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국제정치경제(IPE) 패널은 9인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미중경제전쟁과 한국” 연구팀을 2022년 9월 발족하였습니다. 연구진은 날로 격화되는 미중경제전쟁을 주요 산업 및 기술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을 추적하며 향후 한국이 취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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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② 미국 통상정책의 현재와 미래: 보호주의의 재림과 강화

Ⅰ. 서론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승리하였으며,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할 예정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6년 첫 당선 당시 효과적이었던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슬로건을 2024년 재차 활용하며, 이 기조 아래 더욱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통상정책은 건국 이래 미국 경제전략의 근간이 되어왔으며,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서 미국의 무역정책 결정은 국내외 시장에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쳐왔다. 본 연구에서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향후 전개 방향을 전망한다. 특히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정책이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보호주의 기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를 고찰한다.   Ⅱ. 미국 통상정책의 과거와 현재   1. 미국 통상정책의 역사: ‘세입(Revenue),’ ‘제한(Restriction),’ 그리고 ‘호혜(Reciprocity)’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의 경제학자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2016년까지 미국 통상정책의 역사가 R로 시작하는 세 단어—‘세입(Revenue),’ ‘제한(Restriction),’ 그리고 ‘호혜(Reciprocity)’—로 특징지어지는 시기들로 분류된다고 주장한다(Irwin 2017).   먼저 1790년부터 1860년까지는 통상정책이 주로 ‘세입’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정부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대표적으로 1789년 관세법(Tariff Act of 1789)이 제정되었다(Fordham 2017). 이 시기는 연방정부 수입의 약 90%가 관세 수입으로 충당될 정도로 관세가 핵심적인 재정 확보 수단이었다.   다음으로 1861년부터 1933년까지의 시기는 ‘제한’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정부 수입이 점차 국내 과세로 전환되었으며, 국내 생산자를 해외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보호주의 관세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약 50% 수준을 유지했으며, 보호무역 정책은 20,000개 이상의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으로 정점에 달했다(Irwin 2020).   그러나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인한 수입품 가격 상승과 무역량 감소는 대공황을 심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평가되었고, 이에 1934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은 ‘호혜’에 기반한 무역 장벽 완화를 통상정책의 기조로 채택했다. ‘호혜’ 기반의 통상정책 기조는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 RTAA)으로 본격화되었는데, 대통령에게 양자간 무역협정 협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의회의 과도한 정쟁으로 인한 무역협정 진전의 저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Bailey et al. 1997).   무역 자유화(Free Trade)로의 전환은 미국이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설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적 국제경제질서를 지지하며 무역을 경제 성장과 지정학적 안정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GATT 체제하에서 다자간 무역 협력 체계 구축을 선도했다(Atkin & Donaldson 2022). 1994년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체결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었고, 같은 해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 협정 비준으로 1995년 GATT를 계승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가 설립되었다. 21세기 초에는 무역 자유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 다수의 양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와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는 12개 태평양 연안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협상을 포함한 야심찬 무역 의제를 추진했다(Evenett & Meier 2008). 그러나 이 시기에 자유무역의 효용에 대한 국내 회의론이 증가하면서, 이후의 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 미국 통상정책의 현재: `제한(Restriction)`의 통상정책으로의 회귀   2017년 1월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원칙을 내세우며, 장기간 유지해 온 무역 자유화 기조에서 벗어난 강력한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추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관세 인상을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특히 중국 상품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관세를 올려 2,50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대중국 압박은 미중 관계를 전면적인 무역 전쟁으로 악화시켰으며, 이는 미국 시장 내 화웨이(Huawei)와 같은 중국 기술기업 제재, 지적재산권 도용 및 강제 기술이전 문제 등으로 확대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다자간 무역협정 체제를 거부하며 무역협정을 재협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이었던 다자주의에서 벗어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명분으로 양자 협상을 선호했다. 취임 직후 TPP에서 탈퇴했으며, WTO의 분쟁해결 메커니즘을 강하게 비판하여 WTO 상소기구가 사실상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NAFTA의 재협상을 통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으로 대체했다. USMCA에는 자동차 부문의 원산지 규정 강화, 노동 및 환경 기준 상향, 디지털 무역과 반부패 관련 새로운 규제 등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강화하는 조항들이 추가되었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접근을 비판하며 다자주의와 동맹국 협력을 강조했으나, 보호주의 기조는 유지했다. 일례로, 2022년 5월에는 중국 견제와 동맹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 IPEF)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시기에 부과된 대중국 관세의 대부분을 유지했으며,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및 알루미늄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관세를 부과했고, 특히 첨단기술과 전략산업 분야에서 더욱 정교하고 표적화 된 제한조치를 실행했다. 2024년 5월에는 18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개발용 고대역폭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대중 수출을 제한하는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제한(Restriction)’ 시대로의 회귀는 두 가지 핵심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첫째, 미국 유권자들의 경제적 불안이다. 최근 연구들은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국내 일자리 및 경제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Essig et al. 2021; Fetzer & Schwarz 2021). 특히 COVID-19 팬데믹 시기에 경험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중국 의존도 문제는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지지를 강화했으며, 유권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둘째,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이다(Kim, 2024). 중국과의 경제·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무역 갈등이 지속되면서, 유권자와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초당적 합의로 이어졌고(Agrawal & Tai 2023),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불안과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두 요인의 결합이 미국을 새로운 보호주의 시대로 이끌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   2025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이 대통령직과 함께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 스윕(Red Sweep)을 달성함에 따라,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의회의 제도적 견제 없이 추진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어 미국발(發) 보호주의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통상정책의 핵심은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의 강화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는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말이자 듣기 좋은 말(To me, the most beautiful word in the dictionary is tariff)”이라며 관세 활용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모든 수입품에 10-20%의 일괄 관세를, 중국 수입품에는 최대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눈에는 눈, 관세에는 관세’ 원칙하에 타국의 고관세에 맞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으며, 2024년 11월 25일에는 취임 당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관세가 경제적 수단을 넘어 외교·안보정책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펜타닐(fentanyl) 유통과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관세를 활용할 것이며,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시장개방 압박 수단으로도 관세를 활용할 것임을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이 재무장관으로 지명한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도 관세는 대통령의 대외 정책 목적 성취에 유용한 도구라고 밝힌 바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024년 11월 30일, 브릭스(BRICS)를 향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 위협했다. BRICS 국가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달러 패권’에 대한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관세 위협 카드를 꺼낸 것으로 해석된다.   과연 트럼프 당선인은 본인이 공약해온 관세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제도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 헌법은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으나, 행정부는 다양한 법적 근거를 통해 관세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1930년 관세법 제338조(공공이익 관련)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국가안보 관련) ▲1974년 무역법 301조(불공정무역 대응) ▲국제긴급경제권한법(비상상황 대응) 등 법안에 의해, 특정 조건 또는 목적에 부합할 경우 대통령이 관세를 인상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무역대표부(Office of the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대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는 현재의 무역적자 규모가 이러한 법적 근거들을 활용한 관세 부과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2019년 트럼프 정부가 추진했던 상호무역법(United States Reciprocal Trade Act)이 재추진되고,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하원에서 통과될 경우,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와 마찬가지로 다자간 무역협정을 거부하고 무역협정 재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USMCA 재협상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2026년으로 예정된 USMCA 첫 이행점검을 계기로 자동차 부문 원산지 규정 강화와 노동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다른 무역협정들도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전기차(Electric Vehicle: EV) 산업을 미국 안보의 핵심 부문으로 규정하면서, 관련 원산지 규정 강화를 중심으로 한 협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이며, 트럼프 당선인이 2018년 한미 FTA 개정을 주요 성과로 강조한 만큼 추가 개정 압박도 가능하다.   Ⅲ. 미국 통상정책의 미래   1.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한 단기 전망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2026년 중간선거를 분기점으로 그 강도와 성격이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선 기회가 없는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승리는 레임덕(Lame Duck) 방지를 위한 핵심 과제이며, 이에 따라 통상정책도 국내정치적 고려하에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정책은 ‘강경책 추진 후 전략적 완화’의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취임 초기에는 공약대로 강력한 관세정책을 추진하되,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점진적으로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 등 기업 이익집단의 도움이 필수적이므로, 이들이 관세정책으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권자들 입장에서 가시성이 떨어지는 ‘비관세장벽’을 정비함으로써 이득을 도모하거나 예외조항을 둘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EU, 중국 등 주요 무역국들의 보복 조치가 예상되는 만큼, 미국 내 경제에도 상당한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결국 중간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세 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1기 때 있었던 2018년 중간선거에서 주요 무역국들의 보복 관세가 민주당의 하원 18석 다수당 지위 획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Blanchard et al. 2019). 특히 중국의 관세 보복은 경합이 치열한 의회 선거구에 위치한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미국 상품들을 체계적으로 겨냥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지역들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Kim & Margalit 2021). 덧붙여서, 관세 인상은 결국 수입품 및 수입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필연적이라는 측면에서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것이고, 결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를 다시 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트럼프는 다른 국가들의 양보 또는 미국 제조업의 성장세를 이유로 중간선거 전에 전격적으로 ‘관세 완화’를 활용하여, 본인의 정책 성과를 과시하고 부정적 경제 효과로 인한 트럼프 비판론을 완화할 여지가 크다. 이러한 양상은 트럼프 집권 1기의 미중 무역전쟁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0년 1월 15일 ‘1단계 무역합의(Phase One Deal)’를 통해 무역전쟁 수위를 낮추고, 이를 자신의 공격적 통상정책이 중국의 양보를 이끌어낸 결과라고 포장한 전례가 있다.   무역협정 재협상의 경우, 트럼프는 2024년 유세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안해온 USMCA 재협상을 중간선거용 카드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가시적인 정책으로서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정책이자, 동시에 USMCA 재협상을 볼모로 이민자 또는 마약 문제와 같은 국내 주요 이슈들에 대한 타결책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의 양보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고자 할 것이다.   2.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계속 지속될 것인가?   중간선거를 목전에 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 정책의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호주의를 표방한 통상정책이 포기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에도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당분간 계속 유지될 것인가?   상기한 미국발 보호주의의 두 가지 동력 – 미국 유권자들의 경제적 불안과 미중 경쟁 국면 – 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오랫동안 세계화를 미국에 주로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해왔지만 최근 높은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경쟁국과의 공급망 디커플링(decoupling)을 선호하고, 특히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설문에 따르면, 59%의 미국인들이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증가로 미국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Gracia 2024). 이러한 인식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경제세계화가 아닌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미국의 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조세 재단(Tax Foundation)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했듯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장기 GDP 전망, 자본 축적,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 거시경제지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York 2024). 또한 Autor et al.(2024)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시작된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은 특히 농업 분야에서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으며, 실질적인 소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적 부정 효과에 대한 소식에 유권자들이 점점 노출되면 보호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가 서서히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인 경제 지표상 보호주의 무역으로 인한 손실이 두드러지더라도, 보호주의 아이디어가 ‘정치화’됨에 따라 유권자들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실정이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들은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펼치는 정치인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Autor et al. 2024). 특히, 대중들의 정책지지도는 보호주의 통상정책의 목표 국가(target country)가 설정되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승하며, 이러한 이른바 ‘타겟 효과(target effects)’는 보호주의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정보가 주어진다 해도 여전히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Kim et al. 2023). 특히 미국의 경우, 유권자들은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무역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지도자의 보호주의 정책을 더욱 지지하며, 심지어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지 않는 지도자에게는 낮은 신뢰도를 보여준다는 최근 연구도 존재한다(Cho & Yang 2024).   미중 경쟁의 양상 역시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속적인 무역 갈등과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무역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Carothers & Sun 2023; Wang 2019).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시각은 보호주의 정서를 계속해서 자극할 가능성이 높으며, 의회의 양당은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으로 인식되는 문제들로부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Ⅳ. 결론   본 연구는 미국 통상정책의 역사적 맥락에서 최근의 보호주의 회귀 현상을 분석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 방향을 전망했다. 분석 결과,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단기적으로는 2026년 중간선거를 전후로 그 강도가 조절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통상정책 분야에 있어서 취임 초기, 강력한 관세 인상과 무역협정 재협상 등 공격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는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과 무역상대국의 보복조치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의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처럼,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 완화를 통해 정책 성과를 과시하고 경제적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상쇄하려는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첫째,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호무역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실제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주의가 정치화되면서 유권자들의 지지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통상정책은 점차 경제적 도구를 넘어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는 추세이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시각은 초당적 합의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보호주의적 정서를 지속적으로 자극할 것이다.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통상정책은 더욱 전략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볼 수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이러한 정책 기조는 앞으로도 글로벌 무역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세계 각국은 새로운 무역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에 대비하여 수출시장 다변화, 공급망 재편, 산업 구조 고도화 등 중장기적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강화되고 있는 보호주의 물결 속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등 기존에 논의되어 온 경제협력체 가입을 가속화하여 ‘블록’ 단위로 대응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마련하는 것 또한 고려되어야 할 시점이다. ■   참고 문헌   Agrawal, Ravi and Katherine Tai.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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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Focus 34.3: 376-407.     ■ 양준석_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email protected]  

양준석 2024-12-12조회 :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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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①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양극화 정치

Ⅰ. 2024년 미국 대선 분석 및 국내 정치 전망   2024년 11월 5일에 치러진 선거는 여러 차원에서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마디로 일찍 개표 결과가 완료된 트럼프(Donald J. Trump)의 완승이었다. 7개의 경합주를 모두 휩쓴 이번 선거 결과는 2016년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처음 등장해서 여론 조사 예측과 달리 힐러리(Hillary Clinton) 후보에게 낙승했던 시기 와도 비교할 만하다. 더구나 팬데믹 이후 사전 투표(early voting)가 활성화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7개의 경합주들 중 개표 완료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들이 꽤 있었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에는 화요일 선거의 최종 결과가 토요일에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대선 결과는 예측과 빗나갈 정도의 속전속결이었다. 특히 위스콘신(Wisconsin)과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가 대선 이전에 선거법을 개정해서 소위 밤샘 개표를 가능하도록 한 점이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기간 내내 박빙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여 왔고, 대선 결과 판정에 적어도 며칠은 걸릴 것이라던 많은 선거 전문가들의 전망이 모두 맞지 않는 선거 및 개표 결과였다.   트럼프 후보의 완승으로 끝이 난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7개 경합주를 모두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2004년 대선 이후 최초로 총 득표수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앞선 결과가 나왔다(그림 1 참조).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인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인 케리(John Kerry) 상원 의원을 선거인단과 총득표 모두에서 이겼던 상황 이후 처음이다. 일각에는 선거에서 낙승한 차원을 넘어서서 공화당이 소위 “트럼프 연합(Trump Coalition)”을 형성했다는 평가까지 존재한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가 행한 투표 분석 중, 특이한 점은 거주지, 교육 수준, 인종 구성, 연령 등 다양한 차원에서 트럼프 지지도가 이전 대선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이다(그림 2 참조). 백인 구성이 절반 미만인 290개 카운티(county)들에서는 지지율이 7퍼센트 포인트 올랐으며 흑인 유권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트럼프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특히 흑인 남성 득표가 차이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투표한 유권자들 중 71퍼센트가 백인 유권자였는데, 이는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사실 가장 커다란 지지율 변화는 라티노(Hispanic) 인구가 1/4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들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라티노 지지를 확보했었는데, 이번에는 9퍼센트 포인트를 상회하는 지지율 증가를 기록한 셈이다. 이는 소수 인종이나 청년, 여성 등에 의존하는 정체성(identity) 선거 방식을 활용해 왔던 민주당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점이다. 심지어 트럼프 등장 이후 오히려 민주당으로 지지가 편향되어 왔다고 알려졌던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 유권자 그룹 역시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를 더욱 증가시킨 것으로 확인된다.   <그림 1> 대선 총 득표수 비교 <그림 2> 대선 지지율 변화 비교 출처: 270 To Win 2024.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4.   이번 2024년 미국 대선의 트럼프 승리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지표 또한 존재한다. 우선 총 득표에서 트럼프가 앞선 것은 맞지만, 해리스(Kamala Harris)와의 차이가 11월 21일 기준 1.6퍼센트 포인트에 불과하며 개표가 완전히 종결되면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었다. 또한 늘 그렇듯이 미국 대선은 50개 주 중 불과 몇 개의 경합주에 의해 그 결과가 좌지우지 되는데, 이번에도 미시건(Michigan),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세 곳에서의 23만 5천명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는 분석이 있다. 보통 대통령 선거의 완승은 의회 선거 관련 “후광 효과(coattail effects)”로도 증명이 되나 이번 선거는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Edwards III 1979; 서정건 2021). 다시 말해, 이번 연방 상원 선거의 경합주였던 애리조나(Arizona), 네바다(Nevada),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중 4곳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지켰고, 펜실베니아 한 곳에서만 공화당에게 패배했다. 펜실베니아 선거조차도 현역 상원 의원이 선거 후 거의 20일만에 패배를 시인할 정도로 초박빙 승부였다. 따지고 보면 이번 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새 상원의 다수당이 된 이유는 몬태나(Montana), 오하이오(Ohio), 그리고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등 공화당 초강세 지역에서 상원 선거를 이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원 선거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새로 한 석을 추가했으며 결국 내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119대 하원에서 의석 분포는 공화당 220명, 민주당 215명으로, 역대급의 작은 의석 수 차이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내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새 연방 상원에서 공화당이 53석을 확보했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트럼프 입법 사안 중 예산 조정 절차(budget reconciliation)에 태울 수 있는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 들어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법안, 즉 2017년 트럼프 세금 인하법(Tax Cuts and Jobs Act of 2017)과 2022년 바이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 모두가 상원에서 필리버스터 규칙의 적용 없이 단순 과반으로 통과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서정건 2023). 한편 지난 11월 13일 공화당 상원에서는 당선자까지 포함한 총 53명이 참여하여 새 원내 대표를 선출하는 표결이 있었다(그림 3 참조). 선거 직전까지 숀 해너티(Sean Hannity), 터커 칼슨(Tucker Carlson), 일론 머스크(Elon Musk) 등 트럼프의 최측근들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스콧(Rick Scott, R-FL) 상원 의원을 지지하고 뜐(John Thune, R-SD) 의원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막판까지 누구에게도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고 결국 2차 투표에 가서 뜐 의원이 코닌(John Cornyn, R-TX) 의원을 물리치고 새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로 등극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실 뜐 의원이나 코닌 의원은 모두 전통파 상원의원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합산 표는 40명으로, 스콧 의원이 얻은 13명보다 월등히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뜐 의원의 경우, 트럼프와 대립하는 유형이라기보다는 조용히 상원을 운영하면서 사안별로 트럼프와 공화당 온건파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예컨대 트럼프가 요구하는 휴회 중 장관 임명(recess confirmation) 같은 변칙적인 의회-행정부 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다소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스콧 의원처럼 상원 의회 규칙관을 교체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없앤다는 등의 과격한 상원 변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공언한대로 난민 신청을 엄격하게 만든 강경 이민법안의 경우, 상원 규칙관에 의해 필리버스터 적용 법안이 되므로 이는 의회를 통과하기 어렵게 된다(손병권 2021).   <그림 3> 119대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 당내 선거 출처: The Hill 및 저자 계산.   하원의 경우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현 하원 의장이 지난 13일 공화당 내부 선거에서 경쟁자 없이 차기 하원 의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트럼프는 당선자 신분으로 하원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서 존슨 의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공언하였고, 존슨 의장은 트럼프를 두고 “돌아온 왕(comeback king)”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원 공화당의 비공개 회의에서 구두 표결(voice vote)을 통해 공화당 하원 의장 후보 자리를 차지한 존슨에 대한 진정한 도전은 내년 1월 3일 하원 의장 선출 과정이 될 것이다. 공화당 내부의 프리덤 코커스 등 강경파 의원들이 존슨 의원을 완전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118대 하원 개원 당시처럼 하원 의장을 뽑지 못해 대혼란이 벌어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다만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존슨 의장에 대한 반란표가 등장할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 역시 2기 행정부에서 공화당 하원 강경파 의원들을 상대로 예상보다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II. 양극화 시대의 미국 대선과 정당 정치   이론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는 우선 1980년 레이건 승리 미국 대선과 이번 대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소라 볼 수 있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유사하다. 미국 경제의 쇠락 및 2차 석유 파동 이후 역대 급으로 높아진 물가 수준 및 에너지 위기를 놓고 당시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카터(Jimmy Carter)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국민 레토릭(rhetoric) 차원에서 모두 실패했다. 집안에 난방기를 끄고 옷을 두껍게 입으라는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반대로 카터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에게는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정책 처방이 없었다. 통상적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높아진 카드 및 대출 이자를 물어야 하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80년 대선에서 카터가 레이건(Ronald Reagan)에게 패배한 이후 미국의 어떤 대선에서도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선거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에서 인플레이션이 미칠 정치적 파괴력에 대해 지난 44년 동안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과 전망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잘 알려진 대로 1980년 레이건 혁명(Reagan Revolution)의 또 다른 중요 차원은 1932년 루스벨트 당선 이후 건설된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의 시대를 마감했다는 점이다. 1800년 제퍼슨 당선(Revolution of 1800) 이후 100년도 훨씬 넘게 미국은 적극적 정부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공황을 겪는 과정과 2차 대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연방 정부가 국민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정책과 메시지를 내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뉴딜 연합은 루스벨트의 4선 및 트루먼(Harry S. Truman)의 페어딜(Fair Deal) 정책으로 미국 정치의 새 판을 짜게 된다. 또한 뉴딜 연합의 공고함은 정책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향후 선거 승리를 담보할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구축 차원에서도 발견된다. 도시 거주민, 흑인 유권자, 유태계 미국인, 여성 및 청년층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뉴딜 선거 연합은 이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전략뿐만 아니라 의회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민주당에게 사활적인 요소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효율적인 관료제는 방만한 운영으로 비판 받게 되었고, 지나친 정부 간섭으로 둔갑하면서 1980년 레이건 혁명을 통해 해결책이 아닌 문제점으로 치부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번 대선과 관련된 두 가지 사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4>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비교 출처: 270 To Win 2024.   첫째, 정부효율성위원회(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 명명된 기관을 통해 트럼프가 연방 관료제 혁파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국가 성격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과도 연결되는데, “약한 국가(Week State)” 대 “강한 국가(Strong State)” 논쟁에 이어 소위 “깊숙한 국가(Deep State)”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중이다. 예의 공화당 정권에서 늘 있었던 문제 제기임에 틀림없을 뿐만 아니라 스코우로넥 등(Skowronek, Dearborn, and King 2021)의 지적대로 모든 대통령들은 자신의 행정부를 새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1기 행정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2기 행정부의 최대 개혁 안건을 들고 나온 트럼프의 향후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1기 행정부 당시 절반을 채우지 못한 인사 조직 및 기존 제도권 인사들에 의해 자신의 통치가 방해 받았다고 굳게 믿는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에도 집권하면 척결할 대상으로 “깊숙한 국가, 전쟁주의자들(warmonger), 그리고 세계주의자들(globalists)”을 꼽은 적이 있을 정도이다. 연방 행정부 개혁 문제는 의회의 권한 이양(delegation)과 행정부의 재량 권한, 공무원의 중립성 의무 및 보호와 민주적 책임성, 그리고 기관 쟁의를 둘러싼 사법부의 판결 및 주장 등 가히 미국 정치의 전체를 아우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Crouch, Rozell, and Sollenberger 2020). “깊숙한 국가” 논쟁은 단일 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과 더불어 향후에도 미국 정치학의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머스크와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 같은 트럼프 못지 않게 예측 불허의 인사들이 위원회(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를 주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미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기고를 통해 규제 혁파, 인원 감축, 비용 절감 등의 입장을 밝힌 두 공동 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집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림 5> 2024년 미국 대선과 트럼프 지지율 선회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4.   둘째, 1980년 레이건의 승리가 뉴딜 연합의 한 축인 적극적 정부 개념을 공략함으로써 미국 정치를 다시 작은 정부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면,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승리는 뉴딜 연합의 또 다른 축인 정체성 정치를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 흥미롭다(서정건 2019). 사실 1980년과 1984년의 공화당 압승 이후에도 정체성 전략은 2008년 오바마 대선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공고하게 유지해 왔다. 소수 인종 및 여성, 청년 표심은 기본적으로 70 대 30 비율 이상으로 민주당에게 쏠렸고, 민주당의 정당 기반이 되어 왔다. 다만 슈머(Chuck Schumer)로 상징되는 민주당과 월스트리트의 결탁, 노조와의 약해진 유대감, 기후 위기를 둘러싼 엘리티즘(elitism)의 가능성 등은 2008년 흑인 대통령 등장과 2016년 아웃사이더 트럼프 등장 이후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의 공화당 흡수를 촉발시켰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과반을 넘는 라티노 남성의 지지 및 흑인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 상승을 거둔 것에 대해 섣부른 예단은 어렵다. 민주당 후보가 흑인 여성이었고 불법 이민 문제가 첨예한 상황에서 라티노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를 항구적인 것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트럼프 당선을 통해 만들어진 젠더(gender)와 인종(race) 간의 결합 문제는 향후 미국 정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 5>는 거주지, 인종, 학력, 산업, 세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전 영역에서 늘어난 트럼프 지지세를 보여준다.   2024년 미국 대선이 향후에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구분될 수 있을지를 전망하기에는 당연히 아직 이른 시점이다. 미국의 역사상, 학자들 간에 합의를 이룬 중대 선거들로는 대체로 평균 약 40년을 주기로 다음의 대통령 선거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 중심으로의 미국 정치 회귀와 지속을 확정 지었던 1800년 제퍼슨(Thomas Jefferson) 선거, 엘리트가 아닌 대중 중심의 정치와 선거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1828년 잭슨(Andrew Jackson) 선거, 공화당을 창당하여 향후 남북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내전을 촉발하고 노예제 폐지 및 공화당 일당 체제를 만들어낸 1860년 링컨(Abraham Lincoln) 선거, 포퓰리즘을 저지하고 산업 및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 발전 방향을 정립했던 1896년 맥킨리(William McKinley) 선거, 적극적 정부 개념을 사상 최초로 도입하여 미국의 정부와 시장, 권력과 국민 간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1932년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선거, 그리고 뉴딜 연합을 혁파하면서 세금 인하 및 강한 국방이라는 정통 보수 이념의 작은 정부 시대를 개척한 1980년 레이건 선거 등이 중대 선거로 알려져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이 시기적으로 보면 1984년 레이건의 압승 재선에 이어 40년 만에 치러진 선거임에 틀림없다. 앞서 지적한대로 레이건 대선이 작은 정부 회귀라는 이념적 차원에서의 중대 선거였다면, 이번 트럼프 선거가 정체성 정치의 약화라는 현실적 차원에서의 중대 선거였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마치 1860년 링컨 선거가 잭슨 민주당 시대로부터 공화당 전성시대로의 전환을 이루어 냈던 것에 비해 1896년 맥킨리 선거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주도 하의 민주당 포퓰리즘을 흔들어 놓았던 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트럼프 시대를 전망해 보자면, 내년 119대 상원에서 트럼프 내각 인준 절차라든지 트럼프 세금 인하법 연장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축소)폐기 등 중요 법안들의 경우, 단순 과반, 즉 50명이 찬성하면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트럼프 내각 인준을 좌초시키거나 단순 과반 법안을 부결시키기 위해서는 공화당 상원 의원 4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4명의 후보로는 소위 “C2M2” 의원들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콜린스(Susan Collins, R-ME), 캐서디(Bill Cassidy, R-LA), 맥코넬(Mitch McConnell, R-KY), 머카우스키(Lisa Murkowski, R-AK)가 그들이다. 이 중 콜린스, 캐서디, 머카우스키 의원은 2021년 2월 트럼프 2차 탄핵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들이다. 맥코넬 의원은 2026년에 은퇴하는 전통파 의원으로서 트럼프와 종종 대립했던 적이 있다. 이 중 콜린스와 캐서디 의원은 2026년 선거에 나서야 하는데, 콜린스 의원이 대표하는 핵심 주는 해리스가 이겼던 주이다. 캐서디 의원이 대표하는 루이지애나(Louisiana) 주는 소위 정글 프라이머리(jungle primary)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 캐서디 의원이 예비 선거에서 낙마할 일이 없으므로 트럼프의 압력이 덜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만일 이들 4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단합하여 반대표를 던진다면 트럼프 어젠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2026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은 20명의 현역 의석을, 민주당은 13명의 현역 의석을 지켜야 하지만 공화당 쪽에서 재선이 불확실한 의원은 콜린스와 틸리스(Thom Tillis, R-NC) 정도 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민주당 쪽은 오소프(Jon Ossoff, D-GA)와 피터스(Gary Peters, D-MI) 등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 임기 4년 동안 적어도 연방 상원은 공화당 다수당 지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III. 트럼프 2기 행정부 전망의 정치학   2024년 미국 대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전망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향후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다양한 실증 자료들이 향후 더 많이 분석되어야 한다. 2024년 대선의 총 득표율조차도 현재 AP 통신(AP News) 전망과 쿡 리포트(Cook Report) 데이터가 다를 정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아직 취임도 전에 무수한 논란을 낳고 있는 충성파 인선이 가져올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트럼프 주도 하의 단점 정부(unified government)가 내년 1월에 시작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1기 행정부 당시에도 첫 2년간인 2017년과 2018년은 단점 정부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행정 명령 위주의 정치, 트위터를 통한 혼돈의 메시지 정치, 김정은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회담 등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정치를 통해 미국 정치 시스템과 무관한 리더십을 보인 대통령이 트럼프였다. 오직 충성파들로 채워진 내각을 중심으로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종횡 무진할 트럼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2기 전망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중요하다. 이는 수정헌법 22조에 의해 2028년 대선에 나설 수 없는 4년 임기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와 직결되어 있다.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이민 문제가 1순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민 이슈를 다루기 위한 백악관 내 책임자(czar)도 임명해 둔 상태이고 자신의 최측근인 밀러(Steve Miller) 역시 주도권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우선순위이지만 이는 러시아의 푸틴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라는 또 다른 주요 행위자들의 전쟁 관련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시간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의 통상 문제 역시 정책 우선순위에 속한다. 관세를 최상의 정책 도구라고 믿는 트럼프가 이를 무기로 휘두를 나라가 중국이며,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은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시사한다. 더구나 북한 문제가 트럼프 정책으로 연결되려면 미국정치화(Americanization) 절차가 필요한데, 지난 번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 과정이 얼마나 생략된 채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이슈화 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한편 또 다른 고려 사항은 일각의 분석과 달리 트럼프의 외교 정책 관련 권한이 레임덕(lame-duck) 현상과 상관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력의 시간은 두 번째 임기 첫 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해에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고전하는 중간 선거가 정해져 있고, 3년 차부터는 모든 언론과 정당 내부 사정이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러한 분석이 대통령의 의회 관련 국내 정치에 주로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재선 후 첫 해인 2005년에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개혁과 관련하여 주식 시장을 이용한 일부 사립화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이처럼 국내 정치 관련 재선 대통령의 권력에서는 주로 레임덕 현상이 비교적 속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외교 정책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자신의 치적(legacy)을 쌓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일반적으로 보인다. 일례로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이나 중국과의 자유 무역 정책 모두 재선된 임기의 마지막 해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민 정책, 세금 정책, 연방 정부 개혁 등 우리에게 덜 중요한 미국 국내 이슈들은 중간 선거 이전에 단점 정부 상황에서 트럼프가 밀어 붙일 가능성이 큰데 비해, 안보와 통상에 이르는 대외 정책은 트럼프 4년 내내 트럼프가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둘째,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이들이 행정 명령으로 집행 가능한 것들인지 아니면 의회의 승인 혹은 폐기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인지 분석해 보아야 한다. 관세 부과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 대한 60퍼센트 이상의 관세 정책은 행정 명령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수입품들에 대한 10퍼센트 보편 관세의 경우 절차상의 흠결을 이유로 진보 성향의 연방 판사(federal judge)에 의한 집행 정치 가처분 신청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이민 정책 관련해서도 불법 이민 추방 같은 과격한 정책은 행정부 주도 하에 행정 명령으로 가능하지만 사법부의 제동 역시 작동할 수 있다. 예컨대 난민 지위 신청을 엄격하게 만드는 법안의 경우 상원의 필리버스터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입법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역시 상원의 필리버스터에 막혀서 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경우 단순 과반으로 폐기가 가능하지만 공화당 지역구에 집중된 혜택들로 인해 정치적으로 복잡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의 정책들이 행정 명령 차원에서 진행될지 아니면 의회 및 사법부와 연결되는지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결정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또 다른 4년이 미국 정치의 완벽한 변화(transformation)의 시기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4년을 건너뛰어 만들어진 또 다른 일탈(aberration) 시대로 종결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의 모든 사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 ■   참고 문헌   서정건. 2019.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정쟁은 외교 앞에서 사라지는가 아니면 시작하는가』. 서울: 서강학술총서.   ______. 2021. “미국 117대 의회 선거와 미국 정치 변화” 『의정연구』 27, 1: 197-204.   ______. 2023. “미국 국내 정치와 경제 안보: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견제하는가?” 『국가전략』 29, 3: 5-31.   손병권. 2021. “미국 의회 예산조정절차의 정파적 성격과 활용에 대한 경험적 검토” 『한국정당학회보』 20, 4: 5-42.   Bloch, Matthew, Keith Collins, Robert Gebeloff, Marco Hernandez, Malika Khurana and Zach Levitt. 2024. “Election Results Show a Red Shift Across the U.S. in 2024.” The New York Times, November 6. https://www.nytimes.com/...shift.html.   Conley, Patricia H. 2001. Presidential Mandates: How Elections Shape the National Agend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dwards III, George C. 1979. “The Impact of Presidential Coattails on Outcomes of Congressional Elections,” American Politics Quarterly 7, 1: 94-108.   Levitt, Zach, Keith Collins, Robert Gebeloff, Malika Khurana and Marco Hernandez. 2024. “See the Voting Groups That Swung to the Right in the 2024 Vote.” The New York Times, November 8. https://www.nytimes.com/...victory.html.   Skowronek, Stephen, John A. Dearborn, and Desmond King. 2021. Phantoms of a Beleaguered Republic: The Deep State and the Unitary Executiv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Jeffrey P. Crouch, Mark J. Rozell, and Mitchel A. Sollenberger. 2020. The Unitary Executive Theory: A Danger to Constitutional Government. University Press of Kansas.   270 To Win. 2024. “2024 Presidential Election Interactive Map.” https://www.270towin.com/.     ■ 서정건_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email protected]  

서정건 2024-12-12조회 : 4092
논평이슈브리핑
[미래의 미국 시리즈] ⑤ J.D. 밴스: MAGA 운동의 사도 바울?

I. 미국의 영혼전쟁과 공화당의 변화   2016년 이래 이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미국 대선들은 각각 별개의 사건들로 해석될 수 없다. 경쟁의 한편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라는 문제적 인물이 줄곧 존재해 왔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선거들은 동일한 주제를 둘러싼 두 사회 세력 간의 지속되는 충돌을 반영해 왔기에,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묶일 수 있다. 조 바이든(Joe Biden)은 이 정치적 대립을—남북전쟁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표현을 빌려—“미국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라고 이름 짓고, “우리의 더 나은 천사와 어두운 욕망” 사이의 갈등으로 그 본질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신학적 메타포(metaphor)가 가리키는 단층선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는 미국을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국가로 상상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자명한 진리”와 연방헌법에 명기된 제헌 원칙과 기본권이 아메리카 합중국의 정수를 이룬다고 믿으며, 이러한 원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는 미국을 백인 기독교 공동체로 보는 배타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누가 미국인인가는 “핵심문화”의 공유 여부와 귀속적 정체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차태서 2024, 239-290).   이와 같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국내 영역에 그치지 않고,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주목된다. 주지하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살아온 세계 질서는 상당 부분 미국의 대전략 비전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전의 내용물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존재 이유와 세계사적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자아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세력 간 “영혼 전투”는 미국 내부의 차원을 넘어 전지구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자의 보편지향적 공민 민족주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미국의 예외주의적 역할 수행을 주장하는 자유국제주의 독트린과 직결된다. 반면, 후자의 특수지향적 종족-종교 민족주의는 미국의 패권적 역할이 자원의 낭비였다고 비판하며, 현실정치적 대전략을 지지한다. 이들은 미국 역시 다른 평범한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차태서 2024, 135-169).   이러한 시대사적 배경에서 우리는 공화당의 중장기적 변화가 어떻게 미국의 정치 지형을 형성해 나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직 취임 등의 이벤트를 중요 기폭제로 삼아,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복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운동이 차례로 정당기구를 포획하면서 공화당은 점차 이념적으로 극우화되어 왔다(손병권 2024). 과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네오콘적 대외 개입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레이건 이후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포퓰리즘과 백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트럼프화된 정당으로 변화한 것이 오늘날 “위대하고 오래된 정당(Grand Old Party; G.O.P)”의 현실이다. 향후 이러한 변화가 정당 재편(party realignment)의 수준에서 공고화된다면,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운명과 상관없이, 공화당이 앞으로도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개입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 백인 노동계급의 비자유주의적 요구를 공론장에 운반하는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미국의 대전략 자체가 크게 요동치면서 해외 국가들의 대미 신뢰도가 약화하고, 세계질서 자체가 교란될 가능성마저 커지게 될 것이다.   II. 탈자유주의 우파의 수령으로서의 J.D. 밴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J.D. 밴스(J.D. Vance)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전부터 그는 단순히 트럼프에게 충성을 바치는 흔한 공화당 정치인에 그치지 않고, 신우파, 탈자유주의 등으로 불리는 이념 운동의 핵심적 정치인으로 떠올라 왔다. 다시 말해, 밴스는 트럼피즘(Trumpism)에 사상적 깊이를 더해 트럼프 시대에 시작된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더욱 급진화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함으로써, 오늘날 젊은 엘리트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체제 전환(regime change)” 흐름의 중심에 자리 잡아 왔다. 이 때문에, 대안 우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ideologue)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밴스가 자신들의 운동의 “신경중추(nerve center)”로서, 비유컨대 “사도 바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리화하여 널리 전도한 것처럼, 트럼피즘의 “복음”을 방방곡곡에 확산하는 열렬한 “개종자” [1] 의 사명을 밴스가 맡을 것이란 예언이다(Ward 2024a).   밴스는 단지 공화당 내의 변화만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내외 정책 전반, 나아가 헌정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계획을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규정함으로써, 여타 포퓰리스트 공화당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면모를 보인다. 특히 밴스는 기성 공화당 지도부마저도 “리버럴 레짐(liberal regime)”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시장 근본주의와 해외 개입주의 사조에 찌든 리버럴 엘리트들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체제 전체에 반대하는 혁명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왜 밴스가 입법활동과 관련해 종종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민주당 좌파와 협력적 관계를 맺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모두 대기업의 특별이익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워런이 비록 이념적으로 자신과 상극인 골수 좌파이지만,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망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때때로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Ward 2024a).   밴스의 독특한 정치이념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이 거론되지만, 그가 표방하는 탈자유주의 및 체제 전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지목되는 것은 노터데임 대학 정치학 교수인 패트릭 드닌(Patrick Deneen)이다(Ward 2024b). 드닌은 2018년 베스트셀러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를 출간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시 지식계 논란의 중심 주제였던 트럼프 현상을 근대 서구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라는 거시적 분석틀로 설명해 줌으로써 이 책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큰 찬사를 받았다. [2] 사상사적 계보에 있어 드닌은 공동체주의 학파와 함께 가톨릭 내 현실 참여파(integralism) [3]에 속함으로써(Liedl 2024; Linker 2024), 근대 자유주의의 오도된 개인주의적 “자유” 추구가 낳은 불평등 증대와 정부/기업으로의 권력집중, 사회 해체와 전통•규범의 상실 등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대안으로서 고대적인 의미에서 덕성을 함양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 복원을 제시하였다(Deneen 2018). 사실 여기까지는 미국 정치사상 학계에서의 고전적 테마인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혹은 공화주의) 논쟁의 맥락에 속하며, 그의 주장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고대 폴리스의 자유 개념을 복원하려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드닌의 자유주의 비판은 훨씬 더 급진화되어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운동의 형태로까지 진화하였다. 기성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하 보수와 진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리버럴 컨센서스를 초월하기 위해—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혁명적”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최근 저서, 『체제 전환: 탈자유주의적 미래를 향하여』의 핵심 문제의식이다(Deneen 2023). 이러한 사상적 진화 과정에서 드닌은 국내적으로는 성소수자 권리, 비판 인종 이론, 낙태 및 이혼 등에 반대하는 등 ‘안티워크 문화 전쟁(anti-woke culture war)’의 선봉으로 나섰고,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의 초청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여 탈자유주의 질서의 미래를 논하는 등 해외의 권위주의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Ward 2023).   이런 가운데 밴스는 2023년 5월 미국 가톨릭 대학에서 열린 드닌의 출판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탈자유주의 우파”임을 자처하면서, 의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명백히 반체제적(explicitly anti-regime)”인 것이라고 발언했다(Ward 2023). 한편, 드닌은 올해 7월 밴스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그가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더욱 진전시킬 “이상적 후보자”라고 찬사를 보냈다(Liedl 2024).   III. “체제 전환” 이후의 미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J.D. 밴스가 트럼프에 의해 부통령 후보자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은 향후 공화당이 트럼프“주의”를 교조화하고 있는 탈자유주의 우파에 의해 장악될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4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여부와는 별개로, 극우 포퓰리즘 운동이 공화당을 제도적 운반체로 삼아 장기적으로 미국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기반이 밴스의 “세자 책봉” 형태로 마련된 셈이다. 이하에서는 밴스의 주요 연설문들을 전거로 삼아 탈자유주의 세력이 꿈꾸는 “체제 전환” 이후 미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를 엿보고자 한다. 비록 자신들을 “신우파”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이들은 오히려 보수주의의 오래된 버전을 옹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전간기의 보수 포퓰리즘을 따라, 반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기초해 현실주의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정책들—고관세, 이민 제한, 그리고 해외 개입 축소 등—을 옹호한다.   1. 포퓰리스트적 민족주의   충실한 포퓰리스트로서 밴스는 이 세상 사람들을 “악당”과 “희생자”로 양분해 설명한다. 한쪽 편에 “미국에서 제외되고 잊힌 곳”, “작은 마을들”에 살고 있는 순수한 근로인민이 존재한다면, 다른 편에는 이들을 착취하며 억압하는 국내(“미국 지배계급”, “부패한 워싱턴 내부자들”, “월스트리트 귀족들”, “다국적 기업들”)와 국외(“중국 공산당”,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의 빌런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상황은 트럼프 집권 전까지 미국의 통치계급이 계속해서 실패해 왔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가령, 기득권층의 대표 인사인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 커리어 내내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창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가입, 이라크 전쟁 등과 같은 정책을 지지했고, 이런 잘못된 결정들의 대가를 평범한 미국인들이 치러왔다. 이에 밴스는 트럼프가 미국이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마지막 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 또한 본인의 출신지인 러스트 벨트 지역의 고통을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고 강조하였다(Vance 2024d).   보다 근본적인 국가 정체성 정치의 차원에 있어 밴스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의 의미를 “조국(homeland)”과 “민족(nation)” 개념으로서 구획짓는다. 우익 포퓰리스트의 노선에 잘 부합하게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추상적인 일련의 “관념”이나 “원칙”이 아닌 “공유된 역사와 공통된 미래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밴스가 이 집단 정체성의 성격을 부연설명하기 위해 동부 켄터키 애팔래치안 산맥에 위치한 가문의 선산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전쟁 시기부터의 조상들이 대를 이어 그곳 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왔으며, 본인과 배우자, 자식들까지 묻히게 되면 7대가 한곳에 모이게 된다고 한다(Vance 2024d). 근본적으로 장소와 혈연 공동체(“Blood and Soil”)로서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럽식의 반동적 내셔널리즘이 밴스의 정치사상에 짙게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Serwer 2024).   이러한 밴스의 언설은 사실 의도적으로 바이든의 “신조적 민족(creedal nation)” 개념의 안티테제로서 제시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바이든은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 미국을 하나의 관념(“America is an idea”)으로 정의했으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독립선언문의 핵심문구를 반복해 인용한 바 있다(Biden 2019; 2024a; 2024b). 이와 같이 선명한 국가 정체성 관념상의 대조는 결국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근본적 패러다임의 차이를 낳게 된다.   2. 현실주의적 대외정책   대외전략을 논함에 있어서도 밴스는 트럼프주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기성 외교정책 기득권층[4] 의 “오랜 슬로건들”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탈냉전기 미국의 외교정책 역시 “재앙의 연속”이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 20여 년간 미국외교정책을 떠받쳐 온 “도덕 본능” 혹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관념은 이라크전의 결말에서 보듯 완전한 오류로 밝혀졌다. 그 전쟁은 민주주의의 확산은커녕, 기독교인들의 집단 학살을 초래했을 따름이라는 것이 밴스의 평가이다. 둘째, 오늘날 대외정책의 최대 화두인 미중경쟁 이슈에 있어 밴스가 가장 분노하는 점은 미국 지도부가 스스로 중국의 부상을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 워싱턴의 초당적 컨센서스가 중국이 미국 중산층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중산층을 구축하는 과정을 묵인해 버렸다고 진단한다. 같은 맥락에서 제조와 기술 혁신을 임의로 분리할 수 있다는 서구의 자만심은 환상으로 증명되었고, 그 증거가 바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이라는 것이 밴스의 비판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네오콘의 대중 접근법이 가장 어리석은데, 한껏 중국이 모든 것을 제조하게 허용해 힘을 키워준 다음, 그 강력해진 중국과 전쟁하자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Vance 2024c).   그렇다면 밴스가 제시하는 대안적 대전략 비전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독트린이 국익 우선의 현실주의와 국내경제 부흥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해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철학적 토대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다극 세계(world of multi-polarity)”를 향후 30-40년간 미래 국제질서의 모습으로 상정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40년간 양대 정당이 함께 추진해 온 대전략 노선의 실패로 인해 현재 미국은 더 이상 복수의 전쟁을 치를 수 없을 만큼 쇠퇴해 버린 반면, 중국이 근미래에 몰락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현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밴스식 지정학 리뷰의 결론이다(Vance 2024c).   따라서 이러한 다극 세계에서 미국은 “자원의 희소성”을 인식하고, “취사선택 대상(trade-offs)”을 결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어떤 이익이 가장 사활적인지 판별하고 국력을 어느 곳에 집중할지 결단해야만 한다. 밴스는 공화당 주류를 포함한 워싱턴의 기성 리더십은 이런 절충이나 타협을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역내 세력균형을 복원해 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정세를 안정화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이 동아시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Vance 2024c).   보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양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밴스는 이와 같은 “역외 균형전략”을 관철하고자 한다. 우선 중동분쟁의 경우 당면한 목표는 하마스 격퇴이지만, 아브라함 협정 프로세스를 부활시킴으로써 이스라엘과 수니 국가들이 연합해 이란을 견제하는 역내 세력균형 형성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서방진영이 충분한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의지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군수품 제조 능력이 진짜 한계를 설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야기된 탄약 부족 상황은 대만에서 유사 사태 발생시 치명적이란 점도 덧붙인다. 아울러 밴스는 푸틴이 유럽에 존재적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합리적 목표는 “협상을 통한 평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즉,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가 1991년의 국경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은 판타지일 뿐이며, 바이든 정부가 푸틴과 협상할 수 없다고 반복 선언했지만, 막상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은 전무하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키이우(Kyiv)의 군사 전략을 방어 전략으로 변경시키고 모스크바와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연장선상에서 밴스는 유럽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유럽인들이 스스로 충분한 억제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록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해체하거나 유럽을 방기할 생각은 없지만, 향후 40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이 동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유럽인들이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Vance 2024a;b).   IV. 결론   현재 미국 사회에서 탈자유주의적 방향성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밴스가 대변하는 MAGA 운동세력의 급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보통 더 부각되고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망각되어버린 백인노동계급에 대한 관심, 국가 간 관계에 있어 선악이분법에 근거한 무분별한 개입을 비판하는 현실주의적 대안 제시 등은 미국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귀담아들을 문제 제기이다.   다른 한편, 기성 자유주의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도 일정 부분 반영된 바 있다. 가령, 현 정권은 국내적으로 뉴딜혁명의 추억을 소환하며 워싱턴 컨센서스의 극복을 추구해 온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식의 중상주의적 “미국 우선” 외교를 어느 정도 계승한 바 있다. 아울러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좌파 블록도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오랫동안 미국사에서는 주변화되었던—비미국적(혹은 북유럽적) 노선을 모색 중이기에 주목된다. 최근 민주당 주류를 깜짝 놀라게 만든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예시해 주듯 향후 밀레니얼 세대의 반예외주의, 반개입주의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여부에 따라 왼쪽으로부터의 탈자유주의 패러다임도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 하츠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국은 늘 로크적 자유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상상의 공동체였다(하츠 2012). 그런 면에서 탈자유주의적 사조의 도전은 미국의 근원적 정체성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미국사의 유례없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탈단극 시대, 미국내 사회세력 간 경합의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질서 전체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건 세계사적 계기를 경유하고 있는 셈이다. ■   참고 문헌   루이스 하츠(Louis Hartz). 백창재·정하용 역. 2012.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 독립혁명 이후 미국 정치사상의 해석』. 서울: 나남.   손병권. 2024.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운동: ‘리얼 아메리카’의 회복을 위한 저항운동』.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차태서. 2024. 『30년의 위기: 탈단극 시대 미국과 세계질서』.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Biden, Joe. 2019. “Joe Biden: America Is an Idea.” The Washington Post.April 25. https://www.washingtonpost.com/...video.html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______. 2024a. “Remarks by President Biden in Statement to the American People.” The Whit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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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https://www.politico.com/...00168984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1] 밴스는 사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후보로 부상할 당시, 그를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 밴스는 트럼프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축복을 받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2] 뉴욕 타임스에 여러 차례 관련 리뷰와 칼럼이 실렸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호의적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하였다.   [3] 국가 기구와 법을 동원해 구교 보수주의의 사회적 비전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핵심교의이다.   [4] 비판 대상으로서 설정된 대외정책 분야의 내부자들에는 물론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 같은 공화당 주류도 포함된다. 밴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84년부터 상원의원으로 활동해 온 맥코넬이 외교 분야에서 취한 거의 모든 입장들이 오류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한다.     ■ 차태서_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email protected]  

차태서 2024-08-29조회 : 1275
단행본
미중 경제전쟁과 한국: 경제안보의 부상, 위기와 기회

  격화되는 미중 경제전쟁 속 한국의 선택은? 미중 양국의 이익 재조정 과정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봉착한 한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한국에 거대한 도전으로 다가온 미중 경제전쟁   지구화(globalization)의 시대가 지나고 각국이 보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 경제의 분단(디커플링, decoupling)을 초래하는 뉴노멀(new normal)이 등장하며 한국은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20년대 들어 국가안보와 연계되는 전략경쟁으로 확대되었다. 미중 두 나라를 주요 교역국으로 두고, 안보 측면에서도 양국관계의 동향에 따라 사활적 영향을 받는 한국으로서 미중의 분단과 대립은 거대한 도전이다. 한국은 미국의 디커플링 요구와 이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이라는 이중 압력 사이에서 반도차 및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책은 미중 경제전쟁이 한국에 주는 영향과 한국의 대응 전략을 다룬다.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지정학 리스크로 세계 경제 질서가 처한 혼란과 대응 과제, 그리고 경제와 안보를 연관 짓는 주요국 전략의 결과로 한국이 받는 영향과 그간의 대응을 규명한다. 각 장에서는 반도체, 배터리와 핵심 광물, 자동차, 금융, 군사인공지능 등 주요 산업 부문의 사례와, 미국, 유럽연합, 중국,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을 분석한다.   EAI 국제정치경제 전문가가 제시하는 경제안보의 부상 속 한국의 활로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동아시아연구원(EAI) 국제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주요 산업과 기술을 둘러싼 미중의 경제안보 전략 변화를 중심으로, 미중 양국 및 유럽연합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을 비교 분석하여 한국이 나아갈 길을 고찰한다.   서장에서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은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가안보 관계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토대로, 미중 간 경제적 상호 의존 심화가 중국의 경제 성장과 맞물리며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적대적 무역 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되짚는다. 이처럼 중국을 배제하거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디커플링 전략에 대한 반발로 디리스킹(de-risking) 개념이 등장했다고 소개하면서, 미중 양국이 어떻게 리스크를 감지하고 있으며 디리스킹 전략에 따라 한국이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제1장에서 배영자 건국대 교수는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을 미중 경제안보의 핵심 요소로 꼽으며, 반도체 산업 정책을 통해 기술혁신 역량을 갖추고 국제 협력을 유도하려는 노력이 미중 경제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첨단 반도체의 주요 생산국인 한국은 미중 반도체 경쟁의 영향권에 놓여 있으며, 독자적 기술 역량을 확보하고 이를 외교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리더십과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2장에서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원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의 핵심원자재법 등 전기차 배터리 및 핵심광물 공급망 단계의 개발도상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주요국의 전략을 소개한다. 나아가 한국도 핵심광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선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그 방안으로 캐나다 및 호주 등과의 광물 협력과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국가와의 다자협력 체계를 제시한다.   제3장에서 이왕휘 아주대 교수는 중국의 전기차 산업이 부상하는 가운데 서방의 대중국 견제 입법과 중국의 금속 수출통제 및 해외직접투자 촉진 움직임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에게는 중요한 경제안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의 경제 및 시장 규모와 지정학 양상을 고려하면 전략적 자율성을 갖고 독자적 경제안보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취약성 보완을 위한 소재, 부품, 장비의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4장에서 이용욱 고려대 교수는 미중 양국이 전략 경쟁을 벌이면서도 금융 분야의 상호 의존이 심화되는 현상을, 각국의 정치 지도자가 국내정치적 이득을 위해 타국을 안보 위협 대상으로 규정하는 “적대적 공범자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나아가 경제적 상호 의존이 국제정치의 흐름에 따라 상대방을 압박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한국은 금융 분야의 중추국 외교를 통해 주요국과 집합적 정책 메커니즘을 마련하고 미중 양자에 대한 공세적 전략과 방어적 전략을 겸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5장에서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은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에 의한 완전 자율 무기 시스템을 선점하는 쪽이 전략경쟁의 우위를 차지할 것이고, 아직 AI 운용에 관한 국제 규범이 정립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군사 AI 활용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어서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 다자 체제하에서 동맹국 및 파트너와의 통제 조율 문제가 관건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은 이러한 조율 과정에서 국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대미 및 대중 관계를 관리하는 한편 AI 발전이 동 기술의 파멸적 군사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범을 제시하는 데도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6장에서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디리스킹 기조를 내세워 대중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하는 미국과 유럽의 전략을 소개하면서, 역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출입 규제를 완화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예시로 든다. 저자는 이러한 조치가 지정학적 경쟁을 비롯한 공급망, 보건, 기술 등 다발적 도전에 대응하여 자국 경제의 복원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평가하며, 경쟁국에 공격적 수출통제를 취하는 미국과 대내외적 위험 요인의 경중을 파악하여 비교적 신중한 리스크 기반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유럽의 정책 차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제7장에서 김용신 인하대 교수는 경제 안보를 총체적 국가안보관의 하위 개념이자 당의 핵심 지휘 대상으로 상정하고, 미중 전략경쟁 속 중국의 서구 의존과 신흥 개발도상국의 도전, 국제무역의 일방주의를 주요 위협 요인으로 여기는 시진핑 정권의 대외 인식과 전략을 분석한다. 특히 중국의 경제 안보 목표는 시진핑 정권과 당의 지속 및 국가 번영을 위한 물질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중앙집권적 경제안보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첨단기술 및 핵심광물 분야의 양국 간 전면적 경쟁 관계 및 중국 중심 공급망에 대한 복합 의존 상황에 유의하며 선제적 대응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8장에서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연구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은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자국 우선주의 및 보호주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지경학적 도전의 이중고 속에서 한국이 시도하고 있는 지정학 및 지경학 대응의 결합 전략을 분석한다. 나아가 한국 경제안보의 방향으로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를 통한 전략적 우위 확보, 기술주권 확보와 국제협력 추진 사이의 상충 관계를 완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접근법, 국익과 민간 이익의 균형을 위한 협력과 조정을 제시하고, 그 기반에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차례   책을 펴내며 _ 7 서장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가안보의 균형 _ 11 손열 | 연세대학교/동아시아연구원 제1부 산업부문별 대응 제1장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대응 전략 _ 35 배영자 | 건국대학교 제2장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재편과 핵심광물 확보방안 _ 65 김연규 | 한양대학교 제3장 중국 전기자동차(EV) 산업의 부상과 한국의 경제안보에 주는 함의 _ 96 이왕휘 | 아주대학교 제4장 미중 전략 경쟁 속 금융 상호의존 강화: 패러독스 혹은 무기화의 서막? _ 127 이용욱 | 고려대학교 제5장 미중 전략 경쟁 속 군사인공지능의 정치경제 _ 157 전재성 | 서울대학교 제2부 주요국별 대응 제6장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안보 정책 _ 191 이효영 | 국립외교원 제7장 중국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 _ 213 김용신 | 인하대학교 제8장 지정학/지경학의 이중 도전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연속성과 변화 _ 233 이승주 | 중앙대학교

손열ㆍ이승주 편 2024-05-31조회 : 6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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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경제전쟁과 한국의 선택 시리즈] ⑨ 지정학/지경학의 이중 도전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연속성과 변화

I. 서론   전통적인 경제 안보는 타국의 공세로부터 자국의 경제와 안전을 보호하고, 외교안보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며, 지정학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Samuels 1996; Blackwill and Jennifer 2016).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적 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경제 안보를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정의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경제적 침공으로 정의하고, 경제 안보가 곧 국가안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Navarro 2018). 주요국들이 보호와 안전에 초점을 맞춘 방어적이고 반응적인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전략적 우위의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선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국들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증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경제 안보 전략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 안보 전략의 전환은 세계화로 인해 증가한 국가 간 상호의존을 무기화하고, 민군 겸용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와 안보 사이의 경계가 약화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간 상호의존이 평화를 증진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전망과 달리, 강대국들이 증대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겸용 기술의 확산 또한 첨단기술이 미래 경쟁력의 확보를 위한 경쟁을 가속화 시켰을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대두함에 따라, 첨단기술의 안보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추세적 변화를 반영하여 경제 안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그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경제 안보 전략과 차별화를 시도해왔는데, 중국 및 일본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하고, 첨단산업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커졌을 뿐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관리 필요성이 증대된 것 등이 결합하여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차별성을 촉진하였다.   이 글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연속성과 대내외 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변화의 두 가지 성격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1960년대 초에서 현재까지 몇 차례의 단계를 거쳐 변모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이 형성되는 동시에, 대내외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경제 안보 전략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연속성은 지정학과 지경학적 대응의 결합, 경제적 강압 수단의 결여, 중상주의적 성격과 산업정책 기반의 전략이다.[1] 한편,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 첨단기술을 긴밀하게 통합한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화된 변화가 발견된다. 구체적으로 첨단산업 공급망의 취약성 완화,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 산업정책과 첨단기술 전략의 결합 등이 그것이다.     II. 경제 안보 전략의 유형   경제 안보 전략은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이라는 대응 전략의 특성과 대외정책과 국내 정책적 대응이라는 대응 수단의 우선순위 두 가지를 기준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대외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 가운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경제 안보 전략의 유형이 나누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우선 경제적 경쟁의 심화와 안보 위협의 증대와 같은 대외적 도전에 직면하여 지경학적 대응을 경제 안보 전략의 근간으로 설정하는 국가들이 있다. 이 유형의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적 또는 산업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경제 안보의 핵심 과제로 설정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서도 산업 경쟁력의 강화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통해 해결하려는 특징을 보인다(Samuels 1996).   반면, 대외환경의 변화에 직면하여 지정학적 대응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유형이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유형의 국가들은 (공세적인) 지정학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한다(Andrews 2006; Baldwin 1985; Cohen 2018; Drezner 1999, 2015). 상대국의 경제적·산업적 추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근저에는 경제 안보에 대한 위협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언제든 전환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냉전기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고위험 연구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혁신 생태계의 재편을 추진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지정학적 대응은 냉전기 미소 경쟁뿐 아니라, 최근 미중 전략 경쟁에서도 발견된다(Navarro 2018). 중국에 대한 견제가 지정학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때로는 경제적 효율성의 저하마저도 감수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1세기 중국의 기술 굴기에 직면한 미국은 또 다시 기술 혁신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국내 생산 역량의 강화를 통한 주요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기술과 산업 추격이 궁극적으로 국가안보 위협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근원적 두려움이 작용한 결과이다. 다만, 냉전기 소련과 달리, 중국이 첨단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고 겸용 기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혁신 역량 발전의 지연과 자체적인 역량의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미국이 혁신 생태계의 업그레이드와 산업 경쟁력의 강화를 연계하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혁신 명제(innovation imperative)’가 미국의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질서의 근간은 위협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 제재에서 나타나듯이, 초강대국들뿐 아니라 주요국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중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하여 수출 통제, 투자 규제, 금융 제재 등 대외 경제 정책을 적극 동원하였다. 특히, EU의 경우 특정 국가에 대한 구조적 의존(dependency)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극단적 추구를 지양하는 경향을 보인다(European Commission 2023).   둘째, 대응 수단 면에서 경제 제재, 수출 통제, 대외 원조 등 대외 경제 정책에 상대적으로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유형과 산업정책, 기술 혁신 전략, 제도적 혁신과 같은 국내적 차원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대외 경제 정책 중심의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강대국의 전유물이라는 점에서 다수의 국가로 확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강대국들이 독자 제재를 넘어 다자 차원의 경제 제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견국 또는 약소국을 경제 제재에 동원하기도 한다. 중견국 또는 약소국들도 대외경제정책 성향의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기도 하나, 이는 강대국과의 협력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은 아니다. 강대국이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활용하여 상대국에 제재 조치를 부과하거나 유인을 제공하는 능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냉전기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적 차원에서 수월한 기술 및 제도적 역량을 수립하는 데 경제 안보 전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다만, 미국 경제 안보 전략의 국내적 차원은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의 확보가 지배적 동기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지정학적 접근이다.   반면, 대내외 도전에 직면하여 국내 산업정책 중심의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유형의 국가들이 있다(Weiss and Thurbon 2021). 이 유형의 국가들은 경제 안보를 경제적 차원에서 정의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대외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국내적 차원의 산업 경쟁력 강화와 제도적 혁신이 필수라고 인식한다. 더 나아가 이 유형의 국가들은 산업정책의 범위를 방위 산업 또는 군사력 증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으로 확장함으로써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서도 산업정책 기반의 대응을 우선한다. 안보 위협의 증가에 직면하여 군사력의 증강과 같은 지정학적 대응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군사력 증강을 방위 산업 역량의 강화와 연계한다는 점에서 국내적 차원에서 산업정책적 대응이 경제안보 전략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 팬데믹의 세계적 확산, 기후 변화, 자연재해의 빈발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과 세계 경제 질서의 불안 등 대외환경의 변화는 국가의 귀한, 더 나아가 산업정책의 귀환을 촉진하였다(Wade 2012; Siripurapu and Berman 2023).[2]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더욱 첨단산업 경쟁을 위한 경쟁이 격화될 경우,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산업정책의 강화를 경제 안보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때문이다(Carroll 2023; 이승주 2023).   일본은 지경학적 접근을 추구한 대표적 국가이다. 경제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지경학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일본은 경제 발전과 안보라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교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지경학적 접근은 리쇼어링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정부가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 사이에 일본 기업의 회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대중국 투자와 사업에 수반된 리스크를 관리하고 공급망 복원력을 강화하려는 지경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리쇼어링 정책은 투자처로서 중국의 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일본 기업의 중국+α의 필요성이 증가한 것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Katada et al. 2023).   지금까지 소개한 유형은 연속선상에 있는 차이이기 때문에, 경계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기준의 경계에 놓여 있거나, 두 가지 특징을 함께 공유하는 유형도 있을 수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리쇼어링은 다면적 성격을 갖는다. 리쇼어링은 생산 효율성의 최적화를 위해 해외로 진출했던 자국 기업, 특히 제조기업을 국내로 회귀시키는 정부 정책이다(Bals et al. 2016). 다른 국가 또는 경쟁국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키고 공급망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다는 점에서 지경학적 고려에 기반한 경제 안보 전략이다. 이와 동시에 리쇼어링을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할 경우, 지경학과 지정학의 결합이 발생한다. 미국이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명시적으로 표방하고, 자국 기업뿐 아니라 동맹 및 파트너 국가의 기업마저도 미국 내 유치하려는 리쇼어링 정책은 지경학과 지정학 결합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중국과의 첨단산업 경쟁에서 우위 확보뿐 아니라, 겸용 기술의 광범위한 확산 추세를 감안한 안보 전략이기도 하다.   리쇼어링은 상대국의 행위를 변경시키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지 않고도 기업의 생산 지점을 변경시킨다는 점에서 대외 경제 정책의 성격을 띤다. 이와 동시에 리쇼어링은 세계화에 대한 반발에 대응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국내 정책의 성격을 모두 갖는다. 자국 기업의 국내 회귀를 지원함으로써 주요 산업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리쇼어링은 전형적인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생산 역량의 강화라는 목표에 부합할 경우, 외국 기업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외 경제 정책의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III.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연속성   직면하는 도전의 성격과 국내의 대응 역량에 따라 시기별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의 수단과 방식에 변화가 있었으나, 중상주의적 성격, 산업정책 기반의 전략, 지정학적 대응과 지경학적 대응의 결합, 반응적 성격 등은 지속되었다. 첫째, 1960년대 수출지향산업화는 후발국으로서 선진국을 추격하겠다는 중상주의적 목표를 뚜렷하게 드러낸 생존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기원이었다. 무역 자유화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과 같이 자유주의적 성향의 경제 안보 전략에도 중상주의적 요소가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이후 한국은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추구하면서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을 심화‧확대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 팬데믹, 기후변화 등 다양한 위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21세기 초불확실성 시대에도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중상주의와 산업정책 기반의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첨단 기술 역량과 첨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양자 차원의 경제적 강압과 다자 차원에서 증대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21세기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의 전통과 산업정책의 연속성이 발견된다.   둘째, 한국이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을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적 전통과 산업정책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안보 위협과 전략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춘 지정학적 대응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은 지정학적 대응을 우선하기보다 지정학적 대응을 지경학적 대응에 긴밀하게 통합하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셋째, 반응적 성격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형성된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이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무역 자유화와 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하였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들의 양자적 차원의 압력에 직면하여 무역 자유화의 범위와 속도를 조정하는 반응적 성격의 통상 정책을 추구하였다. 2000년대 중국이 통상 분쟁의 새로운 상대로 부상하였다. 2000년 6월 한국 정부가 마늘 농가의 보호를 위해 중국 마늘의 관세율을 10배 이상 높이는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발동한 데 대하여, 중국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었던 핸드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로 대응하였다. 이른바 ‘마늘 파동’ 사태에 직면한 한국은 중국의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반응적 전략에 주력하였다. 2010년대에도 반응적 성격의 경제 안보 전략은 지속되었다.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제적 강압과 한일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white list)에서 제거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한국은 동일한 유형의 경제적 강압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1. 중상주의적 전통과 산업정책 기반의 경제안보 전략: 기원과 지속성   1) 1960년대 수출지향산업화 전략   전통적으로 강대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대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상대국에 원조 및 경제적 지원과 같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과 경제 제재 또는 수출 통제와 같이 상대국에게 징벌적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반면,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대외 경제 정책은 상대적으로 미발달한 분야이다. 한국은 원조 제공과 같은 인센티브의 제공과 경제 제재와 같은 경제적 강압이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러한 특징은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강압에 직면하였음에도 한국은 반경제적 강압 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중상주의적 성격이다. 몇 차례 변화의 단계를 거쳤음에도 중상주의적 요소는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도 중상주의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의 기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초까지 미국에 원조와 안보 우산에 의존하였으나, 1960년대 초반 산업화 전략에 착수하였다(양재진 2012). 1962년 수출지향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EOI)와 함께 시작된 산업화 전략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한국이 추격을 통한 산업화의 완수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국가 생존의 첩경으로 설정한 것이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기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후발국으로서 선발국에 대한 추격은 산업화 전략을 넘어선 국가 생존을 담보하는 지경학적 대응의 핵심 요소였다.   이러한 시도가 표면적으로는 수출 산업의 육성을 통한 세계 경제로의 편입을 추구하였다는 면에서 자유주의적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였다(류상영 1996).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국가 생존을 위한 지경학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중상주의적 경제 안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수입 품목의 선택적 자유화, 핵심 산업의 보호, 선발국의 추격 등을 명시적으로 추구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성격이 오히려 강화되는 등 한국의 중상주의적 성격은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선발국에 대한 추격, 즉 중상주의 기반의 경제 안보 전략은 일회성 전략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다만, 중상주의적 접근은 도전의 성격에 따라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였다. 한국은 1960년대 말부터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중상주의적 특징이 더욱 강화되었다. 중화학공업화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 또는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를 추구한 산업화 전략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는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이라는 지경학적 도전이 핵심 화두였다. 대외 환경의 변화에 직면한 한국이 선택한 대안은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중화학 공업으로 업그레이드에서 중상주의적 성격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가 매우 도전적인 과제임에도 한국은 국제 분업 구조의 참여함으로써 선발국과의 협력 관계를 형성하기보다, 중화학 공업의 최종 제품 생산에서 선발국과 직접적 경쟁을 추구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2) FTA 전략: 자유화의 외피와 중상주의의 내면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추격에 성공한 한국은 1980년대 이후 자유화 전략으로 다시 한번 전환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대외적으로는 무역 자유화, 국내적으로는 금융 자유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관리된 자유화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와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1960년대 초 이후 한국이 추구했던 추격형 발전모델의 종언을 재촉하였다. 금융 기관 통폐합을 필두로 기업 지배구조, 노동, 공기업 개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련의 변화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전통적인 전략에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현실화되지 못하였다. 우선, 1990년대의 변화가 ‘강요된 자유화’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Higgott 1998), 전통적인 경제안보 전략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이 위기관리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내포한 제도 개혁을 실행에 옮긴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심지어 한국의 구조 개혁이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한 표면적 변화에 불과한 ‘위장 순응’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Walter 2008).   자유화의 외피와 중상주의의 내연은 한국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추진한 FTA에서 잘 나타난다. 금융 위기의 높은 파고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FTA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에서 중상주의의 급격한 소멸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하면서 미국, EU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추진하는 등 공세적인 FTA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 시기 한국의 FTA 전략은 전방위적인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되, 다음 네 가지 면에서 중상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내포하였다.   첫째, 김대중 정부가 FTA를 추진한 데는 역내 경쟁국보다 FTA 경주에 먼저 참가함으로써 선발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하였다. 이는 FTA를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이자 새로운 경쟁 우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전략적 사고의 결과였다(Ravenhill 2010). 둘째, 노무현 정부가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와 ‘동시다발적 FTA’라는 FTA 전략을 병행한 것 역시 FTA의 안보적 효과에 주목한 결과이다. 한국이 국내적으로 FTA의 피해 집단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다수의 국가들과 또한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려고 한 것은 FTA를 ‘경제 영토’의 확장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은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FTA 허브’를 지향하였다. FTA 네트워크에서 허브 위치를 전략적 이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이승주 2010). 넷째, 한미 FTA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이, 한국은 FTA를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였다. FTA를 체결함으로써 한미 관계를 군사 동맹에서 포괄 동맹으로 격상시킬 것으로 기대하였다.   한국이 1980년대 이후 자유화를 수용하면서 이전 시기와는 차별화된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한 것은 분명하다. 이 시기 한국의 자유화 전략은 경제와 안보의 분리보다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새로운 방식과 수단을 발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넥서스로서 FTA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Lee 2012). FTA와 같은 대외 경제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도 하였으나, 여기에도 ‘경제 영토’의 확장이라는 중상주의적 요소가 강력하게 내재되어 있다(이승욱 2021). FTA를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을 넘어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추구하였다는 것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중상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3) 중국의 부상: 안미경중과 중상주의적 접근   2000년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였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구조적인 요인이 되었다. 외환 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격기 이후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을 찾는 것이 절실했던 한국에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매력적인 대안이 되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함에 따라, 한중 무역 규모 또한 빠르게 증가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경제적 혼란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새로운 시장 확대의 필요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 시기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이러한 지위를 2022년까지도 유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이 양자 무역의 규모를 빠르게 증대시킨 것은 물론, 전자산업과 자동차 산업 등 주요 제조업에서 분업에 기반한 가치 사슬을 형성하는 질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대비되면서 세계 질서의 변화가 초래됨에 따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복잡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미국이 경제 면에서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고, 안보 면에서 동맹국이었던 시기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하였다.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지상과제였기 때문에,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을 넘어서는 경제 안보 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현실적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하는 구조적 변화는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변화를 촉진하는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변화의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경제안보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였다(반길주 2020; 김소연 2023).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경제와 안보의 분리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지정학적 도전과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분리 접근이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경제안보 전략의 추진 과정에서도 중상주의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한국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좁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극복 수단으로, 넓게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기회로 인식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의 심화‧확대를 적극 추구하였다. 그 결과 한국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할 때, 중국과 미국의 격차는 2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지경학적 대응에서도 부상하는 중국을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 및 경제 성장 동력 확충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적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지경학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두 번째 특징은 지경학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이다. 한국은 산업 경쟁과 같은 지경학적 위협과 안보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동시 추구해왔다. 첫째,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지경학적 도전과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산업정책적 대응이기도 하였다.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것은 북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산업 역량의 강화를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도전에 대응한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였다(김진기 2011). 이는 북한의 안보 위협이라는 지정학적 도전에 대하여 방위 산업 또는 방위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적 대응 전략이었다. 특히, 방위 산업의 육성이 오로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 전략을 그친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은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째,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은 21세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도 지속된다. 우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지경학적 대응을 지속적으로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이에 대한 대응을 체계적으로 통합한 경제 안보 전략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이와 동시에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제 안보 전략에 통합시켜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더 커졌다.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지경학적 도전과 지정학적 도전의 성격이 변화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경학과 지정학의 결합의 방식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가 다소 모호하였던 과거와 달리, 21세기 한국은 주요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 경쟁적인 산업 정책 추진,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명확한 실체를 가진 지경학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가 과거에 비해 더욱 명확해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지경학적 대응의 필요성이 따라서 증가하였다. 원칙론 차원의 결합을 넘어, 세부 정책에서의 결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또한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시스템 차원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개별 국가 차원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경쟁적 확산은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을 통합하는 데 있어서 보다 정교한 경제 안보 전략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3. 반응적 성격   위의 두 가지 특징과 비교할 때, 반응적 성격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다소 뒤늦게 형성된 특징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개도국으로서 또는 동맹의 일원으로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으로부터 본격적인 공세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반응적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반응적 성격은 상대국의 공세에 선제적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대응하고, 상대국의 조치가 초래할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반응적 성격은 1980년대 중반 선진국의 시장 개방 압력이 가시화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양자적 차원과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차원의 무역 자유화 협상과 같은 다자적 차원의 무역 자유화 및 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일차적으로 개도국으로서 기존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적 전환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상대국의 공세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할 경우, 한국은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은 농산물에서 통신 서비스, 자동차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의 통상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시장 개방 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선 자유화, 후 시장 개방’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전략이 개방 압력을 사전적으로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 선제적 또는 예방적 전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개방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였다는 점에서 반응적 경제안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중국의 경제 제재, 2019년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대응에서도 반응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FTA 개정 요구 등 미국의 일방주의적 접근에 대해서도 한국은 반응적 성격에 기반한 대응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반응적 성격은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주요 특징이다.     반응적 성격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반강압 조치(counter-coercive measures)로 대응하기보다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일차적으로 소비재와 엔터테인먼트 등에 집중되었으나, 중국 내 반한 감정과 애국 소비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강압의 효과가 가전, 스마트폰,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로 확대되었다. 2022년 기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20%를 상회하는 삼성전자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확대된 데 대하여 한국은 다변화와 리쇼어링을 동시 추진하는 반응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등이 다변화 전략의 주요 대상국으로 부상하였다.     2016년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GDP의 약 0.5%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는 경제 제재의 피해를 완화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회귀하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다만, 리쇼어링을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사용한 미국과 달리,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산업 구조 조정 및 전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 1개 생산 라인을 철수한 현대모비스는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턴법’을 수차례 개정하여 보조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였다. 중국 경제 제재의 여파로 현대자동차는 중국 베이징 공장을 매각하고 리쇼어링을 결정하였고, 정부는 2019년 현대모비스가 울산 지역에 약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에 대응하는 지원을 제공하였다. 이는 국내로 회귀하는 대기업에 대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지원 사례이다. 현대자동차의 매각 조치 이후 한국 정부는 유턴법을 네 차례 개정하였다.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은 국내 회귀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리쇼어링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안정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였다. 기업들이 국내 회귀에 소극적인 이유는 자격 기준에 비해 보조금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투자를 회수하고 국내에 신규 투자를 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인세의 인상과 노동 비용의 상승은 보조금 지급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반강압 조치의 부재는 반응적 전략의 이면이다. 한국은 양자 차원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여 동일한 유형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의 국제협력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특정 국가 – 중국 – 을 견제하거나 고립시키는 협력 메커니즘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혔다. 한국은 2022년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에서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여 중국이 주요 협력국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구조적 변화로 촉발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한국이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의 대두를 촉진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에 사후적 조정을 추구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자국 우선주의적 산업정책의 확산에 대한 대응에서도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반응적 성격이 드러난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 – 공급망 재편,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 에 한국은 사후적 적응에 주력하였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 시설의 유지 및 생산 확대와 관련, 미국 정부로부터 1년 단위로 적용유예(waiver)를 승인 받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 정부는 2023년 10월 미국 정부와 적용유예를 무기한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내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IRA의 경우에도, 한국산 전기 자동차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IV. 미중 전략 경쟁과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   1. 첨단 기술의 전략적 활용   21세기 한국은 대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한 경제안보 전략의 탄력적 변화를 시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첨단 기술을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Lee 2022). 첫째,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첨단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한 경제 안보 전략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넥서스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경제적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 경제적 통치술이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넥서스에 기반한 실질적 연계 없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할 것인지 ‘여부’를 뛰어넘어 경제와 안보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이다. 경제안보 전략의 성패는 무엇보다 이슈의 ‘연계’를 효과적으로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넥서스의 확보가 경제 안보 전략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관건인 것이다. 개별 국가 수준에서는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승주 2022). 한국은 첨단기술을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적극 활용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이 첨단기술에 기반한 경제와 안보의 연계를 추구하는 것은 첨단기술 역량, 특히 첨단산업의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첨단기술 역량을 강대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고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첨단기술의 활용은 또한 경제와 안보의 연계로 인해 국내적으로 발생하는 부담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첨단기술을 경제 안보 전략에 긴밀하게 통합한다.     둘째, 21세기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서 산업정책에서 과거와 차별화된 변화가 발견된다. 지경학적 접근의 핵심은 도전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이에 초점을 맞춘 대응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 안보 전략을 수립·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경학적 대응은 선발국의 추격과 후발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다소 모호한 위협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 가해진 지경학적 위협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한국은 도소매업, 관광, 콘텐츠 산업 등에 집중된 중국의 경제 제재와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교란을 초래할 수 있는 일본의 첨단 소재 수출 통제 위협과 같은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하였다. 한국이 경제적 강압이라는 명확한 위협에 대응한 반응적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한편,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지렛대로서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를 시도하고, 일본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는 구조적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첨단산업 소재, 부품, 장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였다. 또한 한국은 경제안보의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대미 협력의 강화에도 첨단기술은 핵심 요소가 되었다. 한미 양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급망의 재편에서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첨단과학기술에서도 협력 범위를 사이버, 우주, 퀀텀 등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기획재정부 2023). 이처럼 첨단기술은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국제협력의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였다.     셋째, 한국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 중심의 전통적 산업정책의 범위를 확장하여, 기술 주권의 향상을 위한 혁신 전략을 추구하는 변화를 추구한다. 추격기 산업정책 기반의 경제 안보 전략이 주로 산업 경쟁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에는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또 다른 확장의 방향은 첨단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또한 특정 산업 내 특정 분야의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었던 과거의 산업정책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   지정학과 지경학의 분리를 전제로 한 설명은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이승주 2017).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작용은 궁극적으로 경제 안보 전략, 특히 국내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첨단산업 정책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21세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이 지정학과 지경학적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산업정책적 요소를 여전히 내포하나, 전통적인 산업정책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산업정책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경제 안보 전략의 성격을 내포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산업정책은 추격이라는 중상주의적 목표를 설정하되, 추격의 대상이 불명확하고 도전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도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후발국으로서 대외환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뿐, 추격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데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한편,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은 도전의 성격 또는 경쟁의 상대를 명시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산업정책과 차별화된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강압,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첨단산업의 국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려는 주요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보호주의 등이 21세기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이다. 이러한 특징은 다시 대응 전략의 수립과 실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도전의 성격과 대응의 대상의 규명을 촉진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도전과 상대의 명확성은 대응 수단을 찾는 데 반영된다. 한국은 도전의 성격에 대한 규명을 바탕으로 공급망 복원력 강화, 다변화, 주요 첨단산업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산업정책을 추구하였다.   또한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도 내포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지경학적 대응보다 포괄적인 접근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을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한 접근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가 두드러졌다. 2018년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은 첨단기술과 주요 산업으로 빠르게 전선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의 강화를 추구하였고,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미국 주도의 협력 네트워크에서 약한 고리의 분리를 시도하였다. 한국은 미국의 정책 동조화의 압박과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리스크가 커지는 양면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Suri and Sharma 2023).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의 경험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과학법에 근거하여 반도체 기업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자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 확대와 중국의 기술 혁신을 지연시키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삼성전자는 아리조나(Arizona)주에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였고,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후공정 시설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반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이미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 시설을 확대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2022년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확대할 수 있는 한도를 연 5% 이하로 제한하였다. 반도체 산업의 사례는 경제 안보 전략의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경학적 대응의 한계는 한중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던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사드배치를 결정하자 직전까지 최고조에 달했던 한중 관계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단체 관광을 금지하고,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도소매업 등에 대한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을 실행하였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한국 GDP의 0.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한재진 2017).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확대라는 전략적 접근의 한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 부각된 배경이다.   3. 예방적 전략의 모색   1) 구조적 취약성의 완화   한국은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강압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적 전략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의미도 있다. 취약성의 완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우선, 한국은 대중 의존도의 감소를 추구하였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적극 활용한 결과, 한중 무역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중 무역 관계가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적 강압을 행사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였다.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공급망 교란을 경험한 것이 한국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은 2000년대 이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한중 분업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가치 사슬 내 상류 부문(upstream)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한국 정부가 공급망 취약성 분석을 시행한 결과에 따르면, 소재, 부품, 장비 등 중간재에서 대 중국 취약성이 높은 품목의 수가 무려 60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바우 외 2021). 한국 정부가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한 것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교란뿐 아니라, 경제적 강압에 대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 산업정책-기술 혁신 넥서스의 확보   한국 경제안보 전략 가운데 지경학적 대응에서 산업 경쟁력과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 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지경학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술-산업 넥서스를 경제안보 전략에 통합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된다. 첨단기술의 최전선에서 경쟁 상대국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에서 탈피하여 기술 혁신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기술 혁신 넥서스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추구하는 것 또한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이다. 한국은 첨단기술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춘 경제안보 전략으로 변화를 추구해왔다. 특히,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은 공급망 안정과 복원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첨단기술 혁신 역량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첨단기술-산업 넥서스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표 1> 참조). 한국의 공급망 관리-첨단기술 혁신-산업정책 전략이 개별적으로도 추진되지만, 공급망 관리와 첨단기술 혁신의 연계 그리고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정책 연계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공급망 관리와 첨단기술 혁신의 연계이다. 공급망 전략과 관련 한국은 공급망 3법의 제개정을 통해 공급망 관리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한국은 2023년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핵심 광물 33종을 지정하고, 이 가운데 공급망 안정화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10대 핵심 광물을 선정하였다. 핵심 광물의 기준으로는 공급 리스크와 국내 경제적 영향이 고려되었다(산업통상자원부 2023).[4] 주목할 것은 방어적 차원의 공급망 관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첨단기술의 육성과 연계한다는 점이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이하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전략기술의 육성이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둘째,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정책의 연계이다. 한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을 선정하고, 2023년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슈퍼갭 R&D 전략”을 수립한 데서 나타나듯이,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산업정책의 범위를 확대하여 첨단기술 혁신과 연계하는 전략은 반응적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의 한계를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 정부는 2021년 12대 핵심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로 한 데서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첨단기술 능력 강화의 중요성이 잘 나타난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기술 주권의 강화가 첨단기술 경쟁에 대한 대응 수단이 될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위한 지렛대가 된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은 첨단기술 혁신과 제조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하나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의 협력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기술 혁신 역량을 지속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첨단기술의 활용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표 1> 한국의 공급망-기술 혁신-산업정책의 연계   공급망 전략     - 공급망 3법    ㆍ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소부장특별법) (2023년 5월)    ㆍ공급망 안정 품목 선정    ㆍ핵심전략기술 관련 품목의 생산·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있거나, 교역규모 및 국제 분업구조, 해외 특정 지역이나 국가로부터의 수입 비중, 국가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    ㆍ중국 등 특정국 의존도를 50%까지 낮추기 위해 공급망 안정 품목을 119개에서 200개까지 확대 추진    ㆍ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공급망 기본법; 경제안보 품목 지정) (2023년 12월)    ㆍ경제 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관리 시스템 구축    ㆍ국가자원안보특별법 (2023년 11월 국회 상임위 통과)    ㆍ5년 주기 자원안보기본계획 수립    ㆍ자원안보위원회 설치    ㆍ조기경보체계 구축    ㆍ핵심 자원 비축 의무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0대 핵심전략기술 (2020)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7대 분야 150대 핵심전략기술 (2022년 10월)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대 분야 200대 핵심전략기술 (2023년 4월)   - 소부장 글로벌화 전략   - ‘슈퍼 을’ 육성 전략   - 핵심광물 확보전략 (2023년 2월)   기술 혁신 전략                 -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 (2021년 10월)    ㆍ연구개발에 3.3조원 투입    ㆍKorean DARPA   - 12대 국가필수전략기술 (2022년 10월)    ㆍ50대 세부 중점 기술별 전략 로드맵    ㆍ연구개발 5년간 25조 투입    ㆍ콘트롤 타워: 과기부   - 슈퍼갭 R&D 전략 (2023년 4월)    ㆍ3대 주력 기술: 반도체,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 11개 부문 40개 기술    ㆍ160조원 민관 연구개발 자금 투입(~2027년)    ㆍ산업부   산업정책     - K-CHIPS Act (2023)   - 반도체 클러스터    ㆍ300조원 민간 투자 촉진 (2022~2042)    ㆍ반도체 소부장 기업 150개 유치 ㆍ반도체 소부장 기업 150개 유치반도체 산업 생태계 형성   - 핵심 광물 확보 전략 (2023년 2월)   - 공급망 리스크 분석: 33종 핵심 광물 중 10대 전략 핵심 광물 선정   - 경제적 영향 + 공급 리스크   - 산업통상자원부 출처: 각종 자료를 취합하여 저자 정리.   첨단산업의 진흥은 기술 주권의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명시적으로 추구한다. 이는 첨단기술의 최전선에서 선도적 위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의 전략적 판단은 지정학과는 유리된 지경학적 요인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불확실성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국가 역할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가 요구된다. 인내심 있는 자본, 네트워크적 협력을 통한 기업 능력의 향상, 정부 구매를 통한 수요 창출 등 다양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데,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이다.     V. 결론 및 정책 제언   초불확실성 시대 경제안보 전략의 최우선순위는 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리스크의 관리여야 한다. 리스크의 관리는 이슈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수단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며, 제약 및 기회 요인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5] 리스크의 관리는 때로는 그 효과 또는 이익이 상쇄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을 전략적으로 동시에 구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비록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가운데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21세기 경제와 안보의 연계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제적 통치술(economic statecraft)의 귀환이 주목받고 있다(Aggarwal and Reddie 2020).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국의 하드파워, 국제정치적 지위, 세계 경제 네트워크 내 위치, 전략적 도전의 성격 등을 통합하여 담아내되,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기여 등 보편과 특수의 결합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한국과 같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는 자국 우선주의를 촉발하여 우호적이지 않은 대외 환경을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첫 번째 전략은 연계이다. 경제 영역과 안보 영역이 연계되는 시대에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넥서스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계 전략은 이슈 연계와 장(forum)의 연계로 나누어진다. 이슈 연계와 관련,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에 기반한 국제협력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연계 전략은 양자, 소다자, 지역, 다자 등 다양한 장을 활용하는 데도 필요하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국제협력 전략의 핵심으로 하되, 이를 배타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협력의 장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두 번째 전략은 다양한 이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이익의 범주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목표의 불일치, 더 나아가 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기술 주권의 강화와 국제협력의 추진이라는 일견 상충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일상적인 시기 기술 주권의 강화는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배타적 전략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국제협력전략과 조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상충될 가능성이 높은 두 가지 목표 사이의 내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양자 사이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기술 주권의 강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기술 주권의 강화를 배타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를 국제협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첨단기술 역량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제협력을 위한 논의에 초대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안보의 세 번째 전략은 국가 이익과 민간 이익 사이의 균형이다. 경제안보의 향상을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 사이의 협력과 조정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 전략을 이행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상충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 사이의 괴리가 커질 때, 경제안보 전략의 효용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경제안보 전략의 효과성은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통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Norris 2016).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에 대한 균형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가는 경제안보 전략을 독자적으로 선도하기보다 경제안보 전략 이행의 일차적 주체로서 기업의 이익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촉진자의 역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     참고 문헌   기획재정부. 2023. “한미 첨단기술동맹으로 핵심산업 경쟁력 강화.” [보도참고자료]. 4월 30일.   김바우, 김윤수, 김계환. 2021. “한국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 및 파급경로 분석.” 『산업연구원』. 11월 18일.   김소연. 2023.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 동맹국의 대중국 헤징전략 연구: 한국과 호주 사례의 비교.” 『중국사회과학논총』. 5, 2: 88-117.   김진기. 2011. “한국의 방위산업 발전전략에 대한 연구.” 『한국동북아논총』. 58: 119-138.   류상영. 1996. “박정희정권의 산업화전략 선택과 국제 정치경제적 맥락.” 『한국정치학회보』. 30, 10: 151-179.   반길주. 2020. “동북아 국가의 한국에 대한 회색지대전략과 한국의 대응방안.” 『한국군사』. 7: 35, 69.   산업통상자원부. 2023. “첨단산업 글로벌 강국 도약을 위한 핵심광물 확보전략.” 2월 27일.   양재진. 2012.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 『동서연구』. 24, 3: 5-28.   이승욱. 2021. “한국의 FTA 전략과 지경학적 상상으로서 ‘경제영토.’” 이승주 책임편집. 『세계정치: 지경학의 기원과 21세기적 전환』. 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이승주. 2010. “FTA의 확산과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중층화.”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2, 1.   ______. 2017. “동아시아 지역경제질서의 다차원화: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작용.” 『한국과 국제정치』. 33, 1: 169-197.   ______. 2021.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와 미중 전략 경쟁: 복합 지경학의 부상.” 『정치정보연구』. 24, 3.   ______. 2022. “초불확실성 시대 한국의 경제안보전략.” 『J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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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2024-03-19조회 : 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