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역전략으로서 <한국의 글로벌 인도-태평양 전략: 공생과 번영의 지역 질서 건축>을 제안합니다. 8인으로 구성된 EAI 인태전략 연구팀이 제안하는 전략은 세계질서의 대변환과 한국의 상승하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거시적 안목에서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재정의하고 영향력을 제고하려는 시도입니다. 탈세계화, 보건위기와 기후위기, 식량 및 에너지 위기, 지구적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 위험, 그리고 미중 간 심화되는 전략경쟁의 맥락 속에서 EAI는 지역 공간과 지구 공간을 상호연결하는 글로벌 지역 전략으로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합니다. 보편 가치에 기초한 공생과 번영의 인도-태평양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계화로서 재세계화, 초국경적 도전 대응 국제협력, 미중 무력충돌 방지 및 규칙에 기반한 경쟁 유도를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한 6대 원칙으로 연결성(connectivity), 개방성(openness), 포용성(inclusiveness), 회복탄력성(resilience),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수용성(adaptability)을 제시합니다. 이를 토대로 경제, 기술, 환경, 안보 영역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추진해야 할 외교정책의 방향성을 제언합니다.

스페셜리포트
[인태전략 스페셜리포트] ⑤ 공생 가치와 규범에 기초한 안보질서 구축

Ⅰ. 목표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경제와 기술, 가치, 규범의 영역을 넘어 군사 안보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고, 통상전력 군비경쟁을 넘어 핵무기 경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의 규칙기반 안보질서의 근간을 위협했고, 권위주의 세력 대 민주 세력이라는 진영논리를 작동시켜 미중 전략 경쟁의 경직성을 높였다. 북한을 포함하여 인화점에 위치한 국가들에게는 더욱 모험적인 안보정책에 대한 허용기준을 낮추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경쟁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미중의 경쟁적인 질서가 충돌하는 지점, 특히 대만, 북한, 남 · 동중국해 등의 지정학적 인화점(flashpoint)에서의 위기와 긴장은 점차 심화될 것이다. 한국의 안보 환경도 비단 군사안보뿐 아니라 경제안보, 식량안보, 자원안보, 기술안보, 수송로 부분들을 포괄하게 되었고, 동북아를 넘어 동남아, 인도양, 중동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공간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필요에 직면했다.   미국은 지난 10월 12일 발표된 국가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 밝히고 있듯 “통합억지(integrated deterrence)”를 중심으로 안보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통합억지 전략은 핵 자산, 재래식 전력, 합동전투준비태세, 국토방위, 경제, 외교 등 가용한 모든 수단(all instruments of national power)을 동원하여 “다영역(multidomain)” 및 “여러 지역의 안보위기(numerous geographic areas of responsibility)”에 대처하고,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의 역량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강조한다. 지구적 차원에서 유럽-대서양(Euro-Atlantic) 전략과 인태전략을 세우고 연결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안보적 도전을 지구적 차원에서 동시에 대처하려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글로벌 안보 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으로 맞선다. GSI의 핵심 원칙은 “공동, 포괄, 협력, 지속가능 안보(common, comprehensive, cooperative and sustainable security)”인데, 중국은 세계 각국의 안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일방이 자국의 절대 안보를 추구해서는 안 되며, 공동안보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전반적인 대외정책에서 진정한 다자주의와 규칙기반 질서, 중국적 특색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강조해 왔고, 이러한 경향은 중국도 국제질서에 대한 국제사회 전반의 방향에 유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세부 입장으로 들어가 보면 중국의 입장을 강조하는 내용이 더 명확해지는데, 주권과 영토보전, 대내정치문제 간섭 금지, 자국의 발전경로 선택의 자유, 유엔헌장 원칙 존중, 냉전식 사고방식 탈피, 일방주의 반대, 모든 국가의 타당한 안보우려 인정, 자국 안보를 위한 타국 안보 위협 반대, 이중기준 반대, 악의적이고 일방적 제재 반대 등을 내세우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한 존중을 공동안보의 이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력 차원에서 미중 사이 현격한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한, 단중기적으로 회색지대 혹은 인태지역 인화점에서의 위기가 미중 간 직접 무력 충돌(warfare)로 비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진행 중인 미중 간 안보 경쟁은 국제법 경쟁 혹은 규범 경쟁(lawfare 혹은 normfare)의 모습을 보인다. 미중 모두 국제법 준수, 항행의 자유, 주권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비전통 안보위협 및 세계적 문제 공동해결(예. 테러리즘, 기후변화, 사이버안보, 생태안보) 등의 규범과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범 내용을 구체적인 이슈 영역에서 어떻게 설정하고 이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인태안보전략의 핵심 목표는 현재 미중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수준에 중국의 군사력이 근접하게 되어 미중 간 직접 군사 충돌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이전에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중 간 안보타협 및 공생의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인태지역 안보 규범을 제시하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당사국들, 특히 미중 간 분쟁해결의 평화적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대외정책의 행동원리도 이 규범에 입각하여 설정해야 한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은 (1) 핵의 보통무기화(conventionalization) 반대, (2) 강제력과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3) 전략적 안정성, 위기 시 전략 소통, 합의된 절차에 의한 기초한 분쟁 해결, (4) 평화, 공동번영, 인권 준수, 항행의 자유 등 미중 양국이 공유하는 인류 보편 가치에 입각한 분쟁 해결 (5)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경쟁을 지양하고 중견국들의 이익이 반영되는 다자주의 메커니즘의 실현 등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한국 안보이익의 우선순위에 따라 구체적 문제에 적용하여 다음과 같은 인태전략을 제시한다.   Ⅱ. 한국의 인태 안보전략   1. 한반도의 안정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한반도의 안정과 북한의 비핵화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북핵 문제를 한반도 차원이 아닌 인태지역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로 재설정하고, 남북 간 대화는 물론, 미중 간 협력을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축으로 한 미중 간 협력은 인태지역의 협력안보 증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지 30년이 되어 가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커지고,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핵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현대전에서 작전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겠다고 언급하고 핵무기 사용을 법제화했다. 미국 본토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취약해지면 북미 간, 그리고 한미,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중의 협력뿐 아니라 한미일 협력에도 크게 의존한다.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포함시킬 경우 미국과 한일 양국 간의 안보분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7개 후방기지를 기반으로 한국의 급변사태에 대한 간접 지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일본에 대한 핵공격 위협을 가할 때 주일미군의 한국 전개는 위협받을 수 있고 한국은 고립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긴밀한 안보협력 및 급변사태에 대한 상시적 논의와 협력이 중요하다.   중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협력도 중요하다. 미중 갈등 속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한국의 인태전략, 혹은 한미동맹 강화를 들어 한반도 비핵화 및 대북 제제레짐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하려면 한반도 비핵화의 보편적 규범적 성격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평화레짐 구축의 양면적 노력에도 힘을 써야 한다. 한미가 공동으로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고 중국도 이를 인정하게 되면 중국이 명시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에서 이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과 향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대북 군사억제 및 경제제재의 국면을 넘어 대북 관여 및 북한의 발전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기적인 복합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들의 현상유지 경향을 극복하고 주변 당사국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제사회의 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2. 역내 군사 충돌 방지 및 위기관리를 위한 협력: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문제   한국은 직접 분쟁 당사국이 아니지만 남중국해, 양안 관계의 안정성, 동중국해 등에 중요한 이익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곡물의 해외 수입의존도도 77%에 달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는 우리 수출물동량의 30%, 수입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이다. 따라서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의 충돌이 고조되어 해상 수송로가 불안정하게 될 경우 한국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남중국해 해상 수송로의 안전보장을 대부분 미국과의 동맹 체제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남중국해 해양영토 분쟁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개입은 어렵다. 그러나 해양영토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국제법 준수, 무력 분쟁 방지, 분쟁으로 인한 수송로 악화 방지 등의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 남중국해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발신하는 것이 한국 인태지역 전략의 핵심이다. 동시에 동남아 국가 등 지역 국가들과의 다층적 협력 강화를 병행하여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 미중 간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또는 지정학적 갈등 국면에는 가능한 한 일정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분쟁에 직접 연루되는 것은 회피하는 전략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지경학 차원에서는 이 지역에서 전개되는 양자 또는 다자 협력 공간을 통해 미국, 중국 모두와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규범을 둘러싼 미중 간의 대립 이슈에서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중국을 직접 겨냥하거나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자제하면서 아세안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차원에서 국제규범의 준수에 동조하는 선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대만문제는 미중 사이에서 오래된 갈등 요인이고 최근에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중 양국의 소통 및 조정,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 그리고 대만 총통 선거 등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면서 변화될 여지가 큰 만큼 한국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되 원론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강제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서 평화적, 합의에 의한 통일을 강조하는 입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와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만 해협에서의 긴장 고조가 우발적 충돌로 이어지고 한반도로 확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위기 예방과 관리를 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대만에서 우발 사태가 일본과 호주 안보이익에 직접적으로 가하는 도전을 염두에 두고 서태평양 지역 안보를 위한 다자 전략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고려해야한다.   3. 미중 군비경쟁의 과열 방지 및 핵 충돌 가능성 제거   미중 간 안보갈등은 소위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에서 비롯된 갈등, 재래식전력(conventional capability) 경쟁, 그리고 핵무기 부문의 점증하는 경쟁으로 나뉜다. 중국은 그동안 “최소억지(minimum deterrence)”와 핵선제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펴왔으나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핵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핵탄두 증산, 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일로 필드 건설 및 수백 개의 새로운 사일로 건설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핵능력이 증대되면 재래식 전력 사용으로 한정되는 통상적인 무력 분쟁 상황에도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위협에 취약해 지게 된다. 미중 핵 능력 균형에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여 미국의 본토가 중국의 핵 공격에 더욱 취약해진 이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에서 중국이 공세적인 현상변경정책을 추구하게 되면 미국의 동맹국들은 안보분리(decoupling) 현상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첫째, 미중 핵 경쟁 속에서 한미 양국은 물론, 한미일 3국 간의 전략적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러 간 핵군축, 향후 미중 간의 핵군축,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협상과 세력균형(balancing)의 양 전략 모두가 필요하므로 한국과 유사한 안보이익을 공유하는 인태 지역 국가들과 다양한 전략 대화를 통해 창의적인 대응 마련이 중요하다.   둘째, 미중 전략 경쟁은 초강대국들 간 권력정치의 양상을 띠고 있으므로 한국은 제3세력의 입장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잡해지고 있는 국제정치의 변화 양상 속에서 미중 양국 중 어느 한 국가가 전략 경쟁에서 승리해도 국제질서에 필요한 공공재를 일국 차원에서 전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중 간 경쟁이 패권경쟁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면 향후 인태 지역의 여러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집단적 리더십이 더 중요할 것이다. 단순히 미중 전략 경쟁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지역과 지구 안보 질서를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 호주 등과 협력과 대화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아시아 동맹 구조의 근본적 변화 과정에서 다층적 안보 협력의 이상적 형태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안보는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미국을 축으로 한 안보협력 역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바퀴살(hub and spoke) 동맹체제가 다층적 안보협력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들 간 위계가 형성되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동맹체제가 위계적 동맹체제가 아닌 분업적 동맹체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등 중요 분쟁 지역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며 여러 국가들 간 이해관계와 위협 인식이 재조정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 이에 기초한 바람직한 안보 질서를 위한 분업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 저자: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등이 있다.   ■ 저자: 김양규_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수석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사를 겸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불어교육·외교학 학사와 외교학 석사학위를,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컬럼비아대학교 살츠만전쟁평화연구소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강압외교, 핵전략, 세력전이, 미중관계, 북핵문제, 그리고 국제정치 및 안보이론이다.     ■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spark@eai.or.kr  

전재성 2022-12-07조회 : 8973
스페셜리포트
[인태전략 스페셜리포트] ④ 녹색전환, 보건, 에너지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 추구

Ⅰ. 인도-태평양 지역의 생태 · 환경 협력 전략의 기여   인도-태평양 지역의 생태 · 환경 협력 전략은 인류공영을 위한 핵심 협력 분야로, 미중 구도로 나타나는 이익 중심적 정책을 극복하는 구상으로서 논의된다. 또한, 인도-태평양 도서 지역 등의 기후변화 취약 지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기후변화 협력 제도 설계 및 구축에 기여한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생태 · 환경협력은 자유, 평화, 번영 및 가치 규범 중심 협력의 핵심 요소이다.   [인태전략 배경] 바이든 정부는 동맹 · 파트너 국가들과 연결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축함으로써 번영을 이루고, 안전을 보장하고자 한다. 이는 혁신적 연결고리로 중국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시급한 문제에 대응하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IPEF(Indian-Pacific Economic Framework;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공급망을 개발하고 탈탄소와 청정에너지 공동 투자를 실현하고 일련의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와 환경 영향 지역의 취약성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한국과의 접점] 한국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능력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2008년에 녹색성장을, 2020년에 그린 뉴딜 정책을 제시할 만큼 국가가 앞장서서 기후변화에 대응해왔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은 IPEF 참여 국가들과의 기후변화 관련 기술 및 정책 협력 국가로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하다.   [기후변화 협력 분야] 2021년 3월 쿼드 정상회의에서 참여국들의 공동 안건으로 기후변화가 제시되었다. 이후 탄소 중립, 청정 에너지, 기후변화 적응 관련 기술 개발 및 금융 분야 협력이 진행되었다. 또한, 2021년 9월에 녹색 물류 네트워크 구성과 수소 파트너십이 확장되었고, 2022년 5월에 Q-CHAMP(Quad Climate Change Adaptation and Mitigation Package)가 설치되었다.   기후변화가 인도 태평양 전략의 안건이 된 이유는 각국 국내 정치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주요한 이슈로 대두되었고, 국제기구를 활용한 (소)다자 협력을 이용하고, 국제적으로, 지역적으로 공공재를 제공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Ⅱ. 역내 개도국들의 수요에 기반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달성을 위한 개발협력 추진 방안   교토의정서를 대체 · 보완한 2015년 파리협약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여 저탄소 경제성장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립되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파트너들의 집단적 노력과 실행 가능한 계획 수립 및 활동이 요구된다. 각국은 지속가능개발과 기후 행동을 발전전략으로 실행하기 위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들 사이에 양자 및 다자간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개발도상국과의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개발협력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저탄소 성장을 표방하는 녹색 ODA(Official development Aid)는 기후협력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원조와 기술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IPEF 참여 국가와 한국이 개도국과 함께 관련 논의를 진행된다면 개도국들의 수요에 기반한 SDGs 달성을 위한 개발협력과 생태-기후변화 협력을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추진할 수 있다.   1. 스마트 그리드, 배터리 분야 기술표준 마련을 통한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   재생에너지 분야의 기술 협력과 투자를 통한 재생에너지 활용 증대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의하면 재생에너지는 전세계적으로 2019년에 전체 에너지 믹스 중 26.6%를 점유했지만, 2050년에는 87.6%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외에 탈탄소 발전소 대상인 원자력과 화력발전은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에너지 안보와 화석연료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가 간 기술 협력이 필요하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최첨단 저탄소 기술을 통해 에너지 믹스 방안을 모색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이 IPEF와 협력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저탄소 및 청정에너지 사용을 활성화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에너지-가격 변동성을 대비하기 위한 스마트 그리드, 배터리 표준화 구상과 상호활용성 향상을 위한 조정도 필요하다.   2. 수소생산 및 연료전지 기술 발전 및 표준 마련을 위한 협력 확대   수소 경제와 기술을 발전시킬 협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린 수소(잉여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는 온실가스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탈탄소를 실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린 수소의 등장으로 최근 녹색 에너지 분야에서 수소의 역할과 잠재력에 대해 기대가 증가함에 따라 IPEF에서도 그린 수소 파트너십이 제시되었다.   그린 수소 활용을 국제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투자, 혁신, 규제의 프레임워크에 대한 협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그린 수소와 탄소 중립의 관계에 주목해 95억 달러의 투자를 전국을 대상으로 그린 수소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한국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린 수소를 위한 IPEF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렇듯 수소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있다면, 수소 에너지는 2050년에 최종에너지의 16%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3. 녹색해운네트워크(Green Shipping Network) 참여   녹색 해운 네트워크와 친환경적 수송 수단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탄소 저감을 실현할 수 있다. 해운업은 온실가스 배출을 유도하는 핵심적인 산업이지만 기후변화 관련 투자와 혁신에 뒤처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 초점을 두어 쿼드 국가들이 협력해 주요 항구들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고 해운 및 선박 부문의 탈탄소화를 전담하는 녹색 해운 네트워크(Green Shipping Network)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청정 연료로 운영하는 선박과 친환경적인 항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규제 및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조선업이 발달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바쁜 부산항과 광양, 인천항 등을 가진 만큼 녹색 해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가 간 무역을 담당하고 있는 해운 네트워크를 탈탄소화하는 방안으로 항만 간의 그린 네트워크 형성, 배후지 친환경 개발 경험과 기술 공유, 항만 에너지 사용 전기화, 재생에너지 시스템 구축, 친환경 선박 에너지원 활용 등이 제시할 수 있다.   4.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개발과 기술 협력 확대   수송 부문에서의 탄소 저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 수소차 생산에 대한 협력이 중요하다. 현대차, 기아차 등 한국 기업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내 베터리 업체들도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처럼 한국은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개발과 기술 협력 확대에서 IPEF 참여 국가들과 좋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서 미국 Inflation Reduction Act 등에서 보이는 자국 생산 중심의 인센티브 제공 정책을 넘어서, IPEF 참여 국가 간의 공동 노력과 호혜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미국 현지 투자뿐만 아니라,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한국 현지 투자, IPEF 참여국 간의 전기차, 수소차 생산 기술 공동 투자와 플랫폼 공유 등의 협력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전기차와 수소차에 대한 기술, 정책 조정을 통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공동의 노력도 필요하다.   5. 한국 탄소시장과 국제탄소시장 연계 및 확대를 통해 탄소 저감 추구   IPEF 국가들과 협력해 탄소 거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한국은 2015년에 EU와 뉴질랜드에 뒤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탄소 시장을 개시했고,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탄소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파리협정 6조는 국제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 보전을 촉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국제 탄소 시장의 확대를 통해 비용효율적인 탄소 저감을 추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준다. 일본은 수도권에서 건물을 중심으로 ETS(Emission Trading System)를 운영하고 있고, 2022년에서 2023년에 국가 단위의 탄소시장을 개발할 계획이다. 미국과 호주도 마찬가지로 국가 단위의 탄소시장으로 규모를 발전시킬 계획이 있다. 이러한 쿼드 국가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탄소시장을 포함한 탄소시장의 국제 연결의 가능성을 높인다. IPEF 참여 국가들과의 탄소시장 규제 등의 조정을 통해 탄소시장 연계를 설계하고 운용할 수 있다. 국제 연결은 시장 지배력을 통해 융통성과 전략적 거래를 실현시켜주면서 배출 비용과 변동성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고려된다.   6. 인도와 인태지역 도서국가와의 다자 · 양자 협력, 기후적응 인프라 구축 지원 및 협력   인도-태평양 지역은 산불, 해수면 상승, 홍수와 같은 심각한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므로 국제협력을 통해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인프라와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2017년 신남방정책을 채택하여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확대하고자 했고, APEC 회원국과 협력해 태평양의 작은 도서지역의 기후 회복력을 향상시킨 경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 기반 대책으로서 임업과 토지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산림청은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을 포함한 몇몇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한 바가 있다.   나아가 2021년에 인도 외무장관이 한국이 CDRI(Coalition for Disaster Resilient Infrastructure)와 같은 인도 뉴델리 주도의 세계기후기구에 가입하기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듯이 개도국 차원에서 수요가 있는 협력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국과 IPEF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재난 복원 인프라 개발을 위한 노하우를 공유함을 통해 기후 변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7. 가치 공유 국가들에 대한 환경 ODA 확대   생태환경, 기후변화 문제의 선진국-개발도상국의 갈등과 차이를 줄이는 방안으로 다양한 개발협력 방안은 선진국의 책임과 경제적 원조가 강조되고 있다. 2022년 COP27에서의 주요 논점 중 하나는 기후변화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 (loss and damage)를 어떻게 산정하고 지원할 것인가에의 문제이다. 지속가능성과 탄소중립, 기후회복탄력성의 방안으로 환경 (그린) ODA가 제시되고 있다. 녹색 ODA는 OECD의 리오(환경) 마커 기준을 충족하는, 화석연료 저감, 환경 기술, 재생 에너지 개발 협력, 자원 순환 활성화와 관련된 개발협력지원이다. 미국과 인태국가가 함께 지역 가치 공유 국가들에 대한 환경 ODA를 확대함으로써 지역 환경 문제에 공동 대처함과 동시에 기후 저감, 적응, 자원순환 인프라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8. 인태지역 생태 환경 협력 저해 요소 극복   인태지역 생태 환경 협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저해 요소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미중 기후변화 대화 단절과 중국의 반발이다. 중국은 미국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기후변화를 포함한 8개항 대화 협력을 단절시켰다. 또한,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미중 기후변화 공동 대응 선언이 퇴색되었고, 중국의 재생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기술 시장 접근이 제한되었다.   둘째, 미국의 국익 우선 추구 정책이다. 예를 들어, 최근 IRA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국내 생산품을 우선시하기 위해 한국이 생산한 전기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혜택을 제외시켰다.   셋째, 한국의 기후변화 매개 외교 정책과 협력을 주류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기후변화 협력을 통한 상호이익이 되는 지점을 찾는 데 더 집중하고 다자 협력을 통한 기후문제 해결은 경제-기술적 혁신의 기회임을 강조해야 하며, 중국의 입장 등 협력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고려하여 기후변화 대응과 국익과 외교전략을 연계해서 논의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경제 및 안보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괄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에 따라 기후 분야의 이니셔티브의 효과 창출에 주목해야 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한국이 진척시켜온 논의와 기술력 등을 고려할 때 IPEF 국가들과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다자 협력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한국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 평화, 번영 및 가치규범 중심의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 저자: 이태동_연세대학교 언더우드 특훈교수이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환경-에너지-인력자원 연구 센터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세계 도시와 기후변화 Global Cities and Climate Change: the Translocal Relation of Environmental Governance (Routledge 출판사)를 주제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된 관심사로 도시의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을 국제관계와 비교정책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으며, 환경-에너지 정치, 마을학개론, 시민사회와 NGO 정치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마을학개론 (2017), 우리가 만드는 정치 (2018), 환경-에너지 리빙랩 (2019), 에너지전환의 정치 (2021), 기후변화와 도시 (2022) 저서와 국내외 저명한 저널에 60여 편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www.taedonglee.com     ■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spark@eai.or.kr  

이태동 2022-12-07조회 : 8858
스페셜리포트
[인태전략 스페셜리포트] ③ 포용과 협력의 기술혁신 생태계 구축

Ⅰ. 기본 목표: 포용과 협력의 기술혁신 생태계 구축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를 위시한 첨단기술 부문에서 첨예한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인공지능 5G 사이버 등 신기술부문에서 ‘자유 대 국가주권 및 통제’의 상이한 규범을 내세우고 있어 미중 기술경쟁은 하드웨어에서 기술규범까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대외적으로 기술동맹을 통해 기술 우위를 공고화하고 기술 규범을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유럽연합 무역기술협의회(Trade and Technology Council, TTC), 쿼드 신기술(Critical and Emerging Technologies) 워킹그룹, 호주 · 영국 · 미국 3국간 AUKUS, 한국 · 일본 · 대만을 포함한 반도체협력네트워크 칩4(혹은 Fab4),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해 기술협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협력 네트워크에 반발하면서 일대일로 전략 내에서 기술협력을 강화하고 별도의 디지털경제권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미중 기술경쟁 심화와 기술지정학의 부상으로 글로벌 기술혁신체제가 재조정되면서 한국을 위시한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동시에 자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규범에 맞는 기술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중 기술경쟁 시대 중견국 한국이 당면한 과제는 단순히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의 문제를 넘어 한국의 핵심 이익을 찾아내고 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지역 기술협력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반도체 등 몇몇 첨단기술 부문에서 세계 최고 기술수준을 확보하고 있고 우수한 디지털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지만 기술수준은 물론 자본, 인력, 시장 규모 면에서 선두 주자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신기술들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술발전의 흐름을 따라잡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한국은 몇몇 첨단기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발전된 기술 인프라와 평화 · 번영 · 민주주의 등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결합한 기술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의 지역 전략은 한중일과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공간에 한정되어 왔다. 미중 기술경쟁 시대에 한국은 지속적인 기술 우위 확보에 도움이 되고 한국의 기술비전을 공유하고 확장시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중견국 한국으로 하여금 글로벌 및 지역 전략의 범위를 보다 주체적으로 설정하고 통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남북한, 한중일 및 미국 중심의 동북아 공간과 아세안 공간을 통합하고 인도와 태평양 국가 일부를 포함하여 지역 범위를 확장한 인도-태평양 공간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은 한국의 글로벌 전략과 지역 전략이 통합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인도-태평양(Global Indo-Pacific)’으로 지칭된다.   첨단기술 부문에서 미국의 대중 수출 투자 인력 규제는 기술혁신 비용을 증가시키는 한편,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는 기술혁신 활동을 위협한다. 디지털 기술 부문에서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의 규범은 빅테크의 독점을 강화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중국이 주장하는 국가주권은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은 미중 경쟁 와중에도 기술혁신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 빅테크의 독점이나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아닌 다양한 기업들의 공존과 상생을 지원하는 기술 규범을 마련하면서 이를 토대로 지역 내 국가들을 설득하고 규범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주도해야 한다. 한국 글로벌 인태 기술전략의 핵심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특정 국가가 독주하는 것을 지양하고 구성원 모두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기술혁신 생태계를 만들어 공동 번영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 기술 경쟁과 협력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개방적인 기술생태계가 유지되어 이 속에서 각 국가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경쟁과 배제 및 배타적 선택의 논리가 압도적인 기술지정학 시대에 한국은 인태지역에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기술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여하여 경쟁과 협력의 역동적인 균형 속에서 기술혁신이 지속되고 이를 토대로 평화롭고 번영하는 지역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Ⅱ. 한국 글로벌 인태 기술 전략의 원칙: 개방성, 규칙기반, 공존   미중 기술경쟁 심화와 미국의 대중 견제 지속으로 일부 첨단 전략기술 부문에서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이 분리되고 있다. 첨단기술 제품의 중국 수출 규제, 중국 투자기업들의 미국 첨단 부문에 대한 투자 규제, 미중 연구인력 교류 제한 등등이 이어지면서 개방적 혁신체제가 블록화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첨단기술과 자본 인력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기업들은 최소의 비용으로 기술혁신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최근 자본 · 인력 · 기술의 이동에 제한이 걸리기 시작하고 특히 첨단기술과 인력의 확보를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규제를 통하여 자국의 기술 · 자본 · 인력 유출을 통제하고 국경 내에 첨단 전략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로 중국 기업의 기술 굴기가 장벽에 부딪힘과 동시에 중국 시장에 주로 수출을 하던 미국 기업 역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즉 국경을 넘는 기술 자본 인력의 통제는 예외 없이 모든 국가에게 고비용 기술혁신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며 부메랑 효과로 되돌아오게 된다. 첨단기술의 과도한 안보화를 지양하는 한편, 국익에 핵심적인 일부 첨단기술을 제외한 부문에서 개방적인 기술협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을 위해 개방적인 글로벌 혁신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간 치열한 첨단기술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경쟁이 개방적이고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각 국가들이 가용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되 지적재산권 제도 등 기존 규범들을 존중하고 위반하지 않는 가운데 기술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AI, 바이오 기술 등의 개발과 활용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명도전적 측면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해당 기술 분야의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역내 국가 간 합의에 기반하여 여러 분야에서 요청되는 기술 관련 기본 규범을 확인하고 이에 관한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특히 AI, 사이버, 양자컴퓨터 등 신기술 분야의 규범과 규칙을 논의하여 제정하고 기술표준협력 및 지적재산권제도를 강화하여 기술개발 및 협력 부문에서 규칙기반 질서가 공고화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기술협력이 발전해 나아가는 데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역내 국가가 각각 다양한 산업구조와 기술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기술협력의 주요 의제인 공급망 안정성과 첨단기술개발 협력에 대해 역내 국가 간 기술협력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인태 지역 내 국가 간 기술혁신 역량의 차이와 중국의 영향력 이외 역내 국가 간 첨단 기술혁신 경쟁 및 정치체제와 문화적 차이 등이 더해져 실질적인 인태 기술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인태지역은 미국 · 일본 · 한국 · 싱가포르 · 호주 등 기술혁신에 적극 투자하고 주도하는 국가,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막대한 자본 및 인력에 토대하여 공격적으로 기술굴기를 추진하는 국가,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베트남 · 태국 등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를 증대하고 있는 국가, 라오스 · 캄보디아 등 기술발전 수준과 혁신역량이 매우 낮은 국가 등 다양한 국가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내 선두 국가들이 협력과 경쟁을 통해 전반적인 기술수준 향상과 첨단기술개발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기술발전 수준과 혁신역량이 낮은 국가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 내 국가들이 공동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내 공동연대를 통해 저개발국가들의 혁신역량이 제고될 때 지역 전체에서 다양한 수준의 기술혁신이 활성화되면서 지속가능한 기술혁신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과학기술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역내 저개발국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인태 기술전략은 역내 국가들간의 기술 수준 격차를 염두에 두고 특히 기술발전 수준이 낮은 국가들을 배려하고 이들이 역내 기술혁신체제 내에 적절히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끌어야 한다. 모든 국가들이 함께 기술협력에 동참할 때 지역내 기술혁신체제가 더욱 역동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설득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Ⅲ. 한국 글로벌 인태 기술 전략의 내용   1. 양자, 소다자, 다자의 복합 기술협력 네트워크   인태지역에는 이미 다양한 기술 부문에서 양자, 소다자, 다자 기술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 한국과 호주는 물론 인도와 호주, 호주와 싱가포르 등 양자 기술협력, 쿼드 신기술워킹그룹, 일본 · 인도 · 호주 간 공급망 이니셔티브, 미국 · 일본 · 호주의 블루닷네트워크 등 소다자협력, 아세안 ICT 지역포럼(ASEAN Regional Forum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Work Stream), 아세안 호주 디지털 표준 이니셔티브(ASEAN-Australia Digital Standards Initiative, 민감기술에 관한 다자회의(Multilateral Action on Sensitive Technologies, MAST) 등 다양한 다자 기술협력 플랫폼이 존재한다. 인태지역 협력은 역내 국가를 모두 아우르는 형태로도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분야에 따라 다양한 양자, 소다자, 다자가 함께 진행되는 복합 기술협력 네트워크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인도-태평양 기술협력은 인태지역을 넘어 G7, G20 등 글로벌 수준에서 진행되는 기술협력과 첨단 기술 분야 국제 규범 형성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나가야 한다.   2. 부문별 중층적 기술협력 네트워크   한국의 인태 기술협력은 반도체 공급망은 물론 AI, 5G, 사이버, 양자컴퓨터, 청정 에너지, 디지털무역 플랫폼,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부문에서 기존에 진행되어 온 협력들을 활용하되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협력의 교량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강대국 경쟁과 기술지정학 부상 시대에 자유와 개방, 평화, 번영, 공생연대라는 가치에 토대를 둔 기술규범의 마련에 적극 참여하고 기술협력을 포용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중층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반도체 부문의 경우 현재 인태지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주도 국가인 미국과 반도체 최대 소비국인 중국을 위시하여 일본 · 한국 ·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 베트남 등이 설계, 소재, 공정, 조립, 시장 부문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태지역은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지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인태지역 국가들의 역할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반도체 공급망 협력과 관련하여 한국 · 일본 · 대만 · 미국이 참여하는 칩4가 구성되어 있고 인도 · 일본 · 호주의 공급망 이니셔티브(Supply Chain Resilience Initiative)도 첨단기술 공급망 협력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은 미국 주도 칩4에 참여하여 반도체 기술혁신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에서 운영 중인 제조시설과 중국 시장의 중요성 및 중국의 칩4에 대한 반발을 고려하여 칩4가 명시적인 반중 반도체 동맹이 되지 않도록 일정 정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른 한편 반도체 제조 및 조립에서 중국을 대신하여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등과의 협력을 제고하여 미중 반도체 갈등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틀을 준비해야 한다. 최첨단 반도체 부문에서 미중 간의 갈등과 일부 디커플링은 불가피하지만 나머지 반도체 부분에서 인태지역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여 인도-태평양 반도체 공급망에서 경쟁과 협력이 공존할 수 있는 모델을 기획해야 한다.   미국은 클린네트워크를 내세우며 중국의 5G 확장에 제동을 걸어 왔고 이는 인태지역 5G 인프라 구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세안은 2019년 아세안 디지털 통합 프레임워크 행동계획 채택을 시작으로 기술표준화 협력 등을 통해 역내 디지털 통합을 추진해 왔다. 중국은 2015년 이후 디지털 실크로드를 추진하면서 인태지역 국가들과 디지털 인프라 연계를 강화해 왔다. 아세안을 포함한 인태 지역의 5G 인프라, 데이터센터,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중국기업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며 팬데믹과 미중 기술경쟁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화웨이는 인태지역 최대의 클라우드(데이터센터), 통신인프라 장비 공급자로서 지역 국가들과 긴밀히 협조해 왔다. 미국이 화웨이 통신장비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를 실행한 이후 대다수 인태 국가는 중국과의 협력을 단절하기 보다는 위험 분산을 위해 유럽 통신기업과 협력하는 다변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인태지역에서 5G 인프라의 다변화를 가져오면서 한국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인태지역 국가의 통신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한국 또한 영향력 있는 파트너로 입지를 구축해 왔으며 현재 브루나이,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서 특히 한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한국이 제공하는 5G 디지털 인프라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안전한 가치를 기반으로 운영됨을 알리며, 이제까지 다져 온 아세안에서의 영향력에 토대하여 여타 인태지역 국가와 5G 디지털 부문 협력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인공지능 부문에서 미국에 거세게 도전하고 있다. 이미 안면 및 음성인식이나 핀테크와 같은 응용부문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앞서고 있다. 인공지능 부문에서 기술과 규범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인태지역에서 자국 AI 기술이나 규범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노력이 충돌하고 있다. 최근 설치된 중국-아세안 인공지능 컴퓨팅 센터는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에 토대하여 포괄적인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응용 혁신 인큐베이터, 산업 클러스터 발전, 기술 혁신 및 인재 양성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여 아세안에서 중국 인공지능 기술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것이다. 미국 역시 미-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공지능 분야에서 양자협력을 강화할 것을 합의하였다. 미중 인공지능 기술경쟁이 치열해짐과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 활용 규범에 관한 양국의 차이도 갈등의 주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통제에 활용되면서 디지털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인공지능기반 스마트 축산, 빅데이터 기반 섬유제품 품질관리, 저온 지열발전 플랜트, 지능형 LED 도로조명 등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해 왔다. 한국은 지속적으로 아세안을 포함한 인태지역과의 인공지능 기술 공동연구를 강화하고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통제나 인권침해 등에 활용되지 않도록 인태지역 국가들과 공동 규범을 마련하는 노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 저자: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해외투자의 정치경제,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인터넷과 국제정치, 과학기술외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국제정치패권과 기술혁신: 미국 반도체 기술 사례》(2020), 《중국 인터넷 기업의 부상과 인터넷 주권》(2018), 《미중 패권 경쟁과 과학기술혁신》(2016), 《과학기술과 공공외교》(2013)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spark@eai.or.kr  

배영자 2022-12-07조회 : 8681
스페셜리포트
[인태전략 스페셜리포트] ② 포용적이고 회복탄력적인 재세계화 추진

Ⅰ. 재세계화와 국가-세계 연계의 공간으로서 인도-태평양   21세기 세계 질서의 위기는 국가-세계 연계의 약화에서 비롯되었다. 지구적 차원의 경제 통합을 확대하려는 시장의 논리와 주권 국가 체제를 여전히 고수하는 국제정치의 논리 사이에 긴장이 해소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국가 간 무역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WTO 다자 무역 협상과 달리, FTA의 확산, 디지털 기술 혁신, 지구적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s: GVCs)의 확산으로 인해 진행된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는 심층 통합을 촉진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초세계화는 국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 정치적 양극화와 같은 다양한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탈세계화(de-globalization)가 대두된 배경이다. 국내적 차원에서 대두된 탈세계화 움직임은 대외적 차원에서 보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초래하여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관리되지 않은 세계화의 한계가 명확해진 것이다. 그러나 초세계화를 탈세계화로 대체하려는 것은 하나의 문제로 다른 문제로 이전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국내적 차원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가운데 경제 통합과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재세계화가 필요하다. 재세계화 과정에는 국가-세계 연계를 위한 이념적 · 제도적 기반의 재편이 요구된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관계에서 완전한 디커플링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한편, 고도의 분업 체계를 형성하여 공존 관계를 형성하였던 과거와 달리, 미국과 중국은 핵심 기술과 민감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상대국에 대한 취약성을 낮추는 전략을 우선 추구할 것이라는 점 역시 명확하다. 전략적 재동조화(strategic recoupling)가 현실적 대안이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미국이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리쇼어링(reshoring)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전략적 재동조화의 한 수단이다.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은 미래 경쟁력의 원천인 핵심 첨단 기술 분야에서 상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 첨단기술 디커플링(critical high-tech decoupling)’을 점차 확대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 재편은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초래한다. 최근까지 진행되었던 전지구적 경제 통합보다는 지역 또는 가치 기반의 경제 통합이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전략 경쟁에 돌입한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재동조화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중 전략 경쟁의 국면 속에서 진행되는 공급망 재편의 핵심 지역이라는 점에서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의 변화가 향후 지구적 차원에서 규칙과 규범 수립의 준거점이 될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역외 국가들이 인도-태평양 가이드라인 또는 전략을 속속 발표하는 것은 향후 세계 질서 재편의 시금석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한 결과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국가-지구 연계의 공간으로서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지구적 가치 사슬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대표적 지역으로 심층 통합에 수반된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차원에서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수립함으로써 국가-지구 연계의 핵심적 수행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광대한 지역 가치 사슬(regional value chains: RVCs)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역내 국가들 사이의 상호보완성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내 국가들이 상호보완성을 동태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은 지역 경제 생태계의 건강성을 갖춘 협력의 공간이 될 수 있다.   Ⅱ. 지정학적 갈등을 넘어선 공생적 지역 경제 생태계의 구축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충돌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역 질서의 재설계를 위해서는 지역 경쟁을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이 지역 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거둔 성과와 그 한계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필요하다.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는 미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지역 전략으로 인프라 확대를 통해 역내 국가 간 연결성을 증진하고,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성과를 낳았다. 반면,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는 다자화 · 제도화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는 초기 단계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 협력의 네트워크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지역 전략을 다자화하는 데 대한 역내 국가들의 신중하고 유보적인 반응으로 인해 일부 소다자 협력체를 구성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양자 또는 소다자 중심의 지역 전략을 다자 협력 중심의 지역 전략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인 지역 전략을 추구함에 따라 지역 질서의 블록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디지털) 인프라, 5G, 공급망, 보건, AI, 클라우딩, 우주 등 주요 분야별로 미국과 중국이 지역 차원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가 미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지역 전략으로서 분야별 경쟁 구도를 형성함에 따라, 역내 국가들에게는 선택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대다수 역내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이니셔티브에 중복 참여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슈 기반의 경쟁 구도가 명확해질수록 역내 국가들이 실용주의적 접근을 하는 데 대한 비용과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연하고 개방적인 지역으로 설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협력과 경쟁의 조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설계해야 한다. 협력과 경쟁 사이의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역내 국가 간 과도한 경쟁은 국가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개방성이 유지 · 확대될 경우 상호보완성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지역 경제 생태계의 건강성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경쟁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경쟁의 시너지는 지역 질서의 재편에 필요한 역내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은 경쟁과 협력을 아우르는 공간으로서 재설정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도-태평양 국가들 사이의 다양성을 협력의 접점으로 전환시키는 창의적 작업이 요구된다. 인도-태평양 국가들 사이에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은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알려져 왔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CPTPP와 RCEP이라는 두 개의 메가 FTA가 발효된 데서 잘 나타나듯이, 역내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경제 통합의 촉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뿐 아니라, 주요국들이 경제 통합 과정에서 정치적 또는 외교적 안보적 고려를 투사함으로써 경제 통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바이오 등 주요 첨단산업 분야의 공급망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데서 나타나듯이, 인도-태평양 지역은 역내 국가들의 상호보완성이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상호보완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을 세계의 공장으로 건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미중 전략 경쟁에 따른 지역 경제의 블록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의 지역 전략에도 부합한다. 기술 경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은 역내 국가들과 건강한 경쟁을 기술 혁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하는 한편, 인도-태평양 지역이 포용적인 협력의 공간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경제 주권의 확보와 개방성의 유지, 확대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초불확실성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Ⅲ. 포용적이고 혁신적인 제도 설계   한국은 지역 제도 설계에 포용성을 하나의 원칙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 또는 비전을 발표한 국가들이 포용성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지역 전략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제도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지역 차원에서 경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안에 따라 역내 국가들에게 구속력을 부과하거나 유연성을 부여하는 이원적 접근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이원적 접근은 지역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은 유연성과 구속성 사이의 상충 관계를 해소하는 지적 리더십을 행사함으로써 규칙 제정자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역 질서의 재편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새로운 지역 질서의 수립이 단순히 기존 규칙의 복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20세기 규칙, 21세기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는 혁신적 규칙이 요구된다. 미중 전략 경쟁은 기존 규칙 기반 질서의 유지와 변화를 둘러싼 경쟁인 동시에 미래의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규칙 수립을 위한 경쟁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따라서 한국은 유사입장국들과 연대하여 아직 규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분야에서 혁신적 규칙이 도입될 수 있도록 규칙 제정자로서 역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Ⅳ. 제도적 병렬과 중복의 완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다양한 수준과 범위의 제도들이 중복되거나 또는 경쟁 관계에 있다. 인도-태평양전략 대 일대일로, CPTPP 대 RCEP, GPS 대 베이도우 항법 시스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다수 역내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의 지역 이니셔티브에 수동적으로 반응한 결과 중첩적 제도가 형성되었다. 특히, 동일한 분야의 제도이면서도 서로 다른 수준과 범위의 규칙을 내포한 제도들이 병렬 또는 중복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CPTPP와 RCEP는 메가 FTA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자유화의 수준, 이슈의 포괄성, 전략적 고려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상이한 제도들은 제도적 중복을 넘어 경우에 따라서는 제도적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한국은 두 메가 FTA 사이에 제도적 정합성을 높이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CPTPP 가입을 조기에 실현하는 것은 중개자의 역할을 위한 요건이다.   제도의 중복은 지역 질서 면에서 효율성 저하를 초래하고, 역내 국가들이 지역 제도를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제도적 병렬과 중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 제도들 사이의 정합성을 높이고,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 제도들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지적 리더십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는 21세기형 규칙을 대거 포함시킴으로써 지역 질서 재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새로운 이슈를 대거 포함시키는 데 성공하였음에도 구속력을 과도하게 부과할 경우 협상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반면, 협상의 동력에 초점을 맞출 경우 그 효과가 반감되는 딜레마가 있다. 향후 지역 질서 재편의 핵심은 이슈의 확대와 구속력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강대국들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던 과거와 달리, 참여국들이 그 해결책을 스스로 발굴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IPEF를 새로운 규칙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되, 참여국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는 교량 역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규칙이 확립되지 않은 분야에서 IPEF 참여국들과 양자 또는 소다자 차원의 규칙과 규범을 수립함으로써 선례를 축적하고, 역내 개도국들이 새로운 규칙을 수용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을 확대 ·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지역 제도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메타 제도(meta institution) 수립의 가능성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지역 질서는 개별 제도 또는 기구의 단순 총합이 아니므로, 지역 제도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메타 제도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이슈 영역의 기능적 제도의 수립에 초점을 맞출 경우 제도적 병렬과 중복의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메타 제도의 존재가 필요하다.   Ⅴ. 보편성에 기반한 경제적 다변화   대다수 역내 국가들이 미국 및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과 비대칭적인 상호의존적 관계를 형성한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공급망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다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공급망의 재편 과정에서 과도한 안보화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의 재편을 탈중국이 아닌 공급망의 복원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보편성에 기반하여 추구할 필요가 있다.   다변화가 국가 간 상대적 이득의 문제로 환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역내 국가 간 조화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국가의 이익이 아닌 지역 차원의 공통의 도전 요인을 발굴하고, 이를 중심으로 지역 협력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교란은 역내 국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재발의 방지와 조기 경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Ⅵ. 지역적 · 지구적 공공재에 대한 기여   불확실성의 증폭은 역내 국가들이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고, 때로는 경제 및 기술의 과도한 안보화를 촉진한다. 과도한 안보화는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빠르게 확산되는 연쇄 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첨단기술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넥서스로서 역할을 한다. 첨단기술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역내 주요국들이 미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인식됨에 따라, 안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겸용 기술(dual-use)의 확산과 경제 · 안보 연계, 기술 혁신에 기반한 전장(war domain)의 확대는 첨단기술 경쟁을 더욱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구적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첨단기술의 활용과 이를 위한 협력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여, 첨단기술의 과도한 안보화를 지양하고 지역 협력의 촉진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저자: 이승주_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통상의 국제정치,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경제》(이승주 편), “Institutional Balancing and the Politics of Mega FTAs in East Asia,”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spark@eai.or.kr  

이승주 2022-12-07조회 : 8737
스페셜리포트
[인태전략 스페셜리포트] ① 총론: 한국의 글로벌 인도-태평양 전략

Ⅰ. 세계질서의 대변환   세계 질서는 대변환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간 전략 경쟁은 무역과 첨단기술 분야로부터 가치와 규범 분야로 전이되어 상호 불신을 심화시켰다. 첨예화된 갈등은 군사 안보 분야로 확장되며 경쟁적 질서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서간 진영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는 동시에 다자주의적 합의와 국제법 준수, 주권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 기존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지정학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첨단기술 경쟁의 안보화, 경제적 상호의존의 무기화, 공급망 축소 재편과 경제 블록화 등으로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대혼란의 이면에는 세계경제질서의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지구 전체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지만 시장경쟁의 과잉으로 인해 국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정치적 분열을 초래하며 포퓰리즘과 경제민족주의를 불러왔다. 그 결과 각국은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경도되었고, 지난 10여 년간 교역의 축소, 노동력 이동의 제한, 지구 공급망 축소 재편 등 세계화의 후퇴 즉,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목도하였다.   탈세계화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초래한 보건위기와 기후위기, 식량 및 에너지 위기, 그리고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의 위험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초국가적 도전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국제협력과 지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주요국들은 내향적, 자국우선주의적, 민족주의적 행태를 견지하고 있어 문제 해결을 향한 집합적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방적 통상국가이며 강대국 경쟁의 단층선에 위치한 한국은 탈세계화와 강대국간 전략 경쟁, 인류 공통의 초국가적 위협이란 지구적 수준의 도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한국은 현정부 5년을 넘어서 향후 한 세대를 내다보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범정부(whole-of-government) 차원에서 대외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세계화의 역진을 저지하고 강대국 간 경쟁이 무력 충돌로 이르지 않도록, 공멸적 경쟁을 넘어 공생을 이끌어 내는 새롭고 유연한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수립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Ⅱ. 글로벌 지역 전략 모색   이상과 같은 지구적 수준의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세계 주요국들은 지역적 수준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과거 이들의 지역 전략이 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내 행위자들의 집합적 노력을 모으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지역 거버넌스를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글로벌 지역(global region)”이란 공간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글로벌 지역은 지역 공간과 지구 공간을 상호연결(interface)하여 지역 공간의 지구적 성격을 강조한다. [1] 이는 지구적 수준에서 다루는 쟁점, 과제, 전략이 지역적 영역에 투사되어 다층적이고 또한 기능적으로 다면적인 영역이 중첩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지역 개념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과 유럽-대서양(Euro-Atlantic) 지역 전략을 연결하여 자국의 지구적 이익을 수호하고자 하며, 중국도 글로벌 안보 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과 글로벌 발전 구상(Global Development Initiative)의 틀 속에서 일대일로 및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도 지구적 견지에서 공유할 수 있는 이익과 목표를 정의한 후 지역 공간을 구획하고 설계하는 글로벌 지역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제 한국은 GDP 기준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고 군사비 지출 기준 세계 6위의 군사 대국이며,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모범 발전국가이자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국제적 위상의 상승에 따라 높아진 국제사회의 기대와 수요에 전향적이고 선제적으로 조응하여 확장된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국제적 역할을 재조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Ⅲ. 왜 인도-태평양인가?   한국이 지구적 쟁점을 다루고 국익을 지키고자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건축하는 중심 무대는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이다. 인태 지역은 지구적 격변과 궤를 같이 하는 지리적 영역인 동시에 한국의 확장된 국익을 실현하는 전략 공간이다. 그간 한국의 지역 개념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란 협소한 지리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탈냉전기에 들면서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동북아시아를 전략공간으로 설정하였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시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 등에서 보듯이 정부는 주로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협력을 활용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주변 4강을 포함한 전략 공간을 획정하고 이들과 협력 체제를 조성하여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한국의 대외 경제적 기회와 안보적 연계가 현격히 확대되고 지역협력 기구들에 대한 관여도 증대되면서, 한국 정부는 보다 확장된 지역 공간에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자원을 투입하여 국익을 신장하고 가치를 수호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10년간 세계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은 인도-태평양이다. 태평양 지역과 인도양 지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지리적 영역으로서 전세계 GDP의 63%, 무역의 46%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운송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운송로를 품고 있다. 한-중-일 삼국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내 무역과 공급망은 이제 동남아 전 지역, 호주, 인도 등 남아시아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인태를 단위로 한 재화와 자본의 이동이 활발해 지면서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파키스탄 등을 중심으로 노동력 이동 역시 확대되어 경제적 상호보완성이 신장되고 경제 통합의 확산과 심화를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 중점을 두어 온 한국의 지역전략이 인태로 확장된다는 것은 현재적 추세에 조응하는 차원을 넘어서 향후 30년 세계경제성장의 견인차로 꼽히는 인도와 동남아 지역과 파트너십을 확대, 심화하는 미래지향적 선택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안보적으로도 인태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세계경제의 최중요 해상교통로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국들의 해양 진출이 경합하면서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는 지역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만 해협의 긴장, 남중국해 분쟁, 민군 겸용 첨단 기술 분야 경쟁, 민주주의 위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미국, 일본, 인도, 호주, 아세안 국가뿐만 아니라 역외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주요국들도 인태를 단위로 독자적인 지역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한국 역시 경제안보를 포함한 포괄 안보의 견지에서 체계적인 인태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Ⅳ. 한국의 글로벌 인태 전략의 핵심목표   한국의 인태 전략 채택이 곧 기존의 지역 개념을 인태로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주요 대국들은 글로벌 지역 개념을 통해 복수의 지리적 공간을 구획하고 연결하는 지역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도 아세안이란 지역협력체를 근간으로 해서 인태 단위의 구상(outlook)을 제시하는 등 중층적 지역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인태 지역을 고정된 지리적 영역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지리적 영역이 중첩되는 ‘글로벌 지역’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글로벌 인태전략(Global Indo-Pacific Strategy)은 기존의 동북아나 동아시아 공간을 포함하여 기능적 분야와 쟁점 영역에 따라 다양하게 구획되는 다중(multiplicity)의 공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글로벌 인태 전략은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수행하는 규칙 기반 인태 질서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세계화의 역진을 저지하고 보다 나은 세계화로서 재세계화(reglobalization)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탈세계화는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사실 세계화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의 발전과 지구 공급망의 확대를 수반하며 지난 40년간 세계경제성장을 견인해왔다. 1980년부터 2020년 사이 세계무역은 약 10배 증가하였고 대외직접투자액은 17배, 노동력이동은 3배 증가를 기록하였다. GDP 기준 지난 10년간 상품 무역과 노동력 이동의 상대적 축소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의 통합과 디지털 무역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비국가 행위자 지구 공공 네트워크는 여전히 정치적 순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은 지구적 성격을 띠고 있어 개별 국가가 아닌 지구촌 전체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인태 전략의 목표는 재세계화 즉, 시대적 대세로서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을 이어가는 동시에 국내외적으로 포용적(inclusive)인 경제-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고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resilience) 측면을 보강하기 위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규칙과 규범을 세우는 일이다.   두 번째 목표는 초국경적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여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기후 변화, 코로나 팬데믹 등 보건 위기,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은 근대 문명의 결함을 노정하는 중대한 위협이다. 어떤 국가도 독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와 비국가행위자는 지구적 수준에서 제도 설계를 통해 집합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기술하였듯이 현재의 탈세계화 추세는 이런 노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탈근대 공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초국적 도전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규범 제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미-중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세 번째 목표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군사력을 동원한 충돌로 귀결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양국이 규칙에 기반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인태 안보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인태 지역은 대만 해협,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한반도 등 지정학적 인화점(flashpoint)이 자리하고 있다. 역내 구성원들은 미중 간 직접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전에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역안보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사활적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자유주의 패권적 권위를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 역시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자국중심적이고 강권적인 외교로 미래 패권으로서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단독으로 미래 질서를 주도하기 어렵다면 한국 등 역내 중견국들이 연대하고 협력하여 공생을 향한 인태 지역 안보 규범, 대외정책 행동원리와 규칙을 마련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Ⅴ. 인태 지역 운영 체계: 비전과 원칙   한국의 글로벌 인태 전략은 개별 의제 설정과 실행보다는 지역 질서를 건축, 재건축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지역 질서를 구성하는 법, 규칙, 제도, 규범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운영체계(operating system)란 개념을 사용하여, 인태 지역 운영체계의 기본 요소(가치와 원칙)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인태 운영체계는 무엇보다 규칙 기반 질서 수립을 강조한다. 역내 행위자들은 역사적 경험으로 형성해온 비공식적 규범, 아세안(ASEAN) 등에 의해 발전되어 온 원칙, 유엔, GATT-WTO, IMF 등 국제기구를 통해 이루어진 국제법과 국제조약 등 규칙의 틀 속에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 경제적 경쟁, 제휴, 협력은 공정한 국제 규칙과 규범에 기반하여야 하며, 비공식적이고 불공정한 무역 거래나 경제관계의 무기화를 통한 경제 강압은 배격해야 한다. 또한, 강제력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다자주의적 합의와 국제법, 규범에 기초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그리고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   한국의 인태 운영체계는 “보편 가치에 기초한 공생과 번영의 인도-태평양”이란 비전을 가진다. 첫째, 인태 운영체계는 인권, 법치, 다자주의, 자유무역 등 보편적이고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초한다.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여 민주주의 국제협력과 민주적 의사결정체계를 구현하는 거버넌스를 실현한다. 개별 국가의 주권적 선택을 존중하고, 체제, 발전모델, 자기결정권에 대한 상호 존중을 이루어낸다.   둘째, 인태 운영체계는 인간과 집단, 국가들의 평화적 공생을 지향한다. 생존경쟁과 자연도태 원리를 넘어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다. 미중 간 군사적 갈등을 완화하고 공진화(co-evolution)를 통해 공생(symbiosis)에 이를 수 있는 안보질서, 공생의 경제-기술 생태계를 모색해야 한다.   셋째, 인태운영체계는 지역 내 국가들의 공동번영을 추구한다. 다양한 경제 체제 간 상호보완성을 향상하고, 상호의존성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며, 한국의 경험과 자산을 활용하여 역내국들에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는 호혜적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을 이끌어가는 네트워크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러한 비전을 추구하는 인태 운영 체계는 아래 6대 원칙에 따라 운영될 수 있다. 첫째, 인태 운영 체계의 핵심 원칙은 연결성(connectivity)이다. 무역, 공급망, 서비스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인프라 투자를 통해 지역 통합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특별히 RCEP, CPTPP, IPEF와 같은 다자제도틀의 활용이 긴요하다. 또한 안보 네트워크, 특히 대테러, 자연재해, 초국적 위협에 대응하는 다자 협력 네트워크의 확대도 중요하다.   둘째는 개방성(openness) 원칙이다. 인태 지역을 경쟁과 협력의 조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설계하려면 개방성의 확보가 중요하다. 역내 국가 간 과도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개방성의 원칙이 유지될 경우 상호보완성과 상호의존성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해진다. 반도체나 배터리 등 첨단 기술의 과잉 안보화와 블록화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개방성의 유지를 통한 기술 및 경제협력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포용성(inclusiveness) 원칙이다. 한국의 인태 전략은 특정국을 견제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지역내 원칙과 규범을 존중하는 한 어떤 국가도 공통의 위협에 대항하는 안보 협력에 참여할 수 있다. 연결성과 개방성의 연장선에서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인태 지역 기술 및 경제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도 경제적 과실이 사회 전체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도록 세계화가 민주적으로 관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넷째, 회복탄력성(resilience) 원칙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나 자연 재해, 전쟁, 미중 전략 경쟁 등을 겪으면서 자국 경제의 안정성과 공급망의 회복탄력성 확보가 사활적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인태 지역은 공급망 교란의 재발 방지와 조기 경보 등 국가 간 협력과 조화 노력을 통해,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회복탄력적인 재세계화로 나가야 한다. 인태 지역 도서 국가들에 대한 양자 및 다자 협력의 경우 회복탄력성 원칙에 따라 인프라 지원과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수행해야 한다.   다섯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원칙이다. 이는 인태 지역 기후변화 혹은 생태적 한계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인구 변화, 자원 소비, 경제성장 등을 둘러싼 의사결정과정에서 주요 원칙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태 지역 개발협력의 경우 지속가능성 원칙에 기반한 인프라 투자, 특히 녹색 ODA에 중점을 두어 수행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수용성(adaptability)의 원칙이다. 인태 운영체계는 역내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선호를 표출하고 의사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 일종의 오픈 소스(open source)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따라서 고정된 아키텍처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적응하고 진화하는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인태 질서는 여전히 형성 중(in the making)에 있으므로 한국의 인태 전략은 인태 운영체계의 설계와 운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공유된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는 데 두어야 한다.   [그림 1] 한국의 인태전략 목표, 비전, 원칙   Ⅵ. 행동 계획(action plan)   한국은 이와 같은 운영 원칙에 따라 무역, 투자, 금융, 첨단기술, 에너지, 생태환경, 문화 등 이슈영역을 횡단하여 연결하는 동시에 양자, 소다자, 지역기구, 비국가행위자 등 다층적 연결망을 통해 인태 지역의 복합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행동계획은 아래와 같다.   1. 미국 주도 복합 지역네트워크에 적극 참여   공생과 번영을 위한 인도-태평양 질서 건축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가 핵심적이다. 군사 분야를 넘어 전략적 경제 · 기술 파트너십, 기후변화와 보건 안보 등 지구적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 등 확대된 한미동맹을 핵심축으로 하여 한미일 협력과 쿼드 플러스 등 소다자(minilateral)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소다자 네트워크의 핵심 참가자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2.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지속 및 확대   인태 공간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중요성이 증대하면서 강대국 경쟁과 대립이 고조되어 한국의 인태 전략이 의도치 않게 강대국 대립에 휘말릴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고 예민하게 전개해야 한다. 양국 간 체제, 가치, 이념의 차이에 대한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기능적 협력 중심의 관계 구축, 그리고 공통의 초국적 도전에 대한 회복력 향상을 위해 상호 협력해 가야 한다.   3. 아세안 및 인도와의 동반자관계 강화   인태 전략의 중점은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데 두고 있다. 한국은 세계경제성장의 동력인 이 지역에 대해 무역, 투자, 기술, 환경, 해양 안보 등 분야에서 다면적 관여를 확대해 가야 한다. 인태 협력에서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을 확인하고,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와 양자 및 다자적 협력을 통해 인태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보건과 우주, 사이버 안보, 방위산업 등으로 협력의 면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4. 재세계화를 향한 다자경제네트워크 추진   RCEP과 CPTPP 등 기존 무역협정의 확대 및 업그레이드, 이들 간 상호 정합성과 상호보완성 향상, WTO의 기능 회복 등을 통해 보호주의와 일방주의의 부활을 제어하는 한편, 포용적인 세계화를 향한 다자주의 국제경제질서를 복원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공급망 불안을 해소하고 공급망의 과도한 안보화를 방지하기 위해 IPEF를 포함한 다자적 노력으로 회복탄력적인 세계화를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우려 및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역내 유사입장국(동류국)들과의 협력을 양자, 소다자, 지역 차원에서 추진하고, 이를 지역-글로벌 연계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5. 부문별 복합 기술협력 네트워크 구축 및 선진국-개도국 사이 교량 역할 수행   경쟁과 배제, 배타적 선택의 논리가 압도적인 기술지정학 시대에 한국은 인태지역에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기술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여한다. 반도체 공급망은 물론 AI, 5G, 사이버, 양자컴퓨터, 청정 에너지, 디지털무역 플랫폼,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부문에서 기존에 진행되어온 양자, 소다자, 다자협력들을 활용하되, 중견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여 선진국과 개도국 협력의 교량역할을 수행한다.   6. 개발협력 및 인프라협력에서 적극적 기여   한국은 인태지역에 존재하는 인프라 격차를 축소하고 지역 생태계의 공생과 공영에 기여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을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연결성 강화를 위한 개발 지원,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SDGs 달성을 위한 녹색 ODA 공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내 지역 공동체와 포용적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7. 생태-기술-경제 연계를 고려한 환경 이니셔티브 추구   한국은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인류 공동 이익의 영역인 생태 환경 협력 분야에서의 대화 및 협력 단절의 길에 접어들지 않도록 상호이익이 되는 지점을 찾는데 집중한다. 특히, 다자 협력을 통한 기후문제 해결은 경제-기술적 혁신의 기회임에 주목하여 재생에너지 활용, 그린 수소 파트너십, 녹색 해운 네트워크,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개발, 탄소시장 등의 분야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국익을 연계한 정책을 추진한다.   8. 공생가치 및 규칙에 기반한 무력충돌방지 및 위기관리   미중 전략경쟁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대만, 북한, 남·동중국해 등의 지정학적 인화점(flashpoint)에서의 위기와 긴장이 단기적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기에 양국 간 경쟁이 군사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강제력과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금지, 다자규범에 기초한 분쟁 해결, 항행의 자유 및 비확산 등 인류 보편가치에 입각한 분쟁 해결과 같이 공생가치에 기반한 규칙에 따라 미중이 경쟁하도록 한국의 원칙을 표명하고 이에 기반한 외교를 펼친다.   9.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다층적 지역 안보협력 네트워크 추진   미중경쟁이 초강대국 간 권력정치의 양상을 띠는 가운데 한국은 기존의 지역 내 바퀴살(hub and spoke) 미국 동맹체제가 위계적 안보협력체제로 전환되어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등 중요 분쟁 지역에 대한 국가들 간 이해관계와 위협 인식을 식별하고, 이에 기초하여 바람직한 안보질서 형성에 기여하는 다층적 안보협력의 분업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1] 지역 공간의 지구적 성격을 강조하는 지적 흐름은 Peter Katzenstein, A World of Regions: Asia and Europe in the American Imperium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5); Mary Farrell, Bjorn Hettne, and Luk Van Langenhove (eds), Global Politics of Regionalism (London: Pluto 2005); Fredrik Soderbaum, Rethinking Regionalism (Baisingstoke: Palgrave 2016); and Maria Lagutina, "The Global Region: A Concept for Understanding Regional Processes in Global Era," The Journal of Cross-regional Dialogue (2020 Special Issue).     ■ 저자: 손 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이다. 최근 저서로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2021, 공편), 『2022 신정부 외교정책제언』(2021, 공편), 『BTS의 글로벌 매력 이야기』(2021, 공편),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2021, 공편),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3, 6 (2019),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spark@eai.or.kr  

손열 2022-12-07조회 : 10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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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태전략 스페셜리포트] “한국의 글로벌 인도-태평양 전략: 공생과 번영의 지역 질서 건축” _기획의도

  동아시아연구원(EAI)은 한국의 지역전략으로서 <한국의 글로벌 인도-태평양 전략: 공생과 번영의 지역 질서 건축>을 제안합니다. 8인으로 구성된 EAI 인태전략 연구팀이 제안하는 전략은 세계질서의 대변환과 한국의 상승하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거시적 안목에서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재정의하고 영향력을 제고하려는 시도입니다. 탈세계화, 보건위기와 기후위기, 식량 및 에너지 위기, 지구적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 위험, 그리고 미중 간 심화되는 전략경쟁의 맥락 속에서 EAI는 지역 공간과 지구 공간을 상호연결하는 글로벌 지역 전략으로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합니다. 보편 가치에 기초한 공생과 번영의 인도-태평양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계화로서 재세계화, 초국경적 도전 대응 국제협력, 미중 무력충돌 방지 및 규칙에 기반한 경쟁 유도를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한 6대 원칙으로 연결성(connectivity), 개방성(openness), 포용성(inclusiveness), 회복탄력성(resilience),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수용성(adaptability)을 제시합니다. 이를 토대로 경제, 기술, 환경, 안보 영역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추진해야 할 외교정책의 방향성을 제언합니다. 본 연구에는 김양규 EAI 수석연구원, 배영자 건국대 교수,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 이동률 EAI 중국연구센터 소장(동덕여대 교수), 이승주 EAI 무역ㆍ기술ㆍ변환센터 소장(중앙대 교수), 이태동 연세대 교수,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등 8인의 연구진이 참여하였습니다.   보고서를 마련하기까지 외교부와의 지적 교류 및 관련 전문가의 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김민성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교수, 김양희 대구대 교수, 마상윤 가톨릭대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백우열 연세대 교수, 설인효 국방대 교수,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사무국장,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실장, 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 우정엽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용욱 고려대 교수, 이재민 서울대 교수,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라운드테이블 논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고서 발간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손열 (대표 집필), 총론: 한국의 글로벌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읽기] 2. 이승주 (대표 집필), 포용적이고 회복탄력적인 재세계화 추진 [보고서 읽기] 3. 배영자 (대표 집필), 포용과 협력의 기술혁신 생태계 구축 [보고서 읽기] 4. 이태동 (대표 집필), 녹색전환, 보건, 에너지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 추구 [보고서 읽기] 5. 전재성, 김양규 (대표 집필), 공생 가치와 규범에 기초한 안보질서 구축 [보고서 읽기]

EAI 인태전략 연구팀 2022-12-07조회 : 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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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논평] 글로벌 중추국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시의적절한 분석을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보이는 논평` 시리즈의 세 번째 순서로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를 맡고 계신 빅터 차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축함에 있어 가장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영역으로 안보정책을 꼽고, 점증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필요성과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 지지 분위기를 설명합니다. 아울러, 한국이 중견국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한반도와 북한 문제를 넘어 글로벌 이슈 영역에서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를 위한 권위주의 정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단기적인 비용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Part 1.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 00:00 Part 2. 한반도를 넘어선 한국의 외교 전략 공간 확장 04:58 Part 3.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역할 11:17 Part 4.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실현을 위한 제언 14:02     ■ 빅터 차_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 한국 석좌.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와 국제학 석사,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아시아 담당 국장이었으며, 현재는 조지타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겸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CSIS) 한국 석좌이다. 2007년까지 백악관에서 근무할 당시 일본, 한반도, 오스트렐리아 및 뉴질랜드, 태평양 열도 등에 관한 문제를 담당했으며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 회담에서 미국 측 부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 연구기금(D.S. Song-Korea Foundation Chair in Asia Studies)의 책임자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적대적 제휴: 한국-미국-일본의 삼각안보체제>>가 있고 다수의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게재했다.

빅터 차 2022-10-12조회 : 15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