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2025 인공지능 기술 경쟁과 세계정치: 한국의 대응 전략

Ⅰ. 인공지능 기술과 세계정치   2023년 챗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혁신이 가속화되어 왔다. AI 기술혁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해 내고 있는 영향력 있는 비저너리(visionary)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CES 2025 기조연설에서 현재 진행 중인 AI 기술혁신의 두 가지 큰 흐름을 언급하였다. 첫째, AI 기술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단계에서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지능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몸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했다. 거대언어모델은 남이 만들어 낸 문자 이미지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인데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현실 이해는 피상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책으로 요리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실제로 요리를 할 수 있으려면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몸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세계에 관한 모델(World Model) 구축이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중력, 마찰, 관성과 같은 물리적 법칙과 공간 감각 등을 훈련하는 물리적 인공지능 ‘코스모스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는 생성형 AI의 생태계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쿠다 프로그램과 유사한 방식으로, 범용 로봇 개발에 쓰일 수 있는 개방적인 플랫폼으로 활용되면서 로봇의 챗GPT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자율자동차, 휴머노이드의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을 기대하게 한다.   둘째, 미래에는 엔지니어, 예술가, 학자, 학생 등 모두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가 필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데스크탑 크기의 시스템에서 최대 2천억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AI 모델을 처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 디지츠’라는 최소형 개인용 슈퍼컴퓨터를 선보였다. 이제까지는 AI 서비스 개발이나 응용을 위해 고가 AI 칩을 구매하거나 대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해야 했는데, 합리적인 가격과 강력한 성능을 장착한 개인용 소형 AI 슈퍼컴퓨터의 개발로 AI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리적 AI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가 만나는 지점에서 출현하는 AI 에이전트는 생산활동은 물론 보건, 문화, 정치, 군사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생활에 스며들게 되고, 일방적으로 활용당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세계 이해와 선호를 함께 형성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파트너로 자리잡아 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 이러한 흐름이 보다 분명해지고 구체화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자나 혁신적인 사업가들에 의해 제시된 비전이 실현되는 과정은, 방적기, 철도, 전기,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 자본과 권력이 개입되고 치열한 경쟁과 협력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구조적 흐름과 개인의 선택이 부딪치고 합류하면서 진행되었다. 21세기 인공지능을 둘러싼 비전 제시와 실현에서 가장 독특한 특성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세계정치환경이 기술 발전 방향과 속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며 말그대로 기술과 세계정치가 공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구동과 관련된 다양한 도구적 장치들은 계층화되고 블럭화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에 토대하여 공급되고, 그 어느 국가도 완전히 자급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국가들이 인공지능 기술혁신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인공지능 기술이 내포한 위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나아가 동일한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미국, EU, 중국이 내놓고 있는 비전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경쟁과 협력, 지정학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재편, 국가별 접근법의 차이와 갈등을 통과하면서 인공지능 기술혁신의 구체적인 모양새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2025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정치 요인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인공지능 정책과 대중 견제 양상,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꼽을 수 있다. EU와 유엔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공지능 규제도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향배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는 2025년 인공지능 기술과 세계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 보고 우리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 본다.   Ⅱ. 트럼프 행정부 2기의 AI 정책과 미중 AI 경쟁   트럼프 행정부 1기는 고학력 이민 비자, 코로나19 이슈 등을 둘러싸고 과학기술계와 뚜렷한 대립각을 형성하였고 과학기술 정책 어젠다에 대해 소홀했다. 미국 최고의 과학기술정책기구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사무국(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OSTP) 국장을 19개월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은 채 공석 상태로 방치했고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 비교해 조직의 규모도 대폭 축소하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책들을 발표하였다. 2019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인 AI 투자와 혁신 촉진, 차세대 AI 연구 인력 육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2020년 2월에는 연방 정부기관 AI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하고, 연방 정부 자원을 AI 기술 개발에 집중해서 미국 AI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국가 AI 전략,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다. 일련의 정책에 토대하여 ‘국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 법안(National AI Initiative Act of 2020)’이 마련되었고 이 법에 근거해 임기종료 직전 2021년 1월 국가 AI 전략을 감독하고 이행하는 책임을 맡은 ‘국가 AI 이니셔티브국(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Initiative Office: NAIIO)’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내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AI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이 적절히 배정되지 못했고 책임기관이 뒤늦게 설치되는 등 AI 국가전략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와 과학기술계를 홀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AI의 중요성을 설득하며 일련의 정책들이 수립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인물은 백악관 최고기술책임자(Chief Technology Officer) 마이클 크라치오스(Michael Kratsios)였다. 그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국장으로 임명되어, 1기에서 제시되었던 AI 정책들이 힘을 받으며 보다 강력하게 실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미국 내 AI 투자, 교육,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한편, ‘적들이 미국과 다른 가치판단으로 AI를 활용하려 한다’며 강력한 대중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화웨이를 시작으로 중국 IT 기업을 견제한 클린 네트워크 정책도 그가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AI와 가상화폐에 대한 정책을 이끌게 될 백악관 ‘인공지능 가상화폐 차르’직을 신설하여 페이팔 출신 데이비드 삭스(David O. Sacks)를 지명하였다. 이들과 일론 머스크(Elon Musk), 밴스(JD Vance) 부통령 이외에도 실리콘밸리 IT 부문 출신 인사들이 국방부, 국무부, 보건부, 법무부 등의 요직을 맡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대거 입각하면서 AI는 물론 가상 화폐, 우주, 바이오 분야 정책 어젠다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이들이 정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AI 우위 유지를 위한 투자 증대와 강력한 대중 견제는 트럼프 행정부 1기를 거쳐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유지되었고 트럼프 2기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전 바이든 행정부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미국내 빅테크와 AI 규제에 관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AI 투자와 대중 견제 이외 AI가 가져올 기회를 잡기 위해 무엇보다도 위험을 완화하는 책임 있는 AI 혁신이 중요하다고 보고 2023년 ‘인공지능의 안심 안전, 신뢰할 수 있는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근거로 2023년 11월에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 미국 AI 안전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또한 이 행정명령에는 모든 정부 기관이 최단 90일에서 최장 270일 기한 내에 지침이나 프레임워크 정비, 정책 수립, 인재 영입시스템 구축 등을 수행해야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실제로 연방 정부 기관들은 AI 안전을 위한 위험 관리, 프라이버시 보호, 시민의 평등권 보장, 소비자·노동자 보호, 혁신과 경쟁 촉진, 미국 리더십 향상 등을 위한 주요 조치를 마련하여 왔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 시기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는 기업이 고용이나 주거, 대출 등 개인의 권리나 기회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할 때 AI를 이용해 불법적인 편견이나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런 문제에 대해 기존 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FTC는 MS, 아마존, 메타, 구글 등 빅테크를 대상으로 독점 및 AI에 관련된 투자나 협력이 경쟁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며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전쟁을 선포하고 소송을 제기해 왔다. 새 정부에서 FTC 위원장으로 지명된 앤드류 퍼거슨(Andrew N. Ferguson)은 빅테크의 불법 시장 지배와 관련된 조사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AI 규제 및 엄격한 기업 합병 기준 등 일부 의제는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AI 규제보다는 혁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AI 안전 신뢰 책임성을 강조한 행정명령이 철회되고 기업에 대한 AI 규제가 완화되는 동시에 초거대 AI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AI 혁신을 위한 투자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공지능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 유지를 위해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 Processing Unit: GPU),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을 규제해 왔고,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 군사 및 안보와 관련된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해 왔다. 중국이 제3국을 통해 AI 칩을 우회 수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AI 칩 판매를 제한하였으며, 임기 마지막까지 각국을 동맹국,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 그 외 지역으로 3분할하여 AI 칩 수출거래 방식을 차별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미국에서 대중 견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고 새로 지명된 각료 가운데 대중 강경론자들이 포진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대중 AI 견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요 관심과 정책은 무역적자, 일자리, 관세이고 이는 첨단기술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접근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여 이것이 미중 관계 어젠다의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트럼프 1기 초반은 미중 간 관세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이후 화웨이 반도체 규제가 본격화되고 섬세해지면서 내걸었던 명분은 지적재산권 침해와 경제적 침략론이었다. 그동안 국가 경쟁력과 안보 관점에서 첨단기술을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대두되어 왔지만, 트럼프 2기에서 무역 대차대조표나 관세가 우선적인 정책 어젠다로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첨단기술 의제가 뒤로 물러서고 오히려 중국이 급속히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성숙반도체 등과 같은 중저위 기술 상품들이 관세와 얽혀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당면한 근본적인 도전은 미국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혁신 역량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기술 굴기의 속도는 확실히 느려졌지만 의지는 더욱 강력해졌고 기술혁신 통로도 다양해졌다. 중국은 미국의 AI 칩과 장비 규제가 본격화되기 이전 막대한 규모의 AI 칩을 구매하여 물량을 확보하였고 우회 수입과 밀수 등을 거침없이 활용하는 한편 고급 인력 유치와 대대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꾸준히 기술력을 증강시켜 왔다. 현재 중국에서 텐센트의 ‘훈위안(Hunyuan)’, 바이두의 ‘어니(Ernie)’,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Doubao), 알리바바의 ‘큐원(Qwen)’등 다양한 생성형 AI 모델이 활발하게 상용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선보인 ‘딥시크-R1’ 모델이 이제까지 출시된 생성형 AI 모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중국 AI 발전의 핵심 병목인 미국의 수출 규제와 중국 정부의 검열 환경에서 이루어진 성과여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2025년에 중국 오픈소스 AI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AI 경쟁에서 중국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추진한 ‘차세대 AI 발전계획’에 더해 2024년 초반 ‘AI 플러스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여, 제조업의 디지털화, 데이터 개방과 유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미국의 제재로 수입이 어려워진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중국산 AI 칩의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중국 기업들은 패키징, 칩렛, RISC-V 등의 기술혁신을 가속화하며 고성능 칩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AI 플러스 이니셔티브는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새로운 품질생산력의 첫째 실천 항목으로 정부 업무보고에 제시되었고, AI 알고리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부문에서 의미 있는 돌파를 통해 전체 AI 산업망을 포괄하는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확장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AI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는 확고하지만 중국의 도전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 AI 경쟁의 승패를 최첨단 기술 개발, 특히 중국이 고성능 AI 칩을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선도산업(leading sector) 부문을 이끌면서 이익과 생산성 등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패권국의 핵심 조건으로 보는 선도부문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세계정치패권과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제프리 딩(Jeffrey Ding) 교수는 그의 저서 기술과 강대국의 부상에서 ‘선도기술 주도’ 보다 ‘범용기술 채택과 확산’을 강조한다(Ding 2024). 그에 따르면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최첨단 선도 기술 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범용기술의 채택과 확산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정책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이 화학, 내연기관, 전기 등 다양한 신기술 부문에서 영국이나 미국을 능가하였음에도 결국 미국이 패권국이 된 것은 독일이 개발한 기술들을 중위급 기술전문 교육기관들을 통해 적용하고 확산시키며 미국식 제조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생산체제 구축으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최첨단 AI 기술혁신이 어디에서 진행되는가보다는, AI 기술이 경제사회 부문으로 스며들어 경쟁력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체제가 구축되는 것이 관건이고 이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이 중요하다. AI 부문에서 선두 그룹에 속한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개발과 확산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고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여전히 미중 간 최종 승부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2025년에도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AI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양국이 각각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흐름이 전개되면서 블록화가 진행될 것이다.   Ⅲ. AI 규제와 글로벌 AI 거버넌스   AI 기술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동시에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측면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활용이 확산되면서 AI에 잠재된 문제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개인정보 및 지적재산권 침해, 부정확하거나 편향된 정보의 생성 유포 조작, AI의 무분별한 군사적 활용, 국내 및 국제 수준의 AI 격차 증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국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있고 인공지능 관련 규범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규제의 강도나 초점이 다소 차이가 난다. 미국은 대체로 자율규제와 정부의 지원, EU는 엄격한 규제, 중국은 세부 이슈별 규제 방향을 채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2023년 행정명령을 중심으로 자국 AI 안전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AI 규제 영역에서도 미국의 리더십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이 행정명령이 철회될 가능성이 크고 자국 AI 기업 혁신 지원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이 국제사회 AI 안전 규제 논의를 주도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2022년 ‘인터넷 정보서비스 알고리즘 추천 관리규정(互联网信息服务算法推荐管理规定)’,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관리 잠정 방법(生成式人工智能服务管理暂行办法)’ 등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과 생성형 AI에 대한 규제의 틀을 제시하였고 이를 토대로 국제 무대에서 AI 거버넌스 관련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23년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제안하여 AI 개발에서 모든 나라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질 것을 촉구하였고 2024년 7월 유엔 총회에서 중국 주도로 발의된 인공지능 역량 구축에 관한 국제협력 강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일대일로나 유엔을 토대로 AI 규범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중 AI 경쟁의 심화와 디커플링 흐름 속에서 중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경우 2024년 3월 유럽의회에서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 AIA)이 통과되었고 향후 약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EU가 마련한 인공지능법은 인간 중심의(human-centric)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AI 활용을 촉진함과 동시에 AI로 인한 유해한 영향을 최소화하여 건강, 안전, 기본권 및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것을 입법 취지로 밝히고 있다. EU가 AI 규제를 가장 먼저 명문화하면서 국제규범 형성을 이끌고 있는 배경에는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유럽 AI 빅테크 기업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빅테크의 AI 서비스가 EU의 경제적 이익이나 가치(인권, 개인정보 보호 등)를 침해할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고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한다. AI 기술에서는 앞서 나가지 못하는 대신 AI 안전 규범과 평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AI 안전을 위한 국제 표준 형성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AI 규제에서 국가 간 상이한 입장과 조율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유엔, OECD, 유네스코, G7 등 다양한 국제기구들도 국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유엔은 2023년 AI에 관한 고위급 자문기구를 설립하여 이를 중심으로 AI 규범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며 2024년 이의 최종 결과물인 ‘인류를 위한 AI 거버넌스(Governing AI for Humanity)’ 보고서를 발표하였다(United Nations 2024). 보고서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포용적이고 공익을 위한 AI 거버넌스 원칙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AI 개발 및 거버넌스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데이터, 컴퓨팅 자원, 인재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역량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AI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지속가능한 목표 달성을 위해 AI 활용을 도모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보고서는 AI와 관련된 국제 과학 패널 설립, AI 거버넌스 정책 대화, AI 표준 교환 및 역량강화 네트워크 구축, 글로벌 AI 기금 조성, 글로벌 AI 데이터 프레임워크 구축, 유엔 내 AI 사무국 설립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통해 유엔의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상은 기후변화 이슈와 유사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기후변화협약,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 기후기금,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 COP) 방식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글로벌 기후변화 거버넌스는 이슈에 관해 논의하고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원자력발전을 관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민간항공기 안전을 관리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ICAO)와 같은 독립적인 AI 관리 기구 설립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강력한 리더십 없이 이런 국제기구가 마련되기 어렵다. AI 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경쟁과 규범에 대한 다소 상이한 입장, 리더십 부족 등으로,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범이나 거버넌스가 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적인 오픈소스 AI 개발자 공동체인 허깅페이스(HuggingFace)는 2025년이 AI 기술의 경제사회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특히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와 프라이버시 침해, 일자리 감소 우려가 고조되어 최초로 AI 관련 대규모 공공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하였다. 2025년 AI 기술혁신 가속화는 필연적으로 AI 위험의 증대와 AI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AI 혁신과 규제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한 국내 및 국제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이다. 현재 주요국과 국제기구에서 AI 안전규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가들마다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국제기구들도 추상적인 수준의 규범 제시를 넘어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방법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어 글로벌 AI 규범과 거버넌스의 파편화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특정 국가나 특정 국제기구 수준의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다. AI 혁신이 안전과 책임성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기구 및 국가 간 협력은 물론 관련 기업, 전문가, 시민사회의 참여를 아우르는 글로벌 AI 거버넌스 모색이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Ⅳ. 한국의 대응 전략   현재 진행 중인 AI 혁신과 활용에서 우리의 입지는 취약하다. 한국이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헤쳐오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던 전자기기, 반도체,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안 보인다. 한국은 무엇으로 AI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엔비디아의 H100을 장착한 서버의 개수나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 LLM)로는 미국이나 중국에 맞서기 힘들다. 그러나 넋두리만 하고 있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어쨌든 기존에 이루었던 성과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토대하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긴 하지만 반도체, 특히 HBM이 있고 구글 메타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거대 LLM에 맞서 소버린 AI(Souvereign AI: 국가의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하여 각국의 제도와 문화를 이해하는 AI)를 구축할 수 있는 네이버, 카카오도 있고, 통신사, 스마트기기 생산업체, 전장업체, 소프트웨어, AI 벤처 등이 AI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AI 투자는 대략 미국 870억 달러, 중국 130억 달러, 한국 25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AI 투자의 60% 이상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중국 10%, 한국은 약 1.5-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데이터나 서버 시장 규모를 고려하여 LLM이 아닌 소형이나 초소형 AI 모델에 특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보다 과감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1981년 정부 주도로 산학연이 함께 협력했던 디지털전자교환기 TDX 개발이나 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 이후 64K D램 개발 투자에 버금가는 한국형 AI 문샷(Moonshot: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 도전) 프로젝트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AI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업들은 물론 대학 연구소들이 네트워킹하고 협력하며 AI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과 모델을 모색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AI 기업들의 투자와 활용이 안전하고 책임성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국내 법제들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 한국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 투자 증대와 정부 기업 대학 연구소 간의 총체적인 협력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의 최우선 경제안보 어젠다이다.   한국 AI 발전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과 경쟁이 필수적이다. AI는 그 어떤 기술보다 기술에 담기는 가치의 선택이 중요함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지향하는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제적 협력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AI 부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으며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중요한 가치로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새 정부도 AI 혁신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한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미국 새 정부와 AI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2024년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안전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AI를 위한 서울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AI의 안전성 확보, 혁신 촉진, 포용성 증진을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 중심적인 AI 활용을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 법치주의, 인권 및 프라이버시 보호를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정상회의의 성과를 발전시켜 한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 형성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한국은 현재 당면한 리더십의 위기를 현명하게 정리해 나가면서 AI 문샷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미국과의 AI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AI 거버넌스 형성에도 적극 참여하여 이미 시작된 AI 시대를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참고 문헌   Ding, Jeffrey. 2024. Technology and the Rise of Great Powers: How Diffusion Shapes Economic Competi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United Nations. 2024. “Governing AI for Humanity: Final Report.” https://www.un.org/sites/un2.un.org/files/governing_ai_for_humanity_final_report_en.pdf (검색일: 2025. 1. 11.)     ■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배영자 2025-01-13조회 : 4947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⑥ 트럼프 2.0 시대 트럼프 리스크와 한국

Ⅰ. 트럼프 2.0의 국내정치적 의미와 마가노믹스(Maganomics)   2024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가 있었던 ‘대선거의 해’(super year for elections)였다. 무려 전세계 72개국 37억 명이 선거에 일제히 참여하였다. 선거는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분열, 정치적 양극화 등 국내정치적으로 잠복되었던 그러나 구조화되어 있던 이슈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는 장의 역할을 하였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는 2025년 세계 경제 질서에서 불확실성의 파고를 높일 최대의 요인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2018년과 판이한 국내정치적 여건 속에서 재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직전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비교할 때 차별성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8년 전의 단순 반복이 되기 보다는 미국 정책의 ‘트럼프화’(Trumpification)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첫째, 이번 대통령 선거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노선을 재확인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일방주의적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촉진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가노믹스’를 광범위하게 추진할 있는 정치적 위임을 폭 넓게 받은 셈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부과의 범위를 중국을 넘어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둘째,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의회 선거에서도 승리함에 따라,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부점(veto point) 하나가 사라졌다.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간극과 갈등이 확대된 결과, 미국 정치에서 중도 세력이 소멸되는 추세가 지속된다는 점은 이미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미트 롬니(Williar Mitt Romney)가 다음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향후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대치 국면에서 중도적 역할을 하던 공화당 내 온건파의 입지는 더욱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정책을 차별화하고, 정책 집행의 속도도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트럼프의 정책 노선에 대한 공화당 내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만 해도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 주기는 했으나, 그 이면에는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일탈쯤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주류 정치에 벗어난 정치적 문법을 사용하고, 파격적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과단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직면하였던 미국 국내정치 환경과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화당 내 지지 세력의 확장을 바탕으로 주류화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화당 내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의 부상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정책 연합이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자가 행정부 요직에 지명한 인사들이 충성파(loyalists),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신봉자, 아웃사이더(Beltway outsider), 상대적으로 미흡한 경력(thin resume)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미국 내에서 주류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안보 전략: 가능성과 한계   1. 디리스킹(derisking), 연결 국가(connector countries)의 부상, 그리고 무역 전쟁 2.0   트럼프 당선자는 모든 무역 상대국에 대한 보편 관세의 부과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타겟형 관세 부과를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다. 보편 관세의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실제로 ‘예외 없는 관세’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과할 것인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이나, 범위와 속도의 문제일 뿐 시행 자체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도 60~8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 미국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2017년 22%에서 2023년 14%로 감소하고, 미국의 대중국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가 감소하는 등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다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중국 역시 미국의 조치에 대응하여 미국으로부터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다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핵심 품목에 대한 대중국 의존도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 미 상무부가 시행한 2,409개 공급망 핵심 품목 분석 결과, 전반적인 수입 의존도가 감소한 것과 달리 핵심 품목에 대한 대중국 의존도는 19.5%에서 19.8%로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중국 수입 의존도가 70%를 넘는 품목이 156개, 100%인 품목이 46개에 달하였다(김나율 2023). 미국의 다변화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디커플링에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반증이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도가 낮아졌지만, 새로운 방식의 상호의존이 부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적 연계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표면적인 변화에 그친다.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연계가 제3국을 통한 간접적 연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중국 수입 의존도가 가파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특히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는 변화가 발생하였다([그림 1-1] 참조). 이 국가들은 또한 중국의 수출과 FDI가 증가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그림 1-2] 참조). 미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연결 국가들’의 부상이다. 관세 부과, 수출 통제, 투자 심사 강화 등 다양한 조치가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제3국을 통한 간접적 의존도는 여전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결 국가들을 통한 우회 수입을 차단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무역 전쟁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 전쟁 1.0에서 제3국을 포괄하는 무역 전쟁 2.0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다.   [그림 1] 연결 국가의 부상 [그림 1-1] 미국의 수입 비중과 중국의 수출 비중   [그림 1-2] 중국의 FDI 비중과 미국의 수입 비중    출처: Gopinath et al. (2024)   2. 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두 가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이 무역 전쟁 2.0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과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도 완화와 관련,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략적 디커플링과 공급망 전략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디커플링은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내내 추진했던 ‘좁은 마당, 높은 장벽’(small yard, high fence)으로 상징되었던 디리스킹(derisking)과 차별화를 의미한다. 즉, 전략적 디커플링은 신중하게 선정된 전략적 부문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벗어나, 무역 균형을 회복하고 미국 시민의 안녕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미국 내의 우려와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다른 문제가 해소되더라도 중국과의 무역 균형이 되지 않을 경우 전략적 디커플링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제3국을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 또는 확대하려는 중국의 우회 전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 당일 중국뿐 아니라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서 그 정책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국가들이 펜타닐 등 마약과 이민자 차단을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 국가들이 미국에 대규모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베트남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다음 타겟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멕시코와 베트남은 2023년 기준 중국에 이어 미국의 무역 적자국 2위와 3위를 기록하였다. 이 두 국가가 대표적인 연결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회 수출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의 간접적인 연결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공급망 전략: 스플릿 쇼어링(splitshoring)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급망 전략에도 일정한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심 첨단산업에서 해외,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리쇼어링(reshoring)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독자적인 생산 역량의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과 동맹 및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동맹 쇼어링(ally shoring)과 프렌드 쇼어링(friend shoring)을 공급망 전략의 근간으로 함께 설정하였다. 한국, 대만, 일본이 미국의 첨단산업 협력의 파트너로 부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특징을 감안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존 공급망 전략에서 리쇼어링의 비중을 한층 높이는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리쇼어링에 따른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효과는 상당하다. 2010년 이후 리쇼어링으로 인해 창출된 미국 내 일자리의 수는 약 2백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22년에는 34만 3천 개가 새롭게 창출되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 2023년 다소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28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호기를 그냥 지나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이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니어 쇼어링(near shoring)의 비중이 감소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리쇼어링에만 의존한 공급망 전략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급망 전략에서 리쇼어링의 상대적 비중이 커지는 ‘스플릿 쇼어링’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4. 두더지 잡기?   트럼프 2.0 시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의 범위와 수위를 확대, 강화함에 따라 미중 전략 경쟁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8년 간 미중 사이의 긴장과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양국 간 공식 채널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 정부 사이의 공식 대화 채널이 90개 이상이었으나,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공식 대화 채널 가운데 대다수가 소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와 별개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이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략적 디커플링을 통해 대중국 의존도를 직간접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견제의 확대와 강화가 반드시 효과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선제적 또는 사전적 예방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사후적 지연 대응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중국이 태양광, 풍력, 배터리, 전기 자동차에서 세계 시장이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동안, 미국이 사후적 대응에 급급한 사례를 다수 목격하였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두더지 잡기’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전략과 중국 견제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은 전혀 별개이다.   둘째, 공급망 전략의 변화를 추진할 때, 계획과 실행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배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서베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기업 가운데 81%가 리쇼어링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리쇼어링을 실행에 옮긴 기업의 비율은 39%에 불과하다(Saenz and Borchert 2024). 중국이 세계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의 형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Ⅲ.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   1. 트럼프 리스크의 대두   트럼프 2.0 시대 트럼프 리스크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문제는 트럼프 리스크가 전략 경쟁의 상대인 중국 또는 러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맹과 파트너들로 확장될 것이라는 데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협력을 강조하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관세 부과, 방위비 분담 상향 조정, 불법 이민과 마약 유출 차단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동맹 및 파트너들에게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c Intelligence Unit)이 관세 및 무역 제한, 방위 분담, 국경 및 안보 통제와 같은 요소들을 기준으로 미국의 70여개 무역 상대국의 트럼프 리스크를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멕시코, 코스타리카, 독일, 도미니카, 파나마, 일본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특히 높다([그림 2] 참조). 동맹 및 파트너 중에서도 미국과 지리적, 정치적으로 가까울수록 트럼프 리스크가 높은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상대적으로 소원한 파트너들의 트럼프 리스크가 오히려 낮은 역설적 현상마저 보인다. 멕시코는 심지어 중국보다 트럼프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맹 및 파트너를 상대로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을 추구하는 트럼프 당선자의 특성과, 중국이 미국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해 온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 8년 간 다변화와 토착 과학기술 역량의 강화 등 미국에 대한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켜 왔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중국의 우회 수출 통로 역할을 한 멕시코와 베트남은 물론, 미국과 무역을 적극 확대한 독일, 일본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높아지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림 2] 국가별 트럼프 리스크 출처: Economic Intelligence Unit (2024)   2. 미중 전략 경쟁의 체제적 영향   트럼프 2.0 시대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다. 첫째, 트럼프 2.0 시대 세계 경제는 분절화와 재연결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가 냉전기와 같이 세계 경제를 양분하는 신냉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지구적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s)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고, 세계 무역에서 중간재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상회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세계 경제는 냉전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이를 완전히 풀어헤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중심의 블록과 중국 중심 블록 사이의 무역과 FDI가 같은 블록 내 국가들 사이의 무역과 FDI에 비해 각각 12%, 20% 감소하였다(Gopinath et al. 2024).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분절화, 더 나아가 ‘이원 세계화’(bi-globalization)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Baracuhy 2024). 향후 미중 전략 경쟁 2.0은 세계 경제의 분절화를 촉진하는 원심력과 이를 완화하여 세계 경제를 재연결하려는 힘이 연속적으로 작용하는 추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트럼프 2.0 시대 미중 전략 경쟁은 무역뿐 아니라 첨단산업 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경로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보복 관세의 부과로 맞대응하였던 점을 감안할 때,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였던 디리스킹은 중국에 대한 견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사실이나, 견제의 범위를 제한하였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의 불필요한 확전을 예방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 중국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의 견제 수위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수년 간 수출 통제 강화를 위한 국내적 차원의 법적 정비를 진행하였다. 중국 정부는 2025년 1월 2일 보잉(Boeing) 방산우주 부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퍼시픽림 디펜스(Pacific Rim Defense) 등 28개 미국 기업을 겸용기술 수출을 금지하는 수출 통제 리스트에 추가하였다. 이어서 록히드 마틴 계열사 5개와 RTX 등 10개 미국 기업들을 대만 무기 매각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는’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추가하였다. 중국 정부는 수출통제법, 겸용기술 수출 통제 규정, 대외무역법, 국가안보법, 반외국제재법에 근거하여 미국 기업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의 강화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곧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에게 핵심 이익 수호를 위한 중국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Ⅳ. 한국의 대응 전략   트럼프 2.0 시대 세계가 직면할 리스크는 전략 경쟁의 상대인 중국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폭풍’(Trump storm)에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총리가 휩쓸린 것은 앞으로 트럼프 2.0 시대 동맹 및 파트너가 직면할 리스크의 한 단면이다. 트럼프 2.0 시대 한국은 양자와 다자, 단기와 중장기 전략을 체계적으로 결합, 연계하는 것을 기본으로 대응 전략을 설계하여야 한다.   첫째, 무역 불균형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이슈라는 점을 감안하여, 지연보다는 선제적이고 기민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공언하였다. 2023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514억 달러로 대미 무역 흑자 순위에서 8위를 기록하였다(Bureau of Economic Analysis 2024). 한국이 중국(2,794억 달러), 멕시코(1,524억 달러), 베트남(1,046억 달러), 일본(712억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Bureau of Economic Analysis 2024), 무역 불균형의 시정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트럼프 2.0의 특성을 감안할 때 우려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한국과 일본은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직접적인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트럼프 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인 2024년 11월 8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LNG를 미국 LNG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2023년 EU의 대미 무역 흑자는 1,567억 유로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 독일(858억 유로), 이탈리아(421억 유로), 아일랜드(311억 유로)가 대미 무역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Eurostat 2024). 2022년 기준 4,639만 톤을 수입한 세계 3위의 LNG 수입국인 한국은 LNG 수입을 대미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에서 수입해 온 장기 계약이 2024년 만료되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은 미국 LNG 수입 물량 확대를 통해 한미 무역 불균형의 완화와 LNG의 안정적 수입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한편, 단기적으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는 효과와 한국 제품이 제3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과 경쟁이 강화되는 2차 효과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 전쟁이 다시 발생할 경우, 보호주의의 확산과 세계 무역 질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에, 반사 효과에만 의존하는 수동적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의 동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 요인을 포착하는 지역 협력 전략을 재구성하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 없는 지역 협력을 위한 리더십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유사 입장국들과 협력하여 미국을 지역 협력의 틀로 견인하는 양면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태동 단계에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가 소멸될 것이다”(IPEF is dead)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PEF의 구성 요소 가운데 일부 또는 상당수를 트럼프 브랜드로 재구성하여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한국은 미국과 역내 국가들 사이의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창조적인 방안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중견국 외교를 추구하여야 한다.   셋째,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과도한 불안, 과잉 대응, 조급한 대응은 금물이다.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대응과 조급한 대응은 구분되어야 한다. 조급한 대응은 지연된 대응보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리스크 관련 우려 사항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은 트럼프 리스크 국가 순위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의 트럼프 리스크는 분야별로 보면 무역 10위, 이민 7위이고, 안보 분야는 10위권 밖에 있다. 트럼프 리스크를 경계하되,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과잉 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무역 불균형과 같이 최우선순위에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기민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되, 기타 사안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대응하는 이원적 접근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이원적 접근은 타당성은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확인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동맹과 파트너에 대해 거래적 접근을 고수 또는 심지어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적 접근에 반응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미 협력의 심화, 확대가 미국의 국익에 어떻게 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설득하는 논리의 개발이 요구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존 동맹 체제가 불공정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명확하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경제적 도전이 군사적 위협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21세기 현실에서 미국이 국가이익을 수호,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첨단산업 능력을 갖춘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이러한 수요를 선제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슈퍼 동맹(super ally)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세계 주요국들은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는 전정부적 접근(whole-of-government)을 넘어, 전국가적 접근(whole-of-nation)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1기에 비해 한층 확대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지난 8년 간 미국발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미 기업 외교 역량을 대폭 강화하였다. 지금은 정부 외교와 기업 외교의 시너지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시점이다. ■   참고 문헌   김나율. 2023. 미국의 공급망 핵심품목 리스트 현황 및 시사점. Trade Focus 2023년 1호. https://www.kita.net/researchTrade/report/tradeFocus/tradeFocusDetail.do?no=2396 (검색일: 2025. 1. 9.)   Barachuy, Braz. 2024. “What’s ‘bi-globalization’ and could this be the near future for geo-economics and global trade?” World Economic Forum. December 19. https://www.weforum.org/stories/2024/12/geoeconomic-biglobalization-global-trade/ (Accessed January 9, 2025)   Bureau of Economic Analysis. 2024. “U.S.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and Services, December and Annual 2023.” February 7. https://www.bea.gov/news/2024/us-international-trade-goods-and-services-december-and-annual-2023#:~:text=The%202023%20figures%20show%20surpluses,%2C%20and%20Sweden%20($9.8) (Accessed January 9, 2025)   Economic Intelligence Unit. 2024. “Trump Risk Index: The global impact of a new US presidency.” https://www.eiu.com/n/campaigns/trump-risk-index/ (Accessed January 9, 2025)   Eurostat. 2024. “USA-EU -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statistics.” February. https://ec.europa.eu/eurostat/statistics-explained/index.php?title=USA-EU_-_international_trade_in_goods_statistics#:~:text=The%20trade%20in%20goods%20balance,(%E2%82%AC4%20204%20million) (Accessed January 9, 2025)   Gopinath, Gita, Pierre-Olivier Gourinchas, Andrea F. Presbitero, and Petia Topalova. 2024. “Changing Global Linkages: A New Cold War?” IMF Working Papers 2024, 076. https://www.imf.org/en/Publications/WP/Issues/2024/04/05/Changing-Global-Linkages-A-New-Cold-War-547357 (Accessed January 9, 2025)   Saenz, Hernan and Adam Borchert. 2024. “Businesses accelerate reshoring and near-shoring amid heightened geopolitical uncertainties and rising costs, Bain & Company finds.” November 14. https://www.bain.com/about/media-center/press-releases/2024/businesses-accelerate-reshoring-and-near-shoring-amid-heightened-geopolitical-uncertainties-and-rising-costs-bain--company-finds/ (Accessed January 9, 2025)     ■ 이승주_동아시아연구원 무역·기술·변환연구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이승주 2025-01-10조회 : 1052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⑤ 2025년 인도-태평양 전망과 한국의 과제

Ⅰ. 2025년 인도-태평양 전략 환경   1.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   2025년 1월 출범 예정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전략을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당선자의 ‘신고립주의’ 및 ‘반동맹’ 기조에 따라 미국의 인태 지역 관여와 개입이 축소하여, 전임 바이든 행정부 인태 전략의 핵심이었던 동맹 강화와 중층적 소다자 안보 네트워크 구축 전략이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미국이 소다자 안보 네트워크를 통해 역내 안보 의제를 관리하면 구성 국가 간 역할 분담 구조가 명확해지고, 특정 사안에 대한 공동 대응 협의가 쉬워진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네트워크 구성국에 자국의 규칙과 규범을 더 쉽게 확산시킬 수 있고, 구성국들의 규범 준수 여부를 다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운영은 미국과 네트워크 구성 국가 모두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성공한 기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저비용·고효율로 인태 지역 안보 질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다자 안보협력 네트워크의 구축을 배척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은 2019년 국방부와 국무부 명의의 인태 전략서를 발간했으며, 다양한 법안을 제정하며 인태 전략을 추진했다. 비밀문서였던 『2018년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트럼프 대통령 퇴임 직전 공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 등장했으나 호주와 일본의 이탈로 곧 좌초되었던 미·일·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력 연합체인 ‘쿼드(Quad)’를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시 부활시킨 사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부속 회담 형식으로 국장급 관료 회동이 성사되었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 기간 총 8차례의 쿼드 회담이 개최되었다. 특히 2019년 9월에는 유엔총회 계기 외교장관 회담이 처음 열렸으며, 2020년 10월에는 4개국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대면 회담을 하는 등 쿼드의 협력을 확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미국 주도 인태 지역 동맹과 유럽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의 연계를 지속해서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스티븐 비건(Stephen Biegun)은 이미 쿼드 플러스와 나토 간 연계를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해양 안보를 명분으로 동남아와 인도양 국가에 정보·감시·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 ISR) 자산 제공도 지속할 가능성도 크다. 이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동남아 국가들의 해양 능력 강화를 위해 ‘해양안보 이니셔티브(Maritime Security Initiative: MSI)’를 추진하여 5년간 약 4억 2,500만 달러를 지원했었다. 2020년에는 MSI를 통해 34대의 무인 항공기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의 ISR 자산을 강화했다. 2020년 11월에는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필리핀을 방문하며 약 200억 원 상당의 군수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인태 전략을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유산이 아닌 트럼프 1기에서 기원한 독자적인 브랜드로 프레임화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을 거쳐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전략을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했고, 이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완성한다는 구조이다.   2. 중국의 다자외교 세력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중층적 소다자 안보협력을 통한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구축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국 우선주의 기조로 인해 인태 지역 다자협력에서 ‘선의적 무시(benign neglect)’를 재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동안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아세안-미국 정상회의에도 첫해를 제외하고 3년 연속 불참했다. 대신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리 참석했을 때 아세안 정상들은 심한 불쾌감을 표출한 바 있다. 이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아세안 관련 다자회의를 중시하고, 미국의 전통적인 안보협력국이 아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인태 지역 주요 거점 국가를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로 유인하기 위해 이들과의 양자 관계를 증진했다.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선의적 무시’가 재현된다면, 중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다자영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자국의 전략적 공간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2024년 12월 17일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가 주최한 ‘2024년 국제 형세와 중국 외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연설이 주목된다. 연설의 주제어는 화평, 개방, 정의, 단결, 포용이었는데, 첫 두 주제어는 중국이 미국과 전면적으로 대결할 상황이 아니며(화평), 미국의 ‘탈동조화(de-coupling)’ 및 ‘위험 완화(de-risking)’ 전략에 맞서 역내 국가들과의 상호의존성을 확대하겠다는(개방)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다자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관련하여서는 나머지 세 가지 키워드가 중요한데, 국제 규범 영역에서 중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정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협력을 강화하며(단결),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기회를 포착하여 중국이 세계 무대 중심으로 부상하겠다는(포용) 목표를 함축하고 있다(하영선 2025). 시진핑(習近平) 주석 역시 2025년 신년사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통해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소)다자주의를 ‘선택적 다자주의’라고 비판하며, 자국 주도의 다자주의를 통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러시아·인도·중국(RIC),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체(BRICS),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SCO),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 등이 있다. 특히, 브릭스에는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가 가입하였고, 2025년 1월 6일에 금년도 BRICS 의장국인 브라질이 인도네시아가 공식적으로 브릭스에 가입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2024년 6월 브릭스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태국이 브릭스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는데, 태국의 가입도 곧 논의될 전망이다. 이러한 브릭스 확장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적 플랫폼으로서 브릭스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아울러 미국 인태 전략의 약점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지경학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 2기 동안 이를 더욱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개별적 인프라 투자 및 양자·삼자·쿼드 협력을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해 왔으나, 중국의 거대 자본에 비해 부족한 규모로 인해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다면, 중국은 ‘개발’을 다자협력의 핵심 기치로 내세우며 다자 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다.   3. 미·중 리더십 부재 속 중견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 약진   트럼프 행정부 2기 인태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 2025년 중견국 역할론이 더욱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G2 시대에 역내 국가가 안보 질서 구축과 유지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주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존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이 경합하고 역내 국가에 선택을 강요함에 따라, 비록 양 강대국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현저히 낮을지라도 역내 국가가 안보 질서 구축·유지를 위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시각이 점증하고 있다(이신화·박재적 2021).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시기에 미·중에 비해 약소국인 중견국이 단독으로 역내 안보 질서 구축 및 유지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역부족이나, ‘중견국 연합’을 형성한다면 미·중에 대해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역내 중견국의 소다자 연합이 미국과 중국의 세력 역학관계에 전면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의 네트워크를 운영・유지하는 데 일정 정도의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 권력(positional power)’은 보유하고 있다. 역내 국가 간 소다자 협력이 미국과 중국이 각각 유지하는 진영의 ‘빈 곳(empty hole)’을 채우고, 양 진영을 연결하는 연결자의 역할을 한다면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위상을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더욱 심화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불확실성 속에 역내 국가가 구축하고 있는 (또는 구축하여야 할) 대응 체제 중 하나가 역내 국가가 주도하는 소다자 안보협력이라는 의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태 지역 주요 중진국인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주도하는 소다자 연합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위상을 확보해가면서 자율성도 확보해 간다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미중 대립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게 된다. 일례로, 2024년 한국, 일본, 호주는 국장급 인태 대화를 출범시켰는데, 3국은 동남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해양안보와 개발협력 분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중견국 소다자 협력이 나아가, 메콩강 협력, 해적 퇴치, 해양정보 공유 등을 위해 인태 지역에서 태동하고 있는 자생적인 (소)다자 협력과 연계된다면, 미·중 전략적 경합에서 좀 더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을 구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한편 최근 동남아 주요 국가 간의 양자 협력이 강화하고 있는데, 그들이 중심이 되는 소다자 안보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2024년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안보협력과 공동순찰에 합의하였으며, 베트남과 필리핀도 해안경비대 협력 등 해양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동남아 국가가 주도하는 소다자 안보협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2004년에 ‘말라카 해협 순찰’을 창설하였고, 태국이 2008년부터 합류하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2017년에 ‘삼자협력 의정서’를 체결하고 ‘술라해 삼국 순찰’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이 가열되면서 동남아 주요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 협력이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세안 내에서 친중 국가와 친미 국가의 대립이 민감한 이슈에 대한 ’아세안 컨센서스‘ 도출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주요국이 아세안 차원의 제도적 협력이 어려운 이슈 영역에서 ’아세안 방식‘의 고수보다는 소수의 관련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적 접근을 선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의 양자 안보협력 증진 추세가 이들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 안보협력을 추동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그러한 소다자적 접근이 정체된 아세안 안보협력의 보완제가 될지, 아니면 대체재가 될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4. 나토의 인태 접근과 일본의 전략적 위상 강화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이 가열되는 가운데, 일부 유럽 국가의 인태 지역 접근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및 일본 영토에서 쿼드 국가 전체 또는 일부가 다수의 공동 군사훈련을 시행 중인데, 유럽 국가 참여의 빈도와 강도가 늘고 있다. 그런데 유럽의 나토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인태 지역에서 교량적 역할을 하는 대표적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했는데, 인태 지역에서 일본이 타 국가와 체결하고 있는 ‘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RAA)’이 주요한 매개 중 하나이다. RAA는 상대방 국가의 군대가 자국을 방문할 때 입국 절차를 간소하게 해주는 협정이다. 일본은 2022년 1월에 호주, 2023년 1월에 영국, 2024년 7월에 필리핀과 RAA를 체결하였다. 일본은 프랑스와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일국의 군대가 타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비자, 세관, 군수 식량 검역, 무기 반입 등에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자국 군인이 타국 영토에서 중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느 쪽이 재판 관할권을 가질지도 논란거리다. 이를 매번 훈련 때마다 반복하여 협상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절차를 간소화하고 명문화한 뒤 이를 지속해서 적용하는 것이 RAA이다. 일본과 호주의 RAA 협상은 10년 이상을 끌었다. 주요한 쟁점 사항은 일본 법원이 일본 영토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호주 군인에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호주는 사형제를 폐지하였지만, 일본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 이외에도 일본과 호주에서 각각 정부 기관 간 정책협의도 난행을 겪었다. 하지만, 일본과 호주가 RAA를 타결한 후에는 이것이 선례가 되어서 일본과 영국, 일본과 필리핀의 RAA 체결 협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본이 체결하고 있는 RAA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내에서 양자와 다자 군사훈련의 수가 늘고 참여 병력과 장비가 점증적으로 대규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RAA 체결로 호주, 영국, 필리핀이 대규모 군대를 일본이나 동북아 해상에 파견하여 일본과 군사훈련을 수행하기가 쉬워졌다.   한편, 과거 나토의 공식 입장은 인태 지역 안보 문제에 나토가 연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럽 내 다양한 전통, 비전통 안보 문제를 처리하는 일만도 벅차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중국위협론이 커지면서 나토의 입장도 변화했다. 2021년 6월에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명확하게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규정하였고, 유럽에서 중국의 정보전(information warfare), 홍콩 강권 통치, 신장 인권탄압, 첨단기술 탈취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2022년 6월에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는 중국 견제를 명시하는 '2022 전략 개념'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나토의 주요 회원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영국-호주-뉴질랜드-말레이시아-싱가포르 5개국 방위협력(Five Power Defence Arrangements: FPDA)’, ‘호주·영국·미국 삼자 안보협력(AUKUS, 오커스)’, 인도-호주-프랑스 삼자 전략 대화 등 역내 국가와의 안보협력 플랫폼을 활성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인태 지역에 핵잠수함을 파견하고 있으며, 영국은 항모전단을 아시아 지역에 순항시키고 있다. 독일도 호위함을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에 전개하고 있다. 2024년 10월 7일에는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만과 마주한 필리핀 북부 루손 섬 해안에서 미국, 필리핀, 일본, 호주, 캐나다, 프랑스가 ‘사마사마(Sama Sama, ‘함께한다’는 의미의 타갈로그어)’ 군사훈련을 개최하였다. 이어 10월 15일에는 개최된 미국과 필리핀 해병대 훈련인 ‘카만닥(KAMANDAG, ‘독[毒]’을 의미하는 타갈로그어)’에도 일본, 한국, 호주, 영국, 프랑스가 참여하였다.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Indo-Pacific 4: IP4)가 2022년, 2023년, 2024년에 초대된 것은 나토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인태 지역 동맹들이 높은 수준에서 연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5. 부상하는 ‘스쿼드(S-Quad)’   ‘쿼드(Quad)’는 미국, 호주, 일본, 인도 간 안보협력을 지칭한다. 2007년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시작했으나, 중국의 부정적 인식을 의식한 호주와 인도의 이탈로 1년도 안 되어 좌초되었다. 그러나 2017년 11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주도로 부활하였고, 이후 인태 지역의 대표적인 미국 주도 소다자 협의체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스쿼드(S-Quad)’가 부상하고 있다. 스쿼드는 미국, 호주, 일본, 필리핀 간의 안보협력을 뜻하며, 기존 쿼드와 달리 인도가 아닌 필리핀이 포함되어 있다. ‘S’는 ‘Security(안보)’의 첫 글자로, 스쿼드 협력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전통 안보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스쿼드는 미국과 필리핀 간의 양자 안보협력 증진에서 시작되었다. 2023년 2월, 필리핀은 기존의 5곳에 추가로 4곳의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했으며, 이 중 3곳은 대만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이를 통해 대만 사태에 대비한 거점을 확보한 미국은 필리핀과 6년 만에 해양 순찰을 재개하며 이에 화답했다. 이어서 일본과 호주도 미국, 필리핀의 군사훈련 및 공동 해양 순찰에 합류하였다. 스쿼드 국가 간 양자, 3자, 4자 군사훈련과 공동 해양 순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24년 4월 12일에는 미국, 일본, 필리핀이 최초로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또한, 7월 8일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과 필리핀이 양국 군대의 RAA를 체결하였다.   기존의 쿼드도 중국을 염두에 둔 안보 협의체로서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미국, 일본, 호주와는 달리 인도는 쿼드가 대중 봉쇄의 기제로 인식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쿼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이더라도 2007년 좌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4국은 표면적으로 중국 견제의 색채를 가능한 한 옅게 하고 다양한 비전통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쿼드와 ‘쿼드 플러스’를 전개해 왔다. 반면 스쿼드는 쿼드와는 달리, 명시적으로 중국에 대항한 해양 안보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스쿼드 4국은 그들의 안보협력을 스쿼드로 지칭하지 않고 있으며, 공식적인 협의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리핀 주변 해역의 해양 안보가 남중국해 해양 분쟁 및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 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4국이 스쿼드를 공식화하고 점차 제도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부의 예측이나 비난처럼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의 나토와 같은 집단 방위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면, 스쿼드가 그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인태 지역에서 스쿼드의 전개가 역내 안보 질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Ⅱ.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방향   한국은 2021년 12월 인태 전략 공표 후 역내 공적개발원조, 국제 개발 협력 등을 위한 지원에 힘을 쏟아 왔다. 하지만,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법의 지배, 항행과 항공의 자유 등에 원론적 지지를 표명하면서 역내 민감한 안보 이슈에는 거리를 두어 왔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에 인태 전략 추진 3년 차에 접어드는 2025년에는 역내의 다양한 비전통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기여를 가시화해야 할 시점이다. 2025년은 한국 인태 전략 이행 로드맵상 ‘성숙·확산’ 단계로서, 인태 전략 이행성과의 가시성 제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전략 환경을 고려하여 아래와 같은 기조 및 추진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인태 공간을 광의로 접근하고 일본, 호주 및 주요 유럽 국가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안보적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2022년 12월 인태 전략 발표 시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가 역내 국가로 포함될 수 있도록 인태 공간의 범위를 인도뿐만 아니라 인도의 서쪽부터 아프리카 동부까지 포함하게 설정했다. 인태 전략 추진 1년차부터 유지해온 이와 같은 공간 범위를 좀 더 공고화해야 한다.   한국이 인태 공간을 포괄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합이 중국과 미국의 경합에서 중국과 ‘서구(West)’ 네트워크의 경합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이슈 영역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라기보다는 중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와의 사이에서 우리의 적절한 ‘위치 선정’(positioning)을 고민해야 하는 전략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태 공간을 아프리카 동부 지역까지 확장하여 설정한 한국이 인태 전략 추진 3년 차에 확장된 공간에서의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이 인태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경합을 중국 대 ‘서구’로 접근하고 있으며, ‘서구’와의 안보협력을 증진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일본은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일본의 위상이 강화되어 일본이 동북아의 축으로 기능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쿼드의 예처럼 일본이 역내 소다자 안보협력 결성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역내 다자 안보협력에서도 우리의 입지가 일본에 밀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편으로는 인태 지역에서 유럽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Peacekeeing Operations: PKO)’을 강화하는 등 확장된 지역에서 우리의 안보적 역할을 늘려 나가야 한다.   둘째,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인태 지역 포괄안보, 특히 해양안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수행해 온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배양(maritime capacity building)’에 대한 기여를 지속하면서 역내 ‘해양 상황인지(maritime domain awareness)’ 능력 배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례로 쿼드가 2022년 제3차 정상회의에서 ‘해양 상황인식을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ndo-Pacific Partnership for Maritime Domain Awareness: IPMDA)’를 발족시켰고, 2024년 9월에 개최된 정상회의에서도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표명하였다. 이처럼 미국 등 쿼드 국가가 인태 지역 거점 국가의 해양 상황인지 능력 배양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한국은 역내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별적 기여를 지속하면서 IPMDA가 쿼드+ 형태로 확장된다면 참여하는 등 쿼드 국가와의 협력 및 조율도 늘려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 안정적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해 중국의 대만해협에서의 ‘군사력 과시(showdown of forces)’ 상황과 남중국해에서의 ‘해양 순찰(maritime patrol)’에 대한 우리의 뚜렷한 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일본이 호주, 필리핀과 스쿼드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인태 전략 추진 3년차에 국내 정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해양안보에서 미국과 일본에 어느 정도까지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셋째, 우리의 딜레마는 제1위 교역국이자 북핵 문제 해결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중국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강화와 인태 공간개념에 비판적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태 전략 추진 후 지난 2년 간 해 왔던 것처럼 중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 모두와 함께하는 ‘개방성·포괄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에 더해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와 같은 지역 차원의 보편적 규범 준수와 더불어, 중견국으로 역내 비전통안보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국은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미국을 포함한 쿼드 국가가 주도하는 해양안보 협력에 참여를 요청 받게 될 전망이다. 만약 이러한 요청이 우리가 정립한 상기 원칙에 부합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때에 따라서는 중국도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교량 국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역내 국가가 중심이 되는 자생적인 안보협력이나,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협력에도 우리가 정립한 원칙에 맞으면 참여하는 균형감도 유지해야 한다.   넷째, 한국이 역내 중견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을 촉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지난 2년 간 한국의 인태 전략서와 이행서가 소다자 협력을 표명하였지만, 실행 성과로 예시한 것과 중점 추진 사업으로 예시한 것은 주로 미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체였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미중 전략적 경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의 초석을 만들기 위해서 인태 지역 주요 중견국인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양자 및 소다자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향후 일본-베트남-필리핀, 호주-인도네시아-인도, 인도-일본-베트남, 프랑스-호주-인도 같은 다양한 역내 국가 주도 소다자 협력과 비공식적 다자간 협력이 역내 안보 영역에서 역할을 정립해 갈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과 호주가 동북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에서 역내 국가와 소다자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에 한국·호주·아세안, 한국·호주·태평양 도서국 조합의 소다자 협의 추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호주가 동남아에서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수행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남태평양에서도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과 호주가 정례적으로 ‘아세안 정책 대화’를 개최하고 있는 것처럼, 남태평양 주도국인 호주와 협의하여 ‘남태평양 정책 대화’도 추진하고, 우리가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과 유사한 ‘남태평양 연대구상’을 제안할 수도 있다.   다섯째, 한국이 ‘자유(freedom),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의 인태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자유(freedom)와 평화(peace) 못지않게 번영(prosperity)에 대한 수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의 ‘번영(prosperity)’ 이미지는 우리 인태 전략의 자산이다. 남태평양을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국가재건’, ‘시민역량 개발’에 전력하고 있는바, ‘민주화’보다는 ‘번영’을 우리 인태 전략의 핵심 개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호주, 일본 등과 인태 지역에서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남태평양에서도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여섯째, 한미일 안보협력을 동북아를 넘어 인태 공간에서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한다. 2023년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은 상호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였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 및 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있는 가운데, 3국이 안보협력을 증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3국은 북한 미사일 정보 공조, 삼국 간 군사훈련 정례화 등 안보협력의 핵심 골격을 만들었고, 2024년에 3국 협력사무국 설치에 합의하는 등 3국 협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한미일 협의체가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 의제를 다루는 소다자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 ‘한미일+알파(α)’ 형식으로 외연 확장을 시도해야 한다. 3국은 이미 정보 공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경제 안보를 논의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하였고, 2024년 1월 ‘한미일 인도-태평양 대화’를 발족시켰다. 2024년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페루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해양안보・법집행 협력 프레임워크(Trilateral Maritime Security and Law Enforcement Cooperation Framework)’도 출범시켰다.   우리가 인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한미일 플러스(+)’ 연대를 촉진할 것을 표명해야 한다. ‘한미일-아세안, 한미일-태평양 도서국 포럼, 한미일-아프리카 정상회의, 한미일-‘글로벌 사우스’와 같이 역내 다자 지역협의체 또는 지역 집단군과의 한미일 플러스(+)를 추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아프리카 지역의 PKO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매개로 해양안보에서 한미일 + EU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이동률. 2025.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중국의 새로운 글로벌 역할의 모색, 대미 전략과 한반도”. EAI 논평. 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79&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이신화, 박재적. 2021. “미· 중 패권경쟁시대 인태 지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도전과 전망”. 『국제지역연구』 25, 2: 219-250.   하영선. 2025. “[신년 특집 보이는 논평] 3대 지구 리더십 위기와 기회”. EAI 보이는 논평. 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40&board=kor_multimedia (검색일: 2025. 1. 5.)     ■ 박재적_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및 언더우드국제대학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박재적 2025-01-09조회 : 1797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④ 2025년 한일관계 3대 리스크 관리

Ⅰ. 들어가며   2024년 한일관계는 대체로 순항했다. 2023년 3월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제안을 전기로 하여 관계 개선의 추세가 이어졌고, 특히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한일관계는 한미일 협력의 틀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양국 정부는 이러한 성과를 모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올해를 한일 신시대 원년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관계 개선의 주동력이던 양국 정상의 교체로 빛을 잃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일본은 쇠퇴하는 국제적 영향력을 만회하고자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을 기치로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를 핵심 국익으로 삼고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해 왔다.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여 G7 등 선진국 외교, 그리고 역내 다양한 소다자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으며 그간 일종의 ‘빠진 고리(missing link)’인 한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작년 한 해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 한일호 협력 등도 적극 가동할 수 있었다. 쇠퇴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일본이 보완하여 기성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대전략이다(손열 2024a).   문제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등장이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공공재를 제공해 온 미국의 역할을 부정하는 트럼프 리더십은 미국우선주의 하에 다자주의적, 가치 중심적 접근보다는 양자주의적, 거래중심적 접근으로 자국의 물리적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한다. 큰 틀에서 일본의 대전략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특히 지난 10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 대신 등판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수상은 트럼프 당선으로 인하여 아시아판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라는 다자안보체제와 미일지위협정 개정이라는 본인의 지론을 일찍이 접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시바의 일본은 우선적으로 미일관계의 안정화에 외교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가 되었다.   2025년 한일관계는 일차적으로 트럼프 2.0이 초래할 안보적, 경제적 리스크 대응의 맥락에서 폭넓게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기서 핵심 변수는 한일 양국의 국내정치 즉, 리더십 리스크이다. 이시바 리더십의 불안정성과 한국 리더십의 공백 상황 여부에 따라 양자관계는 부침을 거듭할 것이며, 특히 한국의 경우 국내정치적 대립이 대일정책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Ⅱ. 트럼프 리스크   2025년 일본 외교 최대의 과제는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와의 양자관계 안정화이다. 역대 정권이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기축”으로 미일동맹을 설정한 것처럼 이시바 수상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축으로 하여 한미일, 미일호인(쿼드), 미-일-필리핀 등 소다자 네트워크를 강화하고자 한다(首相官邸. 2024). 여기서 일본에게 미일동맹의 최대 도전 요인은 — 트럼프 외교정책에 대한 전재성 교수의 분류(2025)에 따르면 — 우세주의자(primacist) 도전과 자제주의자(restrainer) 도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森 聡 2024).   트럼프 2.0에서 자제주의자는 그간 미국이 지켜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오히려 자국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인식, 그리고 민주주의, 법의 지배, 인권 등 보편가치 추구가 무용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구 거버넌스를 위한 국제기구 참여를 축소하고 국가 주권과 자국 우선을 강조하며 물질적 이익의 획득을 최우선시한다. 이런 경향은 법의 지배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와 촉진을 외교전략의 중심 목표로 삼는 일본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일본은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이 내세우는 규칙 기반 질서가 국익을 보장한다고 믿고 있다.   미국이 국제기구 개입이나 해외 군사개입을 억제하고 지구 공통 과제에 대한 책무 역시 타국에 넘기고 국익을 축소적으로 정의하고자 한다면, 즉 미국이 지구 공공재 제공을 축소한다면, 과연 일본은 기존 질서 수호를 위해 미국이 초래하는 공백을 메울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동맹의 경우, 자제주의자는 미일동맹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기제이며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형성, 유지하는 공공재로 여기는 기존의 인식을 거부한다. 자제주의 노선은 미일동맹이 오로지 미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도구이며 따라서 일본에 더 큰 상호 책임과 부담을 부과해야 한다고 믿는다. 경제의 영역에서도 자국의 번영을 위해서 보호주의, 경제민족주자국내 제조업을 부활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국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며 동맹국이라도 무역흑자를 내는 경우, 관세 폭탄을 부과할 태세다. 이미 트럼프는 중국 수입품에 대해 60%, 주요국 수입품에 대해 10-20%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였는데, 일본은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로서 관세 폭탄을 피해 가기 어렵다. 일본은 한편으로 주일미군 주둔비용 부담 증대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 자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감내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할 것이다.   한편, 우세주의자는 ‘힘에 의한 평화’란 기치하에 중국을 미국의 최우선적 위협으로 설정하고 중국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 역량 신장에 주력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일본과 한국 등 동맹국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들은 군사면에서 동맹국과의 결속을 강화하고 통합억제를 확장, 심화하여 중국에 대항하고자 한다. 경제와 기술면에서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란 이름으로 동맹국을 중심으로 핵심 기술 및 산업의 공급망을 재편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분단을 이끌어내는 경제안보전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두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높은 전략적 가치를 지닌 동맹국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동맹 방기(abandonment)의 위험성은 낮다고 할 것인 반면, 한국은 대북 억지를 위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중국 견제 차원에서의 전략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고 방기의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미국 우선의 자제주의 노선과 중국 견제의 우세주의 노선이 서로 교차하며 상호 모순되는 메시지를 내는 경우 트럼프 리스크는 극대화될 수 있다. 예컨대, 자제주의 노선의 보호주의와 거래중심적 동맹관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쇠퇴를 가져오는 경우 중국에게 그 공백을 차지할 기회를 부여하여 결과적으로 우세주의자의 목표를 훼손할 수 있다. 또한 지구남반부(Global South)가 미국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무역을 축소하고 브릭스(BRICS) 경제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런 경우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하락하고 국제경제질서는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며 대외개방형 일본과 한국 경제는 구조적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 리스크는 일본과 한국에게 거대한 도전인 반면 양자간 공통 이익의 분면도 넓혀 주고 있다. 양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라는 거시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미국의 긍정적 역할을 지지하고 있다. 양국은 트럼프 2.0을 동맹 강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미국 주둔 비용 부담 증액이라는 국내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도 공유하고 있다. 미국의 거래주의적 · 도구적 동맹관에 비판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으며,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로서 보호주의 압력에 대해 자유와 개방의 경제질서 수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양국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향후 트럼프 관세 조치의 주 타겟으로 지목되어 있으며, 막대한 대미 투자를 적극적으로 호소해 관세 보복을 피하고자 하는 점에서 한 배를 타고 있다. 끝으로 중국과의 공급망 분단을 반대하고 전체적으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유지하는 대중 디리스킹(de-risking)을 지지한다. 요컨대, 2025년 한일 양국은 다양한 분면에서 협력의 유인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Ⅲ. 일본의 리더십 리스크   2025년 일본은 국내정치적으로 리더십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시바 수상이 1월 1일 발표한 ‘연두소감(年頭所感)’을 보면 정치적 안정이 최대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외교안보, 일본 경제의 활성화, 치안과 방재 등 3대 중요정책과제를 지목하면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을 기반으로 하여 “가능한 한 폭넓은 합의 형성을 꾀하겠다”고 한 데 이어 ‘대연립’의 가능성도 언급하였다. 자민당 정권의 불안정성을 시사하는 것이다(首相官邸, 2025).   지난 10월 중의원 총선거에서 연립 여당이 과반수(233석)에 미치지 못하는 패배(22석)를 거두어 30년만에 소수 여당이 된 이시바 정권은 국민민주당이나 유신의 회와 같은 야당과 연립을 확대해 2025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할 처지이다. 예산안 통과가 다수 야당의 반대로 부결되거나 대폭 수정되는 경우 이시바 정권은 위기에 빠질 수 있고, 심지어 야당 간 합의하에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될 수도 있다. 올 상반기 이와 같은 리스크를 넘더라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이시바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사실, 이시바 리스크는 일본정치의 보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자민당 일당우위 체제, 당내 아베(파) 1강 구도, 자민당 정권 담당 능력 등 세 차원에서 국민의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기시다 정권이 파벌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위기를 맞자, 자민당은 비주류의 신선한 얼굴의 총리를 내어 마치 정권이 교체된 것처럼 느끼는 ‘의사(擬似) 정권교체’ 효과를 만들어 선거를 치르고 위기를 봉합하는 기존 패턴을 반복했다(김성조 2024). 그러나 이런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압도적으로 당세를 확장한 야당의 견제를 받으면서 향후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조심스럽게 국정운영을 해 나아가야 하는 여야 세력균형 상태를 맞이하였다(이주경 2024). 일본 유권자는 자민당 정권이 장기화되면서 정권의 자기이익화가 반복되거나 정치적 반응성이 쇠퇴하는 상황을 경계하며, 여야 간 세력균형을 만드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이시바 정권이 유권자의 여망에 부응하기는 어렵다. 선거 최대 쟁점인 정치자금 스캔들의 해법은 결국 자민당의 구조 개혁인데, 이시바 수상은 당내 소수파 출신으로서 개혁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두고 기존 파벌체제를 유지하려 하며, 당내 여론에 순응하고 있다. 또한 기시다 정권과 차별적인 경제정책 비전을 제시할 능력도, 세력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이정환 2024). 2025년 일본의 리더십은 정당 간 연대와 연립구도, 정권 교체 등 여러 국내정치적 변동성에 좌우될 것이며 따라서 일관된 외교정책 추진은 어려울 전망이다.   Ⅳ. 한국의 리더십 리스크   2025년을 맞는 한국은 리더십 공백 상태이다. 사실 지난 2년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리더십의 역할이 컸다.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관련 해법으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면서 한일관계는 해빙 무드를 맞이하였고, 양국은 정상 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정부 간 교류와 민간교류를 확대해 왔다. 이어 한미일 3국 정상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한일 양국은 미국을 매개로 북핵-미사일 대응을 넘어서 역내 안보, 경제 번영과 회복력, 규칙기반 국제질서 유지 등 확장된 사안에서 공조와 협력을 이끌었다. 그러나 기시다 수상과 바이든 대통령의 퇴장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과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에 이르면서 한일 정부 간 관계는 사실상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정치적 변화 이면에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정치는 정파적 양극화로 심각한 정치적 갈등과 분열을 겪어 왔다. 이번의 계엄 발동은 특정인의 시대착오적 결정이기도 하지만 한국 정치의 갈등과 분열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정치 세력 간의 양극화와 극단적 대결은 정치 마비 현상을 가져왔고,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졌으며, 탄핵정국에서도 별반 바뀐 게 없다.   문제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고 올바른 정책 형성 수립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서 외교정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동아시아연구원(EAI)의 동아시아 인식조사 일본편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인상, 신뢰도, 현 정부의 대일정책 전반, 개별 정책 등 거의 모든 사안에서 국민의힘 지지자 및 보수 진영은 긍정 평가를 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및 진보 진영은 부정 평가를 내리고 있다(손열 2024b).   [그림 1] 일본에 대한 인상, 2024 [그림 2]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 평가, 2024. [그림 3]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평가, 2024. [그림 4] 한미일 삼각 군사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입장, 2024. [그림 1]에서 보듯이 일본에 대한 인상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힘 지지층이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사이에는 30%포인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편,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서는 지지도의 차이가 보다 확대되어 있다. 두 정당 지지자 간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를 긍정하는 의견의 차이는 무려 48%포인트, 부정 의견의 차이는 51%포인트에 이른다([그림 2]).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의 차이는 28%포인트, 부정적 평가의 차이는 32%포인트를 보였다([그림 3]). 이러한 당파적 차이는 정치 사안뿐만 아니라 심지어 안보 사안으로도 파급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인태 아키텍처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안보협력의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의 차이는 36%포인트, 부정적 평가의 차이는 29%포인트를 기록했다([그림 4]).   [그림 5] 일본에 대한 인상 추이, 2018-2024. [그림 6] 한미일 군사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입장, 2018-2024.   [그림 5]와 [그림 6]을 보면 당파적 양극화는 2022년을 기점으로 확대일로이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의 경우, 보수와 진보 사이에 2-6%포인트 정도의 간극을 보였던 것이 2022년 정권교체 이후 급격히 증가하여 2023년에는 12%포인트, 2024년에는 23%포인트로 확대되었다. 한미일 군사안보협력에 대한 지지도 역시 2022년까지 당파적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2023년 17%포인트, 2024년 28%포인트로 확대되어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권력이 이동하면서 진보진영의 일본 호감도와 한미일 안보협력 지지도는 급격히 저하한 반면, 보수진영의 일본 호감도와 한미일 안보협력 지지도는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2022년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가르는 양자관계 변화 혹은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은 정권교체에 따른 당파적 지지 혹은 반대의 결과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대중의 분열적 여론은 이들이 갖고 있는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 지도자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조작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23년 제3자 변제안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2024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문제 등은 대중을 친일과 반일로 나누는 분열적 이슈로 프레이밍되어 정파적으로 이용되었다. 그 결과 대일정책은 정파적 지지를 규합하고 반대파를 공격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도적 혹은 초당파적 입장이 설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25년 한국의 리더십 리스크는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대일정책의 양극화, 한일관계의 정치화라 할 수 있다.   Ⅴ. 나오며   2025년 한일관계의 과제는 이상의 3대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이다. 트럼프 리스크는 미국의 동맹국간 연대를 유인하고 있다.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미국을 함께 설득하고 리스크를 함께 관리해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대일정책은 한편으로 당면한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해 한일 협력의 분면을 넓혀 가는 동시에,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장기적이고 대국적인 시점에서 미래 60년의 한일 신시대 개막을 준비해야 한다. 안보·경제 등 기능적 협력을 확대해 가면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가는 한편, 역사인식의 화해를 향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역사문제 협력과 기능적 협력을 병행해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러한 전향적 외교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대일 정책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국내 제도의 정비와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구조적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통령 탄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극단의 정치를 야기한 정치적 양극화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극단적 정치 대립과 정치 마비를 가져오는 현행 정치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수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정치적 합의가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로의 개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초당적인 외교정책과 대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김성조. 2024. “[2024 일본 선거 이슈브리핑] ② 자민당 정치의 위기: 장기집권, 정치자금, 정치개혁.” EAI 이슈브리핑. 10월 31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72&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손열. 2024a.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실천하는 2024년 한일관계: 과제와 전망.” EAI 논평. 1월 11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299&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______. 2024b. “[EAI 이슈브리핑] 정치 양극화에 동요하는 한일관계: 2024년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관계 개선과 여론 분열.” EAI 이슈브리핑. 9월 19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67&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이정환. 2024. “[2024 일본 선거 이슈브리핑] ③ 이시바 자민당의 ‘지키다’ 지향과 경제정책의 향배.” EAI 이슈브리핑. 10월 31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73&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이주경. 2024. “[2024 일본 선거 이슈브리핑] ① 탈 아베 시기 진입과 정치 쇄신 압력 속 이시바 정권의 딜레마.” EAI 이슈브리핑. 10월 31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71&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전재성. 2025.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① 트럼프주의 외교 전략과 세계질서의 미래, 한미관계.” EAI 논평. 1월 3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78&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5. 1. 7.)   首相官邸. 2024. “第214回国会における石破内閣総理大臣所信表明演説” https://www.kantei.go.jp/jp/102/actions/202410/04shu_san_honkaigi.html (검색일:2025.1. 7.)   首相官邸. 2025. “石破内閣総理大臣 令和7年 年頭所感.” https://www.kantei.go.jp/jp/103/statement/2025/0101nentou.html (검색일: 2025. 1. 7.)   森 聡. 2024. “第2次トランプ政権の外交・防衛(1)―抑制主義者と優先主義者の安全保障観と同盟国へのインプリケーション―.” 笹川平和財団 論考シリーズ No.173 | 2024.11.25. https://www.spf.org/jpus-insights/spf-america-monitor/spf-america-monitor-document-detail_173.html (검색일: 2025. 1. 7.)     ■ 손 열_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손열 2025-01-08조회 : 2804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중국의 새로운 글로벌 역할의 모색, 대미 전략과 한반도

Ⅰ. 중국 5대 국제역량을 통한 ‘새로운 역할’의 모색과 제약   중국은 2025년 국제정세에 대해 우려와 경계를 표명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심화될 것이고 충돌, 분열, 대립의 위험성도 커져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 일방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공세를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혼돈의 국제정세에서 오히려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것이며 그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구적 분쟁과 도전 문제에서 자국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은 이른바 평화, 단결, 개방, 정의, 그리고 포용의 5대 역량을 새롭게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c). 중국이 5대 역량을 기반으로 외교 대상과 전략을 세분하고 혼돈의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것은 기존 중국 외교 패러다임으로부터의 중대한 변화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국, 주변국, 개도국, 그리고 다자무대 등으로 외교 대상을 구분하고 시기와 이슈에 따라 대상의 우선 순위와 구체적인 세부 외교전략을 구상하고 전개하는 패러다임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자신의 역량을 기반으로 외교 대상과 전략을 설계하는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것은 중요한 함의가 있다. 즉 중국이 스스로 글로벌 리더로서의 정체성, 위상과 역량을 갖고 있거나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은 외교 대상과 무대를 이전과 같이 굳이 구분하지 않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전방위 외교를 설계하고 전개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13년째 참석하여 연설한 ‘2024년 국제형세와 중국 외교’ 토론회의 2024년 주제는 ‘세계 대변혁과 중국의 새로운 역할(世界大变局与中国新作为)’이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d). 토론회 주제가 시사하듯이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이 초래할 불확실성과 도전을 경계하면서 다른 한편 글로벌 리더십의 공백을 기회로 포착하고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2025년 신년사에서 1997년에 처음 제시되었던 이른바 ‘책임대국론’을 새삼 언급하였다. 즉 혼란하고 복잡한 세계에서 중국이 책임을 지는 대국으로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단결과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밝혔다(人民日报 2025年01月01日).   중국이 상정하고 있는 새로운 역할의 현안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예컨대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이 평화 역량을 통해 건설적 역할을 발휘할 중대한 4대 핫 스팟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한반도, 미얀마 문제를 제시했다. 그런데 4대 핫 스팟에서 중국은 지금까지 '건설적 역할'과 동시에 '정치적 해결'을 역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정치적 해결'의 이면에는 사실상 미국책임론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으며 따라서 중국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는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왕이는 비록 4대 핫 스팟을 통한 ‘건설적 역할’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이미 두 개의 전쟁을 비롯한 주요 현안의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은 현실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요컨대 중국이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새로운 역할을 구상하고 있다기보다는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 이후 두개의 전쟁과 북핵 문제 등에서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상정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유지하여 미국에 대응하여 국익을 지키려는 사실상 대미전략 차원에서의 대비라 할 수 있다.   중국은 혼돈의 국제정세에서 역할과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이 직면한 국내의 복합 난제로 인해 글로벌 역할 확대의 의지는 2025년에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귀환이라는 불가측의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면서 경제 회생과 체제 안전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시진핑 주석도 신년사를 통해 중국 경제가 새로운 상황과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2025년에 14차 5개년 규획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집권 2기 이후 중국 외교전략은 사실상 국내 발전전략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당 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방점을 두어 왔다. 중국은 두번째 백년이 되는 2049년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 강국’ 건설이라는 장기 발전 계획을 설계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간 단계인 2035년, 그리고 2024년 7월에 개최된 20기 3중전회에서 새롭게 발전 단계로 제시된 건국 80주년이 되는 2029년을 설정하여 단계적으로 발전 성과를 달성하려는 발전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 전략 역시 이러한 단계적 발전 계획에 조응할 수 있는 대외 환경과 조건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국이 장기 발전 플랜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가장 중대한 현실적 과제는 미국의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공세를 우회하면서 발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이 구상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새로운 역할과 글로벌 리더십도 결국은 발전권 확보를 위한 외교전략의 일환이어야 하는 것이 중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Ⅱ.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중국의 명암과 전략   1. 대미 관계 4대 레드라인의 딜레마   중국의 대미 외교도 국가 장기 발전 계획과 조응하면서 기본적으로 장기 전략 위주로 설계하고 변화보다는 연속성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은 대미 외교 전략이 안정성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은 중국의 장기 대미 외교전략의 새로운 변수이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중국은 2025년에 경제 상황 관리에 집중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귀환이라는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외교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불가피한 장기 레이스로 상정하고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미중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다. 중국은 2023년 바이든 행정부 시기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기초를 마련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양국 간 대화, 갈등 관리, 신뢰 증진, 협력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와도 안정적인 관계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공세가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지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비하고자 한다. 중국은 일단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집요하고 강력하게 중국에 대한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한 충돌과 대립을 우회하면서 상황 관리 중심의 대응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기회가 포착된다면 5대 역량을 발휘해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 확장을 도모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체제의 특성상 유연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에서의 미국의 공세가 지속될 경우 대응에 대한 고민이 있다. 즉 중국이 2024년 페루 리마 미중정상회담과 왕이 연설에서 연이어 미국을 향해 주장한 이른바 대만문제, 체제와 제도, 민주인권, 그리고 발전권이라는 4개의 레드라인이 대미 외교의 고민을 대변해 주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관계 발전을 추구하지만 4개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4개 레드라인은 기존의 안보, 주권, 발전의 3대 핵심이익보다 구체적이면서 체제 안전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더욱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을 향해 체제에 대한 공세를 가장 경계하면서 이 문제에 관한 한 중국도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레드라인을 넘어서 공세를 지속할 경우 시진핑 정부는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도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돌과 대립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는 더욱 어려운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요컨대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글로벌 역할 구상의 실현은 트럼프 변수라는 중대한 걸림돌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5대 역량 기반 전방위 외교의 명암과 과제   중국은 트럼프의 귀환이 초래할 수 있는 국제정세의 새로운 긴장과 불확실성을 우려, 경계하면서도 글로벌 리더십 공백에 따른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도 갖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동맹국 간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을 상정하고 그 틈새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타진하며서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고자 한다.   왕이는 전방위 외교를 제시하는 가운데 특히 러시아, 유럽, 글로벌 사우스, 그리고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 브릭스(BRICS), G20 등 다자협력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협력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5대 역량을 발휘하고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장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국이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는 배경과 목적에는 대미 전략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적지 않은 도전과 과제를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은 주변지역의 안정화를 모색하는 한편 가능한 한 우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병행하고자 한다. 특히 주변의 지역 강국이라고 할수 있는 일본, 인도, 베트남과의 관계 발전에 집중하려는 전략이 포착되고 있다. 이들 3국은 바이든 정부에서는 미국의 대 중국 견제 네트워크 구성에 호응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던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서 동맹국들에게 관세 압박과 방위비 지출 증대를 요구하는 등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전개할 경우, 중국은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네트워크의 전열이 이완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으로 주변 지역 강국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관계 발전을 시도하면서 우호세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중국은 일본과 정상회담, 외교장관 회담을 잇달아 개최하면서 일본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 조처 해제 방안도 검토하는 등 전향적으로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24년 12월에 인도와 양국 갈등의 근원인 국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5년 만에 특별대표회의를 개최하여 국경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6개항 합의에 도달한 것은 상징적인 행보이다.   중국은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그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외교적 자율성 확대라는 중국의 요청이 수용될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인권, 환경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문제 삼아 미국에 동조하여 중국을 압박해 왔다. 그런데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유럽에도 관세 압박을 시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조기에 종식될 경우 중국 압박 연대의 중요한 연결 고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유럽 국가들을 향해서도 활발한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최근 스스로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새삼 주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외교에 적극적인 배경에도 대미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대다수의 단결’을 역설하면서 사실상 미국의 디리스킹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신흥국과 개도국 등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적극 외교 추진을 시사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2023년 7월 제13차 브릭스 안보문제 고위대표 회의에서의 왕이 외교부장 연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왕이는 독립과 자강을 추구하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의 정치적 배경이며, 발전과 부흥은 역사적 사명이며, 공평과 정의가 공통의 명제라고 주장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 요컨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키워드는 독립, 발전, 공평으로 집약된다. 즉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에 대한 ‘간섭, 기술 통제, 일방주의’에 대응하면서 다극화를 지향하는 협력 대상으로서 글로벌 사우스를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중국이 주장하는 단결의 역량을 발휘해서 글로벌 사우스를 결집하고 리드할 수 있는 자원, 능력, 그리고 명분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이동률 2024a). 우선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 시기 제3세계와는 달리 그들 내부의 일체감이나 연대의식이 강하지 않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이 '태생(天然)적'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적지 않으며 중국에 대해 일관된 지지 입장을 보내지도 않고 있다. 중국 역시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적극 외교의 배경에는 글로벌 리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미국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약화된다면 중국 내에서도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비용 대비 성과와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요컨대 시진핑 정부는 새로운 글로벌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전방위 외교를 통해 글로벌 리더로서의 위상을 강화해 가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방위 외교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미국의 대 중국 압박과 공세를 약화하거나 견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공세를 저지하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 역시 발전권 확보와 체제 유지 및 강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공백을 활용하여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보편적 가치, 표준, 그리고 공공재를 제시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중국 역시 새로운 기회와 외교 공간을 확장할수 있는 충분한 수단, 자원, 그리고 내부 여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중국이 새롭게 제시한 5대 역량이 외교 수사에 머물거나 중국 국익 우선으로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오히려 반 중국 정서를 더욱 자극하는 역풍도 초래할 수 있다.   Ⅲ. 중국의 한반도 인식 변화와 한중관계   중국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는 한반도와 한중관계에 대한 인식과 전략 구상에도 투영되어 점진적이지만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에서 한국은 중요한 협력 상대보다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안보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인식에서의 중대한 변화는 최근 몇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2024년 왕이 연설에서 좀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왕이는 한반도를 두 개의 전쟁과 병렬하여 중대한 핫 스팟으로 상정하고 중국의 평화 역량을 발휘해 관리해야 할 이슈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중대한 글로벌 과제이자 중국의 안보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결국 북핵 문제로 귀착하고, 한중 양자 차원이 아닌 글로벌 전략과 대미 전략 차원에서 인식하고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2024년 주변 외교의 성과를 언급하면서 아세안 6개국, 중앙아시아 5개국, 그리고 지역 강국인 인도, 일본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구체적인 협력 내용, 관계 발전의 성과와 의지를 피력했다. 반면 유독 한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양자 차원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2024년 5월 한중일 정상회담 이후 한중관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음에도 유독 한중관계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인식이 우리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국 내 혐중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전략적 기대와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문에 이례적으로 한반도 관련 언급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2022년 발리와 2023년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달리 중국의 공식 발표문에서는 연이어 이례적으로 한반도는 언급되지 않았다. 2023년 왕이 외교부장의 양회(兩會)기자회견에서도 한반도가 거론되지 않았다. 5년 만에 개최된 2023년 12월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도 한반도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고조되면서 중국에서 대미 전략과 미중관계의 중요성이 확장되고 상대적으로 주변외교가 대미 전략의 하위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은 한반도와 한중관계를 더욱 대미 전략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24년 양회 기자회견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한국 기자의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오랜만에 한반도를 언급했다. 왕이는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선 안 된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a)고 이례적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직접 거론했다. 그리고 2024년 5월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었다.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낳을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4b). 중러 양국이 북한 문제에서 기존의 미국 책임론 주장을 넘어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책임까지 언급한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중국의 중대한 안보 불안 이슈로 상정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다. 즉 시진핑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있고 이로 인해 완충지대인 북한의 체제 불안정도 고조되고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를 관리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하여 한국과 소통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대화와 관계 회복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하고, 아울러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선제적인 대응 차원에서 한국을 향해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문제 해결에서 한국이 기대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리더십 공백에 직면한 한국을 건너뛰고 오히려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설 경우 중국에서의 한국의 전략적 위상과 가치도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양국이 모두 한국을 사실상 패싱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약화되는 예상 밖의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더더욱 이러한 파행적 국면에 선제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칠 우려도 없지 않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안정화를 겨냥한 관리 위주의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중대한 국면의 변화가 예상되었을 때는 정책 전환과 적극적인 행보를 시도했다. 즉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는 국면에서 완충지대인 북한의 체제 위기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입지와 위상이 현저히 약화될 우려가 예상될 경우 중국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상황을 관리하고 안정시키고자 했다(이동률 2024b).   한국은 중국이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우선 상호 이해 증진을 모색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단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제 막 한중 양국이 사드 갈등 이후 8년여 간의 경색 국면을 해소하면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려는 상황에서, 비록 시점상 북중관계가 현상적으로 다소 소원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변화시키고자 접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불안정하고 불가측한 국제정세 상황에서 최근 양국 간 모색되고 있는 관계 개선의 불씨를 어떻게 살려서 활용할 것인지를 한반도 정세의 큰 그림에 대한 설계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단계적인 실행 전략을 강구해 갈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전략 경쟁이 더욱 고조되고 북한의 7차 핵 실험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북한발 한반도 불안정에 대비하고 관리하는 차원에서부터 중국과 일정한 공감대를 조성하면서 전략적 소통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   참고 문헌   이동률. 2024a.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중국의 논의, 전략과 과제.” 『중국사회과학논총』 6, 2: 64-96.   ______. 2024b. “북중관계의 ‘이상기류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GLOBAL NK. 9월 6일. https://www.globalnk.org/publication/view.php?cd=COM000156&ctype=1&s_search_keyword=china&start=10 (검색일: 2024. 12. 28.)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 “王毅就加强“全球南方”国家合作提出四点主张.” 7월 26일. https://www.mfa.gov.cn/wjbzhd/202307/t20230726_11117824.shtml (검색일: 2024. 1. 9.)   ______. 2024a. “中共中央政治局委员、 外交部长王毅就中国外交政策和对外关系回答中外记者提问.” 3월 7일. https://www.mfa.gov.cn/web/ziliao_674904/zt_674979/dnzt_674981/qtzt/2024lh/ (검색일 : 2024. 3. 13.)   ______. 2024b. 中华人民共和国和俄罗斯联邦在两国建交75周年之际关于深化新时代全面战略协作伙伴关系的联合声明(全文). 5월 16일. https://www.mfa.gov.cn/zyxw/202405/t20240516_11305860.shtml (검색일 : 2024. 12. 28.)   ______. 2024c. ”王毅:中国将坚定做和平、团结、开放、正义、包容的力量.” 12월 17일. https://www.mfa.gov.cn/wjbzhd/202412/t20241218_11496965.shtml (검색일: 2024. 12. 28.)   ______. 2024d. “勇立时代潮头,展现责任担当——在2024年国际形势与中国外交研讨会上的演讲.” 12월 17일. https://www.mfa.gov.cn/wjbzhd/202412/t20241218_11496987.shtml (검색일 : 2024. 12. 28.)   人民日报. 2025. “国家主席习近平发表二〇二五年新年贺词.” 1월 1일. http://politics.people.com.cn/n1/2025/0101/c1024-40393454.html (검색일 : 2025. 1. 1.)     ■ 이동률_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이동률 2025-01-06조회 : 1783
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① 트럼프주의 외교 전략과 세계질서의 미래, 한미관계

Ⅰ. 글로벌 리더십의 공급 부족 시대   보름 후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새로운 미국은 하나의 일탈 정도로 간주되었지만,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외교 전략은 굳건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은 7개의 경합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압도적인 득표를 기록했다. 대통령 선거인단뿐만 아니라 전체 득표수에서도 공화당은 민주당을 압도하였고, 90% 이상의 카운티에서 공화당은 득표 수를 늘렸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득표는 증가했고, 이는 과거 유색 인종과 소수 인종을 바탕으로 한 민주당의 득표 연합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2024년 선거가 대략 4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의 중요성을 가질지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서정건 2024).   만약 민주당의 승리를 가져왔던 기존의 득표 연합을 붕괴시키고, 공화당이 보다 넓은 득표의 저변, 즉 인종, 계급, 종교, 교육을 아우르는 다수의 연합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면, 앞으로 트럼프주의의 국내외 정책은 보다 강력한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하상응 2024).   트럼프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국제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국제 공공재의 제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국제질서에 미치는 함의는 크다. 더구나 지금의 국제질서는 어느 때보다 글로벌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국제질서라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느끼는 당혹감은 클 수밖에 없다. 2024년을 되돌아보면, 지구는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한 해를 보였다.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상의 기후 상승을 보였고, 이는 파리 기후협약이 장기적 목표로 하는 온도 상승 기준을 일시적이나마 넘어선 상황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류는 많은 문제 해결에 희망을 걸었지만, 막상 인공지능을 발명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박사는 향후 30년 내에 인간이 인공지능에 압도되어 멸종할 가능성이 10%에서 20%에 달한다는 암울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더욱더 핵무기의 사용에 집착하고 있고,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핵전략의 수정을 작년 11월 단행한 바도 있다.   인류 공멸의 위기 앞에서 주권국가 체제가 가지는 한계는 너무나 명백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는 완전한 지구 거버넌스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힘의 지배와 규칙의 지배를 나름대로 조합한 하나의 질서였다고 할 수 있다. 30년의 단극 패권 체제를 지나면서 미국의 힘은 소진되고, 미국 국민이 단일 패권 사업에 대한 우려와 염증도 거의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때보다 지구적 공공재가 필요한 시대에 들어선 인류는 이제 미국의 리더십이 가장 약화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많은 논자들은 지금 이 시대가 미중 전략 경쟁에 비롯된 신냉전 시대나, 혹은 다수의 강대국들 혹은 국가들의 세력 연합에 기초한 다극체제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냉전을 돌아보면, 미소 초강대국의 무한한 힘의 경쟁인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적대적 상호 의존과 합의가 존재했다. 미중 간에도 그러한 합의가 파국으로 귀결되지 않는 하나의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다극체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패권의 부재뿐 아니라, 다극화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전면 전쟁으로 귀결된 사례들이다. 18세기 유럽의 다극체제는 세력 균형 체제를 이루어, 전쟁을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으면서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다. 18세기 유럽 세력균형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유럽 국가 저변에 흐르는 문화적 합의, 국제정치에 대한 공동의 비전으로, 군사력에 기초하여도 단단한 규범적 합의가 작동했던 것이다.   만약 다극체제가 도래한다면, 지금 세계의 강대국들이 그러한 규범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이나 공통의 비전이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소위 세계적인 수정주의의 축(axis of revisionism)들이 자유주의 세력들과 인류 보존 및 국제질서를 위한 합의를 함께 만들어 가며, 다극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규범을 갖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Ⅱ. 트럼프주의 외교 전략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흔히 트럼프주의라고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국내외 정책 패키지는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에서 추구했던 정책들과 작년 대선 과정에서 제시했던 정책 공약들은 상당한 일관성을 가지며, 1기 행정부의 사례를 되돌아볼 때 공약의 실현도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명확한 국내정치와 외교 정책에 대한 철학과 체계적인 사고를 보이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다양한 정책 공약들이 하나의 “주의(ism)”를 성립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이혜정 2024).   약화된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경제적 민족주의의 정책 패키지들, 새로운 전쟁의 발발을 막고 기존 전쟁을 마감함으로써 미국 국력의 소진을 막는 자제(restraint)적인 외교 전략들, 이를 통해 적대국과 합의를 이끌어내고 동맹국들을 압박하여 미국의 경제적 번영과 안정적 국제환경을 만드는 정책들이 트럼프주의 외교 정책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 민족주의와 압도적 군사력을 통한 협상에 의한 평화, 다자주의보다는 일방주의적인 외교 정책, 광범위한 규칙 기반 외교보다는 거래적 외교를 통한 미국 국익의 극대화, 이를 위한 국내정치 환경의 조성 등이 트럼프주의 정책 패키지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종전 혹은 정전을 시도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부터 확산된 중동 전체의 불안정을 조속히 해결하는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타협, 친이스라엘·반이란 정책의 실현, 중단된 중동 데탕트 프로세스의 추진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양자적 거래 외교가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영향력에 힘입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마냥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 즉 우크라이나의 안보에 대한 향후 공약 및 유럽 안보 체제 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의 미래를 둘러싼 다양한 우려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정점으로 표출된 서방의 동진으로 인한 러시아의 위협감 해결 문제,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 및 주민의 사후 처리 문제, 전쟁 보상 및 전쟁 범죄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중동의 지형 역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몰락, 헤즈볼라·하마스·이란으로 구성된 저항의 축 약화, 우파 민족주의가 장악한 이스라엘의 공세적 외교의 미래, 중동 평화 포뮬러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대중 전략은 가장 도전적인 과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0%의 대중 관세라는 강력한 경제 수단에 의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려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 또한, 1기 행정부 때 시작된 광범위한 군사 혁신에 기초하여 군사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사실 바이든(Joe Biden) 정부 역시 물려받은 전략으로, 한편으로는 경제적 민족주의를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기정학(技政學)적 경쟁 대상인 중국을 제압하려는 경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소위 “디리스킹” 전략에서 전면적인 경제 탈동조화를 추구하는 디커플링 전략으로 변화할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대중 전략이 과연 어떠한 최종 상태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승리 후 열린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을 논의하는 대신 시진핑(習近平) 주석과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과시했다. 정상 간의 친분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국가 간 압박 정책을 추진하는 양면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이는 미중 간의 최종 상태를 예상하는 상황에서 더욱 복합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과거 4년간 미중 관계가 대립과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공동 이익에 기초한 협력과 관리의 관계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The White House 2024). 경쟁과 대립의 영역이 있어도 협력과 타협의 영역이 존재했음을 중시하는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향후 대중 관계에서 이러한 경쟁과 협력의 이중 관계를 유지할지, 그 과정에서 미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대중 전략의 최종 상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러한 개별 정책들을 총괄적으로 볼 때, 트럼프주의 외교가 궁극적으로 어떠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네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 트럼프주의를 미국의 간헐적 일방주의 외교 전략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 전략을 추진하면서, 패권적 기반이 되는 국력이 소진되었을 때 일방주의 전략을 수시로 취해 왔다(전재성 2019). 1970년대 초반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의 전략이나, 1980년대 중반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정책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공공재를 기반으로 동맹국들의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내고, 기존의 미국 다자주의 정책의 틀을 재조정함으로써 미국의 국력을 축적하고자 하는 일방주의적 변화를 보였다.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가 다자주의에 기초한 합의의 질서라고 하지만, 자유주의 질서가 지구적 리더십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면, 미국이라는 패권 국가는 간헐적 일방주의에 기초한 국력의 축적을 반드시 필요로 했던 것이다. 현재 30년의 단극 체제를 거치면서 미국의 국력 소진은 극에 달해 있다. 이미 미국이 지고 있는 국가 부채의 1년 이자 액수가 미국 국방비 총액을 넘어서는 상황에 도달했다. 현재는 미국이 달러 기축통화 체제 속에서 국가 부채와 무역 적자 및 재정 적자를 충당하며 나아가고 있지만, 미국의 국력이 소진되어 달러의 신뢰성이 상실될 때 현재의 패권 체제는 더 이상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력의 축적을 위해 강압적 외교의 측면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맹국에 대한 압박과 전비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다양한 평화 전략 등은 미국의 국력 소모를 막고 새롭게 패권으로 부상할 수 있는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이러한 패권 전략의 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미국 패권의 복원을 위한 간헐적 일방주의의 반복적 패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시혜적(benevolent) 패권에서 강압적(coercive) 패권으로의 근본적 변화로 보는 시각이다(Gilpin 1981; Gilpin 1987).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시대적 패권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다. 미국의 강력한 국력을 기반으로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구적 공공재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필요한 다자주의적 안보 체제의 제공, 개방적인 자유주의 국제 경제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기초, 그리고 자유주의 질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규범적 태도 등을 유지해 왔다.   강압적 패권은 이러한 모든 질서를 미국의 힘에 의한 강압으로 유지하는 질서이다. 간헐적 일방주의의 정책 변화 속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동맹을 통한 안보의 틀을 자발적으로 제공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냈다. 만약 미국이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내면서도 동맹국들의 안보적 공헌을 강압한다면, 미국이 제공하는 편익보다 동맹국들이 치러야 할 비용 자체가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동맹국들은 미국이 주는 편익과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 사이의 계산이 아니라, 미국이 시대적 패권으로 제공해 왔던 많은 편익 자체를 거부당했을 때의 비용만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미국이 강압적 패권으로 남아 있을 때의 질서, 편익과 날로 증가하고 있는 비용 사이의 관계 속에서 동맹국들과 파트너 국가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국제사회는 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강압적 패권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추진되고 있는 트럼프주의 외교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셋째, 강압적 패권과 혼동되고 있는 보통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전략이다. 만약 트럼프주의가 패권 전략 자체를 포기하는 보통 강대국의 전략이라면, 이는 국제질서에 주는 함의가 매우 크다. 패권은 강압적 패권이라 하더라도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미국이 유지해 왔던 기본 틀을 지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러 본위의 기축통화 체제와 핵의 준독점에 의한 비확산 체제, 그리고 선택적 일방주의에 기초해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다자주의적 국제 제도 등은 패권 체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 특성이다.   만약 미국이 패권 체제를 포기하고 보통 강대국으로서 외교 정책을 조정한다면, 기축통화 체제와 핵 독점, 그리고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 국제 제도의 틀은 근본적으로 무너질 것이다. 미국이 다른 강대국들보다 훨씬 강한 강대국이 되더라도, 패권 국가의 외교 전략을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미국의 수위(primacy) 전략을 둘러싸고 패권 전략의 하나로 해석하는 방식과, 보통 국가이되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앞선 국가로 해석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만약 미국이 보통 강대국으로서 수위 전략을 추구하게 된다면, 이는 엄청난 국제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강압적 패권에서 보통 강대국 전략으로 변화할 때, 미국이 포기해야 할 달러 기축통화의 지위와 핵 확장억제로 유지했던 동맹국에 대한 강력한 협상 우위, 그리고 미국이 주도했던 다자주의 국제 제도의 리더십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미국 스스로도 큰 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주의 외교 전략이 자제 전략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핵심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은 지역에서 후퇴하고,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지역에 필요한 만큼 개입하는 선택적 개입 전략이 트럼프주의 외교 전략의 양태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제 전략이 패권 전략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패권 전략에서 보통 강대국 전략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인지를 아직 판별할 수는 없다. 자제 전략의 기초를 이루는 현실주의 전략, 혹은 보수주의나 민족주의 전략 중 어떤 형태의 결합을 추구하는지 역시 불분명하다(Priebe et al. 2024).   트럼프주의의 불명확성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외교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화당 내의 다양한 분파 때문이기도 하다. 공화당 내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공화당 우파가 자리 잡고 있다. 소위 보수적 국제주의라 할 수 있는 흐름으로, 이들은 미국의 강력한 패권 정책 유지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권보람 2024; Schake 2024). 미국이 비록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바이든 정부의 연속된 군사적 억제 실패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국내총생산 대비 5% 정도의 국방비 지출을 목표로 하고, 강력한 지구적 군사 개입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자제 전략과 배치되는 전략으로, 포괄적 개입을 통해 미국이 얻고 있는 구조적 국가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정반대에는 신우파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지난 30년 간의 단극 패권 체제가 미국의 국력을 소진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의 정신과 문화를 쇠퇴시켰다고 주장한다. 전통 가치를 복원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보다 사회민주주의를 다시 강화하며 전통적 보수의 가치를 되살려 미국의 국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반대하고 자제 전략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트럼프주의를 더욱 강력하게 주창하는 밴스(J. D. Vance) 부통령 당선인과 탈자유주의 세력이 주장하는 외교 정책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차태서 2024).   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미국의 패권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친 개입을 자제하는 외교 전략상의 균형점을 보이고 있다. 강력한 군사적 개입보다는 경제적 수단을 통해 미국의 국익 극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이러한 분파들이 어떠한 지형을 이룰지는 미국 국내정치의 변화, 국민들의 여론 변화,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대응에 달려 있다. 만약 미국이 자제 전략과 더 나아가 보통 강대국 전략의 한계를 깨달아 일정한 수준의 지구적 리더십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며, 이를 위해 신고립주의보다는 선택적 개입에 의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트럼프주의의 방향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사적 개입보다 경제적 수단을 선호하고, 지구적 개입보다 신고립주의 성향을 강화하는 여론이 우세하다면, 트럼프주의의 외교 정책의 향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국 및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향후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겪을 변화를 예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Ⅲ. 트럼프 2기 정부 4년의 굴곡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그간 공언해 왔던 관세 정책의 실현, 이민 정책의 본격화, 소위 “심층 국가”라는 국내 체제의 개혁,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다자주의 외교로부터의 탈피, 기후 변화 등 기존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변화,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중동 평화, 동맹에 대한 분담금 압박 등을 추진할 것이다. 특히 관세 정책은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외교 정책의 핵심 사안이다. 벌써부터 중국에 대한 60%의 관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의 특별 관세, 그리고 10%의 보편 관세 등을 예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협상 전술로 상상하기 어려운 압박을 통해 미국에게 유리한 협상의 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린란드 매입, 파나마 운하 매입, 미국의 51번째 주로 캐나다의 편입 등을 공언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실제 북극해나 남미에 대한 중국의 개입을 우려하는 정책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향후 다른 국가들에게 무리한 압박을 사전에 가해 양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협상 전술로도 볼 수 있다.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나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많은 공약들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리한 협상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전술적 부분도 공존한다. 따라서 실제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체적인 정책의 틀은 유지되겠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변화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트럼프 1기를 경험한 많은 국가들은 트럼프 정책이 불확실성(uncertainty)을 가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할 정책의 내용은 이미 확실해졌다. 다만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이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떠한 형태로, 그리고 구체적인 어떠한 협상 조건으로 협상을 추진할지는 여전히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협상 전술의 문제로서, 예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많은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제적으로 선물을 안기면서 자국에 유리한 협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추진하는 관세 중심의 경제 정책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존재한다. 미국 경제의 약화는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서비스업에 집중했던 기존의 경제전략의 흐름,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정치적 고려를 상대적으로 약화시켰던 지구화 전략,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저하게 약화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등에서 비롯된다. 코로나 사태와 미중 전략 경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상황 악화에서 공급망 교란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자체 완결적인 제조업 공급망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급망의 추진이 경제적으로 과연 필요한지, 미국이 제조업에 투자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지, 미국의 경쟁력 강화에 관세정책이 정말 도움이 되는지 등 근본적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관세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소비자 물가 상승, 주요 국가들의 보복관세에서 비롯되는 미국 핵심 부문의 약화, 다른 국가들의 반발 등 많은 걸림돌도 존재하고 있다. 만약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 국내적으로도 많은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경쟁력 향상을 초래하지도 못한다면, 관세 정책은 수 년 내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양준석 2024).   산업정책 역시 미국이 전통적으로 추진해 왔던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익숙지 않은 미국의 경제 체제 성격상 어떠한 형태로 어떻게 유지될지도 불확실하다. 바이든 정부는 과학 및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산업 정책의 틀을 의회 입법으로 마련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떠한 산업 정책의 틀을 가지고 어떠한 입법 기반으로 유지할지도 여전히 불명확한 상황이다(정영우 2024). 바이든 정부는 소위 “디리스킹” 전략으로 중국과의 첨단기술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대중 기술 정책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간선거를 앞둔 향후 2년 간 미국의 관세 정책이 어떠할지, 산업 정책이 어떠한 변화를 겪을지를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많은 국가들은 초기에 트럼프 정부의 공격을 피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의 대외 전략이 어떠한 모습을 갖추게 될지 예의주시하면서, 트럼프 2기 정부의 성격 파악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Ⅳ. 향후의 한미관계   트럼프주의 외교 정책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직 성격 규정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은 쉽지 않다. 만약 미국이 간헐적 일방주의 외교를 추진하는 것이라면, 한국은 미국 패권 전략의 변화를 보아 가면서 한미 협력 전략을 조정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만약 미국이 강압적 패권 전략으로 변화되고 있다면, 변화된 한미관계 속에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고, 변화될 국제질서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외교 정책의 상당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만약 미국 스스로가 보통 강대국 전략을 추진하고, 국제질서는 더 이상 패권 체제가 아닌 다극체제로 이행할 것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외교는 매우 현실주의적인 외교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한국의 외교는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경제적 주도를 전제로 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보존과 발전을 중요한 외교 명제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와 한국이 추진했던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대미 전략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북한의 공세적 군사 전략을 억제하고, 중국의 현상 변경 및 지정학 전략에 대비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핵심이다. 특히 핵 확장 억제의 공약을 더욱 공고히 하여 미국의 보장(assurance) 정책을 강하게 요구하는 한편,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것처럼, 미국 외교 정책과 트럼프주의 외교 정책 전반의 기조가 불명확한 가운데, 한국 핵무장에 대한 다양한 합리적 제안들이나 북핵 전략 변화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한국 핵무장이 궁극적으로 한미 군사 협력 관계에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반드시 지구적 비핵화와 핵 확장 억제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점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Kelly and Kim 2024).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간의 소위 수정주의의 축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가 북한이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과의 포괄적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북한의 핵 동결을 기반으로 전략적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Alperovitch and Radchenko 2024).   한국은 아직까지는 미국의 핵 확장억제 공약을 강력히 요구하고, 지구적 핵확산 방지가 한국의 이익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 질서, 그리고 미국의 안보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미국에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엘브리지 콜비(Elbridge A. Colby) 국방부 차관 지명자나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전 국무장관 같은 인물들이 간혹 한국의 핵무장을 고려하는 듯한 주장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핵 질서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가 선결 과제임은 명확하다.   둘째, 한국은 개방적 통상 국가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현재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패권 체제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국제질서의 향방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막대한 지구적 공공재의 수요 때문에 한 국가가 지구적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점차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30년 미국 단극 체제 속에서 미국이 겪었던 다양한 고난들이 이를 대변한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설사 중국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중국 스스로 세상을 이끌 수 있는 단극 패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여러 선진국들과의 지배 연합을 어떻게 이루고, 더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를 포괄하는 자유주의적이면서도 민주주의적인 국제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가 중요하다. 현재 한국은 미국을 제외한 중국이나 러시아 등 수정주의 국가들이 지구적 리더십을 포용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하면서 다른 국가들을 적절히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의 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한국은 한편으로는 미국 없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패권 없는 리더십 연대가 가능할지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도 강력한 군사력과 혁신적인 경제력, 문화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국가로 생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유럽, 여전히 군사력이 충분치 않은 일본과 호주 등 세계 동맹 상대국들을 볼 때, 동맹으로서 한국의 가치는 대단히 높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미래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동시에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파트너들, 특히 일본과 호주 등과의 협력 가능성을 좀 더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정부가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소다자 협의에 커다란 흥미를 보이지 않을 것임은 예견되고 있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 협정 등에서 마련된 한미일 소다자 협의는 3국 협력이라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한 연대의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국제질서를 위한 협력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이 과정에서 한미 간의 신기술 분야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여태까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술 혁신을 통한 경제력의 발전, 그리고 기업의 역할, 국민들의 노력이 대단히 중요했다. 설사 미국 트럼프식 외교 정책이 향후 국제질서의 약화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미국이 가지고 있는 혁신 기술을 한국이 충실히 활용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미국 스스로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미래를 위해 한국이 어떤 형태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 역시 국제질서의 변화와 지구적 흐름 속에서 많은 국내정치의 격변을 겪고 있다. 이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는 한몸으로 움직이며, 국제정치의 흐름에서 면역력을 가진 국내체제를 유지할 길은 없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두면서 국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동시에 국제질서의 파국을 막기 위한 한국 나름의 리더십의 모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   참고 문헌   권보람. 2024. “[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전망: 외교정책결정집단을 중심으로.” EAI 워킹페이퍼. 12월 19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23&board=kor_workingpaper (검색일: 2025년 1월 2일)   서정건. 2024. “[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①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양극화 정치.” EAI 워킹페이퍼. 12월 12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17&board=kor_workingpaper (검색일: 2025년 1월 2일)   양준석. 2024. “[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② 미국 통상정책의 현재와 미래: 보호주의의 재림과 강화.” EAI 워킹페이퍼. 12월 12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18&board=kor_workingpaper (검색일: 2025년 1월 2일)   이혜정. 2024. “트럼프의 귀환: 복합 위기와 미국의 재건.” 『동향과 전망』 123호(2024 겨울).   전재성. 2019. 『주권과 국제정치: 근대 주권국가체제의 제국적 성격』.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정영우. 2024. “[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④ 산업정책 논쟁으로 본 2024 미국 대선.” EAI 워킹페이퍼. 12월 16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20&board=kor_workingpaper (검색일: 2025년 1월 2일)   차태서. 2024. “[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⑥ 신우파의 부상과 미래 미국.” EAI 워킹페이퍼. 12월 19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24&board=kor_workingpaper (검색일: 2025년 1월 2일)   하상응. 2024. “[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③ 2024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본 미국 민주당의 미래.” EAI 워킹페이퍼. 12월 16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819&board=kor_workingpaper (검색일: 2025년 1월 2일)   Alperovitch, Dmitri, and Sergey Radchenko. 2024. “Trump-Kim, Part II, Could Shake Up the World.”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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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 2025-01-03조회 : 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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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전망: 외교정책결정집단을 중심으로

I. 2024년 트럼프 재선의 의미와 미국 외교정책   2024년 한 해동안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미국 국내정치를 주요 변수로, 국제안보환경을 상수로 취급하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파급효과를 전망하는데 주력했다. 여론조사 기관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Donald J. Trump) 후보의 명확한 승리로 대선이 마무리되었으며,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선을 축하하고 의기투합하려는 각국 정상의 행보가 눈에 띄는 가운데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는 반군세력이 갑작스럽게 승기를 잡는 등 국제정치의 역동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운동을 중심으로 결집한 공화당 소속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승리는 현상타파 공약의 승리이자 미국 시장의 개방과 불필요한 국력의 해외투사를 거부하는 폐쇄적 의제(closed agenda)의 승리였다. 후보의 속성이나 양당의 선거 캠페인, 지지기반의 인구학적 변화도 중요했지만 현직자에게 불리한 구조적 요인이 유의미하게 작용했는데, 이는 팬데믹 이후 확산된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현직자들이 대거 교체되는 세계적인 현상의 일부였다. 저자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공화당 내 보수적 민족주의 전통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권보람 2024).. 특히, 미국의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와 국제 공공재 제공 차원에서 대외개입을 중시하는 국제주의 간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성과 구체적 결과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화당이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까지 장악한 단점정부로 출범하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의 정책 추진력을 제도적으로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반엘리트주의(Anti-elitism), 경제적 포퓰리즘(populism)으로 지지기반을 동원하고 연방정부에서 주와 지역 정부에 이르기까지 충성파를 기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약하다. 또한 트럼프의 재선으로 인해 MAGA 지지세력이 공화당 내 주류로 세력화되어 외부세력에 의한 운동정치가 정당정치를 지배하는 형국이다(손병권 2024).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타파하는 것을 지향하며, 국제규범과 제도를 거부하고 자유무역과 동맹체제를 재편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정책 추진력 확보에 더한 MAGA 의제의 선점이 예고되면서 공유된 가치가 아닌 이익 기반의 미국 우선주의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투사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본 고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수 외 공화당을 포함한 조직, 국가 수뇌부 차원의 외교정책결정집단을 조명함으로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전망한다. 미국이 당면한 국제안보현안 중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러-우 전쟁에 초점을 맞추어 외교정책결정집단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동맹국에 주는 함의를 도출한다.   II. 미국 외교정책결정집단의 구성   1. 개인   공화당에서 세 번 연속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대중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그의 2024년 유세가 2016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새롭게 야기된 국제 위기에 대한 대응 의지 표명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는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우 전쟁에 의해 발생한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비판하고 미국의 국익과 부합하는 종전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Knickmeyer 2024). [1] 그는 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바이든(Joe Biden) 행정부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이는 러시아에 대한 억제 실패로 이어져 국제안보의 불안정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Rashid 2024). [2] 또한 트럼프는 푸틴(Vladimir Putin) 의 무력사용이 기발하고 효과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임기 중에는 미국이 존중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억제가 유효했다고 강조했으며(Dress 2022; Griffiths and Haltiwanger 2022), [3] 바이든 행정부의 억제 실패로 심화된 강대국 간 연대와 핵경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트럼프는 러시아와 중국 간 연대가 지난 3년반 동안 강화되었고, 이란과 북한까지 합세한 상황에서 이들은 더 이상 다른 세력의 도움이 불필요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했으며(Bloomberg July/16/2024) [4] 핵무기의 파괴력을 강조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억제 실패로 핵무기 사용이 쉽게 거론되는 등 정상화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미국의 핵 사용 능력이 제대로 시연되지 못함을 비판했다(Trump 2024b). [5] 이런 배경 속에서 트럼프는 대외 개입에 대한 자제(restraint), 특히 미군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에 일관되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2003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해외에서의 민주 국가 건설을 비판해온 이력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처벌 방식에 대한 입장 표명도 있었다. 그는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의 대응과 지원 부족 때문에 미국이 우선순위가 낮은 국제 분쟁에 과도하게 개입하며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Trump 2024a). [6] 러시아를 처벌하는 경제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으며, 사후 대응보다 강한 억제에 기반한 공격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7] 또한 자신의 첫 임기동안 승인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덕분에 우크라이나가 효과적인 방어전을 펼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8] 트럼프는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푸틴 대통령,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대통령과 각각 직접 소통하여 24시간 내 종전 합의를 성공적으로 도출하겠다고 공언했다(Forest 2023). [9] 대선후보 TV토론 중 사회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루 내로 러-우 전쟁을 해결하겠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두 정상과 유지해 온 좋은 관계와 그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협상을 성공시키겠다고 답했다(Schatz 2024). [10] 정치인의 선거 레토릭(rhetoric)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트럼프는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거나 전쟁에 연루되는 것을 거부하고, 이제 재선의 부담을 덜었기 때문에 외교정책 모험보다 평화 창출자(peace maker)로서의 업적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할 수 있다. 즉, 이민과 경제 등 MAGA 국내 의제 관철을 충성파 관료에 일정 부분 위임한 채 본인은 정상외교를 통한 외교정책 성과 만들기에 집중하고자 할 수 있다.   2. 국가   미국 수뇌부가 연속성 있게 유지해온 국가전략, 즉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의 목표는 탈냉전 이후 미국과 중국 간 국력 격차가 예상보다 빨리 좁혀지면서 대중국 견제로 수렴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최우선적 위협으로 인식되어왔으며, 오랜 담론경쟁 끝에 미국 대전략의 궤도는 팽창주의가 아닌 축소지향적인 쪽으로 정해졌다. 집권 기간동안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국제주의와 다자주의, 자유무역주의를 약화시키려는 의지와 행태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위(primacy)를 추구하는 대전략의 기본요소인 군사적 패권, 동맹국에 대한 안전보장, 국제제도와 시장으로의 통합, 그리고 핵 비확산은 유지되었다. 이는 미국 수뇌부의 관성에 더해 미국 외교정책결정을 주도하는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이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Porter 2018).   2025년 이후 미국이 직면한 국제안보환경은 국내정치 상황, 대통령의 주도 능력에 더해 기존 수위 추구 전략에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20여년동안 지속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지만 중동을 포함한 여러 지역 갈등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러-우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지속되며 규칙기반 국제질서가 현격히 약화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지정학의 귀환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있고, 대안적 질서 형성을 위한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탈진영적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도 정치력을 확보했다. 또한 중국의 핵전력 확대가 가속화되면서 미국은 핵을 보유한 복수의 강대국을 동시에 억제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한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미중 간 세력균형 변화추이가 완화되는 가운데 미중 전략적 경쟁은 더욱 첨예화 중이다. 미국 주도의 격자형 동맹 네트워크가 중국 주도의 경제, 안보 구조(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 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GDI)와 대립하면서 한반도 주변에 한미일 대 중러북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렇듯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도전이 증대하는 가운데 국내정치적으로는 재정적자 증대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민주적 거버넌스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파생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 2.0, 대중국 우위 선점,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로 정리해볼 수 있으며, 이는 미국의 글로벌 동맹전략과 연계되어 있다. 우선, 2024년 공화당 정강은 미국의 국익이 “미 본토 방어, 국민과 국경, 위대한 성조기, 신이 부여한 권리 보호에서 시작한다”고 규정하고, 미국의 외교정책은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미국 국익 수호를 위해 수행된다고 공언했다. “미국의 국익에 따라 때로는 독립적으로 행동한다”고 명시한 것이 트럼프 2기 미국 우선주의 2.0의 특징이다(Fleitz 2024).   중국은 미국의 인태지역 및 글로벌 리더십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국으로 반드시 저지해야 하는 대상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 특히 대만에 대한 거부적 방어 강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로써 국가안보 논리를 앞세워 경제적 효율성보다 회복력을 강조하는 등 단기적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미래 장기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전략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맹국의 역할과 책무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비용을 감수하게 만드는 대중국 디커플링(de-coupling) 등의 압박이 동맹국에게 더 강하게 가해질 전망이다. 군사안보적인 차원에서 미국은 전략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태지역 내 동맹의 군사 및 국방자원의 통합을 추진하며 군사력 건설, 핵전력 증강 및 현대화를 추구하는 한편, 산업자원 통합까지 시도하며 동맹 협력에 기반한 방위산업 기반 증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CSIS 2024). 이러한 변화는 동맹 활용 전략이 미국의 동맹역할 확대, 동맹자원 활용 극대화, 비용 절감을 위한 동맹국과의 핵-재래식 안보지원 분업화 등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동맹 대상의 핵 억지에 기반한 미국의 안보 지원은 지속되지만, 동맹국이 재래식 군사안보에 기여할 것을 확대하는 요구는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The Heritage Foundation 2023). [11]   2024년 공화당 정강은 또한 미국군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현대화된, 치명적 군대로 발전시킬 것을 천명하고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미국은 특히 두 개 이상의 전구에서 동시적, 전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분쟁 가능성에 대한 검토와 경계를 높이고 다양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RAND Corporation, 2024). 일례로 상원 군사위원장 로저 위커(Roger Wicker)가 주도해서 작성한 “21세기 힘에 의한 평화: 미군에 대한 투자(21st Century Peace Through Strength: A Generational Investment in the U.S. Military)” 보고서는 미국 국방예산 5% 인상을 비롯한 핵전력 확대 등을 파격적으로 제언하고 있다.   3. 조직   외교정책결정집단에서 조직, 그 중에서 정당은 정권 획득과 다수당 지위 구축을 추구하면서 당론을 통해 지지기반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결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화당은 2016년 트럼프가 아웃사이더로서 대선 후보로 처음 지명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래, 전통적 보수 정당에서 트럼프의 당으로 변모했으며, 이는 당내 통제와 개인화를 토대로 기존 보수 지지층을 선동하고 동원하는 그의 전략에 따라 건설된 측면이 있다(김유진, 강인선 2024). 2020년 재선에 실패하고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하면서 트럼프의 당내 입지가 약화되는 고비도 있었지만, 트럼프는 큰 어려움 없이 올해 경선을 통과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당선으로 인해 공화당은 MAGA를 지향하는 이념적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더욱 결집하게 되었으며, 당과 의회, 연방정부 내 주요 보직에는 MAGA 성향의 인사가 지명되고 있다.   MAGA 세력이 공화당의 주류가 된 듯하지만 여전히 당내에는 다양한 정파가 공존하고, 주요 외교정책 현안에 대한 차별적 비전 내지는 정책 선호도와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은 대체로 미국의 생활방식과 사회를 보존하기 위해 대외관여(deep engagement)에 신중하지만, 외교정책에 대한 다양한 동기 중심으로 적극적 개입주의에서 소극적 비개입주의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그려볼 수 있다(Dueck 2019). 한 축에는 글로벌 공공재 제공을 부담하고 대외문제에 적극 개입하고자 하는 보수적 개입주의 성향의 전통적 공화당 세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축에는 비용을 절감하고 국제분쟁에 대한 연루를 회피하려는 보수적 비개입주의 세력이 있다(Dueck 2019). [12] 그리고 그 사이에는 국제규범을 배제한 미국 일방주의를 주창하고 평소 비개입을 유지하다가 미국 이익이 침해 받으면 몇 배로 강하게 응징하는 보수적 강경주의(hard-liner) 세력이 있다. 트럼프가 바로 여기에 속하며, 개입주의와 비개입주의적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가 어떤 보수주의 대전략과 외교정책을 지향할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4. 소결   미국 외교정책결정집단을 개인, 국가, 조직 차원에서 살펴보면 이질적인 동기를 갖는 행위자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미국의 대전략 아래 외교정책의 방향성은 결정되어도 추진 내용과 강도는 조직 내 행위자들의 능동성(agency)에 인해 조정될 수 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총 득표수와 선거인단의 과반 이상을 얻어 국민으로부터 강한 권한을 부여 받았다고 자평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정책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노골적으로 발산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의회를 우회해서 본인 주도로 외교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 입법보다 행정명령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일 것이다. MAGA 충성파들이 막강한 외교정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을 호위한다면 미국 예외주의 기조는 약화되고 미국 국력과 영향력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각료들의 실전 대응 능력과 의회와 관료제의 절차, 국가안보 전문가 집단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외교정책결정집단 내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최종 미국 외교정책 산물이 도출된다고 보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조직 내 MAGA 세력의 결집이 얼마나 지속되는지가 중요하다. 이념이 아닌 실리 중심의 사고를 하는 트럼프는 MAGA 세력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트럼프 지지자의 상당수는 그의 말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된다(McCreesh 2024). 금년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 특히 2020년에 비해 과반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한 청년층(18-29세) 중에는 이민과 기후변화, 작은 정부에 대한 MAGA 의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절반 정도였다(Thomson-Deveaux 2024). 게다가 현재 MAGA 운동의 핵심은 트럼프 개인이며, 그를 대체할 인물이 없는 상황이다(Siders 2024). 이를 통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MAGA 깃발 아래 모인 지지자들의 결집 정도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기간 동안 약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어진 4년이라는 대통령 임기는 실제 정책을 수행하고 평가하기에 얼마나 충분한 시간인지 불분명하다. 실제 트럼프의 정책 내용이나 실효성보다 변화라는 시대 정신을 좇아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인내심도 중요한 변수이고, 국가나 조직의 이익보다 사익을 중시하는 트럼프 개인도 중요한 영향 요인이다. 밴스(J.D.Vance)와 일론 머스크(Elon Musk)로 각각 대표되는 포퓰리즘과 역동주의가 진화하고 융합됨으로써 미국 공화당의 미래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것이다(Douthat 2024).   III. 러-우 전쟁 사례 적용   2022년 러-우 전쟁 발발 이후부터 2024년 선거기간 동안 트럼프의 관련 발언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국익과 무관한 유럽 전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핵심이다. 비용을 절감하고 연루를 회피하고자 하는 미국 외교정책결정집단의 개인이나 조직의 동기와, 대중국 우위를 선점하려는 국가의 동기가 합치되기 때문에 종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 미국 국민도 전쟁에 대한 피로도가 높다. 지난 8-10월에 실시한 갤럽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응답자의 52%가 가능한 빠른 종전을 원하고, 종전 지지자 중 52%는 빼앗긴 영토를 일부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Vigers 2024).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인의 의견을 묻는 11월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는 당파적 결과가 도출되었다. 공화당 지지자의 42%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과도한 지원을 해준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13%만 이에 동조했으며, 공화당 지지자 중 러시아 침공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고 인식하는 응답자는 36%로 민주당 지지자의 65%보다 현저히 낮았다. 아울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국 국익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고 보는 민주당 지지자는 42%인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19%에 그쳤다(Copeland 2024).   미국이 러-우 전쟁 당사자에게 제안하는 협상안은 키스 캘로그(Keith Kellogg) 우크라이나 특사가 주도해서 설계하고 대통령이 승인하는 방식으로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직후 양국 정상과 연락했으며, 이미 젤렌스키 대통령과 직접 만난 바 있다. 공화당 내 러-우 전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기 때문에 실제 해법은 이와 조율될 여지가 있다. 켈로그 특사는 러시아에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확대 가능성과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지연을 채찍과 당근으로, 우크라이나에게는 무기 지원 축소나 전격 중단 가능성을 매개로 협상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영토 회복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교적 수단만 활용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분적인 대러 제재 완화와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러시아의 자금지원이 필요하며, “포괄적이고 검증가능한, 안전보장을 제공해주는 합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Kellogg and Fleitz 2024). 트럼프는 본인이 러-우 전쟁 종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데, 이는 평화 창출자로서의 업적 만들기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개인의 종전 의지가 충만하다고 러-우 전쟁 당사자와 이해관계자, 전황이 자동으로 협조해주는 것은 아니다.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러-우 전쟁의 종전을 계기로 미-러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도 있지만, 예비협상 단계에서 푸틴이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될 경우, 트럼프가 수용하지 않을 수 있고, 전쟁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한편, 공화당 내 러-우 전쟁에 대한 지원과 종전 방식에 대한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보수적 개입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러시아의 불법적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주권에 주는 부정적 영향을 비판하고,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지속을 주장한다. 일례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와 국무부에서 근무한 코리 샤케(Kori Schake)는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외교가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인데,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미 정보당국이 우크라이나와 나토 동맹국에게 러시아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상황에서 미흡하게 대처했을 뿐 아니라 왜 우크라이나 방어가 대승적으로 중요한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Schake 2022). 그는 러-우 전쟁을 통해 미국이 2023년 국방지출의 5% 미만을 투입하고 미군을 단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전략적 이익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전쟁은 러시아군을 소모했고, 러시아의 불법 행위를 묵인하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미국에게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 미국의 입지가 강화되었다는 논리였다(Schake and Tavares 2023). 연방정부의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공화당의 목표는 중요하지만,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금의 60%가 미국 방위산업 기업에 환원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Schake 2023).   국무장관을 역임한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는 현 행정부의 제한적 무기 지원을 적극적 무기 지원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강력한 대러 경제제재 추진을 주장했다. 그는 유럽보다는 중국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나토의 방위비 분담율을 3%로 인상해 유럽 자체의 방위력을 키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Urban and Pomepo 2024).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을 비롯하여 2024년 4월, 의회 표결 당시 우크라이나 지원법에 찬성한 의원들(상원 22명, 하원 101명)도 보수적 개입주의자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공화당 내 아시아 중시 기반 선택적 개입주의를 옹호하는 인사들도 있는데, 처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임 국방부 부찬과보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나 미주리주 상원의원 조시 홀리(Josh Hawley)는 중국의 견제가 최우선순위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제한하고 대만 유사시에 대비 인태지역에 미군의 전력과 자원을 비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NSC 자문위원이었던 제이콥 그리기엘(Jakub Grygiel)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진정한 아시아 우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럽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확대해 적극적 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Grygiel 2024).   마지막으로 보수적 강경주의 성향의 인사들은 미국 본토 방어와 국내문제 우선주의를 토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제한을 주장한다. 러-우 전쟁의 종전 없이는 미국의 탈유럽과 인태지역 집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화협상을 통한 조속한 종전과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을 위한 나토 동맹국의 국방력 강화와 역할 확대를 촉구한다. 대표적으로 밴스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 축소와 아시아 집중을 역설하며 우크라이나 문제를 미국의 우선순위로 삼는 것에 반대한다. 지원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수준만 허용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밴스는 현 수준의 러-우 영토 경계를 기준으로 비무장지대를 건설하고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며, 미국의 중장기적 지원이 어떤 형태로든 유지된다는 내용의 협상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빼앗긴 영토 수복과 나토 가입은 불허하지만 비무장지대 수호를 위한 미국의 중장기적 지원은 일정 정도 유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Ferguson 2024).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MAGA 기반 보수적 강경주의 성향의 외교정책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 트럼프가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지원은 자연스럽게 중단될 것이다. 그럴 경우, 상하원에 남아 있는 전통적 공화당 세력인 보수적 개입주의자들이 제도와 절차를 통해, 소신과 지역구의 특성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막으려는 등의 초당적 노력에 동참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개인 외에도 국가, 조직 차원의 외교정책결정집단이 작동함으로써 최종 정책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과정을 이해하고 불확실성의 범위를 좁혀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IV. 결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예견되는 방향성은 적대국뿐 아니라 동맹국에게도 큰 부담이다. 트럼프 개인의 동맹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공화당 내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동맹에 대해 회의적이고 이들의 안보 편승을 방지하고 연루를 회피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Priebe et al. 2024, 154-155). 트럼프 집권시 어떤 외교정책 현안을 우선시할지는 불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개인, 국가와 조직 차원의 동기가 합치되는 러-우 전쟁 해결부터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전쟁은 한국과 지리적으로는 거리가 멀지만 지정학, 지경학적으로 한반도 안정과 연계되어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 동맹을 맺고 북한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된 상황인 만큼, 대북 협상의 우선순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트럼프가 러-우 전쟁 종전에 대한 중국의 기여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유럽과 아시아를 연계하는 이 현안이 다자화 되어 관리와 대응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자산을 집중하려는 미국의 거대 계획에도 다시금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트럼프의 이념 아닌 실익과 협상 기반의 정책결정 방식은 동맹국에게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창의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   참고 문헌   권보람. 2024. “미국 공화당의 미래와 한반도 안보.” 동아시아연구원: EAI 이슈브리핑. https://eai.or.kr/...issuebriefing.   김유진, 강인선. 2024.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 트럼프의 정당 건설, 공화당 엘리트와 지지층을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33, 2: pp. 37-69.   손병권.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운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Baker, Josh. 2024. “21st Century Peace Through Strength: A Generational Investment in the U.S. Military.” Mitchell Institute for Aerospac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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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ow Vladimir Putin very well, and he would never have done during the Trump Administration what he is doing now, no way!”   [4] “This is a different world than it was three and a half years ago,” “The worst thing that happened is we’ve allowed, because Biden is a stupid person, he’s forced Russia and China to get married. They’re married. Then they took in their little cousin, Iran, and then they took in North Korea. They don’t need anybody else.”   [5] “Russia has today threatened to use Nuclear Weapons, and we have Low IQ individuals, the same that messed up Afghanistan (who don’t have a clue!), in charge of this deadly situation. NO GOOD — NOT ACCEPTABLE.”   [6] “Why isn’t Europe giving more money to help Ukraine? Why is it that the United States is over $100 Billion Dollars into the Ukraine War more than Europe, and we have an Ocean between us as separation! Why can’t Europe equalize or match the money put in b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 order to help a Country in desperate need? As everyone agrees, Ukrainian Survival and Strength should be much more important to Europe than to us, but it is also important to us! GET MOVING EUROPE!”   [7] “What we’re doing with sanctions is we’re forcing everyone away from us. So I don’t love sanctions… I found them very useful with Iran, but I didn’t even need sanctions with Iran so much. I told China that, and Russia is in a similar position.”   [8] Russia has gotten in deeper than they ever thought possible [in Ukraine, because of] the weapons that I gave and that the Ukrainians used so well.”   [9] “If I’m president, I’ll have that war settled in one day, 24 hours. I’ll meet with Putin, meet with Zelenskyy… and within 24 hours, that war will be settled.”   [10] “I know Zelenskyy very well and I know Putin very well. I have a good relationship. And they respect your president. OK? They respect me. They don’t respect Biden. How would you respect him? Why? For what reason? He hasn’t even made a phone call in two years to Putin.” “I will get it settled before I even become president. If I win, when I’m president-elect, and what I’ll do is I’ll speak to one, I’ll speak to the other, I’ll get them together.”   [11] “재래식 전력: 중국에 대한 거부적 억제를 강화한다. 미국 재래식 전력 계획을 중국의 대만 침공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대비하고,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전쟁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한다. 동맹국들은 재래식 방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확대해야 하며,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이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주도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한다.” Project 2025, 4장 국방부(Christopher Miller)   [12] “the basic hardline instinct is to maintain very strong defenses, punish severely any direct threat to U.S. citizens, refuse international accommodations, and otherwise remain detached from multilateral commitments.” Dueck 2019, 33.     ■ 권보람_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권보람 2024-12-19조회 :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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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⑥ 신우파의 부상과 미래 미국

I. 서론   본 연구는 공화당의 중장기적 변화가 어떻게 미국의 정치 지형을 형성해 나갈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2008년 금융위기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취임 등의 이벤트를 기폭제로 삼아, 티파티(Tea Party) 운동과 위대한 미국 복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운동이 차례로 정당기구를 포획하면서 공화당은 점차 이념적으로 극우화되어 왔다(손병권 2024). 과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색맹(color-blind) 원칙을 기반으로 했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이후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소멸되고, 대신 포퓰리즘과 백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급진 우익정당으로 변화한 것이 오늘날 “위대하고 오래된 정당(G.O.P)”의 현실이란 것이 본 논문의 기본 문제의식이다(Linker 2024b).   이에 본문에서는 먼저 (포스트-)트럼프 시대, 공화당의 탈자유주의화를 주도해 온 신우파의 이념 체계를 J.D. 밴스(James David Vance)와 패트릭 드닌(Patrick J. Deneen)의 사상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어서 3장에서는 반엘리트주의, 백인기독민족주의, 보수적 사회민주주의, 신가부장제와 같은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이들이 만들어가려는 미래 미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신우파의 “체제 전환(regime change)” 프로젝트를 공동체주의의 타락이라는 차원에서 비판한 후, 또 다른 의미의 탈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의 구축이 가능할지를 타진해 볼 것이다.   II. 탈자유주의 우파의 주류화   1. J.D. 밴스: MAGA 운동의 사도 바울   2024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밴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했다. 이는 트럼프 이후 공화당의 이념적 중심축이 어디로 기울지, 어떤 정체성을 지닌 정당으로 진화해 갈지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공화당 기득권층과 완전한 결별을 시도하는 신우파의 정당 내 지위가 공고화되었음을 상징한다(Wallace-Wells 2024). 다시 말해, 밴스가 트럼프에 의해 일종의 “세자 책봉”을 받은 것은 향후 공화당이 트럼프’주의’를 교조화하는 탈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장악될 가능성을 표현한 것으로, 극우 포퓰리즘 운동이 공화당을 제도적 운반체로 삼아 미국 정치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사실 밴스는 그 이전부터 단순히 트럼프에게 충성을 바치는 흔한 공화당 정치인 무리 중 하나에 그치지 않고, 신우파 혹은 탈자유주의 이념 운동의 핵심적 리더로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밴스는 트럼피즘(Trumpism)에 사상적 깊이를 더해 트럼프 시대에 시작된 급진적 보수주의 혁명 혹은 반혁명(counterrevolution) 구상을 더욱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함으로써, 오늘날 젊은 극우세력이 추구하는 “체제 전환” 프로젝트의 중심에 자리 잡아 왔다(Klein 2024). 이 때문에,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밴스가 MAGA 운동의 “신경 중추(nerve center)”로서, 비유컨대 “사도 바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리화하여 널리 전도한 것처럼, 트럼피즘의 “복음”을 방방곡곡에 확산하는 열렬한 “개종자”의 사명을 밴스가 맡을 것이라는 예언이다(Ward 2024a). 특히 배넌은 밴스가 그간 월스트리트의 금융 엘리트에 의해 장악되었던 미국을 다시 생산적 경제로 복귀시키고 대외팽창적 제국을 해체시킴으로써 중산층 복원에 기여할 것이라는 큰 기대를 나타냈다(Pogue 2024).   이와 같이 정치사적 중요성을 지닌 인물인 밴스의 사상적 궤적을 잠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설명해 주는 책으로 정평이 나면서 그를 일약 저명인사로 만든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Hibilly Elegy)”에는 밴스의 고단했던 성장환경이 잘 드러나 있다. 잭슨주의적 포퓰리즘의 진앙지인 러스트 벨트의 저학력 백인노동계급 출신으로서 밴스는 미국 내에서 힐빌리(hillbillies), 레드넥(rednecks), 백인 쓰레기(white trash) 등의 비칭으로 불려 온 사람들의 비극—대를 이은 가난과 소외, 만연한 약물중독과 자살, 윤리규범의 쇠퇴와 가족의 해체 등—을 담담하게 서술하였다. 그러나 이 자서전을 저술할 때만 해도 밴스는 빈곤의 개인 책임을 강조하고, 자조와 근면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사상의 보유자였다(Vance 2017).   그러나 밴스는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일종의 사상적 전회를 경험하게 된다. 구교의 사회 교리(social teaching)의 영향을 받아 기성 신자유주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학습하게 된 것이다(Ahmari 2024b). 여기서 또한 중요한 것은 가톨릭이 앞서 말한 “전통주의”와 상통하는 반자유주의적 세계관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2020년 그는 한 가톨릭 저널에 자신의 개종의 의미를 설명하는 에세이를 기고하였는데, 본래 독실한 신자였던 할머니(“Mamaw”)와 힐빌리 문화의 영향에 따라 개신교도로서 성장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다. 그러나 해병대원으로 이라크에 파병되어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점차 신앙심이 약화되었고, 급기야 제대 후 오하이오 주립대와 예일 로스쿨 등을 다니며 그곳의 자유주의적, 세속주의적 엘리트 문화에 동화되어 버렸다고 고백한다. 그 공간에서 종교를 믿는 것은 무지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되었기에, 자신은 의식적으로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는 경쟁문화에 지독한 회의에 빠지게 되어 정신적 방황기를 겪게 되었고, 결국 2019년 세례를 받으면서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Vance 2020).   어찌보면 전형적인 “돌아온 탕아”의 서사를 제시한 셈인데, 흥미롭게도 밴스는 이러한 가톨릭 귀의를 “저항(resistance)”에의 참여라 정의내리고 있다. 즉, 자신의 개종은 일개인의 사적 선택이 아닌 현대 사회의 세속적, 개인주의적 흐름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 “능력주의 지배계급(meritocratic master class)” 중심의 자유주의적 사조에 대한 사상적 반격으로서 규정한 셈이다(Vance 2020; Elie 2024). 실제로 최근 포스트리버럴 청년 우파들 사이에서 구교로의 개종이 상당히 많이 관찰되는 추세이며, 아래에서 살펴볼 드닌을 비롯해 많은 신우파 지식인들이 가톨릭 신도라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끊임없이 유동하며 불안정감을 주는 현대 사회와 정반대로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구교가 “전통”, “도덕”, “고향”, “공동체”와 같은 노스텔지어의 원점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Boorstein 2024; Liedl 2024; Linker 2024a).   종교적 “회심(repentence)” 이후에 구체적으로 밴스의 반자유주의적 정치사상의 내용물을 채워준 것은 다양한 급진 우익 지식계의 담론들이었다. 가령, 서부 스트라우스주의(West Coast Straussianism)의 본거지로서 트럼프의 첫 부상 때부터 그에 대한 정치철학적 지지논리를 개발했었고, 최근에는 각성주의(wokism)에 맞선 문화전쟁 수행에 매진해 온 클레어몬트 연구소(Claremont Institute)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Wilson 2024; Zerofsky 2023). 또한 실리콘벨리 내 극우 트렌드의 대표주자로서 반민주주의와 기술지상주의 철학을 지닌 피터 틸(Peter Thiel)은 그의 오랜 멘토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밴스는 “신반동주의(NRx)” 운동의 구루(guru)이자 왕정주의자(monarchist)인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 같은 대안우파(alt-right) 온라인 하위문화의 인물들과도 접점을 지니고 있다(Ward 2024b; 2024c).   이처럼 밴스의 반체제적 정치관념에 영향을 미친 이데올로기적 조류들이 다수 거론되지만,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하버드 법대 교수인 에이드리언 버뮤얼(Adrian Vermeule), 포퓰리스트 잡지인 컴팩트 매거진의 편집장인 소랍 아마리(Sohrab Ahmari) 등이 주도하고 있는 탈자유주의적 가톨릭 사상가 집단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 집단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로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노터데임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 정치학과 교수인 드닌이다. 오늘날 신우파 세력은 드닌의 작업을 자신들의 정치 운동에 대한 사상적 로드맵으로 여기고 있다(Ward 2024c). 따라서 그의 사유를 추적하다 보면, 공화당의 신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탈자유주의 우파집단이 추구하는 정치적 비전을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패트릭 드닌: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의 사상가   2023년 5월 17일 늦은 오후, 미국 가톨릭 대학에서 열린 “체제 전환: 탈자유주의적 미래를 향하여(Regime Change: Toward a Postliberal Future)” 출판기념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모습을 드러낸 밴스는 당일 행사의 주인공인 드닌에게 곧바로 돌진하듯 다가가 격하게 포옹하였다. 그리고 저자의 강연 후 열린 패널토론회에서 밴스는 “탈자유주의 우파”임을 자처하면서, 의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명백히 반체제적(explicitly anti-regime)”인 것이라고 발언하였다(Ward 2023). 본인이 드닌의 사상적 추종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이에 화답하듯 드닌은 2024년 7월 밴스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더욱 진전시킬 “이상적 후보자”라고 찬사를 보냈다(Liedl 2024).   학문의 여정에 있어 드닌은 학부 시절부터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표적인 공동체주의자인 윌슨 캐리 맥윌리엄스(Wilson Carey McWilliams)의 지도를 받으며, 미국 정치사에서 실전된 비자유주의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 정치사상 학계에서 자유주의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연대, 관습, 공동체와 같은 가치를 강조하는 대항적 조류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이러한 전통이 현재 미국 사회가 직면한 긴급한 문제 해결에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는 소수파적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초기 시절에만 해도 드닌의 반자유주의 철학은 전후 맑스주의의 영향과 뒤섞여 상당히 좌경화된 색채를 띠었으며, 그 후에도 드닌의 사유에는 반자본주의적 경향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후 프린스턴대를 거쳐 조지타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 드닌은 가톨릭 신앙에 심취한 동시에 점차 우경화된 모습을 보였으며, 2008년에 발생한 대침체(Great Recession)를 자유주의 문명의 경제적·자연적 한계를 결정적으로 입증한 사건으로 해석하였다(Ward 2023).   이어서 2018년, 드닌은 그간의 자유주의 비판작업을 집대성한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Why Liberalism Failed)”를 출간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비록 초고 자체는 2016년 대선 전에 이미 완성된 것이었으나, 당시 논란의 중심이었던 트럼프 현상의 출현을 근대 서구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궤적이라는 거시적 분석틀로 설명함으로써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큰 찬사를 받았다. 근대 자유주의의 무절제한 개인주의 방종 혹은 사적 이익 추구가 낳은 불평등 증대와 정부/기업으로의 권력집중, 사회의 원자적 파편화와 전통규범의 상실, 자연환경의 파괴 등을 비판하면서, 당대 미국인들이 느끼고 있는 소외와 분노는 자유주의의 실패가 아닌 성공 때문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특히 기존 좌파와 우파, 민주당과 공화당의 세계관이 모두 자유주의적 합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성 정치 세력들은 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성 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하며, 자유주의 철학 외부에서만 문명적 해법이 찾아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근본적인 화두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비자유주의적 대안이란 바로 고대적 의미의 덕성(virtue)을 함양하고 공동선(common good)을 지향하는 시민 공동체(=공화주의) 전통—19세기 초,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방문했을 때 미국에서 발견하고 찬양했던 타운 민주주의—의 복원을 의미한다(Deneen 2019).   그러나 이후 드닌의 자유주의 비판은 훨씬 더 급진화되어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변혁 이데올로기의 형태로까지 진화하였다. 기성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하 보수와 진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리버럴 컨센서스를 초월하기 위해, 혁명적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최근 저서, “체제 전환(Deneen 2023)”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사실 2018년 저술의 결론에서만 해도 드닌은 지역의 작은 공동체들의 잠재성에 주목하면서, 이들의 부활과 지방 자치의 확산이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대안—“자유주의 이후의 자유”—을 제공할 것이라고 서술하였다(Deneen 2019, 262-269). 그러나 이후 전세계적인 포퓰리즘 운동의 부상을 역사의 긍정적 돌파구로 인식하게 되면서 드닌은 자신의 제안이 지나치게 온건했다고 반성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우익세력이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기구를 장악해 급진적으로 “공동선 보수주의(common-good conservatism)”의 비전을 관철하는 “체제 전환”을 새로운 목표로 삼게 된다(Ward 2023).   보다 구체적으로 이 체제 전환이란 좌우를 막론하고 부패해 버린 자유주의 지배계급을 축출하고 탈자유주의 신질서를 건설하려는 프로젝트로서, 기성 헌정주의 제도의 프레임은 유지하되 근본적으로 상이한 비자유주의적 에토스를 그 속에 주입하는 과정을 의미한다(Deneen 2023, xiv). 그리고 이 정치적 변동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가 고대 로마에서 발견했던 혼합정체와 평민들의 전술을 차용하여, 탈자유주의 철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보수 엘리트와 포퓰리스트적 대중 간의 계급동맹—“귀족포퓰리즘(aristopopulism)”—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Deneen 2023, 151-185). 이러한 사상적 진화과정에서 드닌은 2019년 “비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오르반 총리의 초청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여, 그와 함께 탈자유주의 질서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등 해외의 권위주의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특히 그는 오르반 치하의 헝가리가 “국가와 정치질서가 보수적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하는, 현대 자유주의에 맞서는 저항의 한 모델을 제공해준다”고 상찬하였다(Ward 2023).   III. “체제 전환” 이후의 미국   많은 신우파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밴스의 세계관 근저에는 미국문명이 “쇠퇴”하고 있다는 종말론적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국의 현재 모습이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국 말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미국 사회의 정체(stagnation)와 타락 상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기성 정치계급에게는 부재하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앞서 드닌의 견해처럼 새로운 정치세력에 의한 근본적인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신우파들은 트럼프의 집권이 광범위한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혁명—역사의 순환을 다시 가동시키는 작업—의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시작된 이 MAGA 혁명을 더욱 급진화해 미국 사회 전반의 재구조화를 이끌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밴스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향후 수십 년이 소요될 장기적 과제라고 설명한다(Ward 2024a).   이하에서는 밴스와 함께 상원에서 그의 강력한 우군인 조시 홀리(Josh Hawley, R-MO)의 주요 언설들을 전거로 삼아 탈자유주의 세력이 과연 장기적 과제수행을 통해 실현하려는 미래 미국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분야별로 살펴 보고자 한다.   1. 포퓰리스트적 민족주의: 우리 vs 그들의 분할   1) 반엘리트적 엘리트주의   총론적 차원에서 신우파 세력은 포퓰리즘의 정의에 따라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즉, 세상 사람들을 “악당”과 “희생자”로 나누어 설명한다. 한쪽 편에 “미국에서 제외되고 잊혀진 곳”, “작은 마을들”에 살고 있는 순수한 근로 인민이 존재한다면, 다른 편에는 이들을 착취하며 억압하는 국내(“미국 지배계급”, “부패한 워싱턴 내부자들”, “월스트리트 귀족들”, “다국적 기업들”)와 국외(“중국 공산당”,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의 수많은 빌런들이 도사리고 있다(Vance 2024). 이처럼 선명한 내집단과 외집단, 자아와 타자의 구분과 적대를 통해 MAGA 운동은 자신의 포퓰리즘적 에너지를 축적하게 된다.   2021년의 한 인터뷰에서 밴스는 엘리트 사회의 실상에 대해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빨간약을 먹은 것(redpilled)”에 비유하였다. 그 깨달음을 통해 현재 미국에서 인민은 거의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못하며, 모든 권력은 “과두정(oligarchy)”이 독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맞서 싸우려면 꽤나 과격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해만 할 텐데, 이는 기성 보수우파들이 불편해 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Konstantinou 2024).   이 같은 공화국 말기적 상황이 초래된 것은 트럼프 집권 전까지 미국의 통치계급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사익만 앞세우다 국정수행에 참담하게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가령, 기득권층의 대표 인사인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 커리어 내내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창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가입, 이라크 전쟁 개전 등과 같은 재앙적 정책들을 지지했었고, 이런 식으로 엘리트 계층의 이익만 챙기는 잘못된 결정들의 대가는 온전히 평범한 미국인들이 치러왔다(Vance 2024). 이런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트럼프의 개혁을 가로막아 온 이른바 “심층 국가(deep state)” 혹은 “행정 국가(administrative state)”의 해체가 필요하다. 이에 밴스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연방 기관들의 재편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2기 행정부에서는 모든 중간급 관료들, 행정 국가의 공무원들을 해고한 후 그 빈자리를 “우리 사람들”로 채워 넣어야 하며, 만약 이 과정에서 법원이 훼방을 놓는다면 과거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 그러했듯 이를 무시해 버려야 한다고 발언했다(Konstantinou 2024).   이 지점에서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밴스의 기득권층 비판이 기성 좌우 스펙트럼의 구분선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기존 공화당 지도부마저도 “자유주의 체제(liberal regime)”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시장 근본주의와 해외 개입주의 사조에 찌든 리버럴 엘리트들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체제 전체에 반대하는 혁명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왜 밴스가 종종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민주당 좌파와 입법활동 과정에서 협력적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모두 대자본의 특별이익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워런이 비록 이념적으로 자신과 극과 극인 골수 좌파이지만,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망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때때로 함께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한다(Ward 2024a).   2) 백인기독국가의 복원   한편, 국가 정체성 정치의 차원에 있어 탈자유주의 우파세력은 바이든-해리스 진영의 “신조적 민족(creedal nation)” 개념에 대한 안티테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바이든은 오랜 주류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미국을 “하나의 관념(America is an idea)”, “세계역사상 가장 강력한 관념(most powerful idea in the history of the world)”으로 정의했으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독립선언문의 핵심문구를 반복해 인용한 바 있다(Biden 2019; 2024a; 2024b).   이와 대조적으로 밴스는 자신의 부통령 후보 지명수락 연설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의 의미를 “조국(homeland)”과 “민족(nation)” 개념으로서 구획지었다. 급진 우익의 노선에 잘 부합하게,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추상적인 일련의 “관념”이나 “원칙”이 아닌(“American is not just an idea”) “공유된 역사와 공통된 미래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밴스가 이 집단 정체성의 성격을 부연설명하기 위해 동부 켄터키주 애팔래치안 산맥에 위치한 본인 가문의 선산(先山)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전쟁 시기부터의 조상들이 대를 이어 그곳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왔으며, 자신 부부와 자식들까지 묻히게 되면 7대가 한곳에 모이게 된다고 한다(Vance, 2024). 근본적으로 혈연과 장소의 공동체—“피와 땅(blood and soil)”—로서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대 유럽식의 내셔널리즘이 밴스의 정치사상에 짙게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Luce 2024).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홀리 상원의원은 2024년 7월 “전국 보수주의 회의(National Conservatism Conference)” 연설을 통해 기독 민족주의를 옹호하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애초에 기독교의 이상을 추구한 청교도들이 건설한 사회로서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의 신국(City of God) 비전이 “언덕 위의 도시(City on a Hill)” 형태로 현실화된 것이다. 더구나 제한정부론, 양심의 자유, 인민주권 같은 미국 민주주의 핵심 원칙들도 모두 기독교 민족주의의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오늘날 이런 미국의 민족적 정수가 좌우 모두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진보파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기독문명을 과거로부터의 낡은 족쇄취급을 하며 그것을 좌파 다문화주의 이념으로 대체해 버리고자 시도해 왔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우파 엘리트들에게 있는데, 이들이 지난 30년 동안 기독교 전통을 등한시하고 신자유주의나 세계화 같은 세속적 이념에 잠식되어 버렸다. 이에 반해 홀리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주일에 교회를 나가는 미국인들이야말로 보수 진영의 진정한 중추라고 강조하면서, 공화당이 미국에 제시할 미래 청사진은 오로지 기독 민족주의 전통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Hawley 2024).   트럼프 캠프가 대선 기간, 반이민 토착주의(nativism)에 입각해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먹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살포했다든지, 민주당이 기성 백인 유권자를 대체해 버리려고 국경을 일부러 개방해 자신들을 지지해 줄 유색인 유권자들을 데려온다는 식의 소위 “거대한 교체(Great Replacement)” 음모론을 퍼트린 것은, 이상의 종족종교적 민족(ethnoreligious nation) 관념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Serwer 2024).   2. “사적” 영역에서 “전통”의 복귀와 “미덕”의 증진   고대적인 공사 구분법을 따랐을 때,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경제와 가족(/젠더)관련 정책영역에서 신우파는 트럼프와 꽤나 선명하게 구분되는 면모를 나타낸다. 트럼프에 비해 이들이 훨씬 교조적으로 반근대, 반자유주의, 전통주의 등으로 개념화되는 반동적 가치관을 체계화시키고 있기 때문인데, 바로 이 지점이 신우파가 기성 MAGA 운동을 확연히 “급진화”시키는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기실 이 사적 영역에 있어 트럼프는 전혀 사회보수주의적 원칙을 강조할 입장에 있지 못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 자신의 경제적 치부과정이나 여성관계 등에 있어 트럼프의 삶의 궤적은 사법적 단죄의 영역에 근접해 있기에, 고전적 덕성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반면, 밴스나 홀리 같은 탈자유주의 세력은 스스로의 개인적 삶에서부터 공공정책에 이르기까지 “원리주의적”으로 경제와 가족의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 “보수적 사회 민주주의” 경제학   경제정책 노선에 있어 공화당의 통설(orthodoxy)에 변화를 가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트럼프이다. 2016년 대선에서 본래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러스트 벨트 지역 저학력 백인노동계급의 표를 획득해 “블루 월(Blue Wall)”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주류 정치권, 특히 “신민주당” 시기 우경화한 리버럴들에 실망한 이들에게 새로운 정치경제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Berman 2023; Posner 2024b; Zelizer 2024). 그러나 집권 후 실행된 트럼프의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대외영역에서는 대규모 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주의를 관철해 기성 자유무역노선에서 이탈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내부문에서는 사실상 신자유주의 기조가 지속되었다. 자신의 반엘리트 레토릭과 달리 큰 폭의 법인세 감세를 단행하는 등 기성 공화당의 친대기업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Scheiber 2024; Posner 2024a). 소위 “금권적 포퓰리즘(plutocratic populism)”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지점이다(Sandel 2023, 364-365).   이와 대조적으로 신우파 그룹은 반자유방임주의 노선을 명확히 해왔는데, 아마리는 이들이 “보수적 사회민주주의”의 본능—사회문화적 가치에서는 보수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좌파적인 경향성—을 지녔다고 평가한다(Ahmari 2024a). 특히 원칙적 차원에서 반독점과 친노조 입장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탈자유주의 우파는 기성 친기업, 반노조 스탠스의 레이건주의적 공화당은 물론 티파티로 대변되는 자유지상주의적 포퓰리즘과도 대척점에 서 있다. 신우파 세력의 확장에 따라 공화당의 미래를 둘러싼 가장 치열한 경합이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놓고 벌어질 전망이다.   실제 입법활동에서도 신우파 의원들은 워렌(D-Mass.), 셰러드 브라운(Sherrod Brown, D-OH), 라파엘 워녹(Rafael Warnock, D-GA)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의 경영진 보너스를 회수하는 법안, 철도산업의 과잉 효율성 추구를 제어하는 법안, 인슐린 가격인하 법안 등 좌파적 의안을 공동 발의해 왔다. 정치경제적 개혁문제에 있어서는 “초당적” 행보를 마다하지 않아 온 셈이다(Ahmari 2024b). 또한 이들은 2023년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을 공개 지지하였으며,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조 중 하나인 국제 트럭 운전자 연대(“Teamsters”)의 위원장이 2024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 나와 사상 최초로 연설하는 것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2) 가부장제 2.0   트럼프의 반여성적 언사가 무지막지한 원초적 마초성의 표현인 것에 반해, 신우파는 철학적 수준에서 성차별주의를 체계적으로 구성해 오고 있다(Field 2024). 즉, 밴스는 단순히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거나 여성관련 추문을 일으키는 수준이 아니라 정치적 의제로서 “전통적” 가족과 성역할을 부활시키려는 신우파의 구상을 대변한다(Lewis 2024).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신가부장적 어젠다 설정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규정하고 이를 사회에 부과해야 한다는 탈자유주의(/통합주의)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미국 사회의 도덕적 재건이라는 미션을 추구한다(Beauchamp 2024a).   이들은 오직 자기실현과 개인적 만족만을 최우선시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그 파생물인 페미니즘과 LGBT 사상 등의 범람이 가족의 위기를 불러왔으며, 그 위기의 가시적 결과물이 출산율 하락이라고 생각한다. 신우파 세력이 이런 미국 사회의 인구학적 붕괴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남녀 이분법적 성역할의 부활, 나아가 “신가부장제(neopatriarchy)”적인 가족모델의 복원이다. 즉, “전통적 부인(tradwife)”의 이미지에 따라 여성의 역할은 출산과 돌봄으로 귀착되어야 하고, 남성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Beauchamp 2024b).   가령, 밴스는 “하나의 중산층 일자리로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존엄을 유지하며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이상이 실현된다면, “내 아들이 성장하면서 그의 남성다움—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지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맥킨지에서 일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Field 2024). 다른 한편, 홀리는 한 걸음 더 아나아가 “미국이 필요로 하는 남성적 덕성”을 탐구하기 위해 고대신화와 성경까지 그 계보를 추적해 들어간다. 그는 현대 사회가 남성성을 위협함으로써 남성들이 자신의 올바른 역할 모델을 상실한 채, 스스로의 본능과 성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그러므로”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영웅들, 성경 속의 다윗과 같은 성군의 이야기들을 통해 용기, 절제, 책임감, 성실, 자기희생 같은 남성적 덕목을 재발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건강한 남성성의 회복을 통해 남성들이 다시금 사회의 기둥이 됨으로써 현대 미국의 여러 사회적 혼란과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Hawley 2023).   보다 구체적인 정책적 차원에서 이들은 헝가리의 오르반 정부를 롤 모델처럼 여기는데, 헌법 개정을 통한 동성결혼 금지, 결혼한 부부에게 자녀 수에 비례해 혜택을 제공하는 출산장려정책 등을 통해 전통적인 가족중심의 가치를 증진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Field 2024). 이런 맥락에서 밴스는 사람들이 “속옷을 갈아 입듯 배우자를 바꾸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무과실 이혼(no-fault divorce) 금지,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중과세, 아이를 낳은 가정에 투표권 가중부여 등의 정책을 제시한다. 결혼을 안하고 자녀가 없는 성인들에게 패널티를 주려는 구상인 셈이다(Beauchamp 2024b). 부통령 후보 지명 후 알려져 큰 논란을 낳았던 밴스의 “자식없는 캣맘(childless cat ladies)” 발언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나라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존재이기에, 국가운영의 자격이 없다는 논리가 그의 사고근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Lewis 2024).   IV. 결론   현재 미국 사회에서 탈자유주의적 방향성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차원에서 자유주의적 근대성의 최첨단을 상징해 온 미국의 주류 정치공간에 반근대, 반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전통주의 또는 원리주의 세력이 부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물론 밴스가 대변하는 MAGA 운동세력의 급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망각되어버린 백인노동계급에 대한 관심은 혼돈에 빠진 미국의 미래모색에 있어 귀담아들을 만한 문제제기이다. 다시 말해, 어찌 되었든 트럼프 시대의 공화당은 기성 신자유주의 컨센서스가 불러온 후과에 대한 비판 및 대안을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그에 대한 찬반여부와 무관하게—평가할 지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반대진영인 민주당에서 아직까지도 탈자유주의 우파에 비견될만한 본격적인 주류 세력 교체 과정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2016년 대선 캠페인 와중에 트럼프 지지자들을 “개탄할만한 자들(deplorables)”로 비하했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나, 이번 대선에서 마찬가지로 그들을 “쓰레기(garbage)”로 지칭한 바이든의 무신경은 반성하지 않는 리버럴 엘리트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내비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반성이 현재 패배해 버린 민주당의 한계선을 형성하고 있다. 자신들도 공화당 주류와 함께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지구화 프로젝트를 추구하여 경제 양극화를 야기하였고, 이로 인해 극우 포퓰리즘의 길을 닦는데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데, 단순히 MAGA 진영을 “이상하다(weird)”는 식으로 밀어붙여서는 진보적 개혁정치 대신, 자신의 지지층만을 격동시키는 부족주의 정치에 머물고 말 것이다(Sandel 2024; Stephens 2024).   물론, 기성 자유주의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민주당의 정책에도 일정 부분 반영된 바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뉴딜 혁명의 추억을 소환하며 워싱턴 컨센서스의 극복을 추구해 온 동시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하원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젊은 좌파블록도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오랫동안 미국사에서는 주변화되었던—비미국적(혹은 북유럽적) 노선을 모색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Lipsitz 2023). 최근 민주당 주류를 깜짝 놀라게 만든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예시해 주듯, 향후 밀레니얼 세대의 반기득권적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여부에 따라 왼쪽으로부터의 탈자유주의 패러다임도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 하츠(Louis Hartz)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국은 늘 로크적 자유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상상의 공동체였다(Hartz 2012). 그런 면에서 좌우 스펙트럼 모두에서 움트고 있는 탈자유주의적 사조의 도전은 미국의 근원적 정체성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미국사의 유례없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미국내 사회세력간 경합의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자유국제질서 전체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건 세계사적 계기를 경유하고 있는 셈이다. ■   참고문헌   손병권. 2024.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운동: ‘리얼 아메리카’의 회복을 위한 저항운동』.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Ahmari, Sohrab. 2024a. “Hillbilly energy.” New Statesman, July 15. https://www.newstatesman.com/...energy (검색일: 2024.11.4.).   ______. 2024b. “JD Vance is Republicans’ Best Chance to Recl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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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서 2024-12-19조회 : 2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