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속적으로 연평균 경제성장률 9%를 상회하는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중국의 고속 성장은 국내 및 지역적 차원을 넘어 지구적 변화를 견인하고 있으며, 이는 안보와 경제 등 전통적 이슈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환경 등 신흥 이슈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중국의 변화가 인류의 공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아태 질서 설계도를 마련하고, 한국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EAI는 2018년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이라는 중장기 연구사업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아-태 에너지·자원 협력 구상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간의 무역 분쟁은 무역과 기술 영역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금융과 에너지, 군사·안보 부분에는 아직 대립이 본격화되고 있지 않다. 동아시아 연구원은 아-태 지역에서 에너지·자원 분야의 협력이 미·중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오히려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미완의 영역이자 가능성을 지닌 영역으로 바라보고, 중견국인 한국이 주축이 되어 미·중 간 협력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아-태 에너지·자원 협력 구상>은 한샘DBEW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프로젝트(2018-2021)의 제2차년도 사업이다.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 평가

[편집자 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이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순방에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대한 구상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구체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대체할 새로운 포괄적 지역 전략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구상을 선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평가합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경제적 측면만 부각된 상태로, 중국과의 미래 관계 설정, 동맹의 중요성, 다자간 경제 협력 등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바, 잘 짜여진 지역전략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단계라고 전 교수는 지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트럼프 행정부가 어떠한 아시아 전략을 추진하려는 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지난 미국 대선은 국내 문제, 그 중에서도 경제문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아시아 전략은 명확하지 드러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3개국 국빈방문과 세 차례의 중요 지역 다자포럼에 참석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전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1월 15일 순방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의 목적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들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것, 둘째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드는 것, 셋째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 규범을 정착하게 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표현보다 해결을 위한 국가들의 단결을 도모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위협이 계속 증폭되고 있기 때문에 절박한 행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표현은 순방 이전부터 틸러슨 국무장관 등 주요 각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경제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목표를 추진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주권국가들과 시민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외국의 지배와 경제적 종속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매년 8천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에게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 실현이 중요하다는 점 역시 강조되고 있다. 미국과 무역을 하면서 모든 국가들이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은 공정한 경쟁을 하고자 하며 미국의 가치와 안보를 지키려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직은 추상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의 포괄적 아시아 전략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용어는 오바마 정부의 소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전반적인 축소 전략 기조 하에 미국의 안보, 경제 전략에 핵심적인 지역으로 부상한 아시아를 상대적으로 중시하고, 여기에 정책자원을 더 많이 투입한다는 전략 기조를 세우고 추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 중동의 안보•경제 상황을 중시하면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경제 아키텍처를 새롭게 설정하여 미국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개념을 선보이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용어는 2007년 인도 해군 장교였던 구르프리트 쿠라나(Gurpreet Khurana) 현 뉴델리 국가해양재단(National Maritime Foundation) 소장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인도와 일본 간의 전략 대화를 거쳐 수개월 후 아베 총리가 인도 의회 연설 시 이 개념을 사용하였다. 아베 총리는 인도 방문 당시 자유와 번영의 대양으로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함께 강조하였다. 이후 2010년경 미국도 정부 차원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였다. 일례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태평양에서 인도 해군과 함께 일하고 세계적 무역과 상업을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언급한 바 있다. 2013년경에는 호주의 국방백서에서 경제, 군사 전략을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시한다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중국이 대중 포위망으로 받아들인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다. 중국은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쳐 대중 포위망이 형성되고 있다고 인식하여 경계의 태도를 보여왔다.   본격적으로 부상한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는 동시에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에 걸친 두 개의 대양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 역시 아시아의 세 번째 경제대국이자 세계의 일곱 번째 경제대국으로 아시아로 관심을 돌려왔다. 과거의 동향정책(Look East Policy)에서 행동하는 동향정책(Act East Policy)로 전환하였고, 아시아와 경제,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인도, 호주를 연결하는 안보•경제 전략을 추진하면서 동남아 국가들과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미국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의 개념을 사용한 것은 중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틸러슨 장관은 인도 방문 시 인도-태평양 지역을 언급한 바 있고, 인도양과 태평양이 안보, 경제면에서 불가분의 연계를 가진다는 인식을 보였다.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개념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한다는 개념이 핵심이지만 필연적으로 인도가 아시아의 안보, 경제 아키텍처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회원국이 아니고, 핵비확산 조약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는 인도를 아시아 안보 체제 안에 편입시키기 위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 양자•다자 조약에서 자신만의 노선을 지키기로 유명한, 까다로운 교섭 상대인 인도가 미국이 이끄는 아시아 전략의 일원으로 어떠한 행동을 보일지도 확실하지 않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에서 충분히 강대한 국력을 바탕으로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이 어떠한 내용을 담을지, 향후 구체적으로 어떠한 전략을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기 어렵다. 아베 대통령은 11월 6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성명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이미 언급했고, 이 구상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국가들을 환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미국이 일본의 지역 구상을 지원한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이 추구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구상이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중국은 훌륭한 친구라고 언급하였는데, 아마 일본은 향후 미중 관계, 더 구체적으로는 트럼프-시진핑 파트너십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미중 경제관계를 둘러싸고 중국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구상이 반중 정서로 이어지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역시 19차 당대회 이후 적극적인 신형 국제관계 전략, 주변국 전략을 추진하는 시진핑 주석과 관계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인도-태평양 지역 구상은 경제적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11월 10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다낭의 CEO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구상을 보다 자세하게 밝힌 바 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은 독립된 주권 국가들이 다양한 문화와 꿈을 공유하면서, 번영과 자유, 평화 속에서 발전하는 꿈을 함께 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몽에 대비되는, 미국이 이끄는 인도-태평양의 꿈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황하게 미국과 아시아의 역사적 연계, 특히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 및 인도와의 역사적 관계를 강조하였다. 인도의 독립 70주년을 축하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경제 문제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번영과 안보를 추구할 것인데 그 핵심은 공정과 상호성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불완전성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이익이 희생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도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인도-태평양 꿈은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는 규칙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경제적으로 함께 번영할 것이라는 논리가 가장 강하게 담겨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아시아 구상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강조는 즉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인도도 공유하는 지역 개념이며, 유럽 국가들 역시 중국과의 교역이 확대되고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및 두 개의 대양 정책을 보면서 인도양과 태평양의 연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많은 국가들이 안보 영역은 물론이고 해양의 자유와 해양수송로 등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 정부의 성격상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이 잘 짜여진 지역전략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시 러시아 연계설 등 국내적으로 어려운 정치문제를 겪고 있고, 국내 경제부흥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입지를 다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구적•지역적 안보전략을 추진하여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남기에는 상황이 절박하여 단기적인 경제 실익을 얻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지정학과 지경학의 중장기 연계 및 미국의 패권 기반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성향이 기존의 대통령과는 무척 다르다.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은 우선 미국의 경제 부흥을 위한 개념으로 제기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원칙에 동의하는 국가들과의 양자 경제협정의 틀로 엮여질 가능성이 더 크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다자 경제 아키텍처가 붕괴된 상황에서 다자협력 없이 미국이 아시아 지역 경제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미지수다.   셋째, 이 과정에서 중국과 전반적 미래 전략 관계 설정이 지연되거나 외면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방문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 미중 경제관계 등에 강조점을 둔 반면,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중요한 지역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같은 미중 간 전략 경쟁 및 충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반영되어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당면한 사안들 가운데 미국의 실익을 확보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은 2천 5백억 달러의 무역 투자 협정과 중국의 공정무역이 더욱 중요한 사안이다. 향후 미중 관계에 대해 트럼프 정부가 어떠한 전략적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넷째,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에서 동맹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동맹 중시, 중국 등 주요 국가와의 전략적 협력, 시장경제, 민주주의 등 주요 원칙에 기반하고 있었다. 현재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이 세부적으로 어떠한 전략 자원을 딛고 설지 분명치 않은데, 특히 동맹의 역할이 불명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제시하는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국가들과는 경제적 파트너로 가깝게 지내고 그렇지 않은 국가들과는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지적재산권 보호, 부당한 보조금 반대, 사이버절도 및 불공정 경쟁행위 개선 등의 이슈가 중요한 상황에서 안보 위협에 공동대처한다는 기존의 동맹 개념이 퇴색된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방문 시 동맹의 중요성과 과거 동맹 관계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 아시아에서 동맹이 어떠한 중요성을 가지는지 동맹의 비전을 중요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보위협의 개념과 실체는 명확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안보와 국가안보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언급하면서, “경제안보 그 자체가 국가안보”라는 직설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북핵 문제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한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 순방에서 드러난 몇 가지 주안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북핵 문제는 미국 본토안보의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매우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한반도의 미래나 북한의 미래 전략적 지위 등 동북아 국제정치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의 문제로 보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앞에서 논한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과도 명확히 연결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최종 목적을 확인하고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과 제재를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 문제에 대한 역사적•전략적 고민보다 미국 본토를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고민이 우선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둘째,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전략으로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순방에서 압박의 최대화는 강조했지만, 관여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전략적 그림이 결여되어 있다. 관여는 북한의 미래 전략적 지위에 대한 고민, 북한과 중장기 평화를 위한 조건, 비핵화를 위한 외교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이 향후 북한과 어떠한 중장기 전략관계를 맺을지 방향을 제시하는 시그널링을 하기에 좋은 기회였지만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조건은 완화된 인상을 주었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표현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제재와 압박이 주된 정책 수단으로 논의되었다. 군사적 수단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순방에 즈음하여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등 주요 각료들이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이 입을 구체적 피해 에 대해 보다 정확한 평가를 내렸을 것으로 기대해 볼 수도 있다.   넷째, 한국의 의회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독재를 비판하고 인권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문명선의 개념도 소개하면서 북한을 문명의 권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향후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 때 어려움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인권제재의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냉철한 전략과 이익에 근거한 대북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북한 정치에 대한 비판이 군사적 수단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섯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간의 대화가 향후 어떠한 정책으로 구체화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동결 대 동결’을 둘러싼 미중 간의 논란이 불거졌고, 중국의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이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며 향후 긴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미국의 접근은 중국의 전략, 한국의 고민과 거리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표현보다는 해결을 위한 국가들 간의 단합을 더욱 강조했다. 한국은 한편으로는 미국의 아시아 지역전략이 진행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러한 전략이 한국의 국익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를 한반도 전략 문제 및 북한 문제의 일부로 보고, 압박과 제재, 대북 관여로 구성된 복합 대북 전략의 기조 하에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저자  전재성_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정치는 도덕적인가》,《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전재성 2020-06-05조회 : 8448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시진핑 ‘신시대’ 출범과 정치·외교적 함의

[편집자 주] 시진핑 집권 2기를 알리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지난 10월 24일 막을 내렸습니다. 시 주석의 이름을 명기한 ‘시진핑 사상’이 당장에 삽입되는 파격 행보에 이어,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인선에서도 시 주석의 측근들이 중용되면서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이 한층 강화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적 부담도 커졌습니다. 향후 5년간 지도부가 제시한 장미빛 비전에 걸맞은 구체적인 성과를 거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진핑 집권 2기는 강국 플랜의 실현을 위해 국내 발전 및 안정에 보다 집중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저비용의 안정된 국제관계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시진핑 집권 2기 출범의 의미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집권 2기가 새롭게 출범했다. 예상을 넘어서는 강력한 시진핑 중심 체제가 등장했다. 집권 2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시진핑 사상’(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黨章)에 삽입되는 파격적인 행보가 있었다. 이제 시진핑 주석은 중국 공산당사에서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덩샤오핑을 넘어서 심지어 국부(國父)인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담긴 ‘사상’을 당장에 명기한 것은 마오쩌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1중전회(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인선도 마무리되었다. 정치국원 25명 가운데 15명, 정치국 상무위원 7인 가운데 5인이 교체되었으며, 그 가운데 다수가 시진핑 측근 인사들로 중용되었다. 향후 5년 시진핑의 ‘신시대’를 펼칠 수 있는 확고한 권력 기반이 구축되었다.   시진핑 권력의 강화는 중국 정치발전의 흐름에서 보면 ‘신시대’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후퇴했고, 권력교체의 예측성과 안정성을 담보해왔던 격대지정(隔代指定)의 관행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차 당대회(2022년)이후 중국의 후계구도가 모호해지면서 권력승계가 중요한 정치 과제로 남게 되었다. 19차 당대회에서 관행의 파격이 있기는 했지만, 공식 제도와 절차를 통해 당장도 수정했고 최고 지도부도 재편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19차 당 대회장에는 ‘신시대’를 역설하는 시진핑의 좌우에 장쩌민과 후진타오 두 전임 총서기가 나란히 배석하면서 당내 합의를 통해 시진핑의 권력 강화가 결정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확인해주었다. 따라서 덩샤오핑 이후 진전되어 왔던 관행을 통한 정치제도화는 일부 후퇴했지만 시진핑 체제는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다.   요컨대 집권세력 내부에는 공산당 일당체제 유지와 강화라는 공동의 절대 목표가 있으며, 이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시진핑 중심의 권력 강화가 진행된 것이다. ‘신시대’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권력을 집중하는 것이 공산당 체제의 강화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신시대, 신사상(新思想) 등장의 의미와 과제   마오쩌둥 시기는 혁명이 시대정신이자 과제였고, 덩샤오핑으로부터 시작되어 장쩌민과 후진타오까지의 이른바 개혁 지도부는 고도성장 신화를 기반으로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는 ‘신창타이’(新常態)가 상징하듯이 더 이상 성장신화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성장신화를 통해 덮어 왔던 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불만들을 수렴할 수 있는 정치개혁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 5년 간 정치개혁보다는 반부패 캠페인과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런데 두 가지 방식 모두 일정한 한계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반부패 캠페인의 경우 지속성의 피로감이 있을 수 있고, 중화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라는 위험성이 있다. 시진핑 체제는 집권 정당성의 새로운 원천을 발굴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으며 그러한 고심의 결과가 ‘신시대’와 ‘신사상’ 담론을 통한 강력한 리더십의 확보로 표출된 것이다.요컨대 19차 당대회 보고는 기본적으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완성’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거대 담론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공산당 체제의 강화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신시대’의 과제는 ‘인민들의 더 나은 삶(美好生活)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발전 간의 모순’을 해소하여 ‘공동부유(共同富裕)와 강국화(强起來)’의 길로 향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인민들의 변화된 요구에 부응하는 질적 발전을 통해 명실상부한 강국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향후 중국은 개혁개방 40주년(2018), 건국 70주년(2019), 소강사회의 전면적 건설(2020),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 그리고 20차 당대회(2022) 등 연이은 일정들을 활용하여 강국화의 의지와 능력을 국내외에 보다 확고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은 향후 시진핑 2기 5년 동안 ‘중국의 꿈’ 실현에 대한 높은 기대에 부응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이루어 내야 하는 정치적 부담과 과제를 안게 되었다. 특히 역대 지도자들과는 달리, 시 주석은 임기 중반에 ‘시진핑 사상’을 조기에 당장에 명기함으로써 향후 5년 간 ‘시진핑 사상’의 실체와 성취에 대한 검증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이 또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시진핑 2기는 강력한 권력 기반을 확립하고 장미빛 비전을 제시하며 화려하게 출범했지만 실제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 과제는 적지 않다. 시진핑 2기가 제시하고 있는 강국 플랜을 실질적으로 진척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국내 발전과 안정에 더욱 집중해야 하며 대외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리가 중요해졌다   시진핑 2기 외교전략의 변화와 지속성   ‘7’로 끝나는 해의 당대회는 2기 정부가 출범하기 때문에 외교 전략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강하다. 실제 18차 당대회 ‘보고'와 비교하여 새로운 외교담론이 제기되지는 않았다. 다만 ‘신형국제관계’와 ‘인류운명공동체’ 수립이 특히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 ‘해양강국’ 구상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시진핑 중심의 권력 강화의 이유가 국내 취약성과 그에 따른 권력내부의 위기 공감대에 있든, 아니면 반대로 강국으로의 부상 실현에 대한 기대 공감대에 기인하든, 어느 경우에도 시진핑 2기 체제가 외교보다는 내치에 우선순위를 두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상대적으로 저비용의 안정된 국제관계를 지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중국 부상 일정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면서 아시아에서부터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악화된 주변 정세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18차 ‘보고’에서 강조했던 ‘해양강국’ 담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일대일로’(一帶一路)가 대체하고 있다. ‘해양강국’ 구상은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맞물리면서 아시아 각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발전전략으로서의 해양 진출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따라서 해양강국 구상과 전략이 야기한 지정학적 경쟁과 안보딜레마를 완화하면서 해양으로의 진출을 활성화하는 대안으로 ‘일대일로’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의 해양 진출이 ‘이익공동체’라는 공공재를 창출할 것임을 설득하는 지경제학적 접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시 주석은 ‘보고’에서 누차에 걸쳐 강조했듯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목표로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할 정도로 강국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따라서 시진핑 정부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신고립주의 경향이 지속된다면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우회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대외개방, 국제협력, 국제주의, 인류에의 공헌을 당대회 보고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개혁과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중국의 지혜와 역량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왕이 외교부장은 당대회 직후 토론회에서 인류사회에 대한 중국의 역할과 공헌을 강조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발전을 통해 개도국의 현대화에 새로운 경로(path)를 제공하고, 인류의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방안(solution)을 제시하고 더 좋은 사회제도를 탐색하는데 중국의 지혜(wisdom)로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전통대국과는 다른 강국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요컨대 중국은 강국화 일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능한 한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우회하면서 점진적으로 미국과 차별적인 강국으로서의 역할과 글로벌 리더십을 확장해가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꿈’ 실현이라는 비전은 체제 정당성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인민들의 민족주의 정서를 과도하게 고양시킴으로써 중국 외교가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미 중국이 해양 영유권 분쟁과 같이 핵심이익이라고 규정한 이슈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시진핑 정부가 부상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안정적인 주변 환경을 추구하는 외교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인접국들과 주권, 영토 등 핵심이익과 관련된 분쟁이 재차 발생할 경우, 중국 인민들의 고양된 기대와 국제사회의 경계를 여하히 조율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향후에도 사안과 이슈에 따라 복잡하고 상이한 대외 행동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시진핑으로의 권력집중은 정책 결정을 신속하게 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외교의 유연성이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시 주석이 직접 사드 배치 반대를 명확히 하자 그 어느 누구도 유연성 있는 해결 방안을 쉽사리 제시하기 어려운 국면이 조성되면서 사드 갈등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던 사례가 있다. 즉, 향후 중국 체제의 안정성이 확보되면서 외교의 공세성(assertiveness)은 다소 완화될 수 있지만 오히려 경직성(rigidity)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중관계에도 새로운 회복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한중관계의 경색 국면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국익을 둘러싼 갈등이 한중관계에 내재된 국민간 감정대립으로 확대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관계회복은 필요하다. 정상회담이 신속하게 관계 회복을 보여주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기는 하다. 그런데 정상회담 개최가 바로 양국관계의 회복이라고 해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정상 간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외교 방식이 갖는 취약성에 대한 지난 4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중국은 19차 당대회 이후 시 주석으로의 권력이 집중된 결과 향후에도 한중관계는 정상회담이 주도하는 패턴을 탈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정상 간 관계를 국가관계, 국민관계로 확장하여 제도화하려는 노력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하다. ■         저자 이동률_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과 한중전문가 공동연구위원회 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대외관계 및 중국 소수민족, 중국의 민족주의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시진핑체제 외교정책의 변화와 지속성,"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중국 미래를 말하다》(편저), 《중국의 영토분쟁》(공저)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이동률 2020-06-05조회 : 8431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새 정부의 대중 통상정책 방향

[편집자 주]   제2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가 오는 6월 16~18일간 제주도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AIIB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2016년 1월 중국의 주도 하에 설립된 다자간 개발은행입니다. 이번 총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내에서 개최되는 첫 대규모 국제행사로, 새 정부의 대외정책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글로벌 통상환경에서 ‘팍스 시카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대외통상정책 방향이 단순한 지역개발과 투자촉진을 넘어 아시아 지역의 화합과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한국이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자연스럽게 사드 보복의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대통령 탄핵이란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세계로 빠져나온 대한민국의 통상정책의 방향은 지난 정권의 정책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수립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실리외교가 가장 요구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서 통상외교가 자행되어 왔다. 특히 대북 압박정책의 수단으로 통상정책을 무의미하게 희생한 점은 아마추어적인 통상정책 결정체제의 문제점까지 보여준다. 북한의 핵무장이 진행되는데 국내정치적 고려가 작용해 통일대박론을 끄집어내고 흡수통일 기세로 몰아갔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명목 하에 2014년 11월 대통령의 방중일정에 맞추어 한-중 FTA 협상을 서둘러 타결했다. 한-중 FTA 조기 체결이 중국으로 하여금 우리의 대북 압박전략에 협조하도록 유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중 경제통합이 북한을 자극해 핵무장을 가속화시킨 측면이 있다. 한-중 FTA 자체의 경제적 효과가 크게 발생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세계경제가 어렵더라도 한-중 FTA의 1년 차 성적표(FTA 혜택품목 수출 -4% 감소)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미래 수십 년 간의 한-중 통상관계를 좌우할 비관세 장벽, 불법어업, 서비스 개방 등의 이슈를 모두 빼버리고 자동차•철강•석유화학제품 등 주력 수출품목을 제외한 채, 정치적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설익은 과일’을 따먹듯이 한-중 FTA를 맺어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북관계가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데다 북한 핵문제가 지구촌 최대 현안 중 하나로 급부상한 것은 앞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도 커진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실망한 박근혜 정부는 친미 안보노선으로 복귀해 사드배치의 길로 내달렸다. 뒤이어 벌어진 탄핵정국에서 아무리 보수진영의 결집을 위해 안보논리가 필요하더라도 사드배치를 조기에 마무리하면서까지 대중협상의 레버리지(leverage)를 한꺼번에 상실했고, 중국의 사드 무역보복을 초래했다. 무수한 한국 예능인들이 힘들여 쌓아 올린 한류열풍의 중국 진출이 하루아침에 막혀버렸고, 한국행 전세기 운항과 여행알선 업무가 중지됐는데도, 정부는 안보를 위해서는 통상의 이익쯤은 희생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일관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국제규범 준수에 앞장서고 있는 중국이기에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은 WTO 협정 및 FTA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이 교묘하게 국제규범 위반을 피해서 사드 보복을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는 WTO 협정에 따라 중국을 제소하겠다고 대응해왔다.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방에 대해서도 통상보복을 공언하고 있는데 떠나는 정권과 맺은 대형 군수계약을 조기에 마무리해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대미 통상협상 레버리지를 날려버린 측면도 있다. 이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드배치 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에 요구하며 한-미 FTA 재협상과 연계시키는 사태로까지 이르렀다. 정확한 안보와 통상 간의 연계 효과를 분석할 능력도 없고, 실리통상외교의 독립적 가치를 인정할 의지도 없는 것이 정부 통상정책체제의 현주소다. 그래서 모든 것이 꼬이고 꼬여 대중관계는 물론,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도 모두 악화됐으며, 해결해야 할 통상 현안만 산적해있다.   글로벌 불확실성 시대에 밀려오는 대외통상정책 현안들에 대해 전문적이고 장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통상정책 결정체제의 기능적 위치를 정립하는 일이다. 각 정부부처의 관련 정책기획 기능을 강화하여 전문적이고 하의상달형의 정책이 수립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각 부처의 통상업무를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조정하고 외부 입김으로부터 기능을 보호해 낼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정부조직법이나 통상절차법 자체에 구축해야 한다. 구체적 정책은 장기적 시각에서 독립적 심의•자문기구에서 토론을 거쳐 입안되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의 대중 통상정책 방향은 이러한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의사결정체제 속에서 새로이 수립해야 한다.   이제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가 글로벌 통상정책에서 펼쳐지고 있다. 신보호무역주의와 신고립주의라는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노선을 공공연히 표방하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대외개방과 국제규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국가가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이다. 지난 5월 14~15일 개최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중국은 일대일로 관련국에 향후 5년간 최대 1500억 달러(약 170조)를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이제 중국은 대외개방 통상정책에 대규모 투자까지 엮어 세계 각국을 중국의 깃발아래 모여들게 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 반식민주의 사관(史觀)이 지배하던 중국의 대외정책 노선이 아니던가. 지금은 자본주의 국가의 경쟁력의 원천인 대외개방, 법치 및 경쟁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고, 모든 국가와 국제 세력을 아우르는 대국굴기(大國屈起)의 기치가 중국 대외통상정책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이러한 가치와 기치가 국제적으로 존중되는 분위기를 주도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더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보복의 주요 타깃이 중국경제를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규범에 반하는 어떤 종류의 통상조치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세계은행 체제에 맞서기 위해 중국 주도로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데 재정적 기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6월 16일부터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2차 AIIB 연차총회에서 이러한 중국의 입장과 구상이 재확인될 것이다.   적폐를 청산하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위상을 지닌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야심차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이 첫 번째 시험대에 올라선 셈이다. 아직 외교와 재정분야 장관이 업무를 개시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청와대 경제팀 구성과 총리인준을 마치고 대외정책수립 태세를 갖춘 우리 정부는 우리 영토에서 개최되는 이번 총회를 활용하여 전방위 대외정책을 펴야 한다. 팍스 시니카의 방향이 우리 대외정책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접점을 찾아 이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단순한 지역개발과 투자촉진을 넘어 아시아 지역의 화합과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촉매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사드 보복처럼 안보이슈를 일방적 무역 보복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의 위험성도 국제적으로 부각시켜 이것이 일대일로 패러다임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파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의 화합과 협력의 패러다임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중국 정부로 하여금 사드 보복의 자연스러운 출구 전략을 모색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중 FTA는 서비스 부문의 추가 개방 패키지 협상을 통해 업그레이드시켜 나가야 한다.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미개방 서비스 부문(한류 진출과 관련한 개인자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전세기 운항, 여행 및 관광알선 서비스 등)에서 중국 측의 양허를 이끌어내는 것은 이들 부문에서의 사드 보복을 종료시키고 앞으로도 유사한 보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양허 상품분야에서도 선별적으로 양허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어차피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에 비해 경쟁력이 밀리는 부문은 과감한 산업구조 조정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조업 부문을 중국에 양허하는 것은 산업구조 합리화 정책 방향을 국내외에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불법어업이나 비관세 장벽 이슈도 차차 양자 채널을 활용해 협의한 후, 그 합의사항을 한-중 FTA 부속문서 형태로 첨부해 넣을 수 있다.   팍스 시니카 시대에 한-중 간의 협력 양상(modality)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한-중 양국이 국제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팍스 시니카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통상문제가 불필요하게 외교문제로 비화하여 국민감정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하듯이, 외교문제도 통상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통상정책의 탈정치화'(depoliticization of trade policy)는 새 정부가 이루어야 할 국내과제이기도 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달성해야 할 우선과제이기도 하다. ■         저자 최원목_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화국제하계대학(EISC) 원장, 통상법률센터(WTO Law Center) 소장. 미국 조지타운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매일경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경제법학회 회장, 한국ABS포럼 회장, 한국 자원에너지법제연구회 회장, International Law Roundtable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저로는 'Like Products' in International Trade Law: Towards a Consistent GATT/WTO Jurisprudence (2003), International Economic Law: The Asia-Pacific Perspectives (2015), "우루과이라운드의 의미: 비차별•컨센서스의 세계에서 최소기준•규범력의 세계로" (2016)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최원목 2020-06-05조회 : 8408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국내외 연계발전전략을 강화한 일대일로 정상포럼

[편집자 주] 지난 5월 14~15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본 포럼에 첫 외교사절단을 파견하면서 국내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양일간 진행된 포럼에서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공동발전과 세계자유무역 강화를 주창하면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트럼프 행정부와는 차별되는 행보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국제사회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보내고 있어, 올해 말 제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는 시진핑 주석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인도를 비롯한 일부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의 공격적 투자행태에 반발하고 있어, 일대일로 전략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주변국의 신뢰 확보라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고 민귀식 한양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중국의 존재감이 부각된 독무대   중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5월 15일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29개국 정상과 130여 국가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국제회의에서 중국은 감독과 주연을 겸해 국제사회의 리더임을 충분히 증명했다. 여기에서 시진핑은 일대일로 관련국가의 공동발전과 세계자유무역 강화를 주창함으로써, 트럼프의 반세계화와 미국 우선주의와 대비되어 더욱 돋보이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 결과, 시진핑은 제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세계 지도자로서의 안목과 위상을 갖췄다는 이미지 구축에 상당한 효과를 거뒀고, 중국 대중들은 ‘중(中) 제국의 부흥’을 실감한 듯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다. 미국과 인도 그리고 일부 서방국가들은 이 행사를 중국의 돈 잔치라고 폄하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대일로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성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아세안과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빈국들은 이번 정상포럼을 앞다퉈 칭송하며 중국의 지원을 바라는 모습을 보여 중국의 힘을 실감하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드(THAAD) 문제로 수교 이후 가장 큰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행사가 양국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만 부각돼, 이 포럼이 내포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소홀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일대일로의 직접적인 수혜 국가가 아니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양국갈등의 폭과 깊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데 모든 관심이 집중된 것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로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우리는 이를 활용하여 큰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야심찬 계획을 면밀히 분석하여 적극적으로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협력하는 것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추진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육상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나가는 전략적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감 확장하는 일대일로 정신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를 제기한 이후 개념과 목표를 정치하게 다듬어 왔다. 시진핑 주석이 2015년 3월 보아오 포럼(Boao Forum for Asia)에서 “공동협력, 공동건설, 공동향유” 원칙을 강조한 이래, 이번 포럼에서는 더 나아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보다 크다”면서 세계화와 자유무역시대에 국제협력의 중요성과 협력 효과를 강조하는 개막연설로 이어졌다. 그는 일대일로를 ‘세계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 자연히 길이 생긴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일대일로 성공에 자신감을 내보였다. 이것은 일대일로 5대 목표인 ‘정책소통, 시설연통, 무역융통, 자금융통, 민심상통’을 중심으로 경제네트워크를 건설하여 “중국식 세계화 2.0”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중국은 이제 “세계는 하나로 통한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이런 중국의 시도는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상당한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탈레브 라파엘 유엔세계관광기구 사무총장은 “세계가 지금 ‘문화적자, 경제적자, 평화적자’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데, 일대일로가 이런 적자를 관리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일대일로는 2016년 3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S/2274호)를 거쳐 동년 11월 193개국 회원국 전원 찬성으로 전체회의 결의(A/71/9호)에 포함됨으로써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지지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즉,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는 아프간 및 지역경제 발전에 공헌하였고 안전보장 환경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현재까지 56개 국가 혹은 지역협력기구에서 일대일로와 관련한 연합성명을 발표했고, 러시아·몽골·파키스탄 등 9개 국가는 자국의 발전전략이 일대일로와 긴밀한 연관성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 공감대는 이번 정상포럼에서도 보호주의를 배격하고 일대일로 협력을 강화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써 확인되었다. 공동성명은 △자국발전과 세계 공동발전 결합, △실크로드 정신에 기초한 협력 강화 및 호혜상생 실현, △정책과 발전전략 협력 가속화, △협력 핵심분야와 행동방식 확정, △고위급 포럼 기반의 실질적 협력 모색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선언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색채와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그 울림이 더욱 커지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포럼은 중국으로서는 매우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자금 앞세운 협력 성과   중국은 막대한 위안화를 앞세워 이번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몇 가지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고, 참가국들은 중국에게서 상당한 지원을 약속 받는 실리를 챙겼다. 우선, 이틀간 진행된 이번 정상포럼에서 중국과 협력 프로젝트에 서명한 나라 또는 국제기구가 68개에 이르렀고, 협약내용도 5개 분야 76개 항목에 270여 구체조항으로 구성된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은 실크로드 펀드에 1,000억 위안(약 145억 달러)을 추가로 출연하고, 개발도상국과 국제기구에 600억 위안(약 87억 달러)의 원조자금을 제공한다는 돈 보따리를 앞세운 결과였다. 남사군도 소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대신 5억 위안의 자금지원을 받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횡재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아세안과 파키스탄 등 주변국가들은 중국의 선물보따리를 챙기는 잔치에 적극 가담했다.   두 번째 성과로는 2019년에 제2회 대회를 개최하기로 함으로써 일대일로를 주제로 한 정상포럼이 2년마다 열리는 정례회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가 ‘비전에서 현실로, 이념에서 행동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만큼 중국의 영향력과 집행력이 커졌으며, 일대일로 관련 국가들과 중국의 정치·경제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영향력의 증가는 57개국으로 창립된 AIIB가 2년 만에 77개 회원국으로 확대된 것에서도 증명된다.   세 번째 성과는 일대일로 관련 국가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가 높아져 중국이 경제 성장의 외부 출로를 확보한 것이다. 2014~16년까지 중국과 일대일로 관련 국가들과의 무역은 3조 달러를 초과해 중국무역의 25.9%를 점하게 되었다. 2016년 이 지역에 대한 수출 증가율 또한 26.2%로 중국의 전체 수출 증가율을 크게 앞서고 있다. 아울러, 이들 나라에 56개 경제무역협력지구가 건설되어 중국 기업이 5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11억 달러의 세수 증가와 18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다. 미국 자문회사 맥킨지는 2050년이 되면 일대일로 연선 국가가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80%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여 중국을 더욱 고무시키고 있기도 하다.   일대일로 연계 국내발전전략의 심화   일대일로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과잉투자 해소를 위한 해외진출 전략의 수립이었다. 따라서 모든 지방정부는 일대일로를 심각한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발전동력으로 삼아, 32개 성시(省市) 가운데 31개 성시가 일대일로 연계발전전략을 수립했다. 중앙정부의 <비전과 행동>에 맞춰 각 정부는 자신의 비교우위를 활용하여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는 ‘자유무역지대’ 선정을 위한 경쟁으로 전환되었는데, 현재 중국은 11개 성시가 자유무역지대로 선정되어 ‘21세기 신 실크로드’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자유무역지대로 상하이를 포함한 동남연해지역, 동북지역을 대표하는 랴오닝성, 창강과 황하에 걸쳐 있는 중앙지대를 전략적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해상 실크로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한편, 육상 실크로드와 연계된 국내 지역경제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되기 위해 개방수준을 더욱 높이고 있는 중국은 자유무역지대를 중심으로 일대일로를 확산하는 국내전략 수립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실제 이번 정상포럼에서 합의된 5개 분야에는 국제협력과 정책·전략 같은 중앙정부 차원의 협약도 있었지만, 지방정부가 주최가 되는 인문교류 및 각 영역의 실무협력이 더 많았다. 즉, 이는 지방정부가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앞으로 정상포럼이 정례화될 것에 대비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 준다.   주변국 신뢰확보라는 난관 넘어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와 관련해서 중국은 이미 40여 개 국가 및 50여 개 국제기구와 약정을 체결하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방관자나 추종자가 되지 않고 참여자와 인도자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2016년 세계경제에 대한 중국의 기여도가 33.2%로 미국의 2배가 넘는 현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군사경쟁을 피하는 대신 일대일로 참여국들과 ‘경제적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영향력을 키운다는 서진전략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가 중국에게는 전략지역이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일대일로 핵심사업으로 ‘6대 회랑’을 추진하고, 특히 ‘카스-콰다르’ 루트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인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인도는 이번 정상포럼에 불참한 유일한 주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쿤밍-싱가포르 철도’ 건설에 동남아 국가들이 참여를 거부하는 등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행태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아프리카 포럼’을 통해 자원과 에너지를 약탈적으로 수입하는 중국의 행태가 재연된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이번 정상포럼에서 체결한 협약 가운데 에너지 협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비판의 근거가 된다. 일대일로가 중국과 참여국들의 공동번영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중국이 이웃 국가에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국이 극복해야 할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포럼은 중국이 찬란한 태양 아래 섰다는 것과 그만큼 그림자도 짙다는 것을 보여준 대회였다고 볼 수 있다. ■         저자 민귀식_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경제, 중국 에너지, 중국 정치, 중국 사상 등이다. 주요 연구로는《한·중 관계와 문화 교류》(2013) (공저),《중화전통과 현대중국》(2012) (공저), "베이징의 도시계획과 주거환경 변화"(2015), "후농업시대 중국 향진거버넌스 변화: 기층정부 각 행위주체의 이익관계 변화를 중심으로"(2015)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민귀식 2020-06-05조회 : 8375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대중국 압박과 믿을만한 위협(credible intimidation)의 실현

[편집자 주]   지난달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방한에 이어, 최근에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3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보다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압박 수단에는 군사적 조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낮음에도 이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여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박원곤 교수는 주장합니다. 즉, 예측 불가한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북한에는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김정은과 이른 바 ‘햄버거 회담’으로 알려진 직접 대화에서부터 북한에 대한 초강력 대처까지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특히 트럼프는 2016년 4월 “(북한이 한•일에 전쟁을 일으키면) 끔찍한 일... 행운을 빈다. 알아서 잘 해봐라”라는 거침없는 언급으로 한국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지 13일 만에 제임스 매티스(James Norman Mattis) 국방장관을 내각 각료로는 처음으로 해외 순방을 보냈고, 대상국으로 한국을 선택하였다. 2017년 2월 2일 한국을 방문한 매티스 장관의 일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양국간 동맹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전해달라는 당부가 있었다.”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안보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 이로써, 거의 1년간 지속되었던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대한국 동맹정책에 대한 핵심 의구심이 해소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을 방치하는 한편 한국에 대한 핵우산도 거둬들여 사실상 동맹을 와해시킬 생각은 전혀 없음이 확인되었다. 2017년 3월 17일 방한한 렉스 틸러슨(Rex Wayne Tillerson) 미 국무장관은 대북정책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가 시도했던 전략적 인내는 실패로 규정하고, 대북정책으로 “새로운 범주의 외교•안보•경제 조치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천명하였다. 원칙적인 차원이지만 군사적 조치를 비롯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할 것이라는 발언도 하였다. 또한 대화를 강조하는 중국을 겨냥하여 핵 동결만을 기반으로 한 대화는 시기상조라면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고 중국의 대북 원유 지원을 문제 삼았다. 워싱턴의 트럼프 발언도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특유의 형용사를 반복하는 어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우선순위가 매우, 매우 높다”(2017.2.12.), “북한은 크고 큰 문제이다”(2017.2.13.), “김정은 매우, 매우 나쁘게 행동 한다”(2017.3.19.)라며, 비난의 대상을 북한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로 확대해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중국 압력 강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도출과 군사적 타격을 포함한 대북 압박 등으로 귀결되면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제안한 북한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맞교환하는 ‘쌍중단’(雙中斷)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3월 15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의 면담에서 H. R. 맥매스터(Herbert McMaster)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3월 18일 틸러슨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중국 측에 대화보다는 대북제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틸러슨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중국은 북한 정권이 도발을 다시 생각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동안 충분히 쓰지 않았다”는 발언도 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 중단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면 북한의 핵 포기가 가능하다면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 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답변처럼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간의 문제”라면서 중국은 자국의 책임론을 부정한다. 이같이 미중 양측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에 의한 북한 비핵화 도출은 결국 미중관계라는 큰 틀에서 성패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는 교묘하게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건드리고 있다. 결국 철회되긴 했지만 ‘하나의 중국’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여 중국을 긴장시켰고, 취임 첫 주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두 차례나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부정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떠한 수준에서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문제시 삼고 중국을 압박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미중관계가 당분간 갈등 국면에 머물러 있을 것임은 비교적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현재 공세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고 중국은 방어적 입장에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전 미국 행정부와는 달리 국제규범을 존중하지 않고 불예측성을 기반으로 극단적인 정책을 오가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남중국해 및 대만 문제와 같이 사활이 걸린 지역을 우선적으로 지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그 외의 다른 의제와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과 타협할 의사를 내비칠 수도 있다. 북핵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중 간의 타협과 갈등의 일정 지점에 위치할 것이고, 중국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대북 전략적 이해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미국과 타협한다면, 트럼프의 중국 압박을 통한 북한 비핵화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미국 측 변수는 중국과 갈등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다른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중국을 충분히 압박할 지의 여부이다. 국내 지지 기반이 갈수록 취약해 지고, 나토를 비롯한 유럽 국가와의 관계도 쉽지 않으며, 시리아 사태와 이란 핵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얼마만큼 자산을 활용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원한다면 중국을 압박할 수단은 보유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중국 기업 ZTE(中興)에 외국기업으로는 역대 최고인 11억 9,200만 달러 제재금을 부과한 것과 같은 조치를 대폭 확대해 최종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전면 시행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사드 포대를 한반도에 추가 배치하거나 한반도 서해에서 대규모 한미일 해상 작전 훈련을 정례화하고, 전술핵을 포함한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상시 순환 배치하며 중국의 턱을 노리는 전력적 위치에 있는 평택 기지에 공세적 무기 체계를 전개하고, 남중국해에 미 항모 전단 순시를 강화하는 등의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힘을 통한 평화’를 주창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려할 수 있는 군사적 선택지이고, 이것이 시행된다면 중국이 느끼는 압박은 상당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 같은 조치 철회와 대북 원유 공급 중단과 같은 강력한 압박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 사이에서 정책을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방안은 군사적 타격을 포함한 대북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적 수단 사용 가능성은 행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2월 8일 “군사력 사용을 포함한 대북 접근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고, 3월 방한 시 다시 한번 군사적 조치가 미국의 고려사항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데빈 누네스(Devin Nunes) 공화당 하원 정보위원장은 3월 18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운반 능력 개발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일종의 선제타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군사 공격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군사적 조치로 선제타격과 예방타격이 제시되고 있다. 선제타격은 적국의 공격 징후가 임박했을 때 먼저 타격하는 것으로, 북한의 경우 핵미사일로 한국을 공격하려는 순간에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다. 명확한 징후가 확인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당연한 선택이지만, 실제 상황에서 탐지하거나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고 타격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한이 2월 11일 발사한 고체연료 미사일인 이른 바 ‘북극성 2형’은 기존의 1시 30분에서 3시간 가까이 소모되는 액체연료 미사일과는 달리 연료 주입 시간이 10분 미만이다. 산술적으로 10분 내에 북한 미사일이 한국을 목표로 한 핵 탑재 미사일인지를 탐지•식별하고 타격을 결심하여 파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제 타격의 어려움은 사드를 포함한 탄도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적국의 공격 징후가 임박하지 않더라도 위협이 되는 시설, 무기 등을 공격하는 예방타격은 시행하기가 더욱 어렵다. 예방타격의 목적은 적대국이 부과하는 위협의 원천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다량의 핵을 보유하고 있고, 핵 시설의 경우 영변 원자로 외에도 우라늄 농축 비밀 시설을 여러 곳에서 운용하고 있다. 또한 미사일 기지도 동창리를 비롯하여 산재해 있으며, 특히 100여기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갖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무력화하는 예방타격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목표물이 너무 많고, 목표물에 대한 사전 정보도 부족하다. 더욱이 비용효과의 편익계산을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예방타격을 실제로 선택할 가능성은 이전 행정부보다 더욱 제한된다.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미국이 연루되고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여 강군 건설을 천명하였지만, 미국 본토가 직접 공격 받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군사력 사용에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트럼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바 있고, 타국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상정한 군사적 조치를 채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군사적 수단 사용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대북 시그널링(signaling) 차원이다. ‘믿을만한 위협’(credible intimidation)을 북한에 가함으로써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위협이 믿을 만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사용의지의 현시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핵과 ICBM 개발을 중단하기 위한 명확한 방법과 수단을 밝히지 않은 채 “이루어지지 않을 것”(It won't happen)이라고 표현한 것도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여 북한을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선거 때는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불예측성을 기반으로 하는 대외정책 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자신도 “종잡을 수 없다”는 평가를 본인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내세우면서 “기습은 승리를 안기고,” “패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그럼에도 쉽게 그 패를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관건은 이러한 미국의 선제•예방타격의 가능성을 북한이 실체로 인식하는지의 여부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불예측성과 극단적 정책 선택의 가능성을 우려할 경우,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선제•예방타격의 한계를 북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트럼프의 대북 시그널링 작업은 제한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믿을만한 위협을 가하면서 중국을 최대한 압박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립되고 있다. 강압과 위협 등이 우선시되고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은 뒤로 미뤄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부동산 사업에서 상대방을 압박하고자 활용하였던 ‘충격과 공포’의 전략을 취임하자마자 TPP 탈퇴,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발표 등으로 전광석화처럼 표출했을 때 세계는 경악하였다.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국제규범과 원칙을 정립하여 세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던 미국이 김정은의 북한과 같은 국가나 선택할 만한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한 극단적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난 20년 이상 해결되지 못한 북핵 문제는 기존의 틀과 사고에서 벗어난 ‘충격과 공포’의 전략이 오히려 답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전제하는 북핵을 단념시키기 위해서는 규범과 원칙을 무시하면서 그 경계를 넘나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유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제공격에 대한 오인(誤認) 및 방어와 공세에 대한 혼동으로 심화될 수 있는 안보 딜레마를 통제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의 갈등 심화도 불사하는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         저자 박원곤_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관계 전공교수. 국방부•통일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에서 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북아 국제관계, 안보론, 외교사, 북한연구, 한미동맹 등이다. 주요 연구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 평가와 신행정부 대외전략 전망"(2016) (공저), "정당한 전쟁론 연구: 평화주의, 현실주의와의 비교"(2016), "Changes in and Prospects for the East Asian Security Order: A South Korean Perspective"(2016), "A Theoretical Review and Critical Analysis of South Korea’s Proactive Deterrence Strategy"(2015), "한미동맹 미래 구상: 지휘구조 개편을 중심으로"(2014) 등이 있다.    

2020-06-05조회 : 8569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미국 우선주의의 시작: `가지 않은 길`과 `돌아오지 않는 강` 사이의 불확실성

[편집자 주] 지난 1월 20일 트럼프 공화당 당선자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강조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금 강조하며 자국의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손병권 중앙대 교수는 ‘통합’과 ‘애국심’으로 포장된 지나친 보호주의로 인해 미국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유보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태도는 국정운영에서도 대화나 협력보다는 상명하달식 권위주의 형태로 발현될 수 있어 정치적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당선자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긴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하나로서 반드시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   ‘모든 규정은 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사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편의상 8년 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의 몇 문장을 먼저 소개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아래 문장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부분이다.   “공동의 방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이상 간의 (이분법적: 필자 삽입)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거부합니다.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 법치와 인간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 이러한 이상은 여전히 세계를 밝게 비추고 있고, 우리는 편의의 목적을 위해서 이러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하여 거대한 도시로부터 내 아버지가 태어난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오늘 목격하고 있는 모든 민족과 정부에게 말합니다. 미국은 평화와 존엄의 미래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 남녀,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세계를: 필자 삽입) 이끌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2009년 취임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미국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핑계로 미국의 건국정신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적 이상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이러한 미국적 이상의 구현자로서, 그리고 이러한 이상을 추구하는 세계 모든 국가와 사람들의 벗으로서 세계를 이끌어갈 의사가 있음을 천명하였다. 세계 공공재의 공급에 대한 미국의 국내경제적 제약이 상당히 컸지만, 이에 편승하여 일국중심주의로 회귀하기보다는 미국적 이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미국이 세계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취임식을 빌려서 다시 선언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8년 후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 우선주의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브렉시트(Brexit), 유럽의 반이민정서, 우익 포퓰리즘의 세계적 득세로 인해 일국중심주의의 발현에 의해 국제정치가 규정되어 가는 지금, 지난 20일 취임사에 나타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발 공공재 공급이 최소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취임사는 미국의 경제문제와 안보상의 위험에 기대어 미국이 전통적으로 수호해 왔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통합’과 ‘애국심’의 이름으로 유보될 수 있다는 점도 암시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과연 미국의 권위와 자존감을 되살리며 미국의 부흥을 도모하는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불능 상황으로 몰아넣어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오랜 고심 끝에 잘 준비되고 정제되어 나타난 연설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운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 문장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개념적 표현을 최소화하고 쉬운 단어를 사용한 점, 동일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점, 단문 위주의 문장을 많이 사용한 점, 강한 대조적 문구를 지속적으로 배열한 점 등은 선거구호의 연장선장에서 취임사가 작성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역대 다른 대통령의 취임사와 비교해 볼 때, 역사적 사례를 끌어오거나 상징적 혹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대통령 취임사에 어울릴만한 정선된 비전의 제시도 없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가 선거운동 연설문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차기 내각 구성 등으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없던 나머지 상당히 급히 취임사를 작성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트럼프 당선자 자신이 직접 취임사를 기초했거나 취임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전달했기 때문일 수 있다. 또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취향을 고려해 보건대, 연설문의 내용이나 단어 선택 자체에 대통령 자신이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빈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그의 성향에 따라, 취임사는 선거운동의 메시지가 재포장되어 전달되면 충분한 것이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통해 지난 한 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가 제시한 내용과 크게 차별화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통합과 단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의례적으로 삽입한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와 안보라는 두 가지 분야에서 다시 한번 미국 우선주의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대체로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사에 구체적인 정책 내용이 담기는 경우는 드물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미국 우선주의’나 ‘미국 상품 구입-미국인 고용’ 등 선거구호로 어울릴 만한 용어들이 ‘비전’과 ‘원칙’으로 재포장되어 생경하게 제시되어 있는 경우도 흔치는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은 2017년 국정연설에서나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국정 어젠다 우선순위 결정이 지체되거나 공화당과의 조율 지체에 따른 준비 부족으로 여기에도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2016년 선거운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그들’의 대립에 근거한 철저한 이분법적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 중산층을 지칭하는 ‘인민’ 혹은 ‘시민’의 희생과 ‘워싱턴 기득권 세력’의 편승, 미국의 일자리 상실 및 미국이 제공하는 국제적 안보협력과 타국의 경제적 번영과 미국 국방력에 대한 무임승차 등 대조적 항목을 담고 있는 트럼프의 연설은 미국 중산층의 희생과 미국의 손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이르러 미국 우선주의라는 비전 하에서는 이러한 중산층 및 미국의 일방적 희생이 종식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미국과 미국 중산층 편에서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국주의적 포퓰리즘 지도자의 모습을 여과 없이 국내외에 보여주고 있다.   한편, 당선 후 승리 연설 내용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의 당선과 취임이 지니는 ‘운동’적 성격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선거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자신의 선거운동이 단순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미국 중산층의 운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는데, 취임사에서도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시민 혹은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역사적인 운동이 시작’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제도권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타국의 성장에 기여한 미국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광의의 ‘보호주의’를 찬양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화가 가져온 긍정적 측면이나 세계화의 장기적인 전략적 필요성은 무시한 채, 세계화로 인한 미국의 일자리 상실 및 중산층의 몰락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역, 조세, 이민, 외교 등 각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면서 “보호는 위대한 번영과 힘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이 글의 모두에 소개한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의 국제적 리더십 발휘 의지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먼저 미국 우선주의의 경제적 측면과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연설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 인프라 구축의 시급성을 언급한 후, “미국 물건을 사고 미국 사람을 고용한다”는 아주 간명한 두 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군사적인 측면에서 급진 이슬람 세력을 발본색원할 것을 천명하고, 이와 함께 기존 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한 뒤, 타국 안보를 위해 미국의 안보와 국방지출에 소홀했던 점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안보상의 미국 우선주의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취임사의 내용에는 미국 국내 민주주의적 정치과정과 관련하여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은데, 이는 통합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연설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우리 정치의 근간은 미국에 대한 총체적 충성이다” 혹은 “서로에 대한 존중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서 나오며, 애국심에 마음의 문을 열 때 편견에 대한 여지는 없다”는 취지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어떤 각도에서 보면 애국심이나 통합을 위해서는 다원주의적 정치과정이 제한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어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빈 말’보다는 ‘행동’을 우선시하는 그의 취임사 내용이 야당인 민주당과의 대화와 협력보다는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과의 협조만을 통한 국정운영, 혹은 더 나아가 백악관을 중심으로 한 상명하달식 국정운영으로 발현될 수 있어 정치적 갈등의 심화가 예측된다. 취임 이후 곧바로 나타난 언론과의 전쟁이나 오바마케어(Obama Care) 수정, TPP철회를 위한 행정명령 서명 등은 다원적 정치과정을 혐오하는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이나, 규정, 절차나 심의보다는 직선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앙상한 일국주의적 미국 우선주의, 시민 혹은 민중과 기득권 세력을 구분하는 포퓰리즘, 미국의 희생과 세계의 대미 무임승차론에 대한 단선적 비판, 통합과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그 이면에 시사된 반다원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 트럼프의 정치성향 등이 과연 미국을 다시 부흥으로 이끌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게 될 지, 아니면 부시 행정부 8년 이후 미국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강’을 따라서 한없이 추락시키게 될지 당장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집권초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정부가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했던 사례가 한국이나 미국에서 공히 없었던 것을 보면, 대통령 취임식 군중규모를 두고 언론과 드잡이를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앞날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반도의 안보와 이와 관련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두고 볼 때, 이제 남의 나라 대통령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여 심란하기만 하다. ■         저자 손병권_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 미국 외교정책, 비교의회 및 정당론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Causes of Distrust and Conflict in the ROK-US Alliance: With a Focus on the Roh Moohyun Era" (2016), "통일한국의 의회제도" (2015), "티파티 운동과 공화당 보수주의의 재형성" (2013)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손병권 2020-06-05조회 : 8333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시진핑 주석의 `핵심` 지위 획득의 의미

[편집자 주] 중국 공산당의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가 10월 24-27일간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전체회의 결과를 담은 <공보>에서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표현함으로써, 시 주석의 지위가 격상되었음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습니다.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는 중국이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시 주석의 지위 격상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당의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핵심’ 지위 확보로 시 주석의 권력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내 합의를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1인 집권체제가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합니다.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이하 6중전회)에서 <공보>(公報)를 통해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以習近平同志爲核心的黨中央)이라는 표현이 공개적으로 언급됐다. 이 표현은 시진핑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유일하게 ‘핵심’ 지위를 확립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2016년 초 리홍중(李鴻忠) 당시 후베이성(湖北省) 서기가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중앙의 ‘영도핵심’이고 당원과 간부들은 ‘자발적으로 시진핑 영도핵심을 수호’하고 시진핑을 모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한 적이 있다. 이후 간헐적으로 시진핑과 관련해 ‘핵심’이란 단어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번과 같이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핵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시진핑의 지위가 격상됐음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하는 동시에, 당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던 시진핑의 권력 강화 논의가 현실화됐음을 의미한다. 또한 향후 제19차 당대회(2017년 하반기 개최 예정)와 제20차 당대회(2022년 하반기 개최 예정)에서 지도체제 개혁과 지도부 승계에 있어 시진핑의 역할이 확대되고 강화될 것임을 예시(豫示)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치에서 ‘핵심’ 지위를 가진 지도자는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3명 뿐이었다. 후진타오는 ‘후진타오 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당중앙’이라는 문구로 표현되었기에 ‘핵심’이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후진타오 집권 시기 ‘제4세대 지도자의 핵심’, ‘후진타오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제4세대 영도집단’(以胡錦濤同志爲核心的黨的第四代領導集體)이라는 표현은 한 두 차례 사용된 적이 있지만, 이는 외국 언론이나 지방 신문에서 잠깐 언급되었을 뿐 중앙에서 공식적으로 후진타오를 ‘핵심’으로 표현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러한 과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18기 6중전회 <공보>를 통해 시진핑을 당 중앙의 ‘핵심’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시진핑의 지위가 후진타오를 추월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의 지위로까지 격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시진핑의 ‘핵심’ 지위 격상은 그동안 물밑에서 꾸준히 준비해온 결과로 보인다. 중국 정치에서 ‘핵심’ 지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돼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온 것이다. 이미 지난 2016년 1월 29일 중공중앙 정치국 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협,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 당조 공작 보고와 중앙서기처 공작 보고의 종합 상황 보고 청취와 연구>(中央政治局常委會聽取和研究全國人大常委會, 國務院, 全國政協, 最高人民法院, 最高人民檢察院黨組工作彙報和中央書記處工作報告的綜合情況報告) 심의에서도 ‘핵심’이라는 용어가 언급된 바 있다. 당시 회의에서 정치국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정치의식(政治意識), 대국의식(大局意識), 핵심의식(核心意識), 모범의식(看齊意識)’ 등 ‘네 가지 의식’이 공개적으로 언급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각급 당위원회 서기와 학자들이 관련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핵심’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었다. 예컨대, 지난 2016년 1월 11일 왕동밍(王東明) 쓰촨성(四川省) 서기는 쓰촨성 당위원회 상무회의에서 “시진핑 총서기, 이 핵심을 굳건히 수호하자”(堅決維護習近平總書記這個核心)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틀 후인 1월 13일 황쉐쥔(王學軍) 안휘성(安徽省) 서기도 안휘성 당위원회 상무위 확대회의에서 “시진핑 총서기를 모범으로 삼고, 중앙권위를 수호하고, 시진핑 총서기, 이 핵심을 굳건히 수호하자”(堅決維護習近平總書記這個核心)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같은 날 펑칭화(彭清華) 광시장족자치구 당위원회 서기도 광시장족자치구 당위원회 상무위 확대회의에서 "시진핑 총서기, 이 핵심을 굳건히 수호하자"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2016년 1월 15일 궈진롱(郭金龍) 베이징시 서기는 시진핑의 민주생활회 발언 학습 관철 회의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굳건하고 강력한 영도 핵심이 매우 필요하다"(我們比任何時候都更需要一個堅強的領導核心)라고 언급했다. 궈진롱은 지방 당위원회 서기지만 중앙정치국 위원의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진핑에 대한 '핵심' 지위 논의가 이미 정치국 차원에서도 비공식적으로 회람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방 차원에서의 논의를 총합한 결과가 바로 18기 6중전회에서 시진핑의 '핵심' 지위 확립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핵심'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랜 전부터 이뤄져 왔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공산당은 전국 인민의 영도핵심이다. 이러한 핵심이 없다면 사회주의 사업은 승리할 수 없다"(中國共產黨是全中國人民的領導核心. 沒有這樣一個核心, 社會主義事業就不能勝利)라고 강조했으며, 덩샤오핑은 "어떠한 영도 집단도 모두 핵심이 있어야 한다. 핵심이 없는 영도는 부실하다"(任何一個領導集體都要有一個核心,沒有核心的領導是靠不住的)라며 '핵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의 '핵심' 지위 획득 과정을 돌아보면, 모두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혹은 전략적 차원에서 '핵심' 지위를 확립한 것으로 나타난다. 마오쩌둥도 1935년 준이회의(遵義會議)에서 사실상 당·정·군 권력을 장악했음에도 '핵심' 지위는 1945년 중공당 제7대에서야 비로소 확립되었다. 덩샤오핑도 개혁개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핵심' 지위를 확립해 나갔다. 그러나 장쩌민은 집권과 동시에 덩샤오핑에 의해서 의식적으로 핵심 지위를 부여 받았다. 당시에는 천안문 사건 등 국내외 여건 상 당의 지도력과 통치의 합법성이 흔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정·군 최고 지도자라는 제도적 권위에 부합하는 카리스마적인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장쩌민에게 '핵심' 지위를 전략적으로 부여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덩샤오핑이나 장쩌민과는 달리 기층에서부터 '핵심' 지위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가면서 4년 동안의 준비 과정을 통해 '핵심' 지위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의 영도와 통치 혹은 당의 관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집권 후 4년간 시진핑의 활동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에 왜 ‘핵심’이 필요한지를 충분히 보여준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은 집권 기간 동안 전면 심화개혁, 4대 전면(四個全面)의 확산, 국제사회에서의 적극적인 역할 강조 등을 통해 중국과 중국 공산당에 권위 있고, 힘을 가진, 능력 있는 지도자가 새로운 정치의 핵심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다져왔다   여기에는 지난 집권기에 취약했던 후진타오의 국정 장악 능력을 지켜본 시진핑 개인의 ‘정치적 인식’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개혁개방의 길을 걸어온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모멘텀을 통해 중국의 새로운 도약, 이른바 ‘대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시진핑의 입장에서 지도력의 강화는 이미 중국 국내 정치에서는 그 필요성이 충분히 공감되고 확산됐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성장’과 ‘발전’을 패러다임으로 하는 이른바 덩샤오핑식 발전 전략을 수정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대개혁’이라는 이름의 중국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이 ‘시진핑식’(習式) 정치와 사상이 필요하고 ‘시진핑식’으로 재해석된 사회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시진핑의 ‘핵심’ 지위 획득은 중국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중국 공산당의 현실 인식에 따른 처방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 시진핑의 ‘핵심’ 지위가 필요한지, ‘핵심’ 지위 확립이 바로 시진핑의 개인 권력 강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강화된 권력은 지도부 승계 과정에서 시진핑의 영향력 강화로 투사되어 나타날지는 또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지금이 적기냐는 시기상의 문제 의식이다.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대략 1년에 한번 꼴로 개최되는데, 18기 중앙위원회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회의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 개최되는 제18기 7중전회는 제19차 당대회 준비를 위한 실무 관련 사항을 결정하고 점검하는 회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진핑 집권 전반기 5년의 마지막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 중앙의 이름으로 시진핑의 ‘핵심’ 지위 확립을 결정한 것은 당의 이름으로 시진핑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고도의 정치적 전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시진핑이 ‘핵심’ 지위를 획득하기는 했지만, 당분간 개인의 권력 강화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 ‘핵심’ 지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핵심’ 지위를 공식화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진핑도 자신의 권위를 ‘핵심’ 지위까지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유용성과 필요성, 당위성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집단지도체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시진핑 개인에게 ‘핵심’ 지위를 부여했다는 뉘앙스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단기간 개인 차원의 권력 강화는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핵심’ 지위를 수호하는 한편, 집단지도체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결국, 이는 시진핑이 ‘핵심’ 지위 획득으로 당장 시진핑의 1인 집권체제가 시작됐다거나 ‘핵심’ 지위를 이용해 후계구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핵심’ 지위 강화와 집단지도체제 유지라는 두 가지 상호 대립적인 문제가 중국의 현실에서는 공히 필요한 제도라는 당위성의 차원에서 당분간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개인의 권위와 집단의 권위가 조화롭게 조응하는 구도가 정착되는 체제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고도의 복잡한 정치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핵심’ 지위 획득을 통해 시진핑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분명하지만, 19차 당 대회, 20차 당 대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시진핑의 지도력이 관철될 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18기 6중전회는 시진핑의 지위를 ‘핵심’으로 끌어올리고 시진핑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당은 여전히 합의를 중시하는 전통적 테두리 안에 있으며, 오히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의 ‘핵심’ 지위를 수호하는 한편, 집단지도체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했다고 볼 수 있다. ■         저자 양갑용_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 중국 푸단대학교(復旦大學) 국제관계와 공공사무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공산당 집권의 내구성과 간부, 엘리트 정치 등 집권의 내적 동력과 메커니즘이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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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2020-06-05조회 : 8348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남중국해 판결 이후 중국의 행보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PCA)는 지난 7월 12일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의 분쟁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중국은 충분히 예견된 결과임에도 “이 결정이 무효이며, 구속력이 없고, 수용하지 않으며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대규모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실제 이 판결이 중국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책임 대국’을 표방해왔던 중국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대국’이라는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입게 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공식적으로는 영유권 분쟁으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미국의 중국 견제를 약화시키거나 돌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필리핀에 의해 중국이 기피했던 ‘국제법 이슈’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중국은 1970년대 초 국제 사회에 등장한 이후, 상당 기간 서방 세계로부터 ‘국제 규범과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 또는 국제 기구에서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의무를 추구하는 국가’라는 비판에 시달려 왔던 경험으로 인해 국제법과 규범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 영향 탓인지, 중국은 2013년 필리핀이 중재 재판에 제소했을 때 외견상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실상은 예상치 못한 제소에 내심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중국은 필피핀의 제소에 대해 ‘불참’(non-appearance)을 선언했음에도 2014년 12월 자국의 입장을 담은 포지션 페이퍼(Position Paper)를 발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항변’으로 인식하게 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요컨대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영유권 문제로 몰고 가 사실상 미국의 견제를 약화시키려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는 손상을 입게 된 것이다. 특히, 그 동안 내부 정치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이 직접 정상외교를 주도하면서 G2로서의 국제적 위상과 입지를 과시해 왔던 이른바 ‘시진핑 스타일(習式) 외교’ 에 상처를 입게 됨에 따라 앞으로 중국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이 이러한 상처를 만회하기 위해 공세적 대응 수위를 높일 경우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세력 경쟁이 중대 국면으로 진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향후 행보를 전망하는 단초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어떠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책 우선순위는 무엇인지에 대한 원론적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남중국해 문제를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의 문제로 규정하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임을 분명히 하고 있어 외견상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보다는 복잡•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행보 또한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으며 유동적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있다.   우선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가 영유권 분쟁임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자 하는 속내가 깔려있다. 중국은 영유권 분쟁이 당사국간 문제이므로 양자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며 ‘제3국’(사실상 미국을 지칭)이 개입해서는 안 되고 국제적 논의와 판결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이미 예견된 상설중재재판소 판결 결과 자체보다는 판결 결과를 빌미로 미국의 개입이 확대될 가능성을 더욱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행보가 중국의 대응에 여전히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응한 방식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동중국해도 남중국해와 마찬가지로 영유권 분쟁이었고, 미국의 개입 여부가 사실상 중요한 변수였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동중국해는 남중국해와 비교할 때 중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지 않고 있고, 민족적 감정도 강하게 개입되어 있어 쉽사리 출구를 찾기 어려운 사례였다. 그런데 중국은 분쟁의 단초가 되었던 일본의 국유화 조치가 철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위기관리 논의로 출구를 모색했다. 분쟁의 특성을 감안할 때 남중국해 분쟁은 동중국해보다는 중국이 더 수월하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안이다. 즉, 미국이 판결을 빌미로 남중국해에서 군사 활동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중국 입장에서도 굳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동기는 크지 않다.   중국은 현재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과 해공군력 경쟁을 확대해가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필리핀과 베트남 사례를 통해 딜레마를 경험한 바 있다. 미국의 개입과 정찰 활동을 약화시키려는 강경한 태도가 오히려 주변 아세안 국가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미국의 개입 명분을 제공하는 딜레마를 경험한 것이다.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은 미국의 역내 개입과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해양 진출을 확장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른바 ‘일로’(一路) 라고 불리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구상을 제기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일석이조의 정책 목표를 겨냥한 것이다. 요컨대 중국은 가능하다면 미국의 견제를 우회하면서 해양 진출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해양 강국’ 건설이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중요한 국정 과제 중의 하나임을 분명히 했다. 2013년 중국 국방 백서에서도 이례적으로 “해양은 중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중요한 공간이자 자원을 보장하는 곳으로 인민의 복지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해양 강국을 건설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발전 전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진핑 정부는 ‘두 개의 백년’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목표 시점을 2049년에 맞추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중국 지도부는 이미 2003년에 ‘대국흥망사’에 대한 집단 학습을 통해 성급한 부상보다는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장기적인 부상 플랜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성 대국인 미국의 견제와 그에 따른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충분히 예견했다. 다시 말해, 중국에 얼핏 충격적인 사건으로 비쳐지는 남중국해에서의 ‘패소’ 역시 사실상 미중 경쟁 국면에서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던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남중국해에 관한 판결이 자국에 불리하게 나올 것을 예견해 미리 ‘백서’ 발간도 준비해왔다. 중국은 해양 강국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더라도 불필요하게 확대되는 것은 피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이 해양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세안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면서 협력의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해양 강국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과 불안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이익공동체,’ ‘운명공동체’ 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해양 실크로드 구상 역시 아세안 국가들에게 중국 부상의 낙수 효과에 대한 기대를 구체화시키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경제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결국 미국의 역내 개입의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과도한 경쟁과 긴장 조성은 중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로’ 구상에 장애가 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부상 일정에도 차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남중국해 문제 관련 중국의 최대 현안은 미국이 동남아 지역의 동맹국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을 ‘대리 견제’하려는 시도에 여하히 효과적으로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기존의 구단선(九段線)을 근거로 남중국해의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에 대한 주장을 계속할 것이다. 시진핑의 해양 강국 건설이라는 국정 과제와 ‘주권 행위’가 ‘미국의 압박’과 ‘효력 없는 중재결정’에 의해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국은 국제 사회와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외교 공세를 더욱 강화해 갈 가능성이 높다. 우선 중국은 상설중재재판소 결정을 무시하는 것이 현존 국제법과 국제 질서를 훼손시키는 행동이라는 국제 사회의 인식에 대해 크게 부담을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방어하고자 한다. 이는 상설중재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반박 논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중재 결정이 오히려 ‘법치 정신을 위반’하고, ‘국제법과 국제관계 규칙을 유린’하였다고 역공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항행의 자유도 확고하게 지지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다만 미국이 전개하는 ‘항행의 자유 군사작전’은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자신이 현행 국제법과 국제 질서를 부정하는 현상변경 세력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해 있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중국은 오히려 미국이 남중국해 불안정의 원인 제공자라고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즉,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경쟁보다는 국제 사회를 향한 외교전을 전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제3의 시선, 특히 아세안 국가들을 의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기존의 주권 의지를 견지하는 한편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경제외교 공세를 더욱 적극적으로 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경우 ‘일로’ 구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캄보디아, 라오스는 물론이고 태국, 인도네시아 등 중립적 성향의 국가들도 중국의 해양 실크로드 구상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역시 정부가 교체되면서 이전 정부와 달리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대(對) 아세안 외교 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중국 입장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단순한 영유권 분쟁이기 보다는 해양 실크로드 추진, 해양 강국의 점진적 실현, 부상에 대한 국내 기대감 충족, 아세안 국가들과의 네트워크 강화, 그리고 미국과의 세력 및 규범 경쟁 등 다양한 현안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차방정식인 것이다. 결국 시진핑 정부는 중국 인민, 아세안 국가들, 미국, 그리고 국제 사회 중 누구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느냐에 따라 남중국해에 대한 정책 대응은 유동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중국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부상 일정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일관된 행보를 보일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복잡한 현실을 감안하여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은 가능한 우회하면서 상대적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다양한 경제 수단을 동원해 주변 국가들을 견인하여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면서 점진적 부상을 진행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국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양국 사이에서 원치 않은 선택의 기로에 서는 상황이 늘어날 것이며, 특히 ‘북핵’ 부담을 안고 있는 한국에는 더욱 고난도의 압박이 증가될 우려가 있다. ■   저자 이동률 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과 한중전문가 공동연구위원회 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대외관계 및 중국 소수민족, 중국의 민족주의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시진핑체제 외교정책의 변화와 지속성,"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중국 미래를 말하다》(편저), 《중국의 영토분쟁》(공저)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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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률 2020-06-05조회 : 8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