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주의스토리텔링 사업(South Korea Democracy Storytelling Project)은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발전 사례와 교훈을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그 외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과 공유하기 위한 취지로 2020년 미국 민주주의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NDI)의 후원 하에 착수하였다. 2020년도 첫 사업기간 동안 한국의 국회, 청년, 시민사회 등 한국 민주주의의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하여 이슈브리핑 발간, 멀티미디어 인터뷰, 라운드테이블 개최 등 한국의 민주주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멀티미디어
[EAI 라운드테이블] 민주주의 가치 구현과 부패 방지를 위한 간담회

엘라이나 문지유 피피디(Alina Mungiu-Pippidi) 베를린 헤르티 스쿨(Hertie School in Berlin) 교수는 반부패와 관련한 현 세계 정세와 유럽 연합의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들에 관해 설명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청렴도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거버넌스 개혁은 기부가 아닌 국내 주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아울러, 지역적인 맥락과 조건들을 이해하고, 반부패 활동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활동가들을 찾아 개혁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에카테리나 리소바(Ekaterina Lysova) 국제민간기업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Private Enterprise: CIPE) 유라시아 지역 담당국장은 사기업과 시장 주도 개혁을 통해 사회 전체의 민주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CIPE의 사명에 대해 설명합니다.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거버넌스 개혁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반부패 활동가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글로벌 반부패 움직임이 부정부패 행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굿 거버넌스를 위한 긍정적인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1월 30일 민주주의 가치를 구현하고, 부패를 청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엘라이나 문지유 피피디(Alina Mungiu-Pippidi) 베를린 헤르티 스쿨(Berlin Hertie School) 교수와 에카테리나 리소바(Ekaterina Lysova) 국제 민간기업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Private Enterprise: CIPE) 유라시아 지역 담당국장은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지원 사업 전략과 부패 방지를 위한 노력에 대해 발제를 진행하였습니다. 현장에 참석한 조정훈, 하태경 국회의원과 김거성 상지대 교수, 김남규 고려대 교수,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김종민 KBS 이사, 유종성 가천대 교수,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이숙종 EAI 시니어펠로우,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 조원빈 성균관대 교수, 최재혁 참여연대 선임간사, 한성민 한국외대 교수 등 반부패 정책전문가들은 지능화된 형태의 권력형 비리를 방지하고, 청렴도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과 공적 개발 원조에 있어 수원국에 효과적으로 반부패 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여 그 결과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였습니다. ■          

2023-02-13조회 : 7910
멀티미디어
[EAI 라운드테이블] 민주주의 확립과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간담회

지난 11월 29일 EAI는 여러 국가에서 진행되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해외 기관들의 지원 사례를 청취하고, 민주주의 제도 확립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민주주의 확립과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국내외 참석자들은 선거의 완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한국의 사례에 비추어 정책적 함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본 행사에는 미 국제민주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NDI)와 민주주의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 ANFREL)의 해외 참석자들과 여야 국회의원 및 학계, 정부 기관, 시민단체 등 한국 측 선거 행정전문가들이 참석하였습니다.     • 일시: 2022.11.29(화) 오전 10:30 – 오후 12시 (한국 시간)   • 패널: 맨프리 싱 아난드(Manpreet Singh Anand) 국제민주연구소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 이사, 브라이언 조셉 (Brian Joseph) 민주주의진흥재단 프로그램 담당 부회장, 샨다니 와타왈라(Chandanie Watawala)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 소장   • 토론자: 김세연 전 국회의원, 김승열 세계선거기관협의회 고문, 김영배 21대 국회의원, 민선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이웅용 인천시 연수구 선관위 사무국장, 조영호 서강대 교수, 조정훈 21대 국회의원,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허은아 21대 국회의원   • 사회자: 강우창 고려대 교수,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시니어펠로우   I. 후원 기관의 전략 및 구조: 민주주의진흥재단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   (1) 민주주의진흥재단의 창립 역사와 후원 구조   NED는 1984년 설립된 비영리 기구이며 독립적인 이사진들로 운영되고 있으나 미국 의회승인을 거쳐 국고를 지원받고 있다. NED 설립에는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전파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되었다. NED는 미국 민주주의 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NDI), 국제공화주의연구소(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IRI), 국제노동연대 미국 연구소(American Center for International Labor Solidarity; AFL-CLO)에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NED는 정권과 관련 없이 민주화라는 단일 목표의 사명을 가지고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관련 논의에 있어 의회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조성된 기금의 절반은 기술적 프로그램 작업 착수에 쓰이며 나머지는 민주주의 발전 기구, 여성, 아동, 소수자 인권 보호 단체 및 독립 언론 등 비정부 기구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된다.   (2) 민주주의와 거버넌스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 기관의 역할   NED 자금은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운영된다. 이 예산에는 경제 개발, 공중 보건, 식량 안보, 민주주의 및 거버넌스 발전을 위한 기금이 포함되어 있다. NED의 모든 사업 수행 및 이행은 의회의 감독을 받으며, 구체적으로는 의회 의원들과 위원회, 특히 외교 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미 의회는 해외 민주주의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틀을 설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책 실행을 위해 여러 미국 정부 기관에 자금을 할당하고 행정부가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감독한다.   미국 국무부는 지역 관료, 대사관, 현지 대사들과 마찬가지로 외교적 개입의 중심에 있다. 당국이 민주화, 거버넌스, 노동권에 초점을 맞춤에 따라 미 국무부는 이러한 목표를 실제로 수행하는 단체에 자금을 할당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는 미국 정부 내의 독립적인 기관으로, 단순히 지원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국제 및 지역 조직이 프로그램에 착수할 수 있도록 직접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II. 기술적 재정적 지원: 미국 민주주의 연구소 (National Democracy Institute: NDI)   (1) NDI의 주요 업무와 지원 유형   NDI는 보조금 지급을 위해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한다. 이러한 보조금은 정당 발전, 입법 강화, 부패 청산, 소외계층 지원, 정보 청렴성 증진, 선거 감시 등 다양한 곳에 쓰인다. NDI는 전 세계에 서울을 포함 50개 이상의 사무국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 실행기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사업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지역 기관들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략적 의사소통, 업무 및 구성원 지원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2)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한국에 주어진 과제   민주주의 증진은 국가안보전략, 개발 의제 및 국가 공약의 일부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치는 단독으로 추진되기보다 국가의 우선 순위 목표를 위한 기본 원칙으로 기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한국은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수행함으로 민주적 가치에 대한 이해도를 제고해야 한다. 한국은 역동적인 민주주의 발전 사례와 교훈을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게 공유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개발원조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계획될 향후 프로젝트들은 협력적으로 진행되거나 보다 광범위한 민주적 목표 해결을 위해 확장될 수도 있다.   Ⅲ. 아시아 지역에서의 공정선거 지원: 아시아 자유선거 네트워크(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 ANFREL)   (1) 아시아 자유선거네트워크의 주요 활동   민주주의의 후퇴는 아시아 민주주의와 선거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 지역 내 권위주의 국가들은 억압적인 법을 부과하고, 시민 사회, 언론을 통제하며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곳들도 있다. ANFREL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25년 넘게 선거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ANFREL은 지역 전역의 여러 국가에서 권위주의를 반대하는 연대 운동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시민부정선거 감시단 활동을 촉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ANFRL은 선거 이해 관계자들과의 협력 강화, 아시아의 민주적 침체에 대한 캠페인을 펼치며 민주적 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2) ANFREL에 대한 타 민주주의 협력 기관의 지원 (NED, NDI)   NED는 전 세계 민주주의 기관들의 성장을 위해 수년간 주력해 왔으며, ANFREL에 핵심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ANFREL과 긴밀히 협력하는 또 다른 미국 기관은 NDI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3) 아시아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에 대한 제언   한국 정부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이자 선진국 중 하나로, 스스로가 민주 국가로서의 모범적인 예시이다. 그렇기에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미국 사례를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지원은 아시아 지역 및 지역 시민 사회 단체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Ⅵ. 질의응답   (1)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김세연 전 의원은 한국이 산업화, 민주화를 한 세대 안에 이루었음에도 민주주의 보급 확산에 있어서는 여전히 국내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며 한국의 국회부터 이런 사명을 인식하여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다른 국가, 기관들과 함께 협력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과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은 특정 국익과 충돌할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제도적 방안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영배 의원은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같은 가치들을 이웃 나라, 이웃 시민들과 나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분단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나누는 데 있어 제동을 걸 수 있지만, 앞으로는 자유와 인권을 확장하고, 지속가능성, 기후, 인권, 자유와 같은 미래 가치에 있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경험을 나누고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경우 자치단체나 지방의회, 시민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한 만큼 정부가 그 단체들을 지원하고,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할 수 있도록 촉진할 방안에 대해 제언한다. 아울러, 한국의 국회가 나서서 동아시아 혹은 이웃에 있는 정치권과 민주적인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관과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국회가 독립적으로 정치적인 교류와 협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회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맨프리 싱 아난드(Manpreet Singh Anand) 국제민주연구소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맨프리 싱 아난드 국제민주연구소아태지역 담당국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정부 대 정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 조직, 독립 미디어, 입법부, 소외된 그릅 등을 통한 사회 전체의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의회가 주도하는 하원 민주주의 파트너십을 예로 들며 한국 국회가 이처럼 아시아 주변의 다른 입법 기관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데 앞장설 것을 제안한다. 엄청난 분쟁 이후에도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주의 국가를 향한 열망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며 민주주의 제도는 위협받고 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2) 민주주의로의 과정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 조정훈 의원은 세계은행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나이지리아와 같은 나라들이 민주적인 변화를 겪는 것을 도왔고,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불완전하고, 전 세계 민주주의 시스템 중 그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민주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조정훈 의원은 민주주의는 목적지가 아닌 과정이라며, 민주주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서유럽, 아시아 국가들의 국회의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제안한다.   브라이언 조셉(Brian Joseph) 민주주의 진흥재단 프로그램 담당 부회장 브라이언 조셉 프로그램 담당 부회장은 미국의 두 정당이 국내 문제에 협력하는 것은 어려움이 수반될 수밖에 없지만, 민주주의 지원에 대한 지지는 초당적 협력 분야 중 하나라며 미국에 형성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강조한다. 또한, 한국이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닐지라도 세계 여느 나라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모든 나라들이 진정한 민주화 이륙을 위한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샨다니 와타왈라(Chandanie Watawala)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 소장 민주 정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소되거나 다른 나라로 추방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샨다니 와타왈라 소장은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이 다른 권위주의 정부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민주주의 가치 확산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맨프리 싱 아난드(Manpreet Singh Anand) 국제민주연구소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맨프리 싱 아난드 아태지역 담당 국장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이 전 세계, 특히 아시아 지역 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앞장설 능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3)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언   김승열 세계선거기관협의회 고문 김승열 고문은 현재 그가 속해있는 세계선거기관협의회의 경우 연간 5억~10억 원에 불과한 자금으로 119개 회원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현행 한국 법상 비정부 국제기구가 지원받기 힘든 현실에 대해 설명한다. 선거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선거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해당 협회들에 더 많은 기여를 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웅용 인천시 연수구 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이웅용 사무국장은 한국에 뛰어난 정보력에 비해 부족한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기관들이 많다고 말한다. 예산을 배정받기 위한 자세한 설명 자료가 굉장히 부족하다며 예산을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북 제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선거 지원 사업은 적어도 10년 동안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선영 참여연대 간사 민선영 간사는 개발도상국에 경제 제도가 도입되는 것과 유사하게 민주주의 성취 수준이 조금 낮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 가치가 국가에 강제로 주입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참여연대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기업의 권력 남용을 면밀히 감시하는 등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사회경제적 개혁에 국민의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해 앞장서 왔다며 시민들이 선거, 후보자 또는 정당에 대해 직접 평가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선거 공약 이행을 평가하는 방안에 대해 제시한다.   허석재 국회입법조사관 허석재 입법조사관은 국회가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 보편적 가치 증진을 위해 더 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여러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기관들임에도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초당적 협력을 하고 있다며 한국 역시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는 협력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2022-12-12조회 : 8993
논평이슈브리핑
민주주의 후퇴와 회복력 (Democratic Resilience): 한국의 경험

[편집자 주]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위기 징후(signs of crisis)’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본 이슈 브리핑에서 강원택 서울대학교 교수는 ‘위기 징후’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과제를 던져준다는 데 주목합니다. 저자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 분석과 위기 징후 극복, 민주주의 복원력 강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명합니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깨어 있는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며 시민교육에서 관용과 공존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I. 서론   30여 년 전 민주화는 세계적인 대세였다. 1970년대 중반 남부 유럽에서 시작된 민주화는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거쳐 아시아 지역의 많은 국가로 이어졌다. 이후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동유럽 국가에서의 민주화로 이어졌고, 넬슨 만델라로 상징되는 남아공의 민주화 등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새뮤얼 헌팅턴은 이를 두고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라고 불렀고,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체제 경쟁이 마무리된 ‘역사의 종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후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헝가리, 터키, 태국, 필리핀, 러시아 등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트럼프 현상,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언제라도 도전받을 수 있으며 그 회복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II. 한국의 민주화 과정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비교적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민주적 공고화를 이뤄왔다. 민주화 이전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은 권위주의 체제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비민주적 체제였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부터 완전히 이탈한 것은 아니었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실시되었고 야당의 존재는 허용되었다. 선거의 공정성은 의심받았고 야당이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도 사실상 없었지만, 선거는 상당히 경쟁성을 갖고 있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선거를 통해 권력에 대한 민심의 불만은 표출되었고 그것은 집권 세력에게 심각한 정치적 경고가 되었다.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고 해도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했고, 원천적으로 정통성에 대한 취약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야당 지도자들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보장될 수 있다면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 한국의 민주화에서 핵심적 요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1987년 한국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의제였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후 민주적 공고화 과정은 선거의 공정성 확립에 놓였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 민주주의의 확립과 그로 인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주요 정치 지도자들 간의 경쟁을 구심적(centripetal)인 형태로 이끌었고 민주화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또한 선거 승리를 위해 주요 정치 지도자들은 경쟁적으로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들 중에는 ‘타협’으로 이뤄진 민주화 전환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강경파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의 제도권 정치 진입은 새로운 엘리트의 충원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정치적 분극화(polarization)와 분절화(fragmentation)를 막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민주화와 함께 등장한 지역주의 정당 구도와 단순 다수제 중심의 선거제도 역시 유효 정당의 수를 3-4개로 제한하여 안정적인 온건 다당제로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실제로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이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선거를 통한 권력의 위임이 유일한 정치적 경쟁의 규칙(the only game in town)으로 확립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적 공고화에는 민주화 초기의 조속한 군의 탈정치화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주화 이후 두 번째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취임 직후 신임 대통령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지지, 그리고 민주적 정통성에 기초하여 이전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색 짙은 군 장성들을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들로 그 자리를 채웠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조직된 ‘신군부’로 불리던 군부 내 파벌의 지배 속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던 다수의 군부 인사들은 이러한 군 개혁을 환영했고 민주화로 형성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갖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원만한 민주적 공고화 과정에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경제성장이 꾸준히 이뤄졌고 특히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까지 대다수 국민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고, 사회적 계층 이동에 대한 믿음도 강했다.   또한, 1987년 민주화가 시민의 참여로 이뤄낸 것처럼 민주적 공고화 과정에서도 시민의 역할이 중요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정치적 반응성이 크게 낮아질 때는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제도권 정치를 압박했다. 2002년, 2004년, 2008년, 2016년 거대한 규모의 촛불집회가 그 예가 된다. 촛불집회에는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또 시간적으로 지속성을 갖는 경우가 많았지만, 폭력이 수반된 폭동과 같은 극단적 형태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한국의 민주적 공고화는 이런 요인들이 결합되어 비교 정치적으로 안정적이고 원만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III.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나?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라고 할 만한 현상이 목도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했거나 권위주의 체제에 가깝게 변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민주주의의 질(quality)’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려할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우선 ‘87년 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이 드러났고, 201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드루킹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건 모두 선거와 관련된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를 갖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더욱이 2020년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서는 사회 일각에서 선거 개표 부정을 주장하는 등 선거 공정성과 관련된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선거의 공정성과 관련된 의구심이나 개입의 문제가 잇달아 발생하는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해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선거과정의 진실성 시비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하여 감사원, 검찰 등 ‘심판 기관’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 제기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일이다. 검찰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고 있고, 공정성과 독립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할 사법부가 종종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할 만한 일이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사건이나 법령 제정도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을 한 것이나, 문재인 정부 하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법, 대북전단 금지법과 같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된 것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언론중재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정파적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다원주의, 관용, 배려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와 관련하여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그 사건이 잘 보여주듯이, 우리 사회는 최근 이념적, 정파적으로 두 개의 집단으로 분열되어 있다. 정치적 갈등이나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정파적 양극화에 중첩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 직후 지역주의에 의해 분열되었던 우리 사회는 이제는 그 위에 이념, 세대, 계층의 균열까지 더 해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균열이 여러 정당에 의해 분산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주요 정파가 중첩적으로 독점함으로써 양극적 대립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목소리보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각 진영에서 보다 큰 힘을 얻을 수 있고 그만큼 사회적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심지어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한 양극적 갈등은 ‘선과 악’의 대결로 각 진영의 극단적 지지자들에게 여겨지기도 한다. 나의 주장은 ‘선’이고 남의 주장은 ‘악’이 된다면, 이런 상황에서 타협과 화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인식 속에는 선이 악을 압도하는 것이 정의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할 수 없고 차이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게 된다.   특히 이런 양극화 현상은 인터넷과 사회적 관계망(SNS)에서의 논의에서 더욱 심각해서,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이라고 해도 같은 생각을 갖는 이들 (like-minded people) 간의 논의에 국한되고 이는 진영 간 편향된 입장을 강화해 가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이 다양한 의견과 입장을 듣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가는 기능을 하기보다는, 오로지 같은 생각을 갖는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편향된 나의 생각을 확인하고 그것을 오히려 재강화(reinforce)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이념적 양극화를 해소해야 할 제도권 정치에서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는 적대적 정치(adversary politics)를 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제기된 이슈가 국회나 정당 등의 제도권 정치를 통해 정파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시민사회에서의 이념적, 정파적 양극화를 고조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민주화 이후 30여 년의 공고화 과정을 거쳐 왔지만, 대통령과 중앙정부로의 권력 집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청와대 정부’라고 불리는 것처럼 대통령 측근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집중의 통치 형태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은 각 부서나 기관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으며, 통치의 효율성, 정책 집행의 지속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지방자치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는 여전히 중앙정부에 비해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미약한 지위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민주주의의 이행과 공고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민주주의의 붕괴’ 혹은 ‘근본적인 후퇴’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상황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의 훼손이라기보다 권력 실행, 담당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는 시민의 참여와 제도의 작동 때문에 그 스스로 복원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IV. 민주주의 복원력 강화를 위한 과제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주목할 특성은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없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위기 상황은 몇 차례 발생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모두 정치제도를 통해 해소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최초의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였지만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사실상의 탄핵을 둘러싼 국민투표의 성격을 가졌고 여기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획득하면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었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최종 마무리되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농단과 부패 사건은 촛불집회를 통한 시민의 요구와 이에 대한 국회의 반응,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수용 과정을 통해 해소되었다. 심각한 위기들이 국민의 참여와 심판, 그리고 헌정체제를 통해 모두 해소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 징후’나 ‘민주주의 질의 하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상당한 회복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 현상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공정한 선거와 이를 통한 정치적 책임성의 확립, 정권교체의 일반화 역시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관련해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된다. 한국의 경험 속에서 볼 때,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정권교체의 가능성과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 징후’는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시민사회와 국가를 이어주는 정당 정치의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거대 양당의 카르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당 정치의 경쟁성 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 시장에서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이 가능해야 하고 이를 통해 정당 정치 생태계의 변화와 함께 더욱더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정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기존 정당들이 기득권을 대표하거나 특정한 이해관계나 입장만을 대표한다는 불만이 고조되면 정치제도는 불안정해진다. 포퓰리즘이나 극단주의 정치도 이런 상황에서 힘을 받는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정당 정치를 통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을 통해 새로운 요구나 주장이 제도권 정치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단순 다수제 방식의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역주의와 결합한 단순 다수제 방식 위주의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두 거대 정당의 기득권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제도적 보호 속에서 거대 양당은 양극적 대립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려고 하고 그 결과로 사회적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따라서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같은 ‘꼼수’ 적 타협이 아니라, 비례성의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는 형태로 제도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계층, 성, 지위, 학력, 직업, 출신 등의 기준에서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대표성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권력을 감시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선관위, 감사원과 같은 행정 기구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사법부를 비롯한 각 기관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은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의 지위와 대통령으로의 권한 집중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개헌 과정을 통해 대통령은 행정 수반의 지위로 되돌리고, 대법원에서의 법관추천 회의의 부활처럼 각 제도적 기관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확립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제왕적’이라고까지 불리는 대통령 중심 체제의 해체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의 행정부서와 서울에 집중된 행정적, 재정적 권한을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하는 지방 분권의 실현 또한 중요하다. 민주화 당시 우리 사회의 핵심적 과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제한된 목표에 놓여 있었다. 그 목표는 이제 대체로 달성되었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새로운 국가 통치 시스템 구축을 위한 헌법 개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역시 깨어 있는 시민의 역할이다. 권력을 견제하고 정치제도의 작동을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복원하게 만드는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습득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시민교육 역시 민주주의의 복원력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표성과 포용성 확대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정당 엘리트 선발의 구성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층, 성, 지위, 학력, 직업, 출신 등의 기준에서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관용과 공존의 중요성이 시민교육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다. 동질적이고 일원적인 것이 아니라 불일치, 다양성이 원래의 사회 상태이며 합의는 그러한 다양한 이들 간 타협과 양보를 통해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것이 교육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이 ‘서로 다름에 대한 합의(agree to disagree)’라고 하는 다원주의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그동안 강조되어 온 것은 자유보다는 민주주의 측면이었다. 민주주의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언제나 우리 정치에서 중요한 가치로 유지됐다. 억압적인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적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개인의 자유, 다름에 대한 인정, 관용과 배려, 다양성의 존중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제도권 정치만으로는 조화와 화해의 사회를 이뤄내기 어렵다. 시민이 직접 그러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이 바로 그 가치를 지켜내려는 시민의 의식이다. ■     ■ 저자: 강원택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정치, 의회, 선거, 정당 등이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2019), 『사회과학 글쓰기』(2019), 『한국 정치론』(2019),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2018, 공저), 『대한민국 민주화 30 년의 평가』(2017, 공저), 『대통령제, 내각제와 이원정부제』(2016)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강원택 2021-11-02조회 : 10151
논평이슈브리핑
한국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과 품질

[편집자 주]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 (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 연구결과에 의하면 민주화 이후 한국 선거의 공정성과 자유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도적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였으며, 국회나 정부보다 비교적 높은 국민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강우창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기본적으로 높은 국가 역량(state capacity)을 가지고 있고, 관료제의 역량(bureaucratic capacity) 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수준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량 분석을 바탕으로 신민주주의 국가들이 한국 민주주의 경험을 활용할 때 고려해야 할 전략을 제시합니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한국 선거의 공정성과 자유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그림 1은 1948-2020년 사이에 한국의 선거 품질(푸른색, ‘Election free and fair’)과 한국의 선거민주주의 지수(빨간색, ‘Electoral Democracy Index’)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1948년 제헌 선거 이후 약 40여 년간 선거품질과 민주주의 지수 모두 큰 변화가 없었으나, 1987년 직선제 개헌을 계기로 선거의 공정성과 자유도가 크게 상승했으며, 선거민주주의 지수 역시, 과거에 비해서는 크게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한국의 선거품질 변화 1948-2020   선거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은 크게 구조, 제도, 행위자의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구조적인 요인에는 경제발전, 정치 사회적 균열, 지정학적 위치 등이 있다. 제도적인 요인으로는 권력의 분립을 뒷받침하는 헌법적, 법률적 기반과 선과과정을 관리 감독하고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법부와 관리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위자 차원에서는 정부와 야당의 정치 엘리트, 시민사회 및 미디어 등의 역량과 전략적 선택이 선거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지지한 정당이나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유권자가 느끼는 선거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불평등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 갈등이 존재하긴 했으나, 사회 구성원 간의 폭력적인 대립과 갈등, 혹은 내전을 야기할 정도의 심각한 종교적, 인종적, 문화적 갈등은 부재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보수)에서 김대중 정부(진보)로, 노무현 정부(진보)에서 이명박 정부(보수)로, 박근혜 정부(보수)에서 문재인 정부(진보)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야당은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했고, 이는 관제동원을 어렵게 함에 따라 선거품질 향상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었다. 마지막으로 선거관리 역량이 성장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림 2는 한국의 선거관리능력을 보여준다. 선거의 자유도와 공정도 향상이 한국선거관리위원회의 자율성과 역량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한국선거관리위원회의 자율성과 역량 변화 1948-2020   한국은 기본적으로 높은 국가 역량(state capacity)을 가지고 있고, 관료제의 역량(bureaucratic capacity) 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수준이다. 특히 주민등록제도는 선거 때마다 투표할 수 있는 유권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등록해야 하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비교할 때, 유권자 명부 파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선거관리의 토대가 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 선관위의 역량을 선거관리위원회의 헌법적, 법률적 지위, 조직의 역량,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역량과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I. 선거관리위원회의 중립성과 독립성   선거 과정(electoral process)은 “일반적으로 선거의 전체 주기를 고려하여 선거법 제정, 선거구 획정, 선거일정 확정, 선거권자 확정, 정당 등록, 후보자 등록, 선거운동관리, 선거권자에게 선거 정보의 제공, 선거비용 내지 정치자금 관리, 투표관리, 개표 및 집계, 선거 결과의 확정, 분쟁의 해결” 등을 포함한다(음선필, 2015). 따라서 선거관리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적 선거가 이뤄지도록 선거과정을 집행하고 감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선거관리기구가 선거과정 중 어떤 부분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는 개별 국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선관위가 담당하는 역할은 선거인명부 작성과 감독, 정당 및 후보자 등록, 선거운동, 투표, 개표 및 집계를 통한 선거 결과 확정 등을 포함한다. 반면, 선거법과 선거구 획정의 문제는 국회의 권한이며, 선거 관련 쟁송은 원칙적으로 법원의 사법권에 속한다.   선거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를 재편하는 과정이다. 선거관리는 선거과정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거관리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경우,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선거관리는 행정부를 포함한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독립된 기구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해당 기구는 선거인명부 작성에서, 결과 확정에 이르는 방대한 과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행정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 헌법은 선거관리위원회 외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선거에 관한 사무는 행정부에 설치된 ‘선거위원회’가 관장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역사적 반성으로 제3차 개정헌법에서는 정부, 법원, 국회로부터 독립된 헌법 기관인 ‘중앙선거위원회’를 설치했다. 이후 1972년 헌법을 제외하고, 헌법이 개정될 때마다, 중앙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1960년 제3차 개정헌법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 방식에 관해서만 규정하고, 조직, 권한 등에 관한 사항은 법률에 위임하였다. 그러나, 이후 권한, 임기, 정치적 중립성, 신분보장, 규칙 제정권, 각급 선관위와 행정기관에 관계 등의 내용도 헌법에 포함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상징적, 선언적으로 규정한 것을 넘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의 근거를 헌법에 마련하여 실질적인 독립성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선관위의 권한을 헌법 차원에서 규정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과 운영을 법률 차원에 맡겨 둘 경우,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선거결과에 따른 정치세력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 규정된 한국 선관위의 권한과 직무는 다음과 같다.   제114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 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내부 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115조 ① 각급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인명부의 작성 등 선거사무와 국민투표사무에 관하여 관계 행정기관에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지시를 받은 당해 행정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   제116조 ① 선거운동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하에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하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②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   II. 선거관리 위원회의 조직 역량   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직원의 채용, 승진, 임용, 전보를 독자적으로 관리하여 인사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2020년 인사혁신통계연보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원은 2,867명이며, 현원은 3,085명이다. 행정부(1,078,516)나 사법부(17,751)와 비교하면 인원수가 적지만, 이는 정규직 직원만을 반영한 수치이다. 표 1은 선거 품질 프로젝트가(Electoral Integrity Project)가 2016년 수행한 ‘선거교육과 역량 훈련(Electoral Learning and Capacity Training)’ 데이터에 나타난 각국 선거관리기구 조직의 규모를 비교하여 나타낸다. 표 1에 따르면 조사대상국 중 가장 많은 정규직원을 보유한 국가는 멕시코(1만 5천여 명)이다. 그다음으로 이라크(4천여 명), 파나마(3천여 명), 한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 임시로 고용되는 인원수를 살펴보면, 한국은 100만 명 이상을 고용하는 아프가니스탄과 태국, 인도네시아(55만여 명), 케냐(30만여 명), 탄자니아(25만여 명) 다음으로 많은 인원인 20만여 명을 선거 당시 고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은 무료 자원봉사자에게는 거의 의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1> 각국 선거관리위원의 인적규모 Country Permanent staff Additional staff (hired during election time) Additional staff (from other gvt during election time) Does EMB use unpaid volunteers during elections Afghanistan 455 1155859 0 Never Argentina 80 100 35 Never Bahamas 18 10 75 Never Bhutan 171 126 126 Never Cambodia 300 7000 200 Rarely Canada 328 231 1 Never Costa Rica 900 300 0 On a regular basis Cote d'Ivoire 301 537 60000 Rarely Dominica 5 800 4 Occasionally Ghana 2000 1000   On a regular basis Guam 14 330 30 On a regular basis Guinea 25 2442 684 Occasionally Indonesia 40 547073 0 Rarely Iraq 4000 300 100 On a regular basis Kenya 868 300000 0 Never Rep. of Korea 2800 200000 0 Rarely Kyrgyzstan 164 30 7000 Rarely Malawi 280 90000 30 Never Maldives 60 4800 3900 Never Mexico 15000 65000 0 Never Mongolia 30 20000 10000 Never Mozambique 500 48000 170 Rarely New Zealand 106 18018 11 Never Palestine 100 200 0 Rarely Panama 3000 1000 200 On a regular basis Peru 150 100 50 Never Rwanda 50 75000 0 On a regular basis Samoa 45 10 1500 Never Sao Tome and Principe 32 54 Occasionally Senegal 14 18163 11972 Never Sierra Leone 200 40000 0 Never Suriname 19 700 10 Never Tanzania 143 250000 43 Never Thailand 2000 1000000 2000000 Never Zimbabwe 490 100 100000 Rarely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을 제외하면, 정규직 혹은 임시직 수에서 상위에 있는 국가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가장 많은 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멕시코의 경우, 임시직은 약 6만 5천여 명을 고용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임시직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정규직의 수는 455명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상시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행정부와 입법부 선거관리를 위한 임시직을 비교적 많이 고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 선거관리위원회의 제도적 및 조직적 역량은 선관위가 상시업무와 선거관리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한국 선관위는 2005년, 산림조합, 농협, 축협, 수협 조합장 선거 위탁관리가 법제화된 이래로 민간주식회사 주주총회, 국립대학총장선거, 새마을금고 임원선거, 그리고 공공단체를 비롯하여 아파트 조합장 선거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거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평시 선거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선거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 한국 선관위는 2014년부터 사전투표를 도입하여, 유권자들이 거주지와 지역구에 관계없이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투표 편의성을 높였다. 또한 한국 선관위는 전자개표를 도입함으로써 개표와 공표를 공개적이고 신속한 방식으로 수행하여 선거 사후 발생할 분쟁의 가능성을 줄여 왔다. 가령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 및 개표는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선거 결과는 10시간 이내에 공표되고 있다.   다음으로 표 2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대한 선관위 구성원들의 자체 인식을 보여준다. 한국 선관위는 독립성 측면에서, 아프가니스탄, 코스타리카와 더불어 100점을 기록했으나, 전문성의 측면에서는 부탄, 말라위, 멕시코, 페루에 이어 80점을 기록했다. 다른 선관위들과 비교할 때, 선관위 스스로의 자체 역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선거 품질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와 네덜란드의 경우, 독립성과 전문성이 비교적 낮게 나타난 반면, 독립성과 전문성 수치가 높은 멕시코나 부탄의 경우, 선거 품질에 대한 평가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뉴질랜드와 캐나다의 선거관리 기구 직원들이 스스로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평가함에 있어 멕시코나 부탄의 직원들에 비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최재동·조진만 2020).   <표2> 각국 선거관리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평가 Country INDEPENDENT PROFESSIONAL Afghanistan 100 60 Argentina 20 60 Bahamas 0 60 Bhutan 80 100 Cambodia 40 0 Canada 20 40 Costa Rica 100 80 Cote d'Ivoire 20 80 Dominica 80 40 Ghana 60 60 Guam 20 20 Guinea 20 40 Indonesia 60 60 Iraq 60 60 Kenya 60 80 Rep. of Korea 100 80 Kyrgyzstan 20 60 Malawi 80 100 Maldives 80 40 Mexico 80 100 Mongolia 20 80 Mozambique 40 60 New Zealand 40 80 Palestine 20 60 Panama 80 60 Peru 80 100 Rwanda 20 40 Samoa 40 60 Sao Tome and Principe 40 20 Senegal 80 40 Sierra Leone 60 80 Suriname 0 40 Tanzania 60 80 Thailand 40 60 Zimbabwe 60 60   선거관리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평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창설 이듬해인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각 부처 연두 순시를 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순시하려고 하였으나, 사광욱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행정부의 장이 헌법상 독립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박정희 대통령의 위원회 방문을 거절했다. 또한, 1988년 동해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이회창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공명선거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의 일환으로 당시 선거에 출마했던 5명의 후보와 선거사무장 전원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이는 선관위 역사상 최초로 후보자를 고발한 사례였으며, 이후 공정한 선거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독립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선거관리위원회의 법적, 제도적인 토대뿐 아니라 선거관리기구 구성원의 적극적인 의지 또한 중요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III. 공정한 선거   정치기구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국민들이 신뢰의 대상이 되는 정치기구가 국민들이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를 반영한다. 선관위에 대한 신뢰도는 선관위의 활동에 대한 유권자들의 주관적 평가이다. 따라서, 선관위가 선거 품질의 제고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형성될 때, 선관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이러한 신뢰도는 추후 선관위가 선거과정에서 관리 감독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림 3> 한국선거관리위원회 활동의 공정성 평가 (%)   선관위에 대한 한국민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조진만·김용철·조영호(2015)에 따르면,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선관위에 대한 신뢰는 71.4%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 세계 가치 조사에서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24%, 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26%, 행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46%로 나타난 것에 비하면 선관위에 대한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3은 선거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벌인 감시, 단속 활동의 공정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나타낸다. 2007년에 치러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61%가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이 공정했다고 응답했다. 18대 대선의 경우,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약 52%가 선관위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18대 총선의 경우도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72%가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작년에 있었던 21대 총선에서는 긍정평가 응답자의 비율이 76%까지 올라갔다.   IV. 자유의 제약   공정한 선거를 만들기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의 자유, 특히 선거운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직선거법 제58조는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규정하고, 선거운동의 기간, 선거운동의 주체, 선거운동의 방법, 심사기준 등 선거운동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정하고 있다(조영승 2018). 특히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기간과 허용되지 않는 기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 허용되는 선거운동과 허용되지 않는 선거운동을 규정하는 등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는 복잡하고 세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공직선거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규제 중심의 선거관리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보궐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는 일반인 유권자가 일간지에 게재한 야권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 광고와 여성단체가 진행한 “보궐선거 왜 하죠” 캠페인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현행법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시설물과 인쇄물을 통해 특정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지지·추천·반대 입장 표명, 정당명이나 후보자 이름과 사진, 또는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게시·배부·설치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는데 지면 광고와 현수막이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2018년 20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는 17,101개의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한 바 있다. 삭제 사유를 분석한 한 시민단체는 단속 대상이 된 인터넷 게시물이 주로 여론조사 결과를 단순 인용하거나 후보자 자질 검증 등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게시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단속이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1]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위반에 관한 결정들이 “후보자 간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불법행위로 인한 선거의 공정성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2] 이는 공직선거법이 선거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직선거법이 대체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려온 헌법재판소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헌법 제116조 제1항은 선거운동에서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공직선거법 제1조는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이 독립된 헌법 기관으로서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던 만큼 자유와 공정 중 공정에 선거관리의 초점이 맞춰져 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소원이 제기될 때마다 헌법재판소는 과열된 선거운동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고, 후보자들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불균형으로 인해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방지하고, 관건, 흑색선전과 비방, 폭력 등에 의해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공직선거법에 의한 선거운동의 제한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해왔다(김일환·홍석환 2014).   그러나 민주화 이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안착되고, 선거문화 개선 및 국민의 정치의식이 충분히 향상됨에 따라 지나치게 세세한 규정을 토대로 한 규제 위주의 선거관리가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지난 4월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물·인쇄물의 게시·첩부·배부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90조와 제93조 1항 폐지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확대하고자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한 5월에는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 기간을 확대하고, 국민의 정당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구·시·군당' 설치를 허용하되 과거의 폐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자금을 더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질 경우 선거과정에 대한 유권자의 참여가 활성화되고, 정당과 후보자들이 보다 다원화된 정치적 경쟁과 책임성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V. 세계민주주의 지원   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와 한국 민주주의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이들의 전반적인 선거관리 역량을 향상시키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2014년에는 세계선거기관협의회(Association of World Election Bodies: A-WEB) 창설을 주도하고, 그 본부를 한국 송도에 설치한 바 있다. 협의회에는 2021년 현재 전 세계 108개국, 118개 선거관리기구(Election Management Bodies)가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창설을 주도한 국가로서 재정지원을 포함하여 협의회 운영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협의회는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UNDP), 민주주의와 선거지원을 위한 국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Assistance: International IDEA), 민주주의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등 선거관리분야의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들과의 국제협력을 통해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의 선거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거관리능력증진 프로그램(Election Management and Capacity Building Program)은 선거관계자들이 선거관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함양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정보통신기술에 관한 특별연수 프로그램(Specialized Training Program on ICT)은 선거관리 제도와 운영에 있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선거 관계자 방문 프로그램(Election Visitor Program)은 선거관계자들에게 다른 국가의 선거관리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각국의 선거관계자들이 서로 다른 선거제도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선거관리기법을 공유, 확산할 기회를 제공하여, 각 국가의 상황에 맞는 선거관리제도를 모색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VI. 결론   이 글에서는 한국 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 선거의 품질 향상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강한 국가역량과 관료제의 토대 위에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아 왔다. 또한, 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다른 나라의 선거관리위원회와 비교할 때, 선거관리를 위해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비교적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선관위 구성원들은 제도적 변화 속에서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는 선관위가 국회나 정부와 비교할 때, 비교적 높은 신뢰를 유지하고 활동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국내정치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한국이 민주주의 성공의 경험을 토대로 세계 민주주의 증진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다음과 같이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규제중심의 선거관리에서 벗어나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화 이행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관권, 금권에 의한 선거개입에 대한 우려로 인해 공직선거법과 그에 근거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은 선거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시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고,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 공직선거법에서 허용되는지 혹은 제한되는지의 여부를 명확하게 판별하기 어려운 다양한 방식의 선거운동이 등장했다. 그 결과 법이 정하는 방법으로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포지티브’ 방식의 선거운동 규제가 갖는 실효성은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금지되어야 할 사항들을 명시하되 법에 저촉되지 않는 활동들은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거관리로 전환하여 정당과 후보자가 자유로운 선거활동을 통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유권자는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정치자금의 수입 및 지출 명세 상시 공개 등을 통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국민의 알 권리와 참정권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선거와 민주주의의 품질은 시민문화(civic culture)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유권자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과 능력을 함양하고, 사회전반에 걸쳐 시민문화가 자리잡을 때, 선거와 민주주의의 품질 또한 향상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독일은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가장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국가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헌정 개혁과 교육 개혁을 실행하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독일의 시민문화가 미국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온 바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시민문화가 형성되고 민주주의의 질이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한국 유권자의 시민의식과 한국의 시민문화 또한 과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새롭게 직면하고 있는 가짜뉴스의 범람이나, 정치적 양극화 등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디어리터러시와 정치리터러시를 포함하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러한 경험들은 한국 민주주주의가 신생 민주주의 국가와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부족 간, 종교 간 갈등이 투표가 아닌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거와 투표의 가치, 대화와 타협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함양할 수 있는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시민의식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신진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은 선거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해 왔으나, 앞으로는 일반 국민들까지 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한국민주주의 경험과 성과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선거법, 정당법, 선거관리 등 세부분야에 대한 연구들은 비교적 활발하게 축적되어 왔지만, 선거거버넌스에 대한 종합적, 정치적, 실증적 관점의 연구는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는 물론 선거관리위원회, 연구재단 싱크탱크 등 여러 기관들의 지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통계자료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국회의원 및 입법과정과 관련된 자료는 국회에서, 선거과정 및 선거결과에 관한 자료는 선관위에서 생산하고 있으나,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개 및 소통할 수 있는 체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해외 원조 과정에 대한 자료구축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2020년 8월 데이터3법이 시행된 이래 비식별 처리 과정을 거친 행정정보를 활용하는 연구들이 보건, 의료, 금융 등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을 선거와 정치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넷째,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토대로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법률적 토대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업을 통해 국제사회의 민주적 거버넌스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은 서로 다른 주체들에 의해 개별적, 분절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 원조에 관한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세계선거관리위원회의 예산감축으로 인해 위원회의 교육프로그램 운영이 위축되었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안정적인 재원조달은 지속적인 지원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다섯째, 제3의 국제기구나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NGO 및 지원대상 국가 시민사회와의 네트워크 구축과 파트너십 확장이 필요하다. 선거관리는 각 국가의 정치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해당 국가의 법적 제도적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국 정부나 외국 정부가 지원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효과적인 지원 사업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서는 국제기구 및 NGO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원 사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현지 시민사회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시민사회의 역량 또한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지원대상국의 시민사회가 민주적 거버넌스의 다양한 문제들을 발굴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     참고문헌 김일환·홍석한. 2014. “선거운동 규제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미국헌법연구 25(1). 31-63. 음선필. 2015. “선거관리위원회의 헌법상 지위와 역할.” 홍익법학. 16(1). 219-249. 조영승. 2018. “선거운동의 자유의 보장체계에 관한 소고 – 헌법적 근거와 보호영역을 중심으로.” 공법학연구. 19(2). 155-183. 조진만·김용철·조영호. 2015. “선거품질 평가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신뢰.” 의정연구 21(1). 165-196 최재동·조진만. 2020. “선거관리위원회의 제도와 조직, 그리고 선거품질: ELECT 데이터를 활용한 경험적 분석. 의정논총. 15(2): 145-170. Dahl, Robert A. 1998. On Democracy.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 참여연대. https://www.peoplepower21.org/Politics/1451265 (검색일: 2021/9/7) [2] 선거관리위원회 https://m.nec.go.kr/site/nec/ex/bbs/View.do?cbIdx=1090&bcIdx=144141 (검색일: 2021/9/7)     ■ 저자: 강우창_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뉴욕대학교 (New York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예일대학교 동아시아 연구단 박사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치, 선거, 정치행동 등이다. 최근 논저로는 "Envy and Pride: How Economic Inequality Deepens Happiness Inequality in South Korea" (2020, 공저), "The Liberals Should Pray for Rain: Weather, Opportunity Costs of Voting and Electoral Outcomes in South Korea" (2019), "The Corruption Scandal and Voter Realignments in the 19th Presidential Election in South Korea" (2019, 공저)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강우창 2021-10-29조회 : 11109
논평이슈브리핑
한국 이행기 정의 (transitional justice) 경험의 함의

[편집자 주] 한국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겪었지만 다양한 이행기 정의 정책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습니다. 한반도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는 이슈 영역의 포괄성으로 인해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김헌준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경험을 개괄하고 이 경험이 다른 국가에 줄 수 있는 함의와 한계를 모색합니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시도된 이행기 정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니기 때문에 한국 이행기 정의의 국제적 함의를 모색할 때 한국 사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발견하고 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I. 서론   이행기 정의는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다(Teitel 2000). 20세기 한국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겪었다. 억울한 민간인 희생은 민주화 이후 수면 위로 불거졌고,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공식적으로 논의됐다. 다양한 이행기 정의 정책이 사용됐고 이를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사에 대한 대립과 반목, 이념 갈등도 불러왔다. 한국의 경험은 다른 국가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이행기 정의는 처벌, 진상규명, 명예 회복, 배상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이 원칙은 유엔에서 2004년 채택됐으나(United Nations 2004) 개별 국가에 대한 보편적 적용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한 국가의 경험을 포괄적이고 자세히 정리하는 작업은 이행기 정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하다. 미국, 영국, 독일, 체코, 한국의 민간 기구나 정부, 학계에서 이 작업이 진행됐다(Bickford 2007; CEVRO 2021; Dancy et al. 2014).   영어인 “transitional justice”는 과도기 정의, 전환기 정의 혹은 이행기 정의로 옮겨졌다(조정현 2014; 이병재 2015; 김헌준 2017). 이행(移行)이란 ‘다른 상태로 옮아가거나 변해감’을, 전환(轉換)이란 ‘다른 방향이나 다른 상태로 바꿈’, 과도(過渡)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새로운 상태로 옮아가거나 바뀌어 감’을 의미하는 유의어이다. 하지만 “transitional justice”가 민주주의로 이행과 연계된 단어이고 한국에서 “transition”을 이행으로 번역한 전통을 따라 이행기 정의로 지칭한다. 개념은 생소하나 이것이 지칭하는 현상은 한국에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는 과거청산, 책임자 처벌, 희생자 명예 회복, 진상조사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이행기 정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추념사에서 대통령은 4.3의 해결에 있어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을 강조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마땅히 위로·사과·보상을 해야”하지만 폭동 세력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4.3사건을 보는 두 관점은 다르지만 『조선일보』도 억울한 희생에 대해 국가가 “마땅히” 위로, 사과, 더 나아가 “보상”까지 해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둘의 공통분모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가 대응하는 것이 “마땅”하고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4.3 희생자에 대한 마땅한 “위로·사과·보상”을 언급한 것은 한국 사회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 사례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모델로 제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글은 한국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경험을 개괄하고 이 경험이 다른 국가에 줄 수 있는 함의와 한계를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I. 한국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근대 한국은 일제 식민지(1910-1945), 해방과 미소(美蘇) 군정기(1945-1948), 한국전쟁(1950-1953), 이승만 독재정권(1948-1960),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1960-1961), 5.16 군사 쿠데타와 박정희 독재정권(1961-1979), 박정희 암살과 서울의 봄(1979-1980), 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노태우의 권위주의 정권(1980-1988), 1987년 6월 항쟁과 제도적 민주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대량학살, 고문, 강제 실종, 의문사, 법적·초법적 살인 등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권위주의 세력이 명맥을 유지해 당분간 제대로 된 과거사 처리가 어려웠으나, 제한적이나마 문민정부부터 시작된 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 노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어려움을 겪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 중 세 번째 우선순위 과제로 선정하며 적극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인권침해는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했으므로 사건마다 가해자(일제, 독재정권, 권위주의 정권, 민주정권)도 다르고 사건 규모도 다르다. 사건의 성격(진압과정 중 침해, 전쟁 중 침해, 유력 인사 인권침해, 폭압적 정책 집행과정 중 침해 등)과 피해 규모도 제각각이다. 1,000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사건으로 3.1운동, 간도참변, 간토대지진 학살,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국민 보도연맹, 형무소 수감자 학살, 노근리 사건, 부역자 학살, 미군 폭격, 북한군과 동조자에 의한 학살, 북한 지역 내 민간인 학살 등 포함), 숙군, 국민방위군 시간, 거창 양민학살 등이 있다. 100명을 기준으로 삼아도 대구 10월 사건, 4·19혁명, 형제복지원,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이 있다.   이외에도 민간이 희생이 100명에 이르진 않으나, 중요한 사건도 많다. 제암리 학살, 일본군 성노예제, 강제동원, 대구 2.28사건,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부마항쟁, 학원 녹화사업,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사북 항쟁, 실미도사건, 김대중 납치, 장준하, 최종길 의문사와 군 의문사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적대 국가가 민간인을 공격한 1983년 소련 대한항공 007기 피격사건과 1985년 북한 공작원 대한항공 858기 폭파도 있다. 민주화 이후 대규모 민간인 희생은 줄었으나, 고문, 간첩 조작 등 인권침해는 끊이지 않았다.   유가족은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은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고 이들마저도 억압했다. 1960년 조직된 6.25패 학살 양민유족회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반인륜적인 탄압이 그 예이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과거사 처리 작업이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 시기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와 대통령 직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됐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같은 시기 경찰청과 국방부, 국가정보원이 자체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과 거사 조사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고, 여순사건 관련 위원회가 조직 중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및 김일성 가문의 세습이란 기형적 체제를 유지한 북한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학살, 살인, 고문, 강제 실종, 강제수용 및 노역 등이 발생했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대기근 이후엔 탈북 난민, 강제 송환, 탈북 여성과 아동에 대한 2차 가해도 있었다. 강제 납북자, 억류 포로 문제도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민간인 희생의 대표 사례만도 종교인 탄압, 갑산파 처형, 창평 수용소 학살,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 심화조 사건, 송림 제철소 학살, 회령 수용소 학살 등이 있다. 북한에서 이행기 정의가 등장한 것은 탈북민이 실상을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2013년 조직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이행기 정의가 언급되며, 국내외에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문제가 논의됐다(Teitel and Baek 2013; 이규창 외 2016). 이듬해에는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 등 북한을 감시하고 인권침해를 기록하며 체제 전환을 대비하려는 준비가 시민사회에서 시작됐다.   이처럼 한반도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시기적으로 백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지리적으로 한국, 북한, 일본, 만주, 공해상을 포괄한다. 가해 주체도 일제, 한국 독재·권위주의·민주주의 정권, 북한, 소련, 미국 등 다양하다. 따라서 포괄적인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모델과 그 함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III. 한국 이행기 정의의 국제적 함의   한반도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는 이슈 영역의 포괄성으로 인해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이행기 정의 모델로서 한국 사례는 다음과 같은 국제적 함의를 지닌다.   1. 이행기 정의의 긍정적 효과: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제도와 문화 정착 이행기 정의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제도와 문화를 형성하고 정착시켰다. 한국은 여느 국가보다 각종 (진실/배상/조사) 위원회, 형사 및 민사재판, 배상/보상 제도를 활용해 과거 인권침해를 해소하려 시도했다. 정부의 사과, 교과서·공식문서의 수정, 재심을 통한 희생자 명예 회복과 배상, 희생자 유해 발굴과 추모, 기념재단 설립,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 국가추념일 지정 등 노력이 있었다(김헌준 2017). 이는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했고, 국민의 인권 의식을 높였다. 각종 위원회의 권고로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나 기념 재단은 인권을 보호하고 과거 인권침해가 더는 왜곡·폄훼되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   물론 국내 이행기 정의의 효과에 대한 자체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희생자와 활동가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고 미진하기 때문이다. 제주 4.3의 경우, 배상, 트라우마 치유, 광주 5.18의 경우에는 진상조사와 보고서 발간, 한국전쟁 중 민간인 희생의 경우 기념재단과 연구소의 설립이 남은 과제이다. 이런 냉철한 평가와 성찰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행기 정의의 성취는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전파될 필요가 있다.   2. 지속되는 논란의 긍정적 영향: 이행기 정의의 상호 상승작용 한국 이행기 정의의 주체는 비록 이념, 정치 성향, 지역, 연령, 성별로 극심하게 나뉘어 보이나 결국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는 정부 성격과 무관하게 공동체의 주요 관심사였다. 과거사에 대한 공방이 유난히 거친 것도 국민의 관심을 증명한다. 과거 인권침해는 원만하게 대승적 합의를 이루거나 논란 없이 넘어간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여순사건 관련 법 논란, 위안부 및 강제 동원 관련 재판 논란이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4.3 지원 규모 축소, 위안부 졸속 합의가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의문사위, 4.3 위원회, 진화위, 식민지 관련 위원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나오거나 관련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논란이 있었다.   향후 진보가 집권하면 유사 논의가 계속될 것이고 보수 집권 때는 북한 인권, 납북자, 특수임무 수행자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 시기 이행기 정의를 추진하면서 생긴 경험은 정부 성격과 무관하게 다른 사건의 희생자에게 전파돼 기대 수준을 높이는 양상을 보였다. 제주 4.3, 진화위의 경험은 광주 5.18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소련 대한항공 피격사건이나 북한 조사 기관에도 전수됐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북한 인권 조사는 아동의 해외 입양 실태를 조사로 이어졌다. 즉, 진상규명, 배/보상, 재판, 명예 회복의 경험은 공동체 안에서 사안의 성격, 지역, 가해자, 규모와 무관하게 상호 전달돼 상승작용을 보였다.   3.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이행기 정의 한국 이행기 정의는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거사 관련 법의 개정과 재개정, 진화위 설치 15년 후의 진화기 2기 설립, 지방자치단체, 국회, 국방부, 진실위원회에서 계속되는 제주 4.3과 광주 5.18 조사, 의문사위에서 분화된 군의문사위, 친일 조사 이후 재산 조사 등 모든 과정은 이행기 정의가 ‘단번에 최종적(once-and-for-all)’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제주 4.3의 경우도 공식 조사가 종결돼 정부 보고서가 확정된 2003년 이후에도 제주4.3평화재단의 조사, 진상규명 과정에 대한 기록, 교육계 및 종교계 피해에 집중한 조사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행기 정의 과정이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공고화되는 양상이다.   물론 많은 시도가 장기간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피로감도 증가하고, 집권당의 성격에 따라 지원 규모 축소나 위원회나 사업 폐지라는 역풍도 맞는다. 이 경우 사회적 논란이 생기고, 반대 세력은 적극적으로 지난 정부의 노력을 되돌리려 법적·정치적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과 공방, 실패와 좌초, 반대와 새로운 시도의 모든 과정이 인권과 이행기 정의의 발전 과정이고,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제주 4.3, 광주 5.18,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모두 학살이란 1차 가해뿐만 아니라 독재·권위주의 정권의 유족 탄압, 군경과 정보기관에 의한 진상규명 방해 공작 등 2차 가해까지 기념하고 전수하고 있다.   IV. 한국 이행기 정의 경험의 한계   한국을 이행기 정의의 모델로 논의하는 것에는 한계도 있다. 이는 모두 한국 사례에 특수성에 기인한다.   1. 분단 체제와 외국의 역할 한국의 특수성이자 가장 큰 한계는 분단 체제이다. 분단은 두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북한의 인권침해는 계속 진행 중이고 아직 제대로 된 이행기 정의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인권기록센터, 전환기정의워킹그룹, 통일연구원이 조사하고 대비하고 있으나 실제 논의는 북한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변화가 있고 난 뒤에나 가능하다. 둘째, 분단 체제는 제주 4.3, 여순 사건, 광주 5.18에 대한 이념 공격과 분열을 일으키며 한국에서의 온전한 진상규명도 방해한다.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기념은 분단 체제가 해소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는 견해도 있다.   다른 한계는 인권침해가 일본, 미국, 소련 등 외부 세력에 의해 발생했거나 묵인하에 이뤄진 경우이다.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논의와 정책은 쉽게 현재의 외교 갈등의 사안이 된다. 최근 위안부나 강제 징용 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의 강경 대응이 초래한 외교 문제는 잘 알려져 있다. 제주 4.3도 미(美)군정기에 시작됐으므로 미국 책임론과 사과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미국이 대응할지는 미지수이다. 광주 5.18도 미국 기밀문서 중 일부가 공개된 이후 미국의 신군부 묵인 등을 이유로 책임론이 제기됐다. 물론 독일과 나미비아, 프랑스와 알제리 논란에서 보듯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 과거 인권침해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 식민지배, 미소 군정, 전쟁의 국제적 지원이라는 삼중 구조로 둘러싸인 쉽게 전파될 수 없는 우리의 특수성이다.   2. 요원한 화해 이행기 정의의 궁극적 목적은 이 조치의 정당성과 필요성, 효과와 기대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 사회 통합과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논란이 많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논란만 있고 화해에 근접하지 못하면 다른 국가가 굳이 이 길을 가야 할 명분이 없다. 물론 한국에서 광주 5.18이나 제주 4.3을 둘러싸고 최근 의미 있는 화해 시도가 있었다. 최근 야당이 보인 광주에 대한 사과나 묘역 참배, 노태우 대통령 아들의 참배, 군경 가해자 5.18 위원회 증언과 이들의 개별 사죄와 화해 등은 불완전하나마 중요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에서도 피해자인 유족회와 가해자인 경우회의 화해와 합동 위령, 국방부 차관과 경찰청장의 사과, 여야의 합동 참배 등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화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행기 정의의 지원 규모와 대상 등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있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극명히 다른 입장, 여순사건이나 광주 5.18 관련 법에 대한 공격을 보면 과연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 묻을 수밖에 없다. 한국 사례의 국제적 함의를 논할 때 국내적 합의를 이룬 부분과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 그리고 영구적으로 합의가 힘든 부분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남아공과 다른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행기 정의 제도의 실행과 실질적 화해 사이에 좁히기 힘든 거리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한국에서 화해가 얼마나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에 국제적 함의 도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V. 결론   한국, 더 넓게는 한반도에서 시도된 이행기 정의는 보편성과 함께 특수성을 지닌다. 인권침해 자체가 여느 정치공동체에나 있고, 인류가 공통으로 경험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두 차례 세계대전, 냉전의 경험은 이를 악화시켰다. 제주 4.3 사건만 해도 그리스 내전, 대만 2.28 사건, 인도네시아 1965년 학살 등과 유사성이 있다. 인권침해가 보편적인 만큼 이를 해소하려는 이행기 정의 노력도 보편성을 보인다. 최근 미국의 인종 문제(털사 인종학살), 캐나다/호주의 원주민 문제, 독일과 나미비아 화해 시도, 독일의 지속되는 나치 청산 노력과 국제적 화해 시도(최근 메르켈의 아우슈비츠 방문) 등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 이행기 정의의 명백한 특수성도 있다. 최근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내 사법부의 결정이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 민감한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한 예이다. 남북 분단 체제도 특수한 요소이다. 모든 국가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이념 대립, 지속된 갈등으로 과거 인권침해 문제는 민감한 문제이나 유독 한국의 경우 이례적으로 정쟁의 불쏘시개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 있던 현충원 파묘 논란, 민주화운동 유공자 예우법 제정 논란, 여순사건 특별법 통과와 반대, 역사왜곡처벌법을 둘러싼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 이행기 정의의 국제적 함의를 모색할 때 한국 사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발견하고 이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보편 이미지에 매몰돼 우리가 특수라고 생각하는 것의 보편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한국은 남아공, 대만, 아르헨티나 등 다른 나라의 이행기 정의 경험뿐만 아니라 국제형사법의 발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등 국제법적 흐름에도 영향을 받아 이를 자체적으로 수용해 발전시켰다. 역으로 한국의 이행기 정의 경험은 그 발전과 성취뿐만 아니라 논란과 갈등까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국제적 흐름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행기 정의 정책을 고려하는 국가들에게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언이 가능하다.   첫째는 식민청산 관련 이행기 정의에 관련된 제언이다. 한국은 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배상했다. 일본과는 청구권 협정을 했으나 최근 사법부의 독립적 판결과 시민사회의 지속적 문제 제기로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다.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에게 이는 과거 인권침해를 다루는 것이 현재 외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권 의식과 민주주의의 발전과 이행기 정의는 반드시 효율적 외교정책과 같이 가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상충된다. 다만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식민지 문제만이 아니라 여성 인권이라는 국제인권 규범의 발전과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국제법의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가는 큰 흐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기적인 국가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 외교적 해법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는 한국전쟁 시기 및 권위주의 시기 인권침해 관련된 이행기 정의의 경우다. 한국은 해방 전후, 한국전쟁기, 독재와 권위주의 시기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중앙과 지방, 민간과 정부 등 다양한 진실위원회의 중복 설치를 통해 인권침해를 밝히려고 노력해왔다. 이는 물론 국가재정 낭비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반대자들에 의해 ‘위원회 공화국’이란 오명도 얻었다. 다양한 진상조사와 위원회 운영은, 중앙의 지휘 없이 개별적 진상조사가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긴 안목에서 보면 이 모든 과정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 피해자 구제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렴된 모습이 보였다. 따라서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들은 중앙과 지방, 민간과 정부, 어떤 차원에서든 진상규명을 지속하고 그 기록을 남겨 향후 진실위원회, 재판, 배상과 보상의 근거로 남길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 작업은 향후 적절한 시점에 군경, 검경, 정보기관 등 주요 권력기관의 개혁에 정당성을 제공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헌준. 2017. “전환기정의 규범의 확산과 그 효과: 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26권 1호, 101-26. 이규창, 김헌준, 도경옥, 백범석. 『북한인권 책임규명 방안과 과제: 로마규정 관할 범죄에 대한 형사소추문제를 중심으로』. 서울: 통일연구원. 이병재. 2015.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인권.” 『국제정치논총』 55권 3호, 85-121. 조정현. 2014. “과도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한반도 통일.” 『서울국제법연구』 21권 1호, 25-42. United Nations. 2004. “Report of the Secretary-General on the Rule of Law and Transitional Justice in Conflict and Post-Conflict Societies.” UN Doc. S/2004/616. Teitel, Ruti G. 2000. Transitional Justic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Teitel, Ruti G. and Bum-Seok Baek. 2013. Transitional Justice in Unified Korea. New York: Palgrave Macmillan. Dancy, Geoff, Francesca Lessa, Bridget Marchesi, Leigh A. Payne, Gabriel Pereira, and Kathryn Sikkink. 2014. “The Transitional Justice Research Collaborative Dataset.” www.transitionaljusticedata.com (검색일: 2020.9.19.). Bickford, Louis. 2007. “Unofficial Truth Project.” Human Rights Quarterly 29 (4): 994-1035. CEVRO. 2021. “Memory of Nations: Democratic Transition Guide,” http://www.cevro.cz/en/241492-guide (검색일: 2021.8.27.).     ■ 저자: 김헌준_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부교수 및 선임연구원, 미국 세인트올라프대학교 (St. Olaf College) 방문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관련 연구로는 The Massacres at Mt. Halla: Sixty Years of Truth-Seeking in South Korea, Transitional Justice in the Asia Pacific, “The Prospect of Human Rights in US-China Relations: A Constructive Understanding,”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김헌준 2021-10-20조회 : 10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