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표심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투표 막바지까지 알 수 없는 부동층의 선택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패널 여론조사는 동일한 응답자 집단을 대상으로 수 차례 여론조사를 시행함으로써 한국 사회와 정치의 주요 사안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과 태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EAI는 주요 선거에서 패널 여론조사를 시행해 왔으며, 특히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17년 조기 대선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유권자의 선호가 막판까지 요동쳤음을 밝혀 내었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미친 요인에 대해 분석하였다. 후보자 개인으로서 인물에 대한 선호, 정당 선호, 대통령 탄핵과 사드 배치의 정치적 이슈 요인, 미디어의 효과를 비롯해 특히 텔레비전 토론회의 영향 등이 최종 표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내었다. EAI는 국회 입법조사처와 함께 “2017년 대통령선거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패널 여론조사의 주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패널 여론조사가 가지는 선거연구의 학술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변화하는 한국 유권자》 시리즈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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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Rapid Reactions to U.S. Election Results: South Korean Perspective

[Editor’s Note]  What does a Trump administration mean for global governance? What direction should President-elect Donald Trump take toward the Korean Peninsula? In this briefing, Sook Jong Lee looks at the implications of the Trump administration for the Asia-Pacific region, specifically with regard to the nuclear threat posed by North Korea. Lee ends on a positive note, stating that hope remains for the new administration to prove doubts that the U.S. might lack the domestic support to maintain a leading role in global affairs ill-founded.         Countries in the Asia-Pacific are anxious to see how the Trump administration will form its policy toward the region. During his cam-paign, President-Elect Donald Trump did not support conventional commitments to the security of the United States’ Asian allies. His isolationist policies, if made into reality, will greatly affect a region where the U.S.-led hub-and-spoke alliance sys-tem has maintained stability and peace for decades. Of particular concern is the possibility that right-wing voic-es in Japan and South Korea, which have called for nuclear armament or more self-reliant defenses, will be amplified if faith in U.S. defense commitments begins to waver. A rejection of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or free trade renegotiations with South Korea would also bode ill for the region’s already troubled economic growth. A rollback of the Obama administration’s strategy of rebalanc-ing to Asia would leave a vacuum China is likely to fill. Most Asian countries do not want to lose the region’s most effective balancer against an assertive China.   The nuclear threat posed by North Korea will require immediate policy responses from the Trump administration. Two decades of failed denuclearization efforts have led to new proposals, such as a military strike or, on the other extreme, unconditional negotiations that would aim to freeze nuclear and missile tests in order to open the path to peace treaty talks. It is uncertain which Trump will pursue.   A rekindling of diplomatic efforts is highly preferable to a dramatic military solution, but the worst scenario would be one in which Trump neglects to act. If the United States sits idly by, there will be no time left to reverse North Korea’s nuclear capabilities. Trump must focus on innovative policies to push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to see that nuclear weapons possession undermines his survival rather than guarantees it. This path will only be possible if the Trump administration consults with and takes joint action with South Korea.   The Trump administration needs to reaf-firm the role played by the United States in global governance. The isolationist sentiment and sharp social rifts revealed by the presiden-tial campaign have left many in the world doubting whether the United States has the domestic support it needs to maintain a lead-ing role in global affairs, but there remains hope that the new administration proves these doubts to be ill-founded. ■         Author Sook Jong Lee is president of the East Asia Institute and professor of public administration at Sungkyunkwan University. Currently, Lee holds advisory positions i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ncluding the Presidential National Security Advisory Group, Presidential Committee for Unification Preparation, and councils for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the Ministry of Unification, and the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Since 2015, she is serving as a Steering Committee member of the World Movement for Democracy. She holds Ph.D. in sociology from Harvard University.    

이숙종 2020-06-05조회 : 8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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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아메리카 퍼스트` 앞의 한미관계

[편집자 주] 지난 11월 8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기간 내내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강조했던 점에 비추어볼 때, 한미관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고 손병권 중앙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특히, 차기 행정부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및 전시작전권 이양, 한미 FTA 등 주요 현안을 한꺼번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연계하여 압박 외교를 펼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국은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인선 과정에서 누가 주요 요직에 기용되느냐에 따라 정책 노선이 달라질 수 있는 바, 이 또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지난 수 차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승리의 보루가 됐던 미국 중서부의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니아주 등에서 트럼프 공화당후보가 매우 인상적인 경쟁력을 보이면서 관록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제압하고 대통령 으로 당선됐다. 변화를 열망하는 백인 노동자의 분노가 똘똘 뭉친 결과, 거꾸로 가는 시계인 소위 “복고연맹”(coalition of restoration) (The Atlantic, 2016년 6월 23일 인터넷판)에 올라타고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행정부 8년의 지배를 종식시킨 것이다. 이메일 스캔들의 족쇄로 선거 내내 심신이 괴로웠을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워싱턴 정가에 대한 불신과 분노, 월가와 결탁한 기득권 정치인의 이미지, 유권자 동원력의 한계 등에 부딪히면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극에 실패했다.   구석구석 분열된 미국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예측보다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어떠한 위력을 갖고 한국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가늠하면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가 우리로서는 훨씬 크다. 한국은 한미관계가 이심전심의 양해된 혈맹관계를 벗어나 철저한 협상과 계산의 대상으로 다가올 불투명한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속히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화당 경선 참여 이후, 트럼프 후보는 미국의 국내 정치•경제를 비롯해 주변국과의 관계, 외교•무역정책 등에 대해서 수많은 발언을 했다. 그 중 대부분은 매우 단편적이고 현장의 분위기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기도 했다. 때로는 상식 밖의 이야기도 있었고, 상호 모순적인 부분도 있었으며, 검증할 방법이 없는 내용도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온갖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지만, 화법이나 용어 선택에서 트럼프는 기존 제도권 정치인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러한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인 트럼프후보가 말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한미관계를 조망하는 것은 다소 위험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상호 모순적이고 즉흥적인 그의 발언 등에 근거해서 한미관계를 내다볼 경우, 일관성이 없는 내용을 나열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측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한미관계 현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모아 양국 관계를 조망해 보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션즈(Jeff Sessions) 의원이나 플린(Michael Flynn) 전 DIA 국장 등 몇몇 사람들이 트럼프의 외교담당 측근이라고 거론된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트럼프 외교팀”이라고 부를만한 어떠한 브레인 집단도 아직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외교의 대전략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외교팀이 급조된 나머지 당분간 대전략이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충돌하는 생각들로 조합된 논공행상형 부실 외교팀이 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 역시 완전하지는 않으나, 트럼프 후보 본인이 비교적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언급한 어떤 중요한 어휘나 구절, 상대적으로 잘 정리된 외교정책 연설문, 공화당의 전통적 정책과 정당 후보 간의 타협과 합의가 담겨있는 전당대회 강령 등을 토대로 트럼프 외교정책의 큰 틀을 대강 짐작해보고, 그 안에서 앞으로의 한미관계를 유추해 보는 것이 보다 안전한 접근방법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후보가 가장 강조했던 어휘 혹은 이와 관련된 잘 정리된 연설문, 전당대회 강령 등에서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반영된 내용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선거 기간 동안 트럼프 후보가 가장 강조했던 핵심 어휘는 바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였다. 간단히 말하면 “아메리카 퍼스트”로 상징되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국익’을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시하겠다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우선시돼야 할 ‘미국의 국익’의 내용과 형식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트럼프의 일상적인 발언, 외교정책 연설, 공화당 강령 등을 토대로 볼 때, ‘미국의 국익’은 미국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과 미국의 국가 안보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트럼프와 같이 구체적이고 가시적이며 단기적인 성과를 선호하고 이러한 성과를 중심으로 흥정과 협상을 하자는 스타일의 지도자에게, 미국 민주주의 가치의 확산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일단 후 순위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확보와 적정한 임금보장과 같은 구체적인 경제적 이익이나 테러세력으로부터 미국 시민의 보호 및 미국의 국가안보와 관련된 군사적 우위의 확보와 같은 안보이익 등이 트럼프 당선자가 최우선시하는 ‘미국의 국익’에 해당될 것이다.   요컨대 트럼프 당선자가 추구하는 “아메리카 퍼스트”는 미국(좁게 말하면 트럼프 행정부)이 탐탁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협상장에서 뛰쳐나올 수 있어야 하고,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수입상품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이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하며(공화당 전당대회 강령 중 “승리하는 무역정책”), 전쟁보다는 외교를 중시하고 승리 가능성이 있는 전쟁에만 선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2016년 4월 27일 The National Interest 저널 주관 외교관련 연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은 분명히 고립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자국의 국익보호를 위한 주권 행사가 저해되는 일체의 정책이나 조치를 거부할 능력을 보유해야 하며, 다자제도에 참여함으로써 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하거나 새로운 규범을 창출하는 것도 이러한 미국 거부권의 주권적 행사를 보장받은 후에만 가능하다. 트럼프 당선자에게 “글로벌리즘은 잘못된 노래이고… 민족국가가 최우선이며… 국제 제도는 미국을 속박하는 것”에 불과하다(2016년 4월 27일 연설).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추구할 이러한 “아메리카 퍼스트”의 국익 우선 추구는 한미관계에도 분명히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선 단기적 손익계산을 우선시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한미동맹은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유사시 미군의 병력 희생 및 추가적 군사력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의 안보에 지장이 없는 한 지대한 손실로 여겨질 것이다. 이와 같이 실익이 없는 동맹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군 주둔의 모든 비용을 미국의 동맹국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단순 논리상 트럼프 당선자의 계산에는 동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군을 주둔국에서 철수시키면 그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볼 때,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한미동맹은 전통적 군사적 혈맹관계의 요소가 약화되면서 협상과 손익계산의 대상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   이러한 “아메리카 퍼스트”의 논리는 한미경제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후보는 지속적으로 TPP 폐지와 NAFTA 재협상을 주장하고, 한미 FTA의 불공정성을 지적해 왔다. 어떠한 자유무역협정이든지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줄이고 이들의 임금을 낮추는 협정은 그 자체가 ‘미국의 국익’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자리를 줄이고 미국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상품의 수출 국가는 그의 눈에는 대부분 정부보조금 지급, 환율조작, 근로조건 위반, 노동자 권익위반, 국제무역 표준미달 등 불공정 무역 관행을 상당히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에 대해 미국은 언제든지 보복관세 등 엄중한 징벌적 조치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은 그 자체가 ‘미국 주권의 양보’이며 ‘불공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협정은 폐지, 재협상, 추가협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FTA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지금까지 “아메리카 퍼스트”가 제시하는 ‘미국의 국익’을 토대로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와 한미관계를 대략 조망해 보았다. 위에 제시된 정책적 함의들은 “아메리카 퍼스트”가 추구하는 미국의 국익 관점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된 후, 그의 발언과 연설, 공화당 강령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거증(擧證)된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서 설정된 하나의 가정은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이 지금까지 공표한 내용에 충실하게, 사실상 단독으로 외교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이것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한’ 가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트럼프 당선자가 추구하는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관점에서 향후 전개될 트럼프 시대의 한미관계의 핵심을 파악해보자는 취지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전개하였다. 미래 한미관계에 대한 현실적인 전망은 이러한 전제와 논리를 실제 상황에 적용시켜보는 방식으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트럼프 당선자 자신의 공약수정 혹은 학습과정이 있을 수 있다. 당선 직후 오바마 대통령을 면담한 후 트럼프 당선자는 오바마 케어의 일부 내용을 잔존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등 변화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 그 역시 선거운동과 정치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한미관계 또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정보의 업데이트 및 학습의 결과로 무리한 철군론이나 한미 FTA 전면 재협상 등의 공약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주요 이슈와 관련해서는 주변 안보 전문가 및 한반도 정책 결정자들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즉, 누가 트럼프 외교팀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차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및 대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경우, 그의 공리주의적 성향으로 볼 때 외교정책에 이념적인 요소를 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러시아의 푸틴이나 북한의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 후보의 간헐적이지만 우호적인 발언도 매우 탈이념적인 그의 성향의 일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 그의 대선 캠프에 외교 전문가 인력풀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난 부시 행정부의 인사들이 상당수 기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 전반에 이념적인 색채가 가미될 수 있고, 이때 대북정책이나 대중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자칭 협상의 대가인 트럼프 당선자의 경우, 상대 국가의 대응도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 및 한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화와 협상으로 통한다고 판단할 경우 대체적으로 손익계산이 맞으면 무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나, 협상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이에 필요한 외교를 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영리한 외교’는 힘의 행사와 예측불가능성의 극대화를 통해 실현되는 바, 이 과정에서 미국과 협상 대상국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한정책에 있어서 일단 주한미군방위비 분담수준, 전시작전권 이양, 한미 무역관계를 한꺼번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모든 것을 연계시켜 압박 외교를 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외교 사안별로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 및 한미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한미관계의 경우, 미국 국방부나 국무부, 한국 현지 미군사령관 및 외교관, 의회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소위나 한미의원협의회 소속의원, 싱크탱크 한미관계 혹은 동아시아관계 전문가 등 다양한 정책자문 및 이해당사자들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역할이 부각될 경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확대가 수반되기는 하겠지만 한미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다만, 특정 사안에 있어 트럼프 당선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최종 결정을 스스로 내릴 가능성이 높고, 이때 그의 특유한 기질적 요소가 작용할 수 있어서 우려되는 바가 있다. 결국, 미국 내 정계·관계·학계의 한미관계 전문가 집단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권한의 분담여부 및 정도가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투표 집계에서는 60만 표 정도로 클린턴 후보에게 지고도,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니아 주를 모두 합쳐 불과 11만 표 정도의 격차로 이겨 선거인단 투표집계에서는 승리한 소수파 대통령이다. 이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반대한 사람이 지지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는 뜻으로, 이러한 선거 결과의 메시지를 무시한 국내외 정책이 어떠한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지난 부시 행정부 집권 8년의 후유증이 웅변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당선자는 분열적인 ‘배제의 선거 전략’을 통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빅 세일에 성공한 인물로, 전통적인 제도권 대통령(institutional president)이 아니라 미국 정가에서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운동형 대통령’(movement president)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마저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담하지만 냉정한 협상가의 면모를 지녔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자제력 없는 충동적 성격도 대선 과정에서 빈번히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수용 가능한 수준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지향하여 국제 사회와 긴장 속에서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동시에 한미관계가 중범위 조정을 거치면서 변화 속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려면 충동의 성향보다는 협상력을 앞세운 행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자가 운동형 대통령으로서 국내외적 위기 시 본인 특유의 기질을 발휘할 때 상황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만에 하나 그가 미국 국내정치의 “내우”(內憂)를 미국 밖의 “외환”(外患)으로 치환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 미국은 물론 한반도와 세계는 지난 43대 부시 행정부보다 훨씬 거대한 격랑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상황의 전조나 선행 조건이 무엇일지 그의 당선만큼이나 예상하기 어렵다는 데에 고민이 있다고 하겠다. ■          저자 손병권_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 미국 외교정책, 비교의회 및 정당론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Causes of Distrust and Conflict in the ROK-US Alliance: With a Focus on the Roh Moohyun Era" (2016), "통일한국의 의회제도" (2015), "티파티 운동과 공화당 보수주의의 재형성" (2013)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손병권 2020-06-05조회 : 8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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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트럼프 현상`과 2017년 미국의 외교정책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공화·민주 양당이 각각 7월 19일과 26일 전당대회에서 트럼프(Donald Trump)와 클린턴(Hillary Clinton) 후보 선출을 공식화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대선은 이제 본격적인 본선 경쟁에 돌입했다. 막말의 부동산 재벌 아웃사이더 후보 트럼프. 미국 최초 주류 정당 여성 대통령 후보 클린턴. 매치업 자체도 흥미롭고, 누가 당선되든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대통령을 선출하게 될 2016년 대선은 미국 정치사에 ‘역대급’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당대회 이후 초반 판세는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내어준 형국이다. 트럼프는 민주당 이메일 해킹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2004년 아들을 이라크 전장에서 잃은 무슬림 이민자 부부를 비하하는 언사를 쏟아냈다. 적성 국가를 두둔하거나 군을 모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러한 발언은 정치에서 금기 사항이다. 그의 막말은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었고, 이는 표의 확장성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9월 26일 첫 후보 토론회를 시작으로 총 세 번의 토론을 한다. 두 번째 토론을 하게 될 10월 9일 즈음 대체로 판세가 확정될 것이다. 11월 6일 선거일까지는 아직 두 달여가 남아있고 정치에서 두 달은 ‘일생’(lifetime)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초반 기세를 잡은 클린턴을 따라잡기에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여기까지’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라도 ‘트럼프 현상’으로 표출된 심상치 않은 미국의 ‘국가 분위기’(national mood)는 2017년 누가 백안관의 주인이 되더라도 향후 미국의 정치와 외교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가 되면 이럴 것이다’에 천착할 필요는 없어도, ‘트럼프 현상’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트럼프나 샌더스(Bernie Sanders)와 같이 워싱턴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후보들이 공화·민주 양당의 경선 과정에서 대약진을 했다는 사실이다. 경선 전에 이들의 강세를 예견한 주류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아무도 없었다. ‘주류’들이 미국 사회 기저에 발생한 변화와 이러한 변화의 정치적 파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극복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위기도 한고비 넘긴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양극화는 ‘좌파’들의 근거 없는 공세가 아니었고, 기대했던 ‘낙수효과’(trickle down)는 미미했다. 사실 경제성장률, 고용률, 주가 등 지표만 놓고 보면 미국 경제는 호조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중산층의 소득이 실제로 감소하면서 저소득층은 늘어났고,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득 양극화가 고착되면서 미국 사회가 자랑했던 계층 간의 ‘이동성’(social mobility)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저소득층에게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특히 백인 저소득층들은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일자리를 앗아간 자유무역정책, 관용적인 이민정책, 소모적인 외교정책, 그리고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워싱턴 정치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양당의 주류 후보들이 구태의연한 공약으로 일관한 것에 반해, 트럼프와 샌더스는 이들 귀에 솔깃한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양극으로 보이는 트럼프와 샌더스이지만 공약의 내용만 놓고 보면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두 후보 모두 소극적인 외교정책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IS나 북한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수사’(rhetoric)는 매우 거칠고 호전적이지만, 미국이 직접 나서기 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샌더스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던 몇 안 되는 미국의 상원이었고,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을 축소할 것임을 시사했다. 둘째, 양 후보 모두 자유무역 정책이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고착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천명했다. 셋째, 두 후보 모두 적극적인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샌더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트럼프 역시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 같은 의료보조제도와 국민연금제를 유지·확충하고, 심지어 오바마 케어와 비슷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아동 세금감면(child tax credits)과 최저임금 인상도 얘기한다. 공화당 주류가 복지정책을 반시장적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이라며 금기시했지만, 트럼프는 상당히 전향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에도 미국에는 고립주의 외교노선과 보호무역정책을 지지하거나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정치인들이 종종 두각을 나타낸 적이 있다.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주장했던 부캐넌(Pat Buchanan)은 1996년 공화당 경선에서 돌(Bob Dole) 후보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이후 탈당 후 개혁당(Reform Party) 후보로 출마한 2000년 선거에서는 0.4 퍼센트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케리(John Kerry, 현 국무장관) 후보를 부시 대통령의 “라이트 버전”(Bus(c)h Light)이라고 비판하며 샌더스 급의 진보정책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딘(Howard Dean) 후보 역시 경선 초반에 낙마했다. 부캐넌과 딘에 귀 기울이던 청중들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이 청중들은 적극 투표층도 아니었다. CNN의 시사토크쇼 GPS의 사회자인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연초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대부분 루저(loser)들이고, 루저는 경선이고 본선이고 투표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현상은 경선 초반에 바로 사그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 달리, 그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미국의 루저들이 똘똘 뭉쳐 투표장으로 향했고, 이제는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 하는 메이저 ‘컨스티튜언시’(constituency)가 되었다. 2016년 공화당 경선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트럼프가 후보로 당선된 이유는 그만의 거침없는 스타일 때문도 아니고, 공화당 후보군이 약했기 때문도 아니다. 모든 정책에서 트럼프의 대척점에 있었던 공화당의 총아 라이언(Paul Ryan)이 출마했다면 후보로 선출되었을까? 트럼프가 후보로 당선된 이유는 보다 구조적이다. 미국 사회의 기저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감소하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복지증진 등 진보적인 공약이 지지를 받게 된다. 2012년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복지공약을 먼저 치고 나와 복지담론을 선점했다. 정치적 상황에 맞게 ‘좌클릭’한 것이다. 2016년 대선에서 미국의 공화당 주류들은 여전히 복지정책을 반시장적으로 규정하며 ‘최고의 정부는 작은 정부’라는 구호만 만트라(mantra)처럼 반복했다. 오히려 극우 세력인 티파티(tea party)가 당의 일각을 장악하면서 공화당은 ‘우클릭’했다. 트럼프의 약진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공화당 주류가 자초한 것이다. 트럼프의 약진은 실현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제는 메이저 컨스티튜언시가 된 루저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약진은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콘텐츠’ 때문이다.   경선 판세를 좌우했던 컨스티튜언시는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기를 원한다. 미국의 자원과 에너지를 국제적 역할에 투입하기 보다 산적한 국내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발표된 퓨(Pew)리서치 조사에서도 60%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미국은 자국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 문제는 그 나라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국가 분위기가 ‘내부 지향적’(inward-looking)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국가 분위기는 2017년 출범할 신행정부가 적극적 외교정책을 수행하기에 열악한 국내 정치적 환경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국가 분위기가 외교에서는 고립주의(isolationist), 통상에서는 보호주의(protectionist)로 흐르고는 있지만, 미국의 외교 통상정책이 국제주의(internationalist)와 자유무역(free trade)에 의거해야 한다는 입장은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국가적 합의’이기도 하다. 전자가 최근에 부상한 ‘파퓰러 컨센선스’라면 후자는 70년 이상 지속된 초당적 ‘엘리트 컨센서스’이다. 부상하는 파퓰러 컨센서스를 엘리트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는 상쇄할 것이기 때문에 고립주의적 외교노선과 보호주의적 통상정책이 아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외교·안보·군사정책의 큰 틀과 동맹의 골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얘기하는 것이 미국 외교정책이다”(US foreign policy is what the president says it is.)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2차 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 권한은 강화되어 왔다. 하지만 미국의 삼권분립제도 하에서는 엄연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바, 트럼프가 설령 고립주의 노선으로 급선회하고 동맹을 폐기하고 싶어 하더라도 제도적 제약에 직면할 것이다. 우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언론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제4부라고 알려진 싱크탱크의 합의도 유도해야 한다. 의회와 언론, 싱크탱크는 미국의 국제주의 외교노선과 동맹정책에 대한 합의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외교·국방·동맹정책은 일정 부분 클린턴 쪽으로 수렴해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통상정책에서 만큼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고, 실제로 통상정책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의 유권자들은 일반적으로 안보·군사·동맹정책보다 자신의 경제이익과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통상정책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무역에 대한 국가적 합의는 국제주의적 외교노선이나 안보 동맹정책에 대한 합의만큼 공고하지 못하다. 둘째, 트럼프는 ‘기회주의적(opportunistic) 보호주의자’가 아니라 ‘확신범적인(convinced) 보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보호주의는 90년대 초반부터 여태까지 매우 일관성이 있다. 건설업을 하던 부친 밑에서 어렵게 일하던 노동자들이 자유무역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경험적 확신도 있고, 성공한 사업가로서 국가 간의 거래에서 어떻게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경우에도 통상정책에서는 본인이 생각한 적정 수준의 보호주의보다 훨씬 더 트럼프쪽으로 수렴해 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클린턴은 ‘명백한’ 보호주의자가 됐다. ‘국무장관’ 클린턴은 TPP를 “최상 수준”의 자유무역이라며 주도했었다. 하지만 작년 10월 “협정문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고, 쇠락한 공업단지가 몰려있는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rust-belt)주에서 트럼프와 샌더스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목도한 후 TPP에 대한 입장을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3월 미시간주 경선에서의 패배가 결정적이었다. 경선 하루 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는 클린턴이 샌더스에게 많게는 21%까지 앞서가는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성난 민심의 출렁거림을 여론조사가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선 결과는 2% 차이로 샌더스의 승리. 러스트 벨트 미시간을 샌더스에게 내준 클린턴은 며칠 후 TPP 비준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고, 그 후 바로 실시된 러스트 벨트이자 아주 중요한 경합주인(Swing State) 오하이오 경선에서 신승할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 TPP를 비준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지만, 클린턴은 8월 11일 TPP를 “대통령이 되더라도 반대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무리 레임덕 회기라 하더라도 지금 분위기에서는 의회가 비준에 찬성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 11월 선거는 대통령뿐 아니라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선출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지금 분위기로는 의회에 보호주의자들이 대거 (재)등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클린턴이 대통령 취임 후 설령 다시 ‘찬성’으로 돌아선다 하더라도, 현재 상태로는 TPP 의회 비준이 난망해 보인다. 사실 아태 동맹은 미국 입장에서는 ‘싸게’ 취할 수 있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 중 하나이다. 클린턴은 동맹의 틀을 유지·확장하려 하겠지만, 국내문제 해결에 자원 전환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동맹국 측에 보다 많은 비용을 전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오바마 역시 일부 동맹국을 프리 라이더(free rider)라고 비판했고, 클린턴도 동맹국의 공정한 비용분담을 강조하고는 했다.   힐러리는 본인이 인정했듯이 남편 빌 클린턴이나 오바마와 같은 ‘태생적’(natural) 정치인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통’(policy wonk)에 가깝다. ‘정책가’ 클린턴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고, TPP가 없는 재균형은 ‘속없는 만두’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북한 핵 문제도 적극 개입해서 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 클린턴이 “이 TPP는 내가 알고 있던 TPP가 아니다”라며 비준에 반대해야만 하는 국내정치적 상황이다. 남편 빌이 “큰 정부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big government is over!)를 외치며 우클릭으로 외연 확장에 성공해 정권을 잡았는데, 아내인 힐러리는 내부지향적으로 바뀐 국가 분위기 속에서 역대급 좌클릭으로 집권을 노리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글로벌리즘을 배격하고 폐쇄적 아메리카니즘을 공개적으로 부르짖는 막말의 정치인이 공화당의 후보를 거머쥐었다. 그만큼 국내정치적 상황이 변했다는 얘기다. ‘신창타이’의 중국에 비해 경제위기 전의 자신감을 회복한 미국은 많은 이에게 ‘팍스아메리카나 3.0’과 ‘미국의 귀환’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거물 정치인이었던 오닐(Tip O’Neill)이 말했듯이 “모든 정치는 바닥 민심에서 시작한다”(all politics is local). 취임 후 ‘정책가’ 힐러리와 ‘정치인’ 힐러리 사이의 재조정은 이뤄지겠지만, 내부지향적 국가 분위기는 미국의 적극적 외교정책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   저자 김재천_ 서강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서강대 국제지역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외교정책과 한미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국제안보와 평화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4차 핵실험과 전략적 인내의 종언: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분석" (2016), "Turco-Iranian Alignment: Balancing or Bandwagoning with the US?" (2016), "Alliance Adjustment in the Post Cold-War Era: Convergence of Strategic Perceptions and Revitalization of the ROK-US Alliance"(2015), 〈CIA 블랙박스〉(2011)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김재천 2020-06-05조회 : 8641
단행본
2017 대통령의 성공조건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공하는 대통령을 갈망한다."       세계화, 민주화, 정보화의 급속한 전개로 정치 환경이 크게 달라짐에 따라,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EAI는 2002년부터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마다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라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 권한의 제도화에 연구의 초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리더십 확보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민주화 이후 지난 정부들의 국정운영의 성과와 방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정치 환경에 부합하는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2017 대통령의 성공조건》에 고스란히 담았다.   대통령의 성공은 곧 국민의 성공   지난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5월 9일 조기대선이 치러졌다. 77.2%라는 높은 투표율이 말해 주듯이,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그만큼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그럴듯한 공약과 비전으로 국민들의 기대치를 높였지만, 실제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며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기곤 했다. 이러한 국정운영의 실패는 대통령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구조적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빚어진 결과였다. 따라서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이러한 요인에 대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이에, EAI는 《2017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통해 보다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제언   박형준 교수는 1장에서 대통령실은 대통령 보좌조직으로 행정부, 국회, 정당, 경제계, 시민사회와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관리하는 메커니즘의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제도 전체의 효율과 효과를 제고하는 장치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대통령실 자체가 제도적 상보성이 높은 구조로 설계되어야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제대로 보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국정과제실장과 소통실장의 병렬적 이원체제의 운영이나 유기적 연계를 위한 매트릭스형 조직 설계, 국정과제심의위원회 신설, SNS비서관 임명 등의 조직개편을 제시한다.   김재일 교수는 2장에서 열린 정부 추진전략의 원칙을 바탕으로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증진시키는 열린 정부를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제언한다. 대국민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의 컨트롤 타워가 지정돼야 하고, 주어진 업무를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이에 상응하는 인력이 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정부신뢰의 중요성과 절차상의 공개성, 투명성, 책임성이 정부신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규섭 교수는 3장에서 변화한 정치•언론 환경 하에서 대통령의 바람직한 국정운영 및 소통방식에 대해 살펴본다. 두터운 지지층을 기반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현상에 입각하여, 과거와 달라진 대통령 국정운영의 제약 조건 및 박 전 대통령의 소통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박 전 대통령의 과거 회귀적인 홍보수석 인사, ‘성장제일주의’ 일변도, 그리고 대통령 지지자에 치우친 소통방식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정책기획과 홍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정치 및 언론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홍보 수석을 임명하며, 여론 동향을 파악함에 있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이동규 교수는 4장에서 정부가 구제역 확산,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경주 지진 등의 국가 재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재난관리에 실패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재난 발생 시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부재, 재난 사전대응체계 미흡, 복합재난과 특수재난의 체계적 관리 업무 범위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민안전처를 국민안전부로 격상하고, 각각의 전문성 있는 기관들을 통합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한승준 교수는 5장에서 역대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추진 내용, 성과 및 한계를 토대로 차기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역대 정부는 공공기관 민영화, 구조조정, 경영 효율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지만, 낙하산 인사 및 방만 경영의 문제는 크게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새 정부는 ‘보여주기식 행정’ 혹은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지 말고 공공기관의 자발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공기관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정훈 교수는 6장에서 한국의 예산결정 과정은 행정부가 과도한 권한을 지니는 반면, 입법부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 및 통제의 기능이 미약하고 입법에 대한 책임을 과중하게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제가 기반하고 있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강화하고 기존의 당정협의회가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 전문성 강화가 필수적이며, 이는 국회예산정책처의 기능 강화, 예결특별위원회의 분리 등 상임위원회 제도 개선을 통해 가능하다고 제언한다.   나태준 교수는 7장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갈등의 원인과 현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념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정치적 타협과 설득, 조정과 중재에 기반한 대통령의 갈등관리 리더십 확보, 정당 내 정책 연구소 기능 강화,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제시한다. 계층갈등 극복을 위해서는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통합적인 체계 설계, 부의 축적과정에 대한 정당성 확립,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이동성의 개선과 교육격차 해소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개선책과 더불어 갈등기본법 제정, 통합을 위한 의사소통구조 마련, 정책공약 등록 및 현실적 평가의 제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마지막으로 김태영 교수는 8장에서 지방자치에 대한 주요 쟁점들을 바탕으로 향후 한국의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지방자치의 발전 방안으로 제도적 관점에서 중앙집권적 정치행정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로서 기관 구성의 다양성, 대등한 정부 간 협치, 2할 자치의 강제 조정, 일선 읍•면•동 수준에서 선출직의 확대, 주민자치위원회의 활성화, 기타 실험적 지역공동체의 양성화 등을 제안한다. ■     목차       서문       I 들어가는 글: 성공적 국정운영의 길 ■ 이숙종   II 성공적 대통령을 위한 정부운영 방식   1장 핵심 국정과제 실현과 국민신뢰회복을 위한 청와대 조직과 운영방식  ■ 박형준 2장 정부신뢰 제고를 위한 열린 정부 추진전략  ■ 김재일 3장 국민 공감을 실현하기 위한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원칙과 전략  ■ 한규섭 4장 국민안전체감도 제고를 위한 총체적인 국가 재난관리체계 강화 방안  ■ 이동규 5장 국민수요에 대응하고 시행착오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개혁  ■ 한승준   III 성공적 대통령을 위한 국정 거버넌스 운영 전략   6장 행정부와 입법부간의 협치: 예산결정과정을 중심으로  ■한정훈 7장 국민통합을 위한 공공갈등 조정원칙과 방향  ■ 나태준 8장 주민과 정부가 모두 만족하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원칙과 방향  ■김태영      

이숙종?박형준 공편 2017-06-20조회 : 13064
논평이슈브리핑
[여론브리핑] 2017년 EAI 대선패널 2차조사 주요 결과 및 평가

Ⅰ. 2017년 대선의 특징   1. 선거캠페인 기간 중 높은 지지후보 변동 - 지지후보 변동 비율 36.2%로 2012년 대선의 두 배 이상 - 야권후보 대세 속 다자구도였던 2007년 대선과 유사한 변동 패턴       2. 지지후보 결정 시점- 46.8%가 투표 직전 1주일 내에 지지후보 결정 - 문재인 지지자는 조기 결정 비율 높고, 나머지 후보 지지자들은 막판에 결정           3. 지지후보 변동 경로: 누구에서 누구로?- 안철수 12.6%p 지지 하락, 6.5%p는 홍, 5.7%p는 문으로 이동 - 홍준표, 가장 적게 잃고 가장 많이 얻어       4. 지지후보 변동 이유: 왜 바꿨나? - “TV 토론에 실망”해서 안철수 지지율 4.9%p 하락 - 낮은 당선가능성(3.8%p)과 국정운영능력 불안(3.1%p)도 하락 원인       5. TV 토론은 투표에 정말 영향을 미쳤나?- 확증편향은 대폭 감소, 지지후보 변경은 5-6배 이상 증가 - 안철수 TV토론 부진이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원인       Ⅱ. 투표 요인 분석       1. 인물 요인- 호감도/도덕성/국정운영능력 모두 문재인 우세 - 문재인 호감도는 대선기간 중 개선: “싫다” 14.1%로 절반 가량 축소 - 안철수, 홍준표는 3분야 모두 각각 4위, 5위           2. 정당요인- 더민주당, 선거기간 동안 8.7%p 늘어 46.9%로 압도적 1위 - 국민의당만 7.1%p 대폭 하락 - 문재인 지지자 중 10.7%는 정의당 지지           3. 이슈 요인- “탄핵”이 48.6%로 압도적 1위, 연령대 낮을수록 영향력 커져 - “사드배치논란”은 홍준표 지지와 장노년층에 집중           4. 미디어 효과(1) 선거정보 습득 미디어 유형 - 종편방송, 선거정보습득경로 1위 - 2030은 인터넷포털, 4050은 종편, 6070은 공중파 - 진보/중도는 종편 1위, 보수는 공중파 1위       (2) 선거정보 관련 미디어 접촉 빈도 - 나이 많을수록 적극적 선거정보 소비층 비율 높아 - “매일 수시로” 선거정보 접하는 70대는 20대의 두 배 (3) TV 토론 - 심상정, 유승민 투표자의 과반 이상은 TV 토론 때문에 지지후보 변경 - 안철수 투표자의 42.3%, “지지후보 변경은 안했지만 지지 약해져”   Ⅲ. 평가와 전망   1. 투표한 후보에 대한 만족 정도 - 문, 심, 유, 지지자들 만족도 90%대, 안, 홍 지지자들은 70%대 - 문재인 지지자들의 만족도는 2012년에 비해 크게 개선       2. 선거과정 및 결과 평가- “정책선거였다” 53.5%, “후보간 비방 심했다” 60.4%, “지역주의 약화” 74.7%           3. 신임 대통령 국정운영 전망- 88.4%가 “잘할 것”으로 전망, 2012년 박근혜 당선자 국정운영 전망보다 15.9% 높아 - 홍준표 지지층도 “잘할 것” 전망이 “못할 것” 전망보다 두 배 높아       4. 정계개편 (1) 민주당-국민의당 통합 - 반대 57.1% > 찬성 38.7%, 호남만 찬성 60.9% > 반대 33.9% - 문재인 지지자들의 찬성비율이 다소 높아   (2) 자유한국당-바른정당 통합 - 반대 74.3% > 찬성 21.6%, 젊은 세대일수록 반대의견 높아 - 홍준표 지지자들만 찬성(52.3%)이 반대(43.8%)보다 우세 (...계속)    

배진석 2017-05-24조회 : 10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