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식계가 대북 전략 및 북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균형 있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 연구 및 통일전략과 동아시아전략을 복원하고자 EAI는 2018년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구축을 기획하여 웹사이트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대북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Global North Korea (Global NK)는 아카이브 성격의 웹사이트로써, 제재(Sanctions), 관여(Engagement), 자구(Internal Transformation), 억지(Deterrence)로 구성된 4대 대북복합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주요 4개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법을 통해 분류한다. 또한, Global NK에서 제공하는 통계치를 통해 웹사이트 이용자는 주요 4개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및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본 웹사이트는 외부 기관의 북한 관련 발간 자료를 한 곳에 수집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문가 코멘타리(Commentary)를 발간함으로써 보다 분석적이며 전략적인 방식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www.globalnk.org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폭파된 연락사무소의 미래

[편집자 주] 지난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남북관계는 또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하영선 EAI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나 '한미실무그룹' 해체 등 표면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한 3대 혁명역량강화의 틀 안에서 북한의 전략을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북한은 이러한 빛바랜 설계도를 허물고 21세기에 걸맞는 길을 걸어야 할 것이며 한국도 21세기 3대 역량강화 설계도를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내정치의 역량을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북한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개설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2020년 6월 16일 폭파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 오른 것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두 달 만에 열렸던 김일성 수상의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 기자회견이었다. 한국이 조국통일 3대원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7.4 공동성명의 비극적 미래를 예고했다. 그 내용으로는 첫째, 한국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지만 뒤에서는 양면전술을 쓰고 있으며, 공동성명에 지적된 합의 사항들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털어놓고 말하여 나라를 자주적으로 통일한다는 것은 미제가 남조선에서 나가도록 하며 그밖에 다른 나라 세력이 우리나라의 통일문제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라고 말했다. 둘째, 무력적 방법이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자는 원칙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향한 대화에 긴장상태가 여전히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내부적으로 평화공세를 통한 남북한 관계개선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셋째, 민족적 대단결에 합의한 이후에도 한국의 당국자는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을 개편하지 않고, 인민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루마니아 차우셰스쿠(Ceaușescu)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김일성 수상은 남북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세력을 신속하게 키우고 남한사회를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이 처음으로 합의했던 7.4 공동성명은 1년여 만에 폐기되었다. 김일성 수상의 반세기 전 기자회견 내용이 여전히 중요한 것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를 결정한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은 당시 할아버지의 시야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수상은 1960년대 중반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전쟁통일론을 현실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북한, 남한, 그리고 다른 나라의 3대 혁명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혁명통일론을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혁명통일론을 기반으로 북한은 1970년대 초반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조국통일 3대원칙으로 그 내용을 구체화했다. 이후 북한의 행보는 19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 등에서 3대 혁명역량의 기본 시각과 언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폭파된 연락사무소의 미래를 위한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대북전단 살포 금지나 한미실무그룹 해체와 같은 피상적인 대증요법 마련에 부심할 것이 아니라 우선 2019년 2월 말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한의 언행을 3대 혁명역량강화라는 생존전략의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현 단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3대 혁명역량강화의 기본 틀에 맞추어 시정연설을 했다. 첫째,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원칙으로 하는 자주의 혁명 노선, 인민대중제일주의, 당의 영도를 강조한 다음 둘째, 북한의 혁명역량강화를 위한 자립경제 발전, 정치 군사력 강화, 사회주의 문화발전, 인민정권기관의 기능과 역할 강화를 지적하고 있다. 셋째, 남한의 혁명역량강화에 대해서는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한국이 진실로 남북 관계개선과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 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여야” 하고,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를 계속 살려나가자면 적대적인 내외 반통일, 반평화 세력들의 준동을 짓부셔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넷째, 국제 혁명 역량의 강화에 대해서는, 2018년의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을 의미 있게 평가한 대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이 새로운 북미관계를 위한 근본 방도인 적대시정책을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최대로 제재함으로써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했기 때문에 회담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면 미국이 현재와는 다른 새로운 계산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 이후 8개월 만인 12월말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전대미문의 준엄한 난국을 정면돌파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 이익을 끝까지 수호하며 자력 부강의 기치 높이 주체혁명 위업 승리의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설계도를 다시 한번 제시했다. 먼저 당면한 정세 분석에서 “몇 개월 동안 우리 앞에 봉착한 도전은 남들 같으면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고 물러앉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이였으나 그 어떤 곤난도 공고한 전일체를 이루고 굴함없이 나아가는 우리 인민의 돌진을 멈춰 세울 수도 지체시킬 수도 없었다.”고 하면서, 전원 회의의 기본정신은 정세가 좋아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정면돌파전을 벌여서 객관적 요인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북한은 자신의 최대 위협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제시했던 미국의 새로운 셈법의 연말 시한이 가시적 성과 없이 지나가게 되자,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장기화는 조선반도 정세를 더욱 위험하고 엄중한 단계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북한은 상대방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며, 적대적 행위와 핵 위협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현재의 제재 해제를 위해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멀지 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동시에 제재는 자력갱생으로 대결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자력 강화를 위한 국가 관리와 경제사업 분야에서 바로잡아야 할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2019년의 난국을 정면 돌파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2020년에 들어서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지구적 전파와 함께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 역량과 국제 역량의 강화는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쳤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이룬 남북관계의 개선은 국내와 국제 역량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따라서 북한의 김여정 제1부부장은 6월 중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살포와 ‘한미실무그룹’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두 가지 잘못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우선 첫 담화에서 “우리는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 라고 말하고, 둘째 담화에서는 “어쨌든 이제는 남조선 당국자들이 우리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나앉게 되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저지른 두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노선을 선택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미래는 없다는 위협이다. 대북전단 살포의 근본문제는 북한의 국내혁명역량의 강화를 위해 신성시하는 최고존엄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한국의 정책 담당자에게 7.4 공동성명의 민족대단결 원칙에서 배신자와 신뢰자의 갈림길에서 양자 택일하라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현재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한미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미실무그룹’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단순히 실무적인 것이 아니다. 민족자주와 동맹 사대의 갈림길에서 최종적으로 갈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6월 23일 대남 군사행동 보류 지시에도 불구하고, 김여정의 위협 담화는 북한의 진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의 관심은 대북전단 살포와 한미실무그룹의 두 문제를 전술적으로 풀어보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북한의 재건축 기본 설계도는 여전히 반세기 전의 3대 혁명역량강화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7.4 공동성명 당시처럼 북한의 설계도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 단기적으로 재건축을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북한의 빛바랜 설계도로는 21세기 한반도를 세계의 선진 문명국으로 건축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후진국으로서 역사의 뒤안길을 오랫동안 헤매게 될 것이다. 시급한 것은 한국형 21세기 3대 역량강화의 설계도이다. 이러한 설계에 따른 진정한 햇볕정책은 21세기에 맞는 미래의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스스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태, 기술의 모든 영역에서 21세기에 맞는 재조직화의 길을 걷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이 21세기 선진 문명국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주변 관련 당사국과 함께 북한의 선진화를 도와야 한다. 이러한 한반도 재건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21세기에 걸맞는 비전을 가진 새로운 국내 정치 역량의 강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EAI 들리는 논평 듣기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 《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 《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한국 외교사 바로보기: 전통과 근대》,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서주원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6) jwseo@eai.or.kr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 2020-06-24조회 : 10762
멀티미디어
[EAI 들리는 논평] 코로나 정국 속 북한의 정면돌파전, 위기인가 기회인가?

.a_wrap {font-size:16px; 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Arial; line-height:26px; width:100%;} .bg_grey {width:80%; margin:0 auto; background-color:#eee; padding:25px 15px;} 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손열)은 국내외 주요 이슈에 대해 전문가의 논평을 보다 쉽고 편하게 들어보실 수 있는 콘텐츠로 'EAI 들리는 논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세 번째로 코로나 정국 속 북한의 대외정책을 분석한 박원곤 한동대학교 교수의 논평을 소개합니다.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만 하는 가운데 공식 확진자가 ‘0’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당국은 부인하지만, 다수의 징후가 보여주듯, 이미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대내외 난관에 대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북한이지만, 최근 도발의 수위를 낮추면서 친서 외교로 남북관계의 개선 의지를 드러내며 ‘정면돌파’ 노선에 변화를 줄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북한이 남북교류로 생길 수 있는 한미 간의 균열을 통해 대북제재를 약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면돌파’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북한이 코로나 정국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고 보는 한편,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는 ‘정면돌파전’에 이용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AI 들리는 논평 스크립트   안녕하십니까? 동아시아연구원은 복잡한 현안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더욱 쉽고 편하게 제공하고자 ‘EAI 들리는 논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AI 들리는 논평’의 세 번째 주제는 바로, 코로나 정국 속 북한입니다.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만 하는 가운데 공식 확진자가 ‘0’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당국은 부인하지만, 다수의 징후가 보여주듯, 이미 북한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지난 12월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대내외 난관에 대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북한이지만, 열약한 국내 여건을 고려한다면 확산 시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코로나 정국을 헤쳐 나가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북한은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극복하려는 것일까요? 동아시아연구원은 코로나 정국 속 자주와 타협 사이에서 갈등하는 북한을 분석한 박원곤 한동대학교 교수의 논평을 통해 향후 북한이 어떠한 대외정책을 펼칠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북한의 내부 상황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북한이 입게 될 막대한 피해를 가늠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현재 북한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을 절대로 굶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며 기대를 부풀게 한 바 있지만, 지속되는 유엔 안보리 제재와 진전 없는 북미대화로 경제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서 난처한 입장에 놓인지 오래입니다. 어려울 때마다 ‘자력갱생,’ ‘자주,’ ‘정면돌파전’과 같은 상투적인 북한식 구호에 호소하는 양상은 또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위에 바이러스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닥친다면 북한 정권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은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하여 기존의 ‘정면돌파’ 노선에 변화를 줄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먼저 코로나 확산 이후 북한의 도발 수위가 낮아졌습니다.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의 도발은 작년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실험 수준이며 도발 이후에도 “일상적인 군사연습”일 뿐이라면서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한의 정책 노선 변화 징후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드러납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청와대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있던 다음 날 보내진 친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까지 걱정하며 매우 정중하게 작성된 것으로,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암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한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며 민족적 이익을 우선시하라는 일침을 놓았던 것을 상기해보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하루 사이에 상반된 대남 메시지를 보냈는지에 대한 해답이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 북한의 들쑥날쑥한 대남 담화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해보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봉쇄되며 당분간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북한은 남한으로부터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북한은 한국의 지원에 ‘마지못해’ 응하는 모습을 연출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이 남한과의 교류를 재개한다고 하여 지난 12월 선포한 ‘정면돌파’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북한은 오히려 대북제재를 타파하고 ‘정면돌파’ 전략을 적극 실현하기 위해 남북 대화와 교류를 재가동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대북 제재가 일부 완화하였다고는 하나 북한이 남한에 기대하는 것은 완화된 제재의 범위를 넘어설 소지가 다분합니다. 예를 들어 관광 분야는 대북제재에 명확히 금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행 과정에서 대북제재에 저촉될 여지가 매우 큽니다. 미국이 관광 문제는 한미 실무협의체를 통해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북핵 문제와 분리된 남북관계 개선은 없다고 못 박은 만큼 미국을 제외한 남북대화가 진행된다면 한미 간의 균열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어쩌면 북한은 이러한 균열을 미리 간파하고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을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즉, 한미 간의 균열을 대북제재를 약화하기 위한 ‘정면돌파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강력히 부인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북한 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원이 절실한 만큼 북한이 코로나 정국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도적 지원은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는 ‘정면돌파전’에 이용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정면돌파전’이 코로나에 굴복할 것인지 전화위복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AI 들리는 논평, 동아시아연구원 윤준일이었습니다.■ 박원곤 교수님의 논평 원문은 "논평_다운로드" 또는 Global North Korea 웹사이트를 통해 이용 가능합니다. [바로가기]   ■ 저자: 박원곤_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관계 전공교수. 국방부·통일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에서 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북아 국제관계, 안보론, 외교사, 북한연구, 한미동맹 등이다. 주요 연구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 평가와 신행정부 대외전략 전망"(2016) (공저), "정당한 전쟁론 연구: 평화주의, 현실주의와의 비교"(2016), "Changes in and Prospects for the East Asian Security Order: A South Korean Perspective"(2016), "A Theoretical Review and Critical Analysis of South Korea’s Proactive Deterrence Strategy"(2015), "한미동맹 미래 구상: 지휘구조 개편을 중심으로"(2014)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준일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3) I junilyoon@eai.or.kr     [EAI 들리는 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분석을 더욱 쉽고 편하게 들으실 수 있도록 기획된 콘텐츠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박원곤 2020-06-08조회 : 9097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한반도 평화체제를 넘어 동북아 신질서 구축으로 가는 길: 한국의 전략과 역할

.article_wrap {font-size:14px; 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Arial; line-height:20px; } [편집자주]   “한국, 북핵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 전략적 환경까지 고려해야”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정세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연내 2차 북미정상회담 및 북중, 북러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논의되고 있어 그 변화의 물살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EAI는 이러한 흐름을 독자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발행된 관련 보고서를 엮어 ‘북한 바로 읽기’ 시리즈로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번 논평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간되는 ‘북한 바로 읽기’ 시리즈의 열 번째 보고서로, 전재성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이 집필하였습니다. 저자는 본 논평에서 현재 진행 중인 북핵 협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동북아 신질서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견인하는 과정에서의 한국의 전략과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북미 간의 불신을 불식시키고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데 있어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첫째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원칙을 준수하고, 둘째 자국은 물론 주변국의 중장기 전략 이익을 고려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북핵 협상이 한 단계 진전되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연내 2차 북미 정상회담, 북러,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 일련의 정상회담이 예상되고 북일 정상회담도 논의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넘어 동북아 신질서 수립에 대한 전망까지 표명한 바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강대국들로 이루어진 동북아의 안보구조가 조금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면 이는 실로 의미 있는 변화이다. 북핵 협상의 현 단계를 둘러싼 북미 간의 의견차이가 좁혀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북핵 협상이 진전되면서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난관과 과제들도 등장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북미 간의 근본적인 불신과 단계별 상호 조치의 등가성에 대한 논란, 북미 양측의 내부 정치적 요인 등이다. 미국의 회의론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명시적으로 직접 언급한 바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데 미흡하다는 관측에서 비롯된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북한이 폐기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및 발사대 등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이미 효용이 다한 시설이며, 북한은 여전히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시뮬레이션에 의한 핵 능력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미국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군사훈련 중단 이외에 북한의 선제 조치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훈련 중단도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가역적 조치라는 점에서 미국의 행동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은 또한 상응조치로 소위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회피하는 미국을 비난하고, 불가역적 핵폐기 이전 경제제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에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 단계에서 북미 양측은 영변 핵시설 폐기, 미국과 국제사회의 검증, 북한의 핵시설, 핵무기 리스트 제출, 대북 경제제재 완화 등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북미 간의 갈등은 양측 조치의 등가성을 둘러싼 논란이며 배후에는 신뢰부족이 작동하고 있다. 미국이 당초에 주장한 북한의 일방적이고 단기간에 걸친 비핵화 조치 이후 보상한다는 방안이 사실상 폐기되고, 북한이 제시한 단계적, 동시적 방안이 적용되면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둘러싼 등가성, 양측이 취한 조치의 (불)가역성의 등가성이 논란의 핵심이 된 것이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보는 듯한 선(先) 행동이 가져올 내부 정치적 부담도 크게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 전략은 북미 협상의 실패의 역사를 알고 있는 미국 내 주류 전략가 집단에게 비판의 표적이 된지 오래이다. 북한에 대해 준비 안 된, 비등가적 양보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내정치적 부담으로 작동한다. 북한 측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이 북한 내부의 정치, 사회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협상이 북한의 이익과 성과로 귀결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여겨지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9월 방북한 한국 특사단에게 토로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돈독한 신뢰가 쌓여가고 있다고 해도, 양측 모두 각자 내부 정치적 공격을 감당해야 하는 양면의 게임이 전개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운전자론 등 북미 협상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수사들이 난무했지만, 북미 협력의 촉진자로서 한국의 역할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북한과 미국 양측의 입장과 전략을 감정 이입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북미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둘째, 이를 바탕으로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 셋째, 협상의 각 단계에서 북미 양측의 선 행동, 혹은 양보로 인한 국내정치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부담을 한국이 나누어 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1992년 초 김용순-캔터 회담을 시작으로 북한과 미국이 양자 고위급 회담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태평양만큼 넓은 거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단일 민족, 혈맹의 역사 속에서 북미 양측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지평을 가지고 있으며, 양측의 견해를 “번역”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향후 추구하고자 하는 전략과 희망, 미국이 당면한 패권국으로서의 역할과 부담을 서로에게 전달하여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수행하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차원에서 협상이 진전되게 하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행동이 나아가지 않으면 말로 협상의 진전을 꾀하고, 합의가 어려운 대안들이 충돌할 때에는 대안을 더 잘게 쪼개어 타협이 가능한 영역을 넓히기도 하며,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미협상을 추동하도록 시도하기도 한다. 한국이 제시하는 많은 안(案)들이 북미 양측에 의해 거부되기도 하고, 한국 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정리되지 않은 많은 안들이 공개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안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정한 정도의 실패와 시행착오는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내부 정치와 반대의견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문재인 대통령은 제기 가능한 비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북한의 대중들에게 비핵화된 북한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설득하기도 하고, 미국의 전략가들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도 손해 볼 것 없는 가역적인 것이라고 논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북미 협상의 내부적 불만을 해소하여 협상이 진전되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협력 촉진 및 중재의 역할은 매우 정교하고 전략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실패한다면 그간의 노력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첫째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원칙의 일관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비핵화 이전 제재의 유지, 영구적 평화체제 수립,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북핵 문제 해결에서 반드시 이룩되어야 할 원칙들을 제시했고 이탈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2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을 없앤다는 것 전부가 포함된 약속”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 발전을 위해 핵을 포기하겠다고 했고, 제재라는 어려움을 겪어가며 핵을 갖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전언도 하고 있다. 문제는 중재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원칙에서 이탈할 동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경제제재가 완화되어 생존과 발전의 길이 마련될 경우 최소 억지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동기를 포기하기 어렵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고 미국의 소극적 태도를 공동 비판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적 제재 전선이 와해되고 핵 보유의 가능성이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검증을 받아내려 하겠지만 이후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에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비핵화된 북한이 미국에게 어떠한 전략적 이익이 있는지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결여된 미국으로서 북핵 문제는 미국 본토 안보와 핵비확산의 문제에 그칠 수 있다. 한국은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남북관계를 추진하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대북 경제제재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 내에서도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논의, 국제사회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대북 독자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논의 등이 비등하고 있다. 남북 경제교류는 향후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전략에서 이탈할 동기를 강화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원칙에 기반한 대북 경제제재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일각에서는 한국이 남북관계를 강화하면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의심을 제기하며 한미 갈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북 관여정책의 필요성의 측면에서 남북 교류의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대북 관여의 진정성을 계속 보여주는 것과,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시기를 조정하는 노력이 함께 가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중장기 전략 이익을 고려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완성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한국의 중장기 전략 이익도 실현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완성 시점을 둘러싸고 무수한 논의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핵심은 북한이 최소한의 억지력으로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까지 온전히 폐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가능하게 할 북미 간 신뢰구축과 평화체제가 마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평화체제는 전쟁과 갈등을 막는 소극적 평화를 위한 협상이지만 동시에 북한의 미래 지위와 자구(self-help)의 전략을 통해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적극적 평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비핵화가 완성된 이후에도 미래의 북한을 둘러싸고 다양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북한은 체제 보존과 수령체제 유지를 지향하며 발전을 추구할 것이며,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한국과 새로운 차원의 경쟁을 시작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상호 협력 하에 지구적 차원과 동북아에서 미국 견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특히 트럼프 정부의 대중 무역 공세가 고조되면서 중국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비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미 북핵 문제로 한미동맹 강화의 부작용을 경험한 이후 중국은 평화체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이익을 한반도에서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비핵화 이후의 북한과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를 예비하면서 중국은 최근 북중 혈맹 관계, 사회주의 연대 등의 수사를 부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대중 무역 공세 이외에 체계적인 동아시아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형성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 미국과 북한 간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북핵 전략을 넘어 중장기 북한 전략이 없는 미국이 평화체제 협상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북한과 신뢰구축을 추구할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은 평화체제 수립 이후 북한의 외교 전략과 대남 전략을 예상하면서 북미 간의 전략적 관계 설정을 위해 협력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해나가야 한다. 이 방정식 속에는 미중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강대국 관계의 재설정이라는 과제가 있다. 한반도가 미중 전략 경쟁의 터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한국이 주축이 되는 평화통일의 국제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동북아 신질서 속에는 북핵 협상 과정을 넘어 평화체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경쟁과 협력 구도에 대한 비전이 함께 확립되어야 한다. ■   ■ 집필: 전재성_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정치는 도덕적인가》,《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최수이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105) I schoi@eai.or.kr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전재성 2020-06-05조회 : 8400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북미정상회담이 남긴 숙제 제대로 풀기

[편집자 주] 지난 6월 12일 북미 정상 간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70여년 만입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첫걸음임은 분명하나, 당초 기대와 달리 공동성명에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시간표가 빠지면서,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CVID의 공동성명 포함 여부가 아닌, 북한이 협상의 종착역으로 CVID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라고 하영선 EAI 이사장과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지적합니다. 아직은 그러한 논의를 하기에는 이르며, 북한이 현 신전략노선을 한 단계 더 진화한 개혁개방노선으로 발전시키고, 북미관계를 한미관계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이후에나 북한과의 CVID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들은 분석합니다.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지난 70년 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북한과 미국이 처음으로 역사적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이후 3월 초 한국 특사단의 북한 방문, 북미 특사교환을 거쳐 열린 6월 12일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합의한 짧고 추상적인 공동성명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공동성명에서 북미는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공동으로 노력하고, 북한은 판문점 회담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자리 잡을 것이라는 낙관론과 함께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단계와 시간표에 대한 합의 내용이 빠져 있고,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초보적인 원칙 확인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향후 두 숙제 풀기의 성패에 대해 전혀 상반된 해석을 낳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섣부른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서서 북미정상회담이 남긴 숙제를 꼼꼼하게 따져서 제대로 풀어 보려는 신중함이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의 숨겨진 숙제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은 미국이 제시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과 시간표에 대한 북한의 동의 여부였다. 정상회담 이전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의 두 차례 회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의 협상, 그리고 회담 직전까지 성 김 대사와 최선희 외무부상 간의 실무 협상이 진행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전날 기자회견에서 검증(V)이 정상회담의 핵심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며 북한을 간접 압박하기도 하였다. 6월 12일 9시 회담 개시 직전까지 미국 측은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검증과 불가역적 폐기의 용어를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북한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진행하기로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동성명의 추상성과 불확실성은 온전히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기에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의 성공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북한의 핵 폐기(CVID)라는 미국의 당초 목표는 물론, 핵 폐기의 완결 시점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에 대해 북한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했다. 북한의 핵 폐기 대가로 미국이 종전을 선언하고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북미 정상은 4월 27일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제시하는데 그쳤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검증과 불가역성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으며,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조선반도 비핵화’로 표현되어 있다.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합의라기보다 판문점 선언에 근거한 비핵화 확인이라는 점에서 비핵화에 대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게다가 대북 체제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들도 성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직후 한국방문에서 미국의 비핵화 목표가 바뀌지 않았으며, 한국에 대한 동맹 공약이 확고함을 밝히고 있다. 즉, 완전한 비핵화는 검증과 불가역적 조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며, 생산적이고 신뢰에 기반을 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연합 군사훈련이 중단되고, 북한과 수 차례 만남을 통해 북한도 검증과 불가역조치의 불가결함을 북한도 이해하고 있고, 경제제재는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을 재차 강조했다. CVID는 공동성명에 글자 그대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양국 간 사실 상의 이해사항이며 향후 협상의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과거 핵 및 핵 물질, 핵 시설 등 모든 것을 포함한 비핵화가 목적이며 검증과 비가역 조치를 협상을 통해 추구해 나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미국과 CVID를 위한 협상을 진행할 수는 있어도 CVID를 협상의 최종 종착역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북한은 지난 4월 20일 당 전원회의에서 핵경제병진노선의 완성을 기반으로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는 신전략노선을 선언했다. 신전략노선은 과거처럼 핵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이 아닌 동시에 핵무기 없는 경제건설 노선도 아니다. 대신 핵군축의 틀에 따라 핵 능력을 최소한의 억지력 수준까지 감축하면서 최대한 경제건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관계의 완화단계에서 현실적으로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이나 비가역적 조치를 실질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CVID를 받아들이려면 북한이 현재의 신전략노선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켜 명실상부한 개혁개방노선으로 추진하고 북미관계를 한미관계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비로소 미국의 CVID를 종착역으로 받아들이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핵군축차원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다루면서 미래 핵과 미사일 개발 포기의 약속의 대가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받은 것이다. 이후 미국의 평화체제 수립 노력, 관계정상화, 경재제재 완화 등의 노력을 보아가면서 북한형 완전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총평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 행동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했다고 평가하며 이러한 인식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현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길은 핵군축의 첫 단계로 미국이 요구하는 외부의 검증과 불가역 조치를 피하기 위해 우선 초보적 수준에서 자기 검증과 불가역적 조치를 신뢰구축 방안의 일환으로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즉, 다국 또는 미국이 주도하는 특별사찰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 신고하고 자기 검증하는 방식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불가역조치를 자진해서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1단계 신뢰구축 과정에서 북한은 완전한 체제보장의 첫 단계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국제 경제제재의 완화 조치를 동시적으로 요구했다. 그리고 미국이 경제제재와 외교적 고립정책, 군사적 대안의 선택 가능성을 시사하며 북한을 아무리 강하게 압박하더라도 핵무기를 생존과 체제안전의 마지막 담보로 삼는 한, 북한에게 완전한 비핵화는 생사를 건 결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말처럼 북한 스스로가 검증과 불가역 조치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있어도 북한의 안전담보를 확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이 희망하는 외부의 검증과 불가역 조치를 대단히 조심스럽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미 간에 핵군축의 첫 단계인 신뢰구축 조치가 단계적으로 또 동시적으로 진행된다면 북한은 다음 단계로 최소한의 억지를 위해 핵 능력을 제외한 핵 시설과 핵 물질 등에 대한 국제 신고, 검증, 비가역 조치를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진정성을 보이는 한편, 미국이 약속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정착, 대북 경제제재 조치 해제 등을 본격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핵군축의 1단계로 진행될 북한의 신뢰구축 조치는 일방적으로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단계로 최소한의 핵억지 능력을 제외한 비핵화 과정은 완전한 체제보장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및 경제 지원의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서 눈에 띄게 완화된 속도로 추진될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 3단계로서 북한이 국제사회가 만족할 수 있는 완전한 비핵화를 외부의 검증 및 비가역 조치와 함께 완성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신뢰구축 위에 새로운 전략적 결단을 필요로 한다. 지난 4월 20일에 채택된 북한의 신전략노선이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응을 염두에 두고 단계적 그리고 동시적으로 접근해서 핵을 감축하는 조건부 결정이었다면, CVID를 위해서는 북한이 완전한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고 비핵 경제발전의 병진노선 채택이라는 또 한 번의 대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완전한 체제보장의 어려움 북미정상회담의 다음 관심은 북한이 요구하는 완전한 체제보장을 미국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느냐였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에 관한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이며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하면서 그 내용을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두 나라 사이에 뿌리 깊은 불신과 적대감에서 많은 문제가 생겼으므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서로 이해심을 가지고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며 이를 담보하는 법적·제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계 수립이 안전보장에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고, 현재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대시하는 군사행동 등을 중지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사이에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 측이 도발로 간주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며, 북한에 대한 안전담보를 제공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데 따라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으며, 미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한 모라토리움의 이행 과정으로 이미 실천한 풍계리 핵 실험장에 이어 주요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쟁연습(war game)이라고 명명하며 괌으로부터 전폭기 전개의 문제점, 그리고 훈련비용 분담에 대한 불만 등을 언급했다. 또한 북한과 포괄적이고 완전한 협상을 하는 동안 전쟁연습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발언하여 훈련중단을 명시했다. 대북 안전담보에 대해서는 평화협정에 대한 사후 협상 가능성과 조속한 북미수교에 대한 희망 등을 언급했지만 핵심은 주한 미군에 대한 논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칙적으로 희망하지만 현 단계에서 대북 협상의 일부로 논의되는 것은 아니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고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그간의 일관된 비용문제를 함께 제기한 것이어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안전담보의 일부로 주한미군 문제가 토의된 것인지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미국은 다른 경로들을 통해 주한미군은 대북 안전담보 관련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현재까지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 공간에서 단기적 그리고 경비적 시각의 계산은 이태 공간에서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국가 이익에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미국이 고립주의로 후퇴하지 않고 새로운 아태질서를 건축하려면  지역질서의 군사적 기반을 불가피하게 핵심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21세기의 첨단 군사과학의 기술혁신이 아무리 빠르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종래의 해외기지 그물망을 활용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잠재적 동반자로서 평가했던 것에 비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서 보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동맹 군사기지의 활용을 축소하면 자동적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아시아 태평양 공간에서의 영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체제보장을 위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제의는 과거 오랫동안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통일전략으로서 추진되고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오랫동안 상호 적대시 관계를 유지해 왔던 당사국들은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신뢰구축의 상호 노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 측이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해 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숙제 제대로 풀기 첫째, 북한이 완전 비핵화의 최종 종착역인 CVID에 도착하는 과정은 외부 검증과 불가역적 조치를 피하기 위해 자진해서 빠르게 추진될 첫 단계의 신뢰구축조치, 최소 억지를 위한 핵무기를 제외한 완전 비핵화의 두 번째 단계, 북한형 개혁개방인 비핵 경제 병진 노선의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세 번째 단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한국과 주변 당사국들은 북한의 이러한 자구적 노력과 함께 단계별로 적합한 공동진화적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제1단계에서는 비핵화 이후 북한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과, 북한 스스로 일어서는 자구의 청사진을 제공하되 신뢰구축이 부족하여 난관에 부딪힐 때를 대비하여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압박수단도 유지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관련 당사국들이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관여와 비핵화 완성까지 합리적인 압박에 대한 강한 합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2단계에 들어설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불가역적 비핵화가 진행되는 시점부터 대북 경제제재 완화가 가능하다고 시사했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보다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제재 완화가 가능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혀 정확하고 일치된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완전한 체제보장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려면 오랜 기간 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했던 북미 간에 상당한 수준의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평화체제는 정치적 신뢰구축, 법적 제도적 신뢰구축, 군사적 신뢰구축을 필요로 한다. 북미정상회담은 상호이해의 충돌을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하는 대신에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 보려는 정치적 신뢰구축의 첫 걸음이고,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북미수교로 이어질 수 있다. 법적·제도적 신뢰구축의 핵심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다. 특히 북한의 과거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제의가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통일전략으로서 추진되었던 역사적 전례가 있으므로,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쌍방의 노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북한의 국제 지위를 보장하는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군사력이 여전히 중요한 정책 수단인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종이뭉치”에 불과한 약속일 수도 있으므로 군사적 신뢰구축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의 핵 위협 제거의 약속, 그리고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완전한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 군사정보의 투명성 제고, 남북한의 군사훈련 사전 통보와 참관과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다음 단계로 남북한 공격무기체계의 후방배치 및 축소와 같은 군비통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 자산이나 주한미군은 북한의 핵, 통상 공격에 대한 다각적 억지전력이므로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 하에 남북 군사회담의 성과를 고려하면서 주한미군의 미래 역할과 규모를 논의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완전한 체제보장은 비핵 북한을  위해 기존의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세계적인 규모의 복합 경제지원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종착역으로 삼으려면 4월 20일의 신전략노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북한형 개혁개방노선을 추진하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현재 노선보다 완전한 비핵화에 더욱 적합한 북한형 개혁개방 노선이 체제보장의 자구책으로 추진되게 하려면 북한 자체의 자기 조직화 노력과 함께 주변 국가들의 공동진화적 대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넷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체제보장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아태 지역의 평화체제 문제이다. 핵무기 국가 북한은 아태질서에서 핵 확산의 위험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며, 북한체제의 불안정은 아태질서를 주도하려는 미국과 중국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려면 한반도평화체제와 아태평화체제를 동시에 모색하는 복합적 노력이 중요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는 국제적 경제지원이 필수적이며, 북한의 완전한 체제보장도 미국, 중국, 한국과 같은 양자, 6자회담과 같은 다자, 유엔과 같은 지구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장, 대통령국가안보자문단(2008~2016),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한측 공동위원장(2009~2013)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등이 있다. 전재성_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정치는 도덕적인가》,《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전재성 2020-06-05조회 : 8377
논평이슈브리핑
[하영선 칼럼] 북한의 `신전략노선`과 두 정상회담: 비핵화와 체제보장

[편집자 주]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2007년 정상회담 이후 약 10년 6개월 만입니다. 그간 수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했던 북핵문제가 이번 회담을 기점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높습니다. 그간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고집하던 북한이 협상에 나섰다는 것은 적어도 협상 과정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결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핵 협상의 내용, 즉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핵심 개념에 대한 북한의 입장으로, 한국과 미국이 합의 가능한 범위의 제안일지가 관건이라고 하영선 EAI 이사장은 분석합니다. 결국 북한의 완전 비핵화 이행을 위해서는 핵무기 이상으로 북한의 자주 국방력을 보장하고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복합체제보장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하 이사장은 강조합니다.      김정은의 2018년도 신년사를 분기점으로 북한 비핵화의 숙제 풀기는 전쟁과 평화의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지난 해 전쟁 일보 직전을 방불케 하는 북미 간의 막말 공격은 지나가고, 새해 들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석, 남북의 특사교환이 이뤄졌다. 이어서 북중정상회담 및 미국 특사와 김정은 위원장 의 면담이 있었고, 4월 20일에는 북한이 '신전략노선'을 발표했다. 그리고 4월 말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 이래 2017년까지 여덟 번에 걸쳐 실패했던 북핵 숙제 풀기가 성공해 청룡열차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나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려면,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전략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한국과 미국, 중국을 비롯한 모든 당사국들이 숙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이러한 세기사적 숙제를 과거와 달리 성공적으로 풀려면 현재의 소박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복합적 시각에서 북한 '신전략노선'의 변화와 지속, 북한이 추진하는 정상회담의 목적을 당사국들의 기본 문건을 기초로 해서 밝힌 다음, 임박한 정상회담에서의 핵심 숙제인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체제보장 문제에 대해 남북한과 미중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의 '신전략노선': 변화와 지속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어떠한 전략적 변화를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두 공식 발표문과 북한의 '신전략노선'을 조심스럽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후 방북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6개 항으로 되어 있는 발표문의 핵심은 세 번째 항으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다음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3월 26일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시종 변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서 "우리는 장차 남북관계를 화해협력 관계로 변화시킬 것이며 남북 정상회담을 거행하고,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우리의 노력에 선의로 응하고 평화와 안정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발표문을 종합해 보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해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은 "단계적, 동시적 조치"라는 표현이다.  북한은 2015년 10월 17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으로 한국과 미국이 요구하는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이나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 추진하는 쌍궤병진(雙軌竝進)을 비현실적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고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단계적, 동시적 조치' 발언은 이러한 북한의 종래 입장과는 다르다. 오히려 중국의 쌍궤병진 제안과 유사하게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한이 북핵 협상의 '과정'에 대해 유연성을 보인 것처럼 북핵 협상의 '내용', 즉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핵심 개념에 대해서도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우선 3월 5일의 방북결과 발표문에는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3월 26일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진력하는 게 우리의 시종 불변된 입장"이라고 비핵화를 언급했다. 관건은 "불변된 입장"의 내용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였으며, 이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남한 내의 핵 자산 유무, 나아가서는 한반도 주변의 전략 핵 무기 유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조선반도 비핵화라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북한의 동시 비핵화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8일 아베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달성하면 북한에게 밝은 길이 있다."라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9일 언론사 사장 간담회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고 다시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공화국 핵무력건설에서 이룩한 역사적 승리를 새로운 발전의 도약대로 삼고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적인 총공세를 벌려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신전략노선’으로서 첫째, 병진노선으로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했으며, 둘째,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유도탄 실험발사를 중지하며, 셋째,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 노력에 합세하며, 넷째,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으며, 다섯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며, 여섯째,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 긴밀한 연대와 대화를 적극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전략노선’의 비핵화는 완전 비핵화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최소 억지화를 위한 기존 핵무기는 보유한 채, 더 이상의 핵무기 실험과 대륙간 탄도유토탄 실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불완전 비핵화를 제시한 것이다.  두 번째 핵심 개념인 체제 보장의 의미는 보다 포괄적이어서 의미의 변화를 판단하기가 더욱 까다롭고 논란의 여지가 크다. 3월 5일의 방북결과 발표문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문구의 핵심은 북한이 어떠한 조건에서 자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받았다고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북한이 지난 20여 년 간의 북핵 협상에서 제시한 체제보장 방안들은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했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첫째, 외교적으로 북미수교, 둘째, 경제적으로 제재 철회 및 경제지원, 셋째, 군사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북한은 2016년 7월 6일에 공화국 정부성명으로 내세운 '체제보장 5개 원칙'으로 "첫째,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둘째, 남한 내 모든 핵무기·기지 철폐와 검증, 셋째, 미국 핵 타격 수단의 전개 중단, 넷째, 대북 핵 위협 및 핵불사용 확약, 다섯째,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제안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북미 간 실무접촉에서도 북한은 북미수교, 평화협정과 함께 주한미군의 철수라는 표현 대신, 미국의 핵 전략 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며 한미 연합훈련에서 핵 전략 자산의 전개를 중지하고,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5개 체제안전보장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핵 전략 자산 관련 조항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의 전략 변화의 평가는 현재 낙관론과 비관론이 병존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 대한 입장 변화와 함께 두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그러나 협상 내용상의 변화는 보다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내용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한국과 미국의 최종 목표인 '완전 비핵화'의 시각에서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명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핵문제 해결의 실패 사례를 강조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세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 한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북한의 '신전략노선'과 정상회담 북한의 전략적 변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검토와 함께 북한의 정상회담에 대한 기본 자세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올해의 구호로 "혁명적 공세 속에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한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쟁취하자."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북한이 말하는 전선이란 국내전선, 남북전선, 국제전선의 3개 전선을 가리킨다. 그리고 국내전선은 보다 세부적으로 군사, 경제, 문화, 정치사상의 네 전선에서 펼쳐지고 있다. 신년사는 핵·경제 병진 노선의 포기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2017년을 핵 무력 완성의 해로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8년에는 병진노선의 또 다른 핵심 목표인 경제력 향상을 달성하는 데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작년 한 해 동안 한층 강력해진 국제 경제제재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으로 북한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므로, 2018년에는 경제제재나 군사적 압박과 같이 사회주의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세 전선에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선의 혁명적 공세는 외부 전선의 경제제재 압박과 군사적 위협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조역량으로서 남북 전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2017년 정권교체 이후에도 한국 정부의 구태의연한 자세 때문에 남북관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한반도가 당면하고 있는 긴박한 정세 때문에 남북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하면서, 한국 정부는 "미국의 무모한 북침핵전쟁책도에 가담하여 정세 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제전선에서는 간략하게 ‘책임 있는 핵강국’으로서 핵무기를 최소한의 억지를 위해서 사용할 것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년사 이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걸림돌이 되는 정세를 개선하기 위해 북한은 국제전선에서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어서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가장 커다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완전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자기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해, 북한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정상회담과 '신전략 노선'에서 '선 평화협정 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완화하여 불완전 비핵화와 실질적 평화협정을 병행해서 추진할 수 있다는 협상 의지를 밝히고,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협상 과정에서 일정한 대가와 보상을 얻어내려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해 협상은 일단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 초기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충분히 보이지 않는 한, 비핵화의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협상 시작단계부터 미국과 북한의 상충되는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북한의 완전비핵화와 체제보장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다.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려면 우선 한국과 미국, 북한이 사용하는 비핵화와 체제보장 조건의 내용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명확히 한 다음에, 이러한 의제에 서로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한국은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의미를 북한과 미국이 그동안 얼마나 서로 다르게 해석해 왔는가를 통역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서로 상이한 해석을 넘어서서 새로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길잡이(navigator)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완전비핵화 논의의 출발은  핵 동결이 될 것이다. 이어서 점진적으로 보고와 사찰 등의 검증 조치가 따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최종 목표가 북한의 완전비핵화라는 데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정상회담의 첫 번째 의제인 비핵화의 논의 성과는 결국 미국과 북한이 같은 의미의 비핵화에 합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북한의 핵 능력이 1994년의 제네바 기본 합의서나 2005년의 베이징 공동성명을 위한 협상 당시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현 상황에서는 동결, 보고, 사찰, 폐기 등에 대한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북한이 진정성 있게 완전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이 요구하게 될 다양한 시설의 특별 사찰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그만큼 더 엄격한 잣대와 세밀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며,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국과 미국에 요구하게 될 경우 협상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북한의 완전비핵화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비핵화의 이행을 위해서는 완전 비핵화 된 북한의 체제보장이라는 훨씬 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당연히 북한은 군사적 위협 감소와 체제보장 조건을 제시할 것이고 이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이래 북한의 비핵화와 이에 따른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군사적 체제보장이라는 '마(魔)의 4각 관계'는 지난 4반세기 동안 쉽사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외교적 체제보장인 북미수교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더라도, 경제제재의 해제나 경제지원은 완전비핵화의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형태로 현실화할지에 대한 국제적 조율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체제보장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해체, 한반도 주변 핵전략물자의 통제와 같은 체제보장 조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 남북한과 미중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체제보장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매우 불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완전비핵화의 대가로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하고 남북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질서와 달리 초국가적 사법 질서가 명실상부하게 작동하지 않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아무런 효력 없는 종이조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북한에게 핵무기 이상으로 진정성 있는 체제보장을 해주려면 북한의 비핵 자주 국방력을 보장하고 절대적 신뢰성을 내재한 복합 체제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종전선언과 군비통제방안이 마련돼야 하며, 남북한과 미중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평화협정과 6자회담 같은 다자 또는 아태 차원의 평화체제를 연동시켜서 마련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복합적 해결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당사국들이 최종적으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제재, 억지, 관여, 자구(自求)의 복합적 해결 방안의 동시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핵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대응이나 또는 경제지원이나 관계개선만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사반세기의 핵 협상이 역사적으로 실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궁극적으로 완전 비핵화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까지는 제재, 억지, 관여, 북한의 자구(自求) 중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며, 마지막 순간까지 네 기둥이 함께 북한의 완전 비핵화라는 지붕을 떠받쳐야 한다. 제재와 억지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에는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다만 비핵화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완전비핵화된 북한의 체제보장이라는 적극적 관여가 반드시 필요하며 ‘마의 4각 관계’에 대한 복합적 고민이 필요하다. 관여를 통한 신뢰구축과 교류가 일정 단계를 넘어서지 않으면 비핵화는 언제든지 협상 이전 상태로 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핵문제를 군사적 또는 혁명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제재, 억지, 관여와 함께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북한의 21세기적 진화다. 북한의 계획경제가 불가피하게 시장화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폐쇄적 사회문화가 정보화와 효율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비핵 경제 병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의 진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변화는 외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21세기적 자구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당사국 또한 모두 함께 공동진화해야 한다. ■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 2020-06-05조회 : 12799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 분석과 향후 과제

[편집자 주]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우리 특사단의 방북을 계기로 4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북미정상회담 개최까지 성사되었습니다. 이러한 합의는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서 관련 당사국들이 협상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인식하게 된 결과이자, 우리 정부가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핵심을 신중히 공략한 결과라고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평가합니다. 다만, 전 교수는 아직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의 고도화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태로, 추후 협상 과정에서 제재 완화 및 북중 관계 변화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바, 국제사회는 압박과 관여 전략을 병행하면서 핵 포기 시 북한이 얻게 될 유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향후 3개월은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시기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구적 차원의 냉전이 끝나가던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은 생존을 모색하며 미국과 대타협이 가능한지 협상의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1992년 1월 김용순-캔터 고위급 회담으로 시작된 북미 양자 접촉의 역사에서 2000년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 및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은 북미 간 타결이 문턱까지 진행된 사건이었다. 이제 18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남북, 북미 간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것은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서 각 당사자들이 협상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인식하게 된 구조적 결과이자,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문제의 핵심을 신중하게 공략한 결과이다. 북한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미사일 공격능력을 확보하여 다양한 이익을 얻고자 했으나, 사실상 제재 강화와 외교적 고립만 심화되었고 병진전략의 성공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북 제재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고, 한국에서 진보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와 한미협력은 지속되었다. 향후 1, 2년 내 북한의 경제는 급속히 악화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미국 역시 군사적 옵션을 논의해 왔지만, 북한의 군사적 대응 의도 및 능력을 경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재 및 외교적 고립을 지속하면서 협상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북핵 문제의 끝은 사실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라는 점에서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사자 간의 테이블 위의 협상(on-the-table negotiation)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테이블 밖의 협상(off-the-table negotiation)이 언제 어떻게 끝나는가가 더 중요한 과정이었다. 과거 트루먼 대통령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보다 더욱 악화시키라는 말을 했다.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고 중대해졌을 때 실마리를 찾게 되는 구조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악순환 끝에 파국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국의 과제이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평화를 강조하며 외교적 해법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기본적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구조적 악화는 해결의 실마리로 자동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국내 보수 여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회의적 견해를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강조했다. 이는 스스로 정치적 비용을 치르고 신뢰구축을 하는 일종의 청중비용(audience cost)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정치적 비용을 치르는 것을 보고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양을 방문한 한국의 대북 특사단이 가져온 6개항 중에서 남북관계에 해당하는 1, 2, 6항(남북 정상회담 개최, 정상 간 핫라인 설치, 체육·문화 교류)은 비교적 쉽게 추진될 것이다. 보다 어려운 항목은 3, 4, 5항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추가 실험 중단(5항)이 협상의 시발점으로 합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 비핵화 의지 천명(3항)에 이어 북미 대화(4항)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가 핵심 문제이다. 북한은 작년 말 핵미사일 개발 완성을 선언하고 올해부터 경제발전에 매진할 것이라는 전략을 표명했는데, 병진 전략 하에서 경제발전은 핵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실행되는 것이다. 신년사가 발표된 불과 2개월 남짓 동안 북한이 과연 병진전략의 한 축인 핵국가 지위 유지를 수정하고 경제발전의 새로운 전략을 펴기로 결정하였는지 여부를 알기란 대단히 어렵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외교적 고립의 대가가 압도적으로 커서 핵미사일 보유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지, 그리하여 최대한 핵미사일을 높은 가치로 협상하고 경제발전에 매진하기로 한 것인지를 지금 확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은 여전히 핵 미사일 개발의 고도화라는 대안을 가지고 있다. 북한 신년사에서 대량생산과 실전배치가 언급된 바도 있다. 북한이 향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능력을 갖게 되고 이를 실험으로 입증한다면, 미국은 북한을 선제공격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 내 대북 협상여론이 고조되어 북한은 보다 좋은 조건으로 대미 협상에 응할 수 있다. 다만, 지금 경제제재와 강력한 해상봉쇄 등으로 재진입 기술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에 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4월부터의 협상 과정에서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기술 개발의 여지가 확보되면 보다 나은 조건에서 다시 협상하기 위해 지금의 협상을 결렬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다. 북한이 느끼는 경제적 난관은 중국의 제재 참여가 가장 큰 문제인데,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이 제재 완화를 시도하고 북중 관계 강화를 추진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이번 라운드에 협상을 타결할 필요성이 줄어들게 된다. 해상 봉쇄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더불어 완화된다면 보다 발전된 핵미사일 능력을 기반으로 다음 라운드의 협상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미국 내 관료집단이나 전문가 집단 역시 5월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많은 약속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행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이라는 큰 선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그리고 정상회담 이후 실무 협상이 실패할 경우 오히려 협상의 여지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진정성이 정상회담 이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될 경우, 미국은 외교적 옵션이 아닌 군사적 옵션을 더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다. 특히 북한의 미본토 공격능력 확보 이전에 이를 실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4월부터 진행될 협상의 과정이 실패한다면 외교적 타협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지금부터 한국 정부가 해야 할 과제이다. 북한이 과연 핵포기와 경제발전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나 그 의도에 집착하여 정책을 세울 수는 없다. 의도는 능력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상황이 바뀌면 이에 따라 새로운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설사 지금 북한이 협상 국면에서 시간 벌기와 이익 챙기기에 몰두할 생각이라 할지라도 향후의 과정에서 이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서훈 국정원장은 미국 방문 기간 중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일을 할 때는 상대의 의지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상대가 한 말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끄집어내 실천할 수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발언했는데, 협상과정이 상대방의 의도 자체를 형성해 나가고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임을 잘 이야기한 것으로 본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를 대가로 요구하는 바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역시 향후의 협상 과정에서 만들어 가야 할 부분이다. 북한이 지금은 핵미사일의 지속 개발에 대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더라고 핵포기의 대가가 압도적으로 클 경우 협상과정에서 새로운 전망을 낳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압박 중심 전략에서 관여 병행 전략으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필두로 최대 압박과 관여를 추구해 왔지만, 이때의 관여는 기본적 차원의 외교해법 모색에 그쳐온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추상적 논의를 하는데 그쳤으므로 북한이 얻게 될 유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주변 5개국은 에너지 제공, 경제협력, 별도의 포럼에서 평화체제 논의 등을 제시했지만 이후 대북 관여의 세부 프로그램이 구체화되지 못했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을 추구했지만 북한은 결국 한국의 햇볕 아래서 옷을 벗고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부정적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북핵 전략을 논할 때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출구를 논의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북한이 출구를 열고 나갔을 때 어떠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경제발전의 구체적 청사진이 주어지는 것은 물론 핵이 없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유지되는 상황을 추구할 것이다. 사실 경제가 발전하면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북한 독재체제에 대한 내부적 비판도 심해질 것이므로 북한의 발전과 김정은의 권력유지는 반드시 상보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은 주변국으로부터의 위협은 물론 장기적으로 내부로부터의 도전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과 주변국은 일단 이러한 우려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어느 선까지 북한이 원하는 바를 인센티브로 제공할 수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20년 이상 지속된 북핵 문제 속에서 북한은 한국과 주변국이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보장책의 내용과 진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대비가 필요하다. 관여에 대한 구체성과 진정성이 전달된다면,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임하는 의도를 새롭게 형성해 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양자 이슈를 논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전략을 이끄는 한국의 구도 및 능력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될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대북 제재 완화 및 남북 교류협력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합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핵화 이후 한국이 주도할 구체적인 관여전략과 북한이 보장받을 수 있는 비전에 대해 의사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이미 북미 간의 준비접촉이 상당부분 이루어질 것이므로 한국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더불어 한미 간의 향후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도 더 긴밀히 해야 할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 및 북미 관계 정상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므로 원칙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문제는 비핵화의 로드맵의 경우 북한 핵문제와 더불어 오래 논의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구체적인 단계가 마련되어 있지만,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해서는 미국이 구체적이고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로드맵이 불명확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체제보장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공격 행동을 금지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지, 평화체제를 유지할 어떠한 보장체제를 의미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북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외교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보장을 의미하는 것인지, 김정은 정권이 독재정권으로 생존할 수 있는 국내적 환경까지 지원해 달라는 것인지 알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의 대응 역시 미지수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협상 목표와 방식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이익 우선주의와 담판에 의한 북핵 문제 타결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중시하므로 어떠한 선에서 비핵화의 대가를 지불할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 해결의 걸림돌 중 하나였던 비핵화 대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의 시퀀스 맞추기,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문제에 더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카드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한국으로서는 우려된다. 미국이 탈냉전기에 추구해 왔던 다양한 정책기반들, 예를 들어 동맹을 통한 미국 중심의 지구적 안보체제, 이를 뒷받침하고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도모할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을 중시하는 이념 외교, 여타 강대국과의 신중한 공존 모색 등이 거의 모두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 이익 우선주의라는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보면 미국의 본토에 대한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의 요구를 어느 선까지 들어줄지는 알기 어렵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미동맹 약화를 대가로 북한의 군사적 체제보장을 해주고 미국에 대한 북한 핵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물론 일본의 안보 불안감이 증폭될 것이다. 미국이 동맹국의 안보를 중시하고 향후 동아시아 안보구도에서 한국과 일본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공약이 강력하다면 기존의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유지하는 선에서 체제보장의 방법들을 고민할 것이다. 과거 4자회담에서 논의되었던 평화체제,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에 대한 다양한 국제적 보장 등이 논의될 것이고, 중국의 전략 또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6자 회담이 주된 논의의 장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고, 주변 4강의 지정학적 협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반도 평화체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이 원하는 바는 북핵 문제 해결, 평화체제 보장은 물론이지만, 지속가능한 평화와 남북 교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 측면에서의 평화체제 정착 뿐 아니라 이후 북한의 발전 방향 역시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일정 기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점차 개방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때 통일 환경이 구축될 것이다. 지금의 비핵화 대화가 보다 장기적인 로드맵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일이 한국의 주된 과제이다. 미국과의 협력에서 한국은 첫째, 북미정상회담 이후 구체적 실무 협의에서 한미가 공유할 로드맵을 충분히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안보이익이 충분히 확보되는 선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이루어지도록 한미 간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북미정상회담 이후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미 간 의견 차이로 회담이 중단되거나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실마리를 확보해 두어야 할 것이다. 상호 간의 신뢰 자체가 붕괴하거나 원칙에 대한 합의가 무너지지 않게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을 최대한 늘려놓아야 한다. 특히 중국과의 지속적 협력의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셋째, 단순한 북한 비핵화나 단기적인 북한 체제 보장이 아니라, 비핵화 출구 밖의 긴 여정에 대한 한국의 비전을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설득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은 지금의 지정학적 구도에서 변화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통일이 한국에게 가져다 줄 국가 이익을 고려하여 통일로 이어지는 여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 넷째, 비핵화가 실현되더라도 이후 미중 간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외교적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다. 비핵화 과정에서 미중 간의 전략적 협력의 성공사례가 실현되고 한국의 중재력과 미중 간 협력의 메커니즘이 동아시아의 다른 안보 이슈에도 확장되도록 한국의 지역전략과 한반도 전략을 연결해야 한다. ■   저자 전재성_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정치는 도덕적인가》,《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2020-06-05조회 : 8345
논평이슈브리핑
[하영선 칼럼] 김정은 신년사의 세 얼굴과 평창올림픽

[편집자 주]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첫날 북한의 신년사가 발표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번 신년사에서 핵무력 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면서도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가 화답하면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재개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 무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올림픽 참가에 대한 남북 간 시각 차이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달렸다고 하영선 EAI 이사장은 분석합니다. 북한은 올림픽 참가를 3대 혁명역량 강화 차원에서 접근한 반면, 한국은 이를 북한의 새로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시각 차이는 추후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며, 진정한 관계개선은 양측이 새롭게 21세기 공생의 길을 찾을 때 본격화될 것이라고 하 이사장은 강조합니다.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고 있다. 1950년대 초 처절한 적대관계로 한국전쟁을 치른 남북한은 1972년 7.4 공동성명이래 2007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관계개선의 기대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전철을 밟지 않고 이번에는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선 신년사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년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내용 분석이나 빅데이터 분석과 같은 외면적 글 읽기에 머무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내면 세계까지 읽어 보려는 동양 해석학 방법론의 핵심인 이의역지(以意逆志)에 충실해야 한다. 상대방 마음의 소리(意)를 들어서 상대방의 마음이 가는 방향(志)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년사를 낭독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속마음을 읽어서 북한이 2018년에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가를 알려면 신년사에서 드러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평을 바라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신년사의 전체 구도는 지난해 성과와 금년의 목표를 1960년대 중반이래 강조해 온 국내, 통일, 국제의 3대 혁명역량 강화라는 시야에서 여전히 바라보고 있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우선 신년사는 ‘전체 인민과 인민군 장병, 남녘 겨레와 해외동포, 세계 진보 인민과 벗’이라는 세 청중 집단에게 새해 인사를 한 다음, 2017년을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압살정책’이라는 최악의 난관 속에서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고 요약하고 있다. 그 대표적 성과로는 무엇보다도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성취’를 강조하고 있고, 다음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전진과 과학문화전선의 성과를 꼽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화국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말살하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과의 제재봉쇄책동’ 속에서 이룩한 모든 성과들은 ‘조선로동당의 혁명로선의 승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핵개발로 자초한 생존적 어려움을 보다 본격적인 핵개발로 극복해 보려는 북한의 자기모순적인 노력은 오히려 체제 안보 불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위기 해결을 위한 주력 역량으로 국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핵무력 건설의 승리를 도약대로 삼아 ‘혁명적인 총공세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전선으로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해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의 개선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립경제발전의 지름길로서 과학기술과 인민경제계획의 작전과 지휘 혁신을 들고 있다. 두 번째 전선으로 사회주의 문화의 전면적 발전을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 전선으로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튼튼히 다지겠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핵무기와 로켓 부문에서는 ‘위력과 신뢰성이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 생산하여 실천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 번째 전선으로는 정치사상의 위력을 들고 있다.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잡(雜) 사상과 이중 규율을 허용하지 않고 당의 일심단결을 강화하며, 당의 세도와 관료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을 뿌리 뽑고 혁명적 당풍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게 벌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은 당면하고 있는 생존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한 보조 역량으로서 통일 역량의 강화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북한은 국내 역량의 강화를 기반으로 해서 통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첫째,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고, 둘째, 민족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기 위해서 한국의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 단체, 개별 인사들을 포함한 누구와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 놓으며, 셋째, 남북 당국이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하며, 넷째,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지속적 발전과 함께 국제제재와 억지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북한의 국제 역량의 강화를 위한 노력은 현실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제국주의 침략 세력들에 대해서 핵보유국으로서 핵정전론의 원칙에 따라서 맞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나라들과는 선린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보여준 세 얼굴의 모습이 2018년의 생존전략으로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핵위기와 한반도평화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긴밀한 국제 공조 속에서 다음과 같은 대북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작은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만들려면 남북한의 평창올림픽에 대한 명백한 시각 차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기본 노선의 새로운 변화 때문이 아니라 3대 혁명역량 강화를 위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북한의 새로운 생존전략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차는 올림픽이 끝나고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명실상부한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이 3대 혁명역량 강화의 지평을 넘어서서 새롭게 21세기 공생의 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2018년에도 계속해서 핵미사일의 대량 생산과 실천 배치를 생존전략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북한의 노력이 오히려 체제 붕괴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스스로 이를 인식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깥에서 돕기 위해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과 공조하여 북한의 지속적 핵능력 강화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한반도와 아태지역의 억지체제를 신속하게 완성하여 북핵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없애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이 경제적으로 보다 큰 어려움을 불러 오고 북핵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급격히 상실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과 주변 당사국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비핵화된 북한의 생존과 번영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복합평화번영체제를 새롭게 구상하고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변화하는 3대 역량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21세기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과 함께 내부의 자구(自救)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시장화의 변화를 겪고 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도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보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변화 추세 속에서 정치사상전선에서도 21세기에 걸맞게 진화된 비핵경제 병진노선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국의 대북정책은 장기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등이 있다.         〈EAI하영선 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하영선 2020-06-05조회 : 8307
논평이슈브리핑
[칼럼] How Should the World Respond When Countries Such as North Korea Develop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s?

North Korean nuclear weapons serve multiple purposes. First, North Korea repeatedly states that its nuclear weapons are to deter a U.S. nuclear attack, arguing that the United States excluded North Korea from the object of nuclear no-first-use policy.   Second, Kim Jong-un wants to perpetuate a totalitarian regime and consolidate his power by personalizing control over North Korea. Given the country’s struggling economy, nuclear weapons provide Kim with political legitimation of his economically ineffective rule by showing his militant resolve to fight the prime enemy, the United States. By continuing to enhance the North’s nuclear capability, Kim sends the message to his people that increased external security threats justify the military expenditure and the poor attempt to revive the economy.   Third, when political use of nuclear weapons for power consolidation is no longer required, Kim can begin to deal with outside powers to elicit economic assistance. This is an old pattern: North Korea nuclearizes, then receives generous economic assistance for denuclearization and requires more rewards in peace negotiation vis-à-vis South Korea (Republic of Korea, or ROK) and the United States.   Fourth and final, Kim could use nuclear weapons purely for offensive purposes. North Korea could start an all-out war using nuclear weapons with the confidence of being able to control the crisis and win it if it is confident of U.S. reluctance to retaliate with nuclear weapons. It is also probable that Kim relies on the slim chance of continuing his dictatorship even after a disastrous nuclear confrontation and war.   North Korea obviously wants to progress toward a more developed nuclear arsenal and sophisticated missile force and ultimately toward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ICBMs). It is almost certain that Kim will try to muddle through to the point of attacking the U.S. homeland with nuclear missiles, perhaps even acquire second strike capability. At that point, Washington would be forced to negotiate, and Kim would come to the negotiation table asking for comprehensive economic rewards, a peace treaty with the United States to include nuclear arms reduction talks, and recognition of North Korea as a nuclear power. The situation would raise significant decoupling concerns for South Korea and Japan, which could lead to an increased possibility of their obtaining nuclear arms.   President Donald J. Trump considers “every option on the table,” and pressuring China on more cooperation is the first. China, anticipating the party congress later in 2017, needs a favorable international environment and successful crisis management, which requires mutually beneficial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Washington pressuring Beijing on its trade and currency policy, a worsening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a strengthening U.S.-ROK alliance, and U.S.-ROK-Japan trilateral security relations will hurt President Xi Jinping’s political situation. Using military options to solve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will drive China into a far more difficult position. After the U.S.-China summit meeting in April, Xi seems to have put more pressure on North Korea, persuading Kim to come to the negotiation table for gradual denuclearization and to conclude a peace treaty with the United States, which meets the Chinese expectation of the so-called parallel negotiation.   However, it is hard to predict whether North Korea will come back to discuss denuclearization. That will be decided by how painful international sanctions on North Korea will be and whether Kim will think that diplomacy would be beneficial to the preservation of his personal power and regime. China could suggest a complete or partial cut of oil supply, implicitly recognize U.S. surgical strike, disregard its alliance obligation to North Korea in case of military clashes, and support more severe economic sanctions. Kim will not change his strategic calculus if he can maintain his totalitarian rule under severe Chinese sanctions to the point where he succeeds in developing ICBMs.   Despite China’s efforts to conform to Trump’s requests, it will be extremely careful not to let North Korea collapse and be absorbed by South Korea, which has strong alliance ties with the United States. Being uncertain of ROK and U.S. intent toward a denuclearized—and consequently weaker—North Korea, China will try to prevent North Korea from collapsing due to severe economic sanctions.   More strategic dialogues and consensus on the post-sanction, even post-denuclearization, stage among China,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will therefore be critical. Details regarding the initial point for reopening the negotiation for denuclearization and the conditions for a peace treaty could differ among them, which could turn the situation back to the pre-sanction period.   When, or if, North Korea comes back to the negotiation table, negotiations will be long and painful.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been skeptical of the parallel tracks. North Korea will take full advantage of both negotiations and establish a link between two games. The North will propose unacceptable conditions for peace, such as the elimination of anti-North Korean campaign by the United States, the withdrawal of the U.S. Forces Korea, mutual reduction of arms and personnel, and the termination of joint U.S.-ROK military drills. North Korean allegations that conditions are not met for peace could stall the denuclearization process. Because the peace process affects the posture of the alliance, the parallel tracks will not be an easy process.   North Korea under Kim Jong-il reversed the course of denuclearization negotiations several times after receiving economic assistance. Only an unacceptably high cost of reversing the course of negotiations will ultimately eliminate a repeat of such betrayal. It will therefore be necessary to maintain a particular level of economic sanctions, particularly in close coordination with China. If Kim Jong-un is fully aware that severe sanctions await if North Korea continues its nuclear ambitions—countered by incentives of development assistance if he reverses course—he will pursue a genuine course of negotiation.   On the other hand, both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need to make clear that peace talks should not only demand North Korea’ denuclearization but also guarantee the regime’s survival if it denuclearizes, as well as include trust-building measures in security affairs and guidelines for arms control. Durable peace will be possible only if South Korea guarantees the survival of a denuclearized North Korea and pursues a plan to engage with it. The strategy of engagement comprises several elements. First, the country that wishes to engage should reassure the other country that it is neither threatening nor antagonistic. Second, it should initiate a policy of reconciliation and peaceful exchange to invite the other to cooperate. Third, the gradual building of trust will create structural bases that will foster changes in the sys-tem and behavior of the target country.   Last, a scenario in which North Korea succeeds in developing ICBMs, making the U.S. mainland vulnerable to nuclear missile attacks, is possible and the United States should be prepared for it. Combined efforts to deter the North Korean threat by denial and massive punishment, to minimize the possibility of decoupling the U.S.-ROK-Japan security alliance, and to show the military futility of North Korea’s nuclear missiles would weaken Kim Jong-un’s expectation for entirely beneficial negotiations after developing viable nuclear weapons. ■           Author   Chaesung Chun is chair of the International Relations Studies Center at the East Asia Institute. He is also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received his Ph.D. in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Northwestern University.         EAI Column presents fresh, constructive opinions and policy suggestions on Korean society and politics as well as East Asian securit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issues from recognized experts. Please acknowledge the source of this article if used as a citation.   The EAI is a nonprofit and independent research organization in Korea.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do not necessarily reflect the views of EAI.      

Chaesung Chun 2020-06-05조회 : 8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