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식계가 대북 전략 및 북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균형 있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 연구 및 통일전략과 동아시아전략을 복원하고자 EAI는 2018년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구축을 기획하여 웹사이트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Global North Korea (Global NK)는 아카이브 성격의 웹사이트로써, 제재(Sanctions), 관여(Engagement), 자구(Internal Transformation), 억지(Deterrence)로 구성된 4대 대북복합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주요 4개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법을 통해 분류한다. 또한, Global NK에서 제공하는 통계치를 통해 웹사이트 이용자는 주요 4개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및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본 웹사이트는 외부 기관의 북한 관련 발간 자료를 한 곳에 수집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문가 코멘타리(Commentary)를 발간함으로써 보다 분석적이며 전략적인 방식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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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김정은 시대 북한 재난 거버넌스의 특징과 대북 정책에 대한 시사점

[편집자 주] 집권 10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정권은 ‘재난’ 거버넌스를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통치를 정당화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재난 극복이라는 국제적 보건 안보 의제를 적극적으로 개진함으로써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김정은 집권을 정당화하고, 외부적으로는 정상 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내부정치적 요인, 제재국면의 돌파책이라는 실용적 측면, 국민의 안전을 고민하는 ‘정상국가’로서의 대외적 인정 욕구 등 세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소통할 지점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 또한 제시할 수 있는, 즉 국가 비상국면을 돌파할 중요한 정치적 수사로써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서론   김정은 정권은 내년으로 집권 10년 차에 접어든다. 현재 ‘포괄적 대북 제재’와 고질적인 ‘풍수해’에 더해 지난해 ‘코로나비루스의 세계적 확산’까지 3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과연 어떠한 미래를 꿈꾸는가? 이 같은 3중고에 맞서 김정은 정권은 ‘재난’ 거버넌스를 적극 활용하려는 모습이 관찰된다. 김정은 정권은 ‘재난’ 거버넌스를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통치를 정당화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2018~2019년 미국과 “핵 담판”에 나섰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김정은은 이제 재난재해와의 전투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코로나 청정지역” 설파는 중국, 베네수엘라 등 여타 권위주의적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체제의 ‘정상성’ 내지는 심지어 ‘우위성’을 증명하기 위한 통치 도구가 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북미회담의 좌초로 김정은 리더십이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대미 강경파에 의해 도전을 받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되면서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정권을 강화할 계기를 마련하였다. 즉, 재난 극복이라는 국제적 보건 안보 의제를 적극적으로 개진함으로써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김정은 집권을 정당화하고, 외부적으로는 ‘정상 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었다. 특히 김정은 시대 북한이 재난위험경감을 위해 UN의 ‘지속가능한 개발(SDGs)’과 같은 국제 개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고 제도개선과 다자기구 활용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북한의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 주목 동기   북한이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내부정치적 요인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에서 ‘재난’은 선대의 비상국가 종식과 현대의 정상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 수립에 핵심적인 정책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상체제에서 ‘안보의 욕구’가 중시되었다면, 정상체제에서는 ‘안전의 욕구’가 우선시되기 마련이다. 북한은 고질적인 풍수해와 영양결핍, 전염병 창궐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재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민심이반을 방지하고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재난 복구 및 예방책 마련을 통한 위기관리 능력 향상은 필수적이다.   둘째, 제재국면의 돌파책이라는 실용적 측면이다. 사실 재난 거버넌스는 북한이 외부로부터 합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유용한 창구이다. 미국과 유럽, UN에 의한 전방위적 제재 하에서 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외부 자원이란 식량, 보건•의료, 모성 지원과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과 UN SDGs와 연계된 프로젝트 참여가 유일하다. 특히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방역을 위해 스스로 국경을 봉쇄하여 대중 밀무역까지 차단한 상황에서 재난재해 복구와 예방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김정은 시대 재난 예방, 대비, 대응, 복구라는 재난위험경감 영역은 다자적 협력 공간에서 북한의 국제사회의 참여가 독려되는 유일한 부문으로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 역시 제공한다.   셋째, 대외적 인정 욕구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재난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적극적으로 고민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정상국가’ 이미지를 전파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2020.10.10.) 연설에서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와 “혹심한 자연피해” 그리고 “코로나비루스로 인한 비상방역”의 3중고를 겪은 북한 인민들과 군대에 대한 감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였다. 특히 연설 중에 보인 김정은 위원장의 눈물과 자성의 리더십은 全지구적 보건•안보 위기에서 나타난 권위주의의 심화 경향과 대비되며 신선한 충격으로 비추어졌다. 또한 올해 초 노동당 8차 당대회(2021.1.5.-12)에서 김정은은 대내적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표방한 ‘경제건설 총력집중’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정상국가로서 정당성과 안정성 확립에 더욱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의 차별성   이처럼 재난은 김정은이 국내외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다잡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은 이 점을 통치에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번째 징후는 북한 내부에서 나타난 재난대비 및 복구 정책의 변화에서 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매체에서는 기후변화, 자연재해 이슈에 대한 해외 뉴스들을 보도하고 재생에너지, 환경보호 등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노력에 할애하는 지면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다음과 같은 정책의 변화로 이어졌다.   김정은 위원장 취임과 동시에 북한은 ‘태풍 예경보’ 시스템을 재편하고(2012) 국가계획위원회 산하 ‘재난관리국’을 설치하여(2013)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 국가적 차원의 비상조치를 발동했고, ‘국가비상재해대책위원회’(2014 신설)의 지휘 아래 재난대응 거버넌스를 확립하였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76호에 따라, 기존에 산재해 있던 재난위험관리 관련 법제를 통합하는 ‘재해방지 및 구조•복구법’(2017년 개정)을 제정했고 이에 근거해, 2014년 11월 30일 상시적 차원의 국가 재난위험관리 기구인 국가비상재해대책위원회(SCDEM)를 만들었다. 재해예방과 복구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국가비상재해대책위원회는 재난위험관리 및 재난위험준비, 초기 복구와 재난관리를 위한 과학기술적 기초 공고화 전략을 확립하고 북한 실정에 부합하는 재난위험평가 및 재난복구기술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였다. 또한 재난 대응체계를 부문별(가령, 식량안보는 농업성, 임업성, 어업성, 국토환경보호성)과 지역별(시•군 인민위원회 산하 대응체계)로 이원화하여 재난 대응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설계하였다. 아울러 국가적 재난 거버넌스에서 지역 단위 조선적십자회가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재난 대응, 예방, 대비에 참여하는 형태를 갖추었다. 이처럼 김정은 시대 북한이 재난에 대한 단기 대응이나 구호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개혁을 통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재건과 예방을 지향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에도 부합한다.   김정은이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를 통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또다른 징후는 재난위험경감을 위해 다자주의적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데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016년 8월 29-31일 함경북도 수해지역에서 보인 김정은 정권이 보인 대응은 북한의 변화된 재난 거버넌스 및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함경북도 회령시, 연사군, 온성군, 경원군, 무산군, 경흥군 6개 지역에서 138명의 사망자, 400여명의 실종자, 6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이에 김정은 정권은 ‘북부피해복구전선’, ‘북부전역’ 등의 이름 아래, 2016년 제7차 당대회 직전 국가적, 사회적, 인민적 역량을 ‘재해복구’라는 새로운 전투에 집중시켰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이례적으로 재난위험관리의 국제 규범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정권은 이전처럼 피해와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사실을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유엔 기구 및 스위스 개발협력청의 수해 지원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였다. 나아가 UN 북한 상주조정관의 긴급호소로 이루어진 UN 북한 재난구호 프로그램은 ‘제2차 UN국가전략프레임워크’(UNSF 2017-2021)의 큰 틀에서 이루어졌다.   2010년 김정은 후계체제의 북한은 유엔 ‘북한인도주의지원팀’(UNCT)과 함께 ‘제1차 UN국가전략프레임워크(UNSF 2011~2015)’를 수립하고 ‘사회발전,’ ‘지식과 개발관리를 위한 파트너십,’ ‘영양개선,’ ‘기후변화와 환경’을 우선과제로 설정했다. 당시 UN은 2011~2012년 심각한 풍수해를 입은 북한에 지원을 확대하였으나 원조배분 및 모니터링을 위한 유엔기구의 북한 내 활동에 비협조적인 북한 당국으로 말미암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은 연이은 핵실험으로 인한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UN 등 국제기구들과의 협력을 확대하였다. 2014년 ‘재해방지 및 구조복구법’의 제•개정 이후 강화된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에 따라, ‘국가재난위험경감전략(2019-2030)’, ‘국가환경보호전략(2019-2030)’ 수립,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탄소배출감축 목표 이행을 위한 산림녹화계획(2015-2024)’ 추진 등을 통해 김정은 정권이 국제 규범에 부합하게 재난위험경감 정책을 수행하려는 의지가 관찰되었다. 2015년 가을 북한은 UN이 제시한 SDGs 이행을 위한 새로운 UNSF 초안을 마련하였고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는 5개년 국가경제발전전략에 SDGs 이행 계획을 반영하였다. 외무성 국가조정위원회(NCC)와 주요 관련부처의 의견을 수렴하여 2016년 완성된 2차 UNSF(2017-2021)을 기반으로 북한 당국과 UNCT 간 글로벌 파트너십과 조정체제가 수립됨으로써, 북한 SDGs이행을 위한 제반 활동과 UN의 인도적 지원체계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글로벌 파트너십의 틀 안에서 2016년 풍수해 당시 김정은 정권은 2차 UNSF에서 수립된 4가지 전략 목표(‘식량 및 영양안보’, ‘사회개발서비스’, ‘복원력과 지속가능성,’ ‘데이터와 개발관리’) 아래 영양 및 식량안보, 건강, 모자 보건, 물 위생과 교육, 살림집 복구건설의 6가지 영역에서 재난복구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에서 국제사회와의 다자협력 강화는 지역 차원의 실제 구호활동에서도 큰 빛을 발했다. 이미 2010년 보고서에서 지역 커뮤니티 차원의 재난대응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한 국제적십자연맹(IFRC)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태풍 ‘링링’ 구호과정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와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재난대응 및 복구과정에서 ‘커뮤니티 관여 및 책임성 제고’가 구현되었다. 또한 국제적십자연맹은 태풍 ‘링링’에 대한 구호지원 사업과 연동된 2019년 9월 23일 용강군 모니터링 과정에서 2015년의 조기 경보 훈련이 태풍 ‘링링’ 재난시 지역주민들이 재난에 대비하며 경보 메시지를 받고 행동방침을 취하는 데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처럼 재난 구호지원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상호작용과 국가적 재난 거버넌스 향상 노력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재난위험경감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을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2020년, 2021년에 봄철, 가을철 국토관리사업 차원에서 사전에 재해방지대책에 힘을 쏟는 사회적 분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재난 거버넌스 부문에서 UN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한편, 북한은 2019년에는 녹색기후기금(GCF)에 기후변화 적응, 완화에 대한 ‘준비 지원’에 대한 사업계획을 내는 등 국제사회에 자국의 기술적, 금융적 지원에 대한 권리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재난위기경감 부문에서 보이는 적극적인 행보로부터 북한이 비단 재난위험경감 뿐만 아니라 향후 다양한 영역에서 보편적 기준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국제 사회에 참여할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2016년 수해 복구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는 북한의 정치 서사에도 변화를 야기하였다. 2016년 ‘북부전역’의 재난복구 경험은 이후에도 김정은의 ‘인민대중제일주의’의 표본으로 지속적으로 소환되었다. 가령, 수해로부터 60여 일이 지난 10월 8일 『로동신문』의 정론은 재난위험관리를 김정은의 ‘인민사랑’으로 부각하며 김정은 정권을 정당화하였다. 이 같은 ‘인민’의 강조는 2019년 ‘우리 국가제일주의’ 구호 아래 ‘인민대중제일주의’가 주요 구성요소로 등장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차별점으로 부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가 원군 사업을 강조했다면, 김정은 시대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는 재난재해 복구 사업을 통해 군의 ‘원민’ 사업을 통한 군민 혼연일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더욱이 재난위험경감의 국가적 노력을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로 정당화하는 정권 차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인식 제고 노력이 나타난 것과 함께, 당ㆍ정이 직접 현장에 달려가 신속한 초기 대응 전략 및 실천을 지도, 관리하는 형태가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확산으로 가중된 자연재해 비상국면에서 더욱 가시화되었다.   2020년 수해위기에서 김정은 정권은 재해지역 현지에서 당 정무국 회의를 이어가는 등 파격적인 당, 정 연속회의 및 지역 대응체계 구축 노력을 보였다. 2016년 태풍 ‘라이언록’ 복구과정에서 당대회 직후 200일 전투에 동원된 인민군대, 돌격대를 재해지역에 급파해 인민대중 중심 사회주의 명제를 강조한 것이나, 2020년 수해 지역들의 복구재건에 최고지도자의 서한을 통해 1만 2천명의 ‘수도당원사단’을 파견하고 재해복구를 주타격방향으로 설정한 ‘80일 전투’를 토대로 2021년 1월 8차 당대회를 개최한 것은 김정은 정권에서 재난 거버넌스가 국가적 정체성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반증한다. 이 같은 국내정치적 변화는‘인민대중제일주의’가 사실상 김정은 권력승계를 정당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김정일 정권이 핵무력 완성을 위해 선군정치를 추구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김정은 정권이 2017년 연말 ‘국가핵무력 완성’을 전제로 2018년 4월 ‘경제건설총력집중’의 새로운 노선으로의 전환을 선포한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결론   지금까지 김정은 시대 북한 재난위험경감 거버넌스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전환과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내년이면 집권 10년을 맞이하는 김정은 정권은 선대와는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다름 아닌 북한 그 자신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관행적으로 주어진 자연환경을 고갈시키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수행해왔다. 가령, 땔감을 위해 나무를 베고 주요 지하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산과 땅을 파헤쳤다. 그 결과, 취약해진 지반이 폭우를 이기지 못하고 산사태를 일으켜 대규모 인명피해를 내고, 도로가 유실되어 복구가 어려워지자 고립된 수해 지역의 피해는 증가하였다. 수해 복구가 늦어질수록 오염된 상하수도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하지만 부족한 의약품과 식량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확산되었다. 이 같은 재난의 악순환은 북한에서 매년 계속되어왔으므로 전혀 새로운 바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김정은 집권기부터 재난위험경감과 관련된 북한의 대응체계, 정치적 수사가 달라졌다. 단순히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UN의 ‘지속가능한 개발’ 개념을 적극적으로 소개, 정책에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향후 대북정책 수립에 의미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재난이 국가안보 문제로 격상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에서 재난 거버넌스가 풍수해와 감염병, 제재라는 국가 비상국면을 돌파할 중요한 정치적 수사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시 상황에 준하는 재난의 발생은 ‘정상국가화’라는 김정은 정권의 통치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자원을 효과적으로 총동원할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을 제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은 선대의 ‘선군정치’를 대체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중요한 통치 원칙으로 제시하며 군수물자 중심의 중공업에서 민수용 경공업을 강조하고, 살림집과 상하수도 개선 작업을 서두르는 등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재난위험경감이라는 인류 보편적 목표 설정 아래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와 소통할 지점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우리는 김정은 정권을 자연스럽게 고립과 은둔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할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북한으로서도 국제사회에서 SDGs의 보편적 규범 하에 자국의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재난’이 최근 북한의 정치 수사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김정은 정권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어떠한 의미를 가질 것인지 국제사회의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      ■ 조은정_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지역통합을 통한 핵비확산과 평화체제 구상에 주안점을 두어 연구 중이다. 주요 논저로 “인도태평양에서 영국, 프랑스의 군사적 관여: 현황과 시사점(2021),” “일본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결정(4.13): 주요 쟁점과 한국의 대응 전략(2021)”, “Nation branding for survival in North Korea: The Arirang Festival and nuclear weapons tests(2017)”, “북한과 국제정치(2018)”, “국제안보 개념의 21세기적 변용(2017)”, “원자력 협력은 핵확산을 부추기는가?: 미국양자원자력협정의 국제 핵 통제적 성격(2016)”, “핵•미사일 체제의 ‘구조적 공백’과 북한의 핵•미사일 동맹 네트워크(2014)”, “EURATOM: Bridging ‘Rapprochement’ and ‘Radiance’ of France in the Post-war(2013)” 외 다수가 있다.   ■ 김태경_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학교에서 전후 북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형성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북한대학원대학교 남북한마음통합연구센터 연구교수로 활동하였다. 최근 논문으로는 “1950년대 북한의 ‘평화공존의 마음들’: 소련 ‘평화공존’ 노선의 수용과 북한의 군비축소담론”, “1950년대 북한의 독일 국가연합 통일방안 수용과 한반도 평화공존의 상상”, “The Making of the ‘Reader-People’ in the 1950–1960s North Korean Socialist Literature”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문의 : 02 2277 1683 (ext. 203) | jymin@eai.or.kr  

조은정, 김태경 2021-10-29조회 : 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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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김정은의 양면전략: 선남후미 전술

[편집자 주] 지난 9월 북한은 9월 한 달 새 미사일 시험발사를 4번이나 실시하며 신형 순항 미사일 및 철도기동미사일로 설정된 표적을 명중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보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북한은 핵 미사일 능력이 날로 고도화되는 가운데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위협과 군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남측에 북한 도발에 대한 위기의식과 피해의식을 버릴 것을 요구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해결의 실마리는 남측의 적대정책 철회 등 남측 당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55일 만에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은 국면전환이 될 수는 있지만 남북의 태도의 차이로 인해 향후 남북관계 회복의 길은 녹록치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최첨단 신종 군비 증강을 시사했다. 주권국가의 최우선적 권리인 국가방위력을 끊임없이 강화하겠다며 핵무기 소형화와 전술무기화, 초대형 핵탄두 생산,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 개발 도입, 고체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공업발전 전략목표 관철을 주문했을 때만 해도 용어조차 생소해서 선군 정치 체제의 협박 정도로 평가했다. 하지만 9월 들어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9월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일과 12일 양일간 사전에 설계된 타원 및 8자형 비행 궤적에 따라 신형 순항 미사일이 약 7,580초(약 126분)간 비행하여 약 1,500㎞ 계선(경계를 나타내는 선)에 설치된 표적을 명중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그간 개발해온 순항 미사일들 중에서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간 게 된다. 또한 거리상 일본 전역이 이번 순항미사일의 타격권 안이다.   그러더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6일에는 “철도기동미사일연대는 15일 새벽 중부산악지대로 기동해 800㎞ 계선의 표적지역을 타격할 데 대한 임무를 받고 훈련에 참가했다”며 “철도기동미사일연대는 철도기동미사일체계 운영규범과 행동순차에 따라 신속기동 및 전개를 끝내고 화력임무에 따라 조선 동해상 800㎞ 수역에 설정된 표적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미사일 발사의 플랫폼을 다양화하다보니 열차까지 등장한 것이다. 북한은 그간 궤도형, 차륜형 이동식 발사대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전날 평안남도 양덕 일대에서 쏜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2발은 열차에서 발사했다. 옛 소련에서 이용한 발사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분석된다. 탄도미사일은 열차뿐 아니라 선박에 탑재한 수직발사대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 북한 매체는 올해 철도기동미사일 연대를 창설했고, 앞으로 이를 여단급 부대로 확대 개편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북한의 철도기동미사일체계는 옛 소련에서 개발해 운용했던 체계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체계는 구 소련이 철도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서 동시다발적 미사일 공격 능력을 확충하겠다는 의미다. 무거운 탄도미사일을 여러 발 싣고 운반할 수 있고, 터널 엄폐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군으로서는 미사일 기지와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 이어 열차 발사까지 대비해야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늘어났다.   또한 28일에는 특이한 미사일을 선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9일 국방과학원이 28일 오전 자강도 용림군 도양리에서 화성-8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미사일을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소개했다. 극초음속은 마하 5(시속 약 612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미사일을 뜻한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오징어와 비슷한 모양의 탄두부가 달린 검은색 탄도미사일이 날아오르고 있다.   북한은 9월 한 달 새 미사일 시험발사를 4번이나 실시하며 '강온양면 전략'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사일 발사 현장에는 출현하지 않았지만 한동안 내치에 집중하면서 대외 메시지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에게 맡겼던 김 위원장은 앞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남•대미관계 구상을 밝혔다. 노동신문은 9월의 마지막 날 김 위원장이 전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이틀째 회의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당면 투쟁방향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시정연설을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우선 남북관계를 풀고 북미대화는 뒤로 미루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먼저 남북관계와 관련해선 남측에 북한 도발에 대한 위기의식과 피해의식을 버릴 것을 요구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전망은 남측 당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단 10월 초부터 단절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향후 한반도 워치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와대의 희망인 화상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맞추어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다. 이어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자화자찬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불가역적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차기에 여당은 물론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4•27 합의는 물론 평양공동선언 및 9•19 남북 군사합의가 지속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한미동맹의 균열과 한중 밀착여부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귀국길에 기내에서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한미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간 종전선언이 체결된 후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우려할 필요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지난 8월 10일 담화에서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용도 폐기' 됐던 종전선언의 개념을 다시 화두로 꺼낸 것은 다분히 북한을 향한 메시지로 평가된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 30주년을 명분 삼아 국제사회를 움직여보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최종 목적지는 정상회담이다. 종전선언은 귀납적으로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존재 근거를 약화한다.   남북이 55일 만에 통신연락선을 복원했지만 향후 남북관계 방향에 대해선 '동상이몽'이다.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조속히 재개해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자고 화답한 남측과 달리, 북측은 여전히 적대정책 철회 등의 '중대과제'를 남측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한동안 끊겼던 남북 채널이 김정은의 의지에 따라 재가동되면서 관계 복원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지만, 남북이 서로 다른 지점에 좌표를 찍고 있는 만큼 향후 갈 길이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북측의 요구를 남측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 정의용 장관도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 적대정책 철회 등을 요구한 데 대해 일방적 주장으로,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가을이 깊어가지만 남북관계가 당장 급물살을 타기는 쉽지 않다. 한동안 조용하던 북한이 다시 남측과의 소통 채널을 연 것은 정세의 국면 전환을 염두에 둔 행보다. 북한이 대북 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등으로 경제와 민생이 악화한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우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북한의 만조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간조 전략으로 후퇴할 것이다.     ■ 저자: 남성욱_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겸 행정전문대학원장이며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미국 미주리주립대(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에서 응용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방송공사(KBS) 북한문제 해설위원이다. 그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2008-2012) 및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2012-2013) 등 학계, 정부 등의 기관에서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경험을 가진 동아시아 전문가이다. 또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2014-2019)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2017-2019)으로서 활동한 바 있다.     ■ 담당 및 편집: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3) | jymin@eai.or.kr  

남성욱 2021-10-18조회 : 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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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북한의 에너지 난, 무엇이 문제인가?

[편집자 주] 국가가 공급하는 에너지로 가동되는 북한의 기업소들은 국가 기능의 약화로 에너지 공급이 크게 감소하여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에너지 공급부족은 국가 에너지 수급 시스템의 작동 자체를 어렵게 하여 국가 전반의 기능을 현저하게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체제적 특성, 국가적 역량, 군사적 노선 등에서 야기되는 생산요소의 국가독점, 시장의 부재, 정책기능의 한계, 자본과 기술의 부족, 대외적 고립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누적된 총체적 난국의 양상으로 파악됩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 체제를 개혁하고 시장을 개방하는 과감한 변화가 진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이 대외고립 상황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외부적 지원도 활용해야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세계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발표한 북한의 2018년 1인당 에너지소비는 0.559TOE(석유환산톤, Ton of Oil Equivalent)로 같은 해 세계 평균의 29.7%, 비OECD 국가 평균의 41.4%, 한국의 10.0%에 불과하다. 북한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1980년에는 세계평균보다 높았으며, 1990년에는 세계 평균과 같은 수준이었으나 그 이후 빠르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의 2018년 1인당 전력소비는 509kWh로 세계 평균의 15.6%, 비OECD 국가 평균의 22.6%, 남한의 4.7%에 불과하다. 북한의 1인당 전력소비 역시 1990년에는 비OECD 국가 평균보다 39.0%나 높았으나 그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예외적으로 일부 기업소들은 탄광을 보유하고 있어 석탄을 자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북한의 기업소들은 국가가 공급하는 에너지로 가동된다. 그러나 국가 기능의 약화로 석탄, 석유, 전력 등 모든 에너지 공급이 크게 감소하여 북한 산업부문의 모든 기업소들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수송부문도 국가 기능이 약화되는 대신 민간기능이 크게 확대되어 공적 운수관리 체계와 에너지의 공급•유통구조 문란이 확산되어 있다. 가정•상업 등 민생부문에 대한 국가의 에너지 공급기능도 크게 위축되어 전력을 제외한 연료용 에너지 공급은‘90년대 초반 이후 중단되었다. 민생부문 전력공급은 대체적으로 평양은 하루 3~5시간, 그 이외 지역은 하루 1~2시간 정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난방•취사용 에너지의 경우, 소득이 있는 가구들은 시장에서 석탄, 장작 등을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으나 대부분 가정들은 겨울에도 난방이 어렵고 취사용 에너지 취득에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에너지 공급부족은 관련 법•제도가 구축하고 있는 에너지 공급•유통구조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으며, 국가 에너지 수급 시스템의 작동 자체를 어렵게 하여 산업, 수송, 가정•상업, 공공•기타 등 국가 전반의 기능을 현저하게 저하시키고 있다. 북한 당국도 매년의 신년사를 비롯한 여러 국가계획에서 에너지부문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다양한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에너지난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도대체 북한 에너지부문에는 어떤 문제들이 얽혀 있는 것일까? 파악되는 문제들을 크게 분류해보면 체제적 특성에 의한 문제들, 국가적 역량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군사노선을 고집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문제들로 구분될 수 있다.   체제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들로는 생산요소의 국가 독점, 시장의 부재 등이 지적된다. 이들은 북한이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제체에 기인한다. 토지, 노동, 자본 등의 생산요소는 국가가 독점하며, 사적 소유권은 제약되고 민간비즈니스는 존재할 수 없는 체제이다. 탄광, 발전소 등 모든 에너지 기업은 국가 소유이고 국가 지표만큼 생산하고 생산물은 국가가 배급한다. 국가 기능의 저하로 공급부족이 만성화되어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유연성은 체제 원리상 수용될 수 없다. 탄광, 발전소 등 에너지 기업들은 생산물 판매를 통한 원리금 회수가 불가능하다. 기업은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원리금을 회수하며, 소비자는 대가를 지불하고 에너지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상업에너지시스템(Commercial Energy Sys-tem)이 허용되지 않는 체제이다. 그러한 체제 하에서는 기업활동을 통한 재생산 투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기업의 성장 여건이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외부 자본과 기술의 유입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국가적 역량과 관련된 문제들로는 정책역량의 한계, 자본의 부족, 기술의 부족 등이 지적된다. 여기서 정책역량의 한계는 사회주의 체제와도 연관된다. 생산성이나 효율에 대한 고려보다 권력의 결정이 우선하는 직관적 결정, 정책실패에 대한 인정과 정책수정의 부재 등이 관성화되어 있으며, 시장이 고려되지 않는 생산, 시스템적인 사고의 부재 등으로 현대적 에너지 정책 및 기획(Energy Policy & Planning) 기능이 부족하다. 자본과 기술의 부족도 대표적인 국가적 역량에 관한 문제로 지적된다. 에너지 인프라와 공급설비에 대한 투자부족이 만성적으로 누적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에너지 설비의 대부분이 구소련과 중국 등 인접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으로 건설되어 에너지산업의 기술적 자립이 어려운 상황으로 파악된다. 외부 지원이 중단된 이후 북한 에너지 산업은 정책, 자본, 기술의 측면에서 생산여건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내부적 역량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노선의 고집은 대외적 고립과 각종의 국제제재를 자초하였으며, 에너지 산업의 대외교역 여건을 붕괴시켰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테러 지원국이자 대표적인 인권탄압 국가이며,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와 대립하고 있는 고립국가이다. 군사용과 민간과 군사용 이중용도로 쓰일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통제하는 전략물자 수출통제제체의 대상국이며, 거듭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들과 주요국들의 양자제재 대상국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2017.8.4)는 북한의 석탄수출을 전면 금지시켰으며, 2397호(2017.12.22)는 북한의 원유수입을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하고 정제유 수입을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는 등 에너지 수급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북한은 에너지를 마음대로 수출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수입할 수도 없는 형국에 처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국경봉쇄까지 겹쳐지면서 최악의 고립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대외고립 상황은 에너지 교역을 통한 단기적 에너지 수급개선 마저도 시도하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을 의미한다.   이처럼 북한의 에너지부문은 체제적 특성, 국가적 역량, 군사적 노선 등에서 야기되는 생산요소의 국가독점, 시장의 부재, 정책기능의 한계, 자본과 기술의 부족, 대외적 고립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장기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누적된 총체적 난국의 양상으로 파악된다. 그로 인해 기업의 성장 여건, 자본과 기술의 도입 여건 등이 부재하고 생산여건과 교역 여건도 붕괴되어 있는, 단기적으로도, 중장기적으로도 해결되거나 개선되기 매우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가 복잡한 만큼 간단한 해결책은 제시되기 어렵다. 북한의내부적 역량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우며, 북한도 변화하고 외부적 지원도 활용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정상국가화가 진행되어야 하며, 전향적인 핵협상을 통해 국제제재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체제를 개혁하고 시장을 개방하는 과감한 변화가 진전되어야 한다. 서방의 시스템과 정책역량, 자본과 기술의 지속적인 유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 저자: 김경술_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이자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또한 한국 DMZ협의회 이사이자 한국 DMZ학회 이사, 포스코경영연구소 북한연구 COP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국 Asian Institute of Technology, Energy Economics and Planning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 북한 에너지산업 현대화 협력사업 실현을 위한 북한 자원 활용방안 연구(에너지경제연구원, 2020) 등 다양한 북한 에너지 관련 연구활동을 하였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한국국방연구원에서18년간 한미동맹과 북한을 연구하였다. 한동대 국제지역학(International Studies) 교수로 재직하였다.현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미동맹, 북한 외교 및 군사, 동북아 국제관계(사)이다.     ■ 담당 및 편집: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3) | jymin@eai.or.kr  

김경술 2021-10-18조회 : 10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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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연구] 북한 체조의 목적과 방향성

[편집자 주] 북한에서의 체조는 사회주의체제의 정치적 사상을 단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북한의 예술공연은 청소년, 학생, 근로자 등이 투입된 대집단 체조 예술공연 형태로 대내통치와 민심을 위해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북한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앞으로도 당의 노선과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주민들의 집단주의 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는 남북단일팀 구성 및 출전으로 남북관계 전환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입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북한의 체조는 북한 체육법 제15조의 집단체조와 제17조의 대중체육의 생활체조로 구분된다.   북한 체육법 제15조 집단체조는 사회주의체제 집단주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체육활동이며, 체육기교와 예술성이 배합된 대집단체조 ‘아리랑(2002)’, ‘빛나는 조국(2018)’, ‘인민의 나라(2019)’, ‘위대한 향도(2020)’ 등이 대표적 집단체조이다. 북한 체육법 제17조 대중체육(생활체육) 활동에서 체조는 건강증진과 상해예방을 위한 일상적인 생활체육이며,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각 연령층별 생활체조(유치원 율동체조, 소년율동체조, 대중율동체조, 노인율동체조 등)와 업무시간 중 휴게시간에 실시하는 ‘업간체조’ 그리고 각 종목별 ‘축구율동체조’, ‘농구율동체조’, ‘레슬링율동체조’ 등이 대표적 생활 체조이다.   북한의 ‘체조’ 강조는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1969년 11월 4일 김일성은 전국체육인대회에서 아래와 같이 연설을 하였다.   집단체조를 자꾸 장려하는 것도 청년 학생들 속에서 집단주의정신을 길러내기 위한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집단체조는 높은 예술성과 사상성이 배합되여 있는 체육형식이기 때문에 청년 학생들이 집단체조를 하는 과정에서 정치사상적으로 단련되면 예술적수양도 높아져 노래도 잘 부르게 되고 춤도 잘추게 됩니다.…업간체조는 탄광이나 광산의 지하장막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하여야 하고 지하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하여야 합니다.(노동신문, 1969년 11월 4일)   김일성 시대 북한의 ‘체조’ 체계가 구축되어 조직적인 체육활동으로 진행되었다면, 김정일 시대의 ‘체조’는 높은 사상성과 예술성 그리고 체육적 기교가 잘 배합된 대중선전선동(프로파간다) 집단체조로 변화하였으며, 집단체조를 통해 공산주의적 인간완성과 주체사상 및 당의 노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집단체조를 발전시키는 것은 청소년학생들을 전면적으로 발전된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키우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집단체조는 근로자들을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시위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김정일, “집단체조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1987년 4월 11일),” 『김정일 선집 9』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7))   김정일 시대부터 집단체조가 체조대, 배경대, 음악을 포함한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으로 변화하였으며, 2002년 김일성 탄생 90주년, 김정일 60회 생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을 기념한 ‘아리랑’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이 처음 등장하였다. ‘아리랑’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2006년을 제외하고 매년 공연되었다. 주요 내용으로 대내적으로 동지애와 아리랑민족,일심단결, 현대화, 정보화 등을 통해 주민통합 및 강성대국 건설 목표를 설명하였으며, 군에게는 백두산 군대, 선군을 강조, 남한에게는 신의주에서 부산까지 철도 연결과 조국통일 3대 공조를 강조, 대외적으로 자주, 평화, 친선 강조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약 10만 여명의 예술인과 청소년, 학생, 근로자 등이 투입된 대집단 체조 예술공연은 공연 그 자체로서는 웅장한 공연이지만, 어린학생들의 노고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가 지속적인 문제로 야기되었다.   김정은 시대에는 2013년 9월 이후부터 2017년까지 김정일 시대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2018년 9월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빛나는 조국’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을 5년 만에 재개하였다.   5년 만에 재개된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과거 아리랑 공연과 유사하게 약 10만 명의 예술인, 청소년, 학생, 근로자 등을 출연시켰다. 그러나 과거 아리랑과 다른 새로운 구성으로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중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세계무대에 등장한 김정은의성과와 북한의 새로운 도약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빛나는 조국’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을 선보였다. 주요 특징으로 대내적으로 김정은 체제 내에서 일심단결과 사회주의의 강조, 군에게는 자위의 국방성새를 강조, 남한에게는 평화번영 통일의 시대, 대외적으로 대외관계 다각화를 통한 북한의 변화를 제시하였다.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북한의 도약은 정체되었으며, 국제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는 지속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2019년 ‘인민의 나라(2019.6.3.)’와 ‘불패의 사회주의(시진핑 방북 시 공연, 2019.6.21.)’, 2020년 ‘위대한 향도(당 창건 75주년 기념, 2020.10.11.)’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을 통해 대내적으로 주민통합과 최고지도자 영도를 강화하기 위한 선군정치가 아닌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방식이 강조되었으며, 군에게는 선군이 아닌 당의 군대가 강조, 남한에게는 우리민족끼리 강조,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가 강조되었다.   김정은 시대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2018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와 2020년 전세계적 펜데믹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2018년에는 김정은 집권 이후 ‘성과’와 ‘향후 도약을 위한 목표제시’를 위해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2019년에는 ‘사회주의체제 정비’와 ‘자력갱생’을 위해 공연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는 3중고(국제사회 대북제재, 수해피해, 코로나19)속에서 ‘자력갱생’과 ‘우리식대로’를 통해 대내통치와 민심을 위해 공연이 진행되었다.   북한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앞으로도 당의 노선과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주민들의 집단주의 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9월 15일 청와대를 방문한 중국 외교부장 왕이에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하였으며,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은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언급하였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는 중국의 중재로 인한 남북단일팀 구성 및 출전 기대해 본다. 이러한 체육을 통한 남북교류 협력 노력으로 남북관계 전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a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북한’   ○ 2021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대북 올림픽 자격정지 징계 - IOC는 IOC 헌장 제4장 제27조 3항(올림픽대회 참가할 의무)에 따라 ‘2020 도쿄올림픽’에 불참한 북한에게 내년 말까지 올림픽 참가 자격 정지 및 재정 지원 중단 - IOC 헌장 제4장 제27조 9항(IOC는 NOC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에 따라 북한은 코로나19 상황 관련 소명 필요 - 2022년 2월 예정된 중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북한 참여 불투명   ○ 2021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 만남 -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9월 15일 청와대를 방문한 중국 외교부장 왕이에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하였으며,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은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언급하였음. - 중국의 중재로 인한 남북단일팀 구성 및 출전 기대   ○ 북한은 IOC 징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활용할 것으로 판단   - 북한은 전통적으로 동계스포츠에서 메달 획득이 거의 없었으며, 지난 2014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때에도 참여하지 않았음.   - 그러나 북중관계를 고려하여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에 출전해야 하나, 최근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하여 선수들의 국제경험이 전무한 상태임.   - 현 상황에서 IOC의 대북 징계는 북한에게 유용한 선택지로 활용가능 첫째, 북한의 현재 코로나19 상황을 늦게 소명한 후 IOC 징계 취소 요청 그리고 IOC 징계로 인한 중국 베이징 동계 올림픽 출전 어려움 표명 가능 둘째,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동일한 방법으로 남북단일팀 구성과 참여를 방법으로 남북관계 전환과 국제사회 소통 방법으로 활용 가능   ※ 북한은 동계올림픽 관련 선수 양성이 부족한 상황이며, 1964년부터 2018년까지 총 9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 1개(1964년, 스피드스케이팅), 동메달 1개(1992년, 스피드스케이팅) 획득.   ○ 베이징 동계 장애인올림픽 경기대회 참여 가능   - 북한은 2012년 런던 하계 장애인올림픽 대회부터 공식적으로 장애인 선수를 올림픽에 출전시켰음.   - 동계 장애인올림픽의 경우, 2018년 2명의 선수를 처음 출전시켰음.   - 북한은 대외적 관심도가 높지 않은 베이징 동계 장애인올림픽 경기대회에 소수의 선수를 출전시켜 베이징동계올림픽 참여에 의의를 둘 수 있음.     ■ 저자: 허정필_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주요 연구 분야는 북한 스포츠, 정치 분야이며 최근연구로는 “남북한 스포츠 교류협력과 북한의 스포츠 정치: 김일성ㆍ김정일ㆍ김정은 시대 주요특징을중심으로(2018)”가 있다.     ■ 담당 및 편집: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3) | jymin@eai.or.kr  

허정필 2021-10-18조회 : 9572
워킹페이퍼
[EAI 워킹페이퍼] 2022 EAI 신정부 외교정책 제언 시리즈 ⑦_가치와 규범 외교: 인권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미중 격돌 속 한국 외교

[편집자 주] 본 워킹페이퍼에서 김헌준 고려대학교 교수는 미중 경쟁 속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도구로 삼았으나 가치•규범 외교를 단순히 도구로만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신정부가 외교정책을 마련할 때, 가치•규범 외교의 세 가지 특징을 염두에 두길 권고합니다. 저자는 미국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국제규범이나 국제법을 만들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이 그러한 규칙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특별히 차기 정부가 북한 문제에 미국의 가치•규범을 앞세우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국제사회에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한국의 기여 가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가치와 규범 외교 3대 정책과제   1. 정부는 이제까지 우리가 이루어낸 민주주의, 인권, 법치, 시장 경제 등 우리의 국내 가치와 규범을 기초로 한국 외교가 큰 틀에서 추진할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규범과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인권, 민주주의, 법치, 자유무역 등 국제 사회가 강력히 합의해 쉽게 부정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원칙이 가지는 힘 자체를 의존하는 것이다.   2. 미국이 적극적으로 추구할 민주주의 정상회의 혹은 민주주의 10개국(D10)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설정하고 영향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통해 가능하면 우리에게 민감할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가치·규범 외교의 초점과 역량을 모으고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3. 양자관계, 특히 대(對)중국 가치·규범 외교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다자 차원에서 추진할 대중 외교 영역과 양자 차원에서 추진할 영역을 나누고, 다자 활동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양자 영역에서는 철저히 상호성을 추구해 선례를 쌓아둘 필요가 있다.   I. 서론   미중 간 가치와 규범의 극심한 갈등 상황에서 차기 정부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이를 정당화할 것인가? 국제정치에서 인권, 민주주의, 법치는 가치·규범의 영역으로 국제정치의 전통적 시각에서는 주변적 요소로 이해됐다. 가치는 주로 가치는 주로 국가가 추진하는 원칙으로 이해됐고, 규범은 그런 원칙들이 국제 사회에서 모여 이룬 집합적 기대를 뜻하지만 두 용어는 자주 구별 없이 사용된다. 가치·규범 문제가 국제정치의 중심 이슈로 떠오르면 대개는 이들이 가진 도구적 효용성에 주목했다. 트럼프가 임기 말 인권과 민주주의 외교를 앞세운 것이 중국과의 통상 마찰에서 우위를 점하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시각이다. 물론 트럼프 정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도구적으로 사용된 점이 강하지만 가치·규범은 이렇게만 이해할 수는 없다. 가치·규범 외교는 다음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차기 정부도 이를 염두에 두고 외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가치와 규범은 다른 분야와 구분되는 논리로 움직이는 독자성(autonomy)이 있다. 가치·규범은 군사, 안보, 경제, 기술 영역과 영향을 주고받으나 다른 영역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이 영역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풀리지는 않는다. 둘째, 가치·규범은 다른 분야와 긴밀히 연계(linkage)되어 진행될 것이다. 미중 관계에서 통상과 가치·규범이 연계돼 갈등을 증폭한 사례가 트럼프 정부에서 있었고, 바이든 정부도 이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바이든은 임기 초부터 필수 공급 망이란 형태로 첨단기술과 가치·규범의 새로운 연계를 만들고 있다. 가치·규범을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로 넓게 본다면 이미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과 같이 안보 영역과도 연계가 형성됐다. 셋째, 가치·규범 영역은 여론과 민족주의, 문화와 문명 등 감정 및 정서 요인에 근간을 두고 있어 잠재적 폭발성(potential volatility)을 지닌다. 또한 가치·규범은 국내와 국제, 두 수준에서의 일관성을 지향하므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과 트럼프의 반중 공세로 등장한 중국의 애국 여론이나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되는 미국의 반중 정서는 가치·규범 갈등을 격발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다.   II. 현 상황 분석과 현 정부 평가   현 정부는 미중 간 가치와 규범 갈등이 본격화된 시점에 있었다. 임기 초인 2017년 7월, 류샤오보의 사망과 아내 류샤의 출국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과 EU는 중국 인권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재확인했고, 중국은 주권과 내정불간섭으로 반박했다. 유사한 문제가 우간, 셰양, 천젠강 등 구속된 인권 변호사 사례이고, 미국과 EU는 이례적인 공동성명을 통해 석방을 촉구했다. 2017년 여름 홍콩 송환법 시위로 시작된 중국 인권·민주주의 논란은 2018년 신장·위구르 강제수용·노동 및 인공지능, 안면 인식, 유전자 정보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억압 문제, 2019년 톈안먼사건 30주년 문제로 불거졌다. 미국은 2019년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 법, 2020년 위구르 인권 정책 법을 제정하며 공세적으로 대응했고, 코로나19는 갈등을 증폭시켰다. 미국의 인종 문제(Black Lives Matter), 대선의 부정선거 시비와 의사당 난입 폭동, 홍콩 보안법 제정은 미중 간 공수를 바꿔가며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주었고 갈등을 키웠다.   이 시기 우리 정부와 관련된 가치와 규범 외교의 사안은 (1) 홍콩 송환법 시위와 보안법 논란, (2) 신장·위구르 강제수용소와 인권탄압이다. 이외에도 미중 갈등과 연관은 적지만 (3) 한일 간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과 일본군 위안부 판결, (4) 북한 인권과 대북 전단 금지법을 둘러싼 논란, (5) 2021년 2월 쿠데타로 시작돼 무고한 시민의 학살로 이어진 미얀마 사태가 있다. 후자의 세 이슈도 정부의 가치·규범 외교의 중요한 사안이었고, 미중 갈등 사안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다섯 사안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면 미얀마 사태 대응을 제외하고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현재까지 정부는 미얀마 사태에 대해 신속하고 단호하고 실효성이 있는 정책을 시행했다. 정부는 네 차례 매우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고, 대통령과 총리도 SNS를 통해 견해를 밝혔다. 외교부는 두 차례 차관 면담을 통해 미얀마 대사와 유학생을 만났고, 법무부 장관도 체류 중인 미얀마인을 직접 만났다. 정부는 국방 및 치안 분야 신규 교류 및 협력 중단, 군용물자 수출 불허 및 산업용 전략물자 수출 엄격 심사, 인도적 사업을 제외한 개발 협력 재검토, 미얀마인에 대한 인도적 특별 체류 등 실효적 조치도 취했다.   반면, 미·중 관계의 핵심에 있는 홍콩과 신장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원론적인 기존의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정부는 보안법 통과 전까지는 사안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주시”한다는 원론적 처지만 밝혔다. 보안법 통과 직후 “정부는 1984년 중영 공동성명의 내용을 존중하며, 중영 공동성명과 홍콩 기본법에 따라서 홍콩이 일국양제 하에서 고도의 자치를 향유하면서 안정과 발전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제까지 언급하지 않은 ‘고도의 자치’를 언급한 것은 분명 새로운 보다 적극적 의사 표명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영 공동성명과 함께 홍콩 기본법을 언급했고, 홍콩이 추구할 가치로 중국이 주장하는 ‘안정과 발전’을 언급해 균형을 맞췄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영국, 캐나다, 일본 등 27국이 공동으로 발표한 홍콩 보안법 관련 성명에는 “제반 사항을 고려”해 참여하지 않아 더 이상의 개입은 자제했다. 더 나아가 정부는 신장·위구르에 관해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의미 없는 발언을 넘어선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19년 한중정상회담 직후 “한국이 홍콩과 신장 문제가 중국의 내정으로 본다”라는 중국의 발표에 대해 “시진핑의 설명을 잘 들었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모습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런 신중한 태도는 국제정세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는 현상 유지의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으나, 가치·규범 외교의 지형이 급변하는 현 상황에서는 자칫하면 외교정책의 주도권을 잃거나 정책의 의미를 주도적으로 해석·설정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자의적 해석에 맡기는 난처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국내와 미국 정가에서 제기되고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중국경사론”이 그 예이다. 국가안보실이나 외교 자문, 외교부도 이는 잘못된 인식이며 한미는 동맹으로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운영하고 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명했지만 국내외 여론을 충분히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특히 바이든 등장 이후 블링컨 국무장관이 명시적으로 홍콩, 신장, 티베트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동지국가(like-minded states)와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이전 입장만을 고수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회적이나 간접적으로 가치·규범 외교를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이 얼마든지 있었고, 미중 갈등의 초기에 중국 인권·민주주의에 대해 우리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실험(testing the waters)을 해볼 기회를 놓친 것도 아쉽다.   홍콩 송환법 사태 때 중국 유학생들의 위협적 태도와 공세에 대한 원론적 대응 이상의 입장 발표, 2019년 한중정상회담 직후 중국의 홍콩·신장 관련 일방적 발표에 대한 적극적 해명 요구, 관련 이슈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답변한 것에 대한 보다 적극적 항의, 홍콩 보안법이 가져올 수 있는 홍콩 체류 한국인에 대한 잠재적 위해에 대한 우려 표명 등은 정당한 문제 제기이고, 중국의 인권·민주주의 관련 사안에 관해 우리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하지만 명확히 표현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본다. 미얀마 외교도 우리와 중국의 입장의 명확한 차이를 드러낼 수 있었던 기회로 본다. 중국은 4월 3일 왕이 외교부장의 성명을 통해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서 피해야 할 요인으로 유엔 안보리의 “부당한 개입(不当介入)”과 “외부세력의 조장(助澜)”을 지목했다.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있어 한국이 지향하는 것과 명백히 다른 구식 주권 논리이며, 주권 불간섭에 대해 상당한 진전을 이룬 국제 합의를 무시하는 지나치게 보수적 해석이다. 한국이 미얀마 외교를 집행하며 이런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는 것도 우리가 시도해 볼 수 있었던 우회적이나 명확한 대중 가치·규범의 외교이다.   가치와 규범 외교 측면에서 봤을 때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과 일본군 위안부 판결이나 북한 인권과 대북 전단 금지법을 둘러싼 논란도 아쉽다. 두 이슈 모두 일본과 북한이라는 대상과의 관계에 집중해 논의가 진행됐고, 문제가 가진 가장 근본적 핵심인 보편적 가치 및 인권, 민주주의 측면은 전혀 드러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우선, 한일 관계에 있어 여러 해법이 있겠지만,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과 일본군 위안부 판결은 근본적으로 대일 정책은 아니다. 인권, 사법 독립, 피해 구제 등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과거 인권 침해에 대한 적절한 해결이 국내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논의됐고, 강제 동원과 위안부 판결도 그 맥락에 있다. 사건 발발 당시 일본이 권력기관이어서 일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일 뿐이고, 제주 4.3사건이나 여순 사건 등 미 군정기에 일어난 사건 혹은 노근리와 같이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도 유사한 요구가 미국을 향해서도 있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배상 등의 요구는 피해자 중심(victim-centered) 논의로 반일이나 반미와는 결이 다르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한 초기에 대외적으로 이를 설명하고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없었음은 아쉽다. 또한, 보편적 인권 문제에 대해 일본이 양자 문제로 대응했을 때 우리 정부도 똑같이 양자 문제로 대처해 수렁에 빠져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최근 인권이사회 등 다자외교에서 위안부 문제를 “분쟁하 성폭력 문제”로 언급하며 보편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늦은 감이 있다.   북한 인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가치·규범 외교에 있어 가장 큰 걸림이 단연 북한 인권이다. 이는 홍콩, 미얀마, 중국의 인권 문제가 불거지고 한국의 적극적 대응이 요구될 때마다 끊임없이 따라붙은 문제이다. 현 정권은 임기 내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발의, 북한 인권재단의 출범, 북한 인권대사의 임명,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관한 지원, 대북 전단 금지법 제정, 미 의회 청문회 등 논란이 많았다. 이렇게 논란이 많았다는 사실 자체가 현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이 순조롭지 못했다는 증거이고, 원칙과 선례 존중 없이 정책을 추진했음을 보여준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활동,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북한이 인권 개선의 명확한 증거를 국제 사회에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보편적 인권을 고려하고 2016년 여야 합의를 존중해 북한인권법의 주요 내용은 일관되게 추진했어야 한다. 남북 교류와 정상회담과 별도로 추진했어야만 가치·규범 외교의 큰 틀이 유지되는 것이다. 혹시, 양자 외교에서 인권 논의를 대북 협상을 고려해 톤-다운 하려 했으면 유엔 등 다자외교에서는 일관되게 문제 제기를 이어갔어야 했다. 어느 정도의 일관성과 원칙이 유지됐더라면 지금과 같이 한국의 북한 인권 정책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까지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된다.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은 성과와 함께 숙제를 남겼다. 가치·규범 외교의 측면에서는 이룬 성과보다 남은 숙제가 더 많다고 판단된다. 일단 성과부터 살펴보면 가치·규범에 있어 한미 두 국가가 원칙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에 나타난 “국내외에서 민주적 규범, 인권과 법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지역의 비전을 공유”한다는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한국전 참전군인의 명예훈장 수여식이나 공동의 가치를 기반한 공급망, 첨단기술, 보건 및 백신 협력의 합의 등에서도 잘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동시에 쉽지 않은 과제도 남겼다. 미일 정상회담과 같이 중국의 민주주의나 인권과 직접 관련 있는 홍콩과 신장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한미 정상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유지 차원에서 언급했고, 같은 부분에서 “국내외에서 인권 및 법치를 증진”할 의지도 밝혔다. 더욱 특징적인 것은 인권, 법치, 민주주의를 “국내외”에서 “증진”한다는 표현이 길지 않은 공동성명에서 총 세 차례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현 정부의 태도를 고려했을 때 미국의 강한 주문이라고 판단되고, 이는 단지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일회성 요구가 아니라 향후 장기적인 미중 대치 관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의 파편이 남아공, 인도, 호주와 함께 초청된 G7 정상회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치·규범에서 미국 외교의 방향은 G7 정상회의 공동성명과 네 개의 초청국도 참여한 “2021 열린 사회(Open Societies) 성명”에 잘 표현돼 있다. 이는 5월 EU-G7 외교·개발 장관회의의 공동성명에서 제시된 내용과 유사하고, 미국과 EU가 구상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지만, 한미정상회담 직후 나온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과 같이 “중국이란 말은 없지만, 중국을 겨냥해서 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불필요한 논평이라고 본다. 이와 유사한 논평이 정상회담 직후 나온 대만해협에 관한 성명이 “일반적이고도 원칙적인 수준”에서 포함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2021년 6월 현재가 미국의 구상이 마무리되는 단계가 아니라 기획하는 단계이므로 점차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우선 미국은 G20 정상회의, 유엔, 민주주의 정상회의(US Summit for Democracy)에서 구체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단지 중국이란 단어가 없다거나 일반적 수준이라는 방식으로 미국의 가치·규범 외교와 거리를 둘 수만은 없고 명확한 가치·규범 외교의 원칙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이 점에서 현 정부와 차별화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III. 차기 정부 정책 제언: 원칙과 세부 전략   차기 정부가 맞이할 국제정치는 한편으로 심화하는 미중 갈등과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리더십 부활 시도가 공존하는 애매하고 중첩된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미중 중심의 국제관계는 남북, 한일, 한중, 한미라는 양자 외교 중심의 지역 질서와 겹쳐서 존재한다. 또한 이는 보수·진보, 여야, 세대, 성별, 계층 간 갈등이라는 또 다른 국내적 상황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를 포함한 이전 정부의 외교 성패 또한 고스란히 다음 정부의 외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치·규범의 영역도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공간적으로는 국내, 지역, 국제 수준을, 시간적으로도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구상이 요구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다음 원칙을 바탕으로 가치와 규범 외교의 세부 전략을 펼쳐야 한다.   1. 원칙. 우리 고유의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보편적 가치·규범의 일관된 추구   한국은 세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중 두 강대국의 영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이 경우 국제규범과 원칙, 즉 명분과 정당성에 기댄 외교는 우리에게 중요한 힘이 될 것이다. 물론 대북정책, 대중 외교 등 구체적 사안과 상황에 따라 기민한 전략과 한시적 양해도 요구되겠지만, 정부는 이제까지 우리가 이루어낸 민주주의, 인권, 법치, 시장 경제 등 우리의 국내 가치와 규범을 기초로 한국 외교가 큰 틀에서 추진할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규범과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권, 민주주의, 법치, 자유무역 등 국제 사회가 강력히 합의해 쉽게 부정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원칙이 가지는 힘 자체를 의존하는 것이다. 물론 열린 사회 성명에서 제시된 선거 개입, 정보 조작(manipulation of information) 등과 같이 최근 문제가 되어 새롭게 합의가 필요한 영역도 많이 있다. 이런 문제들은 합의에 이르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므로 대원칙인 민주주의, 인권, 법치에 기반해 차차 판단해 나가면 된다.   인권, 법치, 민주주의, 자유무역 등의 가치·규범은 국내의 가치·규범에서 도출됐고, 우리의 정체성과도 밀접히 연계됐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국내 정치와 외교에서 일관된 모습만 견지한다면 큰 어려움은 겪지 않을 명분이다. 문제는 북한 인권과 같이 우리 스스로 국내와 국제 사회에서 이중 잣대나 선택적 적용의 허점을 드러내게 될 경우이다. 원칙과 실리가 충돌할 때 실리를 위해 원칙을 쉽고 가볍게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최근 미 의회의 청문회 개최와 같은 외교적 압박에 쉽게 노출될 것이다. 원칙과 관련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도 매우 중요하다. 사드 배치의 경우처럼 국내 여론이 나뉘는 부분에서 정부는 외국의 압박에 취약하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적어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외교 원칙 설정에 있어서는 정계, 외교가, 언론, 학계에서 합의를 이끌어야 하고, 적어도 임기 중엔 이를 유지하거나 대외적으로 그렇게 보이기 위한 정무적 노력과 메시지 관리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원칙에 일관되게 기대는 외교는 초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선례가 쌓이고 유사 사례에서의 기록이 쌓인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수월한 외교이기도 하다. 그런 원칙은 향후 구체적 사안에서 우리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지켜낼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다. 이는 단지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러시아에 국제적으로 대응하는 방편만은 아니다.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여준 것처럼 언제든지 국제기구나 합의를 무시할 수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일방적으로 가치·규범 영역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이든 행정부도 현재까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의 신속한 중재,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에 대한 개인 제재 해제, 사우디의 자말 카쇼기 살해 공개,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 등 가치·원칙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했지만,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무역 관행이나 WTO 상소기구의 무력화 등 우려스러운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국내에서도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앞서 가치·규범 영역에서의 국내적 문제를 먼저 해결하거나 국제적 약점을 먼저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의 가치·규범 외교 원칙은 미국 내의 이런 합리적 목소리에 일부 기반을 두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견제할 필요가 있다.   2. 세부 전략   1) 민주주의 정상회의 혹은 민주주의 10개국(D10) 적어도 민주주의, 인권, 법치에 관한 사안에 대해서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촉구하는 선에서 일관되고 불편부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EU-G7 외교·개발 장관 공동성명은 중국의 신장, 홍콩, 티베트의 인권 침해와 이를 해소할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해결 방안 제안과 티베트에 대한 언급은 빠졌으나 G7 정상회의의 공동성명도 이와 유사한 톤을 유지했다. G7 외교·개발 장관 성명은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핵과 미사일보다 인권 문제를 우선 언급하며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 침해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 압박했다. G7 정상회의 성명도 유사한 톤을 유지했다. 이는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민주주의 정상회의 혹은 D10 연합체의 최초 시험 무대이며, 예상대로 국제정치 전반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방대한 제안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현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부분이고 이미 G7 회의의 두 차례 초청과 열린 사회 성명 참여를 통해 상당 부분 발을 들여놓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도 향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규범의 다자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행보를 보면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정부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세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참여에 관해 우리의 민주주의 정체성과 인권의 성숙도를 고려했을 때 전혀 주저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 최근 우리는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 참여와 사드(THAAD) 배치에 있어 최종 참여 여부를 떠나 참여 과정에서의 주저함과 눈치 보기, 태도 표명의 타이밍 등으로 비판받았다. 따라서 이런 사안에 대해 미리 입장을 정하고 제안이 오면 신속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여러 영역 중 이 작업이 비교적 수월한 부분이 가치·규범 영역 즉, 민주주의 정상회의이다. 오히려 이 영역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선제적이거나 요구되지 않은 배려의 모습은 국내외적으로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한 적극적 기대표명과 활동은 우리가 민감하게 여겨 참여를 주저할 수도 있는 쿼드 플러스, 자유의 항행 작전(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경제번영 네트워크, 클린 네트워크 참여의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통해 가능하면 우리에게 민감할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가치·규범 외교의 초점과 역량을 모으고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자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가치·규범 외교는 양자 외교보다는 개별 국가의 부담이 적고, 사안의 특별한 진전이 없는 한, 이곳을 통해 일관된 외교를 유지할 수 있어 양자 외교에서 어느 정도 운신의 폭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은 이제까지는 인권과 민주주의 등 가치·규범 공세에 있어 양자관계에서 보이는 거센 반박과 거친 보복을 다자 관계에서 보이지 않았다. 물론 최근 홍콩 민주주의와 신장 인권탄압에 대한 EU의 제재에 대해 보복 제재를 시행했고, 향후 이를 뒷받침할 입법도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은 G7 공동성명이나 인권이사회 결의안에 대해 특정 국가를 비난하거나 보복하지 않았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다자 조치에 대해 우리가 열린 사회 성명의 경우처럼 특정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수세적 변명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최근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처럼 이러한 다자 성명이 우리가 국내적으로도 믿는 가치·원칙의 연장선에 있음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셋째, 열린 사회 성명이 제시했듯이 향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의제는 상당히 많다. 미국이 가치·규범에서 중국에 대응할 많은 분야에서 국제법이나 규범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가치·규범 외교도 세부적으로 보면 공세(anti-China)와 방어(pro-democracy)가 있다. 신장, 홍콩, 티베트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사안에 대한 비판과 촉구는 공세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가치·규범 외교의 핵심은 아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공세는 다른 국가에 맡기고, 방어 차원의 민주주의 증진 의제를 발굴·선점하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갖는 독특한 경험이 있고 이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규칙 기반한 국제질서 측면에 있어 중국이 통보 없이 침범하는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KADIZ)이나 서해 해상 경계선 문제가 있다. 또한 인질 외교(hostage diplomacy), 사이버 공격, 정보 조작, 영향력 공작, “우마오당(五毛党)”으로 불리는 인터넷 여론 조작 등도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의 공격적 민족주의(combative nationalism)나 문화 우월주의(cultural supremacy)에 대해 입증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2004년 동북공정과 최근의 윤동주, 한복, 김치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8년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과 2019년 홍콩 시위 관련해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주한 중국인의 폭력도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처할 부상하는 권위주의 중국의 부작용이다.   2) 양자 가치·규범 외교 양자관계, 특히 대(對)중국 가치·규범 외교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선, 중국 외교정책에 대한 성찰을 통해 명분이 서고 격과 급에 맞는 일대일 대응(tit-for-tat)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급에 맞는 대사의 임명, 중국 외교사절의 대우, 평등한 소통 채널, 올바른 의전 등 기본적 조치의 복귀가 필요하다. 최근 “중국경사론”을 주장하는 쪽에서 지적하는 부분이 한국이 신중함을 넘어 중국의 굴욕적인 처사에 대해서도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 때 중국은 경제 보복과 동시에 2016년 왕이 외교부장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라는 고사를 인용해 한국을 미국의 부하로 암시하며 비하했다. 연이어 시진핑은 두 차례에 걸쳐 두 명의 대통령 특사를 영접하며 상석에 앉는 외교적 결례를 의도적으로 범했다. 왕이 부장은 G7 정상 회의 참석 직전에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한국에 “옳고 그름을 파악”(握是非曲直)하고 “편장단에 쓸리지 말 것”(不被带偏节奏)을 주문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최근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의 연설을 보면 중국은 향후 자국이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천명했다.   이는 다만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가치·규범 영역에서 중국 외교는 아직 세련되지 못하고 거친 부분이 많다. 호주의 사례만 보아도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한 이후 당한 경제 보복이 있다. 통상의 합법 규정을 이용한 치졸한 징벌 이외에도 중국 대사관은 “14개의 불만 사항”(List of Fourteen Grievances)을 제시해 호주에게 굴욕을 주었다. 최근 전랑외교(战狼外交)로 불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중국을 선전하는 외교는 여러 면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홍콩 보안법 지지를 위한 왕이 부장의 유럽과 아시아 방문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파라과이 등 대만 수교국에서 벌이는 백신을 이용한 압박 외교나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이는 백신 외교도 긍정적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치·규범의 양자관계에서 중국과 대등하게 관계 맺기 위해 중국의 방식과 담론을 탐구해 이에 대응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2016년 남중국해 판결을 거부한 대응 담론, 2013년 일방적으로 발표한 중국 방공식별구역(Chin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CADIZ)에 대한 일본, 호주, 미국 등의 비난에 대한 대응 논리 등은 우리가 중국에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서해 해상수역 등에서 중국에 대해 철저한 상호성에 기반한 일대일 대응이 실무적 차원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포괄해 적어도 가치·규범 영역의 양자 외교 원칙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대중 외교의 민감성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양자 측면에서 적극적이고 일관되게 하기 어렵더라도 다자, 1.5트랙 혹은 투-트랙의 적어도 어느 한 지점에는 가치·규범 외교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민주주의 정상회의 등 다자 플랫폼에 참여하고 여기서 문제를 끊임없이 공동으로 제기하는 방법이다. 현재 국제정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미중 양자 사이에 놓이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우리는 미중의 첨예한 대립 속에 끼는 어려움을 사드 배치 때 경험했고 같은 일을 캐나다와 호주 등이 겪고 있다. 세계 질서로서의 미중 관계는 많은 국가에 유사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더 큰 영향을 받고, 분단 상황이 유지되고 북한과 적대적 관계가 지속되는 한 중국의 비중은 줄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고압적 태도는 계속될 확률이 높다. 중국은 이제까지 누려온 비대칭적 한중 관계를 고수하고 선점한 유리한 위상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양자관계에서 가치·규범의 갈등이 생기면 최대한 다자주의를 활용해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다자주의는 미중 갈등의 힘의 정치를 완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우리가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문제가 우리만의 문제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빈번한 방공식별구역의 의도적 침범도 일본, 대만과 함께 대응할 수 있다. 서해 해상경계의 중국 선박의 접근은 모호한 국경 지역의 잠식과 분쟁화 시도로 인도,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 중국과 국경을 인접한 국가가 처한 공통 문제이다. 우리가 경험한 민간과 정부를 넘나드는 모호한 보복 행위는 일본, 호주, 필리핀,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와 같이 대응할 수 있다. 다자에서 제기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이라 정부가 전면에 나설 수 없다면 국회·정당, 사법부, 기업, 시민단체, 여론이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정부가 이들을 지지하고 엄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차선의 방법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미중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는 시기에는 현 정부와 같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보수적인 접근보다는 과감한 결정이 요구된다. 지난 3월 31일, WHO의 코로나19 기원 조사 보고서에 대해 우리의 전문성에 근거해 판단하고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미국, 영국 등 14개국 공동성명에 참여한 것이 좋은 시작으로 보인다.   IV. 결론   최근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열린 사회 성명까지 참여한 것이 보여주듯이 일본을 제외한 G7 국가가 한국에 가지는 기대 수준은 이전보다 명확해졌다. 하지만 다자 무대에서 누리던 한국의 위상은 한중 양자 무대나 미국과 유럽과 멀어지고 중국과 일본이 공존하는 동북아 무대로 복귀하면 급격히 쪼그라든다. 절대적 국력이 아닌 상대적 국력을 강조하는 국제정치의 힘의 작용이다. 상대적 비(非)강대국이 이를 거스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법과 원칙에 기반한 가치·규범 외교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첨단 기술·경제·군사와 함께 가치·규범을 내세우는 상황은 차기 정부에게 기회이다. 가치·규범 영역에 있어 한중 외교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유일한 기회는 아마 향후 4년일 것이고, 이 작업을 미국의 외교정책에 기대어 할 수 있다. 물론 바이든 정부가 이제까지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대전제가 있어야 하고, 이는 가치·규범 외교의 어려움과 바이든 정부의 “중산층을 위한 외교” 원칙 때문에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미국 외교정책의 취약성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두 전략의 큰 틀 안에서 다음 두 강조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가치·규범 외교의 다양한 영역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국제규범이나 국제법을 만들 것을 미국에 요구하고 규칙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 외국에 대한 영향력 공작, 인질 외교, 비국가 행위자를 이용한 회색지대 공세 등은 명확한 법과 규범이 없이는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런 부분에서 다자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 인권이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천편일률적인 반(反)중국 전선이 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9년 기고문에서 안보실장인 설리번과 중국 전략 수장인 캠벨도 동맹을 “그들의 방식대로 관여”(engage states on their own terms)시키는 것이 나은 정책이라고 했다. 이를 고려할 때 한국이 할 수 있고 미국의 세계 전략에 기여할 수 있는 요인이 북한 인권 문제이다. 가치·규범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심각한 인권 침해, 독재 정권, 인질 외교, 종교 탄압, 국제법의 무시, 사이버테러와 해킹 등 미국이 중국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이 모두 존재한다. 차기 정부는 미국의 가치·규범을 앞세우는 외교에 있어서 북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이 부분에서 한국의 기여 가능성을 제시하고 확인받을 필요가 있다. ■     ■ 저자: 김헌준_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부교수 및 선임연구원, 미국 세인트올라프대학교 (St. Olaf College) 방문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관련 연구로는 The Massacres at Mt. Halla: Sixty Years of Truth-Seeking in South Korea, Transitional Justice in the Asia Pacific, “The Prospect of Human Rights in US-China Relations: A Constructive Understanding,”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9) | j.baek@eai.or.kr  

김헌준 2021-09-24조회 : 14435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통신선 복원과 연합훈련: 북한 전술 읽기

[편집자 주] 본 논평에서 박원곤 교수는 지난 7월 통신선 복원을 두고 대남정책 노선을 남북경색에서 벗어나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해석합니다. 북한의 통신선 복원은 한미 연합훈련 형행화, 북한의 핵개발 정당화 등 명분 구축 등을 위한 것으로, 결국 ‘공세’라는 것입니다.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대한 복귀 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대북 협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합훈련을 계획대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미연합훈련 후 북한이 이를 비난하며 1년여만에 복원되었던 남북통신 연락선을 단절한 결과적인 행동은 저자의 의견을 설득력있게 뒷받침 해줍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북한이 지난 7월 27일 통신선 복원으로 시작한 대남 행보는 사실상 ‘공세’임이 확인된다. 남북은 7월 27일 통신선 복원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도 천명하였다. 특히 남북이 지난 4월부터 관계 회복을 논의한 친서를 교환한 것으로 알려져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27일 발표 때부터 북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8월 한미 연합훈련을 바로 앞두고 북한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가 27일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4일 후인 8월 1일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하였다. 이후 한미가 축소된 형태지만 연합훈련 시행을 밝히자 10일 김여정의 담화, 11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담화를 통해 “배신적인 처사”이자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손으로 날려”보냈다는 거친 비판이 제기되었다. 본 고는 북한이 시작한 통신선 복원 제안과 연이은 연합훈련 문제 제기에 대한 의도를 분석하고자 한다.   북한의 대남 노선   7월 27일 남북 통신선 복원이 발표되자 일부에서는 북한이 대남정책 노선을 남북 경색에서 벗어나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북한이 노선을 변경한 이유로는 코로나19, 대북 제재, 자연재해 등 삼중고를 돌파하기 위해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북한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은 김정은 스스로가 지난 6월 노동당 중앙위 8기 3차 전원회의에서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라면서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남북대화를 재개하여 한국 정부로부터 식량•방역 지원을 얻는 한편 바이든 행정부에는 제재 수위를 낮추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대남 노선을 변경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북한이 유일 지도체제 국가로서 최고 지도자의 결정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최소한도의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하려 한다. 대남정책의 경우 작년 6월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대적관계”로 규정한 이래 올 1월 8차 당대회에서 기존 대남 강경 노선이 유지되었다.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북남관계의 현 실태는 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며 통일이라는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라고 현 남북관계를 진단하였다.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건으로 “첨단군사 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를 명확히 요구하면서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관계가 설정될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후 코로나 확산을 우려하여 극한의 봉쇄를 유지하는 북한이 매우 이례적으로 매달 대규모 대회와 회의를 개최하였지만, 대남정책을 전환하려는 ‘노선 투쟁’은 없었다. 따라서 7월 27일 발표를 북한이 대남 노선을 변경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북한이 남한을 통해 경제 어려움 타파에 나서려고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크지 않다. 북한은 8차 당대회 이래 지금까지 각종 대회와 회의에서 ‘자력갱생’과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를 격파하는‘사상투쟁’의 두 가지 화두를 던진다.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자력갱생전략을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 증대, 내적동력 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정치노선”으로 재차 규정하였다. 더불어 사상투쟁을 강조하면서 “학습을 강화하며 혁명적규률을 철저히 세울 것”을 지시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2019년 12월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현 정세와 혁명 발전의 요구에 맞게 정면돌파전을 벌일데 대한 혁명적 노선”(약칭 ‘정면돌파노선’)을 재확인한 것이다. 당시 김정은은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언하면서 “우리의 전진을 저해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 이것이 전체 인민이 들고 나가야 할 투쟁 구호”라고 천명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은 작년 12월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배격법)”을 제정한 이래 역시 8차 당대회에서 “혁명적인 우리 식의 생활양식을 확립하고 비사회주의적요소들을 철저히 극복”할 것을 김정은이 지시한 바 있다. 이후 거의 모든 회의에서 같은 언급이 반복되었다. 예를 들어 6월 개최된 당 중앙위 8기 3차 전원회의에서도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공세적으로 실속있게 전개”할 것을 강조하였다. 배격법은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서 온 영상•사진•서적을 유통하면 최대 사형에 처하고 이를 이용하면 최대 15년 징역형에 처한다. 또한 한국식 말투를 쓰거나 노래 창법을 쓰는 것도 금지한다. 사회주의 애국 청년동맹 대회에서 김정은 “외국 머리 모양새, 옷차림, 말투 등을 독약”으로 지칭한 바 있다.   이외에도 김정은은 작년에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고, 1월 8차 당대회에서 한국이 제시하는“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을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평가 절하 하였다. 이런 상황이므로 북한이 남한과 경제협력을 본격화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도 북한이 남한은 물론 외부와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을 저해한다. 북한은 작년 1월 24일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한 이래 2021년 8월 말 현재까지 국경을 철저히 봉쇄 중이다. 새로 임명된 주북 주중대사와 교체된 주중 북한 대사도 평양에 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북한은 지난 6월 당 중앙위 8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김정은이 직접 “비상 방역 상황의 장기화로 인민들의 식의주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의 장기화”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지도기관들이 비상 방역이라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 그에 맞게 경제사업을 치밀하게 조직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외부를 여전히 통제하면서 자력갱생을 통한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 교류를 위한 조치를 추진한 바 있다. 북한은 6월 말 개최된 당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킨데 대하여서와 그로 하여 초래된 엄중한 후과”를 지적한 바 있다. 국정원은 중대사건을 “신의주 인근 의주비행장에 새로 설치한 코로나19 방역용 소독시설 가동 준비 미흡과 전시 비축 물자의 공급 지연, 관리실태 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북한이 일부 제한된 교류를 추진할 가능성은 있지만, 정상적 경제 활동은 코로나19가 사실상 극복된 후에나 가능할 것이므로 한국과 교류 협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추가 근거는 북한이 7월 27일 통신선 복원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북한 주민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후 10일과 11일 연합훈련에 대한 거친 비판을 담은 담화는 북한 내부 매체에 담겼다. 대남 강경 노선에 대한 전환이 없었으므로 북한 주민에게 27일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의도   북한이 대남 노선을 전환하지 않았다면 북한의 행위는 다음과 같은 의도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한미 연합훈련 형해화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이 통신선 복원을 먼저 제의하였다. 문제는 27일이라는 시점이 사실상 한미연합훈련을 조정하기 매우 어려운 시기라는 것이다. 7월 말부터 이미 훈련에 참여하는 미측 요원이 입국하기 시작하였고, 8월 초 주한미군사령관과 한국 합참의장이 총괄하는 ‘세미나’를 통해 훈련 목표, 시나리오 등을 최종 점검한다. 10일부터는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미국은 연중 내내 동맹국과 연합훈련을 시행하고, 모병제인 특성 등을 감안할 때 최소 3개월 혹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연합훈련을 준비한다. 훈련이 보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조정되면 제대로 된 훈련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결국 한미연합훈련은 10월 1일 김여정의 요구 이후 더욱 축소되었다.   둘째, 북한식 명분 쌓기이다. 북한도 한미가 연합훈련을 취소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먼저 통신선 복원이라는 선의의 제안을 했음에도 한미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인 연합훈련을 강행했으므로 이후 모든 북한의 행동은 정당화된다는 논리로 명분을 마련했다. 김여정과 김영철이 발표한 10일과 11일 담화는 모두 유사한 논리 구조를 보인다.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로 인하여 “국가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강화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라고 밝힌다. 김영철도 남측에 “선택의 기회를 주었”는데 “대결이라는 길을 선택”하였다며 “엄청난 안보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고 겁박한다. 도발 명분을 축적하는 언사이다.   북한의 명분 쌓기는 중국용이기도 하다. 중국도 기본적으로 북한의 도발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북한이 지속하는 미사일 발사 시험의 경우 미국이 사실상 중국 견제를 포함한 미사일(방어)망 구축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중국도 꺼린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은 북한과 밀착 행보를 보인다. 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8월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현재의 형세하에서 건설성을 결여했다”고 비판하고 “대북제재 완화”도 요구한 바 있다. 중국은 연합훈련과 북한 미사일•핵실험을 유예하는 쌍중단과 대북제재 해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인 쌍궤병행을 소환 중이다. 북한은 중국을 향해서도 같은 논리로 대남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의 조처를 하였으나, 중국도 반대하는 연합훈련이 강행되었으므로 자위를 위한 도발은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셋째, 한미 간 이견을 극대화한다. 미국은 연합훈련을 중시한다. 지난 7월 2일 취임한 폴 라카메라 주한 미 사령관은 “정기적 훈련은 연합 방위 태세 구축에 필수적”이라면서 연기 주장에 난색을 표명한 바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 핵 합의 문제와도 연계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새로운 요구를 강압하며 핵 합의 복구를 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만 유화책을 펼치면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안게 된다. 결정적으로 연합훈련을 취소하더라도 북한이 핵 협상장에 복귀할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특정 조건을 내걸고 대화에 나서는 행태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한 상태에서 중국이 훈련 중지를 요구하는 것도 부담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김여정의 1일 담화 이후 훈련이 사실상 시작되었음에도 조정을 추진하였다.   마지막으로, 북한 핵 개발을 정당화한다. 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10일 김여정의 담화는 “국가방위력 증대의 정당성,”“외부위협 견제를 위한 힘,” 북한이 핵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절대적인 억제력” 등을 통해 핵 보유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천명한다. 더욱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 것은 사실상 북한 비핵화 협상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여정은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으로 밝힌 바 있다. 향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요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 경우 한미가 동의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대신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하고 핵 군축 협상으로 전환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통신선 복원으로 시작한 북한의 대남 행보는‘공세’임이 확인되고 있다. 북한이 대남 노선을 변경했다는 정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공세를 통해서 연합훈련 형해화, 한미 갈등, 남남 갈등, 명분 쌓기 등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과 중국이 합심하여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데 한국이 아닌 미국이 나서서 훈련이 소멸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계획대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번과 같이 북한의 압박에 따라 마지막 순간에 축소한다면 의미 있는 훈련이 되기 어렵다. 더불어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복귀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연합훈련을 조정하는 것은 대북 협상력을 스스로 낮추는 행위이다. 무엇보다도 한미 연합훈련은 대북 대비태세 유지를 위한 것이다. 한미가 대비태세를 강화하여 북한 핵의 유용성을 낮출수록 북한 비핵화 가능성은 커진다.■     ■ 박원곤_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한국국방연구원에서18년간 한미동맹과 북한을 연구하였다. 한동대 국제지역학(International Studies) 교수로 재직하였다.현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미동맹, 북한 외교 및 군사, 동북아 국제관계(사)이다.     ■ 담당 및 편집 :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3) | jymin@eai.or.kr

박원곤 2021-09-10조회 : 9055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북한 인프라개발의 국제협력과 한일관계

[편집자 주] 남북 평화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낙후된 북한 경제사회의 인프라를 개발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인프라개발은 국제협력을 통한 효과적인 재원 조달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저자인 서울대 이정환 교수는 북한 인프라개발에 대해 다자간개발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차원의 제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적 차원에서의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남북관계의 개선, 한일관계의 화해,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진전을 별개의 과제가 아닌 연결된 과제로 이해하고 대응하려 할 때 북한의 인프라개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북한 인프라개발 과제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북한의 비핵화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높은 장벽이 전제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경제발전을 대상으로 하는 남북협력과 국제협력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해 보인다. 북한 경제발전의 마중물이 될 북한의 인프라개발에 대해 한국은 어떤 제도적 틀 속에서 접근해야할 것인가? 북한의 인프라개발에 대한 한국의 전략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으로 정립되어 있다. 3대 경제벨트(환동해 경제벨트, 환서해 경제벨트, 접경지역 경제벨트)를 축으로 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북한의 인프라개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북한 하나의 시장협력 등을 지향함으로써 경제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남북 평화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경제 모든 분야에서의 남북협력을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미래 북한의 생산과 고용 창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민간의 해외직접투자보다는 북한의 낙후된 경제사회 인프라를 개발하는 것에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 환동대 경제벨트가 에너지와 자원 개발에 초점이 있고, 환서해 경제벨트는 물류와 교통인프라 투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 인프라개발의 과제에서 가장 핵심적 질문은 효과적 재원 조달의 방법이다.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경제사회 인프라는 공적인 자본투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문제는 북한의 낮은 자본축적 상황에서 북한의 미래 발전에 필요한 인프라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북한의 정부와 공적기구가 충당하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0세기 발전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해외로부터의 재원확보와 이것의 경제사회 인프라 구축에의 투여는 신흥국 발전 초기 단계에 벌어지는 일반적인 일이고, 북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북한의 경제사회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북한 인프라개발에 대한 재원 조달 문제   북한의 경제사회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해외 자본을 한국이 전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건설산업연구원의 2019년 계산에 의하면 북한의 초기 인프라개발에는 10년 동안 306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북한이 2011년에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명의로 발표한 <국가경제발전 10개년전략계획>과 한국의 한반도신경제지도 구상의 모태가 되는 국토연구원의 ‘한반도 핵심개발사업’은 서해안축과 동해안축의 인프라개발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양 계획의 중복된 사업을 제외하고 계산하였을 때, 산출되는 북한 인프라개발 소요 경비가 306조원이다.   10년간 306조원이 소요되는 북한 인프라개발에 대한 투자 재원 조달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정부와 공적 금융기관의 책임이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국가역량에 비추어볼 때, 북한 당국이 이 재원 조달을 자체적으로 감당하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 및 세계시장 및 국제금융과의 연결성 증진 속에 다국적개발은행 및 민간은행들의 개발협력 자금 지원, 그리고 민관협동 파이낸싱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제금융시장에 연결성이 부재하고 국제금융규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 이러한 민관협동 파이낸싱으로 바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섰을 때 초기 인프라투자의 재원은 일단 수익성에 입각한 금융조달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 차원의 규범에 입각한 공적 자금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북한 인프라투자 재원의 북한 외의 출처로 가장 유력한 곳은 당연히 한국이다. 한국과 북한의 특수한 관계성 속에서 북한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가 되는 북한 인프라건설은 장기적으로는 국내적 투자로 생각되어야 할 것이고, 단기적으로 인프라 건설 사업 실행시에 사업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장 긴밀하게 관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경제적 수익의 무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 재원으로 북한의 인프라건설 수요를 전적으로 또는 대다수를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국의 정부 재원 중에서 북한 인프라투자에 사용될 수 있는 출처로는 남북협력기금과 공적개발원조/대외경제협력기금이 있다. 하지만, 남북협력기금 사용에 대한 정치적 걸림돌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남북협력기금의 규모 자체가 북한 인프라 건설 수요 규모에 비해서 매우 적다. 한편, 외국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개발원조와 대외경제협력기금을 북한 인프라투자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법적 정비 후에 이들 자금을 북한 인프라투자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1년에 3조원 규모의 정부개발원조와 1조5천억원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은 북한 인프라투자에 필요한 재원의 필요 규모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즉, 공적개발원조와 대외경제협력기금이 북한 인프라투자 필요재원 조달에 도움은 될 수 있지만, 핵심적임 재원처가 되기는 어렵다.   북한 인프라개발에 대한 국제협력의 제도 모색   남북협력기금과 정부개발원조/대외경제협력기금 이외에 북한 인프라투자에 대한 한국의 공적 자금 투여 재원을 별도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 인프라투자 수요는 한국의 재원으로 충당되기 어렵다. 또한 북한 인프라투자는 한반도 미래 평화 구상에서 세계와 북한의 연결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주변국의 공적 자금과 국제금융자본이 북한에 투자되었을 때, 이는 북한에게 국제금융시장에 적응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고 주변국과 국제사회에는 북한의 성공적 개혁개방에 대한 지지의 토대가 될 것이다. 재원 조달의 수량적 측면에서도 북한의 인프라투자에 대한 국제협력은 필수적이고, 북한의 인프라투자에 대한 국제협력은 한반도 미래의 안정적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관여를 증진시킬 수 있다.   북한의 인프라개발에 대한 국제협력에서 다자간개발은행(MDB)의 관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다자간개발은행이 북한 인프라투자 재원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다자간 개발금융 레짐에서 북한이 안정적인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인정받는 과정 속에 장기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양허적 성격의 자금지원을 받기 위한 회원국 가입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전에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이 자금을 출연하여 다자공여신탁기금(Multi-Donor Trust Fund)을 설치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북한 인프라투자에 대한 국제협력으로 논해져 왔다. 현재 대북 인도지원의 국제협력에서 인프라투자의 국제협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엔개발그룹이 운영하는 신탁기금을 먼저 출범시키고, 북한의 국제사회의 규칙과 규범에 편입되는 과정 속에서 세계은행이 운영하는 신탁기금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인프라개발에 대한 지역다자협력의 필요성   북한 인프라개발에 대한 국제협력은 다자간개발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차원의 제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적 차원에서의 협력제도 구축도 필요로 한다.   북한 인프라투자에 함의를 지니는 동북아 지역에 특화된 다자간개발은행의 설립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부터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논의로 진행되어 왔다. 탈냉전기 지역주의 붐 속에서 동북아에서도 개발수요에 대한 추가적 국제금융의 필요성이 언급되어왔다. 동북아개발은행이 북한 인프라투자와 연계되는 것은 2000년대 들어서 한국에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을 다시 재가동시키고 이를 북한 개발에 대한 재원조달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 개발협력에 대한 지역적 협력금융기구로 논의되었지만 동북아개발은행 구상은 북한에 대한 지원에서 다른 다자간개발은행들과 차별화되고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북한 인프라투자에 대한 국제협력에서 다자주의 틀 이외에 지역주의적 제도 틀 모색은 협력의 다양화 차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레짐의 규범은 강력하게 작동하는 가운데, 높은 수준의 제도화와 기구화가 북한에 대한 개발협력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개발을 장기적 단계로 보았을 때, 지역적 차원의 협력은 공식적인 제도화에서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   한편, 동북아 공간의 한반도 주변국들의 개별적 지역개발 구상 그리고 그 구상과 연계된 주변국들의 개발자금 지원 정책이 북한 인프라투자의 초기 단계에 의미 있게 논의될 수 있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지역개발구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국경을 넘어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개발협력을 통해서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 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에서 등장한 것이 각국의 지역개발 구상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한국의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이 그 예이다. 이들 국가의 지역개발구상이 완성도있게 추구되기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북한의 개발이 어느 정도 필수적이다. 일본의 경우 지역구상이 해양축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북일국교정상화의 남겨진 과제는 북한개발에 대한 일본 관여의 잠재적 강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가 진행되고 북한이 국제사회로 복귀된다면 각국의 지역개발 구상은 북한개발과 연계되는 논의가 발전할 것이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한의 인프라개발에 있어 선명한 이해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북한 개발의 서해안축과 동해안축 모두에 관심이 크다. 서해안축은 철도로 경의선을 중심으로 해서 중국 동북지방 중심으로 직결된다. 또한 길림성과 연결되는 동해안축은 중국 동북지방의 해양 접근을 강화시킬 수단의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는 동해안축을 통해, 북한을 지나 한국까지 이어지는 교통,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관심이 지대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환동해권역의 연결망 증진 차원에서 북한 동해안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더불어, 일본의 북일국교정상화에서 예상되는 막대한 규모의 일본 자금의 대북 공여 전망은 북한의 인프라개발에서 일본의 관여가 동해안축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게 한다.   북한의 인프라개발과 일본   현재 악화된 한일관계는 북한의 인프라개발에 대한 지역적 차원과 글로벌 차원 모두에서의 한일협력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정책지향이 합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상이한 입장 이전에 역사인식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일 양국간 갈등 사안이 모든 사안에서의 한일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 북한의 인프라개발이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과제가 되더라도, 북한 인프라개발을 위한 재원 조달의 글로벌 차원과 지역적 차원에서의 국제협력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협소해진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의 개혁개방이 현실화되었을 때, 북한의 경제사회 인프라 개발에 있어서 양국이 경합 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국제적 공조 속에서 한국의 주도성을 유지하려 한다면,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의 북한에의 관여를 한국의 계획과 상보성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필요로 한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의 개선, 한일관계의 화해,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진전을 별개의 과제가 아닌 연결된 과제로 이해하고 대응하려 했었다. 김대중 정부의 외교전략이 주는 함의는 한반도 평화번영의 미래구상에서 한일관계의 관리가 일정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 이정환_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주요 논서로는 <현대 일본의 분권개혁과 민관협동> (2016), "일본 지방창생 정책의 탈지방적 성격" (2017), "아베 정권 역사정책의 변용: 아베 담화와 국제주의" (2019)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3) | jymin@eai.or.kr

이정환 2021-09-06조회 : 9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