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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③ 2024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본 미국 민주당의 미래

“우리는 그들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왔습니다. 우리는 국내에서 변명하지 않고 산업 전략(industrial strategy)을 추구할 것이지만, 우리의 파트너들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고하게 약속합니다. 우리는 우리 파트너들이 우리의 산업전략에 함께하길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산업전략의 성공을 위해 우리 파트너들이 반드시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 중에서(Sullivan 2023)   "바이든은 그의 민주당 선임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산업 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그러나 증거에 따르면 그는 여전히 월스트리트, 베이징, 그리고 환경단체의 로비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의 과제는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결코 산업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진정한 보수적인 통찰력으로 산업정책을 강화해야 합니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트럼프 2기 국무부 장관 예정자), 워싱턴포스트 사설 투고 중에서(Rubio 2024a)   Ⅰ. 서론: 21세기 미국 산업정책의 등장?   자유시장경제의 모델로 여겨지는 미국에서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라는 용어는 미국정치 속 여전히 논쟁적인 표현이다. 2023년 4월, 바이든 행정부의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취했던 정책이 현대화된 산업정책(a modern industrial policy)이었다고 자평하며 이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Sullivan 2024). 설리번이 곧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유산을 강조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을 승계한 해리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그동안 사회정책의 측면에 국한하여 큰 정부를 지향한 민주당의 정책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레토릭(rhetoric) 상의 변화는 최근 10년 동안 미국 정치의 지형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짐작케 한다.   미국의 산업정책이라는 표현은 미국 정치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식자층에게도 어색한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시장중심(market-oriented) 경제정책으로 부를 축적한 국가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질서의 구축과 유지를 위해 막대한 양의 자원을 쏟아 붓기도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와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등 세계화를 이끌었던 국제기구들은 미국의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1992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민주당의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 이후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유무역 정책의 기조 하에 금융 자유화를 위해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최첨단 산업으로의 지원이 국가 정책 기조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1993-2000)이 8년의 임기를 통해서 민주당을 자유무역의 정당으로 바꾼 지 20여년이 지난 후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는 인종주의적 수사로 중남미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것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규제하였고, 그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하여 관리했다. 동시에 멕시코와 국경을 면한 주에 큰 장벽을 건설하는 등 이전 행정부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정책들을 실현했다. 무역정책에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의 행정부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를 경유하지 않고 주로 행정명령에 의존하여 자유무역이라는 정책 기조 하에서는 시도될 수 없었던 여러 보호주의 정책들을 과감히 추진하였고, 미국 기업들과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틱톡(TikTok)과 같은 중국이 소유한 기업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쉽게 수집하고 이용하는 것을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미국 안팎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과 정책선호에서 비롯된 일인지, 이미 미국 사회에서 진행된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대중들의 집단적인 정책 선호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여러가지 해석들이 분분한 가운데 대다수의 대중들과 정치 전문가들이 동의할 수 있었던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정책 패키지가 2016년 이후의 미국 대중들에게는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중간 선거 및 대통령 선거의 투표장에서 안정적으로 트럼프주의를 계승한 사람들이 대다수 높은 지지율을 받는 현상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선거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불만을 품은 대중들이 민주당의 후보 바이든을 선택하며 민주당이 다시 백악관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트럼프 1기를 경험하며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파격을 경험하며 동맹국과 미국의 자유주의 질서에 의존하였던 동맹국들은 과거의 질서가 다시 복원될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바이든 당선자는 민주당의 여러 계파들 간의 입장차이를 능숙하게 조율했던, 경험 많은 정치인이자 오바마 대통령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던 부통령 출신이기 때문에 2016년 대선 패배를 반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민주당원들에게는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졌다.   주지하듯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1기에 시행되었던 여러 보호무역 정책들을 폐기하보다는 거의 대부분 계승했다(Lighthizer 2023, Introduction). 어쩌면 조 바이든은 정치 신인 도널드 트럼프가 어떻게 공화당의 외부에서 핵심을 장학하며 결국 미국 정치에서 최정상에 올랐는지를 면밀히 벤치마킹(benchmarking)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의 핵심 주장인 작은 정부론, 균형 재정 등의 원칙을 받아들이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포퓰리즘과 뒤섞인 백인 민족주의(white nationalism)를 내세워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에서 제조업이 장기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문제를 포함하여 특정 지역에 경제적 곤궁이 집중된 문제, 마약 문제 등 다양한 미국 사회의 문제들을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진단했다.   트럼프가 지목한 거의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우리”에 있지 않고 우리의 선의를 악용한 “그들”에게 있었으며 이 전략은 선거에서 대중들을 설득할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트럼프 지지자들로서는 트럼프와 같은 정치의 외부자(outsider)가 아니면 누가 나서서 과거 정치 관행을 무시고 연방정부를 이용해서 그 동안 자유무역 원칙이라는 말로 묵인되었던 불공정한 거래를 중단시키고 미국에게 부당이익을 챙겼던 세력들에게 체벌을 가할 것인지 의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빈부의 차가 더 커질수록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치안을 강화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시급한 과제로 다가오는데, 이에 대해서 트럼프는 명쾌한 진단과 해답을 제공해준다. 즉, 정부의 한정된 재원을 축내는 복지의존층과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 사회에 정착하는 불법이민자들(the undocumented)로부터 문제가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들을 기존 법률체계에서 허용된 수준보다 더 철저하게 규율하고 격리하는 것이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2020년 대통령 선거의 승리 이후에도 확실한 동원(mobilization) 효과를 갖는 트럼프의 통치 원리와 선거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정책들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무역정책 영역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에 도입된 여러가지 보호주의 장치들을 같은 대통령 명령을 통해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존속시켰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존속하거나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산업정책에 해당하는 정책들을 입법과정을 통해 도입한 것이다. 2020년의 선거 이후 하원에서 민주당은 222석을 차지하며 213석에 그쳤던 공화당에 근소한 의석수의 차이를 만들며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하여 입법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50석으로 매우 근소한 우위를 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하원의 다수결을 이용하여 IRA를 통과시키고 결국 상원에서 민주당과 뜻을 함께하는 두 명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 상원의원을 포섭함으로써 50:50의 교착상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통령이 팽팽한 균형을 깨는 의사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게 되고, 결국 당시 부통령인 해리스가 민주당의 산업정책 안을 지지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는 중간선거 전인 2022년 여름에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1]   두 법안의 통과로 바이든 행정부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연방정부의 공적 자금을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즉, 바이든 행정부는 시장에 개입하는 근거를 현 시점에서 친환경 에너지(clean energy)를 이용하여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논리에서 찾았다. 또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부터 시작된 중국과의 무역전쟁 속, 반도체 부문과 전기차 부문을 포함한 최첨단 산업 영역에서 미국 제조업의 생존을 위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할 목적으로 법안을 구성하였다. 법안 통과가 만든 새로운 투자 조건 속, 한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포함한 첨단산업과 관계된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미국 기업 및 다른 해외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법안이 명시한 여러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세금 혜택을 받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2020년 대선에서부터 이러한 정책들을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의 정책 패키지로 묶어서 홍보하였다. 바이든은 환경을 보호하는 목표를 산업정책 안에 넣어 이전 트럼프 행정부와 정책적인 차이를 만들고자 하였다. 보호주의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무역전쟁의 승리에만 초점을 둔다는 인상을 주는 트럼프 전 행정부와는 달리, 바이든은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미국경제의 체질 전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방정부가 나서서 새로운 인센티브 구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동안 미국 정책 커뮤니티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는데, 이는 많은 이들이 산업정책을 자의적으로 승리자와 패배자를 결정하는, 근거 없는 정책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정책은 성공하기보다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을 낳고 실패할 것이라는 시각이 정책 커뮤니티의 분위기였다. 바이든은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특정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강조하기보다 친환경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은 당내 좌파 세력으로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히 개혁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피해갈 알리바이를 제공해주었다. 그린 뉴딜이라는 용어는 당내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하원의원(뉴욕)을 비롯한 민주당내 좌파 성향의 의원들이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원을 개발할 수 있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자칫 민주당의 지지세력 중 일부에게만 재정지원을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일정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주었다.   요약하면,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쳐 국내정치적 변수들을 경험하며, 2022년 여름 이후 미국적인 산업정책이 법제화되고 관련 예산 배분을 통해 형태를 갖추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과정은 여러 정책적인 목적과 정치적인 의도가 중첩된 복잡한 정치적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바이든 시대의 새로운 정치경제적 시도들을 보다 긴 역사적 호흡 속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본 고에서는 바이든 행정부 이후 미국 산업정책이 보호무역주의, 대중국 무역전쟁, 그리고 그린 뉴딜 등의 다양한 정책적 의제 및 목표를 가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에서 입법화된 산업정책이 곧 시작될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는 성공적으로 시행될 것인지, 혹은 일방적으로 폐기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정책 지향을 갖고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 고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2절에서는 미국 국가의 정책역량과 국가형성을 다룬 문헌들을 통해 미국은 어떤 방식의 산업정책을 펼치는 것이 가능한지를 이론적으로 논의한다. 또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미국 학계와 정계 안팎에서 진행되었던 산업정책 논쟁을 살펴보고 이것이 어떻게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에게 수용되었는지 보인다. 3절에서는 트럼프의 대중국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가 어떻게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와 과학법, 그리고 IRA로 이어졌는지 설명한다. 4절에서는 2024년 대선 이후 미국 산업정책의 향방은 어떠할지 루비오 상원의원의 보고서(report)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II. 예비적 고찰: 미국 국가의 정책역량과 미국식 산업정책   1. 미국의 정책역량   본격적으로 미국 산업정책의 과거와 현재를 논의하기에 앞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행정적이고 정책적인 역량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유럽의 선진 산업국가들에 비해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었고, 그 결과 채택된 정책 선택지가 다르며, 국가의 정책 수행 과정도 다른 국가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의 구성 방식과 정책 역량을 두고 많은 학술적인 논쟁이 있었다(Novak 2008). 먼저 서유럽의 중앙집중화된 국가와 비교했을 때, 미국 정부를 약한 국가(weak state)로 보며 이를 막스 베버(Max Weber)와 같은 학자가 언급한 근대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해 발생한 문제로 보는 입장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베버는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 관료제가 더욱 발전하고 그 안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공무원은 직무상 전문화(professionalism)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펼칠 정책 역량도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근대화의 과정을 경험하는 만큼 국가 간에 나타나는 정책 역량의 차이는 근대화의 과정이 얼마나 진행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기준을 미국에 적용할 경우, 미국은 아직도 국가의 정책을 수행할 체계적 관료제를 완성하지 못했으며, 중앙정부의 권한도 주정부와의 역할 분담 속에서 크지 않은 약한 국가로 볼 수 있다(정영우 2023, 7-9).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오직 단일한 기준으로 국가의 형성(state-building) 과정을 이론화하여, 정작 미국정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통치를 하는지 실증적으로 탐색하는 것을 방해한다. 미국 정부가 민간 부문과 함께 협력하여 제휴하는(associative) 형태로 거버넌스를 구성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대부분의 정책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out of sight)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는 브라이언 베일로(Brian Balogh)의 연구 역시 이러한 획일적인 시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Balogh 2009).   로버트 리버만(Robert Lieberman)이 미국, 영국, 프랑스 3국의 인종 정책의 수행을 비교한 논문에서 강조한 것도 베일로의 논지와 다르지 않다(Lieberman 2002). 인종차별을 개선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세 국가 정부는 모두 정책적 노력을 경주했지만, 그 성과는 서로 달랐다. 리버만은 다른 두 국가에 비해 미국이 1960년대 이후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정책을 강력하고 성공적으로 추진하였고 이것이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인 차별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리버만이 보기에 미국정부의 정책 성과가 다른 두 국가에 비해 차이를 보였던 이유는 강력하게 중앙화되지 않은 미국 연방정부의 구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버만의 주장은 역설적이다. 보통 막스 베버의 시각을 받아들인 연구자들이라면 보통 국가가 강력하게 중앙집중화된 관료제를 갖추지 못해서 효율적으로 정책을 실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리버만은 오히려 강력한 중앙행정기구가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더욱 강력하고 인종의식적인(color-conscious) 인종차별시정정책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정책의 강력한 수행 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차별시정정책은 처음부터 민권운동, 전문 변호사 집단, 그리고 평등경제기회위원회(Equal Economic Opportunity Commission)의 수사관, 그리고 차별 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판단한 연방 법원의 판사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협조로 시행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들 행위자들은 상호간 받아들일 수 있는 법 해석과 그 적용을 경험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고, 이것이 비교정치학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강력하고 포괄적인 차별금지조치의 법제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을 두고 미국은 태생적으로 약한 국가(weak state)이며, 이러한 제도적 특징 때문에 여러 정책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각은 국가 간의 제도적 배열(arrangement)의 차이를 근거로 시행 정책의 종류와 그 성패의 차이를 설명하는 접근법에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높은 경제발전을 이룩한 미국이 왜 상대적으로 저발전된(underdeveloped) 복지국가에 머무르고 있는지(Hacker and Pierson 2002; 2010), 아니면 연방정부의 주도로 왜 효과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취하지 못하는지를 탐구한 연구들이 해당된다(Weir 1993).   요약하면, 미국정부와 그 정책 역량을 판단할 때 연구자들이 단순히 강한 국가/약한 국가라는 분석틀로는 정책의 시행 방식과 그 효과성을 분석하는데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덜 조직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비효율적인 정책 집행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미국 정부의 정책 수행 관행은 중앙정부(federal government)와 지방정부(state governments)가 권력을 나눠 갖는 연방제도와 산업화보다 먼저 온 민주주의로 인해 관료제가 미발달 되어 있으며, 국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민간 부문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빌려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형성되었다. 또한, 도금 시대(Gilded Age)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민주당의 정당머신(political machine 또는 party machine)이 정치적 지지를 보내준 대가로 소속된 사람들에게 공직 및 공공 서비스를 제공했던 관행과, 여기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부문을 대폭 축소하고 작은 정부와 의도적으로 관료의 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정치개혁을 시도한 혁신주의 시대(Progressive Era)를 거치며 ‘미국식’으로 정착되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다른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과 다르게 통치하며, 외부인의 시각에서 관찰할 때, 특정한 정책 목표를 전국적인 규모로 달성함에 있어 효율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2. 미국 산업정책 논쟁   일반적으로 산업정책이란 정부가 여러가지 정책수단을 통해 특정 산업이나 산업 부문의 발전을 위하여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행위들을 말한다. 이 정책은 정부 부처의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에 근거한 경우가 많으며, 그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한정된 자원을 어느 분야에 집중 지원할 것인지 결정하는 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주지하듯, 국가들은 여러가지 구조적, 제도적, 그리고 문화적 이유로 다른 방식의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내적, 대외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산업 전략을 받아들이기도 한다(Shonfield 1977).   미국의 건국자 중 한 명인 알렌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신생 공화국인 미국의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치산업(infant industry)보호론을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해밀턴의 주장은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 전략을 넘어 미국 중앙정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2]   미국에서 산업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건국 과정에서부터 계속되었는데,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고 인식되었던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재등장했다. 1970년대 미국은 여러 사건들을 통해 경제 위기를 경험했다. 도시폭동, 민권운동, 반전운동 등 여러 형태의 사회운동을 경험했던 1960년대를 경유하여 동부, 중서부의 전통 제조업이 모여 있던 지역들은 빠르게 탈산업화를 경험했다(Sugrue 2005). 한 가구의 생계를 책임져 주었던 전통적인 블루칼라 직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 밀집 지역이었던 동부와 중서부로부터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이는 미국인들에게 큰 위기의 의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미국은 1971년 닉슨 정부의 금태환(gold-dollar convertibility)정지선언과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경험하며 대외경제적 위기를 경험했고(Ki and Jeung 2020),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는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을 심화시켰으며, 급변하는 원자재 가격과 달러가치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미국 기업들은 도산했다.   1970년대를 경험한 뒤 미국에서는 미국에 맞는 산업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하였다. 한 경제학자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주로 1980년부터 1984년에 학계에서, 그리고 언론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Norton 1986, 4). 그 중에서 터러우(Lester Thurow)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경쟁력의 저하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세를 감면하고 전반적인 긴축재정을 감행하는 한편, 소비세를 늘려 개인의 소득세를 대체하는 재정정책을 산업 부문별 지원정책과 병행하자는 주장을 학계 및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설파했고, 이는 산업정책을 둘러싼 광범위한 토론을 촉발했다(Norton 1986, 33; Thurow 1980; 1981; 1984; Business Week 1982).   1980년대 산업정책을 주장한 여러 전공분야의 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한 노턴(R. D. Norton)에 따르면, 이 당시 산업정책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이른바 근대화론자들(modernizers)로 미국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진 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보존론자들(preservationists)로, 한 지역에서 제조업이 폐업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치게 될 파급력을 생각해서 이를 막거나 완화하자는 입장을 내세웠다(Norton 1986, 4). 이들의 주장은 결국 산업경쟁력과 같이 단일 경제지표로 측정하기 어려운 개념을 어떻게 측정하며 이것의 시계열적인 변화를 분석하고 확인하는 학술적인 과제와 연결되었다. 또한, 만약 산업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확인된다면, 관료제 조직이 커지고 자원배분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때 벌어진 부패의 문제, 관료들의 취사선택 행위의 자의성, 지원을 받기 위해 지역구의 이해관계만을 우선하는 정치행태(pork-barrel politics) 등의 부작용을 피해 어떻게 산업정책을 구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대의 학자들에게는 학술적인 문제와 실제 정책을 실행하는 문제 모두 해답을 찾기 어려운 난제였다.   빌 클린턴 행정부 1기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는 이러한 논쟁 속에서 등장했으며, 지미 카터(Jimmy Carter)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1984년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정된 월터 몬데일(Walter Mondale)을 포함한 민주당의 정치인들의 경제정책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었다(Norton 1986, 34; Reich 1982; 1983; 1984). [3] 라이히는 유럽 방식의 노동자 훈련 프로그램을 미국식으로 수용하자는 주장을 펼쳤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왔던 경직된 대량생산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라이히는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유연하게 생산조직을 구성하고, 동 조직에서 활약할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국가의 정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라이히가 제안한 산업정책은 민주당의 주 지지 집단이었던 조직된 노동 세력의 반발을 유발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힘들게 확보한 집단적인 임금 협약체제와 임금단체 협상을 통해 노사간의 타협물로 만들어진 업무분장 체제가 이제는 무용하다고 보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라이히의 주장은 빌 클린턴 정부를 거쳐 민주당의 중앙파(Centrist Democrats 혹은 New Democrats)가 주도한 민주당 경제정책 패키지 중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았고, 여러 형태로 당대의 정책의제와 결합하여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맥락하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노골적인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바이든 정부는 산업정책적인 요소들을 담은 두 법안을 통과시켰다.   III. 트럼프-바이든의 정치경제적 유산   1. 트럼프의 유산과 민주당의 변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후, 민주당은 빠르게 변화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워 중남미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통제하고자 한 시도나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의 인상을 요구한 일,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설립부터 깊이 관여한 국제기구들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며 다자주의 대신 미국 중심의 일국주의를 추구한 일 등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적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2016년 대선 패배와 그 이후 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하며,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 정책의 정치적 효용에 대해 재평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전의 민주당의 경제 정책 선호로 보면 매우 급진적인 변화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2016년 패배 이전 민주당은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주의, 시장 개방에 집중하고 정치적으로는 정체성의 정치에 매진하였다. 사실 빌 클린턴 정부의 탄생 이후 민주당은 거의 십 수년 동안 백인 유권자들에게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자유무역이 소비자 전체에게 가져다줄 이익에 비해서는 참을 만한 고통이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강변해 왔다. 동시에 민주당은 그동안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이 비숙련 저임금 직종을 노리고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 행렬을 보고 느끼는 불안감과 이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을 모두 인종주의적 혐의를 갖는, 못 배운(uneducated) 반응이라 치부하였고, 공적인 장소에서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정한 문제는 이와 같은 민주당의 정책 입장이 실제로 경제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백인 유권자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저임금 노동시장은 점차 값싼 불법 이민자들로 채워지게 되고,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점차 열악해지는 이유를 불법 이민자들의 무분별한 유입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지었다. 이렇게 백인 노동자 계층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불만을 방기한 민주당이 2016년 대선의 패배 이후로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이다(Teixeira and Judis 2023, chapters 2 and 7).   특히 민주당은 일견 비이성적이고 포퓰리즘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 내용과 그 효과에 대해서 면밀히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Lighthizer 2023, chapter 1).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역대표부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외국 제품에 대해 관세를 늘리고, 한국 가전제품 생산 업체들을 포함한 외국 기업들이 덤핑이나 국가 보조금 제도를 이용하여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불공정한 관행이라 규정,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다(Lighthizer 2023, chapter 1). 라이트하이저는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통해 미국의 대외 경제 의존도를 완화시키고 무역 적자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Lighthizer 2023, chapter 4). 이는 공화당 주류 세력의 밖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좋은 기회로 작용했는데, 공화당 내부의 한 세력으로 존재하는 자유무역주의자들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국 연방정부가 안보와 국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할 새로운 명분과 수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다른 무역 상대국과의 불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제조업 종사자인 블루칼라 유권자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하이저는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2020년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이러한 트럼프 정책의 성과에 주목하고, 상당 부분 수용하였다고 주장했다(Lighthizer 2023, Introduction). 구체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목적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하는 것에 적극적이었으며, 트럼프 행정부 때 도입된 대중국 무역 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오랫동안 역임한 라이트하이저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평가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유산이 차기 정부에 상당 부분 계승되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같은 평가는 전반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이는 2021년 6월 23일 백악관 직속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NEC) 위원장이 발표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4] 그 중에서 첫 번째 의제인 글로벌 공급망 복원력(Supply Chain Resilience)의 내용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미국 제조업을 재육성하고 중국 기업을 포함한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미국 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첨단기술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벤치마킹했다는 서술과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정책 기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의 성격을 띠는 관세 설정 이외에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2018년 10월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ouncil: NSTC)에서 발표한 “미국 첨단 제조업 리더십 확보 전략(Strategy for American Leadership in Advanced Manufacturing)” 보고서를 통해 산업정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첨단 산업 육성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이 보고서가 정부 예산 계획을 포함한 정책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NSTC 2022). 2020년 선거에서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결코 미국 제조업 분야를 대상으로 한 산업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5] 트럼프의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이어받아 어떤 종류의 산업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지는 오로지 바이든 행정부에 맡겨진 과업이었다.   2. 바이든의 산업정책과 정치적 유산   그 후 1년 뒤인 2022년 8월 반도체와 과학법과 IRA가 미국 의회를 통과하였고,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함으로써 발효되었다. 앞서 미국 국가경제위원회가 제시한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 두 법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6]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산업정책으로서 두 법안이 지닌 함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두 법안에 근거하여 반도체 산업, 배터리 산업, 그리고 전기차 산업 등을 포함한 첨단 제조업 산업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규제력을 행사할 것이다. 외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얻는 대가로 미국에 생산설비를 갖추고 고용을 창출해야 하며 핵심광물과 같은 민감한 재료를 생산에 이용하는 경우에는 미국 정부가 선정한 우려 집단(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으로부터 획득한 원료가 일정 비율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생산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만약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할 경우 해당 기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공제 등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으며, 이는 곧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024년 11월의 선거 전 우리의 관심을 끄는 질문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행한 산업정책이 정치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 여부일 것이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에게 바이든의 산업정책은 곧바로 호재로 작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두 가지 법안이 실효성을 거두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수 년의 시간이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법안 중 반도체와 과학법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점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반도체와 과학법의 정치적 효과는 훨씬 뒤에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에서 반도체 제조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지원될 390억 달러의 예산 중 2024년 5월 기준 전체 예산의 77% 정도가 용처가 정해진 후 투자되는 중이며, 나머지 23%의 기금은 지금 시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업에 순차적으로 투자될 계획이다. [7] 이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미국 반도체 생산 업체에 자금이 투여되어 당장의 고용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 법이 유권자들의 선호에 두루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IRA의 효과는 거의 없거나 트럼프의 공격으로 상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오래 전부터 해당 법안이 부당하며, 인플레이션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전기차 구매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세액 공제의 형태로 지원되는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24년 7월 15일에 블룸버그 통신과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러한 주장을 이어가며 IRA에 따른 그린 에너지 지원 정책이 실상은 산업 발전에 기초가 되는 에너지의 공급 가격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Bloomberg 2024). 이러한 주장이 2024년 11월 5일 선거일에 유권자들의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펼친 산업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유권자들은 높은 금리와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이에 따라 트럼프 진영은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과 구별되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할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만을 문제 삼으며 선거를 우세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IRA 지원 대상인 녹색 에너지 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인터뷰한 폴리티코(Politico)의 2024년 7월 18일 기사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가 바이든 정부의 수혜를 많이 받은 일터에서 근무하지만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 때문에 체감되는 경제 지표는 매우 부정적이어서 현 정부를 지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폴리티코의 기사처럼 이러한 상황은 4년 전 바이든을 지지했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정서일지도 모른다(Bade and Hill 2024).   IV. 2024년 이후 미국의 산업정책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밴스 캠프의 경제 메시지는 복잡할 것이 없이 현 정부의 고금리, 고물가 정책을 비난하는 것에 집중되었으며, 이는 큰 효과를 거두었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 강화, 그리고 동맹국을 상대로 미국이 부당하게 부담했던 여러 가지 특혜를 철회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어떤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서 이를 실현할 것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다. 트럼프의 리더십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는 트럼프 행정부 2기에 상당 부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 상·하원의 동의를 거쳐 법으로 제도화된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은 지속성을 갖고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2023년 의회를 통과한 IRA와 반도체와 과학법은 행정부의 의도적인 지연 전략과 예산 배분에서의 파행으로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해당 법안으로부터 수혜를 입는 지역 중에 공화당 우세 지역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양상은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외교 수장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될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플로리다 상원의원이 밝힌 산업정책에 대한 생각을 통해 우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할지를 추정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차기 행정부의 국무부 장관직(Secretary of State Department)에 루비오 상원의원을 지목하였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던 루비오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본 장의 처음에 인용한 기고문을 포함하여 산업정책이 왜 필요한지를 여러 수단을 통해 꾸준히 홍보했다. 그 중에서 2024년 9월 9일에 발표된 “The World China Made – ‘Made in China 2025’ Nine Year Later”라는 루비오 상원의원실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차기 공화당의 산업정책에 대한 단상을 엿볼 수 있다(Rubio 2024b).   이 보고서는 바이든 정부와 워싱턴의 정계에서 받아들여지는 시각을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흔히 공산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깊이 관여하는, 중국 제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은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갖춘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비오의 보고서는 이것이 안일한 현실인식임을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보여주었다. 실상은 중국은 농업기계 부문을 제외하고 지난 10년간 선언한 경제 목표 대부분을 초과 달성하였던 것이다. 그 중에서 전기차, 에너지-전력, 조선, 고속철도의 4가지 산업 부문에서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루비오는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대담한 산업정책(bold industrial policy)”과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유도하는 탈규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였다(Rubio 2024a, 57).   루비오의 정책 제안이 어떠한 방식으로 트럼프 정부에서 실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다시 말해, 국무부 장관이 될 루비오의 정책 제안이 어떠한 방식으로 산업 주무 부처의 정책 실행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 그리고 국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을 전제하는 “대담한 정책”들이 동시이 어떻게 기업에게 부과되는 규제를 줄이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속,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외교 수장이라는 자리를 맡은 정치인의 정책 선호는 트럼프 행정부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루비오의 정책 제안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1기와 구분되는 본격적인 산업정책이 도입된다면, 그 외양은 바이든 IRA와 반도체와 과학법에서 보여주는 친환경 에너지 및 반도체 산업으로 재정이 지원되었던 것과 달리 첨단기술 분야를 넘어 국가 안보와 연관된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통치원리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정책 목표를 수행할 수 있을지, 그리고 개별기업에 정부의 규제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동시에 이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바이든-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미국정부의 산업정책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가 시작한 무역전쟁과 경제안보 의제의 전면화,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의회가 통과시킨 두 가지 법안, 그리고 그린뉴딜과 산업정책은 재등장한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 큰 과제를 남겼다. 이러한 흐름이 중장기적으로 미국 정치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 가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정치 양극화의 환경 속에서, 그리고 경제 안보라는 이슈가 미국의 외교정책 및 통상정책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시점에서 미국이 산업정책을 시행한다면, 다른 국가들과 다른 ‘미국적인’ 방식으로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   참고 문헌   정영우. 2023. “미국정치발전과 미국 정부 연구를 위한 연구 노트.” 글로벌정치연구 16, 2: 1-21.   Arcuri, Gregory. 2024. “Innovation Lightbulb: What's Left of the CHIPS Act Fund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News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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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1] 미국 의회 안에서도 정치적 양극화 상황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2021년 1월에 회기를 시작한 117대 미국 상원은 IRA의 통과를 두고 50:50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 내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재정 건전성 회복 및 보수주의 가치관을 정책목표로 내세우는 청견연합(Blue Dog Coalition) 소속인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조 맨친(Jo Manchin) 상원의원의 의사가 법안 통과에 매우 결정적이게 되었다. 맨친은 민주당 정부의 정부지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민주당의 이전 법안 (Build Back Better Bill)을 반대하였고 부결시켰는데 이러한 맨친 상원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본 법안은 산업정책의 요소를 다수 가지고 있는 동시에 연방정부의 적자를 줄이고 화석연료 기술에 대한 개발 지원안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2] 헌법제정을 두고 연방주의자들(Federalists)과 반연방주의자들(anti-Federalists)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반연방주의자들은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힘들게 독립을 쟁취하였는데 다시 중앙 정부로 권력을 집중시킨다면 영국 제국주의가 보여준 것과 비슷한 부패와 권력의 전횡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연방주의자들은 이러한 우려가 일정 부분 타당하더라도 신생 공화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행정력을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밀턴은 후자 그룹에 속한 건국자로서 그가 주장한 유치산업보호론은 미국의 경제적인 예속 상태를 끊고 진정한 독립을 이뤄내기 위한 중, 장기적인 경제전략인 동시에 미국 중앙정부의 정책역량을 강화 시켜 신생 공화국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가건설(state-building) 방식에 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진 제임스 메디슨의 중재안(the Virginia Plan)에서는 해밀턴이 주장이 모두 반영되지는 않았다.   [3] 1980년대 산업정책에 관심을 보였던 민주당 정치인들을 당대 유행했던 비디오 게임 제조 회사 이름을 따서 the Atari Democrats이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산업정책을 통해 첨단기술을 육성하고 산업의 구조조정을 감행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이 그룹에는 게리 하트(Gary Hart, CO), 엘 코어(Al Gore, TN), 딕 게파르트(Dick Gephardt, MO), 폴 통가스 (Paul Tsongas, MA)가 포함되어 있다.   [4]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 기조는 다음의 다섯 가지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1) Supply Chain Resilience; 2) Targeted Public Investment; 3) Public Procurement; 4) Climate Resilience; 5) Equity. (Atlantic Council 2021-06-23).   [5] 이는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 ITIF)에서 2020년 9월에 발간한 양당 대선 후보의 기술 정책을 비교한 자료집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ITIF 2020) 특히 해당 전자문서의 23페이지를 참조할 것.   [6] 두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또한, 법안의 세부 내용이 한국 기업들에 미칠 영향에 대한 법적 자문 및 경영 자문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글도 이미 많이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두 법안에 대한 구체적 소개를 생략할 것이다.     ■ 정영우_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정영우 2024-12-16조회 : 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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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④ 산업정책 논쟁으로 본 2024 미국 대선

Ⅰ. 2024년 미국 대선 분석 및 국내 정치 전망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로 마무리되었다. 트럼프는 일곱 개의 경합주 - 미시간(Michigan), 위스콘신(Wisconsin),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애리조나(Arizona), 조지아(Georgia), 네바다(Nevada),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 에서 모두 승리하며 예상보다 큰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전국 단위 득표율에서 트럼프가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 민주당 후보를 앞선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는 전국 득표율에서 밀렸던 트럼프가 세 번째 도전에서 승리한 것은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와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고는 트럼프의 승리 원인을 분석하고, 2024년 선거에서 다루어진 주요 경제 및 사회 현안들, 그리고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이번 선거 결과가 미국 정치 지형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고, 민주당이 2026년 중간선거 그리고 2028년 대선을 앞두고 고민해야 될 지점들을 짚어본다.   1. 트럼프 승리 원인: 인플레이션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재선을 준비하고 있을 때만 해도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이 높지 않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바이든 행정부는 단점정부(unified government)였던 2021년~2022년(제117대 의회) 굵직한 법들을 연방의회에서 통과시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 수립에 성공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로 피해를 본 서민을 위한 구제 금융법(American Rescue Plan Act), 낙후된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를 위한 보건법(Honoring our PACT Act), 제한적이지만 총기 사용 규제를 강화하는 법(Safer Communities Act), 반도체 생산 및 연구 육성을 목적으로 한 지원법(The CHIPS and Science Act), 그리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이라는 이름의 친환경정책, 보건, 세제 관련법이 있었다. 이 중에서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내 외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동시에, 미국 정치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미국 내 물가가 너무 올랐던 점이 문제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물가 현안이 주목을 받은 경우는 1980년 이후 2024년이 처음이다. 1980년 당시 재선을 노리던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은 오일 쇼크, 물가 상승,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레이건(Ronald Reagan)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 국내 현안으로 인플레이션은 주목받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유무역이 확산되는 세계화 과정에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현상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다가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관세를 올려 자유로운 물품의 이동을 제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급망에 교란이 생겼는데, 트럼프 행정부 말기와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팬데믹으로 손해를 본 서민들을 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돈을 풀며 물가가 급속도로 상승한 것이다. 2022년 6월 물가상승률은 9.1%에 달했는데, 이는 카터 행정부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중반에 들어와서 물가상승률은 낮아진다. 2023년에 들어서는 물가상승률이 4% 미만으로 떨어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정보는 (1) 코로나 팬데믹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돈을 풀어 어쩔 수 없이 생긴 인플레이션을 (2) 임기 3년차 때부터는 확실하게 잡아 현재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것이었겠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느끼는 정서는 4년 전에 비해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심지어 선거를 몇 달 앞두고 파월(Jerome Powell)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이자율을 낮추는 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물가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정임을 인지하는 유권자의 수는 많지 않았다. 결국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된 가계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심판으로서 선거 구도가 잡힐 수 밖에 없었다.   2. 트럼프 승리 원인: 불법이민과 국경 문제   불법이민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법이민자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제적 이유이다. 미국의 농축수산업은 불법이민자들의 노동력 없이는 운영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농업을 보면, 2000년대 중반 전체 노동자의 약 50%가 불법이민자였고, 2020년대에 들어서도 약 40%의 노동자가 불법이민자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불법이민자를 모두 추방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경제적 충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임금 인상 역시 야기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물가 상승 요인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법적 이유이다.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르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는다. 부모가 불법이민자라 할지라도 본인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미국 시민권자이다. 이 상황에서 불법이민자를 색출하여 추방하는 정책을 강화하면 부모를 추방하고 아이는 미국에 두는 결정을 하거나, 아니면 불법이민자 부모와 시민권자 아이를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불법이민자 문제 및 이민법 개혁 문제는 난항을 겪었다. 2000년대부터만 봐도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에서 1.5세 불법이민자(부모의 손에 이끌려 어린 나이에 월경해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시민권 부여 가능성까지 열어둔 법(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 DREAM Act) 논란이 뜨거웠고, 이 법이 의회에서 좌초됨에 따라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발효한, 1.5세 불법이민자에게 갱신 가능한 취업 기회를 주는 내용의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그리고 이것을 폐기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 등이 잇달아 관찰된다. 역설적으로 2000년대 이후 유입되는 불법이민자의 수가 가장 작았고 불법이민자 추방이 가장 많았던 행정부는 오마바 행정부이다. 부시 행정부 때는 불법이민자의 유입이 심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어느 정도 안정화된 불법이민자의 수는 트럼프 행정부 말기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급감했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면서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남에 따라 급증하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급증하는 불법이민자 문제를 직시하고 있었다. 임기 초기 해리스 부통령을 중남미에 보내 불법이민자 유입의 뿌리를 건드리고자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리고 연방의회에게 새로운 이민법 제정을 요구하였으나 이 역시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연방정부의 미온적인 반응을 참지 못한 주 정부(텍사스, Texas)가 주도적으로 국경 봉쇄를 시행하자, 국경 문제의 관할권은 연방정부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거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에서 바이든 행정부(연방정부)의 승리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불법이민자 유입 문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연방의회가 법을 만들어 이민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책임회피라고 보았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공화당 입장이 반영된 초당적인 이민법 개정안이 연방상원에서 논의되었다. 2024년 초 민주당 머피(Chris Murphy), 무소속 시네마(Kyrsten Sinema), 공화당 랭포드(James Lankford) 상원의원이 초당적으로 발의한 이민법 개정안은 장외에 있던 트럼프의 반대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에 좋은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이민 문제가 연방의회 내 합의로 선거 전에 마무리 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뒤늦게 대통령의 직권으로 (전면적이지는 않은) 국경봉쇄를 실시하고, 그 결과 불법이민자의 유입량은 2024년 하반기에 눈에 띄게 줄게 된다. 하지만 불법이민자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불식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3. 해리스 패배 원인: 임신중절 문제   임신중절 문제가 미국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된 것은 2022년 돕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연방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이 판결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 의해 보장된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크게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돕스 판결은 임신중절권의 보장 여부를 주 정부에게 맡겨야 된다는 판결인데, 적지 않은 수의 주 정부에서 과거보다 임신중절권을 크게 제한하는 주 법들을 만들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보수 성향이 강한 주에서는 임신중절권의 ‘완전 금지(full ban)’까지도 만들었는데,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지라도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임신중절을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는다. 이에 따라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이 현안은 핵심적인 의제가 되었고, 예상보다 그 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했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해리스가 임신중절 문제를 선거운동의 핵심 메시지로 삼은 이유는 이것이 트럼프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돕스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6-3으로 결정된 것으로, 다수 의견을 제시한 판사들이 모두 보수 성향의 판사들, 즉 공화당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판사들이고, 그 중 세 명이 트럼프 행정부 때 지명된 판사들이라는 점이 부각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지명한 세 명의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아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주장을 트럼프가 임신중절권 제한에 기여했다는 선거운동 레토릭(rhetoric)으로 만들어 접근했다. 그런데 문제는 트럼프가 직접적으로 임신중절권의 제한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트럼프는 임신중절권이 언급될 때 마다 말을 아꼈다. 따라서 트럼프와 임신중절권 간의 관계는 연방대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뿐이고, 이러한 간접적 관계를 일반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22년 중간선거는 기본적으로 주 단위의 선거이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 결정하는 임신중절권의 범위가 주요한 현안으로 작동했겠지만, 대통령 선거는 연방 단위의 선거이기 때문에 이 현안의 파괴력이 약했다. 게다가 2022년 판결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이 현안을 재활용하는 데에서 비롯된 피로감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다.   4. 해리스 패배 원인: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당이 적극 활용한 또 다른 현안은 ‘민주주의의 위기’ 담론이다. 이것은 2021년 1월 6일에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방의회 의사당에 침입한 사건을 환기시키면서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에 덧붙여 트럼프가 걸려있는 총 네 건의 형사소송도 언급되었다.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설득 될만한 부분이 많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침입 사건을 직접 이끌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조지아 주지사와 주무장관에게 전화하여 부정 선거임을 확인하라는 통화 기록은 공개된 바 있고,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부정선거론을 확산시켰기 때문에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임기 중 두 번 연방하원에 의해 탄핵되었고,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도왔거나 방조했다는 혐의로 특별검사의 조사까지 받았을 뿐 아니라, 트럼프 1기 때 주요 보직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들 역시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는 의견을 뒷받침해준다.   문제는 이 주장이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정치인과 유권자 차원에서 양극화(polarization)가 심화되었기 때문에 특정 정치인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정파적인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해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주의 위협’ 논리가 많은 일반 유권자들이 신뢰하지 않는 기성 정치권 혹은 기존 정치제도 수호의 논리로 들렸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엘리트와 기성 정치인들로 구성된 외집단을 정책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믿는 유권자들에게 ‘위기에 봉착한 민주주의 수호’라는 메시지는 현상 유지 혹은 기득권 유지의 메시지로 잘못 읽힐 가능성이 컸다.   II. 2024년 선거에 나타난 유권자 지형 변화   그렇다면 트럼프의 승리를 가져온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어떠한가? 출구조사(exit poll) 결과를 보면 과거에 비해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트럼프를 더 선택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만을 보면 여전히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선호하고 있지만, 2008년과 2012년 소위 ‘오바마 연합’이 형성되었을 때의 수치와 2016년과 2020년 선거 결과와 비교해 보면 소수인종 유권자의 친공화당·친트럼프 성향이 확연하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남성에게서 이러한 경향성이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졸 백인 여성 유권자들이 과거에 비해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했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에 기반해 공화당이 다인종 연합 정당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흑인·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재정렬(realignment)을 의미한다고 판단하기엔 시기상조이다. 미국 정치에서 통용되는 재정렬(남부 민주당 지지 백인 유권자들이 공화당으로 전향하는 긴 흐름)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 보면 성급한 결론은 곤란하다(Schickler 2016).   또한 이번 대선에서 고졸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고졸 백인 유권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상징적(문화적) 현안 입장에 의해 투표했음을 시사한다. 해리스가 흑인 여성 후보였다는 점, 최근 미디어 환경이 변함에 따라 미국 대도시 지역에서 벌어지는 지엽적인 범죄, 성 지향성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Pierson and Schickler 2024). 다음선거에서도 이러한 ‘문화전쟁(culture war)’이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를 나누는 주요 사안이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번 대선의 주목할 만한 특징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2020년과 달리 생애 최초 투표자들이 해리스보다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보통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유색인종 비율이 높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서 민주당 친화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올해 여름 대학가를 강타한 친팔레스타인 시위(pro-Palestine protests)가 있을 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다른 세대에 비해 20-30대에게서 친팔레스타인·반이스라엘(pro-Palestine·anti-Israel) 성향이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2020년 생애 최초 투표자들이 진보정당 후보 바이든을 더 많이 선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2024년에는 보수정당 후보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는 것이 인플레이션 및 이민 문제 등 주요 선거 현안에 대한 입장이 반영된 결과인지, 아니면 근본적 선거 지형변화일지는 앞으로 추가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소수 인종 유권자와 생애 최초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 변화가 관찰되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 나타난 투표행태 정보만을 보고 섣불리 미국 유권자의 지형 변화를 논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졸자/고소득자의 정당’, 공화당은 ‘고졸자/저소득자의 정당’이라는 구도가 확연해졌다는 것이다(Grossman and Hopkins 2024).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이것은 유권자 지형만 보여줄 뿐 정당의 정책과 일치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고졸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폈던 것은 바이든 행정부이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1기는 감세 정책을 추진하여 고졸 노동자의 안녕에 도움을 주었을 수 있지만, 사실 2017년 감세법(Tax Cuts and Jobs Act)은 과거 공화당 주도의 감세법과 마찬가지로 부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었다. 즉, 정책 차원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저소득층 노동자 정당이고 공화당이 부유층 정당이다. 다만 공화당·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활용한 전략은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화 현안’이다. 이민 문제, 인종 문제, LGBTQ 문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맥락에서 공화당의 통치 철학을 잘 요약해 주는 개념으로 금권주의 포퓰리즘(plutocratic populism)을 주목해야 한다(Hacker and Pierson 2020). 이 개념은 1980년 이후, 더 짧게는 민주당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받아들인 1992년 이후 미국 정치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금권주의 포퓰리즘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공화당은 1980년 레이건 이후 ‘가진 자(haves)’의 정당이었음. 공화당은 집권할 때 마다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의 ‘가진 자’의 의제를 충실히 정책으로 실현시켰음.   2) 공화당의 정책들은 심각한 경제 불평등을 낳음(시장과 정치 간 고리를 외면하는 경제학자들은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켰음’을 검증한 정치학 연구들은 무수히 많음).   3) 실제로 미국의 정치 제도를 보면 ‘금권주의(plutocracy)’라고 부를 만한 요소들이 많음. 대표적으로 선거자금법. 2010년 시민연합 대 연방선거관리위원회(Citizens United v. FEC)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슈퍼팩(Super-PAC)을 비롯한 ‘가진 자’의 큰 손이 선거 및 정책 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함.   4) 그런데 ‘가진 자’에게 하나의 큰 장애물이 있음. 그것은 ‘일인일표제’에 근거한 민주주의 선거제도임. 억만장자인 자기도 한 표고, 가난한 노숙자도 한 표임.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유력 정치인들과의 네트워크가 있다 해도, ‘가진 자’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음.   5) 이에 사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극소수의, 공화당을 적극 지지하는 ‘가진 자’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됨. 그 와중에 발견한 것이 문화전쟁 전선임. 개신교 가치관, 전통적인 가족관,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인종 간 위계질서,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국가정체성 등을 활용하여 넓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자 함(그러나 정작 ‘가진 자’ 자신들은 이것에 관심 없음).   6) 다시 말해 공화당은 (1) 극소수의 ‘큰 손’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당인데, (2) 선거 목적으로 전통 가치관·국가정체성을 활용해 ‘가지지 못한 자’들의 표를 확보하는 정당이라는 이야기임. 첫 번째 부분이 금권주의, 두 번째 부분이 포퓰리즘, 합쳐서 금권주의 포퓰리즘임.   트럼프가 1기 행정부 때 감세법을 제외하고는 고졸 백인 노동자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편 적이 없다는 사실, 역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그들의 이익을 위한 산업정책 정책을 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쪽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은 금권주의 포퓰리즘의 맥락에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III. 민주당의 미래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겉으로 보아 1980년대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종말을 의미한다. 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며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다자주의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며 글로벌 경제와의 연결을 강화했지만, 이러한 경제정책은 결국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해외로 일자리가 유출되고,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많은 중산층 유권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시골의 고졸 백인 기독교 신자 남성’들의 표심을 파고들며, 그들의 불만을 정치적 자산으로 변환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책을 보면 여전히 부유층 친화적인 흔적이 남아있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1992년 클린턴(Bill Clinton)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유지하고 있었던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후폭풍을 2016년 선거에서 쓰라리게 경험한 바 있다. 뉴딜 연합의 일원으로서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고졸 백인 노동자 계층이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예상치 못한 패배를 맛보았던 것이다. 이에 근본적인 태세 전환을 시도하여 내세운 바이든이 2020년 백악관을 탈환하면서 노골적인 친노동, 친노조 정책을 취하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유사했다는 점,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민주당 내 급진파인 샌더스(Bernie Sanders)의 목소리와 유사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바이든이 가져온 민주당 내 변화가 2024년 선거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 민주당의 미래를 점검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해리스의 패배는 기본적으로 거시경제적 요인의 함수이다. 그러나 흑인 남성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를 과거에 비해 덜 얻었다는 점, 생애 첫 유권자의 지지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이 고졸 백인 노동자들의 동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만한 지점이다. 일각에서는 사회문화 현안에서 민주당이 취하고 있는 진보적 입장, 즉 ‘정치적 올바름성(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선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Lilla 2018). 하지만 이 주장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해리스의 선거운동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강조한 바 없다. 트럼프 선거운동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광고를 제외하고는 2016년 혹은 2020년에 비해 문화 현안에 집중하지 않았다. 만약 정체성 정치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2020년에 왜 바이든이 승리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2020년은 공권력에 의한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사건이 촉발시킨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극에 달해 있었던 시기였는데 말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2024년 선거를 복기하면서 나오는 분석이 2004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2004년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의구심과 사회 기저에서 흐르고 있는 문화적 자유주의(예를 들어 동성간 결혼 합법화 및 줄기세포 활용)가 얽혀있던 시기였다. 2000년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의 재선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과는 민주당 후보 케리(John Kerry)의 패배였다. 이 결과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일반 국민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만 접근한다는 점(Westen 2007), 동성간 결혼과 같은, 시골 백인 중산층에게 인기 없는 현안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Frank 2004) 등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이 지적사항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크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민주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오바마를 내세워 승리를 거둔다.   문제는 오바마 당선부터 새롭게 대두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에 대한 반발이 정치권을 휩쓴 것이다. 우선은 오바마 당선에 큰 도움이 되었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월가(Wall Street)의 이익을 대변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취했다. 망해가는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동원된 막대한 세금에 많은 유권자들이 불만을 표출했고, 이는 ‘티파티 운동’으로 이어진다(Skocpol and Williamson 2012). 이 운동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대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오바마의 인종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정치 현안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미국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음모론(birther conspiracy)의 확산을 주목해야 한다. 이 음모론의 재생산에 앞장섰던 인물이 트럼프였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과 2012년 오바마의 정치적 성공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진보적인 방향으로 미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가져다 주었다. 2015년 연방대법원이 동성간 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Obergefell v. Hodges)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은 이제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Hillary Clinton)을 배출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다음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히스패닉, 흑인 여성, 동성애자 등으로 꾸며지게 된다. 2020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서 백인 남성은 바이든과 샌더스 밖에 없었다. 나머지 후보들은 여성(Elizabeth Warren, Amy Klobuchar), 흑인(Cory Booker), 흑인 여성(Kamala Harris), 아시아계(Andrew Yang), 히스패닉(Juan Castro), 게이(Pete Buttigieg) 등이었다. 이 때 민주당은 전통적 이미지의 중도 성향 후보 바이든을 선택하였고, 좋은 결과를 낳았다.   공교롭게도 2016년과 2024년 여성 혹은 소수인종 후보를 내어 실패한 민주당은 미국 사회에 내재된, 그리고 아마도 트럼프의 등장으로 증폭된 성·인종차별주의의 물결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8년에 백악관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젊은 바이든’으로 불릴 수 있는 중도성향의 백인 남성 후보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고려도 필요하다. 만약 민주당을 이탈한 고졸 백인 노동자 계층의 포섭이 필요하다면 중도성향보다는 조금 더 노동친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젊은 샌더스’를 키워야 할 것이다. 바이든은 중도성향으로 시작하여 집권 후 친노동 성향으로 전환한 경우이다. 해리스의 실패는 그녀의 정체성(성 및 인종)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월가를 비롯한 기득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체성 정치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고졸 백인 유권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젊은 백인 남성 후보가 필요하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인물로는 현재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지사 샤피로(Josh Shapiro)와 켄터키(Kentucky) 주지사 배쉬어(Andy Beshear) 등이 있다.   한편 민주당에서 2004년 패배에서 2008년 승리로 간 공식을 재현한다고 결심하면 맞불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문화 현안 혹은 경제 현안에서 급진적인 입장을 보이는 후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 범주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뉴섬(Gavin Newsom), 교통부장관 부티지지(Pete Buttigieg), 급진파 여성 연방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미시간 주지사 휘트머(Gretchen Whitmer)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이 공존하는 정당이었다(Grossman and Hopkins 2016). 뉴딜 연합은 중공업지대의 노동자, 이민자, 소수 인종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인 남부 백인까지 끌어안은 집단이었다. 오바마 연합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노동자와 소수인종 및 대졸자 엘리트를 묶은 집단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치와 이념에 기반한 공화당에 비해 변화의 폭도 크고, 모순되는 정책을 생산하기도 한다. 트럼프화된 공화당과 경쟁하기 위해 민주당이 어떠한 정체성을 띠어야 하는지를 단언하기는 어려우며, 클린턴에서 오바마로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유지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곧 친노동, 친소수자 정당으로 고착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선거자금 동원과 지출이 자유로운 미국 선거 맥락에서 ‘큰 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   참고 문헌   Frank, Thomas. 2004.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New York: Metropolitan Books.   Grossman, Matt, and David A. Hopkins. 2024. Polarized by Degrees: How the Diploma Divide and the Culture War Transformed American Politic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Grossman, Matt, and David A. Hopkins. 2016. Asymmetric Politics: Ideological Republicans and Group Interest Democrat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Hacker, Jacob S., and Paul Pierson. 2020. Let them Eat Tweets: How the Right Rules in an Age of Extreme Inequality. New York: W. W. Norton.   Lilla, Mark. 2018. The Once and Future Liberal: After Identity Politic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ierson, Paul, and Eric Schickler. 2024. Partisan Nation: The Dangerous New Logic of American Politics in a Nationalized Er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Schickler, Eric. 2016. Racial Realignment: The Transformation of American Liberalism, 1932-1965.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Skocpol, Theda, and Vanessa Williamson. 2012. The Tea Party and the Remaking of Republican Conservat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Westen, Drew. 2007. The Political Brain: The Role of Emotion in Deciding the Fate of the Nation. New York: Public Affairs.     ■ 하상응_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하상응 2024-12-16조회 : 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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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①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양극화 정치

Ⅰ. 2024년 미국 대선 분석 및 국내 정치 전망   2024년 11월 5일에 치러진 선거는 여러 차원에서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마디로 일찍 개표 결과가 완료된 트럼프(Donald J. Trump)의 완승이었다. 7개의 경합주를 모두 휩쓴 이번 선거 결과는 2016년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처음 등장해서 여론 조사 예측과 달리 힐러리(Hillary Clinton) 후보에게 낙승했던 시기 와도 비교할 만하다. 더구나 팬데믹 이후 사전 투표(early voting)가 활성화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7개의 경합주들 중 개표 완료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들이 꽤 있었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에는 화요일 선거의 최종 결과가 토요일에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대선 결과는 예측과 빗나갈 정도의 속전속결이었다. 특히 위스콘신(Wisconsin)과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가 대선 이전에 선거법을 개정해서 소위 밤샘 개표를 가능하도록 한 점이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기간 내내 박빙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여 왔고, 대선 결과 판정에 적어도 며칠은 걸릴 것이라던 많은 선거 전문가들의 전망이 모두 맞지 않는 선거 및 개표 결과였다.   트럼프 후보의 완승으로 끝이 난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7개 경합주를 모두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2004년 대선 이후 최초로 총 득표수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앞선 결과가 나왔다(그림 1 참조).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인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인 케리(John Kerry) 상원 의원을 선거인단과 총득표 모두에서 이겼던 상황 이후 처음이다. 일각에는 선거에서 낙승한 차원을 넘어서서 공화당이 소위 “트럼프 연합(Trump Coalition)”을 형성했다는 평가까지 존재한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가 행한 투표 분석 중, 특이한 점은 거주지, 교육 수준, 인종 구성, 연령 등 다양한 차원에서 트럼프 지지도가 이전 대선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이다(그림 2 참조). 백인 구성이 절반 미만인 290개 카운티(county)들에서는 지지율이 7퍼센트 포인트 올랐으며 흑인 유권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트럼프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특히 흑인 남성 득표가 차이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투표한 유권자들 중 71퍼센트가 백인 유권자였는데, 이는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사실 가장 커다란 지지율 변화는 라티노(Hispanic) 인구가 1/4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들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라티노 지지를 확보했었는데, 이번에는 9퍼센트 포인트를 상회하는 지지율 증가를 기록한 셈이다. 이는 소수 인종이나 청년, 여성 등에 의존하는 정체성(identity) 선거 방식을 활용해 왔던 민주당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점이다. 심지어 트럼프 등장 이후 오히려 민주당으로 지지가 편향되어 왔다고 알려졌던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 유권자 그룹 역시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를 더욱 증가시킨 것으로 확인된다.   <그림 1> 대선 총 득표수 비교 <그림 2> 대선 지지율 변화 비교 출처: 270 To Win 2024.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4.   이번 2024년 미국 대선의 트럼프 승리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지표 또한 존재한다. 우선 총 득표에서 트럼프가 앞선 것은 맞지만, 해리스(Kamala Harris)와의 차이가 11월 21일 기준 1.6퍼센트 포인트에 불과하며 개표가 완전히 종결되면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었다. 또한 늘 그렇듯이 미국 대선은 50개 주 중 불과 몇 개의 경합주에 의해 그 결과가 좌지우지 되는데, 이번에도 미시건(Michigan),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세 곳에서의 23만 5천명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는 분석이 있다. 보통 대통령 선거의 완승은 의회 선거 관련 “후광 효과(coattail effects)”로도 증명이 되나 이번 선거는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Edwards III 1979; 서정건 2021). 다시 말해, 이번 연방 상원 선거의 경합주였던 애리조나(Arizona), 네바다(Nevada),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중 4곳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지켰고, 펜실베니아 한 곳에서만 공화당에게 패배했다. 펜실베니아 선거조차도 현역 상원 의원이 선거 후 거의 20일만에 패배를 시인할 정도로 초박빙 승부였다. 따지고 보면 이번 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새 상원의 다수당이 된 이유는 몬태나(Montana), 오하이오(Ohio), 그리고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등 공화당 초강세 지역에서 상원 선거를 이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원 선거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새로 한 석을 추가했으며 결국 내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119대 하원에서 의석 분포는 공화당 220명, 민주당 215명으로, 역대급의 작은 의석 수 차이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내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새 연방 상원에서 공화당이 53석을 확보했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트럼프 입법 사안 중 예산 조정 절차(budget reconciliation)에 태울 수 있는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 들어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법안, 즉 2017년 트럼프 세금 인하법(Tax Cuts and Jobs Act of 2017)과 2022년 바이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 모두가 상원에서 필리버스터 규칙의 적용 없이 단순 과반으로 통과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서정건 2023). 한편 지난 11월 13일 공화당 상원에서는 당선자까지 포함한 총 53명이 참여하여 새 원내 대표를 선출하는 표결이 있었다(그림 3 참조). 선거 직전까지 숀 해너티(Sean Hannity), 터커 칼슨(Tucker Carlson), 일론 머스크(Elon Musk) 등 트럼프의 최측근들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스콧(Rick Scott, R-FL) 상원 의원을 지지하고 뜐(John Thune, R-SD) 의원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막판까지 누구에게도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고 결국 2차 투표에 가서 뜐 의원이 코닌(John Cornyn, R-TX) 의원을 물리치고 새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로 등극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실 뜐 의원이나 코닌 의원은 모두 전통파 상원의원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합산 표는 40명으로, 스콧 의원이 얻은 13명보다 월등히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뜐 의원의 경우, 트럼프와 대립하는 유형이라기보다는 조용히 상원을 운영하면서 사안별로 트럼프와 공화당 온건파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예컨대 트럼프가 요구하는 휴회 중 장관 임명(recess confirmation) 같은 변칙적인 의회-행정부 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다소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스콧 의원처럼 상원 의회 규칙관을 교체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없앤다는 등의 과격한 상원 변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공언한대로 난민 신청을 엄격하게 만든 강경 이민법안의 경우, 상원 규칙관에 의해 필리버스터 적용 법안이 되므로 이는 의회를 통과하기 어렵게 된다(손병권 2021).   <그림 3> 119대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 당내 선거 출처: The Hill 및 저자 계산.   하원의 경우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현 하원 의장이 지난 13일 공화당 내부 선거에서 경쟁자 없이 차기 하원 의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트럼프는 당선자 신분으로 하원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서 존슨 의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공언하였고, 존슨 의장은 트럼프를 두고 “돌아온 왕(comeback king)”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원 공화당의 비공개 회의에서 구두 표결(voice vote)을 통해 공화당 하원 의장 후보 자리를 차지한 존슨에 대한 진정한 도전은 내년 1월 3일 하원 의장 선출 과정이 될 것이다. 공화당 내부의 프리덤 코커스 등 강경파 의원들이 존슨 의원을 완전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118대 하원 개원 당시처럼 하원 의장을 뽑지 못해 대혼란이 벌어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다만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존슨 의장에 대한 반란표가 등장할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 역시 2기 행정부에서 공화당 하원 강경파 의원들을 상대로 예상보다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II. 양극화 시대의 미국 대선과 정당 정치   이론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는 우선 1980년 레이건 승리 미국 대선과 이번 대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소라 볼 수 있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유사하다. 미국 경제의 쇠락 및 2차 석유 파동 이후 역대 급으로 높아진 물가 수준 및 에너지 위기를 놓고 당시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카터(Jimmy Carter)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국민 레토릭(rhetoric) 차원에서 모두 실패했다. 집안에 난방기를 끄고 옷을 두껍게 입으라는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반대로 카터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에게는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정책 처방이 없었다. 통상적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높아진 카드 및 대출 이자를 물어야 하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80년 대선에서 카터가 레이건(Ronald Reagan)에게 패배한 이후 미국의 어떤 대선에서도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선거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에서 인플레이션이 미칠 정치적 파괴력에 대해 지난 44년 동안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과 전망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잘 알려진 대로 1980년 레이건 혁명(Reagan Revolution)의 또 다른 중요 차원은 1932년 루스벨트 당선 이후 건설된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의 시대를 마감했다는 점이다. 1800년 제퍼슨 당선(Revolution of 1800) 이후 100년도 훨씬 넘게 미국은 적극적 정부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공황을 겪는 과정과 2차 대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연방 정부가 국민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정책과 메시지를 내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뉴딜 연합은 루스벨트의 4선 및 트루먼(Harry S. Truman)의 페어딜(Fair Deal) 정책으로 미국 정치의 새 판을 짜게 된다. 또한 뉴딜 연합의 공고함은 정책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향후 선거 승리를 담보할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구축 차원에서도 발견된다. 도시 거주민, 흑인 유권자, 유태계 미국인, 여성 및 청년층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뉴딜 선거 연합은 이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전략뿐만 아니라 의회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민주당에게 사활적인 요소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효율적인 관료제는 방만한 운영으로 비판 받게 되었고, 지나친 정부 간섭으로 둔갑하면서 1980년 레이건 혁명을 통해 해결책이 아닌 문제점으로 치부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번 대선과 관련된 두 가지 사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4>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비교 출처: 270 To Win 2024.   첫째, 정부효율성위원회(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 명명된 기관을 통해 트럼프가 연방 관료제 혁파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국가 성격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과도 연결되는데, “약한 국가(Week State)” 대 “강한 국가(Strong State)” 논쟁에 이어 소위 “깊숙한 국가(Deep State)”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중이다. 예의 공화당 정권에서 늘 있었던 문제 제기임에 틀림없을 뿐만 아니라 스코우로넥 등(Skowronek, Dearborn, and King 2021)의 지적대로 모든 대통령들은 자신의 행정부를 새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1기 행정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2기 행정부의 최대 개혁 안건을 들고 나온 트럼프의 향후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1기 행정부 당시 절반을 채우지 못한 인사 조직 및 기존 제도권 인사들에 의해 자신의 통치가 방해 받았다고 굳게 믿는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에도 집권하면 척결할 대상으로 “깊숙한 국가, 전쟁주의자들(warmonger), 그리고 세계주의자들(globalists)”을 꼽은 적이 있을 정도이다. 연방 행정부 개혁 문제는 의회의 권한 이양(delegation)과 행정부의 재량 권한, 공무원의 중립성 의무 및 보호와 민주적 책임성, 그리고 기관 쟁의를 둘러싼 사법부의 판결 및 주장 등 가히 미국 정치의 전체를 아우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Crouch, Rozell, and Sollenberger 2020). “깊숙한 국가” 논쟁은 단일 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과 더불어 향후에도 미국 정치학의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머스크와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 같은 트럼프 못지 않게 예측 불허의 인사들이 위원회(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를 주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미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기고를 통해 규제 혁파, 인원 감축, 비용 절감 등의 입장을 밝힌 두 공동 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집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림 5> 2024년 미국 대선과 트럼프 지지율 선회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4.   둘째, 1980년 레이건의 승리가 뉴딜 연합의 한 축인 적극적 정부 개념을 공략함으로써 미국 정치를 다시 작은 정부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면,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승리는 뉴딜 연합의 또 다른 축인 정체성 정치를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 흥미롭다(서정건 2019). 사실 1980년과 1984년의 공화당 압승 이후에도 정체성 전략은 2008년 오바마 대선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공고하게 유지해 왔다. 소수 인종 및 여성, 청년 표심은 기본적으로 70 대 30 비율 이상으로 민주당에게 쏠렸고, 민주당의 정당 기반이 되어 왔다. 다만 슈머(Chuck Schumer)로 상징되는 민주당과 월스트리트의 결탁, 노조와의 약해진 유대감, 기후 위기를 둘러싼 엘리티즘(elitism)의 가능성 등은 2008년 흑인 대통령 등장과 2016년 아웃사이더 트럼프 등장 이후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의 공화당 흡수를 촉발시켰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과반을 넘는 라티노 남성의 지지 및 흑인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 상승을 거둔 것에 대해 섣부른 예단은 어렵다. 민주당 후보가 흑인 여성이었고 불법 이민 문제가 첨예한 상황에서 라티노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를 항구적인 것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트럼프 당선을 통해 만들어진 젠더(gender)와 인종(race) 간의 결합 문제는 향후 미국 정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 5>는 거주지, 인종, 학력, 산업, 세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전 영역에서 늘어난 트럼프 지지세를 보여준다.   2024년 미국 대선이 향후에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구분될 수 있을지를 전망하기에는 당연히 아직 이른 시점이다. 미국의 역사상, 학자들 간에 합의를 이룬 중대 선거들로는 대체로 평균 약 40년을 주기로 다음의 대통령 선거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 중심으로의 미국 정치 회귀와 지속을 확정 지었던 1800년 제퍼슨(Thomas Jefferson) 선거, 엘리트가 아닌 대중 중심의 정치와 선거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1828년 잭슨(Andrew Jackson) 선거, 공화당을 창당하여 향후 남북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내전을 촉발하고 노예제 폐지 및 공화당 일당 체제를 만들어낸 1860년 링컨(Abraham Lincoln) 선거, 포퓰리즘을 저지하고 산업 및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 발전 방향을 정립했던 1896년 맥킨리(William McKinley) 선거, 적극적 정부 개념을 사상 최초로 도입하여 미국의 정부와 시장, 권력과 국민 간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1932년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선거, 그리고 뉴딜 연합을 혁파하면서 세금 인하 및 강한 국방이라는 정통 보수 이념의 작은 정부 시대를 개척한 1980년 레이건 선거 등이 중대 선거로 알려져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이 시기적으로 보면 1984년 레이건의 압승 재선에 이어 40년 만에 치러진 선거임에 틀림없다. 앞서 지적한대로 레이건 대선이 작은 정부 회귀라는 이념적 차원에서의 중대 선거였다면, 이번 트럼프 선거가 정체성 정치의 약화라는 현실적 차원에서의 중대 선거였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마치 1860년 링컨 선거가 잭슨 민주당 시대로부터 공화당 전성시대로의 전환을 이루어 냈던 것에 비해 1896년 맥킨리 선거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주도 하의 민주당 포퓰리즘을 흔들어 놓았던 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트럼프 시대를 전망해 보자면, 내년 119대 상원에서 트럼프 내각 인준 절차라든지 트럼프 세금 인하법 연장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축소)폐기 등 중요 법안들의 경우, 단순 과반, 즉 50명이 찬성하면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트럼프 내각 인준을 좌초시키거나 단순 과반 법안을 부결시키기 위해서는 공화당 상원 의원 4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4명의 후보로는 소위 “C2M2” 의원들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콜린스(Susan Collins, R-ME), 캐서디(Bill Cassidy, R-LA), 맥코넬(Mitch McConnell, R-KY), 머카우스키(Lisa Murkowski, R-AK)가 그들이다. 이 중 콜린스, 캐서디, 머카우스키 의원은 2021년 2월 트럼프 2차 탄핵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들이다. 맥코넬 의원은 2026년에 은퇴하는 전통파 의원으로서 트럼프와 종종 대립했던 적이 있다. 이 중 콜린스와 캐서디 의원은 2026년 선거에 나서야 하는데, 콜린스 의원이 대표하는 핵심 주는 해리스가 이겼던 주이다. 캐서디 의원이 대표하는 루이지애나(Louisiana) 주는 소위 정글 프라이머리(jungle primary)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 캐서디 의원이 예비 선거에서 낙마할 일이 없으므로 트럼프의 압력이 덜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만일 이들 4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단합하여 반대표를 던진다면 트럼프 어젠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2026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은 20명의 현역 의석을, 민주당은 13명의 현역 의석을 지켜야 하지만 공화당 쪽에서 재선이 불확실한 의원은 콜린스와 틸리스(Thom Tillis, R-NC) 정도 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민주당 쪽은 오소프(Jon Ossoff, D-GA)와 피터스(Gary Peters, D-MI) 등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 임기 4년 동안 적어도 연방 상원은 공화당 다수당 지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III. 트럼프 2기 행정부 전망의 정치학   2024년 미국 대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전망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향후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다양한 실증 자료들이 향후 더 많이 분석되어야 한다. 2024년 대선의 총 득표율조차도 현재 AP 통신(AP News) 전망과 쿡 리포트(Cook Report) 데이터가 다를 정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아직 취임도 전에 무수한 논란을 낳고 있는 충성파 인선이 가져올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트럼프 주도 하의 단점 정부(unified government)가 내년 1월에 시작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1기 행정부 당시에도 첫 2년간인 2017년과 2018년은 단점 정부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행정 명령 위주의 정치, 트위터를 통한 혼돈의 메시지 정치, 김정은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회담 등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정치를 통해 미국 정치 시스템과 무관한 리더십을 보인 대통령이 트럼프였다. 오직 충성파들로 채워진 내각을 중심으로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종횡 무진할 트럼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2기 전망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중요하다. 이는 수정헌법 22조에 의해 2028년 대선에 나설 수 없는 4년 임기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와 직결되어 있다.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이민 문제가 1순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민 이슈를 다루기 위한 백악관 내 책임자(czar)도 임명해 둔 상태이고 자신의 최측근인 밀러(Steve Miller) 역시 주도권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우선순위이지만 이는 러시아의 푸틴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라는 또 다른 주요 행위자들의 전쟁 관련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시간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의 통상 문제 역시 정책 우선순위에 속한다. 관세를 최상의 정책 도구라고 믿는 트럼프가 이를 무기로 휘두를 나라가 중국이며,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은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시사한다. 더구나 북한 문제가 트럼프 정책으로 연결되려면 미국정치화(Americanization) 절차가 필요한데, 지난 번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 과정이 얼마나 생략된 채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이슈화 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한편 또 다른 고려 사항은 일각의 분석과 달리 트럼프의 외교 정책 관련 권한이 레임덕(lame-duck) 현상과 상관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력의 시간은 두 번째 임기 첫 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해에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고전하는 중간 선거가 정해져 있고, 3년 차부터는 모든 언론과 정당 내부 사정이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러한 분석이 대통령의 의회 관련 국내 정치에 주로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재선 후 첫 해인 2005년에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개혁과 관련하여 주식 시장을 이용한 일부 사립화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이처럼 국내 정치 관련 재선 대통령의 권력에서는 주로 레임덕 현상이 비교적 속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외교 정책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자신의 치적(legacy)을 쌓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일반적으로 보인다. 일례로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이나 중국과의 자유 무역 정책 모두 재선된 임기의 마지막 해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민 정책, 세금 정책, 연방 정부 개혁 등 우리에게 덜 중요한 미국 국내 이슈들은 중간 선거 이전에 단점 정부 상황에서 트럼프가 밀어 붙일 가능성이 큰데 비해, 안보와 통상에 이르는 대외 정책은 트럼프 4년 내내 트럼프가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둘째,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이들이 행정 명령으로 집행 가능한 것들인지 아니면 의회의 승인 혹은 폐기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인지 분석해 보아야 한다. 관세 부과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 대한 60퍼센트 이상의 관세 정책은 행정 명령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수입품들에 대한 10퍼센트 보편 관세의 경우 절차상의 흠결을 이유로 진보 성향의 연방 판사(federal judge)에 의한 집행 정치 가처분 신청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이민 정책 관련해서도 불법 이민 추방 같은 과격한 정책은 행정부 주도 하에 행정 명령으로 가능하지만 사법부의 제동 역시 작동할 수 있다. 예컨대 난민 지위 신청을 엄격하게 만드는 법안의 경우 상원의 필리버스터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입법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역시 상원의 필리버스터에 막혀서 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경우 단순 과반으로 폐기가 가능하지만 공화당 지역구에 집중된 혜택들로 인해 정치적으로 복잡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의 정책들이 행정 명령 차원에서 진행될지 아니면 의회 및 사법부와 연결되는지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결정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또 다른 4년이 미국 정치의 완벽한 변화(transformation)의 시기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4년을 건너뛰어 만들어진 또 다른 일탈(aberration) 시대로 종결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의 모든 사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 ■   참고 문헌   서정건. 2019.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정쟁은 외교 앞에서 사라지는가 아니면 시작하는가』. 서울: 서강학술총서.   ______. 2021. “미국 117대 의회 선거와 미국 정치 변화” 『의정연구』 27, 1: 197-204.   ______. 2023. “미국 국내 정치와 경제 안보: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견제하는가?” 『국가전략』 29, 3: 5-31.   손병권. 2021. “미국 의회 예산조정절차의 정파적 성격과 활용에 대한 경험적 검토” 『한국정당학회보』 20, 4: 5-42.   Bloch, Matthew, Keith Collins, Robert Gebeloff, Marco Hernandez, Malika Khurana and Zach Levitt. 2024. “Election Results Show a Red Shift Across the U.S. in 2024.” The New York Times, November 6. https://www.nytimes.com/...shift.html.   Conley, Patricia H. 2001. Presidential Mandates: How Elections Shape the National Agend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dwards III, George C. 1979. “The Impact of Presidential Coattails on Outcomes of Congressional Elections,” American Politics Quarterly 7, 1: 94-108.   Levitt, Zach, Keith Collins, Robert Gebeloff, Malika Khurana and Marco Hernandez. 2024. “See the Voting Groups That Swung to the Right in the 2024 Vote.” The New York Times, November 8. https://www.nytimes.com/...victory.html.   Skowronek, Stephen, John A. Dearborn, and Desmond King. 2021. Phantoms of a Beleaguered Republic: The Deep State and the Unitary Executiv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Jeffrey P. Crouch, Mark J. Rozell, and Mitchel A. Sollenberger. 2020. The Unitary Executive Theory: A Danger to Constitutional Government. University Press of Kansas.   270 To Win. 2024. “2024 Presidential Election Interactive Map.” https://www.270towin.com/.     ■ 서정건_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서정건 2024-12-12조회 : 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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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② 미국 통상정책의 현재와 미래: 보호주의의 재림과 강화

Ⅰ. 서론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승리하였으며,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할 예정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6년 첫 당선 당시 효과적이었던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슬로건을 2024년 재차 활용하며, 이 기조 아래 더욱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통상정책은 건국 이래 미국 경제전략의 근간이 되어왔으며,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서 미국의 무역정책 결정은 국내외 시장에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쳐왔다. 본 연구에서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향후 전개 방향을 전망한다. 특히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정책이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보호주의 기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를 고찰한다.   Ⅱ. 미국 통상정책의 과거와 현재   1. 미국 통상정책의 역사: ‘세입(Revenue),’ ‘제한(Restriction),’ 그리고 ‘호혜(Reciprocity)’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의 경제학자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2016년까지 미국 통상정책의 역사가 R로 시작하는 세 단어—‘세입(Revenue),’ ‘제한(Restriction),’ 그리고 ‘호혜(Reciprocity)’—로 특징지어지는 시기들로 분류된다고 주장한다(Irwin 2017).   먼저 1790년부터 1860년까지는 통상정책이 주로 ‘세입’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정부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대표적으로 1789년 관세법(Tariff Act of 1789)이 제정되었다(Fordham 2017). 이 시기는 연방정부 수입의 약 90%가 관세 수입으로 충당될 정도로 관세가 핵심적인 재정 확보 수단이었다.   다음으로 1861년부터 1933년까지의 시기는 ‘제한’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정부 수입이 점차 국내 과세로 전환되었으며, 국내 생산자를 해외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보호주의 관세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약 50% 수준을 유지했으며, 보호무역 정책은 20,000개 이상의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으로 정점에 달했다(Irwin 2020).   그러나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인한 수입품 가격 상승과 무역량 감소는 대공황을 심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평가되었고, 이에 1934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은 ‘호혜’에 기반한 무역 장벽 완화를 통상정책의 기조로 채택했다. ‘호혜’ 기반의 통상정책 기조는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 RTAA)으로 본격화되었는데, 대통령에게 양자간 무역협정 협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의회의 과도한 정쟁으로 인한 무역협정 진전의 저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Bailey et al. 1997).   무역 자유화(Free Trade)로의 전환은 미국이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설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적 국제경제질서를 지지하며 무역을 경제 성장과 지정학적 안정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GATT 체제하에서 다자간 무역 협력 체계 구축을 선도했다(Atkin & Donaldson 2022). 1994년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체결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었고, 같은 해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 협정 비준으로 1995년 GATT를 계승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가 설립되었다. 21세기 초에는 무역 자유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 다수의 양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와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는 12개 태평양 연안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협상을 포함한 야심찬 무역 의제를 추진했다(Evenett & Meier 2008). 그러나 이 시기에 자유무역의 효용에 대한 국내 회의론이 증가하면서, 이후의 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 미국 통상정책의 현재: `제한(Restriction)`의 통상정책으로의 회귀   2017년 1월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원칙을 내세우며, 장기간 유지해 온 무역 자유화 기조에서 벗어난 강력한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추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관세 인상을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특히 중국 상품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관세를 올려 2,50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대중국 압박은 미중 관계를 전면적인 무역 전쟁으로 악화시켰으며, 이는 미국 시장 내 화웨이(Huawei)와 같은 중국 기술기업 제재, 지적재산권 도용 및 강제 기술이전 문제 등으로 확대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다자간 무역협정 체제를 거부하며 무역협정을 재협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이었던 다자주의에서 벗어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명분으로 양자 협상을 선호했다. 취임 직후 TPP에서 탈퇴했으며, WTO의 분쟁해결 메커니즘을 강하게 비판하여 WTO 상소기구가 사실상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NAFTA의 재협상을 통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으로 대체했다. USMCA에는 자동차 부문의 원산지 규정 강화, 노동 및 환경 기준 상향, 디지털 무역과 반부패 관련 새로운 규제 등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강화하는 조항들이 추가되었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접근을 비판하며 다자주의와 동맹국 협력을 강조했으나, 보호주의 기조는 유지했다. 일례로, 2022년 5월에는 중국 견제와 동맹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 IPEF)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시기에 부과된 대중국 관세의 대부분을 유지했으며,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및 알루미늄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관세를 부과했고, 특히 첨단기술과 전략산업 분야에서 더욱 정교하고 표적화 된 제한조치를 실행했다. 2024년 5월에는 18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개발용 고대역폭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대중 수출을 제한하는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제한(Restriction)’ 시대로의 회귀는 두 가지 핵심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첫째, 미국 유권자들의 경제적 불안이다. 최근 연구들은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국내 일자리 및 경제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Essig et al. 2021; Fetzer & Schwarz 2021). 특히 COVID-19 팬데믹 시기에 경험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중국 의존도 문제는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지지를 강화했으며, 유권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둘째,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이다(Kim, 2024). 중국과의 경제·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무역 갈등이 지속되면서, 유권자와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초당적 합의로 이어졌고(Agrawal & Tai 2023),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불안과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두 요인의 결합이 미국을 새로운 보호주의 시대로 이끌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   2025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이 대통령직과 함께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 스윕(Red Sweep)을 달성함에 따라,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의회의 제도적 견제 없이 추진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어 미국발(發) 보호주의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통상정책의 핵심은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의 강화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는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말이자 듣기 좋은 말(To me, the most beautiful word in the dictionary is tariff)”이라며 관세 활용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모든 수입품에 10-20%의 일괄 관세를, 중국 수입품에는 최대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눈에는 눈, 관세에는 관세’ 원칙하에 타국의 고관세에 맞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으며, 2024년 11월 25일에는 취임 당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관세가 경제적 수단을 넘어 외교·안보정책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펜타닐(fentanyl) 유통과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관세를 활용할 것이며,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시장개방 압박 수단으로도 관세를 활용할 것임을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이 재무장관으로 지명한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도 관세는 대통령의 대외 정책 목적 성취에 유용한 도구라고 밝힌 바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024년 11월 30일, 브릭스(BRICS)를 향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 위협했다. BRICS 국가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달러 패권’에 대한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관세 위협 카드를 꺼낸 것으로 해석된다.   과연 트럼프 당선인은 본인이 공약해온 관세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제도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 헌법은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으나, 행정부는 다양한 법적 근거를 통해 관세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1930년 관세법 제338조(공공이익 관련)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국가안보 관련) ▲1974년 무역법 301조(불공정무역 대응) ▲국제긴급경제권한법(비상상황 대응) 등 법안에 의해, 특정 조건 또는 목적에 부합할 경우 대통령이 관세를 인상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무역대표부(Office of the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대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는 현재의 무역적자 규모가 이러한 법적 근거들을 활용한 관세 부과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2019년 트럼프 정부가 추진했던 상호무역법(United States Reciprocal Trade Act)이 재추진되고,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하원에서 통과될 경우,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와 마찬가지로 다자간 무역협정을 거부하고 무역협정 재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USMCA 재협상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2026년으로 예정된 USMCA 첫 이행점검을 계기로 자동차 부문 원산지 규정 강화와 노동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다른 무역협정들도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전기차(Electric Vehicle: EV) 산업을 미국 안보의 핵심 부문으로 규정하면서, 관련 원산지 규정 강화를 중심으로 한 협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이며, 트럼프 당선인이 2018년 한미 FTA 개정을 주요 성과로 강조한 만큼 추가 개정 압박도 가능하다.   Ⅲ. 미국 통상정책의 미래   1.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한 단기 전망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2026년 중간선거를 분기점으로 그 강도와 성격이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선 기회가 없는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승리는 레임덕(Lame Duck) 방지를 위한 핵심 과제이며, 이에 따라 통상정책도 국내정치적 고려하에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정책은 ‘강경책 추진 후 전략적 완화’의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취임 초기에는 공약대로 강력한 관세정책을 추진하되,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점진적으로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 등 기업 이익집단의 도움이 필수적이므로, 이들이 관세정책으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권자들 입장에서 가시성이 떨어지는 ‘비관세장벽’을 정비함으로써 이득을 도모하거나 예외조항을 둘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EU, 중국 등 주요 무역국들의 보복 조치가 예상되는 만큼, 미국 내 경제에도 상당한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결국 중간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세 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1기 때 있었던 2018년 중간선거에서 주요 무역국들의 보복 관세가 민주당의 하원 18석 다수당 지위 획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Blanchard et al. 2019). 특히 중국의 관세 보복은 경합이 치열한 의회 선거구에 위치한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미국 상품들을 체계적으로 겨냥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지역들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Kim & Margalit 2021). 덧붙여서, 관세 인상은 결국 수입품 및 수입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필연적이라는 측면에서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것이고, 결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를 다시 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트럼프는 다른 국가들의 양보 또는 미국 제조업의 성장세를 이유로 중간선거 전에 전격적으로 ‘관세 완화’를 활용하여, 본인의 정책 성과를 과시하고 부정적 경제 효과로 인한 트럼프 비판론을 완화할 여지가 크다. 이러한 양상은 트럼프 집권 1기의 미중 무역전쟁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0년 1월 15일 ‘1단계 무역합의(Phase One Deal)’를 통해 무역전쟁 수위를 낮추고, 이를 자신의 공격적 통상정책이 중국의 양보를 이끌어낸 결과라고 포장한 전례가 있다.   무역협정 재협상의 경우, 트럼프는 2024년 유세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안해온 USMCA 재협상을 중간선거용 카드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가시적인 정책으로서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정책이자, 동시에 USMCA 재협상을 볼모로 이민자 또는 마약 문제와 같은 국내 주요 이슈들에 대한 타결책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의 양보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고자 할 것이다.   2.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계속 지속될 것인가?   중간선거를 목전에 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 정책의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호주의를 표방한 통상정책이 포기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에도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당분간 계속 유지될 것인가?   상기한 미국발 보호주의의 두 가지 동력 – 미국 유권자들의 경제적 불안과 미중 경쟁 국면 – 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오랫동안 세계화를 미국에 주로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해왔지만 최근 높은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경쟁국과의 공급망 디커플링(decoupling)을 선호하고, 특히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설문에 따르면, 59%의 미국인들이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증가로 미국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Gracia 2024). 이러한 인식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경제세계화가 아닌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미국의 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조세 재단(Tax Foundation)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했듯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장기 GDP 전망, 자본 축적,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 거시경제지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York 2024). 또한 Autor et al.(2024)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시작된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은 특히 농업 분야에서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으며, 실질적인 소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적 부정 효과에 대한 소식에 유권자들이 점점 노출되면 보호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가 서서히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인 경제 지표상 보호주의 무역으로 인한 손실이 두드러지더라도, 보호주의 아이디어가 ‘정치화’됨에 따라 유권자들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실정이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들은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펼치는 정치인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Autor et al. 2024). 특히, 대중들의 정책지지도는 보호주의 통상정책의 목표 국가(target country)가 설정되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승하며, 이러한 이른바 ‘타겟 효과(target effects)’는 보호주의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정보가 주어진다 해도 여전히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Kim et al. 2023). 특히 미국의 경우, 유권자들은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무역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지도자의 보호주의 정책을 더욱 지지하며, 심지어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지 않는 지도자에게는 낮은 신뢰도를 보여준다는 최근 연구도 존재한다(Cho & Yang 2024).   미중 경쟁의 양상 역시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속적인 무역 갈등과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무역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Carothers & Sun 2023; Wang 2019).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시각은 보호주의 정서를 계속해서 자극할 가능성이 높으며, 의회의 양당은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으로 인식되는 문제들로부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Ⅳ. 결론   본 연구는 미국 통상정책의 역사적 맥락에서 최근의 보호주의 회귀 현상을 분석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 방향을 전망했다. 분석 결과,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단기적으로는 2026년 중간선거를 전후로 그 강도가 조절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통상정책 분야에 있어서 취임 초기, 강력한 관세 인상과 무역협정 재협상 등 공격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는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과 무역상대국의 보복조치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의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처럼,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 완화를 통해 정책 성과를 과시하고 경제적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상쇄하려는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첫째,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호무역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실제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주의가 정치화되면서 유권자들의 지지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통상정책은 점차 경제적 도구를 넘어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는 추세이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시각은 초당적 합의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보호주의적 정서를 지속적으로 자극할 것이다.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통상정책은 더욱 전략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볼 수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이러한 정책 기조는 앞으로도 글로벌 무역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세계 각국은 새로운 무역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에 대비하여 수출시장 다변화, 공급망 재편, 산업 구조 고도화 등 중장기적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강화되고 있는 보호주의 물결 속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등 기존에 논의되어 온 경제협력체 가입을 가속화하여 ‘블록’ 단위로 대응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마련하는 것 또한 고려되어야 할 시점이다. ■   참고 문헌   Agrawal, Ravi and Katherine Tai.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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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Focus 34.3: 376-407.     ■ 양준석_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양준석 2024-12-12조회 : 940
논평이슈브리핑
[미래의 미국 시리즈] ⑤ J.D. 밴스: MAGA 운동의 사도 바울?

I. 미국의 영혼전쟁과 공화당의 변화   2016년 이래 이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미국 대선들은 각각 별개의 사건들로 해석될 수 없다. 경쟁의 한편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라는 문제적 인물이 줄곧 존재해 왔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선거들은 동일한 주제를 둘러싼 두 사회 세력 간의 지속되는 충돌을 반영해 왔기에,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묶일 수 있다. 조 바이든(Joe Biden)은 이 정치적 대립을—남북전쟁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표현을 빌려—“미국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라고 이름 짓고, “우리의 더 나은 천사와 어두운 욕망” 사이의 갈등으로 그 본질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신학적 메타포(metaphor)가 가리키는 단층선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는 미국을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국가로 상상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자명한 진리”와 연방헌법에 명기된 제헌 원칙과 기본권이 아메리카 합중국의 정수를 이룬다고 믿으며, 이러한 원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는 미국을 백인 기독교 공동체로 보는 배타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누가 미국인인가는 “핵심문화”의 공유 여부와 귀속적 정체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차태서 2024, 239-290).   이와 같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국내 영역에 그치지 않고,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주목된다. 주지하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살아온 세계 질서는 상당 부분 미국의 대전략 비전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전의 내용물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존재 이유와 세계사적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자아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세력 간 “영혼 전투”는 미국 내부의 차원을 넘어 전지구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자의 보편지향적 공민 민족주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미국의 예외주의적 역할 수행을 주장하는 자유국제주의 독트린과 직결된다. 반면, 후자의 특수지향적 종족-종교 민족주의는 미국의 패권적 역할이 자원의 낭비였다고 비판하며, 현실정치적 대전략을 지지한다. 이들은 미국 역시 다른 평범한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차태서 2024, 135-169).   이러한 시대사적 배경에서 우리는 공화당의 중장기적 변화가 어떻게 미국의 정치 지형을 형성해 나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직 취임 등의 이벤트를 중요 기폭제로 삼아,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복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운동이 차례로 정당기구를 포획하면서 공화당은 점차 이념적으로 극우화되어 왔다(손병권 2024). 과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네오콘적 대외 개입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레이건 이후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포퓰리즘과 백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트럼프화된 정당으로 변화한 것이 오늘날 “위대하고 오래된 정당(Grand Old Party; G.O.P)”의 현실이다. 향후 이러한 변화가 정당 재편(party realignment)의 수준에서 공고화된다면,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운명과 상관없이, 공화당이 앞으로도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개입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 백인 노동계급의 비자유주의적 요구를 공론장에 운반하는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미국의 대전략 자체가 크게 요동치면서 해외 국가들의 대미 신뢰도가 약화하고, 세계질서 자체가 교란될 가능성마저 커지게 될 것이다.   II. 탈자유주의 우파의 수령으로서의 J.D. 밴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J.D. 밴스(J.D. Vance)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전부터 그는 단순히 트럼프에게 충성을 바치는 흔한 공화당 정치인에 그치지 않고, 신우파, 탈자유주의 등으로 불리는 이념 운동의 핵심적 정치인으로 떠올라 왔다. 다시 말해, 밴스는 트럼피즘(Trumpism)에 사상적 깊이를 더해 트럼프 시대에 시작된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더욱 급진화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함으로써, 오늘날 젊은 엘리트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체제 전환(regime change)” 흐름의 중심에 자리 잡아 왔다. 이 때문에, 대안 우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ideologue)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밴스가 자신들의 운동의 “신경중추(nerve center)”로서, 비유컨대 “사도 바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리화하여 널리 전도한 것처럼, 트럼피즘의 “복음”을 방방곡곡에 확산하는 열렬한 “개종자” [1] 의 사명을 밴스가 맡을 것이란 예언이다(Ward 2024a).   밴스는 단지 공화당 내의 변화만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내외 정책 전반, 나아가 헌정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계획을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규정함으로써, 여타 포퓰리스트 공화당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면모를 보인다. 특히 밴스는 기성 공화당 지도부마저도 “리버럴 레짐(liberal regime)”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시장 근본주의와 해외 개입주의 사조에 찌든 리버럴 엘리트들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체제 전체에 반대하는 혁명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왜 밴스가 입법활동과 관련해 종종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민주당 좌파와 협력적 관계를 맺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모두 대기업의 특별이익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워런이 비록 이념적으로 자신과 상극인 골수 좌파이지만,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망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때때로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Ward 2024a).   밴스의 독특한 정치이념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이 거론되지만, 그가 표방하는 탈자유주의 및 체제 전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지목되는 것은 노터데임 대학 정치학 교수인 패트릭 드닌(Patrick Deneen)이다(Ward 2024b). 드닌은 2018년 베스트셀러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를 출간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시 지식계 논란의 중심 주제였던 트럼프 현상을 근대 서구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라는 거시적 분석틀로 설명해 줌으로써 이 책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큰 찬사를 받았다. [2] 사상사적 계보에 있어 드닌은 공동체주의 학파와 함께 가톨릭 내 현실 참여파(integralism) [3]에 속함으로써(Liedl 2024; Linker 2024), 근대 자유주의의 오도된 개인주의적 “자유” 추구가 낳은 불평등 증대와 정부/기업으로의 권력집중, 사회 해체와 전통•규범의 상실 등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대안으로서 고대적인 의미에서 덕성을 함양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 복원을 제시하였다(Deneen 2018). 사실 여기까지는 미국 정치사상 학계에서의 고전적 테마인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혹은 공화주의) 논쟁의 맥락에 속하며, 그의 주장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고대 폴리스의 자유 개념을 복원하려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드닌의 자유주의 비판은 훨씬 더 급진화되어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운동의 형태로까지 진화하였다. 기성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하 보수와 진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리버럴 컨센서스를 초월하기 위해—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혁명적”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최근 저서, 『체제 전환: 탈자유주의적 미래를 향하여』의 핵심 문제의식이다(Deneen 2023). 이러한 사상적 진화 과정에서 드닌은 국내적으로는 성소수자 권리, 비판 인종 이론, 낙태 및 이혼 등에 반대하는 등 ‘안티워크 문화 전쟁(anti-woke culture war)’의 선봉으로 나섰고,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의 초청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여 탈자유주의 질서의 미래를 논하는 등 해외의 권위주의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Ward 2023).   이런 가운데 밴스는 2023년 5월 미국 가톨릭 대학에서 열린 드닌의 출판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탈자유주의 우파”임을 자처하면서, 의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명백히 반체제적(explicitly anti-regime)”인 것이라고 발언했다(Ward 2023). 한편, 드닌은 올해 7월 밴스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그가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더욱 진전시킬 “이상적 후보자”라고 찬사를 보냈다(Liedl 2024).   III. “체제 전환” 이후의 미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J.D. 밴스가 트럼프에 의해 부통령 후보자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은 향후 공화당이 트럼프“주의”를 교조화하고 있는 탈자유주의 우파에 의해 장악될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4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여부와는 별개로, 극우 포퓰리즘 운동이 공화당을 제도적 운반체로 삼아 장기적으로 미국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기반이 밴스의 “세자 책봉” 형태로 마련된 셈이다. 이하에서는 밴스의 주요 연설문들을 전거로 삼아 탈자유주의 세력이 꿈꾸는 “체제 전환” 이후 미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를 엿보고자 한다. 비록 자신들을 “신우파”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이들은 오히려 보수주의의 오래된 버전을 옹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전간기의 보수 포퓰리즘을 따라, 반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기초해 현실주의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정책들—고관세, 이민 제한, 그리고 해외 개입 축소 등—을 옹호한다.   1. 포퓰리스트적 민족주의   충실한 포퓰리스트로서 밴스는 이 세상 사람들을 “악당”과 “희생자”로 양분해 설명한다. 한쪽 편에 “미국에서 제외되고 잊힌 곳”, “작은 마을들”에 살고 있는 순수한 근로인민이 존재한다면, 다른 편에는 이들을 착취하며 억압하는 국내(“미국 지배계급”, “부패한 워싱턴 내부자들”, “월스트리트 귀족들”, “다국적 기업들”)와 국외(“중국 공산당”,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의 빌런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상황은 트럼프 집권 전까지 미국의 통치계급이 계속해서 실패해 왔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가령, 기득권층의 대표 인사인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 커리어 내내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창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가입, 이라크 전쟁 등과 같은 정책을 지지했고, 이런 잘못된 결정들의 대가를 평범한 미국인들이 치러왔다. 이에 밴스는 트럼프가 미국이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마지막 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 또한 본인의 출신지인 러스트 벨트 지역의 고통을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고 강조하였다(Vance 2024d).   보다 근본적인 국가 정체성 정치의 차원에 있어 밴스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의 의미를 “조국(homeland)”과 “민족(nation)” 개념으로서 구획짓는다. 우익 포퓰리스트의 노선에 잘 부합하게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추상적인 일련의 “관념”이나 “원칙”이 아닌 “공유된 역사와 공통된 미래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밴스가 이 집단 정체성의 성격을 부연설명하기 위해 동부 켄터키 애팔래치안 산맥에 위치한 가문의 선산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전쟁 시기부터의 조상들이 대를 이어 그곳 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왔으며, 본인과 배우자, 자식들까지 묻히게 되면 7대가 한곳에 모이게 된다고 한다(Vance 2024d). 근본적으로 장소와 혈연 공동체(“Blood and Soil”)로서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럽식의 반동적 내셔널리즘이 밴스의 정치사상에 짙게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Serwer 2024).   이러한 밴스의 언설은 사실 의도적으로 바이든의 “신조적 민족(creedal nation)” 개념의 안티테제로서 제시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바이든은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 미국을 하나의 관념(“America is an idea”)으로 정의했으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독립선언문의 핵심문구를 반복해 인용한 바 있다(Biden 2019; 2024a; 2024b). 이와 같이 선명한 국가 정체성 관념상의 대조는 결국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근본적 패러다임의 차이를 낳게 된다.   2. 현실주의적 대외정책   대외전략을 논함에 있어서도 밴스는 트럼프주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기성 외교정책 기득권층[4] 의 “오랜 슬로건들”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탈냉전기 미국의 외교정책 역시 “재앙의 연속”이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 20여 년간 미국외교정책을 떠받쳐 온 “도덕 본능” 혹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관념은 이라크전의 결말에서 보듯 완전한 오류로 밝혀졌다. 그 전쟁은 민주주의의 확산은커녕, 기독교인들의 집단 학살을 초래했을 따름이라는 것이 밴스의 평가이다. 둘째, 오늘날 대외정책의 최대 화두인 미중경쟁 이슈에 있어 밴스가 가장 분노하는 점은 미국 지도부가 스스로 중국의 부상을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 워싱턴의 초당적 컨센서스가 중국이 미국 중산층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중산층을 구축하는 과정을 묵인해 버렸다고 진단한다. 같은 맥락에서 제조와 기술 혁신을 임의로 분리할 수 있다는 서구의 자만심은 환상으로 증명되었고, 그 증거가 바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이라는 것이 밴스의 비판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네오콘의 대중 접근법이 가장 어리석은데, 한껏 중국이 모든 것을 제조하게 허용해 힘을 키워준 다음, 그 강력해진 중국과 전쟁하자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Vance 2024c).   그렇다면 밴스가 제시하는 대안적 대전략 비전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독트린이 국익 우선의 현실주의와 국내경제 부흥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해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철학적 토대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다극 세계(world of multi-polarity)”를 향후 30-40년간 미래 국제질서의 모습으로 상정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40년간 양대 정당이 함께 추진해 온 대전략 노선의 실패로 인해 현재 미국은 더 이상 복수의 전쟁을 치를 수 없을 만큼 쇠퇴해 버린 반면, 중국이 근미래에 몰락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현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밴스식 지정학 리뷰의 결론이다(Vance 2024c).   따라서 이러한 다극 세계에서 미국은 “자원의 희소성”을 인식하고, “취사선택 대상(trade-offs)”을 결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어떤 이익이 가장 사활적인지 판별하고 국력을 어느 곳에 집중할지 결단해야만 한다. 밴스는 공화당 주류를 포함한 워싱턴의 기성 리더십은 이런 절충이나 타협을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역내 세력균형을 복원해 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정세를 안정화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이 동아시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Vance 2024c).   보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양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밴스는 이와 같은 “역외 균형전략”을 관철하고자 한다. 우선 중동분쟁의 경우 당면한 목표는 하마스 격퇴이지만, 아브라함 협정 프로세스를 부활시킴으로써 이스라엘과 수니 국가들이 연합해 이란을 견제하는 역내 세력균형 형성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서방진영이 충분한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의지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군수품 제조 능력이 진짜 한계를 설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야기된 탄약 부족 상황은 대만에서 유사 사태 발생시 치명적이란 점도 덧붙인다. 아울러 밴스는 푸틴이 유럽에 존재적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합리적 목표는 “협상을 통한 평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즉,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가 1991년의 국경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은 판타지일 뿐이며, 바이든 정부가 푸틴과 협상할 수 없다고 반복 선언했지만, 막상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은 전무하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키이우(Kyiv)의 군사 전략을 방어 전략으로 변경시키고 모스크바와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연장선상에서 밴스는 유럽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유럽인들이 스스로 충분한 억제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록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해체하거나 유럽을 방기할 생각은 없지만, 향후 40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이 동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유럽인들이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Vance 2024a;b).   IV. 결론   현재 미국 사회에서 탈자유주의적 방향성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밴스가 대변하는 MAGA 운동세력의 급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보통 더 부각되고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망각되어버린 백인노동계급에 대한 관심, 국가 간 관계에 있어 선악이분법에 근거한 무분별한 개입을 비판하는 현실주의적 대안 제시 등은 미국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귀담아들을 문제 제기이다.   다른 한편, 기성 자유주의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도 일정 부분 반영된 바 있다. 가령, 현 정권은 국내적으로 뉴딜혁명의 추억을 소환하며 워싱턴 컨센서스의 극복을 추구해 온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식의 중상주의적 “미국 우선” 외교를 어느 정도 계승한 바 있다. 아울러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좌파 블록도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오랫동안 미국사에서는 주변화되었던—비미국적(혹은 북유럽적) 노선을 모색 중이기에 주목된다. 최근 민주당 주류를 깜짝 놀라게 만든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예시해 주듯 향후 밀레니얼 세대의 반예외주의, 반개입주의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여부에 따라 왼쪽으로부터의 탈자유주의 패러다임도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 하츠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국은 늘 로크적 자유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상상의 공동체였다(하츠 2012). 그런 면에서 탈자유주의적 사조의 도전은 미국의 근원적 정체성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미국사의 유례없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탈단극 시대, 미국내 사회세력 간 경합의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질서 전체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건 세계사적 계기를 경유하고 있는 셈이다. ■   참고 문헌   루이스 하츠(Louis Hartz). 백창재·정하용 역. 2012.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 독립혁명 이후 미국 정치사상의 해석』. 서울: 나남.   손병권. 2024.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운동: ‘리얼 아메리카’의 회복을 위한 저항운동』.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차태서. 2024. 『30년의 위기: 탈단극 시대 미국과 세계질서』.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Biden, Joe. 2019. “Joe Biden: America Is an Idea.” The Washington Post.April 25. https://www.washingtonpost.com/...video.html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______. 2024a. “Remarks by President Biden in Statement to the American People.” The Whit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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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https://www.politico.com/...00168984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1] 밴스는 사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후보로 부상할 당시, 그를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 밴스는 트럼프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축복을 받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2] 뉴욕 타임스에 여러 차례 관련 리뷰와 칼럼이 실렸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호의적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하였다.   [3] 국가 기구와 법을 동원해 구교 보수주의의 사회적 비전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핵심교의이다.   [4] 비판 대상으로서 설정된 대외정책 분야의 내부자들에는 물론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 같은 공화당 주류도 포함된다. 밴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84년부터 상원의원으로 활동해 온 맥코넬이 외교 분야에서 취한 거의 모든 입장들이 오류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한다.     ■ 차태서_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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