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국제정치경제(IPE) 패널은 9인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미중경제전쟁과 한국” 연구팀을 2022년 9월 발족하였습니다. 연구진은 날로 격화되는 미중경제전쟁을 주요 산업 및 기술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을 추적하며 향후 한국이 취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논평이슈브리핑
[미래의 미국 시리즈] ⑤ J.D. 밴스: MAGA 운동의 사도 바울?

I. 미국의 영혼전쟁과 공화당의 변화   2016년 이래 이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미국 대선들은 각각 별개의 사건들로 해석될 수 없다. 경쟁의 한편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라는 문제적 인물이 줄곧 존재해 왔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선거들은 동일한 주제를 둘러싼 두 사회 세력 간의 지속되는 충돌을 반영해 왔기에,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묶일 수 있다. 조 바이든(Joe Biden)은 이 정치적 대립을—남북전쟁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표현을 빌려—“미국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라고 이름 짓고, “우리의 더 나은 천사와 어두운 욕망” 사이의 갈등으로 그 본질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신학적 메타포(metaphor)가 가리키는 단층선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는 미국을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국가로 상상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자명한 진리”와 연방헌법에 명기된 제헌 원칙과 기본권이 아메리카 합중국의 정수를 이룬다고 믿으며, 이러한 원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는 미국을 백인 기독교 공동체로 보는 배타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누가 미국인인가는 “핵심문화”의 공유 여부와 귀속적 정체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차태서 2024, 239-290).   이와 같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국내 영역에 그치지 않고,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주목된다. 주지하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살아온 세계 질서는 상당 부분 미국의 대전략 비전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전의 내용물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존재 이유와 세계사적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자아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세력 간 “영혼 전투”는 미국 내부의 차원을 넘어 전지구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자의 보편지향적 공민 민족주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미국의 예외주의적 역할 수행을 주장하는 자유국제주의 독트린과 직결된다. 반면, 후자의 특수지향적 종족-종교 민족주의는 미국의 패권적 역할이 자원의 낭비였다고 비판하며, 현실정치적 대전략을 지지한다. 이들은 미국 역시 다른 평범한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차태서 2024, 135-169).   이러한 시대사적 배경에서 우리는 공화당의 중장기적 변화가 어떻게 미국의 정치 지형을 형성해 나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직 취임 등의 이벤트를 중요 기폭제로 삼아,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복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운동이 차례로 정당기구를 포획하면서 공화당은 점차 이념적으로 극우화되어 왔다(손병권 2024). 과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네오콘적 대외 개입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레이건 이후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포퓰리즘과 백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트럼프화된 정당으로 변화한 것이 오늘날 “위대하고 오래된 정당(Grand Old Party; G.O.P)”의 현실이다. 향후 이러한 변화가 정당 재편(party realignment)의 수준에서 공고화된다면,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운명과 상관없이, 공화당이 앞으로도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개입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 백인 노동계급의 비자유주의적 요구를 공론장에 운반하는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미국의 대전략 자체가 크게 요동치면서 해외 국가들의 대미 신뢰도가 약화하고, 세계질서 자체가 교란될 가능성마저 커지게 될 것이다.   II. 탈자유주의 우파의 수령으로서의 J.D. 밴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J.D. 밴스(J.D. Vance)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전부터 그는 단순히 트럼프에게 충성을 바치는 흔한 공화당 정치인에 그치지 않고, 신우파, 탈자유주의 등으로 불리는 이념 운동의 핵심적 정치인으로 떠올라 왔다. 다시 말해, 밴스는 트럼피즘(Trumpism)에 사상적 깊이를 더해 트럼프 시대에 시작된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더욱 급진화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함으로써, 오늘날 젊은 엘리트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체제 전환(regime change)” 흐름의 중심에 자리 잡아 왔다. 이 때문에, 대안 우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ideologue)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밴스가 자신들의 운동의 “신경중추(nerve center)”로서, 비유컨대 “사도 바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리화하여 널리 전도한 것처럼, 트럼피즘의 “복음”을 방방곡곡에 확산하는 열렬한 “개종자” [1] 의 사명을 밴스가 맡을 것이란 예언이다(Ward 2024a).   밴스는 단지 공화당 내의 변화만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내외 정책 전반, 나아가 헌정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계획을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규정함으로써, 여타 포퓰리스트 공화당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면모를 보인다. 특히 밴스는 기성 공화당 지도부마저도 “리버럴 레짐(liberal regime)”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시장 근본주의와 해외 개입주의 사조에 찌든 리버럴 엘리트들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체제 전체에 반대하는 혁명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왜 밴스가 입법활동과 관련해 종종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민주당 좌파와 협력적 관계를 맺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모두 대기업의 특별이익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워런이 비록 이념적으로 자신과 상극인 골수 좌파이지만,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망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때때로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Ward 2024a).   밴스의 독특한 정치이념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이 거론되지만, 그가 표방하는 탈자유주의 및 체제 전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지목되는 것은 노터데임 대학 정치학 교수인 패트릭 드닌(Patrick Deneen)이다(Ward 2024b). 드닌은 2018년 베스트셀러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를 출간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시 지식계 논란의 중심 주제였던 트럼프 현상을 근대 서구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라는 거시적 분석틀로 설명해 줌으로써 이 책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큰 찬사를 받았다. [2] 사상사적 계보에 있어 드닌은 공동체주의 학파와 함께 가톨릭 내 현실 참여파(integralism) [3]에 속함으로써(Liedl 2024; Linker 2024), 근대 자유주의의 오도된 개인주의적 “자유” 추구가 낳은 불평등 증대와 정부/기업으로의 권력집중, 사회 해체와 전통•규범의 상실 등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대안으로서 고대적인 의미에서 덕성을 함양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 복원을 제시하였다(Deneen 2018). 사실 여기까지는 미국 정치사상 학계에서의 고전적 테마인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혹은 공화주의) 논쟁의 맥락에 속하며, 그의 주장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고대 폴리스의 자유 개념을 복원하려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드닌의 자유주의 비판은 훨씬 더 급진화되어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운동의 형태로까지 진화하였다. 기성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하 보수와 진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리버럴 컨센서스를 초월하기 위해—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혁명적”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최근 저서, 『체제 전환: 탈자유주의적 미래를 향하여』의 핵심 문제의식이다(Deneen 2023). 이러한 사상적 진화 과정에서 드닌은 국내적으로는 성소수자 권리, 비판 인종 이론, 낙태 및 이혼 등에 반대하는 등 ‘안티워크 문화 전쟁(anti-woke culture war)’의 선봉으로 나섰고,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의 초청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여 탈자유주의 질서의 미래를 논하는 등 해외의 권위주의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Ward 2023).   이런 가운데 밴스는 2023년 5월 미국 가톨릭 대학에서 열린 드닌의 출판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탈자유주의 우파”임을 자처하면서, 의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명백히 반체제적(explicitly anti-regime)”인 것이라고 발언했다(Ward 2023). 한편, 드닌은 올해 7월 밴스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그가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더욱 진전시킬 “이상적 후보자”라고 찬사를 보냈다(Liedl 2024).   III. “체제 전환” 이후의 미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J.D. 밴스가 트럼프에 의해 부통령 후보자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은 향후 공화당이 트럼프“주의”를 교조화하고 있는 탈자유주의 우파에 의해 장악될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4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여부와는 별개로, 극우 포퓰리즘 운동이 공화당을 제도적 운반체로 삼아 장기적으로 미국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기반이 밴스의 “세자 책봉” 형태로 마련된 셈이다. 이하에서는 밴스의 주요 연설문들을 전거로 삼아 탈자유주의 세력이 꿈꾸는 “체제 전환” 이후 미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를 엿보고자 한다. 비록 자신들을 “신우파”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이들은 오히려 보수주의의 오래된 버전을 옹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전간기의 보수 포퓰리즘을 따라, 반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기초해 현실주의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정책들—고관세, 이민 제한, 그리고 해외 개입 축소 등—을 옹호한다.   1. 포퓰리스트적 민족주의   충실한 포퓰리스트로서 밴스는 이 세상 사람들을 “악당”과 “희생자”로 양분해 설명한다. 한쪽 편에 “미국에서 제외되고 잊힌 곳”, “작은 마을들”에 살고 있는 순수한 근로인민이 존재한다면, 다른 편에는 이들을 착취하며 억압하는 국내(“미국 지배계급”, “부패한 워싱턴 내부자들”, “월스트리트 귀족들”, “다국적 기업들”)와 국외(“중국 공산당”,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의 빌런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상황은 트럼프 집권 전까지 미국의 통치계급이 계속해서 실패해 왔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가령, 기득권층의 대표 인사인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 커리어 내내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창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가입, 이라크 전쟁 등과 같은 정책을 지지했고, 이런 잘못된 결정들의 대가를 평범한 미국인들이 치러왔다. 이에 밴스는 트럼프가 미국이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마지막 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 또한 본인의 출신지인 러스트 벨트 지역의 고통을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고 강조하였다(Vance 2024d).   보다 근본적인 국가 정체성 정치의 차원에 있어 밴스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의 의미를 “조국(homeland)”과 “민족(nation)” 개념으로서 구획짓는다. 우익 포퓰리스트의 노선에 잘 부합하게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추상적인 일련의 “관념”이나 “원칙”이 아닌 “공유된 역사와 공통된 미래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밴스가 이 집단 정체성의 성격을 부연설명하기 위해 동부 켄터키 애팔래치안 산맥에 위치한 가문의 선산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전쟁 시기부터의 조상들이 대를 이어 그곳 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왔으며, 본인과 배우자, 자식들까지 묻히게 되면 7대가 한곳에 모이게 된다고 한다(Vance 2024d). 근본적으로 장소와 혈연 공동체(“Blood and Soil”)로서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럽식의 반동적 내셔널리즘이 밴스의 정치사상에 짙게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Serwer 2024).   이러한 밴스의 언설은 사실 의도적으로 바이든의 “신조적 민족(creedal nation)” 개념의 안티테제로서 제시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바이든은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 미국을 하나의 관념(“America is an idea”)으로 정의했으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독립선언문의 핵심문구를 반복해 인용한 바 있다(Biden 2019; 2024a; 2024b). 이와 같이 선명한 국가 정체성 관념상의 대조는 결국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근본적 패러다임의 차이를 낳게 된다.   2. 현실주의적 대외정책   대외전략을 논함에 있어서도 밴스는 트럼프주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기성 외교정책 기득권층[4] 의 “오랜 슬로건들”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탈냉전기 미국의 외교정책 역시 “재앙의 연속”이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 20여 년간 미국외교정책을 떠받쳐 온 “도덕 본능” 혹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관념은 이라크전의 결말에서 보듯 완전한 오류로 밝혀졌다. 그 전쟁은 민주주의의 확산은커녕, 기독교인들의 집단 학살을 초래했을 따름이라는 것이 밴스의 평가이다. 둘째, 오늘날 대외정책의 최대 화두인 미중경쟁 이슈에 있어 밴스가 가장 분노하는 점은 미국 지도부가 스스로 중국의 부상을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 워싱턴의 초당적 컨센서스가 중국이 미국 중산층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중산층을 구축하는 과정을 묵인해 버렸다고 진단한다. 같은 맥락에서 제조와 기술 혁신을 임의로 분리할 수 있다는 서구의 자만심은 환상으로 증명되었고, 그 증거가 바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이라는 것이 밴스의 비판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네오콘의 대중 접근법이 가장 어리석은데, 한껏 중국이 모든 것을 제조하게 허용해 힘을 키워준 다음, 그 강력해진 중국과 전쟁하자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Vance 2024c).   그렇다면 밴스가 제시하는 대안적 대전략 비전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독트린이 국익 우선의 현실주의와 국내경제 부흥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해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철학적 토대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다극 세계(world of multi-polarity)”를 향후 30-40년간 미래 국제질서의 모습으로 상정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40년간 양대 정당이 함께 추진해 온 대전략 노선의 실패로 인해 현재 미국은 더 이상 복수의 전쟁을 치를 수 없을 만큼 쇠퇴해 버린 반면, 중국이 근미래에 몰락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현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밴스식 지정학 리뷰의 결론이다(Vance 2024c).   따라서 이러한 다극 세계에서 미국은 “자원의 희소성”을 인식하고, “취사선택 대상(trade-offs)”을 결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어떤 이익이 가장 사활적인지 판별하고 국력을 어느 곳에 집중할지 결단해야만 한다. 밴스는 공화당 주류를 포함한 워싱턴의 기성 리더십은 이런 절충이나 타협을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역내 세력균형을 복원해 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정세를 안정화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이 동아시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Vance 2024c).   보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양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밴스는 이와 같은 “역외 균형전략”을 관철하고자 한다. 우선 중동분쟁의 경우 당면한 목표는 하마스 격퇴이지만, 아브라함 협정 프로세스를 부활시킴으로써 이스라엘과 수니 국가들이 연합해 이란을 견제하는 역내 세력균형 형성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서방진영이 충분한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의지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군수품 제조 능력이 진짜 한계를 설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야기된 탄약 부족 상황은 대만에서 유사 사태 발생시 치명적이란 점도 덧붙인다. 아울러 밴스는 푸틴이 유럽에 존재적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합리적 목표는 “협상을 통한 평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즉,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가 1991년의 국경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은 판타지일 뿐이며, 바이든 정부가 푸틴과 협상할 수 없다고 반복 선언했지만, 막상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은 전무하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키이우(Kyiv)의 군사 전략을 방어 전략으로 변경시키고 모스크바와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연장선상에서 밴스는 유럽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유럽인들이 스스로 충분한 억제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록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해체하거나 유럽을 방기할 생각은 없지만, 향후 40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이 동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유럽인들이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Vance 2024a;b).   IV. 결론   현재 미국 사회에서 탈자유주의적 방향성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밴스가 대변하는 MAGA 운동세력의 급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보통 더 부각되고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망각되어버린 백인노동계급에 대한 관심, 국가 간 관계에 있어 선악이분법에 근거한 무분별한 개입을 비판하는 현실주의적 대안 제시 등은 미국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귀담아들을 문제 제기이다.   다른 한편, 기성 자유주의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도 일정 부분 반영된 바 있다. 가령, 현 정권은 국내적으로 뉴딜혁명의 추억을 소환하며 워싱턴 컨센서스의 극복을 추구해 온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식의 중상주의적 “미국 우선” 외교를 어느 정도 계승한 바 있다. 아울러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좌파 블록도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오랫동안 미국사에서는 주변화되었던—비미국적(혹은 북유럽적) 노선을 모색 중이기에 주목된다. 최근 민주당 주류를 깜짝 놀라게 만든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예시해 주듯 향후 밀레니얼 세대의 반예외주의, 반개입주의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여부에 따라 왼쪽으로부터의 탈자유주의 패러다임도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 하츠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국은 늘 로크적 자유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상상의 공동체였다(하츠 2012). 그런 면에서 탈자유주의적 사조의 도전은 미국의 근원적 정체성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미국사의 유례없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탈단극 시대, 미국내 사회세력 간 경합의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질서 전체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건 세계사적 계기를 경유하고 있는 셈이다. ■   참고 문헌   루이스 하츠(Louis Hartz). 백창재·정하용 역. 2012.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 독립혁명 이후 미국 정치사상의 해석』. 서울: 나남.   손병권. 2024.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운동: ‘리얼 아메리카’의 회복을 위한 저항운동』.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차태서. 2024. 『30년의 위기: 탈단극 시대 미국과 세계질서』.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Biden, Joe. 2019. “Joe Biden: America Is an Idea.” The Washington Post.April 25. https://www.washingtonpost.com/...video.html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______. 2024a. “Remarks by President Biden in Statement to the American People.” The Whit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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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https://www.politico.com/...00168984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1] 밴스는 사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후보로 부상할 당시, 그를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 밴스는 트럼프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축복을 받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2] 뉴욕 타임스에 여러 차례 관련 리뷰와 칼럼이 실렸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호의적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하였다.   [3] 국가 기구와 법을 동원해 구교 보수주의의 사회적 비전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핵심교의이다.   [4] 비판 대상으로서 설정된 대외정책 분야의 내부자들에는 물론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 같은 공화당 주류도 포함된다. 밴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84년부터 상원의원으로 활동해 온 맥코넬이 외교 분야에서 취한 거의 모든 입장들이 오류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한다.     ■ 차태서_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문의 및 편집: 02 2277 1683 (ext. 205) | sylee@eai.or.kr  

차태서 2024-08-29조회 : 931
단행본
미중 경제전쟁과 한국: 경제안보의 부상, 위기와 기회

  격화되는 미중 경제전쟁 속 한국의 선택은? 미중 양국의 이익 재조정 과정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봉착한 한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한국에 거대한 도전으로 다가온 미중 경제전쟁   지구화(globalization)의 시대가 지나고 각국이 보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 경제의 분단(디커플링, decoupling)을 초래하는 뉴노멀(new normal)이 등장하며 한국은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20년대 들어 국가안보와 연계되는 전략경쟁으로 확대되었다. 미중 두 나라를 주요 교역국으로 두고, 안보 측면에서도 양국관계의 동향에 따라 사활적 영향을 받는 한국으로서 미중의 분단과 대립은 거대한 도전이다. 한국은 미국의 디커플링 요구와 이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이라는 이중 압력 사이에서 반도차 및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책은 미중 경제전쟁이 한국에 주는 영향과 한국의 대응 전략을 다룬다.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지정학 리스크로 세계 경제 질서가 처한 혼란과 대응 과제, 그리고 경제와 안보를 연관 짓는 주요국 전략의 결과로 한국이 받는 영향과 그간의 대응을 규명한다. 각 장에서는 반도체, 배터리와 핵심 광물, 자동차, 금융, 군사인공지능 등 주요 산업 부문의 사례와, 미국, 유럽연합, 중국,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을 분석한다.   EAI 국제정치경제 전문가가 제시하는 경제안보의 부상 속 한국의 활로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동아시아연구원(EAI) 국제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주요 산업과 기술을 둘러싼 미중의 경제안보 전략 변화를 중심으로, 미중 양국 및 유럽연합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을 비교 분석하여 한국이 나아갈 길을 고찰한다.   서장에서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은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가안보 관계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토대로, 미중 간 경제적 상호 의존 심화가 중국의 경제 성장과 맞물리며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적대적 무역 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되짚는다. 이처럼 중국을 배제하거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디커플링 전략에 대한 반발로 디리스킹(de-risking) 개념이 등장했다고 소개하면서, 미중 양국이 어떻게 리스크를 감지하고 있으며 디리스킹 전략에 따라 한국이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제1장에서 배영자 건국대 교수는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을 미중 경제안보의 핵심 요소로 꼽으며, 반도체 산업 정책을 통해 기술혁신 역량을 갖추고 국제 협력을 유도하려는 노력이 미중 경제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첨단 반도체의 주요 생산국인 한국은 미중 반도체 경쟁의 영향권에 놓여 있으며, 독자적 기술 역량을 확보하고 이를 외교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리더십과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2장에서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원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의 핵심원자재법 등 전기차 배터리 및 핵심광물 공급망 단계의 개발도상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주요국의 전략을 소개한다. 나아가 한국도 핵심광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선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그 방안으로 캐나다 및 호주 등과의 광물 협력과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국가와의 다자협력 체계를 제시한다.   제3장에서 이왕휘 아주대 교수는 중국의 전기차 산업이 부상하는 가운데 서방의 대중국 견제 입법과 중국의 금속 수출통제 및 해외직접투자 촉진 움직임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에게는 중요한 경제안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의 경제 및 시장 규모와 지정학 양상을 고려하면 전략적 자율성을 갖고 독자적 경제안보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취약성 보완을 위한 소재, 부품, 장비의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4장에서 이용욱 고려대 교수는 미중 양국이 전략 경쟁을 벌이면서도 금융 분야의 상호 의존이 심화되는 현상을, 각국의 정치 지도자가 국내정치적 이득을 위해 타국을 안보 위협 대상으로 규정하는 “적대적 공범자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나아가 경제적 상호 의존이 국제정치의 흐름에 따라 상대방을 압박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한국은 금융 분야의 중추국 외교를 통해 주요국과 집합적 정책 메커니즘을 마련하고 미중 양자에 대한 공세적 전략과 방어적 전략을 겸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5장에서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은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에 의한 완전 자율 무기 시스템을 선점하는 쪽이 전략경쟁의 우위를 차지할 것이고, 아직 AI 운용에 관한 국제 규범이 정립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군사 AI 활용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어서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 다자 체제하에서 동맹국 및 파트너와의 통제 조율 문제가 관건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은 이러한 조율 과정에서 국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대미 및 대중 관계를 관리하는 한편 AI 발전이 동 기술의 파멸적 군사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범을 제시하는 데도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6장에서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디리스킹 기조를 내세워 대중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하는 미국과 유럽의 전략을 소개하면서, 역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출입 규제를 완화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예시로 든다. 저자는 이러한 조치가 지정학적 경쟁을 비롯한 공급망, 보건, 기술 등 다발적 도전에 대응하여 자국 경제의 복원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평가하며, 경쟁국에 공격적 수출통제를 취하는 미국과 대내외적 위험 요인의 경중을 파악하여 비교적 신중한 리스크 기반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유럽의 정책 차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제7장에서 김용신 인하대 교수는 경제 안보를 총체적 국가안보관의 하위 개념이자 당의 핵심 지휘 대상으로 상정하고, 미중 전략경쟁 속 중국의 서구 의존과 신흥 개발도상국의 도전, 국제무역의 일방주의를 주요 위협 요인으로 여기는 시진핑 정권의 대외 인식과 전략을 분석한다. 특히 중국의 경제 안보 목표는 시진핑 정권과 당의 지속 및 국가 번영을 위한 물질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중앙집권적 경제안보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첨단기술 및 핵심광물 분야의 양국 간 전면적 경쟁 관계 및 중국 중심 공급망에 대한 복합 의존 상황에 유의하며 선제적 대응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제8장에서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연구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은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자국 우선주의 및 보호주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지경학적 도전의 이중고 속에서 한국이 시도하고 있는 지정학 및 지경학 대응의 결합 전략을 분석한다. 나아가 한국 경제안보의 방향으로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를 통한 전략적 우위 확보, 기술주권 확보와 국제협력 추진 사이의 상충 관계를 완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접근법, 국익과 민간 이익의 균형을 위한 협력과 조정을 제시하고, 그 기반에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차례   책을 펴내며 _ 7 서장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가안보의 균형 _ 11 손열 | 연세대학교/동아시아연구원 제1부 산업부문별 대응 제1장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대응 전략 _ 35 배영자 | 건국대학교 제2장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재편과 핵심광물 확보방안 _ 65 김연규 | 한양대학교 제3장 중국 전기자동차(EV) 산업의 부상과 한국의 경제안보에 주는 함의 _ 96 이왕휘 | 아주대학교 제4장 미중 전략 경쟁 속 금융 상호의존 강화: 패러독스 혹은 무기화의 서막? _ 127 이용욱 | 고려대학교 제5장 미중 전략 경쟁 속 군사인공지능의 정치경제 _ 157 전재성 | 서울대학교 제2부 주요국별 대응 제6장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안보 정책 _ 191 이효영 | 국립외교원 제7장 중국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 _ 213 김용신 | 인하대학교 제8장 지정학/지경학의 이중 도전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연속성과 변화 _ 233 이승주 | 중앙대학교

손열ㆍ이승주 편 2024-05-31조회 : 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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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경제전쟁과 한국의 선택 시리즈] ⑨ 지정학/지경학의 이중 도전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연속성과 변화

I. 서론   전통적인 경제 안보는 타국의 공세로부터 자국의 경제와 안전을 보호하고, 외교안보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며, 지정학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Samuels 1996; Blackwill and Jennifer 2016).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적 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경제 안보를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정의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경제적 침공으로 정의하고, 경제 안보가 곧 국가안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Navarro 2018). 주요국들이 보호와 안전에 초점을 맞춘 방어적이고 반응적인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전략적 우위의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선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국들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증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경제 안보 전략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 안보 전략의 전환은 세계화로 인해 증가한 국가 간 상호의존을 무기화하고, 민군 겸용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와 안보 사이의 경계가 약화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간 상호의존이 평화를 증진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전망과 달리, 강대국들이 증대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겸용 기술의 확산 또한 첨단기술이 미래 경쟁력의 확보를 위한 경쟁을 가속화 시켰을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대두함에 따라, 첨단기술의 안보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추세적 변화를 반영하여 경제 안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그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경제 안보 전략과 차별화를 시도해왔는데, 중국 및 일본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하고, 첨단산업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커졌을 뿐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관리 필요성이 증대된 것 등이 결합하여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차별성을 촉진하였다.   이 글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연속성과 대내외 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변화의 두 가지 성격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1960년대 초에서 현재까지 몇 차례의 단계를 거쳐 변모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이 형성되는 동시에, 대내외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경제 안보 전략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연속성은 지정학과 지경학적 대응의 결합, 경제적 강압 수단의 결여, 중상주의적 성격과 산업정책 기반의 전략이다.[1] 한편,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 첨단기술을 긴밀하게 통합한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화된 변화가 발견된다. 구체적으로 첨단산업 공급망의 취약성 완화,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 산업정책과 첨단기술 전략의 결합 등이 그것이다.     II. 경제 안보 전략의 유형   경제 안보 전략은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이라는 대응 전략의 특성과 대외정책과 국내 정책적 대응이라는 대응 수단의 우선순위 두 가지를 기준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대외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 가운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경제 안보 전략의 유형이 나누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우선 경제적 경쟁의 심화와 안보 위협의 증대와 같은 대외적 도전에 직면하여 지경학적 대응을 경제 안보 전략의 근간으로 설정하는 국가들이 있다. 이 유형의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적 또는 산업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경제 안보의 핵심 과제로 설정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서도 산업 경쟁력의 강화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통해 해결하려는 특징을 보인다(Samuels 1996).   반면, 대외환경의 변화에 직면하여 지정학적 대응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유형이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유형의 국가들은 (공세적인) 지정학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한다(Andrews 2006; Baldwin 1985; Cohen 2018; Drezner 1999, 2015). 상대국의 경제적·산업적 추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근저에는 경제 안보에 대한 위협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언제든 전환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냉전기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고위험 연구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혁신 생태계의 재편을 추진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지정학적 대응은 냉전기 미소 경쟁뿐 아니라, 최근 미중 전략 경쟁에서도 발견된다(Navarro 2018). 중국에 대한 견제가 지정학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때로는 경제적 효율성의 저하마저도 감수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1세기 중국의 기술 굴기에 직면한 미국은 또 다시 기술 혁신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국내 생산 역량의 강화를 통한 주요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기술과 산업 추격이 궁극적으로 국가안보 위협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근원적 두려움이 작용한 결과이다. 다만, 냉전기 소련과 달리, 중국이 첨단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고 겸용 기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혁신 역량 발전의 지연과 자체적인 역량의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미국이 혁신 생태계의 업그레이드와 산업 경쟁력의 강화를 연계하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혁신 명제(innovation imperative)’가 미국의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질서의 근간은 위협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 제재에서 나타나듯이, 초강대국들뿐 아니라 주요국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중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하여 수출 통제, 투자 규제, 금융 제재 등 대외 경제 정책을 적극 동원하였다. 특히, EU의 경우 특정 국가에 대한 구조적 의존(dependency)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극단적 추구를 지양하는 경향을 보인다(European Commission 2023).   둘째, 대응 수단 면에서 경제 제재, 수출 통제, 대외 원조 등 대외 경제 정책에 상대적으로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유형과 산업정책, 기술 혁신 전략, 제도적 혁신과 같은 국내적 차원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대외 경제 정책 중심의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강대국의 전유물이라는 점에서 다수의 국가로 확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강대국들이 독자 제재를 넘어 다자 차원의 경제 제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견국 또는 약소국을 경제 제재에 동원하기도 한다. 중견국 또는 약소국들도 대외경제정책 성향의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기도 하나, 이는 강대국과의 협력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은 아니다. 강대국이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활용하여 상대국에 제재 조치를 부과하거나 유인을 제공하는 능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냉전기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적 차원에서 수월한 기술 및 제도적 역량을 수립하는 데 경제 안보 전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다만, 미국 경제 안보 전략의 국내적 차원은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의 확보가 지배적 동기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지정학적 접근이다.   반면, 대내외 도전에 직면하여 국내 산업정책 중심의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유형의 국가들이 있다(Weiss and Thurbon 2021). 이 유형의 국가들은 경제 안보를 경제적 차원에서 정의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대외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국내적 차원의 산업 경쟁력 강화와 제도적 혁신이 필수라고 인식한다. 더 나아가 이 유형의 국가들은 산업정책의 범위를 방위 산업 또는 군사력 증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으로 확장함으로써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서도 산업정책 기반의 대응을 우선한다. 안보 위협의 증가에 직면하여 군사력의 증강과 같은 지정학적 대응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군사력 증강을 방위 산업 역량의 강화와 연계한다는 점에서 국내적 차원에서 산업정책적 대응이 경제안보 전략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 팬데믹의 세계적 확산, 기후 변화, 자연재해의 빈발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과 세계 경제 질서의 불안 등 대외환경의 변화는 국가의 귀한, 더 나아가 산업정책의 귀환을 촉진하였다(Wade 2012; Siripurapu and Berman 2023).[2]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더욱 첨단산업 경쟁을 위한 경쟁이 격화될 경우,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산업정책의 강화를 경제 안보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때문이다(Carroll 2023; 이승주 2023).   일본은 지경학적 접근을 추구한 대표적 국가이다. 경제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지경학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일본은 경제 발전과 안보라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교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지경학적 접근은 리쇼어링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정부가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 사이에 일본 기업의 회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대중국 투자와 사업에 수반된 리스크를 관리하고 공급망 복원력을 강화하려는 지경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리쇼어링 정책은 투자처로서 중국의 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일본 기업의 중국+α의 필요성이 증가한 것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Katada et al. 2023).   지금까지 소개한 유형은 연속선상에 있는 차이이기 때문에, 경계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기준의 경계에 놓여 있거나, 두 가지 특징을 함께 공유하는 유형도 있을 수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리쇼어링은 다면적 성격을 갖는다. 리쇼어링은 생산 효율성의 최적화를 위해 해외로 진출했던 자국 기업, 특히 제조기업을 국내로 회귀시키는 정부 정책이다(Bals et al. 2016). 다른 국가 또는 경쟁국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키고 공급망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다는 점에서 지경학적 고려에 기반한 경제 안보 전략이다. 이와 동시에 리쇼어링을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할 경우, 지경학과 지정학의 결합이 발생한다. 미국이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명시적으로 표방하고, 자국 기업뿐 아니라 동맹 및 파트너 국가의 기업마저도 미국 내 유치하려는 리쇼어링 정책은 지경학과 지정학 결합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중국과의 첨단산업 경쟁에서 우위 확보뿐 아니라, 겸용 기술의 광범위한 확산 추세를 감안한 안보 전략이기도 하다.   리쇼어링은 상대국의 행위를 변경시키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지 않고도 기업의 생산 지점을 변경시킨다는 점에서 대외 경제 정책의 성격을 띤다. 이와 동시에 리쇼어링은 세계화에 대한 반발에 대응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국내 정책의 성격을 모두 갖는다. 자국 기업의 국내 회귀를 지원함으로써 주요 산업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리쇼어링은 전형적인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생산 역량의 강화라는 목표에 부합할 경우, 외국 기업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외 경제 정책의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III.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연속성   직면하는 도전의 성격과 국내의 대응 역량에 따라 시기별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의 수단과 방식에 변화가 있었으나, 중상주의적 성격, 산업정책 기반의 전략, 지정학적 대응과 지경학적 대응의 결합, 반응적 성격 등은 지속되었다. 첫째, 1960년대 수출지향산업화는 후발국으로서 선진국을 추격하겠다는 중상주의적 목표를 뚜렷하게 드러낸 생존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기원이었다. 무역 자유화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과 같이 자유주의적 성향의 경제 안보 전략에도 중상주의적 요소가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이후 한국은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추구하면서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을 심화‧확대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 팬데믹, 기후변화 등 다양한 위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21세기 초불확실성 시대에도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중상주의와 산업정책 기반의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첨단 기술 역량과 첨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양자 차원의 경제적 강압과 다자 차원에서 증대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21세기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의 전통과 산업정책의 연속성이 발견된다.   둘째, 한국이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을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적 전통과 산업정책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안보 위협과 전략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춘 지정학적 대응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은 지정학적 대응을 우선하기보다 지정학적 대응을 지경학적 대응에 긴밀하게 통합하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셋째, 반응적 성격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형성된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이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무역 자유화와 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하였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들의 양자적 차원의 압력에 직면하여 무역 자유화의 범위와 속도를 조정하는 반응적 성격의 통상 정책을 추구하였다. 2000년대 중국이 통상 분쟁의 새로운 상대로 부상하였다. 2000년 6월 한국 정부가 마늘 농가의 보호를 위해 중국 마늘의 관세율을 10배 이상 높이는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발동한 데 대하여, 중국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었던 핸드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로 대응하였다. 이른바 ‘마늘 파동’ 사태에 직면한 한국은 중국의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반응적 전략에 주력하였다. 2010년대에도 반응적 성격의 경제 안보 전략은 지속되었다.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제적 강압과 한일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white list)에서 제거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한국은 동일한 유형의 경제적 강압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1. 중상주의적 전통과 산업정책 기반의 경제안보 전략: 기원과 지속성   1) 1960년대 수출지향산업화 전략   전통적으로 강대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대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상대국에 원조 및 경제적 지원과 같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과 경제 제재 또는 수출 통제와 같이 상대국에게 징벌적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반면,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대외 경제 정책은 상대적으로 미발달한 분야이다. 한국은 원조 제공과 같은 인센티브의 제공과 경제 제재와 같은 경제적 강압이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러한 특징은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강압에 직면하였음에도 한국은 반경제적 강압 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중상주의적 성격이다. 몇 차례 변화의 단계를 거쳤음에도 중상주의적 요소는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도 중상주의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의 기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초까지 미국에 원조와 안보 우산에 의존하였으나, 1960년대 초반 산업화 전략에 착수하였다(양재진 2012). 1962년 수출지향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EOI)와 함께 시작된 산업화 전략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한국이 추격을 통한 산업화의 완수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국가 생존의 첩경으로 설정한 것이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기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후발국으로서 선발국에 대한 추격은 산업화 전략을 넘어선 국가 생존을 담보하는 지경학적 대응의 핵심 요소였다.   이러한 시도가 표면적으로는 수출 산업의 육성을 통한 세계 경제로의 편입을 추구하였다는 면에서 자유주의적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였다(류상영 1996).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국가 생존을 위한 지경학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중상주의적 경제 안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수입 품목의 선택적 자유화, 핵심 산업의 보호, 선발국의 추격 등을 명시적으로 추구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성격이 오히려 강화되는 등 한국의 중상주의적 성격은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선발국에 대한 추격, 즉 중상주의 기반의 경제 안보 전략은 일회성 전략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다만, 중상주의적 접근은 도전의 성격에 따라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였다. 한국은 1960년대 말부터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중상주의적 특징이 더욱 강화되었다. 중화학공업화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 또는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를 추구한 산업화 전략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는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이라는 지경학적 도전이 핵심 화두였다. 대외 환경의 변화에 직면한 한국이 선택한 대안은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중화학 공업으로 업그레이드에서 중상주의적 성격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가 매우 도전적인 과제임에도 한국은 국제 분업 구조의 참여함으로써 선발국과의 협력 관계를 형성하기보다, 중화학 공업의 최종 제품 생산에서 선발국과 직접적 경쟁을 추구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2) FTA 전략: 자유화의 외피와 중상주의의 내면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추격에 성공한 한국은 1980년대 이후 자유화 전략으로 다시 한번 전환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대외적으로는 무역 자유화, 국내적으로는 금융 자유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관리된 자유화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와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1960년대 초 이후 한국이 추구했던 추격형 발전모델의 종언을 재촉하였다. 금융 기관 통폐합을 필두로 기업 지배구조, 노동, 공기업 개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련의 변화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전통적인 전략에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현실화되지 못하였다. 우선, 1990년대의 변화가 ‘강요된 자유화’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Higgott 1998), 전통적인 경제안보 전략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이 위기관리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내포한 제도 개혁을 실행에 옮긴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심지어 한국의 구조 개혁이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한 표면적 변화에 불과한 ‘위장 순응’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Walter 2008).   자유화의 외피와 중상주의의 내연은 한국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추진한 FTA에서 잘 나타난다. 금융 위기의 높은 파고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FTA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에서 중상주의의 급격한 소멸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하면서 미국, EU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추진하는 등 공세적인 FTA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 시기 한국의 FTA 전략은 전방위적인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되, 다음 네 가지 면에서 중상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내포하였다.   첫째, 김대중 정부가 FTA를 추진한 데는 역내 경쟁국보다 FTA 경주에 먼저 참가함으로써 선발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하였다. 이는 FTA를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이자 새로운 경쟁 우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전략적 사고의 결과였다(Ravenhill 2010). 둘째, 노무현 정부가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와 ‘동시다발적 FTA’라는 FTA 전략을 병행한 것 역시 FTA의 안보적 효과에 주목한 결과이다. 한국이 국내적으로 FTA의 피해 집단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다수의 국가들과 또한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려고 한 것은 FTA를 ‘경제 영토’의 확장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은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FTA 허브’를 지향하였다. FTA 네트워크에서 허브 위치를 전략적 이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이승주 2010). 넷째, 한미 FTA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이, 한국은 FTA를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였다. FTA를 체결함으로써 한미 관계를 군사 동맹에서 포괄 동맹으로 격상시킬 것으로 기대하였다.   한국이 1980년대 이후 자유화를 수용하면서 이전 시기와는 차별화된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한 것은 분명하다. 이 시기 한국의 자유화 전략은 경제와 안보의 분리보다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새로운 방식과 수단을 발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넥서스로서 FTA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Lee 2012). FTA와 같은 대외 경제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도 하였으나, 여기에도 ‘경제 영토’의 확장이라는 중상주의적 요소가 강력하게 내재되어 있다(이승욱 2021). FTA를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을 넘어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추구하였다는 것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중상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3) 중국의 부상: 안미경중과 중상주의적 접근   2000년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였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구조적인 요인이 되었다. 외환 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격기 이후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을 찾는 것이 절실했던 한국에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매력적인 대안이 되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함에 따라, 한중 무역 규모 또한 빠르게 증가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경제적 혼란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새로운 시장 확대의 필요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 시기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이러한 지위를 2022년까지도 유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이 양자 무역의 규모를 빠르게 증대시킨 것은 물론, 전자산업과 자동차 산업 등 주요 제조업에서 분업에 기반한 가치 사슬을 형성하는 질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대비되면서 세계 질서의 변화가 초래됨에 따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복잡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미국이 경제 면에서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고, 안보 면에서 동맹국이었던 시기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하였다.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지상과제였기 때문에,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을 넘어서는 경제 안보 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현실적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하는 구조적 변화는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변화를 촉진하는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변화의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경제안보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였다(반길주 2020; 김소연 2023).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경제와 안보의 분리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지정학적 도전과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분리 접근이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경제안보 전략의 추진 과정에서도 중상주의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한국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좁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극복 수단으로, 넓게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기회로 인식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의 심화‧확대를 적극 추구하였다. 그 결과 한국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할 때, 중국과 미국의 격차는 2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지경학적 대응에서도 부상하는 중국을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 및 경제 성장 동력 확충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적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지경학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두 번째 특징은 지경학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이다. 한국은 산업 경쟁과 같은 지경학적 위협과 안보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동시 추구해왔다. 첫째,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지경학적 도전과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산업정책적 대응이기도 하였다.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것은 북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산업 역량의 강화를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도전에 대응한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였다(김진기 2011). 이는 북한의 안보 위협이라는 지정학적 도전에 대하여 방위 산업 또는 방위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적 대응 전략이었다. 특히, 방위 산업의 육성이 오로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 전략을 그친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은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째,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은 21세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도 지속된다. 우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지경학적 대응을 지속적으로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이에 대한 대응을 체계적으로 통합한 경제 안보 전략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이와 동시에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제 안보 전략에 통합시켜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더 커졌다.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지경학적 도전과 지정학적 도전의 성격이 변화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경학과 지정학의 결합의 방식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가 다소 모호하였던 과거와 달리, 21세기 한국은 주요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 경쟁적인 산업 정책 추진,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명확한 실체를 가진 지경학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가 과거에 비해 더욱 명확해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지경학적 대응의 필요성이 따라서 증가하였다. 원칙론 차원의 결합을 넘어, 세부 정책에서의 결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또한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시스템 차원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개별 국가 차원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경쟁적 확산은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을 통합하는 데 있어서 보다 정교한 경제 안보 전략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3. 반응적 성격   위의 두 가지 특징과 비교할 때, 반응적 성격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다소 뒤늦게 형성된 특징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개도국으로서 또는 동맹의 일원으로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으로부터 본격적인 공세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반응적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반응적 성격은 상대국의 공세에 선제적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대응하고, 상대국의 조치가 초래할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반응적 성격은 1980년대 중반 선진국의 시장 개방 압력이 가시화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양자적 차원과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차원의 무역 자유화 협상과 같은 다자적 차원의 무역 자유화 및 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일차적으로 개도국으로서 기존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적 전환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상대국의 공세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할 경우, 한국은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은 농산물에서 통신 서비스, 자동차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의 통상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시장 개방 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선 자유화, 후 시장 개방’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전략이 개방 압력을 사전적으로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 선제적 또는 예방적 전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개방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였다는 점에서 반응적 경제안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중국의 경제 제재, 2019년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대응에서도 반응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FTA 개정 요구 등 미국의 일방주의적 접근에 대해서도 한국은 반응적 성격에 기반한 대응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반응적 성격은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주요 특징이다.     반응적 성격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반강압 조치(counter-coercive measures)로 대응하기보다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일차적으로 소비재와 엔터테인먼트 등에 집중되었으나, 중국 내 반한 감정과 애국 소비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강압의 효과가 가전, 스마트폰,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로 확대되었다. 2022년 기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20%를 상회하는 삼성전자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확대된 데 대하여 한국은 다변화와 리쇼어링을 동시 추진하는 반응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등이 다변화 전략의 주요 대상국으로 부상하였다.     2016년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GDP의 약 0.5%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는 경제 제재의 피해를 완화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회귀하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다만, 리쇼어링을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사용한 미국과 달리,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산업 구조 조정 및 전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 1개 생산 라인을 철수한 현대모비스는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턴법’을 수차례 개정하여 보조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였다. 중국 경제 제재의 여파로 현대자동차는 중국 베이징 공장을 매각하고 리쇼어링을 결정하였고, 정부는 2019년 현대모비스가 울산 지역에 약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에 대응하는 지원을 제공하였다. 이는 국내로 회귀하는 대기업에 대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지원 사례이다. 현대자동차의 매각 조치 이후 한국 정부는 유턴법을 네 차례 개정하였다.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은 국내 회귀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리쇼어링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안정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였다. 기업들이 국내 회귀에 소극적인 이유는 자격 기준에 비해 보조금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투자를 회수하고 국내에 신규 투자를 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인세의 인상과 노동 비용의 상승은 보조금 지급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반강압 조치의 부재는 반응적 전략의 이면이다. 한국은 양자 차원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여 동일한 유형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의 국제협력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특정 국가 – 중국 – 을 견제하거나 고립시키는 협력 메커니즘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혔다. 한국은 2022년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에서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여 중국이 주요 협력국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구조적 변화로 촉발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한국이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의 대두를 촉진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에 사후적 조정을 추구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자국 우선주의적 산업정책의 확산에 대한 대응에서도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반응적 성격이 드러난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 – 공급망 재편,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 에 한국은 사후적 적응에 주력하였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 시설의 유지 및 생산 확대와 관련, 미국 정부로부터 1년 단위로 적용유예(waiver)를 승인 받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 정부는 2023년 10월 미국 정부와 적용유예를 무기한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내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IRA의 경우에도, 한국산 전기 자동차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IV. 미중 전략 경쟁과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   1. 첨단 기술의 전략적 활용   21세기 한국은 대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한 경제안보 전략의 탄력적 변화를 시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첨단 기술을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Lee 2022). 첫째,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첨단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한 경제 안보 전략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넥서스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경제적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 경제적 통치술이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넥서스에 기반한 실질적 연계 없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할 것인지 ‘여부’를 뛰어넘어 경제와 안보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이다. 경제안보 전략의 성패는 무엇보다 이슈의 ‘연계’를 효과적으로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넥서스의 확보가 경제 안보 전략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관건인 것이다. 개별 국가 수준에서는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승주 2022). 한국은 첨단기술을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적극 활용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이 첨단기술에 기반한 경제와 안보의 연계를 추구하는 것은 첨단기술 역량, 특히 첨단산업의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첨단기술 역량을 강대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고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첨단기술의 활용은 또한 경제와 안보의 연계로 인해 국내적으로 발생하는 부담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첨단기술을 경제 안보 전략에 긴밀하게 통합한다.     둘째, 21세기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서 산업정책에서 과거와 차별화된 변화가 발견된다. 지경학적 접근의 핵심은 도전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이에 초점을 맞춘 대응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 안보 전략을 수립·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경학적 대응은 선발국의 추격과 후발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다소 모호한 위협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 가해진 지경학적 위협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한국은 도소매업, 관광, 콘텐츠 산업 등에 집중된 중국의 경제 제재와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교란을 초래할 수 있는 일본의 첨단 소재 수출 통제 위협과 같은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하였다. 한국이 경제적 강압이라는 명확한 위협에 대응한 반응적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한편,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지렛대로서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를 시도하고, 일본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는 구조적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첨단산업 소재, 부품, 장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였다. 또한 한국은 경제안보의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대미 협력의 강화에도 첨단기술은 핵심 요소가 되었다. 한미 양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급망의 재편에서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첨단과학기술에서도 협력 범위를 사이버, 우주, 퀀텀 등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기획재정부 2023). 이처럼 첨단기술은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국제협력의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였다.     셋째, 한국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 중심의 전통적 산업정책의 범위를 확장하여, 기술 주권의 향상을 위한 혁신 전략을 추구하는 변화를 추구한다. 추격기 산업정책 기반의 경제 안보 전략이 주로 산업 경쟁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에는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또 다른 확장의 방향은 첨단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또한 특정 산업 내 특정 분야의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었던 과거의 산업정책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   지정학과 지경학의 분리를 전제로 한 설명은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이승주 2017).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작용은 궁극적으로 경제 안보 전략, 특히 국내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첨단산업 정책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21세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이 지정학과 지경학적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산업정책적 요소를 여전히 내포하나, 전통적인 산업정책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산업정책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경제 안보 전략의 성격을 내포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산업정책은 추격이라는 중상주의적 목표를 설정하되, 추격의 대상이 불명확하고 도전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도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후발국으로서 대외환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뿐, 추격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데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한편,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은 도전의 성격 또는 경쟁의 상대를 명시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산업정책과 차별화된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강압,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첨단산업의 국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려는 주요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보호주의 등이 21세기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이다. 이러한 특징은 다시 대응 전략의 수립과 실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도전의 성격과 대응의 대상의 규명을 촉진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도전과 상대의 명확성은 대응 수단을 찾는 데 반영된다. 한국은 도전의 성격에 대한 규명을 바탕으로 공급망 복원력 강화, 다변화, 주요 첨단산업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산업정책을 추구하였다.   또한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도 내포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지경학적 대응보다 포괄적인 접근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을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한 접근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가 두드러졌다. 2018년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은 첨단기술과 주요 산업으로 빠르게 전선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의 강화를 추구하였고,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미국 주도의 협력 네트워크에서 약한 고리의 분리를 시도하였다. 한국은 미국의 정책 동조화의 압박과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리스크가 커지는 양면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Suri and Sharma 2023).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의 경험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과학법에 근거하여 반도체 기업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자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 확대와 중국의 기술 혁신을 지연시키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삼성전자는 아리조나(Arizona)주에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였고,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후공정 시설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반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이미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 시설을 확대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2022년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확대할 수 있는 한도를 연 5% 이하로 제한하였다. 반도체 산업의 사례는 경제 안보 전략의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경학적 대응의 한계는 한중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던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사드배치를 결정하자 직전까지 최고조에 달했던 한중 관계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단체 관광을 금지하고,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도소매업 등에 대한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을 실행하였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한국 GDP의 0.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한재진 2017).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확대라는 전략적 접근의 한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 부각된 배경이다.   3. 예방적 전략의 모색   1) 구조적 취약성의 완화   한국은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강압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적 전략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의미도 있다. 취약성의 완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우선, 한국은 대중 의존도의 감소를 추구하였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적극 활용한 결과, 한중 무역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중 무역 관계가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적 강압을 행사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였다.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공급망 교란을 경험한 것이 한국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은 2000년대 이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한중 분업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가치 사슬 내 상류 부문(upstream)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한국 정부가 공급망 취약성 분석을 시행한 결과에 따르면, 소재, 부품, 장비 등 중간재에서 대 중국 취약성이 높은 품목의 수가 무려 60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바우 외 2021). 한국 정부가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한 것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교란뿐 아니라, 경제적 강압에 대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 산업정책-기술 혁신 넥서스의 확보   한국 경제안보 전략 가운데 지경학적 대응에서 산업 경쟁력과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 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지경학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술-산업 넥서스를 경제안보 전략에 통합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된다. 첨단기술의 최전선에서 경쟁 상대국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에서 탈피하여 기술 혁신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기술 혁신 넥서스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추구하는 것 또한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이다. 한국은 첨단기술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춘 경제안보 전략으로 변화를 추구해왔다. 특히,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은 공급망 안정과 복원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첨단기술 혁신 역량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첨단기술-산업 넥서스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표 1> 참조). 한국의 공급망 관리-첨단기술 혁신-산업정책 전략이 개별적으로도 추진되지만, 공급망 관리와 첨단기술 혁신의 연계 그리고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정책 연계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공급망 관리와 첨단기술 혁신의 연계이다. 공급망 전략과 관련 한국은 공급망 3법의 제개정을 통해 공급망 관리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한국은 2023년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핵심 광물 33종을 지정하고, 이 가운데 공급망 안정화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10대 핵심 광물을 선정하였다. 핵심 광물의 기준으로는 공급 리스크와 국내 경제적 영향이 고려되었다(산업통상자원부 2023).[4] 주목할 것은 방어적 차원의 공급망 관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첨단기술의 육성과 연계한다는 점이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이하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전략기술의 육성이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둘째,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정책의 연계이다. 한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을 선정하고, 2023년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슈퍼갭 R&D 전략”을 수립한 데서 나타나듯이,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산업정책의 범위를 확대하여 첨단기술 혁신과 연계하는 전략은 반응적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의 한계를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 정부는 2021년 12대 핵심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로 한 데서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첨단기술 능력 강화의 중요성이 잘 나타난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기술 주권의 강화가 첨단기술 경쟁에 대한 대응 수단이 될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위한 지렛대가 된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은 첨단기술 혁신과 제조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하나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의 협력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기술 혁신 역량을 지속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첨단기술의 활용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표 1> 한국의 공급망-기술 혁신-산업정책의 연계   공급망 전략     - 공급망 3법    ㆍ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소부장특별법) (2023년 5월)    ㆍ공급망 안정 품목 선정    ㆍ핵심전략기술 관련 품목의 생산·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있거나, 교역규모 및 국제 분업구조, 해외 특정 지역이나 국가로부터의 수입 비중, 국가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    ㆍ중국 등 특정국 의존도를 50%까지 낮추기 위해 공급망 안정 품목을 119개에서 200개까지 확대 추진    ㆍ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공급망 기본법; 경제안보 품목 지정) (2023년 12월)    ㆍ경제 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관리 시스템 구축    ㆍ국가자원안보특별법 (2023년 11월 국회 상임위 통과)    ㆍ5년 주기 자원안보기본계획 수립    ㆍ자원안보위원회 설치    ㆍ조기경보체계 구축    ㆍ핵심 자원 비축 의무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0대 핵심전략기술 (2020)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7대 분야 150대 핵심전략기술 (2022년 10월)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대 분야 200대 핵심전략기술 (2023년 4월)   - 소부장 글로벌화 전략   - ‘슈퍼 을’ 육성 전략   - 핵심광물 확보전략 (2023년 2월)   기술 혁신 전략                 -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 (2021년 10월)    ㆍ연구개발에 3.3조원 투입    ㆍKorean DARPA   - 12대 국가필수전략기술 (2022년 10월)    ㆍ50대 세부 중점 기술별 전략 로드맵    ㆍ연구개발 5년간 25조 투입    ㆍ콘트롤 타워: 과기부   - 슈퍼갭 R&D 전략 (2023년 4월)    ㆍ3대 주력 기술: 반도체,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 11개 부문 40개 기술    ㆍ160조원 민관 연구개발 자금 투입(~2027년)    ㆍ산업부   산업정책     - K-CHIPS Act (2023)   - 반도체 클러스터    ㆍ300조원 민간 투자 촉진 (2022~2042)    ㆍ반도체 소부장 기업 150개 유치 ㆍ반도체 소부장 기업 150개 유치반도체 산업 생태계 형성   - 핵심 광물 확보 전략 (2023년 2월)   - 공급망 리스크 분석: 33종 핵심 광물 중 10대 전략 핵심 광물 선정   - 경제적 영향 + 공급 리스크   - 산업통상자원부 출처: 각종 자료를 취합하여 저자 정리.   첨단산업의 진흥은 기술 주권의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명시적으로 추구한다. 이는 첨단기술의 최전선에서 선도적 위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의 전략적 판단은 지정학과는 유리된 지경학적 요인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불확실성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국가 역할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가 요구된다. 인내심 있는 자본, 네트워크적 협력을 통한 기업 능력의 향상, 정부 구매를 통한 수요 창출 등 다양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데,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이다.     V. 결론 및 정책 제언   초불확실성 시대 경제안보 전략의 최우선순위는 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리스크의 관리여야 한다. 리스크의 관리는 이슈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수단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며, 제약 및 기회 요인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5] 리스크의 관리는 때로는 그 효과 또는 이익이 상쇄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을 전략적으로 동시에 구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비록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가운데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21세기 경제와 안보의 연계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제적 통치술(economic statecraft)의 귀환이 주목받고 있다(Aggarwal and Reddie 2020).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국의 하드파워, 국제정치적 지위, 세계 경제 네트워크 내 위치, 전략적 도전의 성격 등을 통합하여 담아내되,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기여 등 보편과 특수의 결합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한국과 같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는 자국 우선주의를 촉발하여 우호적이지 않은 대외 환경을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첫 번째 전략은 연계이다. 경제 영역과 안보 영역이 연계되는 시대에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넥서스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계 전략은 이슈 연계와 장(forum)의 연계로 나누어진다. 이슈 연계와 관련,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에 기반한 국제협력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연계 전략은 양자, 소다자, 지역, 다자 등 다양한 장을 활용하는 데도 필요하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국제협력 전략의 핵심으로 하되, 이를 배타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협력의 장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두 번째 전략은 다양한 이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이익의 범주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목표의 불일치, 더 나아가 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기술 주권의 강화와 국제협력의 추진이라는 일견 상충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일상적인 시기 기술 주권의 강화는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배타적 전략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국제협력전략과 조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상충될 가능성이 높은 두 가지 목표 사이의 내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양자 사이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기술 주권의 강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기술 주권의 강화를 배타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를 국제협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첨단기술 역량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제협력을 위한 논의에 초대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안보의 세 번째 전략은 국가 이익과 민간 이익 사이의 균형이다. 경제안보의 향상을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 사이의 협력과 조정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 전략을 이행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상충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 사이의 괴리가 커질 때, 경제안보 전략의 효용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경제안보 전략의 효과성은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통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Norris 2016).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에 대한 균형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가는 경제안보 전략을 독자적으로 선도하기보다 경제안보 전략 이행의 일차적 주체로서 기업의 이익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촉진자의 역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     참고 문헌   기획재정부. 2023. “한미 첨단기술동맹으로 핵심산업 경쟁력 강화.” [보도참고자료]. 4월 30일.   김바우, 김윤수, 김계환. 2021. “한국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 및 파급경로 분석.” 『산업연구원』. 11월 18일.   김소연. 2023.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 동맹국의 대중국 헤징전략 연구: 한국과 호주 사례의 비교.” 『중국사회과학논총』. 5, 2: 88-117.   김진기. 2011. “한국의 방위산업 발전전략에 대한 연구.” 『한국동북아논총』. 58: 119-138.   류상영. 1996. “박정희정권의 산업화전략 선택과 국제 정치경제적 맥락.” 『한국정치학회보』. 30, 10: 151-179.   반길주. 2020. “동북아 국가의 한국에 대한 회색지대전략과 한국의 대응방안.” 『한국군사』. 7: 35, 69.   산업통상자원부. 2023. “첨단산업 글로벌 강국 도약을 위한 핵심광물 확보전략.” 2월 27일.   양재진. 2012.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 『동서연구』. 24, 3: 5-28.   이승욱. 2021. “한국의 FTA 전략과 지경학적 상상으로서 ‘경제영토.’” 이승주 책임편집. 『세계정치: 지경학의 기원과 21세기적 전환』. 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이승주. 2010. “FTA의 확산과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중층화.”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2, 1.   ______. 2017. “동아시아 지역경제질서의 다차원화: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작용.” 『한국과 국제정치』. 33, 1: 169-197.   ______. 2021.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와 미중 전략 경쟁: 복합 지경학의 부상.” 『정치정보연구』. 24, 3.   ______. 2022. “초불확실성 시대 한국의 경제안보전략.” 『J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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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2024-03-19조회 : 1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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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경제전쟁과 한국의 선택 시리즈] ⑧ 중국의 경제안보: 개념과 전략

I. 서론   경제적 효율 추구가 최우선이던 신자유주의를 지나면서 전세계적으로 경제안보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미국과의 전략 갈등 증대와 함께 중국 역시 새로운 안보관을 형성하고 경제 안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의와 이를 이끌어갈 영도기구를 개편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2년 제20차 당대회 보고를 통해 현재 세계의 변화, 시대의 변화, 그리고 역사의 변화는 이전에는 없던 유례없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정의했다(习近平 2022). 이러한 전세계적인 시대적 격변기(global zeitenwende)에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은 향후 글로벌 질서 변화의 향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여러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김상배 2022; 이승주 2019; Kim and Kim 2019 등). 그러나 미중 갈등의 주요 원인에 대한 미중 양국의 근본적인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개혁 개방 초기 중국에 대해 매우 친화적이었던 서구가 공세적 태도로 전환한 것에 대한 설명은 세력 균형 변화에 따른 필연적 변화로 미중 간 국력 격차가 좁혀지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냉전 시기 소련, 그리고 1980년대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도전국의 GDP가 미국의 60% 정도일 때 적극적으로 견제하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강대국 간 경쟁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중국 정치 연구자인 수잔 셔크는 미중 간 경쟁은 중국의 과잉확장(overreach)에 따른 역풍(backlash)이며, 중국의 과잉 확장은 경제, 사회통제, 외교정책 등과 같은 세 가지 전선(fronts)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Shirk 2023).   미중 간 국력 격차의 측면에서 보건, 중국의 과잉확장 측면에서 보건 2012년 시작된 시진핑 시기는 중국의 경제, 사회통제, 외교정책, 안보 측면에서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다. 이에 본 글은 II장에서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에서 핵심 안보가 어떻게 변화했고 당의 역할이 어떻게 강화되었는지 먼저 살펴본다. 이를 근거로 III장에서는 중국의 새로운 안보관인 총체적 국가 안보관 하에 중국이 경제 안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위한 영도기구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살펴본다. IV장에서는 시진핑 시기 중국의 경제 안보 상황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검토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대미국 전략을 살펴본다. V장에서는 위의 내용을 정리하고 한국에 주는 함의에 대해 살펴본다.   II. 시진핑 시기 핵심 안보와 당의 역할 강화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큰 변화라고 한다면 중국의 정치적 정당성의 근원이었던 경제 발전 보다 안보(安全) 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9월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는 점증하는 외부 위협에 직면하면서 중국 정부의 우선 순위가 두 자리 수 이상의 경제 발전보다는 안보와 자립(self-reliance)에 있다고 보도했다(White and Yu 2023). 최근 들어 중국 정부의 안보에 대한 강조는 언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연례적으로 하는 정부공작 보고에서도 확인된다. 최필수(2022)는 중국의 정부공작보고 및 주요 관련 문건들을 통해 어떤 키위드들이 강조되었는지 정리했다(아래 <표 1> 참고). 중국제조 2025의 핵심어였던 “제조강국”이라는 키워드는 2020년 정부업무보고부터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안보(安全), 산업망, 공급망 등의 어휘가 상호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표 1> 중국 주요 정책 문건에서 주요 강조 어휘의 사용 추이 출처: 최필수(2022)   그렇다면 중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안보는 어떤 안보를 의미하는 것일까? 베이츠 길에 의하면, 시진핑 시기 중국의 안보 및 외교 정책의 핵심 목표는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과 생존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Gill 2022). 중국 공산당의 생존과 정당성이라는 외교 정책의 핵심 목표는 전통적인 국제정치에서 개별 국가의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과는 매우 상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최고 정책결정자에게 있어 국가 간 경쟁이나 국력 극대화 등의 요인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공산당의 생존과 권력 강화가 보다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는 당의 생존이라는 당의 이익(party interest)이 국익은 물론 외교적 이익에 우선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외교 정책은 어떤 특징을 보일까? 우선 시진핑 집권 이전까지 당과 정의 역할 분담을 의미하던 당정분리(党政分开)는 당이 모든 것을 지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17년 공산당 당장(党章)에도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당, 정부, 군대, 민간, 학교,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당은 모든 것을 영도한다(“党政军民学,东西南北中,党是领导一切的”)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둘째, 2018년 시진핑 외교 사상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외교사상(习近平新时代中国特色社会主义外交思想)을 외교 지침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2020년에는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내에 시진핑외교사상연구센터(习近平外交思想研究中心)를 설립했다. 셋째, 2018년 공산당의 중국 국가에 대한 지도를 명시하기 위해 헌법에 공산당의 지도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고유한 특성임을 명시했다. 넷째, 당의 국무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예를 들어, 과거 국무원 직속 기관으로 국가공무원 재교육을 담당했던 국가행정학원(国家行政学院)이 2018년 공산당 간부 양성기관인 중앙당교(中央党校)로 편입되었다. 마지막으로, 시진핑 집권 이후 현재 정세를 백년이래 없던 대변화의 국면(百年未有之大变局, great changes not seen in a century)으로 정의하고, 대담하게 투쟁하고, 용감하게 승리할 것(敢于斗争, 敢于胜利; Dare to struggle, dare to win)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전투의 대오에서 당의 경제, 사회, 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의 통제와 조율은 강화되고 있다.   III. 경제안보의 중국식 정의와 영도기구   1. 총체적 국가안보관과 경제 안보   시진핑 총서기의 집권 이후 중국에서 경제안보(安全)에 대한 논의는 시진핑 시기의 국가안보관을 의미하는 총체적 국가안보관과 연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시진핑은 2014년 4월 중앙국가안전위원회 1차회의에서 처음으로 총체적 국가안보관의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후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에서 총체적 국가안보관을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기본 방침으로 정하고 당장에 삽입하였다. 이는 중국 공산당 역사상 국가 안보 이론이 당대회 보고에서 언급되고, 당의 지도 사상의 중요 내용으로 삽입된 첫 번째 사례이다.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에서 국가 안보 체계 및 역량의 현대화, 경제 안보를 중심으로 새로운 안보 상황에서 새로운 발전 상황에 대한 보장을 강조하는 등 그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다.   총체적 국가안보관은 전통 안보 영역뿐만 아니라 비전통, 신흥 안보 영역을 포함하여 총 16가지의 방향 [2] 을 제시하고 있다. 총체적 국가안보관은 5대 요소와 5대 관계로 귀결되는데, 5대 요소는 인민안보를 종지(宗旨)로, 정치안보를 근본으로, 경제안보를 기초로, 군사안보·문화안보·사회안보를 보장(保障)으로, 국제안보를 지주(支柱)로 중국 특색의 안보의 길을 걸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총체적 안보관을 실현하기 위해 5대 관계 [3] 역시 중시 된다.   총체적 안보관은 중국 특색의 안보 노선을 강조하면서 또한 다음 5항을 견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공산당의 안보업무에 대한 “절대적 영도”를 견지하고, 국가 이익을 최고로 견지하며, 인민 안보를 종지로 하여 공동안보를 견지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촉진을 견지한다. 그 중 “당의 절대적 영도”가 가장 중요하며 국가 안보의 근본적 정치적 원칙이다. 중앙국가안전위원회는 중국 공산당 예속 기구이며, 시진핑은 국가 안보 업무를 통일적으로 지도한다(유동원 2019).   결국 시진핑을 정점으로 당의 절대적 영도하에 경제 안보는 국가 안보의 전반적 이념을 확고히 한 총체적 안보의 기초로 간주되었다. 중국 중앙당교의 천위쉬에 등은 중국에서 경제 안보의 광의의 함의에 대해 다음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나라의 경제주권과 경제생명선을 확고히 틀어쥐고 자체의 경제체제와 발전전략, 천연자원이용과 주요경제를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활동을 수행할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경제발전이 국내외 요인에 의해 위협받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지속가능한 발전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강력한 경제적 경쟁력, 자원 및 에너지 안보 능력, 위기 관리 능력, 국제 경제 규칙 수립에 참여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陈宇学, 许彩慧 2023).   중국의 당지도부는 경제 안보를 총체적 국가안보관이라는 보다 큰 우산 아래, 서구 국가의 경제 안보 이념을 모방하지 않으면서 중국 특색의 경제 안보에 대한 이념을 구축하고자 한다. 총체적 국가안보관에서 경제안보는 전체 안보의 기초역할인 하부구조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 안보 역시 총체적 국가안보관에서 강조하듯이 안보 영역을 담당하는 당의 핵심 지위하에 중국 특색의 국가 안보 경로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반영하듯, 2021년부터 시작된 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은 전방위적인 경제 안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첫째, 14차 5개년 규획 기간 동안 산업 체인과 공급 체인의 탄력성을 강화하고 개선할 것을 제시했다. 이는 산업사슬과 공급사슬에 존재하는 단점을 보완하고 강력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핵심산업과 중요산업에서 보다 완전하고 효율적인 산업 및 공습 사슬을 만들어 국민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 둘째는 식량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식량안보법을 제정하며 곡물의 생산, 구매, 저장, 판매 체계와 중요 농산물의 공급 보장 메커니즘을 완비해야 한다. 셋째, 에너지 자원 안보를 강화하고 에너지 혁명을 촉진하며 에너지 생산, 공급, 저장 및 마케팅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넷째, 시스템적인 금융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금융위험 예방, 조기경보, 처분, 책임체계를 개선하며 전반적인 조정과 종합관리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포괄적이며 일관된 권한과 책임을 지닌 현대적인 금융 규제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卢委, 谢玉科 2023).   2. 영도기구   총체적 국가 안보관을 운영할 영도기구로 중국 공산당은 2013년 11월 18기 3중전회에서 “전면심화개혁과 관련하여 약간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중공중앙의 결정”을 통해 당중앙에 중국국가안전위원회 신설을 결정했다. 시진핑은 국가안보위원회 설립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人民网 2014).   국가안전위원회 성립의 목적은 바로 우리 국가안보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임무에 더욱 잘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집중되고 통일되며 높은 효율을 지닌 국가안보체제를 건립하여 국가안보 업무에 대한 영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허재철(2014)은 중앙국가안전위원회가 기존 국가 안보 관련 기구들과 지닌 차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첫째, 기존 국가 안보 관련 기구들에 비해 참여단위가 확대되었다. 기존의 국가안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국가안전공작영도소조(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대외 명칭)는 군사, 외교, 정보, 경제, 선전 부문 등 전통적인 국가 안보와 관련한 핵심 책임자만 참여했다. 그러나 중앙국가안전위원회에는 총체적 국가 안보관에서 강조한 16가지 방향의 모든 안보 관련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둘째, 기존 안보 관련 기구들에 비해 제도적으로 안정화되었다. 기존 안보 영역을 담당하던 영도소조를 보다 정규화, 상설화시켜 안보 컨트롤 타워 기구를 제도화했다. 셋째, 국가 핵심 영도자들의 직접 참여 및 영도로 기구의 권위가 상승되었다. 중앙국가안전위윈회는 출범부터 총서기와 총리가 각각 주석과 부주석을 맡는 방식으로 기구의 권위를 높였다. 일반적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한 명이 하나의 영도소조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으나, 중앙국가안전위원회는 주석과 다수의 부주석 모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3년 현재 중앙국가안전위원회는 시진핑 총서기가 주석을, 총리 리창(李强, 정치국 서열 2위), 자오러지(赵乐际, 정치국 서열 3위), 차이치(蔡奇, 정치국 서열 5위) 등이 부주석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보 문제가 점점 복잡해지고 관련 영역도 다양해지면서 안보 문제를 지휘(orchestration)할 수 있는 기구로 구성되었다.   IV. 시진핑 시기 중국의 경제 안보 상황에 대한 평가와 대미국 전략   1. 대내적, 대외적 경제 안보 상황에 대한 중국의 평가   그렇다면 시진핑 시기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경제 안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하고 있을까? 중앙당교의 천위쉬에 등(陈宇学, 许彩慧 2023)의 연구를 통해 중국 지도부의 경제 안보상화에 대한 평가를 추론해볼 수 있다. 그들은 중국이 처한 외부 및 내부 환경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선 현재 중국이 처한 외부 환경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중국 간의 경제 및 무역 경쟁 심화, 동남아 및 남아시아 등의 신흥 경제국의 추격, 일방주의 및 반세계화 물결, 그리고 안보 중심의 경쟁 본격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외부 환경 변화는 첫째, 서구 선진국과 중국의 전략적 딜레마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 다방면에 걸쳐 서구에 대해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다양한 산업군을 보유하고, 많은 산업 분야에서 규모 및 조율(配套)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으나, 산업의 가치사슬과 수요-공급의 가치사슬에서 통제 및 영향력이 서구 선진국에 비해 미약하다. 또한 시장, 하이테크, 고급 브랜드, 핵심부품, 고급 인재 등에 대한 외국의 의존 및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국제 질서와 규칙을 정할 권리 및 발언권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세계경제질서의 3대 축은 서방 국가들에 의해 구축되고 주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초국적 자본의 쌍방향적인 변동성에 취약하다. 총자본 흐름의 급격한 위축이나 증가는 중국의 자주혁신과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경제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신흥개발도상국의 도전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분업구조의 변동과정에서 동남아 및 남아시아의 신흥발전국이 후발자의 우위를 보이며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 30년 간 유지했던 세계의 공장이라는 전통적 지위는 후발국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예를 들면 2021년 중국과 아세안의 상품 교역액은 전년대비 27.5% 증가한 8,782억 달러 기록했다. 그 중 수입이 수출보다 빠르게 증가하여 중국의 대아세안 무역수지는 90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는 과거 중국이 독점적으로 담당했던 세계의 공장 역할의 상당 부분이 아세안 국가로 이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국제무역에서 일방주의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 역시 매우 중요한 외부 위협 요인이다. 세계무역질서가 다자주의에서 일방주의로 이동하고, 유럽과 미국은 탈중국화(去中国化)된 가치사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중국의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양자 또는 소다자 형태의 협정을 체결하여 중국에 대한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무역 관행을 만들고 있다. 반세계화 기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중국을 핵심으로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경제발전 경로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중국이 처한 내부 환경 변화 역시 경제 안보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경제 발전 모델의 전환 과정에서 오는 수많은 모순에 직면해 있고, 또한 과거에 축적된 모순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불안정성이 경제 및 사회적 취약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이 처한 첫 번째 내부 위협 요인은 중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현재 생산능력 과잉과 소비자 수요 부족이 공존하는 국내 수요 공급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또한 내수와 수출 수요 간 모순, 에너지 소모 방식에서 자원집약적 방식과 혁신 생산 방식의 지체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도시와 농촌의 이원화된 구조적 모순, 지역 간 경제 격차로 인한 모순, 산업 구조 모순으로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다양한 구조적 모순을 보이고 있다. 둘째, 국내 체제의 특성상 정부와 시장 관계의 균형 문제가 지속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 주기성(週期性) 문제 역시 중요한 국내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경기회복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생산능력 과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서의 공급은 부족하고, 필요치 않는 부분은 과잉 공급되는 수급 불일치가 순환적 불균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과잉생산 축소, 재고 축소, 부채 축소, 환경 규제 강화 등의 공급측 개혁 조치를 시행했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진민퇴(國進民退, 국유기업의 전면적 성장과 사영기업의 상대적 후퇴)”라는 현상이 발생하여, 사영기업의 부채부담과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 대(對)미국 전략   중국의 경제 안보 상황에 대한 대내, 대외적인 다양한 위협 요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위협 요인은 2018년 무역 및 통상 분쟁에서 본격화된 미중 전략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점증하고 있는 미중 전략 경쟁 상황에서 어떠한 대미 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중국 인민대학교 야오루쿤과 진찬롱 등은 미국의 대미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姚汝焜, 金灿荣 2023). 중국은 우선 미국과 전략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의 전략적 소통 속에서 상호 간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국의 기본적인 대미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주권과 영토 등과 같은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어떠한 위협에도 강력하게 투쟁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중국의 구체적인 대미국 전략은 그 외교적 실천에서 다음 네 가지로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첫째, 미중 양국 간의 차이가 필연적으로 미중 갈등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3월 당시 리커창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미중 양국의 이견은 불가피하지만, 협력이 주류가 되어야하는데, 이는 세계 평화와 발전이 협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新华社 2022a). 또한 2022년 당시 외교부장 왕이는 뉴욕에서, 중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체제는 개별 국가의 국민의 선택에 따른 것이며, 중국과 미국은 서로를 대체할 수 없고 서로를 패배시킬 수 없다고 언급했다(新华社 2022b). 게다가 2022년 11월 14일 발리에서 시진핑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을 때, 획일성을 강요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거나 심지어 전복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미중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미중 관계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강조했다(新华社 2022c).   둘째, 중국은 미중 양국간의 차이점 속에 공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현존하는 국제질서를 변경하거나 미국의 국제적 지위에 도전할 의사가 없는 현상 유지 국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스스로의 현상유지 의도를 강조하면서 점증하는 미중 간 갈등의 수위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미국의 냉전적 사고와 전략에 기인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22년 당시 외교부장이었던 왕이는 “개별적인 대국(个别大国)”이라는 방식으로 미국을 우회하여 지칭하면서,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냉전적 사고방식을 다시 이용하고, 진영 간 갈등을 조성해 혼란과 분열을 더욱 가중시켜, 이미 문제가 만연한 세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新华社 2022b).   이러한 미국에 대한 비판을 정리한 “미국의 패권·패도·집단 따돌림과 그 피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2023년 2월에 신화사가 보도했다(新华社 2023). 중국의 관영언론들이 이 보고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저자가 특정되지 않았었는데 중국 학자들조차 외교부 보고서라고 특정하고 있다. 위 보고서는 미국이 정치, 군사, 경제, 금융, 기술, 문화 분야에서 패권을 남용하고 있고, 미국의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며 퇴행적인 패권주의적 관행이 세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모든 인민들의 안녕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V. 결론 및 한국에 주는 함의   중국은 현정세를 과거 100년 이래 없었던 중요한 시기로 보고, 시진핑을 핵심(以习近平为核心)으로 당의 전면적인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면적인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시진핑 외교사상, 전면적 국가안보관 등에서 핵심 목표는 당의 핵심인 시진핑 주석 및 당의 생존과 번영에 있다. 중국의 경제 안보의 핵심 목표 역시 시진핑 및 당의 생존과 번영이라 핵심 목표 실현을 위한 물질적 기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경제 안보 목표는 한국에 다음 세 가지 함의를 준다.   첫째, 시진핑 시기 중국의 중앙 집중화된 경제 안보 정책들은 첨단 과학기술부터 핵심 광물 수급 영역까지 한국이 중국과 전면적인 경쟁 관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시진핑 주석은 경제성장의 활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학 기술 혁명은 경제 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하며, 인공지능, 양자 정보, DNA 편집, 신재료, 신에너지 등과 같은 첨단 기술들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과학기술에서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习近平 2021). 과학기술에 대한 강조는 과거보다 중앙 집권화 된 방식의 혁신 드라이브를 만들어 내고 있고, 이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과 전면적 경쟁을 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중국은 아프리카 및 브릭스(Brazil, Russia, India, China: BRICS)와의 남남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핵심 광물 가치사슬에서 지닌 높은 장악력과 남남협력의 결과로 한국 기업들의 핵심광물 확보에서 중국과의 경합이 강화될 전망이다.   두 번째, 미중 전략 경쟁의 2차효과(second-order effect)로 한중 간에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가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비미국화된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중국 반도체 공급망에 한국 기업이 내포(embedded)되는 것을 유도하고(김용신 2023),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를 우회할 목적으로 한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이 한국 배터리 공급망에 내포(embedded)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의 시장에 대해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새로운 상황에서는 시장뿐만 아니라 자원, 기술 등에도 의존하는 복합 의존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많은 국가들과 상호의존의 노드와 정도를 심화시키고, 이를 유사시에 무기화시키려 하고 있다. 결국 한국은 새롭게 등장하는 한중간 상호 의존 관계에 대해 선제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주변국 외교와 남남 협력 강화를 통해 미국을 포위하고자 한다. 이는 마오쩌둥(毛泽东)이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을 차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의 일대일 대결보다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지지세력을 확대하여, 개발도상국으로 서구 선진국을 포위하고자 한다. 중국은 이런 맥락에서 중국지혜 혹은 중국 방안을 제시하는 데, 이는 서구화가 현대화의 유일한 경로가 아님을 주장한다. 중국은 주변국 외교를 통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데, 이를 위한 대(對)한국 외교 방안에 대해서도 한국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    참고 문헌   김상배. 2022.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기술·안보·권력의 복합지정학』. 파주: 한울아카데미.   김용신. 2023. “미·중 반도체 전쟁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과 한국의 대응.” 『인차이나브리프』 Vol. 426. https://hanzhong.ii.re.kr/inchinabrief/view.do?m=01&boardID=102&boardSeq=95289&lev=0&searchType=null&statusYN=W&page=1&s=hanzhong   이승주. 2019. “미중 무역 전쟁: 트럼프 행정부의 다차원적 복합 게임.” 『국제·지역연구』 28(4): 1-34.   _____. 2022. “기술과 국제정치: 기술 패권경쟁시대의 한국의 전략.” 『한국과 국제정치』 38(1): 227-256.   최필수. 2022. “14.5 계획 이후 중국의 경제안보형 산업정책의 양상 전망." 『중국사회과학논총』 4.   Gill, Bate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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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4. https://www.ft.com/content/abe34870-c388-4ba6-b9df-b96154e8c58f   人民网. 2014. “习近平:坚持总体国家安全观走中国特色国家安全道路.” 04月16日. http://cpc.people.com.cn/n/2014/0416/c64094-24900492.html   新华社. 2022a. 李克强总理出席记者会并回答中外记者提问. https://www.gov.cn/premier/2022-03/11/content_5678618.htm#allContent   ______. 2022b. 王毅谈中国自身发展和对美政策的确定性. https://www.gov.cn/guowuyuan/2022-09/20/content_5710784.htm   ______. 2022c. 习近平同美国总统拜登在巴厘岛举行会晤. https://www.gov.cn/xinwen/2022-11/14/content_5726985.htm   习近平. 2021. “努力成为世界主要科学中心和创新高地.” 求是 (6):5.   ______. 2022. “习近平:高举中国特色社会主义伟大旗帜 为全面建设社会主义现代化国家而团结奋斗   ——在中国共产党第二十次全国代表大会上的报告.” https://www.gov.cn/xinwen/2022-10/25/content_5721685.htm   姚汝焜, 金灿荣. 2023. “百年大变局下美国对华战略竞争逻辑和实践.” 『世界经济与政治论坛』. 2: 41-70.   卢委, 谢玉科. 2023. “中国共产党经济安全思想的历史演进、基本经验与现实启示.” 『中国军转民』. 17: 26-29.   陈宇学, 许彩慧. 2023.“ 总体国家安全观视角下中国经济安全探讨.” 『上海经济研究』 5: 66-77.     [1] 본 글에서 중국어의 안전(安全)은 한국어의 안보(安保)로 번역한다. 다만 중국 기관 등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의 경우 안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시진핑 시기 이후 안보관을 나타내는 “총체적 국가안전관”은 “총체적 국가안보관”으로, 고유명사인 중앙국가안전위원회는 한자 독음 그대로 표기하였다.   [2] 정치, 군사, 국토, 경제, 금융, 문화, 사회, 과학기술, 사이버, 식량, 생태, 자원, 핵, 해외 이익, 우주, 심해, 극지, 생물, 인공지능, 데이터   [3] 5대 관계는 다음과 같다: ① 발전문제와 안보문제 동시 고려, ② 외부안보와 내부안보 동시 중시, ③ 국토안보와 국민안보 동시 중시, ④ 전통안보와 비전통 안보 동시 중시, ⑤ 자신의 안보와 공동의 안보 동시 중시     ■ 김용신_인하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주연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5) | jylee@eai.or.kr  

김용신 2024-03-19조회 : 1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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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경제전쟁과 한국의 선택 시리즈] ⑦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안보 정책

I.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과 조치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경제안보 관련 정책은 크게 공급망 재편 정책, 산업 보조금 정책과 수출 통제 정책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존에는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수입규제 조치와 특정한 중국 통신장비 기업으로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수출통제 및 외국인투자 규제 조치 등 일방주의적인 성격의 정책수단이 주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수호하겠다는 국내정치적 목적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며 매우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적인 조치를 도입해왔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는 글로벌 경제통상 및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는 경쟁국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의 높은 대중국 수입의존도,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 중국의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에서의 경제적 영향력 등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국가핵심산업 분야에서의 글로벌 경쟁력 회복 및 제고, 즉 경제안보의 강화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주요국에 대한 미국의 제조업 수입의존도를 비교해보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아래 <그림 1> 참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필수의약품 및 장비의 안정적 공급 등 보건안보 측면에서도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문제로 드러났다. 반도체 분야에서의 글로벌 공급망의 경우, 반도체 생산공정 전반에 투입되는 소재와 재료의 다양성으로 인해 구조적인 공급의 취약성 문제가 있으며, 특히 아시아 지역에 대한 반도체 생산 및 재료 공급의 의존도 집중으로 인하여 자연재해 등 자연발생적인 위기 뿐 아니라 지정학적 요인에 의한 인위적인 규제로 인한 공급망 위기에 모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림 1> 미국의 대중국 제조업 공급망 의존도(단위: %) 출처: 한국무역협회 2020   1. 재료의 공급망 재편 정책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직후 2021년 2월 24일 서명한 ‘공급망 안정화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107)’을 통해 공식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반도체 제조 및 패키징, 고성능 배터리(이차전지), 전략적 광물자원 및 의약품·의약재료 등 4개 핵심품목에 대한 공급망 현황 검토 및 공급망 리스크 식별, 대응방안 및 정책권고 제시 등을 주문하였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공급망 관련하여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반도체 공급 및 소비 분야 모두에서의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 문제였다. 특히 반도체 생산공정 전반에 투입되는 소재와 부품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공급망 교란이 생기게 될 경우 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의 취약성과 중국 뿐 아니라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대한 집중된 의존으로 인한 반도체 생산의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미국의 반도체 제조장비 및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공급업체들은 최대 반도체 소비시장인 중국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반도체 생산 생태계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현실로 미국 정부의 중국 견제조치로 인하여 미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중국 기업과의 합작투자 등을 통해 반도체 기술 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군사적 무기 및 국방 시스템에 사용되고 있는 구형 반도체와 같은 경우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부족하여 투자 중단 등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공급 부족 문제가 초래되었으며,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투자 결정도 민간기업의 수익성 판단기준에 따라 이루어져 미국내 공급 부족 및 생산역량의 부재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의 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응방안으로서 미국 상무부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보조금 지원 확대 및 국내외 기업에 의한 민간 투자의 증진을 통한 미국 반도체 제조산업의 역량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이행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확보하여 반도체 생산공정 전반의 미국내 구축을 통해 생산시설 확충, 새로운 공정 및 장비 개발을 위한 R&D 지원, 반도체 주력사용 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한 반도체 수요 확대 및 민간 투자 유도를 주문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반도체 산업인력의 확보를 위한 고숙련 기술훈련 지원, 동맹국 및 우방국의 미국내 파운드리 및 소재의 생산시설 투자 유도 등 공급망 협력도 제안하고 있다. 이외에도 첨단 반도체 기술의 유출 방지를 위하여 우려대상국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의 효과 증진 및 이를 위한 다자적 수출통제 조치의 부과를 제안하였으며, 국가안보 관련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한 외국인투자 심사 규제를 지속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한 정책은 주요 전략산업의 제조 역량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 보조금 정책으로 연계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직접적인 보조금 공여 뿐 아니라 세금면제, 대출지원 및 보증 등 다양한 재정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외국 기업의 미국내 현지투자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미국 제조업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산 제품 구매요건(Buy America)’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추구하고 있다.   2. 산업 보조금 정책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인 산업 보조금 정책인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인 반도체 및 전기차 산업의 대대적 육성을 위한 입법화 조치들이다. 2022년 8월 제정 및 시행된 반도체과학법은 미국의 핵심 미래기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2,80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 중 527억 달러는 반도체 제조역량 강화 및 연구개발(R&D) 지원에 책정되어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도 2022년 8월 제정과 함께 즉시 발효되었으며, 총 7,730억 달러를 친환경경제로의 전환 및 인플레이션 감축 효과의 도모를 위해 투입할 계획이며 이 중 4,330억 달러는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 청정연료 자동차 산업 지원 및 기후변화 대응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편, 이들 산업 보조금은 다양한 규제 조치와 함께 도입되어 있어 미국의 핵심기술 유출 방지 및 우려대상국으로의 보조금 혜택 이전을 차단하고 있다. 반도체과학법은 대(對)중국 투자제한 요건인 ‘가드레일’ 조항을 삽입하여 보조금 수혜기업에 대하여 중국내 반도체 제조업의 확장을 위한 중대한 거래에 대하여 상한 기준을 두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보조금의 회수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내 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한 신규시설 건립 시 기존 생산능력의 5% 이상을 초과할 수 없으며 10년간 1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기존 생산시설을 통한 전통(구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경우에는 기존 생산능력의 10% 이상을 증대할 수 없으며 중국기업과의 공동 R&D 및 기술 라이센싱도 금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전기차를 신규 구입하는 소비자에 대한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주고 있는데, 전기차의 10%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7,500 달러의 보조금 지급의 조건으로 세 가지 요건의 충족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해 필요한 핵심광물의 채굴 및 가공이 일정 비율 이상 우려대상국(foreign entities of concern)에서 이루어질 경우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며, 우려대상국에서 생산 및 조립된 배터리 소재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할 경우에도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완성된 전기차가 북미 지역(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되는 경우에 한정하여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원천적인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보조금 지원과 함께 적용되고 있는 엄격한 지급 요건은 결국 외국기업에 대한 불리한 적용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매우 차별적인 조치로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전기차 보조금의 지급요건으로서 적용되고 있는 ‘국내산 소재 구매요건’은 수입대체 보조금의 성격을 갖고 있어 국제통상법적으로 쟁점이 될 수 있는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3. 수출 통제 정책   미국 정부는 우려대상국에 대한 미국산 첨단기술의 유출 차단을 위하여 2022년 10월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 EAR)’을 개정하여 반도체 장비에 대한 대(對)중국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 대상 목록을 개정하여 고성능 컴퓨터 칩과 이를 포함하는 컴퓨터, 전자조립체 및 구성품, 소프트웨어와 기술, 반도체 제조와 관련된 특정 품목 및 이와 관련된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통제대상으로 신설하였다. 또한 기존의 ‘엔티티 리스트 해외직접생산품규칙(Entity List 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을 확대하여 ‘고성능 컴퓨팅 FDPR’과 ‘슈퍼컴퓨터 FDPR’을 신설하여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허가 취득 요건을 부과하여 중국으로의 우회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국 내에 위치한 반도체 제조시설에서의 집적회로(IC) 개발 및 생산에 사용하는 최종용도(end-use)에 대하여 통제를 신설하고, 기업의 실태 조사시 외국정부의 협조가 부족하여 최종용도에 대한 확인이 적시에 완료되지 않을 경우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등재하도록 하여 우려거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였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의 제정을 통해 수출통제 정책에 대한 행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수출통제 대상 기술과 품목을 확대 및 관리를 더욱 엄격화한 바 있다. 대통령에게 수출통제 관련 권한 일체를 영구적으로 위임하여 수출통제 정책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신흥·기반 기술(emerging and foundational technologies: EFT)’ 분야로 통제대상을 확대하고 수출허가를 더욱 엄격하게 운영하도록 하였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국내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수출통제 조치를 자국 기업 뿐 아니라 외국 기업에게도 적용하기 위하여 역외적용(extraterritoriality) 규정을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 EAR)에 명시되어 있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에 따라 외국산 제품이라도 미국의 기술, 소프트웨어, 장비 및 소재를 사용하거나 이러한 시설을 통해 생산한 경우 미국 당국의 수출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 수출통제 규정의 역외적용을 받게 되는 경우는 ▲국가안보 목적(National Security FDPR), ▲우주, 위성 관련 품목(9x515 FDPR), ▲국방무기 관련 품목(600 series FDPR), ▲중국 화웨이 대상(Entity List FDPR), ▲러시아, 벨라루스 대상(Russia/Belarus FDPR) 등 5가지 경우에 해당된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는 기존의 수출통제 법을 개정하면서 새로 도입하게 되는 수출통제 조치에 대한 다자적 적용(multilateral application)을 실질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수출통제의 효과를 제고하고 미국 기업에게 수출통제로 인한 상업적 피해가 일방적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수출통제개혁법(ECRA)’ 제1758조에 의하면 미국이 새로 도입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3년 이내에 국제수출통제체제의 통제 목록으로 신규 도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미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수출통제 조치가 미국의 국가안보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II. EU의 경제안보 정책과 조치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 6월 ‘유럽 경제안보전략(European Economic Security Strategy)’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는데, 이는 미국 등 주요국의 경제안보전략 추진에 대응하고 EU 전체 차원의 경제안보 위험요인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 및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올해 3월 ‘디리스킹(de-risking)’ 중심의 대(對)중국 정책기조의 방향을 발표한 이후 EU 차원의 대중국 정책 방향과 정책수단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평가되며, 향후 EU 회원국들 간 논의 과정을 거쳐 최종 입법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EU의 경제안보 전략은 EU가 앞서 표방했던 ‘개방적·전략적 자율성(Open Strategic Autonomy)’ 전략과 일맥상통하면서도 경제안보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오늘날의 지정학적 갈등과 기술발전의 가속화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이와 동시에 역내 지역에서의 경제적 개방성과 역동성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역내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특정국에 대한 높은 경제의존도를 축소하여 EU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위기의 발생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resilience)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EU 단일시장으로서 기술과 혁신 능력 및 산업역량의 향상을 통한 역내 경쟁력의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공통의 안보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이를 위해 기존의 무역협정 개선, 국제규범과 제도의 기능 강화,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투자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EU의 경제안보 전략은 역내 경제안보 위험요인(risk)을 사전에 파악 및 분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정책수단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정책수단의 도입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 위험요인을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에너지 안보 등 공급망 복원력 관련 위험, ▲핵심 인프라에 대한 물리적 위험 및 사이버 안보 관련 위험, ▲기술안보 및 기술유출 관련 위험, ▲경제적 의존성의 무기화 또는 경제적 강압 관련 위험 등이다. 또한 EU는 기본적으로 경제안보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정책적 수단은 목적에 비례하고 대상이 한정되어야 한다는 ‘비례성(proportionality)’과 ‘정밀성(precision)’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경제안보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3가지 우선순위로서 ▲촉진(promotion), ▲보호(protection), ▲협력(partnership)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EU 단일시장 강화, 경제적 지원, 기술투자 및 산업기반 육성을 통해 EU의 경쟁력을 촉진하고자 하며, 특히 첨단반도체,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탄소중립산업, 핵심원자재 등 전략적 분야에서의 기술연구 및 산업기반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의존성의 무기화 및 통상위협에 대한 대응조치, 역외보조금 규제, 외국인직접투자 심사,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의 EU 차원의 통합 및 강화, 해외투자 규제의 도입 검토 등 EU 경제안보를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이외에도 새로운 무역협정의 추진,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글로벌 규칙에 기반한 경제질서 및 다자기구의 강화 등 EU의 경제안보 강화를 위해 다양한 파트너국과 협력을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1. 공급망 재편 정책   EU 경제안보 전략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입법화 작업도 공급망 재편 정책, 산업 보조금 정책 및 수출통제·투자규제 정책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공급망 재편 정책의 대표적인 입법 조치로서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inerals Act: CRMA)’을 꼽을 수 있으며, 이는 2023년 3월 EU 집행위원회가 핵심원자재에 대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EU의 접근성 보장을 위해 발표한 법안이다. 특히 EU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 미-중 전략적 경쟁과 수출통제 조치의 확산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자원 민족주의 심화 등에 따른 공급망 위기의 심화 속에서 EU 역내에서의 핵심 원자재에 대한 공급 안정성의 강화 필요성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원자재법(CRMA)은 핵심 및 전략 원자재를 지정하고 2030년까지 원자재 가치사슬의 각 단계에서의 탄력성을 강화하여 EU 역내에서의 원자재 확보역량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핵심 원자재에 대한 EU 역내에서의 생산, 정제·가공, 재활용 역량을 향상하기 위하여 공급망 관리 강화, ‘전략 프로젝트’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고자 하고 있다. ‘전략 프로젝트’를 지정하여 행정 및 재정적 지원을 우선적으로 적용받도록 하고 있는데, EU 각 회원국에서는 ‘전략 프로젝트’에 대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행정절차 및 자금조달 관련 정보 제공 등의 행정적 지원을 강화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EU의 전략원자재 공급 안보에 기여하거나, 합리적인 기간 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 및 예상 생산량의 추정이 가능하거나, 환경영향 최소화 및 사회적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EU는 핵심원자재 공급 관련 제3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쉽을 구축하여 특정 원자재의 단일국으로부터의 수입 집중 문제를 해소하고 공급 리스크를 관리하고자 하고 있다. 특히 전략적 파트너쉽을 활용하여 핵심원자재 공급망의 단계별 투자를 확대하고 제3국과의 협력 강화를 추구하고자 하며, 유사입장국들과 ‘핵심원자재클럽(Critical Raw Materials Club)’을 형성하여 핵심원자재 공급망 협력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을 개선하고 공급협력 지역의 인권 강화, 분쟁 해결 및 지역 안정도 함께 도모하고 있다.   이외에도 EU의 대표적인 공급망 재편 정책인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Directive on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초안이 2022년 2월 발표되고 2024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인데, 이에 따라 대상기업은 EU 공급망 참여시 인권 및 환경과 관련된 실사(due diligence)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2024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실사 지침은 EU에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고용 및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역내외 대·중소기업 모두에 적용되므로 EU 지역의 공급망 관련 교역 및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이 역외기업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대상기업의 자회사를 포함하여 해당기업의 가치사슬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확립된 비즈니스 관계(established business relationship)’를 체결하고 있는 기업에 대하여 실사 의무가 부과될 예정이다. 또한 대상기업은 공급망의 모든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식별, 예방, 완화 또는 대응하도록 하고 있으며, 해당 기업과 자회사의 활동으로 인한 영향을 방지, 완화 및 개선하기 위한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이행해야 한다.     2. 산업 보조금 정책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 3월 기존의 ‘한시적 위기 프레임워크(Temporary Crisis Framework: TCF)’를 개정하여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emporary Crisis and Transition Framework, TCTF)’를 채택하며 EU 역내에서의 친환경 산업에 대한 국가보조금(state aid) 규제를 추가적으로 완화하는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당초 TCF는 2023년 12월 말 종료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고 EU ‘그린딜 산업계획’의 목표 달성을 위해 탄소중립산업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보조금의 지급을 2025년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EU는 그동안 회원국들의 무분별한 보조금 지원을 방지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을 보장하기 위해 EU 회원국의 국가보조금 지급을 매우 엄격하게 규제하여 왔다. 그러나 이번 EU의 한시적 보조금 규제 완화(TCTF) 조치는 지원 대상별 보조금 지원 규제를 완화하고 보조금 지원대상 확대 및 보조금 지원한도의 확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터빈, 히트펌프, 전기분해장치, 탄소 포집·활용·저장 관련 제조기업 및 모든 재생에너지원 관련 산업으로 보조금 지원대상이 확대되었다. 이외에도 EU 집행위원회는 TCTF의 신설과 함께 ‘일반적용 면제규정(General Block Exemption Regulation: GBER)’을 개정하여 친환경 산업 관련 보조금 지급 절차를 간소화하였다. 특히 면제적용 대상을 친환경 분야(재생에너지, 탈탄소사업, 친환경 이동성, 생물다양성 강화, 재생수소 개발, 에너지효율 향상 등 분야)로 확대하여 EU 회원국의 탄소중립경제 전환에 필요한 핵심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보다 유연하게 지급하도록 하였다.   무엇보다 EU는 탄소중립 기술의 안보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해 2023년 2월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발표하였는데,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 3월 역내 탄소중립 기술의 제조역량 확대를 위한 ‘탄소중립산업법(Net Zero Industry Act: NZIA)’을 발표한 바 있다. 탄소중립산업법(NZIA)은 2030년까지 ‘전략적 탄소중립기술’의 역내 제조능력을 역내 수요의 4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규제의 간소화 및 절차의 신속화, 인력과 연구개발에 대한 재정지원 강화가 핵심 내용이다. 또한 이를 위하여 ‘8대 전략적 탄소중립 기술’을 선정하고 8대 기술을 사용하는 주요 프로젝트를 ‘기후중립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하여 행정 및 인허가 절차 간소화, 행정처리 기한 단축,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규제완화, 보조금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여 집중적인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3. 수출통제 및 투자규제 정책   EU는 경제안보 전략을 통해 특정국으로의 이중용도(dual-use) 기술의 이전을 통한 군사적 용도로의 활용을 견제하고자 한다. 이의 일환으로 EU는 기존의 무역구제(수입규제) 조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역외보조금 규정(Foreign Subsidies Regulation)’을 통해 EU 단일시장 내 공정한 경쟁의 환경을 조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강압 대응조치(Anti-coercion Instrument)’를 도입하여 상대국이 무역·투자에 대한 규제를 통해 EU의 정책변화를 유도하는 행위를 차단하고자 하며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 대응을 모색하고자 한다.   EU는 군사적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 중에서도 민감성이 높은 신흥기술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의 강화를 위하여 2021년 개정된 ‘이중용도 수출통제 규정(EU Regulation on dual-use export controls)’을 통해 EU 차원의 통합적이며 조율된 수출통제 제도로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각 회원국의 기술 분야별 위험평가(risk assessment)를 바탕으로 2023년 말까지 EU 차원의 수출통제 제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심사 규제를 통해 외국인투자 거래에 대한 국가안보 위협 여부를 검토하고 제3국의 기관 또는 제3국의 통제를 받는 EU 기관들이 역내에서의 기술 개발 및 혁신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EU 회원국들의 5G 통신네트워크 구축사업 진행시 위험도가 높은 공급자를 배제하도록 하고, 통신 및 에너지 인프라의 사이버 안보 강화를 위한 ‘사이버탄력성법(Cyber Resilience Act)’도 입안하고 있다. 반면, 해외투자(outbound investment)와 관련된 안보 리스크 대응을 위해서는 EU 차원의 전문가 전담그룹을 수립하여 2023년 말까지 EU 집행위원회에서 제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U는 또한 ‘공정한 경쟁’ 환경의 조성을 명분으로 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게 지급하는 ‘역외보조금’에 대하여 규제하는 ‘역외보조금 규정(Foreign Subsidies Regulation)’을 도입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2021년 5월 EU 역내시장의 왜곡을 초래하는 외국의 보조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제안된 규정은 2023년 7월 이후 시행되고 있다. 특히 EU 역외국에 의해 지급되는 보조금으로 인해 EU 역내 시장의 왜곡이 발생하여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이 침해되고 있으며, 특히 민간기업의 인수 및 공공조달 입찰시 제3국의 보조금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역외 기업은 EU 역내 기업에 비해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역외보조금 규정은 EU ‘역내시장의 왜곡(distortions on the internal market)’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이는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경쟁적 지위가 향상되어 역내 시장에서의 경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잠재적 또는 실질적으로 초래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용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역내 시장에 대한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 구제조치(trade remedies)를 활용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대하여 시장 왜곡 상황을 시정하도록 하기 위해 보조금 원금과 적절한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보조금 지급 당국에게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     III. 평가 및 시사점   미국과 EU 등 주요국이 도입하고 있는 경제안보 관련 정책과 조치들은 공통적으로 오늘날 심화되는 지정학적 경쟁 위기를 비롯한 각종 공급망, 보건, 에너지, 기술 안보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국 또는 역내의 경쟁력을 보호하고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에 대한 미국과 EU의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으로의 기조 변화도 과도한 견제와 규제로 인한 상업적 피해와 국제경제 위기의 심화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의 결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주요국은 자국 기업의 경제적 활동과 상업적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수출입 관련 규제 조치는 최대한 완화하거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집중적으로 적용하는 대신, 불공정한 경쟁 환경에서의 불리한 입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산업 보조금 정책과 이를 도입하기 위한 보조금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평가된다.   EU의 경제안보 전략은 특정국에 과도하게 집중된 의존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공급 교란의 위기 및 상호의존의 ‘무기화(weaponization)’에 대비하여 공급망의 탄력성 강화와 수출통제 등의 정책수단을 통해 기술유출의 차단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과 동조화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미국보다 신중한 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EU는 기본적으로 대내외적 위험요인에 비례하는 대응조치를 취하는 ‘리스크 기반 접근방식(risk-based approach)’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격적인 수출통제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미국과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산업 보조금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과 달리, EU는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한 산업정책보다는 기술유출의 차단 및 경제 인프라의 보호 등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는 달리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적 적용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EU의 ‘지속가능성 기업 실사지침’ 등을 통해 EU 역내 시장의 진입 및 공급망 참여의 조건으로 노동 및 환경 기준의 강화를 채택하며 교역상대국이 도입하고 있는 환경 기준에 대하여 EU는 적합성 내지 동등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EU 차원에서 도입하고 있는 국내법 및 국내기준을 EU 역내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 기업에게 진입 요건으로 적용하는 ‘역외적용(extraterritoriality)’은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교역상대국의 역내 시장 진출에 대한 보호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EU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경제적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목적의 역외보조금 규정도 결국 EU 역내에서 활동하는 역외 기업에 대하여 상당한 규제 부담으로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궁극적으로 외국 정부의 보조금 관행을 제약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업 인수의 경우, 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해당 거래에 대하여 EU 당국에 통보를 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EU 및 회원국 별 합병 통제 관련 규정, 각 국의 외국인투자법 등 다양한 법적 근거에 기반하여 복수의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역외보조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EU 당국에게 ‘직권조사(ex officio review)’ 권한이 부과되며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공공조달 입찰에 대한 사전통보와 승인 의무는 역외 기업에게 상당한 규제의 부담을 지우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EU는 다자통상체제의 틀 내에서 참여국 간 ‘공정한 경쟁의 장’의 구축을 강조하며 국제무역질서 속에서의 경쟁력 유지 전략을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자통상체제를 통한 무역자유화 확대에 대하여 가장 적극적인 지지 입장이었던 EU의 경제안보 전략의 발표는 기존 국제통상질서와 규범의 변화가 불가피함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유사하게 EU의 경제안보 전략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입법화 작업도 공급망 재편, 산업 보조금, 수출통제 및 규제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통상정책의 영역과 중첩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존 다자통상규범의 원칙과 내용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EU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정책 기조 하에 새로운 국제통상질서의 형성을 주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EU는 통상정책과 연계하여 노동과 환경 등 ‘지속가능성’ 이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슈는 각국의 고유한 사회경제체제 및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 등으로 양자 및 다자 차원에서의 규범화 노력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분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은 취약한 환경 및 노동 관련 규제 등으로 인하여 국제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및 해외투자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방안으로서 주요국은 ‘공정한 경쟁’ 논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주요국이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 논리는 단순히 교역 관계에서의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통상정책의 수단을 넘어 보다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차원의 정책수단인 것으로 해석된다. ■   참고 문헌   한국무역협회. 2020. “코로나 공존 시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방안 – 미국, 일본의 지원 현황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및 정책제안.” 『IIT Trade Focus』. 2020년 45호.     ■ 이효영_국립외교원 부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주연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5) | jylee@eai.or.kr  

이효영 2024-03-19조회 : 10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