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코로나가 초래하는 정치 경제질서의 변화를 국가, 지역, 국제기구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자 미주, 아시아, 유럽 개도국 지역 전문가 그리고 이슈 영역별 전문가들을 모여 연구팀을 구성하였다. 연구팀은 코로나 19가 촉진한 변화, 즉, 미중 경쟁의 가속화, 디지털 전환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흔들리는 자유주의 거버넌스에 대해 토의하였다. 연구결과는 총 10편의 워킹페이퍼와 전자책(e-book)으로 출판하였다.

스페셜리포트
[EAI 대담] 미중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선택

■ 손열 원장: 바이든 행정부는 작년 8월 통과된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약 50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여 미국이 약세인 반도체 제조 부문을 집중 육성하고자 한다. 1990년대 세계 칩 생산의 40%를 차지했던 미국의 압도적 우세가 현재 10% 정도로 하락한 추세를 극적으로 반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반도체를 단순히 첨단산업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과거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었다면 이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처럼 “인프라”이다. 국가경제의 핵심 기반인 동시에 국가안보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이자 산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법안은 첫째로 미국의 반도체 제조 부분 경쟁력 회복, 둘째로 미국의 공급망 강화, 특히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 핵심 기업이 있는 국가들과의 이른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결성, 셋째로 대중국 압박 수위를 높여 중국 반도체의 추격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과연 미국은 이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중국 내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는 한국 기업에게는 상당한 어려움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데 한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지, 여러 질문들이 제기된다. 먼저, 미국의 반도체 정책이 한국 등 주요 반도체 제조국 그리고 세계 경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 이재민 대사: 미국 입장에서 반도체는 디지털 시대에 미국이 경제적 우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물품이다. 미국은 반도체 여러 분야에서 우위를 잃었기 때문에 공급망 재편, 보조금 교부, 혹은 중국과 거래하는 기업에 대한 제재와 같은 대응책을 오랜 기간 논의해 왔고, 국내 기업과 정부는 꾸준히 대비를 하였다.   다만 지금의 상황이 이전과 다른 이유는 미국의 정책이 너무 공격적이고 성급하게 준비 및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또한 관련국들의 강력한 반응과 부정적인 미국 국내 여론으로 상당히 당황한 듯 하다. 따라서 미국도 적절히 타협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듯 하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사례 등 미국이 이런 식의 조치를 반복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부분이 우려된다.   미국은 현재 정확한 로드맵이나 계획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단기적인 목표를 위해 여러 정책 수단을 성급히 결정하고 시험 삼아 제도를 운영하여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때그때 조정해 나가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시장과 국제 관계의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반도체 지원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의 문제는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 정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이슈들이 반복적으로 불거지면 미국을 바라보는 기업이나 정부의 우려는 증폭된다. 시장 경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아닌, 미국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 전체의 불안정이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 배영자 교수: 이번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이 실현되면 10년간 중국에 의미 있는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생산 시설 및 대중 투자가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법이 규정하는 ‘초과이익 환수’ 및 ‘생산시설에 대한 접근 허용’ 등의 항목은 삼성과 SK 하이닉스처럼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미국에 삼두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내에서는 꾸준히 미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제공되는 보조금이 왜 외국 기업들에게 지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미국 정부는 이에 대응해 자국의 경제 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엄격한 정책을 내놓았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제조 경쟁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에 대응해 기존 제조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기업 이익도 확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소통을 지속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성장과 국익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정하고 협상하는 과정이 시급하다.   이번 반도체 보조금 지급은 일회성 투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가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지원 공고가 시작 단계일 것이다.   ■ 손열 원장: 미국의 보조금 정책이 지나치게 기업활동을 제약한다면 한국 기업이 지원하지 않는 옵션은 없는가?   ■ 배영자 교수: 미국에 대규모 신규 설비 투자를 결정한 삼성과 하이닉스는 미국의 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적자를 내고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조금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에서의 인력 확보가 어렵고 환경 및 처리 비용도 높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20%에서 30% 정도의 초과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보조금에 대한 논의 없이는 투자를 진행할 수 없다.   ■ 이재민 대사: 정부가 기업에게 투자를 요청하고 유치할 때에는 규제 완화와 보조금 교부가 큰 항목이고, 이를 ‘토탈 패키지’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제시를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물론 보조금에 요건이 있지만 이는 수혜의 요건이지, 운영을 함께 하고 자료를 나누어 보는 규정은 없었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보조금 정책에 모든 기업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미국의 정책은 일반적인 보조금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향후 조정이 있어야 한다.   초과이익 환수 또한 개념 자체를 정의 내리기 어려우며, 초과이익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도체 산업처럼 등락 폭이 큰 시장에서 이익을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는 것은 숫자로는 가능하지만 비현실적이다.   ■ 손열 원장: 반도체 법안이 현재 골격을 대체로 유지하는 속에서 집행되는 경우 미중 디커플링은 전면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는가?   ■ 배영자 교수: 전체적인 그림에서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며 불필요하다. 그러나 첨단 칩 제조 부분에서 이미 디커플링은 진행되고 있고, 미국이 제시한 ‘가드레일 조항’이 실현되면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들이 제대로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디커플링이 될 것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한국에 주는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국내 기업의 생산시설을 어떻게 유지할지, 혹은 어떻게 완만히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반도체법 시행 공고는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에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재협상이 필요하고, 미국의 규제가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이나 양자 컴퓨팅 같은 다른 첨단 기술로 확대될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디커플링과 그에 대한 대응 전략 역시 지속해서 논의될 것이다.   ■ 이재민 대사: ‘디커플링’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으므로 상품별, 분야별로 디커플링의 가능 여부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핵심 반도체 분야는 미국 입장에서 디지털 시대의 핵심 품목이다. 따라서 미국이 지금의 대중 정책을 유지하는 한, 자연스럽게 디커플링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현재 이 정책을 구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주변 반도체 생산국들과 지속해서 협의하고 조정 작업을 거쳐 새로운 조치를 마련하는 작업을 성실히 진행한다면, 장기적으로 핵심 반도체 부분에서 중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주요 생산국으로 남겠지만, 핵심 반도체와 연구·개발 부분은 미국이 통제하는 모습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시장을 이끌어 갈 것으로 예상한다.   ■ 손열 원장: 미국이 반도체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목표와 중국을 견제하는 목표가 같은 것은 아니다. 중국의 성장을 저지한다고 해서 미국이 제조부문 패권을 얻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과연 현 법안대로 실행해 가는 경우 미국이 제조부문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을까?   ■ 배영자 교수: 처음에 미국이 반도체 첨단 제조를 선언하고 TSMC와 삼성을 불러들였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미국 경제 시스템의 특성상 더 높아진 생산 비용과 인력 부재 속 첨단 제조를 어떻게 할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도체 제조는 미국의 장점과 전혀 맞지 않지만, 정부의 드라이브와 미국 국내 분위기 속에서 강력하게 추진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충격은 있을 것이라고 보이나, 성패를 내다보기에는 시기상조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5년보다 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며, 이러한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국 국내 정치 선거 등 지원이 중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미국이 중국을 따돌리고 패권을 유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이재민 대사: 동의한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에 나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다양한 도전 과제들을 타개하고자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정책적 의지와 지원이 얼마나 잘 작동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 손열 원장: 미국 기술에 의존하는 동시에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거대한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향후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이재민 대사: 우리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문제를 대할 때 사안별, 이슈별, 회사별로 대응을 해왔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가 생기면 또 그 다음 문제에 집중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패키지 딜’로 문제들을 큰 그림에서 논의하거나, 기본적인 합의를 거친 후 만들어진 틀 안에서 세부적인 일이 생길 때 함께 해답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한, 미국 입장에서 반도체 분야의 새로운 규범을 짜려고 할 때, 한국만한 파트너를 찾기 힘들다는 부분을 설득하여 한미 간 윈윈하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항상 미국이 원하는 것에 대해 한국이 후속으로 쫓아가기만 하다 보니, 이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큰 비용이 들어간다. 앞으로 계속 고민을 하고 논의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 배영자 교수: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한국은 크게 세 가지 어젠다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단기적으로 이슈가 발생했을 시 대응하는 ‘위기관리’, 둘째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도모하는 ‘동맹’, 그리고 셋째는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시해야 하는 ‘비전’이다. 대중 규제가 점점 확대되는 상황에서, 당장 한국 정부와 기업은 함께 대응하고 있다. 한편 동맹을 고려할 때, 탈중국화를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제3국과의 협력 또한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이러한 정책에 대응할 때, 가시적인 비전부터 구체적인 목표와 시행 상황까지 연결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예컨대 미국이 반도체법과 관련하여 발간한 ‘비전페이퍼’에는 구체적인 시행령부터 큰 그림까지 자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비전을 상세히 서술한다. 현실적으로 이 목표와 비전이 전부 달성되지는 못하겠지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절실히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체계적인 문서라고 생각한다. 경제안보는 투자, 위기관리, 장기적 동맹 관리를 모두 해야 하므로 범부처 협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 전문가, 기업 간의 협력도 중요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경제안보의 주요 어젠다와 거버넌스 구축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하여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 저자: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해외투자의 정치경제,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인터넷과 국제정치, 과학기술외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과학기술의 세계정치 연구: 현황과 전망》(2021), 《국제정치패권과 기술혁신: 미국 반도체 기술 사례》(2020), 《중국 인터넷 기업의 부상과 인터넷 주권》(2018), 《미중 패권 경쟁과 과학기술혁신》(2016), 《과학기술과 공공외교》(2013) 등이 있다.     ■ 저자: 이재민_경제안보대사·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법학석사 법학박사를 취득하였고 미국 보스턴 법대(Boston College Law School)에서 법학박사(Juris Doctor) 조지타운 법학전문대학원(Georgetown Law Center)에서 법학석사(LL.M.) 학위를 취득하였다. 제 26 회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부에서 근무하였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Willkie Farr & Gallagher LLP 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한양대학교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법(국제통상법 국제투자법)이다.     ■ 저자: 손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이다. 최근 저서로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2021, 공편), 『2022 신정부 외교정책제언』(2021, 공편), 『BTS의 글로벌 매력 이야기』(2021, 공편),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2021, 공편),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3, 6 (2019),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박지수,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jspark@eai.or.kr  

배영자 2023-03-24조회 : 12108
단행본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미중경쟁, 디지털 전환, 거버넌스 변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가속화, 디지털 전환과 정치경제, 코로나 이후 거버넌스와 세계정치경제 질서의 변환   코로나19의 지구적 확산으로 세계 경제는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 현재 가장 급격한 경제 침체를 맞이하고 있고 피해 범위 면에서도 과거와 대비해 이례적이다. 9인의 집필진은 이러한 위기가 세계정치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 팬데믹으로 인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쇠퇴 가속화, 미중 경제 갈등의 악화, 국가별 위기 대응의 차이에 대하여 논한다. 이 책은 정치경제의 변화를 국가, 지역, 국제기구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미중 경쟁의 가속화, 디지털 전환과 정치경제, 코로나 충격과 거버넌스   코로나19는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비전통 위협과 비전통 안보의 중요성이다. 미국 패권의 기반은 여전히 군사력, 첨단기술, 기축 통화, 문화력에 강한 반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따라잡는 기간이 짧아질 수 있어 양국 간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 변화는 디지털 전환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일상은 물론 다양한 생산 및 서비스 영역에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 번째는 흔들리는 거버넌스이다. 아직 국가들의 팬데믹 대응을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성공하는 권위주의와 실패하는 자유민주주의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9인의 집필진은 위기가 깊어질수록 기회는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코로나19의 지구적 확산으로 인한 세계질서와 국내질서의 변화를 정치경제 측면에서 분석한다. 각 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김상배)은 디지털 플랫폼 경쟁 진화를 분석한다. 미중 플랫폼 경쟁은 코로나 위기를 맞아 SNS, 동영상, OTT, 게임 분야 등으로 확산하였고, 향후 플랫폼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지정학적 경쟁’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부상에 대응하는 미래 국가전략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제2장(이승주)은 백신 개발, 생산, 보급을 사례로 하여 미국과 중국이 지역협력을 강화하는 행보를 분석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양자 차원의 경쟁과 협상에 치중하였던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이후 지역 차원의 전략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이고 있다. 백신 공급이라는 지구 공공재의 제공을 놓고도 미중은 경쟁국면을 이끌어 가고 있다.   제3장(김태균)은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보건 위기 상황이 거버넌스의 대전환을 요구하게 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두 가지 거시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국제 보건 안보와 국제경제질서를 안정화해 남반구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가와 국의 패권 강화에 반대하는 중국과 인도의 갈등이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두 가지 주요 질문에 대하여 분석한다.   제4장(배영자)은 지구가치사슬(GVC)의 관점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전 및 위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개도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기술혁신 수준이 낮아 디지털 전환을 위한 역량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개도국과 선진국간 디지털 전환 격차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제5장(정주연)은 코로나19 시대의 국가의 역할과 능력의 문제를 소환하고 비교적 방역에 성공한 국가들의 국가 능력 즉, ‘강한 국가’ 개념의 유용성을 검증한다. 특히 ‘강한 국가’의 하나인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제6장(이왕휘)은 권위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거버넌스 논쟁이 미중 전략 경쟁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어느 나라의 거버넌스가 더 우수하다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만일 중국이 더 빨리 위기 극복에 성공하면 국가 능력을 강조하는 중국식 거버넌스가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제7장(이정환)은 코로나19 대응 변수의 하나로 국가-사회관계에 대해 분석한다.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정부와 의료계에 사이에 후견주의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부분의 재조직화는 전후 일본의 사회적 안정성의 토대가 되었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관계를 흔든다는 딜레마를 지니고 있다.   제8장(이용욱)은 미연준(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코로나 대응 정책, 특히 비전통적 통화 정책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주목해야 할 중앙은행의 뉴노멀은 고용과 물가 안정의 균형을 잡는 기조변화를 말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 핵심기조에 대한 변화의 폭과 규모, 그리고 방향성은 유동적이라고 강조한다.   제 9장(조홍식)은 코로나19 위기가 유럽 지역의 거버넌스에 던지는 충격과 결과에 대해 분석한다. 유럽은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새롭게 변신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유럽 연합은 백신 공급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보건 정책의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했으며,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차원의 재정 정책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목차   서론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 손열   제1부 코로나19와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 1장 비대면 시대의 디지털 플랫폼 경쟁: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복합지정학 | 김상배 2장 코로나19 시대 미중 지역 경쟁과 백신 외교 | 이승주 3장 미중 전략 경쟁과 글로벌 남반구 질서 변화 | 김태균 4장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 배영자   제2부 코로나19와 국가 거버넌스 5장 코로나19 이후의 국가와 민주주의 | 정주연 6장 거버넌스와 국가 능력: 중국의 사례 | 이왕휘 7장 국가-사회 관계의 유산과 위기 대응: 코로나19와 일본 | 이정환 8장 미국의 경제적 대응전략: 통화정책을 중심으로 | 이용욱 9장 코로나19 위기와 유럽 통합의 전환 | 조홍식  

손열ㆍ이승주 엮음 2022-11-07조회 : 10125
워킹페이퍼
[EAI 워킹페이퍼]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시리즈⑩_ 코로나19 위기와 유럽 통합의 전환

I. 서론: 코비드19 위기가 유럽연합에 미친 영향   코비드19 위기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일상의 질서에 심각한 충격을 가하며 국가의 대응을 촉구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Schmidt 2020). 다만 유럽의 경우, 일상의 질서라 부를 수 있는 정치경제체제가 특별한 양상을 띠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나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을 책임지는 것은 주권을 보유하는 국가의 몫이다. 물론 단일/연방 국가나 정치·행정체제의 중앙집중적/분산적 성격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유럽은 이와 같은 복합성에 덧붙여 다층통치(Multi-Level Governance)체제라는 특징을 보여준다(Hooghe and Marks 2002).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중앙/지방정부의 구조에 덧붙여 초국가/중앙/지방정부라는 추가의 복합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유럽은 복합성을 강화하는 유동성도 안고 있다. 유럽의 다층통치체제는 한번 만들어진 규칙을 통해 유지된다기보다는 계속 변화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유럽 통합 운동은 1950년대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후 초국가 차원의 지역통합을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통용되는 주권국가라는 개념은 유럽에서 순수한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라는 초국가 단위는 주권의 더하기(pooling)로 형성된 정치 단위이기 때문이다(Peterson 1997). 유럽 정치질서의 유동성이란 더하는 주권의 영역과 양이 시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만들어진 ‘하나이자 불가분의 공화국’(La République une et indivisible)이 오래전 사라진 셈이다. 각 회원국의 주권을 조금씩 나누어 유럽으로 이전해왔기 때문이다.   코비드19 위기의 충격은 유럽지역 정치 질서가 갖는 복합성과 유동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의 목표는 코비드19 위기가 유럽 통합에 미친 영향을 파악함으로써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럽지역의 특수성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위기와 지역통합의 상호 관계는 유럽 통합 초기부터 중요한 인식론적 기초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장 모네(Jean Monnet)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통합이 이뤄진다고 주장했고, 결국 유럽이라는 존재는 위기에 대한 해결책의 집합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Monnet 1976). 물론 모네의 이런 주장은 비단 초국가 지역통합뿐 아니라 모든 정치 질서에 적용될 수 있다. 주권국가도 초기에는 위기를 극복하는 권력집중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모네는 위기가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기능적 측면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매우 구체적 정책을 통해 찾아야 한다는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유럽=해결책의 집합’이라는 등식의 의미는 거대한 담론도 필요하나 유럽 통합의 핵심은 역시 공동 행동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은 국가와 유럽의 형성과정에서 드러나는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국가가 상당 부분 물리력을 동원하여 거시적 주권을 선포하면서 일시에 헌정질서(Constitution 즉 건립을 통한 단위의 창출)를 만들었다면, 유럽 통합은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들을 조금씩 설득하면서 사안별로 주권을 끌어모아 차근차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모네의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법은 지역통합의 이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사회적으로 어떤 필요가 존재할 때 이를 해결하는 제도나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기능주의 이론은 유럽 통합이라는 변화를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국제화 시대에 국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제적 정치 단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1950, 60년대 등장한 신기능주의는 한 영역의 통합이 최대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영역의 통합으로 연계·발전되어야 한다는 연쇄작용(Spillover)의 개념을 개발하여 제시하였다(Deutsch et al. 1957, Lindberg and Scheingold 1971). 심지어 통합의 지체가 오히려 새로운 통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까지 제공하였다(Corbey 1995). 신기능주의 이론은 통합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지난 70여 년 동안 계속되어온 유럽 통합의 근본 동력을 설명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Schimmelfennig 2018).   물론 구조적 기능주의의 설명은 행위자의 전략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설명으로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과 이익에 기반하여 제기되는 문제를 정의하고 조작하면서 통합을 이끌어가거나 이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전략이론은 신기능주의를 적절하게 보완하는 이론이다(Jabko 2005).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통합된 정책으로 반영되는 과정을 중시하면서 행위자들이 어떻게 문제를 발견, 정의하고 이를 자원으로 활용하여 정책적 틀을 추진하는지 주시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접근법이다. 이 과정은 많은 행위자가 참여하기에 미시적 분석이 동반되어야 하며, 다양한 흥정과 협상이 이뤄지는 와중에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며, 많은 경우 행위자 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조합을 통해 결실을 얻는다.   신기능주의와 정치적 전략의 두 관점에서 유럽 통합의 주요 성장기를 설명하는 노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1950, 60년대 유럽 통합의 초창기에 냉전과 경제재건이라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국가 행위자들의 노력은 정치·군사통합의 실패와 경제통합으로의 재조정으로 귀결되었다. 1980, 90년대 일본의 부상(Sandholtz 1992)과 탈냉전 시기를 맞아서도 정치적 통합의 추진은 단일시장과 화폐통합이라는 다소 의외의 방향으로 결말을 맞게 되었다. 부연하자면 유럽 통합은 시대가 요구하는 커다란 방향을 따라 이뤄졌다기보다는 시대적 요구를 빙자한 행위자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예측하기 어려웠던 결과라는 뜻이다.   2020년 초부터 유럽을 강타한 코비드19 위기는 유럽연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특히 유럽 통합의 방향을 좌우할 정도로 강한 효과를 발휘했는가. 코비드19 위기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전 2010년대 유럽연합이 겪었던 다양한 위기와 그로 인한 유럽 통합의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유럽은 2020년대를 시작하면서 이미 존재론적 위기(II.)를 맞고 있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코비드19 위기는 역내에 격리와 봉쇄(III.)라는 치명타를 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 통합은 시민의 자유로운 통행을 가장 커다란 업적으로 선전해 왔다는 점에서 코비드19 위기는 통합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셈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유럽은 코비드19 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는 백신의 공급을 유럽연합이 담당하면서 보건 정책의 새로운 행위자(IV.)로 등장했다. 다른 한편, 위기의 경제적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 차원의 재정 정책(V.)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위기가 시작되고 1년 반 남짓한 기간의 경험을 놓고 미래를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은 유럽연합이 코비드19 위기라는 기회를 적절하게 포착하여 통합을 강화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는 점이다.   II. 배경: 유럽 통합의 전체적 위기 상황   2020년대가 시작하면서 유럽은 안팎으로 가해지는 충격으로 초유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우선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써 유럽을 지탱하던 하나의 기둥이 빠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가했다. 외부적으로는 중국의 놀라운 부상이 세계 지정학에서 심각한 변화를 초래하며 유럽의 위상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전통적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을 맞았다.   1. 유럽 통합과 브렉시트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결정했고, 2021년 초 실질적으로 EU 회원국에서 역외국가가 되었다. 브렉시트가 유럽 통합에 미친 부정적 효과와 심리적 타격은 강했다(The Economist 2016). 첫째, 유럽 통합은 1950년대 시작한 이래 계속 회원국의 수를 늘리며 확장세를 유지했고 특정 국가가 통합의 대열에서 탈퇴한 일은 처음이다. 2010년대 그리스를 비롯해 일부 남유럽 국가들의 탈퇴 – 예를 들면 그렉시트(Grexit)라 불리던 – 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었지만 실질적 탈퇴가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둘째, 영국은 유럽연합 안에서 가장 큰 국가에 속한다. 일명 ‘빅4’(Big4)라고 불리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유럽 핵심에서 한 축이 무너지는 셈이었다. 셋째, 영국은 단순히 규모가 커다란 회원국일 뿐 아니라 유럽 안에서 자유무역이나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정책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나라였다(Rosamond 2020).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본다면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이고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력으로 유럽의 정체성에서 매우 중요한 닻의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브렉시트는 유럽 통합이 항상 진보하는 운동이 아니며 후퇴할 수도 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브렉시트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수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Ricard 2021). 일단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지난(至難)한 과정을 겪으면서 추진됨으로써 유럽연합 내부에서 탈퇴의 목소리가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국민연합(RN, Rassemblement National)이나 이탈리아의 레가(Lega) 등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주장하던 유럽탈퇴론은 수그러들었다. 또 영국이 유럽에서 사라지면서 유럽연합의 정책 결정 과정이 수월해졌다. 영국은 여러 가지 역사·문화적 이유로 원래 유럽 통합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세력이 아니라 마지못해 참여하는 미온한 태도의 회원국이었다. 새로운 정책을 유럽 차원에서 실시하는 통합에 대부분 반대했는데, 이런 영국이 탈퇴하자 정책 결정은 그만큼 쉬워졌다. 코비드19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브렉시트가 복합적인 효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2. 중국의 부상과 유럽의 반응   2010년대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부상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2013년 구매력평가기준(PPP)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 규모가 미국을 넘어서면서 중국은 명실공히 경제력 G2로 올라섰다. 2020년대는 중국이 명목 국내총생산에서도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경제 최강국으로 부상을 예측하고 기대하는 시기가 되었다. 유럽 통합은 역사적으로 외부적 위협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유럽의 통합을 촉진한 명시적인 위협은 소련과 공산권의 군사·안보적 팽창전략이었다. 유럽은 또 미국에 잃어버린 경제·문화적 리더십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통합을 고려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는 일본의 부상이 유럽 통합을 촉진하는 요소였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을 자부했던 유럽이 볼 때 중국의 부상은 소련이나 미국, 일본에 이은 또 다른 심각한 위협이다(Biscop 2020).   유럽연합은 2019년 중국을 ‘체계적 경쟁자’(sys-temic rival)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선택했다(Small 2020). 중국은 이제 유럽이 지원하는 거대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놓고 유럽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한 세력임을 인정한 셈이다. 게다가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개방이나 자유화보다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화하는 중국의 양상은 이런 전략적 인식이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물론 유럽의 내부적 사정은 전략적 담론이 보여주는 대립이나 경쟁보다 훨씬 복잡하다. 브렉시트의 영국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유럽을 대신할 수 있다는 ‘글로벌 브리튼’의 꿈을 안고 있고, 수출 대국 독일도 중국과 관계의 악화를 두려워한다. 코비드19 위기는 중국에 대한 유럽의 의존을 부각하면서 유럽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었다.   3.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통합   2016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에 이어 1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유럽 통합에 중요한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유럽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자랑해 왔으며 국제적 통합을 추진하는 유럽연합을 폄하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Shapiro 2020). 보다 근본적으로 미국은 유럽 통합의 역사적 후원자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통합 초기부터 국제적 반공(反共) 계획으로 미국은 유럽을 지원했고, 탈냉전 시기에도 유럽 대륙의 안정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EU의 역할을 인정했다. 물론 경제적 경쟁의 측면이 있었으나 미국-유럽의 확고한 안보 동맹을 위험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00년 이상 계속된 유럽-미국의 확고한 동맹 관계를 뒤흔들었다. 특히 70년 가까이 미국과 서유럽을 안보공동체로 묶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핵심 조항인 집단안보 개념이 자동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동맹에 대한 신뢰를 위협했다(The Economist 2019a). 유럽에서는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가 불안해지자 유럽의 독자적인 방어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안보의 유럽주의 담론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유럽주의보다 대서양 관계를 중시하던 영국의 탈퇴 결정은 이런 경향의 확산에 힘을 실었다. 물론 소련에 이어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 중·동유럽에서는 불확실한 유럽주의보다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더 강하지만 말이다.   2020년 초 코비드19 위기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동아시아를 넘어 곧바로 유럽으로 전파되어 확산하였다. 당시 유럽연합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었다고 진단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이라는 중요한 회원국이 처음으로 탈퇴를 선언하여 안정과 균형이 무너진 데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세계 질서에서 유럽의 위상을 더욱 아래로 짓누르며 부상했고, 전통적 동맹인 미국은 유럽을 친구보다는 적 또는 경쟁세력으로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였다.   III. 봉쇄와 격리   중세부터 전염병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사람들을 격리함으로써 전염의 가능성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쿼런틴’(quarantaine)이라는 표현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사람들을 40일 동안 격리한다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다. 코비드19에 대한 대응도 예외가 아니었고 격리와 봉쇄는 보건 위기를 관리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유럽 통합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이동이 제일 대표적인 성과였다는 점이다. 유럽이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다양하지만 복잡한 공동정책들보다는 “여권도 필요 없이 신분증이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라는 단순한 사실이 더 쉽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1. 유럽 통합의 퇴보?   2020년 코비드19 위기가 유럽을 강타하기 시작했을 때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의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적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의 외형적 축소였다면 코비드19 위기는 유럽 통합의 내부적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가졌다. 코비드19 위기는 일률적으로 유럽에 확산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띠었기 때문이다. 중국 관광객이 이탈리아에 전파한 코비드19는 지중해 관광 중심 국가에 제일 먼저 확산했고, 이어 이곳을 거쳐 간 유럽인들을 통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퍼졌다.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코비드19 환자가 다수 발생하는 특정 지역과의 이동을 금하는 결정을 내렸다가 동시다발적으로 환자의 수가 대폭 증가하자 아예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의 이동도 통제하는 봉쇄 조치를 남발하게 되었다(Stroobants 2020).   유럽연합은 통합의 가장 가시적인 효과로 자유롭게 “여행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유럽을 선전해 왔다(European Commission 2021b). 마치 한 국가라도 되듯이 유럽 시민이라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1985년 솅겐(Schengen) 조약은 유럽인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길을 열었고, 1986년 유럽단일의정서는 유럽 차원의 단일시장(Single Market)을 추진하면서 노동도 자본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이어 유럽연합은 한 회원국의 사회보장제도를 다른 회원국에서도 인정받도록 정책 조정의 노력을 기울였다. 국경의 통제와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이 코비드19 위기로 급속하게 확산하자 유럽 통합이 30년 이상 노력해 만들어온 공간이 다시 분할되는 효과를 낳았던 셈이다.   스웨덴의 사례는 코비드19 위기가 얼마나 유럽내 국경을 다시 세우는 데 복합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스웨덴은 다른 회원국에 비해 시민의 일상적 자유를 유지하는 정책을 고집했다(Steinglass 2020). 경제활동에 줄 수 있는 제약을 최소화하고 마스크 착용과 같은 조치도 되도록 피했다. 당장 전염병의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집단면역을 추구하는 독특한 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특수한 정책은 이웃 국가가 스웨덴과의 이동을 통제하는 정책 반응을 낳았다.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 노르웨이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지만 솅겐 조약을 통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 왔다 – 등 스웨덴 주변 국가는 모두 이동을 금지했다. 코비드19 자체보다 코비드19 대응의 차이가 국경을 다시 세운 사례다.   2. 난민 위기의 전례   유럽이 자랑하는 자유로운 이동의 원칙이 심각하게 무너진 경우는 2015년 난민 위기 때다(Caporaso 2018). 말하자면 코비드19 위기 이전에 이미 자유로운 이동의 자유는 정지된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당시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1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터키를 통해 그리스로 진입했고, 그리스에서 다시 유럽연합 전역으로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단 그리스, 즉 유럽연합 영역에 진입하면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난민들에게는 터키에서 그리스로 넘는 일이 일차적 목표였다. 그러나 대량 난민의 행렬이 집중적으로 늘어나자 일부 회원국들은 긴급 조치라는 명목으로 국경 검색을 다시 시작하며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은 바 있다.   물론 2020년 이후 코비드19로 인한 국경 통제는 2015년 난민 사태 때보다 더 포괄적이고 강력했다. 단순히 국경 검색을 부활하여 난민의 이동을 막은 것이 아니라 유럽 시민의 이동까지 제한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2015년의 난민 위기는 유럽연합과 터키의 협력으로 제한할 수 있었다. 시리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터키가 EU의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난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키로 하면서 난민의 행렬을 막았다(Vallet 2021).   난민 위기의 전례는 유럽연합에 미묘한 교훈을 남긴 셈이다. 하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럽이 신속한 공동 대응책 마련에 실패하면서 회원국의 산발적 대책이 통합의 업적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단기적 무기력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런 회원국의 조치들은 결국 일시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유럽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정상화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국경 통제와 같은 유럽 통합을 부정하는 조치도 위기로 인한 일시적 대응일 뿐 그렇다고 유럽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3. 공동 대응의 모색   코비드19 위기가 자유 이동이라는 유럽 통합의 업적을 단숨에 붕괴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을 유럽에 전가하기는 어려운 성격의 사태였다. 물론 유럽 통합을 세계화의 한 부분으로 보는 세력은 대규모 관광이나 광범위한 교역이 코비드19 사태를 가져왔다며 유럽과 세계화를 함께 비난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유럽의 일반적 반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격리와 봉쇄와 같은 조치는 일시적이며 불가피한 대응일 뿐이라는 시각이 더 보편적이었다. 특히 격리와 봉쇄에 관한 결정은 회원국 정부의 권한이었고, 유럽 내 국가 간 이동뿐 아니라 국내 이동에도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사안이었다.   코비드19가 서유럽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동 유럽을 포함한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다. 이처럼 한편으로 코비드19 위기의 범위는 확산했지만 동시에 같은 국가 내에서도 지역별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총체적 범위의 확산과 지역 간 차별화의 인식은 코비드19 위기에 대응도 유럽, 회원국, 지역 등의 다층적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Krastev and Leonard 2021).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코비드19 위기가 유럽 국가 간 협력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2020년 봄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독일은 상대적으로 병원 시설의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국경 지역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환자를 독일 병원에서 수용하여 치료하는 협력 체제가 만들어졌다(Wieder 2020). 통제하기 어려운 일반인들의 이동은 막더라도 소수 환자의 치료를 위한 월경(越境)은 오히려 장려하는 사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2020년 4월 유럽연합이 역외 지역과의 인적 교류를 금지하는 데 합의한 조치는 코비드19에 대한 공동 대응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European Commission 2020a). 역사적으로 유럽의 역할을 회원국 사이에 국경을 낮추거나 없애는 일이었지만, 코비드19를 통해 대외적 국경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셈이다. 이는 유럽공동체 시기 상품의 교역에서 유럽이 역외에 공동관세를 적용하면서 공동통상정책을 수립했던 경험의 초기와 유사하다.   코비드19로 인한 유럽의 격리와 봉쇄 조치가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늘어나면서 유럽 통합이 퇴보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퇴보가 일시적이고 불가피했다는 인식 또한 강했다. 게다가 그 책임은 전통적으로 보건 정책을 담당하는 회원국 정부들의 몫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유럽은 책임은 피하면서도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었다.   IV. 백신의 정치   코비드19 위기는 유럽연합이 보건 정책의 한 부분에 직접 개입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회원국 정부가 아닌 유럽 차원에서 백신을 구매하여 배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원래 보건 정책은 전통적으로 회원국의 권한에 속하는 영역이었고 유럽 차원의 개입은 간헐적이고 간접적이었을 뿐이다. 코비드19처럼 새로운 정책 쟁점을 제기하는 위기가 아니었다면 유럽이 이처럼 중대한 분야의 권한을 신속하게 차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는 어떤 요인들이 유럽의 권한 확대를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본다.   1. 회원국 담당의 보건 정책   유럽에서 연합과 회원국의 권한 배분은 무척 복잡한 양상을 띤다. 정책 쟁점이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명확한 권한의 구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유럽연합은 단일시장 즉 상품의 이동과 관련된 쟁점과 영역에서 거의 독자적 권한을 행사한다. 반면 복지국가라는 할 수 있는 부분의 기능은 회원국들이 전담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정책의 분업 체계에서 보건 정책은 복지국가, 즉 회원국의 권한에 일단 속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Brooks and Geyer 2020, 1059). 실제 보건·의료 분야의 정책은 여전히 회원국 정부 차원에서 내려진다. 예를 들어 코비드19 위기에서 중요한 격리·봉쇄와 관련된 정책 및 백신 접종 정책은 회원국 정부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   유럽이 개입했던 영역은 보건·의료와 단일시장이 중첩되는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의약품에 관한 평가와 허가를 담당하는 역할은 유럽 차원에서 유럽 의약품청(EMA, European Medicines Agency)이 담당했다. 약품은 특수하기는 하지만 상품이었고 그 허가와 유통은 단일시장의 자유로운 이동의 대상이었기에 유럽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했다. EMA는 유럽 단일시장이 형성되면서 1995년 영국 런던에 설립되었으나, 브렉시트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전했다.   유럽 의약품청은 2020년 말 백신의 허가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급속한 백신 개발이었던 만큼 안전에 관한 우려가 심각했으며, 러시아나 중국 등에서 개발한 백신에 대한 허가 여부는 민감한 외교적 쟁점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현재까지도 EMA는 러시아나 중국의 백신은 공식 허가하지 않았으며 이 정책은 유럽 내부에서 백신의 정치에 중요한 다툼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2. 유럽의 부상: 백신 공동 구매   2020년 봄 유럽은 코비드19의 빠른 확산으로 거의 모든 회원국이 전국 봉쇄라는 강력한 조치를 결정했고, 그 결과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았다. 그해 여름 유럽 집행위원회는 백신의 공동 구매와 배분이라는 보건 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담당하면서 새로운 권한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였다(European Commission 2020b). 유럽 차원에서 약품을 허가하는 권한과 새로운 질병을 통제하는 데 결정적인 백신을 구매하고 배분하는 권한은 큰 차이를 드러낸다. 전자가 시장 관리의 부수적인 한 부분이라면 후자는 보건 정책의 결정적인 중심축이다. 보건 위기가 유럽 통합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유럽연합이 놓였던 시대적이고 구조적인 위기는 새로운 정책을 통해 존재 이유를 확인해야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브렉시트는 유럽 통합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주의를 불러왔었고 중국의 부상이나 미국과의 불협화음은 유럽의 상대적 무기력함을 강조했다(van Middelaar 2020). 난민 위기에 대한 유럽의 대응이 회원국 중심으로 분산됨으로써 결국 실패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강했다. 코비드19 위기 발생 이후에도 마스크 확보를 둘러싼 유럽 국가 사이의 경쟁은 분열의 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안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특히 정통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2019년 임명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 의회와 회원국 정상들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로 부상한 후보였다(The Economist 2019b). 의회의 주요 정치세력인 기독교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가 지지하는 대표 후보들이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줄줄이 낙마하면서 프랑스가 제안해 등장한 위원장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정치에 오래 몸담았으나 원래는 의사라는 특징도 가졌다. 부족한 민주적 정통성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로 표명될 수 있었다. 의사-집행위원장의 백신 구매 정책은 이런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명확한 유럽의 권한이 아닌데도 집행위원회에서 구매 정책을 추진하려면 회원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회원국이 적어도 유럽 차원의 공동 구매에 반대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2020년 여름만 해도 백신의 개발은 불확실했고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백신 개발이 난해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었다. 회원국 입장에서는 새로운 영역의 불확실한 쟁점을 유럽이 담당한다는 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크지 않았다.   유럽은 주요 제약회사들과 협상에 나섰고 유럽연합의 백신을 선구매하여 충분히 확보하는 데 전반적으로 성공했다. 협상 과정을 종결하는 데 영국이나 미국보다는 늦었고 실제 백신이 공급되는 데도 상대적으로 늦었으며 일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The Economist 2021). 백신의 공급 과정에서도 회원국 사이에 신경전에 벌이지는 일도 있었다. 이런 기술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종합적으로 유럽 집행위의 백신 공동 선구매 전략은 저렴한 가격에 다량의 백신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었고 그 결과에 대해 유럽 여론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백신 배분의 정치   2020년 12월에 유럽은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2021년 상반기 빠른 속도로 시민의 접종을 실행했다. 백신의 정치에서 제기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동 유럽에서 뒤늦게 발생한 코비드19 환자의 폭발적 증가였다(The Economist 2021). 2020년 코비드19 확산은 주로 서유럽 중심이었기에 중·동 유럽은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는데, 2021년 질병이 갑자기 확산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국가별로 예정된 백신이 중·동 유럽은 턱없이 부족했다.   헝가리나 체코 등은 급기야 중국이나 러시아의 백신을 도입하는 선택까지 하게 되었다(Kauffmann 2021). 유럽 통합에 대해 계속 비판적 목소리를 내 왔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부는 처음부터 저렴한 중국 백신을 활용을 권장했다. 체코의 경우 다급한 정부가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겠다고 결정했다가 연합정부가 붕괴하는 정치 위기로 연결되었다. 연정 파트너였던 정당이 러시아 백신 도입을 반대하며 탈퇴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이들 중·동 유럽 국가의 상황 변화에 대해서도 연대의 원칙을 나름 적용해 대응했다. 사정이 나은 회원국들이 중·동 유럽으로 백신을 양보하는 합의를 만들어냈다(Malingre et Chastand 2021). 또 끝까지 새로운 배분을 반대하는 회원국의 의사도 존중했다. 원칙과 양보와 타협을 적절히 조화시키는데 상당 부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4. 보건 여권: 보건과 이동의 결합   2021년 7월부터 유럽연합은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조화롭게 재개하기 위해 보건 여권을 적용하고 있다. 보건 여권이란 유럽 차원에서 이동을 허용하는 기준을 마련하려는 노력이며 이미 2021년 3월 백신 접종의 초기 단계부터 유럽 집행위원회의 계획에 따른 결과다(Malingre 2021). 예를 들어 백신 접종 여부, 코비드19 검사 결과, 질병 병력 등을 담은 공동의 증명서를 만들어 이동을 쉽게 하자는 생각이다. 다만 회원국마다 이동을 허용하는 정책이 워낙 다르다 보니 어떤 정보를 여권에 담을지만 합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변이의 발생으로 대응은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럽 통합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유럽의 새로운 백신 권한이 사람의 이동에 관한 전통 권한과 결합하여 보건 여권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코비드19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은 보건 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Brooks and Geyer 2020). 지구적 차원의 전염병이니 회원국 차원에서 전담하는 보건 정책보다는 유럽 수준에서 대응을 마련하는 것이 기능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기능적 수요가 실질적 권한으로 반영될 수 있었던 과정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개연성에 기초해 몇 가지 가설을 제공했을 뿐 정확한 확인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V. 재정 연방주의   2020년 7월 유럽연합은 코비드19 위기의 경제·사회적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유럽 차원의 다년간 경제 지원 재정 패키지를 결정했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코비드19 위기 대책에 비교하면 유럽의 지원 규모는 초라할 정도다. 회원국 차원에서 동원되는 위기 극복 재정 지원과 비교하더라도 유럽의 결정은 오히려 작은 규모로 돋보인다. 하지만 이 결정은 코비드19 위기가 초래한 가장 극적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다(Ladi and Tsarouhas 2020). 유럽이 재정적으로 통합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출발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 유로 위기의 경험   2015년 난민 위기의 전례가 코비드19 위기에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듯이 2010년대 반복되었던 유로 위기의 경험은 보건 위기에 대처하는 중요한 기준과 배경으로 작동했다(Schimmelfennig 2014). 2010년 시작하여 2012년, 2015년 등 반복해서 유럽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유로의 위기는 유럽 통합의 불균형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Pisani-Ferry 2014). 유럽은 유로라는 하나의 화폐를 보유하기에 같은 통화정책의 대상이나 재정정책은 각 회원국이 담당하기에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유럽은 1999년 유로라는 화폐를 출범시켰고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이 통화정책을 담당한다. 하지만 회원국마다 경제적 조건과 상황은 다르다. 유럽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제대로 작동하려면 회원국 사이의 차이를 조정해 줄 수 있는 공동의 재정정책이 있어야 한다. 경쟁력 있는 지역, 부자 회원국이 뒤처진 지역과 가난한 회원국을 돕는 재정 기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연방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럽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전자는 유럽 차원, 후자는 회원국 차원으로 분리되어 위기 발생의 원인이자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비판이 국제적으로 제기되었다.   통화·재정정책의 불균형은 유럽연합 내부의 지리적 불균형으로 반영되었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과 동유럽의 국가들은 재정적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으나 대개 남유럽의 국가들은 대개 만성 재정적자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안고 있었다. 재정적자를 의도적으로 추구한 것은 아니더라도 재정적자와 공공부채의 부담이 역사적으로 높았거나 유로 위기를 통해 악화된 상황이었다(Matthijs and McNamara 2015). 통화 및 재정정책에서 유럽 남북의 대조적 양상은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일종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반복되는 화폐의 평가절하를 경험했고, 반대로 독일은 도이치 마르크의 평가절상을 반복했다. 이런 경향은 1979년 출범한 유럽통화제도(EMS, European Monetary Sys-tem)에서도 다시 확인되었다.   유럽이 단일화폐를 추진하면서 독일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남유럽 정부의 ‘무책임한’ 지출로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었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단일화폐의 추진을 결정하면서 독일은 강한 유로의 발판을 마련했다(Degner and Leuffen 2021).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추진하도록 조약에서 못을 박았다. 또 유로에 동참하려면 안정적인 통화·재정정책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긴축 정책의 노력 끝에 간신히 마스트리히트 기준을 충족시켰고, 유로 출범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독일의 관점에서 유로 출범 이후 남유럽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느슨해진 것이 유로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2010년대 독일은 남유럽 위기를 지원하면서 항상 더욱 강한 긴축 재정을 요구한 배경이다.   이때 제시된 해결 방안이 유럽 차원의 재정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회원국들의 국채가 문제라면 유럽이 공동의 채권(eurobond)을 발행하여 위험 부담을 분담하면서 위기를 넘기자는 제안이었다. 독일은 그 경우 재정 관련 남유럽 국가들의 도덕적 해이가 반복되거나 심화할 것이라며 명확하게 반대했다(Matthijs 2016). 달리 말해 유럽의 재정·통화정책 불균형은 남·북의 지리적 불균형과 중첩되면서 유로 위기의 원인 및 배경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2. 재정 패키지의 내용과 의미   2020년 7월의 재정 패키지는 지출 부분도 의미가 나름 있으나 재원 마련에서 획기적인 유럽 채권의 원칙을 세웠다는 점에서 놀라운 변화다(European Commission 2021a). 우선 지출을 살펴보면 다년간 예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중장기 계획의 일환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연합은 이미 다년간 예산의 원칙을 적용하여 시행하고 있었다. 다수의 회원국이 참여하는 정책 결정이라 중장기 계획이 없으면 매년 결정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재정 패키지는 ‘일시적’ 위기에 대응하는 특별 예산임에도 중장기라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점이 특이하다.   재원 마련은 두 가지 방식을 동원한다. 하나는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적용되었던 회원국 재정 기여의 원칙을 따른다. 다른 하나가 유럽 차원의 채권을 발행하여 필요한 회원국에 지원해 준다는 새로운 재원 마련 방식이다. 유로본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유로의 위기나 유럽 통합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번 재정 패키지의 재원 마련 방식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치부될 수 있다. 그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수십 년 동안 재정 문제를 남유럽과 통합하기 거부하던 독일이 보여준 태도와 정책의 변화는 놀랍다(Malingre 2020).   3. 재정 통합의 정치   기존 유럽의 재정 통합과 관련된 회원국의 입장은 한편에 통합을 원하는 남유럽 국가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 통합에 반대하는 나머지, 즉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이 있었다(Busse et al. 2020). 2010년대 유로 위기란 남유럽의 위기였고, 재정 통합은 남유럽을 지원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나머지 모든 국가가 반대였다. 독일이나 북유럽은 원칙적으로 남유럽의 재정을 의심하며 통합을 반대했고, 동유럽은 자신들은 힘들게 긴축을 통해 간신히 유로에 동참했는데 발전 수준이 높은 남유럽을 도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2020년 코비드19 위기의 국면에서 재정 통합 논의는 약간 다른 형국이었다. 동유럽 국가들이 잠재적인 수혜지역으로 유로 위기 때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덴마크,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전통적인 정책 노선에 따라 공동 채권을 통한 재정 통합에 반대했다(Maillard 2020). 결정적인 역할은 결국 독일의 태도 변화다. 왜 독일은 수십 년 계속된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결정했을까.   유로 위기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남·북유럽의 균열은 코비드19 위기에서 거의 비슷하게 중첩되어 나타났다(Krastev and Leonard 2021). 재정 패키지를 결정했던 2020년 7월 가장 심각하게 보건 위기를 맞았던 것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남유럽 지역이었다. 보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적 봉쇄라는 극약처방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바로 경제 위기로 이어져 10% 규모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유로 위기를 겪으면서 긴축 재정으로 장기간 고생한 남유럽 국가들이 코비드19로 상황이 악화하면 극단적으로 유럽을 탈퇴하고, 유럽 통합이 총체적으로 붕괴하는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실제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정치 변동은 이런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2018년 기존 정치세력을 누르고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리가와 독특한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이 연합하여 집권하는 이변이 발생했다(The Economist 2018). 스페인도 빈번하게 반복되는 총선에서 극우 반유럽 민족주의 세력인 복스(Vox)가 부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비드19의 정치적 효과를 예단할 수는 없었으나 심각한 위기가 반(反)유럽 정치세력의 강화를 가져올 개연성은 높았다. 물론 독일에서 정책 변화가 정확하게 어떤 동기에 의해 이뤄졌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이런 유럽 정치의 상황과 변화는 독일에 영향을 행사했을 것이다.   재정 통합에 부정적이던 국가군에서 독일이 빠지자 나머지 회원국은 고립되는 모양새였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등이 반대했지만 유럽연합의 정치에서 자주 볼 수 있듯 나머지 대다수가 원하는 정책에 끝까지 비토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은 재정 지원에 조건을 부과해야 한다는 타협안으로 물러섰고 결국 유럽의 패키지는 합의되어 결정된 것이다.   코비드19 위기는 백신이나 재정 지원 패키지 등 규모는 그리 크지 않더라도 전략적인 분야에서 유럽연합의 역할 강화를 가져왔다. 일부 언론은 미국 역사를 들먹이며 유럽의 ‘해밀턴 모멘텀’이 왔다고 흥분했다. 미국의 연방정부가 독립 초기 재정적 기초를 마련했듯 유럽연합도 이제 독자적인 재정 연방주의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었다는 해석이자 희망이다. 공동 채권의 원칙이 앞으로 발전할지 아니면 한 번의 기술적 혁신으로 그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재정 통합이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확산한다면 코비드19 위기가 진정한 재정 통합의 출발점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   VI. 결론: 코비드19 위기는 유럽 통합의 촉진제   코비드19 위기는 공교롭게도 2020년대의 시작과 동시에 닥쳤다. 유럽연합은 2010년대 이미 붕괴가 빈번하게 언급되는 존재론적 위기의 상황이었다. 2010년대는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로 발생한 유로 위기와 함께 보낸 10여 년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의 유로 출범은 주권국가의 상징인 화폐를 하나로 통합했음을 알리는 유럽의 대표적 결실이었다. 이 같은 유로권의 붕괴 가능성은 유럽 통합의 종말이라는 시나리오로 통했다.   2015년의 난민 위기도 유럽의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심각한 사건이었다. 난민 통제를 위해 유럽은 이동의 자유라는 업적을 일시적으로나마 포기해야 했다. 난민 위기는 비교적 신속하게 해결됐으나 유럽이 자랑스럽게 내걸었던 인권 세력으로의 정체성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권위주의적 터키라는 국가에 난민의 통제를 ‘하청(下請)’했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유럽 통합의 불가역성을 무너뜨리는 충격이었다. 그것도 중소 규모의 회원국이 아니라 유럽의 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었던 강대국의 탈퇴였기에 충격은 더 심하게 다가왔다.   유로, 난민, 브렉시트라는 2010년대의 3대 위기의 효과가 반드시 유럽 통합에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유럽 통합 과정을 더 탄탄하게 만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유로 위기를 통해 유럽중앙은행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었고(McNamara 2012), 유럽은 은행 연합(Banking union)과 같은 추가의 정책적 통합을 추진할 수 있었다. 난민 위기는 역외 터키로의 정책 하청의 미봉책으로 종결되었고 회원국 사이의 분열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막중한 난민 부담의 책임을 도맡았다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널리 퍼졌다. 브렉시트로 영국의 탈퇴는 그 과정에서 영국이 보여준 난맥과 위기로 유럽과의 관계 청산이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van Middelaar 2020). 따라서 남은 회원국의 탈퇴 욕망을 오히려 줄여준 측면이 존재한다. 게다가 유럽 통합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던 영국이 빠짐으로써 유럽연합 내 결정 과정이 수월하고 단순해졌다.   코비드19 위기는 기존의 심각한 3대 위기에 더해진 위기였다(Wolff and Ladi 2020). 이 글을 통해 잠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현상은 유럽 통합은 위기의 여파로 중대한 어려움을 겪으나 위기를 매개로 새로운 정책으로 권한을 확대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보건 위기로 인해 격리와 봉쇄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도 유럽은 사람들의 역외 이동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고, 보건 여권 논의를 조정하면서 여전히 이동 자유의 수호자 역할을 맡았다. 백신의 구매 정책에서도 공동 전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존 약품 인허가 권한을 넘어 유럽 시민의 건강 관리라는 포괄적 임무로 영역을 넓혔다. 끝으로 위기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적 패키지를 마련하면서 공동 채권이라는 기술적 혁신을 포함했다. 제한적 변화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작은 정책의 혁신이 향후 거대한 변화로 연결될 수 있음을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코비드19 위기는 공동의 대응책 마련을 통해 유럽 통합을 부추기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였다. 도입부에서 소개했듯이 유럽은 위기에 대한 해결책의 집합이라는 구조적 설명과 행위자들의 다양한 계산 및 전략이 해결책의 마련으로 연결된다는 미시적 분석을 이 글에서 동시에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임기 초기에 취약한 ‘민주적’ 정통성을 극복하려는 집행위원회의 노력과 수십 년 전통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수용한 독일 정부의 태도가 코비드19 위기 대책에서 결정적이었다(Wieder et Boutelet 2020). 이 글에서는 시간의 제약으로 깊은 연구와 분석이 부족했지만 향후 추가 연구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다.   위기가 초래하는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공동 대응의 필요성은 거시적으로 동아시아나 세계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동아시아나 세계가 보여주는 모습은 협력보다는 분산된 대응이고, 때로는 대립하는 모습이다. 구조·기능적 필요 못지않게 행위자들의 전략에 대한 미시적 분석이 필요한 것은 물론, 행위자들이 행동하는 제도적 틀을 검토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 글에서는 거시와 미시를 연결하는 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거의 없다. 다층정치구조라는 사실만 소개하나 실제 행위자의 전략, 행동과 결정을 이해하려면 이 부분의 설명이 결정적이다. 특히 동아시아나 세계 차원의 행위자들과 비교 분석을 위해서는 말이다. 덧붙여 유럽은 이미 ‘유사(類似) 국가적 제도와 구조’를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기에 연방 국가 미국과의 비교가 이해의 열쇠를 제공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Biscop, Sven. 2020. “No peace from corona: defining EU strategy for the 20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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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2022-02-11조회 : 19146
워킹페이퍼
[EAI 워킹페이퍼]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시리즈⑨_ 미국의 경제적 대응전략: 통화정책을 중심으로

I. 서론   2020년 초에 발생하여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코로나 백신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델타 변이와 백신 접종 거부를 비롯한 돌발 변수의 출현으로 “코로나 종식”이 언제일지 아직 예상조차 어렵다.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세계경제의 실물 부분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추산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는 글로벌 GDP의 5% 수준에 육박하는 4조 달러의 피해를 추산하였다(ADB, “2020년 아시아 역내 경제 전망”).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의 가동률 저하, 고용과 생산 활동의 급격한 감소, 글로벌 무역과 투자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Robert Barro)는 2차 세계대전, 1930년대 대공황,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순으로 세계 경제의 거대한 침체를 가져왔다고 밝혔는데 코로나 사태가 스페인 독감 수준인 1인당 실질 GDP의 6%(43개국 평균), 1인당 실질소비액의 8% 감소, 주식 실질수익률의 26%, 단기국채 실질수익률의 14% 하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2020년 중반까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허윤, 문화일보 2020년 3월 31일 칼럼, “코로노믹스 글로벌경제”).   적어도 자산시장에서는 이러한 예상은 (아직까지는) 기우에 그쳤다. 미국 다우산업지수는 역사상 최고점이었던 32.777을 훨씬 뛰어넘어 35,000을 전후로 고공행진하고 있고 S&P 지수는 47차례나 최고점을 갈아치웠다. 한국과 일본의 주가도 활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코스피는 여러 차례 최고점을 갱신하였고 일본의 니케이는 1990년대 초 버블붕괴이후 처음으로 30,000에 도달하기도 하였다. 집값 역시 전세계적으로 대폭 상승하였다. 자산시장은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축복을 받은 듯하다. 집, 주식, 원자재가 동시에 “거품”이 낀 최초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조선일보 2021년 8월 16일).   코로나 사태 동안 더욱 커진 실물 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는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정책에 기인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Mallaby 2020). 중앙은행의 전례 없는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자산시장 활황의 토대라는 의미이다.[1] 세계 3대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이하 미연준),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일본은행은 2020년 3월 이후 제로 금리(혹은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무제한 양적완화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2] 미연준의 경우 통화 팽창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2021에 들어와서도 통화 완화 정책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2021년 2분기의 미국 인플레이션은 5.6%로 미연준의 2% 목표를 훨씬 상회하고 있음에도 통화정책에는 변화가 없다. 이에 대한 미연준이 밝힌 공식 이유는 높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고 여전히 고용 지표가 기대보다 낮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미연준의 “고용”에 대한 강조이다. 아래에 자세히 후술하듯이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미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핵심 통화 정책은 가격안정, 즉 인플레이션 관리에 있어왔다. 미연준의 고용에 대한 강조는 어쩌면 향후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를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미연준의 이러한 변화가 과연 일시적이 아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앙은행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인가? 이 글은 위의 질문에 대한 기초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코로나 사태가 여전하고 미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정책 대응도 진행 중이며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하는 경험적 증거와 데이터가 아직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연준의 코로나 대응 정책, 특히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상세하게 검토하고 이러한 정책이 나오고 지속하는 정치경제적 맥락을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앙은행의 뉴노멀을 예측해본다. 미연준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핵심 정책기조의 변화를 동반하며 중앙은행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해본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2장은 중앙은행 핵심 정책 기조의 변화를 서술한다. 제2차 대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추이를 살피는데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함께 고착된 가격안정화 우선정책을 조명해본다. 3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절은 미연준이 코로나 사태 이후 활용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2절은 미연준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다양한 층위의 정치경제 시각에서 분석해본다. 4장은 결론으로 앞선 논의를 정리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함의를 논한다.   II. 중앙은행 핵심 정책기조의 변화 추이   중앙은행은 현대 국가의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핵심 주체이다. 중앙은행의 주요한 역할로는 가격 안정, 고용 제고, 경제 성장,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이 있다. 먼저 중앙은행은 가격을 안정시키고 통화 가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지표에 대한 공식적, 비공식적 목표치를 설정함으로써 이 역할을 수행한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한 국가의 경제가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여 사회의 안정을 이루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중앙은행은 경제위기 시 최종대부자로서 기능한다. 대규모 기업 도산과 부채 위기 등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나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금융기관에 대해 독점적 발권력을 동원하여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 역시 수행한다.   1980년대 이후 중앙은행들은 이러한 여러 역할 중 가격 안정에 가장 큰 방점을 두어 관련 정책을 비중 있게 시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유럽중앙은행은 가격 안정이 유로시스템의 주요한 목표로서 여러 목적 중 압도적인(overriding) 중요성을 가진다고 명시한 바 있다(European Central Bank, n.d.). 가격 안정이 그 자체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완전 고용이나 균형적 경제성장과 달리 통화정책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미연준은 1978년 “험프리-호킨스법(Humphrey-Hawkins Act)”의 제정 이후로 고용과 가격 안정을 미연준의 양대 목표로서 명시한 바 있으나 실질 정책적인 차원에서는 유럽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가격 안정을 보다 중요시해왔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부총재이자 경제학자인 다니엘 소른톤(Daniel L. Thornton)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가 연준의 명시적 양대 목표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완전 고용이나 실업률의 측면에서 정책 목표를 선언하는 것을 회피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Thornton 2012b).   한편 역사적으로 보면 중앙은행에 주요하게 요구되었던 역할은 항상 동일하지 않았으며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특히 가격 안정화 정책에의 편중은 1980년대 이후 통화주의의 득세와 맞물려 대두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련하여 제랄드 엡스타인(Gerald Epstein)은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 관리에 대한 강조가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중시하던 기존의 역사적인 흐름과 완전히 배치된다고 평가하였다(Epstein 2006). 2차 대전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들에서 중앙은행은 정부의 통제 하에 전후 국가 경제를 재건하고 산업 재정을 보조하는 등 사회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Epstein 2006), 같은 시기 개발도상국들의 중앙은행 역시 산업화와 경제 개발을 위한 재원을 동원하고 할당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Amsden 2001; Epstein 2006). 또한 전후 실업률 폭등에 대한 우려는 많은 국가들이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수요 관리를 중시하고 높은 고용과 성장을 중앙은행의 목표로써 도입하도록 했다(Capie et al. 1994). 최대 고용, 생산, 구매력을 촉진하는 것이 연방 정부의 책임이라 선언한 미국의 “1946 고용법(Employment Act of 1946)”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가격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현재 중앙은행의 지배적 관행이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며, 1980년대 이전까지는 오히려 투자 촉진과 고용 제고를 통한 경제 성장이 중앙은행의 핵심 기조였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기조가 바뀐 데에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경험이 주요한 계기로 지적된다(Capie et al. 1994).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차 대전 이후 주요국 정책결정자들은 수요에 대한 관리를 통해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통화 정책은 이 과정에서 재정, 소득 정책 등과 함께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던 케인즈학파 경제 이론에 따르면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은 “필립스 곡선”에 따른 안정적인 부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은 실업률을 “자연실업률”까지 낮추기 위해 적정한 수준의 물가 상승을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Bordo and Orphanides 2013). 그러나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예상한 바와 같이 (Phelps 1967; Friedman 1968) 팽창적 수요 관리 정책에 따라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생산 및 노동 시장의 참여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하게 되자, 낮은 실업률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이 요구되게 되었다(Capie et al. 1994). 이에 더해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에 따라 명목적인 환율 고정 장치가 사라지고, 오일쇼크의 위기가 더해지자 인플레이션은 더욱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해 1964년 1%대에서 1980년 14.5%까지 올랐다. 같은 시기 실업률 역시 5%에서 7.5%까지 상승했다.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급격하게 상승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존의 통념과 대비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중앙은행 관료들과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장기적 균형(trade-off)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 비일관성 문제(time inconsistency problem)로 인해 팽창적 통화 정책이 고용 및 생산에 있어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하였다(Kydland and Prescott 1977; Calvo 1978; Barro and Gordon 1983; McCallum 1995). 다시 말해 미래의 통화정책에 대한 예측이 임금과 가격의 결정에 고려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통화정책의 영향은 장기적이고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고용과 생산과 같은 단기적인 수요 관리보다는 중장기적 가격 안정성을 목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Friedman 1968). 이와 같이 중앙은행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가격 안정이 대두되게 된 계기는 중앙은행의 지나친 팽창 정책의 위험성과 인플레이션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이 주목을 받으면서 부터이다(Mishkin and Posen 1997).   가격 안정의 중요성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에 통화주의적 정책이 성과를 거두며 더욱 더 힘을 얻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서독과 스위스 중앙은행은 통화량 통제를 통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목표로 하였고 그 결과 스태그플레이션 기간 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은 물가상승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Thornton 2012a; 그림 1 참조). 또한 1979년 미연준 이사회 의장 폴 볼커(Paul Volker)는 통화 긴축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억제 대책을 발표했으며 이후 연 20%에 달하는 초고금리 정책을 통해(높은 실업률과 단기간의 경기불황을 감수하며)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같은 해 영국의 총리로 당선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역시 통화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통화 목표제를 통해 가격 안정을 달성하고자 하였고 물가상승률을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 위와 같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됨에 따라 통화정책이 총수요와 물가상승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기존의 통념이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Thornton 2012a). 이에 여러 다른 국가들 역시 통화주의적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아래 [그림 2] 참조).   [그림 1] 유럽 물가상승률, 1970-1985(Thornton 2012a, p. 70)   [그림 2] 주요국 물가상승률, 1961-2000(Bordo 2013, p. 3)   중앙은행의 가격 안정 역할을 강조하는 통화주의적 기조는 1990년대 초반 공식적, 비공식적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설정하는 “인플레이션 타겟팅” 레짐의 출현과 확산으로 이어졌다. 특히 정책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기대를 고려하지 않은 전통적 경제모형 활용에 대한 “루카스 비판”(Lucas 1976)이 인플레이션 타겟팅 레짐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루카스 비판이 중앙은행 관료들과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인플레이션 관리에 있어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의 신뢰성(credibility)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Thornton 2012a). 이러한 흐름에서 1990년대 초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을 시작으로 많은 선진 국가들이 명시적인 물가상승률의 목표치를 발표하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칠레, 체코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 역시 인플레이션 타겟팅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아래 [그림 3] 참조). 한국도 1998년에 이 정책을 채택하였다.   미국의 경우 기존에는 FOMC에서 정기적으로 개인소비지출 가격지수(PCEPI)를 기반으로 산출한 물가상승률 타겟 범위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연준은 2012년 사상 처음으로 2%대의 명시적인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선언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가격 안정성이 통화 정책의 장기적 목표여야 한다는 1980년대 이후 중앙은행 관료들과 통화주의 주류 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3] 인플레이션 타겟팅 레짐 채택 국가 현황(영국 중앙은행 자료)   신자유주의 시대 중앙은행의 역할이 가격안정과 경제 위기시 최종대부자의 기능에 편중되었다는 점은 스탠리 피셔(Stanley Fisher 2005)와 실비아 맥스필드(Sylvia Maxfield 1997)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3] 이 두 연구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출판된 대표적인 중앙은행에 관한 분석인데 중앙은행의 주요 기능과 역할에 있어 두 연구 모두 고용 제고와 경제 성장 항목을 제외시켰다. 두 연구 공히 중앙은행의 주요 임무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책으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 관리를 포함한 이자율 조정을 통한 신용창출과 부채관리이다. 두 번째는 적정 환율 유지와 외환보유고 관리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금융안정화인데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말한다. 피셔와 맥스필드의 연구는 “신자유주의 중앙은행”의 전형을 기술하고 있다.   III. 미연준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정치경제   1. 미연준의 코로나 대응 비전통적 통화정책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가격 안정, 고용,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한다. 앞서 논의한대로 이러한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은 특정 핵심 정책 기조를 중심으로 조율되었고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통화정책의 핵심은 가격 안정화에 있었다. 미연준은 코로나 대응 기간 동안 “평균물가목표제”[4] 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동원해가며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확장 통화정책을 고수하였다.[5] 미연준은 물가가 상승할 때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단행해왔는데 적어도 단기적으로 이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고용 부진과 경기 침체의 시급성이 미연준이 내세운 이유였으며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수단이 되었다. 미연준이 활용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무엇인지 먼저 검토한다. 이어서 이러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집행을 통해 미연준이 전례 없이 “재정파트너”와 “최종투자자”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이 역할에 따른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집행 내역도 논하여 미연준이 코로나 사태 동안에 가동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종합적으로 조망해본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인 정책금리 조정이 더 이상 그 정책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사용된다. 쉽게 말해서 정책 금리가 영의 하한에 도달하여 더 이상 금리 조절을 통한 경기 부양 등이 불가능해졌을 때 중앙은행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꺼내들게 된다. 미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이 본격적으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이다. 일본은행이 2001년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하나인 양적완화 정책을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최초로 실시하였으나 이는 애초에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Park, Katada, Chiozza, Kojo 2018, 41-50).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생소함에서 전지구적인 뉴노멀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었다(Geithner 2014).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중앙은행의 경제위기 대응 정책 매뉴얼에 새롭게 포함되었다는 의미이다(벤 버냉키 2013).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정책을 포괄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정책(Negative Interest Rate Policy),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선제적 지침(Forward Guidance), 신용정책(Credit Policy) 등이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영의 하한에 두는 것을 말한다. 보통 시중은행의 중앙은행에 예금을 예치하는 경우 중앙은행이 이에 대한 보관료를 징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6]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는 기업 융자나 유가증권의 구입 등으로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도록 유도하여 내수 경기를 진작시키는 방안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2년-2018년 사이에는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헝가리, 일본, 유럽중앙은행 등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사용하였다.   양적 완화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미연준의 경우 “대규모 자산매입(Large Scale Asset Purchas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장기 국공채를 비롯한 유가증권 매입을 통해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여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정책인데 정책금리의 추가 인하가 어려울 때 고려된다. 특히 양적 완화는 공개시장 조작을 통한 단기금리 조절과는 달리 중앙은행이 중장기 자산을 매입함으로써 장기금리의 하락을 목표로 실시된다.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는 결국 안전자산의 가격 상승을 통한 금융시장의 유동성 확대 정책이다.   선제적 지침은 중앙은행의 소통 전략이다. 미연준의 경우 의장의 기자회견, 잭슨홀 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록 공개 등을 통해 경제주체들에게 중앙은행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읽게 하고 이를 통해 이들의 경제 전망, 기대, 선택에 영향을 준다.[7]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써 선제적 지침의 특징은 선제적 지침이 대부분의 경우 독립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선제적 지침은 마이너스 금리, 양적 완화, 신용 정책 등 다른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시행되고 있을 때 이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령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언제까지 운용될 것이며(기간에 대한 정보) 양적 완화는 어떤 조건에서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인지에(조건에 대한 정보) 대해서 중앙은행은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방법으로 시장에 신호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신용정책이다. 신용정책은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유동성 공급과 신용시장 지원을 통해 금융시장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논의한 비전통적 통화정책들이 경제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면 신용정책은 경색된 특정 금융시장을 회복시키는 지원정책이다. 가령 미연준은 예금은행 입찰을 통해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해주기도 하고 금융기관의 회사채를 담보로 연준 보유 국채를 대여해 주어 유동성을 제고하기도 하였다. 신용시장 지원으로는 자산담보부채권(ABS) 지원 등이 적용되었다.   미연준은 상기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방책으로 다양한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하였다. 미연준의 대응 정책은 양적 완화를 필두로 대부분 긴급대출 형태로 진행되었다.[8] 다시 말해 이때 미연준의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인 최종대부자를 탄력적으로 운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미연준의 코로나 사태 대응은 여기에 추가하여 재정파트너(Fiscal Partner)와 최종투자자(Investor of Last Resort)의 역할까지 확장하였다. 재정파트너 역할은 미연준이 금융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어 금융기관이 중소기업을 포함한 메인스트리트에 대한 대출을 용이하게 하고 지방정부에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 것을 말한다.[9] 최종투자자 역할이란 미연준이 비우량기업 포함한 기업대출을 직접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역할 모두 미연준이 전례 없이 채택한 통화정책이다. 후술하듯 2020년 당시 미연준이 가동한 재정파트너와 최종투자자 프로그램의 총지원금 액수가 최종대부자의 그것보다 많다. 미연준이 경기침체와 고용부진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는 것을 방증한다.   미연준의 긴급대출 프로그램과 지원 액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10] 최종대부자, 재정파트너, 최종투자자로 구분하여 논하며 2020년 당시 프로그램 총 지원 액수는 비용은 3조 달러이다. 먼저 미연준의 최종대부자 프로그램인데 총 약 9000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총 네 개의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는데 프로그램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MMLF(Money Market Mutual Fund Liquidity Facility)와 CPFF(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는 간단히 말하면 흑자도산 방지 지원책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재정 상태가 양호한 차입자가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를 지원하였다. 미연준은 MMLF에 5300억 달러, CPFF에 9억7천4백만 달러를 각각 배정하였다.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는 뉴욕 연준에 등록되어 미 국채를 거래하는 딜러들에게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으로 미연준은 3300억 달러를 지원하였다. 미연준은 또한 2020년 3월 23일부터 동년 9월 30일까지 TALF(Term ABS Loan Facility)를 진행하였다. TALF는 금융기관이 우량 단기채권을 증권화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미연준은 재정파트너로써 중소기업, 소기업, 지방정부 지원에 관여하였다. MSLP(Main Street Lending Facility)는 중소기업 긴급대출 프로그램으로 미연준이 SPV(Speicial Purpose Vehicle)를 통해 적격 금융회사가 중소기업에 실행한 대출의 95%까지 매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이 대출을 크게 늘릴 수 있어 중소기업이 자금 융통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미연준은 MSLP에 6000억 달러를 책정하였다. 미연준은 소기업 대출지원으로는 3490억 달러를 설정하였는데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PPPLF(Paycheck Protection Program Lending Facility)을 활용하였다. MLC(Municipal Liquidity Facility)는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지방정부 지원책으로 뉴욕 연준이 SPV를 통해 지방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재정파트너 총액은 약 1조3천5백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미연준은 최종투자자 프로그램에 총 7500억 달러를 투입하였다. 최종투자자 프로그램은 기업의 회사채, 대출채권, ETF(Exchange Traded Fund) 등을 미연준이 직접 매입하는 것으로 미연준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중에서도 가장 비전통적으로 평가된다. 미연준이 국공채가 아닌 회사채와 대출채권을 위기 대응을 위해 시장에 유동성 공급이 아닌 직접 매입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최종투자자 역할은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PMCCF(Prim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는 미연준이 투자등급 기업의 신규발행 회사채나 대출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것이고 SMCCF(Second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는 유통시장에서 투자등급 기업뿐만 아니라 비우량기업의 회사채와 관련 ETF를 미연준이 매입하는 프로그램이다.[11]   2. 미연준과 뉴노멀의 정치경제   앞선 2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 중앙은행이 가격 안정을 핵심 기조로 삼아왔다는 것을 논하였고 3장은 이 핵심 기조가 코로나 사태와 함께 변화하는 정황을 분석하였다. 미연준의 변화는 일시적이 아니라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가격 안정과 고용(경제 성장)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시발점으로 볼 수도 있다(Ronkaimen and Sorsa 2018).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미연준이 추동하는 중앙은행의 전지구적인 뉴노멀로 자리매김 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지속할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앙은행 뉴노멀 이행 가능성은 미연준이 왜 인플레이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화 확장 정책을 견지하고 있는가와 맞닿아있다. 미연준의 통화 확장 정책이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중앙은행의 뉴노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서 세 가지 경쟁 가설을 아래에 소개한다.[12] 물론 이들 경쟁 가설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지는 않다. 논의할 세 가지 가설은 경제 패러다임 전환, 금융자본주의 정치경제, 미연준 의장인 파월의 개인적 선호와 영향력 등이다. 이 중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앙은행의 뉴노멀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가설은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고 나머지 두 가설은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먼저 경제 패러다임 전환 가설을 살펴보자.[13] 경제 패러다임 전환 가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포스트 케인지언 통화이론의 주류화이고 다른 하나는 MMT(Modern Monetary Theory)라고 일컬어지는 현대통화이론의 영향력이다. 포스트 케인지언 통화이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남긴 공백을 채우기 시작하였다. 케인즈의 전기 작가이기도 한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2009년 출판한 저서의 제목인 “케인즈: 마스터의 귀환(Keynes: The Return of the Master)”가 이를 말해준다. 포스트 케인시안주의의 핵심은 다름 아닌 통화정책의 기조는 고용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야 하는 것이며 물가 관리는 중앙은행의 하나의 기능일 뿐 늘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연준이 2020년 3월 24일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전대미문의 발표를 했을 때 발표문 내용의 첫 머리가 “미연준은 미국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겠다. 이를 통해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을 촉진하겠다”로 포스트 케인지언적인 성격을 드리워냈다(중앙일보 2020년 3월 24일). 가장 최근인 2021년 8월 27일 미연준의 잭슨홀 회의 담론을 검토해보자. 이날 회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가 각처에서 나온 뒤 미연준의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계획에 관심이 쏠렸다. 전달인 7월의 음식물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3.6%나 올라 1991년 5월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은 경제 상황에 따라 연내 가능하나 금리 인상은 아직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실업률은 팬데믹 이후 최저인 5.4%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너무 높다. 장기 실업은 여전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노동참여율은 다른 고용지표에 비해 훨씬 뒤쳐져 있다”며 고용의 중요성을 들고 있다(한국경제 2021년 8월 28일).   현대통화이론은 포스트 케인지언 통화정책보다 한층 더 완전 고용을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한다(Fullbrook and Morgan 2020; Kelton 2020; Wray 2015).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없다면 유일하게 발권력을 가진 국가는(혹은 중앙은행은) 완전 고용과 경기부양을 위해 화폐를 계속 찍어 적자재정도 상시적으로 감수해야 된다는 입장이다.[14] 인플레이션이 폭등할 경우 국가는 세금을 인상하고 국채를 발행하여 초과 공급된 통화를 어렵지 않게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통화이론은 주류 경제학에서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미국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월가의 일부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15] 현대통화이론이 제로금리시대에 고용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받아들여질 수로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이 뉴노멀에 수렴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음으로 금융자본주의 정치경제 가설이다. 금융자본주의 정치경제 가설은 고전적인 이익집단 정치의 전형으로 금융자본 주도의 경제 질서, 즉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분배가 금융자본에 봉사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Piketty 2014; Polayni 2000; Sassen 2014, 1998; Stiglitz 2020). 중앙은행은 낮은 이자율과 비전통적 통화정책 모두 자산 가치를 상승시켜 금융자본에 가장 큰 혜택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미연준의 고용과 실업률에 대한 언급은 의례적이거나 혹은 적어도 핵심적인 정책 목표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즈 2021년 7월 14일자 기사는(“An American Economy Only the Rich Could Love”) 이를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기사는 낮은 이자율이 빠른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대신에 경제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020년 3월부터 실시된 미연준의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는 하위 50퍼센트의 미국인에게 초 7000억 달러의 혜택을 주는데 그친데 반해 상위 1퍼센트의 미국인들은 10조 달러 이상의 부를 축적하였다. 이러한 상위 1퍼센트와 하위 50퍼센트의 경제 불평등 확대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도입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현상이 되었고 코로나 사태 기간에 역사상 최대로 증폭되었다. 금융자본가에게는 경제 위기는 늘 막대한 부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코로나 사태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취지이다. 금융자본주의 정치경제 가설이 설득력이 있다면 포스토 코로나 시대의 중앙은행의 뉴노멀은 다소 기대하기 어렵다(Jacobs and King 2018). 역사적으로 보면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 고용을 경제의 핵심 이슈로 간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연준 파월 의장의 개인적 선호와 영향력 가설이다. 파월 의장은 코로나 사태 기간을 거치며 “수퍼비둘기”로 거듭났다. 그의 강력한 통화 완화 정책 선호 때문이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미연준 거버너 시절과 연준 의장 초기에 매파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파월은 2013년 미연준이 테이퍼링을 결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2015년에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짐에 따라 미연준이 이자율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 미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인 2018년에 파월은 네 차례에 걸쳐 이자율을 인상하였다. 이 네 차례 이자율 인상은 이 시기에 특별한 인플레이션 징후가 없었다는 점에서 파월의 매파적 기질이 재차 감지되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파월 의장의 “변신”은 파월이 관여한 이 세 차례 매파 정책이 모두 경기 침체를 불러와 결국 실패로 끝났던 경험에 기인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최근 나왔다(뉴욕타임즈 2021년 6월 18일). 파월이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전환하게 된 것에는 개인의 정책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트럼프 공화당에서 미연준 의장이 된 파월이 비둘기적인(그리고 고용 친화적인) 민주당 정부에서 연임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퍼비둘기를 자임하고 있다는 평도 있다. 파월 의장 개인의 영향력 가설이 타당하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앙은행의 뉴노멀은 가변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고 파월이 연임이 될 경우 중앙은행의 뉴노멀을 일정부분 기대할 수 있겠다. 두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중앙은행의 뉴노멀은 예상하기 어려운 경로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IV. 결론   이 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할 현상으로 중앙은행의 뉴노멀에 주목하였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중앙은행에서 벗어나 고용과 물가 안정의 균형을 잡는 기조 변화를 중앙은행의 뉴노멀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였다. 미연준의 코로나 대응 정책, 특히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상세하게 분석하였고 이러한 정책의 등장 배경을 정치경제적 맥락을 통해 검토하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앙은행의 뉴노멀을 예측해보기 위해서 세 가지 경쟁 가설을 논하였고 각각의 가설이 어떻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앙은행 뉴노멀과 연관될 수 있을지를 간단하게나마 고찰해 보았다.   2장에서 밝혔듯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중앙은행의 핵심 기조의 변화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은 약화되었지만 신자유주의를 전면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아직 출현하지 않고 있다. 3장에서 언급한 포스트 케인지언주의나 현대통화이론이 유력한 경쟁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3장에서 논한 금융자본주의의 발흥 역시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 핵심 기조는 변화를 요청받겠지만 그 폭과 규모, 그리고 방향성은 유동적이다. 후속 연구가 필요한 지점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벌어지는 중앙은행 뉴노멀의 정치경제는 한국과 한국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고용과 가격 안정의 균형은 비단 한국은행의 역할뿐만 아니라 한국의 금융거버넌스를 재구축하게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간의 관계가 재설정을 요구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중앙은행으로만 좁혀서 이야기하면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의 뉴노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은 선도적으로 신중앙은행 모델을 구축하여 글로벌 담론의 정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중견국 외교의 주안점인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한국이 규칙제정자 역할을 수행해내는 것을 중앙은행의 정치경제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벤 버냉키. 2013.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서울: 미지북스(김호범, 나원준 옮김) Amsden, Alice H.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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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은행이 집계한 광의 통화량인 M2는 2021년 6월 평균 3천411조 8천억 원으로 2020년 12월(3천 191조 3천억 원)보다 6.9% 늘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2월(2천909조 1천억 원)과 비교해서는 17.2%(502조 7천억 원) 급증했다. 연합뉴스 2021년 8월 20일. [3] 스탠리 피셔는 IMF 부총재와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대표적인 학자출신 금융정책통이다. 피셔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금융 거버넌스의 담론에 여전히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4] 평균물가목표제는 미연준이 2020년 8월 27일 채택한 통화정책 전략으로 골자는 장기간에 걸쳐 평균 2%의 물가상승률을 미연준의 기본정책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물가가 일정기간동안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밑돌면 물가상승률이 2%를 넘어선 경우에도 “평균2%”를 적용하여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 금리정책이다. 평균물가목표제 개념자체는 물가와 경제상황의 균형점을 찾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연준 이 정책을 발표한 시점의 맥락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방침을 확고히 하는 신호를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상승을 우려하는 시장에 주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20년 8월 27일 평균물가목표제 채택을 포함한 “장기목표 및 통화정책 전략 지침”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이를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연준 의장이 잭슨홀 회의에서 발표하였다. [5] 목표 물가인 2%가 넘는 인플레이션 용인에 대해 미연준은 이러한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다시 말해 미연준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반도체 칩과 같은 특정 물품의 일시적인 공급 부족을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중고차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자주 인용된 예시이다. [6] 어원상의 뉘앙스와는 달리 마이너스 금리는 개인, 기업 등의 예금과 대출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7] 앞서 언급한 미연준의 “평균물가목표제”가 완화된 통화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시장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8월 27일 잭슨홀 회의에서 연내 테이퍼링 시작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금리 인상은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또한 시장의 기대심리를 특정 방향으로 형성하게 하는 선제적 지침의 일환이다. [8] 대표적인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으로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 CPFF(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 MMLF(Money Market Mutual Fund Liquidity Facility), TALK(Term ABS Loan Facility) 등이 실시되었다. 후술하듯 미연준은 이 프로그램들을 코로나 사태 대응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9] 지원금 수혜자격이 있는 중소기업의 기준은 10,000명 이내의 고용과 매출 25억 달러 이하로 설정되었고 이와는 별도로 미연준은 영세기업 지원 프로그램도 운용하였다. [10] 긴급대출 프로그램에 관한 아래의 논의는 Torres(2020)를 참조하였다. 양적 완화, 선제적 지침, 신용정책 등 다른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앞서 논의한 내용을 참조 요망. [11] 앞서 논의한 CPFF의 경우 SMCCF와 비슷한 미연준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이지만 3개월 만기의 최우량기업의 회사채에만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12] 경쟁 가설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검증은 다양한 연구 자료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2022년 후반부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3] 경제 패러다임 연구 주요 예시로는 Peter Hall(1989), Bruce Rodney Hall(2008), Lepers(2018) 참조. [14] 자국통화 표시 부채로 파산할 일이 없는 기축통화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한한다. [15] 현대통화이론의 대표적인 주창자 중의 한명인 스테파니 켈튼(Stephanie Kelton)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주요 경제 참모로 활동하였다.     ■ 저자: 이용옥_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캔자스 대학(University of Kansas)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였고 남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다. 구성주의 이론을 토대로 국제정치경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연구분야로는 동아시아 금융통화 거버넌스와 지역협력, 글로벌 통화체제의 동학(달러체제의 미래와 위안화 국제화), 대안세계질서, 한국의 금융외교 등이다.최근 논저로는 "Performing Civilizational Narratives in East Asia: Asian Values, Multiple Modernities, and the Politics of Economic Development (2020)," "Socialized Soft Power: Recasting Analytical Path and Public Diplomacy (2020)," "Relational Ontology and the Politics of Boundary-making: East Asian Financial Regionalism (2019)"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이용욱 2022-02-11조회 : 3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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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워킹페이퍼]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시리즈⑧_ 국가-사회 관계의 유산과 위기 대응: 코로나19와 일본

I. 서론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위기 대응의 효과성은 각각의 국가가 보유하는 보건의료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보건의료 능력을 팬데믹 대응에 효과적으로 동원해내는 각 국가의 통치역량이 편차를 보였고, 각 국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에서 보건의료 능력 못지않게 각 국가 위기 대응 체제의 효과적 운용이 중요하게 간주되었다(Kumar 2021). 기본적으로 각 국가 내의 보건의료 능력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겠지만, 보유한 보건의료 능력에 걸맞지 않은 미진한 코로나19 대응 결과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의 위기 대응 체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20년 봄에서 2021년 여름까지의 일본이 대표적으로 이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1인당 병상 수의 비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지표는 일본의 우수한 보건의료 능력을 상징한다고 관찰되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시에 일본은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병상 부족을 경험하였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 내의 우수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일본의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이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등의 기초적 수치에서 일본은 전세계적 비교를 기준으로 할 때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피해 정도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의 초점이 아니다. 동북아 공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일본의 코로나19 피해 정도를 과대평가하거나 전세계적 비교를 통해 과소평가하는 관점은 코로나19가 일본에 준 정치사회적 그리고 정치경제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 핵심적인 관찰 대상의 가시성을 낮출 뿐이다.   이 글은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발견되는 일본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을 논할 때 일반적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 문제, 후생노동성의 신속하지 못한 대응 자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법적 권한 문제 등의 정책 거버넌스 측면이 많이 논해진다(김영근 2020; 최은미 2020; 최은미 2021; 호사카유지 2020; 竹中治堅 2020; 上昌広 2020; 金井利之 2021). 대부분 큰 설득력이 있는 논의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일본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을 정책결정 과정의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일본 전후시스템의 구조적 성격에서도 찾아보고자 한다.   국가의 위기 대응 체제의 근간이 되는 국가 통치 역량에는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역량 자체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사이의 협력 메커니즘의 효과성도 포함된다.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국가의 정치경제적 역할 증대가 더 강하게 대두되는 계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국가 역할의 강화 흐름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보다 거세졌는데, 코로나19는 이를 보다 가속화시켰다. 일본 내에서는 자국의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으로 약화된 국가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이 강하다. 다만 약화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법적 권한 부족을 강조하는 주장과 국가의 사회에 대한 축소된 재정 지원을 강조하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법적 권한 부족을 강조하는 관점은 전후 시기에 국가의 사회에의 개입 자제의 전통이 위기 대응의 한계를 초래하였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정부가 사회 민간 부분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있다. 한편, 코로나19 이전에 국가의 사회에 대한 재정 지원의 축소 문제를 강조하는 관점은 전후시스템 자체보다는 재정건전성을 초점에 둔 의료개혁이 일본의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의료개혁으로 변화된 의료 서비스의 성격이 전염병 확산 대응에 부합하지 않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확대 재정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성격은 상이하지만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국가의 역량 부족을 강조하는 두 관점은 현재 일본 정부의 재정확장과 행정능력 강화를 시도하는 흐름에 모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에서 국가의 역량 축소 또는 자제의 조건을 지적하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 역량 축소 또는 자제가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코로나19 대유행이 1년이 지난 2021년 여름에는 국가의 의료계에 대한 적극적 지원책이 수립된 이후였지만, 일본 의료계는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 체계 구축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았다. 국가의 재정 투입이 증가하고, 국가의 민간에 대한 개입의 법적 권한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효과적 위기 대응을 바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일본의 전후시스템 속에서 발전한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이 위기 대응에 지체 양상을 가져왔음을 추가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특히 의료계가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배경이 되는 일본의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후견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주장은 일본의 위기 대응 체계 강화에는 국가의 역량 강화 못지않게 사회 부분의 재조직화가 필요하다는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부분의 재조직화는 전후 일본의 사회적 안정성의 토대가 되었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를 흔든다는 딜레마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위기는 사회의 재조직화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기득권의 자기 이익 보호 확장의 계기이기도 하다. 일본의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관계는 일본의 국가-사회 관계가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변동될지 관찰하는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II에서는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의 과정과 이에 대한 일본 정부 대응의 현황 분석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위기 대응의 문제점을 분석할 것이다. 일본 코로나19 대응 문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인 III에서는 국가 능력 제한성에 대한 논의와 전후 일본의 국가-사회 관계의 후견주의적 성격의 영향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자 한다. IV에서는 코로나19가 일본에 주는 정치사회적 그리고 정치경제적 함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II. 일본 코로나19 대응   1. 일본의 코로나19 확산과 대응   시계열적으로 2021년 말까지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은 5차례의 대유행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일본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16일 이후 2여 년 동안 일본은 다섯 차례의 코로나19 확진자의 확산세를 경험하였다.   2020년 1월 중국 후베이성으로부터의 입국금지로 시작하여 3월까지 확대된 중국, 한국, 이탈리아 등으로부터의 입국금지 확대로 상징하는 수변(미즈가와) 대책은 코로나19의 일본 국내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국내 확산이 아니라 외국으로부터의 전염 방지에 초점을 둔 2020년 초기 일본 정부의 대응 자세는 그해 2월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내의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일본 정부의 선내 체류 방침의 대응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같은 전면적 락다운이 아니라면 국내 확산을 막아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코로나19의 속성상 일본 국내 감염 확대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2월 21일 누적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고, 한달 뒤 3월 21일에 이 수치는 1,000명이 되었다. 누적확진자가 10,000명이 된 것은 4월 18일로, 다시 한달만에 10배가 되었다. 2020년 3-5월 동안의 제1차 대유행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3월 26일 신형인플루엔자등대책특별조치법을 마련한 뒤, 이에 근거하는 긴급사태선언을 4월 7일에 도시부 7개 도도부현에 발령하고, 같은 달 16일에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5월에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면서 일본 정부는 긴급사태선언을 중지하였다.   7월 들어 감염 확산세가 다시 발생하면서 제2차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제1차 대유행 때와는 달리 경제와 방역의 양립 노선을 강하게 유지하였다. 경기 대응 차원에서 수립된 고투캠페인의 지속은 제2차 대유행기의 감염 확산세를 악화시키는 요인이었다. 8월 3일 40,000명이었던 누적감염자가 같은 달 11일에 50,000명, 20일에 60,000명으로 증가하였다. 경제와 방역 양립 노선 속에서 긴급사태선언의 재개를 꺼려하던 제2차 대유행기 일본 정부의 자세는 아베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고 스가 정권이 출범한 9월에도 유지되었다.   제1차 대유행 때와는 달리 제2차 대유행이 수습되지 않는 가운데 계절적 요인이 겹쳐서 2020년 11월 이후 감염 확산이 더욱 거세져 제3차 대유행이 되었다. 누적확진자 수치는 10월 30일 100,000명에서, 12월 1일 150,000명, 12월 21일 200,000명으로 급증하였다. 일본 정부는 결국 12월 28일 고투트래블을 중지하는 결정을 내리고, 2021년 1월 7일에 도쿄, 치바, 사이타마, 가네가와에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게 이른다. 제3차 대유행기 일본 정부의 긴급사태선언은 지역 확대와 기한 연장 등의 조정을 거쳐 진행되다가 3월 21일에는 해제된다.   2021년 4-6월 사이의 제4차 대유행과 7-9월 사이의 제5차 대유행은 일본 정부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긴급사태선언 발령과 중복된다. 제4차 대유행 동안 누적확진자는 4월 10일 500,000명을 넘고어서고, 5월 2일 600,000명, 5월 19일 700,000명을 넘어섰다. 7월 1일 800,000명의 누적확진자 수는 제5차 대유행 동안 급증하였다. 7월 29일 900,000명에서 8월 6일 1,000,000명에 이르렀고, 9월 1일 1,500,000명을 넘어섰다. 8월 20일에는 하루 확진자 숫자가 25,992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제5차 대유행은 확진자 규모에 비해 그 이전의 대유행에 비해 사망자수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한편, 네 번째 긴급사태선언이 모두 종료된 9월 30일에는 1,575명으로 확진자 발생수가 줄어들었고, 그 이후 10월 6일 1,125명을 마지막으로 하루 확진자 발생수가 천명 이하로 진입하였다([그림 1]과 [그림 2] 참조).   [그림 1]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수 추세(2020.1-2021.12) 출처: NHK. “国内の感染者数・死者数.” (https://www3.nhk.or.jp/news/special/coronavirus/data-all/)   [그림 2] 일본의 코로나19 사망자수 추세(2020.1-2021.12) 출처: NHK. “国内の感染者数・死者数.” (https://www3.nhk.or.jp/news/special/coronavirus/data-all/)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의 피해 정도에 대해 과대 해석이 컸다. 물론 2020년 2월 대구에서의 집단 감염 사태와 2021년 10월 이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 동안 한국에 비해 일본의 확진자 숫자가 컸으며, 인구대비로도 일본의 감염 확산세가 강했다. 특히 2020년 말 일본에서 제3차 대유행이 시작되던 시점에서 한국이 확산을 막아낸 뒤 2021년 일본에서 지속된 3, 4, 5차 대유행 동안 한국의 확산은 관리되었기 때문에 상대적 비교 속에 그러한 인식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일 양국이 2021년 유사한 백신 접종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일본의 PRC 검사량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 정부 방역대책의 실패 인식이 강했다([그림 3]과 [그림 4] 참조).   [그림 3] 한국과 일본의 PCR 검사수 비교(천명당 검사수의 추이, 2020.1-2021.10) 출처: Our World in Data. “Coronavirus Pandemic.” (https://ourworldindata.org/coronavirus)   [그림 4] 백신 접종(완료자 비율)의 추세 비교 출처: Our World in Data. “Coronavirus Pandemic.” (https://ourworldindata.org/coronavirus)   하지만, 글로벌 비교를 볼 때 일본의 코로나19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G7 국가와의 비교를 볼 때 인구 대비 누적확진자 수와 누적사망자 수 모두에서 일본은 피해 정도가 작은 사례에 속한다. 다만, 동북아 4개국(한국, 일본, 대만, 중국)과 호주, 뉴질랜드의 6개국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한국, 호주와 유사한 피해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그림 5] 참조).   [그림 5] 코로나19 백만명당 확진자와 사망자 수 비교(2021년 12월 23일까지 누계) 출처: Worldometer. “COVID-19 CORONAVIRUS PANDEMIC.”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데이터를 통해 저자 작성.   2. 코로나19에 대한 일본 대응의 기능부전   피해 수준의 정도로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이 문제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찾기 어렵다. 2020년과 2021년에 일본 내에서 무수히 많은 일본 코로나 대응 문제점 비판론의 도서들이 출판되었다. 많은 경우 비객관적 비판론 전개도 많으나,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입장에서도 비판적 부분은 매우 크게 제기되었다.[1] 비교적 관점에서 관리된 코로나19 피해 수준은 일본의 정부와 의료계의 효과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효과적이지 못한 대응에도 불구한 결과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島田眞路·荒神裕之 2020; 牧田寛. 2021; 森田洋之. 2020).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자택대기사망으로 상징되는 의료 대응의 한계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의료 대응의 한계 자체를 일본만의 문제점이라 말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의료 대응이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전세계적 공통 현상이었다. 다만, 2020년 1년여 동안 소위 의료붕괴를 염려하면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의료 대응 체계 강화를 모색하였던 점에 비추어 볼 때 2021년 의료 대응의 경직성이 개선되지 않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즉, 폭발하는 환자에 대한 의료 대응이 부족했다는 점 자체가 아니라, 2020년 1년여 동안 의료 대응 강화 정책이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강조되고 다방면적으로 추진되었음에도 의료 대응 체계가 효과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에서의 의료 대응 한계를 논할 때 가장 상징되어 논해지는 것이 자택요양 중 사망이다. 일본 경시청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3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의료기관이 아닌 자택이나 요양기관 등에서 사망한 코로나 환자는 817명에 이른다. 이중 2021년 8월에 250명이 사망하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2] 입원 대기 중 사망자가 나오는 것 자체를 완벽하게 막을 순 없지만, 그 숫자가 커지는 것 자체는 일본에서 우려했던 ‘의료붕괴’를 암시하고 있으며, 일본의 제5차 대유행 당시에 이러한 상황에 근접하였다.[3]   일본 정부와 의료계는 코로나19 대응 병상 수 증가에 적극 나서기 보다 코로나19 환자 증가를 관리하는데 초점을 두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2021년 세 차례의 대유행기에 환자가 증폭하면서 코로나19 대응 병상 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본의 2021년 확진자 수가 2020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더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 수가 적은 편이므로,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확보 필요로 하는 병상 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물론 코로나19 환자 전원에 대한 입원 원칙을 유지하는 한, 그 부담은 적지 않다. 다만, 중증자 대응에 필요한 수준의 병상 증가도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환자 대응 병상확보 증가가 코로나19 확산세의 2021년에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다. 물론 2020년 여름 이전 2만 개도 안되던 병상이 2021년 말에 4만 개를 상회하는 변화가 있지만([그림 6] 참조), 2021년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중증자를 감당하는 병상확보는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부분은 1인당 병상 수와 급성기 병상 수에서 일본이 OECD 회원국 중 1등이라는 점을 비추어볼 때 특기할 부분이다([그림 7] 참조). 즉, 일본 내에는 코로나19 대응 병상으로 전환될 잠재적 후보가 되는 병상이 많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전환되지 못했다. 2019년 기준 162만 석의 병상 중에서 정신병용 병상, 결핵용 병상, 고량자 만성환자용 병상, 요양 병상 등을 제외하고 90만개의 병상이 잠재적으로 코로나19 대응으로 전환될 수 있는 후보군으로 간주된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239).   [그림 6] 일본 코로나병상 수의 추이(2020.5-2021.12) 출처: 厚生労働省 “療養状況等及び入院患者受入病床数等に関する調査について.”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newpage_00023.html) 데이터를 통해 저자 작성   [그림 7] OECD 회원국 인구 1000명 당 병상 수 (2019년) 출처: OECD. “Health at a Glance.” (https://www.oecd-ilibrary.org/social-issues-migration-health/health-at-a-glance_19991312)   일본이 2021년 제3차, 제4차, 제5차 대유행기에 경험한 코로나19 자택대기사망은 단순히 코로나19 확진자 증폭 때문이 아닌, 코로나19 병상 수 확보가 원활하고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대응의 기능부전으로 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III. 국가의 제한된 역할과 일본형 민관협동   1. 케어중심 의료개혁의 역설   일본의 많은 병상 수가 코로나19 대응 병상 수로 전환되지 않는 즉자적 원인으로 병상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의사와 간호사의 부족이 제기된다. 2종 상당의 지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코로나19의 환자는 원칙적으로 ‘감염증지정의료기관’인 전문병원의 ‘감염병 병상’에 입원해야 했다. 정부 방침이 변경되어 이용 병상의 기준이 확대되었으나, 감염병이나 호흡기내과 전문의와 전문간호사가 필요로 했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294). 게다가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코로나19 병상은 다른 업무와 완전하게 구별된 전문 의료 인력의 배치가 필요로 한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에서 일본의 의료인력의 적은 규모가 연결된다. 세계 1위의 병상 수와는 달리 인구대비 의사 수에서 일본은 OECD 평균을 밑돈다. 2018년 기준 31개 OECD 회원국 중 일본의 인구 천명당 2.49명의 의사 수는 2.48명인 한국의 바로 위인 27위에 머물러 있다. 인구 천명당 11.8명의 간호사 수(2018년 기준)는 OECD 국가 중 상위에서 8번째에 위치하지만, 병상 수의 규모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4] 하지만, 의사 수와 간호사 수의 전체적 규모가 코로나19 대응 병상으로의 전환 지체와 직결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소규모 의원 중심의 일본 의료계의 구조적 조건에서 중급 민간 병원과 공공 대형 병원의 코로나19 병원 대응에의 적극적 역할 전환이 핵심 과제인 가운데, 전체 의료 인력 수가 적은 것이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 부족의 핵심 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간의 일본 의료개혁에서 의료시설과 의료인력 사이의 편차를 해소하고, 효율적 의료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중점 과제였다. 정부 특히 재무성 입장에서 의료개혁의 근본적 목표는 고령화로 인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의료비를 억제하여, 재정부담을 완화하는 것에 있다. 재정부담 완화 관점에서 볼 때 의료인력의 확대는 추구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의료개혁으로 꾸준히 추진한 방향은 의료시설의 효율적 활용에 있었다.   재정부담 완화 관점에서 의료개혁이 처음으로 추구된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정권에서는 의료비 억제와 더불어 의료시설의 효율화를 위한 시장원리 도입에 관심이 있었다. 고이즈미 정권은 기존에 금지되던 보험자와 의료기관 간 개별계약의 규제완화, 의료특구에서 주식회사의 의료기관 개설 허용, 혼합진료(보험진료와 자유진료)의 부분적 규제완화 등을 시도하였다(二木立 2015, 91-92). 하지만, 고이즈미 정권 시절에 의료개혁의 시장화 정책지향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고이즈미 정권에서도 의료시설의 시장화 방향성은 제한적이었지만, 그 이후 자민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에서 시장화 지향의 의료개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주당 정권과 제2기 아베 정권에서 의료의 성장산업화 정책지향은 의료개혁의 시장화 방향성을 일치하는 측면이 있으나, 국민의료보험 중심의 의료서비스 강화의 대의는 꾸준하게 지속되었다(二木立 2015, 93-95).   지난 20여 년간 일본 의료개혁에서 핵심적 기축은 정부의 의료관련 지출 억제, 개인의 자기부담 비율 증가, 그리고 의료와 돌봄의 일체화였다. 정부의 의료관련 지출 억제는 의료비 보험수가 인상 억제로 상징되며, 의료에 대한 개인의 자기부담 비율은 8%로 인상되었다. 의료시설의 시장화를 통한 효율화 대신에 일본 의료개혁에서 중심적인 것은 ‘큐어(cure)에서 케어(care)로’의 방향성이다. 대표적으로 2013년 <사회보장제도개혁국민회의보고서>에서는 ‘치료하는 의료에서 치료와 지지를 양립하는 의료로의 전환(「治す医療」 から 「治し,支える医療」への転換)’을 명시하고 있다. 치료하는 의료가 급성기 의료에 대한 대응 행위라면, 만성기 의료와 인생최종단계의 의료돌봄이 지지하는 의료가 된다(二木立 2020, 9-10). 의료 서비스를 생활 관리에 집중하는 형태로 전환하려는 일본 의료개혁의 방향성은 시장화와 연계된 신자유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노후와 연계된 돌봄을 의료에 중심에 두고, 이를 위한 지역 단위의 민관협동 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만약 신자유주의를 국가 역할의 축소로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일본의 케어중심 의료개혁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의료개혁에서 나타난 국가의 의료 분야에 대한 재정적 관여 감소 노력이 일본의 의료 역량 약화를 가져왔다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일본의 의료개혁은 지방포괄케어로 상징되는 일본의 지속가능한 생활보장체계 구축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二木立 2017, 15-54). 하지만, 일본 의료개혁의 케어중심적 성격은 코로나19 대응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의 의료개혁은 의료 서비스가 만성형 노후관리에 최적화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급성기 전염병인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태세를 구축하는데 장애 요인의 하나가 된다고 말 할 수 있다.   2. ‘요청’과 ‘권고’ 기반 법제도의 한계   코로나19 대응에 일본 의료 역량을 동원하는데 가장 핵심적 사안은 민간 중급 병원을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었다. 일본의 병원 구성비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국공립 의료기관의 비율은 2018년 기준 18.3%로 31개 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 한국, 콜롬비아 다음으로 그 비중이 낮다. 병상 수에 있어서 국공립 비중은 28.7%로 병원의 비중에 비해 크지만, 민간병원은 병상 수에 있어서도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248). 민간병원 중에서 중급 이상의 병원이 코로나19 병상을 많이 운영하도록 하는 것에 정부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민간병원을 동원해 내는 방법에 있어서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은 다른 국가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   민간병원의 비중이 큰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급증하였을 때 정부는 민간병원에 코로나19 병상 확보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유럽의 프랑스, 독일은 물론 미국의 뉴욕주, 그리고 한국에서도 정부의 민간병원에 대한 비상시의 명령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본은 민간병원에 대한 코로나19 병상 확보의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명령’의 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법에는 환자를 받는 권한은 각 병원의 독자 판단에 있다. 병원에 대한 감독권한이 있는 도도부현은 병원에 병상 활용에 대한 지시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 감염병과 신형인플루엔자등대책특별초지법에도 행정당국의 권한은 민간병원에 ‘협력요청’을 하는 것으로 제도 설계가 되어있다. 2021년 감염병법 개정 시에 행정명령의 문구 포함이 논의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귀결된 것은 ‘요청’에 더해서 ‘권고’를 추가하고,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병원명 등을 공표하는 벌칙을 추가하는 것이 포함되었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450).   위기 시에 국가권력이 사회 부분에 개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가운데,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국가 개입의 형태로 ‘요청’과 ‘권고’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2021년 2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일본 정부의 가장 눈에 띄던 행위는 대규모 이벤트 자숙의 ‘요청’과 전국 임시휴교 ‘요청’이었다. 긴급사태선언 시에 영업시간 단축 등이 또한 ‘요청’되었다. 공식적으로는 강제력이 없는 가운데 국가권력의 실제 의도에 대한 사회의 자발적 수용과 자숙의 패턴은 코로나19 경험에서 발견되는 매우 일본적 현상이다(박승현 2020; 鴻上尚史·佐藤直 2020).   일본에서 국가권력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비가시화는 전후 일본에서 꾸준하게 지속되어 온 현상이다. 국가가 사회에 대해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은 연속성이 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은 국가가 사회에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 자체를 꺼려왔다(湯淺墾道·林紘一郎 2011). 이 점은 전후 평화주의적 사회와 보수주의적 정치권 사이의 대립구도에서 양측 사이의 일정한 타협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는 국가권력과 사회 사이의 분명한 경계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권력의 시스템 속에서 각 위치에 서있는 주체가 가지는 책임과 권한에 대한 근대성이 부족하다고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비판했던 전전 일본의 성격이 전후에도 지속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후적 성격이던 전전으로부터 지속되던 성격이든 코로나19 속에서 발견되는 ‘요청’과 ‘권고’에 기반한 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명시성이 떨어지는 개입은 일본에서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 의료계는 국가권력이 의도하는 코로나19 병상 확대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강제 없이도 공공성을 위해 자기희생을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본적이라는 일부 일본 복고주의자들의 일본특수론은 코로나19에 대한 많은 민간병원의 대응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명시성이 떨어질 때, 사회의 반응은 국가권력에 대한 사회 각 부분이 가지는 권력에 따라 달라진다.   3.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의 지속성   일본에서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명령’이 아닌 ‘요청’과 ‘권고’로 이루어진 정부의 코로나19 병상 확보 요구는 강제성이 없었고, 이에 대한 민간병원의 자발적 응답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명령 대신에 높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민간병원에 제공하였다.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보험수가가 지난 2년 동안 계속 상승하였다. 2020년 4월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중증자 등에 대한 보험수가를 2배 인상하였고 5월에는 3배, 9월에는 5배로 인상하였다. 2021년 4월에는 코로나19 대응에 직접적으로 연계가 없는 의료계에 대한 전반적 보험수가 인상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정부가 보정예산으로 통해 편성한 <긴급포괄지원교부금>도 대부분 민간병원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였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493).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보험수가가 증가되는 것이 민간병원의 코로나19 대응의 적극성으로 연계되지 않았다. 일본 민간병원의 코로나19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병원 규모가 크지 않은 조건과 긴밀하게 연계된다. 민간병원의 소규모성은 코로나19에 대한 전문적 대응에 필요한 의료인력이 각 병원 차원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를 의미한다. 일본의 소규모 민간병원의 소위 ‘저밀도의료’ 성격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전문적 대응을 하기에 어려운 조건이었다.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중증환자에 대한 대응이 주로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의료기관의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667).   소규모 민간병원이 각각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지역 내 병원 사이의 역할분담이다. 지역 내 대형병원이 코로나19 중증자 치료를 담당하고 중급 민간병원이 경증자 치료를 담당하는 가운데, 환자의 치료 상태에 따라서 환자의 전원을 능동적으로 이루는 체계가 이상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병원 사이의 역할분담은 작동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2010년대에 추진해온 지역의료구상의 근간에는 병상 수의 축소 목표가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지역의료구상은 지역 내 병원 사이의 역할 분담을 의미하기도 하다(二木立 2015, 41-50). 즉 지역의료구상 개혁이 잘 진척되었더라면, 코로나19 대응에서의 병원 사이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민간병원의 저밀도의료 성격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 수도 있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 내 병원간 역할분담은 코로나19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이전 진행된 지역의료구상 개혁 논의에서 중급 민간병원과 대형 공공병원 사이의 역할분담 구축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병원 사이의 역할분담에 대한 지역의료구상은 병원들의 병상 수 조정과 연계될 수밖에 없고, 정부 측의 숨겨진 근본적 의도는 역할분담 구축보다 병상 수 축소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병상 수가 병원의 수익과 직결되는 상황 속에서 민간병원의 병상 수 조정에 대한 저항은 강했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혁 시도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고, 먼저 나선 것은 공공병원의 병상 수 조정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의 대형 공공병원의 병상 수 조정은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 부정적인 요인이 되었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1224).   지역의료구상에서 문제시되는 일본의 과도한 병상 수 자체가 민간병원에 대한 보험수가 제도 설계와 큰 관련성이 있다. 2006년 의료보험 보험수가 개정에서 ‘급성기 병상’에 대해 1일당 1만5,660엔의 높은 보험수가가 설정되었고, 이후 폭발적으로 병상 수가 증폭되었다. 급성기 고도의료 확충을 명목으로 하였지만, ICU 등이 포함되는 고도급성기 병상이 아닌 실제 고도의료 치료와 관련없는 고령자 만성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병원의 ‘급성기 병상’이 대폭 증가된 것이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1082).   2000년대 이후 ‘급성기 병상’의 증폭 과정과 제2기 아베 정권 하에서의 지역의료구상의 진행 지체 현상 모두 일본 의료 서비스의 효과성 증진과 상충된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의 효과성 증진 목표를 위해 민간병원 중심 일본 의료계의 이해관계와 대립되는 개혁노선을 일본 정부는 강하게 추구하지 않았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 사회세력이 보수정치권에 정치적 지지를 주고 업계의 이해관계를 보장받아온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는 생산성이 낮은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장기 지속되어 온 현상이었다. 일본의 의료 분야는 농업, 지방, 토건 등의 분야와 더불어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가 강하게 드러나던 대표적 분야이다. 일본 전후 시스템의 변화를 지향하는 구조개혁 노선에서 의료 분야에 대한 국가 재원 투여의 축소와 성장산업화 등의 논의가 계속되어서 나온 배경에는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계의 이해추구가 정치권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보장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비효율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적 시선이 있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일본 민간병원의 더딘 대응과 협조체계 구축의 어려움은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 속 일본 의료 서비스의 경직성이 지속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고 있다.   IV. 코로나19 이후의 일본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일본 정부는 확연하게 국가 역할 강화의 방향성을 선택하고 있다. 제2기 아베 정권의 아베노믹스 자체가 재정건전성의 정책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성격이 컸지만,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건전성 확보 자체는 정부 정책 목표에서 우선순위에 있지 못했다.[5] 2020년 회계연도에는 3차례의 보정예산의 추가 편성 속에 150조 엔에 이르는 유례없는 대형 세출 규모를 보여주었다. 2021년 회계연도에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의 35조엔 규모의 보정예산 추가 편성으로 2020년 회계연도와 유사한 140조 엔 이상의 세출을 지속하고 있다. 2021년 10월 야노 고지(矢野康治) 재무차관은 재정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담긴 기고문을 『文藝春秋』에 발표하였다(矢野康治 2021). 이것이 담론 차원에서 일본 내에 큰 방향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해서 적극재정 정책의 추구에 실제적 제약이 되지 못했다. 재정정책의 선심성 성격에 대한 재정담당자의 비판론은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사회 보호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담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재정지출로 상징되는 일본의 적극적 국가 역할론은 의료개혁의 방향성에 대한 변화를 전망케한다. 케어형 의료개혁이 근간을 두고 있는 재정적 고려는 코로나19 이후 의료행정에서 단기적으로 핵심적 고려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 의료개혁에 비판적 관점을 제기해온 니키 류(二木立)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에 대한 국가 지원의 강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二木立 2020, 3-5).   한편,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명시성이 적은 행정체계에 대한 비판론은 일본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매우 강해 보인다. 코로나19는 일본 행정개혁의 대폭적 변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화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의 효율화가 가장 먼저 제기되어 진행되고 있다(Iida 2020). 하지만, 행정의 효율화를 넘어서 사회에 대한 개입을 선명하게 하는 법제도 정비가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위기 시에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사회를 강제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은 일본 현행 헌법상 불분명하다. 일본사회의 리버럴 세력들은 국가권력의 사회 개입의 명시화를 국가주의 강화를 야기하는 위험한 진전으로 우려하고 있다(今井照 2020). 한편, 국가권력이 사회에 개입하는 권한의 명시화 없이도 사회에 대한 실질적 통제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상당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사회 개입에 대한 법적 권한 명시성 확보에 일본의 보수엘리트들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지 않다. 다만, 최근 경제안보로 상징되는 국가의 사회 부분에 대한 개입 강화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 일본 국내적 동의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점은 국가권력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권한 명시화와는 별개로 실질적인 사회에 대한 개입의 정도는 지속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코로나19 대응 기능부전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국가의 역량 축소 또는 개입 자제는 코로나19 이후 반대 방향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가 향후 어떤 쪽으로 변화할지는 전망하기 쉽지 않다. 민간병원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론은 의료개혁의 효과성 증진을 위한 개혁 요구를 추동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다른 저생산성 분야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다. 농업, 지역, 토건 등에서의 이익유도정치는 더는 왕성하지 않다. 하지만, 의료계의 정치적 힘은 다른 후견주의 작동 분야들과는 다르다. 더욱이 위기 대응의 전문적 능력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의료계에게 코로나19는 정치적 영향력의 강화를 다시 가져다줄 가능성도 있다. 후견주의 정치 메커니즘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의료 분야에서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이 어느 방향으로 변해 나아갈지는 향후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 대상이다.   사회보장정책과 의료정책에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 향후 정책과정에서 과거 소규모 민간병원의 자기 이익 추구가 의료의 공공성과 유연성 추구와 동반되지 않았던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 작동했던 의료기관들 사이의 효과적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던 사례는 주목할만하다(김성조 2020; 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1501). 의료 분야의 후견주의가 코로나19 대응에서 문제가 된 핵심은 병원의 과도한 자기중심성에 있었다. 이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공공 서비스의 안정성을 유연하게 확보할 수 있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민관협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후견주의의 국가-사회 관계도 일종의 민관협동이었다. 중요한 것은 민관협동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민관협동이 공공성과 사회보호에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후견주의 비판을 넘어서 후견주의를 대체할 국가-사회 관계의 모색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Levy 2015; 宮本太郎·山口二郎 2016).   V. 결론   일본은 글로벌 비교에서 코로나19의 확산과 이로 인한 피해 정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심각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에서 일본이 뛰어난 사례라고 간주하기도 어렵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해외에 우수사례로 코로나19 대응의 일본모델을 전파하자는 아베 총리 등의 언급은 코로나19 대응의 여러 난맥상이 제기되면서 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원과 제도를 활용해 위기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역할 증대가 효과적 위기 대응의 충분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일본 코로나19 대응 기능부전 원인의 상당수는 의료 분야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 속에서 유래한다. 일본에서 후견주의 정치 메커니즘은 정치과정에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비가시화시켰고, 유연성있는 정책대응을 어렵게 하였다. 이 글은 코로나19 대응에서 발견되는 일본 의료계와 보건행정의 비효과성이 국가의 역할 수준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일본 내에서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비판론은 광범위하고 매우 폭넓게 수용된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이미 과거 후견주의 정치 메커니즘이 작동하던 분야에서 후견주의는 과거의 일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의료 분야에서 일본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가 의료 분야에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지는 전망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론은 후견주의가 전후 일본의 사회보호에 제공했던 순기능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공공성과 사회보호의 가치에서 후견주의보다 나은 새로운 국가-사회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의 경험을 바라보면서 미래 일본의 전망에서 남는 질문이다.■     ■ 저자: 이정환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과 동 대학 국제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주요 논서로는<현대 일본의 분권개혁과 민관협동> (2016), "일본 지방창생 정책의 탈지방적 성격" (2017), "아베 정권 역사정책의 변용: 아베 담화와 국제주의" (2019)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이정환 2022-02-11조회 : 15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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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워킹페이퍼]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시리즈⑦_ 코로나19-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거버넌스 논쟁: 국가능력 대 권위주의

I. 머리말   2019년 말 발생한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대응 방식은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과 치료에 대한 의료는 물론 봉쇄,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과 같이 방역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논쟁은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중심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피해가 적은 국가가 채택한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2021년 전 세계적 차원에서 확산세가 진정된 이후 위기대응의 초점이 방역에서 백신 접종 및 치료제 개발로 이동하면서, 논쟁의 초점이 방역에서 회복력으로 이동하였다. 봉쇄,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과 같은 통제 수단을 해제하고 위기 이전과 같은 상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위기대응을 평가하는 기준에 방역과 치료보다 회복력에 영향을 미치는 거버넌스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Stasavage 2020).   거버넌스 논쟁에서 가장 많이 비교되는 사례는 미국과 중국이다(Cukierman 2020). 보건의료 제도 수준이 높은 미국은 초기에 위기관리에 실패한 반면, 그렇지 못한 중국은 대규모 확산세를 재빨리 통제하는 데 성공하였다(Burki 2020). 방역에서 미국의 부진과 중국의 선방은 경제적 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2020년 미국은 대규모 재정 적자와 초저금리라는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4%로 급락하였다. 중국 경제는 일부 지역의 봉쇄로 인한 타격 속에서도 2.3% 성장하였다(Lin 2020).   중국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차이를 정책 결정과 집행의 효율성으로 측정되는 국가능력으로 설명한다. 미국은 중국과 같이 신속한 대규모 동원을 할 수 있는 제도와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상명하달식 정책 결정 방식과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봉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또한 중국과 실시한 권위주의적 방역은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런 배경에서 이 글은 미국과 중국의 위기 대응 방식에 대한 평가를 비교·분석한다. 코로나 위기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까지 결과를 바탕으로 한 평가가 차후에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교를 시도하는 이유는 위기 대응 방식에 대한 평가가 향후 미중 경쟁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Brands and Gavin 2020; Reich and Dombrowski 2020; O'Rourke and McInnis 2021; Maull 2021; Norrlöf 2020). 거버넌스에 대한 평가는 선험적 표준이나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후적인 결과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위기 극복에 성공한 국가가 향후 거버넌스 모델의 국제기준 또는 모범규준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중국이 미국보다 더 빨리 위기 극복에 성공한다면, 국가능력을 강조하는 중국식 거버넌스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식 거버넌스보다 더 효율적인 대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Dunford and Qi 2020; Buckley 2020).   이하 논의는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과 중국의 위기 대응을 다양한 통계와 지표를 통해 다각도로 비교한다. 중국 사례에 대한 논란을 국가능력과 권위주의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중국에서는 국가가 인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국가능력을, 미국에서는 강압적인 방식의 봉쇄와 전수 조사에 배태되어 있는 권위주의를 각각 부각한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 모델 논쟁이 미중 경쟁에 미치는 함의를 정리한다.   II. 미국과 중국의 위기대응 거버넌스     어떤 거버넌스가 위기관리에 효과적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좋은 또는 바람직한 거버넌스(또는 정부의 질)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선험적인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공적 에토스의 요구, 좋은 정책 결정과 합리적 추론의 미덕, 법치, 효율성, 안정성 및 혜택의 원칙 등과 같은 다양한 개념들의 절충 또는 조합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Agnafors 2013). 또한 공시적으로는 물론 통시적으로도 어떤 특정한 규범이나 기준에 일관되게 부합하는 거버넌스 개념도 없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거버넌스가 보편적인 모델로 간주되고 있지만, 중국은 이와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H. Li 2020).   이런 배경에서 위기관리 거버넌스에 대한 대부분의 비교연구는 정치경제(일인당 GDP, 민주주의, 정부 효과, 연방 구조), 사회문화(전통 대 합리/세속 가치, 생존 대 자기표현 가치, 여성 국가수반), 인구지리(금지능력, 메르스 경험, 노령 인구 비율, 최초 확진자 발견일, 위기에 일찍 노출, 인종적 분열, 지니 계수, 비만, 도시화, 인구 밀도, 인구) 및 정책지향(전염병 준비성, 빠른 국제여행 제한, 국내이동 제한/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의 길이와 강도)의 네 가지 범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위기관리에 성공한 국가들에서는 국제 및 국내 이동 제한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다. 사례는 많지 않지만, 여성이 국가수반인 국가가 위기에 비교적 잘 대응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 이외에 어떤 요소도 국가별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Hendrix 2021).   한두 가지 요소로 위기대응을 체계적으로 비교·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버넌스 연구는 다양한 사례의 비교를 통한 유형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가와 시장(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자본주의 다양성 연구의 전통에서 얀 네데어빈 피터스는 위기대응 방식을 자유주의, 협조, 국가주도로 구분하였다.   [표 1] 다양한 시장경제에서 제도 출처: Nederveen Pieterse (2021, 3)   의사결정 방식과 대응 결과를 기준으로 제시한 실라 재서노프는 통제, 합의, 혼동으로 국가를 구분하였다.   [표 2] 위기 대응 방식: 세 가지 유형 출처: Jasanoff et al. (2021, 21)   이 두 가지 유형화 모두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기대응이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보면, 대만, 한국, 중국, 일본은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위기를 관리하였다(Fukuyama 2020; Kennedy 2020; Cha 2020b; Lee 2021). 이 국가들은 국가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대응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Acemoglu 2020; Rajan 2020; Mazzucato and Quaggiotto 2020).   국가능력과 확진자, 사망률, 치사율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특히 확진자와 사망률은 국가능력이 높은 한국과 일본에서 낮았다. 반면 국가능력이 치사율에 미친 영향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국가능력이 낮은 나라에서 치사율이 예외적으로 높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림 1] 국가능력과 코로나 19의 보건 영향 출처: Gisselquist and Vaccaro (2021, 12)   위기관리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11월 전후에 호북성 우한시를 중심으로 위기가 발생하였지만, 중국은 강력한 지역 봉쇄를 통해 2020년 3월 위기의 전국적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하였다. 중국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식 위기관리 체제가 방역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시민의 자율적 협조에 기반을 둔 서구적 방식보다 국가가 직접적 개입하는 중국적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확신시켰다. 반면, 미국에서 방역과 치료에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혼란이 증폭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미국이 중국에 열등하다는 자성이 등장하였다(Tellis 2020; Schaus and Freier 2020).   대규모 전염병 위기 대응에 필수적인 방역과 보건 제도를 보면, 미국이 중국보다 많이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건 지수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보다 낮은 항목은 없다. 보편적 의료서비스 보장 지수에서 미국은 86점, 중국은 79점이다. 전염병 관리에 중요한 최소한 기본 위생에서 미국은 100점, 중국은 85점으로 격차가 크다.   [표 3] 보건 지수 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108-112)   코로나 19와 같이 전 세계적 차원의 전염병 방역에 대한 글로벌 보건안전 (GHS) 지수 (Ranking)에서 미국과 중국의 차이는 훨씬 더 컸다. 미국은 세계 1위인 반면, 중국은 51위였다. 미국은 위험 환경을 제외한 전 항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중국은 30~60위권이었다. 특히 국제규범 준수에서 중국은 세계 최하위권인 141위였다.   [표 4] 글로벌 보건안전 (GHS) 지수 (순위) 출처: Nuclear Threat Initiative and Johns Hopkins Center for Health Security (2019: 20-29)   이러한 차이는 2004년 사스(SARS) 위기의 결과에 부합한다. 중국에서 확진자 5,327명 및 사망자 349명으로 세계 최대 피해가 발생하였다. 반면, 미국에서는 확진자만 27명 발생하였다. 중국과 근접하고 교류가 많은 홍콩, 대만, 싱가포르도 큰 피해를 보았다.   [표 5] 사스 위기 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2004)   현재까지 방역 성과를 비교해보면,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적은 피해를 입은 것은 확실하다. 그림 2과 3의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 및 사망자 수 변화 추세를 보면, 중국의 문제 제기를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그림 4]가 보여주듯이, 미국은 백신 개발과 접종에서 중국보다 우위에 있었다. 백신 보급률이 급상승했던 기간에 미국이 중국을 앞섰지만, 미국의 우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접종률이 50%대를 넘어선 후 정체되어 집단면역에 필요한 70% 수준으로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에서 백신 접종에 대한 저항이 강력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2] 인구 100만 명당 누적 확진자 수 출처: Our World in Data (OurWorldInData.org/coronavirus)   [그림 3] 인구 100만 명당 누적 사망자 수 출처: Our World in Data (OurWorldInData.org/coronavirus)   [그림 4] 백신 접종률(%) 출처: Our World in Data (OurWorldInData.org/coronavirus)   앞으로 어떻게 위기에서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방역뿐만 아니라 위기 이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회복력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20년 11월부터 블룸버그가 발표한 「코로나 19 회복력 지수」는 위기 지표(1개월 십만 명당 확진자 수, 1개월, 사망률, 확진율, 백신 접근성, 인구 백 명당 백신 접종), 재개 지표(백신 접종률, 봉쇄 강도, 항공 능력, 접종 후 여행 경로), 삶의 질(공동체 이동성, 2021년 GDP 성장률 예상, 보편적 건강보험 보급률, 인간개발 지수)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순위 변동을 검토해 보면, 조사 대상인 53개국 중 대만, 뉴질랜드, 호주, 한국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과 일본은 2021년 5월 대규모 감염이 발생한 후 초기에 높은 순위가 급락하였다.   [표 6] 블룸버그 코로나 19 회복력 지수 순위 (2020년 11월 – 2021년 8월) 출처: https://www.bloomberg.com/graphics/covid-resilience-ranking/   미국과 중국에 대한 평가는 여러 번 반전되었다. 2019년 11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발생한 위기가 확산되었던 2020년 4월까지 중국은 실패 사례로 간주되었다. 2020년 4월 이후 미국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더 큰 실패 사례로 전락하였다. 「코로나 19 회복력 지수」에는 이런 추세가 반영 되어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중국보다 높은 순위에 있었던 2021년 6월과 7월 평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인구 대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보다 높은 순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Foreign Ministry 2021).   III. 중국의 성공 요인: 국가능력 대 권위주의   1. 국가능력   중국 관영언론은 확산세가 꺾인 2020년 3월부터 중국의 국가능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Jacques 2020). 이 주장의 핵심은 중국에서는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구 정치체제는 대규모로 동원하고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Song 2020). 서구 정부의 동원 능력은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 중앙-지방의 비협조적 관계, 시민사회의 반발 등에 제한되었다. 중국에서는 대규모 확산이 발생한 후베이성에 2020년 3월 1일 기준으로 총 344개 팀의 의료인력 42,000명이 파견되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시민이 정부의 방역지침을 잘 준수하여 일부 서구 국가와 달리 봉쇄 반대 시위와 마스크 착용 거부가 발생하지 않았다(Ding 2020). 중국이 취한 봉쇄 정책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치체제와 방역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반박하였다. 즉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가 방역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한, 민주주의든 권위주의든 어떤 조치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Shi 2020).   2020년 6월 이후 중국의 선방과 미국의 실패가 확연해지자 중국이 미국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가 점점 더 증가하였다. 정부가 시민이 방역지침을 유도하는 동원능력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월등했다(Beeson 2020). 물론 중국의 성공은 자발적 협력뿐만 아니라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이라는 강제적 압력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시민이 자발적으로 협력하지 않는 집단행동 문제가 장기간 지속되어 위기가 더 심화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 대한 평가는 정부의 개입 그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개입해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는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 “빠른 전파와 같은 위험한 역 외부효과에 직면해 있을 때는 민주주의의 국가의 개명된 지도자도 일시적으로 제한을 부과하는 것을 고려해볼 것이다”(Cukierman 2020).   국가능력의 강조는 중국식 거버넌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임성, 투명성, 법치 등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 서구와 달리, 중국에서는 효율성이 거버넌스 논쟁의 핵심에 있다. 이러한 차이는 공산당 체제 내에서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는 특수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거버넌스의 효율성 증대는 체제의 정당성 강화로 연결된다(Q, Li 2020).   이러한 주장은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2020년 6월 발간한『코로나 19에 맞서는 중국의 행동(抗击新冠肺炎疫情的中国行动)』 백서에 반영되었다. 중국이 위기를 조기에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예방, 통제, 치료를 잘 협조하는데 성공하였다. 여기에는 집권화된 의사결정 체제, 사회 모든 분야를 망라한 예방 및 통제 체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전면적 노력, 투명한 정보 공개, 및 과학기술 활용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는 동원능력이다. 인명을 중시하기 위해 사회와 개인이 국가의 동원체제에 유기적으로 결합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국제적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중국의 경험으로 공유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State Council Information Office 2020).   중국의 방역 성공이 정치적 현능주의(贤能主义; meritocracy)와 정책 통합의 결과라는 설명도 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서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공산당과 국무원의 유기적 협력 구조가 정책 결정과 집행의 신속성과 일관성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당 총서기이자 국가주석인 시진핑과 공산당 정치국 상임위원이자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은 당정 협력을 주도하였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협조는 2020년 1월 20일 우한전염병예방통제본부가 만들어지면서 원활해지기 시작하였다. 25일 총리가 주재하는 중앙전염병통제영도소조(中央疫情防控领导小组)가 설립되어 국가전염병예방통제기구(国家疫情联防联控机制)를 지휘하였다. 중앙정부가 설립한 이 기구들은 확진자를 치료하기 위한 대규모 임시병원 건설과 봉쇄기간 중 우한과 후베이성에 생필품 공급을 신속하게 집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국에서 자원·인력 동원의 속도와 규모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림 5] 중국의 위기관리 거버넌스 출처: Wang (2021, 434)   2021년 8월 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学重阳金融研究院), 타이허연구소(太和智库), 하이궈투즈연구원(海国图智研究院)은 『미국이 1위? 미국 방역의 진상(“美国第一”?!美国抗疫真相)』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미국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을 과시하였다. 이 보고서의 즉각적인 목표는 2021년 6월 「코로나 19 회복력 지수」가 미국을 1위로 선정한 사실에 대한 반박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은 세계 최악의 방역 실패국(failed state)으로 정치적 책임 전가, 코로나19 확산, 정치 분열, 통화 남발, 방역 기간 혼란, 거짓 정보, 기원 조사 테러리즘 등의 8개 분야에서 1위라고 맹비난하였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미국은 ‘반-전염병, 저항, 경기 침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Chongyang Institute for Financial Studies 2021, 14).   미국의 위기 관리 실패의 원인으로 이 보고서는 미국의 체제 문제를 거론하였다. 위기대응을 위해서는 국가 전체가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미국식 연방제에서는 각 주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도입하였다. 또한 행정부와 의회가 대립하면서 정책결정이 지체되었다. 정책도 환자의 치료보다는 주식시장의 구제에 맞춰졌다. 이런 문제들은 빈부격차, 인종 갈등, 사회 불안을 악화시켰다. 미국은 미국우선주의를 고집함으로써 글로벌 리더로서 역할을 포기하였다. 해외여행을 통제하지 않아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백신 민족주의를 추구하여 국제협력을 저해하였다.   이 보고서는 우한바이러스연구소(武汉病毒研究所)에서 바이러스가 발원했다는 주장도 반박하였다. 중국은 코로나 19 전염병과 유사한 독감이 2019년 미국에서 유행했으며, 코로나 확진자가 이르면 2019년 12월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미시시피,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주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여부의 확인을 위해 중국은 2019년 7월 폐쇄되기 전까지 생화학 무기를 연구했던 육군전염병의학연구소(USAMRID)와 텍사스대학 실험실에 대한 사찰을 요구하였다(Chongyang Institute for Financial Studies 2021, 20-22).   2. 권위주의   미국에서는 중국의 방역 성공을 국가능력보다는 권위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정책결정이 공산당과 정부가 주도하였으며 그 방식도 하의상달보다 상명하달이라서, 위기대응에 민간의 자발적 협조와 지역의 특수한 사정이 제대로 고려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중국식 위기관리 거버넌스는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또한 중국의 권위주의적 위기관리 거버넌스가 다른 국가에 참고할 수 있는 국제기준이나 모범규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Wright 2020; Huang 2021).   권위주의의 한계는 위기 발생 초기부터 인지되었다. 사스 위기 이후 개선된 전국 방역체계가 이번 위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드러난 문제는 중앙-지방 관계에 배태된 파편화된 권위주의의 관료주의적 관성이다. 우한에서 코로나 19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중앙정부에서 인지하기까지 2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성-중앙 행정체계가 보고를 지연시킨 것이다. 중앙에서 사실을 인지한 후 우한에 파견되었던 사찰관도 그 심각성을 파악하는 데 1주가 걸렸다. 처벌을 두려워하는 관리들의 은폐 시도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당시 양회에 참석하고 있던 공산당 간부와 지방정부 관리들은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관료주의적 관성은 민주주의도 존재한다. 공론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사실의 은폐는 아주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다. 반면, 언론이 통제되어 있는 권위주의에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사실이 감춰질 수 있다(Swaine 2020a; 조영남 2021).   권위주의는 중국식 위기관리의 전파 가능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von Carnap et al. 2020; Swaine 2020b). 첫 번째 문제는 위기의 발원지라는 비판이다. 이 비판은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기원했던 간에 중국이 초동 대처를 잘했다면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중국 통계의 신뢰도에 있다. 중국이 위기 발생 이후 정확한 통계를 제공하고 있지 않으며, 초동 대응 문제를 감추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중국의 자체 평가에 대한 시기와 방식이다. 중국은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2020년 6월 위기를 극복했다는 백서를 발간하였다. 이 백서는 위기의 원인, 대응 및 결과에 대한 논의를 사실상 중단시켰다. 적어도 중국 내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 이외의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산 백신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이 개발한 시노백과 시노팜 백신 중 시노팜 백신만이 세계보건기구(WHO)으로부터 2021년 5월 7일 긴급 사용 허가를 승인받았다(Scissors et al. 2021).   중국의 권위주의는 국제공조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의 반대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을 못하고 있다. 양안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대만은 차이니스 타이베이란 이름을 가진 옵서버 자격으로 세계보건총회(WHA)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 비판적인 민진당 정권이 등장한 이후 중국은 대만의 참가를 계속 거부하였다. 올해에는 G7까지 대만의 참석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지만, 지난달 열린 74차 WHA에서 대만에 배정된 자리는 없었다. 따라서 대만은 방역을 위한 국제공조에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Lu and Chung 2020).   3. 민주주의와 국가능력의 결합 가능성: 한국과 대만 사례   중국과 달리 한국과 대만은 민주적 방식으로 정부가 방역을 선도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 두 국가에서는 정부가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봉쇄보다는 시민과 시장의 자발적 협조를 유도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방역에 성공하였다. 민주주의와 국가능력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 두 국가는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되고 있다(국회입법조사처서2020; Ahn 2020; Cha 2020a; Klingner 2020; Wong 2020; Rowen 2020; Yen 2021).   한국과 대만의 국가주도 위기관리에 대해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 전염을 막기 위해 확진자를 추적하고 격리하는 과정에서 개인 신상 정보와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암호화했으며 일정 기간 후 자동 삭제된다고 하지만 개인 신상 정보를 정부 기관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은 물론 문자 메시지를 통해 공지하는 것은 사생활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집단 감염이 발생한 특정 종교, 사회 집단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편견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Lee 2021).   또한 2021년 중반 한국과 대만은 백신 접종이 늦어지고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 3차 유형으로 일일 신규 확진자가 1천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가 증가하였다. 대만 역시 2021년 초 200일 이상 확진자가 등장하지 않았던 대만에서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집단 감염이 5월 초 발생한 이후 신규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5월 22일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가 723명까지 급증하였으며, 6월 4일에는 누적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그 결과 한국과 대만에 대한 국제적 평판은 상당히 떨어졌다. 「코로나 19 회복력 지수」에서 대만의 순위가 5월 5위에서 15위로 무려 10계단 하락하였다.   낮은 백신 확보율은 대만 정부의 판단 착오와 중국의 방해 공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백신을 빨리 접종해야 할 시급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차이잉원 정부는 백신 확보를 위한 국제 경쟁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자체 백신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중국의 훼방도 대만의 백신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독일의 바이오엔테크는 백신을 대만에 직접 판매하지 않고 중국·홍콩·마카오 판권을 가진 중국 제약사 푸싱(復星)의약을 통해 제공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차이잉원 총통은 중국이 배후에서 대만의 백신 구매를 막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Chi 2021).   IV. 맺음말   코로나 19 전염병 발생 직후 국가주도 위기대응을 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방역에 비교적 성공하였다. 특히 보건의료체제에서 열등한 중국이 강력한 통제를 통해 확진율, 사망률, 백신 접종률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가장 우수한 의료 기술과 방역 제도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던 미국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세계 최대였다. 이런 점에서 위기관리에서 국가능력의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국가능력이 위기관리에 미친 영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차원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첫째, 「코로나 19 회복력 지수」순위가 몇 달 동안 급등락을 반복했다는 사실은 방역의 성과를 단기간에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집단면역 달성을 통한 전염병 통제는 적어도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어느 특정 시점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단기간에 이뤄진 성과에 도취하게 되면,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사회-개인 관계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왜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방역의 주체와 책임이 개인이나 사회가 아니라 국가에게 부과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분석이 없다. 국가주도 산업화를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국가 유산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이 있다. 또한, 사스와 메르스의 피해를 받은 후 전염병 방역 체계를 개선했다는 점도 중요한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17). 그러나 중국과 나머지 국가들은 정치경제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유사점과 차이점을 체계적으로 비교해야만 동아시아에서 국가능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가능력이 왜 어떻게 위기관리 거버넌스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정책이다. 국가주도의 방역에 내재된 권위주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향후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시장의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국가능력의 권위주의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코로나 19 위기 이후 국가능력에 대한 논란은 거버넌스 논쟁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유행한 신자유주의는 국가보다는 시장을 중시하였다. 이 이념에 따르면, 최선의 거버넌스 큰 시장, 작은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위기 이후 동아시아 국가 사례는 큰 국가, 작은 시장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반론에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이 위기의 결과에 따라 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재평가될 것이다(Stiglitz 2021).■   참고문헌 국회입법조사처. 2020. 『코로나19(COVID-19) 대응 종합보고서』(개정증보판) 조영남. 2020. “2020년 중국 정치의 현황과 전망: 중국의 코로나 19 대응 분석을 중심으로.” 『2020 중국정세보고』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중국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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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2022-02-11조회 : 18607
워킹페이퍼
[EAI 워킹페이퍼]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시리즈⑥_ 코로나19 이후의 국가와 민주주의

I. 서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전 지구적인 확산은 인류 삶의 다양한 영역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특히 기존에 지배적인 정당성과 영향력을 누리던 정치제도와 거버넌스 방식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아 그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 잠재해있던 문제들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과 대안 모색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2021년 11월 1일 현재 2억4천만명이 훌쩍 넘는 확진자와 약 500만명의 사망자를 낳으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감염병의 위협은[1]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재소환했다. 개인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 하에서, 공동체와 국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어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게 대두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한국, 대만,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특정 국가들은 코로나19 위기에 상대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확진자 및 사망자 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양한 국내 변수들과 동아시아 지역 내부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성과를 단순히 동아시아 국가들의 특징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이들 국가의 방역 성과가 서유럽과 북미 선진국들의 양상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2] 동아시아 국가들의 우수한 대처능력에 주목하는 분석들은 주로 신속한 추적 및 검사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우월성과 제도적 효율성 외에도(BBC 2020b; Brookings 2020; Reuters 2020; Wall Street Journal 2020c),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국가 통제와 관리체계, 그리고 국가의 개입을 대체로 용인하는 집단주의적 사회와 시민들의 협조를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The Diplomat 2020a; Tiberghien 2021; Wall Street Journal 2020b).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공동체주의적 또는 국가주의적 정치전통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질병의 발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중국의 사례는 더욱 주목을 끌었다. 중국이 국가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활용하여 도시 전면봉쇄 등의 초강경책을 동원하면서 감염병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모습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코로나19가 심각하게 증폭되고 의료체계가 붕괴하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는 양상과 대비되면서 그 성과가 더욱 부각되었다(Barron’s 2020; Global Times 2020; The Conversation 2020).   반면 감염병이라는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서구 선진국’들이 드러낸 취약성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의료와 복지 등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공서비스의 결핍과 사회적 약자들이 받은 타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되었다.[3]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 리더십이 공동체의 통합을 유도하지 못하고, 마스크 착용 및 집합 제한 등 국가의 통제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며, 사회적 불안이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등의 문제와 결합하여 폭력적으로 증폭되는 사례들은 이들 국가의 민주적 정치체제가 과연 시민들의 합의와 신뢰에 기반한 것인가를 의심하게 했다. 다수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적절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상황에서 시민들의 합의와 정치에 대한 신뢰 및 국가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과연 그 정치체제는 정당한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이 글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된 국가의 역할과 능력에 관한 학문적 논의를 소환하고, 성공적 방역 사례로 꼽히는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강한 국가’의 유용성을 검증하며, 코로나19가 노출한 자유민주주의의 문제를 성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아래의 2장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국가주도형 경제성장을 계기로 활발히 진행되었던 국가능력에 대한 논의를 코로나19 시대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재검토한다. 이후 3장에서는 ‘강한 국가’의 전형이자 권위주의의 유효성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인 중국의 코로나19 대응과정을 분석한다. 특히 광범위한 중국 국내외 자료들을 기반으로 코로나19 발생 직후 첫 두 달여간 중국 정부의 대응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의 강한 국가가 사회에 대한 통제력와 동원능력을 활용하여 감염병 발생 사실을 은폐하면서 결국 코로나19의 초기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중국 사례가 보여주는 권위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질문들을 간략히 논할 것이다.   II. 이론적 논의: 국가의 역할과 능력   20세기 후반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에 중요한 전기를 제공한 것은 제3세계 국가의 경제성장이라는 이슈였다. 2차대전 직후 신생 독립국들의 경제성장을 둘러싸고 이론적 스펙트럼 양쪽에서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충돌하고 있었다. 자유주의적 믿음에 기반한 근대화론자들에 따르면 정치경제적 발전은 모든 사회가 겪게 되는 단선적인 진보이며, 따라서 자유로운 시장경쟁 속에서 후발경제는 자신의 비교우위를 활용하는 동시에 선진경제의 발전경로를 모방하여 오히려 더욱 빠르고 용이하게 발전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그 같은 열린 경쟁과 동등한 발전은 허상에 불과했다. 종속이론에 따르면, 식민시대부터 만들어진 중심부(core)의 주변부(periphery)에 대한 착취구조는 주변부 국가가 정치적인 독립을 성취한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구조화된 종속관계에서 소위 ‘자유로운 시장’은 주변부의 중심부에 대한 종속(dependency)을 더욱 심화키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논쟁에 제3의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 바로 동아시아 경제의 성공적 부상이었다. 2차대전의 참화를 딛고 50-60년대에 이미 부활하기 시작한 일본뿐만 아니라, 낙후된 주변부 소규모 경제에 불과하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도 60-70년대부터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65년부터 90년까지 25년 동안의 1인당 GNP 평균성장률을 지역별로 비교하자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OECD 국가들의 평균성장률을 2배 이상 상회하였으며 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 평균의 약 3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였다. 1960년부터 1985년까지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1인당 실질소득은 4배 이상 증가했다(World Bank 1993, 2).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시장의 전횡을 다스려 정치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굴복시키고 후발국가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제약들을 돌파하는 전략적인 역할을 국가가 담당했다는 점이다(White 1988). 90년대 초에 이르면, 동아시아 경제의 성공에 국가의 역할이 시장보다 더 중요했는지 혹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더라도, 최소한 국가 개입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는 학자들 간의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졌다.[4] 동아시아 경제의 성공은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주변부 후발경제가 종속을 탈피하여 중심부로 이동하는 경로(pathways from the periphery)가 열릴 수 있으며(Haggard 1990), 그 경로를 여는데 시장이 아닌 국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근대화론을 비롯한 자유주의적 발전론에 반기를 드는 중요한 사례였다(Islam and Chowdhury 2000, 2-3). 이로서 제3의 길로서 ‘국가주도형(state-led) 경제발전’에 대한 논의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고, 경제발전에 있어 국가의 역할도 재조명되게 되었다.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은 잘 알려진 ‘발전국가론(developmental state theory)’이다. 발전국가론은 시장친화적(market-conforming) 국가 개입이 후발경제의 도약을 추동하는 엔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5] 특히 후발경제가 자원동원, 투자분배, 그리고 기술추격 과정에 만연한 시장실패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산업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나갈 능력을 갖춘 국가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시장은 합리성에 입각한(market rationality) 자본주의의 도구이고 계획은 이념을 우선하는(plan ideology) 사회주의의 도구라는 이분법[6]을 깨고, 경제발전이라는 최우선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장과 계획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계획 합리성(plan rationality)’이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계획 합리성을 가지고 ‘발전’이라는 이념에 복무하는 것이 바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인 것이다. 발전국가의 기능과 정책순위는 발전이라는 목적에 기반하여 설정되고, 그 목적의 실현을 통해 발전국가는 정당성을 획득한다(Johnson 1982, 315-320; Johnson 1987, 141). 다양한 행위자와 부문의 자율적 조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이성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 즉 리바이어던(Leviathan)과 같은 강력한 국가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것이 국가능력(state capacity)에 대한 질문이다. 모든 국가 개입이 효과적으로 경제발전을 낳은 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국가가 계획 합리성을 유지하면서 효과적으로 발전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가. 이때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국가의 ‘능력(capacity)’은 종종 국가의 ‘힘(strength)’과 동의어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유능한 국가는 곧 강한 국가이다. 여기서 강한 국가는 국가와 사회 간의 제로섬적 권력 관계에서,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국가로 정의된다. 그 자체로 사회와 구별되는 목적과 의지를 지닌 독립적 단일체인 국가가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지배적인 사회집단의 저항을 거슬러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킬 수 있을 때 곧 중대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관점은 국가주의적인 연구들에 지배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후발경제가 직면한 구조적인 한계들을 극복하고 개발을 위한 정치경제적인 동원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과 전략을 추진하고, 주요 행위자 및 집단의 행위를 제한하거나 변화시키며, 국내 산업구조 및 경제제도를 재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강한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Gourevitch 1978, 902; Krasner 1978, 60; Skocpol et. al. 1985, 9; Weiss 1998, 25-28).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능력의 핵심요소로 강조되는 것은 ‘자율성(autonomy)’이다. 근시안적인 정치적 개입이나 특정한 사회경제적 이익에 포획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경제발전이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성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국가가 다른 행위자들로부터 가지는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찰머스 존슨(Charlmers Johnson)의 원형적 발전국가론에서 국가 자율성의 근원은 고립(isolation)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 주요 행위자들의 간섭과 영향력으로부터 격리되어 방해받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최선의 정책을 선택하고, 그 정책을 일방적으로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자율성이야말로 국가가 발전이라는 목표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일관적인 계획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처럼 권력(power)을 상대가 원치 않는 것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보고, 국가능력을 사회에 일방적으로 국가의 선택과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으로 해석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일차원적인 정의에 기반한 것이다.[7] 더욱이 단일하고도 통합된 독립체로서 발전이라는 공공선에 전념하며 그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아는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국가를 상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결국 ‘권위주의’ 혹은 ‘비자유주의적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낳게 된다. 권위주의 국가는 다수 국민들을 경제발전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호소력과 성과주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Johnson 1999, 52), 지대추구를 억제하고 집단행동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일관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Haggard 1990, 254-267; 2018, 47-50)는 관점은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민감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발전국가론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한국과 대만의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고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동아시아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능력 논의는 쇠퇴했다. 권위주의적 통제에 대한 저항, 과도한 국가 개입이 낳은 구조적 문제, 그리고 전 지구적 시장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의 경제적 개입 또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발전국가는 도덕적 해이를 낳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경제위기를 초래하거나(Haggard 2000), 새로운 국제경제 환경에서 정책 자율성이 한계에 이르거나(Islam and Chowdhury 2000), 구조적 경직성으로 인해 변신과 적응에 실패함으로써(Amyx 2004; Moon and Rhyu 2000), 자유화와 시장화로 대변되는 시대에 그 적실성이 쇠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 전 세계가 함께 직면한 코로나19라는 도전은 국가의 역할과 능력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성을 다시금 제기한다. 과거에는 후발국가의 경제발전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로운 시장을 제한하며 개입하는 국가의 역할과 능력을 고민하였다면, 이제 감염병이라는 인류 공통의 위협에 직면하여 어떻게 시민의 생존과 안전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국가의 역할과 능력을 재조명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번에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동아시아의 국가들이다. 서유럽과 북미의 전통적인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시민들의 자율적인 합의와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자유의 제한과 통제의 필요성을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취약점을 노출하는 반면, 대만과 한국 등 동아시아 사례에서는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정부 통제 및 개입과 비교적 자발적인 시민들의 협조를 통해 훨씬 안정적으로 감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중국의 경험이다. 2021년 중국 정부는 질병의 진원지인 우한시를 70여 일간 동안 완전히 통제하여 900만 명에 달하는 거주자들을 가택연금상태에 놓이게 했다. 시민들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 결과 2020년 3월 초 이래 대체로 100명 이하의 일일확진자 수를 유지하는 인상적인 성과를 거뒀다. 과거 동아시아 국가의 능력을 일인당 GDP 등의 수치로 재단하였듯,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놓고 국가능력을 판단한다면, 국민을 통제하고 그들의 상대적으로 ‘사소하고 이기적인’ 이익이나 반대를 거슬러서라도 공동체의 안전과 안정을 위한 통제와 개입을 강요할 수 있는 강한 국가야말로 유능한 국가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집단행동의 문제를 낮추고 목표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권위주의 국가가 유리할 수 있다는 관점이 등장했던 것처럼, 감염병과 같은 공동체에 대한 위협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도 시민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강제하면서 그 성과로 정당성을 증명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가 우월할 수 있는 것인가. 다음 장에서는 중국의 코로나19 발생초기 대응 과정을 세부적으로 분석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전개한다.   III. 사례: 중국의 코로나19 초기대응[8]   1. 권위주의의 성공?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확산과 피해 확대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일찌감치 극복했다고 주장한다. 2020년 1월 23일 전격적으로 우한시를 봉쇄하는 등 강력한 통제책에 힘입어 중국 내 일일 확진자 수는 2월 13일 15,152명을 정점으로 급감하였고,[9] 3월 8일에 이르면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백명 이하로 감소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우한봉쇄 7개월만인 2020년 9월 8일 인민대회당에서 전국 코로나19 방역 표창대회를 열고 사실상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코로나19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성과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사회주의제도의 우수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자축했다(연합뉴스 2020a).   그러나 이러한 결과 뒤에 감춰진 것은 감염병 발생 직후 그 향방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첫 두 달여 동안, 중국 정부가 시민들에게 조기에 위험을 경고하고 효과적으로 질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았았다는 사실이다. 2019년 12월 1일 중국 우한에서 원인미상의 폐렴 환자가 발생한 지[10] 거의 한 달이 지난 2019년 12월 31일에야 우한시정부는 중앙정부에 환자 발생을 보고했는데,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연구진은 이 한 달간 2300명에서 4000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BBC 2021). 우한시로부터 보고를 받은 중국 중앙정부는 또다시 3주가량을 지체한 후 2020년 1월 21일에 이르러서야 이 새로운 질병의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인정했고, 1월 23일 전격적으로 우한시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미 춘절을 맞아 500여만명이 우한시를 떠나 중국 전역으로 흩어진 후였고, 이들과 함께 감염병은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1월 31일 이미 중국 내 공식 누적 확진자 수는 9720명, 총 사망자 수는 213명에 달했고, 2월 29일에 이 수치들은 각각 79,389명과 2,838명로 증가했다.[11] 더구나 감염병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면서 2020년 3월부터 전세계 일일 확진자 수 그래프도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6일 전 세계 누적 확진자 수는 10만을 넘어섰고,[12]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상황을 전 지구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인 ‘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발견과 격리이다.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된 한 연구는 중국 정부의 개입이 1주만 빨리 이루어졌더라도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6% 줄었을 것이며, 3주가 빨랐다면 95% 감소했을 것이라 주장한다(Lai et al. 2020; New York Times 2020). 중국 정부가 질병 발생 초기에 정보를 공개하여 대중에게 감염 가능성을 경고하고, 의심 환자 및 밀접 접촉자를 격리하는 등의 조치만 취했더라도 코로나19의 확산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국제사회와 전문가들의 비판은 이에 기인한다(BBC 2021; Huang et al. 2020; Lai et al. 2020; The Diplomat 2020b; The Heritage 2020; Tian et al. 2020).   2019년 12월부터 두 달여간 중국의 지방 및 중앙 정부가 감염병의 심각성을 부인하면서 정보를 차단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미룬 과정을 살펴보면, 자신이 공공선이라 정의하는 목표를 일방적으로 시민들에게 관철시킬 능력을 가진 ‘강한’ 권위주의 국가가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큰 폐해를 야기했는지 발견할 수 있다.   2. 지방정부의 은폐   2019년 12월 초 첫 환자가 발생한 후, 우한시정부는 12월 27일 지역병원의 보고를 통해서 처음 감염병 발생을 인지하고 12월 31일 중앙정부에 공식적으로 환자 발생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2020년 1월 23일 우한시 봉쇄조치가 내려지기까지 두 달여의 기간 동안 우한시정부의 대응에 두드러지는 특징은 감염병 상황에 대한 방임 및 정보은폐이다.   우한시정부는 우한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시기를 2019년 12월 8일로 발표했으나 (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20b), 우한의 코로나바이러스 전담치료 원인 진인탄병원(金银潭医院) 부원장을 포함한 30여명의 의사들이 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첫 환자는 12월 1일 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BBC 2020a). 이후 늦어도 12월 12일부터는 화난수산시장 근처 병원들에서 원인 미상의 폐렴 환자들이 다수 발견되었고, 의사들이 외부기관에 검사를 의뢰하고 진인탄의원 등 감염병 전담치료병원으로 환자들을 이송했다는 증언들이 등장한다.[13] 우한시 중심병원(武汉市中心医院), 우한통지병원(武汉同济医院), 우한대학 인민병원(武汉大学人民医院), 우한 제6병원(武汉第六医院), 우한푸런병원(武汉普仁医院), 후베이성 중서의결합병원(湖北省中西医结合医院) 등 우한시내 병원들에 유사한 증상의 환자들이 입원한 사례가 잇따랐다(Huang et al. 2020; Ren et al. 2020; 中国经济网 2020). 외부기관에 의뢰한 차세대염기서열(NGS)검사 결과, 우한시 중심병원에 입원한 원인 미상의 폐렴 환자들은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와 87%, 사스 바이러스와 81%의 유사성을 가진 ‘신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밝혀졌고, 이 결과는 12월 27일과 28일에 각각 병원과 우한시 질병통제센터에 전달되었다(“活粒”微信公众号发布 2020). 12월 30일 통보된 우한통지병원 환자들에 대한 검사결과에도 해당 바이러스가 사스 바이러스와 유전자 염기서열 유사성이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中国经营网 2020).   2019년 12월 27일에는 마침내 후베이 중서의결합병원의 이상증세 환자 4명에 대한 보고가 병원 관리구인 장한구(江汉区) 질병통제센터에 전달되었고, 12월 29일에는 후베이성 및 우한시 질병통제센터에도 보고되었다. 12월 29일에는 우한시 중심병원도 이날 응급실에 입원한 4명이 폐렴 증상을 보인다고 장한구 질병통제센터에 보고했다. 이때 신고된 4명 중에는 화난시장과는 직접 접촉이 없는 환자가 포함되어 있어, ‘사람 간 감염’의 가능성 또한 제기되었다(新浪网 2020a).   상황의 잠재적 심각성이 농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정부의 즉각적인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한시정부는 감염병 발생 시 2시간 내에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관리 규정(中国政府门户 2005)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인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12월 30일에는 시내 의료기관에 치료와 관련된 정보 유출을 금지하는 명령을 하달했다(人民网湖北频道 2019). 그러나 같은 날 우한시 중심병원 응급실 주임 아이펀(艾芬)은 입원 환자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검사결과를 인터넷으로 동료 의사들과 공유했고, 동병원 안과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우한의대 동기들에게 이를 위챗(WeChat)으로 보내면서 원인불명의 폐렴이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외부에 공개되었다.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우한시정부는 결국 12월 31일 중앙정부에 관련 사실을 보고하게 된다(经济观察网 2020). 같은 날 시정부는 관내 27건의 폐렴 사례가 발생했으나 이는 바이러스성 폐렴이며, 사람 간 전염이나 의료인 감염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19).   늦어도 12월 중순부터는 화난수산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의심환자들이 관찰되었고, 여러 병원의 의사들이 이에 대한 외부 검사들을 의뢰했으며, 이 내용이 우한시 질병통제센터로 전달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12월 27일에서야 우한시 당국이 처음 감염병 발생을 인지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태파악의 심각한 지연이 병원의 책임회피, 진단능력의 부족, 관료적이고 안일한 위기경보체계 등 무능과 저효율에 크게 기인했다고 하더라도(조영남 2020; CNN 2020), 시정부의 안일함과 정보은폐 의도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시정부는 12월 31일 사람 간 전염이나 의료인 감염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으나, 상술한 바와 같이 그 전에 이미 코로나 및 사스와 유사한 ’신종 바이러스’라는 검사결과가 당국에 전달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사람 간 전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또한, 공식적인 인지 시점인 27일 이전부터 이미 의심 환자를 격리 치료하기 시작한 점에서도 시당국이 바이러스의 잠재적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다만 격리 시에도 환자 자신과 가족에게조차 병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고, 밀접 접촉자인 가족이나 의료진을 보호하거나 격리하는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2020년 1월 20일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중앙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우한시정부는 체계적인 격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보 공유와 조기 경보를 통해 신속하게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보다는 상황을 은폐 및 축소하려 하는 우한시정부의 태도는 상황이 공개된 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감염병 발생이 중앙에 보고된 직후인 2020년 1월 2일, 정보유출의 시발점이 된 우한시 중심병원 응급실 주임 아이펀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우한의 발전과 안정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병원 감찰과로부터 엄격한 질책을 받았다(South China Morning Post 2020a). 병원은 스태프들이 폐렴관련 상황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금지하고, 의료진들이 문자나 사진이 아닌 구두로만 관련정보를 교환하도록 지시했다(South China Morning Post 2020a; 多維新聞 2020b; 新浪微博 2020). 1월 3일, 우한발 바이러스 발생 사실을 위챗으로 공개한 리원량 등 8인은 유언비어를 퍼트렸다는 혐의로 우한시 공안국에 소환되었고, 유언비어 유포를 시인하는 문서에 서명한 후에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Wall Street Journal 2020a; 武汉市公安局武昌分局中南路街中南路派出所 2020; 新华网 2020).   1월 3일 우한시는 총 44명의 누적 확진자가 발생했으나 전염성에 대해서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밝히는 한편(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20b), 개별병원과 질병통제센터를 통해 의사들에 대한 압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했다. 1월 6일 후베이성 신화병원(新华医院)에서 화난수산시장에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CT촬영 소견상 감염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하자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감염병 관련 정보유출을 금하라는 우한시정부의 명령이 전달되었다.(财新周刊 2020). 아이펀에 따르면, 같은 날 자신의 간호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우한시 중심병원은 해당 간호사의 진료기록을 ‘양쪽 폐의 바이러스성 폐렴 감염’에서 ‘양쪽 폐의 산재 감염’으로 변경할 것을 지시했다(财新网 2020).   우한시정부의 은폐 아래 실제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월 9일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우한에서 발생했는데, 특히 사망자의 아내는 화난수산시장과 접촉하지 않았음에도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東網 2020; 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20b, 2020c). 1월 10일 우한대학 중난병원은 호흡기 환자로 마비된 상태였으며, 진인탄병원도 이미 ICU병동이 꽉차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여서 임시 병동을 확보하기 시작했다(南方周末 2020). 이 날 통지병원의 의사인 루쥔도 감염되었고(财新周刊 2020), 감염사례가 우한시 밖에서도 발생하기 시작해 황강중앙병원 발열클리닉에서 의심사례가 보고되었다. 그리고 1월 12일에는 리원량이 환자를 통해 감염되어 입원 후 확진되었다. 그는 환자의 CT 결과를 통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환자임을 알고 있었지만, 우한시 중심병원이 응급진료과, 호흡기과, ICU를 제외한 진료과의 의료진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리원량은 2월 6일에 결국 사망했다(环球时报 2020).   흥미로운 사실은 시내 병원들이 포화상태가 된 혼란 속에도 1월 3일에서 17일까지 우한에 확진자 보고가 없었다는 점이다. 1월 6일에서 10일까지는 우한시의 양회 기간으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배경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월 10일 우한시정부는 1월 3일 이후로는 새 감염자가 없었으며, 사람 간 감염이나 의료진 감염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20c). 후베이성 양회가 열린 1월 11일에서 17일까지 일주일 동안에도 보고된 추가 확진 사례가 없었다. 비결은 정보통제였다. 1월 13일 간호사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우한시는 확진자 보고 조건을 강화했는데, “발견된 사례는 우선 원내에서 각종 관련 검사를 마치고 전문가 그룹 회진을 거쳐 진단한 뒤, 구 위생건강위원회에 회진 및 승인을 요청하고, 이후 구, 시, 성급별 검사를 거쳐 여전히 원인불명 폐렴으로 판명된다면 성 위생건강위원회의 동의를 거쳐 사례 보고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新浪网 2020b). 진단과 격리가 시급한 상황에서 확진자 보고 및 승인과정을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은 확진자 수를 축소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이처럼 확진 과정에 상당한 지연이 발생하면서 의심환자들의 격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것이 감염 확산에 기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财新网 2020).   3. 중앙정부의 방임   우한시정부가 의사들을 위협하면서 정보를 통제하고 사태를 축소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면, 2019년 12월 31일 위기 발생을 인식한 중앙정부 또한 적절한 대처를 하지는 못했다. 신속하게 개입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제공하기보다는, 질병에 대한 정보유출을 통제하고 위험 가능성을 계속 부인하면서 우한에서 진행되는 위기상황을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중앙정부의 대응은 일견 신속해 보이지만 형식적이었다. 우한시정부의 공식 보고가 이루어진 2019년 12월 31일, 중앙정부는 즉시 1차 조사팀을 우한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홍콩 『명보(明報)』의 보도에 따르면, “아직 사람 간 전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공공장소 통제 등 즉각적인 행동은 취해야 한다”는 요지로 공산당 지도부에 전달된 조사팀 보고는 묵살되었다. 중국 질병통제센터 주임 가오푸가 '을류(2급)' 경계 발동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기사는 중앙정부가 춘절 분위기 유지를 위해 사람 간 전염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조사팀의 보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중앙일보 2020; 明報新聞網 2020), 이는 중국 중앙정부가 정치적인 의도로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은폐했다는 일반의 의혹을 뒷받침한다.   중국 중앙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2019년 12월 31일 당일에 바로 우한시에서 보고받은 내용을 WHO에 보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WHO 베이징사무소에 한 보고였고, WHO에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 발생이 정식으로 통보된 것은 1월 3일이었다. 더구나 이 보고의 내용은 44명의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정도였고,[14] 거의 3주가 지나서야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었다. 그 결과 중국 중앙정부는 새로운 감염병 발견 시 WHO에 24시간 내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제보건법을 위반했으며, 관련 정보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초기대응을 소홀히 함으로써 결국 국제적 팬데믹으로까지 연결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BBC 2021; Henderson 2020; McCaul 2020; 美国之音 2020a).   감염병 발생 정보는 그나마 중국 국내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1월 3일 국가 위생건강위원회는 신생바이러스와 관련된 표본을 수집한 개인 혹은 기관은 반드시 폐기하거나 국가기관에 제출해야 하며, 병원에서 제3의 기관으로 검사를 의뢰할 수 없도록 지침을 내렸다. 즉, 검사채널을 다양화하여 신속한 확진과 격리에 힘쓰기 보다는, 오직 국가기관을 통해서만 검사가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통제 조치가 서둘러 발효된 것이다. CNN에 따르면,[15] 1월 5일에는 상하이 공중보건임상센터가 신생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사스 바이러스와 87.11%의 유사율을 확인하고 공공장소에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문서를 국가 위생건강위원회에 제출했는데(网易新闻 2020), 다음날 바로 ‘수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내용이 삭제되고 연구실이 잠정 폐쇄되었다.   중앙정부의 늦장 대응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거세게 일자, 뒤늦게 1월 7일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시진핑이 이미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지시했다는 점이 공개된 바 있다(多維新聞 2020a; 中央通讯社 2020).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시진핑은 “감염병 상황의 제어에 힘쓰는 동시에 생산생활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확진사례의 증가 및 생활물자공급의 부족 등 군중불안을 야기하여 제2의 재해를 야기하는 것을 피하라“고 말한다(求是 2020). 이는 감염병의 제어보다 사회안정과 질서유지를 강조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든 확진자 수를 줄이려 한 우한시의 적극적인 은폐 또한 중앙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시행하려는 노력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1월 8일 마침내 국가 위생건강위원회가 원인불명의 폐렴을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판정했다(国家卫健委 2020). 전술한 바와 같이 1월 9일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우한에서 발생했고, 화난수산시장과 접촉하지 않은 사망자 아내의 감염은 사람 간 감염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8일에 우한에 파견된 2차 조사팀이 1월 10일에 발표한 조사결과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이 낮으며 통제 가능한 수준의 질병”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던 우한의 현실과는 완전히 괴리된 분석이었다. 이날 춘절 귀성철도 운행도 시작되지만, 중앙정부는 우한을 떠나거나 방문하는 시민들에게조차 아무런 경고를 전달하지 않았다. 1월 12일 중국 정부는 중국질병통제센터, 중국의학과학원, 중국과학원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사람 간 감염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고 의료종사자도 감염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新华网微信公众号 2020).   그러나 1월 18일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날 우한시는 4건의 새로운 확진 사례를 보고하였고(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20d), 우한에는 3차 조사팀이 파견되었다(长江网 2020). 1월 19일 우한시에서는 17명의 확진자가 보고되었고(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 2020e), 1월 20일에는 3차 조사팀장이었던 중난산(鐘南山)이 기자 회견을 열여 “사람 간 전염이 확인되었고, 이미 14명의 의료진 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에 기존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腾讯网 2020a; 中国政府网 2020; 央视网 2020). 이로써 코로나19의 위험성이 비로소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1월 23일, 항공기와 기차 등의 운행을 모두 중단하며 우한시에 대한 전격적인 봉쇄가 시작되었다. 춘절 기간에 우한시에 남아있던 약 900만 명은 가택연금 상태로 70여 일을 보내게 되었다.   중국의 중앙 및 지방정부가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후 두 달여 동안 감염병의 심각성을 부인하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미루고 정보통제에 집중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강한 권위주의 국가’가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 그 힘을 활용하여 정치적 안정이라는 우선 순위를 위해 얼마나 큰 피해와 희생을 개인과 사회에 강제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일견 과감한 개입으로 감염병 확산을 차단한 것처럼 보이는 우한시 봉쇄의 배후에는, 두 달 가까이 효율적인 개입을 미루면서 의사들을 단속하며 상황을 축소한 지방정부와, 사회불안을 이유로 감염병의 위험성을 은폐하고 적절한 경고를 미룬 중앙정부가 있었다. 유능하고 강한 국가가 과감한 개입을 통해 효율적인 감염병 통제를 이룩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정보를 차단하고 대응을 미룬 결과, 결국은 극단적인 봉쇄와 통제로만 해결이 가능한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감염병의 심각성이 알려지고 우한이 봉쇄될 때까지 우한시민들은 적절한 경고를 받지도, 효율적인 격리조치도 받지 못했다. 2020년 4월 초 봉쇄가 해제되는 시점까지 우한에서 코로나19로 확진된 수는 총 5만여명으로 중국 전체 확진자 수의 60%였다. 사망자 수는 2천500명이 넘었는데, 이는 중국 전체 사망자의 약 4분의 3에 해당한다(연합뉴스 2020b).   IV. 결론   코로나19의 충격은 기존의 정치제도 및 체제가 가지고 있던 모순과 한계를 노출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미국 및 서유럽의 ‘선진’ 국가들이 경험한 난맥상은 확고한 정당성을 누리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야기했다. 정치 공동체가 직면한 긴박한 위기상황에서도 자유로운 시민들 간의 합의와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다른 한편, 코로나19가 초래한 공동체의 위기는 국가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능력이 무엇인지 또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와 정치체제가 정당성을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본 논문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국가주도형 경제성장을 계기로 활발히 진행되었던 국가능력에 대한 논의를 코로나19 시대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재검토하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이 깊은 영미에서 통제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과 의료체계의 실패를 통해 무능하고 분열된 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엄격한 방역정책과 시민들의 협조에 기반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해 온 동아시아 사례들은, ‘강한 국가’의 효과성을 새로운 맥락에서 분석해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후발국가가 직면한 구조적인 제약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익을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에 굴복시킬 수 있는 ‘강한 국가’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처럼, 위기에 처한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시민의 자유를 일정 정도 제한하면서 방역정책을 사회에 강제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특히 일찌감치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중국의 방역 성과는 적어도 국가적인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에 있어서는 권위주의가 상대적으로 효과적임을 입증할 수도 있는 사례다. 찰머스 존슨식의 발전국가론이 그러했듯이, 국가능력을 사회의 다양한 이익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적과 의지를 일방적으로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중국 사례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방역정책을 전 사회 구성원에게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국가가 안전과 안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성공사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은 코로나19의 발생 후 결정적인 시기인 첫 두 달여간 중국 정부의 대응을 중국 국내외 자료들을 토대로 상세히 분석함으로서,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이 실상 코로나19의 초기 억제에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의 확산 속도와 범위를 좌우한 초기 단계에 중국의 중앙 및 지방 정부가 위험 신호들을 방치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미루면서 정보통제에 전념하는 과정은, 사회로부터 강력한 자율성을 가진 ‘강한 국가’가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 정치적 안정이라는 지상목표 하에 얼마나 큰 사회적 희생을 야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일견 과감한 개입으로 적극적 방역에 나선 것처럼 보이는 우한 봉쇄의 배후에는, 두 달 가까이 확진자 수를 축소하고 관련정보 유출을 단속하기 바빴던 지방정부와, 사회안정을 강조하며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부인하고 정보차단에 주력한 중앙정부가 있었다. 사회에 대한 막강한 동원력과 강제력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감염병 대응보다는 정보통제에 활용되었고, 그 결과 거대한 인명 손실과 인권탄압, 그리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다수 시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와 정치체제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중국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위기 하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드러낸 취약성과 그 취약성이 야기한 국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강한 국가가 답이 아니라면, 어떤 능력을 갖춘 국가가 코로나19 시대가 노출시킨 정치적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기존의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왜 코로나19라는 결정적인 위기상황에 대처하는데 그토록 한계를 노출하였으며, 지금까지 그들에게 보내 온 찬사는 무엇을 간과한 것일까. 개인의 자유라는 지상 가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이기적인 개인과 불평등하고 분열된 공동체를 낳는가.   위기 상황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효과적으로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며,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능한’ 국가에 대한 갈증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실패를 거듭한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실망과 맞물려 코로나19 이후에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 특히 ‘선진’ 자유민주주의 체제들이 경험한 실패는 그동안 시장과 개인에 기반하여 발전해 온 자유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간과해 온 공동체와 국가의 역할을 환기시키고, 동료 시민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 또한 민주주의의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코로나19가 기존 정치체제에 가져온 충격은 자유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민주주의의 효과성과 정당성을 한 단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연합뉴스. 2020a. “시진핑 책임론 불붙나…1월 초 이미 대책회의.” (2월 17일).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200217000900038 _______, 2020b. “숫자로 본 우한봉쇄.” (4월 7일).https://www.yna.co.kr/view/AKR20200406073500083 정주연·신은비. 2022. “은폐 또는 왜곡: 중국의 코로나19 초기정보 통제.” ????한국과 국제정치????. 38(2). 조영남. 2020. “중국은 왜 코로나 19의 초기 대응에 실패했는가?” ????한국과 국제정치????. 36(2). 중앙일보. 2020. “‘춘절 분위기 깨지 말라’...시진핑 코로나 책임론 키운 한마디.” (2월 17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07832#home Amsden, Alice H.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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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1년 10월25일 기준으로, 미국 및 서유럽 국가들의 누적 확진자 수와 총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각각 45,107,253 및 730,306명, 영국은 8,773,678명 및 139,533명, 프랑스는 6,904,501명 및 115,092명이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독일은 4,472,730명 및 95,117명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354,355명 및 2,788명, 대만은 16,380명 및 847명, 일본은 1,717,104명 및 18,207명, 그리고 중국은 125,565명 및 5,695명이다.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수치에도 격차가 있으나, 영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피해를 입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WHO, Coronavirus Dashboard; Taiwan Centers for Disease Control, https://www.cdc.gov.tw/En(검색일: 2021년 10월 26일). [3] 코로나19 대응 결과를 놓고 민주주의 또는 권위주의 정권이라는 레짐타입과의 관련성을 논하는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Brookings 2020; Burkle 2020; Carnegie 2020; Cassan and Steenvoort 2021; Fukuyama 2020; The Washington Post 2020. [4] 90년대 초가 되면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대표하는 세계은행(World Bank) 또한 국가개입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는데, 세계은행은 빠르고도 비교적 평등한 경제성장을 이룬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에 주목하면서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선택적 개입(selective government intervention)”을 꼽고, 특정 국가들의 경우 “정부 개입을 통해 개입 없이 가능했을 수준보다 더 높고 더 평등한 발전이 가능했다“고 분석한다(World Bank 1993, 17). [5] 대표적인 관련 저작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Amsden 1989; Chang 1994; Deyo 1987; Evans 1995; Fields 1995; Haggard 1990, 2018; Johnson 1982; Moon and Prasad 1994; Wade 1990; Woo-Cumings 1999; [6] 이에 대한 논의로는 아래를 참조하라. Appelbaum 1992, 18-19; Dahrendorf 1968, 219. [7] 따라서 국가능력에 대한 논의는 이후 사회와 국가 간의 상호관계 및 연결성을 강조하는 연구들로 확장되었다(Evans 1995; Moon and Prasad 1994; Okimoto 1989). [8] 이 장은 정주연·신은비(2022)에서 세부내용을 폭넓게 인용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이 논문을 참고하라. [9] WHO, China: Coronavirus Dashboard. https://covid19.who.int/region/wpro/country/cn. [10] 2019년 11월 17일경에 이미 환자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우한시에서 발생한 최초의 코로나 감염 사례는 12월 1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BBC 2020a; Epidemiology Team 2020; South China Morning Post 2020b). 중국 우한시정부가 주장하는 최초 감염자 발생일은 12월 8일이다. [11] WHO, China: Coronavirus Dashboard. [12] WHO, Coronavirus Dashboard. [13] Lest we forget, Covid-19 Timeline, https://covid19.forget.eu.org/en.html. [14] WHO, Covid-19-China. [15] CNN, China’s truthtellers,     ■ 저자: 정주연_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컬럼비아대 포스트닥 펠로우 및 캐나다 알버타대 정치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비교정치분야에서 중국을 주요 사례로 하여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학적 주제들을 주로 연구한다. 최근 논문과 편저로는 “Changing Frames: China's Media Strategy for Environmental Protests” (2021), <중국에서 시위는 유효한가: 샤먼 환경시위와 도시 중산층의 역할> (공저, 2019), <시장에서 국가로: 중국 사회주의의 적응과 진화> (2018), <중국식 경제모델: 중국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장경제의 의미와 한계> (2017), 《중국의 부상과 국내정치적 취약성》 (편저, 2016)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정주연 2022-02-10조회 : 31835
워킹페이퍼
[EAI 워킹페이퍼]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시리즈⑤_ 코로나19와 디지털 경제: 글로벌 밸류체인과 개도국 발전의 관점

I. 서론   1990년대 중반 이후 PC, 모바일,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과 이를 활용한 서비스가 보편화 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기업들과 사업모델들이 등장하는 한편, 기존의 산업구조와 경제활동에서 변화가 진행되어왔다. 새로운 정보통신기기들이 불러온 변화하는 경제의 모습은 네트워크경제, 디지털경제, 데이터경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5G,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과 서비스 발전이 가속화되고 이것이 경제 전체에 더 빠르게 더 전면적으로 더 깊숙하게 침투하면서 Industry 4.0, 4차산업혁명 등 새로운 경제 페러다임에 대한 담론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새롭게 출현 중인 경제의 모습을 무엇이라 부르던 이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현재 기술과 경제는 상호구성적으로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디지털 경제의 진전이 가속화되어 왔다. 코로나19로 직접적인 대면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에 토대한 온라인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무인화, 원격화, 가상화 등으로 대표되는 코로나19 이후의 기술적 특징으로 일상생활은 물론 다양한 생산 및 서비스 영역에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비대면 경제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유례없이 높아지면서 디지털 기술 도입 장벽이 낮아지고 시장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디지털 전환과 신경제의 확산이 진행되어 왔지만 코로나19는 디지털 기술의 전면적인 도입에 방해가 되는 심리적 제도적 장벽을 누그러뜨리며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 각 국가와 기업들은 현재 변화 중인 경제의 특성을 파악하고 새로운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해 왔고 디지털 전환과 신경제 확산을 돌파구로 삼아 코로나19로 초래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색 중이다. 와중에 미국과 중국은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되는 5G, 반도체, 인공지능 영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의 기본적인 틀로 이해되는 플랫폼과 데이터를 장악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새로 출현하는 경제의 바탕이 되는 규범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맞서고 있다. 한국을 위시한 여타 중견국들도 디지털 경제의 출현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기술 발전과 경제변화와 관련되어 진행되는 대부분의 담론은 ‘플랫폼’ ‘데이터’ 등 진행 중인 변화의 기본적인 특징과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데이터 주권’과 같이 변화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요 쟁점에 관한 국가 간 갈등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전후로 디지털 전환 및 신경제의 전개와 이로 인한 세계정치경제의 변화를 글로벌 밸류체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특히 세계 경제 내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전 및 위상과 관련하여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어떠한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기술과 세계정치경제 변화 담론에서 개도국 발전이라는 주제는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경제의 도래가 개도국 발전에 가지는 함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과 신경제 확산이 가속화하고 이와 관련하여 국내 및 세계 경제에서 소득 및 자산 격차의 심화가 화두로 제기되고 있다. 기술혁신과 경제 변화 속에서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 앞다투어 새로운 전략과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 분위기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세계 많은 인구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전후로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로의 변화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개도국 발전에 관한 담론은 경제적 관점에서 개도국의 지속적인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지원의 도덕적 정당성을 함께 내세우며 다양한 실천적 전략을 제시해 왔으나 실행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코로나19의 확산과 디지털 경제의 진전으로 개도국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 도전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은 관심의 환기와 대안 모색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I. 논의 배경: 디지털경제, 글로벌 밸류체인, 코로나19   1. 코로나19와 디지털 경제   정보통신기술과 서비스 확산으로 변화 중인 경제를 규정하는 다양한 개념들, 디지털경제, 신경제, 인터넷경제, 웹경제, 네트워크경제, 데이터경제 등 이 제시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경제라는 개념을 선택한다. 1994년 탭스콧(Tapscott)은 그의 저서 ‘The Digital Economy: Promise and Peril in the Age of Networked Intelligence’를 통해 디지털경제라는 개념을 유행시켰다(Tapscott 1994). 그는 여기에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기술이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논의했지만 디지털경제를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았다. 이후 OECD, World Bank 등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디지털경제를 다양하게 정의해왔다. OECD는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통한 상품과 서비스 유통(the digital economy enables and executes the trade of goods and services through electronic commerce on the internet)’을 디지털경제의 핵심으로 정의하였으며[1]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디지털경제를 ‘양질의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제공하고 강화된 정보통신기술로 소비자를 이롭게 하는 것(digital economy as one that can provide a high quality of ICT infrastructure and harness the power of ICTs to benefit consumers)’으로 제시하였다.[2] 초기에는 각종 정보통신기술 및 서비스 제공과 전자상거래에 국한하여 좁은 의미로 디지털경제를 이해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금융, 교통, 제조업, 교육, 보건, 미디어 등 다양한 부문에서 디지털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포괄하여 넓은 의미로 인식하는 추세로 변화되어 왔다(Bukht and Heeks 2017).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 변화는 디지털 경제의 가속화란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만큼(Oxford Economics 2020),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화, 온라인화에 토대한 디지털 경제 활동이 급속도로 증가해 왔다. 항공기, 영화, 놀이공원, 숙박, 대형마트 등의 매출이 급속히 감소한 반면 온라인쇼핑과 배달업체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항공기 영화 놀이공원 등의 매출이 60-90% 정도 감소한 반면, 온라인 쇼핑은 30% 증가하였다(Oxford Economics 2020).     본 연구에서는 넓은 의미의 디지털경제 개념을 염두에 두고 크게 두 부문으로 나누어 디지털경제의 밸류체인 변화를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디지털 기기가 활용되면서 변화해 가는 부문, 즉 디지털전환으로 지칭되는 부문이다. 자동차 의류 신발 등 제조, 유통업, 미디어 등 경제 전 부문이 정보통신기술의 보편적 확대와 함께 변화하고 왔다. 이 부문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특히 코로나19 이후에 변화의 추세가 어떻게 가속화되어 왔는지 이의 개도국 영향은 어떠한지 살펴본다. 둘째는 정보통신기술과 서비스로 새로 출현하는 부분이다. 즉 휴대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드론, 가상현실 등 각종 디지털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제품을 생산하거나 전자상거래 검색 SNS 등 디지털기기에 토대한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제공하는 부문이다. 이는 종종 신경제 부문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 부문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특히 코로나19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이의 개도국 영향은 어떤지 알아본다.   2. 코로나19와 글로벌 밸류체인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생산 요소들의 효과적인 이용에 기반하여 제품을 유연하고 신속하게 생산하는 능력이 기업 경쟁력의 주요한 요소로 부상한다. 기존에 기업 내에서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이루어지던 제품 생산이나 서비스 제공 과정이 기능별로 각자 최적의 조건을 찾아 세계 각 지역으로 흩어지고 아웃소싱(outsourcing)이 일반화한다. 대량생산의 이점인 규모의 경제(economics of scale) 보다는 각 지역에 흩어진 생산 요소들을 필요에 따라 적합하게 결합하여 다양한 제품들을 낮은 비용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만들어 내는 범위의 경제(economics of scope)가 중요하게 부상한다. 이러한 생산과정은 초국적 생산네트워크(Transnational Producton Network),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 글로벌 상품사슬 (Global Commodity Chain) 등으로 규정되어 왔다.   글로벌 밸류체인은 그 구조가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위계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기획, 연구개발, 브랜드마켓팅 등 위계질서의 높은 곳에 위치한 부문은 지식노동의 성격을 띠며 더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반면 반복적인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생산과정은 위계 질서상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가가치 창출도 낮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 소비재산업 중심 구조에서 철강, 반도체 등 자본 및 기술집약적 산업이나 서비스 산업으로 이행해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관점에서 보면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소비재 산업에서 선진국 기업이 퇴출되었거나 제한적인 역할을 한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까지 선진국은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 소비재 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기획 연구개발 브랜드마켓팅을 주도하고 있고 개도국은 노동집약적인 제조 과정을 맡는 노동분업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관점에서 개도국 경제 성장은 산업내 밸류체인에 진입한 후 부가가치가 더 높은 부문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고 WTO, UNCTAD, OECD 등 주요 국제기구들도 이런 관점을 받아들여 개도국 발전에 글로벌 밸류체인 분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은 산업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진화되어 왔다. [그림 1]은 지리적 집중도와 노동분업구조 측면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의 유형을 구분하고 있다(UNCTAD 2020). 예컨대 농업 광업 등은 지리적으로는 분산되어 있지만 노동분업이 세분화되지 않은 반면, 자동차 의류 산업 등은 노동분업구조가 매우 잘게 쪼개져 세분화되어 있고 지리적으로는 비교적 집중되어 있다. 금융서비스 산업 등은 지리적으로도 집중되어 있고 노동분업구조도 집중화되어 있다. 개도국 성장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된 유형은 자동차 의류 산업 등 노동분업구조가 기능적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제조업의 밸류체인이었다. 실제로 한국 대만 멕시코 등 개도국에서 출발하여 중견국으로 발돋움한 국가들은 글로벌 밸류체인 내에서 선진국이 아웃소싱한 노동집약적 부문에 진입하여 제품 제조를 담당하면서 기술을 습득하고 점차로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림 1] 글로벌 밸류체인 유형(지리적/노동분업구조 집중도) 출처: UNCTAD(2020b)   디지털 기기 활용 확대로 진행되는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모를 개별 산업이나 기업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은 쉽지않다. 여기서는 기존의 연구들을 토대로 글로벌 밸류체인 안에서 진행되는 변화 양상 가운데 특히 개도국 발전에 시사점을 가지는 부문을 짚어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본 연구는 디지털경제를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철강 자동차 의류 금융 등 기존 산업이 디지털화하는 디지털전환 부문에서는 특히 생산과정에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자동화 스마트팩토리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 디지털 경제에서 새로 출현한 신경제 부문에서는 온라인상거래 부문의 글로벌 밸류체인 진화 양상을 고찰하면서 이것이 개도국 발전 등에 가지는 시사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인용 의료보호장비, 생필품, 전략 상품 등의 안정적 공급이 주요 이슈가 되면서 밸류체인보다는 공급망의 관점에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되던 변화가 코로나 이후 각국이 공급망 안전성을 우선시하면서 밸류체인이 어떻게 재조정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개도국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해 본다.   III. 코로나19와 디지털전환 및 신경제 확대   1.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밸류체인   1) 코로나19 확산과 글로벌 밸류체인   코로나19 확산 직후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는 의류 산업 등의 사례를 통해 3가지 측면으로 논의될 수 있다(Castañeda-Navarrete et al. 2021). 첫째, 코로나 감염 확산으로 인해 중국은 물론 방글라데시 멕시코 터키 등에 위치한 주요 의류 제작업체들의 공급이 대폭 감소하였다. 둘째,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의류생산업체들은 초기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으나 중국에서 중간재가 제공되지 못하면서 감염 전파 효과로 공급이 감소하였다. 셋째, 유럽과 미국 등에서 락다운이 실행되면서 수요가 대폭 감소하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의류 단기 수요 및 공급감소는 [그림 2]에서 보여지듯 2021년 2월에서 8월까지 지속되다가 이후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장기적으로 볼 때 코로나19 이전부터 진행된 자동화와 리쇼어링 추세가 의류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주목되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충격에도 불구하고 의류산업에서 생산 자동화는 자본 부족과 기술 수준의 문제로 빠르게 진전되지 않고 있으며 생산업체가 선진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보다 거대 시장과 가까운 인접 지역, 예컨대 멕시코와 터키 등으로의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진행되고 있다(Seric et al. 2020).   [그림 2] 코로나19 확산 전후 의류 공급 추이 출처: (Castañeda-Navarrete et al. 2021)   코로나19 확산 이후 많은 국가들이 개인 보호장비, 주요 생필품, 전략 상품의 공급망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을 내놓았고 이로 인해 밸류체인의 축소와 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2020-21 기간 동안 WTO는 교역의 13-39% 감소를 예측하였고 UNCTAD는 해외직접투자가 30-40% 줄 것으로 전망하였다(Pinna and Lodi 2021).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급망 안전성은 주요 부품이나 상품의 물량을 확보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현재까지 약 1년 반 정도 지나온 상황에서 초기 6개월 동안의 혼란을 제외하고 예상했던 것처럼 코로나 19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는 급격히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리쇼어링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공급망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롭게 3D 프린팅이나 자동화 기계 도입을 하는 경우보다 기존에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온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자동화를 가속화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Seric et al. 2020). 이는 자동화가 일부 부품이나 생산과정에만 한정되어 진행되기 어렵고 자동화기기 도입을 위해 숙련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가 단기적으로 공급과 수요 급감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쳤지만 점차 공급과 수요가 회복되어 왔고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자동화나 리쇼어링 추세도 코로나19로 급격히 변화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진전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디지털 전환을 자동화에 초점을 맞추어 코로나19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양상과 함께 이것이 개도국 발전에 시사하는 바를 알아본다.   2) 자동화, 리쇼어링, 글로벌 밸류체인: 개도국 발전의 관점   4차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생산과정이 기계화 자동화 되면서 노동 집약적 제조 부문이 자본 및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변모되어 왔다(배영자 2017). 독일,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다양한 정보통신기술들을 활용하는 생산과정 자동화를 중심으로 소위 ‘인더스트리4.0’전략을 추진하여 왔으며, 스마트팩토리의 구체적 내용과 함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이제까지 논의는 국내적 차원의 노동시장 변화와 실업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현재와 같이 상품의 생산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통합된 구조로 이루어지고 개발도상국들이 저임금에 기반하여 생산과정에서 노동집약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구조에서 선진국의 인더스트리 4.0 전략과 스마트팩토리의 부상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들의 경제발전 전략과 산업 정책의 대대적인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4차 산업혁명이 개도국에 가져오는 변화와 대응에 관한 문제제기와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제조업 생산방식의 변화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인더스트리4.0 개념의 등장으로 더욱 주목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기계와 사람, 인터넷 서비스가 상호 연결되어 유연한 생산체계를 구현하여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한 생산 패러다임으로 이해된다. 인더스트리 4.0에는 사물인터넷, 기업용 소프트웨어, 위치정보, 보안, 클라우드, 빅데이터, 3D, 증강현실 이르기까지 정보통신 관련 기술들이 대거 동원되고 있다. 이제까지의 공장자동화는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생산시설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했으나 인더스트리 4.0에서는 생산설비 스스로 작업 방식을 결정하는 스마트팩토리에 주목한다. 스마트팩토리는 스마트메모리, 센서, 증강현실 등의 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생산시설로서, 사물인터넷과 융합 생산공정, 스마트메모리 등의 무선통신을 이용하여, 설비 자재 상품이 각각 정보를 주고받아 스스로 생산, 공정 통제 및 수리, 작업장 안전 등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스마트팩토리는 기계설비 뿐만 아니라 소재 및 반제품에 센서와 메모리를 부착하여, 주문에 따라 설비에 가공한다. 즉 명령을 주면 생산 공정의 병목현상을 자가 진단해 유연하게 최적 생산 경로를 결정하여 작동한다. 아울러 메모리를 기계가 읽고 소비자 선호도, 공정상태, 가공 현황 등을 스스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최적 경로를 계산해서, 해당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하고 적용한다. 이에 따라 고객 맞춤형 유연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며, 물류와 유통 현황이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제품의 사용 및 재활용 과정 추적조사 등이 가능해진다.   현재 스마트팩토리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기업 수준의 스마트팩토리 현황에 대한 자료는 제한적이다. 스마트팩토리 현황에 대한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스마트팩토리의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산업용 로봇에 대한 통계가 스마트팩토리의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산업용 로봇 활용이 스마트팩토리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공정과정에 로봇을 도입하는 것이 전체 스마트팩토리 운영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2010년 후반 이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와 부문별로 다용도 산업로봇 현황을 보면, 중국 일본 미국 독일 한국 등이 산업로봇 활용에 가장 적극적이며 특히 [그림 3]에 드러난 바와 같이 자동차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로봇의 활용으로 특히 섬유 제조과정이 기계로 대처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World Robotics 2020).   [그림 3] 부문별 산업용 로봇 현황 출처: World Robotics (2020)   현재 진행 중인 인더스트리4.0으로 선진국 본국에서 스마트팩토리가 부상하고 여기에서 생산을 직접 담당하게 되면서 기존에 개도국으로 아웃소싱 되었던 부문들이 선진국으로 되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선진국-개도국 수출입구조와 글로벌 밸류체인 구조로 볼 때 선진국의 스마트팩토리 확산은 특히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는 상품의 선진국 수출비중이 높은 중위권 개도국들, 예컨대 멕시코 터키 튀니지 등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World Bank 2020). 최빈국의 경우 글로벌 밸류체인 내부로 편입조차 되지 못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글로벌 밸류체인 내에서 저임금에 기반하여 기술이나 자본 집약도가 비교적 낮은 표준화된 상품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중위권 개도국이 스마트팩토리 확산의 부정적 효과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아울러 개도국 안에서도 자동화로 인해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집단이 고졸 노동력으로 드러나고 있어 흥미롭다. 예컨대 [그림 4]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멕시코에서 2011년과 2016년 사이 자동화가 빠르게 진전된 자동차산업 등에서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진 정규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의 고용 변화를 비교해 보았을 때 정규직 고졸 노동자들의 고용이 가장 많이 감소하였다.   [그림 4] 멕시코 자동화와 고용 변화 출처: UNCTAD (2020b)   그러나 다른 한편 스마트팩토리의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예컨대 스포츠 용품업체 아디다스는 독일과 미국에 각각 로봇과 3D프린터를 활용한 스피드팩토리를 설치하였는데 연간 생산량은 1백만 켤레로 이는 아디다스가 생산하는 4억3백만켤레 가운데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마저도 현재 운영이 중단되었다. 스마트팩토리에서 생산되는 신발은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생산하는 표준화된 상품과는 차별되는 제품이어서 리쇼어링이나 개도국 고용 대체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연구는 선진국에서 로봇이나 3D를 활용한 스마트팩토리가 확산되면서 생산력과 수입이 증대되고 이는 최종 제품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켜 이로 인해 부품이나 중간재 등의 수요가 증대되고 이를 제공하는 개도국과의 교역이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UNCTAD 2020b). 스마트팩토리가 남북 교역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대시키며 이는 개도국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자동화의 증가가 개도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증가시켜 온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현상은 특히 자동차, 플라스틱제품, 전자 산업 등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2010년 이후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엔진 제조업체에서 자동화가 확산된다. 엔진 부품 가운데 몇몇은 글로벌 밸류체인내 멕시코 치화화의 공장에서 공급되고 있어 이 지역 노동자들 역시 자동화로 인한 실업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엔진 제조업체가 로봇을 도입하며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중간재나 부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여 멕시코로부터 더 많은 부품을 수입하게 되자 오히려 멕시코 부품 업체의 고용이 증가한다. 아울러 미국 자동차의 전선 부품의 70%가 멕시코에서 조달되는데 해당 부품은 자동화되기 어려워 계속 멕시코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수입이 증대하였다(UNCTAD 2020).   더 나아가 자동화로 인해 기계화될 수 없는 부문을 담당하는 노동력에 대한 세분화된 요청이 증가하고 이는 노동 부문에 대한 높은 가치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즉 선진국이나 개도국 모두에서 기계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는 인간의 노동이 부상하게 되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업무와 제품 생산이 진행되면서 전반적으로 노동력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게 되며, 이는 회복효과(reinstatement effect)로 지칭된다(Acemoglu 2019). 실제로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우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자동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스마트팩토리가 확산되었으나 동기간동안 고용이 26만명 증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현상도 회복효과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자동차 전자 산업 등은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기획 연구개발 부품생산 제조 판매 등 각 기능이 최적의 지역과 국가를 찾아가 생산이 이루어지는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진화해 왔다. 글로벌 밸류체인 안에서 선진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연구개발, 첨단 핵심부품 생산, 브랜드마켓팅을 담당하고 개도국은 저임금에 기반한 부품이나 중간재 생산, 제조 등을 수행하는 노동분업구조를 형성하였다. 개도국은 글로벌 밸류체인에 편입하여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기술을 습득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경제 성장을 꾀해왔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산과정에서 자동화와 스마트팩토리가 확대되면서 이것이 글로벌 밸류체인을 어떻게 진화시킬 것이며 개도국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제기된 논의에서는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의 확대로,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나 상품들을 선진국에 제공하고 있는 개도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위험이 언급되는데 이는 특히 멕시코 터키 튀니지 등 중위권 개도국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 내에서도 저임금 비정규직 보다는 특히 고졸자들이 수행하던 중간수준 노동 부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용이 감소되고 있다. 다른 한편 현재까지 선진국 스마트팩토리의 확산은 대대적인 리쇼어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스마트팩토리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개도국에서 대량생산하는 제품의 성격이 차이가 있어 스마트팩토리의 확산이 개도국 경제변화에 가져오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더 나아가 스마트팩토리의 확대가 선진국의 생산성과 수입증대로 이어져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면서 선진국에 부품이나 중간재를 제공하는 개도국의 수출이 증대되면서 오히려 개도국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동화의 증대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노동의 특성과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측도 존재한다.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이 개도국 경제 성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가 될 것임은 명백하다. 특히 개도국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디지털 인프라나 기술혁신 수준이 낮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역량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노동 이외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빈약한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이 개도국과 선진국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밸류체인 내에서 개도국이 담당해온 비교적 단순반복적인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기 용이하므로 개도국의 위상이 강화되기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선진국의 디지털 전환이 개도국에게도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단 이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산업정책과 노동력 훈련 등의 지원정책이 이루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개도국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국제기구 등이 개도국의 디지털 전환과 이에 대한 대응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디지털 신경제와 글로벌 밸류체인   1) 코로나19 확산과 온라인상거래   IT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통신서비스 미디어 부문은 이전부터 존재해 오던 산업이나 서비스가 확장된 부문임에 비해, 검색, SNS, 온라인상거래(e-commerce) 등을 포괄하는 인터넷 서비스 부문은 새로 등장하면서 주목되어왔고, 소위 디지털 신경제를 대표하는 부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아래 [그림 5]에서 보여지듯, 엔터테인먼트나 교육 부문은 차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비대면이 줄고 대면 서비스 부문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온라인 상거래는 코로나19 회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기서는 온라인상거래에 초점을 맞추어 코로나19 확산 전후 온라인상거래 부문의 성장과 현황과 이것이 개도국 발전에 함의하는 바를 간략히 살펴본다.   [그림 5] 부문별 코로나 이후 전망 비교 출처: Mckinsey(2021)   현재 세계 인구 78억 가운데 인터넷 접속 가능한 인구는 48억으로 추산되고 있다.[3] 아시아가 25억, 유럽이 7억, 아프리카 5.5억, 라틴아메리카 4.5억, 북미 3.3억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세계 각 지역에서 인터넷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아프리카와 중국 인터넷 이용자 수의 급증이 주목된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온라인상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고 글로벌 수준에서 혹은 국가 수준에서 다양한 온라인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미주, 서유럽, 중동 일부 지역에서 우세한 아마존, 중국과 일부 동남아시아 중심의 알리바바, 라틴아메리카의 머카토리브르, 이외에도 러시아, 베트남, 핀란드, 파키스탄, 남아공 등과 같이 아마존이나 알리바바가 아닌 자국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이 주도하고 있는 곳도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체 유통의 22%를 차지하고 있다(Keenan 2021). 국가별로는 아르헨티나가 79%, 싱가포르가 71%로 가장 빠르게 증가하였고 지역별로는 라틴아메리카가 37%로 증가율이 가장 높다. 현재 중국이 세계 온라인상거래 시장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 전체 유통에서 온라인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52%로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추월하였다.   UN 자료에 따르면 세계 온라인상거래에서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3% 가량으로 매우 적은 규모이다(Keenan 2021). 향후 개도국 자체 온라인상거래 시장의 확대가 진행되어야 하고, 이와 함께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기존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에 개도국들의 참여가 증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 시장은 거래비용과 물류비용을 감소시키고 특히 개도국 영세업자들도 글로벌 온라인상거래에 참여할 수 있어 개도국 경제발전에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코로나19 확산 전후 온라인상거래 확대 현황과 관련된 이슈를 살펴보고 이것이 개도국 발전에 가지는 함의를 생각해 본다.   2) 온라인상거래, 플랫폼, 개도국 발전   온라인상거래는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플랫폼은 네트워크 효과에 토대하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이나 규모가 큰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의 기업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플랫폼 기업들이 평판에 따라 공급자를 검증하는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하고 편리한 결제방식을 구현하면서 빠르게 정보비용 및 거래비용을 낮추고 신뢰를 쌓아 점점 더 많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게 되었고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은 더욱더 집중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거리가 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온라인상거래로 인해 65%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다. 즉 개별 국가에 토대를 둔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상거래는 더 다양한 상품, 더 품질 좋은 상품, 더 편리하고 빠른 결제와 배송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되며 집중되어왔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에서 보여지듯 이들은 온라인상거래를 넘어 다양한 부문으로 확장해가는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온라인 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한 아마존은 아마존닷컴이라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가파르게 성장했고 ‘아마존 이펙트(Amazon Effect)’로 불리우며 물류, 게임, 영화 음악 감상 스트리밍 서비스, 다양한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는 비단 아마존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고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부분의 주요 IT기업들도 유사한 행보를 밟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2025년경 디지털 플랫폼이 창출 할 매출액이 60조 달러로, 전체 글로벌 기업 매출액의 3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경제포럼은 향후 10년간 디지털 경제에서 창출될 새로운 가치의 60~70%가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네트워크와 플랫폼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이효정외 2019).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알리바바, 텐센트, 샙, 냅스터 등 세계 75개 주요 플랫폼 기업들은 주로 북미와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개도국 기업이 온라인 B2B나 B2C 마켓을 통해 공급자 및 생산자로 글로벌 온라인상거래 밸류체인 참여 기회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2014말부터 2016년 중반까지 중국에서 27개성의 333현에서 16500 마을이 인터넷 상거래에 진입하였다(World Bank 2020). 실제로 개도국의 영세생산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경우가 증대되고 있으며 또한 알리바바, 아마존, 이베이, 타오바오, 머카도리브르 등에 주요 온라인상거래 사이트를 통해 개도국 생산자와 선진국 소비자가 거래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개도국 생산자가 진입하기는 쉽지만, 그 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일단 진입을 위한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이후에도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거래방식, 배달방식, 결제시스템, 환불 교환 방식 등을 숙지해야 하는데 개도국 생산자의 경우 이 과정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다. 대기업들에게 일상적인 온라인상거래 방식이 개도국 기업들에게는 암묵적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개도국에서 온라인상거래로 인한 이득은 물류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이점을 가진 자본을 가진 업체에 집중되고 있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과 관련된다. 이들은 상거래에 관한 데이터들을 축적하고 상품에 관한 가격이나 소비자들의 구매성향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여 왔다.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은 이들의 시장 지위를 남용한 약탈적 가격 제시 및 높은 수수료 요구 등 반경쟁적 정책으로 이어지고 개도국의 영세한 생산업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최근 국가들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데이터 주권’ 논의가 부상하면서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데이터 축적과 활용에 대한 국가 간 갈등이 이슈화되고 있지만, 이는 일부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 국한되고 있다.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의 부상을 글로벌 밸류체인과 개도국 경제 성장 관점에서 볼 때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들의 기업구조와 고용효과이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글로벌 밸류체인은 앞의 [그림 1]에 소개된 분류 가운데 금융서비스 부문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지리적으로 집중되어 있고 기능별 노동분업구조도 통합된 특징을 보인다. 즉 자동차 의류 등과 같이 밸류체인의 일부문 가운데 노동집약적인 부문들을 개도국에서 수행하고 선진국 기업은 기획, 연구개발, 브랜드마케팅을 맡는 구조는 개도국 고용 유발효과가 크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은 선진국에 집중적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기업 규모에 비해 고용 인력이 상대적으로 적고 특히 밸류체인 가운데 개도국이 담당하는 부분이 미미하다. 예컨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 사는 1500억 달러 규모 자산, 순이익 4700만 달러에 미국 고용인력 약 20만명 이외에도 유럽 아시아 등 수십여 곳에 달하는 해외 생산 및 판매법인에서 약 20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구글 알파벳의 경우 1600억 자산규모, 순이익 340억 달러에 총 고용인력 10만 정도이고 해외지사는 라틴아메리카에 8곳, 유럽에 41곳, 아시아 28곳, 아프리카 중동에 8개 등에 존재하지만 해외지사 총 고용인력은 수 만을 넘지 않는다. 즉 알파벳은 자산규모는 포드사 보다 약간 많지만, 순이익은 수백 배가 많고 총고용수는 훨씬 적으며, 특히 개도국 고용유발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2020년 현재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5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규모, 순이익 150억 달러에 22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반면 아마존은 28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순이익 115억 달러에 80만을 고용하고 있다.   디지털경제로 새로 출현하고 있는 온라인서비스 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통적인 밸류체인과 특히 다른 점은 플랫폼을 통해 각각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고 동종업계 기업들간의 직접적인 연계나 상호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업계의 경우 각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상호의존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부품 중간재 노동력 등을 공유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특정 영역에서 상호 배타적인 생태계를 구성하여 부문 간 직접적인 연계나 상호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온라인상거래를 비롯하여 검색, SNS 등에서 플랫폼 기업의 지배적 지위가 강화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와 관련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19년 6월부터 미국 정부가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 이른바 'IT(정보기술) 빅4'에 대한 반(反)독점법위반 여부, 즉 시장을 선도하는 IT 기업들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는지와 이들이 공정 경쟁을 저해해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는지에 대해 조사해 왔다. EU는 이미 유럽시장에서 구글에 대해 독점 위반 혐의로 총 94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독점 조사 와중에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구글과 애플은 코로나19 감염자 동선 추적에 쓰이는 애플리케이션 공동 개발에 뛰어들고, 페이스북 역시 산재한 보건기관들의 코로나19 현황 파악을 도울 목적으로 개발한 ‘의심 환자 실시간 분포 지도’를 공개하였으며, 아마존은 17만5,000명을 추가 고용하겠다는 계획 밝히는 등 대정부관계 개선을 통해 독점지위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왔다. 2020년 10월 초에 미 하원 법사위원회 반독점 분과위원회는 4개 기업 독점금지법 위반 행위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4] 분과위는 이들 기업에 대한 규제강화 방안을 두고 의견이 갈려 먼저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하여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고서는 4대 기업이 작은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지만, 현재 석유 철도 재벌과 유사한 독점기업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인수합병, 높은 수수료, 중소 사업자와의 불공정한 계약 체결 등을 일삼아 왔다고 밝힌다. 페이스북은 온라인 광고와 소셜네트워킹 부문에서 유력한 경쟁자였던 인스타그램을 2012년 인수하여 시장 지배력을 더욱 확대했다. 아마존은 제품 공급자와 3자 판매자(아마존을 플랫폼 삼아 물건을 직접 파는 자영업자들)에 대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광범위한 독점 행위에 관여해 왔다. 애플의 경우 자사 운영체제와 앱스토어에 대한 통제권을 통해 경쟁상대를 차별하고 배제해 왔으며 민감한 정보를 독점하고, 막대한 수수료를 부과하였다. 구글은 온라인 검색 및 광고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며 3자로부터 제공된 콘텐츠를 이용자에게 제공했고, 유료광고와 유기적인 검색결과 사이의 차이를 모호하게 운영하며 독점력을 더욱 공고히 해왔다. 보고서는 인수합병시 경쟁이 저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며, 시장지배력 우위에 근거해 교섭력을 남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제를 제안하는 한편, 비슷한 분야의 사업, 예컨대 구글에서 유튜브를,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분리하는 것과 같은 분할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이들의 독점에 대한 규제 강화가 결정된 상황에서 보고서가 권고한 대로 이들 기업에 대한 규제와 분리가 실제로 진행될지 여부는 지켜보아야 한다. 이들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 한편으로는 산업적 특성이나 네트워크효과 진입장벽 등의 이유로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들의 독점적 지위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이들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지속적으로 주목된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지배적 위상과 관련된 국제적 이슈는 세금, 데이터 주권, 디지털 제국주의 등이다. 디지털 제국주의 논의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의 서구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개별 국가의 산업발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획일적인 정보의 공유로 개도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이 잠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21세기 디지털 제국주의는 플랫폼과 빅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제국적 지배로서 더 많이 더 깊숙이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 기업들은 디지털경제가 가져오는 새로운 기회들을 개발도상국들이 활용하기 위해서 개도국에서 인터넷 접근이 용이해야 함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지원이 기업의 영향력 및 시장확대를 위해 활용되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21세기에 인터넷접근은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하기 위해 특히 아프리카에 무료 인터넷을 보급하는 프리베이직스(Free Basics)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인 6억 3천 5백만명 모바일 이용자들이 데이터 요금 없이 페이스북 사이트를 포함한 보건 뉴스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세계 최대 모바일 데이터 성장 지역 중 하나인 아프리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고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이 사실상 자국 시장확대를 위한 것이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등장은 개도국의 지속적인 성장에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 온라인 서비스기업의 지리적으로 집중되고 통합된 노동분업구조, 고용효과의 저조, 플랫폼의 독점화 등은 개도국 기업이 디지털 신경제 부문에 참여하고 그를 통해 성장할 기회들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고 개도국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온라인상거래의 확대는 개도국에게 기회의 창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온라인상거래를 위한 로지스틱스나 프로토콜 등에 적응하는 개도국 기업만이 이러한 기회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고 여전히 개도국의 많은 인구는 인터넷접근, 온라인상거래 방식 밖에 놓여져 있어 이들간의 격차가 증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UNCTAD 등 개도국 발전을 도모하는 국제기구들은 한결같이 인터넷 인프라 확충, 직업훈련 강화 및 지식노동자 양성 등을 권고하며 개도국 지원의 확대를 주장한다.   IV. 나가며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는 물론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온라인화에 대한 구조적 저항을 코로나19가 쉽게 무너뜨리면서 4차 산업혁명이 성큼 현실화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디지털경제를 크게 디지털전환과 신경제 부문으로 나누고 각 부문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개도국 경제 발전과 관련되는 이슈에 대해 논의하였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 직후 감염과 락다운으로 공급과 수요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글로벌 밸류체인에 혼란이 있었지만 2020년 8월 이후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의 단기적 영향보다는 코로나19를 전후로 진행되어온 자동화와 스마트팩토리 확대, 온라인상거래 시장의 확대 등의 중장기적 영향을 살펴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개인 보호장비, 주요 생필품, 전략 상품의 공급망 안전성 확보를 위한 자동화와 리쇼어링 추세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자본이나 기술적 이유로 자동화가 급속히 진전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화 추세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글로벌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쳐왔다.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부문에서 진행중인 디지털 전환, 특히 자동화와 스마트팩도리의 확산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이 개도국 경제 성장에 미치는 긍정 및 부정적 영향들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개도국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디지털 인프라나 기술혁신 수준이 낮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역량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노동 이외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빈약한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이 개도국과 선진국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밸류체인 내에서 개도국이 담당해온 비교적 단순반복적인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기 용이하므로 개도국의 위상이 강화되기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선진국의 디지털 전환이 개도국에게도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하는데, 실제로 개도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글로벌 밸류체인에 더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선진국과의 교역 증대로 인한 이득을 누리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왔으나 세계 온라인상거래에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3% 가량으로 매우 적은 규모이다. 코로나19이후 개도국 자체 온라인상거래 시장의 확대가 진행되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기존 주요 온라인상거래 플랫폼에 개도국들의 참여가 증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개도국 기업이 온라인 마켓을 통해 공급자 및 생산자로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 기회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개도국의 영세생산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알리바바, 아마존, 이베이, 타오바오, 머카도리브르 등에 주요 온라인상거래 사이트를 통해 개도국 생산자와 선진국 소비자가 거래하는 경우가 증가해 왔다. 그러나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거래방식, 배달방식, 결제시스템, 환불 교환 방식 등이 개도국 기업 참여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아울러 온라인상거래 플랫폼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과 이들의 시장 지위를 남용한 약탈적 가격 제시 및 높은 수수료 요구 등 반경쟁적 정책으로 개도국의 영세한 생산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즉 신경제 부문도 마찬가지로 개도국 발전을 위한 기회의 창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온라인상거래 기업의 플랫폼화, 데이터 독점, 기치사슬의 변화와 고용효과 축소 등으로 개도국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디지털전환과 신경제 부상을 글로벌 밸류체인의 관점에서 볼 때 개도국 발전에 함의하는 내용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고 이는 코로나19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도국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국제적 통합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기 어렵고 국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국내적 통합을 통해 발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Rodrick 2018). 다른 한편 선진국들과의 남북협력보다 개도국끼리의 남남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UNCTAD 2020a).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과 신경제의 배분적 효과는 선진국대 개도국의 구도로 단순하게 나뉘기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개도국 경제발전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책을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재 디지털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선진국 그룹안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선두에 나서면서 이들과 유럽국가 및 다른 중견국들과의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개도국 가운데에서도 디지털경제 도입에서 상대적으로 앞서는 지역과 더 주변으로 밀려나는 국가군이 나뉠 수 있다. 선진국 개도국을 망라한 모든 국가 내부에서 신경제와 디지털 전환의 배분적 효과가 양분되면서 내부적 격차 역시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디지털경제의 배분적 효과가 매우 중층적이며 복합적일 것을 전망된다. 각 국가 내부에서 디지털경제의 진전으로 전반적인 생산성과 소득은 증대하지만 이를 주도하는 부문과 도태되는 부문과의 격차가 두드러면서 선진국에서는 기본 소득 등 복지제도들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내부적 격차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제도와 자원이 미비하고 이런 상황에서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도태되는 집단의 문제는 한 국가의 국경을 넘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개도국 경제발전에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신경제 확산과 디지털 전환을 개도국 발전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인터넷접근의 확충 이외에도 디지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지원 및 작동 훈련, 글로벌 밸류체인 진입과 온라인상거래 물류와 거래방식 이해, 소비자의 취향에 대한 정보 접근 등 다양한 교육과 온라인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지원정책 등이 요구되고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홍보하며 필요한 기술을 지원하고, 온라인상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확산하고 개도국내 물류나 거래방식의 개선을 정부, 기업, 국제기구의 협력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신경제 부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와 도전들을 개도국들이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기회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참고문헌 배영자 2017. ”4차산업혁명과 생산과정의 변환” 김상배 등 저. 『4차산업혁명과 한국의 미래전략』. 사회평론. 삼일회계법인. 2020. 코로나19가 가져올 구조적 변화: 디지털 경제 가속화 이효정 외. 2019.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 전략.” Samjong INSIGHT Vol. 67. 삼정KPMG 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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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Investment Report 2020.     [1] http://www.oecd.org/daf/competition/The-Digital-Economy-2012.pdf (2021년 8월 검색) [2] http://graphics.eiu.com/upload/eiu_digital_economy_rankings_2010_final_web.pdf (2021년 8월 검색) [3] https://www.internetworldstats.com/stats.htm (2021년 8월 검색) [4] 보고서 전문은 https://judiciary.house.gov/uploadedfiles/competition_in_digital_markets.pdf (2021년 8월 검색)     ■ 저자: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해외투자의 정치경제,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인터넷과 국제정치, 과학기술외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국제정치패권과 기술혁신: 미국 반도체 기술 사례》(2020), 《중국 인터넷 기업의 부상과 인터넷 주권》(2018), 《미중 패권 경쟁과 과학기술혁신》(2016), 《과학기술과 공공외교》(2013)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배영자 2022-02-10조회 : 15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