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식계가 대북 전략 및 북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균형 있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 연구 및 통일전략과 동아시아전략을 복원하고자 EAI는 2018년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구축을 기획하여 웹사이트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Global North Korea (Global NK)는 아카이브 성격의 웹사이트로써, 제재(Sanctions), 관여(Engagement), 자구(Internal Transformation), 억지(Deterrence)로 구성된 4대 대북복합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주요 4개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법을 통해 분류한다. 또한, Global NK에서 제공하는 통계치를 통해 웹사이트 이용자는 주요 4개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및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본 웹사이트는 외부 기관의 북한 관련 발간 자료를 한 곳에 수집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문가 코멘타리(Commentary)를 발간함으로써 보다 분석적이며 전략적인 방식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www.globalnk.org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다극체제하 북핵 문제의 미래

■ You can visit our Global North Korea site to view the original text or download the pdf.   탈단극시대 북핵문제의 성격변화   오늘날 미국의 대북한 전략의 변화를 분석함에 있어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일은 북핵문제가 발생한 탈냉전 초기와 2022년 사이에 나타난 구조적 조건들의 변화에 대한 고찰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두 가지 변동 요소는 전지구적 세력배분에 있어 다극체제가 부상하였으며 북한의 핵보유가 거의 기정사실로 되었다는 점 등이다.   첫째, 세계정치의 패권이행기 국면으로의 진입에 따라 북핵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으며, 북한 또한 새로운 구조적 조건에 맞춰 자신의 대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지난 탈냉전기 30년간 북핵이슈는 미국 주도 자유세계질서에 대항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의 문제로 규정되었다. 즉, 북한은 미국이 건설한 문명 표준과 국제 사회의 주요한 규범을 어긴 문명 세계의 외부자(pariah)로 규정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북미관계에 존재하는 안보 딜레마의 상호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북한이 자유세계 질서의 규범을 어겨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시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북한은 정당한 외교 협상자로 간주되지 않아온 것이다. 아울러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경제적 제재, 적극적으로는 레짐 체인지 추구 등의 처벌이 추구되었다.   그러나 다극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북핵문제의 본질이 WMD 확산방지나 NPT 체제수호 같은 자유주의적 국제규범의 문제에서 미중간 지정학적 체스게임의 일환으로 일정 정도 전환되고 있다. 2022년 3월 이래 모라토리엄을 깨고 북한이 ICBM을 포함한 다종다양한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였고, 급기야 동년 11월에는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안보리의 규탄결의안 조차 통과되지 못한 사실은 이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었다. 전후 미국주도 자유세계질서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안보영역에서의 비확산규범이 깨져나가고, 대신 강대국간 경쟁논리가 북핵문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상황이 출현했음을 고지한 셈이다.   김정은 정권 스스로도 강대국 정치 귀환의 맥락에서 자신의 문제를 재인식하면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데, 가령 “신랭전”의 도래 혹은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눈에 뜨리게 가속화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차원을 넘어 지역의 군사적 균형 변화에 따른 군비증강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폭로로 밝혀진 것처럼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포탄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새로운 반미연대체의 구성을 획책중이다. 이로써 북핵문제는 국제사회에 의한 제재와 처벌을 통해 다루어지는 사안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역내의 강대국간 정치의 갈등과 협상의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북한 역시 주도적으로 이러한 지정학 게임에 북중러 삼국의 연합을 공고화 하며 한미일에 맞서는 형태로 참여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종합하면, 향후에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를 믿고 자신감 있게 여러 도발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으며, 설령 7차 핵실험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한 추가제재의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두워진 북한 비핵화 전망   둘째, 북한은 2017년 이미 일정한 양의 핵무기와 ICBM 같은 운반체를 갖추고서 사실상의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초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채택된 이른바 “정면돌파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한과 미국 모두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강공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22년 연초부터 미사일 실험을 연달아 진행하기 시작한 북한은 자신이 정한 시간표를 갖고서 트럼프 시기 공약한 약속들에 구애받음 없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공세적 태세를 명확히 해왔다.   가령, 2022년 1월 20일 김정은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3월 24일 결국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다시 발사함으로써 스스로 부과한 모라토리엄을 파기해 버린 데 이어, 4월 25일 김정은은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급기야 9월 8일 최고인민회의는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하여 선제 핵공격과 “비대칭 확전 전략”을 암시하는 매우 공격적인 핵 독트린을 대내외에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핵전략의 변화가 전술핵과 같은 소형 핵무기 개발과 결합할 경우, 향후 남한과의 분쟁에서 북한이 핵을 실제 사용하는 상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사태전개로 여겨진다.   2022년 9월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핵을 “국체”라고까지 정의하며 “흥정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외교 목표를 정권교체라고 적시한 마당에 당분간 북미간 혹은 남북간에 진지한 협상이 진행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동안 북한은 빗장을 걸어 잠근채, 한편으로는 남한과 미국의 정권교체를 기다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방공업혁명 2차 5개년 계획에 따라 “전쟁 억제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고 국가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 전술적 수단의 개발 생산을 더욱 가속화”하면서 비핵화가 아닌 군축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의 변화조짐?   2021년 4월 30일 발표된 바이든 정부의 공식적인 대북정책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기존의 자유패권적 관점에서 국제안보규범의 위반자로 규정되는 북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서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유도하겠다는 전통적인 단극시대의 대북정책노선이 고수되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세심히 조정된 실용적 접근법(calibrated and practical approach)”이라 이름 붙은 바이든 시대의 대북정책은 트럼프식과 오바마식을 모두 뛰어넘은 제3의 독트린이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달리 2022년 말의 시점에서 평가해 볼 때, 사실상 전전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잣대로 북한을 타자화시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도 대중 전략경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이슈들에 밀려 북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에너지가 미국 내에 결핍된 상황이다. 비록 어떤 대화에도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개방적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제스쳐를 반복적으로 내비치고는 있지만,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평양을 비핵화 협상에 유인할 구체적인 인센티브가 결여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워싱턴은 지난 11월 미중정상회담의 사례와 같이 궁여지책으로 문제를 우회해 베이징이 북한문제의 해결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역내에 미군의 전력자산을 더 배치할 수 있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도리어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 안보우려를 고려해야 한다면 응수하는 형국이다. 결국 이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20년대 초반의 시점에서 북핵문제는 갈수록 두 초강대국간 패권경쟁의 하부 이슈로 편입되고 있으며, 이에 문제의 해결이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는 암울한 사실이다.   이와 같이 변화된 전략적 조건 속에서 미국 내에서도 북한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어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특히 현실주의적 “군축학파(arms control school)”의 부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자들은 북한을 현실주의의 한 행위자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일종의 전략적 공감대(strategic empathy)를 가진다. 즉 북한을 홉스적 무정부 상태에 있는 하나의 정상 국가로 보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핵무기는 안보 딜레마에 처한 북한의 게임 이론적 차원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전형적인 무정부적 상황에서 안보 딜레마에는 미국과 북한 모두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북미 간에는 협상이 필요하다.   현실주의자들의 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냉전 때는 소련과, 탈냉전기에는 중국과 공존하듯이 불유쾌하지만 북한에 핵을 남겨두고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2차 공격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해 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북미 사이에 일정한 타협을 이루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CVID, FFVD, 레짐 체인지 같은 탈냉전기 자유주의에 기반한 해법은 모두 불가능하며 북한이 핵을 계속 가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주류 정책가들이 꿈꾸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은 이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리수를 유도해 위험한 상황을 낳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타협을 위해 미국이 종전 선언 등의 일정한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조치를 통해 북한이 갖고 있는 안보 딜레마에 관한 생각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젠킨스(Bonnie Jenkins)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2022년 10월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핵 정책 컨퍼런스에서 북한과 군축과 관련해 다양한 논의를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점이다. 젠킨스 차관은 북미양국이 “마주앉아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군축은 언제든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단지 군축뿐 아니라 위협 감소, 전통적인 군축 조약으로 이어지는 모든 것, 군축의 모든 다른 요소들에 대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물론 국무부는 바로 다음날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같은 군축협상론을 일축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대북정책목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성 30년간의 비핵화 패러다임을 벗어나 군비통제와 같은 마이너한 접근법에 대한 논의가 미국의 관가에서 공개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며, 향후 대북정책에 대한 워싱턴의 담론지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추적 관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   ※ 본 논평은 “Divining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in a Multipolar World”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차태서_2018년부터 현재까지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 연구원, 공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전임강사, 중앙대학교 국익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연구 성과로는 “Whither North Korea? Competing Historical Analogies and the Lessons of the Soviet Case”, “Is Anybody Still a Globalist? Rereading the Trajectory of US Grand Strategy and the End of the Transnational Moment”, “Republic or Empire: The Genealogy of the Anti-Imperial Tradition in US Politics” 등 외교정책과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글들이 있다.

차태서 2022-12-19조회 : 8433
스페셜리포트
[미중 핵경쟁 스페셜리포트] ② 미국의 통합억지와 신형 저위력 핵무기의 등장: 제한적 핵무기의 한반도 사용 가능성

Ⅰ. 현황 분석   바이든 행정부는 21세기의 변화하는 안보환경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전략으로 통합억지 개념을 제시하였다. 2021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리라 대화에 참석한 오스틴 국방장관은 통합억지 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첫째, 통합억지는 동맹국 및 파트너와 함께 군사뿐 아니라 비군사 영역의 모든 수단을 활용한다. 통합억지는 기존의 전통적 억지 수단뿐 아니라 새로운 수단을 구축하고, 이를 모두 새롭고 네트워크화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함께 사이버 및 우주 영역 등의 새로운 영역을 포함한 억지력, 탄력성 및 팀워크를 강화코자 한다. 둘째, 통합억지는 대만이나 한반도 유사시 전면적인 군사충돌뿐 아니라 남중국해와 같은 제3국이 연관된 소위 “회색 지대”에서의 무력분쟁을 포함하는 다양한 군사적 상황전반에 걸쳐 강압과 침략을 억지하기 위해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동남아 국가들의 지역 역량을 강화하고 해양 영역 인식을 강화하는 한편 강화된 합동 군사 훈련을 통한 상호 운용성 개선을 추구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통합억지는 기존의 핵 억지를 넘어서는 보다 광범한 의미의 억지 전략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는 핵 억지를 포함하지만, 전통과 비전통 군사위협 부분에서의 위협에 대한 억지를 포괄한다.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이듯 기존의 적대 국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이나 미국의 우방국들에 대한 재래식 침공이나 분쟁 가능성,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전면전을 회피하기 위한 국지적인 회색지대 도발이나 제한전에 관한 억지를 포함한다. 또한 공해상의 항행의 자유에 대한 위협은 물론 사이버나 우주 등의 새로운 영역에서의 군사 도발이나 위협에 관한 억지 역시 포함한다. 따라서 핵억지는 물론 재래식, 비 재래식 위협과 다양한 영역에서의 모든 위협에 대한 억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통합억지이며 여전히 핵억지는 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즉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핵보유국이 자신들이 가진 핵 억지력을 활용하여 재래식 분쟁이나 침략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까지 통합적으로 억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통합억지의 또 다른 의미는 적대세력에 대한 억지를 위해서는 미국만의 억지력이 아니라 동맹들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첫째, 실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적대세력의 도발이나 침략이 미국 본토나 미국의 직접적인 이해지역에 대해서보다 중러 자신들 주변의 영토나 이웃 국가와의 분쟁상황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국과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나토 동맹국인 폴란드나 핀란드와 같은 여타 인접국과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의 군사분쟁도 양국 간의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대만이나 남중국해 혹은 동중국해의 중국 주변국들에 대한 도발과 군사충돌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들은 대부분 비핵국가들로 이들에 대한 도발은 중국의 핵억지력을 통해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애매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우려하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들 주변국들에 대한 미국과의 효과적인 군사협력을 통한 ‘통합 억지’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핵무기 중심 억지에서 기타 재래식 영역의 억지를 통합적으로 접근함에 따라 선제 핵 사용의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Ⅱ. 뇌관으로 발전 가능성 및 충돌 시나리오   바이든 행정부의 통합억지 개념은 냉전 시기 미소 양국 간의 핵 억지에 기반한 강대국간 전통 억지개념을 확장하여 미국의 동맹국들과 주변지역, 그리고 우주와 사이버를 포함한 신흥영역에서의 모든 수단을 동원한 포괄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시에 핵억지가 통합억지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힌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아닌 주변 지역에서의 제한된 핵 사용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즉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나토의 군사 개입을 억지하기 위해 전황이 불리한 경우 우크라이나에서의 핵 사용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위협한 것이다. 미국 또한 이에 맞서 이미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미국의 핵전력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을 추구하였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핵무기에 대한 초기의 회의적 입장에서 선회하여 핵전력의 ‘필요불가결성’을 인정하는 정책 전환의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 발간 이후 차세대 대륙간탄도탄(GBSD: Ground Based Strategic Deterrent)을 개발하여 노후화된 전략 핵전력 교체를 추진하였다. 또한 낙후된 전술핵무기를 교체할 신형 저위력 핵무기를 개발하여 약화된 핵 억지 및 확장 억지의 신뢰성 보완을 꾀하였다. 여기에는 2010년대 러시아가 전술핵 사용을 위협하며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고, 북한 및 이란과 같은 새로운 핵보유국이 등장한 배경이 있다. 소위 ‘회색지대’에서 억지의 실패 사례들을 경험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핵을 기반으로 한’ 억지의 새로운 필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제출한 2022년 국방 예산안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저위력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을 대부분 유지하였다. 전략핵무기와 관련한 차세대 ICBM 개발 사업에서도 오히려 트럼프 시기 2021회계연도 집행된 14.5억 달러 대비 약 11.5억 달러, 약 1.8배가 증액된 26억 달러가 편성되었다. 핵실험 및 시설 관련 예산도 전년도(2021회계연도: 14억 달러) 대비 2%, 3억 달러가 증액된 17억 달러로 편성되었다. 코로나19 등 국방예산의 삭감 압박 속에서 핵무기 부분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 또는 증액하였다는 점에서 원래 핵전략 축소를 지향하던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 핵전략 기조를 상당 부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위력 핵무기의 등장은 제한된 형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이면서 한반도 군사 충돌의 새로운 위험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국 핵전략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최근 위성 감시체제와 미사일 타격 기술의 획기적 발전은 기존에 현실적이지 않았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기한다. 미국의 핵 전문가 리버와 프레스 교수에 의하면 [1] 신형 인공위성의 레이더 추적 장치의 발전과 드론을 활용한 정찰 감시 활동 기술을 활용할 경우 북한 전역의 주요 군사시설이나 북한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주요 핵시설이나 발사용 이동차량을 포함한 주요 핵무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탐색하고 조준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타격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여기에 핵무기의 소형화와 오차 범위 내의 정밀타격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북한의 지하 깊숙이 위치한 핵시설이나 무기에 대한 효과적인 타격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의 대형 핵폭탄이 아닌 소형 핵무기를 활용한 정밀타격이 가능해짐으로써 핵 낙진으로 인한 광범위한 방사능오염이나 민간인 희생에 대한 부담 없이 핵 공격이 가능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발표된 <<2018년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선언한 바와 같이, ‘사용가능’하고 ‘유연한’ 핵 능력으로 신형 3종 저위력(low-yield)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 먼저 약 5~7kt의 위력을 가진 신형 저위력 핵탄두 W76-2를 장착한 Trident-Ⅱ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이 이미 2019년 말부터 대서양에서 운용되는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인 USS 테네시함(SSBN-734)에 탑재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둘째, ‘핵 벙커버스터’라고 불리는 저위력 중력폭탄(gravity bomb) B61-12가 있으며 전투기와 폭격기에서 투하되어 최대 지하 100m에 있는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위력은 최소 0.3kt부터 1.5kt, 10kt에서 최대 50kt까지 가능하다. 이 무기들은 2020년부터 실시한 시험 발사를 통해 한미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 F-15E, F-35A에서 투하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퇴역한 Tomahawk 순항미사일을 재건하여 그 위에 저위력 핵탄두를 탑재하는 신형 핵순항미사일(SLCM)이 개발 중에 있으며 향후 7년에서 10년 이후 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저위력 핵무기의 개발은 세 가지 형태의 한반도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1. 단기 시나리오: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 전개 (제한적 북핵 시설 타격가능성)   위와 같이 공중, 지상, 해상 등에서의 투발 수단이 다양화된 신형 저위력 핵무기는 기존의 전술핵무기에 비해 유사시 다양한 위력의 핵탄두를 필요한 지역과 전장에 신속히 투입될 수 있다. 즉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과 활용성이 높아진 것이다. 기존의 전술핵무기는 수십 kt 내외 위력의 핵탄두를 순항미사일, 어뢰, 야포, 중력 폭탄과 같은 단거리의 투발수단으로 활용하여 그 활용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또한 이들 신형 핵무기는 단순히 위력을 작게 개량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목표 타격의 정밀성을 높임으로써 그동안 실질적인 핵 사용을 제한해왔던 대규모 살상, 낙진과 같은 인명피해에 따르는 안전 문제를 해소하였다. 미국 국방부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 내 다섯 곳의 핵시설을 파괴하기 위하여 기존의 W88 전략핵탄두(475kt)가 탑재된 Trident-Ⅱ를 투하할 경우 광범위한 핵 낙진으로 남북한에서 200~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반면 저위력 벙커버스터 B61-12을 투하할 경우 100명 미만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고위력 재래식 벙커버스터에 비해서도 훨씬 가벼운 중량으로 파괴력을 제공하여 일반 전투기 등을 활용한 다양한 투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내부에 GPS를 장착하여 정밀폭격이 가능한 핵 유도폭탄(nuclear-guided bomb)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결국 미국의 신형 3종 저위력 핵무기는 최소 0.3kt까지의 위력과 정밀성을 기반으로 한 다양성, 전략적 전술적 작전이 가능한 첨단 핵전력을 제공한다. 이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거론되었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예방 선제타격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 준다. 즉 북한의 핵 위협이 미국 본토에 심각한 실제적 위협으로 발전되기 전에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을 고려할 경우 실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동시에 그 과정에서 우려했던 대규모 인명피해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의 대응 보복으로 인한 전면전 확전 가능성이 여전히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북핵 시설에 대한 타격은 여전히 그 가능성이 낮다. 그럼에도 트럼프식의 코피 타격을 통한 북한 지도부의 핵 도발 의지를 꺾기 위한 보여주기 식의 제한된 핵공격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 중단기 시나리오: 북한 무력도발과 한국의 보복 억지 (우발적 핵 사용 가능성)   신형 3종 저위력 핵무기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함의는 ‘제한된 핵사용’을 기술적으로 현실화하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의 공격을 유사시 즉시 무력화할 수 있음을 인지시켜 공격을 방지하는 거부적 억지(deterrence by denial)와 함께, 공격 시 2차 보복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응징(보복)적 억지(deterrence by punishment/retaliation)가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있다. 그동안 기존의 핵무기는 확전 가능성, 대량살상, 낙진과 같은 오염문제로 유사시 실제 ‘사용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핵 위기와 같은 고강도 군사위협에서 핵 사용은 오히려 ‘최후의 보루/수단’으로 인식되며, 사실상 핵을 기반으로 한 억제력의 신뢰성은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형 3종 저위력 핵무기는 대량살상이 동반되는 기존 핵전력과 달리 발전된 정밀성과 제한된 위력으로 보다 ‘사용가능한’ 새로운 능력(capability)을 제공함으로써, 적국의 도발에 대한 핵 보복 의지 및 가능성을 확실히 전달(communication)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공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손해가 클 수 있다는 것을 재인식시킴으로써 억제의 신뢰성(credibility)을 높여 준다는 것이다. 특히, 낙진이나 대규모 살상 없이 ‘사용가능한’ 저위력 핵무기는 유사시 적의 수뇌부에 대한 참수 작전과 외과적 수술(surgical strike)을 가능케 함으로써 북한의 사전공격의 심리적/군사적 비용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현재 북미 핵 협상이 중단된 가운데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위시한 다양한 군사도발을 할 것이 예상된다. 과거 연평도 포격과 같은 남한에 대한 지역적 군사도발의 경우 한국 정부는 이미 원점 타격이나 3배 응징 등의 적극 억지 전략을 공언하고 있다. 특히 현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제타격을 언급한 만큼 북한의 군사도발은 한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유발할 것이다. 물론 당장 이러한 저위력 핵무기가 한반도에 배치되거나 사용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적어 보인다. 다만 향후 남북 간 군사 긴장 상태가 지속되거나 더욱 악화될 경우 그 배치와 사용을 둘러싼 논란이 미군 전술핵 재배치의 연장선에서 심각하게 논의될 수 있다.   3. 중장기 시나리오: 북한의 전술핵무기 개발 (북한의 제한적 핵사용 가능성)   앞서 언급한 리버 교수는 올가을 서울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서 한미 동맹의 압도적 재래식 군사력에 열세를 느낀 북한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북한의 핵 개발 이유가 한미 동맹의 압도적 재래식 전력우위에 기인하는 합리적 선택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만일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대규모 반격작전이나 이를 위한 미군의 대규모 증원을 막기 위해 남한이나 일본의 주요 도시나 군사 시설에 대한 핵 무력 사용 불사를 위협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제한된 형태의 전술핵을 시범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핵 확전 전략(Nuclear Escalation Strategy)은 미국이 냉전 중 유럽에서 소련의 압도적 재래식 전력에 대한 대응으로 사용한 전략과 같으며 현재 파키스탄이 인도에 적용하거나 러시아가 나토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에 핵무기 사용을 경고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한다. 리버 교수는 북한이 실제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핵미사일을 보유하게 된다면 북한의 한반도 전술핵 사용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 전망한다. 이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확장 억지를 불신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지의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남북 간에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재래식 전쟁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교착상태로 만들기 위한 북한의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여전히 심각한 위협으로 제기된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 핵 전문가인 카네기재단의 앙킷 판다 연구원은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다양한 목적을 위한 전술핵무기 개발을 언급한 것을 주목하고 이는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인다고 경고하였다. 실제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2022년 9월 8일 최고 인민 회의를 열어 핵무력 정책의 법령화를 공포하여 핵보유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였다. 나아가 핵 무력 사용에 관한 5개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핵무기 사용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5개의 조건 중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를 제시한 것은 리버 교수가 말한 전술핵무기의 사용 가능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불발 이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더불어 여러 종류의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핵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징후이다. 더 이상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고 및 비핵화를 위한 담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1] Keir A. Lieber, Daryl G. Press. 2017. “The New Era of Counterforce: Technological Change and the Future of Nuclear Deterrence.” International Security 41, 4: 9-49. DOI: https://doi.org/10.1162/ISEC_a_00273     ■ 저자: 신성호_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미국 터프츠 대학교 플레쳐 스쿨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분야는 군사안보, 미국 외교 정책,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정세이며, 저서 및 논문으로는 <전략적 경쟁시대 한반도 안보정세 분석 전망> (2021, 편저) , “한반도 미사일 방어의 딜레마: 북핵과 미중 핵 경쟁 사이에서,” (2021, 국제지역연구), “US Coercive Diplomacy toward Pyongyang: Obama vs Trump” (2020,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보조원     For inquiries: 02 2277 1683 (ext. 208) | hspark@eai.or.kr  

2022-12-15조회 : 10071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MZ세대 지도자 김정은 집권 10년의 변화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김정은 집권 10년 차가 되는 2022년은 북측 표현으로 소위 꺾어지는 해에 해당한다. 김정은이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그의 조부와 부친 생일이 110년, 80년이 되는 해로 기념되는 올해는 정치적 의미가 큰 해로 기록되는 중이다.   김일성의 카리스마가 세습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측 정권에서 예상했던 대로 김일성-김정일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는 ‘수령’의 지위에 있는 김일성의 생일 4월 15일까지 지속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김일성-김정일을 칭송하는 공연 무대들이 줄을 이었고, 각종 표창과 군 승진, 기념주화, 기념 우표 제작 등이 진행되었다.   다만 김정은 시대의 색깔이 확고해진 2022년 현재 이전과 달리진 풍경들도 포착되고 있다. 가장 확연하게 눈에 띄는 변화는 김일성화, 김정일화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2019년을 마지막으로 김일성화 축전․김정일화 축전이 자취를 감추는 등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상징은 축소되는 대신 국가에 대한 상징화가 강화되고 애국주의와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강조되고 있다.   MZ세대 지도자 김정은의 취향에 맞게 그 빈자리를 장미꽃이 채우고 있다. 장미에 대한 종자 개발과 보급사업은 김정은 정권 내내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의 지향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10가지 국가상징(국호, 국장, 국기, 국가, 국어, 국화, 국수, 국조, 국견, 국주)을 발표하는 동시에 애국주의 고취와 제도화된 기구를 통한 통치의 흐름이 이어지는 중이다.   또 한 가지는 과거에 김일성의 집무실로 이용했던 혁명사적 건물 5호 댁을 허물고 《경루동》의 보통강강안 다락식주택구를 건설한 사례를 들 수 있다.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군부대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승마클럽과 비행장 부지를 개조하여 대규모 온실농장을 건설한 사례는 지속되어 왔지만, 이번에 김일성 혁명사적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주택을 건설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어 보인다. 현실 수령 지위에 오른 김정은이 김일성의 혁명사적 건물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북측 전역의 수많은 김일성-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의 혁명 사적들에 대한 개발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일성-김정일 선대 수령과 수령의 지위에 오른 김정은의 현지 지도는 수없이 이어져 왔으며, 이들의 손길이 닿은 장소나 물건 등은 보존 대상이 되어 자원의 비효율을 초래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북측 당국의 이와 같은 인식은 수령의 상징화에 대한 과거 언론 동향을 통해서도 드러나게 되는데, 김정은이 2019년 제2차 전국초급선전일꾼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의 가리게 된다.”는 것을 경계한 바 있으며, 2020년 5월 20일 자 로동신문 《축지법의 비결》 제목의 기사에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의 투쟁을 “사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는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령의 혁명사적에 대한 개발가능성이 김일성의 카리스마에 뿌리를 둔 지배체제의 근본적 변화로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지만, 미세한 변화도 나타나는 중이다.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를 복원한 것을 시작으로 북측 내 주요 정책은 제도화된 당대회와 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김정일 시대 고착화된 현지 지도를 통한 통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김정은 집권 초기 집중되다가 이후에는 제도화된 기구를 통한 통치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집권 이래 2017년 중반까지 김정은의 공장, 기업소 등 경영 현장 현지 지도(준공현장 제외)는 더 이상 관측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자체의 경영전략, 기업전략에 따른 경영을 명문화한 ‘기업소법(2010.11.11 제정/ 2013.11.05./2015.05.21/2020.11.04 개정)과도 연관이 있다. 국정 지도자의 경영 현장 방문과 그에 따른 발언이 기업 자체의 총적 방향 또는 총적 목표(비전), 그에 따른 하부 단위에서의 실행 목표와 단계별 과업 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도화된 기구와 제도를 통한 통치는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는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 이어 5년마다 개최되는 당대회 복원의 신호탄이었으며, 2022년 신년사 또한 제도화된 통치기구인 당 전원회의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2021년 당대회에서는 《경제발전의 중심 고리 역량을 집중하여 인민 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인민 생활을 향상할 수 있는 토대 구축》을 경제부문 총적 방향(비전)으로 설정하였으며, 나아가서 2021년 6월 당 제8기 제3차전원회의 당 전원회의에서는 《획기적 발전의 5년과 대변혁의 5년》을 공식화하고, 15년 안팎의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라는 중장기 구상을 공개함에 따라 5년을 주기로 도약함으로써, 15년 안팎에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표명하였다.   요컨대 MZ세대 지도자 김정은의 행보는 체제 내구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으며, 제도화된 기구를 통한 통치로 이어지는 중이다. 북측 관영매체들에서 흘러나오는 기사의 헤드라인 제목은 그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으로, 김정일-김정은 집권 초기 모든 행위의 중심은 수령에 있었지만 정권 안정기에 접어든 현재 제도화된 기구의 행사 개최 또는 폐막이 현실 수령 김정은의 참가보다 우선한다. 예컨대 김정일 집권기였다면, 당대회 또는 당 전원회의에 앞서 김정일 동지가 당대회 또는 당 전원회의에 참석하였다는 내용이 기사의 중심에 있었다면, 김정은 집권기 중반에 진입한 현재는 당대회 또는 당 전원회의 개막/폐막의 내용이 김정은의 참가 여부에 우선하여 기사의 제목이 작성된다.   이 밖에도 제도화된 통치기구 및 법령제정에 따른 규격화 및 표준화, 재자원화, 산업미술과 상표와 관련된 흐름은 북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12월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적인 MZ세대 지도자 김정은이 이끄는 북측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   ※ 본 논평은 “A Decade Under the Millennial Supreme Leader Kim Jong-Un”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나정원_2004년 북한학 입문 이후 북측 문헌과 영상, 사진 자료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연구하여 2018년 박사의 학위를 받았다. 경영학적 관점과 소유(Possession)의 시각에서 북측 정권을 조망한다. 주요 연구로는 김정은시대 북한의 경영학 연구동향(Current Research Trends in Management Studies in North Korea during the Kim Jung Un`s Era), 북한 김정은의 기업가정신과 혁신정책 연구(A Study on 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 Policy of North Korean Kim Jong-un), 소유의 변증법적 논의에 의한 미래 적 소유잠재성(Future Possession Potential According to the Dialectical Discussion of Possession) 등이 있다. 현재 SPN 서울평양뉴스에 재직 중이다.

나정원 2022-12-12조회 : 8761
멀티미디어
[Global NK Interview] 북핵 고도화시대 한일 안보협력의 미래

니시노 준야(Nishino Junya)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이 자체적인 방위 태세와 미일 동맹 강화,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점증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북한이 국방발전 5개년 계획과 핵무력정책법을 발표하고, 지난 10월 전술핵 운용부대의 실전훈련을 단행한 것은, 김정은 정권이 국방력 강화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니시노 교수는 앞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 무척 어려워졌다고 보고, 한미일 안보협력은 우선 대북 억지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비핵화 로드맵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대북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I. Japan's View of the North Korea Missile and Nuclear Threats   • On October 4th, North Korea tested an intermediate-range ballistic missile that flew over Japanese airspace. In response to Pyongyang’s increasing nuclear threats, professor Nishino Junya claims that “Missile defense system may be insufficient… The move comes as Japan is trying to develop its own standoff missiles, capable of attacking enemy vessels from outside their firing range.” • He elaborates on Japan’s defense policy, which is enhancing Japan’s defensive capabilities, strengthening the Japan-U.S. alliance and expanding cooperation with neighboring countries in the region. Meanwhile, Japan seems to have a fundamental shift in its thinking about a national defense that professor Nishino mentions that “Japan is planning to have revisions to 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done by the end of this year.”   II. Korea-Japan Relations: Strategic Priorities and Historical Issues   •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have been strained over disputes. Professor Nishino says that “Japan welcomes the Yoon administration’s commitment to improvebilateral ties... and after the summer, the Japanese government began showing signs of greater openness towards Korea.” • Yoon administration has recently announced its Indo-Pacific strategy. He mentions that “This leaves room for diplomatic cooperation between the two, in the same breath with Japan’s Free and Open Indo-Pacific Policy line.” • To develop South Korea-Japan relations in a forward-looking manner, he claims that “It is necessary to restore bilateral trust between the defense authorities of the two countries... Ties should evolve and go beyond countering North Korea and should cooperate for a peaceful and prosperous Indo-Pacific.”   Ⅲ. Japan’s Support for the Yoon Government’s Audacious Initiative   • Professor Nishino is pessimistic about the possibility of DPRK’s denuclearization. He mentions that “By implementing the five-year military plan and adopting a new law on its nuclear forces that includes a condition of using nuclear weapons against non-nuclear powers, North Korea seems to boost nuclear capabilities for revising the status quo and buttressing its bargaining power against Washington.” • Professor Nishino highlights the need for South Korea-Japan coordination to strengthen deterrence and prepare a long-term roadmap. In addition, he suggests that “The two countries could deepen diplomatic ties between them based on their new Indo-Pacific strategies.” ■     ■ Nishino Junya_Nishino Junya is a Professor,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Faculty of Law and Politics, Keio University. He received his Ph.D. in Political Science from Yonsei University. His research focuses on contemporary Korean politics, international relations of East Asia and Japan-Korea relations. Previously he served as a Special Analyst on Korean Affairs in the Intelligence and Analysis Service of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06-2007), and was a Special Assistant on Korean Politics at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2002-2004).     ■ Typeset by Junghoo Park, Research Associate     For inquiries: 02 2277 1683 (ext. 205) | jhpark@eai.or.kr  

니시노 준야 2022-12-06조회 : 8053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관계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개월이 경과했다. 초기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는 군사력에서 턱없이 부실함을 보여주었고 의외로 우크라이나는 선전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미 자국령으로 선포했던 헤르손 일부 지역을 우크라이나 군이 탈환하면서 협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 땅에 맞먹는 영토를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협상으로 휴전이나 정전이 성립되더라도 분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팔레스타인이나 나고르노·카라바흐처럼 저강도 분쟁으로 남을 수 있다.   이 전쟁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러시아를 무너뜨리려는 서방의 음모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전쟁 원인을 미국과 서방이 제공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으며, 원인이야 어찌됐든 이웃 나라 국경을 넘어가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푸틴 대통령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푸틴이 옛 소련을 재건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는 견해도 있다. 온갖 페이크 뉴스가 난무하는 지금, 전쟁의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전쟁이 30년 동안 지속돼 오던 탈냉전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전 세계에 밀어닥친 에너지 부족과 식량 위기 사태도 이번 전쟁이 단순히 국가나 지역 차원의 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의 도발과 북·러 밀착   우크라이나 전쟁은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올해 들어서만 30번 넘게 탄도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있는 북한의 행태가 이 전쟁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 강경 입장을 보이는 바이든 미 행정부와 한국의 윤석열 정부, 한동안 중단됐던 한미 연합 훈련 재개가 미사일 도발의 주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한 미·러 갈등이 북한의 이례적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김정은 조선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대미 적대감을 불씨 삼아 러시아와 관계 밀착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약과 무기, 군복까지 제공받았다는 보도도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를 미국이 획책하는 정보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가 눈에 띠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힘들다.   일단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을 때 세계 언론은 크게 놀랐다. 러시아의 군사 행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친러 국가로 분류되는 중국이나 이란, 인도조차도 러시아가 벌인 전쟁에 중립적인 입장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내 친러파 세력이 세운 루한스크 공화국과 도네츠크 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한 나라는 거의 없다. 러시아를 제외하면 시리아 정도다. 북한이 여기에 포함된다. 더 나아가 2022년 9월 푸틴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네 개 지역, 즉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를 러시아 영토로 합병한다고 선언했을 때 북한은 즉각 이를 지지하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다. 전쟁 발발 이후, 유엔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러시아는 새로운 대북 제재 도입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서로를 감싸는 데 열심이다.   김정은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과거와 같은 동맹은 아니더라도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까지는 끌어올릴 계산인지도 모른다. 중국과 러시아가 준동맹 수준으로 국가 관계를 밀착시켜온 사례를 모방하고 싶을 수도 있다. 중·러 두 나라는 서로 지정학적 이해와 국익이 완전 일치하지는 않지만 공통의 목표를 위해 상호 연대와 전략적 밀착을 강화해 왔음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러 공통의 목표는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다극적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끝나야 하고 또 그 끝이 머지 않다고 본다. 군사력에서는 여전히 세계 2위의 자리에 있는 러시아와, 경제력으로 G2 반열에 오른 중국이 힘을 합친다면 탈냉전 이후 30년을 지배하던 미국 단극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게 중·러 두 나라 정상의 일치된 인식이다.   김정은은 밀착된 중·러 관계 속에 북한도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 국가 규모나 경제력에서 턱 없이 부족한 소국이지만, 북한은 핵 무력을 법제화하면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2018년 1월 푸틴은 김정은을 “유능하고 성숙한 정치가”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푸틴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김정은이 핵·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면서 미국에 압박 수위를 높이던 상황과 관련해 기자단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는 김정은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략적인 과제를 달성했다. 핵탄두를 갖고 있고, 사실상 전 세계 어디든 잠재적 적대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정거리 만3천 킬로미터짜리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틀림없이 유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성숙한 정치가다.” 그때로부터 두 달이 지난 2018년 3월 대통령 의회 연두교서에서 푸틴은 미국을 핵 공격하는 시뮬레이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미국과 서방을 비난하며 “아무도 우리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들어야 할 것”이라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푸틴의 당시 발언 그리고 이후 전개된 러시아와 미·서방 간 갈등,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흐름을 보면, 푸틴이 김정은식 벼랑끝 전술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또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이례적인 연쇄 도발이 단지 미국이나 한국만 겨냥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에 자신의 결기를 보여주려는 김정은의 전략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북·러 관계의 가능성과 한계   사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다. 그가 대통령직에 오른 첫 해에 북한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나라가 혈맹으로 불리던 냉전 시기에도 소련 정상이 북한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푸틴은 소련이 사라지면서 러시아가 세계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전략적 자산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북한은 회복해야 할 지정학적 자산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북한을 챙기기보다 한국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소련의 지원이 끊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로 난국을 타개하려 시도했고, 유엔과 미국은 대북 제재 강화로 응수했다. 북한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가 북한과 관계를 회복하려면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 정상화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는 북·러 협력에 최대 걸림돌로 남아 있던 북한의 채무를 탕감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014년 러시아 의회 하원은 북한이 과거 소련으로부터 빌렸던 11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를 탕감하고 나머지 10억 달러는 20년 거치로 상환받는 협정을 비준했다.   또 러시아는 2001년부터 이른바 남북러 삼각 경협을 남북한에 제안해 왔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러시아 가스관 그리고 송전망을 북한을 경유해 남한까지 연결하는 거대 구상이었다. 러시아는 남북러 삼각 경협이 성사되면 러시아는 물론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2011년 8월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해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남북러 경협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도 러시아의 제안에 관심을 보이면서 역사적인 경협 프로젝트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은 좀처럼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유엔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특히 2016년 1월 북핵 4차 실험 직후 유엔의 대북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핵 실험에 반대하고 대북 제재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남북러 삼각 경협을 살리기 위해 제재안의 수정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러나 러시아의 노력이 사업 재개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2021년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북 제재가 아닌, 북한의 안전 보장 여건을 조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러 3각 경협이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밀착이 강화되면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이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북·러 경제 관계는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며, 두 나라 경제 사이에 내재한 구조적 한계는 좀처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양국 사이에 경제 호환성이 낮아 북한이 러시아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경제적 카드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양국 무역 규모도 매우 작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때처럼 무상 원조에 기반한 대북 경제 관계로 회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제재 압박 속에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하지만 북·러 관계가 강화되면 러시아가 얻을 이익보다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 입장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러시아 역시 2022년 1월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에 중국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대북 비난 결의나 신규 대북 제재 결정을 번번히 저지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에 대한 지지가 직접 자국과 관련되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에 상징적 연대를 표시한 셈이다. 이에 반해, 러시아가 북한을 감싸는 행위는 북한에 실질적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외부 압력을 저지한 실력 행사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냉전 때처럼 진영화가 고착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볼 나라는 북한이다.   향후 전망과 제언   향후 북한과 러시아가 어느 수준까지 관계를 밀착해 들어갈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식으로 종결될지 지켜 봐야 한다. 만일 러시아가 전쟁에서 참패하고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에 빠질 경우, 북한에 대한 지원 양상도 크게 바뀔 것이다. 또 미·러와 미·중, 중·러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중·러 연대는 여전히 견고한 듯 보이지만, 중국이 향후 러시아를 어떻게 대할지가 북·러 관계를 예측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는 상황을 중국이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탈냉전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동북아 국가들 간 갈등이 진영화와 신냉전 양상을 보이는 지금,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러시아 관계도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동안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과 남북러 삼각 경협을 지렛대로 삼아 북핵 문제 해결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끌어내려던 한국의 대러 외교 기본 틀은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 한국이 북한 문제, 특히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사안에서 러시아와 협력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북핵이 주는 위기보다 미국으로부터 오는 지정학적 도전을 더 큰 위협으로 본다. 러시아가 굳이 북·중·러 진영을 굳히기 위한 전략을 노골화 하지 않더라도 북한과 러시아는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미 견제라는 공통된 전략 목표 아래 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며, 이는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추진에 큰 장애로 작용한다.   하지만 어려워진 여건 속에서도 한국은 북핵을 논의하는 장에서 러시아를 배제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북핵 문제의 다자적 해결은 러시아의 일관된 입장이며, 러시아의 지지 없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비핵화 의지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러시아 측에 이해시키기 위한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한국의 통일·대북 정책 기조여야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다. 5년의 짧은 호흡으로 20년 넘게 변하지 않는 러시아의 긴 호흡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 본 논평은 “The Russia-Ukraine War and North Korea-Russia Relations”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현승수_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의 연구위원이다. 일본 도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유라시아학회 부회장으로 있다. 주요 연구영역은 러시아 및 유라시아 국제정치, 러시아 안보 정책, 북·러 관계이다. 저서로는 『중·러 협력과 한반도 평화·번영』(공저), 『한반도 평화·번영 실현을 위한 국경 협력』(공저), 『동북아평화협력구상과 유라시아 협력 추진을 위한 다자주의적 접근』(공저) 등 다수가 있다.

현승수 2022-11-28조회 : 9075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미국 중간선거 이후 북미관계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올해 미국 중간 선거는 11월 8일에 열렸고 하원 의원 435명을 전원 새로 뽑는 동시에 상원의 1/3인 35개의 상원 의석을 놓고 유권자가 선택하게 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중간 선거에서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석을 잃고 선거에 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양당제를 구축한 이래 링컨의 첫 중간 선거였던 1862년부터 트럼프 중간 선거였던 2018년까지 40차례의 중간 선거 결과 대통령 소속당이 의석을 잃은 경우는 36회에 달한다. 특히 1934년 이후 중간 선거에서 대통령 당은 하원에서 평균 28석, 상원에서 평균 4석을 잃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관건인데 50퍼센트 이하면 대통령 정당이 평균 37석을, 50퍼센트 이상이면 평균 14석을 상실해 온 역사적 추세 또한 있다.   이번 미국 중간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였을까, 의외였을까? 선거를 앞두고 두 가지 가설이 등장했다. 가설 1. 인플레이션과 범죄율, 자동차 기름 값과 국경 혼란 등으로 인해 대통령 소속 정당인 민주당이 전례대로 참패할 것이다. 가설 2. 연방 대법원의 낙태 관련 일방적 결정과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극단주의 후보들을 걸고넘어진 바이든 민주당이 크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합 지역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던 중도층 유권자들과 청년 세대의 투표 참여가 비교적 높았고 이들이 대체로 민주당 편에 섰다는 출구조사가 확인된다. 남아 있는 개표 결과와 상관없이 민주당은 선전했고 공화당은 저조했다는 총평이 가능하다. 결국 정치는 기대의 게임인데 선거 후 바이든은 웃었고 트럼프는 화를 냈다고 한다. 정리해보자면 40년 만에 겪는 최악의 인플레이션 책임을 대통령과 소속당에 묻는 전통적인 중간 평가 의미는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강경 보수로 기운 연방 대법원과 민주주의의 기초를 부정하는 후보들에 대한 반발과 응징이 이번 선거의 핵심 줄거리였다. 물론 선거 공정성이라는 절차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시민들의 관심이 커진 점은 바람직하다. 동시에 경제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하던 심판 민주주의의 역할이 약화된 사실은 둘로 쪼개진 미국 민주주의가 앞으로도 직면하게 될 딜레마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번 중간 선거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2년간의 국정 운영과 더불어 재선 도전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원이 공화당에게 넘어가게 된다면 사실 상원 선거 결과와 크게 상관없이 바이든은 향후 임기 동안 자신의 의제를 입법화하기 어려워진다. 2018년 중간 선거 이후 공화당 대통령 트럼프와 민주당 하원 펠로시는 보호무역 및 중동 평화 등의 영역에서 합의에 성공했다. 달라진 미국이 중시하는 자국 우선주의와 비(非)개입주의가 그 배경이다.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과 공화당 하원 간의 정책 협조 사례는 대통령의 우클릭을 제외하면 훨씬 드물다. 따라서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은 대외 정책으로 관심을 돌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2024년 대선이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후 재선 포기라는 충격적 결정을 했더라면 바이든이 남은 임기 동안 혁신적인 대북 관계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었다. 2000년 당시의 클린턴처럼 다음 선거가 없는 민주당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든과 민주당의 선전으로 귀결된 선거 결과인 만큼 트럼프를 이미 한 번 이긴 전력을 명분으로 재선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렇게 되면 바이든 대통령의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ICBM 발사를 비롯한 북한의 안보 위협이 또다시 현실화되는 경우 선거를 앞둔 민주당 대통령은 강경 대응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진핑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도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현재로서는 바이든이 선제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가 움직여야 하고 선도할 수 있는 시점과 공간일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안보 태세 확립이 최우선 과제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미국 상황을 돌아보면 블링컨, 설리번, 셔먼, 캠벨 등 북한을 잘 아는 바이든의 외교 안보 라인업이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다만 북한에 관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게 워싱턴 외교팀의 문제다. 북한에 대한 신뢰가 워낙 낮은데다 트럼프 식 톱-다운(top-down) 접근에 대한 반감도 크다. 따라서 일종의 집단 사고(group thinking)에 의해 북한 관련 돌파구를 뚫기가 여느 행정부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한편 미국이 과거의 적성 국가들(former adversaries)과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를 해 온 역사가 일종의 주기성(regularity)을 보인다는 측면을 주목할 만하다. 관계 정상화는 주로 대사관 상호 설치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국교 수립으로 이해될 수 있는 관계 개선을 뜻하는데 의회의 사전/사후 승인이 없었고 주로 사후의 의회 독자적인 입장/입법 정도가 있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잘 알려진 예로 미국과 중국의 1979년 관계 정상화 발표는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이에 반발한 미국 의회는 Taiwan Relations Act를 통과시킨 적이 있다.   실제로 트럼프 시기 북미 협상 결렬은 소위 빅딜(Bid Deal)의 비현실성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소위 단계적 접근(phased approach)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북미간의 낮은 신뢰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지면 체계적 이행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빅딜 보다는 단계를 밟는 내용을 포함한 합의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단계적 접근보다는 담대한 접근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북미 관계 돌파구 내용으로는 적어도 워싱턴과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이상은 되어야 의미가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북한 간에 어떤 카드를 서로 맞교환할지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 간에 긴밀하고 지속적인 협의가 절실하다.   ※ 본 논평은 “The Future of U.S.-North Korea Relations after the 2022 U.S. Midterm Elections”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서정건_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대학(오스틴)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미국 의회와 외교 정책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윌밍턴)에서 조교수(2007-2012)를 지냈고 현재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우드로우 윌슨 센터 풀브라이트(Fulbright) 펠로우(2019)와 미국정치연구회 회장(2020)을 지냈고 현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책임전문위원, KBS 객원 해설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공저인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2019)>와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2017)>은 모두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논문인 “The China Card: Playing Politics with Sino-American Relations”는 미국정치학회(APSA) 외교 정책 분야 최우수 논문(2009)으로 뽑힌 바 있다. 이외에 “Vote Switching on Foreign Policy in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미국 중간선거에 관한 역사적 고찰,”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외교의 잭슨주의 전환” 등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서정건 2022-11-21조회 : 8320
논평이슈브리핑
[Global NK 논평] 바이든 정부의 경제안보정책과 한미관계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2017년 미국우선주의를 주창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경제적 효율성보다 지정학을 더 중시하는 기술민족주의(techno-nationalism)/디지털보호주의(digital protectionism)가 대두하였다. 2020년 이후 코로나 19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통신장비, 희토류, 배터리, 의약품을 포함한 첨단 제품의 수입대체를 추구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까지 안보화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탈동조화(decoupling)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은 중국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는 기술을 경제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전략 경쟁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등은 반도체,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전기자동차(EV), 배터리 산업에 대해 수출통제, 수입제한, 투자금지, 인적교류 중지 등과 같은 다양한 제재를 도입하였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각각 자국 내 반도체와 EV 및 배터리의 생산을 증대하는 산업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둘째, 단기간에 자국 내에 독자적인 공급망을 건설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기업의 복귀를 장려하는 리쇼어링(reshoring)뿐만 아니라 동맹국, 동반국, 유사입장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앨라이/프렌드쇼어링(ally/friend-shoring)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유럽과는 무역기술위원회(TTC), 아시아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라틴아메리카와는 경제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 협상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셋째, 미국은 경제안보에 해당되는 첨단 과학기술을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와 사이버 공간에서 증대하는 비자유주의/권위주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자유, 민주주의, 신뢰라는 가치를 과학기술에 투사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규범화가 궁극적으로 발전하면, 디지털 경제와 사이버 공간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될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미 경제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역전쟁 이후 한국의 경제외교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보다 군사 동맹국인 미국에 경사되고 있다. 첫째, 한국은 미국과 수십 년의 군사동맹을 발전시켜 왔다. 둘째, 한국과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핵심 가치와 규범을 공유해왔다. 마지막으로 2017년 사드(THAAD)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증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IPEF와 칩4 동맹에 창립 멤버로 가입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미국에 대한 지지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EV 산업에게 미국의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추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은 이 법안들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과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해야 하게 되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한국 기업의 매출은 감소할 것이다. 또한 대중 의존도를 미국 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바로 낮출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당분간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당면한 문제는 산업별로 차이가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칩4 동맹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국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외국 기업을 국내로 유치해야 한다. 앨라이/프렌드쇼어링의 일환으로 삼성은 텍사스주에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 제재로 한국 기업은 중국의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장비의 교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에 미국이 일 년간 제재를 유예해주었지만, 이런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철수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폭락했기 때문에, 이 두 회사가 중국 시장 포기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감내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   EV 배터리 산업에서도 한미 간 이견은 매우 크다. 한국의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미국의 3대 자동차 기업인 GM, 포드, 스탤란티스와 협력하여 미국의 여러 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조지아주에서 EV 생산공장을 착공하였다. 이런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자동차 회사는 IRA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EV 배터리 보조금은 일정 비율 이상의 소재가 미국이나 USMCA 회원국에서 채굴 또는 가공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될 경우에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의 중국산 양극재, 분리막, 전구물질 의존도는 각각 72.5%, 54.8%, 90% 이상에 달한다.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및 EV 기업의 매출이 줄고 점유율이 낮아질 것이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에도 주의해야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애플과 테슬라는 중국 사업을 확대·유지하는 반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퇴출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 빨리 해소되지 않을 경우, IPEF와 칩4 동맹에 대한 지지는 악화될 것이다.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미국은 한국 기업에게 대미 투자에 대한 적절하고 충분한 보상을 시급히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미 간의 경제적 마찰이 한미 군사동맹에 파급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 확장 억제를 위한 양국의 군사안보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경제안보 차원의 이견이 양국 관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에 양보를 압박하기보다는 양국 사이의 공통분모를 확대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북한은 물론 중국이 한미 간 갈등을 악용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   ※ 본 논평은 “The Biden Administration`s Economic Security Policies and ROK-U.S. Relations”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이왕휘_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과기정통부에 경제안보 문제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연구 주제는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미중 전략경쟁이다. 주요 연구업적으로는 『바이든 시기 중국의 다자외교 전망』, 『 세계 선도국가와 정의로운 전환: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의 국정 방향 』(공저), 『강대국 경쟁과 관련국의 대응: 역사적 사례와 시사점』(공저), 『미중 갈등 시대에 대외 여건의 구조 변화와 대응 방안 』(공저), 『미중 전략경쟁 시대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안보 』 (공저) 등이 있다.

이왕휘 2022-11-14조회 : 9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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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시진핑, ‘일인 지배’의 첫발을 내딛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중국공산당(이하 공산당) 20차 당대회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시진핑이 총서기직에 다시 취임하면서 권력 승계의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권력 승계 모델은 원래 두 가지였다. 첫째는 주요 직위를 순차적으로 이양하는 단계적 승계다. 2002년 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공산당 총서기직을 이양한 이후, 2년 뒤에 중앙군사위원회(중앙군위) 주석을 넘겼다. 둘째는 모든 직위를 동시에 이양하는 전면적 승계다. 2012년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는 시진핑에게 공산당 총서기직을 포함해서 모든 직위를 동시에 이양했다. 그런데 이번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이 모든 직위에 다시 취임하는 권력 연장 모델이 등장했다.   시진핑의 권력 연임은 10년 주기로 최고 지도자(총서기)가 교체되는 기존의 규범(norm)을 파괴한 것이다. 이는 중국 엘리트 정치에 새로운 현상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첫째, 권력 승계의 불확정성이 증가하면서 정치 불안정이 초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권력 승계 문제는 사회주의 정치 체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치는 물론 경제와 사회 등 전 분야에서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개혁기 중국에서 정치 안정이 유지된 비결은 바로 정기적인 권력 교체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규범이 파괴되면서 중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둘째, 최고 지도자의 교체가 중단되면서 새로운 정책이 등장하여 중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10년간의 통치는 성과도 낳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도 낳는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하는 최고 지도부는 성과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집중한다. 이런 방식으로 공산당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이것이 바로 ‘권위주의 끈질김(authoritarian resilience)’의 비결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장점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셋째, 한번 무너진 권력 승계 규범을 다시 수립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공산당은 새로운 권력 승계 규범을 수립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승계할 것인가? 누가 권력 승계의 후보자가 될 것이고, 그런 후보자를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만약 시진핑이 5년 후 혹은 10년 후에도 계속 권력을 유지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진핑이라는 ‘제2의 마오쩌둥’이 출현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강제로 끌어내릴 것인가? 이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공산당 20차 당대회의 두 번째 특징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엘리트 정치의 유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의 엘리트 정치는 집단 지도에서 시진핑의 일인 지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의 엘리트 정치는 크게 집단 지도(과두제)와 일인 지배로 나눌 수 있고, 이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첫째는 권력원(power source)(즉 제도적 권위와 개인적 권위)과 권력 집중도다. 둘째는 지도자 간의 권력관계다. 셋째는 권력 운영 방식이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이와 같은 세 가지의 기준에 변화가 발생하면서 시진핑의 ‘일인 지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첫째, 시진핑은 ‘제도적 권위’에 더해 ‘개인적 권위’까지 획득함으로써 단순히 총서기로서가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작은 2021년 11월 공산당 19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제3차 역사 결의’였다. 이 결의에 따르면, 시진핑은 중국 역사에서 ‘신시대(新時代)’를 개막한 지도자로, 2012년 집권 이후 10년 동안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이는 시진핑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하 ‘시진핑 사상’)을 제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공산당은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을 공식으로 결정했다. 첫째, 공산당은 시진핑의 당 중앙 및 전당의 핵심 지위를 확립한다. 둘째, 공산당은 ‘시진핑 사상’의 영도 지위를 확립한다. 이런 결정을 통해 시진핑은 이제 총서기라는 ‘제도적 권위’에 더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지도자라는 ‘개인적 권위’까지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공산당 20차 당대회의 ‘정치 보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처럼 시진핑은 ‘신시대’를 개척한 지도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함으로써 권력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정당성(legitimacy)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시진핑은 ‘개인적 권위’를 확보함으로써 그 결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시진핑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의 인선 과정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단적으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은 전원 ‘시진핑 세력(習家軍)’으로 충원되었다. 반면 경쟁 세력이었던 ‘공청단파(共靑團派)’ 지도자는 한 명도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임되지 못했다. 24인의 정치국원 중에서도 최소한 12인이 ‘시진핑 세력’이고, 나머지 대다수도 시진핑에 의한 발탁된 인물이다. 이는 시진핑이 인사권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시진핑과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 간의 권력관계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시진핑 본인을 제외한 6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3인은 시진핑의 직속 부하였고, 나머지 3인은 시진핑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 따라서 시진핑과 이들 간의 관계는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중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전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직까지는 마오쩌둥과 다른 지도자 간에 존재했던 ‘군신 관계’ 라고까지 말할 수 없지만, 불평등한 관계가 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셋째, 그러나 권력 운영 방식에서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 결과 시진핑의 ‘일인 지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권력 운영과 관련된 공산당 <당헌(party constitution)>과 당규(party laws)는 이번 당대회에서 수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미래에도 <당헌>과 당규에 따라 엘리트 정치는 여전히 집단 지도 원칙, 즉 집단 결정과 개인 책임 분담의 결합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정책과 인사는 총서기 개인이 아니라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의 심의를 걸쳐 집단적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그렇게 결정된 정책은 지도자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책임지고 집행해야 한다. 결국 권력 운영 방식의 규정이 바뀌지 않음으로써 시진핑의 ‘일인 지배’는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본 논평은 “China Under Xi Jinping’s One-Man Rule”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조영남_ 200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현대중국연구센터 객원연구원(1997-98년), 난카이대학 정치학과 방문학자(2001-02년),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방문학자(2006-07년)를 역임했다. 연구 성과로는 『중국의 통치 체제 1/2』(2022), 『중국의 엘리트 정치』(2019년), Local People's Congresses in China (2009년) 등 모두 17권의 단독 학술서와 많은 학술 논문이 있다. 서울대학교 연구공로상(2007년), 니어(NEAR) 재단 학술상(2008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저술부문)(2020년)을 수상했다.

조영남 2022-11-08조회 : 8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