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북한이 내세우는 신냉전 질서 도래 주장에 대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의 입장을 분석하는 논평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필진들은 향후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될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각국의 대한반도 정책 전개 방향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스페셜리포트
[트럼프 2기 북핵문제와 한국의 핵옵션] ④ 인도-파키스탄 핵대결 사례가 한국의 핵무장 논쟁에 던지는 교훈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서론   최근 국제사회는 팬더믹, 기후변화, 사이버, 경제안보 등의 신흥안보 위협에 더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최근 인도-파키스탄 충돌, 그 외에 에티오피아, 사헬, 미얀마 지역의 분쟁 등 전통안보와 신흥안보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복합 다중위기(complex multiple crises)의 시대에 놓여 있다. 대만해협, 남중국해, 한반도 등 위기가 상존하는 잠재적 분쟁 지역도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다중 위협 중에서도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핵무기가 다시금 국제관계 전면에 엄청난 잠재적 위협으로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다. 핵무기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 간 사활적 경쟁으로 인해 항상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3차대전의 공포에 전세계를 떨게 했었다. 탈냉전기 상당한 숫자의 핵감축이 이뤄지며 핵무기의 위험성은 과거 냉전 시기의 불편한 추억으로 치부되었고 민족분쟁, 테러, 기후변화 등 신흥안보위협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인도-파키스탄 간 핵경쟁과 북한, 이란 같은 국가의 핵개발 노력 등 제2핵시대(Second Nuclear Age) 기간 핵무기의 잠재적 위협을 완전히 거둬내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는 전 기간 미-소 간 핵대결로 점철된 제1핵시대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핵무기가 국제안보의 핵심 담론으로 다시금 등장하였다. 가장 큰 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핵무기를 등에 업은 러시아의 무력침공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상황이 불리해질 때마다 푸틴 등 러시아 고위관리들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위협함으로써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1964년 핵실험 이후 비교적 온건한 핵 독트린을 고수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량의 핵무기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중국이 최근 핵무기의 급속한 양질적 성장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미국이 러시아뿐만 아닌 두 개의 핵강대국을 상대하여 억지해야 한다는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되었고 강대국 간 핵개발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은 트럼프 2기가 시작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시아적인 러-우 전쟁 휴전 추진에 큰 충격을 받았고 미국이 수십년 동안 제공해 왔던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 기반의 안보전략에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기술력과 경제력을 갖춘 많은 국가들이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표출하게 되었는데(Panda, Narang, and Vaddi 2025),[1]최근 항상 자체 핵무장 여론이 높게 나오는 한국이 가장 유력한 차기 핵보유 국가로 거론된다. 또한 AI, 우주, 양자 컴퓨터 등 첨단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군사 분야에도 혁명적인 발전을 야기했지만 지휘통제의 어려움, 오인(misperception), 급속한 확전 가능성 등 부정적인 측면도 증대시켰다. 바야흐로 현 국제사회는 국가안보에서 핵무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핵무기의 수평적, 수직적 확산이 재개되고 핵무기 보유 국가 간의 충돌 가능성으로 인한 핵사용 가능성도 예전보다 급격히 늘어난 제3의 핵시대(Third Nuclear Age)에 돌입한 것이다(Panda 2025; Wolfsthal, Kristensen and Korda 2025; Rose 2025).   한편 많은 전문가들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우려하던 남아시아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다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였다. 2025년 4월 인도령 카슈미르의 파할감(Pahalgam)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하자 인도의 모디 정부는 그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며 5월 7일 파키스탄을 공격하였고 테러단체와의 연관을 적극 부인하던 파키스탄이 이에 반격하여 5월 10일 휴전이 성사될 때까지 짧지만 강렬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이 충돌은 테러 공격 후 인도의 반격과 파키스탄의 재반격이라는 익숙한 패턴을 보여주면서도 사용한 무기체계의 종류, 군사타깃 목표의 위치 등 이전과는 더욱 높은 단계의 군사행동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제3핵시대에 돌입한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핵그늘(nuclear shadow)에서 지속되고 있는 군사대결과 핵위기의 지속적인 발생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에서는 핵무장 주장이 최근 항상 국민들로부터 60-7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북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확장억지에 대한 신뢰가 옅어지면서 자체 핵무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2] 한국의 핵무기 보유는 북핵 위협(나아가 중국)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억지수단으로 주장되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토의 분단과 적대적 대치가 70여년 이상 지속되어 온 남아시아 사례는 한반도에 유용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 인도-파키스탄 양국의 핵무기 보유는 과연 양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수차례의 위기와 충돌에도 불구하고 핵사용 단계까지는 진행되지 않았기에 양국 간 전략적 안정(strategic stability) 상황이 유지된다고 볼 수 있는가? 양국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면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은 덜했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인도-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개발 이후 군사적 대치, 충돌을 분석하여 인도-파키스탄 핵대결 사례가 한국의 핵무장 담론에 줄 수 있는 교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인도와 파키스탄이 왜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였는지 이유를 살펴보고 핵보유 이후 핵지휘통제 시스템, 핵독트린, 핵태세 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며 핵무기 보유의 안보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는지 고찰한다. 무엇보다도 양국의 핵무기 보유 이후 군사적 대치와 충돌 사례를 분석하여 과연 핵무기가 양국의 안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하지 못했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한국의 핵담론에 인도-파키스탄 사례가 어떠한 실질적인 교훈을 던져주는지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는데, 한국 핵무장 추진에 따른 경제제재, NPT탈퇴에 따른 국제 신인도 하락 등의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고 핵무장의 안보적 득실 여부에 집중해서 분석하고 전망한다.   II.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대결   1)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개발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분할독립을 하자마자 1차전쟁을 치렀고, 그 이후에도 주로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3차례 더 전쟁을 하였으며 세기 힘들 정도의 위기와 소규모 군사충돌을 경험하였다. 인도의 경우 국경분쟁으로 갈등이 고조된 중국과의 1962년 인도-중국 전쟁에서 굴욕적 패배를 감내해야 했다. 1964년 중국의 핵실험 소식 후 야당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기 개발 주장이 있었으나 비폭력 저항의 전통으로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혐오한 네루 총리 등 지도부는 가난한 신생독립국의 과학입국을 위해 원자 에너지 개발은 적극 장려하였으나 무기화는 단호히 거부하였다. 필요한 원자기술이 차근차근 축적된 후 1971년 3차 인도-파키스탄 시기 강대국의 압박행태에 대항하여 인도의 자립성과 역량을 과시하고 싶었던 인디라 간디 총리가 1974년 평화적 핵실험(peaceful nuclear explosion)을 단행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인도 정부는 이러한 기술력의 핵무기 전용에는 관심이 없었고 군부의 영향력도 부재했다. 하지만 이웃 파키스탄의 핵개발 전념 소식과 핵무장한 중국과의 긴장관계 지속으로 인도도 1980년대에는 핵개발을 위해 전력질주하여 1990년 전후에 핵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김태형 2019, 4장).   파키스탄의 경우 독립 초기부터 거대 이웃 인도와의 적대적 관계와 충돌이 지속되면서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데 사활적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비동맹을 표방하던 인도와 관계가 소원한 미국이 든든한 파트너가 되었고 인-중 전쟁 이후에는 중국과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1971년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참패하여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여 떨어져 나가는 치욕적인 상황에서도 미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어떤 원조도 받지 못하였다. 1960년대에도 재래식 전력과 전반적 국력에서 앞서는 인도에 맞서 자체 핵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핵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나 믿었던 강대국의 '배신'으로 상당한 영토와 인구를 상실한 후 파키스탄의 지도부와 국민 모두 신뢰할 만한 동맹국이 부재한 상태에서 재래식 전력에 우월한 인도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자체 핵무장뿐이라는데 공감한다(김태형 2019, 5장).   양국이 핵무장을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하게 되면서 양국 간 대결은 핵무기와 연관되어 나타났다. 80년대 초 양국은 모두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이라크 오시락(Osirak) 핵시설 공습을 참고하여 상대방의 핵시설에 대한 예방공격(preventive strike)을 고려하여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을 견제하던 레이건 행정부는 파키스탄의 핵프로그램을 알면서도 묵인하였고(Ahmed 1999, 187-8), 파키스탄에 F-16 판매를 승인하였다. F-16 판매는 인도 입장에서 파키스탄의 예방공격 우려를 증폭시켰고, 파키스탄에서도 인도의 예방공격 가능성이 수시로 보고되었다(Akhtar and Neog 2024, 3). 인도의 인디라 간디 정부는 이스라엘과 합동으로 파키스탄의 Kahuta 원심분리시설을 공습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가 이를 사전에 발견한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하였고, 미국은 파키스탄에게 인도의 공습이 임박하면 즉각 알려주겠다고 하였다(FH Khan 2012, 219-220).   이렇듯 양국 모두 상대의 예방공격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대비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결국 양국은 서로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이 초래할 끔찍한 결과를 방지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여 1988년 양국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양국 간의 긴장과 갈등은 지속되어 1987년 인도의 대규모 기동훈련으로 촉발된 Brasstacks 위기를 경험하였다. 이 때 이미 파키스탄은 핵프로그램을 공개하여 인도에 대한 억지를 시도하였고 인도령 카슈미르에서의 저항이 대규모로 촉발된 1990년 카슈미르 위기로 다시금 인도와 대치하게 되자 핵사용 카드를 스스럼없이 꺼내들면서 인도에 경고하는 한편 미국의 중재를 강력히 이끌어내었다(Ahmed 1999, 189).   이미 1990년을 전후한 이 시기에 양국은 충분한 핵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간주된다. 1998년 5월 재집권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인도의 바지파이(Vajpayee) 총리가 전격적인 핵실험을 단행하였고 이에 놀란 미국의 강력한 당근과 채찍 전술에도 파키스탄이 맞대응하여 3주 만에 핵실험을 단행하여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양국은 모두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게 되었는데 1년 반 정도의 제재기간이 오래 이어지진 않았으나 이미 경제가 어렵던 상황에서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적지 않았다.   2) 인도-파키스탄의 핵개발 후 핵대결   파키스탄 군부의 모험주의적 행동으로 핵실험 단행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양국은 다시금 카슈미르의 카길(Kargil) 지역에서 충돌하게 되었다. 핵무기로 무장한 국가 간 두 번째 전쟁이라는 카길전쟁의 발발로 국제사회는 핵사용으로의 확전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국은 확전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면서 무기 사용이나 통제선 넘는 것에 대해 절제하였으나 특히 파키스탄의 경우 핵사용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길전쟁의 종식에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강력한 중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Rej 2019; Tellis, Fair, and Medby 2001).   양국은 신흥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핵무기의 보유 목적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핵독트린, 핵태세를 발전시키고 핵지휘통제 체계를 견고하게 만들며 목적에 부합하는 핵무기 보유와 투발수단을 확보해 나가야 했다. 인도의 경우 1999년 발표 이후 2003년에 재확인된 핵독트린은 신뢰적 최소억지(credible minimum deterrence)와 핵선제불사용(no-first-use)이다. 또한 인도는 확증보복(assured retaliation)이라는 핵태세(nuclear posture)를 채택하고 있다. 인도에게 핵무기는 전쟁억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며 핵공격을 받은 후 상대방이 감내할 수 없는 보복을 공언하여 억지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경우 공식적으로 핵독트린을 발표한 적은 없지만 역시 신뢰적 최소억지를 추구하는데 억지효과 극대화에는 핵전략의 모호성이 필요하다고 여겨 핵선제불사용은 약속하지 않는다. 또한 초기에는 위기 발생 시 제3국, 특히 미국의 강력한 중재를 유도하는 촉매형 핵태세(catalytic posture)를 취했다가 미국의 개입에 대한 신뢰가 감소된 후 위기 시 핵사용 불사를 공언하여 오히려 위기 점감 효과를 꾀하는 공세적인 비대칭 확전형(asymmetric escalation) 핵태세로 전환하였다(Narang 2017, Ch. 3, 4).   양국의 핵무기를 둘러싼 전략, 독트린, 투발수단 개발·배치는 양국 간의 action-reaction이 지속되며 계속하여 진화 발전하였다. 2001년 12월 파키스탄 후원 무장단체의 인도 국회의사당 공격 이후 인도는 파라크람 작전을 발동하여 대규모 군대를 국경지역으로 동원하였다. 파키스탄이 이에 맞대응하여 10개월이 넘는 장기 대치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군사작전이 별 성과없이 종료되자 인도 내부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대응책으로 Cold Start 독트린이 제안되었다. 파키스탄 후원 무장단체의 테러공격 재발 시 인도군의 준비된 부대가 파키스탄 영내로 신속히 진격하여 응징한 후 파키스탄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기 전에 철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두고 인도에서는 실효성과 현실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Cold Start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심하던 파키스탄은 재래식 전력에서 앞서는 인도의 기습공격에 대한 재래식 방어수단이 마땅치 않아 핵독트린을 전범위억지(full-spectrum deterrence)로 전환하고 제한적 재래식 공격에도 필요하다면 핵무기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를 위하여 사정거리 60km인 Nasr 미사일의 시험발사를 2011년에 시행하고 이후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Ahmed, Hashmi & Kausar. 2019). 한편 2008년 뭄바이에 대한 테러공격으로 수많은 외국인 포함 상당한 인명, 재산피해가 발생한 후 인도는 다양한 형태의 군사적 보복을 고려하였으나 결국 자제(restraint)를 택하였다. 무대응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었는데 강경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BJP의 모디는 2014년 총선 승리로 총리에 등극한 후 파키스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약속하였다.   2016년 인도령 카슈미르의 우리(Uri)에 위치한 육군 기지에 대한 테러공격으로 19명이 사망하자 인도의 모디 총리는 특수부대를 동원하여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테러 훈련소를 공격하는 국부공격(surgical strike)을 감행하였다. 이 작전의 성과를 떠나서 이제까지의 전략적 자제(strategic restraint)와 사뭇 다른 물리적 응징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2019년 2월 인도령 카슈미르의 풀와미(Pulwama)에서 파키스탄 후원 무장단체 소속 테러리스트가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여 40명의 경찰예비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인도 정부는 공군기를 동원하여 통제선을 넘는 것이 아닌 파키스탄과의 국경선을 넘어 테러기지로 알려진 발라콧(Balakot)을 공습하였다. 이렇게 인도가 수직적, 수평적으로 의도적인 확전(escalation)을 감행하자 파키스탄도 이에 맞서 다음날 통제선 넘어 인도령 카슈미르의 타깃을 공격하였다. 이 와중에 1971년 3차 인-파 전쟁 이후 처음으로 양국 공군 간 공중전이 벌어져서 인도군의 미그‑21기 한 대가 격추되었다. 조종사는 생존하여 곧 인도에 귀환하였고 이후 더 이상의 확전을 일어나지 않고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위기 진행 시 파키스탄은 핵통수기구(National Command Authority, NCA)를 소집하고 언론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유세중이던 모디 총리도 만일 격추된 인도 조종사가 무사히 돌아오지 않을 경우 “night of murder”라는 표현을 쓰며 무력응징을 다짐하였다.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국무장관이었던 폼페이오(Pompeo)는 회고록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덕분에 핵충돌의 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3]   양국의 대응과 맞대응이 이전과는 다르게 의도적인 확전을 추구하여 전세계를 긴장시켰다. 인도는 공식적으로는 정확한 정보에 의한 비군사시설(테러시설)에 대한 선제행동이라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하지만 파키스탄 영내를 공격함으로써 전략적•정치적 확전(escalation) 가능함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파키스탄 공군도 의도적 확전으로 대응함으로써 양국 모두 의도적인 확전을 시도하였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위기 해소는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당시 상황은 급박하였다. 위기 해소 후 양국은 모두 승리를 주장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하였다(Pehahi 2019; Dalton 2019; Rej 2019).   풀와마 테러에 대한 강경대응은 모디 총리의 BJP가 총선에서 압승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미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워 강력한 반무슬림, 반파키스탄 정책을 추진하던 모디 정부는 총선 승리에 힘입어 총선 직후인 8월에 헌법 370조를 파기함으로써 1947년 인도에 귀속할 때 약속했던 인도령 카슈미르의 자치령을 철폐하였다. 인도 내에서 유일하게 무슬림 다수주였던 카슈미르가 잠무&카슈미르와 라닥이라는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분할되고 연방 직할령으로 편입되었다. 자치권을 박탈당한 카슈미르인들의 반발은 거세었고 1972년 체결된 심라조약(Simla Agreement) 위반이라며 파키스탄도 강력히 항의하였다. 모디 정부는 경찰, 군 병력을 동원하여 지역 불만을 강력히 통제하고 언론, 인터넷에 대한 통제도 실시하였다. 모디 정부는 카슈미르의 경제발전을 위해 관광산업에 투자하고 인프라도 건설하여 민심을 다독이려 하였다. 카슈미르에서 관광객은 늘어났으나 정치적 자립 제한, 젊은 층의 높은 실업률로 인하여 모디 정부에 대한 불만은 지속되었다. 중국과의 국경분쟁이 격화되어 많은 군병력이 중국과의 국경 지역으로 이동하고 연방정부에 대한 불만은 높아져서 2024년에는 이미 무장단체에 의한 공격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Ganguly 2024). 또한 주택, 교육 등의 영역에서 카슈미르인들이 누리던 혜택이 없어지고 다른 지역 주민들의 이주가 장려되어 긴장이 고조되자 이러한 상태를 고려하면 무장단체에 의한 위기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가 있었다(Bhasin 2024).   전문가들이 특히 걱정한 점은 만일 무장단체에 의한 공격이 다시 발생하여 인도-파키스탄 양국 간 위기가 다시 발생했을 때 위기의 확전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이는 양국 모두 풀와마, 발라콧으로부터 ‘상대방의 레드라인을 넘어도 보복 걱정은 크게 없다,’ ‘확전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등 확전의 통제가 쉬울 것(escalation control will be easy!)이라는 위험하고 잘못된 교훈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렇게 되면 서로에 대한 억지는 더욱 어려워지고 충돌 발생 시 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떻게 종식될지 예측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 위기 발생시에는 더 이상 행운에 기댈 수 없을지 모르는 것이다. 또한 모디 총리의 경우 강경한 대응이 총선승리에 크게 공헌하는 등 국내 지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기에 이러한 헌신의 함정(commitment trap)으로 다음 충돌 시에는 더욱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보복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발라콧 공습 시 인도군은 강력한 응징 의지를 보였지만 타격의 성과는 거의 없어 파키스탄에 대한 억지 효과는 미미하였다. 발라콧 직후의 파키스탄의 공군기 동원과 인도 공군기 격추라는 행동과 성과는 이후 파키스탄의 행동이 더욱 대담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4]   그리고 양국 모두 위기 당시 핵무기에 대한 준비과정이 있었다는 것은 다음 위기 시 핵무기 배치와 전개가 신속히 이뤄질 수도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즉 다음 위시 시 상대방의 다음 행동에 대한 억지가 대단히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위기 안정성(crisis stability)이 현저히 약화되고 확전 통제는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Pegahi 2019; Dalton 2019, Narang 2019; Lalwani 2020).   3) 파할감 테러와 인도-파키스탄 충돌   2025년 4월 22일 파할감(Pahalgam)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하여 모디 총리가 공을 들이던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카슈미르라는 환상이 여지없이 깨졌다(Ganguly 2025). 인도령 카슈미르의 유명 관광지인 파할감에서 테러단체가 26명의 인도 관광객들, 그것도 힌두 남성을 특정한 무장단체의 살상은 큰 충격을 주었고 강력한 보복을 바라는 인도 국민들의 요구가 커졌다.   인도 정부는 테러단체의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하였고, 파키스탄 정부는 이 단체와의 연루를 강하게 부인하며 인도의 무력 사용 시 결연히 반격하겠다고 공언하였다(Sharp 2025). 양국은 또한 국경폐쇄, 상대국 외교관 추방, 비자 발급 중단, 무역 중단 등 일련의 대결적 조치를 서로 시행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게다가 인도 정부는 1960년에 세계은행(World Bank)의 후원 하에 양국 간 체결되어 전쟁과 수많은 위기에도 지속되었던 인더스 수자원 조약(Indus Waters Treaty)을 파기한다고 발표하며 수자원의 80%를 인더스강에 의존하는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강줄기의 통제 가능성을 압박하였고, 이에 대해 파키스탄은 인더스강 수자원에 대한 어떠한 인위적인 제한도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경고하였다(Hamza 2025). 파키스탄 정부는 1972년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에 합의되어 카슈미르의 통제선(Line of Control)을 인정하고 양국 간 카슈미르를 둘러싼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심라 조약(Simla Agreement)을 파기하겠다고 나섰다. 통제선 주변에서 양국 군대 간 소규모 교전이 지속적으로 보고되었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양국의 외교적 노력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모디 총리는 인도군에게 파키스탄을 상대로 맘껏 작전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한다고 발표하였고 파키스탄 고위관리들은 임박한 공격을 경고하며 분연히 대응할 것을 공언하였다. 이미 2016년, 2019년 테러공격에 수위를 점차 높이는 강경대응으로 크게 정치적 이득을 본 모디 총리가 들끓는 반파키스탄 민족주의적 여론을 등에 업고 강력한 무력대응을 실시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보였다. 그러나 모디 정부와 인도군의 확전지배(escalation dominance)에 대한 과신은 위험해 보였고, 군사적 응징의 효과에 대한 의문, 기술발전의 부정적 영향과 양국의 공세적 독트린에 의한 확전 가능성, 적극적 중재 역할을 했던 미국의 무관심 등으로 분쟁 발생 시 더 심각한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컸다(Singh 2025a; Shapoo 2025; Altaf and Javed 2025).   이렇게 말과 행동으로 양국 간 긴장이 끊임없이 악화되던 상황에서 인도가 5월 7일 새벽 Operation Sindoor를 감행하여 공군기의 지대공 미사일을 사용하여 9곳의 파키스탄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영내의 테러기지를 파괴하고 다수의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였다고 발표하였다(Patil and Rawat 2025; Gupta 2025). 파키스탄은 영내의 가정집, 모스크 등이 파괴되어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인도를 비난하면서 인도의 공군기 5대를 격추하였다고 발표하였다. 5월 10일 인도의 미사일, 드론 공격이 군사, 행정기관이 밀집해 있고 수도 이슬라마바드와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Rawalpindi 인근의 Nur Khan 공군기지를 포함하여 파키스탄을 자극하였다. 수시간 후 파키스탄은 공군기, 미사일, 드론을 사용한 Operation Bunyan-um-Marsoos를 감행하여 인도 내 BrahMos 순항 미사일 기지, S-400 대공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파키스탄의 보복 공격과 인도의 재보복이 반복되며 양군은 공군기와 미사일, 드론을 사용하여 상대국의 비행장 등 군사기지를 공격하였고 물적 피해와 사망자도 늘어났다. 2016년, 2019년 유사한 테러 공격 이후에 발생했던 인도의 대응과 비교해도 규모나 범위에서 확연히 달랐던 이번 무력충돌로 인해 확전 우려와 함께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증대되었다. 이제까지 인도-파키스탄 중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미국이 밴스 부통령이 "이는 우리와 무관한 일(none of our business)"라고 하는 등 중재에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여 확전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파키스탄의 NSC 소집 통한 nuclear signaling 후 미국 정부는 태도를 바꿔 적극 개입하였다. 이렇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중재로 10일 양국은 휴전에 동의하여 급한 불은 끄는데 성공하였고 2019년처럼 양국은 모두 자국의 승리를 주장했으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Clary 2025).[5]   이번 무력충돌은 또한 양국 간 분쟁 중 처음으로 드론을 포함한 AI 기반 무기체계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분쟁이다. 인도군은 이스라엘에서 수입한 IAI Searcher와 Heron 드론을 정찰에 활용하였고. 역시 이스라엘에서 수입한 Harpy와 Harop 자살 드론(loitering munition)을 공습에 활용하였다. 특히 Harop 드론은 파키스탄 군사시설 포격에 사용하고 Harpy 드론은 적 방공망 제압(suppression of air defenses, SEAD)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와 이스라엘의 합작품인 드론은 작전 초기에 테러조직 기간시설타격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경우 중국, 튀르키예로부터 수입한 드론과 자체 또는 합작 생산한 드론 수백대를 swarm 형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사상자 걱정이 덜하고, 장거리 정밀타격 또한 가능하며, 상대적으로 확전 위험이 적은 드론이 양국 간 분쟁에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안정-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드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상대국이 드론 사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광범위한 드론 사용은 확전 통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확전 위험성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핵무기 보유 국가 간 분쟁 시 드론 사용에 의존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확전을 야기할 수 있다(Haltiwanger 2025; Basrur 2025; Dass and Basit 2025).   무엇보다 양국 간 무력충돌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여지가 적지 않고 발생 시 이전보다 확전사다리의 더 높은 단계에서 무기체계가 사용되어 의도적이든 아니든 핵사용까지 진행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번에 인도는 파키스탄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응징을 하면서 인도 군사력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했다. 인도에 의하면 테러리스트 훈련캠프나 파키스탄군 공군 비행장 등 의도했던 목표를 효과적으로 파괴했고 파키스탄의 반격은 S-400 등의 방공망으로 거의 다 무력화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인도 공군기 5대 격추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기도 했는데 양측의 군사적 성과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휴전 이후 모디 총리는 어떠한 테러 공격도 파키스탄의 행위로 간주하여 파키스탄 영내 깊숙이 위치한 타깃도 정당한 공격목표로 간주하여 응징하겠다는 'new normal'을 발표하였다. 이는 테러리스트의 행동에 대해 파키스탄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어 그 비용을 크게 전가함으로써 이후 테러리스트 활동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다(Tarapore 2025; Vohra 2025a). 그러나 2016, 2019년의 보복공격이 테러의 발생을 억지하지 못했듯이 이번의 강경한 군사행동도 향후 유사한 테러공격의 발생을 막는데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이 있다.   또한 모디 총리는 파키스탄이 분쟁 중 NCA 소집을 흘리며 핵 시그널을 보낸데 대해 인도는 결코 nuclear blackmail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 군사행동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또한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이전보다 더욱 높은 단계에서 응징공격을 감행함으로서 파키스탄의 핵사용 임계점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위험한 접근일 수 있다. 양국 모두 이번 분쟁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으며 이후 분쟁 시 확전통제에 확신을 갖고 핵사용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2025년 5월보다 더욱 거센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특히 이번 군사적 충돌이 확전사다리에서 상당히 높은 단계의 무기체계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지상군을 동원한 전면전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종식됨으로써 이후에도 그룻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고, commitment trap에 한층 깊숙이 빠져서 다음번 위기 발생시에는 국내정치적으로 양국의 강경 지도부 모두 더욱 강력하고 이전보다 높은 단계의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기술발전으로 무기체계의 목표 도달시간이 훨씬 단축된 상황에서 초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미디어와 여론의 압박으로 각 지도부는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에 놓여 확전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기 더욱 힘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Mallah 2025; Shah2025; Tarapore 2025; Cervasio and Wheeler 2025; Singh 2025b). 파키스탄의 경우 공식적으로 군사적 승리를 주장하였으나 인도가 quid pro quo plus 독트린의 빈틈을 적극 이용하여 실제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기존의 quid pro quo plus 독트린을 더욱 정교하면서도 강력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Syed 2025).   파키스탄은 또한 군사적 피해규모를 떠나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파키스탄보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는 인도에 단호히 저항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였다.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경제적으로 IMF의 도움이 없으면 유지가 힘들 정도로 피폐하며 사회적으로 내부 테러리즘과 분리주의, 치안불안 등의 문제로 국민들이 고통받으면서 정치권 지도부 전반에 대한 불만이 컸으나 인도와의 결전을 통해 전 파키스탄이 일거에 단결하고 통합하는 효과를 거뒀다.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Munir 육군 참모총장의 역할과 권한이 더 막강해졌고, 이번 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처음으로 육군 원수로 승진하기도 하였다. 이번 무력충돌 이후 파키스탄이 더욱 대담해졌다는 평가가 많은데(Jamal 2025a), 이는 파키스탄군이 그동안의 비판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그 존재이유를 확실히 각인시켰기 때문이다(Fair 2025). 96%라는 압도적인 응답자가 이번 분쟁에서 파키스탄이 승리하였다고 보는 가운데 파키스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군부에 대한 호감도도 급증하여 휴전 직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군에 대하여 우호적으로 평가하였다(Jamal 2025b). 테러 공격 1주일 전에 파키스탄의 존재근거 이데올로기인 "두 민족 이론(Two Nations Theory)"[6]을 반복강조하며 인도령 카슈미르인들의 파키스탄 통합의 정당성을 설파하여 파할감 테러 공격을 조장하였다고 비판받은 Munir 총장은 온건한 전임자와 다르게 강한 종교적 색채로 이번 작전을 강경하게 진두지휘하면서 정체성적 정당성을 근거로 승리를 주장하였고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인정받았다(Vohra 2025b; Fair 2025). 이러한 상황에서 파키스탄군이 향후 인도가 원하는 것처럼 무장단체를 활용하는 비대칭 공세를 중단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번 무력충돌이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 때문에 인도가 추구하는 억지는 기대할 수 없고 향후 이런 식의 공격과 반격, 재반격의 반복이 더욱 위험한 수준에서 벌어지는 것을 국제사회가 더욱 불안하게 지켜봐야 할 수 있다. 인도 파키스탄 양국 모두의 과도한 자신감과 신뢰가 계속 하락하는 제3국(특히 미국)의 시의적절한 개입과 중재에 기대기에는 양국 지도부의 사고방식과 양군의 핵태세와 핵무기 배치가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III. 인도-파키스탄 핵대결 사례가 한국에 주는 교훈   인도-파키스탄 간 핵개발, 핵대결 사례를 한반도에 적용하는 것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미사일 능력을 질적·양적으로 증대하는 상황에서 자체 핵무기 보유에 관심이 큰 한국에게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먼저 핵무기 획득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투발수단을 보유해야 하며 핵탄두를 얼마나 생산해야 할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또한 핵지휘통제체계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도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인도-파키스탄 사례에서 핵무기 획득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간, 과정, 비용, 그리고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과 위협요인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도-파키스탄 사례에 비추어 한국의 자체 핵보유가 우리의 지정학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안보를 증진시킬지 여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1) 핵무장으로 가는 길   한국의 핵무기 보유 목적은 북한에 한정한 북핵억지인가? 아니면 중국까지 포함한 2개 이상 적대국에 대한 억지인가? 이 목적 선정에 따라 핵무기 투발수단, 핵탄두 숫자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의 경우 애초부터 핵무기 보유 목적과 이유는 인도 억지에 특화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파키스탄의 핵독트린이 인도 억지를 위한 신뢰적 최소억지라고 할 때 파키스탄 관계자들은 파키스탄이 60-7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다면 충분히 인도에 대한 억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Tasleem 2016). 인도의 경우 처음 인도의 핵개발을 자극한 국가는 1962년 국경전쟁에서 치욕을 안겨주고 64년 핵실험에 성공한 중국이었다. 미국의 압박이 큰 이유이긴 하지만 1974년 평화적 핵실험의 배경에는 중국의 존재도 무시하지 못하였다. 이후 파키스탄과 핵개발 경쟁을 하면서 몇 번의 위기를 겪었던 80년대, 90년대에도 중국의 잠재적 위협은 인도의 핵개발, 핵태세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 중국과의 국경분쟁 격화와 전략적 경쟁 심화는 인도의 Agni-5 등 장거리 전략무기 개발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신형 stand-off 재래식 미사일로 구성된 통합로켓군(Integrated Rocket Forces)의 창설에 자극을 주었다(Bommakanti 2023; Das 2024). 2019년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핵전쟁 시나리오를 가상한 논문에서도 인도가 중국과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상당수의 핵무기를 파키스탄에 사용하지 않고 남겨둘 것이라고 예상하였다(Robock, et. al. 2019).   한국에게는 몇 개의 핵무기가 적정할까? 북한 억지에만 국한한다 해도 2025년 현재 북한 핵무기 보유숫자로 추정되는 50여기는 필요할 것이다(Kristensen, et. al. 2025).[7] 중국까지 억지의 대상으로 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문제는 이 정도 숫자를 확보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이 수반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대체로 1990년 전후로 핵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1998년 5월에 각각 핵실험을 감행하는데 그 이후 핵무기 보유숫자를 경쟁적으로 꾸준히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 핵실험 이후부터 계산해도 27년이 지난 2025년 현재) 양국은 각각 170-180기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다(Kristensen, et. al. 2025). 한국은 50여기의 핵무기 보유를 위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까? 핵농축, 재처리 시설의 부재, 우라늄 확보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전력을 다해서 노력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에 핵무기 보유 이유이기도 한 주변 적대국으로부터의 예방공격 가능성을 포함한 강력한 견제가 예상된다는(window of vulnerability) 것이다(Dalton and Perkovich 2024). 북한이나 중국으로부터의 예방공격은 우리만의 힘으로 막기 쉽지 않을 것이다. Debs와 Monteiro는 기술적, 경제적 능력이 있고 안보적 이유가 있는 한 국가가 핵개발을 추진한다 해도 적대국으로부터의 방해를 효과적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이 때 동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였다(Debs and Monteiro 2016, 37-45). 미국이 한국의 원활한 핵개발을 위해 중국, 북한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방어막을 쳐줄까? 한국의 자체핵무장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국으로부터의 핵우산 보장에 대한 불신과 더 나아가 방기(abandonment)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는데, 이제 자체핵무기 보유로 미국과의 동맹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을 한국에 대해 미국이 그 정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할지 의문인 것이다(Dalton and Perkovich 2024).[8]   2) 핵무장 이후의 핵태세, 핵지휘통제 구축   우여곡절 끝에 핵무기의 생산, 배치에 성공한다 해도 남북한 간에 냉전 시기 미국-소련 관계와 같은 안정적인 2차공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에 기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상태가 정착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소 양국은 각각 수천개, 혹은 그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여 확실한 2차공격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양국 간 영토가 수천km 떨어져 있어 영토분쟁이 없었으며 양국 간의 충돌은 대체로 양국의 사활적 국익과는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 대리전(proxy war)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한반도에 위치한 남북한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할 시 발생할 상황은 이러한 냉전 시기의 미-소가 아니라 현재의 남아시아와 가까울 가능성이 훨씬 많다. 한반도와 인도 아대륙 양 지역 모두 하나의 정치체를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2차대전 직후 각각 분단, 분할 독립되어 국경분쟁, 실지회복을 둘러싼 대결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남아시아의 경우 1990년대 이후로는 핵무기가 이러한 대결의 주요 변수로 등장하였다. 인도, 파키스탄 양국은 1998년 핵실험 이후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하면서 핵독트린, 핵태세, 핵지휘통제체계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양국 간 충돌이 끊이지 않으면서 action, reaction이 반복되며 양국의 핵독트린은 점차 공세적으로 나아갔다는 것은 이미 앞장에서 확인한 바 있다. 핵무기 보유 초기와 달리 카길 전쟁, 2001년 의사당 테러위기를 거친 후 인도의 Cold Start 독트린 입안, 이에 대응하는 파키스탄의 전범위억지로의 전환과 Nasr 단거리 전술핵미사일 개발·배치, 그리고 모호하지만 상당히 낮은 핵사용 임계선(threshold)의 발표,[9] 이에 대항하는 인도의 핵선제 불사용 원칙 변경 움직임이나 확증보복 핵태세와 배치되는 counterforce 능력 향상 노력 등이 반복되며 양국 간 위기안정성이나 전략적 안정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왔다.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어떠한 핵독트린, 핵태세, 핵지휘통제체계를 구축, 발전시켜야 하는가? 인도, 파키스탄처럼 현실적으로 신뢰적 최소억지(credible minimum deterrence) 독트린을 채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핵태세는 어떠한가? 다른 핵보유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소량의 핵무기 보유시부터 핵무기의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핵무기의 숫자를 늘리는 것 외에 투발수단도 선별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작전종심이 대단히 짧고 핵무기 투발수단이 지대지 탄도 미사일 형태로 고정배치된 경우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성 향상, 2차공격능력 배가를 위해서 잠수함 플랫폼(SLBM)을 확보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Dalton and Perkovich 2024). 하지만 이는 효율적인 작전을 위한 SLBM 탑재 핵추진 잠수함의 충분한 수량 확보를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문제 외에도 핵지휘통제권의 위임 여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즉 소량 배치된 핵무기의 안전이나 승인되지 않은 발사를 막는 것보다(negative control) 북한에 대한 억지력 증대를 위해 핵무기가 확실히 작동하는 것을(positive control) 더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핵통제 권한 위임의 유인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는 불가피하게 핵사용 가능성의 증대를 의미한다.   또한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고 한국은 이를 따라가는 형국이라 상당 기간 소수의 핵무기에 의존하여 북핵억지를 시도할 수밖에 없고, 유사시 수 분 안에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국의 주요 목표물에 도달할 수 있기에 한국이 적지 않은 기간 의존할 소수의 핵무기를 항상 경보즉시발사(Launch on Warning, LOW)라는 극도의 일촉즉발 (hair trigger) 상황에 대기시킬 수밖에 없다. 소량의 핵무기 보유 국가는 항상 use it or lose it의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어서 핵지휘통제체계가 직면할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상당 기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강하게 열어두고, 확실한 2차타격능력이나 핵탄두 숫자의 대등한 수준이 필요하지 않은 비대칭 확전형 핵태세(asymmetric escalation posture)를 불가피하게 채택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10]북한의 핵태세가 무엇인지 논쟁이 있지만 비대칭 확전형이라는 주장이 많은데 핵무기로 대치하는 양국이 모두 대단히 공세적인 비대칭 확전형 핵태세로 맞선다면 긴장감이 상당할 것이다. 즉 한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핵무기 숫자를 보유할 때까지 위기안정성은 대단히 약화된 상태로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11] 한국의 핵사용 조건(임계점)도 모호하지만 낮은 수준으로 설정하여 escalate-to-deescalate 식의 공세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할 필요도 있는데 이는 위기안정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3) 안정-불안정 역설   미-소 양국 간 핵경쟁이 극심하던 1960년대 초중반에 제기된 안정-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 개념은 대치하는 두 개의 핵무기 보유국이 모두 충분한 2차공격능력을 갖춤으로써 핵무기(전략) 레벨에서의 안정성이 오히려 양국 간 낮은 단계의 불안정성, 즉 제한적인 충돌을 증대시키지만, 이러한 위기 발생과 제한적인 충돌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전면전이나 핵사용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다.   많은 전문가들이 안정-불안정 역설이 실제로 구현되는 곳이 인도-파키스탄이 격돌하는 남아시아 지역이라고 보았다. 양국이 핵능력 보유 직후인 1999년 파키스탄의 공격으로 카길전쟁이 발발했고 그 이후에도 파키스탄 후원 무장단체에 의한 테러공격이 여러 차례 발생했으나 심각한 수준으로의 확전 없이 위기가 해소되었기 때문이다.[12] 최근에는 파키스탄 후원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은 인도가 예전의 전략적 자제(strategic restraint)가 아닌 물리적 보복의 수위를 높여 나가면서 안정-불안정 역설의 응용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2016년 공격에 대한 보복에는 특수부대를 동원한 국부공격을 실시하였고, 2019년에는 공군기를 동원하여 파키스탄 영내를 공습하였으며 2025년 보복에는 다양한 형태의 순항 미사일과 자폭 드론 등 여러 장거리(standoff) 무기체계를 적극 활용하였다. 지상군을 사용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서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자제하는 등 확전을 조심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채택한 무기체계나 타격 목표 등은 지속적으로 이전 단계보다 확연히 높아진 확전 사다리의 높은 단계(rung)에서의 시작을 과시하였다(Stimson Center 2025). 모디 총리를 비롯한 인도 고위층의 발언은 이런 식의 공격에도 더 이상의 확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불안정 역설에 기반한 확전통제의 자신감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전제에 기초하고 있어서 다음 번 위기 발생시에 2025년 5월보다 더 높은 단계에서 보복이 감행된다면 여전히 그 이상의 확전이 적절히 통제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강경대응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가 공언한 억지의 복원(restore deterrence)이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파키스탄의 입장이 너무나 자신감에 차 있다.   한반도에서 안정-불안정 역설은 어떻게 구현될까? 이제까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대치해 온 대상은 미국과 북한이었다. 남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양국 간 충돌을 중재,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제3국이지만 한반도에서는 핵대결 당사자인 것이다. 이제까지 한반도에서 안정-불안정 역설의 사례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발사, 사이버 공세 등은 분명히 도발이지만 안정-불안정 역설에서 대체로 상정하는 '불안정'은 물리적 공격(kinetic action)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반도는 안정-불안정 역설과는 거리가 있는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김태형 2024, 30-35). 하지만 한국이 북한의 핵대결 상대 당사자로 전환되게 되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인도는 중국과의 대치에 상당한 군사력을 분산해야 해서 인-파 국경 부근에서 대치하는 양국 간의 재래식 군사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보는데 반해서 한반도에서 한국과 북한 간의 재래식 전력 격차는 상당하다. 이렇게 명백한 재래식 전력의 차이로 인해 군사적 충돌 발생 시 상대적으로 열세인 북한이 입을 피해는 훨씬 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 보복 시 한국은 인도와 같이 확전 사다리의 꽤 높은 단계에서 보복 진행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등한 핵전력으로 안정-불안정 역설이 상호 구현되는 남아시아와 달리 핵전력에서 크게 열세인 한국의 경우 북한의 도발 시 전술핵무기를 다수 보유한 북한에 대해 낮은 단계 이상의 응징이 힘들 수 있다.[13] 이 또한 한국의 핵무장 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여전히 동맹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하다. 북한은 현재 다양한 수단, 형태의 전술핵무기 체계를 개발, 배치하고 있다(김태형, 김보미 2023, 13-18). 또한 재래식 전력의 객관적 열세 상황이 북한의 도발을 과연 자제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파키스탄 군부처럼 북한 지도부가 인식하는 ‘승리-패배,’‘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14] 따라서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히 행동하고, 피해 규모 여부와 상관없이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이러한 피해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만일 북한이 NLL을 침범하여 서해안 도서지역을 공격하거나 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반격할 것인가? 북한이 재반격한다면 한국은 어느 수준까지 군사력을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러한 상황은 확고한 의지도 중요하지만 확전 가능성 등 제반 환경과 조건에 대한 면밀하고 냉철한 분석과 판단을 필요로 할 것이다.   안정-불안정 역설과 관련하여 인도와 파키스탄 간 핵대결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과연 핵무기 보유가 양국의 안보를 증진시켰는가 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갖은 어려움과 견제를 극복하고 마침내 획득에 성공한 핵무기의 보유 목적을 달성했는가? 만일 핵무기가 없었을 경우 양국 간의 분쟁과 대결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추정해보는 것은(counterfactual) 가능하지 않다. 학자들 간에도 핵무기의 도입이 양국 간 분쟁 빈도와 수위를 더 악화시켰는지 완화시켰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카푸르(Kapur)는 핵무기 보유 이전 시기였던 1972-89년 기간에 비해 핵무기 보유 이후인 1990-2002년 기간 동안 양국 간 대치와 위기 상황이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고 주장한 반면(Kapur 2007, 27), 사이라 칸(Saira Khan)은 인도-파키스탄 간 1947년-1986년에는 3차례의 전쟁과 7번의 위기 상황이 발생했으나 그 이후에는 2004년까지 4번의 위기 상황만 있었다고 주장하여 핵무기 보유의 전쟁 비화 완화 효과를 주장하였다(2005, 162-3).   하지만 두 연구가 다뤘던 기간 이후인 21세기에도 앞장에서 봤듯이 수많은 위기와 충돌이 발생하였다. 만일 핵무기가 없었다면 2000년대 발생한 충돌이 양국 간 전쟁으로 비화했을까? 답하기 힘든 문제이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와 상관없이 양국 간에 무력충돌은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2025년 4월 분쟁에서 인도는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첨단무기 체계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핵무기의 그늘막(nuclear shadow)이 인도의 강경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 것인가?   어쨌든 핵무기의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양국 간 분쟁과 물리적 충돌은 빈번하게 발생했고 분쟁 발생 자체를 방지하는데 핵무기의 역할은 무력해 보인다. 무력분쟁의 발생 억지나 예방에 큰 역할을 못하는 핵무기를 그래도 보유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한쪽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 국가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돌아보면서 우크라이나가 만일 1994년 부다페스트 의정서를 신뢰하여 소련에서 물려받은 핵무기를 폐기하는 실책을 범하지 않고 핵무기를 계속 보유했더라면 푸틴이 감히 침공하지 않았을 거란 주장이 많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계속 핵무기를 보유했더라도 키이우를 향한 대규모 공격은 아니라도 동부 지역에서의 공세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만일 그런 공격이 발생했을 때 핵무기를 보유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사용했을까? 그러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푸틴의 행동에 대한 억지로 작용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고위관리들이 수시로 핵사용 가능성을 위협하였지만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나토의 대립은 핵무기가 배후에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했으나 대체로 재래식 전력을 사용한 창의성, 과감성, 인내심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최근 서구 국가의 더욱 대담해진 지원을 받으며 쿠르스크 진격 등 러시아의 핵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진행하였다(Avey 2025). 5월말에 우크라이나는 Operation Spider's Web을 전격 감행하여 러시아 영토 깊숙이 위치한 공군 비행장 여러개를 드론으로 공격하여 핵무장이 가능한 러시아 전략폭격기 수십대를 파괴하였다. 러시아 내에서 핵무기로 보복하자는 여론이 높지만 실제 보복은 재래식 전력으로 이루어졌다(Lanversin 2025). 이런 상황에서 핵무기의 역할이나 유용성은 대체 무엇인가?   한반도에서도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다음에 마치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양측의 상대에 대한 과감하고 높은 수준의 공세와 충돌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인도 파키스탄 무력충돌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과시 되었듯이 값싸고 효율적이며 확전에 대한 부담이 적은 드론이 광범위하게 공격적으로 사용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방어나 사후 대응이 만만치 않다. 인도-파키스탄의 경우 핵무기의 등장이 양국 간의 불안정성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낮은 단계의 제한적 충돌을 오히려 부추긴 측면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정도를 제외하면 물리적 군사충돌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의 핵보유가 이를 야기시킬 수 있다. 한반도에서도 남아시아에서처럼 양측 모두의 핵무기 보유가 양국 간 핵무기 사용에 이를 수 있는 전면전 수준으로의 확전은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없었던 낮은 단계의 분쟁과 군사적 충돌을 지속적으로 감내하면서 매번 확전 사다리의 높은 단계로의 위험한 이동이라는 악몽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게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의도하지 않은 확전을 통한 (inadvertent escalation) 핵사용에 근접해짐을 의미한다. 또한 북한의 낮은 단계 도발에 대해 한국이 단호하고 과감하게 군사적으로 응징한다 하더라도 남아시아 사례처럼 이러한 대응이 향후 억지력을 회복(restore deterrence)하여 북한의 도발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즉 핵무기 보유가 공포의 균형을 창출하여 양측이 편치는 않지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리라는 희망은 말그대로 희망사항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예방공격을 포함한 견제나 낮은 단계의 도발도 예상되지만 신생 핵무기 보유국가에게 흔히 나타나는 것처럼(Horowitz 2009; Bell 2021) 핵무기 보유 직후 공격적이고(aggressive) 대담해진(emboldened) 한국의 더욱 강경해진 정책 추진도 충분히 가능하다. 양국이 모두 핵무기를 등에 업고 확전통제에 대한 (그릇된) 확신을 갖고 공세적으로 행동한다면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낮은 단계의 제한적 수준이라도 군사적 충돌의 지속을 목도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항상 북한은 악인, 포식자이자 한국을 부당하게 도발하는 공격자였다. 자체 핵무장 이후에 한국은 계속 이전과 같이 방어자, 피해를 감내하고 공격을 자제하는 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4) 한반도의 주변국과 강대국 관계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미국이라는 제3국의 존재가 너무나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때로는 상당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주기도 했지만 특히 양국이 모두 핵보유국이 된 이후 양국 모두에게 분쟁 시 미국의 개입과 중재는 위기를 경감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번 5월의 무력충돌에도 초기의 태도와 달리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 시그널 이후 적극 개입하여 휴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파키스탄에게 여전히 핵위기를 경감하는데 미국의 개입을 상정하는 촉매형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미국은 중재하는 제3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분쟁 당사자였다. 한국이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한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더 이상의 동맹국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남북한 간 위기 발생 시 미국이 남아시아에서와 같은 '중립적인' 제3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이외의 어느 나라에게도 이러한 역할은 크게 버거울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핵보유 이후 남북한 간에 핵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과연 적극적으로 개입, 중재할지 여부도 여러 변수가 고려되어야 하고, 미국이 어떻게든 개입한다고 판단되면 북한이 확전에 대해 우려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공세적으로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인도-파키스탄 핵대결이 더욱 복잡해지고 해결이 어려운 방향으로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양국 주변을 둘러싼 강대국의 경쟁 관계이다. 특히 인도가 미국과, 파키스탄이 중국과 갈수록 돈독한 관계를 강화시켜 나가면서 미-중 라이벌 관계 심화는 인도-파키스탄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의 급속한 핵전력 증대 노력은 미국도 긴장시키지만 인도의 전략적 계산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남아시아의 핵구도는 트릴레마(trilemma)라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FH Khan 2022; Sood 2022). [15] 인도의 주된 핵개발 이유가 파키스탄 못지않게 중국에 있었듯이 인도는 파키스탄과 중국을 동시에 억지해야 하는 만만찮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인도의 핵전력 개발이 최근 핵무기의 양질적 증대를 위해 크게 노력하는 중국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관심이 옮겨지고 그에 상응하는 무기체계를 개발, 배치하는 게 인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파키스탄을 자극하여 맞대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근 인도가 재래식 탄도미사일 전력에서 훨씬 앞서는 중국에 맞서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 위주로 신설 중인 통합로켓군(IRF)의 경우 여러 미사일 체계를 시험발사하며 IRF 산하에 배치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 중 하나인 BM-4 재래식 탄도미사일의 경우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신형 Agni-P 미사일과 유사한 외형, 성능을 갖고 있어서 인도의 의도가 무엇이건 파키스탄을 크게 자극시킬 수 있다(Haider 2025).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한반도 주변에도 역시 남북한, 중국이라는 트릴레마가 나타날 수 있다. 미국까지 이 동학에 포함된다면 콰드릴레마(quadrilemma)가 될 것인데 두 개의 핵무기 보유국인 상황과 달리 트릴레마, 혹은 콰드릴레마가 된다면 이미 불신과 오인(misperception)이 심각한 상황에서 위기 안정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훨씬 크고 핵군비경쟁도 심화되어 전반적인 전략적 안정성이 상당히 약화될 가능성이 급속히 커지게 된다. 이미 동아시아에서 한미동맹의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중국을 자극하여 중국의 강경대응에 일조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한국까지 이 복잡미묘한 동학의 일부가 된다면 동아시아의 안보환경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16] 핵강대국인 러시아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제외해도 트릴레마, 혹은 콰드릴레마 상황은 충분히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Wolfsthal, Kristensen and Korda(2025)는 현재 존재하는 9개의 핵국가 간의 관계가 이미 어떠한 설명이나 해결책도 힘들게 하는 9체 문제(nine-body problem)를 생성한다고 한탄하였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또한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수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공격을 받은 국가로서 여전히 핵무기에 대한 반감이 강하지만, 단시간 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충분한 물질과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가 결정을 강제한다면 핵무기 확보에 나설 수 있다. 일본의 핵무장은 한국의 안보에 유리할까? 북한-중국(-러시아)에 맞서 핵무기를 보유한 한-일 간 협력이 지역 안보 균형의 기제로서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5체 문제, 6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핵무기 보유 국가의 증대와 핵무기 숫자의 증가는 오산(miscalculation)과 오인(misperception), 그리고 예기치 않은 사고를 야기할 가능성을 늘게 할 것이다.     IV. 결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날로 고도화되고 미국의 확장억지에 대한 확신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자체핵무장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막연한 공포의 균형을 통한 안보 강화 등의 희망이 과연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지 장단점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와 유사점이 많은 인도-파키스탄 핵대결 사례를 분석하여 교훈을 얻고자 했는데 한국의 핵보유는 경제, 국제 사회 위상, NPT 등의 이슈를 차치하고 군사 안보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 보인다. 한국의 자체핵무장은 남아시아의 경우처럼 북한으로부터의 대규모 침공을 통한 전면전을 방지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끊임없는 긴장과 위기, 소규모 무력충돌, 종국에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킬 안보딜레마의 악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미 남아시아 안보 전문가들이 비슷한 이유로 한국의 핵무장 고려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Akhtar 2023; O'Donnell 2023; J Panda 2023; Westmyer and Joshi. 2013). 국경을 맞대고 군사적으로 대치하며 (남아시아보다도 훨씬) 작전종심도 짧은 국가 간 양국 모두의 핵무기 보유는 대외적 안보 차원에서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가능성이 많으며 핵무기 획득을 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도 대단히 적을 것으로 사료된다.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인도-파키스탄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는 대규모 핵군비통제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신뢰구축조치(CBM)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5월의 무력충돌이 휴전에 이르는 데는 양 군 군사작전국장(Director General of Military Operations) 간 구축되어 있는 소통 채널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3월 인도의 BrahMos 미사일이 오발사되어 파키스탄 영내에 떨어졌을 때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여 양국 간 위기관리 메커니즘과 위기안정성에 심각한 과제를 던져준 바 있다(Korda 2022). 적대국 간 위기는 발생할 수 있어도 위기를 충돌로 비화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핫라인조차 부재한 남북관계에서 초보적인 CBM부터 시작하여 위기안정성을 강화시키려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현재도 위기 발생 시 위기안정성도 낮고 확전이 통제되기도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Bell and Mcdonald 2019) 향후 자체핵무장을 포함한 어떠한 안보증진 노력을 추진하더라도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V. 참고문헌   김태형. 2024. “글로벌 안정/불안정 역설의 심화: 인도-파키스탄 사례에서의 교훈과 과제.” 『국제정치논총』 64, 1.   김태형. 2023. “미・중・러 핵트릴레마(nuclear trilemma)를 통해 본 글로벌 핵질서의 변화 전망.” 『국제정치논총』 63, 2.   김태형. 2019.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이해: 신현실주의로 바라본 양국의 핵개발과 안보전략 변화』. 서강대학교 출판부.   김태형·김보미. 2023. “북한은 파키스탄의 길을 가고 있는가: 북한과 파키스탄의 전술핵무기 역할과 핵지휘통제 비교.” 『국방연구』 66, 2.   Ahmed, Samina. 1999. “Pakistan's Nuclear Weapons Program: Turning Points and Nuclear Choices.” International Security, 23(4): 178-204.   Akhtar, Rabia. 2023. “Learning From South Asia’s Nuclearization: Lessons for South Korea.” 38 North, Oct 17. https://www.38north.org/2023/10/learning-from-south-asias-nuclearization-lessons-for-south-korea/   Ahmed, Ashfaq, Muhammad Jawad Hashmi & Saima Kausar. 2019. “Paskitan Nuclear Doctrine from Minimum Deterrence to Full Spectrum Credible Minimum Deterrence.” Pakistan Political Science Review, 3(2): 226-241.   Altaf, Zohaib & Nimra Javed. 2025. “One Small Mistake Could Trigger An Uncontrollable Escalation Between India and Pakistan.” The Diplomat, May 2. https://thediplomat.com/2025/05/one-small-mistake-could-trigger-an-uncontrollable-escalation-between-india-and-pakistan/   Ataman, Joseph. 2025. “To many in Europe, Trump has punched holes in NATO’s nuclear umbrella.” CNN, Mar 16. https://edition.cnn.com/2025/03/16/europe/trump-nato-umbrella-europe-intl   Avey, Paul. 2025. “When Nuclear Weapons Fail to Deter: The Ultimate Weapon Is Not Always the Best Defense.” Foreign Affairs, Mar 6.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when-nuclear-weapons-fail-deter   Bas, Debak. 2025. “An Unreliable America Means More Countries Want the Bomb: Without credible U.S. security guarantees, nuclear proliferation is likely to increase rapidly across Europe and Asia.” Foreign Policy, Mar 14. https://foreignpolicy.com/2025/03/14/trump-nuclear-weapons-proliferation-nato-security-guarantees-korea-poland-germany-japan/   Basrur, Amoha. 2025. “The Use of Drones Marks a New Phase in India-Pakistan Hostilities.” Observer Research Foundation, May 13. https://www.orfonline.org/expert-speak/the-use-of-drones-marks-a-new-phase-in-india-pakistan-hostilities   Bell, Mark.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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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sthal, Kristensen and Korda(2025)는 현재 존재하는 9개의 핵국가 간의 관계가 이미 어떠한 설명이나 해결책도 힘들게 하는 9체 문제(nine-body problem)를 생성한다고 한탄하였다.     ■ 김태형_숭실대학교 교수     ■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성예나, 인턴장학생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crkim@eai.or.kr  

김태형 2025-06-20조회 : 2350
스페셜리포트
[트럼프 2기 북핵문제와 한국의 핵옵션] ③ 북한의 핵고도화: 평가와 전망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북한의 "새로운 핵무력 강화노선"   2025년 초, 북한은 "새로운 핵무력 강화 노선"을 계속 언급해왔다. 지난 1월 17일 외무성 대외정책실장 담화를 시작으로 연초부터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왔고(KCNA Watch 1/17/2025),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 이후 핵무력 고도화 방침을 지속적으로 재발신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핵능력을 고도화해온 북한이 연이어 "새로운" 노선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지난 2월 8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군 창건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핵역량을 포함한 모든 억제력을 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 사업"을 언급하며 핵무력을 고도화할 방침을 밝혔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 연합훈련과 한미일 협력 강화가 동북아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힘의 우위를 숭상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주는 것이 정답"이라며 군사적 대응을 시사했다(Reuters 2/8/2025).   같은 달,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 알렉산드리아호(SSN-757)의 부산항 입항에 대해서는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더 이상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도발행위를 중지하라"면서 "새로운 핵능력 및 자위력 강화조치는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기필코 나아가야 하는가를 명백히 제시해주고 있다"고 말했다(Reuters 2/11/2025).   또 뮌헨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에는, "조선반도와 지역에서의 집단적 대결과 충돌을 고취하는 미·일·한의 모험주의적 망동에 엄중한 우려를 표시"한다면서, "앞으로도 국가수반이 천명한 새로운 핵무력 강화노선을 일관하게 견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략적 힘의 상향조정에 필요한 새로운 기회를 계속 잡게 될 것"이며 "조·미 격돌구도에서 우리는 훨씬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Seo 2025).   지난 5월 8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장거리포・미사일 체계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전쟁 억제 전략과 전쟁 수행의 모든 면에서 핵무력의 중추적 역할을 부단히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는 "전술핵무기체계들의 전투적 신뢰성을 더욱 높이고 운용 공간을 복합적으로 부단히 확장해 나가기 위한 중요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Reuters 5/8/2025).   잇따라 강조된 북한의 새로운 계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추진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향후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대한 우세를 추구하기 위한 분명한 목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방침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나 미북대화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북한의 의도와 목표는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다.     II. "새로운 노선"의 과거 사례   북한 사회에서는 김정은 위원장만이 "새로운 노선"을 천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김정은은 몇 번에 걸쳐 1국가전략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예고하였으며, 2핵무력 강화에 있어서도 "새로운", "중대한" 등의 수식어를 통해 핵무력 강화노선의 전환을 제시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으며, 핵무력의 기술적 고도화보다는 대내외의 정치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① 2013년 3월, 북한은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서 "병진노선"을 채택하였다(Scott 2013). 김정은 집권 초기에 국제사회의 제제와 압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이 주요 과제인 상황이었으며, 2012년 4월 헌법을 개정하여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하였고 2013년 2월에는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직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고, 공식 채택되었다.   1-② 2018년 4월,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채택하기도 했다. 당시 남북 및 미북대화가 급물살을 타는 대외상황을 반영했는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전의 병진노선에서 경제 발전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The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2018).   2-① 2014년 3월,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응하여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Reuters 03/30/2014).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구상을 발표하면서 남측의 통일 구상이 체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016년까지 실제 핵실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핵능력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었다.   2-② 2020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예고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응하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발표한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해 10월에 신형 ICBM 화성16형, 신형 SLBM 북극성-4ㅅ을 공개하면서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Arms Control Association 2020).     III. 북한의 의도와 목표는 무엇인가?   첫째, 북한체제의 보장을 위한 핵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북한은 핵무력을 김정은 체제의 핵심 보장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하노이 회담에서 비핵화 노선을 선택함으로써 정권 붕괴에 이른 리비아 사례를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Larison 2019),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Sohn 2023). 미국이 "핵국가(Nuclear Power)"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헷갈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북한에게 있어 핵무력은 체제생존의 핵심 전략자산이다.   둘째, 내부결속을 위한 전략노선을 제시한다. 내부 경제난과 국제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체제 생존을 위해서는 내부 결속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대북압박이 강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자력갱생과 대외 강경책을 강조하면서 내부의 결속을 다질 필요가 크다. 상당기간 핵사상의 이론화를 통해 "동방의 핵강국", "주체조선"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략노선은 내부결속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다(Howell 2020).   셋째,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대응을 보여준다. 미중의 전략경쟁 격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한미일 안보협력은 오히려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에서의 한미일 및 동맹/우호국들의 연합군사훈련은 더욱 촘촘하게 짜여질 가능성이 큰데, 북한 지도부는 이를 심각한 압박 및 군사적 위협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력을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넷째, 대미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밀착 행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고, 한반도에서 우세를 달성하기 위한 든든한 뒷배를 마련하고자 수정주의적 행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행보는 북한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AP News 6/5/2025). 따라서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다 강경하고 공세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노선의 천명을 통해서 북한은 몇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첫째, 국가 발전방향 및 우선순위의 변화를 제시하는데, 핵탄두, 무기체계/투발수단, 핵운용체계 등에 있어서의 우선순위 재설정을 의미한다. 둘째, 국제사회에 대한 전략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셋째, 김정은이 혁신적인 지도자로서 국가 발전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체제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확고히 할 수 있다. 넷째, 기존의 노선으로부터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바, 북한이 정책적 유연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며 필요에 따라 전략적 조정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IV. 다음 단계(next step)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5개년 계획"의 평가   북한이 아직 "새로운" 핵무력 강화노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기존의" 핵무력 강화노선을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핵능력과 관련하여 2021년 1월 8일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에서 공개된 "전략무기 5대 과업"은 북한 핵능력의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5개년 계획의 목표연도를 맞은 2025년 현재 목표의 상당 부분을 달성했음을 알 수 있다.   2) 북한의 전략방향   북한은 스스로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면서 핵능력 확보를 공식화하였다. 비핀 나랑의 구분을 빌어서 '확증보복태세와 비대칭확전의 복합태세'를 추구하고 있다는 안전한 분석도 있지만(함형필 2021), 핵능력이 고도화됨에 따라서 분명한 목표와 우선순위의 변화를 식별해낼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새로운 핵전략 목표"를 예상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핵무력 증강 목표"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전략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차후 단계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들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의 "전쟁준비태세 완비" 강조, △핵무기 발사 플랫폼 및 방식의 다양화, △화산-31, 해일1, 2형 공개, △핵반격가상 종합전술훈련, 모의공중폭발실험, △핵무기종합관리체계(핵방아쇠) 구축 등이 그것이다(조장원 2025).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북한 핵전략의 변화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전략목표로서 제한핵전쟁을 통한 영토완정이다(김태현 2024). 전술핵무기의 사용가능성을 열어두어 핵확전 위협을 가하면서 통제 가능한 수준과 범위의 전쟁에서 승리를 달성하는 것이 북한의 전략목표이다. 2023년말 김 위원장이 직접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하면서 현상유지적 성향으로 전환한 것이냐의 논쟁에도 불구하고(권숙도 2024; 정대진 2024; 이중구 2024; 강혜석 2024), 북한은 2023년 당중앙위 제8기 9차 전원회의 및 2024년 시정연설 등을 통해 "대내외적인 환경이 허락한다면 한반도 영토완정 목표를 구추할 것"임을 천명했다. 결국 북한은 공세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은 것임을 의미한다.   —對美 : 전면적 핵전쟁으로의 확전 위협을 통해 미국의 군사개입과 전시 증원을 억제, 저지, 지연, 방해 —對南 : 주요 표적에 대한 핵・재래식 전력을 결합한 효과적인 타격작전 수행을 통해 주도권 확보 및 승리 달성   둘째, 전략개념으로서 "핵배합전"을 추구하고 있다(김태현 2025). 재래식 전력과 전쟁지속능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한미동맹의 취약성을 활용하기 위해서 "핵・재래식 통합공격"을 통해 재래식과 핵무기의 배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법에서는 핵무기의 역할을 억제・보복・격퇴에 두었지만, 2022년 핵무력정책 법령에서는 핵선제타격 및 선제핵사용 등 분쟁시 핵무기의 적극적 개입을 전제하는 공세적 핵교리로 전환하였다.   핵배합전은 △핵과 재래식 미사일 섞어쏘기, △핵무기와 장사정포의 동시 사용, △핵공격과 사이버전자전의 결합 등과 같은 군사개념을 포함한다. 이는 개전 초기, 미군 증원, 전세 역전, 북한지역 진출, 정권 압박 등 모든 단계에서 북한이 의도하는 충분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며,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셋째, 북한 핵전력의 증강목표는 300기 이상의 핵전력을 갖추는 것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억제 및 보복 역할에 한정하지 않고 선제사용으로 확대한다면, △전략핵무기와 전술핵무기를 적정 비율로 최적화하고, △목표달성을 위한 작전 운용능력을 갖추는 것이 차후 증강목표가 될 것이다.   먼저, 미국의 군사개입과 전시 증원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 본토 및 역내 전략적 중심을 타격할 수 있는 ICBM과 전략핵잠수함의 "2축 체계(Nuclear Dyad)"를 100여기 수준에서 갖추고자 한다. 전략핵무기의 신뢰성을 아직 확신하기 어렵지만, 5개년 계획이 제시한 "전략무기 5대 과업"은 모두 전략핵무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2025년 말에 이르면 상당 부분 신뢰성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한국에 대한 군사적 주도권을 갖기 위해 주요 군사표적 타격을 위한 전술핵무기는 200여기 수준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지휘시설, 비행기지, 항만, 기타 표적 타격/예비용 등임. 이미 스커드 계열, KN-23(이스탄데르) 계열의 전술핵무기는 작전운용이 가능하며, 북극성-1, 2형, 소형전술 SLBM, 해일-1, 2형, 화살-1, 2형 등도 본격적인 양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3) 새로운 노선: 3가지 전략옵션   북한의 "새로운 핵무력 강화노선" 역시 제한핵전쟁과 핵배합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기존 5개년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차후 단계로의 전환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위해 선택가능한 3가지 전략옵션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북한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각각의 옵션별로 분명한 장단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1. 타격체계의 추가적 증강   기존 5개년 계획의 성과를 확대하고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중점을 두어 핵무기의 질량적 증강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형(고체) ICBM 개발 및 양산, 전술핵무기의 대량생산, 핵탄두 보유량의 증대 등이 주요한 과업이 될 것이다(Radio Free Asia May/14/2025). 북한의 기반 군사능력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타격체계의 증강을 통해서 전력의 비대칭성을 극대화한다는 강점을 가지지만, 여전히 한미에 위협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2. 핵타격을 위한 작전의 완전성 제고   5개년 계획을 통해 전략핵의 실존적인 억제력을 확보했다고 보면, 한반도에서의 제한핵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작전완전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미 소형화 및 표준화된 화산-31을 대량생산함과 동시에, 일련의 전술핵 운용을 위한 완결된 작전기획이 요구된다(Tertrais 2021). △표적의 탐지, 식별, 결심, 타격을 포괄하는 표적화(targeting), △표적, 무기체계, 투발수단, 시간순서를 일치시키는 전력기획(force planning), △전력기획의 결과로 전력화되는 감시정찰, 핵탄두, 투발수단, 지휘통제통신(NC3) 등의 무기체계(weapon systerns), △무기체계의 배치와 대기수준을 의미하는 전력태세(force posture)가 적절히 구성되어야 한다.   3. 대미 압박수단으로서 전략핵 증강   대미 협상전략의 차원에서 북한이 전략핵을 우선적으로 증강할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에서의 핵우세를 이미 달성한 것으로 보고,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압박수단 또는 대미 억제력 확보 차원에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과 SLBM의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용 대비 이익이 크지 않고, 실존적 억제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평가되지만,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약적 기술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전략핵잠수함 및 SLBM, ICBM의 재진입 기술 등이 다음 목표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위의 세가지 옵션 중에 2. "핵작전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일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타격체계의 증강은 5개년 계획, 기존 체계와의 차별성이 없어 대내 결집이나 대외 전략메시지 발신을 위한 수단의 효과가 크지 않고, 전략핵무기에 대한 집중은 러시아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실현가능성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이 전술핵 운용의 완전성을 갖추게 되면 한반도에서 심각한 전략적 불균형이 예상되는바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V. "정찰-타격 복합체" 완성을 통한 핵배합전의 구현   북한이 "핵작전의 완전성"을 추구한다면 북한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는 핵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하거나 복합적인 억제 효과를 추구하는 전략적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작전적 차원에서 핵-재래식통합(CNI)의 다양한 조합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핵선제타격 후 재래식 부대의 공세, 사이버, 특수전 등 비대칭 전력과의 결합, 핵위협을 활용한 협상전 병행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핵배합전 수행을 위한 "핵작전의 완전성"을 추구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능력을 확보하려고 할 것인가? 북한의 입장에서는 모든 작전에서 완전성과 우세를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세밀하게 계산된 타격에 집중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핵타격의 완전성에 초점을 둔다면, 러시아의 군사개념인 "정찰-타격 복합체(разведывательно-ударный комплекс, RYK)"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Lester and Bartles 2018).   러시아의 정찰-타격 복합체는 고가치 표적에 대한 실시간 전략타격에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정보 및 재래식 능력에서 절대열세인 북한의 경우에는 실시간 표적정보와 타격체계만을 연결하여 전쟁수행 전반에 걸쳐 활용 가능한 작전체계라고 할 수 있다. 정보 데이터, 정확한 타격체계, 화력지휘센터, 전술미사일을 연계하여 상대 표적을 타격하는 시스템으로, 장거리 타격이 가능한 정밀유도무기(미사일, 항공기 탑재 스마트무기 등)와 결합할 수 있다.   북한 역시 핵배합전을 추구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정찰-타격 복합체"를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당장 러시아와 같은 첨단 무기체계로 뒷받침되지는 못하겠지만,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기능간의 연동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핵능력과 공세적 핵전략을 통해 상대적인 우세를 유지하여 비대칭성을 극대화하고, 전략정보나 전쟁지속능력과 같은 취약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사례에서 북한의 정찰-타격 복합체 구현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5가지로 단순화하여 도출할 수 있다. △감시정찰, △정보처리/분석, △타격자산, △군수지원, △지휘통제통신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은 지금까지 핵탄두를 중심으로 타격자산의 증강에 집중하여 왔으며, 미 본토 타격능력과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제외하고 지역 수준 전역핵 타격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천명한 것처럼, 핵무력을 제한핵전쟁 수행능력의 일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파괴력 뿐만 아니라 정확성과 융통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도 △표적화를 위한 감시정찰 및 정보처리/분석, △신뢰성을 갖춘 지휘통제통신, △군수지원의 회복력이 담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 상태(좌)에서 취약한 부분을 우선 보완함으로써 균형된 능력(우)을 추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서 향후 정찰-타격 복합체의 완전성을 위해 다음 단계에서 북한이 추구할 능력과 무기체계를 개략적으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감시정찰 측면에서는 UAV와 정찰위성, 지상감시레이더, 전자정보 장비 등이 있다. 둘째, 정보처리/분석을 위한 데이터분석시스템, 전장자동표적분석체계 등이다. 셋째, 상대적으로 고도화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타격자산 측면에서는, MIRV나 재진입기술, 정밀유도, 극초음속미사일 등이 다음 단계이다. 넷째, 군수 측면에서는 이동식 탄약/연료공급 차량과 TEL 대수의 증가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휘통제통신 측면에서는 이동식 지휘통제센터, 고주파/위성통신체계, 사이버전 능력 등을 들 수 있다(Smith and Bernstein 2022).   VI. 한국의 전략적 요구   2025년 북한의 "새로운 핵무력 강화노선"은 금방 구체화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의 핵위협에 직면해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목표와 우선순위 변화를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변화방향은 한국과의 전략적 균형과 억제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특히 중요하다. 북한이 타격능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실제 작전적 사용을 위해 취약한 요소들을 보완해간다면, 북한은 긍정적 핵학습의 경로를 벗어나 다시 공세적인 목표를 추구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손한별 2023). 따라서 한국은 전략적 취약성을 보완하면서 경쟁공간에서 우세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핵무장론을 넘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주장하지만, 이는 실효성과 도덕성 측면에서 비용이 상당하다. 한국은 고도화된 재래식 전력과 동맹 기반의 공동 억제체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핵무기 없이 핵위협을 억제하는 국가'라는 규범적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실질적 안보와 국제적 정당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선택이자, 중장기적으로 한국 안보전략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기술발전을 고려한 능동적인 군사력 건설이다. 북한이 선제·보복·지휘통제·군수지원을 포함한 '핵작전의 완전성'을 목표로 군사력을 재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단일 플랫폼의 증강을 넘어선 통합전력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UAV·위성·전자전 자산 등 정찰자산과 장거리 정밀타격 수단 간 연계뿐 아니라, 지휘통제체계(C4ISR)의 융합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제타격 능력'이 아니라 포괄적, 실시간 대응체계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셋째, 한미 연합 핵기획·작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전술핵 실전화에 대응해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을 제도화하여 '공동기획 및 작전체계'의 발전이 요구된다. 단순히 '정보공유' 수준을 넘어 '공동기획–공동결심–공동집행'의 3단계 구조를 실현함을 뜻하며, 연합작전계획 개정과 '한미 맞춤형 억제전략'의 진화를 통해 제도화될 수 있다. 특히 핵-재래식 통합(CNI) 개념 하에서 한국형 3축체계와 연계된 연합지휘체계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손한별 2025).   넷째, 외교·군사・통일의 통합 운용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무력을 군사적 억제력 뿐만 아니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단편적인 군사대응을 넘어 포괄적 전략체계 구성을 요구받고 있다. 대북제재의 지속 가능성과 정치적 효과성, 전략적 카드 활용도 모두 군사적 억제력과 맞물려, 정보·사이버·외교·경제 압박 등 '복합 억제옵션'을 동시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통합억제' 전략의 확장된 버전으로, 모든 국력수단의 상호보완과 순환성이 구조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다자안보협력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러시아-북한-중국 협력의 재구성은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연합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기존의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도, NATO, 호주, 필리핀, 기타 중견국 등과의 전략연대를 확대하는 다자적 억제 네트워크를 추진해야 한다. 이는 군사수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단의 연동을 촉진하는 기반이 되며, 특히 '네트워크형 확장억제' 전략 구상의 실현조건이 된다. 한국은 다자연대의 형성과정에서 기획자(planner)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글로벌 전략무대에서의 발언력과 억제 신뢰도를 동시에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   VII. 참고문헌   강혜석.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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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별 2025-06-20조회 : 2060
스페셜리포트
[트럼프 2기 북핵문제와 한국의 핵옵션 ] ② 한국 핵무장 옵션의 손익계산과 민수용 농축재처리 요구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한국인의 핵무장 요구 증대   지난 수년간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한국 국민의 자체 핵무장 지지율은 70% 내외를 기록했다. 이웃 일본 국민의 핵무장 지지가 20% 이내라는 점을 본다면, 매우 높은 지지율이 아닐 수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의 한 여론조사(2022.5)에서 “제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핵무장을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지지 여론이 63.6%를 기록한 것을 보면 국민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지지는 상당히 공고해 보인다(아산정책연구원 2022).   보통 한국인은 북한의 핵위협 때문에, 다시 말해 ‘안보’ 동기 때문에 핵무장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은 핵으로만 억지할 수 있다.” “미국 핵우산을 믿을 수 없으므로 핵무장해야 한다” 등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 국민이 핵무장을 지지하는 동기는 복합적이다. 상기 아산 여론조사를 보면, 핵무장을 원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의 32.1%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를 선택했고, 33.7%가 “주권 국가로서 핵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서,” 33.4%가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서”를 선택했다.   이 수치를 보면, 한국민은 핵무장 3대 동기(안보, 정치, 위신) 중에서 ‘위신’을 매우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냉전기 들어 1995년 핵비확산조약(NPT)이 영구 연장된 이후 국제사회, 특히 시민사회에서는 핵무기가 갖는 무차별적인 대량살상과 항구적인 환경파괴 특성으로 인해, 반평화적, 반인류적, 반환경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퍼졌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 내에서 반핵무기 정서는 크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왜 핵무장을 지지할까? 사실 한국인들의 핵무기에 대한 높은 관심과 지지는 북한 핵무장 시대를 앞선다. 한국은 국가 규모로 ‘중소국’이며,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끼인 국가’이다. 결국 한반도는 강대국 정치로 인해 분단되었고, 한국은 건국 이래 항상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과 북한의 안보 위협에 시달렸다. 냉전기 한국은 국가생존을 위해 핵 초강대국인 미국과 동맹을 맺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핵무장 대신 핵우산을 선택하고 NPT에 가입했다. 이후 한국은 미국 핵우산의 보호 속에서 정치와 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탈냉전기 들어 세계적인 중견국으로 부상했다. 이런 중소국가, 끼인 국가의 속성과 이로 인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강대국”을 열망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민의 핵무장 동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인식과 일치한다.   북한의 경우, 탈냉전기 들어 전통적인 후원 세력인 공산 진영이 붕괴하고 국내적으로 안보 위기, 체제 위기가 심화하자 핵개발을 자구책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후반 마침내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하자,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도 핵무장 해야 하는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전통적인 핵전략 지식에 따르면,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이 약육강식의 무정부적 국제 무질서 속에 있고, 또한 핵 강대국을 동맹국으로 갖지 못했다면 온갖 국제적 제재압박을 무릅쓰고 핵무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 최강의 핵 초강대국을 후원 동맹국으로 갖고, 동맹의 보호 속에서 경제발전에 성공하고 세계적으로 통상국가로 부상했다. 또한 핵개발을 포기하고 NPT 체제에 참여한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국가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핵무장을 위해서 이런 성과를 포기할 것인가.   위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인들의 핵무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하지만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통일연구원의 2023년 연례 여론조사를 보면, 핵무장에 따른 부작용(경제제재, 동맹 훼손 등)을 감수하며 핵무장 하겠느냐는 질문에서는 지지도가 약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통계는 한국민의 핵무장 지지가 핵무장의 정치적·경제적 비용에 따라 크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II. 자체 핵무장론의 오류   이 글은 국내 핵무장론이 불확실한 핵무장 이익과 한국의 핵무기 개발 역량을 비현실적으로 과대평가하는 한편,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 핵비확산 국제레짐의 실효성, 제재의 효과를 현저히 과소평가한다고 본다.   첫째, 핵무장론은 “한국이 적법하게 NPT 제10조 탈퇴조항을 탈퇴하고 핵개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 한국이 NPT를 탈퇴하는 절차에 들어가면, 유엔안보리, IAEA, 미국, 일본, EU 국가, 중국 등 주요 국제기관과 국가의 강력한 비판과 제재 압박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이 실제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을 진행하면, 제재 위협에 그치지 않고 온갖 실질적인 다자적·양자적 제재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한국이 NPT 10조가 규정한 절차에 따라 탈퇴하더라도, 유엔안보리와 주요 이해 관계국은 세계평화, 지역안정,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제재를 적극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한국은 그동안 쌓아 올린 선진국, 중견국, 비핵평화국가, NPT 모범 회원국, 원자력 이용 모범국가의 국제적 지위에서 순식간에 핵확산 국가, 국제규범 위반국가, 불량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둘째, 핵무장론은 “미국이 한국 핵무장을 묵인하고, 결국 수용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한국이 자체 핵무장과 한미동맹(핵우산)을 둘 다 가질 수 없는 국제정치 현실을 간과했다. 또한 이 주장은 미 정부가 일관되게 핵비확산 원칙을 견지하고, 한국에 대해서 평화적 이용을 위한 농축재처리에 대한 접근마저 철저히 차단한 역사적 경험도 무시하고 있다. 미국은 1945년 첫 핵실험 직후부터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견제했고, 1970년 NPT가 발효한 이후 더욱 엄격한 핵비확산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동맹국에게 핵우산 제공을 조건으로 독자적 핵무장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했다. 심지어 핵개발을 우려하여, 1970년대 중반부터는 농축재처리 시설 비보유국이 새로이 농축재처리 기술을 획득하는 것을 반대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새로운 농축재처리 기술의 유입이 역내 핵확산, 지역 불안정, 군비경쟁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더욱 엄격히 농축재처리 기술 도입을 차단했다.   최근 일부 미국 인사가 한국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핵무장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의 주체는 모두 전직 관료들이며,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의 핵개발을 동의할, 심지어 묵인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트럼프 행정부가 핵확산에 다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후속 행정부는 누구든 다시 엄격한 핵비확산 원칙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셋째, 핵무장론은 “한국이 단기간에 핵개발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핵무장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이른 시일 안에, 심지어 1년 내 핵무장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추고 있다”라고 발언했다(2023.4). 그런데 1975년부터 미국이 한국에 농축재처리 기술에 대한 접근을 금지한 이후 국내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었고, 관련 전문가도 없는 실상을 볼 때 1년 내 핵개발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농축 또는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시설을 새로이 건설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최소한 3~5년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넷째, 핵무장론은 “국가생존용 핵무장을 위해 경제제재는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제 제재가 초래할 경제적·외교적 고통은 북한과 이란의 사례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과연 한국이 이런 제재를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우 폐쇄적, 자주적, 자조적 정치경제체제를 가진 북한을 제외하고 국제 제재에 맞서 핵개발을 강행한 사례는 없다. 더욱이 한국은 전형적인 개방적 통상국가로서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특별히 높아 다른 어떤 국가보다 제재에 취약하다.   다섯째, 핵무장론은 “미국의 ‘찢어진 핵우산’을 신뢰할 수 없으며, 오직 ‘핵 자강’만이 남북 간 ‘핵 평화’를 달성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핵무장은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 하면 한미동맹은 현저히 약해질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있다. 과연 한국 핵무장의 가치가 한미동맹(핵우산, 주한미군 주둔)의 가치보다 크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동안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 안보, 특히 북한의 침공 억지와 전쟁 방지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미국은 냉전기에 소련의 압도적인 핵위협에도 불구하고, 동맹국에 대한 안보공약과 핵우산을 충실히 제공했다. 최근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화하고 핵위협이 증대하자, 미국은 핵협의그룹(NCG)을 설치하고 전략자산의 배치를 더욱 가시화하며 확장억제를 한층 강화했다.   또한 인도-파키스탄 사례를 보변, 핵무장국 간 상호 핵억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수시로 발생했고 핵사용 위험도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남과 북은 분단국으로서 인도-파키스탄 간 안보 경쟁보다 더욱 열악하게 서로 상대방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극단적인 제로섬 안보경쟁, 즉 통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만약 한국의 핵무장 한다 해도, 미국-러시아 간 상호 억지는 막론하고, 인도-파키스탄 간 상호 억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핵 억지 관계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III. 핵잠재력 주장, 소위 ‘일본 모델’에 대한 비판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전문가 중 일부는 자체 핵무장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여, 차선책으로 농축재처리 역량을 획득함으로써 ‘핵잠재력’을 보유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핵 옵션은 농축재처리 역량을 보유한 소위 ‘일본 모델’이다. 그런데 이런 핵잠재력 주장은 일견 자체 핵무장론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한국의 외교안보 현실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실현성도 매우 낮다.   첫째, 한일 간에는 원자력 도입 역사와 역량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일본 정부는 일찍이 1950년대부터 자신의 취약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 원자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무한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기대를 받았던 플루토늄과 고속증식로에 기반한 폐쇄형 원자력 시스템의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일본은 1960년대에 농축재처리 기술을 이미 확보했고, 1966년에 원전 1호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1974년 인도가 평화적 원자력 프로그램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이용하여 핵실험을 실시하자, 미국 정부는 추가적인 핵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이미 농축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농축재처리 기술 이전을 철저히 차단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농축재처리 시설과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에 미국의 농축재처리 협력 금지 대상국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은 일본에 엄격한 핵비확산 정책의 적용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에서 일본의 농축재처리 활동에 대한 포괄적 사전동의를 부여함으로써 그 기득권을 인정했다.   반면, 원자력 후발국인 한국은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미국이 핵비확산 정책을 강화한 탓에 농축재처리 기술을 추가로 획득할 기회는 놓쳤다. 한국은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농축재처리에 대해 미국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했다. 여기서 “사전동의”는 사실상 금지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도 한국은 농축재처리에 대한 사전동의를 획득하지 못했고. 그 결과 관련 원자력 활동은 여전히 금지된 채로 남아 있다.   둘째, 미국은 핵비확산 신뢰성 기준에서도 한국과 일본을 차별적으로 보았다. 미국은 일본을 핵확산 가능성이 낮은 국가로 인식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핵확산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본다. 일본은 1967년부터 “비핵 3원칙(핵무기 보유·생산·반입 금지)”을 유지하면서, 핵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었다.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가로서 국민의 반핵 정서가 만연하고, 핵무장 지지도가 일관되게 20% 이하인 점도 높은 핵비확산 신뢰성의 근거가 된다.   셋째, 한국과 일본의 핵 옵션이 각각 지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미국의 인식도 구분된다. 미국은 일본의 농축재처리 역량 보유가 핵무장 욕구를 억지하고, 동북아에서 전략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일본의 농축재처리 역량은 미국의 철저한 통제와 감시하에 관리되고 있으며,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본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농축재처리가 역내 군비경쟁과 핵확산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심지어 전쟁 위험성도 고조시킬 것이라고 본다. 또한 한국이 핵잠재력과 핵 옵션을 갖게 되면, 한국이 독자적인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고 한미동맹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의 농축재처리 획득 기도를 반대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산업용, 민수용 농축재처리 요구를 핵확산 위험성을 이유로 철저히 거부했다. 하물며 ‘핵잠재력’을 위한 농축재처리를 요구한다면, 이를 단순히 반대할 뿐만 아니라 IAEA와 함께 한국의 원자력 활동 전반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크다.   IV. 한국의 민수용 농축재처리 추구와 이를 위한 핵비확산 조건   오늘날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경쟁, 그리고 AI 혁명 시대를 맞아 모든 국가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무탄소 에너지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가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무탄소 에너지를 제때 충분히 공급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문제를 넘어서 경제안보, 국가안보 문제가 되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시대에 재생에너지가 가장 주목받지만, 한국처럼 지리적·기후적 제약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대량 공급이 불리한 국가에서는 원자력이 핵심적인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원자력은 전 세계 32개국에서 총 413기가와트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원자력과 안정된 에너지 전환(Nuclear Power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보고서(2022.6)에 따르면, 현 화석연료 시대에서 무탄소 에너지 시대로 원활하게 전환하려면 과도기적으로 원자력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특히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급전성(dispatchability)과 확장성의 장점을 갖고 있어, 전환기적 에너지로서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되었다(국제에너지기구 2022).   한국은 에너지자원이 빈약한 탓에 일찍이 원자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현재 세계 5위의 원자력 발전국이자 원전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한국은 원자력의 지속적인 활용을 보장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바로 농축재처리 역량의 부재이다. 한국은 원자력 활용 대국 중에서 유일하게 농축재처리 시설이 없고, 관련 기술에 대한 접근마저 차단된 나라이다. 따라서 한국은 핵연료 공급의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가 매우 취약하다. 원전 수출 시에도 다른 원전 수출국에 비해 핵연료 공급보장과 재처리 서비스의 미비로 원전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   현재 핵연료 공급은 극소수 원자력 선진국과 핵보유국이 독점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은 러시아의 로사톰(40%), 중국의 CNNC(12%), 영국·독일·네덜란드의 유렝코(27%), 프랑스의 오라노(14%) 등 4개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소수 국가와 기업이 세계 농축시장을 지배할 때, 향후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될 때 이들이 농축 공급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2022) 발발 이후, 미국과 서방 국가는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공급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자신의 에너지 안보가 취약하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농축 역량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는 2028년부터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Prohibiting Russian Uranium Imports Act)까지 통과시켰다. 이에 대항하여 러시아는 미국 및 서방국으로 핵연료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핵연료 공급시장은 미국·서방·일본으로 구성된 서방측의 ‘삿포로 5’, 그리고 러시아·중국으로 구성된 반서방 진영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 현재 농축우라늄 수입의 약 3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향후 미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미국이 우라늄 농축을 자립하게 되면, 미국이 동맹국에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의 구매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러시아가 선제적으로 농축우라늄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자체 농축시설에 설비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고, 원자력 활용 서방국들은 ‘삿포로 5’를 결성하여 농축 역량을 확충하고 있다. 만약 국제 핵연료 시장에서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을 더 이상 구매할 수 없게 되면, 한국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 피해는 대형 원전의 안정적, 지속적인 가동이 위협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미래 원자력을 위한 SMR 개발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은 농축재처리 기술의 부재로 인해 선진 SMR의 개발이 현저히 늦다. 향후 SMR이 개발되어도 한국은 상당 기간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또는 초우라늄(TRU) 핵연료 등 첨단 핵연료를 조달하지 못해 SMR 시대에 뒤처질 우려가 크다.   이런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2022년 한미 정상은 “농축우라늄을 포함한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위해 공동 협력”하기로 합의했고, 2023년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 경감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협의와 협력은 아무 진전이 없다.   이에 더해, 한국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 국가는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처분하지만, 프랑스, 러시아, 일본, 인도, 중국과 같은 원자력 대국은 모두 재처리·재활용 정책을 선택했다.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하면서, 재활용 또는 직접 처분을 모색 중이다. 직접 처분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처분을 촉진하려면 폐기물의 양과 독성을 줄이기 위한 처리가 필요하다. 또는 SMR용 TRU 핵연료를 만드는데도 재처리 또는 파이로 처리가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이 높은 핵확산성을 이유로 습식 재처리를 반대함에 따라 대안으로 재처리의 일종이나 핵확산성이 낮은 파이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과거 한국의 농축재처리 획득 기도는 번번이 미 정부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반대하는 주요 명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자발적으로 농축재처리시설 보유를 포기했다. 둘째, 미국이 한국에 농축재처리를 허용하면, 다른 나라의 그것을 반대하는 명분이 없어진다. 셋째, 한국 농축재처리의 객관적인 필요성과 경제성이 의문시된다. 넷째, 한국의 농축재처리 보유는 북한 비핵화 외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다섯째, 한국은 과거 핵개발 시도 이력과 국민의 높은 핵무장 지지율로 인해 핵비확산 신뢰성이 낮다. 요컨대, 미국은 한국의 핵개발을 우려하여 그 길을 차단하기 위해 농축재처리를 반대했다.   따라서 한국이 지속가능 원자력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농축재처리를 도입하려고 한다면, 이런 미국의 핵확산 우려를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수용 농축재처리를 추진하려면, 국내 정치적으로 핵비확산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민여론에서 높은 핵무장 지지도도 낮추는 것이 선결 요건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평화적 이용, 산업용 원자력 정책의 일부로서 ‘국가 농축재처리 정책’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정책은 농축재처리의 용도와 필요성, 농축재처리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합의와 국가 의지, 농축재처리 도입 일정과 규모, 국가적 핵비확산 의지 재확인, 핵 투명성 제고 조치 등을 포함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한국 농축재처리 반대 논리에 대해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반박 논리를 개발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V. 참고문헌   아산정책연구원. 2022. “South Koreans and Their Neighbors.” June 8. https://www.asaninst.org/contents/south-koreans-and-their-neighbors-2022/   윤석열. 2023. “하버드 대학교 윤석열 대통령 연설.” 대한민국 대통령실. 4월 28일. https://www.president.go.kr/president/speeches/UWTpwQnG   IEA. 2022. “Nuclear Power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 June. https://www.iea.org/reports/nuclear-power-and-secure-energy-transitions     ■ 전봉근_국립외교원 명예교수     ■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crkim@eai.or.kr  

전봉근 2025-06-20조회 : 1588
스페셜리포트
[트럼프 2기 북핵문제와 한국의 핵옵션] ① 트럼프 동맹정책과 확장억제의 미래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서론: 트럼프 집권 2기와 국제질서의 변화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동맹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2.0을 내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 네트워크 재조정과 대외관계 재설정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NATO의 약화와 유럽의 자강 움직임, 아시아 동맹국의 핵우산 신뢰도 저하를 촉발하고 있다. 특히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협력도 중대한 변곡점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4년 대선과 의회 선거 승리, 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완비와 충성파 위주 인선 등으로 전례 없는 막강한 대외정책 추진력을 확보했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쥔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MAGA)’ 지지 세력을 토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국제 규범과 제도를 거부하고 자유무역과 동맹 체제를 배격하며 대외관계를 재조정해 왔다. 결국 전후(戰後)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도 자체 안보를 위해 핵확산 등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NATO 등 전통적인 동맹과의 협력을 약화하는 모습을 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우 전쟁의 조기 종결, 미‧러 관계의 재정립, 유럽의 자강화를 통한 미국 국익 우선 추구 등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토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의사결정이 트럼프 개인의 즉흥적 판단을 통해 결정된다는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안보환경 변수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하향식 정책결정 스타일이 미국의 정책적 우선순위와 현안별 최종상태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캐나다, 멕시코, 유럽 국가 등의 정면 반발, 미국 내 주가 하락과 경제 악화의 중첩 등으로 인해 트럼프 지지율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접어든다면 앞으로의 상황 예측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외정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강력한 추진력에 비해 전반적인 전략적 완결성은 미흡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중국을 최우선 위협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초격차의 우위를 확보하고 전략경쟁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에 대한 트럼프의 개인적 호감을 토대로 전혀 예기치 않은 협상 및 거래 성사 가능성이 상존하면서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아직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면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조만간 공개되면 미국은 이전보다 첨단기술 및 경제안보 분야에서 더욱 강한 대응책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트럼프 변수에도 불구, 미국은 중국의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에 대비하여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시하고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상정한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기조는 지속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중국 견제를 위해 유럽과의 통합을 추진했던 기존 동맹 전략에서 탈피함으로써, 유럽의 협조 없이도 대중 억제 및 견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부재하다. 이로써 귀결되는 유럽과 중국의 자연스러운 밀착 관계 형성이 과연 미국의 국익이나 최종 전략경쟁 승리에 유리한 것인지 의문시되는 상황인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대거 추방 등 이민장벽 강화와 함께 최우선 국정과제로 대미 흑자 달성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서는 최대 245% 관세를 부과하는 등 치열한 관세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동맹과 비동맹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관세 공세로 인해 동맹관계의 재정렬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무차별적 관세 부과가 동맹국의 대미 안보 관계에 대한 부담을 가중할 것이다. 특히 관세 부과 시기와 유예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은 미국이 일정 부분 전술적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대외정책으로서의 완결성은 부족해 보인다. 장기적으로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의 양자관계와 그들과의 다자적 유대를 약화함으로써, 전략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미국의 종합적 국익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유럽의 결속,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재래식 재무장과 유럽식 핵우산 추진, 아시아 동맹국 간 군비경쟁 및 확장억제에 대한 불안감 고조 등과 같은 위험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   II. 트럼프 2기의 동맹정책과 확장억제 논의   1) 동맹 정책의 부정론과 긍정론 병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유럽 정책 후퇴와 아시아에 대한 차별적 접근을 통해 동맹의 구조적 재편을 가속하고 있다. 일부 유럽국가는 자체 핵 억제력 구축 논의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에도 확장억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부정론). 반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유지 필요성으로 인해 확장억제가 지속 강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긍정론).   우선, 부정론은 미국의 대유럽 동맹국에 대한 반동맹 정책이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시각이다. 즉 미국의 후퇴로 인한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미국을 배제한 유럽식 핵공유, 자체 핵무장 등을 고려하고 있는데, 결국 이러한 분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이후 러‧우 전쟁의 조기 종전을 위해 우방국 우크라이나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영토 할양, 젤렌스키 정부 교체 등을 강요하면서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구사했다. 과거 안전보장을 약속했던 우크라이나와의 약속을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파기함으로써, 다른 우방국 및 동맹국과 맺었던 약속도 언제든지 철회되거나 변경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되었다.   결국 미국의 반동맹적 정책 채택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부터 ‘확장억제’를 제공받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Rose 2025).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유럽의 자체적인 핵 억제력(European Deterrent) 구축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영국과 프랑스 등 핵보유국의 지도자를 주축으로 유럽의 핵무기를 공유함으로써, 독자적 핵 억제력을 구축하는 방안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유럽 핵무기 사용의 최종 권한은 미국의 확장억제와 마찬가지로 각 핵보유국의 대통령에게 귀속됨으로써, NATO 회원국이 미국의 확장억제를 믿지 못했듯이 유럽의 독자 방식도 영국과 프랑스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성을 불신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핵심 국가인 영국 같은 경우, 핵 억제력 관련 두 가지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어서 미국과의 협력이 긴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영국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미국의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기에 자체 생산 핵탄두와 미국제 미사일의 호환성이 절실한 바,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한 과도한 대미 의존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영국의 자체적인 트라이던트 성능 개량 및 차세대 전략핵잠수함(SSBN) 교체 사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 핵 억제력의 공백 발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폴란드, 독일 등에서는 자체 핵무장의 검토 가능성을 암시하는 언급도 나오고 있어 이들 국가는 안보를 위해 자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핵물질 확보, 핵무기 제조 기술 습득 등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하며, 과연 미국이 제재 부과 없이 핵확산을 허용하면서 동맹 체제의 포기를 감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처럼 일부 국가는 트럼프의 탈 NATO 가능성 및 친러 행보를 유럽 동맹 체제의 포기로 확대하여 해석함으로써, 핵 억제력 관련 미국과는 단절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유럽 국가는 트럼프의 요구를 NATO 탈퇴 또는 해체로 보기보다는 유럽의 자강화, 즉 각국의 국방예산 증액, 방위비 분담 증가, 방위 역할 및 기여 확대 등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결국 유럽의 핵 억제력 공백을 둘러싼 격앙된 분위기는“미국의 핵우산을 대체할 다른 수단은 없다.”라는 NATO 사무총장의 단호한 발언으로 이내 가라앉게 되었지만,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국 등 인태 지역 국가에도 미국에 대한 불신 증가와 함께 유럽의 자체 억제력 구축 움직임이 확산하면 미국의 확장억제 전반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정세 변화를 감안하여 국내에서도 미국 자체 및 공약에 대한 신뢰 약화, 동맹에 의한 핵확산에 대한 트럼프의 느슨한 정책 의지 등을 내세우면서 독자적인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와 같은 유럽과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비록 미국 국익에 기초하여 동맹 차별화 정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중국 견제를 최우선에 놓고 있으므로 이를 위해 연대와 지원이 필요한 인태 지역의 동맹국과는 긴밀한 관계성 구축 하에 확장억제 보장 및 태세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긍정론의 시각도 존재한다. 즉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이익을 앞세운 정치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군사력 증강 및 태세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중국 군사전략의 지속성과 일관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구하는 전략적 방향성은 대체로 유럽보다 인태지역 중시, 반패권 연합의 형성, 인태지역 핵태세 강화, 핵 3축체계 현대화, 저위력 전술핵무기 증강 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일례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전략 작성을 주도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 국방부 정책차관은 2021년 저서 『거부전략』을 통해 ‘대만’과 ‘남중국해’를 가장 중요한 충돌 지점으로 상정하고 중국과의 제한전 상황에서의 일본, 호주, 한국 등 동맹의 역할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콜비는 2025년 3월 4일 열린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북한과 중국 위협으로부터 한국방위를 위한 확장억제 보장의 가치에 관한 질문에 ‘한국과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억제 및 방위에 관한 전략적 태세는 견고하고 신뢰할 만해야 하며, 직면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 위협에 대한 직시, 동맹 간 책임분담, 동맹의 최적 방어 및 전략적 지속성 유지 등에 대해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요컨대 미국은 중국을 의식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 간 차별화 정책을 추진 중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이 동맹 체제의 해체나 이를 상징 또는 가속하는 동맹의 핵확산을 허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이해되는 까닭이다.   III. 한반도 확장억제 전망과 정책 과제   1) 한반도 확장억제 전망   한반도 확장억제에는 다양한 도전요인과 기회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의 한반도 확장억제에 대한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데 있어서 2024년 헤리티지 보고서에서 제시한“북한 억제 강화”를 위한 3가지 정책 제언이 주는 시사점이 크다.   우선, 미국은 북한의 지상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시급하게 한국의 전력 배치 및 증강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 유사시 미국 재래식전력 지원의 현실적 제약 고려 시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북한의 지상공격을 격퇴할 수 있도록 가능한 조기에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셋째, 미국 국방부는 미국의 더 확대되고 다양한 제한 핵옵션을 배치하고, 한국과의 핵 협조(nuclear coordination)를 강화하며, 미국의 본토 미사일 방어를 강화하면서 더 강하고 효율적인 전구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이 미국 본토 미사일 방어를 압도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해지면 한국과 일본의 신뢰성 있는 방어를 보장할 다른 옵션(other options) 등을 평가함으로써,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북한의 핵 및 WMD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 보고서를 공동으로 집필한 피터스 박사는 이에 더하여, 2025년 3월에 공개한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 러시아, 북한을 각각 억제하기 위해서는 저위력이면서 적대국에 특화되며, 전구사거리를 가진 비전략 핵무기의 전진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Peters & Glickman 2025). 즉 북핵 억제를 위해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중국 전략 중심으로의 군사전략 변화는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의 역할 분담과 기능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필연적으로 미국은 대중국 억제력 향상과 대만 방어태세를 제고하기 위해 전반적인 역내 전력의 배치를 재조정 또는 감축하기보다는 증강을 도모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은 한국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대만 유사시 지원 보장, 방위산업 협력, 미국의 본토 방어를 위한 미사일방어 협력, 국방비 증액 및 방위비 분담 확대 등을 요구하는 한편, 확장억제에 대해서는 비용 분담을 요구하기보다는 전력 및 자산의 전진 배치 등 오히려 태세 강화와 관련한 논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은 지역 차원의 전략적 억제력 강화 방안으로 (1) 전구 핵전력 역내 배치/증강, (2)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검토, (3) MDTF(중거리미사일) 전진 배치, (4) NATO 유사 모델 적용 검토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바, 이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한 협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접근의 배경에는 동아시아 동시 분쟁에 대한 대비 필요성, 전구 핵전력의 상대적 부족에 따른 억제 공백 인식 문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 증대   북핵 위협 고도화와 한미동맹의 조정 필요성에 따라 한미 간 미국의 확장억제 방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B-61 계열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저장시설, 운용체계 구축, 대국민 및 대주변국 전략적 소통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향후 가장 뜨거운 한미동맹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할 마땅한 전술핵(비전략핵)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가장 단시일 내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은 항공기에서 투발 가능한 B-61 계열 핵폭탄이 유력하다. 이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저장시설과 인증을 받은 이중용도 항공기 배치 등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정치‧전략적 문제를 차지하고라도 저장 및 격납시설, 운용 요원, 항공기 등 물리적 준비가 갖춰져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은 정치‧사회적 논쟁 가능성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은 국내의 소모적 논쟁과 주변국에서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을 내재한다. 따라서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이 반발할 가능성에 대비한 전략적 소통 방안과 대국민 소통 방안이 주도면밀하게 마련돼야 한다. 물론 한미동맹이 관련 사안에 대해 비밀을 철저히 유지하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NCND) 접근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됐든, 이 문제는 다른 어떤 사안보다 한미동맹의 긴밀한 협의와 공조가 필수적인 사안임은 틀림없다.   IV. 결론: 한미 확장억제 협력의 재정립 필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협 및 불확실성은 미국의 역내 국방태세 변화 가능성, 북‧러 군사협력, 북‧중‧러 연대, 북핵 고도화, 대만-한반도 동시분쟁 가능성 등에 따라 점차 가중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를 최우선에 두고 역내 국방태세를 강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전례 없는 도전과 기회요인을 동시에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이와 같이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안보환경 속에서 몇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한미 확장억제 협력을 체계화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미국의 대한반도 확장억제 강화 또는 대북억제력 강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나아가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 전작권 전환, 동맹 비용 분담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한미 간 긴밀한 협의와 공조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성과를 강조하는 트럼프가 돌연 김정은과 연합연습, 전략자산 배치 등 연합방위태세를 레버리지로 삼아 언제든 미북 협상에 나설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이전보다 능동적‧선제적으로 국방태세를 확립한 가운데 한반도 방위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독자적 방위역량 강화, 첨단 무기체계 개발, 비대칭전력(우주‧사이버, AI, 로봇 등) 확대 등 노력이 필수 불가결이다. 또한 이를 계기로 현행 연합방위체제의 지휘구조 이원화 문제, 주한미군 정보에 대한 과도한 의존 문제, 전구작전 기획역량 부족 문제, 한국군 상부 지휘구조 개편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V. 참고문헌   한지예·김현예. 2025. “북한을 동맹에 떠넘긴다, 美국방 전략지침에 적시.” <중앙일보> 3월 31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4783.   Creedon, Madelyn, et al. 2023. “America’s Strategic Posture: The Final Report of the Congressional Commission on the Strategic Posture of the United States.” Institute of Defense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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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형필 2025-06-20조회 : 1159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미중해양세력전이, 1차 해양방어선, 그리고 한반도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해양조치계획(Maritime Action Plan: MAP)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 4월 해양지배권 회복(Restoring America`s Maritime Dominance)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조선업 공급망을 재편하고 미국의 조선역량의 열세를 상쇄시키기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적 수단이 망라되어있다. 이 행정명령의 기본적인 목표들은 선박건조를 위한 안정적인 연방재정의 확보, 미국에서 제조되거나 미국국적으로 운용되는 상선들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 해양산업기반의 재건, 그리고 조선업 관련 노동력의 고용, 훈련, 유지 프로그램 강화를 포괄한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상무부 장관, 노동부 장관, 교통부 장관, 무역대표부, 본토방위부 장관과의 협의를 통해 전술한 목표달성을 위한 해양조치계획(Maritime Action Plan: MAP)을 7개월 이내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하며, 이 계획에는 미국의 해양산업기반에 필수적인 공급망에 대한 투자를 증진하는 동시에 중국의 조선업 부문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조사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 등이 대표적으로 포함된다.   이 외에도 해양번영구역(Maritime Prosperity Zones)을 설정하여 미국의 해양산업에 대한 동맹국과 국내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해양안보투자기금(Maritime Security Trust Fund)을 조성하여 해양조치계획(MAP)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이 행정명령에 포함되어있다. 무엇보다 해양조치계획은 의회예산사무소(Congressional Budget Office)에서 매년 선박건조예산과 실행분석을 통해 지적한 만성적인 해군 선박건조실행의 지연과 조선업 산업노동력의 축소 및 은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해양산업노동력 훈련과 교육 전반에 대한 투자 및 개혁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미국 국적 상선의 수를 늘리는 방안도 해양조치계획에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유사시에 군사적 용도로 징발할 수 있는 민간 함정의 수를 확보함으로써 위기 발발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함정 수의 열세를 보완하는 조치로 여겨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방부 장관은 3개월 이내에 예비함대에 관한 감사를 실시하고, 강한 예비함대 전력의 보유, 지원, 동원, 그리고 재정적 뒷받침을 위한 지침을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II. 21세기 미중해양세력전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해양조치계획은 미국이 상대적 패권 쇠퇴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비록 최근 중국의 GDP 규모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17조 달러에서 18조 달러로 정체된 데 반해 미국의 GDP 규모는 같은 시기에 24조 달러에서 29조 달러로 증가하면서 경제력 규모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추월 속도는 완화되었지만 미중세력전이라는 구조적 변동은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1, 2기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관세 정책과 디리스킹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공급망의 일부 재편성 정책을 통해 미중세력전이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기간 동안 2022년 WTO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부과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가 무역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는 중재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난 2025년 5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본격화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한 정책 기조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최소한 유지되거나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치적 성향에 따른 대전략 기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1,2기 행정부가 보여주는 대중정책에는 일정한 일관성이 존재하며 이는 미중세력전이라는 구조적 변동의 지속과 무관하지 않다.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 길핀(Robert Gilpin), 오겐스키(A.F.K. Organski), 모델스키(George Modelski)가 제시한 패권안정론, 세력전이론, 장주기 이론 등의 여러 국제정치이론에서 드러나듯 군사력, 경제력, 금융력, 산업생산력, 기술력, 지식생산력, 규범전파력 등 세력전이의 양상을 추적할 수 있는 지표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미국과 중국 사이에 특히 두드러지는 세력전이는 해양세력전이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간의 해양세력전이가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났던 반면, 19세기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사이의 해군경쟁이 벌어진 가운데 실제 해양세력전이에 근접한 사례는 1860년대 초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1919년과 1930년대의 영국과 미국 정도에 불과하다.   영국이 19세기 후반 베네수엘라 위기 이후 1904년에 이르러 유럽 본토에서 독일이라는 위협에 집중하기 위해 부상국이었던 미국을 국제정치적으로 수용하는 결정을 내린 점을 감안한다면, 1860년대 초의 영국과 프랑스간의 해양세력전이가 어쩌면 19세기와 20세기를 통틀어 통상적인 의미의 유일한 해양세력전이 사례일지도 모른다. 고전적인 사례로 항상 등장하는20세기 초반의 영국과 독일의 사례가 있지만, 당시 독일 해군력은 영국 해군력을 추월하지 못했다. 1930년대부터 일본이 국내적 자원추출능력을 고도로 집중화해 미국과의 해군력 격차를 1941년까지 상당히 좁혔지만, 루스벨트 행정부와 미국 의회는 1934년 빈슨-트래멀 법안(Vinson-Trammel Act of 1934), 1938년 2차 빈슨법안(Second Vinson Act of 1938), 그리고 1940년 2대양 해군 법안(Two-Ocean Navy Act of 1940)을 제정하여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의 해군력 추월을 막을 수 있었다.   사실 2012년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해군현대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2015년부터 꾸준히 대통령이 요청한 예산보다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왔고, 행정부 또한 군함생산을 위한 예산을 2015년 약 150억달러에서 2025년에는 300억 불로 10년간 지속적으로 늘려 요청해왔다. 문제는 세계 조선업 시장을 한국과 함께 주도하며 해군현대화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한 중국이 같은 기간에 더 많은 전투함을 생산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 전략국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의 2025년 3월 분석에 따르면, 중국과 한국의 세계 조선업 점유율은 53.3%와 29.1%에 달하는데 비해 미국의 조선업 점유율은 0.1%에 불과하다. 전투함정수를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양적 해군력추월은 2015년과 2020년 사이에 발생하였고, 2024년 미 국방부의 중국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해군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군으로 총 370대의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과 2030년에는 각각 395대와 435대의 전투함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국은 2024년 12월 1일을 기준으로 약 296대의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에 제출된 예산안에 따르면 회계연도 2030년도 말에는 294대의 전투함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된다.   III. 미국의 비대칭적인 조선업 역량과 해양세력전이 추세   2000년대 초반,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왜 역사적으로 유례없이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미국에 대한 균형(balancing)이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전통적인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이론에 따르면 압도적으로 집중된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에 대해서 다른 강대국들이나 국가들이 균형(coalition balancing)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탈냉전 이후 미국에 대해서는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로, 미국은 해양패권국이며, 해양패권국에 대해서는 대륙패권국이 줄 수 있는 직접적인 영토적인 위협을 국가들이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균형이 형성되지 않는다라는 연구가 제시된 바 있다. 안보경쟁과 위협인식의 지리적, 지정학적인 맥락을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연구로 평가되는 이 주장에도 맹점이 있다. 21세기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해양패권국과의 해군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경제적, 재정적 능력, 그리고 조선업 역량을 갖춘 강대국이나 국가가 애초에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대양해군경쟁의 더욱 문턱이 높아진 19, 20세기의 해양세력전이 사례가 17, 18세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은 이 같은 경제력과 선박제조업 역량의 중요성을 방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프랑스와 러시아가 영국에 대한 해군경쟁을 시도하였지만 1860년대 초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해양세력전이가 일어난 적은 없으며, 20세기의 독일, 일본, 러시아, 소련 정도가 영국과 미국에 대해 해양세력전이가 일어나지는 않는 범위 내에서 해군경쟁을 시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중국은 질적인 면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해양패권국과의 해군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만큼의 경제적, 재정적 능력과 상당한 조선업 역량을 이미 갖추게 되었다. 이 같은 경우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대항한 연합전선을 구축할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중국의 해군현대화만으로도 미국에 대한 균형(balancing)은 이미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투함의 수가 해군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이거나 유일한 기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함대의 구성을 보면, 미 해군은 순양함(cruiser)과 구축함(destroyer)과 같이 큰 전투함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중국해군에는 호위함(frigate), 소형호위함(corvette)과 같은 작은 전투함이 더 많다. 미국은 11대의 항공모함을 운영하는 반면, 중국은 3대의 항공모함에 더해 4번째 항공모함을 건조중이다. 배수량 기준으로 살펴보면, 중국 해군의 총 배수량은 1,854,000톤으로 이는 400만톤을 넘어서는 미국 해군의 총 배수량의 절반 이하에 해당한다. 잠수함의 경우에도, 미 해군의 잠수함은 모두 핵동력을 사용하는데 비해, 55대에 달하는 대부분의 중국 잠수함은 디젤동력을 사용하고 있어 더 쉽게 감지될 수 있고 핵동력을 사용하는 잠수함은 10대 남짓에 그친다. 이처럼 질적인 측면에서 미 해군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해양전투의 결과에 있어 전투함의 수는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무엇보다 미국 조선업의 선박제조역량이 비대칭적으로 열세에 처해있기 때문에 전투함정 수의 변화를 간과할 수는 없다.   미 해군이 2025년에 제출한 선박건조 계획에 따르면, 향후 약 5년에서 10년 동안 미사일과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전투함의 수는 단기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가 2030년대부터 미사일과 어뢰 발사능력으로 대표되는 화력과 함대의 규모가 동시에 반등되도록 하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현재의 선박건조는 과거 예산계획의 반영이기 때문에,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최소한 양적인 의미에서의 미중해양세력전이의 추세는 심화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 해군의 2025년 선박건조 계획은 30년 이후에 총 381대의 전투함과 134대의 무인전투함 및 무인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만약 이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2054년에 미 해군이 보유하게 되는 전투함의 규모는 390대까지 늘어날 수 있지만 향후 30년간 미국의 선박제조역량과 연방재정이 이 계획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지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이 직면한 양적 해양세력전이와 조선업 역량의 열세를 인식하고 있으며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2025년 4월 9일에 내렸던 것이다.   IV. 해양세력전이 속 미국의 1차 해양방어선과 한반도   언급했듯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해양조치계획(MAP)는 지난 4월 초에 발표되었고 항목별 구체적 계획은 최소 3개월에서 최대 7개월 이내에 제출되게 되어있기 때문에 해양조치계획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는 방식으로 실행될지를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양적인 측면에서의 미중해양세력전이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는 사실상 예정되어있으며,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 2050년까지도 전투함정 수의 열세를 상쇄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4월 행정명령과 해양조치계획은 미국이 이 같은 문제점을 최소한 명확히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해양패권국은 중요한 해양세력전이가 발생하거나 다른 동맹의 형성이나 해체를 통해 해군 군사력 균형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는 시기에 이에 대응하여 자신의 1차 해양방어선을 재조정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왔다. 1860년대 팔머스톤 수상은 영국의 해안선 방어를 강화했고, 1890년대 솔스베리 수상은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연합해군력에 대응해 지중해에서의 영국의 1차 해양방어선을 재조정하였다.   1930년대 중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 전역의 1차 해양방어선을 구체화하였고, 1939년 1월에는 상원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유럽전역과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미국의 1차 해양방어선은 어디여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히기도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2025년부터 2050년까지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자신의 1차 해양방어선을 어떻게 구상하는가의 문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적인 위기관리와 평화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미중해양세력전이라는 중대한 변화와 미국의 1차 해양방어선에 대한 구상을 동시에 염두에 둔다면, 대만과 관련한 문제는 단순히 양안관계에 국한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유사하게 규모는 크지 않지만 현대화된 해군과 세계적인 조선업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이 같은 상황은 한편으로는 해양분쟁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반도를 항공모함에 빗대어 언급한 발언이나, 정부 당국자들이 정치적 파급력을 고려해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가 새어나오는 정황들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미중해양세력전이와 미국의 1차 해양방어선의 재조정과 관련된 사안들임을 냉철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 위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성을 공고히 하는데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고민하여 구체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최근 최신형 구축함과 핵투발수단으로서의 전략핵잠수함 건조를 노출시키는 등 핵전력과 연계된 해군현대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강대국 사이 안보경쟁에서 발생하는 공간 속에서 생존역량을 극대화해온 북한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중해양세력전이에 맞추어 비대칭전력의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최근 인양 관련 위성사진으로 다시 보도되었던 신형구축함 최현함을 지난 4월에 진수하는 등 재래식 해군전력을 현대화하는 동시에 핵 전력구조면에서 2차 타격능력 확보를 위해 해상에서의 운영가능한 무기체계를 확장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3년 9월 공개한 김군옥 영웅함은 10개의 수직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용 대형관 4개, 순항미사일(SLCM)용 소형관 6개를 갖추고 있어 김정은은 이를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는 장기적으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반보다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기반한 핵 전력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여겨진다. 이외에도 북한은 2023년에 김정은 참관하에 신형 수상함인 압록급 초계함에서 전략순항 미사일(SLCM)을 시험했다. 북한은 또한 신형 및 개량 전략순항미사일을 작년과 올해에 시험하였고, 무인잠수정을 통한 핵어뢰 발사시험도 2024년 1월에 두 차례 시행한 바 있다.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장기적으로는 2050년까지, 이미 전개되고 있는 미중해양세력전이와 북한의 해군현대화 및 해군핵전력화에 대해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양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의 해군력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미국에서 드러났지만, 트럼프 2기의 해양조치계획은 미국이 이제는 이 문제를 대전략 수준의 정책 조정을 통해 대응해야한다고 느끼는 시기가 왔음을 말해준다. 한국은 올해부터 2030년, 그리고 길게는 2050년까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 고민을 이해하고 한국의 조선업 역량을 활용한 한미조선협력 이니셔티브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국의 1차 방어선 재조정과 관련해 한국이 지역적 안정성과 평화를 목표로 한 억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북한의 해군핵전력화에 대한 발전된 대응으로서 한미간에 심화된 통합확장억제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     ■ 오인환_EAI 수석연구원     ■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crkim@eai.or.kr  

오인환 2025-06-04조회 : 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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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거래의 기술 vs. 구조적 위기: 트럼프식 협상과 북한 비핵화의 미래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트럼프 중재 스타일의 진화와 한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부터 세계 곳곳의 분쟁을 조기에 종식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미국의 대외 개입으로 인한 국력 손실과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로 패권의 경제적 기반 회복의 목적을 추구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자제(restraint)전략이 여전히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목표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억제실패를 방지하면서 미국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취임 후 100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한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5월 중동 순방 중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내 정치·경제 상황을 언급하는 한편, 취임 이후 대외관계에서 주요 협상들을 타결한 성과를 강조하였다. 미국은 유럽, 중동, 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였으며, 향후 미중 관계 및 한반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협상 전개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멘, 인도·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각지의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을 '위기 해결사'로 부각시키려는 외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협상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함으로써 국내 정치적 지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의도도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미국은 세계 패권국으로서 지구적 차원의 군사 및 외교 정책을 주도해왔으며, 다양한 지역에 개입할 때 여러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개입은 국제 질서와 지역 안정을 위한 전략적 목적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안정자(stabilizer), 균형자(balancer), 중재자(mediator), 그리고 브로커(broker)의 역할이 그것이다.   첫째, 안정자(stabilizer)의 역할은 미국이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갈등과 위기를 예방함으로써 지역 및 세계 차원에서 평화와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안정자로서 미국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질서의 정합성을 유지하고, 체제 전반의 균형과 안정을 촉진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글로벌 리더십에 해당하며,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와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둘째, 균형자(balancer)의 역할은 특정 지역에서 어느 한 세력의 패권화 또는 영향력의 편중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개입을 뜻한다. 이는 역내 국가 간 세력 불균형이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균형자로서의 미국은 갈등의 조정과 완화, 협력의 촉진, 그리고 공동 이익의 증대를 위한 다자적 조율에 집중한다.   셋째, 중재자(mediator)는 갈등이나 분쟁이 발생한 지역에서 당사자 간의 협상과 타협을 이끌어내는 조정자의 역할이다. 중재자는 명백한 중립성을 전제로 하여, 당사자 간 신뢰 구축과 합의 형성에 깊이 관여하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중시한다. 중재자의 개입은 자국의 직접적 이익보다 국제적 평화와 협력을 지향하는 외교적 관여의 모범으로 간주된다.   넷째, 브로커(broker)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나 제도적 연결이 없는 국가나 집단 간에 정보와 자원, 협력 기회를 중개하는 역할이다. 브로커는 네트워크 내 구조적 공백을 메우고, 상호작용의 장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립성과 공공성보다는 단기적 실용성과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중시한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단기적 이득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미국은 단일한 패권국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국제 정치적 맥락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외교 전략과 역할을 수행해 왔다. 각 역할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시기와 지역에 따라 중첩되거나 혼합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지구적 패권국으로 미국은 안정자와 균형자의 역할을 추구하고 각 지역의 구조적, 장기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전략은 중재자, 혹은 브로커의 역할로 점차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멘, 이란, 시리아 등 주요 현안에서 미국은 군사적 압박과 제한적 협상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외교 전개를 시도해왔다. 여기서 단기적 분쟁해결을 위한 노력을 추구하면서 브로커의 역할에 더욱 치중하였다. 우선, 예멘의 후티 반군과의 협상은 대표적인 사례다. 2025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이내에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목표 하에, 후티에 대한 강경한 군사공격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공습은 일정한 피해를 입혔으나, 후티의 군사력과 은신 능력, 방공 체계는 여전히 건재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데는 실패하였다. 5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후티가 홍해에서의 선박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를 "항복"으로 규정하고, 미국 또한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양측은 상호 공격 중단이라는 조건부 합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후티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은 지속하겠다고 밝혔으며, 자신들이 미국을 물리쳤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일시적인 홍해 해상운송의 안전은 확보되었으나, 후티의 역량 약화나 중장기적 지역 안정 확보에는 실패한 셈이다.   이란과의 핵 협상 역시 본질적으로 제한적인 합의에 그치고 있다. 2025년 4월, 트럼프 정부는 약 7년 만에 이란과의 핵 협상을 재개하였으나, 포괄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저지하고자 협상을 시작하였으나, 이란은 민간용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역내 친이란 세력들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과거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과 같은 종합적 틀 대신, 핵 프로그램의 일시적 동결과 미국의 일부 제재 완화라는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교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과 역내 영향력 행사를 전략적 지렛대로 보고 양보할 의사가 없으며,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 국제 제재 복원 가능성 등 복합적 변수들이 교차하는 상태다.   한편, 시리아 문제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내전 종료를 계기로 미국의 제재를 해제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협상을 본격화했다. 2025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양국은 관계 정상화의 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는 천연자원 개발, 광물협정, 석유 공급, 재건 사업 참여 등 경제 협력을 제안하였으며, 미국은 이에 대해 제재 해제를 대가로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내전 과정에서의 인권 문제나 책임 소재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이루어진 합의로 단기적인 이익 교환 중심의 협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의 중동 외교는 전반적으로 강압적 수단을 활용한 뒤 제한적 양보를 통해 단기 성과를 도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는 제도적 평화나 지속가능한 협력보다는 가시적 외교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25년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총기 테러 사건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무력 충돌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양측은 단순한 국지적 교전을 넘어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는 사태에 이르렀고, 양국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점에서 핵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중대한 위기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초기 대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 사안이 미국과 무관한 지역 분쟁이라는 점을 들어 관망적 자세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파키스탄 측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사태가 고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개입을 결정하였다. 미국의 중재 노력 결과, 인도와 파키스탄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휴전에 합의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성과를 미국의 외교적 중재의 결과라고 자평하였다.   파키스탄은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중재에 공식적인 감사를 표명하였으나, 인도 측은 양국 간 직접 대화를 통해 이뤄진 합의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미국의 개입 역할을 축소하였다. 이후에도 국경 지역에서 간헐적 충돌이 이어졌으며, 무역, 테러, 카슈미르 지위 문제 등 구조적 갈등 요소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특히, 인도 모디 총리는 파키스탄의 테러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으로 선언하면서 양국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종식을 공언하며 중재 노력을 시도하였으나, 전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를 미국이 직접 장기 관리·개발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주시킨다는 소위 '가자 리조트' 구상의 대강을 언급했지만, 국제법 위반, 인종청소 논란 등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트럼프 정부는 무장해제, 경제 재건, 인프라 개발 등을 통해 전쟁 종식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실질적인 내용과 성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관계는 점진적으로 악화되었고, 미국의 중동 중재자 역할은 크게 약화되었다. '가자 리조트' 구상은 실용주의적 접근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미국의 자국 중심적 시각을 반영한 비현실적 제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동 지역 전반의 정세 또한 별다른 돌파구 없이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에도 일정한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안보전략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의 국력을 활용하여 위기유발, 혹은 강제적 압박 수단 활용 수 협상으로 전환하여 분쟁을 타결하지만, 단기적 외교성과에 그칠 뿐 전체적 질서는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협상의 진행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논점은 상대적으로 회피되고 협소하고 타결가능한 의제에 머물게 된다. 셋째, 미국이 분쟁 자체에 대해서는 중재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협상 이후 이러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과 보증, 제재 이행 등에는 소극적 모습을 보인다. 협상 타결 결과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는 것이다. 넷째, 이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의 이해관계가 핵심적으로 걸려있는 경우 동맹에 대한 지원과 지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단기적 이익이나 협상타결 자체의 목적에 집중하면 장기적으로 미국이 동맹국과 추구할 지역질서의 재조정 과정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문제 자체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국내정치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쟁 해결 절차 및 결과에 대한 신빙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II. 향후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과 성패의 조건   트럼프 정부는 세계 각 지역의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고 미국의 자원이 소모될 수 있는 개입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남아시아 등지의 분쟁이 잦아들면 동아시아의 여러 사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지역이므로 동아시아의 모든 사안들은 더욱 민감하고 미국의 핵심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의 안보상황, 남북한 관계, 북핵 문제 등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미중 간 지정학적 이익 조정, 세계핵질서의 보존과 유지 등의 거시적 문제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분쟁 중재 노력을 볼 때 향후 개최될 가능성이 농후한 북미 정상회담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과연 북핵 문제가 발생하게 된 한반도의 구조적 문제,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북한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는 문제, 북중러 협력이 야기하는 국제정치적 문제 등 구조적 문제를 온전히 고려해가면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이익, 미국우선주의에 부합하는 미국의 실익을 챙기는 브로커적 접근, 동맹의 이익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비전통적 접근, 안보와 관련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 단기적인 협상타결을 추구하는 협상스타일 등 기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북미 정상회담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남북 간 군사적 합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북한의 정상국가화, 국제사회와 북한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 북중러 협력이 지역안보에 위협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협력의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스타일로 볼 때, 우선은 북핵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더라도 경제적 접근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광물협정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 안보 협력과 전략적 연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파트너십으로 주목받았다. 이 협정은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에 대한 주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미국의 투자, 기술이전, 시장 접근권, 그리고 안보적 협조 체계를 연계한 경제안보 보장형 모델로 설계되었다. 이는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위험 분산, 파트너국의 자립 능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향후 미국의 대외 경제 전략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례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모델이 북한과의 협상에도 이론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은 체제는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발전과 주민 생활 개선을 주요 국가목표로 강조해왔으며, 외화 획득 및 투자 유치를 위한 정책적 시도도 이어져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보유한 광물 자원에 대한 국제적 투자,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 인프라 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은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유의미한 경제적 유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으며, 마식령 스키장, 원산관광지구 등 관광산업 육성을 국가적 어젠다로 제시해 왔다. 김정은 정권은 주민 복지를 내세우는 동시에, 외자 유치와 관광객 유입을 통해 대외 경제 개방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전례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북한의 전략적 관심 영역에 일부 부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관광지구 개발이나 광물협정과 같은 경제적 접근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국제사회의 제재가 일정 부분 완화되거나, 최소한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대한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 둘째, 외부 투자자의 안전 보장과 자금 회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프로젝트 운영의 투명성과 감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국제적 협정 또는 다자적 프레임이 구축되어야 한다.   여러 도전 요인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안전보장의 문제이다.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에서 미국은 경제적 안전보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지만 정작 협상결과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미국의 기업들이 북한에서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더라도 이것이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또한 대외주체들의 활발한 경제활동이 북한 체제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북한은 미국에 대한 최강경의 대응을 주장하며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 능력을 갖추는데 전념하고 있다. 아마도 2차 핵타격능력을 온전히 갖추어 군사적 억제능력을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 현재까지 북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도 이러한 그간의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가 없을 경우 협상 타결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할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로부터 지속적인 군사기술의 이전 가능성이 존재하고, 중국, 러시아로부터 일정한 수준의 경제지원도 가능한 만큼, 북미 협상타결이 사활적인 변수라고 북한이 느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북한은 외부의 감시나 통제, 자금 사용처에 대한 조건부 제한을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며, 주권 침해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 접근의 실현 가능성은 제재 체제, 정치적 신뢰도, 제도적 투명성이라는 복합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III. 협상 실패 시의 파급효과와 한국의 대응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핵문제와 북한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출발점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또다른 실패를 보일 경우 그 파급효과는 더욱 위중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협상 결렬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여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으려는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북한은 핵무기 관련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러시아로부터 첨단 기술을 이전받는 데 더욱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북한이 추가적 핵실험을 하거나 ICBM 시험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을 지속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결국 미국 본토에 대한 핵무기 공격 능력과 2차 타격 능력을 갖추어 온전한 억제력 확보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셋째, 협상이 결렬되면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공조체제에 균열이 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핵무기 국가로 공인받으려 할 것이고, 중국, 러시아 역시 협상 결렬 상황을 보면서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의 노력을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대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고,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 역시 심각한 시험대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넷째,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 간 긴밀한 협력과 미래 비전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안보에 대한 한미동맹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 방법 및 북한 문제의 미래에 대한 한미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데, 협상의 진행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이 단기적이고 개별 사안에 집중하는 중재에 제한될 경우 한미관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미 협상이 실패하고 북핵 문제가 진전되지 못하면, 이는 한반도의 구조적 안보 문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 남북 관계 및 평화체제, 더 나아가 통일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이 강화될 수 있고, 북중러 군사협력 또한 고도화될 수 있다. 안보적 진영 대결과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 평화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의 전략적 과제는 명백하다. 첫째,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로드맵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사안에서처럼 브로커의 역할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수 있다. 동맹과의 협력보다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사안의 성공에 치중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협의의 북핵 문제보다 포괄적인 북한 문제 및 한반도 문제 전체에 대한 한미 간 협력을 최대한 도모해야 한다. 북미 협상의 성공도 물론 중요하지만,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북핵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분쟁의 중재라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군사 억제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미중 간 전략 경쟁 속에서 주한미군의 유연성 및 대북 억제체제 변화 등 다양한 동맹 재편 과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억제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한국의 차기 정부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crkim@eai.or.kr  

전재성 2025-05-26조회 :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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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북한 노래에 담긴 금기의 세계: 북한 주민들이 부르는 금기의 노래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북한에서 노래는 지도자 찬양과 체제 선전의 도구로 활용된다. 모든 노래는 당국 주도로 기획되며, 엄격한 검열과 통제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유통된다. 가사가 없는 기악곡조차도 지도자나 체제와 연관된 배경과 주제를 바탕으로 한다. 표면상 사랑이나 일상을 다루는 노래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오히려 정치적 메시지를 감추기 위한 비정치성의 연출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노래 가사를 개사하여 자신들의 현실과 감정을 표현한다. 전문 예술인 외에 개인의 창작 활동이 금지되고,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제한된 환경에서, 개사는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로운 창작 행위이다. 이는 체제 선전에 대한 풍자, 혹은 일상적 감정의 분출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개사 행위를 '외곡'으로 규정한다. '외곡'은 조선말대사전에서 "비틀리여 구부러졌다는 뜻으로 ≪사실과 맞지 않게 그릇되게 꾸미는것 또는 그렇게하여 말하는것≫을 이르는 말"로 정의되며(『조선말대사전(2)』 1992, 1765), 이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실제로 2021년 제정된 『청년교양보장법』 제41조 11항에서는 "우리 나라 노래를 외곡하여 부르거나 우리식이 아닌 춤을 추는 행위"를 명시하고 있어(서울: 국가정보원 2024). 노래를 외곡하여 부르거나 비북한식 춤을 추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북한 내부에 노래 개사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행위는 공식 담론과 이념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사적 담론의 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체제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균열과 감정적 저항의 징후로 볼 수 있다.   I. 개사된 노래에 담긴 북한의 '진짜 현실'   북한에서 통용되는 개사노래들은 원곡과 내용적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전해 들은 가사를 그대로 부르거나, 기존 문장 구조 속에서 명사나 동사를 자유롭게 바꾸며 각자의 방식으로 개사에 참여한다. 이러한 개사 행위는 또래 집단 내에서 더 기발하고 더 대담한 표현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개사한 가사에 자신의 일상적 환경과 바람을 자연스럽게 투영한다는 점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창작 활동이 제한된 북한 사회에서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감정과 현실을 담아내기 위한 비공식적 언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 식량난 · 장마당   북한 주민들이 가장 많이 개사하는 노래의 소재는 식량난과 장마당이다.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개사곡은 도입부 두 어절만 유지한 채 이후 가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곡에서 '자유의 강산'은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이상적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개사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 옥수수를 볶아 먹는 궁핍한 일상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이는 현실과 이상을 대비시키며 원곡의 상징성과 권위를 해체하고, 의외성과 유머를 통해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하는 새 나라 어린 동무 노래 부르자 세상에 부러울것 그 무엇이냐   <개사> 자유의 강산에서 강냉이 닦는데[1] 할아버지 할머니 잡숴보세요 이빨아파 못먹겠다 너나 먹어라 이 놈의 두상태기[2] 배가 불렀네   개사 노래의 배경으로 '장마당'이 등장하기도 한다. 원곡은 1983년 창립한 왕재산경음악단 소속 가수 렴청이 부른 곡으로, 지도자를 태양, 인민을 위성으로 묘사하며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다. 그러나 개사곡에서는 배경을 장마당으로 전환하고, 물건을 팔다 단속에 쫓기는 장사꾼들과 안전원의 모습을 희화한다. 장면은 도망치는 장사꾼들을 경쾌하게 묘사하며, 원곡의 후렴구 엇박자 리듬을 그대로 활용해 개사 가사의 운율도 자연스럽게 맞춘 것이 특징이다.   <태양의 위성 되자>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은혜로운 해빛 향도의 해빛 한몸에 받아 안고 태여나서 모두 삶의 위치를 그 곁에 정했어라 태양 태양 우리 태양 따르는 위성 되자 태양 태양 우리 태양 지키는 위성 되자 위대한 장군님 받드는 위성 위성 되자   <개사> 안전원이 온다 안전원이 온다 장사꾼이 들고 뛴다 담배팔던 영감 두부팔던 노친 모두 다 들고 뛴다 서라서라 서라서라 잡히면 잡아간다 뛰자뛰자 뛰자뛰자 잡히면 벌금이다 아직은 기운이 있으니 뛰자뛰자 뛰자   아동영화 ≪다람이와 고슴도치≫의 주제가인 <철벽의 동산 꾸려나가자>는 개사곡에서 장마당을 배경으로 굶주린 '꽃제비'가 두부를 훔쳐 도망가는 장면으로 바뀐다. 원곡의 집단적 협동과 방어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대신 장사꾼 할머니가 꽃제비를 쫓다 넘어진다는 희화적인 상황으로 전환된다. 이를 통해 현실의 궁핍함과 혼란스러운 장마당의 일상이 유머를 통해 표현된다.   아동영화 《다람이와 고슴도치》 주제가 <철벽의 동산 꾸려나가자>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용감하고 슬기로운 꽃동산의 동무야 모두모두 함께 뭉쳐 우리동산 지키자 사나운 원쑤가 덤벼들어도 우리 힘 지혜로 무찔러 나갈 철벽의 동산 꾸려 나가자   <개사> 슬기롭고 지혜로운 장마당의 꽃제비 이리저리 살피다가 두부 한모 훔쳤네 악에 바친 할망구 따라오다가 돌매한테 부딪혀 자빠졌다네 돌매한테 부딪혀 자빠졌다네   2) 연애·사랑·결혼   두 번째로 개사에 많이 활용된 소재는 '연애·사랑·결혼'이다. 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의 주제가 <사랑의 별>은 원곡에서 사랑의 감정을 중의적이고 서정적인 표현으로 묘사하지만, 개사곡에서는 도입부의 두 어절만을 인용하고 이후 전개를 원곡과는 다른 방향으로 바꾸며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개사는 시련을 겪은 여성이 남성에게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는 내용으로, 비속어가 포함되기도 하며, 원곡의 서정성을 조롱하듯 해체한다. 이처럼 개사 가사는 현실의 언어와 감정을 통해 원곡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정제된 표현 아래 감춰졌던 감정을 개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중 <사랑의 별>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마음의 창가에 고요히 내리여 나를 불러 준 별이여 꿈 많은 가슴에 행복을 안겨 준 그대를 나는 사랑해 아 정다운 나의 사랑의 별이여 잠자는 창문을 조용히 두드려 나를 깨워 준 별이여 그늘진 가슴에 밝은 빛 뿌려 준 그대를 나는 못 잊어 아 정다운 나의 사랑의 별이여 사랑의 대문을 다정히 열고서 나를 품어준 별이여 희망찬 가슴에 조국을 안겨 준 그대를 나는 따르리 아 영원한 나의 사랑의 별이여   <개사> (개사1) 잠자는 창문을 와당창 두드려 나를 깨워준 그대여 (개사2) 사랑의 대문을 앞발로 내차고 뒤발로 닫는 새끼야 니 새끼 없다고 시집을 못가랴 내사준 오토바이 내놔라 아 정말로 철없는 새끼네 (개사3)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면 되지 내 손은 왜 잡느냐(내 가슴은 왜 만지나)   2001년 12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된 텔레비죤예술영화 《희한한 동굴》의 주제가 <젊음을 주는 곳으로> 역시 개사곡으로 활용되었다(『조선문학예술년감』 2002, 180). 원곡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개사된 가사에서는 1절에 남성, 2절에 여성의 입장을 각각 반영하여 연애와 결혼 생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예술영화《희한한 동굴》 주제가 <젊음을 주는 곳으로>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젊어지고 싶은사람 백년천년 살고싶은 사람 장수하길 바라거든 오시라 룡문대굴로 금수강산 내나라는 지하에도 천하절경 펼쳐 한번보면 십년은 두번보면 백년은 젊어지는 웃음대굴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장수보약 조선에만 있어 아니보면 후회되고 장수보약 얻지 못하리 밝은 태양 땅속에도 사랑웃음 쳘치여주니 은정속에 솟아난 룡문대굴황홀경 못보면 한생 한되리   <개사> 남자들이 입는 옷은 외출복 한벌이면 되고 여자들이 있는 옷은 스무벌도 넘어 된다네 그런데다 화장 값은 돈이나 적게나 드나 요롷게는 못살아 조롷게는 못살아 한생을 같이 못살아 여자들이 먹는 밥은 공기에다 한공기면 되고 남자들이 먹는 밥은 한쟁가비 넘어된다네 그런데다 술담배는 돈이나 적게나 드나 요롯게는 못살아, 조롧게는 못살아 한생을 같이 못살아   3) 군대   '군대'를 주제로 한 개사 내용은 군복무 기피, 복무 태만, 군사력 비하, 군인들의 이중성 폭로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호 속의 나의 노래>의 개사곡은 전반부에서는 원곡 가사를 그대로 따르다가 후반부에서 개사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원곡이 전쟁터에서 충성과 희생을 미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개사곡은 오히려 살아남는 것을 중시하며 원곡의 메시지를 전복한다. 특히 원곡의 설정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반대로 전환하는 방식은, 공식 서사의 권위를 해체하는 전략적 장치로 기능한다.   <전호 속의 나의 노래>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땅을 보위하려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알이 비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노라   <개사> 전호 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 땅을 보위하여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알이 빗발칠 땐 옆으로 슬쩍 피했다가(비켰다가) 뒤에 오는 나의 전우 적탄맞고 숨졌네 (따라오는 전우가 총탄에 맞았네) 뒤에 오는 나의 전우 적탄맞고 숨졌노라 (따라오는 전우가 총탄에 맞았노라)   <꼬마땅끄 나간다>의 개사곡 가사에서는 군대의 무력함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원곡은 실제 북한의 탱크를 소재로 했지만, 개사된 가사에서는 부실한 무기와 열악한 탱크 운용 실태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북한 군사력에 대한 체제 내부의 냉소적 시선을 암시한다.   <꼬마땅크 나간다>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꼬마땅크[3]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 미국놈 쳐부시며 꼬마땅크 나간다   <개사> 꼬마 땅크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 서라는데 서지 않고 계속 나간다 쏘라는데 쏘지 못하고 그냥 나간다   4) 부정부패   ‘부정부패’를 주제로 개사한 곡에서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가 두드러진다. 영화 《림꺽정》의 주제가 <사무친 원한 풀리라>를 개사한 곡에서는 원곡의 고전적 언어에 현대 북한의 속어인 ‘골반뽑다’[4] 같은 표현을 결합하여 시대적 불일치에서 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 <심장에 남는 사람>의 개사곡 또한 ‘돼지’, ‘앞전’[5] 같은 속어를 사용해 원작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풍자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림꺽정》 주제가 <사무친 원한 풀리라>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마음 어진 백성들이 어이 칼을 들었나 량반놈과 한 하늘이고 정녕 살수 없었네 피 맺힌 사연 없다면 이 길을 누가 나서랴 피 맺힌 사연 없다면 모진 맘 누가 먹으랴   <개사> 마음어진 백성들이 어이 골반뽑았나 양반 부자 못살게 놀아 할 수 없이 골반뽑았네 골반한번 돌리면 양반놈 갈비 부러지고 골반한번 돌리면 부자놈 코뼈 부러진다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 주제가 <심장에 남는 사람>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개사> 인생 살면서 별꼴 다 봤어 돼지가 앞전하다니 잠깐 봤어도 잠깐 봤어도 충격이 가시질 않네 아 이런 돼지 나는 첨 봤어   5) 언어유희   북한의 개사곡 대부분은 기존 가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지만, 일부는 원곡의 가사를 거꾸로 뒤집어 부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요 <휘파람>, 아동가요 <산토끼>, 아동영화 주제가 <산삼꽃을 찾아서> 등의 경우, 내용의 개사 없이 가사를 역순으로 부르며 기존 개사곡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의미 없는 발음의 나열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오며, 일종의 언어 유희로 작동해 놀이의 형태로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휘파람>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몇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개사> 도에밤젯어 네었불 람파휘 람파휘 째달몇써벌 네었불 람파휘 람파휘   아동영화 《산삼꽃》 주제가 <산삼꽃을 찾아서> 원곡 및 개사곡 가사 <원곡> 장수도 못가는 험한 이 길을 산삼꽃 찾아서 나는야 가네 랄랄랄랄랄랄랄 어서가자 두려울것 없다네 어서가자 산삼꽃을 찾아서 <개사> 도수장 는가못 한험 이 을길 꽃삼산 서아찾 야는나 네가 랄랄랄랄랄랄랄 자가서어 것울려두 네다없 자가서어 을꽃삼산 서아찾   II. 유희인가, 저항인가?   북한 주민들에게 개사 행위는 ‘우스개’, ‘말장난’, ‘코미디’, ‘웃음거리’, ‘재미’로 인식된다. 개사 노래는 일상의 유머와 유희로 기능하며, 이는 북한 당국이 제시하는 엄숙하고 진지한 규범의 틀이 현실의 언어에 의해 깨지는 순간에 웃음을 유발한다. 당국이 부여한 의미가 현실로 들어오는 순간, 형식과 메시지의 권위는 전복되고, 원곡의 진지함은 오히려 의외성과 아이러니로 인해 유희적 대상이 된다. 특히 고고하고 이상화된 원곡 속 인물이나 상황이 자기비하적인 표현으로 전환되면서, 현실의 괴리감이 더욱 부각된다.   북한 청소년들이 즐기는 개사 문화는 표면적으로는 놀이와 웃음을 중심으로 한 또래문화로 나타나지만, 그 속에는 체제에 대한 냉소와 비판, 절망이 내포되어 있다. 개사 노래는 표현의 자유가 억제된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과 욕망, 현실을 표출하는 유일한 해방구이자 문화적 통로로 작동한다. 특히 북한 당국이 창작한 공식 노래를 모방하고 변형하는 행위는 정치적 메시지를 훼손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원곡과의 대비를 통해 북한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드러낸다. 원곡이 묘사하는 이상향은 주민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개사 노래는 이를 냉소적으로 해체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언어가 된다.   개사 행위는 십대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놀이문화의 일부로 여겨지며, 성인이 되면 암묵적인 사회적 책임감 속에 점차 사라진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는 이 행위는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2021년 제정된 『청년교양보장법』에서는 노래 개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었고, 이는 당국이 노래 개사 행위가 체제 통제의 틀을 흔들 수 있다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개사 노래에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통제된 문화환경 속에서 표출되는 일종의 소극적 일탈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기점으로 북한은 외부 정보를 일부 수용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1991년, 보천보전자악단의 일본 순회공연을 계기로 일본어 노래가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주민들은 처음으로 일본어 가사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내부에 큰 문화적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북·일 합작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적 요소와 외부 세계의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주민들은 기존 북한 문화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양식과 스타일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이처럼 개사 행위는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외부 문화를 모방하고 변형하는 대안적 문화 소비이자 생산 행위로 진화한다. 외부 문화 유입은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기준과 문화적 취향을 인식하게 했고, 이는 당국이 제작한 콘텐츠 이외의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 동기로 이어졌다. 개사는 더 이상 수동적 수용이 아닌, 주체적인 감정 발산과 문화적 실천의 수단이 된 것이다. 노래 가사를 반복적으로 변형해가는 과정은 창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고, 이는 일상 속에서 창의적 변용과 대안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북한 주민들은 원곡의 규범적 의미를 뒤틀거나 전복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문화 양식을 형성하고 공유했다.이러한 일상의 소극적 저항은 통제된 문화 내부에서 발생하는 작은 균열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현상은 북한 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암시한다. 첫째, 체제의 상징 언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점차 드러난다. 북한의 선전노래는 ‘조국’, ‘수령’, ‘인민’, ‘당’ 등 체제의 핵심 상징을 반복함으로써 정서적 통합을 유도해왔지만, 주민들이 이를 희화화하고 비트는 행위는 이 상징들이 더 이상 신성하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소비되고 해체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고정된 이데올로기의 언어가 웃음의 대상이 되는 순간, 선전의 설득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비공식 문화의 내적 팽창이 이뤄지고 있다. 체제가 공적 문화의 통제를 강화할수록, 주민들은 그 내부에서 은밀하게 유동적인 하위문화를 확장시킨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공식 담론을 대체하는 감정과 기억의 비공식적 축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셋째, 공적 담론의 위기와 체제 동원력의 약화다. 북한에서 노래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체제 동원의 도구로 기능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세대에게는 더 이상 공감되지 않는 형식과 내용은 집단적 정당성과 정체성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진다. 노래가 감동을 강요할수록, 주민들은 오히려 웃음으로 응답하는 방식으로 당국과 개인 간의 정서적 간극이 구조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북한 신년경축공연에서 발표된 신곡 <길이 사랑하리>, <우리는 조선사람>, <강대한 어머니 내 조국>, <조국과 나의 운명>은 주목할 만하다. 국무위원회연주단 소속 김옥주가 부른 이 곡들은 기존의 지도자 찬양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조국’을 운명 공동체로 재구성하고 감성적 내면화를 시도한다. 음악 형식에서도 집단적 합창이 아닌 개별적 감상 중심의 구조로 전환되었고, 현실의 어려움을 일부 인정하는 정서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노래하라’는 강요된 기획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 행위는 북한 사회 내부에서 문화적 균열과 상징 권력의 약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사는 표면적으로 유희적이거나 일상적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체제에 대한 상징 체계의 재해석과 이탈이 내포되어 있다.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선전노래의 내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주민들의 해석과 개사 속에서 전복(변질)되어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 사회가 품고 있는 가장 조용한 저항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 이 글은 『현대북한연구』 27권 3호에 수록된 논문 <북한 주민들의 노래 개사를 통한 현실 풍자와 규범의 전복: 폐쇄된 사회의 창조적 저항>을 재구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사회과학출판사. 1992. 『조선말대사전(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문학예술출판사. 2002. 『조선문학예술년감(2002)』. 평양: 문학예술출판사.   국가정보원. 2024. 『북한법령집 하』. 서울: 국가정보원.     [1] 닦다: ‘덖다’의 북한어 [2] 두상태기: ‘노인’의 북한어 [3] 땅크: ‘탱크’의 북한어 [4] ‘골반뽑다’라는 표현은 북한에서 몸풀기를 위해 다리를 찢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로, 싸움할 준비나 폭력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진술했다. [5] ‘앞전’이란 북한에서 ‘앞장’과 같은 의미로, ① 여럿이 나가는데서나 향한쪽의 맨 앞자리, ② 먼저 맡거나 차지할수 있는 위치, ③ 앞쪽의 끝 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해당 가사에서 ‘앞전’은 ‘앞구르기’,‘텀블링(공중제비)’이라는 뜻으로, 평소에 보기 드문 기이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를 의미한다.      ■ 하승희_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crkim@eai.or.kr  

하승희 2025-05-23조회 : 1658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북중관계 이상(異常)설’에 대한 통시적 접근: 북중러 지정학의 시각에서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북중관계 이상설' 부상의 배경   2023년 7월, 북한의 전승절 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를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외빈이 지켜보는 공개 석상에서 수령했다. 같은 해 9월,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최우선순위는 러시아와의 관계"라고 언급하며, 대외관계 중심축의 이동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2024년 6월에는 '북러 조약'이 체결되었고, 중국은 이에 대해 다소 원론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올해 1월에는 노동신문 1, 2면에 푸틴의 연하장이 대대적으로 게재된 반면, 시진핑의 연하장은 3면에 배치되었다.   2024년에 들어와 중국도 상징적 외교 조치에 변화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시진핑 산책(2018)' 기념 발자국 동판이 철거되었고, 인근에 조성되어 있던 김일성·김정일의 방중 기념 전시 공간도 폐쇄되었다. 같은 해 5월, 중국은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한반도의 비핵화' 문구를 포함시키는 데 동의했으며, 이에 대해 북한은 내정간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러 조약' 체결 직후인 7월에는 왕야쥔(王亚军) 주북 중국대사가 북한의 전승절 행사에 불참하면서, 북중 간 거리감이 외교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정황 속에서 '북중관계 이상설'이 제기되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안정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한다. 기존 소위 '중국역할론'과 2023년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미·중 간 갈등 관리 시도와 2024년 4~5월 사이 진행된 양국 간 군사 채널 복원 움직임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러 조약' 체결을 북중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영향력 확대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희석시키는 성격의 조약이 중국의 이해관계와 충돌했으며, 이것이 최근 북중관계에 긴장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설명력의 포괄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건적 층위와 구조적 층위를 뒤섞어 분석함으로써 인과관계의 논리적 정합성을 저해하는 한계를 지닌다. 예를 들어, '북중관계 이상설'이 본격적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시점은 최소한 '북러 조약' 체결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북러 협력이 북중 간 갈등의 직접적 계기였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중국이 북한보다 대미 관계 관리를 우선시한다는 사실은 이미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온 현상으로, 최근 일련의 국면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한 분석 틀로 보기 어렵다.   오늘날 러-우 전쟁의 출구 전략,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전망이 중첩되는 가운데, 신호(signal)와 잡음(noise)의 구분이 대단히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변수 간 위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개별 사건에만 집중하여 비약적인 결론을 도출하거나, 구조적 요인과 단기적 사건을 동일 선상에서 다루는 접근은 분석의 타당성을 저해할 수 있다. 이에 이 글은 기존 해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정학적 맥락과 강대국 국제정치라는 구조적 요인을 중심으로 북중러 관계를 통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북중관계에 대해 보다 일관된 설명의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냉전기 북중러 관계에 대한 통시적 검토   1945년 이후 10년간 북한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지원한 주요 국가는 소련이었다. 이는 소련이 한반도 북동부 지역을 세력 확장의 잠재적 교두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역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으나, 실질적인 군사‧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소련과 중국의 지정학적 인식은 한국전쟁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1950년 10월 초, 스탈린은 마오쩌둥에게 중국의 참전을 촉구했으나, 마오쩌둥은 참전 조건으로 소련 공군의 공중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과의 직접 충돌 가능성, 나아가 핵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을 우려하여, 북한군 전력을 만주로 철수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Shen 2020). 이는 최악의 경우 한반도 전역을 유엔군에 내줄 수도 있다는 전략적 계산이 반영된 조치였다. 이러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은 소련의 항공력 제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국군의 한반도 개입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한반도를 둘러싼 소련과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탈린의 관점에서 한반도는 세력권 확대를 위한 유용한 지정학적 공간이었지만, 미국과의 핵전쟁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수해야 할 지역은 아니었다. 만약 유엔군이 북한 전역을 점령하게 되더라도, 소련의 전략적 중심이 유럽지역에 있었고, 극동 시베리아는 인구가 희박한 황무지에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에 북한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완충지대였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에도 중국은 북한에 대해 지속적이고 전방위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중국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북한의 인프라 재건을 지원했고(Shen and Xia 2012),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소련의 대북 지원을 상회하는 3억 2천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CIA 1956).   1956년부터 흐루쇼프는 일인 지도체제가 아닌 집단지도체제 운동을 주도하고 평화공존 노선을 채택했다. 이는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수용할 수 없는 노선이었다. 이에 따라 1964년경에는 북소관계와 중소관계가 각각 상호 비방을 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소련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여 김일성은 1956년 8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연안파와 소련파 인사들을 숙청하고 외세로부터의 자주를 강조했다. 이는 북한 내 외국군 주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고소련이 북한 지역을 세력팽창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에 소련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및 군사적 지원을 대폭 줄였다. 소련의 지원 축소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인한 대량 아사 사태 등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특히 1958년부터 1964년까지 중국은 북한에 약 460대의 항공기를 제공했다. 이는 중국이 내부적으로 어려웠던 만큼 완충지로서 북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북중관계는 악화된 반면, 북소관계는 점진적으로 개선되었다. 북한 은 중국의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러한 상호 비방은 양국 간 이념적 불일치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북중관계 악화의 더 결정적인 요인은 중국의 베트남전쟁 지원에 대한 태도였다. 당시 소련은 블라디보스토크, 흑해 연안, 그리고 중국을 거쳐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소련 군수물자의 자국 영토 통과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 마오쩌둥 중심 세력은 소련의 자국 영토 경유를 반대했으며, 덩샤오핑 중심 세력은 통과를 수용하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내부 노선 갈등은 문화대혁명 발발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Radchenko 2024). 마오쩌둥이 중국 영토를 통한 소련의 군수 지원을 꺼린 근본적 이유는, 그 자체도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무엇보다 자국 남방에 강력한 통일 베트남의 등장 가능성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김일성에게 중국이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저지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중국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중소 갈등이 고조되자, 북소관계가 개선되었던 것이다. 특히, 소련은 북한이 베이징과 인접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요충지로서 북한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약 100대에 달하는 MiG-21 전투기를 제공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었다.   1969년 중소관계 악화를 인식한 닉슨은 베트남전 종식을 도모하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미중관계의 진전은 소련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관계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에 소련은 전략적 긴장 완화를 위한 미소 간 데탕트를 미국 측에 제안하였다. 미국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미중 데탕트에 뒤이어 미소 데탕트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중국과 소련에게 대미 관계의 개선은 안보 위협의 현저한 감소를 의미했으며, 이는 북한이 완충지로서 갖던 지정학적 가치를 감소시켰다. 따라서 1970년대 중후반기에 중국과 소련 모두 북한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대폭 축소했다.   베트남전쟁이 종식된 1970년대 중반 이후 중-베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 배경에는 제3세계 내 공산주의 주도권을 둘러싼 중소 경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1978년 베트남과 소련의 경제·군사 협정 체결은 중국을 결정적으로 자극하였다. 중국은 이 협정을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간주했다. 소련과 베트남의 밀착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소련이 자국을 전략적으로 포위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이에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통해 자국의 전략적 위상을 회복하고, 베트남의 대외정책 노선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세 가지 전쟁의 명분을 내세웠다. 첫째, 베트남 정부가 자국 내 화교 및 소수민족에 대해 불공정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 둘째, 19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전면 침공하여 중국이 지지하던 크메르 루주 정권을 축출한 점, 셋째, 베트남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던 난사군도(스프래틀리 제도) 일부를 점령했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인민해방군의 군사 현대화를 도모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다. 이 모든 요인들이 고려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 요인은 지정학적 피포위 위기 인식이었다. 대내적으로 중국 매체는 전쟁을 "소련의 대리세력에 맞선 자위적 역공"으로 규정하였다(Zhang 2015).   이러한 배경에서 발발한 중-베 전쟁(1979)은 중국이 인접한 약소국에 대해 무력 사용을 불사할 수 있다는 현실을 북한에 각인시켰다. 1979년 덩샤오핑이 베트남에 대한 무력 침공 의사를 김일성에게 직접 전달했을 때, 북한 지도부는 심각한 배신감을 느꼈다. 북한은 중-베 전쟁을 통해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랜 우방국에 대해서도 무력 사용을 불사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북한이 설령 한반도를 '통일'하더라도 중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자국이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는 북한의 대중국 인식에 구조적인 불신을 초래하였다(신종호 외 2020).   사실 북한은 1975년 베트남 통일 직후 북베트남이 미국 및 남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실에 고무되어 있었다. 북한은 베트남전 당시 이념적 연대와 전투 경험의 축적이라는 전략적 목적에서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북한은 최소 1개 전투비행대대와 2개 대공포 연대를 포함한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였다(RFA 2024). 1975년 김일성은 마오쩌둥을 만났을 때, 한반도 재통일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마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Wilson Center 1975).   미소 데탕트는 1977년 소련의 미사일 정밀 타격 실험과 핵 다탄두 기술의 진척 등 핵무력의 증강과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을 계기로 종료되었다. 그리고 레이건 시기부터 미국은 소련을 압도하는 방식의 붕괴 전략을 추구했다. 소련에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재차 제고되었다. 소련은 대응 차원에서 1984년~1986년 북한에 MiG-29, MiG-23, Su-25와 같은 항공기 100대를 제공해주었다(CIA 1985). 반면, 미중관계는 안정적인 발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 완충지로서의 북한의 의미는 반감되었고 결과적으로 중국은 지속해서 북한에 유의미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레이건이 등장한 1981년 이후부터의 미소 대결로 소련의 국력이 약해지자 1987년부터 미소는 제네바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재차 데탕트를 추구했다. 이에 소련 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다시 감소했다. 그리고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었다. 즉, 1980년대 후반부터는 중소 모두로부터 북한에 대해 유의미한 지원은 없었다.   냉전기 강대국 관계의 변화와 이에 따른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의 증감은 중국과 소련의 대북 지원 여부 및 그 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경향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만 북한에 항공기 등 (당시 기준)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제한적인 군사 지원 양상을 보였다. 북한은 중국과 소련 어느 일방에 편승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이 오랜 우방국인 베트남을 무력 침공한 1979년은 중국에 대한 불신을 각인시켰다. (이 사건은 소련이 중국 국력 소진을 위해 베트남과의 갈등을 유도했다는 해석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신 북한은 전략 환경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강대국 간 갈등 및 자신의 완충지로서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전략적 자율성과 생존을 도모했다.   III. 냉전 종식 이후 북중러 관계의 구조적 안정성과 제약   냉전기와 오늘날 강대국 국제정치의 핵심적 차이는 미국의 주요 경쟁국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 말부터 지속된 미중관계의 발전은 중국에게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감소시켰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주요 경쟁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중국견제를 일관된 국가전략으로 설정하였고, 이에 따라 중국 관점에서 북한은 전략적 완충지로서의 중요성을 다시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은 중러의 요구가 아닌 자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핵무장을 선택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의 완충지 역할을 더욱 공고히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러시아는 오늘날 동북아에서 세력팽창을 추구하거나 미국과 본격적인 갈등을 빚을 이유나 여력이 없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중러의 대북 지원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방지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북한이 급격히 붕괴할 경우 동북 3성의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거나, '통일 한반도'가 미국과 전략적으로 밀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가능성은 현재의 한반도 분단 상황보다 더 큰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식된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 두는 현상유지를 중시한다. 또한, 오늘날 중국의 세력 확장은 과거 소련과 달리 북한을 반드시 경유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한국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며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 오늘날까지 북한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중국의 지원이었음에도, 북중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요컨대, 북중관계는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긴밀한 협력 관계로의 진전도 제약된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아래, 일정한 부침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북한이 구사한 '벼랑 끝 전술'이나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이 주도적으로 현상변경을 시도했던 사례는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북한 또는 한반도 주도의 '현상변경'의 성격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시도가 발생할 경우, 중국은 대체로 북한에 대한 개입과 관여를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탈냉전 이후 북한 또는 남북 주도의 변화가 그 지향점은 상이하더라도, 한반도 '현상유지'를 중시하는 중국의 관점에서는 '이상(異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발 현상변경 시도의 영향력과 추진 동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양상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새로운 길'을 표방하며 전략 노선을 (재)전환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대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 악화를 유도함으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대중 견제를 강화하려는 보다 거시적인 구상에 있다고 인식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 관계가 매우 강력한 현상유지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북한이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무력 고도화를 통해 '자주외교노선'의 강화를 재추진하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중국의 관여 정도도 감소했다. 따라서 '북중관계 이상설'은 오히려 북중관계가 본래의 구조로 회귀하는 '구조적 회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냉전기와의 또 다른 차이는 현재 중러관계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냉전기처럼 중러 간 갈등이 북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낮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북러 양국 모두 중국과의 구조적 비대칭성 심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우려에서 비롯된 북러 간 전략적 협력 공간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더 핵심적인 변수는 러-우 전쟁 출구 전략에 대한 강대국 간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계산이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단순한 작전적 조력자 확보를 넘어,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전략적 지렛대를 확대하고 서방의 전략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역시 대러 협력을 단순한 경제적·군사적 반대급부 획득에 국한하지 않고, 전쟁의 향방과 종결 국면을 주시하면서 러시아와의 밀착을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여 유리한 전략적 공간을 모색하려는 장기적 구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전략적 공간 확대 시도가 곧 북미 대화 재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노이 회담 이전까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한 현상변경을 추구했다. 그러나 결렬 이후부터는 미국과의 적대적 공존을 대내외 안정성 확보의 동력으로 삼는 현상유지 전략으로 전환했을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최근 제기되는 '북핵 동결과 제재 완화 교환론'이나 '남북미 삼자 관계개선론' 등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정 수준의 논리적 비약을 동반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단기적 북미관계 진전보다는 미중관계의 근본적 변곡점, 대안적 국제질서의 부상 등 구조 변화에 대비한 초장기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중단기적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 나설 전망은 제한적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양상은 중·러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중러관계가 공고한 상태가 유지되는 이상 중러가 중대한 안보 위협 상황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리고 첨단 무기 이전으로 인한 북한의 과도한 자율성과 지렛대 증대는, 동·남중국해 및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전략적으로 대립 중인 중국에게 추가적인 변인 통제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 또한 유라시아 서부에서 대규모 전쟁을 수행 중인 상황에서, 극동의 불안정성 증대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략적 부담이다. 중·러 양국이 북한과의 '연출된 밀착'을 통해 외교적 협상에서 지렛대를 확보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양국은 북한의 자율적 군사행동이나 과도한 지렛대 행사가 중·러를 직접적으로 연루시키는 상황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요컨대, 한미일 안보협력이 구조적 전환점(특이점)을 넘겨 중러에 중대한 안보 위협을 초래하거나, 반대로 미국의 쇠락세가 명백해져서 중러 간 경쟁이 재점화되는 등의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한, 중러가 북한으로 첨단 무기체계를 이전할 전략적 차원의 동기는 낮아 보인다.   IV. 북중러 역학과 한국의 전략적 대응을 위한 함의   최근 일련의 사건에 대한 관찰만을 근거로 북중관계를 단순히 '정상(正常)' 또는 '이상(異常)'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전략적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러 간 밀착 현상을 곧바로 구조적 수준의 동맹 관계로 간주하는 해석에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한 포탄·탄약·인력 등에 대한 일정 수준의 반대급부가 존재할 가능성은 상존하나, 구조적 차원에서 볼 때 러시아가 향후 전략적 환경 변화에 따라 북한을 2020년경 아르메니아 수준으로 간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대국 간 국제정치과 지정학적 요인 등 주요 변수들을 중심으로 북중러 관계에 대한 지속적이고 정밀한 분석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은 기존의 우방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중 간 전략적 소통 가능성도 병행하여 모색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구조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중시하는 경향을 고려할 때, 한국이 주도적으로 안정적인 한반도 관리 구상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추진할 경우, 중국과 일정 수준까지의 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발전시킬 여지가 존재한다. 러시아 또한 러-우 전쟁과 한국의 나토와의 협력 강화 이전까지는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또, 현재 미국과 러시아 간에는 정상 및 외교 수장 간의 소통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러-우 전쟁의 출구 전략이 모색되는 과정에서 한국과 러시아 간 외교적 공간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한국 역시 러시아와의 접촉을 통해 중장기 전략 환경에 부합하는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을 병행할 때, 강대국 간 전략 경쟁 심화로 인한 한반도 안보 리스크의 증대를 사전에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현재 북중 관계의 일정한 거리감을 단순한 균열로 규정하거나 이를 일시적인 기회로 인식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장기적인 전략 환경 속에서 주요 강대국에 대한 구조적 이해, 그리고 북한의 전략적 목표와 지위 간의 역학을 균형 있게 분석함으로써 이를 조율하고 우리의 대외 지렛대를 강화할 수 있는 독자적인 외교·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정책적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신종호 외. 2020. "미중 전략적 갈등의 한반도에 대한 리스크와 우리의 복합 대응전략." 통일연구원.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 1956. "Economic Rehabilitation of North Korea 1954–56." CIA-RDP79-01093A001100010001-5. Washington, D.C.: Central Intelligence Agency. https://www.cia.gov/readingroom/docs/CIA-RDP79-01093A001100010001-5.pdf.   CIA. 1985. "North Korea's Air Force: Impact of Soviet Deliveries." CIA-RDP86T00590R000400600002-4. Washington, D.C.: Central Intelligence Agency. https://www.cia.gov/readingroom/docs/CIA-RDP86T00590R000400600002-4.pdf.   Radchenko, Sergey. 2024. "The Vietnam War and the Sino-Soviet Split." In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Vietnam War, ed. Lien-Hang T. Nguyen, 529–548.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hen, Zhihua. 2020. "Revisiting Stalin's and Mao's Motivations in the Korean War." Wilson Center. https://www.wilsoncenter.org/blog-post/revisiting-stalins-and-maos-motivations-korean-war?utm_source=chatgpt.com.   Shen, Zhihua and Yafeng Xia.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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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우 2025-05-21조회 : 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