층 심화하는 가운데, 동남아시아는 미·중 세력권 경쟁이 가장 첨예하게 전개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아세안이 공식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국들의 미국 또는 중국으로의 경도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필리핀은 ‘스쿼드’를 통해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2025년 4월 레암 해군기지를 개장한 캄보디아는 중국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인다. 미국은 인도네시아 등 주요 동남아 국가들을 자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로 유인하기 위해 해양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정부 안전보장 능력강화 지원(OSA)’을 통해 정보·감시·정찰(ISR) 장비 제공 등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2025년 11월 개최된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미국은 무인기 기반의 공동 해양 감시체계 구축을 제안하였다.  지경학적 차원에서는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개발원조를 지속하며 역내 국가들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한 중국에 맞서 미국은 2025년 10월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과 핵심 광물 및 희토류 협정을 체결하였다. 특히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와의 무역협정에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나 안보를 위협하는 경쟁 협정을 체결하면 협정을 종료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중국을 염두에 둔 미국의 비대칭적이고 조건부적인 지경학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아세안이 단일한 집단 행위자로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는 내부 분화와 이해관계의 이질성이라는 구조적 제약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2025년에도 미얀마 군정 승인 문제를 둘러싼 아세안 내부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태국과 캄보디아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다. 5월 26일 양국의 국경분쟁 지역에서 교전이 발생해 캄보디아 군인이 사망했고, 군사적 긴장은 7월 24일부터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7월 29일 휴전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지속되었으며, 결국 미국과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의 중재로 10월 ‘쿠알라룸푸르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럼에도 11월 12일 교전이 재발했고, 12월 7일 대규모 충돌 이후 12월 27일에야 새로운 휴전이 합의되었다. 미얀마 군정 승인 문제와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은 아세안의 내부 응집력이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아세안이 강조해 온 ‘아세안 중심성’과 ‘아세안 컨센서스’ 원칙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은 아세안 차원의 포괄적 합의가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아세안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소수 국가 중심의 소다자 협력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세안 중심성과 컨센서스를 부정하기보다는, 신속하고 실질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사안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유연한 협력 방식을 병행하려는 것이다.  한편 남태평양 호주에서는 2025년 5월 3일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며 정권을 연장했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정부는 자유당 정부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무역분쟁으로 악화하였던 호주와 중국의 관계가 정상화될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평가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남중국해 및 남태평양 공세가 지속되면서 호주 내 중국 위협 인식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25년 2월 중국 해군의 태즈먼해 실사격 훈련으로 민간 항공기가 항로를 변경해야 했고, 10월에는 중국 전투기가 남중국해에서 호주 해상초계기 인근에 조명탄을 발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비록 2024년과 2025년 정상회담을 계기로 호주와 중국 간 무역 관계는 표면적으로 정상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호주에서는 중국이 대체 광물 공급처를 확보할 경우 경제적 강압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에 따라 호주는 2025년에도 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핵심 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쿼드 차원의 ‘핵심 광물 이니셔티브’와 미·호 간 ‘핵심 광물 공급망 프레임워크’를 체결했다. 안보 측면에서도 호주는 ‘탤리즈만 세이버(Talisman Sabre)’와 같은 대규모 연합훈련을 통해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남방 축 역할을 지속하는 한편,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스쿼드 협력과 동남아 해양안보 역량 강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호주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출범한 ‘오커스(미·영·호주 안보협력, AUKUS)를 계승할지가 핵심 관심사였다. 미국 해군의 잠수함 전력 감소 전망 속에서 미국에서 오커스 후퇴 가능성이 제기되자 호주와 영국이 우려를 표명했으나, 6월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미·영 정상회담과 10월 미·호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커스 지속과 원자력 잠수함 제공 일정을 확인했다. 이어 12월 미·호주 장관급 ‘2+2’ 회의에서도 오커스 추진이 재확인되며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남태평양에서 호주는 자국의 안보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세력 확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인프라 투자와 안보협력을 확대하자, 호주는 다수의 태평양 도서국과 안보 협정을 체결하고 치안·군사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2025년에는 미국, 일본과 함께 키리바시–나우루–미크로네시아를 연결하는 대규모 해저케이블을 완공하며 사이버 안보 대응에도 나섰다. 비록 중국의 지속적인 공세로 바누아투와 나우루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대응하는데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으나, 2025년 9월 파푸아뉴기니와 방위조약을 체결하며 남태평양에서 미국과 뉴질랜드에 이어 세 번째 동맹국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도양에서는 인도·호주·프랑스 간 삼자 안보협력의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이른바 ‘캔버라–델리–파리’ 안보협력은 2020년 프랑스의 주도로 출범했는데, 오커스 협정 체결 과정에서 호주가 프랑스와의 잠수함 계약을 파기하면서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후 2022년 호주 노동당 정부 출범과 위약금 합의를 계기로 호주–프랑스 관계가 회복되면서, 삼자 협력 역시 재가동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2025년에는 1월 프랑스 주관 ‘라 페루즈(La Pérouse)’ 훈련에 인도와 호주가 참여했고, 7월에는 인도가 호주와 미국이 주관하는 ‘탤리즈만 세이버(Talisman Sabre)’ 훈련에 최초로 참여했으며, 10월에는 호주와 인도가 안보 협정을 체결하는 등 협력 재개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같은 달 23일에는 제77차 유엔총회를 계기로 3국 외교장관이 미국 뉴욕에서 회동해 해양 안보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프랑스령 레위니옹, 호주의 코코스 제도, 인도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를 잇는 인도양의 전략적 중요성이 재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나아가 디에고 가르시아를 매개로 한 미국·영국과의 연계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호주와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내·외 국가들과의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눈에 띄게 늘이고 있다. 예컨대 호주는 2025년 8월 일본에 약 9조 원 규모의 차세대 구축함 11척을 발주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호주와 인도가 안보협정을 체결했다. 소다자 차원에서도 호주·한국·일본이 참여한 제3차 인도·태평양 대화가 2025년 10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과 안보 우호국이 역내 국가 중심의 전략적 연합을 중시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에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동참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나토–IP4 연계가 미국의 직접적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유럽과 인도·태평양을 연결하는 협력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5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호주·인도·캐나다는 신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3국 파트너십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호주와 인도의 관점에서 일본·한국·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거점 국가와의 협력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를 보완·강화하는 동시에, 역내 국가 주도의 소다자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 주도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로 기능하는 호주·인도·일본·한국·필리핀 등이 연대를 통해 네트워크 내 위상을 공고히 하면서 자율성을 확대해 나갈 경우, 해당 네트워크가 과도하게 미·중 대립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III. 우리의 전략적 고려사항  미·중 경쟁의 전개 양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력, 제도, 규범을 둘러싼 질서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한국의 대외 전략 전반에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한국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내 위상 강화, 중국을 고려한 전략적 신중성, 역내 중견국 및 유럽과의 안보협력 확대라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복합적인 전략적 판단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이 아직 군사적 측면에서 세계 유일의 ‘하이퍼 파워(hyper power)’라는 점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은 한반도 밖 안보 의제에 대한 관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억제 정책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동맹국인 한국 역시 인도·태평양 주요 안보 이슈에서 일정 수준의 기여를 요구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서태평양 제1도련선을 따라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만과 서필리핀해를 중심으로 양 진영의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필리핀이 수행하는 해양 순찰과 훈련에 일본, 호주, 일부 나토 국가들이 가세하는 ‘스커드(+)’ 구도가 구체화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공세적 회색지대 전략의 수위를 지속해서 높이고 있다. 2026년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은 스쿼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아세안 의장국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남중국해 행동규범‘의 조속한 체결을 촉구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과제는 미국·일본 주도의 해양 안보협력에 대해 참여의 범위와 정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있다. 2025년 초 필리핀이 한국의 스쿼드 참여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언론 보도는 이러한 문제가 실제 정책 논의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라카 해협 순찰이나 술루–술라웨시 해 순찰과 같은 기존의 역내 해양 안보협력 틀에 대한 참여 요청이 있을 때도 한국은 단순한 참여 여부를 넘어 전략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해양 안보 관여는 참여 자체보다 참여의 범위와 방식이 핵심 쟁점이 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한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훈련 참여 확대는 한국이 ‘글로벌 책임 국가’이자 ‘G7+ 국가’를 지향하며 한반도를 넘어 역내 안보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호주와의 안보협력 강화는 이러한 방향에 부합한다. 한국은 2021년 이후 호주와 미국이 주관하는 ‘탤리즈만 세이버’ 훈련에 지속해서 참여해 왔으며, 2023년과 2025년에는 한국이 수출한 K-9 자주포의 실사격 훈련을 호주 영토에서 실시했다. 동 훈련은 방산 협력을 매개로 상호 신뢰를 높이는 동시에 한국군의 실질적인 훈련 여건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이 참여하는 양자 및 다자 군사훈련의 수가 증가하고 규모가 확대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역내 국가들과 체결해 온 ‘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RAA)‘은 한국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이다. 한국 역시 호주나 필리핀 등과의 RAA 체결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쿼드가 인도·태평양 지역 ‘해양상황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MDA)‘ 체제의 확장을 추진할 경우 한국의 참여 여부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2022년 제3차 쿼드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해양상황인식 파트너쉽 (Indo·Pacific MDA, IPMDA)‘ 발족이 합의되었고, 2024년 9월 정상회의에서는 본격적인 추진 방안이 논의되었으며, 2025년 7월 외교장관회의에서도 관련 기조가 재확인되었다. 한국은 정보·감시·정찰과 해양 안보협력 역량을 바탕으로, 참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 공유 확대와 협력 네트워크 편입의 이점과 대중국 관계에 미칠 영향, 추가적 역할 부담이라는 비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판단의 기준은 개별 사안의 득실을 넘어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내에서 한국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전략 목표와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역내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해양 능력 배양(Maritime Capacity Building)‘ 역시 개별적 기여에만 머무르지 않고 쿼드 국가 및 나토 주요국과의 협력과 조율을 보다 체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해양 능력 배양은 역내 국가의 비전통 안보 수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크며, 동시에 미·중 전략 경쟁이 첨예한 지역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중국의 해군력 팽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선박의 ‘유지·보수·운영(Maintenance, Repair, Operation, MRO)‘을 둘러싼 전략적 협력의 중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첨단 조선 역량을 보유한 한국은 일본·호주·인도와의 경쟁 구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공동 컨소시엄과 같은 협력 방식을 통해 전략적 시너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과 미국은 수빅만을 미 해군의 유지·보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설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5년 7월에는 미국이 남중국해 인근에 선박 정비·유지보수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2025년 4분기부터 HD현대가 수빅만 조선소를 재가동한 사례는 미국 사모자본, 한국의 기술, 필리핀의 노동력이 결합한 협력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역내 국가와의 선박 건조 및 MRO 협력을 경제적 이익의 차원을 넘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내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호주·인도와의 경쟁을 최소화하고 역할 분담에 기초한 협력 구조를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5년 7월 HD현대와 인도 코친조선소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과 12월 호주 정부가 한화그룹의 호주 오스탈 지분 19.9% 인수를 승인한 것은 협력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한편 한국은 궁극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형성해 가는 인도·태평양 질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질서 수용자(order-taker)’에 머무르기보다, 질서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질서 형성자(order-shaper)’의 역할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질서 형성자’ 정체성은 한국이 한반도 전략과 지역 전략, 세계 전략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추진하기 위한 핵심 비전이다. 전임 윤석열 정부는 한국을 ‘글로벌 중추국가(GPS)’로 설정하고, GPS 역할을 위한 아홉 가지 중점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아직 이재명 정부의 구체적인 지역 전략은 공표되지 않았으나, 향후 한국은 ‘질서 형성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 정립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협력 의제를 지속적으로 발굴·추진하되, 역내에서 가시성과 전략적 효과를 함께 확보할 수 있도록 해양 안보 관련 의제를 우선해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역내 국가가 지역 질서 유지에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견국 이상의 국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국이 속한 소지역에서 지도적 위상을 확보하고, 소지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서 핵심적인 연결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동북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동남아), 호주(남태평양), 인도(인도양)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단일 중견국이 역내 안보 질서의 구축과 유지를 주도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들 국가가 소다자 연합을 형성하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일정 수준의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주요 중견국들과의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23년 한·일 안보협력 복원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은 호주와 함께 동북아를 넘어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도 소다자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일본·호주·아세안 또는 한국·일본·호주·태평양도서국과 같은 조합의 협력도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한국과 호주가 동남아시아에서 추진해 온 공동 개발협력 경험은 남태평양에서도 협력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정례적으로 개최되어 온 한·호 아세안 정책 대화를 토대로, ‘한·아세안 연대구상’에 상응하는 ‘한·호주 남태평양 연대구상’을 제안함으로써 지역 연계 외교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해외개발원조(ODA) 예산 축소는 한국이 전략적이고 매력적인 ODA 외교를 통해 소프트 파워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임 정부가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 ODA 확대를 예고하며 높아진 기대를 감안할 때, 현 정부가 현상 유지나 축소를 선택할 경우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한국은 역내 국가들이 주도하는 자생적 소다자 안보협력을 촉진하거나 기존 협력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중국 또한 참여할 수 있는 협력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교량 국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내에서의 위상 제고와 조화를 이루는 범위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중국식 다자주의’ 협력에도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 ■  참고문헌  이동률. 2026. “중국 외교 2026년: 다극 세계질서에 대한 기대와 글로벌 역할 확대 적극 추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https://eai.or.kr/press/press_01_view.php?no=13470 (검색일:2026.1.11.)  하영선. 2026. “2026 미·중 관계 전망: 핵심 이익의 조정과 문명사적 리더십의 전환기”. 「2026 신년 특집 보이는 논평」. 동아시아연구원. https://eai.or.kr/ (검색일:2026.1.11.).  He, Kai & Feng, H. 2023. “International order transition and US-China strategic competition in the indo pacific.” Pacific Review, 36(2). 234-260.  Loke, B. & Emmers, R. 2025. “Coalition-building and the politics of hegemonic ordering in the Indo-Pacific.” Australian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79(4), 543–551.  Park, J. J. 2023. “The US-led security network in the Indo-Pacific in international order transition: a South Korean perspective.” Pacific Review, 36(2). 329–350.  Park, J. J. 2025. “American coalition building of the US-led security network in the Indo-Pacific: US influence-building measures.” Australian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79(4). 570–585. ■  ■ 박재적_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및 언더우드국제대학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박재적 2026-01-13조회 :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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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④ 중국 외교 2026년: 다극 세계질서에 대한 기대와 글로벌 역할 확대 적극 추진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Ⅰ. 국제정세에 대한 변화된 인식: 다극 세계질서와 중국의 5대 글로벌 역할 중국은 2025년에 이어 2026년을 국제 질서 변화의 역사적 분수령이 되는 시기로 상정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단극 패권 체제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쇠퇴하면서 다극화된 세계가 전면적으로 부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2023년 말 5년 만에 개최된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세계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를 핵심 외교 과제 및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초기에 중국은 미국이 강력하게 중국에 대한 압박과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경계하고 우려했다. 그런데 중국은 트럼프 2기 정부와 관세 문제로 거칠게 대립하면서 오히려 미국에 대한 우려는 점차 약화되었고 2025년 10월 부산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과 관계에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시진핑 정부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세계의 다극화도 상당 정도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부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여전히 다양한 도전과 위험이 복합적으로 혼재된 상태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국제무역 규범이 파괴되고 경제 세계화는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평가한다. 아울러 국지전과 국경 충돌이 2차 세계대전 이래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지정학적 불안도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시진핑 정부는 2025년을 상당한 외교 성과를 거둔 한해로 회고한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역량이 충분히 발현되고 역할도 확대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왕이 부장은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国际影响力), 혁신 선도력(创新引领力), 도의적 감화력(道义感召力)이 현저히 향상되었다고 밝히고 있다.[1]  즉, 시진핑 정부는 국제정세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역량이 커지고 역할도 더욱 부각되고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세계화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회복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중국 경제의 활력과 안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과 2026년에 연이어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역량과 새로운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2025년에는 중국이 지니고 있는 5대 국제 역량, 즉 평화, 단결, 개방, 정의, 포용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외교 성과를 소개한 바 있다. 2026년에는 한층 진화한 형태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수행한 주도적 역할을 영역별로 다섯 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상세하게 제시하였다. 예컨대 격동의 세계 정세에 중국은 ‘안정의 닻(稳定锚)역할을 하고, 새로운 주변 환경에서는 든든한 버팀목(主心骨),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길잡이 (定盘星)’역할을, 그리고 세계 경제의 발전을 견인하는 성장 엔진(主引擎) 역할과 국제 도덕 위기에 균형추(压舱石)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5년 5월 중국-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공동체 포럼 장관급 회의 주최, 8월 상하이협력기구(SCO) 톈진 정상회의, 9월 전승절 행사,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브릭스 정상회담 확대, 캄보디아-태국 분쟁 중재 등을 중국이 수행한 주도적 역할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도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 강력한 투쟁과 대화를 병행하는 대응 전략을 전개해 미중관계의 새로운 상호작용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중국은 2026년에 국제정세의 불확실성과 혼돈은 지속되지만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패권 지위도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2025년에 얻어낸 중요한 외교 성과와 자신감을 기반으로 이전과 달리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빈 공간을 파고들어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기회로 포착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내부적으로 2026년을 '15차 5개년 규획(2026-2030)'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 해로서, 국내 경제 발전의 새로운 단계와 대외 전략적 요구가 맞물리는 중요한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기본적으로 2035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초보적으로 완성하는 중장기 발전 목표에 집중하고자 한다. 따라서 중국은 세계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내 발전에 적합한 국제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렇지만 이른바 백년만에 진행되고 있는 단극질서의 쇠퇴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영향력과 주도권을 확대해 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전략적 고민도 하고 있다.  II. 중국식 대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 개척: 현대화 강국 건설과 글로벌 주도권 강화의 이중주  왕이 외교부장은 매년 말 '국제 정세와 중국 외교 토론회'에서 한해의 외교 성과를 정리하고 이듬해의 외교 중점 과제를 발표해 왔다. 2025년 12월 30일 발표된 연설은 우선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중국 특색 대국 외교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자.’ 는 제목에서부터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왕이 외교 부장은 2026년 중국 외교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를 7개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가발전과 민족 부흥을 위한 전략적 지원 제공, 즉 '15차 5개년 규획에 대한 견고한 외교 지원, 둘째, 대국관계, 특히 대미 관계에서 상호작용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 셋째, 주변운명공동체 구축, 넷째, 글로벌 사우스와의 공동 현대화 추진, 다섯째, 글로벌 개방과 협력 확대, 여섯째,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일곱 번째, 국익 수호로 정리하고 있다.  7대 외교 과제는 외형적으로는 기존 외교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구체적인 각론과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시진핑 정부가 외교전략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려는 기류가 읽힌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이후 그동안 대만문제 등 핵심 이익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강경하게 투쟁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저비용의 안정적인 국제관계를 지향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 발전에 집중하는 외교 전략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2025년을 경과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 역할의 확대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중국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식 현대화 강국 건설에 매진하면서 동시에 국제질서의 혼돈과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능동적으로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병행하고자 한다.  왕이 부장은 2025년 년말 연설에서 ‘역사적 주도권 강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전략적 주도권 확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위상 제고’ 등 과거 어느때 보다도 ‘주도권’을 여러 차례 역설하고 있다. 즉 다극화가 진행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중국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영향력과 주도권을 확장하는 대국 외교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담론의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외교 수사와 담론이 제시되어 왔으나 실현성과 구체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뒤따랐다. 2025년 왕이 부장의 연설에는 담론을 구체적인 정책과 전략으로 표출하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지속적으로 역설해왔던 모호한 운명공동체론이 이른바 '다섯 가지 집(五大家园)' – 평화, 안녕, 번영, 아름다움, 우호라는 구체적인 5대 지향점을 제시하며 주변국 외교의 목표를 구조화 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RCEP을 통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항(CAFTA) 3.0'의 조기 실시 등을 통해 주변국과의 융합 발전을 실현하려는 정책 의지를 보이고 있다.  1. 15차 5개년 규획 착수와 외교 과제  중국은 15차 5개년 규획 기간을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고 전면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핵심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15차 5개년 규획은 기존의 5개년의 계획과는 다른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2035년 현대화 강국 건설 목표의 기초를 다지는 가늠자 일뿐 만 아니라 시진핑 주석이 4연임을 넘어 5연임으로까지 가는 길을 여는 중요한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시진핑 정부는 2026년 '15차 5개년 규획'의 원년으로서, 고품질 발전을 위한 핵심 기술의 돌파에 외교와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집중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지속되고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15.5 규획은 향후 5년 동안 경제정책의 초점을 제조업의 질적 고도화와 기술 자립 강화에 둘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중국은 인공지능(AI), 스마트 제조, 녹색 에너지 등 '신질 생산력(新质生产力)'의 발굴이 중국의 대외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은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미국 등 서방의 기술 봉쇄에 대응하고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중국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것을 중요한 외교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특히 20기 4중전회에서는 2035년 장기 비전 목표에 ‘국방력’과 ‘국제 영향력’이 도약 목표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사실상 중국이 장기적으로 군사력과 글로벌 영향력을 겸비한 종합 강대국으로의 전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요컨대 중국은 대외적 압박을 견뎌내는 단계를 지나, '15.5 규획'이라는 내부 발전 계획과 시간표에 맞춰 국제질서와 미중관계를 자국 발전에 유리하게 설계하고 주도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15.5 규획은 시진핑 체제의 안정과 직결된 만큼 야심 찬 목표와 강한 실행 의지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많은 장애를 넘어서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중국 경제의 구조 개혁과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서방의 기술 통제를 돌파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15.5 규획의 성공을 위해 외교력을 집중 투사하겠지만 반대로 규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중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대국외교가 제약 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과 미래 첨단 영역의 규범 주도  중국이 대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데 있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이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이래 지속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장해왔지만 실제로 담론 이상의 구체적인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제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개혁을 넘어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고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중국은 2026년에도 기존 국제 체제의 수호자이자 건설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여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고 유엔의 권위와 지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를 제시하여 거버넌스 체제 구축과 주도 의지도 함께 표명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중재 방식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최초의 정부 간 국제기구인 국제중재원(国际调解院)을 2025년 5월 30일 공식 출범했고, 8월 29일 설립 협약이 발효됐다. 국제중재원은 중국 주도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글로벌사우스' 국가 간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거버넌스 사각지대인 미래 첨단 분야에서의 규범을 주도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디지털 경제, 녹색 저탄소 발전 등 미래 첨단 산업 영역에서의 산업 표준과 규범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리창 중국 총리는 2025년 7월 중국 상하이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의 발전 경험과 기술을 세계 각국,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기술 역량을 높이는 데 쓸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2] 중국은 실제로 ‘세계AI협력기구(世界人工智能合作组织)’ 설립도 제안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의 AI 역량 강화에 힘쓰고, ‘지능격차’ 를 해소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사실상 AI 기술과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미국을 겨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 등 국가들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지지를 견인하고자 한다.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공동 현대화 추진과 글로벌 주도권 확장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도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은 기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역설하면서 연대를 강조하는 외교적 수사가 중심에 있었다면 이제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공동 현대화를 제안하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경제 유인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2026년은 중국·아프리카 수교 70주년으로서 ‘아프리카 현대화 협력 지원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공동 발전 경제동반자협정(经济伙伴关系协定) 체결을 가속화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제로 관세’ 정책의 신속한 시행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대화는 서구화를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현대화 지원이 이른바 중국식 발전 모델의 이식을 통한 중국 영향력의 구조화 시도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아울러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글로벌 거버넌스 주도권을 확장해 가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BRICS)를 글로벌 사우스 협력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상정하고 브릭스 메커니즘의 확대와 강화를 지지하고, 브릭스 국가들을 다극화 추진의 협력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중국은 서구 중심의 가치 외교에 맞서기 위해서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공동 발전'과 '현대화 공유'라는 실리 중심의 대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III. 중국, 대미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1. 대미 전략과 관계의 새로운 구상  중국이 대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겠다는 논의는 사실상 대미 외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한 7대 외교 과제에서 첫번째 과제인 15.5 규획의 성패는 미국과의 관계가 주 변수가 될 것이다. 두번째 대미 외교 과제를 제외한 나머지 5대 외교 과제도 사실상 미국을 적시하지 않은 대미 외교전략의 일환이다. 즉 중국은 단기적으로 미국에 맞대응과 대화를 병행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 운명공동체를 추진하고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도하고 글로벌 사우스에 현대화 연대를 제의하고, 개방과 경제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국익 수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7대 외교 과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사실상 대미 외교전략을 구성하고 있다. 요컨대 시진핑 정부가 대국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미 전략과 미중 관계에서 새로운 모색과 시도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2025년 중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자 변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었다. 시진핑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초래될 복합적 도전과 불확실성, 불안정성에 강한 우려와 경계심을 가졌다. 중국은 기존의 대미 외교의 3원칙, 상호존중(相互尊重), 평화공존(和平共处), 협력상생(合作共赢)을 재삼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른바 4개 레드 라인을 제시하여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과 공세, 특히 체제, 발전권, 민주와 인권 그리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도 양보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2025년 상반기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와 수출 통제 강화, 그리고 중국의 강한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미중관계의 긴장국면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격렬한 갈등과 대립을 거친 후 양국은 예상 보다 빠르게 타협을 모색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미중간 관세 협상이 5월부터 5차례 진행되었고 2025년 10월 30일에는 마침내 부산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관세 및 수출통제를 잠정 중단하기로 타협했다.  특히 중국이 가장 경계하고 결연하게 대응을 준비해 온 대만문제는 예상과 달리 미중간의 최대의 갈등 이슈로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관세 압박은 강하게 한 반면에 1기 때와는 달리 대만 문제에서는 예상 외로 신중한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8월 초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이 미국을 경유하여 중남미 수교국을 순방하려던 일정이 돌연 취소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라이 총통의 뉴욕 경유를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대만 총통은 중남미 순방 시 미국 정계 고위인사와의 비공식 정치 교류를 위해 미국 경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진행 중인 관세 협상과 향후 예정된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려에서 불허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와 경계는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2026년 초에는 북경에서, 하반기에는 워싱턴에서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 및 회담이 예상되면서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한 타협이 모색될 가능성도 제기 되고 있다. 중국은 2023년과 2024년에 연이어 미국을 향해 제기했던 이른바 5불(불)과 4개 레드라인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존에 레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강하게 맞대응했던 시진핑 정부는 미국과 상호작용을 통한 새로운 관계 모델 구축을 제기하고 있다.  2. 새로운 미중관계 패러다임 구상의 함의와 제약  왕이 부장은 주요 국가 관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더욱 효과적인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미중 관계의 갈등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안정적인 관계 모델을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중국은 안정적인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만들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기존에 언급한 ‘신형대국관계’ 또는 ‘신형국제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담론적 성격을 지닐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부가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서 대국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전제하에 대미 외교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2026년 구체적인 행보를 주시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중국이 상정하는 새로운 미중관계 패러다임은 아직은 모색 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떠하 배경과 의도에서 시도되고 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상이한 두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내 최근 국제정세에 대한 변화된 인식과 판단이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국제 정세에 역사적 대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 근저에는 미국 단극 체제의 쇠퇴가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중국은 다극화로 진행되는 새로운 국제정세에서 미국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앞서 언급한대로 다극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도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실질적 연대도 강화해 가고 있다. 즉, 미국의 패권 쇠퇴의 기회를 적극 포착하여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주도권을 강화하여 미국과 새로운 균형 관계를 정립해 간다는 구상이다. 최근 중국 국내 언론에서는 미국의 자연재해 통제 실패, 정치적 무질서, 지도자 조롱, 동맹국 불만, 글로벌 영향력 약화를 반복적으로 보도하여 미국을 혼란, 쇠퇴, 무능의 국가로 묘사하면서 ‘체제 쇠락’ 서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적 강대국으로 제시되면서 이를 통해 국내 지지층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의 체제 우월성을 부각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내부 체제 결속과 자긍심 고취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오히려 내부의 기대감을 과잉시키고 미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중국이 우회하기를 원하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특히 미국은 패권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사력, 첨단 기술 등에서는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 있는 만큼 중국은 사실상 장기 전략 구상하에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주도권을 확대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둘째, 중국 국내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대미 전략에 적극 투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최소 4연임 이상의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새로 착수하는 15.5 규획의 성패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향후 최소 5년 또는 10년 기간 동안에 미국과의 본격적인 전략 경쟁을 지연 또는 우회할 필요가 있는 만큼 미국과 관계를 전술적 차원에서라도 안정적 궤도에 진입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15.5 규획의 성패는 시진핑 장기집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15.5 규획에서 상정하는 고품질의 발전을 이루어내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기술 통제를 돌파해야 할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가능한 한 회피해야 하는 현실적 고려에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중국은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경제적 거래에 적절하게 응답하며 적극적으로 타협을 모색하면서 현대화 강국 건설을 위한 안정적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에 호응하지 않고 미국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첨단기술과 군사 분야로 전선을 확대해 가는 경우 중국이 이를 우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시진핑 정부가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새로운 안정화 모델 구상은 어는 경우에도 여전히 미국 트럼프 정부의 불가측하고 도발적인 정책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역사적 분수령에 즈음하여 중대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장기레이스로 설정하면서 체제 안정과 발전에 집중하는 기존의 점진주의적 확장을 견지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단극 쇠퇴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 기회를 적시에 적극 활용하여 중국의 글로벌 주도권을 강화하는데 더욱 집중할 것인지 중대한 전략적 고민에 빠져 있다.  IV. 한중관계 복원을 위한 과제  한중 정상회담이 2개월 사이에 연이어 두 번 이나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빈 방문이 새해 벽두에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지만 한중 양국 정부가 공히 관계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긍정적 신호이다. 현재 한중관계는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으며 새로운 관계 설정이 절실한 중대한 갈림길에 있다. 한중관계는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최악의 상황에서 이미 근 10년 회복의 모멘텀을 갖지 못한 채 정체되어 왔다. 인접한 양국이 자칫 만성적인 갈등 관계로 진입하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한중 양국의 국내 상황뿐만 아니라 주변 국제정세 또한 매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만큼 일단 양국관계의 회복을 위한 시도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를 '한중관계 전면복원 원년' 임을 강조할 만큼 관계 복원은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렇지만 한중관계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구조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중국이 국제질서의 다극화 진전에 대한 기대속에 대미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관계는 이후 더욱 미중전략 경쟁의 영향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국이 관계 회복의 의지를 확인한 만큼 이제 부터 단계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차근차근 난제에 대비할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연이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관계 회복의 강한 의지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양국간 여전히 상호 상이한 기대와 요구를 하는 전략적 동상이몽의 상황이 엄존한다는 것도 새삼 확인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정상회담에 이어서 다시 한번 ‘보호주의 반대와 진정한 다자주의 실천을 강조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옳은 편에 굳게 서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고 주문했다. 중국이 한국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비록 우회적이기는 하지만 북한문제에서의 중국의 역할을 요청했다. 한국은 정상회담 의제로 북한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초점을 맟추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다분히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한국에 대해 전략적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중관계 34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양국관계의 최대 변수인 북한과 미국 요인이 다시 한번 양국의 서로 상이한 요구로 소환되었다. 비록 분명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첫 작업은 일단 상호 상이한 기대와 요구를 솔직하게 테이블에 올려 놓고 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작업에서 출발할 필요는 있다. 중요한 것은 상호 상대의 요구와 기대에 대한 수용 가능 내용과 범위의 적정선을 파악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요구와 기대의 큰 줄기는 명확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데 한국이 과도하게 경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해협과 1도련선내에서 대중 견제에 한국에 다양한 요구와 압박이 있을 경우 한국은 기대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현재 한중간에 대화와 소통이 부재한 국면에서 오히려 갈등과 오해가 더 증폭될 우려도 있다. 한중간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뒤늦게 협의를 시도해 왔다. 그 결과 상황은 이미 한중 양자 차원을 벗어나 확대되어 사태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한중 양국이 지속적으로 상호 긴밀한 전략 대화를 견지하여 상호 상정하고 있는 최대의 기대치와 최소의 레드라인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중 양국이 외생변수로 인한 상황 악화를 예방하고 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이 중국을 향해 북한문제에서의 소위 ‘건설적’ 역할을 요청할 경우 중국이 언급하는 ‘건설적 역할’은 무엇이며 그것이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역할에 부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최근 중국의 북핵에 대한 일련의 태도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에 대해 어떤 대응을 강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우선 한중 양국은 북한(핵)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정례화하여 지속해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중 양국이 상호 인식과 정책에서의 간극을 파악하고 이를 사전에 인지하면서 협력 가능한 접점을 모색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미칠 파장에 대해 중국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중관계가 회복된다고 해도 북한문제와 관련 중국으로부터 한국이 기대하는 대화의 촉진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견인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오히려 중국이 훼방꾼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 또한 중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통한 이해와 설득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한중 양국이 북한 관련 문제에서 지니고 있는 근원적 공감대, 즉 북한 도발이 초래할 한반도 불안정의 예방과 억지, 그리고 북한 체제 안정화와 관련된 정보 교류와 조치 등에서 소통과 협력을 증진하는데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  한중관계 33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중간의 갈등이 고조되면 정부 간 공식 대화가 전면적으로 중단되고 쉽게 재개되지 못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따라서 양국간 갈등 상황 발생 시 작동하여 해결의 접점을 찾아갈 수 있는 실무급부터 최고위급까지 다층적인 전략 대화 채널 구성이 필요하다. 외생 변수의 영향으로 확장된 한반도의 불안정이 비록 한중 양자간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드 갈등 사례처럼 외부요인이 한중관계를 총체적으로 악화시키는 상황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의 긴밀한 소통과 이해 증진이 중요하다.  특히 한중간에는 정례화 되고 체계화된 공식, 또는 비공식 대화 채널이 부족하고 기존의 대화 채널도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갈등과 위기 시 작동되어야 하는 대화 채널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면 중단되면서 소통의 부재가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왔던 교훈을 상기하면서 정권을 넘어서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의 수립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 [1] 王毅出席2025年国际形势与中国外交研讨会并作主旨发言(2025-12-30) https://www.mfa.gov.cn/wjbzhd/202512/t20251230_11790364.shtml [2] 李强出席2025世界人工智能大会暨人工智能全球治理高级别会议开幕式并致辞 (2025.07.26) https://www.mfa.gov.cn/zyxw/202507/t20250726_11677829.shtml  ■ 이동률_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전공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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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③ 2026 일본외교의 플랜B와 한일관계: 대미 의존과 대중 갈등의 사이에서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2. 미국 [논평 읽기]3. 일본 [논평 읽기]4. 중국 [논평 읽기]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8. 국방 [논평 읽기]9. 유럽 [논평 읽기]10. 북한 [논평 읽기]  I. 들어가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환심 사기 외교로 조롱을 받으면서도 미일관계 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인 일본은 지난 9월 굴욕적인 관세 협상을 거치면서 동맹을 거래로 보는 미국에 자국의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12월 공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 2025)”은 이런 인식을 재확인해 주었다. 미국은 더 이상 패권국으로서의 책무 즉, 지구적 의제를 추진하거나 질서 유지에 기여할 의지가 없이 본토 방위와 서반구 관리에 치중하는 자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 그리고 일본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는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이 약화되고 유화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음을 그대로 노정했다.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이자 미국의 유일한 경쟁상대라 지목한 바이든 행정부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일본은 깨달았다.  NSS 2025를 보는 일본의 낙담(落膽)은 기존 외교노선의 전환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패권 재조정에 대한 전향적 대응으로서 미국과 적정한 상호의존 관계로의 재균형, 자체 방위력 강화, 동지국(한국, 호주, 나토 등)과의 협력 확대, 중국과 전략적 소통 강화 등 전략적 모색이 나오고 있다. 1월 3일 미국이 군사 공격으로 마두라 베네주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는 사태를 보면서 일본의 논의는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그 전도는 일본의 대미 의존을 고착화하려는 미국의 태세에 대한 일본내 정치 동학, 그리고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으로 악화된 중일관계의 전개 여부에 달려 있다. 미일 관세 합의와 방위비 분담 합의, 중일관계 악화, 중국의 강압외교는 과연 일본외교의 플랜B를 가져올 것인가. 한일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2020년 이래 한일 국민 상호인식이 지속적으로 호전되는 아래로부터 (bottom-up) 추동력과 정부간 관계 회복 노력(top-down)이 겹치면서 이루어진 양국관계 개선 추세는 2026년에도 이어질 것인가. 변수는 무엇인가.  II. 상승하는 대미 불신 속의 미일관계  2025년 한 해 일본외교가 마주한 최대 도전은 트럼프 2기 정권이 추진하는 패권 재조정 전략 속에서 미일관계의 안정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트럼프 2기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권리와 이에 따른 이득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의무를 가능한 한 동맹국 및 파트너국에 이양하고자 한다. 달러 패권의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반면 관세를 핵심 수단으로 동원하여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회복하고자 하고, 대외 군사 개입을 자제하면서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 및 분담, 첨단기술 통제 등 패권의 책무를 전가하는 것이다.  당초 일본은 미국 패권 회복/유지를 위한 조력자 역할을 담당한다는 외교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아베 정권과 기시다 정권을 거치며 일본은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 패권적 지위 유지를 돕기 위해 안보면에서 군사력 증강과 미일동맹 강화로 미국의 부담을 경감하는 한편, 동남아와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지구 남반구) 관여 등으로 국제적 안정과 평화를 향한 공공재 제공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손열 2024). 이는 일본외교의 기본인 ‘플랜A’라 할 수 있다.  트럼프 2기의 등장에 따라 일본이 가장 크게 우려한 바는 미국 스스로 고립주의에 빠지거나 모순적이고 자멸적인 조치로 국제사회의 신뢰와 리더쉽을 상실하는 사태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패권적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무모한 관세 부과와 동맹 흔들기, 잦은 정책 변경, 국제 규칙과 규범 위반을 거듭한다면 미국에 대한 동맹국의 신뢰 하락과 이탈 위험성이 커지고 패권 쇠퇴가 가속화하여 ‘미국 없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공백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란 시나리오이다. 따라서 패권 추종 노선인 플랜A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플랜B’ 수립이 필요해진다. 후자의 필요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치며 강화되었다.  첫째는 연초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JD 밴스 부통령의 발언이다. 루비오는 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미국 중심 자유주의 국제질서 대신 다극화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우선주의 외교를 추구할 것이라 공언하였고, 이어 뮌헨안보회의에서 밴스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에 부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발언은 미국이 더 이상 패권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의지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자유무역 포기를 넘어서 동맹과 확장억제 제공 등 안보 공약, 국제개발원조, 기후변화 협력 등 국제공공재 제공을 현격히 축소하는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분출했다 (古城佳子 外 2025).  둘째는 미일 양자 협상 과정에서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거래중심적, 강압적 태도이다. 이시바 시게루 수상은 트럼프 2기 정권 출범 직후인 2월 정상회담에서 1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투자 약속을 선물하며 안정적인 미일관계를 조성하고자 하였으나,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관세 조치(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25%,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 25%, 그리고 상호관세 24% 부과)를 발표하자 당혹감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동맹국에 대한 예의를 무시한 처사로서 일본이 희롱당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협상 중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면서 국방비 대폭 증액을 압박했다. 이미 2022년 기시다 정부가 GDP 대비 1% 국방비를 2027년까지 2%로 증액을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3.5% 인상을 요구하여 관계당국에 충격을 주었다, 결국 9월 4일 상호관세율을 15%로 감축한 대신 5,500억불 규모의 대미투자를 약속하는 굴욕적인 관세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일본이 얻은 뼈저린 교훈은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맹을 거래로 여기는 트럼프와 협상에서 일본은 안보면에서 미국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경제 협상력의 비대칭성을 초래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셋째는 12월 공표한 NSS 2025이다. 대외 개입을 축소하여 미국의 핵심이익이 분명한 경우에 한하여 개입하며 미국 본토와 서반구 관리를 중시한다는 선언은 일종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구상에 가깝다. 미국의 베네주엘라 공격에서 보듯이 세력권 정책은 강대국이 권역 내 국가들의 실질적 주권을 제약하는 행동을 정당화한다. 미주 대륙에서 이민, 마약 및 초국적 범죄 억제, 중국의 침투 차단 등 상업적 이권과 전략적 요충지 확보를 명분으로 국제법상 근거가 희박한 행동이 빈발할 수 있다. 실제로 1월 3일 미국의 베네주엘라 공격과 대통령 연행, 베네주엘라 '운영’ 선언 등 일련의 사태가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민주주의 등 기본적 가치와 국제법 원칙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FOIP)’로 대표되는 규칙기반 국제질서와 가치 외교 등 일본외교의 기본원리가 완벽히 무시당했음을 절감하고 있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위협세력에 대한 규정이 빠져있다(전재성 2026).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세력을 안심시키고 동맹국을 낙담하게 한다는 일본측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石井正文 2025). 물론 미국은 인태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고 패권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태평양에서 제1도련선 방어력 구축을 위한 동맹국간 집단적 방위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방점은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 즉, 미국과 무역 재균형(rebalance) 추진, 핵심 공급망 안정 및 전략물자 수급 확보의 상대라는 데 두고 있다. 대중 위협인식은 “지구상 유일한 전략적 경쟁 상대”로 규정한 바이든 정부에 비해 현격히 약화되었다. 일본으로서는 위협인식의 공유로 성립되는 동맹관계에 불안과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경위로 일본 조야에서는 미국 패권을 전제로 한, 혹은 미국 패권의 복원 가능성을 전제로 한, 플랜A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B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III. 일본의 플랜B  미국의 동맹국에게 플랜B 논의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 문제로 귀결된다. 유럽의 경우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예산을 증액, 미국의 공약을 확인하여 나토 체제를 지키는 것이 플랜A라면, 플랜B는 미국의 군사 개입 없이 자강(自强)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 유럽이 러시아에 대해 군사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과 달리 일본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에 대해 군사적 자립 노력으로 군사적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대안이 부재하다. ‘반핵’에 대한 국내적 지지도 여전히 강고하다. 2025년 8월 실시한 EAI-API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67.5% 전후가 자국 핵무장을 지지하는 반면 일본의 경우는 23.7%에 불과하다(손열 외 2025).  따라서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자유와 개방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장 미국 이외 대안이 없고 미국 없는 국제질서 모색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일본외교의 플랜B는 미국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미국 추수 외교에서 벗어나 군사력과 외교력의 신장으로 미국(과 중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축소하여 적정한 상호의존 상태를 이루고 그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秋田浩之 2024; 森聡, 細谷雄一, 鶴岡路人, 2025; 佐橋 亮 2025). 플랜A가 미국 패권의 복원 및 유지를 전제로 한다면 플랜B 논의는 이를 회의적으로 보고 미국에 의존해 온 부분을 축소하는 대미 디리스킹 전략에 가깝다. 따라서 플랜A가 미일관계에서 일본의 역할을 미국에 대한 보완재로 정의한다면, 플랜B는 미국의 필수재―즉, 상호의존 네트워크 속에서 대체 불가한 노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보면에서 플랜A가 군사력 증강을 통한 전략적 유연성의 확보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플랜B는 군사력 증강 통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 경제안보 면에서 플랜B는 기간산업 보호와 인프라 안전망 확보로 전략적 자율성 향상, 그리고 핵심산업 및 기술 육성으로 미국 및 중국의 강압이나 보복에 대한 억지력 혹은 협상력을 가져다 주는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가 될 것이다. 외교면에서는 플랜A가 동지국(同志國)과의 안보 연대 강화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소다자협력이라면(미-일-호, 한-미-일, 미-일-필리핀, 그리고 쿼드(Quad) 등), 플랜B는 호주, 한국, 필리핀, 뉴질랜드, 나토 가맹국 등과 미국 없는 안보협력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확보하는 과제도 포함된다. 특별히 환태평양포괄전진동반자협정(CPTPP)의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미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분산하는 조치이면서 ‘미국 없는 다자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재료로 인식되고 있다.  표 1. 일본외교의 플랜A와 플랜B 플랜 A 플랜 B 정책 목표 미국 패권 질서 복원과 유지를 돕는 파트너쉽 패권으로부터 디리스킹 미일관계 미국의 보완재로서 필수불가결한 동맹 (indispensable ally) 미국의 필수재로서 필수불가결한 동맹 군사안보 군사력 증강, 반격능력 신장, 전략적 유연성 확보. 군사력 증강, 반격능력 신장, 전략적 자율성 확보 경제안보 대중 전략적 자율성,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 대중 및 대미 전략적 자율성,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 외교지평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FOIP) 복원, 미국 포함 소다자협력 강화 동남아, 인도 중심 지구남반구(global south) 협력 강화, 미국 없는 소다자협력 추진  IV. 다카이치 정권의 딜레마: 대미의존과 대중갈등 사이에서  2026년 일본 외교를 전망할 때 주요 관전 포인트는 트럼프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선택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자국에 대한 일본의 과잉 의존구조를 활용하여 협상력의 비대칭적 우위를 지키고자 한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주문하면서 미국 무기 수출을 확대하고 미군과 자위대 간 지휘통제 통합을 진전시켜 일본의 대미의존성을 유지, 강화하는 한편,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해상수송로를 방위하기 위해 제1도련선의 집단 방위에 일본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면에서도 미일 상호의존의 네트워크를 확장, 심화하고자 한다. 일본의 대미 직접투자(5,500억불 상당)가 자국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제조업 기반 확보, 고용 증진에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은 비대칭적 상호의존 구조를 활용하여 자국의 안보 및 경제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의 플랜A를 선호한다.  이런 점에서 작년 10월 출범한 다카이치 정권에게 플랜B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선택이다. 다카이치 수상은 동맹을 중시하는 보수 연립정권의 수장으로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안정적 관계 유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인간관계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기성 노선(플랜A)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노선(플랜B)로 전환은 정치적 설득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다카이치 수상은 플랜B가 과거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우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같은 일본 자립 노선이 아님을, 그리고 플랜B는 플랜A로부터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진화 과정임을, 국내정치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교한 전환의 비전과 로드맵도 마련되어야 한다.  또다른 변수는 대외변수로서 중일갈등이다. 11월 7일 국회에서 다카이치 수상의 대만 관련 발언은 중일관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대만 유사시 미국이 개입하고 중국이 미군에 공격을 가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은 ‘존립위기사태’로 인정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존립위기사태’란 동맹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경우에 한하는 것으로서, 역대 일본 정부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사례를 들어 답변하는 것을 회피해 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수상은 대중 강경파로서 본심을 드러내어 사태를 촉발했고 중국은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것으로 간주하여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일본 여행 금지 경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정지와 같은 경제 보복 조치에 이어 과거 전랑외교를 방불케 하는 외교 선전전(宣傳戰)을 전개했고, 군사적 위협 단계에 진입하여 중국 항공모함 함재기가 자위대 전투기에 레이더를 조사(照射)하고, 함재기가 30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 러시아 폭격기와 함께 일본 주변을 공동 비행하는 등 제1도련선 주변에서 군사적 압박을 높이고 있다.  사실 다카이치 수상은 아베 정부의 대중 스탠스인 ‘전략적 호혜관계’를 계승하여 “중요한 이웃으로서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지향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일중정상회담(10.31)에 임했었다. 시진핑 주석 역시 관계 안정화를 지지한 바 있다. 중국은 미국우선주의가 노골화되자 주변 지역에서 영향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주변 외교를 전략의 중심축으로 격상시켰다. 이에 따라 호주, 한국과의 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일본에 대해서도 이시바 정권 출범 이후 미래지향적 양자관계 발전의 모멘텀을 찾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수입을 중단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중국이 전향적 조치를 검토했고, 일본인의 중국 관광객에 대해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이러한 협력적 분위기가 갈등으로 전환되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다카이치 수상은 11월 11일 “특정 사례를 가정하여 발언한 것은 반성할 점”이라 한발 물러났고, 12월 16일 “기존 정부 입장을 넘어선 발언으로 받아들여진 점을 반성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한다”며 한발짝 더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수상이 중국측의 요구사항인 사과와 발언 철회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대중 강경론자로서 “대만유사시는 일본유사시”라는 평소 지론에 대한 자민당과 보수층의 단단한 지지가 유지되고 있는데다, 중국의 보복에 따라 국민감정이 악화되면서 다카이치 내각에 대한 국민 여론이 70% 전후의 높은 지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수상의 고민은 유화 국면에 진입한 미중관계에 있다. 트럼프 1기 정부의 대중 정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로 하고 관세, 투자규제, 인권 비판, 공산당 독재 비판 등 무역, 투자, 가치, 체제 등 전방위 공세를 펼쳤다면 앞서 기술하였듯이 2기는 의외로 경제면에 국한된 경쟁과 타협을 보여왔다. 중국에 대해 지난 4월 사실상 금수 조치인 145% 관세 폭탄을 공언하였다가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 보복 조치를 취하자 관세 부과를 3개월 유예하며 후퇴하였다. 결국 10월 부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중국이 희토류 및 기타 핵심 광물 수출통제 조치를 1년 연장하는 대가로 관세 유예 조치를 1년 연장하고, 펜타닐 관련 징벌적 관세를 10% 삭감해 주었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에 정치생명이 달려있는 트럼프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계하며 협조적 자세를 지속할 것이며, 시진핑 주석도 침체된 경제 부양을 위해 대미관계의 안정화를 이어갈 전망이다. 양국은 4월 예정된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을 거치며 유화 국면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배경에서 트럼프는 다카이치 수상에게 대만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언급했고, 미국은 일본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백악관의 발언도 나왔다.  2026년의 기묘한 구도는 현상유지 세력인 일본과 현상변경 세력인 중국이 미국과 동시적으로 우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화 국면을 이어가려는 미중관계와 갈등 국면의 중일관계가 병존, 교차하는 가운데 다카이치 정권의 딜레마는 깊어갈 것이다. 미중관계의 유화적 국면에 따른 대미 불신은 일본으로 하여금 플랜B를 선택하게 하는 유인이 되는 반면, 중국과의 대립 구도는 미국 의존성을 증가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의 군사적, 경제적 위협과 보복이 강화될수록 일본은 더욱 미일동맹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중일갈등이 대미의존을 증대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V. 한일관계 전망  패권 재조정기 미국과의 관계 정립에 고뇌하고 악화된 대중 관계 개선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다카이치 정권에게 한일관계 안정화는 필수적이다.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수상은 재임 기간 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번은 하겠다는 입장이나 현재와 같은 외교적 난관 속에서 중국 및 한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신사 참배를 결행할 개연성은 낮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의 시금석으로 한일관계를 관리하고 있고, 셔틀 외교는 복원되었다.  한국의 경우, 국내 여론 역시 한일관계 안정화에 긍정적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일본의 파트너 기관 (겐론 NPO, 2013-2023; API, 2025)과 2013년부터 실시한 한일국민상호인식 조사 데이터 중 2025년 지난 8월 18-20일 실시한 국민상호인식조사 결과를 회귀 분석해 보면, 한일관계 개선에 영향을 주는 유의미한 독립변수는 일본 지도자에 대한 인상, 일본에 대한 인상, 미국에 대한 신뢰도이다. 일본 지도자(수상)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수록,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수록, 그리고 미국을 신뢰할수록 한일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Sohn and Lee, mimeo).  표 2. 한일관계 개선의 변인 분석(2025) 종속변수: 한일관계 개선 모델 (4) AME P-value 일본 지도자 인상 +0.104*** (0.013) < 0.001 일본인상 +0.053*** (0.011) < 0.001 미국 신뢰 U.S. as Trustworthy Partner +0.033*** (0.010) < 0.001  [표 3]에서 보듯이 한국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2020년 12.3%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5년 52.3%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2020년 25.4%에서 2023년 37.4%로 상승한 후 2025년 24.8%로 하락했다. 비호감도는 46.3%에서 51%로 올랐다([표 4]). 일본의 대조적인 결과는 일정하게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국민의 39.2%는 이 대통령에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10.5%에 불과하다([표 5]). 과거 진보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반면 한국 국민의 이시바 수상에 대한 좋은 인상은 32.5%로 나쁜 인상을 추월했다([표 6]).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실용외교를 강조하면서 위안부 합의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국가간의 약속을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고, 역사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협력을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일본의 조야(朝野)에 과거 야당 지도자 시절 형성된 자신의 반일(反日) 이미지를 지우려는 의도라 하겠다. 이어 이시바 수상과 3차례, 다카이치 수상과 2차례 등 취임 이래 총 5회의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정상간 우호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국민의 이 대통령 이미지가 개선 국면에 들어설 지 주목된다. 마찬가지로 우익 이미지의 다카이치 수상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인상 추이도 주목할 점이다. 한국 국민에게 유화적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다카이치 수상의 노력에 국민적 반응이 어떻게 형성될 지도 주목 포인트이다.  끝으로 미국변수이다. 미국을 신뢰할수록 한일관계 개선감을 갖는다는 것은 동맹에 대한신뢰가 높을수록 한일관계 개선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일 관계 개선을 향한 미국 즉, 위로부터의(top-down) 압력은 지속적으로 작용해 왔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은 일관되게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수단으로 한미일 협력을 설정하여 한일관계 개선을 압박해 왔다. 한일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도전이 점증하자 미국과 안보 결속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압력을 수용하게 된 과정을 갖고 있다.  2026년에도 미국 요인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이는 한일 양국의 미국에 대한 신뢰 정도와 관련이 있다. [표 7]에서 보듯이 2022년을 기점으로 대미 신뢰도는 현격히 하락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신뢰 저하 추세는 지속될 것인가. 신뢰 저하는 한일 간 협력을 저해할 것인가. 아니면 양국이 플랜B 마련 차원에서 새로운 협력을 이루게 될 것인가. 기로에 선 2026년이라 하겠다.  [표 3] 상대국에 대한 인상 (2013~2025 한국)  [표 4] 상대국에 대한 인상 (2013~2025 일본)  [표 5] 상대국에 지도자에 대한 인상 (2014~2025 한국)  [표 6]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인상 (2014~2025)  [표 7] 상대국 신뢰 여부 (2017~2025) 한국)  VI. 한일 플랜B 협력의 가능성  국제질서의 설계자이자 질서 유지의 최대 부담자였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일본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미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미국이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회복하여 정상 괘도로 재진입할 것이란 전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음을 2025년이 똑똑히 보여주었다. 동시에 외교, 안보, 경제면에서 미국이 일본의 대체 불가한 동맹국이란 사실에 변함이 없다는 점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따라서 일본의 향후 도전과제는 마치 미국이 동맹관계를 거래로, 동맹 파트너를 도구로 보듯이 일본도 미일동맹을 거래로, 미국을 도구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미관계에 거래중심적, 도구적, 실용적 현실주의를 의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플랜B의 모색이 가능하다.  한국 역시 대미 관계에 한해서는 유사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형 플랜B의 모색이 그것이다. 지난 수년간 한일 협력은 한미일 협력의 틀 속에서 미국의 후원/후견 하에 진전을 보았다면, 이제는 미국 리스크를 경감하는 데 한일 양국이 협력할 방도를 모색해야 할 때다. 적정한 대미 상호의존으로의 조정, 미국에 대한 대체 불가한 필수재 혹은 급소(chokepoint) 마련 등 ‘한일 플랜B 협력’을 향한 전략적 소통을 본격화할 시점에 왔다. ■  참고문헌  손열 외. 2025. “[EAI 여론브리핑] 2025년 EAI-API-KEI 제1회 한미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및 제12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 분석” https://www.eai.or.kr/press/press_01_view.php?no=13370  손열. 2024.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실천하는 2024년 한일관계: 과제와 전망.” EAI 논평. 1월 11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299&board=kor_issuebriefing  전재성, 2026.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2026년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와 국제질서” https://www.eai.or.kr/press/press_01_view.php?no=13462  秋田浩之, “プランBを迫られる世界 「トランプの米国」頼みは続かず” (2024.11.7.)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CD0694V0W4A101C2000000/  石井正文,”モンロー主義の米国家安保戦略に日本はどう対応?元外務省幹部に聞く” (2025.12.24) https://digital.asahi.com/member_scrapbook/detail.html?aid=ASTDR2S63TDRUTFK008M&cflag=0&psub=1&page=1&limit=20&sort=regtime.desc  古城佳子 外 “脱「米国依存」の国際秩序と日本外交” 『外交』 vol 91, May/June 2025.  佐橋亮,「米国のいる世界」と「米国のいない世界」 『中央公論』 12月.  森聡, 細谷雄一, 鶴岡路人, 「トランプ政権に翻弄される世界」グローバルトレンド#3 Foresight. (2025.7.1) https://www.fsight.jp/articles/-/51468  Yul Sohn and Ahlim Lee, "Determinants of the Improved Japan-Korea Relationship.” (mimeo)    ■ 손열_EAI 석좌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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