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식계가 대북 전략 및 북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균형 있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 연구 및 통일전략과 동아시아전략을 복원하고자 EAI는 2018년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구축을 기획하여 웹사이트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Global North Korea (Global NK)는 아카이브 성격의 웹사이트로써, 제재(Sanctions), 관여(Engagement), 자구(Internal Transformation), 억지(Deterrence)로 구성된 4대 대북복합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주요 4개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법을 통해 분류한다. 또한, Global NK에서 제공하는 통계치를 통해 웹사이트 이용자는 주요 4개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및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본 웹사이트는 외부 기관의 북한 관련 발간 자료를 한 곳에 수집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문가 코멘타리(Commentary)를 발간함으로써 보다 분석적이며 전략적인 방식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www.globalnk.org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대중국 압박과 믿을만한 위협(credible intimidation)의 실현

[편집자 주]   지난달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방한에 이어, 최근에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3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보다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압박 수단에는 군사적 조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낮음에도 이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여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박원곤 교수는 주장합니다. 즉, 예측 불가한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북한에는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김정은과 이른 바 ‘햄버거 회담’으로 알려진 직접 대화에서부터 북한에 대한 초강력 대처까지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특히 트럼프는 2016년 4월 “(북한이 한•일에 전쟁을 일으키면) 끔찍한 일... 행운을 빈다. 알아서 잘 해봐라”라는 거침없는 언급으로 한국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지 13일 만에 제임스 매티스(James Norman Mattis) 국방장관을 내각 각료로는 처음으로 해외 순방을 보냈고, 대상국으로 한국을 선택하였다. 2017년 2월 2일 한국을 방문한 매티스 장관의 일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양국간 동맹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전해달라는 당부가 있었다.”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안보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 이로써, 거의 1년간 지속되었던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대한국 동맹정책에 대한 핵심 의구심이 해소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을 방치하는 한편 한국에 대한 핵우산도 거둬들여 사실상 동맹을 와해시킬 생각은 전혀 없음이 확인되었다. 2017년 3월 17일 방한한 렉스 틸러슨(Rex Wayne Tillerson) 미 국무장관은 대북정책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가 시도했던 전략적 인내는 실패로 규정하고, 대북정책으로 “새로운 범주의 외교•안보•경제 조치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천명하였다. 원칙적인 차원이지만 군사적 조치를 비롯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할 것이라는 발언도 하였다. 또한 대화를 강조하는 중국을 겨냥하여 핵 동결만을 기반으로 한 대화는 시기상조라면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고 중국의 대북 원유 지원을 문제 삼았다. 워싱턴의 트럼프 발언도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특유의 형용사를 반복하는 어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우선순위가 매우, 매우 높다”(2017.2.12.), “북한은 크고 큰 문제이다”(2017.2.13.), “김정은 매우, 매우 나쁘게 행동 한다”(2017.3.19.)라며, 비난의 대상을 북한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로 확대해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중국 압력 강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도출과 군사적 타격을 포함한 대북 압박 등으로 귀결되면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제안한 북한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맞교환하는 ‘쌍중단’(雙中斷)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3월 15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의 면담에서 H. R. 맥매스터(Herbert McMaster)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3월 18일 틸러슨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중국 측에 대화보다는 대북제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틸러슨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중국은 북한 정권이 도발을 다시 생각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동안 충분히 쓰지 않았다”는 발언도 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 중단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면 북한의 핵 포기가 가능하다면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 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답변처럼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간의 문제”라면서 중국은 자국의 책임론을 부정한다. 이같이 미중 양측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에 의한 북한 비핵화 도출은 결국 미중관계라는 큰 틀에서 성패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는 교묘하게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건드리고 있다. 결국 철회되긴 했지만 ‘하나의 중국’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여 중국을 긴장시켰고, 취임 첫 주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두 차례나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부정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떠한 수준에서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문제시 삼고 중국을 압박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미중관계가 당분간 갈등 국면에 머물러 있을 것임은 비교적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현재 공세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고 중국은 방어적 입장에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전 미국 행정부와는 달리 국제규범을 존중하지 않고 불예측성을 기반으로 극단적인 정책을 오가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남중국해 및 대만 문제와 같이 사활이 걸린 지역을 우선적으로 지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그 외의 다른 의제와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과 타협할 의사를 내비칠 수도 있다. 북핵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중 간의 타협과 갈등의 일정 지점에 위치할 것이고, 중국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대북 전략적 이해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미국과 타협한다면, 트럼프의 중국 압박을 통한 북한 비핵화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미국 측 변수는 중국과 갈등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다른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중국을 충분히 압박할 지의 여부이다. 국내 지지 기반이 갈수록 취약해 지고, 나토를 비롯한 유럽 국가와의 관계도 쉽지 않으며, 시리아 사태와 이란 핵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얼마만큼 자산을 활용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원한다면 중국을 압박할 수단은 보유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중국 기업 ZTE(中興)에 외국기업으로는 역대 최고인 11억 9,200만 달러 제재금을 부과한 것과 같은 조치를 대폭 확대해 최종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전면 시행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사드 포대를 한반도에 추가 배치하거나 한반도 서해에서 대규모 한미일 해상 작전 훈련을 정례화하고, 전술핵을 포함한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상시 순환 배치하며 중국의 턱을 노리는 전력적 위치에 있는 평택 기지에 공세적 무기 체계를 전개하고, 남중국해에 미 항모 전단 순시를 강화하는 등의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힘을 통한 평화’를 주창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려할 수 있는 군사적 선택지이고, 이것이 시행된다면 중국이 느끼는 압박은 상당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 같은 조치 철회와 대북 원유 공급 중단과 같은 강력한 압박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 사이에서 정책을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방안은 군사적 타격을 포함한 대북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적 수단 사용 가능성은 행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2월 8일 “군사력 사용을 포함한 대북 접근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고, 3월 방한 시 다시 한번 군사적 조치가 미국의 고려사항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데빈 누네스(Devin Nunes) 공화당 하원 정보위원장은 3월 18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운반 능력 개발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일종의 선제타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군사 공격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군사적 조치로 선제타격과 예방타격이 제시되고 있다. 선제타격은 적국의 공격 징후가 임박했을 때 먼저 타격하는 것으로, 북한의 경우 핵미사일로 한국을 공격하려는 순간에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다. 명확한 징후가 확인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당연한 선택이지만, 실제 상황에서 탐지하거나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고 타격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한이 2월 11일 발사한 고체연료 미사일인 이른 바 ‘북극성 2형’은 기존의 1시 30분에서 3시간 가까이 소모되는 액체연료 미사일과는 달리 연료 주입 시간이 10분 미만이다. 산술적으로 10분 내에 북한 미사일이 한국을 목표로 한 핵 탑재 미사일인지를 탐지•식별하고 타격을 결심하여 파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제 타격의 어려움은 사드를 포함한 탄도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적국의 공격 징후가 임박하지 않더라도 위협이 되는 시설, 무기 등을 공격하는 예방타격은 시행하기가 더욱 어렵다. 예방타격의 목적은 적대국이 부과하는 위협의 원천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다량의 핵을 보유하고 있고, 핵 시설의 경우 영변 원자로 외에도 우라늄 농축 비밀 시설을 여러 곳에서 운용하고 있다. 또한 미사일 기지도 동창리를 비롯하여 산재해 있으며, 특히 100여기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갖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무력화하는 예방타격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목표물이 너무 많고, 목표물에 대한 사전 정보도 부족하다. 더욱이 비용효과의 편익계산을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예방타격을 실제로 선택할 가능성은 이전 행정부보다 더욱 제한된다.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미국이 연루되고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여 강군 건설을 천명하였지만, 미국 본토가 직접 공격 받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군사력 사용에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트럼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바 있고, 타국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상정한 군사적 조치를 채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군사적 수단 사용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대북 시그널링(signaling) 차원이다. ‘믿을만한 위협’(credible intimidation)을 북한에 가함으로써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위협이 믿을 만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사용의지의 현시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핵과 ICBM 개발을 중단하기 위한 명확한 방법과 수단을 밝히지 않은 채 “이루어지지 않을 것”(It won't happen)이라고 표현한 것도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여 북한을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선거 때는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불예측성을 기반으로 하는 대외정책 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자신도 “종잡을 수 없다”는 평가를 본인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내세우면서 “기습은 승리를 안기고,” “패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그럼에도 쉽게 그 패를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관건은 이러한 미국의 선제•예방타격의 가능성을 북한이 실체로 인식하는지의 여부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불예측성과 극단적 정책 선택의 가능성을 우려할 경우,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선제•예방타격의 한계를 북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트럼프의 대북 시그널링 작업은 제한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믿을만한 위협을 가하면서 중국을 최대한 압박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립되고 있다. 강압과 위협 등이 우선시되고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은 뒤로 미뤄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부동산 사업에서 상대방을 압박하고자 활용하였던 ‘충격과 공포’의 전략을 취임하자마자 TPP 탈퇴,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발표 등으로 전광석화처럼 표출했을 때 세계는 경악하였다.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국제규범과 원칙을 정립하여 세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던 미국이 김정은의 북한과 같은 국가나 선택할 만한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한 극단적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난 20년 이상 해결되지 못한 북핵 문제는 기존의 틀과 사고에서 벗어난 ‘충격과 공포’의 전략이 오히려 답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전제하는 북핵을 단념시키기 위해서는 규범과 원칙을 무시하면서 그 경계를 넘나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유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제공격에 대한 오인(誤認) 및 방어와 공세에 대한 혼동으로 심화될 수 있는 안보 딜레마를 통제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의 갈등 심화도 불사하는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         저자 박원곤_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관계 전공교수. 국방부•통일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에서 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북아 국제관계, 안보론, 외교사, 북한연구, 한미동맹 등이다. 주요 연구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 평가와 신행정부 대외전략 전망"(2016) (공저), "정당한 전쟁론 연구: 평화주의, 현실주의와의 비교"(2016), "Changes in and Prospects for the East Asian Security Order: A South Korean Perspective"(2016), "A Theoretical Review and Critical Analysis of South Korea’s Proactive Deterrence Strategy"(2015), "한미동맹 미래 구상: 지휘구조 개편을 중심으로"(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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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슈브리핑
[하영선칼럼] 북한 제7차 노동당 대회 감상법

지난 5.6~10일간 북한 제7차 당대회가 36년만에 평양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공식화하는 한편, 북한의 미래 비전이 담긴 ‘휘황한 설계도’를 공개했습니다.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본 설계도에 담긴 내용이 신년사에서 예고된 것 이상의 새로움은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기본 전략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선택한 북한의 미래는 어둡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휘황찬란한 21세기 북한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19세기적 과잉 안보론에서 벗어나 적합 안보론에 입각한 핵 없는 신 병진노선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가 36년 만에 평양에서 열렸다. 첫날 개회식으로 막을 올린 데 이어, 둘째·셋째 날에는 7만자가 넘는 사업총화보고와 40명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김정은을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한 후 폐회식으로 막을 내렸다.   국내외 많은 관람객들은 4일 동안 펼쳐진 무대를 보고 나서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좀처럼 당대회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대본의 피상적 내용 분석 대신 대사 속에 숨은 무대 연출자의 뜻을 제대로 찾아보기로 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5월 6일 개회사에서 "조선 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는 총결기간 우리 당과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와 고귀한 경험을 총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대번영기를 계속 힘차게 열어나기 위한 전략적 로선과 투쟁 과업들, 우리 혁명의 전진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라고 말하고, "이번 당대회는 영광스러운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리정표를 마련하는 역사적 인계기"라고 밝혔다.   셋째 날, 사업총화보고의 결론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를 소집한 목적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성스러운 한생이 어리여 있는 주체혁명 위업을 완성하기 위해 드놀지 않을 기틀을 마련하고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높은 목표와 투쟁 강령을 제시하며 혁명과 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데 있다." 라고 강조하고, "당의 류일적 령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높은 단계에서 심화"시켜 나가고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병진시킬 데 대한 당의 전략적 로선을 계속 철저히 관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병진노선은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합법칙적 요구와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 가장 혁명적이고 과학적인 로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마지막 날 폐회사에서 당 제7차 대회를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기치 밑에 사회주의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여 우리 인민의 꿈과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 놓았으며 조국의 자주통일을 기록하고 온 세계의 자주화를 다그치는 데서 나서는 강령적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요약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사를 종합해보면, 제7차 당대회의 3대 핵심은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유일영도체계, 연극 대본으로서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휘황한 설계도, 연기 지침으로서 병진노선이다.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의 중요성은 김정은의 총화 발표에 이은 40인의 토론 중에 문고리 실세인 조연준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의 토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조 부부장은 지난 4년간 당의 유일영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회고하면서 김정은이 주체혁명 위업계승의 중대한 시기에 '당내 현대판 종파일당'을 적발 분쇄한 것은 당의 유일영도체계를 세우고 당의 통일단결을 위한 투쟁에서 근본적 전환을 가져온 특별한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일영도체계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당내 '이색적인 사상'이 스며들게 되어 당과 혁명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미치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사업총화보고의 첫머리에서 제6차 대회이래 지난 36년간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회고하면서 "총결기간 우리 당과 인민이 주체혁명 위업수행에서 이룩한 모든 승리와 근본 비결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 밑에 투쟁하여 온데 있으며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하여 온데 있습니다."라고 유일영도체제의 지속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3대째 수령으로서 무대에 선 김정은은 당대회 둘째 날, 세 시간에 걸친 사업총화보고를 하면서 신년사에서 이미 예고한 '휘황한 설계도'를 본격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본편은 예고편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예상대로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 수령체제의 역사적 지평을 마련해 온 '3대 혁명역량'의 시야에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높이 평가한 다음, 이러한 위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첫째, 사회주의 강국건설, 둘째, 조국의 자주적 통일, 셋째, 세계의 자주화, 넷째, 당의 강화발전이라는 4장으로 설계도를 구성하고 있다   우선 1장에서는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위해 21세기 첨단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강국을 최우선으로 해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을 포함하는 경제강국, 교육· 보건·체육·문화예술을 포함하는 문명강국, 그리고 사회주의 정치제도와 사상, 군사를 포함하는 정치군사강국의 4대 강국을 제시하면서 신년사의 내용을 보다 심화 확대하고 있다.   설계도의 2장은 북한의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이어 통일강국 건설이다. 2장의 주제는 21세기의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는 대신, 1972년 7.4 공동성명이래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자주와 민족 대단결, 평화보장과 북한 형 연방제 실현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이었다. 그런데 자주를 위해서는 한국은 친미사대 근성을 버리고 굴욕적인 '대미 추종 정책'과 결별하고 동족을 모해하는 '외세 공조 놀음'을 그만 두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평화 보장을 위해 미국은 핵 강국의 전열에 들어선 북한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한국에서 군대와 전쟁 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하고, 한국은 무분별한 정치군사적 도발과 전쟁연습을 전면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 대단결을 위해서는 과거에 "반통일의 길을 걸은 사람이라도 그에게 민족적 양심이 남아 있다면 주저 없이 손을 잡고 마음을 합쳐" 북한 체제의 붕괴라는 허황된 제도통일에 매달리지 말고 북한 형 통일역량에 기반을 둔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고 말하고 있다.   설계도의 3장은 국제강국의 건설이다. 이를 위해서 "제국주의의 핵 위협과 전횡이 계속되는 한" 병진노선에 따라 '자위적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고, "적대세력이 핵으로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진보 국가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적극 발전시키고, 과거 적대관계에 있었더라도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인 나라들과는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도는 마지막으로 노동당의 유일영도체계 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당중앙위원회의 두리에 단결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의 위업을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세계 자주적 위업의 실현을 위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휘황한 설계도'를 국내외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기본 전략노선으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그 관철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따라서 "병진로선은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로선이며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하루 빨리 건설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로선"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당대회 마지막 날 '조선로동당 규약' 개정을 알리면서 병진노선과 사회주의 4대 강국 건설을 당과 국가의 최대 중대사이고 혁명의 전략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제7차 당대회를 계기로 유일영도체계의 본격화를 국내외에 알린 김정은이 '휘황한 설계도'라는 북한 형 21세기의 꿈을 병진노선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통해 현실화해 보려는 노력의 미래는 어둡다. 《북한 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 2010년 동아시아연구원이 출판한 책 제목이다. 2008년 초 북한경제연구의 대표적 선두주자인 조동호 교수와 어두운 북한의 미래를 휘황하게 비쳐줄 만한 21세기 설계도를 그려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그 이후 3년 가까운 공부모임과 글쓰기를 거쳐 선군시대의 후퇴(2008-2011), 이행과 개혁의 선진화 공진전략 1단계(2012-2021), 복합 그물망화의 선진화 공진전략 2단계(2022-2032)라는 설계도를 마련했다. 그리고 북한 당국자들이 우리 설계도를 참고하여 북한의 21세기 생존전략을 제대로 마련하고 실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휘황찬란한 21세기 북한을 건설하려면 제7차 당대회에서 밝힌 설계도와 전략노선을 21세기의 국내외 현실에 맞게 하루 빨리 변환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경핵병진노선의 과잉 안보론 대신 핵 없는 신 병진노선의 적합 안보론으로의 변환이 시급하다.   현재의 병진노선은 19세기 제국주의 국제정치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21세기형 제국을 꿈꾸는 미국은 더 이상 19세기형 제국주의를 추진하지 않는다. 19세기가 자주를 꿈꾸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공주(共主)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는 비현실적 가상의 적(敵)을 설정하고 엄청난 경제제재 비용을 자초하고 있는 병진노선을 추진하는 대신,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하는 21세기형 안보 번영을 위한 신 병진노선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늦어지면 질수록 유일영도체계의 어려움을 심화시킬 것이다.   반세기 전인 1960년대에 3대 혁명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마련된 '조국통일 3원칙' 에 따른 통일강국의 꿈도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국내외 현실 속에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하는 '제도통일론' 및 북한의 '혁명역랑' 강화를 통한 연방제 통일방안과 같은 20세기 구시대 유물들을 하루 빨리 청산하고, 21세기에 걸맞은 복합 네트워크 통일방안을 본격적으로 설계하고 건축해야 한다.   이미 동아시아연구원의 설계도에서 자세하게 제시했듯이, 19세기 부강국가 건설과 21세기 복합국가 건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사회주의 4대 강국론도 3단계 선진화 공진 전략에 맞게 다시 한번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산으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제8차 당대회를 열어 명실상부하게 21세기 북한의 미래를 휘황찬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새 설계도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이러한 21세기적 노력은 한국과 주변 당사국들의 공동 진화적 노력과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다. ■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저서 및 편저로는《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등이 있다.         〈EAI하영선 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 2020-06-05조회 : 14746
논평이슈브리핑
[하영선칼럼] 김정은 신년사와 핵실험 : ‘휘황한 설계도’의 예고편

언론에서 본 EAI  [주말S] “김정은의 설계도는 19세기의 것”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저서 및 편저로는《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복합세계정치론 :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등이 있다.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가 발표됐다. 그리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4차 핵실험이 이뤄졌다. 예상대로 아전인수식 국내외 해설이 혼란스럽다. 신년사와 핵실험을 제대로 읽으려면 발표문의 피상적 어휘 해설이나 내용 분석을 넘어서서 북한 정책 결정권자의 머리와 가슴 속으로 들어가 현 국면의 형세를 어떠한 시야에서 파악하고 어떠한 기세로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최종적으로는 북한의 이러한 노력이 현 국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금년 신년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36년 만에 열리게 될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의 예고편이라는 점이다. 당과 인민의 2016년 전투적 구호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인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영도 밑에 우리 당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긍지높이 총화하고 우리 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 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입니다.”라고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금년 신년사는 2016년의 설계도인 동시에 노동당 제7차 대회의 미래 설계도를 미리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국내역량 : 경제 • 정치 • 군사 • 문명 강국   2016년 신년사는 지난해의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한 다음, 1960년대 이래 북한 정책결정권자의 기본 시야를 형성하고 있는 북한, 남한, 국제의 3대 혁명역량의 틀에 따라 국내역량의 설계도부터 그리고 있다. 우선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당은 인민생활문제를 천 만가지 국사 가운데서 제일 국사로 내세우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2014년 신년사에서는 “국방력 강화는 국사 중의 국사이며 강력한 총대위에 조국의 존엄과 인민의 행복도 평화도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설계도는 경제, 정치사상, 군사, 문명이라는 기존 4대 진지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경제강국 건설과 함께 사회주의 정치사상 진지, 나라의 방위력, 최상의 문명을 병행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 ‘로동당 시대의 문명 개화기’를 열기 위해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집단주의적 경쟁과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통일역량 : 자주 • 평화 • 민족대단결 고수   신년사는 이어서 ‘조국통일과 북남관계개선’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이 설계도는 74 공동성명 이후의 반외세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첫째,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북남관계의 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저항과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하며, “남조선당국은 민족내부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공조)를 구걸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그만두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둘째,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것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조건”이므로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위험천만한 침략전쟁 연습을 걷어치워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적 도발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부질없는 체제 대결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하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설계도를 제대로 읽으려면 첫째, 북한의 대남전략은 여전히 외교전, 군사전, 정치전의 3면전으로 구성되어 있고, 둘째, 북한이 얘기하는 ‘누구와도’는 ‘아무나’가 아니라 북한 식 자주와 평화를 따르는 상대를 지적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2016년 남북관계를 군사적 긴장의 비관론이나 화해협력의 낙관론 중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단순 일면전이 아니라 3중 복합전으로 전망하고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이 말하는 ‘누구와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역량 : 대미 평화협정과 핵실험   신년사는 마지막으로 국제역량 강화의 설계도로 미국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침략과 전쟁,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는 세계 인민들과의 연대성을 더욱 강화하며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해 10월 17일 성명에서 “조선반도에서 평화를 보장하는 방도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미국의 가중되는 핵위협과 전쟁도발을 억제해 나가는 랭전의 방법이다. ……다른 하나의 방도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우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응해 나옴으로써 신뢰에 기초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회피하면 ‘무한대한 핵억제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미국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북한은 12월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같은 내용의 발언을 계속하면서 미국과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한 핵 무력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 정부 성명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핵개발 중단이나 핵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주체혁명 위업의 전만년 미래를 담보하는 우리의 정의로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부단히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핵무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북한의 안보와 경제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설 자리 없는 19세기형 설계도   북한이 2016년 신년사를 통해서 밝히고 있는 ‘휘황한 설계도’ 는 21세기적이기보다는 19세기적이다. 19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세동점하는 유럽 국가들과의 근대적 만남에서 생존하기 위해, 뒤늦게 안으로는 자강력을 키우고 밖으로는 독립군세를 추진하는 전략에 따라 근대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성공하고 한국은 실패했으며 중국은 혼란을 겪었다. 21세기 아태국가들은 19세기 설계도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한 21세기 신 적합 설계도를 그리느라 분주하다. 신 설계도의 주인공들은 근대국가와 네트워크를 결합한 그물망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 무대 또한 기성의 부국강병과 그 한계를 보완하려는 신흥문화, 생태균형, 첨단기술지식, 공치(共治)를 엮은 복합 무대가 등장하고 있으며, 무대에서의 연기도 경쟁과 협력, 공동진화가 함께 어우러져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적합 지형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19세기적 설계도로 설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1세기형 新 적합 설계도 마련해야   북한이 노동당 제7차 전당대회에서 소개해야 할 ‘휘황한 설계도’는 이미 동아시아연구원이 《북한 2032 :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2010)에서 자세히 밝혔듯이 다음 두 단계로 마련돼야 한다. 첫 단계로 북한은 3중 신생존 전략으로 경제발전과 핵 없는 안보를 기반으로 한 4대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관계를 계급공조가 아닌 민족공조로 받아들여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구시대적 구분을 넘어서 선진 자본국가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선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동시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21세기 신 아태질서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단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신세기 적합 지형도에 맞는 새로운 변환의 설계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북한이 현재와 같은 ‘휘황한 설계도’ 대신 21세기 적합 지형도에 맞는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고 21세기 신흥국가를 건설하려면 북한 스스로의 주체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관련 당사국들의 도움을 얻어 핵개발과 같은 북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제재와 억제를 강화하고, 동시에 비핵 안보경제 병진론과 같이 북한의 잘된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신대북정책의 공진적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 ■          [EAI하영선 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 2020-06-05조회 : 8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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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하영선칼럼] 김정은의 ‘토정비결’ : 신년사 바로 읽기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저서 및 편저로는《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복합세계정치론 :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등이 있다.         신년사 바로 읽기   매년 새해가 되면 연중행사로 북한의 신년사를 읽는다. 금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 신년사 독해법을 소개하기 위해서 〈북한 2014 미로 찾기 : 신년사의 해석학〉(〈EAI논평〉 제32호 2014/01/27)이라는 자세한 글을 썼기 때문에 금년에는 반복해서 해설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국내외의 많은 신년사 분석들이 정곡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고 있는 탓에 설날을 앞두고 2015년 북한 신년사를 제대로 해석해서 김정은의 을미년 ‘토정비결 운세’를 점치기로 한다.   2015년 신년사의 기본 골격은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년사는 우선 2014년을 “당의 영도 밑에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최후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조선의 불패의 위력을 떨친 빛나는 승리의 해”로 평가하고 2015년의 투쟁구호로서 “조국해방 일흔돐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과업과 방도로서 1960년대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의 시야를 주도해 온 3대 혁명역량 강화의 틀에서 국내역량, 통일역량, 그리고 국제역량의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상반기 운세 : 국제역량 약화 위험   김정은의 금년 ‘토정비결’을 보기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의 시야 속에서 변화하는 금년의 과업과 방도를 바로 읽어야 한다. 북한이 을미년에 겪어야 할 첫 어려움은 북미관계 악화에 따른 국제역량의 약화 위험이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지난 해 5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의 연설보다 훨씬 당당하게 다시 한 번 미국이 21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며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주도하느냐라고 밝혔다. 이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 군사력과 외교력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서 제재 우선의 러시아, 제재에서 외교로의 과도기에 있는 이란, 외교 우선의 쿠바를 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연설에 공개적으로 포함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강한 제재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외교로 다루려는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연말 김정은 제1비서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Sony) 영화사에 대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간주한 오바마 대통령은 연초에 강한 제재의 첫 단계로서 지난 2005년에 기대이상의 효력을 발휘했던 금융제재를 새롭게 추가하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미국은 북한의 행동 변화를 위해 금융제재와 함께 지난 해 2월 제출된 유엔 인권위원회 북한인권조사보고서 이후 보다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북한 인권침해의 제재,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해 2010년 이래 심도 있게 파악하고 있는 북한 사이버공간의 제재를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동맹국들과 중국을 비롯한 유관당사국과의 협력아래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은 한국, 일본과 함께 양자와 3자 협력으로 군사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게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당장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고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면서 북미회담과 6자회담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러한 대북 전략에 대해서 ‘국제공조를 통한 제재 압력분위기를 고취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이며 관여와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는 ‘대화타령’은 사실상 상대방을 먼저 무장 해제시키려는 것이고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북한 붕괴론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미국의 금융, 인권, 사이버, 군사 등의 다양한 억제 수단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최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3월부터 시작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면 4차 핵실험을 중지할 용의가 있으며 미국과 언제라도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주변 관계구도가 어떻게 바뀌든 우리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의 금년 상반기 ‘운세’를 결정할 가장 커다란 변수는 얼마나 성공적으로 신년 미 대북 정책의 파도를 타고 넘느냐에 달려있다. 북한이 국제역량 강화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미국의 복합 제재력이 과거에 비해서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할 가능성 때문이며 동시에 북한의 병진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국제 역량을 쉽사리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제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시작하려는 현재의 노력에 실패한다면 북한의 ‘사회주의전 수호’는 험난한 국제 파고에 직면할 것이다.   중반기 운세 : 남북관계 개선의 어려움   김정은의 토정비결 운세는 금년 상반기의 국제역량 강화의 어려움과 함께 중반기에는 통일역량 강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금년 신년사는 작년의 조국통일 3대원칙, 안전과 평화수호 투쟁, 관계개선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년사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해 우선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다음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에 따라 체제보장을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서 신년사는 한미군사훈련중지, 삐라살포 금지, 5•24조치 해제 등을 들고 있다.   북한은 무조건이 아니라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기반으로 북한형 통일역량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박근혜 정부의 다양한 남북한 관계 개선 구상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관계 개선의 기본 원칙에 대한 합의가 남북한 간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관계개선이 부분적으로 진행되더라도 기대와는 달리 사상누각의 위험성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하반기 운세 : 국내역량 강화의 한계   김정은의 금년 하반기 운세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국내역량 강화에 얼마나 성과를 거두냐는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단기적으로 정치체제의 불안한 안정을 유지하고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북한은 신년사에서 “모두 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최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서자.”라는 구호아래 정치와 군사, 과학기술과 경제, 교육•체육•문화예술과 보건, 사상의 진지에서 사회주의 문명대국을 건설하자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3년 차에 접어든 병진노선을 계속해서 추진하는 한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적 경제제재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세계적 규모의 경제 지원과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기존과 같은 전략으로는 본격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21세기 문명대국의 길은 험난하기만 할 뿐이다.   한국의 2015년 통일정책   김정은의 을미년 운세가 3중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점쳐지는 속에서 한반도의 운세가 대길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2015년 통일정책이 3중적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국제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미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강한 복합 억제를 추진하는 국면에서는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함께 가야 하며 본격적인 외교 협상으로 변환하는 국면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가 제재국면에서 협상국면으로 변환을 겪으려면 북미 사이에서 벌이는 중국의 중재적 역할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역량의 강화를 위해 러시아와 일본과 같은 유관국들과의 관계도 밀접하게 엮어 나가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북한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교류 협력 프로그램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교류협력의 기본 원칙에 대한 초보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억제 국면에서 벗어나 관계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한반도 비핵 평화번영체제에 대한 본격적 구상과 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1세기 한반도 선진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역량의 강화, 남북관계의 개선과 함께 국내역량의 강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구시대적인 보수와 진보의 재통일(reunfication) 논의를 넘어서는 신통일(new unification)의 담론과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남과 북이 하나인 동시에 둘로 작동할 수 있는 21세기형 복합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         [EAI하영선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 2020-06-05조회 : 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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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32호] 북한 2014 미로 찾기: 신년사의 해석학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성택의 처형으로 2013년을 마무리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갑오년 새해를 신년사 발표로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신년사 학습에 분주한 동안 북한 당국은 1월 중순 2월 한미군사훈련의 중지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비방중상과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핵재난을 방지하자는 대남제의를 해서 “위장 평화공세” 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유관국가의 정부당국자들과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은 비관론과 낙관론의 주관적 혼란 속에서 북한 2014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 김정은의 2014년 설계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바람직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신년사를 바로 읽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북한의 신년사는 단순한 선전문이 아니다. 김정은은 2014년의 신년사에서 과거 시야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현재의 시야로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분석하고, 제한된 미래의 시야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장성택 숙청 이후 마련됐을 지침에 따라 조심스럽게 작성된 신년사를 내용 분석과 같은 초보적 방법을 동원하여 피상적으로 훑어볼 것이 아니라 “시야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는 해석학적 방법의 도움을 받아 신년사 행간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북한 신년사 담론구조: 1-1-4-1-1   2014년 신년사의 이해를 위한 첫 걸음은 담론구조의 해석이다. 북한 신년사는 오랫동안 1-1-4-1-1 구조를 유지해왔다. 첫 1에서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둘째 1에서 신년 국정지침을 제시하고, 셋째 4에서 북한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정치사상•군사•경제•문화 4대 진지의 국내 혁명역랑 강화를 강조하고, 넷째 1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남한 혁명역량 강화를 밝히고, 그리고 마지막 1에서 미 제국주의의 대북적대시정책과 싸우기 위한 국제 혁명역량의 강화를 논의해 왔다. 이러한 시야는 김일성 주석이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같은 군사노선 대신 1964년 2월 새로운 정치노선으로서 3대 혁명역량 강화를 제시한 이래 북한 정치지도자들의 현실시야에 압도적 영향을 미쳐왔다.   2014 신년사는 3대 혁명역량 강화노선을 반영하는 1-1-4-1-1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담론구조의 지속적 영향은 김정은 체제가 국내, 한반도, 국제의 현실 상황을 바라다 보는 기본 시야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한다. 3대 혁명역량 제고라는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북한의 기본 시야가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제 2014년 한반도 정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세부 연기는 무대의 변화에 따라서 바뀔 수 있겠지만, 시야의 제약으로 연출의 큰 틀은 이미 잡혀있는 셈이다.   2013년의 평가: 새로운 병진노선의 해   신년사 담론구조의 검토에 이어서 1-1-4-1-1의 개별 항목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 1에 해당하는 지난 해의 평가는 장성택 사건으로 예년에 비해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성택 숙청 사건의 김정은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아직까지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 정치권력의 2인자로 알려졌던 장상택이 처참하게 처형된 직후에 준비된 신년사는 장성택 사건에 대한 김정은의 시야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신년사는 2013년을 평가하면서 “지난해는 전당, 전군, 전민이 당이 제시한 새로운 병진로선을 받들고 총공격전을 벌려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과 사회주의수호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한 자랑찬 해였습니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2013년을 새로운 병진노선의 해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이 “로선”의 선택과 추진의 중심이 김정은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이 “로선”은 2014년 북한에도 여전히 핵심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장성택 사건을 병진노선의 선택과 추진의 수준에서 다루지 않고 보다 낮은 수준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우리 당은 지난해에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의 벅찬 시기에 당 안에 배겨있던 종파오물을 제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우리 당이 적중한 시기에 정확한 결심으로 반당반혁명종파일당을 적발 숙청함으로써 당과 혁명대오가 더욱 굳건히 다져지고 우리의 일심단결이 백배로 강화되였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2013년 병진노선의 추진 과정에서 반당•반혁명 종파를 적발해 숙청한 것이 장성택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김정은은 장성택의 숙청을 병진노선과 같은 국가 전략노선의 기본에 대한 이견 차원이 아니라 국내 혁명역량 강화를 위한 4대 진지중의 하나인 정치사상 진지의 구축 차원에서 보고 있다. 장성택 사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내다 보는 것과 직결된다. 장성택의 죽음은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에 놀라운 충격을 주었지만, 김정은 체제의 기본 시야나 병진노선에 단기적으로는 커다란 질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신년 국정 지침: 선군조선의 번영기   두번째 1에 해당하는 신년 국정 지침의 의미를 풀어보기로 하자. 북한 2014 미로 찾기에는 선군, 병진, 그리고 개혁개방의 세 입구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 입구를 선택하더라도 “선진조선”의 목표가 쉽사리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년사는 북한의 선택이 “선군조선의 번영기”라고 밝히고 있다.   선군과 번영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는 이 지침의 해석은 조심스럽다. 병진노선의 두번째 해를 “선군조선의 번영기”라고 부르는 것은 첫째로는 선군시대에 총력을 다해 쌓아 올린 핵무장건설의 군사진지를 버리지 않고 지키겠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핵군사진지와 함께 장성택 숙청으로 다져졌다고 믿는 정치사상진지의 토대 위에 경제진지를 튼튼하게 구축하여 번영기를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4년 “선군조선의 번영기”는 내용적으로는 경제와 핵을 모두 품고 있다. 그러면서도 병진에서 사용하는 핵무장 건설의 직접적 표현을 피하고 있다.   4대 진지: 경제-문화-군사-정치사상   신년사는 세번째 내용으로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위한 4대 진지론에서 특히 경제진지를 가장 먼저 다루면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농업, 건설, 과학기술이 “혁신의 봉화”를 들 선두적 분야라 강조되고, 이어 금속, 화학, 전력, 석탄, 철도운수, 경공업, 수산, 자원 등 분야에서 수행해야 할 과업을 중심으로 경제진지가 정리된다. 계속해서 교육 및 체육을 포함한 문화진지, 인민군대와 국방공업 강화를 강조한 군사진지, 마지막으로 정치사상진지 공고화를 언급하고 있다.   4대진지론의 마지막으로 “정치사상진지는 사회주의 수호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보루이며 혁명대오를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우리 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장성택을 숙청하고 나서 “올해에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히 하고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김일성-김정일주의자로 튼튼히 준비시키며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을 더욱 강화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남북관계: 조국통일 3대원칙, 안전과 평화수호 투쟁, 관계개선   신년사에서 국내역량 분야에 이어 다루고 있는 남북관계 분야를 보수의 시야에서는 위장된 평화공세로서 새로울 것이 없다고 보고 있고, 진보의 시야에서는 최소한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년사를 바로 읽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주관적 해석을 넘어서서 김정은 체제의 시야를 해석학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신년사의 통일문제 논의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970년대 이래 강조해 온 반외세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강조하는 기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라의 통일문제를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해결하자면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합니다. […] 북과 남은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에서 천명된 자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립장에 확고히 서야 하며 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한미군사훈련을 강하게 비난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엄청난 핵재난을 가져오게 될 것이므로 “내외호전세력들의 대결과 전쟁책동”을 저지 파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구성요소로 신년사는 남북한 관계개선을 이렇게 다루고 있다. “북남사이의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살고 있는 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동족끼리 비방하고 반목질시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그것은 조선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에게 어부지리를 줄뿐입니다.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됐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이상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1월 16일 중대제안으로 발표한 “우리 민족끼리의 단합된 힘으로 북남관계개선의 활로를 열어나가자”에서 제안하고 있는 비방중지, 군사적 적대행위중지, 핵재난 방지를 위한 현실적 조치는 신년사의 남북관계 내용을 보다 구체화해서 밝힌 것이다. 이 제안을 두고 남북한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위장된 평화공세”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제안한 남북관계의 3개 항목 중에 1과 2 항목 대신에 3항목만 강조하고 있고, 한국은 3항목 뒤에 있는 1과 2항목을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제안이 위장된 평화공세가 아닌 새로운 것이라면 북한은 기존의 1과 2항목에 대한 시야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은 북한 제안을 간단하게 위장된 평화공세라고 대응하기 보다, 그 위장 여부를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진정한 평화제안”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국제관계: 반제국주의 투쟁   2014 신년사의 국제관계 분야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을 강조하는 과거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해에 국제무대에서는 주권국가들의 자주권과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제국주의자들의 간섭과 전쟁책동이 끊임없이 계속되였습니다. 특히 세계최대열점지역인 조선반도에서는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적대세력들의 핵전쟁책동으로 말미암아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이 조성되여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였습니다.” 따라서 “강력한 자위적 힘으로 나라의 자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고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켜나갈것입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력을 건설하겠다는 직접적 표현을 피하고 있지만, 핵전쟁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자위적 힘, 즉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2014년 신년사는 북한이 핵무기 없는 새로운 안보의 시야를 펼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북한에게 핵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검”이다.   2014년 신년사의 내재적 모순   2014년 신년사는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위한 국내 경제진지의 강화를 가장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와 국제관계 부분 논의에서 과거의 전통적 시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내재적 모순관계를 보인다. 조국통일 3대 원칙에 기반해서, 한편으로 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투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자주”와 “민족”의 제한된 시야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마련하겠다는 제안을 현실적으로 한국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따라서 신년사의 대남정책은 북한의 경제발전과는 서로 모순될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2014년의 김정은 체제가 국제관계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대해 계속 핵무기라는 보검으로 결연히 맞서겠다는 제한된 시야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국내 경제진지를 강화하겠다고 희망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비핵화의 진정성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북한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경제진지 구축을 위한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야 한다.   국내역량강화의 면에서는 장성택의 숙청으로 가까운 시일 내 정치사상 진지에서 김정은에게 도전할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또한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의 개발로 최소한의 군사진지도 마련됐다. 그러나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열기 위해 경제진지 구축에 내부적으로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도 남북관계와 국제관계가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2015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2014년이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열어낸 자랑찬 해’였다고 쓰기를 희망하겠지만 전망은 어둡다.   한반도의 미로 찾기   지난해 10월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은 <신대북정책 제안: 신뢰프로세스의 진화를 위하여> 보고서에서 북한이 자기모순적인 현재의 경제•핵 병진노선을 넘어 경제건설과 비핵안보를 추구하는 병진노선 2.0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지원하는 한국의 신대북정책 마련을 위해 “억제-관여-신뢰” 국면을 포괄한 복합 대북전략을 제시했다.   김정은 체제는 2013년의 경•핵(經核) 병진노선 대신 2014년의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공식 국정지침으로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의 시야에서 핵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한이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조선의 번영기”를 열어가려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평화적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의 길로 나와야 한다. 북한식 평화발전론이 필요하다.   북한 신년사는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 국내역량강화는 경제건설과 비핵안보의 병진노선 2.0에 입각하여 4대 진지 중 경제진지 건설을 최우선시하되, 군사진지에서 비핵안보체제를 마련하고, 병진노선 2.0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사상진지를 강화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조국통일 3대 원칙에 따른 평화공세가 아닌 신대남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제관계도 항미(抗美) 투쟁이라는 시야를 하루 빨리 극복해서 보다 진화한 ‘자주적 공생’의 새로운 국제관계 시야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새로운 병진노선 2.0의 선택과 추진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2월 30일 “새로운 남북 관계를 위한 여정”이라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Project Syndicate) 기고문에서 향후 대북정책 방향을 “강력한 억제력 유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승급”,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및 동북아의 공동발전”으로 정리했다.   한반도의 위기국면을 악화시키지 않고 탈출하기 위해서는 대북 억제력 유지 및 강화가 한국 대북정책의 제1원칙이 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2014년 한 해 동안 경제진지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남북관계 개선이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없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따라서 북한의 유일한 돌파구는 경제•비핵안보의 병진론 2.0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 추진, 이산가족 상봉,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해결 정도의 신뢰 “승급” 조치를 토대로 김정은이 전략노선을 바꾸는 결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북한의 비핵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한반도•동아시아 평화번영체제가 필요하다. 이를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해 병진론 2.0 선택과 같은 북한의 전략노선 변화를 지원하는 것이 한국 대북정책의 제2원칙이 되어야 한다. 한국 대북정책의 제3원칙은 이같은 평화번영체제 마련을 위해 미국 및 중국을 비롯한 유관당사국들과 긴밀히 공조하는 국제협력이다. 끝으로 제4원칙은 한반도가 현재의 위기국면에서 과도국면을 거쳐 협상국면으로 접어들게 하기 위해 국면전개에 상응하는 단계별 신뢰구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The 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으로부터 중견국 외교 연구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하영선 2020-06-05조회 : 2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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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28호] 3차 북핵실험과 한국의 대북정책 : 군사·경제·정치의 3중 복합대응책 모색

북한이 2월 12일 감행한 3차 핵실험에 대해 다양한 대응책이 논의 중이다.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은 핵실험과 같은 도발이 북한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 경고하며 미사일방어체제(Missile Defense: MD)의 강화 및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예고했다. 중국은 외교부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비확산 및 동북아 지역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유엔안보리 논의를 주문하며 냉정한 대처를 강조했다. 한국은 유엔안보리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하여 북핵포기를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일각에서는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 연기, 한반도 전술핵 배치 검토뿐 아니라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대응책들은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을 결여하고 있다. 대응책을 논의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 배경을 이해하고 김정은 체제가 추구하고 있는 생존전략의 방향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2006년 10월 1차 북핵실험 이후 3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북한과 국제사회는 유엔 제재, 양자회담 및 6자회담 등을 통한 대화와 협상, 미사일 발사, 그리고 핵실험이라는 악순환을 쳇바퀴 돌듯 반복해 왔다. 단순히 북핵문제 자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다가는 늘 그래왔듯 핵실험 이후 이어지는 북한의 ‘평화공세’에 다시 한 번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북한 3차 핵실험과 김정은 체제의 성격   김정은 체제의 3차 핵실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난 두 차례의 핵실험과 비교해서 이번 3차 핵실험에 관한 북한의 공식담화 내용이 얼마나 바뀌었는가를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핵실험 직후 발표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북한은 “제3차 핵시험은 미국의 대조선적대행위에 대처한 단호한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하며 핵실험의 목적을 “미국의 날강도적인 적대행위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보여주고 나라의 자주권을 끝까지 지키려는 선군조선의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북한의 공식입장 표명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 체제가 등장하였지만 선군先軍적 시각에서 국제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것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번 핵실험을 계기로 자주권과 함께 경제발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북한은 “자위적인 핵억제력에 의거하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하려던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1월 한 달 동안 두 차례 발표된 김정은의 연설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1월 26일 국가안전 및 대외일군협의회 지도연설에서 김정은은 “자위적 전쟁억제력에 토대하여 이제는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경제건설에 집중하려던 우리의 노력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였다”고 평가하며 핵능력을 비롯한 전쟁 억지력의 구축이 애초에 경제발전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1월 29일 당세포비서대회 연설에서 김정은은 “이제는 우리가 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더욱 확고히 틀어쥐게 되었으며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에서 전환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북한 김정은 체제는 ‘핵자주권에 기반한 경제발전권의 추진’이라는 ‘자주’와 ‘발전’의 두 마리 토끼잡기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주권을 잃은 나라와 민족은 안전과 발전권은 고사하고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역사의 교훈”이라며 자주권을 수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최고이익”이라고 밝힌 점에서 보듯 선군적인 시각이 여전히 김정은 체제를 지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발전권’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3차 핵실험 하루 전인 2월 11일 개최된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온갖 적대세력들의 책동을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의 자랑찬 승리로 단호히 짓부셔버릴데 대하여 지적하였다”고 밝힌 점은 인상적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해 경제발전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현재 북한에서 변화가 진행중임을 시사한다.   북한 3차 핵실험과 김정은 체제의 미래   문제는 핵자주권과 경제발전권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을 통한 외부지원이 필수적이지만,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전면적으로 북한을 지원할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역정세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이 북한 정권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지원만을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정치국 회의 결의사항에서 논의되고 있는 원산지구 개발 문제만 하더라도 이 일대를 세계적인 휴양지로 조성하기 위해서 대규모 해외투자가 절실하나, 핵을 보유하는 한 실현 불가능하다.   김정은 체제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핵무기 개발을 통한 자주권 확보를 계속 추구해 나갈 경우 국제사회의 강력해지는 제재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를 견디는 과정에서 북한은 점차 식물국가화 되고 궁극적으로는 체제붕괴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핵포기는 불가피하다. 비핵자주권을 기반으로 한 경제발전권의 모색이 김정은 체제가 ‘붕괴’가 아닌 ‘진화’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정은 체제는 두 마리 토끼가 아닌 두 개의 갈림길에서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과 김정은 체제의 진화   자주권과 발전권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이번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표출한 국가전략의 기본 밑그림이라면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응도 보다 복합적이어야 한다.   향후 박근혜 정부가 견지해야 할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은 자명하다. 북한이 핵선군 생존전략 논리에서 벗어나 비핵안보번영체제를 모색하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다. 우선 김정은 체제의 지배 논리인 핵선군정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핵선군이 “민족의 자주적 운명개척의 길을 힘있게 열어주는 위력한 힘”이나 “만능의 보검”이 아닌 북한 체제를 반드시 붕괴시킬 ‘암세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져주는 군사적•경제적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선군에서 선경先經으로 체제진화의 길을 모색해 나간다면 한국이 이를 전면적으로 지원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도 보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추진하는 여러 시도와 정책들에 대해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지원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진화를 유도하려면 두 신호를 동시에 보내야 한다. 핵선군전략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대안적 생존전략의 모색에 대해서는 한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신호를 동시에 보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군사, 경제, 정치의 3중 복합대응책이 필요하다.   첫째, 군사적 억지력 강화이다. 핵선군적 사고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재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독자적 핵무장론이나 미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으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군사적 억지력 강화의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에 나설 경우 부분적으로 북한의 핵능력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이루어 억지력을 강화시킬 수 있으나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총체적 대가를 고려하면 정책적 선택지로서의 가치가 없다. 독자적인 핵무장을 선택할 경우 세계 비확산 체제와 전면전을 치르는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악화 및 심각한 갈등을 각오해야만 가능하다. 70년대 박정희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선언했을 때 당시 미국은 우선 경제적 압력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지원 중단, 다음으로 기술이전 중단에 이어, 마지막으로는 한미동맹의 최대 현안문제였던 한국군 근대화 계획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초강수까지 두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지난 해 12월 발표된 미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보고서에 따르면 1991년 9월 부시(George H. W. Bush) 당시 미 대통령이 모든 지상 및 해상 전술핵의 철수 및 폐기를 선언한 이래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은 약 760개로 이 중 200여 개는 유럽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공군이, 나머지는 미 본토에 해군용으로 비축되어 있다. 한반도에 재배치할 수 있는 지상 및 공군 전술핵 자체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전술핵 운용에 부정적인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핵 및 재래식 무기로도 충분히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를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작년 5월 시카고 NATO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억지방어태세재검토”(Deterrence and Defense Posture Review: DDPR)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DDPR은 탈냉전 이후 새로운 안보환경에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과 재래식 전력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고 보고 MD, 재래식무기, 미국의 확장억지, 군축의 4개 영역에서 동시적 역량 강화 추구를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도 점증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독자적인 핵 역량 보유가 아닌 한국형 MD, 재래식무기억지체제, 미국의 확장억지체제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형태로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조치이다. 북한의 핵선군정책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도록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체제진화를 도모하고 인민생활 여건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지원수단을 마련하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상, 미사일 및 핵무기 관련 자금과 물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대북금융제재와 무역제재를 보다 더 강화된 수준으로 이행해야 한다. 특히 지난 2005년 9월 미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Banco Delta Asia: BDA)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과 같은 조준금융제재(targeted financial sanction)가 유력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당시 북한이 수 차례 공식 성명을 통해 금융제재 해제를 거세게 요구했던 것에서 보이듯 조준금융제재는 북한의 불법금융활동을 차단하여 김정은 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2006년 4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미 재무부 테러리즘 및 금융정보 담당 차관 스튜어트 레비(Stuart A. Levey)는 조준금융제재를 통해 폭넓은 국제적 지지기반 마련에 성공하여 북한의 ‘확산 관련 거래들’(proliferation-related transactions)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가 이번에도 핵선군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전가의 보도가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6년 전 상당한 곤란을 겪었던 북한이 그 동안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대비책들을 마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이미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제사회의 강도높은 경제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제재를 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지난 1월 23일 유엔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북제재결의안 2087호에 의거, 군사적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밀수 등 수출입 전반을 통제하는 ‘캐치 올’(catch-all) 방식의 제재가 이미 가동 중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더 잃을 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제재가 가지는 효율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식하고 정책적 선택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핵선군세력에 대한 경제제재와 함께 인민의 생활 여건을 개선시키고 이를 통해 북한 변화의 내부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경제지원의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정치적 대응이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북핵개발을 막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선군에서 비핵안보번영체제를 선택하는 체제진화의 길로 나설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북한 체제의 붕괴는 한국이 치를 엄청난 비용을 고려할 때 결코 바람직한 미래가 될 수 없다. 북한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에 철저히 대비하되 그것이 한국의 기본 통일 전략이 되어서는 안된다. 김정은 체제가 퇴화와 붕괴대신에 진화의 길을 걷도록 하고 이와 함께 한국과 연관국가들이 건설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번영체체도 진화하는 ‘공진共進’이라는 새로운 그림의 창출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체제진화를 모색할 때 남북한과 미중, 일러, 유럽연합 나아가 유엔까지 함께 참여하는 복합평화번영체제를 한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군사•경제•정치의 3중 복합대응정책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정책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북한의 붕괴가 아닌 진화를 바라고 있기에 김정은 체제가 사지死地로 들어서는 핵선군의 길을 걷지 않도록 군사적 억지력 강화, 경제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 공생의 길인 한반도비핵안보번영체제의 구축에 한국이 앞장설 것이며 이 길을 선택하는 김정은 체제의 진화를 한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발신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가 대선기간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것처럼 과거 대북정책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햇볕과 제재의 단순논리를 극복하고 한반도 공동진화의 길을 모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위원 김양규, 동아시아연구원 연구원 전재성, 서울대학교 교수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논평은 하영선 EAI 이사장과 전재성 EAI 아시아안보연구센터 소장의 [특집 대담 스마트 Q&A] “북핵실험과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 진단과 처방”(동아시아연구원, 2013년 2월 21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AI 안보넷 2020-06-05조회 : 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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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27호] 외교부 당국자 입장에서 본 핵안보정상회의

이상현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중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여러 모로 전례가 없는 외교적 이벤트였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한국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교 이벤트이다. 53개국, 4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행사로 유엔총회를 제외하면 한 나라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로는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한 회의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바쁜 정치인인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이 한국서만 2박3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이 3박4일 체류한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정상회담 기간 전후에 걸친 6일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27차례 양자간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는 역대 한국 대통령 중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이 대통령 본인이 세운 기록(10회)은 물론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ia-Europe Meeting: ASEM)를 개최했을 때 세운 기록(14회)도 경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 성과를 떠나 내용을 보더라도 이번 서울 정상회의는 지난 2010년 워싱턴 정상회의 성과에 더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정상회의의 결과문서인 서울 코뮤니케(Seoul Communiqué)는 핵군축, 핵비확산 및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인류의 공동 목표임을 재확인하면서, 모두를 위한 더 안전한 세계를 구축하고자 전념하는 가운데 핵안보 목표를 공유함을 선언하였다. 또한 국가들이 각국의 국내 및 국제적 의무에 따라 자국 통제하에 있는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물질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에 대한 효과적인 방호를 유지하고 비국가행위자가 핵물질을 취득하거나 이러한 물질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요한 정보 또는 기술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할 근본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핵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원자력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개발하고 이용하는 국가들의 권리를 저해하지 않음을 재확인했다. 구체적으로 커뮤니케는 ▲글로벌 핵안보체제,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의 역할 강화, ▲핵물질 방호와 관리, ▲방사선원의 방호 강화, ▲핵안보와 원자력안전, ▲핵물질 및 방사성 물질의 운송시 보안 강화, ▲핵물질 불법거래의 예방, 탐지, 대응 및 형사소추를 위한 국가역량 개발, ▲핵감식 역량 강화, ▲핵안보 문화 증진, ▲정보보안 등을 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의 직후 의장국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를 설명하였다. 우선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년간 핵무기 3천여 개 고농축우라늄(highly enriched uranium: HEU)을 저농축우라늄(low enriched uranium: LEU)으로 전환했고, 앞으로 핵무기 1만 7천여 개 분 플루토늄(68톤)을 제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러 외에도 8개국이 480킬로그램의 HEU(핵무기 18개 분량) 제거 성과를 거뒀고, 멕시코와 우크라이나는 미러에 HEU 전량을 반납했다. 한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 4개국은 HEU를 고밀도 LEU로 전환하는 공동실험 등 기술협력에 합의했다. 이 외에도 2014년까지 핵물질방호협약(Convention on the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CPPNM) 발효를 위해 현재 55개국인 서명국을 발효기준인 97개국까지 늘리는 한편, IAEA에 대한 지지를 통해 국제규범과 다자협상체제 강화도 합의했다.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먼저 서울 정상회의는 신규 의제로서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간 시너지 효과” 등 추가적인 의제를 성공적으로 다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핵물질 반환, HEU의 LEU전환, 다양한 공동협력사업 추진 등을 논의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금번 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전인 3월 23일에는 핵안보 심포지움이 개최되어 4개 분과로 구성된 심포지엄에 IAEA를 포함한 국제기구 대표 170여명 등 46개국에서 원자력전문가가 참가하여 핵테러 위협과 안보, 국제사회에 직면한 핵위협 해결방안, 핵의 평화적 사용 등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북핵 문제로 인해 핵비확산의 취약지대로 인식되는 한반도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이 이러한 회의를 주최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국가적 위상과 브랜드파워를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규범의 피동적 수혜자에서 능동적 창조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외교통상부는 이번 서울 정상회의가 성공적이려면 무엇보다도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핵안보에 관한 정치적 공약을 실천의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하에, 포괄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조치들을 담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서울 정상회의는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뤄진 참가국들의 약속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참가국들이 약속한 72개의 약속 중 거의 대부분이 이미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또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의 핵안보를 위한 정치적 선언에서 실천적 이행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 그리고 방사성물질에 대한 방호까지 의제를 확대하여 1차 핵안보정상회의와의 차별성을 성공적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회의의 준비과정과 회의 이후를 내다보면 극복해야 할 한계와 과제도 만만찮다. 우선 준비과정에서 지적된 문제점들 중 대표적인 것은 역시 대국민 홍보와 관련된 문제였다. 핵안보정상회의 의제는 핵테러 방지가 최우선이고, 북핵문제와 한미원자력협력 등 우리와 직접 연관되는 사안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이 왜 이 회의를 주최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다. 핵안보는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념적 공감대 형성이 미흡한 분야이다. 이 때문에 서울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교통상부는 자문위원 전체회의를 개최하는 등 광범위한 조언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부대행사로서 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캐치프레이즈 공모 등 다양한 행사를 실시해 국민들의 인식 제고에 노력했다.   향후의 과제 중 핵심은 어떻게 해야 핵안보정상회의가 산발적인 외교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속가능한 비확산 메커니즘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다음 핵안보정상회의는 2014년 네덜란드에서 열리기로 정해져 있지만, 그 이후의 계획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따라서 그 이후까지 내다보고 핵안보정상회의를 어떻게 국제 레짐의 수준으로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대안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지난 두 번의 핵안보정상회의 성과를 이어나갈 후속 포럼으로서 G8 글로벌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GP)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G8 글로벌파트너십은 2002년 G8 정상회의에서 출범이 결정되어 현재는 23개국이 210억 달러를 염출할 정도로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GP는 원래 20년 한정 프로그램으로 출범했지만 2011년 프랑스 도빌 G8 정상회의에서는 GP를 2012년 이후에도 존속시키기로 합의했다. GP는 협력적 위협감축(Cooperative Threat Reduction: CTR)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협력적 방식으로 핵과 기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표적인 체제이다. 한국도 2005년부터 GP에 참여해 2011년까지 550만 달러를 기여했다. GP의 CTR 의제도 결국은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폐기, 확산 방지에 있으므로 핵안보정상회의의 취지와 일맥 상통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 이미 개최한 바 있는 G20 체제 속으로 비확산 어젠다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G20 국가들은 전세계 핵무기의 90퍼센트를 보유하며, 세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70퍼센트,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G20은 원래 국제경제와 글로벌 거버넌스에 초점을 맞춘 체제이지만, 핵안보가 중요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문제라는 인식이 G20 회원국들간에 공유될 수 있다면 G20에서 핵안보 문제를 논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핵안보정상회의의 본질적 한계인 구속력 없는 코뮤니케가 명실상부한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핵물질 제거•폐기가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참가국들의 실천 의지가 관건이다. 이번 회의에서 2014년까지 핵물질방호협약(CPPNM)을 발효시키고, 2013년까지 자발적으로 HEU 사용 최소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지만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결국 관건은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이 핵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얼마나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상현 2020-06-05조회 : 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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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24호] 김정은 체제의 미래와 한국의 전략 : 공진(coevolution)전략의 본격적 모색

20년 후, 북한 2032   김정일 체제가 종식되고 김정은이 주도하는 “강성대국” 원년 2012년이 밝았다. 지난 17년 김정일 치하의 북한은 핵선군 수령체제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정권의 생존과 체제의 안보를 모색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경제적 고난, 중국에 대한 과대한 의존 등 많은 문제를 남겼다. 잃어버린 17년이었다. 김정일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북한의 단기적 미래 상황이 관심사인 것은 당연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적어도 향후 20년 후의 북한을 내다보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2012년 새롭게 출범하는 김정은 체제는 국내정치적 안정이 다급한 상황에서 일단 김정일 체제와 강한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핵보유를 지속하며 정권안보를 추구하고, 핵 협상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끌어내고, 강성대국 구호아래 경제회복을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머지않아 피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핵을 통한 안보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난관을 가져올 것이며, 정당성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에 경제적 난관은 총체적인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국내정치, 외교, 경제가 서로 발목을 잡는 3중의 난제이다.   향후 김정은 체제는 21세기 문명의 표준과 국제사회의 변화를 따라가는 새로운 북한으로 거듭나기 위해 세 단계에 걸친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현재의 사안들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 1단계는 정책전환을 모색하는 단계이다. 유훈통치기간 중에 핵을 포기하고 선군체제에서 선경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적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운 결단이지만 김정은의 리더쉽을 국내외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음 10년 간은 이행과 개혁의 2단계다. 계몽 수령체제의 토대 위에서 평화발전이라는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 단계에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핵을 통한 과잉안보추구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서 핵 없는 안보체제의 길을 걷도록 이끄는 한편, 북한형 개혁개방의 청사진을 함께 짜도록 해야 한다. 3단계는 국제사회의 표준에 맞는 북한의 선진화로 변환하는 단계다. 적정 수준의 안보와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 본격적인 민주주의와 원만한 외교를 토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합, 동북아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는 모범적인 북한의 출현을 모색해야 한다.   새해 북한의 단기적 변화에 집착하거나, 북한 혹은 한국과 국제사회 한 측만의 결단을 요구하는 일방적 진화의 길을 넘어 북한 문제의 총체적 측면을 인식하고 북한과 한반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큰 그림을 공유하는 공진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진화하지 않는 김정은 체제   2012년 북한은 준비된 정권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년공동사설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에서 예상대로 유훈통치의 김정은 체제는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문제, 남북문제, 그리고 국제문제를 아버지의 선군사상에 기반해서 풀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은(28)은 김정일의 사망이후 진행되어 온 장례 정치에서 이미 장성택(65) 행정부장, 김경희(65) 정치국 위원, 최룡해(62)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김기남(85) 비서, 최태복(81) 비서등을 중심으로 당을 이끌고, 리영호(69) 총참모장, 김정각(70)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영춘(76) 인민부력부장, 우동측(69)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등을 중심으로 군을 장악하는 쌍두마차의 지휘관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12월 29일 중앙추도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시며 조선로동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 동지”로 명명되었다. 12월 30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는 ‘김정일의 10월 8일 유훈에 따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영남은 추도사에서 “김정은 동지를 또 한분의 장군, 최고령도자로 높이 우러러받들며 선군혁명위업,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것”이라고 하여 후계체제와 그 중심 사업내용을 공식화하였다. 김정일 사후 북한의 정치적 행보는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김정은의 권력기반도 예상보다 공고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향후 ‘김정일 유훈통치’를 최대의 정치적 자원으로 삼아 권력기반 공고화에 매진할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은 3년 간 ‘김일성 유훈통치’를 전면에 내걸고 김정일의 권력기반을 강화한 바 있다. 3대세습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김정은 체제는 신년 공동사설에서 공식적으로 내걸은 ‘김정일 유훈통치’의 기조 하에 김정일 선군정책의 전환보다는 지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체제는 아직 급격한 정책전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혼란을 감당할만한 정치세력과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는 상대적으로 권력기반이 취약하여 대남 강경태도를 가진 군부와 기존 엘리트 집단을 동시에 품고 갈 수밖에 없다. 설사 개혁개방의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국내적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권력층 내에서는 후계자로 인정되었다고 해도 일반 주민의 지지가 없이는 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 올해 공동사설에서 “인민을 위한 좋은 일을 더 많이 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모든 사업을 인민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군부 장악과 대내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남, 대외관계에서 완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후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된 데에는 당시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과 김정일 체제의 경직화된 대남정책의 악순환이 큰 몫을 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작년 12월 25일 담화문에서 조문허용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향후 대남정책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천명했고, 신년공동사설에서도 한국의 제한된 조의표시에 대해 강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가 남북 간의 물리적 충돌이나 군사적 긴장고조를 시도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정권 안정에 절대적 후원세력인 중국이 북한의 도발정책에 대해 이미 2010년 말부터 강력하게 견제해왔다. 국내적으로도 북한은 국가적 애도기간을 거쳐 2012년 2월 16일 김정일 탄생 70주기와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백주기라는 경축행사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안정적 환경이 필요하다.   문제는 단기적 안정을 이룬 북한이 선택할 다음의 행보이다. 김정일 시대에 김일성의 유산과 유훈은 17년 동안 제한된 자산으로 작용했지만 김정은 시대에 김정일의 유훈은 자신을 지켜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가 되기 어렵다. 김정은 체제가 북한의 처지를 직시하고 장기생존을 위해 김정은식 정책노선 모색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로서는 공식적 유훈통치(3년상)가 만료되는 2015년(당창건 70주년)까지가 중요할 것이다. 북한은 과연 진화할 것인가.   다가오는 북한의 고난과 전략적 결단의 기로   김정은 체제가 유훈통치를 기반으로 김정일 체제를 지속하는 한 3중의 난제는 해결될 수 없다. 국내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과제, 핵 문제 해결을 통한 외교문제 해결, 경제난 해결의 과제들은 상호 모순적으로 얽혀 있다. 김정일 체제 17년이 증명한 것은 핵을 보유한 채 경제난을 해결하고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김정일 체제는 핵을 가져야만 수령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핵보유로 인해 경제난이 가속되었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핵을 포기하면 수령체제 유지가 어려워진다. 적정수준의 안보를 넘어 핵 과잉안보를 추구한 결과 이상적인 자산배분에 실패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핵을 포기하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을 도모하면 독재적 수령체제 또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2012년 김정은 체제는 선군정치 계승을 통해 정치정당성을 추구하겠지만 이는 단기적 성과에 그칠 것이다. 우선 북핵 문제를 위시한 국제적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핵포기 협상을 추진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견뎌왔다. 핵이 주는 안전감과 핵포기 가능성이 주는 경제지원 양자의 유혹 모두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권은 더욱 취약하고 경제적 실패의 결과는 더욱 처참할 것이다. 핵협상을 지속해야 하는 북한의 사정과 북한의 안정을 도모하는 중국의 요구 등 다양한 이유로 북한은 북핵 협상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당장은 안정적 권력이양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공약 준수 요구를 강화할 것이다.   둘째, 본격적 경제위기가 초래할 정권과 체제에 대한 위협이 대두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가 전격적인 외부의 지원 없이 강성대국은커녕 김정은의 정당성을 유지할 경제적 자원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배급제가 기능하지 못하는 현재 북한의 시장은 정권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보유와 선군의 유훈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주민의 불만과 이에 편승하는 반대세력의 등장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더 나아가 외부의 경제적 지원은 개혁 개방으로 이어져야만 장기적 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미 김정은 체제의 강력한 지탱목인 중국의 개혁개방 압력은 가중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김정은은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조부의 ‘자주,’ 부친의 ‘핵선군’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업적의 발굴이 필요하며 이는 ‘발전과 성장’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몇 년째 강조하고 있는 경공업 발전과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안보과잉의 선군노선의 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혁 개방은 북한 사회의 개혁 개방을 가져올 것이고 독재의 정치가 이를 얼마만큼 견뎌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에 맞추어 독재의 수령에서 계몽된 수령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궁극적으로 정치의 문제가 대두할 것이다. 결국 김정은 체제는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제2의 선군정치의 길을 선택하여 식물국가의 비극을 맞이하던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북한형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의 공진화 전략 개시의 필요성   2012년부터 한국은 북한의 지도자 교체를 신중히 바라보고 단기, 중기, 장기의 계획을 철저히 수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장기 전략의 구도 하에 올 한 해의 정책패키지를 가다듬어 다음 정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나설 각 후보들은 국내정치를 넘어선 초당적 대북정책 패러다임의 수립을 위해 치열한 정책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 대 엄격한 관여정책, 진보와 보수의 양분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2010년대를 위해 제3의 정책대안을 개발해야 할 것이며, 남남갈등으로 여론이 분리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당장 북한에 제시해야 할 전략적 메시지 내용의 핵심은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북한의 생존과 발전은 물론 한반도의 새로운 통치(governance)형태와 남북 통합에 핵심이라는 것이며 한국은 북한의 선진화 비전을 위해 함께 진화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메시지의 수신자는 일차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핵심인물들이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및 국제사회와 공진하려는 북한 내 개혁, 개방 세력 전체가 될 것이다. 수령체제와 페쇄적 사회주의의 경험에 갇혀 미래의 길을 내다보지 못하는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에게 공존하고 협력할 수 있는 미래 한반도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중기적으로 한국은 북한이 부딪힐 3중 난제를 예상하고 이를 해결하는 정책대안을 만들어 놓는 일이 필요하다. 일차적으로 북핵 문제이다. 북핵 문제가 북한의 생존 전반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북한의 정권 안전감을 보장하는 동시에 핵포기를 위한 조건 마련에 정진해야 한다.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6자회담은 단순히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이 증대된 북한문제 전반을 협의하고 관리하는 국제적 틀로서 기능해야 한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 등 남북관계 개선과는 별도의 트랙에서 6자회담에 대한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접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핵 6자 회담을 넘어 평화체제 전략 역시 필요하다. 현재까지 평화체제는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전략 하에 전술적으로 평화체제 회담에 대응한 결과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북한은 평화체제 회담에서 미국의 대한 핵우산 공약의 철회, 주한미군의 철수, 서해상 경계선의 획정 등을 상투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체제 전술이 이룩해야 할 북한의 전략적 목적은 이제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근본적 진화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평화체제는 새로운 차원의 돌파구로 인식되어야 한다.   한국 역시 평화체제 협상을 북한의 비핵화 회피 구실 정도로 보던 방어적 태도에서 탈피하여 김정은 체제의 ‘탈脫선군 선先경제’ 발전모델 선택의 계기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내심과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체제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핵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한과 미중, 일러, 나아가 유엔까지 겹겹이 엮는 복합 안전 그물망 속에서 정권과 체제의 안전을 이룩할 수 있고,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못다 이룬 ‘경제대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도 납득시켜야 한다. 결국 한반도 차원의 평화체제와,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미중의 합의, 그리고 동북아 차원의 평화체제가 함께 작동해야 남북 공존의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중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장기적으로 정상화를 넘어 선진화된 북한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스스로는 알 수 없고 갈 수 없는 길이다. 수령체제에서 민주체제로 변환해야 하고, 국제사회를 앞서가는 국가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그럴 때 평화와 공존의 한반도와 동북아를 건설하는데 남북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강성대국이 아닌 지식, 문화, 환경, 경제에 함께 발을 디딘 21세기형 국가로 변환되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대북전략의 진화를 위하여   북한의 미래는 동북아의 국제정치와 결합되어 있다. 다가오는 동아시아의 아키텍처는 한반도 미래의 청사진과 분리될 수 없다. 한국은 아직 우리가 살아갈 동아시아 건축물의 주요 설계자가 될 수는 없지만 한반도라는 한 부분의 주도적 설계자가 되어 전체 지역 설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견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새로운 북한은 한반도의 운명뿐 아니라 지역 구도 속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 기회이자 시험대이다.   향후 최소 10여년 간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중관계이다. 부상하는 중국과 상대적 축소의 길에 접어든 미국, 동아시아를 평화발전의 핵심터전으로 만들려는 중국과 패권회복의 장으로 동아시아에 모든 것을 걸고자 하는 미국 간의 경쟁과 갈등의 한 무대가 한반도이고 주요 대상은 새로운 북한이다. 2010년 미중 간의 치열한 갈등은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단락되었다. 중국의 핵심이익을 미국이 존중하고 미국의 동아시아 관여정책을 중국이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후부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 그리고 미얀마 등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등에 동아시아 다자주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 일본과의 양자 동맹 강화는 물론, 한미일 삼각 협력도 강조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안보, 경제 건축물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하며 이를 견제하고 있다. 새롭게 변화할 북한은 미중이 조심스럽게 부딪히는 장이 될 것이다. 미중 양국은 일단 현상유지를 바라지만 어느 한편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북한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 중국 견제의 최전진기지로 변화하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중국은 경계의 끈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미중은 김정일 사망 이후부터 현재까지 일단 현상유지를 바라는 관망의 자세를 보이면서도 각자 원하는 북한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있다. 중국은 초기부터 “명확하고 단호한”(clear and decisive, 〈環球時報〉2011/12/20) 김정은 지지 메시지를 보냈고,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조의 방문하여 김정은 체제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확인했다. 미국 역시 한반도의 안정과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면서도 북한의 안정적 권력이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후 미국의 논평들에서 북한의 안정적 권력이양, 비핵화 공약 준수,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 북한주민의 인권과 삶의 개선 등 순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를 설정해 가고 있다.   미중이 부딪히는 경쟁의 일직선 상에서 한국의 기회주의적 움직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중이 자신만의 건축설계도를 고집하며 충돌할 때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 모두의 구성원에게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북한 문제를 계기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강대국 건축 속에서 중견국으로서 새로운 비전의 가능성의 틈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북한의 미래를 둘러싼 담론과 논리, 그리고 북한의 진화와 국제사회의 대북 전략의 진화를 함께 그리는 정책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당장 한국은 미국 및 일본과의 협의, 6자 회담 속에서의 치열한 협상, 그리고 이번 달에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김정은 체제 하 북한에 대한 장기 전략의 내용을 질문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이 원하는 북한의 미래는 미국과 중국이 원하는 것과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 개방을 추진하며 장기적으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상화, 선진화된 북한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부 정책,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조정능력, 그리고 각 국가들의 국내정치에 대북 정책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국제공조 등이다. 북한의 2012년 신년공동사설이 북중관계와 북러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정은 체제가 향후 미중의 동아시아 아키텍처 구축 경쟁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조만간 다시 재개되더라도 관련국들 간의 전략적 이해가 적절히 조율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를 강대국 정치에 맡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한중간의 대북정책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앞으로 한걸음씩 내디딜 한국의 행보가 미래 한반도와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모처럼 다가온 기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북한에 대한 한국의 전략과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을 견인하는 전략, 그리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건축에 관한 한국의 노력을 조화시키며 대북 공진정책의 청사진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학교) 전재성 (서울대학교)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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