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식계가 대북 전략 및 북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균형 있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 연구 및 통일전략과 동아시아전략을 복원하고자 EAI는 2018년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구축을 기획하여 웹사이트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Global North Korea (Global NK)는 아카이브 성격의 웹사이트로써, 제재(Sanctions), 관여(Engagement), 자구(Internal Transformation), 억지(Deterrence)로 구성된 4대 대북복합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주요 4개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법을 통해 분류한다. 또한, Global NK에서 제공하는 통계치를 통해 웹사이트 이용자는 주요 4개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및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본 웹사이트는 외부 기관의 북한 관련 발간 자료를 한 곳에 수집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문가 코멘타리(Commentary)를 발간함으로써 보다 분석적이며 전략적인 방식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www.globalnk.org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20호] 북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이동률 교수는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EAI 중국연구패널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정일 연속방중의 의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10년 5월과 8월에 이어 9개월 만인 5월 20일에 다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북중관계에서 1년 사이에 3차례 연속 방문을 통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은 흔치 않지만 선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1950년 한국전을 전후한 시기에 김일성이 3회 연이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중소분쟁이 심화되던 1964년에는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며 5차례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 시기 모두 북중관계 역사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긴박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김위원장이 조급한 여정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연이은 중국방문을 강행한 데에는 분명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과 중국이 안고 있는 현안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되고 있다. 즉 경제지원과 협력, 후계 권력승계, 그리고 북핵 6자회담 재개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들은 앞선 두 차례 방중시 제기되었던 의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경제지원과 북핵 6자회담은 2003년 북핵 위기가 시작된 이후 북중 정상회담의 단골 의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후계 계승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얻을 목적으로 김위원장이 연속 3회 방중했다는 분석도 균형적이지는 않다. 중국은 대만문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기존의 ‘내정불간섭원칙’을 공개적으로 쉽사리 놓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북한 역시 주체 이미지에 손상을 초래하면서까지 공개적으로 중국의 ‘공식적 지지’를 얻고자 무리수를 둔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들 세 가지 개별 현안들이 사실은 하나의 핵심적 문제, 즉 북한 체제의 유지와 안정이라는 사안으로 귀결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번 김위원장의 방중이 이전과 비교하여 같은 듯하면서도 현저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조중 친선과 전통 우의’를 대내외에 유난히 과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위원장은 귀국 후 평양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환영대회를 개최하면서 ‘불멸의 대장정’이라며 방중성과와 ‘조중 친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중관계의 강화를 과시하는데 있어 양국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발견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위원장은 2012년 강성대국의 해를 앞두고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이 문제를 현재 유일한 대안인 중국으로부터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이번 방중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출하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즉 이번 방중을 통해 북중관계가 강화되고 있음을 상호 재확인하는 동시에 이를 적극적으로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관련 당사국들에게 북한과의 관계가 과대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중국정부는 매우 이례적으로 방중직후 바로 한국 등 관련국들에게 회담내용을 브리핑 했을 뿐만 아니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차 아시아안보회의(Asia Security Summit), 일명 샹그릴라 대화(Shangri-La Dialogue)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모험하지 말라고 권고했다我們勸他們不要冒險”고 밝히며 중국이 북한의 자제를 촉구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북중 양국이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관련 국가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내용은 분명 미세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북중관계의 복잡 미묘한 현실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북중관계에서 정상회담의 의미   북중간 상호방문을 통한 정상회담은 북중관계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양국관계의 특별한 전통이 형성된 배경은 오히려 양국간의 내재된 불신의 산물이라는 역설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이후 북한 권력중심에서 ‘연안계’가 숙청되면서 중국의 대북 인적 채널이 사라지게 되자 상호방문을 통한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게 되었다. 중국은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채널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상호방문을 통한 정상회담이 양국관계의 긴밀함을 반증하는 가장 주요한 지표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50년 5월 김일성의 비공식 중국방문으로 시작된 양국 정상간 상호방문외교는 한중수교 이전까지 세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진행되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전후한 시기(1954-58), 1960년대 중반 중국의 문혁시기(1964-1969), 그리고 마오쩌둥毛泽东 사망을 전후한 시기(1976-77)에는 정상간 방문외교가 중단되었으며 이 때는 사실상 북중관계가 소원했거나 갈등 국면에 있었던 시기이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북중간 연례 정상회담 전통은 사실상 크게 훼손되었다. 한중수교 이후 북중간 정상회담은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중할 때까지 사실상 중단되었고, 2000년 및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과 2001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답방으로 정상회담이 재개되었지만 결국 과거와 같은 정례성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북중관계가 비록 2000년대 들어 회복되고는 있지만 과거와 같은 정기적인 정상간 상호방문외교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양국관계가 과거의 특수 관계와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정상회담의 내용 또한 ‘불패의 친선’이라는 외교 수사처럼 확고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보다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줄다리기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03년 북핵위기 이후 북한은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경제지원을 획득하는 통로로 활용해 왔다. 반면 중국은 북한의 북핵 6자회담 참여를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지원을 해왔다. 특히 중국은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북 이후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재가동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북한을 관리하려 하고 있다. 즉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고 판단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북 관여를 통해 북한을 관리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10년 5월 정상회담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양국 협력 5개안을 통해 “내정, 외교의 중대문제, 국제, 지역정세, 그리고 치당치국治黨治國의 경험에 대한 의사소통”을 제의했다.   요컨대 친선을 강조하고 있는 북중관계의 이면에는 여전히 다른 셈법에 따른 양국간의 내밀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김위원장이 ‘중국으로의 경사傾斜’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이면에는 분명 중국에게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게 체제에 대한 지지,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서의 경제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발 불안정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장기적으로 북한체제의 친중국화를 통한 연착륙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은 소모적 지원이 아닌 점진적인 중국식 개혁 개방 모델의 북한 이식을 통한 구조적인 친중국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북중관계의 변화 전망   정상회담 이후 북중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북중관계의 흐름을 다시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연이은 2차례 핵실험 이후 상당기간 소원했던 북중관계는 2009년 10월 수교 60주년 행사차 이루어진 원총리의 북한 방문을 기점으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고조, 한미동맹 강화, 그리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 심화가 역설적으로 북중관계 강화를 촉발하였다. 심지어 일부에서 ‘혈맹관계’ 복원을 제기할 정도로 양국은 전통적 우의를 강조하였다. 이번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 역시 이러한 전반적인 북중관계의 회복 흐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요컨대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와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후계 권력승계를 진행하고 공언한 대로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자 김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현재 유일한 대안인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정치적 지원을 획득하고, 중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국내외에 과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한 것이다. 중국 역시 전략적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안정을 통한 주변안보 환경의 안정화가 임박한 지도부 권력교체와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이를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북중의 전략적 이해타산이 연이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로 인해 북한은 남한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중국이라는 지렛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최근 중국과 북한은 북한체제의 안정이라는 원론에서 분명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이 기반 위에서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조중 친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조율이 쉽지 않은 이해관계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으며 향후 북중관계 성격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흐름들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향후 북중관계는 비대칭적 의존관계가 갈수록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상회동이 이전과 같은 상호방문이 아닌 김위원장의 일방적 연속 방중을 통해 진행되었듯이 북한이 중국에 요청하고 의존하는 불균형 관계가 심화될 수 있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노골적 의존은 부상하는 중국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포착될 것이고, 반면에 중국을 경유해서 북한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입지는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가 모색될 개연성이 있다. 중국이 만일 북한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관리를 통해 북핵문제를 포함한 북한발 안보불안을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면 북핵 6자회담에 대한 중국의 기존 입장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이 향후 북중관계를 주도해 갈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위원장이 지난 2010년 8월에 이어 이번 방중에서도 과거 회귀적인 행적을 보여 주었던 반면, 중국은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 설정을 제시하며 북중관계를 주도해 가고 있다. 지난 5월 방중 때부터 후주석은 ‘치당치국의 경험 공유, 전략적 소통 강화’ 등을 제의하면서 북중관계의 새로운 관계 규범들을 제시하며 양국관계의 발전방향을 주도해가고 있다. 원총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개혁 개방을 유도하며 북한의 체제 변화를 주문해왔다. 이는 현실적으로 북한이 경제지원에 주로 관심을 표명하는 반면에 중국은 경제협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5년부터 소위 3대 경협원칙을 제시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방식의 전환을 모색해오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 직후 북중간 경협 프로젝트인 황금평黃金坪섬 경제구와 나선 특구 개발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정세변화와 한국의 대응   북중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새로운 상황들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5월 30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명박 행정부와의 관계를 끊고 전면공세에 진입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곧이어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경과를 폭로하였다. 북한은 자신이 남북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한국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정책 때문에 전면적 공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북한이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때문에 6자회담이 성사되지 않는 것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북한이 연일 한국을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의 꼬투리를 잡지 않는 것 또한 향후 북한의 전술을 예상케 한다.   한편 중국은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모험적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중국은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량광례 국방부장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견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와 나선 경제무역지대의 착공식을 개최하는 등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간 첫 전략대화를 개최하기도 했다.   미국은 로버트 킹(Robert King) 북한인권특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별도의 문제이다. 미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지난 2007년 2월 6자회담에서 합의한 ‘불능화, 신고 및 검증, 비핵화’의 3단계 절차에 따르려는 가시적인 의지를 보이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만 본격적인 경제 및 외교 관계 개선을 추진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조건을 따르려면 사실상 선군先軍정치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북한 내 새로운 성격의 리더쉽이 등장하지 않는 한 이러한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추구하며 핵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북미간 평화협정과 핵군축 회담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최근 커트 캠벨(Kurt Campbell) 동아태 차관보는 6월 10일 한국방문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대북 경협에 대한 투명성과 조심성을 강조하여 북중 경제관계에 대한 주의를 촉구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처럼 급박하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는 정세에서 한국은 스스로의 원칙론에 갇혀있다가는 자칫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갈수록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 역시 대화를 통한 돌파구 없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강화되는 상황을 마냥 좌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향후 북중관계의 변화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 내면서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 나가야 한다. 우선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한편, 장기적인 대북 관여 전략을 제시하여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에게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는 한편,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장기적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 역시 북한카드만으로는 한반도 안정 및 중국의 영향력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중국에게 북한이 아닌 한국과의 관계 강화가 오히려 중국의 한반도 정책 목표 실현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과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하는 실사구시적인 대중 적극외교가 필요하다. ■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본 원고에 대하여 유익한 논평과 지적을 해주신 서울대학교 하영선 교수님과 전재성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동률 2020-06-04조회 : 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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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15호] 연평도 위기 극복의 대북 복합 전략

하영선 교수는 워싱턴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아시아연구원 지구넷21 회장을 맡고 있다.          대북 복합전략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한국은 대북 군사 대응태세를 강화하고 국제공조의 틀을 견고히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서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 및 방어능력을 강화하며 내년도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한미동맹의 대북 군사전략을 재점검하고, 한미일 삼각협력을 긴밀히 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도 촉구하는 움직임이 뒤늦게 다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연평도 포격의 대응 실패 원인 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군사적 대책 마련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판 전체의 사활을 제대로 읽고 삶의 묘수妙手를 마련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바둑판에서 김정일/김정은 후계구축체제는 최근 우라늄 농축시설의 공개와 연평도 포격의 두 선수先手를 연속해서 뒀다. 향후 한국의 대북 정책은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상황 변화 전체를 조망하는 동시에, 북한의 전략을 앞서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폭력외교와 평화외교의 폭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에 남•북의 갈등과 미•소의 대결이 결합해서 발발한 세계대전 규모의 열전熱戰을 겪었다. 휴전 이후 남•북한은 열전과 냉전 사이에 머무르게 된다. 세계는 1990년대 탈냉전을 맞이하면서 차가운 평화(냉평冷平)를 거쳐 뜨거운 평화(열평熱平)의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열전•냉전•냉평•열평의 바둑판을 최대한 넓게 활용해 왔다. 냉전 기간에 랭군(1983), KAL기(1987)의 테러와 1•21사태(1968)와 울진•삼척(1968)의 비정규전을 벌였으며, 탈냉전기간에도 핵실험과 함께 연평해전, 천안함 격침에 이어 연평도 포격까지 감행했다. 동시에 북한은 휴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평화협정체결의 공세를 계속해 왔다.   최근의 천안함 폭침이후 연평도 포격은 한 단계 높은 국지전 양상의 위험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추가 냉전에서 열전으로 접근함에 따라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일/김정은 체제는 상대적으로 작은 국력으로 신수령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전쟁과 평화의 추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단순히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냉전에서 열전으로 흔들리는 추에서 북한이 왜 기존의 테러전 수준의 공세로부터 한 단계 더 수위를 높였는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북한은 추의 진폭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연평도 포격 사건에 이어 차가운 평화공세도 적극적으로 펼 것이다. 최근의 북한, 미국, 중국 당국자들의 언행을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후계 권력 구축중인 북한에게 한미는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와 한국과의 관계개선(reengagement)을 내걸었다. 그러나 북한은 허를 찌르려는 듯이 정확하게 정반대의 수를 선택했다. 이 수는 제대로 읽으려면 스냅사진처럼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동영상처럼 연속적 움직임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사건 자체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국도 북한을 쫓아 손 따라 두지만 말고 전략적인 선수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왜 추의 진폭을 확대했으며 북한의 핵 없는 생존전략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검토해야 한다.   연평도 위기에서 드러난 바 현재 북한에서는 아버지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에게 할아버지 김일성이래 전해 오는 북한식 정석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벼랑끝 외교’의 정석에 따라서 ‘비핵화’대신 ‘핵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관계개선’대신 ‘관계악화’ 가능성을 더 확실하게 제시했다. 다음 수순은 끌어안기(clinch)의 평화공세로 추의 진폭을 넓힌 다음에 끈질긴 양파껍질 벗기기 전술로 신수령체제를 안전하게 구축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겠지만, 현재 북한 추의 진폭 범위에는 완전한 전면전이나 핵없는 개혁개방이 들어있지 않다.   반면 한국 추의 진폭은 북한에 비해서 너무 좁다는 것이 큰 문제다. 북의 추가 냉전에서 열전까지 폭넓게 움직이고 있는 것에 비해서, 한국은 햇볕정책과 제재의 좁은 폭에서 움직여 왔다. 대북전략의 전체구도는 군사, 외교, 통일의 보다 복합적인 안목에서 짜야 한다. 우선 한반도에서 전면전 직전의 벼랑 끝까지 폭력의 사용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북한이 더 이상 조직적 폭력 수단의 동원을 정책수단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억지(deterrence), ‘방어적 방어’, ‘공격적 방어’의 군사적 능력을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 핵심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이 새로운 수령체제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될 때, 아버지의 선군정치를 그대로 유훈으로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1994년 이후 김정일이 선택한 선군정책의 결과는 북한의 표현을 그대로 빌린다면 ‘인류역사상 가장 힘든 고난의 행군’이었다. 만약 북한의 선군정치를 그대로 이어 받으면 김정은은 첫 고난의 행군보다 몇 배 힘든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김정은 수령체제가 아버지가 남긴 선군정치를 재검토하도록 만드는 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정석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복합수를 궁리해야 하는데, 우선 북한 수령체제가 스스로 핵선군정치가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햇볕정책이나 제재가 이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제3의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의 폭력외교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평화외교 공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미중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복합 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햇볕정책이 제한적 교류협력을 증가시킬 수는 있으나 핵선군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단순히 외투를 벗겨서 되는 것이 아니라 DNA의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는 현재의 김정일 핵선군체제가 새로운 후계체제의 등장을 계기로 핵없는 새로운 생존전략을 추진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북한의 신생존전략은 북한 정치권력의 비선군화가 이루어져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변화와 함께 북한의 비선군 정치체제의 안보를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한 한국, 미국, 중국 등의 복합적 노력이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북한이 신뢰할만하게 대단히 복합적인 보장 장치를 구상해야 한다. 이렇게 북한 비핵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과 함께 북한의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 및 지구적 경제지원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21세기 선진화를 위한 북한 자체와 유관 당사국들의 공진(coevolution)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중 복합외교의 추진   한국의 대북 복합전략 추진에 핵심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대중정책이다. 한중관계가 대북정책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중국은 핵선군정치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북한의 세습 수령체제에게 기본적 소통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늘 북한을 일정 정도 품어왔다.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중국은 동북삼성에 최악의 영향을 미칠 북한체제의 붕괴보다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차악으로서 수령체제의 유지를 선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는 한미일 공조에 못지 않게 한중 협력을 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길게는 경제위기, 짧게는 2010년의 여러 사건들을 거치면서 중국은 자신의 상대적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속에 예상보다 강하게 대미 발언을 하고 있다. 예전엔 미중 간의 국력격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경제발전에 우선 전념하고 국제정치적으로는 조심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유소작위有所作爲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발언의 수위가 높아졌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상대적 국력평가에 자신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국내정치가 국제정치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다. 2012년으로 다가선 권력교체기를 맞으면서 중국은 대외정책에서 조심스러운 선명鮮明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이 커지면서 생기는 자신감을 보다 확실하게 과시하는 것이 권력교체기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중요하며 그 선명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대미 전략이다. 따라서 국내정치적 요구가 국제정치적으로 대미 선명발언을 증폭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이 시기에 미국에 대해 발언 수위를 높이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8년 개혁개방 30주년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이 100주년을 맞는 2021년까지 높은 수준의 소강사회小康社會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금 1인당 소득이 약 4천 달러 정도인데 2021년이면 1만 달러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49년이 정말로 중국이 목표로 삼고 있는 해라는 희망을 표명한 바 있다. 이 때는 단순한 경제목표가 아니라 100주년에 걸맞은 새로운 모습으로서 전세계에 새로운 문명표준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1월에 열릴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를 미국과 중국이 모두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회담이 완전히 결렬되지는 않겠지만 갈등이 아주 거칠게 봉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미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계속 부상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상대적 부상은 생각보다 느릴 것이다. 역사의 큰 물줄기가 변해서 흘러갈 때는 어떻게 자기 조절을 적절하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로서 국가의 위상이 달라진다. 미국은 상대적 쇠퇴의 위기를 뒤늦게 깨닫고 복합화의 세기사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적 복합화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향후 동아시아질서의 변화는 중국이 전망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하기에서는 중국은 아직 선명한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히21세기 동아시아의 신질서 건축하기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의 판 짜기를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참여(engagement)’라는 연설을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의 동아시아 복합정책 이야기다. 미국이 짜고 있는 참여 전략은 군사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훨씬 복합적이다. 기존의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5대 동맹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아세안, 인도, 중국과 같이 부상하는 신흥 중심 국가들과도 우호관계를 증진하고, 전쟁이나 냉전 같은 적대적인 제로섬 관계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국제기구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활동 무대의 폭도 넓혀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3D 즉 외교(Diplomacy), 발전(Development), 국방(Defense)에서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적절하게 배합한 스마트 파워의 구사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아직 냉전시대의 이분법 시각을 완전히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근대국제질서의 기본 원칙인 국가 이익을 위한 권력투쟁과 세력균형의 좁은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만으로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 냉전 시에는 미소가 서로 양분하는 질서였지만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건축되고 있는 신질서는 냉전 질서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이분법적인 분위기가 강한 중국의 동아시아 신질서 짜기는 미국의 보다 복합적인 아시아 태평양 신질서 짜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힘을 모우기 어렵다.   구체적인 예로 중국의 정계, 언론계, 그리고 학자들은 흔히 한국의 지난 정부는 연중聯中이고 현 정부는 연미聯美라고 지나치게 이분법적 분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에는 훨씬 다양한 견해와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오히려 대세의 흐름은 기존의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의 그물망을 더 촘촘하게 짜면서 동시에 한중관계의 새로운 그물망도 넓히려는 것이다. 이러한 연미연중聯美聯中의 노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사고로 21세기 한국을 연미항중聯美抗中의 시각에서 오해하는 것은 중국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에게는 우선 미국과 중국이 갈등보다 협력관계를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중이 냉전적 갈등을 하게 되면 한국은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을 못 벗어나고 있지만, 세계 차원에서 현재의 미중관계는 냉전관계는 아니다. 다양한 갈등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양국의 경제 관계에서 보는 것처럼 상호 협력은 불가피하다. 한국과 중국도 갈라서기에는 이미 너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경제나 투자 측면에서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상대국이 되었다. 한국은 전통적인 연미와 새로운 연중을 함께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중관계가 적대적이 아니라 우호적일 필요가 있다. 만일 중국이 한국에게 전통동맹과 신동맹중 양자택일을 강요한다면 그러한 안목 자체가 중국이 세勢를 불리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현재 이란과 북한과 같은 소수의 열외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를 엮어 보려고 궁리하고 있는데 중국은 아직 이에 비해서 단순하게 판을 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외교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은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중국과의 그물망을 확대 심화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한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을 자신들의 주관적 국가이익에 반해서 움직이게 하기는 어렵다. 18세기 당시 연암 박지원은 유명한 “허생전”에서 ‘북벌론’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혼맥, 학맥, 상맥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청 네트워크 외교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21세기 “연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확대, 심화, 신뢰구축의 3단계 중국 네트워크 짜기를 제대로 추진해서 중국 스스로가 현재의 일국 우선적 국가이익의 시각을 복합화하여 한국,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지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품어나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국론분열의 극복   대북 복합정책의 전략적 선택을 위해서 향후 특히 중요한 것은 대북문제에 대한 국론분열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문제다. 천안함 사건에서 연평도 위기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남남갈등의 수준은 남북갈등의 수준을 방불케 한다. 현재와 같은 국론 분열 상태에서 효율적이고 세련된 대북 복합전략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평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구시대적인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넘어서서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충분히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새롭게 개발해서 현실과 사이버 공간에서 제대로 공론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 한국은 북한 추의 진폭보다 더 폭넓은 전쟁과 평화의 진폭에 대한 복합적 선수先手를 마련해서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그랜드 바게닝 정책은 뿌리 깊은 국론분열의 담론 전쟁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현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북한의 차가운 평화공세가 시작되면 한국의 국론은 또 다시 양분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 냉전과 열전에 대한 대응태세의 강화와 함께 추의 또 다른 진폭에 포함되는 차가운 평화와 뜨거운 평화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북한의 폭력외교를 막는 것과 함께, 한국은 적극적으로 21세기 형태의 평화통일외교를 짜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동시에 사이버 시대의 한국 국론이 어떻게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가를 제대로 파악해서 설득력 있는 담론을 현실과 사이버 공간에서 공론화하는 참신한 발상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논평은 <하영선 칼럼(조선일보 2010년 11월29일)>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동창회보 파워 인터뷰 제93호(2010년 12월 16일)>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하영선 2020-06-04조회 : 8463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12호] 김정일 후계체제 공식화와 한반도의 미래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온 김정일 후계체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9월 28일 북한의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과 그를 보위하는 측근 후견세력이 급부상한 것이다. 북한의 후계체제 향방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것은 그것이 단지 북한 내부의 권력이동 문제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정일 후계체제가 향후 어떤 정치적, 외교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 자체의 미래는 물론 북핵문제, 남북관계, 그리고 동북아 국제질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김정은은 대장의 호칭을 부여받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2인자의 지위에 올랐다. 김정은은 북한의 관영매체에서 4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 다음으로 호명되고 그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화 되었다. 예상보다 빠른 진행이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1974년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지 6년만에야 공개적 활동에 나선 것과도 비교된다. 27일 대장 호칭 부여, 28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임명, 29일 사진 공개 등 고도로 치밀하게 연출된 김정은 띄우기에서는 북한의 조급성마저 엿보인다.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 열병식장에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등장하고 이를 외신기자들을 통해 생중계함으로써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을 외부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현시점에서 김정은 후계체제의 성격을 규정하기는 이르지만 기존의 선군노선으로부터의 ‘단절’이나 ‘변환’으로 방향을 잡았다기 보다는 ‘지속’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당의 정치국이나 비서국이 아니라 군부를 지도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직위를 맡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김정은을 선군노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포석이다.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자격으로 통치이데올로기 해석권을 행사할 것이며 김정일의 선군노선을 김정일주의로 혁명 전통화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후견세력이 아버지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번에 당과 군의 실세로 배치된 김경희(정치국 위원), 장성택(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중앙위원회 부장), 리영호(정치국 상무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그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아직 김정은의 사람들이라고 할 만한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유산 계승은 ‘반정’이 아니라 ‘세습’을 통해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군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는 것이 김정은 후계체제의 딜레마이다. 사실상 업적이 전무하다시피 한 김정은은 후계자에 걸맞은 업적 쌓기를 바탕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출해야만 최종적으로 후계자로 확정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대략 북한이 강성대국 원년으로 제시하는 2012년 제7차 당대회를 통하여 마무리 되어야 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김정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김정은은 강성대국의 3대 기둥 중에서 이미 달성되었다고 주장되는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에 더하여 ‘경제강국’ 건설에서 내세울만한 성과를 거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선군노선을 유지하는 한 자체적으로 경제회생의 길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증대된 중국의 영향력도 김정은의 선택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김정일은 지난 5월과 8월, 3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두 차례의 방중을 통하여 “대를 이은 북중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중국으로부터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후원을 요청한 바 있다. 조공책봉 관계를 이용해 국내정치적 정통성을 보완하려고 했던 동아시아 전통 국제질서에서 나타난 전형적 왕조국가의 행태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중 의존도 증대는 선군노선에 대한 변경과 개혁개방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언급했으며 8월의 북중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높이 평가하는 언급이 나왔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번 당대표자회 축전에서도 “경제발전과 인민생활개선 등 분야에서 일련의 기뻐할만한 성과들을 이룩하였다”고 언급하였다.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외부적으로 중국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것이 국내적으로는 선군노선의 변경 압력으로 작용하는 모순적 구조인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이 이산가족상봉, 군사실무자회담 등으로 대남접근이나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경제난 극복을 위한 지원획득의 목적도 있지만 지나치게 일방적인 대중 의존이 초래할 개방 압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군의 ‘계승’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와 경제회생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이라는 구조적 압력이 공존하는 모순적 딜레마 속에서 김정은 후계체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핵선군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한국 등의 외부지원을 받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이런 이중 전술은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변화의 압력을 무시하고 제2의 유훈통치를 통해 선군에 얽매여 또 한번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하면 일정기간 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 체제의 사활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외부지원 없이 북한 경제가 악화일로를 겪게 될 경우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김정은은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핵없는 평화체제를 기반으로 선경先經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선군을 고집하는 한 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국제환경의 조성은 불가능하고, 경제의 본격적 회생을 위한 외부자본의 유입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국방공업을 우선하는 선군의 지속은 재원의 부족을 야기할 뿐 아니라 재원사용의 비효율을 초래할 뿐이다. 결국 선경을 향한 개혁개방 없이는 발전은커녕 생존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권력 이양기의 특성상 당장 파격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체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실마리는 북핵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식화도 일단락된 만큼 조만간 중국의 주도로 6자회담의 재개가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 때 북한의 선택은 후계체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회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김정일 후계체제 안착에 필요한 외부의 지원을 얻기 어렵다. 과거 김일성 주석 말기의 북핵협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향후 후계자 김정은에게 핵협상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핵무기는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상속해 줄 최대의 유산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선용하는가이다. 김정은 정권은 북핵협상을 통하여 북한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체제안보와 경제회생을 동시에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가지고 북핵협상에 임해야 한다. 당장 불능화에 이은 신고•검증 단계에서 좌초된 비핵화 과정을 마지막 폐기 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확실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은 핵무기가 자신이 앞으로 걸어야 할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토대로 비핵 복합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 안보를 추구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평화체제를 북한의 단기적 이익을 위한 전술적 도구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정권의 안전을 내외부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발판으로 삼도록 스스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북한 스스로 한국, 중국, 미국을 복합적으로 엮는 삶의 그물망을 치는 것이 북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과 함께 한국과 관련 당사국들이 ‘공진화’(co-evolution)하여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국가 북한의 존재가 이미 세계와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지만 북한이 통제불능의 실패국가로 전락할 경우 그 부담은 주변국 모두가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붕괴는 한국이나 중국 등 어느 특정국가의 전략적 이득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동북아와 세계에 커다란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만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북한 후계체제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 대북정책의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가 기존의 선군노선을 변환시켜 비핵화와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등대지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김정은 후계체제가 핵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남북평화협정과 북미평화협정을 중국이 보증하는 복합보장형태의 평화체제 논의가 필요하다. 김정은은 정권과 국가의 생존에 대한 안전감이 들지 않으면 생존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국은 북한이 핵없는 평화, 주변국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 평화를 추구한다면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들어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지원할 것임을 확인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주변국이 동북아 미래의 청사진 속에 북한의 자리를 함께 설계하고, 정상화된 국가로서 북한이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일 때, 북한은 이를 생존보장에 필요한 시그널로 받아들일 것이다. 결국 북한이 핵과 수령체제와 경제발전 세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음을 확인시키고, 인센티브와 압박수단 모두를 강화하는 노력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관련한 한중간의 전략적 협력도 중요하다. 천안함 외교 과정에서 나타난 한중 간의 미묘한 경쟁과 갈등이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대응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미래 상태에 대해 한중간의 전략적 합의가 없을 때 모든 급변사태는 갈등을 야기하고 한중간 공동대응을 어렵게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한중의 영향력 경쟁이 지속되면 김정일 후계체제는 이를 활용하여 기존의 선군노선을 유지하기가 더욱 용이해질 것이며, 이는 한중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이다. 한중은 북한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전략적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의 외부지원 수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북한의 내부적 변화를 촉진시켜 나가는 공동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재성 (서울대학교)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 안보넷 2020-06-04조회 : 8487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10호] 천안함 안보리 외교 이후: 「포스트 천안함」을 넘어「포스트 김정일」전략으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예상대로 어느 정도 이중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봉합 형태의 성명이 탄생했다. 이에 따라 한미와 북중 사이에, 그리고 국내 정치세력들 사이에서는 성명의 해석을 둘러싼 제2 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 외교의 성공과 실패 논란은 정치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국익 차원에서는 지극히 소모적이다. 현시점에서 의장 성명의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천안함 외교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정확히 읽고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천안함 외교는 시종일관 다면적 복합 게임으로 전개되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중 간의 강대국 게임, 동북아 차원에서는 남북중 간의 삼각 게임, 그리고 국내정치적 게임이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동아시아와 지구적 차원에서 중국의 외교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고, 중국과 타협을 통해 현안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입장도 뚜렷해졌다. 한중 간의 전략적 관계가 여전히 취약하며, 북한의 장래에 대한 양국 간의 깊은 토론과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현안들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수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국내정치와 얽힌 외교현안을 슬기롭게 다루어야 하는 정부 전략의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상태다.   먼저 연초 4대 현안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미중 간 힘겨루기는 천안함 외교에서도 또 다시 표출되었다. 그 결과는 어느 일방의 완승이 아니라 절충이었다. 7월 중 실시될 서해상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대립도 결국은 훈련 장소와 규모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것이다.   미중 양국은 겨우 절충안을 마련한 천안함 이슈에 더 이상 시간을 쓸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무대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의장성명 채택으로 천안함 사태를 일단 매듭짓고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도 “핵 없는 세계”라는 오바마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이슈에 동력을 부여해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미 천안함 사건을 통해 한미•한일동맹의 공고화, 대중국 견제라는 상대적 효과를 얻었기 때문에 북한이 어느 정도 진정성만 보인다면 6자회담 재개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중국은 6자회담 재개의 조건과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선先 천안함 후後 6자회담」이라는 원칙을 견지했다. 이는 우리의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고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작용했다. 북한은 자가당착적 천안함의 덫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김정일 방중을 통해 북중관계에 최대한 공을 들였으며 7.9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오자마자 6자회담 재개를 거론했다.   그러나,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에도 천안함 이슈를 여타 모든 안보이슈에 연계시키는 근본주의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글로벌 게임이 이미 6자회담으로 이동하는 마당에 우리만 천안함 외교에 몰입하는 것은 국제정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의 납치 외교는 좋은 반면교사이다. 적어도 정부는 천안함 사태 해결과 6자회담 프로세스를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천안함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무조건적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조치 재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2차 핵실험에 이어 천안함 침몰까지 야기한 상황에서 선先 대북제재 해제를 수용할 는 없다.   남북관계 차원의 대응은 좀 더 어렵다. 남북관계도 궁극적으로는 정상화 되어야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그대로 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나갈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5.24 담화에서 제시한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조치가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단기간 내에 이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보자면 천안함 사태의 해결은 6.25 남침, KAL기 폭발, 랑군 테러처럼 남북관계 역사에서 겪은 과거 주요 사건과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사건의 완전하고 근본적 해결은 북한 선군체제의 변환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잘못된 선군정책을 바로잡고 남북관계의 틀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포스트 천안함」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포스트 9.11」관점에서 안보전략을 수립한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의 해결만큼이나 절박한 것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 형성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며, 그에 따라 북한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소위 강성대국 원년이자 김일성 탄생 1백 주년인 2012년경 김정일 후계구도의 공식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금년 9월로 예고된 당대표자대회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김정일 이후에도 선군先軍 유훈 통치를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개혁과 개방의 선경先經으로 나올 것이냐에 따라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향후 우리의 대북전략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인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하드 파워의 구사방식 문제이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안사태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하는 한편, 북한의 진정성 있는 반응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지속하되 불필요한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조치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대북 확성기 가동이 대표적이다.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고조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내정치적 지지를 약화시킬 뿐이다.   둘째, 소프트 파워의 활용이다. 특히 북한의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비핵화와 선경先經의 길을 국내적으로 설득력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선경 정책을 위한 새로운 남북관계 체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모든 남북합의가 사실상 무효화된 현재 상황에서 남북관계 전반을 운영하기 위한 보다 성숙한 장전이 필요한 때다. 특히 포스트 김 비핵 선경체제가 한국 대북정책의 복합적 체제보장과 번영지원 노력과 함께 공동진화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파워의 활용이다. 당장 남북 당국간 채널은 가동하기 어렵더라도 민간 부문의 네트워크는 열어두는 한편, 북중, 북러관계 등 북한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 시점에서 향후 국면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한국의 대북전략 패러다임이 새롭게 제시되고,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전략적 지지가 확보되도록 노력해야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사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전재성 (서울대학교) 한석희 (연세대학교)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 안보넷 2020-06-04조회 : 8405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9호] 천안함 사태 이후 중국의 딜레마와 한·중관계의 미래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정부는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결과를 공식화하였고, 미국을 비롯한 22개 국가들은 이에 동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국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중국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조사가 시작되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결과를 강조하였고, 조사결과 발표 후 현재까지 한국정부의 발표에 대한 평가를 미룬 채 원칙적인 논평만을 계속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중국의 공식 논평들은 “중국은 책임대국”이며 “중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라는 점에 집중되어 있다. 우선 중국은 책임대국의 정의를 나름대로 내리고 책임대국과 북•중동맹北•中同盟의 양립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남북한 간에 더 이상의 충돌과 불안정은 없어야 한다는 점에 정책적 비중을 두고 있다. “책임대국론” 과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론”은 천안함 사건 정국에서 중국의 생각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정부의 조사결과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는 이유는 조사결과를 “객관적,”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자체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행동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천안함 침몰의 주범으로 인정하면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성명, 규탄, 또는 최악의 경우에는 제재까지도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로 주범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중국은 북한을 주범으로 인정하는 대다수 국가들과 조사결과의 과학성과 객관성에 대하여 논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현재 천안함 사건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중국은 사건의 실체가 어떻든 간에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행동으로 인정하는 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신중한 전략을 택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 북한의 내부 상황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악화되고 있는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화폐개혁 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사정, 그리고 김정일의 건강악화와 불안정한 권력세습의 문제 등으로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은 외부의 압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북한의 체제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한중의 공동대응이 어려운 점은 북한의 장기적 미래에 대한 양자의 전략적 비전이 합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대북 제재에 찬성할 경우 북한의 미래가 과연 중국에게 유리한 형태로 귀결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대북 제재가 강경일변도의 전략이 아니라 북한의 미래는 물론, 남•북•중 관계의 새로운 비전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중국은 나름대로의 국익추구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무조건적으로 “북한 끌어안기”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북한에 의한 안보불안의 재발방지를 위하여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북•중北•中 정상회담에서 제기한 후진타오胡錦濤의 5원칙이 시사하듯이 중국은 북•중 간의 전략적 소통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앞으로 북한의 내정•외교를 비롯한 중요문제를 중국과 긴밀하게 구통沟通(초보적 소통)하자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중국의 대외관계 원칙인 타국에 대한 내정불간섭 원칙과는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 소통강화를 통하여 북한이 무분별하게 동북아에서 평화•안보를 위협하여 중국의 최우선목표인 경제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막으려는 것이다.   중국의 소극적 태도라는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천안함 사건 외교는 정해진 수순대로 진행되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조치와 관련해서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안 체결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미 가능한 제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 1718의 규제 하에 있는 북한에게 또 다른 제재결의안을 더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 대신 한국정부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없이 북한의 행동에 대한 국제 여론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행동에 대한 집단비판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반대하는 것도 상당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을 분리하여 6자회담의 재개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으며, “先 천안함 사태 해결, 後 6자회담 개최”를 주장하는 한국과 의견차이를 보여왔다. 이러한 의견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과 중국 양국은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통과시키고 이를 기회로 천안함 국면을 일단락 지음과 동시에 6자회담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의장성명에 북한을 천안함 사건의 주범으로 명기할 것인가의 결정에 있다고 보여진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성명에 북한을 명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이에 곤란함을 호소하고 있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통과된다면 한국정부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유엔안보리 제재의 완화 내지는 폐기를 요구해 왔으나, 한국정부는 미국과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면서 북한이 보다 진정성을 가진 적극적인 자세로 6자회담에 참여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리더십 발휘에 상당한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천안함 사건은 국제사회에서 향후 중국의 리더십 구축에 중요한 평가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 수교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 북한에 대하여 정치•경제•군사•외교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중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국익추구를 하기 보다는 원만한 관계유지에 보다 더 신경 써온 측면이 있다. 중국은 한국의 중국에 대한 자세에 상관없이 자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중관계를 유지해 나가려 노력해 왔다. 한국이 중국의 힘을 빌어 북한을 움직이려 한다면 한•중관계 또는 동북아 국제관계 속에서 중국의 국가이익이 한국의 국가이익과 합치될 수 있도록 중국이 당면한 국제환경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천안함 사건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검토하고 있는 한•미연합훈련은 중국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에서 미국 핵 항모인 조지 워싱턴 호의 참여가 조심스럽게 검토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 핵 항모의 서해 진입에 상당한 안보적 위협을 느끼고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하여 중국은 현실적인 제재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반대의사를 전달하는 외교적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천안함 사태, 혹은 향후의 유사 사태나 급변사태 시 한미 간의 협력이 중국의 동북아 전략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한•중•미 3국 모두 변화의 가능성이 많은 북한 정세에 대해 미리 장기적 합의를 이루어나가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인식해야 한다. 중국은 한•미연합 군사훈련 논의를 보면서 북한 관련 사태가 동북아의 군사적 세력균형을 상당부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도 북한에 대한 통제능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해서는 한국•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과 함께 사안에 따라 유관국가들이 모여 효율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小다자주의” 형식을 동시에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및 유관국가들은 북한의 장기적 미래와 체제불안정, 핵문제, 탈북자 문제 등을 포함하여 앞으로 다양한 지역안보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유연한 논의를 발전시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미래와 체제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중•미가, 탈북자문제를 위해서는 한•중•몽고(가능하다면 일본포함)가, 북한 핵문제를 위해서는 한•중•미가 모여 사안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한다. 중국의 지속적 부상과 함께 한•중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한•중관계는 더 이상 양자관계가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의 사활이 걸린 핵심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및 국력격차를 고려하면, 우리가 중국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대외전략의 목적과 구체적 정책 등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단계적으로 한중간의 전략적 이익을 합치시키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안함 사태에서 보여졌듯이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전략대화를 게을리 할 때, 구체적인 사안들에게 한중 간의 원활한 협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천안함 사태가 일단락되는 과정에서 향후의 북핵 문제와 6자회담, 북한의 체제불안 및 승계과정에서 한중 간 전략적 협력의 실마리를 탐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통적 국내역량 강화와 세력균형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물망력Network Power의 강화도 함께 모색해야만 한다. 천안함 사태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복잡한 고차 방정식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제해결의 전체 네트워크를 구상하지 못할 때 결국 연결되지 못한 코Node에 의해 좌절되고 말기 때문이다. 향후 기존의 한미동맹을 21세기의 변화에 맞게 복합동맹으로 심화시키고 한•일관계도 신시대적 협력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한중간의 전략적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대중 그물망외교의 심화가 주인공과 무대의 면에서 복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한국의 대미/대일 외교와 대중외교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당시 힘의 역학관계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함께 품어야 하는 문제이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전재성 (서울대학교) 한석희 (연세대학교)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 안보넷 2020-06-04조회 : 8621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8호] 천안함 사태의 복합적 교훈과 향후 대응방향

비극적인 천안함 사태 이후 두 달째가 되어간다. 천안함 사태 직후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 정부 대응의 적절성, 주변국의 동향,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둘러싸고 비판과 논쟁, 추측이 난무했다. 정부는 민군합동, 국내외 합동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원인규명을 추진하는 한편, 전군지휘관회의에 이어 안보총괄점검회의 등을 개최하는 등 후속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오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도 새로운 국면의 논쟁과 대책 마련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간 천안함 사태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지는지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여전히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 발표가 나오더라도 침몰 당시 현장의 확증이 없는 상황에서 조사 내용의 과학성과 진실성을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문제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총론적 성격규정과 정의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침몰 원인에 대한 100% 명백한 물적 증거가 언제 확보될지 모르고 강한 심증에 비해 물적 확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공식적 견해를 정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상당 부분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전쟁에 돌입”했다고 정리하고, 군사전, 외교전, 경제전, 정보전, 치안전, 정치전의 6면 전쟁을 현재까지 수행해 오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결단이 적절한가의 문제를 논외로 치자면 한국 역시 위기상황을 해결해 나가는데 정부의 권위 있는 사태규정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의 정부 발표가 얼마나 실효성을 확보할 것인지의 문제는 과학적 설득력 못지 않게 한국인들의 정부 신뢰와 주변국 및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협력활동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원인규명과 더불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인식은 천안함 사태의 총론적 성격규정이다. 천안함 사태는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군사, 외교, 경제, 정치, 정보의 5개 부문에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친 반성과 대책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인식 속에서 각론적 분야별 대책을 제시할 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천안함 사태의 해결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천안함 사태는 한반도가 처해있는 폭력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폭력사태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는 한편, 한국 국방정책의 현 주소를 확인시켜주었다. 천안함 사태 발생 직후 초기 보고 및 대응체제의 문제점, 정부와 군 간의 긴밀한 협력체제 미비, 대민 설명과 설득능력의 한계 등이 드러났다. 더욱이 현장에서 침몰 원인을 조속히 찾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와 군이 비전문적 견해에 휘둘릴 뿐 아니라, 평소의 국방태세에 대한 미비점을 노정시킴으로써 국민들의 안보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북한공격론이 대두되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정확한 평가, 서해 대잠 방어 필요성의 인식 및 대비태세, 북한 군사동향에 대한 정보가 한정된 상황에서 대응의 미숙함 등의 문제도 드러났다.   정부가 천안함 사태로 명백해진 한국 국방전략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살펴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한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의 근원과 성격, 가능성을 철저히 파악해서 향후 이와 같은 사태는 물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 행정부는 지난 행정부들의 국방개혁안에 대한 근본적 검토와 전략설정이 미비한 상태에서 천안함 사태를 맞이하였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북한주적개념 부활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론, 국방비 증가론 등 각론적 주장들을 포괄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재검토가 병행되어야 한다. 국방에 관한 검토는 천안함 사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안보와 외교를 함께 고려한 말 그대로 총괄적 검토가 되어야 한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핵심은 재발방지이다.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세력이라도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는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합법적이고 일치된 응징에 접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군사적 대응은 외교적, 경제적, 정치적 대응과 함께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독자적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의 군사준비태세를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보완해야 할 것이다. 국제연합 등의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적 대응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한국의 군사적 대응에 대한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의 군사적 대응이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지구적 중견국으로 부상하려는 한국의 국가전략을 함께 고려해 볼 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군사적 대응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 역시 한반도의 긴장이 상승되어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11월에 예정된 G20 정상회담 등 한국의 또 다른 주요 외교 목표들을 고려할 때, 군사적 대응은 철저하고 지속적이면서도,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외교적 측면에서 천안함 사태는 이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은 끈질기고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모든 행위가 그러한 행위를 주도하거나 지원할 세력에게 정치적, 경제적 제재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대단히 부정적인 반향을 가져온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모든 형태의 도발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주변국들은 천안함 사태의 원인이 어떻게 규명되고 향후의 사태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전될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국의 이해관계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국제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판단 하에 동맹국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강조하여 왔다. 중국의 부상과 다양한 형태의 다자주의가 동아시아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 설정 및 다자협력에 보다 능동적 참여 못지않게 기존 동맹국과의 관계유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정부와의 협력관계가 조정기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미국에게 점차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천안함 사태 대응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여 왔다. 문제는 핵없는 세계를 주창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선 천안함 사태 해결, 후 6자회담”이라는 한국정부의 정책 방향에 현재까지 동조하고 있으나, 천안함 사태 해결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언제까지가 사태 해결시한인지, 이후의 대북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등 매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한국정부가 전반적 견해를 표명해 나가지 못하면 한미 협조관계도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면 한국 못지않게 매우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는 것은 중국이다.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책임있는 강대국으로의 위상을 지속해야 하는 중국은 최근 한중, 북중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어 향후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다. 한국 원인 조사의 과학적 과정을 평가하면서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후계구도를 논의하고 경제지원을 실시하기로 한 중국은 화평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반도 안정이라는 목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향후 북한의 국내외 정책에 대한 전략적 소통을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북한으로 인해 중국이 경제발전과 외교적 입지에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하려 하고 있다. 향후 중국이 한국의 조사결과를 공유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에 협력할 것인가는 한반도 안정과 화평발전이라는 동일선상의 전략적 목적에 비추어 결정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중국의 협력이 매우 긴요하다고 할 때, 향후 한국은 천안함 사태 대응책을 장기적 한반도 전략에 비추어 차분하고 냉정한 과정을 거쳐 제시해야 중국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외교적 대응방법은 단호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G20 정상회담은 물론 많은 국제회의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은 천안함 사태의 대응 방법에 있어서도 국제적 규범과 표준을 준수할 뿐 아니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활용가능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다양하게 동원하면서도 효과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도록 국제연합을 비롯한 다자외교무대를 최대한 이용해 나가야 한다.   천안함 사태와 같은 한반도 안보불안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장 위협받는 것은 한국의 경제이다.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한국의 경제는 외국인들의 한반도 안보인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안보위기를 적절히 다루어나가고, 한미동맹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적 버팀목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발전에 긴요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굳건한 국가안보의 확보가 지속적 경제발전을 담보한다면 이러한 안보태세를 유지하고 강화함에 있어 경제적 여건의 부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효과적인 재정지원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는 해군은 물론 한국군의 열악한 근무환경, 장비 및 무기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국방비의 증가추세가 둔화되고, 이전 행정부에서 계획했던 국방개혁안을 실현하기 위한 투자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결국 국방비를 감소하는 수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금번 천안함 사태는 국방계획이 경제상황뿐 아니라 안보위협의 수준과 국방전략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향후 복지안보국가의 복합적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의 책임자로 북한이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레버리지의 확보는 한국의 안보를 확보해 나가는 데 유용한 수단이다. 경제제재와 같은 수단이 일정한 한계 속에서 유용한 것은 물론이고, 향후 한반도의 안정과 남북관계를 위해 경제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북한은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 속에서 대중 경제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국제연합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준수하는 수준에서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협력의 수위를 조절하며 대북 원조를 해나가는 중이다. 향후 한국은 남북교역,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문제에 있어서 남북관계의 경제적 레버리지 확보를 위한 능동적 개입과 대북 제재수단으로서 경제협력의 퇴각이라는 양면게임의 입체적 구성을 놓고 더욱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대북 레버리지 확보가 중요한 만큼 북한의 경제적 대남의존도를 높이는 가운데 필요 시 제재의 효과성도 증대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는 안보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능력의 문제점과 정치지도자들의 한계를 공히 보여주었다. 정부는 사태를 조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동시에, 사태의 성격을 규정하여 대처해 나가는 위기관리능력의 한계를 노정하였다. 정부 부처 간의 사전협의와 공동대처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 내용에 불신을 가지게 되고 이후의 대처방안에 찬성할 수 없게 된다. 한반도 안보의 위기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북한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는 문제이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위기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정치지도자들은 정치적 이익을 넘어 국가적 안보이익을 위해 공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파적 이익에서 당면한 안보적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자제하고 심지어는 정치적 손해를 감내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결국 그러한 모습이 장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방책이 될 것이다. 천안함 사태에 당면하여 정치지도자들은 여전히 사태 발생원인, 정부의 대처방법 등을 놓고 정쟁을 일삼고 있고, 여론을 계도하는 리더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안보위기를 함께 고민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자들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언론과 시민사회집단과 같은 사회행위자들 역시 안보위기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책임있는 토론을 벌이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언론은 선정적이고 차별화된 보도를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견해를 유포하고, 다양한 단체들 역시 온라인을 이용한 정보유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개진과 토론을 통해 공적 담론을 생산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지만, 생산과 유포에 임하는 국민 모두도 책임있는 민주시민의 자세를 다하도록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천안함 사태는 정보실패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 이전까지 이를 예상할 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취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 상에서 정기적인 초계활동을 벌이는 1,200톤급 대형군함이 당면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의 국방정보 능력의 한계를 노정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불확실하고 비대칭적인 안보위협에 대한 정보의 확보가 얼마나 어려울 일인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원인조사 과정에서 정보능력의 현황이 다시 한 번 확인될 터인데, 국방정보기능의 강화를 위해 어떠한 대책을 세울 것인지도 함께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정보의 실패는 비단 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침몰 원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보능력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많은 민간전문가들과 학자들이 침몰의 원인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면서도 의견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함께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행위자들 역시 정보를 합리적으로 종합하고 이를 지식의 차원으로 격상시키지 못한 채 유포하는 문제도 드러냈다.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위기를 해결하는 국가적 지식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번 천안함 사태가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천안함 사태가 주는 교훈이 다각적인 만큼, 한국의 대응은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5차원 대응이 되어야 한다. 모든 각론 차원의 대응이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될 때 천안함 사태는 한국의 안보력을 향상하는 뼈아픈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천안함 사태는 한반도 폭력질서를 매개로 급변하는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북한의 미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향후의 대북 전략 및 외교전략과 맞닿아있는 점을 함께 고민하면서 천안함 사태의 대응책을 추진해가야 할 것이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학교) 전재성 (서울대학교) 조정현 (외교안보연구원) 차두현 (국방연구원)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 안보넷 2020-06-04조회 : 8523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7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의 의미와 영향

이동률 교수는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EAI 중국연구패널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 방중 배경과 의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5월 3일부터 5일 일정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지난 2006년에 이어 4년 4개월 만에 이루어진 5번째 방문이었다. 이번 방중은 외형상으로 볼 때 기존의 북중간 정상외교의 기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핵실험의 충격으로 잠복기가 길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2000년 이후 재개된 북중 정상간 방문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이다. 또한 2003년 2차 북핵위기 이후 북중간에 진행되어온 경제 지원과 6자회담 복귀의 맞교환이라는 이슈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역시 주요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비공식의 비공개 방문에 중국의 개혁 개방의 주요 성공사례지역을 시찰하는 일정까지도 지난 네 차례의 방중과 흡사했다.   그럼에도 이번 방중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억측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번 정상회담이 기본적으로 그 정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 방중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중 시점의 한반도의 정치 안보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큰 틀에서 보자면 북중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오랜 공백 끝에 성사된 회담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핵 6자회담이 18개월째 중단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는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직후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북한은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 3대 후계 계승 추진, 화폐개혁 이후의 혼란, 그리고 유엔 제재로 인한 경제난 심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복잡한 환경에서 이루어진 정상회담인 만큼 다양한 현안들이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향후 이어질 파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정작 예의 주시해야 할 시점은 북중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인 지금부터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을 속 시원히 공개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회담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중 양국이 회담결과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날 미세한 움직임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평가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번 정상회담이 북중관계와 중국의 대북 정책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둘째, 중국의 대북 지원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사이의 교환 거래가 이번에도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결과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셋째, 천안함 사건에 대한 원인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이루어진 북중 정상회담이 한중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전략과 북중관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천안함 사건 직후 이루어지면서 북중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북중관계는 이미 외견상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갈지자 행보를 보여 왔다. 중국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미국과 그에 아부, 추동하는 세력들의 책동” 이라면서 중국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강력한 제재를 강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해 왔다. 2008년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무려 73%에 달하고 있다. 양국은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북한 방문과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경제협력을 강조하고 전통적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북중관계에서 이처럼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는 이면에는 중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단기 전술과 북한문제에 대한 장기 전략 사이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외교 전략을 고려할 때 최선의 대북 정책목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친중 정권 하의 북한체제의 안정적 유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목표의 대전제는 북한문제로 인해 중국의 부상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못지않게 북한의 체제위기 역시 중국 부상의 큰 장애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중단기적으로 북핵문제로 인해 중국의 주변 안보환경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6자회담을 통해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핵문제가 기본적으로 북미 양자간 현안이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여 중국식 개혁 개방 모델의 북한 이식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북한체제의 안정과 친중국 체제의 정착, 그리고 향후 북미관계 개선에 따른 중국의 상대적 영향력 약화에 대비한다는 중요한 전략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 역시 지난 네 차례의 방문과 마찬가지로 다롄大連, 텐진天津, 중관춘中關村 등 중국 경제개혁의 성공사례 지역에 집중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적극 지지할 것이며 북한에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건설의 경험을 소개해주고 싶다”며 더욱 노골적으로 접근하였다. 중국은 이러한 장기 전략을 위해서는 북핵문제로 인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방중이 성사된 배경에는 북한체제 불안정성이 중국에게 안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중국에게 북한은 현재 ‘전략적 부담’이지만 동시에 미래 ‘전략적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기에 북한이라는 카드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때문에 중단기적으로 북한이 가져오는 부담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친중국 체제로 안정화하여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시켜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관계의 변화까지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6자회담 전망   김 위원장이 이번 중국 방문에서 기대했던 선물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 지원과 협력, 후계계승과정에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지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해명의 기회까지 다양한 현안을 안고 있었다. 반면에 중국이 북한에 기대하는 선물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중국은 이미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기대하는 선물은 6자회담 복귀였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에서 이러한 양국 간의 비등가의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 초점이다. 만일 이러한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조만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 간의 물밑외교가 진행될 것이다. 북중관계 역시 안정적 관계를 회복해갈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현재까지 6자회담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만을 근거로 할 때는 일단 2009년 원 총리의 북한 방문 당시의 논의에서 뚜렷한 진전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회담에서 “양국은 9•19 공동성명에 근거해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대가로 중국이 제시한 경제지원의 내용 역시 과거에 비해서 명료하지 않다. 후 주석이 경제협력 심화 등 5개 항의 협력방안을 제안하고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역시 다분히 원론적이다. 이전 정상회담 직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던 것 같은 구체적인 경제지원 내용과 규모에 대한 소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4년여 만에 재개된 정상회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보다는 성과가 분명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2003년 이후 6자회담을 둘러싼 양국간 거래 패턴을 돌이켜 볼 때 그동안 중국이 기울여온 노력에 비해 사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양국간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 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6자회담 전망을 비관적으로만 속단하기는 일러 보인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도 적지 않다. 비록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져 있지만 중국은 물론이고 ‘핵 무기 없는 세상’을 기치로 내세운 미국 오바마 정부 역시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 재개에 상당한 기대를 표명해왔다. 그리고 6자회담 재개에 관한한 미국이 중국에게 일정한 역할을 일임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있다. 그동안 중국은 6자 회담 성사를 위해 셔틀외교를 통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실제로 북중 정상회담 전, 4월 29일 중국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전화로 6자회담 재개를 논의한바 있다. 이제 수순상 북중 정상간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미간의 재논의가 진행될 타이밍이다. 마침 5월 24일 중미간 전략경제대화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향후 북•미•중간 물밑 접촉의 성패가 6자회담을 전망하는 주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6자회담 참여를 설득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이 “유관 당사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천안함 사태 수습 이후 중국의 중재를 통한 회담 재개 가능성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읽혀진다.   천안함 사건은 6자회담 재개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천안함 사건이 확대되어 중국의 안보 불안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는 국제사회의 대다수 주체들이 동의할 수 있는 요지부동의 물증이 제시되는 경우, 중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대북 재제에 참여했듯이 이번에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증거가 확고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가능한 한 조속히 6자회담의 재개를 추진하여 위기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관계의 함의   김 위원장의 방중은 뜻밖에도 한중관계에 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그리고 한국 외교는 예기치 않게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 이 대통령의 방중, 그리고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남북한이 마치 중국을 놓고 새삼스럽게 외교경쟁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만들어져 버렸다. 북중관계와 한중관계가 제로섬(zero-sum) 게임의 관계에서 탈피한 지는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인식되어 오던 차에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중관계는 2003년 이후 북핵문제에 대한 위기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책 공조를 해온 경험이 있다. 즉 북핵문제는 한중 양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양국 관계발전의 동인으로 작용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8년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 되었다. 그런데 정작 북핵문제, 천안함 사건과 같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현안에 있어서는 양국간 이해와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천안함 사건과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중국변수’의 특수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박하게 전개될 고차원의 복잡한 국제적 함수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중국변수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우선 한중관계 18년의 역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중관계는 지난 18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이러한 외형적 성장기조에 묻혀 양국간 이해와 신뢰 강화라는 기초 체력 강화에는 오히려 소홀해 왔다. 이러한 18년간의 불균형한 발전과정이 바로 지금 한중관계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중간 상호이해 증진이라는 기본에서 다시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 바로 알기’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물론이고 날로 세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에게 우리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대북정책과 북중관계에 대해서도 희망적 예단과 감성이 아닌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통해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중간에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이 북한문제에 대해 더욱 긴밀히 논의하고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이 북한에 대해 확보하고 있는 정보와 수단을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활용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한국대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북한에 대한 정보와 채널, 그리고 레버리지leverage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북제재이든, 6자회담이든 한국이 나서서 5자를 설득하고 주도하는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북핵위기는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의 한국의 입지는 약화되는 역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겨냥해서라도 중국을 대상으로 한국이 북한과 외교경쟁을 벌이는 듯한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 향후 미중간의 세력경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독자적인 전략적 가치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동률 2020-06-04조회 : 8513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제6호] 미국의 2010 《핵태세검토(NPR)》와 핵안보정상회의

이상현 박사는 미국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국제관계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2010 NPR과 핵안보정상회의   오바마 정부의 《핵태세검토(NPR)》보고서가 마침내 발표되었다. NPR(Nuclear Posture Review)의 목적은 발간시점에서 향후 5~10년간을 내다보고 유지될 미국 핵정책과 전략 수립, 목표 능력과 전력태세를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냉전 이후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1994)와 조지 W. 부시 행정부(2002) 때 두 번의 핵태세검토를 단행한 바 있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NPR은 《4개년국방검토 (Quadrennial Defense Review: QDR)》, 《탄도미사일방어검토 (Ballistic Missile Defense Review: BMDR)》, 《우주전태세검토 (Space Posture Review: SPR)》등과 함께 국방부가 수행하는 4대 전략방위태세 검토 보고서 중 하나이다.   2010 NPR에서 제시된 미국 핵전략의 목표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핵 확산 및 핵 테러리즘 차단을 강조했다. 미국 핵전략 역사상 처음으로 핵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핵무기 보유국이 증가하는 것을 차단하고, 테러조직이 핵을 보유하는 핵 테러리즘을 막는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강력한 비확산 의지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강화하고 핵물질의 밀수나 절취를 막기 위한 국제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미국의 의지를 입증하기 위해 신 전략무기감축협정(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STAR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Comprehensive Test Ban Treaty: CTBT) 비준, 핵분열물질금지조약 (Fissile Material Cut-off Treaty: FMCT)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핵무기 역할 감소를 천명했다. 즉, 정책수단으로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전체적인 숫자도 감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면서도 핵 비확산 의무 준수 국가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선언한 소극적 안전보장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공식화했다. 이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NPR에서 생화학무기나 테러기지에 대해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제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면서도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NPT)을 탈퇴했거나 위반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유사시 핵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셋째, 핵 보유고 수준을 낮추면서도 전략적 억지력과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위해 러시아, 중국 등 핵 강대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전략적 억지 및 안정 유지, 오판에 의한 핵전쟁 방지책을 제시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미 러시아와는 전략무기감축협정 (START) 후속협정을 타결지었다. 신 START 협정은 핵탄두를 1,550개, 전략발사체는 800기로 한정했다. 하지만 핵삼중체제(nuclear triad)는 유지되며, 단 다탄두탄(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 MIRV)은 모두 단일탄두로 축소된다(de-MIRVed).   넷째,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력 제공을 재확인했다. 이번 NPR은 미국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이 감소함에 따라,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에서의 억지력에서 핵무기 이외 전력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며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력 제공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섯째, 안전하고 방호되고 효율적인(safe, secure, and effective) 핵 보유고를 유지할 것이다.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탄두 개발 없이 앞으로 이미 검증된 기술과 요소만을 사용해 효율적인 핵 보유고를 유지할 것이다. 이를 위해 탄두 수명연장프로그램(Life Extension Program)과 핵연구 시설, 핵전문 인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이다.   한편, NPR 공개 직후인 4월 12~13일 워싱턴에서는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 NSS)가 열렸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지난해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프라하에서 선포한 ‘핵무기 없는 세계’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첫 걸음이다. 이 회의에는 5대 공인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물론이고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비공인 핵보유국을 포함해 현재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 등 47개국이 참석했다. 거기에 더해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 그리고 유럽연합 대표가 추가로 참석함으로써,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원자력 이용과 관련된 세계 모든 나라와 단체가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회의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핵안보 강화와 핵테러 공동대응을 위해 테러집단의 핵물질 접근 차단과 핵확산 방지가 집중 논의되었다.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처럼 정식 국가가 아닌 교전단체 등이 핵을 보유할 경우 미국은 물론이고 지구촌이 핵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회의에서는 이란과 북한처럼 NPT를 위반하거나 탈퇴한 국가들의 문제도 다뤄져서 앞으로 이란과 북한의 반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NPR, NSS, 그리고 NPT 검토회의   미국의 핵전략은 NPR과 더불어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5월 3일부터 시작된 NPT 검토회의까지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4월 6일 NPR 보고서 발표를 신호탄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신START 협정 서명(4월 8일, 체코 프라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4월 12~13일, 워싱턴 D.C.)로 숨 가쁘게 이어져온 비핵화를 위한 거대한 담론이 NPT 평가회의에서 최종 점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엘런 타우셔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차관은 NPT 검토회의를 두고 “핵의 봄春,(Nuclear Spring)을 마무리하는 행사”라고 정의했다.   새 NPR의 기본 방향은 대체로 지난 3월 5일 오바마 대통령이 핵확산금지조약 발효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미국이 핵무기의 숫자와 역할을 모두 줄여나가게 될 것이라며 핵무기 감축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이 안전하고 확고하며 효과적인 핵 억지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안보 전략상 핵무기 수와 역할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핵군축과 비확산,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세 가지가 프라하 연설에서 언급한 비전의 핵심 요소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오바마 정부의 NPR은 핵과 더불어 재래식 전력, 미사일방어 체제까지 상황과 맥락에 맞는 유연한 접근을 강조함으로써 케네디 정부 시절의 유연반응 전략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전략이 오바마의 희망대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비록 핵무기의 역할 축소와 비핵화를 강조하지만 오바마 정부도 적을 억제하고 동맹국의 방어를 보장하는 핵무기의 역할과 기능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전략은 핵의존 축소와 동시에 핵억지력 강화라는 일견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들도 대체로 핵 감축이라는 기본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안보를 희생하는 방향으로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미국이 핵무기의 선제사용은 하지 않겠지만(policy of no-first-use) 극단적 경우에는 핵무기가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약간의 ‘계산된 모호성(calculated ambiguity)’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NPR과 한반도   미국의 핵태세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 동맹국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과거 소련의 위협을 체험했던 동유럽의 국가들은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 선언이 다른 핵보유국들의 도발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핵우산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할 경우 일본이나 터키 등 동맹국들의 자체 핵개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에 대한 NPR의 안보적 함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QDR, BMDR 등 주요 보고서들 간의 관계와 아울러 미국 전략방위태세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분석을 통해 한국에 미치는 안보적 영향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QDR에서는 미군의 전진주둔과 순환배치를 언급했는데,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증대를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NPR에서는 핵무기의 역할과 숫자의 축소가 시사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의도에 상관없이 핵우산 확장억지가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미국 국방부는 향후 2∼3년 이내에 핵탄두 장착 토마호크 미사일 퇴역을 완료할 방침이며, 토마호크 미사일이 없더라도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우방국에 대한 확장억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한미전략동맹 공고화를 통해 핵우산 확장억지를 강화하는 한편, 대북 비핵억지력(센서, 조기탐지, 정밀타격, 크루즈미사일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와 관련해 핵심은 역시 북한 핵문제이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의 NPR에 대해 이미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4월 9일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앞으로 각종 핵무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현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은 북한과 이란을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배제한 NPR이 부시 행정부 초기 정책과 달라진 게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더 나아가 북한 외무성은 4월 21일 발표한 비망록에서 6자회담 재개와 상관없이 한반도와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망록은 북한이 필요한 만큼 핵무기를 생산할 것이지만 핵군비경쟁에 참가하거나 핵무기를 필요 이상으로 과잉 생산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핵보유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적 핵군축 노력에 참가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보유국 지위와 핵 군축을 주장해왔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든 말든 북한은 엄연한 핵보유국으로 행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의 주장은 앞으로의 협상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활용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전술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주장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6자회담 재개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나온 입장 표명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북한의 행보는 6자회담 재개 카드를 꺼냄으로써 중국의 경제지원을 확보하는 한편,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에 쏠리는 국제사회 의혹의 시선을 무마하는 동시에 6자회담에 앞서 천안함 원인구명을 시도하는 한•미의 입장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방중은 그럴 가능성을 높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협상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협상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상의 과실만 챙기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것이 북한이 의도하는 바라면, 북한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공적公敵이 될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오바마가 북한을 ‘국외자(outlier)’라고 부르면서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배제한 것을 북한은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1~6개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발언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북한이 가졌을지도 모를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 강성대국’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즉각 6자회담에 복귀해 핵폐기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우리의 비확산 노력을 소개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선진적인 원전 운영시스템과 핵안보 체제를 적극 알렸고,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하는 개가를 올렸다. 사실 우리는 총 전력생산 중 원자력 의존도가 거의 40%에 이르지만 북핵문제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정부는 이런 국제회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NPT 체제하에서 보장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대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의 새 NPR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 앞길에 어떤 암초가 기다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분명히 야심찬 비전인 동시에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안보위협에 다함께 대처하자는 세계를 향한 호소이기도 하다. 그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타결점을 찾을지, 그리고 국제사회가 그의 호소에 어떻게 귀를 기울일지 두고 볼 일이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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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2020-06-04조회 : 8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