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표심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투표 막바지까지 알 수 없는 부동층의 선택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패널 여론조사는 동일한 응답자 집단을 대상으로 수 차례 여론조사를 시행함으로써 한국 사회와 정치의 주요 사안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과 태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EAI는 주요 선거에서 패널 여론조사를 시행해 왔으며, 특히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17년 조기 대선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유권자의 선호가 막판까지 요동쳤음을 밝혀 내었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미친 요인에 대해 분석하였다. 후보자 개인으로서 인물에 대한 선호, 정당 선호, 대통령 탄핵과 사드 배치의 정치적 이슈 요인, 미디어의 효과를 비롯해 특히 텔레비전 토론회의 영향 등이 최종 표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내었다. EAI는 국회 입법조사처와 함께 “2017년 대통령선거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패널 여론조사의 주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패널 여론조사가 가지는 선거연구의 학술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변화하는 한국 유권자》 시리즈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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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 대한 평가

[편집자 주] 지난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함에 따라 국회 차원에서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입니다. 최대 쟁점은 역시 통치구조 개편에 관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책임총리제’로 불리는 분권형 정부제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문 대통령은 개헌안을 통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선우 전북대 교수는 대통령 재임 2년 차에 총선을 치르게 함으로써 이것이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게 하여 견제와 균형의 기제로 작용하도록 구상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권력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여전히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대통령의 ‘임기 중 제왕적 통치-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라는 문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교수는 감사원장 및 국정원장을 제외한 3개 권력 기관장의 추천권을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격적인 헌법개정안 발의로 정국이 뜨겁다. 기대 반 우려 반일 터다. 사실 1987년 민주화와 함께 제정된 현행 헌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간 끊이지 않았다. 온전히 성공한 대통령보다 실패로 기억된 대통령들이 훨씬 더 많은 탓이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에 이르러서는 민주화 이후 초유의 국정마비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상당한 정치적•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헌 추진을 무작정 더 미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국회개헌특위가 구성되어 국회 차원의 개헌안을 제출하려던 계획이 당파적 이해관계의 차이로 무산됐고, 따라서 문 대통령이 현행 헌법에 의거해 스스로 개헌안을 발의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문 대통령의 발의 이유에 대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충돌로 인해 개헌안의 진의는 어차피 완벽하게 신뢰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개헌안 발의는 반드시 누군가는 넘었어야 할 문턱이었다. 무엇보다 과거 대통령들의 다양한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개헌담론 자체의 회피나 국면돌파용 깜짝 제안 등으로 인해 번번이 그 과정이 시작조차 될 수 없었음을 감안하면, 비록 국회 통과와 국민투표라는 쉽지 않은 정치과정이 남아 있긴 하나, 그 절차의 첫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만도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개헌안의 내용이다. 우선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필두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를 명기함으로써 민주 헌법임을 천명하고, 자치, 분권 및 지역 간 균형발전과 자연과의 공존까지 추가함으로써 지방자치 및 친환경의 시대정신을 분명히 한 것 등에는 별반 이견이 있기 어렵다. 특히 지방자치 강화를 위한 조항을 대폭 신설한 것은, 보기에 따라 미진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지방자치를 헌정의 근간 중 하나로 확약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변화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적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고, 그 생명권 및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권리 등까지를 명시한 것은 이전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민주적 가치들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의 도입 역시, 비록 그 요건과 절차를 마련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만,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이란 시대적 요구에 다분히 부합하고 있다 하겠다. 아울러, 경제민주화 조항에 상생을 추가하고 토지공개념을 적시하는 한편, 장애·질병·노령·실업·빈곤 등으로부터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장 및 노동권의 강화, 그리고 소상공인 보호와 사회적 경제의 진흥을 위한 노력을 명시한 것 등은 점증하는 양극화의 억제 및 계층 간 균형발전의 추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본 개헌안의 경우 제7조에 해당하는 퇴직 공무원의 직무상 공정성 및 청렴성 유지 의무에 관한 조항이 유독 눈에 띄는데, 그간 전관예우의 극심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혁 시도가 그 위헌성 논란으로 인해 획기적으로 진척될 수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 또한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대통령발 개헌안은 그간 사회적 논쟁들로 점철됐던 많은 사안들에 대해 기득권의 보호보다는 대체로 분배지향적 개혁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게 투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헌안에서 가장 논쟁이 많은 부분은 역시 통치구조와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기실 개헌안의 국회 통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회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고자 국회에서 추천 또는 선출되는 총리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여 집행기능의 일부분을 담당하도록 하는 분권형 정부제를 주장해 왔다. 반면 문 대통령은 이번 개헌안을 통해 사실상 매우 확고한 형태의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이는 국회에서의 합의 여부에 따라 개헌안이 상당 부분 변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개헌과정이 4년 연임의 대통령제에 상당히 근접한 형태로 통치구조를 바꾸느냐 아니면 현 상태를 온존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축약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물론 개헌론자들에 따라 대통령제 이외의 정부 형태에 대한 선호가 있을 수 있고, 필자 역시 통치구조의 측면에서 이번 개헌안이 과연 최선인가에 대한 확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향후 통치구조에 관련된 주요 쟁점들이 대체로 ‘대통령 4년 연임제’의 작동원리를 중심으로 제기될 소지가 크고, 국민들의 이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실제 제도적 설계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본 정부형태 또한 꽤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는 대통령제를 전제로 본 개헌안을 평가하는 것이 일단 온당할 것으로 사료된다. 먼저 ‘대통령 4년 연임제’에 관해 가장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주기의 중첩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재임 2년 차에 총선이 치러지게끔 유도함으로써 후자가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통상 대통령제의 가장 주요한 약점 가운데 하나로 여소야대 또는 분점정부의 잦은 출현이 지적되는데, 적잖은 경우에 이를 해소하고자 양 선거의 주기를 인위적으로 맞추려는 제도적 변화를 시도하곤 한다. 하지만 분점정부 상황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대통령제의 운영원리에 내재된 견제와 균형의 핵심적 기제로도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본 통치구조의 정상적 작동이 의미하는 바 역시 대통령과 국회가 분점정부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통치에 기여할 수 있게끔 유인할 수 있음이라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개헌안의 총리임명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완결성 높은 대통령제를 추구하고자 할 시,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이를 인준하는 현행 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통령 개헌안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제란 행정부 운영에 대한 최종적 책임소재가 명백히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통치구조인 만큼,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는 것은 그 작동원칙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국회로선 총리 추천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이원집정부제와 유사한 효과를 보고자 하겠으나, 내각 불신임권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가 총리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 의도와 달리 분권효과는 별반 기하지 못한 채 오히려 대통령과 국회 간 비생산적 충돌의 가능성만 높이는 제도적 부조응성을 낳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특히 대통령의 인사권과 관련해 꽤 우려되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다. 우선, 현행 헌법과 비교했을 때, 소위 권력기관들에 대한 통제와 관련된 조항들에선 별반 큰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개헌안은 검찰총장을 비롯해 그 밖의 법률로 정한 공무원들의 임면을 둘러싼 대통령의 주도권을 대체적으로 온존시킴으로써, 검찰총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4대 권력 기관장들에 대해 대통령이 예전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독점적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실상 보장하고 있다. 감사원의 경우에만 독립기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나, 감사원장 임명 및 감사위원 구성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실제 감사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얼마나 자율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 든다. 심지어 이번 개헌안은 그간 대통령의 국회 통제를 위한 기제로 계속 비판 받아 온 국회의원의 장관겸직조차 그대로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인사권과 관련해서는, 굳이 따지자면 이전에 비해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보장을 조금 더 강화하려는 의도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결국 이렇게 볼 때, 대통령이 임기 중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임기 말에는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리게끔 유도해 온 현행 통치구조적 요소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겠다. 권력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한 이들 구성원의 충성과 이탈이라는 과거의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는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해진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해당 기관들이 과연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지킬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러므로 총리 추천권과는 반대로, 감사원장 및 국정원장을 제외한 3개 권력 기관장의 추천권을 국회로 이관하는 것은 국회의 합의안 마련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 봄직하다. 물론 감사원 외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3개 기관들이 공히 행정부 각 부처의 외청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국회가 이들 기관장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이 법 형식상으로는 부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 합의를 전제로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그 수장들을 임명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이러한 논란을 우회하면서도 본 권력기관들의 실질적 중립성을 기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통령제 하에서 그간 지속적으로 목도되어 온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에 이은 임기 말의 ‘레임덕’이란 지극히 기형적인 패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기도 하다. 끝으로, 문 대통령의 개헌안처럼 만약 ‘대통령 4년 연임제’가 현실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새 헌법상의 통치구조적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회의 위상 및 기능의 대대적 강화가 필수적임을 당부하고자 한다. 대통령제란,행정부와 의회가 각기 독립적으로 구성되고 상호 간 존폐에 영향을 줄 수 없게끔 강제함으로써 권력분립을 지향하는 만큼이나, 의회로 하여금 입법을 책임지고 행정부를 향해 효과적 견제를 할 수 있도록 매우 균형감 있게 설계돼야 하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제일수록 오히려 의회가 강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테면, 문 대통령의 개헌안처럼 정부가 계속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그 요건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순히 감사원장 추천권을 넘어 감사원의 국회 이관까지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우리 국회에 부여된 권한들이 꼭 적다고만은 볼 수 없다. 문제는 입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비대한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기엔 그 인적·물적 자원들이 여전히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국회가 정부안보다 더 우수한 법안을 발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효과적인 대행정부 감시•감독이 아닌 ‘발목잡기’에 주로 골몰해 온 것 또한 실은 이러한 권한과 자원의 불일치로부터 기인한 바 크다. 그럼에도 반의회 정서가 유독 강한 한국의 현실에서, 국회의원 정수 증대를 포함해 국회 측에 인적•물적 자원을 추가로 부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헌이 성사되기 어려운 만큼이나 사후 과제 또한 결코 간단치 않다. 개헌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지난한 과정이 새 헌법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이유로 중단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 대통령으로선 지금부터 국민투표 시점까지의 기간 동안은 물론, 그 이후에도 개헌의 당위를 국민에게 계속 설득하되, 또 다른 한편으론 국회의 합의 또는 합의안을 끊임없이 독려해 나가야만 할 것이란 점이다. ■     저자 이선우_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글라스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부제도, 러시아 정치, 동아시아 국제관계 등이다. 주요 논저로는 “Prosecutors and Presidents in New Democracies” (2017), “메드베데프-푸틴 양두체제의 제도적 기반” (2015), “정부형태를 둘러싼 제도적 정합성과 바람직한 한국의 개헌 방향” (2015) 외 다수가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이선우 2020-06-05조회 : 8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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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19대 독일 총선 결과와 통합 유럽

[편집자 주] 지난 9월 24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가 예상과 달리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4연임에는 성공했으나, 집권 세력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극우 정당이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졌습니다. 게다가 사민당의 대연정 거부로 새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현재로서는 기민/기사련에 자민당과 녹색당이 연합하는 ‘자메이카’ 모델이 가장 유력하다고 김면회 한국외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자민당과 녹색당 간 난민•유로존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로 연정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주정부 차원에서 연합정부를 구성한 사례가 있음을 감안할 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메이카 연합정부가 등장할 경우, 독일의 유럽통합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예측합니다.           9월 24일에 치러진 총선(연방하원 선거) 이후 독일 정치계가 요동치고 있다. 통합 유럽을 선도하는 독일이기에 선거 결과에 대한 유럽 각국의 남다른 반응도 감지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낮은 지지율을 획득한 정당들의 당혹스러움은 역력하다. 총선 이후 정국의 향방을 둘러싼 논의 역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총선 결과가 공표되자마자 한편에선 조급하게도 조기선거의 가능성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다양한 정치세력 간에 조합을 이루는 색다른 연합정부 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들이 예상했던 현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과 집권정당 기독교민주연합(기민연, CDU)의 무난한 승리는 실현되지 못했다. 빗나간 예상으로 정국은 당분간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제19대 독일 총선 결과에 대한 분석, 해석, 전망 작업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제19대 독일 총선 결과는 다음 다섯 가지 특징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극우주의 정치세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드디어 연방하원에 진입하였다는 점이다. 유럽 통합의 심화와 난민 수용 정책에 선명한 반대 입장을 개진하고,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난(2013년) 총선(4.7%)에 비해 무려 두 배 이상이나 높은 12.6%의 지지율을 획득하면서 일약 원내 제3당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49년 이후 전개된 독일 현대정치가 색다른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극우주의 성향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지 않은 유럽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독일이라는 정당학자 홀트만(Holtmann)의 판단은 이제 더 이상 정확하지 않게 되었다. 주의회 선거에서의 잇따른 성공에 이어 연방차원에서도 견고한 지지율을 과시함에 따라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제 독일 정치에서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둘째는 독일 정치를 주도해 온 기민/기사연과 사민당 양대 정당의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했다는 점이다. 금번 총선에서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의 지지율은 각각 32.9%와 20.5%에 그쳤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얻은 지지율에 비해 각각 8.6%p, 5.2%p가 낮은 수치이다. 이는 지난 60여 년 동안 양대 정당이 얻었던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서 양대 정당이 얻은 지지율 합계는 53.4%에 불과하다. 반면 군소정당인 자민당은 10.7%를 확보하여 원내 재입성에 성공했고, 또 다른 군소정당인 좌파당과 녹색당도 각각 9.2%와 8.9%를 얻어 무난하게 연방하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을 위한 대안은 전체 709석 중 무려 94석을 배정받으면서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군소정당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양대 정당의 지지율 합이 65%선을 넘어섰던 점을 고려할 때, 양대 정당의 비중이 확연히 위축된 모양새다. 양대 정당의 지지율 추락과 군소정당군의 약진 및 정당 파편화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내세워 온 독일 정당체제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셋째, 선거과정에서 ‘보다 많은 정의’ (mehr Gerechtigkeit)를 앞세운 제도권 좌파의 대표주자인 사민당의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는 점이다. 빌리 브란트 총리 시절 최고 46%에 이르렀던 사민당의 지지율은 그 이후부터 경향적으로 하락해 왔다. 2009년 총선에서 23%의 지지율을 얻었던 사민당은 2013년 총선에서 25.7%로 약간 상승하는 듯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역대 최저치인 20.5%에 머물렀다. 같은 좌파 정치 세력인 녹색당이 분화하여 안착하고 독일 통일 이후 등장한 좌파당(Die Linke)의 성장으로 인해 사민당은 견고한 지지 세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2005년 이후 기민/기사연과의 두 번에 걸친 대연정 시기에 사민당은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독일 사민당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민당은 또 다시 제기되고 있는 대연정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당내에서는 좌파정당에 걸맞은 확고한 좌표 설정 요구가 드세질 것으로 보인다.   넷째, 세력 대결 관점에서 총선 결과는 좌파에 대한 우파의 승리로 정리할 수 있다. 사민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제도권 좌파 세력으로 분류되는 녹색당이나 좌파당 역시 지난 총선과 엇비슷한 지지율에 만족해야 했다. 현상 유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래는 불굴의 의지에 의해 건설된다”고 외쳤던 녹색당은 지난 총선에 비해 0.5%p를, 그리고 사민당의 실용주의 노선에 반기를 든 좌파당은 0.6%p를 더 확보하는 데 그치면서 미미한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보다 살기 좋은 독일’을 내걸었던 기민연의 지지율 하락폭은 보다 우파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새롭게 생각하자”(Denken wir neu)를 내세운 자유민주당(자민당, FDP)의 선전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벌충되었고, 그 결과 의회 내의 세력 분포는 우파 쪽으로 급격히 기울게 되었다. 자민당은 무려 지난 총선에 비해 5.9%p가 더 높은 10.7%의 지지율을 얻었다. 향후 독일정치의 향방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섯째는 ‘속이 텅 빈 승리’라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현 총리 메르켈이 총리직 4선 연임에 성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5년 이후 득표율엔 다소의 부침이 있었으나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독일 총리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메르켈은 원내 제1당의 지도자 자리를 줄곧 유지하면서 ‘민주적인’ 16년 장기집권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로써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인 헬무트 콜(Helmut Kohl) 전 총리와 동일한 기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기대만큼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집권 경험과 국내외적으로 확인된 국정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메르켈은 새로운 환경에 조응하면서 주도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독일정치가 당면한 문제는 연합정부 구성 건이다. 단일 정당이 원내 과반을 넘기 어려운 독일정치에서 연합정부 구성 문제는 선거 이후 언제나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현재 가능한 조합은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이 연합하는 대연정과 기민/기사연에 자민당 및 녹색당이 연합하는 소위 자메이카 연합정부 구성 모델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기존 정당으로부터 철저히 배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의석 709석의 과반인 355석 이상이 가능한 조합으로는 두 경우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민당이 이미 대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재확인한 상태여서 후자의 연합정부 구성만이 유력한 상황이다. 문제는 기사/기민연과 자민당 그리고 녹색당의 연합정부 구성이 실현가능하냐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세 정파 간에 연방차원에서 연합정부를 구성한 경험이 없고, 지향하는 정치 노선이 상이한 상황에서 세 정파 간의 연합정부 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정부 차원에서 세 정치 세력이 연합정부를 구성하여 시험한 경험이 있고, 정책 차원에서도 상이한 부분만이 아니라, 유사점도 꽤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 정파 간의 연합정부 구성 가능성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2009년 자알란트(Saarland)주에서 처음으로 세 세력 간에는 연합정부를 구성한 적이 있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주에서는 현재 자메이카 연합정부가 운영되고 있다. 동 세 세력 간의 주정부 차원의 연합정부 운영 경험은 연방차원에서의 연합정부 구성을 용이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자메이카 연합정부 구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입장은 그 근거를 자민당과 녹색당의 상이한 입장 차이에서 찾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전략과 난민 수용 상한제를 중심으로 한 난민정책 및 유로존 위기 극복 전략을 둘러싼 부문에서 두 세력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앞세우며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화 분야와 경제정책 등에서 이들 두 세력은 거의 동일한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진행될 지난한 연합정부 구성 합의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조율사 역할을 해야 하는 메르켈의 정치력이 요구되고 발휘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자메이카 연합 정부의 등장이 독일의 유럽통합 정책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통합 유럽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독일이 기존의 정책을 앞장서 변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메이카 연정에 참여할 정당들 간의 유럽정책에도 큰 차이는 없다. 지지율 하락으로 인한 기민연의 상대적 입지 약화에도 메르켈 주도의 자메이카 연합정부가 기존의 정책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이 강화되는 것이 곧 독일이 강화되는 것이다.”라는 기조 속에 새 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큰 틀에서 지속해 나갈 것이다. 기민연 소속의 재무부장관 쇼이블레(Wolfgang Schäuble)의 긴축정책, 즉 슈바르츠 눌(Schwarze Null)노선과 통합 유럽이 결코 ‘채무공동체’(Vergemeinschaft von Schulden)가 될 수 없음을 자메이카 연합정부에서도 독일은 반복해 나갈 것이다. ■          저자 김면회_ 한국외국어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글로벌정치연구소 소장. 독일 자유베를린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독일정당, 유럽통합, 독일노동조합 등이다. 대표 논저로는《유럽의 민주주의: 새로운 도전과 과제》(공저),《독일의 평화통일과 통일독일 20년 발전상》(공저), "통일 25년, 구동독 지역 정치지형 변화 연구", "독일 극우주의 정치 세력의 성장 요인 연구: 정당 쇠퇴와 정당체제 변화"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김면회 2020-06-05조회 : 8638
논평이슈브리핑
[EAI 논평] 2017 프랑스 대선의 의미와 유럽 통합의 전망

[편집자 주] 지난 5월 7일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39세의 정치신인 마크롱 후보가 극우성향의 르펜 후보에 맞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후보들 중에서도 가장 친 유럽적 성향을 가진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EU는 또 한 차례 큰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EU의 또 다른 중심축인 독일에서 오는 9월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나, 적어도 르펜과 같은 위협요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EU가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예측합니다. 다만, 국내적으로는 6월 총선에서 승리를 해야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한국에서 프랑스 대선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프랑스는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앞장서서 이끌어 온 나라다. 따라서 프랑스 정치는 세계 민주주의의 페이스 메이커(pace-maker) 역할을 한다. 지난해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한 포퓰리즘 후보였던 트럼프가 당선되는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극우 민족전선의 르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둘째,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이라는 기차를 이끄는 기관사다. 최근 독일이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독일과 프랑스로 대표되는 쌍두마차는 여전히 유럽연합에 동력을 제공한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 유럽은 커다란 충격을 받겠지만, 프랑스가 빠져나갈 경우 유럽연합이라는 배는 침몰할 가능성이 높다. 극우 르펜(Marine Le Pen) 후보는 집권할 경우 유로 단일 화폐권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했고 유럽연합 가입 조건에 대한 전면적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끝으로, 한국과 프랑스는 정치적 ‘동기화’가 이뤄진 나라로 세계화 시대에 민주주의의 리듬이 같은 파트너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두 나라는 지난 2002년부터 같은 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왔다. 프랑스는 봄에, 한국은 겨울에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다. 한국의 탄핵정국으로 이제는 계절 차이도 사라져 두 나라가 동일한 정치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완벽한 동기화가 실현되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위의 세 가지 차원에서 모두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프랑스는 2016년 부상한 세계적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상징적 전환점이다. 물론 오스트리아 대선이나 네덜란드 총선에서 이미 포퓰리즘의 확산을 차단한 바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 같이 대표적인 민주국가의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중도세력(66%)이 극우(34%)를 크게 누르고 승리했다는 사실은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르펜이 민족주의를 상징했다면 당선자 마크롱(Emmanuel Macron)은 로스차일드 투자은행에서 근무한 엘리트 관료 출신으로 개방적 세계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의 쌍두마차로서도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의 당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크롱은 11명의 프랑스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친 유럽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유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제도적 보완을 통해 유럽의 거버넌스 구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차원에서 유로를 관리하기 위한 경제정부와 장관을 임명해야 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의회를 선출해야 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난민사태와 브렉시트로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가운데 적극적 유럽주의자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이번 선거의 중요한 결과다.   한국과의 정치 동기화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점은 2017년 두 나라 모두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극도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유래가 없는 국민의 ‘촛불’ 동원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보궐선거에서는 77%의 높은 투표율로 변화의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되었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완전한 정치 신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번도 선출직에 당선된 적이 없다. 그는 또 대선을 위해 몇 달 만에 급조한 ‘전진!’이라는 정치 조직으로 중도 좌우파의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결선에 진출한 것은 물론, 결국 극우 후보 르펜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이처럼 결과론적 해석에만 치우치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프랑스 대선의 과정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우려하는 경향들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당이 집권하지는 못했지만 그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었다. 2002년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결선투표 진출이 하나의 사고였다면, 이번 2017년 딸 마린 르펜의 결선 진출은 오래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그만큼 극우가 프랑스 정치의 강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또한 결선 득표율도 2002년 17%에서 2017년 34%로 두 배 늘어났다.   유럽 통합과 관련해 마크롱의 승리는 친 유럽 노선의 집권을 의미하지만 1차 투표에서 11명의 후보 가운데 반 유럽적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 무려 8명이나 되었다. 이들의 표를 합산하면 과반에 달한다. 이는 프랑스에서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주의가 얼마나 확산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극우의 르펜과 극좌의 멜랑숑은 모두 현재의 유럽이 프랑스의 국익에 반한다며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로의 변화를 주장했다. 사회당의 아몽과 공화당의 피용은 현실적 입장에서는 친 유럽이었지만, 이들도 추가 통합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마크롱은 정치에 혈혈단신 뛰어들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는 좌우의 정치구조가 강한 프랑스 지형에서 중도를 외치며 지지를 동원하여 당선되었다는 점에서도 유일하다. 이번 대선에서 그는 온건 좌파인 사회당에서 올랑드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아몽이라는 강한 좌파 성향의 후보자가 등장한 틈을 타 사회당의 우파 성향의 지지를 빼앗아 왔다. 게다가 온건 우파인 공화당의 피용 후보가 가족 관련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공화당 좌파의 지원을 받았다. 다시 말해, 마크롱의 성공은 매우 특별한 2017년 정치국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정치에서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은 절반의 성공을 의미할 뿐이다. 그가 안정적으로 집권하기 위해서는 6월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인물 중심의 대선에서 거두었던 성공을 정당 중심의 총선에서 과연 재현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마크롱은 ‘전진!’(En Marche!) 조직을 ‘공화국을 위한 전진’(La République en Marche)으로 확대하여 577개 전 선거구에서 후보를 낼 것이라고 천명했다. 기적의 대통령에 이어 기적의 정치세력이 탄생할지 두고 볼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랑스 총선은 결선투표가 있다는 점에서 대선과 유사하지만 상세 규칙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대선에서는 2명의 후보가 결선을 치르지만 총선에서는 각 선거구에서 12.5%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는 모두 결선에 진출할 수 있다. 3인 이상의 후보가 결선에서 경쟁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선보다 선거 및 집권 연합의 전략이 더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 한 달간 프랑스 정치는 총선 준비 과정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합종연횡이 이뤄질 예정이다.   6월 프랑스 총선에 이어 유럽 통합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선거는 9월에 있을 독일 총선이다.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주요 후보를 모두 면담하면서도 르펜만 제외하였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는 명확히 밝힌 셈이다. 결선투표를 앞두고는 마크롱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처럼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국내 정치에도 적극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는 관계다. 독일에서 메르켈이 계속 집권할지, 사민당이나 기민당이 중심이 되는 정부가 들어설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대연정이 지속될지는 앞으로 마크롱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중요한 변수가 될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간 개인적인 궁합(chemistry) 역시 유럽 통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드골-아데나워, 지스카르-슈미트, 미테랑-콜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매우 긴밀한 불독관계를 구축하는 중심축이 되었고, 이들을 통해 유럽 통합은 성큼성큼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 연합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 대선이 막을 내림으로써 커다란 위기는 지나갔다. 독일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고 누가 총리가 되건 르펜과 같은 위험 요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마크롱이라는 친 유럽적이고 예측가능한 안정적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의 거버넌스는 더 탄탄해질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총선에서 마크롱이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독일 총선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적합한 안정적 다수가 만들어진다면 유럽은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다시 통합의 모멘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저자 조홍식_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랑스 파리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유럽지역연구, 정체성의 정치 등이다. 대표 저서로는《하나의 유럽: 유럽연합의 역사와 정책》,《유럽통합과 ‘민족’의 미래 》,《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교수의 프랑스 문화 이야기》,《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조홍식 2020-06-05조회 : 8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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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2017년 네덜란드 총선: 유럽연합의 찜찜한 승리

[편집자 주] 지난 3월 15일 많은 유럽인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네덜란드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에 이어 극우 포퓰리즘이 네덜란드로 확산돼 넥시트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마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집권 자유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유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강신구 아주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집권여당이 제1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거보다 표심이 분산되면서 향후 정국이 불안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3월 15일, 네덜란드 의회의 하원(Tweede Kamer)을 구성하는 15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근래의 네덜란드 총선으로는 드물게 유럽인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유럽연합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뒤에 남은 입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찜찜하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찬찬히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 네덜란드 총선이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과거의 영화는 달랐을지언정 현재의 네덜란드가 유럽과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객관적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다. 유럽연합 전체 28개 회원국 중 하나로, 인구비율로 따지면 5억이 넘는 전체 유럽연합의 구성원 중에서 1,700만 수준인 네덜란드의 시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퍼센트에 불과하다. 인구수를 굳이 짚어보는 이유는 이른바 공동 결정(co-decision) 절차에 따라 유럽연합의 입법부로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유럽연합각료이사회(the Council of the European Union)와 유럽의회(the European Parliament) 모두 쟁점에 대해 투표로 결정할 경우, 회원국들에게 인구비례에 따른 가중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751명으로 구성되는 유럽의회 의원 중, 네덜란드에서 선출되는 의원수는 26명(약 3.5 퍼센트)으로, 인구비례에 따른 결과이다. 비록 네덜란드가 유럽연합 총 28개 회원국 중 경제 규모로는 6위에 해당하며 유럽연합의 운영을 위해서도 여섯 번째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5.8 퍼센트 수준에 불과할 뿐이며, 가장 많이 기여하는 독일(약 21.4 퍼센트)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네덜란드 총선은 유독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 속에서 치러졌으며, 그 배경에는 현재의 유럽이 처한 시대적 상황이 존재한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은 2015년 이후 난민위기(refugee crisis)가 전 유럽을 강타한 가운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브렉시트, 2016년 6월)됨에 이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2016년 11월)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 단위의 선거였다. 비록 지역은 다르지만, 이러한 흐름은 국가들 간의 협력과 통합을 추진해왔던 기성 정치권에 대항하여, 통합의 혜택에서 소외된 시민들의 반감을 자국우선주의로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반기성주의(anti-establishment) 정치세력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017년에는 3월 네덜란드 총선을 시작으로 4월 말, 5월 초에는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 9월에는 독일의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과거 유럽선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비슷한 결과가 국경을 넘어 재현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중도좌파 성향의 ‘제3의 길’(The Third Way) 운동이 일으킨 바람이 그러했으며, 2000년대 초•중반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 바람이 그러했다. 이와 같이 국경을 초월해서 발견되는 유사한 선거의 양상은 어느 하나의 선거결과가 다른 선거의 유권자에게 전파되고 학습된 결과라기보다는 비슷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갈등이 등장하고, 이에 대한 대응도 역시 유사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유럽통합이 그 만큼 심화되고, 그로 인해 유럽 사회가 점점 동질화되고 있는 현상의 한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근래의 유럽 선거에서는 이와 같은 도미노 현상이 종종 발견되었고, 이번네덜란드 총선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된 반유럽 통합•반세계화•반기성정치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느냐 마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이번 네덜란드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주목을 받게 된 주된 이유이다. 더욱이 네덜란드는 올해 선거가 계획되어 있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오늘의 유럽연합(the European Union)을 탄생시킨 모태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the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의 6개 창립국(the Original Six) 중 하나가 아니던가. 따라서 이번 총선은 네덜란드가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넘어서는 상징적 파급력을 가진 선거로서 받아들여졌다. 이번 총선에 나선 집권 자유민주당(Volkspartij voor Vrijheid en Democratie, VVD)의 마르크 뤼터(Mark Rutte) 총리가 스스로 이번 선거를 유럽연합의 운명을 결정짓는 토너먼트의 ‘준준결승’(quarter-final)으로 묘사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던 것도 이러한 흐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배경 설명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네덜란드 총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반이민•반유럽연합•반이슬람주의를 주장하는 헤이르트 빌데르스(Geert Wilders)가 이끄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Partij voor de Vrijheid, PVV)이 원내 최다수당이 되느냐의 여부였다. “네덜란드를 다시 우리의 것으로!”(The Netherlands Ours Again!)라는 마치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슬로건으로 시작되는 자유당의 매니페스토(manifesto)는 한 페이지에 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짧은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이슬람 사원과 학교의 폐쇄,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판매금지, 이슬람 난민의 유입금지 등과 같은 반이슬람 조치와 함께 네덜란드의 유럽연합 탈퇴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용의 일부는 네덜란드가 가입되어 있는 국제규약에 위배됨은 물론 네덜란드 헌법에도 부합하지 않는 극단적이고 국수적인 것이었지만 대중의 판단은 사뭇 달랐다. 난민위기가 본격화된 2015년 여름 이후 실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빌더르스의 자유당(PVV)이 정당지지율에서 뤼터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VVD)을 앞서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이 흐름은 선거를 며칠 앞둔 2월까지 유지되었다. 브렉시트에 이은 넥시트(Nexit)의 공포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현실화 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뤼터 총리가 이끄는 온건보수성향의 자유민주당(VVD)이 빌더르스의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자유당(PVV)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제1당 수성(守城)에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샤이 트럼프, 샤이 빌더르스’(shy Trump, shy Wilders) 현상이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거 결과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유럽연합 지지자들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뤼터 총리는 출구조사를 통해 총선 결과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후 열린 자유민주당의 총선 축하연에서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이어지던 ‘잘못된 포퓰리즘’을 네덜란드가 멈추게 한 밤이다. 민주주의의 축제다”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와 내막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유럽연합 지지자들조차 마냥 안도하고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선거의 뒷맛이 개운치가 않고 찜찜하다. 우선 선거 결과를 보면, 집권연합의 총리를 배출한 자유민주당은 비록 제1당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했지만 2012년 결과와 비교하면 득표율에서는 5.3%p, 의석수에서는 41석에서 33석으로 8석이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승리를 말하기에는 겸연쩍고 민망하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자는 자유민주당과 함께 집권연합(government coalition)을 구성했던 노동당(Partij van de Arbeid, PvdA)이다. 노동당은 5.7%의 득표율로 9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는 2012년 대비 득표율에서 19%p가 감소한 것이며, 의석수에서는 29석이 줄어든 것으로, 실로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집권연합을 구성했던 두 당(VVD와 PvdA)을 합치면, 득표율로는 24.3%p, 의석수로는 37석이 감소한 결과로 반타작을 조금 넘긴 셈이다. 이에 비해 극우성향의 자유당은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던 2010년의 24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12년보다 2.9%p가 증가한 13%의 득표율로 5석 많아진 20석을 확보한 ‘성과’를 거두었다. 결국 이번 선거는 어느 누구의 승리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집권연합의 줄어든 표가 자유당의 증가된 표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은 여러 정당에 의해 표가 나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는 역대 최다인 28개의 정당이 경쟁했다. 그 결과, 13개의 정당이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유효 정당수가 2012년 5.7개에서 8.1개로 증가함으로써 극심한 파편화(fractionalization)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기성정치권 전반에 대한 시민의 불신과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앞으로의 정국이 보다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필자를 더욱 우려하게 하는 부분은 결과 자체보다는 선거의 내용적 측면이다. 기실 의회제(parliamentary sys-tem) 국가의 특성상 선거 결과가 차기 정부를 직접 결정짓지는 못한다. 특히 네덜란드와 같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인해 다당제 의회가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는 정부구성을 위한 협상의 과정이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선거의 결과와 유리되는 정부가 등장하는 예가 종종 나타난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극우 자유당이 제1당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설혹 자유당이 최다수당이 되었더라도 자유당이 주축이 되는 정부가 구성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네덜란드 의회선거의 특성상 자유당이 단독으로 과반수의 의석(76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전무했으며, 거의 모든 주요정당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유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일축하는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제1당이 정부구성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은, 그래서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 또한 의회제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방식 중 하나이며, 필자가 선거의 결과보다 내용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유민주당의 제1당 유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뤼터 총리가 선거를 불과 6주 가량 앞둔 1월 22일 전국 주요 신문에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형식으로 선거광고를 게재한 것이다. 이 공개서한은 네덜란드에 정착한 이민자들에게 ‘네덜란드의 가치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네덜란드인들처럼 행동하라. 이것이 싫으면 떠나라’(Act normal, or go away)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자유와 관용을 네덜란드의 핵심 가치로 설명하면서, 이 가치를 ‘강요’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선거 막바지에 발생한 터키와의 외교분쟁이다.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재외국민(터키인)의 지지를 결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려 했던 터키 장관들의 입국을 불허한 것이다. 이 조치는 만약 터키인들의 군중집회가 네덜란드 주요 도시에서 성사될 경우, 이것이 시민들의 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하여 자유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선제적으로 취해진 것이었다. 이 두 장면 모두 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자유당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번 총선에서 온건보수성향의 자유민주당이 제1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두 장면 모두 자유와 관용이라는 가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위의 두 사례는 모두 자유민주당과 관련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거의 모든 주요 정당들의 정책노선이 보다 우경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번 네덜란드의 선거를 관심 있게 살펴본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네덜란드가 ‘승리’했지만 그들이 그리는 네덜란드와 유럽은 지금까지의 네덜란드와 유럽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이다. ■           저자 강신구_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치제도, 의회정치과정, 유럽정치 등이다. 주요 연구로는 "The Influence of Presidential Heads of State on Government Formation in European Democracies"(2009), "Representation and Policy Responsiveness" (2010), "어떤 민주주의인가? 제도와 가치체계의 조응을 통해 바라본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방향 모색" (2011), "준대통령제의 개념과 실제" (2014), "반이민정당의 성장이 주류 좌•우파 정당지지에 미치는 영향" (2015)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강신구 2020-06-05조회 : 8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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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박근혜 탄핵과 한국 민주주의

[편집자 주]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헌정 사상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 결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시대에 맞지 않은 통치 스타일에 있다고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지적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민주화된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70년대식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하려 했고, 결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이번 탄핵 결정이 기존 국가 통치체제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균형적 시각에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의 의견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234명 의원들의 찬성에 의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결정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해 10월 말 광화문 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본격화된 이후의 오랜 정치적 논란이 마침내 마감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국민의 힘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두 번째 있는 일이다. 첫 번째는 1960년 4.19 혁명 때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국민의 힘에 밀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의 저항은 격렬했고 적지 않은 이들이 희생되거나 다쳤다. 정치적 위기의 해결이 폭력적이고 비제도적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에 비해 이번의 정치적 위기는 민주적이고 헌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 국민들은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와 권력형 비리 스캔들에 분노했고, 촛불집회를 통해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 후 국회가 그 뜻을 받아 탄핵을 소추했고,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소추를 최종 인용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정치제도를 통해 그 절차대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하야시킨 것이다. 4.19 혁명과 비교할 때, 한국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성숙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탄핵이 이뤄진 2017년은 민주화가 실현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30년 만에 또 다시 분노한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 당시의 요구는 ‘대통령 직선제’로 요약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체육관 선거’ 대신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독재와 장기집권의 방지에 대한 요구가 민주화라는 정치적 변화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이번에는 대통령이 연루된 스캔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불공정, 소외, 무관심에 대한 아픔이 깔려 있었고,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 질서의 확립, 국가 시스템의 개편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함께 담겨져 있다. 저항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도 30년 전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30년 전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 화염병과 돌맹이로 상징되었다면, 이번의 저항의 상징은 촛불이었다. 평화적일뿐만 아니라 축제와도 같은 방식으로 정치적 저항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갈등도 그대로 드러났다. 탄핵을 둘러싼 입장 차이에 따라 촛불집회와 그것을 적대시하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 간의 격렬한 정치적 대립이 발생했으며, 이를 통해 세대, 이념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재현되었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임기 만료 이전에 강제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은 국가적으로 볼 때 안타까운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역시 제일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성격과 리더십의 문제이다. 탄핵의 직접적인 사유가 된 것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민간인 비선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또 최순실이 그 점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때문이기는 하지만, 사실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은 그 자체가 너무 구식이었다. 박 대통령은 2010년대의 한국 사회를 1970년대와 같은 방식으로 통치하려고 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던 1960~1970년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의 한국은 너무나도 복잡해졌고, 또 사회 각 영역의 자율성도 크게 증대되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 혼자 말하고 장관들은 받아 적기만 하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는 산적한 현안을 제대로 해결해 낼 수 없었다. 더욱이 직언과 문제 제기를 할 만한 인물은 애당초 내각과 청와대에 두지 않았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당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고, 설득과 소통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내지도 못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은 소극적이었고 수세적이었다.   그 대신, 박 대통령은 주변의 몇몇 측근과 권력 기관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어 갔지만 대통령의 눈치만 살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할 수 없었다. 검찰은 민정수석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나서지 못했고, 언론 역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여당은 집권기간 내내 사실상 국정 운영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우려할만한 상황이 발생해도 사전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통치 방식이 대통령에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했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대적 교체의 의미가 있다. 이번 사건과 함께 우리 사회는 이제 박정희 시대와 결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대통령, 청와대, 관료, 경제, 교육 등 사회 곳곳의 운영 방식은 여전히 박정희 시대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 관료 주도의 경제발전, 재벌 중심의 불균등 발전 등 발전주의 국가 모델은 이미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전후해서 오히려 박정희 신드롬이 일었고, 그 이후 박정희 시대의 모델이 우리 사회에 다시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토건 사업도, 대기업 중심의 수출 전략도, 제왕적 권력의 대통령도 모두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는 새로운 정책 목표와 전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이들이 상징하는 냉전적 반공주의, 성장 중심주의라고 하는 과거의 보수주의로부터 보수 정치가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인가도 주목해 봐야 할 점이다. 박정희를 넘어선 한국의 보수 정치는 어떠한 가치를 담아야 할지 그에 대한 암중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미 보수 정당은 분열했다.   이번 탄핵이 주는 또 다른 의미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극복이다. 이번 탄핵 사건은 그간의 민주적 공고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제가 갖는 문제점과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30년 간 절차적 민주주의에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와 감시는, 이번 사건에서 보듯,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왕적이라고 하지만 실제 정책 추진이나 집행에서는 매우 취약한 대통령의 리더십도 그간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권력 교체와 공정한 선거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통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이고 총리와 내각이 정책 결정과 집행에 있어서 실질적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은 현행 우리 대통령제의 안정성에 대한 것이다. 임기의 안정성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10여 년 사이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벌써 두 번이나 소추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실제로 대통령 탄핵이 실현되었다. 향후에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대통령이 또 다시 국회로부터 탄핵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잦은 탄핵의 가능성은 정치적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상시적인 정부 해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통치 형태는 내각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총리와 내각에게 의회 해산권을 부여해서 의회의 불신임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제도 개선의 논의에서 이러한 점도 깊이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우리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모두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사건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시대를 보내고, 또 다른 국가적 도약을 위한 새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저자 강원택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논저로는《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정치》,《한국 선거 정치의 변화와 지속》,《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통일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대한민국 민주화 이야기: 민주화를 향한 현대한국정치사》 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강원택 2020-06-05조회 : 9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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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Impeaching the Queen, Korean Style

[Editor’s Note] With the impeachment hearing for President Park Geun-hye in progress, Koreans face drastic uncertainty. How the Constitutional Court will rule on the impeachment is shrouded in speculation. In turn, the decision by the Constitutional Court will have an impact on when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 will take place or who will be the next president. If a candidate from the opposition parties takes office, we may expect some serious changes to or repeals of policies that were implemented during the Park administration. Regardless of all these sources of uncertainty, there are some positive outcomes: there is a consensus among many Koreans that the Korean statism of the past century is no longer tolerated and that such governance should be left behind in history.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voted to im-peach President Park Geun-hye on December 9th last year. Since then, Park was suspended from power and the nation is waiting for the Constitutional Court to hand down the ruling that would finalize the impeachment process, either to permanently remove Park from office or to reinstate her.   Among other things, perhaps what troubles Koreans most is the drastic uncertainty ahead. Most importantly, it is hard to predict how the Constitutional Court would rule on the case. One may conclude that there is fair chance the Court will rule against the impeachment since the ideological make up of the Court became quite conservative (with three recent appointments of the Justices by President Park herself) and considering the impeachment requires a supermajority of the Court (that is, the concurrence of six or more Justices out of nine). Yet, some believe the Constitutional Court cannot ignore the public opinion that was manifested in the size and intensity of the rallies that easily collected millions of people on the downtown streets of Seoul on Saturdays in the last couple of months. At least, the rallies succeeded in putting pressure to the National Assembly to vote for the impeachment with far more than the required supermajority.   Another source of uncertainty is on the political schedule. If the Constitutional Court rules for the impeachment, a by-election would have to take place in 60 days to choose the next President, as is stipulated by the Election Law of Korea. Without any transition period, the President-elect will swear into the office the day after the winner of the election is declared. If the Constitutional Court rules against the impeachment, Park will return to office to what is left of her presidency in which case the election is scheduled to take place in December. In short, we know there will be an election sometime this year: it is just that we do not know when it will take place.   Then, of course, we do not know who will be the next President, an uncertainty that is always a given in any democracies. Yet the level of uncertainty is not just about the candidates but more about the party sys-tem itself. Understandably, the ruling Saenuri Party, which represents the conservative voters, is imploding while opposing parties, such as the Democratic Party and the Peoples’ Party seem to be in a better shape.   No parties or groups that claim to be on the conservative side have any viable presidential candidate yet, which perhaps gave rise to the possibility of presidential candidate Ban Ki-moon, who seems to be looking for a new job after his ten-year service as UN Secretary-General. He has consistently showed some strong poll numbers as a presidential candidate in recent years, and almost all the parties or groups in the middle or right of the ideological spectrum seem to be entertaining the possibility of putting him on their tickets.   The dilemma with Mr. Ban is that his popularity is based upon the assumption that he is an ‘outsider’ to politics and people know very little of his politics. As he returns to Korea and enters the political arena, Koreans might learn more about him as a politician and his numbers may go down. For exactly the same reason, it is difficult to forecast what his policies would be like: yet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there will be fewer changes to the current policies.   The national mood is on the side with the Democratic Party, with by far the highest sup-port in national polls, while Saenuri Party is suffering from the public wrath directed at President Park. Moon Jae-in of the Democratic Party, who lost the presidential election to Park in 2012, is showing very strong numbers in the polls leading the field. Some would even argue that the election is for him to lose if he loses, and that an early election will benefit him most. There are other candidates such as Lee Jae-myung whose popularity rose sharply recently, but will face a tall task of getting the party nomination. In any case, when the election takes place, or, when the impeachment ruling comes down will matter.   If Mr. Moon, or any candidates from the opposition parties take office, we may expect to see some serious changes or repeals on a wide variety of policies, or at least a close examination of the decisions that were made during the Park Administration. Of course, these will depend on whether and when the impeachment is upheld in the Constitutional Court; on how the current parties divide and merge to shape a new party sys-tem; and on what types of electoral coalition or coordination takes places between parties and/or groups.   There are still things that are clear and tangible. During the rallies Korean citizens learned that there are many other fellow citizens who agree to the notions that Korean statism from the past century that attempts to discipline the civil society cannot be tolerated any longer and that such government should be thrown away. They succeeded in suspending the presidency by getting the legislature to listen to them; they can smell some serious changes are immanent as well, either in the Constitutional Court or in the next election. ■         Author Won-ho Park is Associate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is Vice President of the Korean Associa-tion of Party Studies. He received his Ph.D. in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Michigan. His research interest is in voting behavior, research methods, and Korean politics.         EAI Column presents fresh, constructive opinions and policy suggestions on Korean society and politics as well as East Asian securit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issues from recognized experts. Please acknowledge the source of this article if used as a citation. The EAI is a nonprofit and independent research organization in Korea.The contents of this article do not necessarily reflect the views of EAI.        

Won-ho Park 2020-06-05조회 : 1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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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활짝 열린 광장, 하지만 아직 변한 것은 없다

[편집자 주] 지난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촛불 민심이 이끌어낸 결과로 평가됩니다. 과거와 달리, 이번 촛불 시위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분노가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즉,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오랜 기간 축적돼 있던 불공정과 비상식에 대한 절망이 심화되는 양극화와 결합되면서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분출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번 촛불 시위가 과거처럼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진정한 시민사회가 조직돼야 하며, 시민들의 지속적이고 활발한 정치 참여가 요구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광장이 열리다   이 글은 1987년 민주화 운동부터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그리고 시민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시민사회의 성장을 도모했다. 그 결과, 50여 년만의 정권교체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고, 시민사회의 조직화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여전히 명망가 중심의 이익단체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시민의 목소리보다는 정치권과 대기업과의 관계에 더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시민사회 활성화 기조가 오히려 ‘시민 없는 시민사회’ 라는 기형적인 공론의 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이 시민의 목소리와 유리되면서 국가와 기업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존도는 점차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미약하게나 남아 있던 시민사회의 리더십마저 제거하는 기조로 일관해 이들을 정치권에서 배제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명박 정부 초기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열렸던 광장은 얼마 되지 않아 닫혔고, 그 후 시민사회는 결빙된다. 더욱이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다시 열린 광장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 광장에서 흘러 넘쳤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가시적인 정치적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일회성의 외침에 그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체념, 자조, 냉소, 분노가 시민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된다.   2016년 가을 JTBC의 보도로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광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국회는 광장의 열망과 목소리를 에너지 삼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의원 299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과거와 비교해 이번 열린 광장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규모 면에서 매우 큰 데에다 가시적인 성과까지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거 광장과 현재 광장의 성과를 다르게 만들었을까? 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토요일 휴일을 포기하면서 광장에 지속적으로 나왔을까? 그 이유를 사안의 심각성에 기인한 자발성의 폭발이 아니라 시민들의 응축된 분노에서 찾아보는 것이 이 글의 첫 번째 목적이다.   이 글의 두 번째 목적은 광장에서 확인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한 시민의 절박한 목소리와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단기적 성과를 시민사회의 미래와 연결해 보고자 하는데 있다. 일곱 번의 촛불집회와 탄핵소추안 가결을 두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직접민주주의의 또는 광장정치의 승리로 해석한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 입장이다. 오히려 탄핵소추안의 통과는 촛불집회로 불리는 광장정치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앞으로 시민사회가 광장에서 확인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과거 광장의 실패를 답습할 수도 과거의 실패 경험을 자양분 삼아 전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가꾸는 시민사회의 출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반복되는 좌절은 또 다른 국정농단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누가 광장에 나오는가?   최순실 국정농단에 시민들이 특히 분노하는 이유는 국정농단이라는 단어 안에 한국사회에 만연한 비상식과 불공정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에서 선출된 정권의 정당한 권력 행사 대신 비공식 집단의 지배가 있었다는 사실에 시민은 분노했고 광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탄핵소추안 통과라는 결실을 맺었다. 과거의 광장과 최근의 광장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과거에 광장이 열렸을 때에도 시민의 분노는 거셌고 그들의 외침은 절박했지만 이번처럼 전 국민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따라서 2016년의 광장이 특별해진 이유를 더 찾아봐야 한다.   2016년 광장에서 시민들은 연대의식을 확인했지만 지난 두 달은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 정치권을 변화시키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정치권은 여전히 시민에게 믿음을 주고 있지 못하며, 시민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불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규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나 이것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없다. 민주주의가 고도화되고 시장이 발전할수록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의 격차는 커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 간•집단 간 경쟁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는 규칙과 절차를 고지식하게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법과 제도의 준수는 사회적 인정이나 성공보다는 나와 가족,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에 피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집행할 심판 역할을 하는 국회나 행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보니, 기업도 개인도 공정한 실력 경쟁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대신, 한 번의 편법과 위반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이득은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이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통치행위와 법치라는 미명 하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지 않은가? 이 과정에서 분노는 응축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2016년의 광장이 과거와 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상식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계층 사다리의 실종으로 더욱 깊어졌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불안이 현실이 된 지금, 특권층에 대한 분노가 전 세대와 전 계층에 시간을 두고 꾸준히 확산되어 온 것이다. 2016년 광장의 차별적 특징 중 하나는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다양한 집단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젊은 층과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적극성은 마치 1987년 민주화 항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뜨겁다. 최근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서울 등 광역시 시민을 대상으로 수행했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참여자 중 ‘20대/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5%, ‘대졸이상’ 68.3%, ‘월 가구소득 500만원이상’이 42.2%로 나타나 ‘젊고 고학력이면서 중산층 이상의 시민’이 광장의 주도 세력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2016년 광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충격으로 촉발되었지만 전 국민의 마음 속에 오랜 기간 축적됐던 비상식과 불공정에 대한 절망과 냉소, 분노가 불평등의 심화와 결합하면서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분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광장이 소멸할 것이란 예측이 많지만, 고질적인 병폐와 적폐가 말끔히 제거된 것이 아직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을 보면 그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의미에서 탄핵소추안 통과는 시민사회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광장에서 분출된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진짜 ‘시민사회’가 조직돼야 한다. 시민사회의 조직화를 기반으로 시민사회의 본연의 임무인 감시와 견제 기능이 활성화되고 제도화돼야 한다.   새로운 숙제, 광장의 제도화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박원호는 한국 사회가 촛불시위를 통해 시민들이 보여준 참여의식과 그 과정에서 체감하고 느낀 연대의식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제2•제3의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의 미래에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연대의식을 ‘광화문의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광화문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한국 시민사회는 분명 ‘시민 없는 시민사회’와 ‘소수 집단의 과잉 대변’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의 자발성에만 기댄 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기업만 바라보는 한 2016년의 광장도 과거의 광장과 마찬가지로 일회성 분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광장의 지속을 위해 시민사회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우선 한국사회에 만연한 ‘자발성의 신화’ 현상이다. 이 현상은 모든 광장에는 배후세력이 존재하고 이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과 조직적으로 동원된 사람들이 광장을 메운다는 정치적 공격을 의미한다. 이는 제도권이 광장의 목소리를 폄훼할 때 주로 사용하는 논리이며, 시민들의 저항에 대한 혐오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광장도 이 공격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면서 모든 참여는 개인의 의지와 결정에 따라 자발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화를 스스로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광장이 제도화되지 못하고 지속성을 잃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조직적으로 대변하고 이를 제도권 정치와 연결하기 위한 노력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혹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조차 결집된 목소리를 실질적인 정치적 성과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정치적이라고 주저하거나 비판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직화되지 않은 광장은 시민의 목소리를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어버린다. 시민사회가 사익과 공익의 균형을 추구하는 의식 있는 시민의 조직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을 때,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 문제인 정치에 대한 시민의 혐오와 냉소는 심화될 뿐이다. 물론 시민의 조직화가 제도권 정치를 부정하거나 독자적인 시민 권력이 정부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는 민의가 적극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안정적 기반 위에서 운영되고, 광장에서 표출되고 정리된 의견이 제도권 정치와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활성화될 때 실현된다. 시민사회를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시민사회는 다양한 목소리가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정치 공간이다. 이러한 무질서를 제도화할 수 있는 역량을 시민사회가 갖춰야 하며, 이는 시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시민단체의 회원이 되거나 조직화하려는 노력을 할 때에 가능해진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단체가 이제는 시민들만을 바라봐야 한다.   시민들도 변해야 한다. 시민사회 조직화의 성패는 성찰적 시민의 존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 진상이 득세하는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만나는 시민과 민주주의의 복원을 외치며 광화문의 정체성으로 연대한 시민은 다른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 모두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참여민주주의가 작동하는데 가장 큰 난관이 우리 자신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는 시민성을 가진 시민들이 부재하고 공공정신의 미성숙으로 인해 자주 게임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배타적인 이익갈등과 이기적인 집단행동으로 점철되고 있다고 지적은 뼈아프지만 사실이다. 팩스톤(Paxton)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의 성숙에 기여하는 것은 정치 참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동시에 향상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시민성 수준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이 공동체 수준에서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저자 김석호_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국가통계위원회 위원. 미국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논저로는 "The Quality of Civil Society and Participatory Democracy in ISSP Countries" (2016), "What Made Civic Dimension of National Identity More Important among Koreans?" (2015), "지방선거와 전국선거에서 한국인들은 다른 이유로 투표하는가? " (2015), 《통계를 통해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김석호 2020-06-05조회 : 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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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candal and Corruption Plaguing South Korea Presidential Abuse of Power must Cease

President Park Geun-hye announced on 29 November her willingness to step down and asked the National Assembly to decide when she should do so. Opposition party lawmakers had vowed to impeach her by 9 December, the last day of this year’s plenary session. A group of ruling party lawmakers, who do not belong to the pro-president faction within the party, promised to join this impeachment effort. Now, with President Park’s proposal of a voluntary resignation, they are beginning to negotiate with the opposition leaders to arrange a political timetable for her to step down “in an orderly fashion.” If these negotiations fail, impeachment is likely.   Whichever course is taken to resolve the biggest political crisis since democratization, one that has now gone on for over a month, she will not be allowed to complete her full five-year presidential term. While this is a first since the country became a democracy in 1987, it is not the first time a South Korean president has been unable to complete their full term in office. Two of her predecessors also suffered this fate. South Korea’s first president, Syngman Rhee, was ousted from power by the 1960 student revolution, and President Park’s own father, Park Chung-hee, was assassinated while on duty in 1979. What is happening to South Korea, one of the few consolidated democracies in East Asia?   President Park Geun-hye’s political life has become engulfed by the Choi Soon-sil scandal. Ms. Choi is a long-time friend of President Park. The pair’s 40-year friendship began through President Park’s friendship with Choi’s father, a confidant to the President in her youth. Choi Soon-sil is alleged to have gained access to confidential government documents and been involved in illicit fund- raising to establish two foundations to pro-mote the President’s cultural policy.   President Park’s aides blame her for their actions and prosecutors have identified her as a criminal suspect who conspired with Choi to extort tens of millions of dollars from South Korean conglomerates. Now the President faces investigation by the independent counsel, although she cannot be indicted while in office.   Aside from the legal charges, ongoing discoveries of the President’s bizarre personal life and revelations about the wrongdoings of Ms. Choi’s family members have resulted in President Park losing the moral authority to govern. Public outcry over the outrageous scandal has exploded into massive, weekly, candlelight protests demanding the President’s immediate resignation. Her failure to account for the government’s abysmal response to the Sewol ferry tragedy in 2014 and reform the ruling party after its devastating losses in the April 2016 election have also contributed to her political downfall.   According to the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reported by Transparency International, South Korea averaged a ranking of 41 from 1995 until 2015. In 2015, South Korea was ranked the 37th least corrupt nation out of 175 countries. While not necessarily a poor record, other Asian neighbours were perceived as much less corrupt, with Japan ranking 18th and Singapore listed in 8th place. Within South Korea’s dense interpersonal networks, Koreans tend to be loyal to each other once they are identified as in-group members. These loyalty networks are vulnerable to corruption as it is common for network insiders to engage in influence peddling for the benefit of other members. Government officials and politicians are able to influence official policy decisions in exchange for kickbacks or illicit funds from businesses. With the state maintaining strong regulatory power over business, the latter invest in cultivating supportive relations with decision-makers in the public sector. The 2015 Sung Wan-jong scandal is an excellent example. The construc-tion tycoon committed suicide, leaving behind a note with a list of politicians he claimed to have bribed in the course of his business deal-ings. This scandal led to the resignation of the newly-appointed Prime Minister. Recently, South Korea introduced a strong anti-graft law in an effort to curtail the culture of corruption-prone gifting and sponsorship. This law applies to virtually everyone and is expected to be more effective than any previous grand anti-corruption laws by fundamentally altering people’s conventional gift giving and receiving behaviours.   Nevertheless, legal measures cannot pre-vent colossal scandals like the one currently engulfing the President. Korean presidents are very powerful, having control over the prose-cutor’s offices, the police and monitoring agencies. Unless these watchdog organisations become truly independent from the Blue House, the abuse of power or corruption by the president and/or their entourage will re-main unchecked. This is the reason a large number of lawmakers are pushing to change South Korea’s constitution in order to limit the power of the presidential office. Changes to the power structure should be applied to private organisations as well as public sector. Control by a single person at the top is vulnerable to power abuse and corruption.   While South Korean civil society has progressed to a liberal and plural democracy, powerful institutions lag behind, and authori-tarian leadership is still prevalent. South Korea should seize upon the unfortunate, critical momentum generated by this scandal to re-form its governing sys-tem and achieve au-thentic, high-quality democracy. ■       Author Sook Jong Lee is president of the East Asia Institute and professor of public administration at Sungkyunkwan University. Currently, she holds advisory positions i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uch as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inistry of Unification, and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EAI Column presents fresh, constructive opinions and policy suggestions on Korean society and politics as well as East Asian securit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issues from recognized experts. Please acknowledge the source of this article if used as a citation.  The EAI is a nonprofit and independent research organization in Korea.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do not necessarily reflect the views of EAI.  

이숙종 2020-06-05조회 : 8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