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③ 2025년 북한과 세계: 미중관계, 러우전쟁, 그리고 트럼프

2025년 세계는 요동칠 것이다. 도널드 J. 트럼프(Donald J. Trump)의 귀환으로 미중관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북관계 등이 모두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전략을 발전시키며 대응책을 마련해 오고 있다. 이 글은 북한이 추구해 온 대외정책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2025년 펼쳐질 세계정세 변화에 북한이 부딪쳐 나타날 현상을 전망한다.   Ⅰ. 북한의 세계관: 신냉전과 미중관계   세계질서를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신냉전이라는 표현은 삼가지만, 여전히 자주세력권 대(對) 패권세력권으로 나누어 사실상 진영을 구축하고자 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다. 김정은이 신냉전을 공개 석상에서 처음 언급한 것은 2021년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이다.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되고 있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조선중앙통신 2021/09/29). 다음 해인 2022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신냉전 체제로 명백히 전환되었다”라고 확정한 후(노동신문 2022-12-27),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또다시 “전 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되었다”라고 밝혔다(조선중앙통신 2023-09-27).   그러나, 이후 김정은은 신냉전이라는 단어를 삼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8기 11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자주세력권의 장성과 약진이 두드러지고 패권세력권의 립지가 급격히 약화 쇠퇴되고 있는 현 국제정세의 특징에 대하여 개괄”하였다고 보도되었다(노동신문 2024-12-29). 더불어 “류동적인 국제관계 구도”와 “정의로운 다극세계 건설”도 주장하였다. 북한은 여전히 진지전 형태로 세계를 북한 중심의 ‘자주세력권’과 미국 중심의 ‘패권세력권’으로 이분화하여 다시금 미소 냉전 시기와 같은 온전한 진영주의를 원함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가 아닌 세계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진영의 핵심 국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중국이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원치 않으므로 2023년 중반 이래로 최소한 김정은의 공식 발언에서는 “신냉전”이 사라졌다.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를 이분화하는 진영주의를 구축한다면서 신냉전을 비롯한 어떤 분열도 ‘결연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2025년 신냉전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진영 구축이 가능할지 여부가 북한의 대외전략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미중관계이다. 현재 두 가지 예측이 제시된다. 첫째,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서 1기 말과 유사하게 중국 공산당을 “파산한 전체주의”로 규정하면서 이데올로기 전쟁을 재개하고(O’Keeffe and Mauldin 2020), 공급망을 포함한 경제권 전반에 탈동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트럼프가 중국에 60% 플러스 10%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을 재개하지만, 무역적자 폭을 대폭 축소하는 형태로 합의가 이뤄지면서 미중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상황이다. 대외관계에서 우호국·경쟁국·적성국을 차별화하지 않고 비용·편익으로 접근하는 트럼프이므로 확실한 미국의 이해가 반영되면 이데올로기적 경쟁 요소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북한은 당연히 전자를 선호할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는 진영을 구축할 것이고 북한은 조력자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나타날 현상은 제재 무력화일 것이다. 현재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자신들의 동의로 통과된 대북제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의 공세가 전술한 수준이라면 중국의 대북제재는 현격히 약화될 수 있다. 또한,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 중국이 이탈하는 수준까지 전개된다면 북한이 이미 추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반미 대안 경제모델에 접근하게 된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 종국에는 중국과 새로운 진영 구축을 원한다. 북한은 2018-19년 미국과의 협상에서 원했던 제재 해제라든지 트럼프가 제시했던 미국 주도 경제질서에 편입한 경제 발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북한이 생산하는 석탄, 철광석과 노동력을 활용한 교역, 무역 등의 대상이 서구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북한은 미국, 한국 등 서구와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새로이 재편되는 경제 질서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할 수 있다(황일도 2024, p. 6).   두 번째 예상과 같이 미중관계가 일정 수준 안정적으로 관리된다면 대외관계에서 북한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한 북한의 선택은 패착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러우 전쟁이 지속되는 한 여전히 북한과 거리를 두려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가장 원하는 핵심 기술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다탄두, 재진입 기술, 핵 추진 잠수함과 잠수함발사핵미사일 등을 러시아로부터 전수받기 더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도 북한의 미 본토 타격 능력 확보를 원치 않을 수 있다. 미국이 이를 이유로 사실상 중국 견제를 위한 동북아 지역 내 미사일 방어 및 공격 체계를 대폭 확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계 경제권이 분할되지 않으므로 여전히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유지될 것이고, 이에 따라 중국의 대북제재 무력화는 제한될 것이다. 북한이 그리는 ‘자주세력권’ 경제는 전쟁으로 국력을 대폭 상실해 가는 러시아와 협력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미중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두 진영으로 나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중국은 세계 120여개국과 교역 1위를 유지하고 있고, 2023년 중국 총생산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6.88%로 2022년에 비해 내림세지만(World Bank Group n.d.), 이 정도 규모의 경제권과 탈동조화를 완벽히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두 번째 예상이 보다 현실적이며 이는 “거래적 갈등관계”로 정의될 수 있다(하영선 2025). 이 경우 북한이 그리는 신냉전의 세계는 희망사항으로 남을 것이다.   Ⅱ. 북한과 동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   2025년 1월 현재 러우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전반적으로 불리한 양상이다. 작년 이후 교착된 전선이지만,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쿠르스크 지역을 러시아는 북한군까지 동원하면서 일정 수준 수복하고 있다(Drozdiak 2024). 더욱이 트럼프가 취임 후 24시간 종전을 공약한 이상 휴전 혹은 정전을 위한 적극적 행보도 예상된다. 현 전선을 유지한 채 ‘동결분쟁’ 형태의 정전이 논의되는 것도 우크라이나에 불리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결국 패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점령하고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가입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지급한 비용이 더 크다. 유럽은 더는 천연가스 수입을 비롯해 러시아와 의미 있는 경제교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전쟁 전부터 경제규모와 국방비 등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러시아가 전쟁을 치르면서 지불한 비용과 향후 경제관계 등을 고려한다면 국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가 수입의 핵심인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의 수익률은 전쟁 시작 후 지속 감소해서 2023년에는 전년 대비 50% 감소하였다(Interfax n.d.). 2025년 전쟁이 지속된다면 러시아는 전체 예산 중 40%를 국방비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9%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시 경제는 물가를 더욱 올릴 것이다. 병력 수급의 어려움은 북한군 파병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는 이미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대통령 때 예고한 것처럼 세계 강대국이 아닌 ‘지역 강국’으로 남게 될 수 있다(Zakaria 2024). 러시아가 2대에 걸쳐 지원해 오던 시리아 알아사드(Bashar al-Assad) 정권의 몰락을 바라만 본 것은 러시아의 한계를 명확히 방증한다.   이런 상황이므로 북한의 러시아와 협력은 제한된다. 전쟁의 특수 상황에서도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전술한 핵 관련 핵심 기술의 전수는 확인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이러한 최상위 민감기술을 이전한 적이 없고,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더욱 제한할 것이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으로 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대북 기술 지원은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이 되어 심각한 보복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 종결 과정에서 사실상 미국에 협력해야 하는 러시아는 이런 상황을 고려할 것이다.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는 유럽과 경제 관계를 복원할 수 없으므로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추진을 발표한 ‘신동방정책’에 따라 한국과 경제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도 협력을 지속하면서 세력권을 형성하려 하겠지만, 무기와 병력이 부족하여 북한에 의존했던 상황과는 사뭇 다른 수준의 협력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Ⅲ. 미북 협상 전망: 트럼프와 김정은   2025년 한반도 상황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북 협상 재개이다. 지난 미 대선 기간 트럼프는 수 차례 김정은을 소환하면서 대화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미북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2018-19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1] 북한은 전술한 바와 같이 진영주의를 내세운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2018년 6월 발표된 미북 싱가포르 합의에 포함된 미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같은 구호를 걷어내고, 북한은 미국을 적대국 위치에 고착시키며 미국과 소련이 했던 형태로 ‘핵군축’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냉전시기 미소 양측의 군사적 대립이 구조화된 상태에서 우발적 충돌과 핵 확전 등을 방지하기 위한 협상과 같은 형태이다. 북한은 군사적 대립을 제거하여 미북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는 협상이 아닌 “오히려 신냉전 구도를 기정사실화하는 협상 프레임”을 추구할 수 있다(황일도 2024, p. 5). 북한은 미국과 협상에 비중을 두는 외교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수 차례 천명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조미대결의 초침이 멎는가는 미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있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어떤 행정부가 들어앉아도 개의치 않는다”라면서 미국과 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음을 표명한 바 있다(조선중앙통신 2024-07-23).   반면 트럼프는 김정은과 대화 채널을 조기에 복원하려 시도할 수 있지만, ‘연계정치’를 고려할 것이다. 2018년 협상 환경과 현재 안보 상황은 상이하다. 트럼프는 그때와는 달리 이미 러우 전쟁, 중동 사태 등 한반도 문제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분쟁에 노출되어 있다. 러우 전쟁의 경우 북한이 파병한 상태이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상 가장 상위에 있는 대중국 경쟁도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황일도 2024, pp. 1-2). 중국이 신냉전 진영주의에 반대하지만,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에 도전하며 다극체제를 러시아, 북한과 함께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2]   이렇게 서로 연계된 국제정세에 따라 트럼프의 대북정책도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 북한 문제가 트럼프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아니다. 트럼프의 시각에서는 미국민의 세금이 천문학적으로 소비되는 러우 전쟁의 종전 또는 정전 모색을 우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파병으로 보다 복잡해진 러우 전쟁 해결을 위한 대북 접촉이 중요할 수 있다. 러우 전쟁과 연계된 북한을 우선 분리하고자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트럼프는 행정부 출범 초기 김정은과 소통 채널을 복원하면서 북러 밀착을 제한하려 할 수 있다. 러우 전쟁 정전이 가시화된 이후 북한과 보다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기에 앞서, 북한의 ‘방해자’ 역할을 못 하도록 관리하는 분위기 조성에 나설 수 있다(황일도 2024, pp. 2-3).   미북이 협상을 본격화한다면 북한의 핵 능력 제한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보상책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이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논의한 북한의 핵물질 생산시설 신고와 이에 대한 보상책으로서 제재 해제라는 공식이 더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먼저 미 본토에 대한 북한 핵타격 능력을 제거하기 원할 것이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할지는 불확실하지만, 트럼프는 최소한도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이 제거되어야 정치적 승리를 선포하고 자신의 업적으로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거래는 합의에 근접할수록 실제 이득을 면밀히 따진다. 단순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만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관세를 만능의 보검으로 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듯이 트럼프는 제재의 효과성을 믿는다. 트럼프는 북한과 협상이 답보 상태일때도 제재가 지속되므로 협상에 우위에 있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힌 바 있다(Gordon et al. 2019). 2019년 5월 단거리 핵탄두 탑재 미사일인 KN-23을 개발하기 시작한 북한이 2022년 이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노골적으로 재개하면서 고도화된 핵 능력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핵과 미사일 실험 일시 유예만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거래비용적 측면에서 손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보다는 북한이 그간 지속 개발해 온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잠수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SLBM) 등 미 본토 타격 능력을 제거하기 원할 것이다. 북한의 대미 확증보복능력 확보를 확실히 막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이 개발 중인 핵능력 외에도 중장기 발전 경로를 모두 무력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북한의 조치를 최소 수준에서 미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거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황일도 2024, p. 5).   북한의 셈법은 다를 것이다. 트럼프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북한 핵의 효용성은 대폭 축소된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확증보복능력을 결코 완성할 수 없다. 동 능력이 없는 국가가 핵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상대국의 대규모 응징보복에 의해 필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실상 자살행위가 된다(Freedman 2003).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미 타격 능력 개발 자체를 포기한다면 북한 핵의 정치·군사적 의미는 한국을 향한 핵타격 능력 확보로 제한된다. 이마저도 미국이 한국에 확실한 확장억제를 보장한다면 북한 핵의 효용성은 더욱 낮아진다. ‘북한이 핵을 한국에 사용할 경우 북한 정권은 종말’이라는 방어 공약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된다면, 북한은 한국을 향해 결코 핵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으로서는 최종 완성 가능성을 떠나 미 본토 타격 능력 확보를 위한 여지를 남기는 협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황일도 2024, pp. 2, 6).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북 비핵화 협상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의미 있는 결과 도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 협상이 공전하는 기간 동안 북한은 여전히 핵능력을 고도화할 것이다.   Ⅳ. 2025년 북한   2025년 김정은이 맞이하는 세상은 절대 녹록지 않다. 러북 밀착과 미중 갈등 격화, 트럼프의 등장, 한국 국내정치 상황 등으로 북한에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세계정세는 북한에 우호적이지 않다. 약화될 수밖에 없는 러시아에 투자한 북한은 파병된 북한군 희생만큼 반대급부를 챙길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러우 전쟁 종전을 모색하면서 트럼프가 러시아에 북한군 파병 철회와 북한과의 관계 정리를 요구할 수 있다. 미중 갈등도 불확실성이 크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협상 중에 북한 문제를 끌어들여 중국의 대북 압박을 요구할 수 있다. 조 바이든(Joe Biden)의 미국과 같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따라 적성국에도 원칙과 규범에 따른 대응을 트럼프에게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미국 역사에 예외적인 제국주의 전쟁을 시도한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를 칭송하는 트럼프이므로 ‘힘을 통한 평화’의 운용 폭은 클 것이다(Weisman 2024). 특히 거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조건 없는 유화책을 제공할 가능성도 제한된다. 무엇보다도 2025년 국제정세에서 김정은이 원하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구도가 구축될지 불확실하다. 김정은도 이를 감안한 듯 작년 12월 전원회의에서 “류동적인 국제관계구도변화에 기민하고 령활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노동신문 2024-12-29). 북한에 호기인 한국 국내정치 상황도 시기의 문제가 있을 뿐 정리될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에게 2025년은 또 다른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다. ■   참고 문헌   하영선. 2025. “3대 지구 리더십 위기와 기회.” EAI 신년 특집 보이는 논평. 1월 2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40&board=kor_multimedia (검색일: 2025. 1. 6.)   황일도. 2024. “트럼프-김정은의 브로맨스 2.0? 2018년과 2025년의 차이.” 외교안보연구소 IFANS FOCUS. 11월 12일.   Drozdiak, Natalia. 2024. “Ukraine Risks Losing All the Russian Land It Seized Within Months.” Bloomberg. December 27.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4-12-27/russia-ukraine-war-moscow-could-soon-retake-all-of-kursk-region (Accessed January 6, 2025)   Freedman, Lawrence. 2003. The Evolution of Nuclear Strategy. New York: Palgrave Macmillan.   Gordon, Michael R, Vivian Salama, and Jonathan Cheng. 2019. “Trump, North Korea’s Kim Seek Path to Denuclearization.” The Wall Street Journal. February 28. https://www.wsj.com/articles/president-trump-meets-north-korean-leader-a-second-time-11551267951 (Accessed January 6, 2025)   Interfax. n.d. “Gazprom’s Profit Plunges More than 40% Following Ukraine War.” https://interfax.com/newsroom/top-stories/ (Accessed January 6, 2025)   O’Keeffe, Kate, and William Mauldin. 2020. “Mike Pompeo Urges Chinese People to Change Communist Party.” The Wall Street Journal. July 23. https://www.wsj.com/articles/secretary-of-state-pompeo-to-urge-chinese-people-to-change-the-communist-party-11595517729 (Accessed January 6, 2025)   Weisman, Jonathan. 2024. “Trump Praises Tariffs, and William McKinley, to Power Broker.” The New York Times. September 5. https://www.nytimes.com/2024/09/05/us/politics/trump-tariffs-william-mckinley.html (Accessed January 6, 2025)   World Bank Group. n.d. “World Bank national accounts data – GDP (current US$).”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MKTP.CD (Accessed January 6, 2025)   Zakaria, Fareed. 2024. “Russia is weaker than you think.” The Washington Post. December 13.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4/12/13/russia-weak-assad-economy-empire/ (Accessed January 6, 2025)   [1] 이하 내용은 필자와 함께 북한 핵문제를 고민해 온 故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의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밝힌다. 고인을 기념하며 그의 탁월한 분석과 전망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2] 중국 외교부는 《글로벌 거버넌스 변혁과 건설에 관한 중국 방안》 백서를 통해 세계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关于全球治理变革和建设的中国方案》白皮书(2023年9月13日).     ■ 박원곤_동아시아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박원곤 2025-01-17조회 :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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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⑨ 2025 세계안보 현실 대 인식: 인공지능의 군사적 이용과 공격숭배 현상

Ⅰ. 트럼프 2.0 시대 세계군사 환경 전망   5일 후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복귀한다. 캐나다, 아르헨티나, 헝가리, 이탈리아 총리 또는 대통령에서부터 애플, 오픈AI, 메타, 아마존,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기업 최고경영자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인수위 팀이 꾸려진 플로리다 마러라고를 앞다투어 찾고 있다. 다양한 국가 및 기업의 리더십들이 10% 이상의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한 트럼프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이재림 2025). 이 가운데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지난 12월 14일 가결된 데 이어, 12월 27일에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까지 직무가 정지되면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의 대행을 맡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미 주요 싱크탱크의 전망처럼, 트럼프 취임 이후 100시간 내로 한국 관련 주요 사안인 주한미군, 관세, 반도체법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들이 결정된다면(박성민 2024), 대표성을 띠고 마러라고를 방문할 수 있는 국가 리더십이 부재한 한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불리한 상황에서 2025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트럼프 2기나 한국 탄핵 국면과 같은 리더십 변수와 무관하게 세계안보질서 저변에서 작동하는 구조적인 변수가 실질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Waltz 1979). “혁명이 지형을 바꾸지 않고, 혁명은 지리적 필요도 바꾸지 않는다(Revolutions do not change geography, and revolutions do not change geographical needs)”는 애틀리(Clement Attlee) 전 영국 총리의 말처럼, 트럼프 개인의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략적 이익의 근본적인 속성은 바뀌지 않고, 한국의 국익도 일정 수준에서는 국내정치적 혼란과 구별되어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규칙이나 가치 기반 외교보다 선명한 거래주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을 취하는 트럼프주의의 외교적 속성을 고려할 때(전재성 2025), 리더십 개인 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현실의 구조적 변화이며, 이를 맥락에 깔고 형성되는 각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일 수 있다. 한국이 국내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외교안보 정책을 정상적으로 다시 가동하는 시기를 대비하여, 이런 세계안보 환경을 결정할 구조적 변수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본고는 2025년 세계군사질서의 변화 방향을 국가 대전략이나 리더십의 특성, 국내정치적 요인보다 군사기술의 변화 차원에서 살펴본다. 특히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군사적 이용이 현재 공격-방어 균형(offense-defense balance)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자율무기체계(autonomous weapon systеms), 사이버 안보, 핵무기-AI 넥서스 차원에서 검토하고, 최근 21세기 버전의 ‘공격숭배(cult of the offensive) 현상’이 미국과 중국의 정책 커뮤니티 내에서 부상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군사기술의 변화보다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향후 세계안보 환경의 속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국의 안보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Ⅱ. 군사기술 변화: AI의 군사적 이용 현실 vs. 인식   리더십 변수나 국내정치 변수와 구별되는 구조적 층위에서 작동하는 변수 가운데 군사안보질서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변수는 ‘공격-방어 균형’이다. 이는 동일한 자원을 투입했을 때 공격과 방어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저비스(Robert Jervis)는 국제 협력의 용이성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수준이 바로 이 공격-방어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Jervis 1978, 187-199). 다양한 국제위기 국면에서 공격 우위는 확전 위험을 증대시키고, 방어 우위는 전략적 안정성을 높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 때문에 공격-방어 균형은 전쟁 발발 가능성, 동맹 정치 동학, 군비 경쟁 등 안보 정세 차원에서 폭넓은 함의를 가진다(김양규 2024a).   중장기적으로 향후 공격-방어 균형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기술은 AI와 그 군사적 활용이다. AI는 다른 기술들의 변화를 이끄는 ‘가능케 해주는 기술(enabler)’이자, 기존 기술을 효과를 강화하는 ‘능력 증폭기(force multiplier)’로서 기능하며, 기술 발전의 기반이자 메타 기술이라는 특성을 보인다(Horowitz 2018). “작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으로 표현되는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 전략과 미중 첨단기술 경쟁의 핵심에 AI가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손열 외 2023; 김양규 2024a; 배영자 2025). 최근 발행되는 미국의 전략문건들에는 AI 기술이 미국의 패권 유지 및 중국에 대한 미국의 초격차 우위를 지속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김양규 2024b; Jacobsen and Liebetrau 2023).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신속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며, 군사 작전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전력 증강자’ 역할을 하고, 특히 전장 정보 처리, 표적 탐지, 적 전술 대응 속도 향상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미국의 “통합억지(integrated deterrence)”와 중국의 “지능화전(intelligentized warfare)” 개념처럼, AI는 다영역 작전 능력을 강화하며, 육·해·공·우주·사이버 영역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손열 외 2023; 김양규 2024b; 배영자 2025).   1. 세계안보 환경의 객관적 현실: AI-사이버, AI-자율무기체계, 핵-AI 넥서스   AI의 군사적 이용은 공격-방어 균형 차원에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력에 AI가 통합되어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변화들을 사이버 공격∙방어 역량 및 자율무기체계, 핵-AI 넥서스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김양규 2024b; 전재성 2024).   첫째,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 AI는 공격과 방어 능력을 모두 강화하고 있다(Jacobsen and Liebetrau 2023). 그런데 현재 동 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들, 특히 정부 측 문건들은 사이버 안보 균형에서 AI가 공격 우위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훨씬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기술 자체의 속성상 사이버 공격이 평시와 전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 공격이 언제 발생하는지 감지하고 방어하는 능력을 구축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전재성 2024). 예를 들어, 악성코드에 대한 대응의 경우 그 목적과 목표가 모호하면 이를 탐지하기 매우 어렵다는 기술적 문제가 있는데, 이에 착안하여 딥로커(Deeplocker)와 같이 AI로 구동되는 정교한 맬웨어 공격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동 프로그램은 특정 피해자에게 도달할 때까지 의도를 숨기다가 AI 모델이 얼굴 인식이나 음성 인식과 같은 지표를 통해 대상을 식별하는 즉시 악성코드를 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탐지 및 대응이 상당히 어렵다.   AI로 강화된 사이버 공격 프로그램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AI 역량이 연동된 방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현재 사이버 보안 회사들은 AI 기술이 연동된 공격 프로그램과 방어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적국이 사이버 공격 프로그램을 어떻게 활용할지 알지 못하면 방어 프로그램 또한 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격-방어 균형 문제를 놓고 사이버 보안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단일 행위자 내부에서 창과 방패의 대결이 계속 진행되는 셈이다. 특히, 사이버 방어 역량을 키우기 위해 AI 기술의 통합을 강화할수록 시스템 간 상호연결성이 커지고 ‘적이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attack surface)’도 함께 확대되어 방어 체계 전체의 취약성이 심화되는 역설은 사이버 안보 차원에서 공격과 방어 중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지 확정적으로 논의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둘째, 자율무기체계의 경우도 사이버 안보 영역과 마찬가지로 AI의 활용으로 인해 공격이나 방어 중 하나의 우위를 일방적으로 야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율무기체계가 현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는 전쟁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때문이다. 드론이나 킬러 로봇 기술이 보여 주듯, 자율무기체계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확장성과 확산성이 뛰어나며, 한 명의 조작자가 여러 무기 체계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기에 적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의 규모가 무기 운용자의 수가 아니라 무기 자체의 수량에 의해 결정된다. 각 로봇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도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최소화하면서 원하는 표적만을 제거할 수 있다(전재성 2024).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인간 병사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어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전사자 증가나 그로 인한 국내 여론 악화를 우려할 필요가 없어진다. AI로 강화된 자율무기체계가 가져오는 전쟁 비용의 감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군사 혁신이라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다(Schneider and Macdonald 2024). 전쟁 수행 비용의 감소는 공격-방어 균형에서 공격의 이점을 강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AI로 인해 강화된 자율무기체계는 방어 우위를 가져오는 양상도 보인다. 예를 들어,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미중 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를 한정해 생각해 보면, 최근의 기술 변화는 방어 우위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상륙작전이나 봉쇄작전을 시도하더라도, 초정밀 장거리 공격 능력과 정보·감시·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ISR) 능력, 자율무기체계를 활용하는 미국의 첨단 방어 체계로 인해 중국은 자신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부분적으로 달성하더라도 엄청난 전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중국 또한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을 통해 제1도련선 내 미국의 주요 지휘부와 공군 기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유사시 중국 본토를 대상으로 하는 미군의 작전 수행 능력을 상당 부분 제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 분쟁 발생시 양국 중 어느 쪽이든 상대방에게 공격을 감행하면 매우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Fravel and Heginbotham 2024). 아울러, 생성형 AI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방어국이 적국보다 자국 지형과 군사기지에 대해 더 상세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I로 강화된 무인 자율무기체계는 방어에 더 유리한 기술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King 2024).   셋째, 핵무기-AI 넥서스는 ‘1차 공격능력(first strike capability 또는 counterforce capability)’과 ‘2차 공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 또는 countervalue capability)’을 모두 강화하는 특징이 있다. ISR 능력 향상, 적국 핵 지휘통제(Nuclear Command and Control: NC2)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및 정보 교란, 재래식 대군사타격(counterforce capability)의 정밀도 향상 등은 상대방의 핵 역량을 파괴하여 1차 공격능력을 강화한다. 반대로, 조기경보 및 상황 인식 능력 강화, 사이버 방어, 드론 스워밍의 방어적 활용, 핵무기의 자동 보복 시스템 등은 적의 핵 공격에 대한 대응과 방어 측면에서 2차 공격능력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김양규 2024b). 1차 공격능력과 2차 공격능력 중 무엇이 공격이나 방어에 기여하는 것인지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쌍방이 서로에 대해 신뢰성 있는 2차 공격능력을 구비하였을 때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가 구축되고, 이것이 해당 국가 간 전략적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2차 공격능력은 MAD의 신뢰성을 높여 전략적 안정성을 높이고, 1차 공격능력은 이를 파괴하기에 불안정성을 심화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AI가 결합된 핵무기 능력이 2차 공격능력뿐 아니라 이를 무력화시키는 1차 공격능력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핵무기 균형 차원에서도 AI 기술의 도입이 공격이나 방어 중 어느 하나의 우위를 가져온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상기 내용을 토대로 AI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최근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들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AI 기술은 어떤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그 자체만으로 공격이나 방어 우위를 가져온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해당 기술이 가진 범용성 및 능력 증폭기적인 속성을 고려한다면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애초에 군사기술 혁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신기술의 군사적 이용과 이에 대응하는 상대국의 적응 사이의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을 고려할 때, 기술 변수 하나로 공격-방어 균형 문제에 대한 답을 확정적으로 내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Biddle 2023). AI의 범용성은 이러한 작용-반작용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둘째, AI 기술의 효율성-안정성 긴장관계이다. 기술 변화에 따른 공격 우위 양상의 부각에 대응하여 AI 기반 방어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개입 및 통제 영역을 제한하고(human out of the loop) 기계의 자율성(autonomy)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전쟁 비용은 축소되지만 ‘의도하지 않은 확전’ 가능성은 커진다. 반대로, 책임 있고 안전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할수록 AI 역량을 군사력에 접목시키는 효과는 줄어들고 이로 인한 효율성 감소는 애초에 AI를 군사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적국은 안전한 방식의 AI 기술 적용을 포기하고 기계의 자율성에 맡기는 효율성에 치중한 전략을 선택하였는데 아군은 책임 있는 AI 사용을 강조하여 인간 지휘관의 개입과 통제를 강화할 경우, 적국의 AI-사이버, AI-자율무기체계, AI-핵무기 시스템의 효율성이 아군의 AI 역량을 압도해 버리는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셋째, AI의 군사적 이용의 결과가 공격이나 방어 중 일방의 우위로 귀결되는지 단정하기 어렵고, 효율성-안정성 길항 관계에 따른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지만, AI로 강화된 사이버 공격 능력이나 자율무기체계에 AI가 결합된 형태의 군사역량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AI의 군사적 사용 이후 ‘공격 우위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과 중국 정치 엘리트들의 인식을 보면, AI가 기존 군사 역량에 통합될 때 공격 우위를 가져온다는 기대가 만연해 있어, 마치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공격숭배(cult of the offensive)” 현상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Selden 2024).   2. 세계안보 현실에 대한 해석: 분쟁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과 공격숭배 현상   왜 정책결정권자들은 군사기술 변화의 객관적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이처럼 공격 우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공격-방어 균형의 현실과 인식 사이 뚜렷한 간극이 발생하는 현상은 동 변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비스의 초창기 연구에서부터 지적된 문제이다. 저비스는 ‘공격-방어 균형’과 ‘공격-방어 구분(offense-defense differentiation)’을 중심으로 이론적으로 가능한 4가지 세계를 제시하는데, ‘방어 우위’ 상황에 ‘공격과 방어 기술의 구분이 가능’할 경우 안보딜레마가 존재하지 않는 “매우 안정적인(doubly stable)” 안보 환경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저비스는 인류 역사상 이렇게 안정적인 여건이 형성되었던 거의 유일한 시기로 1차 세계대전 이전 20세기의 첫 10년을 꼽는다. 그리고 기관총 무기체계와 참호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유럽 열강들은 모두 당시 다른 안보 정책들을 선택했을 것이고, 1차 대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요국의 거의 모든 전략가들은 공격이 우위에 있다고 믿었고, 공격과 방어 기술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이 물리적 ‘현실’을 압도했던 것이다(Jervis 1978, 211-214).   최근 연구는 정책결정권자들이 군사기술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모호한 기술 발전과 불가피한 분쟁에 대한 인식의 증가(mix of ambiguous technological advances and growing sense of inevitable conflict)가 서로를 강화하는 인식의 악순환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Selden 2024, 6). 해당 연구는 미국 대통령, 국방부 장관의 인터뷰, 연설, 국방부 공식 전략문건, 각종 정부 위원회 보고서, 그리고 의회 성명 등의 문건과 중국 정부의 안보 전략, 정부 보고서, 시진핑 주석의 인터뷰, 고위급 중국공산당 간부들 연설, 그리고 신화통신과 같은 중국 국영 언론의 논평 등의 문건 가운데 AI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논의를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샘플링하여 분석한 결과 이러한 결과를 얻었다고 보고한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의 양국 간 분쟁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그림 1]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점선 아래로 파란색 실선이 내려가는 부분이 양국 간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압도적인 국면이다.   [그림 1] 미국 및 중국 정책결정권자들의 분쟁/자제 논의     미국의 경우 트럼프 1기 초반에 중국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강세를 보이다 2018년부터 긍정적으로 돌아서지만,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과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급부상하는 양상을 보인다. 중국은 2019년부터 나빠진 대미 인식이 그 이후로 회복되지 않고, 양국 간 충돌과 분쟁을 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는 패턴을 보인다. 미중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이러한 인식이 고착화되고, 기술이 야기하는 공격-방어 우위 효과가 모호한 현상이 지속되면, 본 연구의 관찰이 정확하다는 가정하에 미중 리더십은 AI의 군사적 활용이 공격 우위의 세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주장은 동기기반 추론(motivated reasoning)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정책결정권자들은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느낄 경우(feel compelled to act),” 부정(denial), 선택적 해석(selection) 및 기타 심리적 기제를 적용하여 적의 의지와 의도에 대한 모든 신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지적(Lebow 1981)과도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적과 반드시 싸워야만 하기 때문에, 기술발전이 공격에 유리한 여건이 구비되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Ⅲ. 2025 미중 군비경쟁과 한국의 국방정책   지도자들이 현재 자국이 공격 우위의 군사기술적 환경에 놓여있다고 믿을 때,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고 기대하게 되고, 군비경쟁은 심화되며, 동맹 질서는 고착화된다. 안보딜레마는 악화되고, 현상유지 세력들 간에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Jervis 1978, 189-190).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 열강들의 지도자들이 그러했듯, 인식의 힘은 물리적 현실을 거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AI의 군사적 활용에 따라 변화하는 현실의 실체적 진실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지도자들의 인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귀환과 한국 국내정치 혼란 및 정치 리더십의 위기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2025년 내에 미중 간 직접적인 군사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2024년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가진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의 결론도 “미중 경쟁이 분쟁과 대립으로 빠지는 것을 막고 관리(manage competition responsibly and prevent it from veering into conflict or confrontation)”하기 위한 양국 소통 채널을 지속적으로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었고(The White House 2024), 왕이 외교부장이 12월 17일 개최된 ‘2024년 국제형세와 중국 외교’ 토론회에서 강조한 5대 외교 원칙 가운데에서도 제1원칙은 “평화”였다(Ministry of Foreign Affairs,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4). 그러나 앞서 논의된 군사기술 차원의 변화와 이를 바라보는 미중 양국 리더십의 인식을 염두에 둘 때, 이것은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for our time)”를 예고하는 것이기보다는 ‘폭풍 전의 고요’인 면이 더 크다. 리마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대만 문제, 항행의 자유, 러시아 방위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원, 미국 민간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불쾌감을 뚜렷하게 드러냈고, 왕이 부장의 연설의 제2원칙 “단결”과 제4원칙 “정의”에서 강조되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와 브릭스와 중국의 연대 강화 및 “공평한(equitable)” 국제질서였다.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들은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중단기적으로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과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Cancian, Cancian, and Heginbotham 2023; O’Hanlon 2024; Sisson and Patt 2024).   현재는 미중이 핵무기 사용 결정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하였기 때문에 핵-AI 넥서스 경쟁과 이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핵 전쟁 발발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2035년까지 핵탄두 생산을 700~1,500개까지 확대하려는 중국(Kristensen, Korda, Johns, and Knight 2024)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SLBM)용 저위력 전술핵탄두 W76-2 생산 확대, F-35에 탑재할 수 있는 개량형 저위력 전술핵폭탄 B61-12 생산 등 전술핵 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 정책 방향으로 인해 고전적 의미의 미중 수직적 핵확산 및 군비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아울러, ‘잠재적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책임감 있게 개발한다’는 일반적인 원칙 이외에 AI 기술 개발 및 그 군사적 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결여되어 있는 가운데, AI-자율무기체계와 AI-사이버 공격∙방어 능력 문제를 놓고 미중 간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양자컴퓨터의 상용화에 앞으로 15-2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함에 따라 주식 시장에서 양자컴퓨터 관련주가 폭락하였다. 주가 폭락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만약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예상보다 더디 오게 될 경우 AI 기술의 중단기적 중요성은 더욱 증대된다는 점이다. 계엄과 탄핵 국면이 끝나고 한국 리더십이 안정기에 들어설 때, 장기적 관점에서 엄중한 도전과제들을 고려한 국방정책 방향의 수립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평화’가 아닌 ‘폭풍 전야’의 상황이라 해도, “결정적 10년(decisive decade)”을 지나는 동안 아직 한국에게 기회의 창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중 군비경쟁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격 우위 환경에 있다는 믿음은 동맹국 간 협력을 강화하고 공격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강한 유인을 제공한다. 이는 트럼프주의와 별개로 움직이는 미 국방부 내의 독립적인 흐름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AI 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과 신기술 기반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작년 10월 신설된 전략사령부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략 자산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교리를 마련하고, 킬체인 역량 강화,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및 한미 핵∙재래식 역량 통합(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 CNI)을 위한 작전 계획 수립 및 연합훈련,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AI의 군사적 활용에 관한 미 국방부의 작전 개념 개발과 군 구조 개편, 무기체계 개발 및 조달, 인재 양성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2기 하 한미동맹은 보다 거래적인 형태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기술 협력 및 이전의 가격표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단순히 공격 능력 개발에 치중하기보다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AI 기술 역량의 기본 토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국방혁신 4.0’이 강조하는 AI 과학기술 강군과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AI 기술 인프라 및 반도체 역량뿐 아니라 작전 계획 수립에 필요한 양질의, 그리고 대량의 군사 데이터가 필요하다. 만약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 LLM) 방식이 아닌, 한국 데이터나 서버 시장 규모를 고려한 소형 또는 초소형 AI 모델에 특화하는 형태로 AI 국가전략을 설정한다면(배영자 2025), 이것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한국형 AI 군사 모델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적극적인 투자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김양규. 2024a. “2024년 세계 군사질서와 한국: 정확성과 투명성 혁명에 따른 공격 우위 시대 한국의 안보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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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규 2025-01-15조회 : 2040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⑧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쇠퇴 속 한국 민주주의 외교의 과제

Ⅰ. 들어가는 말   2025년도 새해를 맞는 한국 외교는 국내 민주주의 위기로 얼어붙게 되었다. 12월 3일 밤 내려진 계엄령은 대통령이 국회의 해제 의결을 수용해 선포 여섯 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로 이어진 이 중대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후의 수습 과정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권이 당파적으로 법의 해석과 적용을 주장하고 있고, 이를 해결할 국가기관들이 컨트롤 타워의 부재 속에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그 정점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는 장면을 세계에 보여주고 과연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능동적 외교가 가능할 것인가?   2025년을 맞아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민주주의 외교는 퇴행이 불가피할 것 같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상주의적 자국우선주의, 힘을 통한 평화를 기치로 선택적인 군사적·외교적 관여, 다자주의 협력에 대한 경시, 민주적 규범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특징지어질 전망이다(O’Brien 2024; Foreign Affairs Podcast 2024).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가 우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 민주주의 외교를 펼쳤던 바이든 행정부와는 180도 다른 셈이다. 한국의 실정은 더욱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인권, 법치를 보편가치라는 키워드로 형상화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출범시킨 민주주의정상회의를 두 차례나 서울에서 개최했다. 윤 대통령은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법치를 외면함으로써 그간 쌓아 가던 한국의 민주주의 외교에 타격을 주었다. 민주주의를 속히 복원해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세상이 어떤 질서 하에 놓일지, 과연 질서라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2025년도를 맞은 이 시점에 더욱 커져 보인다. 국제법과 국제적 규범을 좇는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를 국제관계에서 주문처럼 말들 하고 있지만, 이 규칙들을 과연 누가 지켜낼 것인가? 흔히들 자유주의 질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은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하는 비자유주의 세력의 확장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니다. 불확실성의 근원은 바로 자유주의 질서를 담보해 온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내부 민주주의 약화와 이들의 대외 리더십 붕괴에 있다.   국제관계에서 비자유주의적 준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이스라엘의 가자전에서 보여지듯이 직접적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정치 지도자의 독재 때문이며, 간접적으로는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자유주의 국가들이 단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질서의 약화는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의 후퇴와 궤를 같이 한다. 각국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중시, 법치 존중, 시장경제를 통한 성장은 국제관계에서 일국의 주권 존중, 국제법의 준수, 시장통합을 통한 효율 제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한국 외교는 경제와 안보를 국내정치로부터 디커플링하면서 방어적 외교에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러나, 정국이 안정되면서 다시 외교를 정상화하고 그간의 갭을 메우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민주주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능 부전이 머나먼 개도국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함을 직시한 만큼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제대로 지키기 위해 국제협력에 나서야 한다.   Ⅱ. 자유주의 국제주의 정치세력들의 쇠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서구 주요국들의 ‘자유주의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 외교정책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자유주의 외교정책은 서구 및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동맹과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 통합과 제도화된 다자협력을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외교정책은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공고했을 때 안정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까지 30여개 국가들이 민주화되었는데,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이 시기를 민주화의 세 번째 물결이라 명명한 바 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행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민주주의 보고서 2024(Democracy Report 2024)는 오늘날 개인이 평균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수준은 1985년도 수준으로, 국가 단위에서는 1998년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보고한다. 2003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전제주의 국가에서 살았지만, 2023년에는 71%가 전제주의 치하에서 살게 되었다.[1]   세계적인 비자유주의의 확산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주요 정당의 득표율이 하락하고 우파 정당들이 득세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다당제 서구 유럽국에서 두드러지는데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인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퇴행이 우려된다. 독일의 경우, 2021년 9월에 실시된 독일 연방의원 총선거에서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중도 우파 연합인 기독민주당(CDU)ㆍ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초박빙 접전 끝에 25.7% 대 24.1%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사회민주당은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을 끌어들여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구축했으나, 연정을 이끄는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총리가 증세를 반대한 FDP 소속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12월 16일 의회에서 불신임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3년 간의 신호등 연정이 붕괴되면서 독일은 2월 23일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있다. 한편, 우익 극단주의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은 2024년 6월에 치러진 EU의회 선거에서 15.9%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유럽의회에 진출했을 뿐만이 아니라 몇몇 지방정부에서는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독일은 국내 정치 불안뿐만 아니라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상당 기간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기 어려워 보인다.   프랑스에서도 정치적 혼란이 만만치 않다. EU 의회 선거에서 자국 내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에 패배한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7월 7일 결선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과 2위를 한 범여권(앙상블)이 공조해 3위에 그친 국민연합을 연립정부에서 배제할 수 있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좌파연합으로부터 소속 정당 총리를 임명하라는 요구를 묵살했다. 자신이 임명한 총리가 불신임을 받기에 이르자 마크롱 대통령은 12월에 프랑수아 바이루(François Bayrou)를 총리로 새로 임명했다. 극좌와 극우 양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이 앞으로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자유진영의 지도자로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4년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이 연임에 성공하고 그가 이끄는 중도 우파 정치 그룹인 유럽국민당(EPP)이 가장 많은 188석을, 이어서 중도좌파 정치그룹인 사회민주진보연합(S&D)이 136석을, 중도파 쇄신유럽(Renew Europe)이 77석을 얻었다. 이들 3개 정치그룹이 연대해 다수파를 구성하게는 되었다. 그러나 참패한 녹색당과는 대조적으로 강경 우파 및 극우정당 정치그룹이 득세하면서 유럽의회 총 720석 중 187석을 차지하게 되었다(European Parliament 2024). 중도 우파 EU 리더십은 단결을 위해 극우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 형편이지만 갈등은 커질 조짐이다. 재집권 이후 15년째 장기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헝가리 총리는 역내 대표적인 유럽 통합 반대론자로 친러, 친중 정책을 펼쳐 왔다. EU를 탈퇴하기보다는 회원국으로 남아 주권주의를 내세우며 갈등을 일으켜왔다. 그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2년 늦어지도록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EU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계속 반대해 오고 있다.   선거의 해였던 2024년 대미를 장식했던 사건은 미국의 11월 대선이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직넘버 270을 훌쩍 넘는 31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낙승했다. 함께 치러진 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은 하원 435석 중 220석을, 상원 100석 중 53석을 확보해 정부와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써 1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은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은 양당제 정치구조의 나라인만큼 서유럽 다당제 민주국가들처럼 주요 정당이 약화되지 않는다. 대신에 미국 정치권은 양당 간 극심한 대립정치와 공화당의 우경화로 비자유주의(illiberalism)를 경험하고 있다. 공화당 내의 전통적 신자유주의자가 몰락하고, 탈자유주의(post liberalism), 백인 기독민족주의,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신우파가 득세하고 있다(차태서 2024). 공화당 내 신우파 정치세력이 포퓰리스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과 연대해 얼마나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이 달라질 전망이다.   주류 정당들의 쇠퇴와 우익 정당들의 득세를 반세계화의 역풍으로 진단하는 분석들이 많다. 반엘리트 이념과 국가 정체성 담론을 특징으로 하는 우파 포퓰리즘은 경제적 격차에 대한 반발, 이민 유입 반대, 초국적 규칙에 대한 주권 옹호 등을 내세운다. Trubowitz와 Burgoon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1990년대부터 무역 및 투자 자유화, 초국적 협정과 기구 강화에 적극 나서는 반면, 이전과는 달리 국내 사회경제적 보호정책을 게을리해 자유주의 대외정책을 지지해 오던 유권자들에게 ‘지불능력 갭(solvency gap)’을 초래했다고 말한다. 한편, 냉전이 해체되어 지정학적 위협이 사라짐으로서 사회경제적 불안에 직면한 종래 자유주의 지지층들이 반세계화 및 내셔널리스트 정당들을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Trubowitz and Burgoon 2023).   특히, 2015년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인한 유럽으로의 대규모 난민 유입은 기존의 경제적 박탈감을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거의 모든 서유럽 국가에서 유권자의 10%에서 30%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외국인 혐오주의를 갖고 극우 정당이나 극우운동에 가담하는데, 이들은 도심에서 먼 낙후지역에 거주하는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Levitsky와 Ziblatt는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만 극단주의자 트럼프가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고, 2020년 대선 패배를 부정해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점거 사태까지 초래했다고 말한다(Levitsky and Ziblatt 2023). 이제 곧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시작할 것인데, 슈퍼파워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그의 외교정책이 미치는 국제적 파급력은 실로 막대할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철학적, 문화적 비판이 일고, 이를 MAGA 운동 세력들에 사상적 기반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비판론자인 패트릭 드닌(Patrick J. Deneen)은 외부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자유주의는 관습과 공동체를 무너뜨렸지만 구속받지 않은 개인들의 행동을 규제해 질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를 확장하게 했고, 같은 논리로 경제 영역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국경을 허물고 시장을 세계화시켜 버렸다고 주장한다. 자유를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만들어진 이 거대한 구조 하에 힘을 잃어버린 개인들이 통치불능 상태에 놓인 행정국가와 탈국가경제(denationalized economy)에 대해 정치적 통제를 다시 얻으려는 것이 MAGA와 같은 대중운동이라는 것이다(Deneen 2019).[2]   이러한 우파로부터의 자유주의 비판에 대한 반박도 뜨겁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17세기 후반에 정립된 자유주의가 정당화되는 원리를 세 가지로 든다. 첫째는 실용적 정당성으로, “자유주의는 다양한 사람들이 폭력에 의거함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해법이다”. 둘째는 도덕적 정당성으로, “자유로운 사회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살아가게끔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한다”. 셋째는 경제적 정당성으로, “개인의 소유권, 경제 성장, 근대화를 촉발한다”. 저자는 오늘날 증대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 사상이 원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좌우 양편에서 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변형시키면서 그 정당성에 훼손을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파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 간섭 없이 팔고 사는 경제적 자율성을 추구하면서 오늘날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해 경제적 정당성에 타격을 가했다면, 좌파는 개인의 가치와 자율적 선택을 절대시해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고 자유주의 본연의 원리인 관용을 해치게 되었다는 것이다(Fukuyama 2022).[3]   20세기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자유주의가 마땅한 대안도 없이 미국 사회에서 비판받게 된 것은 우려스럽다. 아직 세계 곳곳에서 개인들은 권위주의적 관습이나 정부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만큼, 자유주의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곧 자유민주주의는 방어되어야 하고 확산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적 자유주의 비판에서 비롯된 반세계화론이 안보나 통상에 관한 국제협력을 백안시하게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종교적, 인종적 배타성과 결합한 반세계화 주권주의는 자유주의 국제주의에 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한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초국적 국제협력과 국내 사회안전망 구축 간에 균형을 다시 맞추고, 보다 점진적이고 유연한 다인종, 다문화 통합정책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Ⅲ. 한국 민주주의 외교의 새 판짜기   세계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지원할 리더십이 약화된 오늘날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민주주의 외교가 가능할까?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어떻게 리더십을 말하는가 하는 회의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 동안의 위기 국면을 잘 헤쳐 온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resilience)을 대내외에 보임으로써 비자유주의적 정치 변동이 발생할 때 이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지 국제적 레퍼런스를 제공할 수 있다. 순차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탄핵정국이라는 막중한 시험대에 올라 와 있는바 이 과정을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국격 평가에도 매우 중요하다. 국회가 가결한 탄핵소추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절차대로 심판할 수 있도록 정치권은 도와주고 그 결과에 초당적으로 승복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 과정에서 당파적 이익이 아닌 국가적 이익을 우선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입증할 책무를 갖고 있다.   둘째, 민주화 이후 초유의 계엄령 발동과 국회의 세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를 겪으면서 정치권은 물론 우리 국민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세 번의 탄핵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분점정부하 대통령제의 일반적 취약성을 보여주는데, 제왕적 대통령 유산이 강한 한국에서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와 대립은 유독 심하다. 동시에 야당이 다수당일 때 대통령과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극단주의는 몇 번 대통령이 바뀌면서 더 심해졌는데 이는 형식상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진행된다 하더라도 지양해야 한다. Levitsky와 Ziblatt는 제도적 권한을 당파적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 남용하는 극단주의가 민주적 과정을 망가뜨린다고 경고한 바 있다(Levitsky and Ziblatt 2018). 오늘의 우리 정당들은 이러한 극단주의 대립을 여야 할 것 없이 벌이면서 정치로 풀어갈 일들을 사법부에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형국이다. 상호 관용과 절제의 민주정치를 정치권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극단적 정당정치가 회복 불가능한 국민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승자독식적 선거법 개정과 같은 정치 개혁을 통해 정치 양극화를 완화할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번 시국을 넘겨도 또 다른 위기가 닥칠 수 있고, 그 모습은 더욱 추악할 수 있다.   셋째, 이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에 민주주의 외교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리더가 없어졌다고 흩어지기보다는 보다 능동적으로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과 함께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외교에, 나아가 역내 및 세계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을 지지하고 지원해 주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인태지역 자유민주주의 중견국가(middle power)들은 서구의 민주주의 리더십이 약화된 전환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협력 동인이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바야흐로 강대국의 틈에 끼이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이슈별로 협력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부상하는 시대이다. 글로벌 사우스에는 선거는 치르지만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민주화보다 경제발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경제발전이 민주화보다 선행한 나라로 우리의 시행착오를 공유해 각 나라의 여건에 맞추어 포용적 발전과 민주화를 도모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다섯째,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간단체는 국내 문제에 매몰되어 해외 민주주의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민주주의 외교가 지속가능하려면 정부 간 협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외교(people-to-people diplomacy)가 중요하다. 한국의 민주적 성취를 국가적 자랑거리로 삼다가 이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 만큼, 우리 개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지구촌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참고 문헌   차태서. 2024. “신우파의 부상과 미래 미국.” EAI 워킹페이퍼. 12월 19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93&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12.)   Deneen, Patrick. 2019. Why Liberalism Faile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European Parliament. 2024. “The Political groups of the European Parliament.” As of 16 July 2024. https://www.europarl.europa.eu/about-parliament/en/organisation-and-rules/organisation/political-groups (Accessed January 12, 2025)   Foreign Affairs Podcast. 2024. “The World of Trump 2.0: A Conversation With Daniel Drezner and Kori Schake.” November 8. https://www.foreignaffairs.com/podcasts/world-trump-second-term-foreign-policy (Accessed January 12, 2025)   Fukuyama, Francis. 2022. Liberalism and Its Discontents.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Broadway Books.   ______. 2023. Tyranny of the Minority. New York: Crown.   O’Brien, Robert C. 2024. “The Return of Peace Through Strength: Making the Case for Trump’s Foreign Policy.” Foreign Affairs. June 18.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return-peace-strength-trump-obrien (Accessed January 12, 2025)   Trubowitz, Peter, and Brian Burgoon. 2023. Geopolitics and Democracy: The Western Liberal Order from Foundation to Frac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V-Dem Institute. 2024. “Democracy Report 2024.” https://v-dem.net/documents/44/v-dem_dr2024_highres.pdf (Accessed January 12, 2025)     [1] 최근 42개 국가들이 전제주의로 빠져들고 있는데 이 가운데 28개 국가는 원래 민주주의였으며, 이 중 절반만이 2023년도에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보고한다(V-Dem Institute 2024).   [2] Deneen은 자유주의는 자연(예를 들어 남녀 구분) 정복, 무시간성, 무공간성, 무구분성(borderlessness)을 주요 특징을 가지면서 가족, 공동체, 종교 등의 사회적 기본 구조를 허문다고 주장한다.   [3] 저자는 오늘날 자유주의에 대한 불만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왜곡이 원인이었던 만큼 원래의 원리에서 개선 방향을 찾고 있다. 집단으로부터 개인 자유의 우선을 유지하나 절제를, 언론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공적 스피치는 규제를, 분권화된 정부와 정부 신뢰의 회복을, 성장보다 재분배 중시 등을 주장한다.     ■ 이숙종_동아시아연구원 시니어펠로우, 성균관대학교 특임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이숙종 2025-01-14조회 : 1530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2025 인공지능 기술 경쟁과 세계정치: 한국의 대응 전략

Ⅰ. 인공지능 기술과 세계정치   2023년 챗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혁신이 가속화되어 왔다. AI 기술혁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해 내고 있는 영향력 있는 비저너리(visionary)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CES 2025 기조연설에서 현재 진행 중인 AI 기술혁신의 두 가지 큰 흐름을 언급하였다. 첫째, AI 기술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단계에서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지능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몸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했다. 거대언어모델은 남이 만들어 낸 문자 이미지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인데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현실 이해는 피상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책으로 요리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실제로 요리를 할 수 있으려면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몸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세계에 관한 모델(World Model) 구축이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중력, 마찰, 관성과 같은 물리적 법칙과 공간 감각 등을 훈련하는 물리적 인공지능 ‘코스모스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는 생성형 AI의 생태계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쿠다 프로그램과 유사한 방식으로, 범용 로봇 개발에 쓰일 수 있는 개방적인 플랫폼으로 활용되면서 로봇의 챗GPT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자율자동차, 휴머노이드의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을 기대하게 한다.   둘째, 미래에는 엔지니어, 예술가, 학자, 학생 등 모두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가 필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데스크탑 크기의 시스템에서 최대 2천억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AI 모델을 처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 디지츠’라는 최소형 개인용 슈퍼컴퓨터를 선보였다. 이제까지는 AI 서비스 개발이나 응용을 위해 고가 AI 칩을 구매하거나 대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해야 했는데, 합리적인 가격과 강력한 성능을 장착한 개인용 소형 AI 슈퍼컴퓨터의 개발로 AI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리적 AI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가 만나는 지점에서 출현하는 AI 에이전트는 생산활동은 물론 보건, 문화, 정치, 군사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생활에 스며들게 되고, 일방적으로 활용당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세계 이해와 선호를 함께 형성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파트너로 자리잡아 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 이러한 흐름이 보다 분명해지고 구체화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자나 혁신적인 사업가들에 의해 제시된 비전이 실현되는 과정은, 방적기, 철도, 전기,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 자본과 권력이 개입되고 치열한 경쟁과 협력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구조적 흐름과 개인의 선택이 부딪치고 합류하면서 진행되었다. 21세기 인공지능을 둘러싼 비전 제시와 실현에서 가장 독특한 특성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세계정치환경이 기술 발전 방향과 속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며 말그대로 기술과 세계정치가 공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구동과 관련된 다양한 도구적 장치들은 계층화되고 블럭화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에 토대하여 공급되고, 그 어느 국가도 완전히 자급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국가들이 인공지능 기술혁신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인공지능 기술이 내포한 위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나아가 동일한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미국, EU, 중국이 내놓고 있는 비전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경쟁과 협력, 지정학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재편, 국가별 접근법의 차이와 갈등을 통과하면서 인공지능 기술혁신의 구체적인 모양새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2025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정치 요인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인공지능 정책과 대중 견제 양상,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꼽을 수 있다. EU와 유엔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공지능 규제도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향배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는 2025년 인공지능 기술과 세계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 보고 우리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 본다.   Ⅱ. 트럼프 행정부 2기의 AI 정책과 미중 AI 경쟁   트럼프 행정부 1기는 고학력 이민 비자, 코로나19 이슈 등을 둘러싸고 과학기술계와 뚜렷한 대립각을 형성하였고 과학기술 정책 어젠다에 대해 소홀했다. 미국 최고의 과학기술정책기구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사무국(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OSTP) 국장을 19개월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은 채 공석 상태로 방치했고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 비교해 조직의 규모도 대폭 축소하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책들을 발표하였다. 2019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인 AI 투자와 혁신 촉진, 차세대 AI 연구 인력 육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2020년 2월에는 연방 정부기관 AI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하고, 연방 정부 자원을 AI 기술 개발에 집중해서 미국 AI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국가 AI 전략,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다. 일련의 정책에 토대하여 ‘국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 법안(National AI Initiative Act of 2020)’이 마련되었고 이 법에 근거해 임기종료 직전 2021년 1월 국가 AI 전략을 감독하고 이행하는 책임을 맡은 ‘국가 AI 이니셔티브국(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Initiative Office: NAIIO)’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내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AI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이 적절히 배정되지 못했고 책임기관이 뒤늦게 설치되는 등 AI 국가전략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와 과학기술계를 홀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AI의 중요성을 설득하며 일련의 정책들이 수립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인물은 백악관 최고기술책임자(Chief Technology Officer) 마이클 크라치오스(Michael Kratsios)였다. 그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국장으로 임명되어, 1기에서 제시되었던 AI 정책들이 힘을 받으며 보다 강력하게 실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미국 내 AI 투자, 교육,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한편, ‘적들이 미국과 다른 가치판단으로 AI를 활용하려 한다’며 강력한 대중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화웨이를 시작으로 중국 IT 기업을 견제한 클린 네트워크 정책도 그가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AI와 가상화폐에 대한 정책을 이끌게 될 백악관 ‘인공지능 가상화폐 차르’직을 신설하여 페이팔 출신 데이비드 삭스(David O. Sacks)를 지명하였다. 이들과 일론 머스크(Elon Musk), 밴스(JD Vance) 부통령 이외에도 실리콘밸리 IT 부문 출신 인사들이 국방부, 국무부, 보건부, 법무부 등의 요직을 맡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대거 입각하면서 AI는 물론 가상 화폐, 우주, 바이오 분야 정책 어젠다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이들이 정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AI 우위 유지를 위한 투자 증대와 강력한 대중 견제는 트럼프 행정부 1기를 거쳐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유지되었고 트럼프 2기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전 바이든 행정부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미국내 빅테크와 AI 규제에 관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AI 투자와 대중 견제 이외 AI가 가져올 기회를 잡기 위해 무엇보다도 위험을 완화하는 책임 있는 AI 혁신이 중요하다고 보고 2023년 ‘인공지능의 안심 안전, 신뢰할 수 있는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근거로 2023년 11월에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 미국 AI 안전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또한 이 행정명령에는 모든 정부 기관이 최단 90일에서 최장 270일 기한 내에 지침이나 프레임워크 정비, 정책 수립, 인재 영입시스템 구축 등을 수행해야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실제로 연방 정부 기관들은 AI 안전을 위한 위험 관리, 프라이버시 보호, 시민의 평등권 보장, 소비자·노동자 보호, 혁신과 경쟁 촉진, 미국 리더십 향상 등을 위한 주요 조치를 마련하여 왔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 시기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는 기업이 고용이나 주거, 대출 등 개인의 권리나 기회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할 때 AI를 이용해 불법적인 편견이나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런 문제에 대해 기존 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FTC는 MS, 아마존, 메타, 구글 등 빅테크를 대상으로 독점 및 AI에 관련된 투자나 협력이 경쟁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며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전쟁을 선포하고 소송을 제기해 왔다. 새 정부에서 FTC 위원장으로 지명된 앤드류 퍼거슨(Andrew N. Ferguson)은 빅테크의 불법 시장 지배와 관련된 조사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AI 규제 및 엄격한 기업 합병 기준 등 일부 의제는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AI 규제보다는 혁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AI 안전 신뢰 책임성을 강조한 행정명령이 철회되고 기업에 대한 AI 규제가 완화되는 동시에 초거대 AI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AI 혁신을 위한 투자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공지능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 유지를 위해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 Processing Unit: GPU),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을 규제해 왔고,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 군사 및 안보와 관련된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해 왔다. 중국이 제3국을 통해 AI 칩을 우회 수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AI 칩 판매를 제한하였으며, 임기 마지막까지 각국을 동맹국,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 그 외 지역으로 3분할하여 AI 칩 수출거래 방식을 차별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미국에서 대중 견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고 새로 지명된 각료 가운데 대중 강경론자들이 포진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대중 AI 견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요 관심과 정책은 무역적자, 일자리, 관세이고 이는 첨단기술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접근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여 이것이 미중 관계 어젠다의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트럼프 1기 초반은 미중 간 관세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이후 화웨이 반도체 규제가 본격화되고 섬세해지면서 내걸었던 명분은 지적재산권 침해와 경제적 침략론이었다. 그동안 국가 경쟁력과 안보 관점에서 첨단기술을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대두되어 왔지만, 트럼프 2기에서 무역 대차대조표나 관세가 우선적인 정책 어젠다로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첨단기술 의제가 뒤로 물러서고 오히려 중국이 급속히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성숙반도체 등과 같은 중저위 기술 상품들이 관세와 얽혀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당면한 근본적인 도전은 미국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혁신 역량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기술 굴기의 속도는 확실히 느려졌지만 의지는 더욱 강력해졌고 기술혁신 통로도 다양해졌다. 중국은 미국의 AI 칩과 장비 규제가 본격화되기 이전 막대한 규모의 AI 칩을 구매하여 물량을 확보하였고 우회 수입과 밀수 등을 거침없이 활용하는 한편 고급 인력 유치와 대대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꾸준히 기술력을 증강시켜 왔다. 현재 중국에서 텐센트의 ‘훈위안(Hunyuan)’, 바이두의 ‘어니(Ernie)’,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Doubao), 알리바바의 ‘큐원(Qwen)’등 다양한 생성형 AI 모델이 활발하게 상용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선보인 ‘딥시크-R1’ 모델이 이제까지 출시된 생성형 AI 모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중국 AI 발전의 핵심 병목인 미국의 수출 규제와 중국 정부의 검열 환경에서 이루어진 성과여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2025년에 중국 오픈소스 AI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AI 경쟁에서 중국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추진한 ‘차세대 AI 발전계획’에 더해 2024년 초반 ‘AI 플러스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여, 제조업의 디지털화, 데이터 개방과 유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미국의 제재로 수입이 어려워진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중국산 AI 칩의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중국 기업들은 패키징, 칩렛, RISC-V 등의 기술혁신을 가속화하며 고성능 칩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AI 플러스 이니셔티브는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새로운 품질생산력의 첫째 실천 항목으로 정부 업무보고에 제시되었고, AI 알고리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부문에서 의미 있는 돌파를 통해 전체 AI 산업망을 포괄하는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확장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AI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는 확고하지만 중국의 도전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 AI 경쟁의 승패를 최첨단 기술 개발, 특히 중국이 고성능 AI 칩을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선도산업(leading sector) 부문을 이끌면서 이익과 생산성 등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패권국의 핵심 조건으로 보는 선도부문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세계정치패권과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제프리 딩(Jeffrey Ding) 교수는 그의 저서 기술과 강대국의 부상에서 ‘선도기술 주도’ 보다 ‘범용기술 채택과 확산’을 강조한다(Ding 2024). 그에 따르면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최첨단 선도 기술 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범용기술의 채택과 확산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정책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이 화학, 내연기관, 전기 등 다양한 신기술 부문에서 영국이나 미국을 능가하였음에도 결국 미국이 패권국이 된 것은 독일이 개발한 기술들을 중위급 기술전문 교육기관들을 통해 적용하고 확산시키며 미국식 제조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생산체제 구축으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최첨단 AI 기술혁신이 어디에서 진행되는가보다는, AI 기술이 경제사회 부문으로 스며들어 경쟁력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체제가 구축되는 것이 관건이고 이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이 중요하다. AI 부문에서 선두 그룹에 속한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개발과 확산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고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여전히 미중 간 최종 승부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2025년에도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AI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양국이 각각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흐름이 전개되면서 블록화가 진행될 것이다.   Ⅲ. AI 규제와 글로벌 AI 거버넌스   AI 기술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동시에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측면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활용이 확산되면서 AI에 잠재된 문제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개인정보 및 지적재산권 침해, 부정확하거나 편향된 정보의 생성 유포 조작, AI의 무분별한 군사적 활용, 국내 및 국제 수준의 AI 격차 증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국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있고 인공지능 관련 규범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규제의 강도나 초점이 다소 차이가 난다. 미국은 대체로 자율규제와 정부의 지원, EU는 엄격한 규제, 중국은 세부 이슈별 규제 방향을 채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2023년 행정명령을 중심으로 자국 AI 안전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AI 규제 영역에서도 미국의 리더십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이 행정명령이 철회될 가능성이 크고 자국 AI 기업 혁신 지원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이 국제사회 AI 안전 규제 논의를 주도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2022년 ‘인터넷 정보서비스 알고리즘 추천 관리규정(互联网信息服务算法推荐管理规定)’,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관리 잠정 방법(生成式人工智能服务管理暂行办法)’ 등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과 생성형 AI에 대한 규제의 틀을 제시하였고 이를 토대로 국제 무대에서 AI 거버넌스 관련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23년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제안하여 AI 개발에서 모든 나라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질 것을 촉구하였고 2024년 7월 유엔 총회에서 중국 주도로 발의된 인공지능 역량 구축에 관한 국제협력 강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일대일로나 유엔을 토대로 AI 규범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중 AI 경쟁의 심화와 디커플링 흐름 속에서 중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경우 2024년 3월 유럽의회에서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 AIA)이 통과되었고 향후 약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EU가 마련한 인공지능법은 인간 중심의(human-centric)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AI 활용을 촉진함과 동시에 AI로 인한 유해한 영향을 최소화하여 건강, 안전, 기본권 및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것을 입법 취지로 밝히고 있다. EU가 AI 규제를 가장 먼저 명문화하면서 국제규범 형성을 이끌고 있는 배경에는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유럽 AI 빅테크 기업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빅테크의 AI 서비스가 EU의 경제적 이익이나 가치(인권, 개인정보 보호 등)를 침해할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고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한다. AI 기술에서는 앞서 나가지 못하는 대신 AI 안전 규범과 평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AI 안전을 위한 국제 표준 형성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AI 규제에서 국가 간 상이한 입장과 조율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유엔, OECD, 유네스코, G7 등 다양한 국제기구들도 국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유엔은 2023년 AI에 관한 고위급 자문기구를 설립하여 이를 중심으로 AI 규범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며 2024년 이의 최종 결과물인 ‘인류를 위한 AI 거버넌스(Governing AI for Humanity)’ 보고서를 발표하였다(United Nations 2024). 보고서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포용적이고 공익을 위한 AI 거버넌스 원칙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AI 개발 및 거버넌스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데이터, 컴퓨팅 자원, 인재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역량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AI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지속가능한 목표 달성을 위해 AI 활용을 도모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보고서는 AI와 관련된 국제 과학 패널 설립, AI 거버넌스 정책 대화, AI 표준 교환 및 역량강화 네트워크 구축, 글로벌 AI 기금 조성, 글로벌 AI 데이터 프레임워크 구축, 유엔 내 AI 사무국 설립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통해 유엔의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상은 기후변화 이슈와 유사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기후변화협약,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 기후기금,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 COP) 방식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글로벌 기후변화 거버넌스는 이슈에 관해 논의하고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원자력발전을 관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민간항공기 안전을 관리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ICAO)와 같은 독립적인 AI 관리 기구 설립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강력한 리더십 없이 이런 국제기구가 마련되기 어렵다. AI 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경쟁과 규범에 대한 다소 상이한 입장, 리더십 부족 등으로,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범이나 거버넌스가 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적인 오픈소스 AI 개발자 공동체인 허깅페이스(HuggingFace)는 2025년이 AI 기술의 경제사회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특히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와 프라이버시 침해, 일자리 감소 우려가 고조되어 최초로 AI 관련 대규모 공공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하였다. 2025년 AI 기술혁신 가속화는 필연적으로 AI 위험의 증대와 AI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AI 혁신과 규제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한 국내 및 국제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이다. 현재 주요국과 국제기구에서 AI 안전규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가들마다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국제기구들도 추상적인 수준의 규범 제시를 넘어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방법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어 글로벌 AI 규범과 거버넌스의 파편화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특정 국가나 특정 국제기구 수준의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다. AI 혁신이 안전과 책임성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기구 및 국가 간 협력은 물론 관련 기업, 전문가, 시민사회의 참여를 아우르는 글로벌 AI 거버넌스 모색이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Ⅳ. 한국의 대응 전략   현재 진행 중인 AI 혁신과 활용에서 우리의 입지는 취약하다. 한국이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헤쳐오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던 전자기기, 반도체,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안 보인다. 한국은 무엇으로 AI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엔비디아의 H100을 장착한 서버의 개수나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 LLM)로는 미국이나 중국에 맞서기 힘들다. 그러나 넋두리만 하고 있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어쨌든 기존에 이루었던 성과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토대하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긴 하지만 반도체, 특히 HBM이 있고 구글 메타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거대 LLM에 맞서 소버린 AI(Souvereign AI: 국가의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하여 각국의 제도와 문화를 이해하는 AI)를 구축할 수 있는 네이버, 카카오도 있고, 통신사, 스마트기기 생산업체, 전장업체, 소프트웨어, AI 벤처 등이 AI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AI 투자는 대략 미국 870억 달러, 중국 130억 달러, 한국 25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AI 투자의 60% 이상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중국 10%, 한국은 약 1.5-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데이터나 서버 시장 규모를 고려하여 LLM이 아닌 소형이나 초소형 AI 모델에 특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보다 과감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1981년 정부 주도로 산학연이 함께 협력했던 디지털전자교환기 TDX 개발이나 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 이후 64K D램 개발 투자에 버금가는 한국형 AI 문샷(Moonshot: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 도전) 프로젝트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AI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업들은 물론 대학 연구소들이 네트워킹하고 협력하며 AI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과 모델을 모색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AI 기업들의 투자와 활용이 안전하고 책임성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국내 법제들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 한국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 투자 증대와 정부 기업 대학 연구소 간의 총체적인 협력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의 최우선 경제안보 어젠다이다.   한국 AI 발전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과 경쟁이 필수적이다. AI는 그 어떤 기술보다 기술에 담기는 가치의 선택이 중요함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지향하는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제적 협력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AI 부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으며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중요한 가치로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새 정부도 AI 혁신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한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미국 새 정부와 AI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2024년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안전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AI를 위한 서울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AI의 안전성 확보, 혁신 촉진, 포용성 증진을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 중심적인 AI 활용을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 법치주의, 인권 및 프라이버시 보호를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정상회의의 성과를 발전시켜 한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 형성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한국은 현재 당면한 리더십의 위기를 현명하게 정리해 나가면서 AI 문샷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미국과의 AI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AI 거버넌스 형성에도 적극 참여하여 이미 시작된 AI 시대를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참고 문헌   Ding, Jeffrey. 2024. Technology and the Rise of Great Powers: How Diffusion Shapes Economic Competi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United Nations. 2024. “Governing AI for Humanity: Final Report.” https://www.un.org/sites/un2.un.org/files/governing_ai_for_humanity_final_report_en.pdf (검색일: 2025. 1. 11.)     ■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배영자 2025-01-13조회 : 4285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⑥ 트럼프 2.0 시대 트럼프 리스크와 한국

Ⅰ. 트럼프 2.0의 국내정치적 의미와 마가노믹스(Maganomics)   2024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가 있었던 ‘대선거의 해’(super year for elections)였다. 무려 전세계 72개국 37억 명이 선거에 일제히 참여하였다. 선거는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분열, 정치적 양극화 등 국내정치적으로 잠복되었던 그러나 구조화되어 있던 이슈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는 장의 역할을 하였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는 2025년 세계 경제 질서에서 불확실성의 파고를 높일 최대의 요인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2018년과 판이한 국내정치적 여건 속에서 재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직전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비교할 때 차별성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8년 전의 단순 반복이 되기 보다는 미국 정책의 ‘트럼프화’(Trumpification)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첫째, 이번 대통령 선거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노선을 재확인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일방주의적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촉진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가노믹스’를 광범위하게 추진할 있는 정치적 위임을 폭 넓게 받은 셈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부과의 범위를 중국을 넘어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둘째,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의회 선거에서도 승리함에 따라,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부점(veto point) 하나가 사라졌다.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간극과 갈등이 확대된 결과, 미국 정치에서 중도 세력이 소멸되는 추세가 지속된다는 점은 이미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미트 롬니(Williar Mitt Romney)가 다음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향후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대치 국면에서 중도적 역할을 하던 공화당 내 온건파의 입지는 더욱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정책을 차별화하고, 정책 집행의 속도도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트럼프의 정책 노선에 대한 공화당 내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만 해도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 주기는 했으나, 그 이면에는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일탈쯤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주류 정치에 벗어난 정치적 문법을 사용하고, 파격적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과단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직면하였던 미국 국내정치 환경과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화당 내 지지 세력의 확장을 바탕으로 주류화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화당 내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의 부상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정책 연합이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자가 행정부 요직에 지명한 인사들이 충성파(loyalists),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신봉자, 아웃사이더(Beltway outsider), 상대적으로 미흡한 경력(thin resume)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미국 내에서 주류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안보 전략: 가능성과 한계   1. 디리스킹(derisking), 연결 국가(connector countries)의 부상, 그리고 무역 전쟁 2.0   트럼프 당선자는 모든 무역 상대국에 대한 보편 관세의 부과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타겟형 관세 부과를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다. 보편 관세의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실제로 ‘예외 없는 관세’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과할 것인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이나, 범위와 속도의 문제일 뿐 시행 자체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도 60~8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 미국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2017년 22%에서 2023년 14%로 감소하고, 미국의 대중국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가 감소하는 등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다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중국 역시 미국의 조치에 대응하여 미국으로부터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다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핵심 품목에 대한 대중국 의존도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 미 상무부가 시행한 2,409개 공급망 핵심 품목 분석 결과, 전반적인 수입 의존도가 감소한 것과 달리 핵심 품목에 대한 대중국 의존도는 19.5%에서 19.8%로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중국 수입 의존도가 70%를 넘는 품목이 156개, 100%인 품목이 46개에 달하였다(김나율 2023). 미국의 다변화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디커플링에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반증이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도가 낮아졌지만, 새로운 방식의 상호의존이 부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적 연계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표면적인 변화에 그친다.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연계가 제3국을 통한 간접적 연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중국 수입 의존도가 가파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특히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는 변화가 발생하였다([그림 1-1] 참조). 이 국가들은 또한 중국의 수출과 FDI가 증가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그림 1-2] 참조). 미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연결 국가들’의 부상이다. 관세 부과, 수출 통제, 투자 심사 강화 등 다양한 조치가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제3국을 통한 간접적 의존도는 여전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결 국가들을 통한 우회 수입을 차단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무역 전쟁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 전쟁 1.0에서 제3국을 포괄하는 무역 전쟁 2.0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다.   [그림 1] 연결 국가의 부상 [그림 1-1] 미국의 수입 비중과 중국의 수출 비중   [그림 1-2] 중국의 FDI 비중과 미국의 수입 비중    출처: Gopinath et al. (2024)   2. 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두 가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이 무역 전쟁 2.0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과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도 완화와 관련,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략적 디커플링과 공급망 전략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디커플링은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내내 추진했던 ‘좁은 마당, 높은 장벽’(small yard, high fence)으로 상징되었던 디리스킹(derisking)과 차별화를 의미한다. 즉, 전략적 디커플링은 신중하게 선정된 전략적 부문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벗어나, 무역 균형을 회복하고 미국 시민의 안녕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미국 내의 우려와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다른 문제가 해소되더라도 중국과의 무역 균형이 되지 않을 경우 전략적 디커플링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제3국을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 또는 확대하려는 중국의 우회 전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 당일 중국뿐 아니라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서 그 정책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국가들이 펜타닐 등 마약과 이민자 차단을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 국가들이 미국에 대규모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베트남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다음 타겟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멕시코와 베트남은 2023년 기준 중국에 이어 미국의 무역 적자국 2위와 3위를 기록하였다. 이 두 국가가 대표적인 연결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회 수출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의 간접적인 연결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공급망 전략: 스플릿 쇼어링(splitshoring)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급망 전략에도 일정한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심 첨단산업에서 해외,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리쇼어링(reshoring)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독자적인 생산 역량의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과 동맹 및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동맹 쇼어링(ally shoring)과 프렌드 쇼어링(friend shoring)을 공급망 전략의 근간으로 함께 설정하였다. 한국, 대만, 일본이 미국의 첨단산업 협력의 파트너로 부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특징을 감안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존 공급망 전략에서 리쇼어링의 비중을 한층 높이는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리쇼어링에 따른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효과는 상당하다. 2010년 이후 리쇼어링으로 인해 창출된 미국 내 일자리의 수는 약 2백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22년에는 34만 3천 개가 새롭게 창출되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 2023년 다소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28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호기를 그냥 지나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이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니어 쇼어링(near shoring)의 비중이 감소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리쇼어링에만 의존한 공급망 전략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급망 전략에서 리쇼어링의 상대적 비중이 커지는 ‘스플릿 쇼어링’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4. 두더지 잡기?   트럼프 2.0 시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의 범위와 수위를 확대, 강화함에 따라 미중 전략 경쟁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8년 간 미중 사이의 긴장과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양국 간 공식 채널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 정부 사이의 공식 대화 채널이 90개 이상이었으나,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공식 대화 채널 가운데 대다수가 소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와 별개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이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략적 디커플링을 통해 대중국 의존도를 직간접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견제의 확대와 강화가 반드시 효과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선제적 또는 사전적 예방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사후적 지연 대응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중국이 태양광, 풍력, 배터리, 전기 자동차에서 세계 시장이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동안, 미국이 사후적 대응에 급급한 사례를 다수 목격하였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두더지 잡기’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전략과 중국 견제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은 전혀 별개이다.   둘째, 공급망 전략의 변화를 추진할 때, 계획과 실행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배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서베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기업 가운데 81%가 리쇼어링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리쇼어링을 실행에 옮긴 기업의 비율은 39%에 불과하다(Saenz and Borchert 2024). 중국이 세계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의 형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Ⅲ.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   1. 트럼프 리스크의 대두   트럼프 2.0 시대 트럼프 리스크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문제는 트럼프 리스크가 전략 경쟁의 상대인 중국 또는 러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맹과 파트너들로 확장될 것이라는 데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협력을 강조하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관세 부과, 방위비 분담 상향 조정, 불법 이민과 마약 유출 차단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동맹 및 파트너들에게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c Intelligence Unit)이 관세 및 무역 제한, 방위 분담, 국경 및 안보 통제와 같은 요소들을 기준으로 미국의 70여개 무역 상대국의 트럼프 리스크를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멕시코, 코스타리카, 독일, 도미니카, 파나마, 일본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특히 높다([그림 2] 참조). 동맹 및 파트너 중에서도 미국과 지리적, 정치적으로 가까울수록 트럼프 리스크가 높은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상대적으로 소원한 파트너들의 트럼프 리스크가 오히려 낮은 역설적 현상마저 보인다. 멕시코는 심지어 중국보다 트럼프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맹 및 파트너를 상대로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을 추구하는 트럼프 당선자의 특성과, 중국이 미국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해 온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 8년 간 다변화와 토착 과학기술 역량의 강화 등 미국에 대한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켜 왔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중국의 우회 수출 통로 역할을 한 멕시코와 베트남은 물론, 미국과 무역을 적극 확대한 독일, 일본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높아지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림 2] 국가별 트럼프 리스크 출처: Economic Intelligence Unit (2024)   2. 미중 전략 경쟁의 체제적 영향   트럼프 2.0 시대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다. 첫째, 트럼프 2.0 시대 세계 경제는 분절화와 재연결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가 냉전기와 같이 세계 경제를 양분하는 신냉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지구적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s)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고, 세계 무역에서 중간재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상회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세계 경제는 냉전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이를 완전히 풀어헤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중심의 블록과 중국 중심 블록 사이의 무역과 FDI가 같은 블록 내 국가들 사이의 무역과 FDI에 비해 각각 12%, 20% 감소하였다(Gopinath et al. 2024).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분절화, 더 나아가 ‘이원 세계화’(bi-globalization)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Baracuhy 2024). 향후 미중 전략 경쟁 2.0은 세계 경제의 분절화를 촉진하는 원심력과 이를 완화하여 세계 경제를 재연결하려는 힘이 연속적으로 작용하는 추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트럼프 2.0 시대 미중 전략 경쟁은 무역뿐 아니라 첨단산업 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경로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보복 관세의 부과로 맞대응하였던 점을 감안할 때,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였던 디리스킹은 중국에 대한 견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사실이나, 견제의 범위를 제한하였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의 불필요한 확전을 예방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 중국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의 견제 수위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수년 간 수출 통제 강화를 위한 국내적 차원의 법적 정비를 진행하였다. 중국 정부는 2025년 1월 2일 보잉(Boeing) 방산우주 부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퍼시픽림 디펜스(Pacific Rim Defense) 등 28개 미국 기업을 겸용기술 수출을 금지하는 수출 통제 리스트에 추가하였다. 이어서 록히드 마틴 계열사 5개와 RTX 등 10개 미국 기업들을 대만 무기 매각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는’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추가하였다. 중국 정부는 수출통제법, 겸용기술 수출 통제 규정, 대외무역법, 국가안보법, 반외국제재법에 근거하여 미국 기업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의 강화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곧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에게 핵심 이익 수호를 위한 중국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Ⅳ. 한국의 대응 전략   트럼프 2.0 시대 세계가 직면할 리스크는 전략 경쟁의 상대인 중국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폭풍’(Trump storm)에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총리가 휩쓸린 것은 앞으로 트럼프 2.0 시대 동맹 및 파트너가 직면할 리스크의 한 단면이다. 트럼프 2.0 시대 한국은 양자와 다자, 단기와 중장기 전략을 체계적으로 결합, 연계하는 것을 기본으로 대응 전략을 설계하여야 한다.   첫째, 무역 불균형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이슈라는 점을 감안하여, 지연보다는 선제적이고 기민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공언하였다. 2023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514억 달러로 대미 무역 흑자 순위에서 8위를 기록하였다(Bureau of Economic Analysis 2024). 한국이 중국(2,794억 달러), 멕시코(1,524억 달러), 베트남(1,046억 달러), 일본(712억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Bureau of Economic Analysis 2024), 무역 불균형의 시정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트럼프 2.0의 특성을 감안할 때 우려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한국과 일본은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직접적인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트럼프 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인 2024년 11월 8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LNG를 미국 LNG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2023년 EU의 대미 무역 흑자는 1,567억 유로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 독일(858억 유로), 이탈리아(421억 유로), 아일랜드(311억 유로)가 대미 무역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Eurostat 2024). 2022년 기준 4,639만 톤을 수입한 세계 3위의 LNG 수입국인 한국은 LNG 수입을 대미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에서 수입해 온 장기 계약이 2024년 만료되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은 미국 LNG 수입 물량 확대를 통해 한미 무역 불균형의 완화와 LNG의 안정적 수입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한편, 단기적으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는 효과와 한국 제품이 제3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과 경쟁이 강화되는 2차 효과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 전쟁이 다시 발생할 경우, 보호주의의 확산과 세계 무역 질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에, 반사 효과에만 의존하는 수동적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의 동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 요인을 포착하는 지역 협력 전략을 재구성하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 없는 지역 협력을 위한 리더십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유사 입장국들과 협력하여 미국을 지역 협력의 틀로 견인하는 양면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태동 단계에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가 소멸될 것이다”(IPEF is dead)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PEF의 구성 요소 가운데 일부 또는 상당수를 트럼프 브랜드로 재구성하여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한국은 미국과 역내 국가들 사이의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창조적인 방안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중견국 외교를 추구하여야 한다.   셋째,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과도한 불안, 과잉 대응, 조급한 대응은 금물이다.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대응과 조급한 대응은 구분되어야 한다. 조급한 대응은 지연된 대응보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리스크 관련 우려 사항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은 트럼프 리스크 국가 순위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의 트럼프 리스크는 분야별로 보면 무역 10위, 이민 7위이고, 안보 분야는 10위권 밖에 있다. 트럼프 리스크를 경계하되,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과잉 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무역 불균형과 같이 최우선순위에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기민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되, 기타 사안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대응하는 이원적 접근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이원적 접근은 타당성은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확인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동맹과 파트너에 대해 거래적 접근을 고수 또는 심지어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적 접근에 반응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미 협력의 심화, 확대가 미국의 국익에 어떻게 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설득하는 논리의 개발이 요구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존 동맹 체제가 불공정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명확하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경제적 도전이 군사적 위협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21세기 현실에서 미국이 국가이익을 수호,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첨단산업 능력을 갖춘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이러한 수요를 선제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슈퍼 동맹(super ally)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세계 주요국들은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는 전정부적 접근(whole-of-government)을 넘어, 전국가적 접근(whole-of-nation)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1기에 비해 한층 확대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지난 8년 간 미국발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미 기업 외교 역량을 대폭 강화하였다. 지금은 정부 외교와 기업 외교의 시너지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시점이다. ■   참고 문헌   김나율. 2023. 미국의 공급망 핵심품목 리스트 현황 및 시사점. Trade Focus 2023년 1호. https://www.kita.net/researchTrade/report/tradeFocus/tradeFocusDetail.do?no=2396 (검색일: 2025. 1. 9.)   Barachuy, Braz. 2024. “What’s ‘bi-globalization’ and could this be the near future for geo-economics and global trade?” World Economic Forum. December 19. https://www.weforum.org/stories/2024/12/geoeconomic-biglobalization-global-trade/ (Accessed January 9, 2025)   Bureau of Economic Analysis. 2024. “U.S.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and Services, December and Annual 2023.” February 7. https://www.bea.gov/news/2024/us-international-trade-goods-and-services-december-and-annual-2023#:~:text=The%202023%20figures%20show%20surpluses,%2C%20and%20Sweden%20($9.8) (Accessed January 9, 2025)   Economic Intelligence Unit. 2024. “Trump Risk Index: The global impact of a new US presidency.” https://www.eiu.com/n/campaigns/trump-risk-index/ (Accessed January 9, 2025)   Eurostat. 2024. “USA-EU -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statistics.” February. https://ec.europa.eu/eurostat/statistics-explained/index.php?title=USA-EU_-_international_trade_in_goods_statistics#:~:text=The%20trade%20in%20goods%20balance,(%E2%82%AC4%20204%20million) (Accessed January 9, 2025)   Gopinath, Gita, Pierre-Olivier Gourinchas, Andrea F. Presbitero, and Petia Topalova. 2024. “Changing Global Linkages: A New Cold War?” IMF Working Papers 2024, 076. https://www.imf.org/en/Publications/WP/Issues/2024/04/05/Changing-Global-Linkages-A-New-Cold-War-547357 (Accessed January 9, 2025)   Saenz, Hernan and Adam Borchert. 2024. “Businesses accelerate reshoring and near-shoring amid heightened geopolitical uncertainties and rising costs, Bain & Company finds.” November 14. https://www.bain.com/about/media-center/press-releases/2024/businesses-accelerate-reshoring-and-near-shoring-amid-heightened-geopolitical-uncertainties-and-rising-costs-bain--company-finds/ (Accessed January 9, 2025)     ■ 이승주_동아시아연구원 무역·기술·변환연구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이승주 2025-01-10조회 : 942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⑤ 2025년 인도-태평양 전망과 한국의 과제

Ⅰ. 2025년 인도-태평양 전략 환경   1.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   2025년 1월 출범 예정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전략을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당선자의 ‘신고립주의’ 및 ‘반동맹’ 기조에 따라 미국의 인태 지역 관여와 개입이 축소하여, 전임 바이든 행정부 인태 전략의 핵심이었던 동맹 강화와 중층적 소다자 안보 네트워크 구축 전략이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미국이 소다자 안보 네트워크를 통해 역내 안보 의제를 관리하면 구성 국가 간 역할 분담 구조가 명확해지고, 특정 사안에 대한 공동 대응 협의가 쉬워진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네트워크 구성국에 자국의 규칙과 규범을 더 쉽게 확산시킬 수 있고, 구성국들의 규범 준수 여부를 다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운영은 미국과 네트워크 구성 국가 모두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성공한 기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저비용·고효율로 인태 지역 안보 질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다자 안보협력 네트워크의 구축을 배척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은 2019년 국방부와 국무부 명의의 인태 전략서를 발간했으며, 다양한 법안을 제정하며 인태 전략을 추진했다. 비밀문서였던 『2018년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트럼프 대통령 퇴임 직전 공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 등장했으나 호주와 일본의 이탈로 곧 좌초되었던 미·일·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력 연합체인 ‘쿼드(Quad)’를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시 부활시킨 사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부속 회담 형식으로 국장급 관료 회동이 성사되었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 기간 총 8차례의 쿼드 회담이 개최되었다. 특히 2019년 9월에는 유엔총회 계기 외교장관 회담이 처음 열렸으며, 2020년 10월에는 4개국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대면 회담을 하는 등 쿼드의 협력을 확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미국 주도 인태 지역 동맹과 유럽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의 연계를 지속해서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스티븐 비건(Stephen Biegun)은 이미 쿼드 플러스와 나토 간 연계를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해양 안보를 명분으로 동남아와 인도양 국가에 정보·감시·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 ISR) 자산 제공도 지속할 가능성도 크다. 이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동남아 국가들의 해양 능력 강화를 위해 ‘해양안보 이니셔티브(Maritime Security Initiative: MSI)’를 추진하여 5년간 약 4억 2,500만 달러를 지원했었다. 2020년에는 MSI를 통해 34대의 무인 항공기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의 ISR 자산을 강화했다. 2020년 11월에는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필리핀을 방문하며 약 200억 원 상당의 군수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인태 전략을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유산이 아닌 트럼프 1기에서 기원한 독자적인 브랜드로 프레임화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을 거쳐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전략을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했고, 이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완성한다는 구조이다.   2. 중국의 다자외교 세력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중층적 소다자 안보협력을 통한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구축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국 우선주의 기조로 인해 인태 지역 다자협력에서 ‘선의적 무시(benign neglect)’를 재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동안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아세안-미국 정상회의에도 첫해를 제외하고 3년 연속 불참했다. 대신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리 참석했을 때 아세안 정상들은 심한 불쾌감을 표출한 바 있다. 이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아세안 관련 다자회의를 중시하고, 미국의 전통적인 안보협력국이 아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인태 지역 주요 거점 국가를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로 유인하기 위해 이들과의 양자 관계를 증진했다.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선의적 무시’가 재현된다면, 중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다자영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자국의 전략적 공간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2024년 12월 17일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가 주최한 ‘2024년 국제 형세와 중국 외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연설이 주목된다. 연설의 주제어는 화평, 개방, 정의, 단결, 포용이었는데, 첫 두 주제어는 중국이 미국과 전면적으로 대결할 상황이 아니며(화평), 미국의 ‘탈동조화(de-coupling)’ 및 ‘위험 완화(de-risking)’ 전략에 맞서 역내 국가들과의 상호의존성을 확대하겠다는(개방)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다자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관련하여서는 나머지 세 가지 키워드가 중요한데, 국제 규범 영역에서 중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정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협력을 강화하며(단결),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기회를 포착하여 중국이 세계 무대 중심으로 부상하겠다는(포용) 목표를 함축하고 있다(하영선 2025). 시진핑(習近平) 주석 역시 2025년 신년사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통해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소)다자주의를 ‘선택적 다자주의’라고 비판하며, 자국 주도의 다자주의를 통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러시아·인도·중국(RIC),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체(BRICS),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SCO),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 등이 있다. 특히, 브릭스에는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가 가입하였고, 2025년 1월 6일에 금년도 BRICS 의장국인 브라질이 인도네시아가 공식적으로 브릭스에 가입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2024년 6월 브릭스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태국이 브릭스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는데, 태국의 가입도 곧 논의될 전망이다. 이러한 브릭스 확장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적 플랫폼으로서 브릭스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아울러 미국 인태 전략의 약점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지경학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 2기 동안 이를 더욱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개별적 인프라 투자 및 양자·삼자·쿼드 협력을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해 왔으나, 중국의 거대 자본에 비해 부족한 규모로 인해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다면, 중국은 ‘개발’을 다자협력의 핵심 기치로 내세우며 다자 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다.   3. 미·중 리더십 부재 속 중견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 약진   트럼프 행정부 2기 인태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 2025년 중견국 역할론이 더욱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G2 시대에 역내 국가가 안보 질서 구축과 유지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주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존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이 경합하고 역내 국가에 선택을 강요함에 따라, 비록 양 강대국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현저히 낮을지라도 역내 국가가 안보 질서 구축·유지를 위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시각이 점증하고 있다(이신화·박재적 2021).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시기에 미·중에 비해 약소국인 중견국이 단독으로 역내 안보 질서 구축 및 유지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역부족이나, ‘중견국 연합’을 형성한다면 미·중에 대해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역내 중견국의 소다자 연합이 미국과 중국의 세력 역학관계에 전면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의 네트워크를 운영・유지하는 데 일정 정도의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 권력(positional power)’은 보유하고 있다. 역내 국가 간 소다자 협력이 미국과 중국이 각각 유지하는 진영의 ‘빈 곳(empty hole)’을 채우고, 양 진영을 연결하는 연결자의 역할을 한다면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위상을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더욱 심화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불확실성 속에 역내 국가가 구축하고 있는 (또는 구축하여야 할) 대응 체제 중 하나가 역내 국가가 주도하는 소다자 안보협력이라는 의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태 지역 주요 중진국인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주도하는 소다자 연합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위상을 확보해가면서 자율성도 확보해 간다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미중 대립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게 된다. 일례로, 2024년 한국, 일본, 호주는 국장급 인태 대화를 출범시켰는데, 3국은 동남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해양안보와 개발협력 분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중견국 소다자 협력이 나아가, 메콩강 협력, 해적 퇴치, 해양정보 공유 등을 위해 인태 지역에서 태동하고 있는 자생적인 (소)다자 협력과 연계된다면, 미·중 전략적 경합에서 좀 더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을 구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한편 최근 동남아 주요 국가 간의 양자 협력이 강화하고 있는데, 그들이 중심이 되는 소다자 안보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2024년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안보협력과 공동순찰에 합의하였으며, 베트남과 필리핀도 해안경비대 협력 등 해양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동남아 국가가 주도하는 소다자 안보협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2004년에 ‘말라카 해협 순찰’을 창설하였고, 태국이 2008년부터 합류하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2017년에 ‘삼자협력 의정서’를 체결하고 ‘술라해 삼국 순찰’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이 가열되면서 동남아 주요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 협력이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세안 내에서 친중 국가와 친미 국가의 대립이 민감한 이슈에 대한 ’아세안 컨센서스‘ 도출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주요국이 아세안 차원의 제도적 협력이 어려운 이슈 영역에서 ’아세안 방식‘의 고수보다는 소수의 관련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적 접근을 선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의 양자 안보협력 증진 추세가 이들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 안보협력을 추동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그러한 소다자적 접근이 정체된 아세안 안보협력의 보완제가 될지, 아니면 대체재가 될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4. 나토의 인태 접근과 일본의 전략적 위상 강화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이 가열되는 가운데, 일부 유럽 국가의 인태 지역 접근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및 일본 영토에서 쿼드 국가 전체 또는 일부가 다수의 공동 군사훈련을 시행 중인데, 유럽 국가 참여의 빈도와 강도가 늘고 있다. 그런데 유럽의 나토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인태 지역에서 교량적 역할을 하는 대표적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했는데, 인태 지역에서 일본이 타 국가와 체결하고 있는 ‘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RAA)’이 주요한 매개 중 하나이다. RAA는 상대방 국가의 군대가 자국을 방문할 때 입국 절차를 간소하게 해주는 협정이다. 일본은 2022년 1월에 호주, 2023년 1월에 영국, 2024년 7월에 필리핀과 RAA를 체결하였다. 일본은 프랑스와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일국의 군대가 타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비자, 세관, 군수 식량 검역, 무기 반입 등에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자국 군인이 타국 영토에서 중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느 쪽이 재판 관할권을 가질지도 논란거리다. 이를 매번 훈련 때마다 반복하여 협상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절차를 간소화하고 명문화한 뒤 이를 지속해서 적용하는 것이 RAA이다. 일본과 호주의 RAA 협상은 10년 이상을 끌었다. 주요한 쟁점 사항은 일본 법원이 일본 영토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호주 군인에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호주는 사형제를 폐지하였지만, 일본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 이외에도 일본과 호주에서 각각 정부 기관 간 정책협의도 난행을 겪었다. 하지만, 일본과 호주가 RAA를 타결한 후에는 이것이 선례가 되어서 일본과 영국, 일본과 필리핀의 RAA 체결 협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본이 체결하고 있는 RAA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내에서 양자와 다자 군사훈련의 수가 늘고 참여 병력과 장비가 점증적으로 대규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RAA 체결로 호주, 영국, 필리핀이 대규모 군대를 일본이나 동북아 해상에 파견하여 일본과 군사훈련을 수행하기가 쉬워졌다.   한편, 과거 나토의 공식 입장은 인태 지역 안보 문제에 나토가 연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럽 내 다양한 전통, 비전통 안보 문제를 처리하는 일만도 벅차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중국위협론이 커지면서 나토의 입장도 변화했다. 2021년 6월에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명확하게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규정하였고, 유럽에서 중국의 정보전(information warfare), 홍콩 강권 통치, 신장 인권탄압, 첨단기술 탈취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2022년 6월에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는 중국 견제를 명시하는 '2022 전략 개념'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나토의 주요 회원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영국-호주-뉴질랜드-말레이시아-싱가포르 5개국 방위협력(Five Power Defence Arrangements: FPDA)’, ‘호주·영국·미국 삼자 안보협력(AUKUS, 오커스)’, 인도-호주-프랑스 삼자 전략 대화 등 역내 국가와의 안보협력 플랫폼을 활성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인태 지역에 핵잠수함을 파견하고 있으며, 영국은 항모전단을 아시아 지역에 순항시키고 있다. 독일도 호위함을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에 전개하고 있다. 2024년 10월 7일에는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만과 마주한 필리핀 북부 루손 섬 해안에서 미국, 필리핀, 일본, 호주, 캐나다, 프랑스가 ‘사마사마(Sama Sama, ‘함께한다’는 의미의 타갈로그어)’ 군사훈련을 개최하였다. 이어 10월 15일에는 개최된 미국과 필리핀 해병대 훈련인 ‘카만닥(KAMANDAG, ‘독[毒]’을 의미하는 타갈로그어)’에도 일본, 한국, 호주, 영국, 프랑스가 참여하였다.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Indo-Pacific 4: IP4)가 2022년, 2023년, 2024년에 초대된 것은 나토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인태 지역 동맹들이 높은 수준에서 연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5. 부상하는 ‘스쿼드(S-Quad)’   ‘쿼드(Quad)’는 미국, 호주, 일본, 인도 간 안보협력을 지칭한다. 2007년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시작했으나, 중국의 부정적 인식을 의식한 호주와 인도의 이탈로 1년도 안 되어 좌초되었다. 그러나 2017년 11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주도로 부활하였고, 이후 인태 지역의 대표적인 미국 주도 소다자 협의체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스쿼드(S-Quad)’가 부상하고 있다. 스쿼드는 미국, 호주, 일본, 필리핀 간의 안보협력을 뜻하며, 기존 쿼드와 달리 인도가 아닌 필리핀이 포함되어 있다. ‘S’는 ‘Security(안보)’의 첫 글자로, 스쿼드 협력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전통 안보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스쿼드는 미국과 필리핀 간의 양자 안보협력 증진에서 시작되었다. 2023년 2월, 필리핀은 기존의 5곳에 추가로 4곳의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했으며, 이 중 3곳은 대만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이를 통해 대만 사태에 대비한 거점을 확보한 미국은 필리핀과 6년 만에 해양 순찰을 재개하며 이에 화답했다. 이어서 일본과 호주도 미국, 필리핀의 군사훈련 및 공동 해양 순찰에 합류하였다. 스쿼드 국가 간 양자, 3자, 4자 군사훈련과 공동 해양 순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24년 4월 12일에는 미국, 일본, 필리핀이 최초로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또한, 7월 8일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과 필리핀이 양국 군대의 RAA를 체결하였다.   기존의 쿼드도 중국을 염두에 둔 안보 협의체로서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미국, 일본, 호주와는 달리 인도는 쿼드가 대중 봉쇄의 기제로 인식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쿼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이더라도 2007년 좌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4국은 표면적으로 중국 견제의 색채를 가능한 한 옅게 하고 다양한 비전통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쿼드와 ‘쿼드 플러스’를 전개해 왔다. 반면 스쿼드는 쿼드와는 달리, 명시적으로 중국에 대항한 해양 안보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스쿼드 4국은 그들의 안보협력을 스쿼드로 지칭하지 않고 있으며, 공식적인 협의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리핀 주변 해역의 해양 안보가 남중국해 해양 분쟁 및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 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4국이 스쿼드를 공식화하고 점차 제도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부의 예측이나 비난처럼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의 나토와 같은 집단 방위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면, 스쿼드가 그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인태 지역에서 스쿼드의 전개가 역내 안보 질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Ⅱ.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방향   한국은 2021년 12월 인태 전략 공표 후 역내 공적개발원조, 국제 개발 협력 등을 위한 지원에 힘을 쏟아 왔다. 하지만,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법의 지배, 항행과 항공의 자유 등에 원론적 지지를 표명하면서 역내 민감한 안보 이슈에는 거리를 두어 왔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에 인태 전략 추진 3년 차에 접어드는 2025년에는 역내의 다양한 비전통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기여를 가시화해야 할 시점이다. 2025년은 한국 인태 전략 이행 로드맵상 ‘성숙·확산’ 단계로서, 인태 전략 이행성과의 가시성 제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전략 환경을 고려하여 아래와 같은 기조 및 추진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인태 공간을 광의로 접근하고 일본, 호주 및 주요 유럽 국가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안보적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2022년 12월 인태 전략 발표 시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가 역내 국가로 포함될 수 있도록 인태 공간의 범위를 인도뿐만 아니라 인도의 서쪽부터 아프리카 동부까지 포함하게 설정했다. 인태 전략 추진 1년차부터 유지해온 이와 같은 공간 범위를 좀 더 공고화해야 한다.   한국이 인태 공간을 포괄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합이 중국과 미국의 경합에서 중국과 ‘서구(West)’ 네트워크의 경합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이슈 영역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라기보다는 중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와의 사이에서 우리의 적절한 ‘위치 선정’(positioning)을 고민해야 하는 전략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태 공간을 아프리카 동부 지역까지 확장하여 설정한 한국이 인태 전략 추진 3년 차에 확장된 공간에서의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이 인태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경합을 중국 대 ‘서구’로 접근하고 있으며, ‘서구’와의 안보협력을 증진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일본은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일본의 위상이 강화되어 일본이 동북아의 축으로 기능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쿼드의 예처럼 일본이 역내 소다자 안보협력 결성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역내 다자 안보협력에서도 우리의 입지가 일본에 밀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편으로는 인태 지역에서 유럽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Peacekeeing Operations: PKO)’을 강화하는 등 확장된 지역에서 우리의 안보적 역할을 늘려 나가야 한다.   둘째,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인태 지역 포괄안보, 특히 해양안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수행해 온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배양(maritime capacity building)’에 대한 기여를 지속하면서 역내 ‘해양 상황인지(maritime domain awareness)’ 능력 배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례로 쿼드가 2022년 제3차 정상회의에서 ‘해양 상황인식을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ndo-Pacific Partnership for Maritime Domain Awareness: IPMDA)’를 발족시켰고, 2024년 9월에 개최된 정상회의에서도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표명하였다. 이처럼 미국 등 쿼드 국가가 인태 지역 거점 국가의 해양 상황인지 능력 배양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한국은 역내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별적 기여를 지속하면서 IPMDA가 쿼드+ 형태로 확장된다면 참여하는 등 쿼드 국가와의 협력 및 조율도 늘려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 안정적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해 중국의 대만해협에서의 ‘군사력 과시(showdown of forces)’ 상황과 남중국해에서의 ‘해양 순찰(maritime patrol)’에 대한 우리의 뚜렷한 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일본이 호주, 필리핀과 스쿼드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인태 전략 추진 3년차에 국내 정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해양안보에서 미국과 일본에 어느 정도까지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셋째, 우리의 딜레마는 제1위 교역국이자 북핵 문제 해결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중국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강화와 인태 공간개념에 비판적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태 전략 추진 후 지난 2년 간 해 왔던 것처럼 중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 모두와 함께하는 ‘개방성·포괄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에 더해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와 같은 지역 차원의 보편적 규범 준수와 더불어, 중견국으로 역내 비전통안보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국은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미국을 포함한 쿼드 국가가 주도하는 해양안보 협력에 참여를 요청 받게 될 전망이다. 만약 이러한 요청이 우리가 정립한 상기 원칙에 부합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때에 따라서는 중국도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교량 국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역내 국가가 중심이 되는 자생적인 안보협력이나,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협력에도 우리가 정립한 원칙에 맞으면 참여하는 균형감도 유지해야 한다.   넷째, 한국이 역내 중견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을 촉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지난 2년 간 한국의 인태 전략서와 이행서가 소다자 협력을 표명하였지만, 실행 성과로 예시한 것과 중점 추진 사업으로 예시한 것은 주로 미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체였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미중 전략적 경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의 초석을 만들기 위해서 인태 지역 주요 중견국인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양자 및 소다자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향후 일본-베트남-필리핀, 호주-인도네시아-인도, 인도-일본-베트남, 프랑스-호주-인도 같은 다양한 역내 국가 주도 소다자 협력과 비공식적 다자간 협력이 역내 안보 영역에서 역할을 정립해 갈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과 호주가 동북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에서 역내 국가와 소다자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에 한국·호주·아세안, 한국·호주·태평양 도서국 조합의 소다자 협의 추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호주가 동남아에서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수행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남태평양에서도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과 호주가 정례적으로 ‘아세안 정책 대화’를 개최하고 있는 것처럼, 남태평양 주도국인 호주와 협의하여 ‘남태평양 정책 대화’도 추진하고, 우리가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과 유사한 ‘남태평양 연대구상’을 제안할 수도 있다.   다섯째, 한국이 ‘자유(freedom),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의 인태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자유(freedom)와 평화(peace) 못지않게 번영(prosperity)에 대한 수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의 ‘번영(prosperity)’ 이미지는 우리 인태 전략의 자산이다. 남태평양을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국가재건’, ‘시민역량 개발’에 전력하고 있는바, ‘민주화’보다는 ‘번영’을 우리 인태 전략의 핵심 개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호주, 일본 등과 인태 지역에서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남태평양에서도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여섯째, 한미일 안보협력을 동북아를 넘어 인태 공간에서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한다. 2023년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은 상호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였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 및 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있는 가운데, 3국이 안보협력을 증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3국은 북한 미사일 정보 공조, 삼국 간 군사훈련 정례화 등 안보협력의 핵심 골격을 만들었고, 2024년에 3국 협력사무국 설치에 합의하는 등 3국 협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한미일 협의체가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 의제를 다루는 소다자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 ‘한미일+알파(α)’ 형식으로 외연 확장을 시도해야 한다. 3국은 이미 정보 공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경제 안보를 논의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하였고, 2024년 1월 ‘한미일 인도-태평양 대화’를 발족시켰다. 2024년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페루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해양안보・법집행 협력 프레임워크(Trilateral Maritime Security and Law Enforcement Cooperation Framework)’도 출범시켰다.   우리가 인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한미일 플러스(+)’ 연대를 촉진할 것을 표명해야 한다. ‘한미일-아세안, 한미일-태평양 도서국 포럼, 한미일-아프리카 정상회의, 한미일-‘글로벌 사우스’와 같이 역내 다자 지역협의체 또는 지역 집단군과의 한미일 플러스(+)를 추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아프리카 지역의 PKO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매개로 해양안보에서 한미일 + EU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이동률. 2025.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중국의 새로운 글로벌 역할의 모색, 대미 전략과 한반도”. EAI 논평. 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79&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이신화, 박재적. 2021. “미· 중 패권경쟁시대 인태 지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도전과 전망”. 『국제지역연구』 25, 2: 219-250.   하영선. 2025. “[신년 특집 보이는 논평] 3대 지구 리더십 위기와 기회”. EAI 보이는 논평. 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40&board=kor_multimedia (검색일: 2025. 1. 5.)     ■ 박재적_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및 언더우드국제대학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박재적 2025-01-09조회 : 1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