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이슈브리핑
[EAI 이슈브리핑] 한국인의 한미일-북중러 블록화 인식과 핵무장 지지 여론 분석: 2025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 결과 분석

Ⅰ. 이재명 정부 출범과 최고치를 기록한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율     [그림 1] 북핵 위협 지속시 한국 핵보유 찬반 (2016-2025) 2025년 6월 4일, 역대 최다 득표이자 49.42%의 최종 득표율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수인 171석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이른바 ‘슈퍼 여당'이 탄생하였다(연합뉴스 2025a; 연합뉴스 2025b). 강력한 국정 운영 동력을 바탕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초기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으로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북한도 이에 호응하여 대남 소음 방송을 중지하는 등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연합뉴스 2025c; 연합뉴스 2025d). 이러한 변화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남북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는 북핵 위협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 출범은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도에 중요한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되었다. 일례로 2018년 ‘평창의 봄’ 당시 한국인의 핵무장 찬성 비율은 43.3%까지 낮아졌으며, 이는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인의 외교안보 인식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핵무장 반대 여론(50.3%)이 찬성을 앞지른 사례였다([그림 1]).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달리 2025년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율은 다시 2024년의 수치를 상회하며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림 1]과 [그림 2]에서 확인되듯,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 한국은 핵무장을 해야한다”는 명제에 대체로 동의하거나, 전적으로 동의하는 비율은 작년의 71.4%보다 3.7% 증가한 75.1%를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체로 동의한다는 비율은 34.8%에서 34.9%로 변화해 0.1% 밖에 증가하지 않은 반면,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비율은 36.6%에서 40.2%로 나타나 3.6%의 증가폭을 보였다. 이는 자체 핵무장에 대한 강력한 지지층이 더욱 공고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대 최대치의 핵무장 지지 여론 형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속되고 있는 미중경쟁과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블록에 대한 인식은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본 이슈브리핑은 2025년 동아시아인식조사에서 드러난 새로운 추세들을 중심으로 작년까지 확인되었던 핵무장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음과 미중 경쟁 속 블록화 인식이 강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양자간의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작년과 비교하여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은 증가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난 가운데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가 감소하였기 때문에, 한편으로 증가한 핵무장지지율은 현재 악화된 남북관계와 미국이 제공하게 되어있는 확장억제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과거보다는 개선될 것이라는 다수응답은 한국인의 북한 문제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보여준다.   [그림 2]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동의 정도 (2024-2025)   Ⅱ. 2025년 조사결과 특징: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 미중 전략경쟁의 선명성, 그리고 북러의 밀착   올해의 핵무장 지지율이 작년보다 높아졌다고 해서 현재 남북관계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작년보다 더 부정적으로 변하거나 미래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더 낮아진 것은 아니다. 2023년 12월 말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천명 이후 표면적으로 최악의 남북관계 속에서도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와 10년후 남북관계 전망에 있어서는 2024년에 비해 올해 다소 개선된 모습이 나타났다. [그림 3]에서 보듯, 현재의 남북관계 평가에 대해서 “매우” 또는 “약간 나쁘다”고 대답한 비율은 작년의 83.2%에서 올해 76.3%로 6.9% 감소한 반면, “보통이다”와 “약간 좋다”는 응답률을 합친 비율은 16.5%에서 23.4%로 6.9% 증가하였다. 남북간의 대립이 깊어질 것이라는 응답률도 15.8%에서 13.4%로 미세하게 줄어든 한편,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의 비중은 22.5%에서 31.2%로 8.7% 증가하였다([그림 4]). 특히 남북관계 개선 전망은 진보층(47.2%)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보수층은 19.6%에 그쳤다.   [그림 3] 현재의 남북관계 (2024-2025)   [그림 4] 10년 후 남북관계 전망 (2024-2025) 따라서 남북관계 자체에 대한 평가나 미래 전망은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율 상승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이 올해 역대 최대 핵무장 지지율을 견인하였을까? 한국이 당면한 최대위협과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에 대해 올해 응답자들의 보여준 새로운 모습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림 5]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듯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협요인으로 꼽은 응답자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여 2023년에 최고치인 56.3%를 기록했다가 2023년부터 2025년까지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며 올해에는 33.2%를 기록해 2021년과 비슷한 수치로 회귀하였다. 반면 미중 전략경쟁과 갈등을 한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요인으로 꼽은 응답률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증가세를 보이며 최근 5년간 최고치인 64.9%에 이르렀다. [그림 6]에서도 한국에 가장 중요한 외교 관계를 한미관계로 뽑은 비중이 올해 90.7%에 달하며 최고치를 경신하였고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를 꼽은 비중은 각각 42.2%와 43.2%로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그림 5] 한국이 당면한 최대위협 (2021-2025)   [그림 6] 한국에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 (2021-2025) 종합해보면, 트럼프 1기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 그리고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막론하고 미중 경쟁의 선명성이 지속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상황이 핵무장 지지율의 상승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본고는 회귀분석을 통해 기존 연구들이 강조하는 핵무장 지지요인들(위협인식, 동맹변수, 정치이념 및 당파성, 연령 변수 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블록화에 대한 인식과 핵무장 지지율의 급증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Ⅲ. 통계분석: 2025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여론과 한미일 대 북중러 블록화 인식   올해 동아시아 인식조사는 2025년 4월말의 인구통계정보에 근거해 지역별, 성별, 연령별 비례할당한 1509명 패널에 대한 웹조사 형식으로 이뤄졌으며 대선 직후인 6월 4일과 5일에 걸쳐 시행되었다. 구체적인 여론조사 개요는 [표1]과 같다. 미중경쟁 속 한국인의 블록화 인식과 관련해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지지를 묻는 기존 문항에 더하여,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어떤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문항을 추가하였다. 먼저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확인하기 위해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2024년 EAI 이슈브리핑 분석(김양규 2024)에서 확인했던 주요 변수의 영향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과 동일하게 밀착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일수록,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양의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표 1] 2025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    2025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 모집단  전국의 만 18 세 이상 일반 국민 표집틀  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 (97만여 명) 중 정치사회패널 (7만여 명) 표집방법  지역별, 성별, 연령별 비례 할당 (2025년 4월 말 인구통계정보) 표본크기  1,509명 표본오차  무작위추출 전제,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 ±2.5%p 조사방법  웹 조사 응답률  22.5%(6,701명에게 발송하여 1,509명 최종 응답) 조사일시  2025.6.4.~2025.6.5. 조사기관  ㈜한국리서치 (대표이사 노익상) 응답자 구성  [성별]  남성 49.6%; 여성 50.4%  [연령]  18~29세: 15.3%  30대: 15.0%  40대: 17.4%  50대: 19.5%  60대: 17.8%  70대 이상: 15.1%   1.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북핵위협, 확장억지 신뢰성, 블록화 인식 확장억지 신뢰성과 핵확산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안보 위협, 동맹국이 제공하는 안전보장 확약(commitment)의 신뢰성(credibility), 핵무기 보유국이 가지는 국제정치적 지위(status)와 명예(prestige), 핵무장을 옹호하는 국내정치세력 등을 핵무장 여론 활성화의 주된 요인으로 꼽아왔다(Sagan 1996-1997; Singh and Way 2004; Jo and Gartzke 2007; Solingen 2007; Kroenig 2009; Bleek 2010). 2024년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은 (1) 북핵에 대한 위협인식, (2)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3) 국내정치지형에서 보수적 성향이 강해질수록 핵무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확인하였다(김양규 2024). 올해 조사에서도 이러한 변수들의 영향력과 함께, 한미일 대 북중러 블록화 인식이 핵무장 지지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를 살펴보고자 순서형 로지스틱스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의 핵무장 지지도는 5점 척도로 측정하였고, 통계분석 결과는 [표2]와 같다.   [표 2]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독립 변수 모델 1 (안보위협) 모델 2 (안보위협, 남북관계인식) 모델 3 (안보위협, 남북관계인식, 블록화인식) 모델 4 (안보위협, 남북관계인식, 블록화인식, 정당지지) 모델 5 (전체) 북한의 선제타격 가능성 인식 0.572*** (14.38) 0.561*** (13.97) 0.492*** (12.01) 0.477*** (11.58) 0.489*** (11.77) 미국의 확장억제 충분 인식 -0.281*** (-7.13) -0.271*** (-6.74) -0.257*** (-6.31) -0.263*** (-6.38) -0.273*** (-6.58) 현 남북관계 평가   -0.0992 (-1.68) -0.108 (-1.81) -0.0739 (-1.22) -0.0260 (-0.42) 미래 남북관계 평가   -0.0872 (-1.34) -0.0453 (-0.69) -0.0160 (-0.23) -0.0212 (-0.31)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지지     0.421*** (8.89) 0.352*** (7.13) 0.323*** (6.47) 북한이 대러·대중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인식     0.353*** (3.49) 0.328** (3.22) 0.290** (2.81) 더불어민주당 지지       0.00858 (0.06) 0.0386 (0.26) 국민의힘 지지       0.760*** (4.62) 0.442* (2.52) 지지정당 없음       0.0669 (0.43) -0.0278 (-0.18) 세대         0.140*** (4.38) 정치성향 (진보→보수)         0.0919** (3.25) 성별 (남→여)         -0.0448 (-0.45) Cut 1 -1.678*** (-8.63) -2.194*** (-6.41) -0.593 (-1.56) -0.599 (-1.51) 0.136 (0.30) Cut 2 -0.375* (-2.05) -0.891** (-2.67) 0.767* (2.04) 0.766 (1.95) 1.508*** (3.31) Cut 3 -0.0710 (-0.39) -0.587 (-1.76) 1.084** (2.88) 1.086** (2.76) 1.832*** (4.01) Cut 4 1.635*** (8.66) 1.123*** (3.35) 2.879*** (7.51) 2.909*** (7.26) 3.687*** (7.92) 관측수 (Observations) 1509 1509 1509 1509 1509 * p<0.05, ** p<0.01, *** p<0.001 괄호 안은 t 값   예상되는 대로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과 미국의 확장억제가 충분한가에 대한 인식은 핵무장 인식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모델 1-5).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 선제공격이 가능성이 크다고 믿을수록, 미국의 확장억제가 북핵위협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믿을수록 한국의 독자적 핵능력 보유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와 미래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 분석에서 새롭게 주목한 블록화 인식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지지도와 북한이 향후 어떠한 대중 및 대러 전략을 펼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응답자들의 인식을 통해 측정하고자 하였다. 두 변수 모두 꾸준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수임이 확인된다(모델 3-5). 이는 (1)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2) 북한이 대러, 대중 관계를 동시에 강화하며 중러 블록에 편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일수록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하는 경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세대, 그리고 정치이념 성향 변수도 유의미한 요인임이 확인된다(모델 4-5). 국민의힘을 지지할수록, 고령일수록, 또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가질수록 핵무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작년에 이어 올해 조사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된다.   2.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그렇다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미일 안보협력 지지를 종속변수로 놓고, 대만해협에서 유사 사태 발생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 중 군사적 지원(탄약지원~파병)을 선택한 응답자와 한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은 미중갈등이라는 선지를 선택한 응답자에 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미중갈등 인식 모델을 기존의 모델에 더해 독립변수로 추가해보았다([표 3]).   [표 3]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지지요인 변수 (설명) 모델1 (북한위협인식) 모델2 (미중갈등인식) 모델3 (정당지지) 모델4 (인구통계요인) 모델5 (전체) 북한 선제공격 인식 0.375*** (9.57)   0.345*** (8.76) 0.280*** (7.02) 0.268*** (6.67) 북한 위협 인식 0.619*** (4.90)   0.719*** (5.32) 0.422** (3.03) 0.356* (2.53) 대만 유사시 한국의 군사적 지원   0.926*** (8.06) 0.791*** (6.77) 0.688*** (5.79) 0.635*** (5.24) 미중 갈등 위협 인식   0.054 (0.52) 0.293** (2.60) 0.245* (2.16) 0.220 (1.93) 더불어민주당 지지       -0.217 (-1.50) -0.103 (-0.69) 국민의힘 지지       1.324*** (8.02) 0.993*** (5.60) 지지정당 없음       0.413** (2.63) 0.333* (2.10) 세대         0.051 (1.60) 정치 성향         0.140*** (4.96) 성별         -0.162 (-1.60) cut1 -1.770*** (-10.52) -2.833*** (-22.13) -1.621*** (-9.42) -1.737*** (-8.42) -1.248*** (-4.08) cut2 -0.136 (-0.98) -1.245*** (-16.39) 0.026 (0.18) -0.057 (-0.31) 0.433 (1.48) cut3 0.220 (1.60) -0.904*** (-12.68) 0.389** (2.71) 0.319 (1.75) 0.814** (2.78) cut4 2.647*** (16.87) 1.443*** (18.30) 2.888*** (17.50) 2.989*** (14.80) 3.533*** (11.46) 관측수 (N) 1509 1509 1509 1509 1509 * p<0.05, ** p<0.01, *** p<0.001 괄호 안은 t 값   대만에서 미중간 군사적 충돌 발생 시 한국이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개입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일수록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을 더욱 강하게 지지하는 경향이 있음이 모델 2-5에 걸쳐 확인되었다. 한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 미중 갈등이라고 답한 사람 일수록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 강화를 지지하는 경향성이 있음이 확인되었으나(모델3-4), 다른 통제변수들이 포함된 모델에서는 그 통계적 유의미성이 사라졌다.   이외에도, 북한 위협인식, 국민의힘 지지, 무당층, 보수적인 정치성향들은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 지지와 통계적으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본 변수들은 모두 앞선 회귀분석 모델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던 변수들로써, 이들 변수가 두 회귀분석 모두의 통제변수로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중공선성(multicollinearity)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본 연구는 분석에 활용된 독립변수를 대상으로 선형회귀(linear regression) 모형을 별도로 수행한 뒤, 분산팽창계수(VIF: Variance Inflation Factor)를 확인하였다. 분석 결과 모든 변수의 VIF 값은 2.29 이하로 나타나,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는 5~10 이상의 값을 훨씬 하회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덜 지지하는 경향성은 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중도 혹은 부동층으로도 볼 수 있는 무당층도 민주당 지지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더 지지하는 경향성이 확인되었고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한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으로 북한의 핵능력을 선택한 이들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음이 모델 1, 3, 4, 5에 걸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통해 입증되었다.   종합하면, 북핵을 가장 큰 위협으로 느끼거나 대만 해협에서 미중 충돌시 한국이 군사적인 지원을 하며 개입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한미일 삼자 군사협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한국인 중에서 북핵에 대한 위협인식 또는 미중갈등과 대만위기라는 블록화 인식이 강할수록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지지할 개연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3. 북한의 신냉전 전략 추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앞서 살펴본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라는 블록화 인식의 또 다른 축은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는 인식일 것이다. 북한이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고 러시아와 상호군사지원을 위한 군사조약을 맺는 등 최근 북한의 행보는 한국인들의 블록화 인식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쳤을 것으로 가정하여 추가로 회귀분석을 실시해보았다([표 4]).   올해 새롭게 추가된 문항 47에서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동일하게 밀착할 것이라는 선지를 선택하는 응답에 영향을 미친 변수들을 확인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 선제공격 가능성이 크다고 인식하는 사람인 경우, 북한이 대중, 대러와 밀착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인식하였고, 북한의 위협을 한국이 직면한 안보위협 중 가장 큰 위협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북중러 블록화의 형성을 강하게 인지하는 경향이 보였다. 그러나 모델 4와 모델 5에서 나타나듯 다른 통제변수를 추가할 때 그 유의성이 약화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지지에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던 대만 유사시 한국의 군사적 지원 변수는 모델 3-5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음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석하면, 대만에서 미중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때 한국이 적극적으로 군사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여 강한 블록을 형성할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직관적으로는 대만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인 한국의 개입을 지지할 정도로 한미동맹 또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중러의 연대 혹은 블록화 경향이 유지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일 수 있다. 한편 국민의힘 지지자와 고령층은 북중러 블록 형성 인식에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모델 4에서만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며, 나머지 변수들을 포함시킨 모델에서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Ⅳ. 결론 및 정책적 함의   이상의 2025년 동아시아 인식조사에 대한 회귀분석을 통해,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 한국인의 핵무장 지지율에 미중 경쟁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블록화 경향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신정부의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특히 정치이념적으로 진보 성향의 응답자들 사이에서 확인되지만, 녹록지 않은 안보 현실과 미중 경쟁이 추동하는 블록화 인식과 함께, 국민의힘 지지자층, 고령층, 그리고 보수층을 중심으로 핵무장 지지 여론은 작년보다 더욱 높게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지하는 정당이 따로 없는 무당파 층에 속한 응답자들 사이에서도 핵무장 지지 경향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한 핵무장 지지 여론을 고려할 때, 신냉전 혹은 블록화 담론이 힘을 얻을수록 핵무장 선호가 더욱 과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는 과거 냉전시기의 이념 대립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주의 진영의 맏형 역할을 자임하지 않고, 동맹국에 대해서도 거래주의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북중러 연대에서 실질적인 역량을 제공하는 핵심국가는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다. 또한 미중 전략 경쟁 역시 현재 어느 측도 절대적으로 공고화할 수 있는 일방적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를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환원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과거 냉전 시기와는 다른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21세기형 미중 경쟁구도를 보다 정교한 정책 언어로 설명하고,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을 자극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앞선 회귀분석 결과에서 확인되었듯, 한국인의 인식 속에서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와 대만 유사시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지지가 함께 높아지는 경향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북중러 협력 강화 및 블록화 인식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어쩌면 이미 한국인들은 ‘한미일 대 북중러’ 또는 ‘신냉전’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복합적인 동아시아 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참고 문헌   고동욱. 2025. “李대통령, 오후 2시부로 군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 지시,”「연합뉴스」.6월 11일. https://www.yna.co.kr/view/AKR20250611150500001?section=news (검색일: 2025. 6.17.)   김양규. 2024. “2024 한국인의 핵무장지지 분석: 워싱턴 선언의 안심 효과 사라졌나?” 『EAI 이슈브리핑』 동아시아연구원 (10월 22일)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69&board=kor_issuebriefing&keyword_option=&keyword=&more= (검색일: 2025. 6. 17)   김호준. 2025. “합참 "오늘 北대남 소음방송 없어"…대북 확성기 중지에 호응,”「연합뉴스」.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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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ntitative Analysis of the Exploration, Pursuit, and Acquisition of Nuclear Weapons.” In Forecasting Nuclear Proliferation in the 21st Century, Volume 1: The Role of Theory, ed. William C. Potter and Gaukhar Mukhatzhanova.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Jo, Dong-Joon, and Erik Gartzke. 2007. “Determinants of Nuclear Weapons Proliferation.”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51, 2: 167–194.   Kroenig, Matthew. 2009. “Importing the Bomb: Sensitive Nuclear Assistance and Nuclear Proliferation.”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53, 2: 161–180.   Sagan, Scott D. 1996-1997. “Why Do States Build Nuclear Weapons? Three Models in Search of a Bomb.” International Security 21, 3 (Winter): 54-86.   Singh, Sonali, and Christopher R. Way. 2004. “The Correlates of Nuclear Proliferation: A Quantitative Test.”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48, 6: 859-885.   Solingen, Etel. 2007. Nuclear Logics: Contrasting Paths in East Asia and the Middle Eas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 김양규_국방대학교 교수.     오인환_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 담당 및 편집: 오인환_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2) | ihoh@eai.or.kr  

김양규 2025-06-18조회 : 2133
스페셜리포트
[신정부 외교 정책 제언 스페셜리포트] ④ 복합 대북전략과 남북관계의 재구성

I. 북한의 대외전략과 남북관계   1. 북한의 대외전략 북한은 신냉전의 세계를 추구한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2021년 최고인민회의 석상에서 최초로 신냉전을 언급한 이래, 2024년 12월 8기 11차 전원회의에서 “자주세력권의 장성과 약진이 두드러지고 패권세력권의 립지가 급격히 약화 쇠퇴”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세력권”에 반미 세력을 결집한 “자주세력권”이 충돌한다는 세계관이다.   북한은 냉전 시기와 같은 진영을 구축하기 원한다. 러시아와 협력을 확장하고 결국 중국을 포함한 진영을 확고히 하여 그 안에서 생로를 찾으려 한다. 성공한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는 무의미해지고, 진영 안에서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종국에는 핵 보유도 사실상 용인될 수 있다.   대남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선포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이다. 대한민국을 더는 동일한 민족과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대적 이념을 표출하는 적성국으로 규정하여 한미일과 북중러 신냉전의 축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향후 대미관계와 비핵화 협상도 이전과는 다른 신냉전 구도를 상정한 접근이 예상된다. 2018년 6월 발표된 미북 싱가포르 합의에 포함된 미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같은 구호를 걷어내고, 북한은 미국을 적대국 위치에 고착시키며 미국과 소련이 했던 형태로 ‘핵군축’을 추구할 수 있다. 냉전시기 미소 양측의 군사적 대립이 구조화된 상태에서 우발적 충돌과 핵 확전 등을 방지하기 위한 협상과 같은 형태이다. 북한은 군사적 대립을 제거하여 미북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는 협상이 아닌 “오히려 신냉전 구도를 기정사실화하는 협상 프레임”을 추진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신냉전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 시도로 읽힌다. 2024년 6월 체결된 러북간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은 1961년 소련 시절에 체결된 『우호·협조·상호원조 조약』을 사실상 복원한 것으로 판단된다. 1961년 중국과 체결하여 여전히 유효한 『우호·협조·상호원조 조약』과 더불어 북한은 중러를 결박하려는 모양새이다.   최근 북중관계는 불편함이 표출되고 있지만, 양국관계의 근본적 역동이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한미동맹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을 자산으로 간주해야 하고 북한도 결국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대중국 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중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되고,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대북접촉을 시도한다면 2017-18년 역동에서 확인됐듯이 북중 정상회담을 포함한 급격한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2. 남북관계 김정은이 2023년 말과 2024년 초 “북남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는 선포한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더는 대한민국을 같은 민족으로 통일의 대상이 아닌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하는” 영토 완정을 국시로 확인했다. 북한 내 이미 확산된 한국문화를 차단하고 사상이완을 막기 위해 고강도 내부 결속을 위한 선택으로 판단된다. 더불어 평화통일이라는 미명 하에 시도된 ‘우리민족끼리’라는 담론이 더는 한국 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라는 김정은의 발언은 한국 정부의 성격과 상관없이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후 북한이 보여준 동해선과 경의선 폭파를 통한 대남 단절과 사고로 한국으로 표류해 온 북한 주민의 귀환을 위한 소통 거부는 한국과의 철저한 단절이 단기 선택이 아님을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노선 전환에 대한 한국 내 대북관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주변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북한은 중국과 함께 가장 비호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통일에 대한 국내 선호는 20대의 경우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 또는 ‘통일이 약간 필요하다’라는 통일 지지 응답율이 2018년 48%, 2019년 41.7%, 2020년 35.3%, 2021년 27.8%, 2022년 27.4%, 2023년 28.2%, 2024년 22.4%로 하락추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통일의식조사).   국내에서도 북한이 주창한 적대적 두 국가론과 궤를 같이할 수 있는 남북한 두 국가론이 제시되기도 했다. 여야 주류 정치권 모두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남북이 상호실체를 인정한 두 국가론에 기반하여 평화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바 있다. 한국의 대북 및 통일정책에 대한 재검토와 국내 공감대 확보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II. 복합 대북전략   전술한 북한의 대외전략 및 남북관계는 김일성이 1964년 2월 27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3대 혁명역량 강화노선’을 여전히 차용하고 있다. 북한 내(북반부) 혁명역량 강화를 위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포하여 한국의 영향력을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핵과 재래전 역량을 확충하여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하려 한다. 한국 내(남반구) 혁명역량 강화는 대북정책에 대한 남남갈등을 야기하여 북한에 유리한 정책 방향을 도출하려 한다. 국제혁명 역량 강화는 신냉전 진영주의 구축과 동시에 한미동맹 형해화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한국 신행정부 대응은 이러한 북한의 전략과 의도를 면밀히 파악한 바탕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책 목표는 현 김정은 체제가 추진 중인 선핵(先核)을 넘어서 비핵안보·선경(先經)으로 진화토록 한국이 지원하는 것이다. 위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3분면 억제국면에서 1국면 신뢰국면으로 유도를 모색한다.   현재 북한이 고위력 전략핵과 저위력 전술핵을 모두 개발하여 미 본토와 한국, 일본, 괌 등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 중이다. 특히 북한은 재래전 상황에서도 핵을 사용한 확전을 감행하고,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표출 중이다. 2022년 4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 전투무력이 동원되게 된다”라는 발언(조선중앙통신, 2022.4.5.)과 같은 달 25일 김정은의 “핵의 제2사명” 발언이 이를 표상한다. 2024년 4월과 5월, 2025년 5월 공개된 “국가 최대 핵 위기 사태경보인 《화산경보》”와 “국가 핵무기종합관리체계인 《핵방아쇠》”는 핵태세를 완비해 나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복합 대북전략은 우선 북한 핵에 대한 능동적 억제가 요구된다. 2국면으로 전환을 위해서라도 북한 핵에 대한 억제를 강화하여 핵의 군사·정치적 효용성을 낮추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 방안은 한미가 발전시켜온 맞춤형 확장억제를 더욱 제도화하는 것이다. 한미는 동맹 차원에서 최대치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여 확장억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작년에 한미 핵협의 그룹’(NCG)이 도출하고 양국 정상이 추인한 ‘공동지침’을 지속 이행해야 한다. 동 지침은 북한 핵억제를 넘어서 북한 핵에 대응, 한국과 미국의 북한 핵 대응능력을 통합하는 ‘핵 재래식 통합’(Conventional & Nuclear Integration: CNI), 평시 북한 핵 대응에 대한 최대치의 연합대비태세 유지 등을 포함한다. 나아가 한미는 기존의 북한 재래식 도발에만 국한되어온 작전계획을 북한 핵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확장억제의 제도화가 완성돼야만 한국 내에서 제기되는 독자 핵무장론, 미국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등의 주장을 상쇄할 수 있다. 독자 핵무장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고 북한 핵에 대한 외교적 해결보다는 군사적 수준을 최종적으로 선택한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요원하게 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한국 내 배치 시 대상 지역 주민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되고, 군사적 측면에서도 효용성이 떨어지며,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북한이 선핵을 포기하고 비핵안보·선경(先經)을 선택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미북간 비핵화 협상이 결실을 보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신냉전체제를 구상하며 대안 경제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제한된다. 미소 냉전 때와는 달리 미중 관계가 진영으로 절연되어 탈동조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불어 미소 냉전 때와 같이 인류의 최종 발전단계를 포함한 이데올로기적 동질성도 부재하다. 트럼프의 미국은 자국 우선을 추구하고,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은 반미라는 기치와 정치제도 측면에서 권위주의적 특성만을 공유한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에서도 소련, 중국, 북한 관계는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갈등과 협력의 반복이었음을 고려할 때 북한이 원하는 공고한 진영 구축은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북한이 충분히 인지하도록 한국은 미국과 일본, 국제사회와 협력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와도 협력을 모색해서 북한의 노선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보유한 핵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조성하여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중국과 러시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음을 설득해야 한다.   더불어 미북 협상도 단순한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질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견지하는 것이다. 동 목표를 상실할 경우 북한은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이 되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정치·외교적 수단은 소멸되고 군사 대치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포함하여 단계별 비핵화 조치와 이에따른 상응조치를 포함한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상응하는 완전한 제재 해제는 매우 지난한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8-19년 이른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기간에 표출된 지나친 낙관론에 따른 비핵화론은 지양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에 따른 가능성과 한계를 면밀히 판단하여 한국은 미국과 공동의 북한 비핵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대북 억제를 지속하더라도 북한에 관여하는 노력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역대 한국 정부가 진보는 관여를 보수는 억제만을 선택해 온 굴레에서 벗어나 같은 국면에서 억제와 관여가 모두 작동토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정치·군사 상황과 별개로 지속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지원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일방적 대화 제의는 오히려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이 공통으로 원할 수 있는 영역부터 시작해야 한다. 확성기 방송의 잠정 중단을 통해 북한 오물풍선 살포와 전방지역 소음 방송 중단을 모색하고, 무인기도 정전협정 존중 차원에서 남북 상호 자제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포한 이상 한국 신정부의 성격과 상관없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만을 위한 노력은 오히려 북한의 반감이 있을 수 있고, 미국, 일본 등과의 대북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셋째, 북한을 신뢰 국면으로 이끌도록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특히, 세계질서 변화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북한 문제는 세계 주요 의제와 연계되는 양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파병함으로써 유럽과 한반도가 연결되었다. 러우 전쟁이 남의 나라 전쟁이 아닌 한국의 문제가 된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도 러우 전쟁 종전과 종전 이후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북한 문제도 함께 풀어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특히 핵을 포함한 군사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 문제를 더욱 중국과의 관계에서 인식할 것이다. 일례로 트럼프 행정부가 1기에 이어 2기에도 강화하고 있는 핵무기 현대화 작업은 중국의 핵능력 증강에 대한 대응 차원이지만, 북한에 대한 억제와 대비태세에도 영향을 준다. 다만, 중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중국이 최근 수년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전무한 상황에서 비핵화를 위한 중국 견인은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생성형 AI가 가져오는 국제질서 변화와 새로운 지정학의 부상은 기존 군사·외교전략 패러다임의 변화로도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생성형 AI 활용으로 핵에 대한 감시·정찰·타격 능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북한 핵은 효용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차원에서 대응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술 변화가 가져올 새로운 지정학에 맞춰 남북으로 한정한 대화의 틀과 대북정책을 다양한 조합, 한러, 한미러, 한일중 등으로 변화시켜 대응하거나, 의제별로 분화하여 다루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품고 있고 핵의 전략적 가치가 결코 지속될 수 없음을 인식시킨다면 북한이 관여와 신뢰 국면으로 진입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한반도와 인태지역의 새로운 질서 건축을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통한 최종 목적지인 통일을 추동해야 한다. 북한이 ‘통일포기 선언’을 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한 이상 통일을 위한 환경 조성은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한국은“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는 헌법 4조를 추구해야 한다. 통일만이 북한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인위적인 북한 정권 교체와 같은 일방적 방법이 아닌 긴호흡의 상호 신뢰구축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통일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대북정책을 통해 남북한의 공존과 교류, 종국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인식도 지양해야 한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대남관계의 완벽한 단절이 목표 중 하나이므로 한국의 일방적 관여와 대화 요구는 북한 노선을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는 통일에 대한 한국내 여론에도 대응해야 한다. 당위성과 현실성 차원에서 모두 부정되는 통일에 대한 지지를 회복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통일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인적 자원과 제도적 측면이 약화되었다. 인력 양성 사업이 중단되고, 관련 분야가 폐쇄되는 현상이 확산되어 전반적 통일 역량이 제한되고 있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기존의 단선적 통일론을 넘어서 복합 통일 구상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칭 『한반도 통일 2050 구상』으로 미래를 향한 한반도 통일의 모습을 제시해야 한다. 19~20세기 분단과 통일 논의를 넘어서 21세기 통일 구상을 담아야 한다. 기존 안보와 번영의 통일 담론 외에도 환경, 문화, 정보지식 등의 다양한 영역을 기반으로 거버넌스(통치)를 포함하여 한반도 통일 모습을 그려야 한다. 특히 전술한 생성형 AI가 가져올 패러다임의 변화를 포함한 통일 구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50년 북한의 경제 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선핵 노선으로 경제를 병진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초월한 경제 모델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간 통일론이 기존 틀에 갇혀 전진하지 못했으므로, 장기 통일 구상을 통해 남북이 공멸을 피하고 공존을 넘어서 함께 발전하는 공진을 통한 통일을 구상해야 한다. ■     ■ 박원곤_EAI 북한연구센터 소장.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송채린, EAI 연구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11) | crsong@eai.or.kr  

박원곤 2025-05-27조회 : 2185
스페셜리포트
[신정부 외교 정책 제언 스페셜리포트] ③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 기술 외교 전략

I. 배경   2025년 현재 인공지능 경쟁은 미국과 중국의 AI 모델 및 기술 인프라 주도권 싸움을 중심축으로, EU의 규범 선도 전략, 영국 일본 한국 중동의 AI 발전 전략, AI 무기 규제와 글로벌 AI 안전 거버넌스 모색 등의 양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기술 수준을 넘어 경제 안보 규범 부문에서 진행 중인 세계질서 재편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1세기 경제적 번영은 물론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국제 규범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 확보와 활용은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국가들은 인공지능 기술 혁신 역량과 활용을 제고하기 위해 투자 증대와 인력 양성에 애쓰는 한편, 인공지능 기술 개발 및 활용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기술외교 전략을 짜고 있다.   2025년 5월, 미국 상원이 개최한 "AI 경쟁에서의 승리" 청문회에 참여한 샘 알트먼과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AI는 인터넷보다 더 큰 변화를 몰고 올 기술이며, 현재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도전자인 중국과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단순히 기술 개발을 넘어, 기술을 전 세계에 확산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국이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려면 인프라와 에너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영역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국가간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올해 초 중국 스타트업의 생성형 AI 모델 'DeepSeek-R1'이 저비용고효율 모델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국 주도 AI 발전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관심을 모았다. 딥시크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2025년 양회(两会)에서 인공지능(AI)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AI+' 전략을 제시하였다. 양회는 '임바디드 인텔리전스(Embodied Intelligence 具身智能)' 개념을 언급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커넥티드카, AI 스마트폰 등 제조업 중심의 AI 응용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제조업을 넘어 금융, 교통, 공공서비스, 의료,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AI를 적용하여 혁신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를 통해 동부 지역의 데이터를 서부 지역에서 처리하는 데이터센터 및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각국의 정책과 관행을 존중하는 기반 위에, 폭넓은 공감대를 가진 글로벌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및 표준 규범을 형성하고, 유엔(UN) 산하에 글로벌 AI 거버넌스 기구의 설립을 지원하는 'AI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추진해 왔다. 중국은 AI 논문 및 특허 출원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중국 AI 모델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5년 스탠포드 인덱스에 따르면 미국은 40개의 주목할 만한 AI 모델을 개발하여 중국(15개), 유럽(3개)을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양적 우위가 유지되는 와중에 중국 모델과의 성능 격차가 2023년 두 자릿수에서 현재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중국의 AI 도전이 부분적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기존 미국의 압도적 우위에 균열이 발생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될 것인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말 ‘인공지능법’을 최종 통과시킨 이후, 2025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AI 액션 서밋'에서 2,000억 유로 규모의 공공 및 민간 AI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를 위한 글로벌 규범을 주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25년 4월 OpenAI, Google DeepMind, Anthropic, Meta 등 주요 AI 기업과 MIT, 스탠퍼드, 칭화대, 중국과학원 등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학술기관과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AI 안전 회의를 개최하였다. 싱가포르는 자국이 미중 양국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AI 안전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AI 안전 분야에서의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강화하여,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원 의존적 경제에서 기술 중심 국가로의 구조 전환을 내세우며 국부펀드(PIF)를 활용해 AI 기업 ‘Humain’을 설립하고, 아랍어 기반 AI 모델과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EU, 싱가포르, 사우디 아라비아는 물론 일본 한국 호주 캐나다 등 많은 국가들은 미중이 주도하는 글로벌 인공지능 기술발전의 지평속에서 자국의 입지를 마련하고 공고히 하기위한 AI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 결의안에서 164개국이 자율 무기의 위험을 국제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동의했고 이의 후속 조치로 2025년 5월 유엔에서 AI 기반 '킬러 로봇'의 규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의 입장 차이로 구속력 있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UN을 위시한 다양한 국제기구들-OECD, UNESCO, G7은 물론 개별국가나 기업 수준에서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역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AI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AI 정책은 글로벌 AI 전개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AI 혁신과 안전 규제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 반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의 ‘AI 기술의 안전・보안・윤리・책임 등에 대한 행정명령’을 폐지하면서 AI 안전 규제보다는 혁신을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였다. 바로 이어 ‘미국의 인공지능 주도권에 대한 장애물 제거 행정명령’을 발표하였고 180일 이내로 미국의 글로벌 인공지능 주도권 강화와 경쟁력 및 국가안보 증진 실현을 위한 인공지능 실행 계획을 수립해 대통령에게 제출할 것을 지시하였다. 아울러 OpenAI(AI 연구 및 개발), Oracle(데이터 관리 및 클라우드 인프라 제공), SoftBank(자금 조달)의 협력하에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중국의 AI 기술발전에 대응하여 미국의 AI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향후 4년간 5,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규모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AI 부문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의 AI 혁신 강화와 투자 증대는 중국 EU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의 AI 투자를 끌어 올리며 AI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25년 3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53개 중국 기업을 포함한 80개 기업에 수출 통제를 발표하여 첨단기술의 대중 수출 통제가 트럼프 2기에서도 지속될 것임을 알렸다. BIS는 해당 기업들에 대한 수출 통제 이유로 중국의 군사 현대화, 인공지능 및 양자 컴퓨터 기술 발전 지원 등을 언급하였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대중 수출 견제(protection)와 아울러 반도체법을 통한 국내 첨단제조 역량강화 지원(promotion) 및 EU 일본 대만 한국과의 기술동맹(partnership)을 동시에 추진하였고 소위 3p 정책이 세트로 진행되면서 대중 기술 굴기 견제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미국 우선주위를 내세우며 첨단제조 지원과 기술 동맹에 대해 다른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어 이것이 대중 견제 효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관세를 통해 미국내 첨단 제조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동맹국과의 협력보다는 압박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하고 있다. 반도체는 구리 의약품 등과 함께 상호관세 미적용 대상으로 거론되었고 대신 이에 대해 품목별 관세 부과가 예고되어 향후 반도체 및 인공지능 관련 관세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산 제품에 대해 32%의 관세를 부과하였으나,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반영하여 반도체 제품은 일시적 예외로 두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규제와 관세 압박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자유무역질서 쇠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가들은 첨단기술 역량을 강화하면서 이를 위한 국제협력의 틀을 다시 짜고 섬세한 기술외교를 통해 자국의 번영과 안보를 추구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II. 제언   한국은 강점을 가진 AI 기술력과 반도체 기반 인프라에 토대한 인공지능 전략을 마련하여 추진해 왔고 인공지능기본법 마련, 2024년 ‘AI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혁신 안전 포용을 내세운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루어진 내용들만으로 AI 시대를 헤쳐나가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공지능이 번영 안보 가치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인공지능 역량과 활용 수준 및 글로벌 영향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정책들이 요구된다.   먼저 기술외교의 토대가 되는 AI 인프라 및 인력에 대한 투자가 대폭 확충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한국은 1980년대 초 과감한 투자와 함께 반도체 기술 혁신 역량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것이 현재 우리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되고 있다. 우리가 확보하게 될 인공지능 기술이 향후 중요한 외교적 카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를 위한 투자가 바로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2024년 한국의 AI 투자는 정부 민간을 합쳐 총 3.7조 (원)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 190조 (원), 중국 52조 (원)과 비교할 때 경제규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많이 부족하다. 정부는 작년에 2027년까지 총 65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지만 현재까지 이루어진 투자 실적은 계획에 비해, 또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AI 투자 부족의 가장 현저한 사례가 최신 AI칩인 엔비디어의 H100 확보 숫자로 확인된다. 지속적인 인공지능기술 발전을 위해 최첨단 칩의 확보가 중요한데 현재 한국은 약 2000개 정도를 확보한 상태이고 이는 미국의 수백만, 중국의 10만 정도(추정)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재원확보와 함께 칩의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기술외교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 AI 인력의 경우 절대적인 숫자의 부족도 문제이지만 국내 AI 인력의 40%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AI 발전을 위해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시급한 대응방안이 요청된다. 아울러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에 관건이 되는 에너지 확보와 개인정보 보호 등 제도적 여건들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기술외교에는 기술발전을 위해 외교를 활용하는 측면과 외교적 소통이나 성과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두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활용 확대를 위해 과연 외교가 중요한지 질문해 본다. 일차적으로 기술발전을 위한 국내 투자와 인력양성 및 각종 지원 정책들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발전이 진공상태나 국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은 명백하다. 연구개발 활동 자체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원천기술이나 필요한 소재와 장비 등의 수입이 필요하고 또 개발된 기술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가 원만하게 작동하는 시기에는 압도적으로 비용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국경을 넘는 기술 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수출규제나 관세인상으로 자유주의 세계정치경제질서가 불안정한 시기에는 외교 안보적 고려가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를 압도하게 된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발전을 위해 어떻게 국제협력의 틀을 짜고 어떤 국가들과 더 긴밀하게 협력할 것인가를 조정할 때 기술 내적 상황과 외교안보적 상황을 동시에 고려할 수 밖에 없고 기술외교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특히 인공지능 기술외교의 관점에서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내용들을 제시한다.   먼저 AI 반도체를 통해 기술내적인 상황을 점검해 본다. 한국의 메모리나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미국에 주요 제조장비와 IP를 의존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 이다. 인공지능모델을 돌리는데 들어가는 최신 칩 H100은 미국 엔비디어에서 설계하고 대만 TSMC가 생산한다. 반면 한국 반도체는 실리콘, 게르마늄, 텅스텐 등 핵심원자재의 많은 부분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고 한국 반도체의 절반 이상이 중국(홍콩포함)으로 수출된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제조시설을 두고 생산한다. 미국과의 협력이 중단되어 미국이 가진 강력한 카드인 반도체 장비와 최신 칩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한국 반도체 생산과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바로 멈출 수밖에 없다. 반면 중국과의 협력이 감소하면 한국 반도체 생산과 수출은 차질을 빚게 된다. 현재까지 중국은 한국의 기술과 반도체 수입을 필요로 하여 한국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지만 중국의 반도체 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중국이 가진 가장 위협적인 카드는 한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을 따라잡는 것이다. 지난 수년동안 미국의 수출통제로 중국의 반도체제조 기술혁신 속도가 느려지면서 한국기업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 기술외교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당분간 미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술외적인 상황에서 특히 언급할 만한 요소는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와 한국의 안보 및 번영의 관련성이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의 경제성장은 한미동맹과 자유무역질서에 토대하여 이루어졌다. 한국 기술혁신 역량강화 역시 미국 주도의 개방적 글로벌 혁신체제 하에서 진행되었다. 현재 미중경쟁과 미국의 수출규제 및 관세인상으로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가 쇠퇴하고 글로벌 공급망 및 혁신체제의 블록화가 진행되면서 이로 인한 물가인상 경기침체 연구개발비용증대 등의 부작용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쇠퇴와 글로벌 공급망 및 혁신체제 블럭화로 인한 충격을 가장 앞서서 맞고 있으며 어떤 형식으로든 공동번영을 위한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경제질서 회복과 재편을 위해 나서 힘을 모아야 한다. 공동번영을 위해 함께 만들어가는 소위 공생공진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에서, 한국에게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양국 경제의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중요한 파트너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하며 자유주의 세계경제의 재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은 글로벌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고 우리에게 없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생공진의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파트너로서 한국 기술외교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한미 양국은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인공지능 워킹그룹(Korea-US AI Working Group)을 출범시켜 머신러닝 및 AI 개발, 국제 AI 표준화, 연구 협력, 정책 상호운용성, 국제 AI 거버넌스 등을 주요 협력 분야로 설정하였으나 실질적인 협력이 진행되지 못했다. 미국은 202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AI 안전 연구소 국제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AI Safety Institutes) 회의를 개최하였고, 여기서 양국은 AI 모델의 안전성 평가와 국제 표준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새 정부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과 안전성에 관해 정부 차원은 물론 연구소 대학 기업을 망라하여 다양한 주체들간의 양국 인공지능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동맹 파트너이며 원천기술 보유국인 미국과의 첨단기술 협력 확대가 중요하며 특히 방위비나 관세 등에서 압박을 받는 반대 급부로 우리보다 협력의 동기가 약할 수 밖에 없는 미국에 보다 더 적극적인 신기술 협력 아젠다를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현재 미국 정부효율하에 연구개발 예산 축소가 진행중이다.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분야 및 대중국 견제에 활용 가능한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한미 첨단기술 협력을 주도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양국 첨단기술 협력이 과거와 같이 과학기술 자체의 목적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는 분산적 협력이 의미가 있고 큰 문제가 없지만, 현재와 같이 전체 국가안보나 외교 전략 측면에서 첨단기술 협력을 진행하는 경우 이러한 전략적 협력을 총괄적으로 모니터링 하면서 조율해 할 기술외교의 구심점이 필요하다.   미중 경쟁 상황에서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우리로 하여금 중국과의 기술외교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도록 요청하면서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외교 역량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 강화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축소되는 것을 사실이지만 대중 기술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향후 구체적 협력을 발전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 필요하다. 전략적으로 덜 민감한 과학기술 부문을 중심으로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들간의 네트워크가 유지되고 협력이 진행될 수 있도록 대중 외교를 회복하고 관리하면서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AI 기술발전 가속화와 함께 안전성 개인정보보호 등 확보에 대한 요청이 증대하고 있다. 한국은 2024년 유럽연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공지능 발전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일명 AI 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AI의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면서도 윤리와 안전, 신뢰 기반의 생태계 구축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맞추며 주요 내용으로 국가 차원의 AI 전략 수립 및 갱신 의무화, 위험 기반 AI 등급 분류 및 정부 대응 가이드라인, 공공부문 데이터 개방 확대, AI 윤리 원칙 준수 의무 및 평가 기준 마련 등을 포함하고 있다. UN, OECD, UNESCO, G7 등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 중국을 위시하여 영국 네덜란드 싱가포르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가 글로벌 AI 규범과 거버넌스를 제안하였다. 한국은 GPAI(Global Partnership on AI), OECD AI 원칙, G7 AI 프로세스, UN AI 거버넌스 논의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AI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서울 선언을 통해 AI거버넌스 가치로 안전, 혁신, 포용을 제시하였다. 일단 첫 발을 띤 상황에서 AI 발전과 신뢰를 균형 있게 고려하고 격차를 줄이는 내용을 담는 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 인공지능 기업들과 강대국의 영향력 확대 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데이터와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지역 언어와 문화, 가치관 등을 반영한 LLM에 토대를 둔 소버린(Sovereign) AI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AI 기술혁신을 소수 빅테크들이 주도하면서 자국의 독자적인 플랫폼이나 LLM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 자국의 정체성이나 국익을 반영하지 못하는 인공지능 결과물이 가져오는 위협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독자적 AI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소버린 AI 전략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슈퍼컴퓨터 역량 강화와 자체적인 AI 모델 개발에 대한 요청이 높다. 프랑스의 ‘미스트랄 AI,’ '르챗,' 핀란드의 ‘사일로 AI,’ 영국 문화와 역사에 초점을 맞춰 설계고자 하는 '브릿GPT,' 엔비디아와 협력해 일본어 특화 LLM 개발 등이 시도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한국형 소버린 AI 개발 및 확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네이버가 한국어 기반, 한국 사회·문화적 맥락을 담은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하였고 이를 토대로 중동, 동남아 지역에 최적화된 소버린 클라우드 및 소버린 AI 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소버린 AI 개발과 확장이 중요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Global South와의 인공지능 양자/다자 협력을 확대하면서 Global South의 포괄적 AI 전환을 지원하는 패키지를 개발하고 제시해야 한다. 현재 사이버안보 분야에서 Global South, 특히 아세안국가들과의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2024년 11월, 한국과 아세안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으며, 사이버안보, 국방, 공급망,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인공지능 부문의 협력도 함께 진행하며 한-아세안 디지털 플래그십 사업 등을 통해 개도국과의 기술협력을 확대하고, 아세안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협력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한국 기술외교의 출발점은 우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어떤 국가와 어떤 세계질서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빅테크가 주도하는 미국이나 권위주의 국가가 AI 발전을 이끄는 중국이 지향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미국식 모델이나 중국식 모델이 아니라면 한국식 모델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합의가 모아져야 한다. 이는 단지 소버린 AI 개발을 넘어 그 안에 어떤 내용과 가치를 담을 것인지를 포함하는 한국의 미래 정체성에 핵심적인 부분이다.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과 위험들에 대한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위협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루쉰은 분명히 적대세력들이 포위하고 있는데 분명한 적을 찾을 수 없고,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모호하며, 명확한 전선이 형성될 수 없는 상태를 무물지진(無物之陣)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압도적이고 얼마간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위협적인 아직 그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이 우리를 무물지진으로 내몰고 있다.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성장을 지원했던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의 쇠퇴가 진행되는 가운데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구축 또한 난망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지속적인 번영과 안보를 위해 요청되는 공생공진의 규칙 기반 자유주의 세계질서로의 재편이 한국만의 소망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계질서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함께 바라보는 지향점이 될 수 있다. 미중패권 경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우리는 공생공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로의 재편 및 우리의 안보와 번영에 중심을 두고,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과 활용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 경쟁과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과 위험을 파악하고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힘을 규합하고 연대하는 기술외교를 펼쳐야 한다. ■     ■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송채린, EAI 연구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11) | crsong@eai.or.kr  

배영자 2025-05-27조회 : 2937
스페셜리포트
[신정부 외교 정책 제언 스페셜리포트] ② 한국의 통상외교 2030: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의 혼란에 대응하는 3대 전략

향후 5년 한국의 통상외교는 ① 트럼프 관세정책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경제적 압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② 중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축소하는 한편 대중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③ 미중 첨단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혁신 능력을 확보하고, ④ 제로 성장 및 고용 침체 탈피를 돕는다는 4대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EAI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그 어느 때 보다 능동적이고 체계적인 경제외교를 요구하고 있다([도표 1] 2025.1.24.-26 EAI 여론조사). 신정부 통상외교는 급변하는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사활적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미시적으로 트럼프 관세 폭탄에 따른 한미 관세 협상을 치러야 하는 당면한 과제를 안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과제는 세계경제질서 혼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 질서 변화의 방향성을 정확히 읽는 일이다. 새 정부는 변화의 흐름에 기민하고 능동적이며 다면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자유주의 통상질서의 근간인 무차별 원칙(MFN), 나아가 WTO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세계 양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질서 파괴의 주범이기 때문에 과거 질서로의 복귀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한국이 추진해온 통상외교 즉, WTO와 한미FTA, 한중FTA 등 FTA 외교는 종언을 고했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신정부 5년은 기성 질서 대혼란 속에서 전개될 새로운 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신질서는 조정된 자유주의 질서, 다중질서화, 그리고 무질서 등 3가지 방향으로 전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대체로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있다. 셋째, 무역입국인 한국의 핵심 이익에 부합하는 질서는 ‘조정된 자유주의’ 질서이다. 따라서 한국은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질서 건축 외교’ 즉, 거시적으로 미국이 조정된 자유주의 질서 괘도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외교 (혹은 미국의 패권 복귀를 돕는 외교), 또한 이런 질서 회복, 건축에 뜻을 함께하는 동지국과 연대를 추구하는 외교를 수행해야 한다   I.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1945년 이후 세계 경제는 블록화되고 폐쇄적인 질서로부터 미국의 주도로 통합적이고 개방적인 자유주의 질서로 재조직되었다. 미국은 GATT,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제도 창설에 앞장서고 자국 시장 개방과 항행의 자유 보장 등 지구 공공재를 제공하였다. 한국은 이 질서 속에서 수출주도형 정치경제체제를 구축하여 고도성장과 번영을 이룩하였다. 자유주의 질서의 모범생이고 최대의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냉전의 패권 질서는 1990년대 탈냉전과 지구화의 물결 속에서 시장 중심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질서로 진화하여 국가간 상호의존이 증대하였고 지구 전체의 번영도 가져왔다. 한국은 적극적인 세계화 추진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반면에 지구화의 진전에 따라 ① 국가간 & 국가내 경제적 불균형과 격차는 확대되고, ② 국가간 상호의존의 비대칭성에 따른 과잉의존(overdependence) 리스크가 증대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우 전쟁은 과잉의존의 리스크를 더욱 확대하였다. 기성 질서가 초래하는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질서 변화를 추동하는 세력 또한 미국이다, 트럼프 1기부터 바이든 행정부, 트럼프 2기를 관통하는 미국의 목표는 국내 제조업의 쇠락과 무역 불균형 확대, 경쟁국 중국에 대한 과잉의존 문제를 해결하면서, 궁극적으로 중국과 첨단기술 경쟁에서 안정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관세정책을 통해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제조업 기반의 회생을 꾀하고 있으며 반도체와 AI 등 첨단 기술 부문에서 대중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성 자유주의 질서로부터 이탈을 뜻한다. 그 결과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평균관세율 3.3%로 최저 수준인 미국은 트럼프 2기에 들면서 30%를 상회하는 강력한 보호주의 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기성 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국가 주도 중상주의 체제를 효율적으로 가동하여 제조업 기반을 구축하고 수출경쟁력을 확보하여 고도성장을 거듭,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구축하자 주변국들의 중국 의존이 심화되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확대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이 기성 질서를 악용하여 불공정하게 부를 축적해왔다고 비판해왔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가입한 후 개도국 지위를 악용해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촉진해 미국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불평등과 실업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중국 과잉의존에 따른 취약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중국의 대미수출 의존도는 감소해 상호의존의 비대칭성에 따른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이 첨단기술 개발과 국가안보를 연계한 국가체제(techno-security state)를 통해 AI, 배터리, 로봇, 디지털 감시체계 등 미래기술을 선도하는 추세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심 광물 수입 다변화, 무역적자 시정, 중국의 850억 달러 규모 미 국채 보유액 축소 등 대중 과잉 의존을 해소하기 위해 디리스킹(de-risking) 개념을 동원했다. 상호의존이 주는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과잉 의존이 초래하는 국가안보 리스크를 감축하기 위해서, 대외 의존의 다변화를 꾀하고 우호국과 공급망을 재편하여 회복력을 향상하는 한편, 민-군 겸용 기술의 대중 차단을 추진했다. 현 트럼프 행정부는 공급망의 국내 이전, 상호관세를 통해 중국과의 교역 축소뿐 아니라 멕시코·캐나다·베트남을 우회 수출기지로 삼는 루트를 봉쇄하는 등 전략적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다. 양국 경제는 여전히 촘촘한 상호의존의 망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미중 간 관세 전쟁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어 타협의 길로 갈 것이다. 그럼에도 치솟은 관세율, 이미 설정한 여러 수출 및 수입 규제 조치를 원위치로 돌리기는 어렵다. 양국 간 상호의존의 수준은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리더십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변화는 국제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바처럼 미국의 전략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별적 성향이나 정책 선택에 의해 형성되는 부분도 크지만, 미국이 직면한 국제질서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복귀하지 않았더라도, 혹은 바이든 정부가 지속되었더라도, 미국은 패권 질서를 재조정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트럼프 2기 전략은 예외적 외교정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미국이 처한 구조적 상황에서 비롯된 조정 시도로 볼 수 있다.   II. 질서 변화의 방향성   2030년에 이르는 향후 질서의 방향성은 미국의 정책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 관세가 WTO 제1조(무차별 관세 원칙)와 제2조(관세 인상 원칙적 금지)를 정면 위반하듯이 미국은 자유주의적 다자주의 경제질서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또한 경제-안보의 선순환 구조 즉, 안보 외부효과에 따른 경제 협력 심화, 그리고 경제적 외부효과에 따른 안보 협력 강화 메커니즘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지구 거버넌스 역시 다자주의 중심에서 강대국과 우호국 중심의 협상/협조체제를 선호한다. 이러한 트럼프의 자유주의 이탈은 일시적인 전략적 재조정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전략적 재설계인가? 미국의 변화에 대한 예측에 따라 2030년 세계 질서 즉, 한국의 새 정부가 겪게 될 질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시나리오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이 전략적 재조정을 통해 조정된 다자질서로 복귀하는 시나리오이며, 둘째는 미국이 다자질서를 폐기하고 전략적 재설계에 나서는 한편 중국 중심 그룹과 EU와 CPTPP 회원국이 중심이 되는 그룹 등 복수의 통상질서가 경합하고 공존하는 경우이다. 현재 미국민의 무역에 대한 긍정적 태도([도표 2]), 그리고 미-중을 포함, 세계 주요경제권 사이의 심화된 경제적 상호의존 상태를 고려하면 미래 질서 건축은 첫째와 둘째 시나리오의 경합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이런 시도가 실패하면 세 번째 시나리오인 무질서(anarchy)로 갈 수 있다.   1. 조정된 자유주의 질서(재세계화 질서) 이는 내장된(embedded), 조정된(modified) 세계화 혹은 재세계화(reglobalization)를 선호하는 국가군의 협력에 의한 자유주의 다자질서 복원이라 할 수 있다. 시장주의가 초래하는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포용적(inclusive) 세계화, 팬데믹과 같은 재난 혹은 국가간 상호의존의 무기화에 대해 회복력 있는(resilient)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해 뜻을 공유하는 국가(like-minded countries) 혹은 동지국, 특히 일본, 호주, 캐나다, 영국, EU 선진국 등이 ‘미국 없는 다자협력’을 추동하는 것이다, 역시 관건은 미국의 전략적 재조정(strategic readjustment) 여부이다. 이는 미국 대외경제정책의 재조정으로서 관세 등 경제 강압으로 단기적 이익을 확보한 후 패권으로의 복귀 - 기성 질서의 부분 수정 및 복귀의 수순이다. 1971년 닉슨(Nixon) 대통령은 패권의 의무 축소, 고정환율제 파기, 관세 인상 등으로 소기의 성과를 이루자 관세 인상을 철폐하고 변동환율체제의 안정적 관리로 이행하여 기성 자유주의 질서의 수정과 조정을 통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과격한 관세정책은 이미 중국 등의 반발과 보복, 관세전쟁에 따른 인플레 우려, 미 국채이자 하락 및 주식시장 폭락 등 금융시장의 부정적인 반응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이며 중국과 타협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가 미국경제 성장과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점에서 미국의 조정된 자유주의로의 복귀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2. 다중질서화 조정된 자유주의 다자질서화 노력이 난관에 부딪칠 경우 등장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중질서화 즉, 복수의 질서/블록이 경합, 공존하는 체제라 할 수 있다. 미국이 GATT/WTO체제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새로운 형태의 국제 교역질서를 추구하는 시나리오이다. 관세를 중심으로 한 관리무역이 미국산업 기반의 부활과 무역적자 해소를 가능케 한다는 믿음이 견고한 경우이다. 미국은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별적으로 양자/복수국간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을 체결하고 이를 중심으로 저수준의 협조체제를 결성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이 주도하는 체제, 예컨대 브릭스(BRICS) 확대를 통한 비자유주의적 경제 플랫폼 기반 질서가 형성되는 한편, EU와 CPTPP 국가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 이들이 서로 배타적이고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간 혹은 질서간 느슨하게 연계된 복수 다중 네트워크(plurilateral networks)가 짜여지는 경우 경제적으로는 이른바 스파게티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가 초래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호 공존하는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3. 무질서 이상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 1930년대와 같은 배타적 블록경제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금본위제가 붕괴한 이후 복수의 공통 통화를 축으로 하여 블록 경제권이 등장하여 블록간 경쟁적 통화경쟁, 보호관세와 수출입 통제, 외환관리 등을 통한 이른바 ‘근린 궁핍화’ 상황이 다시 등장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전환의 핵심 변인은 미국과 중국간 전략적 디커플링이다. 적어도 양국경제간 (또한 주요 경제권) 심화된 경제적 상호의존 상태로 보아 2030년까지 양국관계가 분단과 블록화로 악화될 가능성은 낮다.   III. 한국의 대응 과제와 전략   개방적 통상국가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의 이익에 상대적으로 부합되는 선택지는 2안이다. 세계 경제의 분절화를 저지하고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과제는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긴밀한 상호의존의 망이 담보하는 지정학적 안정 효과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이 자유주의 질서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요컨대, 한국의 경제외교 과제는 거시적으로 미국이 자유주의 다자질서 괘도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외교 (혹은 미국의 패권 복귀를 돕는 외교), 그리고 이런 질서 회복에 뜻을 함께하는 동지국과 연대를 추구하는 외교라 하겠다. 이상의 전략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3대 실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조정된 자유주의 질서로 복귀를 지원하는 외교이다. 새 정부는 한미간 산업적, 경제적 이익의 균형을 이루는 차원에서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25%),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25%), 한국에 적용하는 상호관세(25%) 등 3대 관세 협의를 진행할 것이다. 협상에 임하는 트럼프 정부의 기본 프레임은 관세를 통한 재균형 -무역적자 교정, 제조업-서비스업 불균형 교정, 재정적자 축소, (중국에 대한) 전략적 디커플링- 추구란 시각에서 한미 경제관계와 대한국 무역협상을 다루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역시 거시 복합 프레임을 갖추어야 한다. 조정된 자유주의,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한국경제에 사활적 이익이기 때문에 이를 지탱하는 패권 세력이 존재해야 하며 가까운 장래 미국 이외 패권을 담당할 세력은 부재하다. 따라서 한국의 대미 협상은 단순히 미국과 경제적 정치적 이익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적 역할에 대한 지지,’ 다른 표현으로 ‘패권에 대한 투자’라는 명분을 내걸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의 이익(재균형 추구)과 자유주의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접점과 교집합을 확대해 가는 노력이다. 반도체 등 첨단 설비 투자, 조선업, 방위산업, LNG 수입 등은 필수불가결한 동맹(indispensable ally)로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돕는 협력 아이템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은 미국이 지적하는 국내 시장의 비관세장벽으로서 불공정 행위 시정 문제 시정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피하려면 자국] 관세를 인하하고 장벽을 해체하며 환율조작을 중지할 것”이라 명언한 바 있다. 차기 정부는 국내 불공정 관행의 시정이란 곧 미국 패권의 회복 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과 관련된 사안임을 인지하고 이 작업을 통해 수입을 확대하여 무역의 확대 재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둘째, 동지국과의 연대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그 중심 플랫폼은 CPTPP이다. CPTPP 회원국의 대다수는 미국의 동맹국(일본, 호주, 캐나다, 영국 등) 혹은 우호국으로서 미국 없는 (조정된) 자유주의 다자질서 수립에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들이다. 새 정부는 CPTPP 가입을 적극 추진 및 적극 활용할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상기 이 과제 -그리고 미국의 패권적 역할 지원 과제- 추진에 있어서 핵심 파트너는 일본이다. 한일 양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무역대국으로서 자유와 개방의 국제경제질서에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다. 또한 제조강국으로서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고 긴밀한 공급망으로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과 무역 협상 측면에서도 대단히 유사한 협상 구도를 가지고 있다. 무역에 관한 한 대중 인식과 정책 면에서도 공유의 분면이 넓다. 일본은 이미 미국의 글로벌 리더쉽에 투자하고 있다. 아베 정부에 이어 기시다 정부는 미국이 더 이상 지구적 리더쉽을 행사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일본이 조력자(혹은 공동 리더쉽의 하위 파트너)로서 미국의 패권 리더쉽 복원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천명한 바 있다. 일본은 패권 하락의 미국과 동맹국 사이 책임과 특권의 배분을 둘러싼 전략적 재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보완하고 패권 블록의 전략적 분열을 억제하여 기성 질서의 복원과 진화로 이끄는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 한국도 유사한 입장이므로 미국의 패권 리더쉽을 보완하는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은 CPTPP 주도국으로서 한국의 가입을 적극 지원하고 CPTPP 확대와 심화를 위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으로서 과잉 의존을 적정한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한국은 한 때 대중 수출의존도가 28%에 이를 정도로 과잉 의존 상태이며 부품/소재의 대중국 의존도는 30%에 육박한다. 저가로 중국의 부품과 소재를 수입, 가공하여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패턴 때문이다. 2020년대 들면서 한국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과잉 의존 리스크가 고조되자 이를 분산, 저감하는 “탈중국화”를 추진하였으나, 그 결과 대미 수출이 급증하여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흑자는 557억 달러로 사상 최대) 트럼프 관세 폭탄에 직면하여 있다. 또한 한국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이 최종재를 미국에 수출하는 경로도 트럼프 관세로 차단 위기에 처해 있다. 요컨대, 미·중 양대 시장에 대한 과잉 의존 리스크에 노출되어 전략적으로 동반 축소와 다변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미·중 디커플링 리스크가 상승하면서 양자택일의 리스크 즉, 어느 한쪽과 상호의존의 대폭 축소를 감수하는 상황, 나아가 안보 관계의 약화 상황도 마주할 수 있다. 미·중 디커플링 움직임을 대비하여 과잉 의존을 축소하되 적정한 상호의존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전략적 조정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경제외교는 지구 남반부(Global South) 특히 아세안과 인도로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Global South로 보호주의 확산 억제를 위한 지구적 협력 노력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의 일환으로 세계 경제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으로의 전환(China+1 ⇒ China+α)이 필요하다. ■   [도표 1] [도표 2]     ■ 손 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담당 및 편집:송채린, EAI 연구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11) | crsong@eai.or.kr  

손열 2025-05-27조회 : 2616
스페셜리포트
[신정부 외교 정책 제언 스페셜리포트] ① 국제질서의 변화와 미중 전략 경쟁, 신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과제

I. 트럼프 정부 발 국제질서의 변화: 국제질서의 혁명적 변화인가   1. 구조가 만든 전략: 개인보다 시대의 산물 미국의 리더십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변화는 국제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바처럼 미국의 전략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별적 성향이나 정책 선택에 의해 형성되는 부분도 크지만, 미국이 직면한 국제질서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복귀하지 않았더라도, 혹은 바이든 정부가 지속되었더라도, 미국은 패권 질서를 재조정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트럼프 2기 전략은 예외적 외교정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미국이 처한 구조적 상황에서 비롯된 조정 시도로 볼 수 있다.   2. 패권전략의 피로: 패권의 비용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해온 패권적 질서는 막대한 국제공공재를 제공하며 무정부적 국제사회에 실질적 질서를 부여해온 독특한 체제였다. 미국은 자국의 자원으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비정상적 구조를 감내해 왔으며, 이는 근대 국제정치사에서 예외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체제는 패권 유지와 경제적 부담 간의 긴장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한 일방주의적 조정은 반복되어 나타나왔다. 예컨대 닉슨 시대의 금본위제 해체, 레이건 정부의 군비확장과 달러 강세 정책 등은 모두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내부 부담과 외부 책무 사이에서 균형을 재조정하고자 했던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은 다시금 그러한 조정기의 한복판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조정은 단순한 주기적 조정의 반복이 아니라, 훨씬 더 심화되고 구조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구별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단극 패권은 세 가지 구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는 국제공공재 수요의 급증이다. 테러리즘, 팬데믹, 기후변화 등 복합 위기에 대한 해결 요구는 패권국에 집중되며, 단순히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둘째는 지구화로 인한 국제 불안정의 증가이다.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경제 체제는 빈부격차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으며, 세계적으로 통합된 공급망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기존 패권 질서가 제공하는 안정성의 한계가 노출되고 있으며, 패권적 리더십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대두되고 있다. 셋째는 중국과 같은 전략적 경쟁국의 부상이다. 중국의 부상은 단순한 경제성장 차원을 넘어서, 안보와 규범, 기술과 산업체제 전반에 걸쳐 미국 패권에 대한 실질적인 도전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세력균형 논리를 다시 부상시키며, 미국 주도의 단극 패권 구조에 대한 구조적 도전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상충하는 세 개의 목표 이러한 도전들은 단순한 정책적 조정보다는 미국 외교의 전략적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패권적 경제기반의 재건과 지구적 리더십의 유지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며, 국내적으로 체제의 취약성을 낮추고 대외정책에 필요한 국내적 정치,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들이 상충하며, 목표 간의 긴장을 불가피하게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예컨대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지속될 경우, 미국의 안보전략에 대한 신뢰성과 협력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은 현실적인 우려가 된다. 글로벌 리더십을 과도하게 추구할 경우 미국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고 이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지지, 국내경제적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경제적 압박의 강화는 동맹국들로 하여금 자율적 핵무장이나 적대국과의 편승 전략을 추구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심각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4. 패권 재설계의 시험대 트럼프 2기 전략의 독특성은 기존 행정부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이나 제도적 일관성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미국의 즉각적 이익과 상대국의 기여를 우선시하는 일방주의적 접근을 선택해왔다. 이러한 전략은 동맹과 규범을 중시하던 전통적 미국 외교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와 같은 접근은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기질적 특성이나 정치적 성향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국내 정치와 경제 구조에서 비롯된 정부와 국미니들의 패권 유지에 대한 피로감의 누적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약 30년에 걸친 단극 체제 동안, 미국 국민은 자국의 막대한 비용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해왔다는 인식을 강하게 형성해 왔으며, 이는 정치적으로 반패권적 내셔널리즘의 부상을 초래하였다. 트럼프는 이러한 흐름을 선명하게 정치화하고 제도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전략은 일종의 정치적 실험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전략적 조정이 아니라, 미국 패권의 유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시도이며, 그 과정에서 외교·안보 정책의 기존 정합성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닌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 전략, 다자주의 기반의 리더십, 규범적 질서 구축 등의 접근은 모두 '상호 기여'와 '비용 분담'이라는 기준에 따라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국력과 자원의 내적 재정비를 위한 선택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재정립하고자 하는 구조적 변환의 예고일 수 있다.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전략은 혁명적 단절이라기보다는, 누적된 피로의 폭발적 표출이며, 패권의 진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조정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는 향후 미국 외교의 방향, 국제질서의 성격, 동맹의 구조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며, 트럼프 2기의 전략은 그 전환기의 예고편이자 실험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5. 트럼프 2기 100일 안보정책: ‘개입 축소’를 통한 경제력 회복과 ‘패권 유지’의 병행 전략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전략은 복합적 구조 속에서 두 가지 상충되는 목표—국내 경제기반 강화와 글로벌 리더십 유지—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국제분쟁 개입을 줄이며 자국 부담을 완화하고, 동시에 협상력과 군사적 억지력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1기에는 NSS(2017) 및 인도-태평양 전략(2019) 등 공식 문서를 통해 전략적 일관성을 확보했으나, 2기에는 충성파 중심 내각 개편과 전략 커뮤니티의 축소로 인해 정책 생산의 체계성과 일관성이 약화되고 있다. 개입축소를 예고했지만, 중동, 우크라이나, 양안해협 등 다양한 지역에 선택적 개입을 시도하는 모순적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신현실주의 자제주의의 흐름이 부상하면서 군사적 거리두기와 권역별 강대국 협조 구도를 모색하는 전략도 병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동, 인도-파키스탄, 한반도 등에서 미국의 지속적 개입을 통한 강한 억제력 확보 의지가 약화가 되고 있다. 러시아·중국·북한은 이를 세력 확장 기회로 삼고 있다. 이들은 ‘다자주의 복원’을 주장하나, 많은 국가들은 이를 세력권 확대 시도로 간주하여 기존 자유주의 질서와의 해석 격차가 커지고 있다. 미래 첨단기술에 기초한 안보를 놓고 바이든 정부는 첨단 기술 안보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디커플링 정책을 지속한 바 있지만, 트럼프 2기에서는 경제·기술·안보 간 전략적 정합성이 부족하고, 단기 이익 중심 접근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전략의 변화는 경제안보와 안보를 연계한 광물 협정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안보 공약의 명확성이 결여되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요구를 자극하고 있다. 나토 대체 구상은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낮고, 핵우산 신뢰도도 약화되는 중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지지, 네탄야후-트럼프 간 긴장과 전략적 견해 불일치, 이란 핵합의 복원의 불확실한 타결전망 등은 미국의 중재력 약화를 상징한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은 혁명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략적 목표의 연속성 속에 접근방식과 전술의 특이성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변화가 국제질서 전체의 변화를 수반할지는 불확실하다. 구체적인 안보전략에서 개입축소를 통해 미국의 경제력 회복을 추진하면서 안보공백이 창출되어가는데 이를 차후에 미국이 다시 번복할지는 동맹국들의 역할 변화와 미국의 경제전략 성공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관세를 축으로 한 미국의 경제력회복전략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경제적 수단을 앞세워 안보목적을 달성하는데에는 한계가 있고, 미국의 국방 주류 세력들의 향후 대응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II. 트럼프 2기 대중 안보전략과 한미동맹의 재편   1. 우선순위 재조정 전략 2025년 상반기 발표된 미국의 국방 전략 잠정 지침은 미국의 지정학적 방어선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멕시코,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 북미 주변의 ‘근외(near abroad)’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반구(Western Hemisphere) 방어 강화, 국경경비 강화 및 중국의 세력확장 억제가 주요 내용이다. 이는 유럽이나 동아시아 같은 전통적 전진 방어선에서 벗어나, 본토 직접 방어에 전략적 초점을 두는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두 개 이상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따라 전략의 집중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군사력과 예산을 분산시키는 대신, 중국과 같은 핵심 경쟁국에 억지력과 역량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적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재편은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요구와 자주방위 역량 강화 요구로 직결되며, 미국 단독의 전략 수행이 아닌 동맹 중심 전략으로 전환되는 배경이 된다.   2. 대중 거부 전략과 도련선의 확대 방지 트럼프 2기 국방전략의 근간에는 엘브리지 콜비의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콜비는 군사 패권국의 지역적 부상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미국 패권의 유지에 필수적이라 보며, 중국이 도련선 안에서, 즉 자신의 지역 내에서 군사적 패권을 형성하는 것을 미국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는 1도련선 내에 위치한 동맹국의 기여를 강조하는 억제 전략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최근 대만 내부에서 자주방위 의지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 내부에서도 대만 방어에 대한 피로감과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전략적 방어선이 1도련선에서 2도련선으로 후퇴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는 한국의 전략적 위상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도련선이 후퇴할 경우, 한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전방 거점으로서의 부담을 더욱 크게 안게 될 수밖에 없다.   3. “억지력의 이양”: 한미동맹 구조의 전략적 전환 미국은 북한을 단기 군사위협이 아닌, 장기적 억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본토 위협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아직 실질적인 능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주류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대북 억제의 중심축을 점차 한국으로 이양하는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연합전력 및 전작권 체계를 기반으로 억지 능력을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통상전력 분야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대북 군사억제 기능을 맡도록 제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대북 핵확장억제에 대한 보장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점은 주한미군의 기능 변화의 조짐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북한 억제가 중심 임무였지만, 앞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이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일부 전력이나 장비가 전용될 가능성, 다양한 병참 지원도 제기된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한반도 방어에서 동아시아 질서 유지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과정에서 방위비 분담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안보공동체의 신뢰 문제라기보다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철저한 경제적 사안으로 접근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유지는 군사적 판단보다도 예산 및 비용분담 문제와 연동되어 있으며, 향후 논의의 초점은 억지 역량의 강화와 역할 분담 재조정에 맞춰질 전망이다. 한국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되, 미국의 전략적 주도권은 유지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III. 차기정부의 외교안보과제   1.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변화와 공진적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점차 약화되면서, 이를 대체하려는 여러 구상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복원 가능성이다. 트럼프 2기의 전략이 실패하거나 과도하게 거래적 성격으로 흐를 경우, 미국 내 민주당 혹은 공화당 주류의 복귀를 통해 다시금 동맹 중심의 다자협력 체제가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유효하다. 이 시나리오는 특히 나토의 재정비, 미국 주도의 집합적 리더십 회복, 미중관계의 안정화 이후 동아시아 질서의 재설계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미국 없는 다자주의’라는 시도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지 않더라도, 중견국들과 선진국들이 자유주의 규범을 바탕으로 새로운 다자협력을 추구하자는 구상이다. 일종의 안보판 CPTPP라 할 수 있는 이 모델은 가치와 비전의 합의라는 강점은 있으나, 전략적 추진력과 강제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비자유주의적 목적을 중시하여 아직은 통합의 여지가 약하다. 또한 자유주의 선진국들 간 중견국 연합은 역량 부족, 내부 분열, 미국의 반발 등 복합적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   셋째는 강대국 간 거래체제의 조성이다. 역사적 유대나 이념을 뛰어넘어, 최상위 군사 강대국들 간의 권역 분할과 세력권 협조를 통해 국제질서를 안정시키려는 접근이다. 기존 자유주의 질서와는 구조적, 철학적으로 단절된 이 구상은 트럼프식 외교의 실용주의적 태도와 결합되면서 점차 현실정치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중국, 러시아와의 세력권 조정은 비공식적 합의와 양자협상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향후 국제질서는 과거처럼 한 국가가 단독으로 패권적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어떤 국가도, 설령 미국이 패권을 회복하더라도 단독으로 국제사회를 이끌 수 없다. 기후변화, 팬데믹, 디지털 통제, 인공지능, 사이버 안보 등 국제 공공재에 대한 수요가 너무나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범지구적 대응을 요구하며, 단일국가의 자원이나 정치적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다. 국제질서의 필연적 귀결은 집합적이고 공동의 리더십(collective leadership)의 등장이다. 어느 한 국가가 이끄는지가 아니라, 어느 국가가 다양한 선진국 및 중견국들과 연합하여 질서를 관리하고 운영하느냐가 핵심이 되는 시대이다. 이 구조 속에서 한국이 원하는 질서는 단순한 참여나 안보 보장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한국이 바라는 질서는 단순한 다자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규범에 기반을 두고 한국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진적 자유주의 질서(co-evolutionary liberal order)이다. 이 질서는 과거의 일방적 서구 중심 자유주의를 복제하지 않으며, 국제 공공재의 공급과 규범 형성에서 중견국들의 적극적인 기여와 발언권을 전제로 한다. 한국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핵심 원칙을 공유하면서도 지정학적으로 복합적 균형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자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국제구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다자주의가 어떠한 규범과 원칙, 가치를 바탕으로 작동하느냐이다.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규칙기반 질서는 한국의 안정과 발전에 호의적 환경이었고 앞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면 한국에게 유리할 것이다. 중국 역시 다자주의와 규칙 기반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주의가 약한 국가들의 자유와 주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실질적 국제질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질서 논의에서 소극적 수용자가 아니라, 원칙 있는 동반자이자 설계 참여자로서의 입장을 확립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중국이 이러한 방향으로 다자주의를 전개할 수 있도록 기대와 요구를 표현해야 하며, 자유주의적 질서의 핵심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국제 정책과 외교 전략을 통해 이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의 외교는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다. 한국은 외교적 실력, 정책적 정합성, 국내 통합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질서 형성과 위기 관리의 동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때 실용외교는 중요하지만, 장기적 외교 레버리지를 보장하는 첨단기술 시대의 실력축적외교, 질서외교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2. 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과제: 신냉전이라는 오해와 공존 속 대결, 대결 속 상호의존 한국의 대응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한국이 원하는 국제질서의 미래상 확인, 그리고 이에 따른 비전과 외교전략의 원칙 제시이다. 흔히 이야기되듯이 미래 국제질서를 미중 간 극한 대립, 신냉전 체제로 예단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20세기 냉전은 진영 내 결속과 진영 간 배타성, 이념 대립이 확고히 정착된 시대였으나, 오늘날의 미중 관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중 간 교역량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각 진영에 속한 국가들도 상대 진영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미중 관세협상의 결과가 어떠한 전반적 변화를 가져올지도 주시해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채 국제질서의 주요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양국 모두 내부적으로 이념적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단순한 이념적 대립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중 간 갈등은 경쟁과 협력, 갈등과 공존이 병존하는 비선형 구조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를 냉전이라 규정하는 순간 한국은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는 정책적으로 오류이며 논리적으로도 근거가 약하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제3국을 중심으로 대리전 양상을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개별 정책 차원의 현상에 가깝다.   다른 국제질서 전망으로 거론되는 다극체제 역시 쉽게 동의하거나 낙관할 수 없다. 미국은 다극체제 속 미국 우선주의를 언급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국가들은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세 개 이상의 압도적 강대국이 병존하는 체제는 협력이 아니라 경쟁과 충돌의 경합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다극 질서에서 합의된 국제 규범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결과적으로 다극체제는 ‘질서’가 아니라 ‘다극적 무질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전쟁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과 같은 경계선의 국가는 다극체제 속에 전쟁 방지와 국익 실현이 매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다극화된 질서의 체제수립의 가능성에 대해 낙관할 수 없다.   강대국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극 질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중국은 안정된 다극 세계를 말하고, 미국은 다극 세계 속에서도 ‘위대한 미국’을 외친다. 그러나 다극과 안정, 또는 다극과 미국 중심 질서의 병존은 형용 모순일 수 있으며, 다극체제가 오히려 중견국 외교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쉽게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외치기에는 다극체제 자체가 평화롭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중 전략경쟁은 단순한 기술 격차나 관세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두 국가가 서로의 체제 취약성(vulnerability)을 누가 더 잘 지키고 방어하는가를 가늠하는 장기적 대결이다. 미국 역시 패권의 재강화와 보통강대국으로의 몰락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도 세계 공장과 기술굴기의 이미지 사이에서, 부동산 붕괴·청년 실업 등 내부 구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AI, 전기차, 로봇 등 기술 혁신 분야에서 BYD, 화웨이 같은 선도 기업을 앞세워 ‘희망적 중국’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나, 동시에 고용 위기, 소비 침체, 부채에 시달리는 ‘암울한 중국’의 현실도 함께 존재한다. 이 양면성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이중적 중국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낙관이나 비관의 편향 없이 양국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중국의 기술 발전은 분명하지만, 제조업 고도화 비중은 아직 GDP의 6% 수준이며, 부동산 의존도는 17% 이상으로 여전히 높다. 산업 구조는 바뀌고 있지만 사회보장과 소비 기반 강화를 외면한 성장 전략은 내구성과 균형 측면에서 취약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내부 체제의 회복력과 구조적 보완 능력에서 성패가 결정될 것이며, 이 경쟁은 기술이 아니라 체제의 지속가능성 그 자체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단순한 기술 격차나 관세 싸움이 아니라, 각국이 자신의 체제 취약성을 얼마나 잘 보호할 수 있는가를 놓고 벌이는 장기적인 경쟁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패권을 회복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중국 또한 내부 위기를 관리하면서 전략적 부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모두 패권 강화와 구조적 쇠퇴라는 이중의 진로 가능성 앞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향후 경쟁은 어느 국가가 더 빨리 성장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랫동안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회복시킬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은 현재까지의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미중 전략경쟁이 규범과 규칙에 근거하여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의 전략적 공간을 보존하며 긴 호흡으로 상황을 관찰하고 준비하는 신중한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은 단기 명분이 아니라, 외교적 유연성과 질서 형성에 대한 발언권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의 축적이 중요하다.   한국은 단순한 동맹국이 아니라 전략적 균형축으로서의 위상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자율적 억제 능력을 확보하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미 전략자산의 상시 전개, 확장억제의 지속,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기반으로 한반도를 동아시아 안보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활용하려 한다. 이러한 전략은 한국에게 이중적 부담을 안긴다. 미국의 전략적 조정과 함께, 지역 안보의 실질적 관리 책임이 한국에게 전가되고 있으며, 동시에 동아시아 전반의 긴장 국면에 선제적으로 노출될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도련선 구조속에서 한국은 대만·남중국해·일본과 함께 중국 견제의 최전선으로 위치가 정립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미중 간의 국지전을 포함한 전쟁 방지와 외교적 방법을 통한 위기 관리 및 분쟁 해결, 미중 전략 경쟁 속 대북 군사억제력 확보, 한미동맹을 축으로 동북아 군사적 현상유지 및 소다자 안보협력 등 다층적 안보협력 모색 등이다. 미국 중심의 안보질서 유지에 기여하면서도, 자국 방어의 자율성과 국제적 신뢰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분기점에서 정체성과 실용성, 동맹과 생존 사이에서 전략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전략은 더 이상 단일 축이나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복합 연계와 다층 대응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       ■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송채린, EAI 연구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11) | crsong@eai.or.kr  

전재성 2025-05-27조회 : 3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