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표심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투표 막바지까지 알 수 없는 부동층의 선택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패널 여론조사는 동일한 응답자 집단을 대상으로 수 차례 여론조사를 시행함으로써 한국 사회와 정치의 주요 사안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과 태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EAI는 주요 선거에서 패널 여론조사를 시행해 왔으며, 특히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17년 조기 대선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유권자의 선호가 막판까지 요동쳤음을 밝혀 내었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미친 요인에 대해 분석하였다. 후보자 개인으로서 인물에 대한 선호, 정당 선호, 대통령 탄핵과 사드 배치의 정치적 이슈 요인, 미디어의 효과를 비롯해 특히 텔레비전 토론회의 영향 등이 최종 표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내었다. EAI는 국회 입법조사처와 함께 “2017년 대통령선거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패널 여론조사의 주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패널 여론조사가 가지는 선거연구의 학술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변화하는 한국 유권자》 시리즈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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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워킹페이퍼]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시리즈: ② 청와대 정부를 혁파하라

  1. 당선을 넘어 성공으로 가는 첫 번째 이정표, 청와대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변화의 희망을 준다. 새로운 리더십 하에서는 그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나 갈등이 해소되고,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진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선거 경쟁에 참여한 후보자들도 그러한 유권자의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공약들을 제각기 제시한다.   그러나 5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만족감은 언제나 그다지 높지 않았다. 성공한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렇게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것은 현실적으로 5년이라는 짧은 임기 동안 해결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애당초부터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당선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는 최대한의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을 제시하지만, 통치 과정에서는 그 많은 이들을 모 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의 집행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실망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다수 생겨나기 마련이다(Mueller 1970; 문우진 2012).   이러한 본질적인 한계와 문제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낮은 평가를 내리게 된 데에는, 최근 대통령이 성공적 통치나 효율적 정책 집행을 위한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최근 한국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두고 제기되는 가장 빈번한 비판 중 하나는 이른바 ‘청와대 정부’(박상훈 2018)에 대한 것이다. 청 와대 정부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은 청와대로의 지나친 권력 집중과 대통령의 과도한 의존과 특히 긴밀한 관련이 있다. 통상 ‘청와대’로 불리는 대통령 비서실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역할을 보좌하는 기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치의 전면에 나서 국정에 개입해 왔다.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대통령’ 앞에 놓이게 된 데에는 이른바 ‘권력기관’을 통한 반대와 비판에 대한 차단, 견제, 억압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청와대가 국정 전반을 주도하면서 각 기관의 자율성이 약화되고, 권력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정부는 대통령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은 그만큼 정책 결정의 폐쇄성을 높이는 반면 집행의 전문성을 낮출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로 인한 대통령에 대한 권력 집중은 자유로운 소통과 의견 개진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수용성을 낮추게 된다.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 속에는 이와 같은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으로 인한 문제점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이나 폐쇄성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제기되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별로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청와대 정부는 ‘대통령 실패’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통치 과정에 청와대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청와대 중심의 통치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2. 대통령이 활용할 자원을 제한하는 청와대 정부   대통령에게는 통치를 위한 다양한 자원이 주어진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고 유 기적으로 기능하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대통령은 삼권분립 체제 에서 행정부의 수장이다. 행정부의 관료들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고 제도화되고 축적된 경험을 가지며, 관련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관료제는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적 자원이다. 한편 공공 서비스의 제공을 담당하는 것이 관료제이지만 동시에 예산과 인원 확대 등 관료 자체의 이해관계를 갖는다(Nisjkanen 1971; Dunleavy 1991). 이들이 관료주의, 부처 이기주의, 복지부동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일하도록 관리하고 이끄는 것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대통령이 지닌 또 다른 자원은 집권당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대통령이 집권당의 당 총재로서 당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은 사라졌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의 ‘당정 분리’ 실험이 실패로 끝이 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통령과 집권당과의 관계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의 주요 정책이나 공약은 국회에서의 입법화를 거쳐야 실현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산이나 주요 법안 처리 과정에서 집권당과의 공조는 중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한국에서 당정협의회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성을 가졌다(가상준, 안순철 2012; 권찬호 2007). 또한 여론의 추 이와 반응, 야당과의 관계 등에서 집권당의 역할은 중요하다.   관료제, 집권당에 더해 청와대 비서실 역시 대통령이 가진 주요 자원 중 하나이다. 즉,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이 가진 자원 중 하나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가진 세 가지 제도적 자원 간의 조화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들 간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통령 비서실은 그 기구의 기능상 대통령과 일상적으로, 또 보다 빈번하고 긴밀하게 접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비서실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조직 자체가 원천적으로 다른 기구들에 비해 폐쇄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이 조직에 힘을 실어주면 다른 기구들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중요한 통치 자원인 세 기구 간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비서실의 확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 서도 백악관 스태프의 규모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꾸준히 증대했다(Burke 2000).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집권기를 거치면서 비서실의 규모가 크게 증가했는데, 이러한 증가 추세는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김정해 2013).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의 문제는 단순한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그 영향력이 민주화 이후 크게 증대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강원택 2018: 53-54).   그 이유는 우선 5년 단임제와 관련이 있다. 5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 대통령은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싶기 때문에, 행정부의 관료 조직에 의존하기보다 자기를 지근至近에서 보좌하는 청와대의 비서들을 통해 주요 정책을 직접 챙기면서 이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또 다른 요인은 관료제에 대한 불신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권력이 시민사회와 정치적 반대자를 압도해서 국가 행위에 대한 견제 나 비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관료제는 권력자의 요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행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에 투명성과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야당을 비롯한 언론, 시민단체 등의 감시와 비판의 기능도 강화되었다. 더욱이 정권 교체가 발생하면 이전 정부 시절의 정책 이슈에 대해 담당 관료에게까지 그 책임을 묻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료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관료제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관료 조직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나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상이한 정책 집행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처 간 이해관계나 입장이 다른 경우 이를 조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경우에 따라서 그러한 이유로 인해 정책 추진 자체가 좌절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행정부 관료 조직에 의존하기보다 청와대 비서실을 통해 직접 정책을 관리하고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 정부가 생겨나는 또 다른 이유는 ‘캠프 정치’와 관련이 있다. 최근 들어 대통령 선거 과정은 정당보다 후보자 개인을 중심으로 한 선거 캠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제도의 도입과도 관련이 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당내 주요 인사들과 지지자들이 대통령 후보자를 중 심으로 나뉘어 경쟁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정당이 경선을 거쳐 선정된 당 후보를 집합적으로 지원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본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당보다 당 경선 때부터 도와준 ‘내 사람들’이 결집된 선거 캠프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캠프 관련 인사들이 집권 후 중용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자신을 도운 캠프 인사들을 비서실의 요직에 임명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정책을 이끌고 나가려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가진 여러 자원 중에서 비서실에만 크게 의존하는 통 치 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각, 집권당을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키거나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하고, 더욱이 대통령에게로의 권력 집중과 그로 인한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낳는다. 이는 다시 대통령 비서실이 강화된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를 이용하여 사 실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는 상위 기관으로 기능하려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행정부와 집권당 등을 포함한 대통령의 통치 자원 간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청와대를 실행 조직이 아니라 참모 조직으로 활용하라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관계 장관회의나 당정협의회의에서 다루어졌다. 이 자리에는 국무총리·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관련 장관, 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 관련 국회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비서실장과 관련 수석비서관은 이 회의에 배석했지만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이는 청와대 비서실이 행정부가 하는 일에 나서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런 자리에서 발언한 것은 1977년 6월 13일 부가가치세 도입 관련 당정회의 때뿐이었다.[10]   국무회의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실질적인 국무의 논의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받아 적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런 비서실에서 마련해 준 ‘말씀 자료’에 기반한 일방적인 소통 방식보다는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주일에 네 번 정도 중요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때면 박 대통령은 사전에 관련 안건을 읽고 그 내용을 숙지한 후 회의에 나왔다. 주무장관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참석자가 의견을 개진하는 동안 박 대통령은 그 내용을 메모했다.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면 박 대통령은 다시 주무장관의 의견을 물었다. 그 과정에서 대개 문제 해결 방안이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의가 자유토론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을 차례로 지명해서 발언하게 했다. 때문에 회의는 중구난방 식으로 흐르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운영되었다. 대개 2시간 정도 회의를 하면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11]   대통령은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갖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라   대통령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책임을 갖는다. 선거 기간 중 공약 준비를 위해 많은 양의 학습을 하게 되지만, 통치 이후 맞이하는 환경이나 상황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통치를 하면서 대통령이 스스로 절감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과 미래 목표가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이 구체적인 국가 발전의 큰 그림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색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청와대에 ‘갇혀있지’ 말고 다양한 영역의 인사들과 접촉해야 한다. 청와대에 갇히게 되면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상황 판단이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광화문 정부’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24일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겨 “불의와 불통의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국민 속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문 후보는 이날 서울 여 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대통령, 친구 같고 이웃 같은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며 “청와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12]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정부를 ‘불의와 불통의 대통령’이라고 보았지만 광화문 정부는 실현되지 않았다. 경호, 교통 및 행정상의 이유로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광화문 정부’의 중요성은 그 함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에 대통령의 정보와 소통의 창이 갇혀 있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 표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청와대 외부의 다양한 사람을 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4. 대통령의 성공은 행정부의 활용에 달렸다   그동안 매 선거가 끝이 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 성공하는 대통령 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러한 국민의 염원과 달리 퇴임 이후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통령직의 권력과 영향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도 한몫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이나 주위의 조력자는 권력을 잡은 후 이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통령의 영향력이나 임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부여된 다양한 제도적 자원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통령은 비서실 조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청 와대 정부’ 중심의 통치 방식은 당장은 효율적이고 편리한 것처럼 보여도 효율적인 정책 성과를 창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이 장에서는 청와대 비서실과 관련하여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서의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와대의 규모와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사실 박정희 시대 이후 청와대 조직은 끊임없이 확대되어왔다. 문재인 정부 때도 청와대는 또다시 이전보다 그 규모와 예산에서 증대되었다. 이제는 청와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일하는 청와대’는 잘못된 개념이다.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 만 청와대가 담당하고, 그 이외는 담당 부서에 그 역할을 맡겨야 한다.   둘째, 청와대보다 국무회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비서진들이 사실상 각료들을 지휘하는 형태의 국정 운영에서 벗어나야 하고, 각 행정부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하고, 국무회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전체 국무위원이 다 모이는 것이 불필요한 경우라면, 관련 분야 각료들만의 소규모 국무회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외교안보 장관회의, 경제 관련 회의 등으로 나누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고 주재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요 정책 논의가 청와대 비서진들과의 회의 보다 헌법상 국무를 논의하도록 한 국무회의에서 이뤄져야 한다.   셋째, 청와대 중심의 통치는 대통령이 청와대 내의 인적 구성에 ‘갇히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때 ‘광화문 정부’를 공약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점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선거 캠프를 비롯하여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에 의해 충원되기 쉽기 때문에 그 구성이 동질적이 되기 쉽다. 그만큼 다양한 의견과 경쟁적인 정책 대안에 대한 토론은 이뤄지기 어렵다.   넷쩨, 청와대의 인사수석의 역할을 제한하고, 정책수석직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안보실의 상임위원회 체제를 폐지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재편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청와대가 지닌 집중된 권력을 내려놓고 원래의 기획과 조정의 역할을 담당하고, 대신 각 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분권적인 통치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   참고 문헌   가상준, 안순철. 2012. 「민주화 이후 당정협의의 문제점과 제도적 대안」. 『한국정치연구』. 21(2), 87-112.   강원택. 2018. 『한국정치론』. 개정판. 박영사. 김정렴. 1997. 『아, 박정희』. 중앙M&B.   권찬호. 2007. 「 당정 협조 관계의 영향 요인에 관한 고찰: 역대 정권별 당정협조제도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공공관리학보』. 21(4), 279-302.   문우진. 2012. 「 대통령 지지도의 필연적 하락의 법칙: 누가 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바꾸는가?」. 『한국정치학회보』. 46(1), 175-201.   박상훈. 2018. 『청와대 정부 : ‘민주 정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후마니타스. 백창재. 2018. 「미국 대통령의 권력자원과 리더십」. 『국가전략』. 24(4), 135-173.   Burke, John. 2000. Institutional Presidency: Organizing and Managing the White House from FDR to Clinton.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Dunleavy, P. 1991. Democracy, Bureaucracy and Public Choice: Economic Explanations in Political Science, New York: Harvester-Wheatsheaf.   Mueller, John. 1970. “Presidential Popularity from Truman to Johnson.”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64(1), 18-34.   Niskanen, W. A. 1971, Bureaucracy and Representative Government, Chicago: Aldine-Atherton.     [1] 대통령이 뽑는 자리 2000개 … 전화 기다리는 캠프 공신들」. 『중앙일보』 2017. 7. 1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765735#home [2] 김용호. 「대선 후보 ‘캠프 정치’라는 잘못된 관행」. 『중앙일보』2021.8.12. [3] 「청와대 행정관, 대체 어떤 자리이기에 … 실무급 컨트롤타워 … 퇴직 후 ‘산하기관 낙하산’ 지적 도」. 『월간 조선』2014. 12.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412100016 [4] 광화문에서-길진균. 「공룡이 된 인사수석실 … 허울만 남은 책임장관」. 『동아일보』2019. 1. 16. [5] 「국장까지 청와대가 결정 … 인사권 없는 장관 令이 서겠나」. 『매일경제』 2019. 6. 13.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6/411735/ [6] 김정렴. 「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의 조언 - 성공한 대통령의 조건: 朴正熙 대통령이 결재한 서류 많지 않아. 대통령은 사색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월간조선』 2008. 1.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801100014 [7] 장하성·김동연. 「‘소득주도 성장’ 충돌 … 컨트롤타워 ‘장앤김이냐 김앤장이냐’」. 『중앙 선데이』 2018. 8.1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877564#home [8] 「정무는 비서실장, 정책은 정책실장… 靑 비서실 권한 분산」. 『조선일보』 2017. 5. 12.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2/2017051200211.html [9]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 안 보이는 외교부」. 『중앙일보』 2018. 3. 12. https://w zww.joongang.co.kr/article/22434190#home [10] 김정렴. 「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의 조언 - 성공한 대통령의 조건: 朴正熙 대통령이 결재한 서류 많지 않아. 대통령은 사색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월간조선』 2008. 1.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801100014 [11] 위의 글. 김정렴. [12] 「문재인 “靑 집무실 옮겨 ‘광화문 대통령’ 시대 열겠다”」. 『뉴스1』 2017. 4. 24. https://www.news1.kr/articles/?2975947     ■ 저자: 강원택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정치, 의회, 선거, 정당 등이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2019), 『사회과학 글쓰기』(2019), 『한국 정치론』(2019),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2018, 공저), 『대한민국 민주화 30 년의 평가』(2017, 공저), 『대통령제, 내각제와 이원정부제』(2016)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강원택 2021-12-22조회 : 1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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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워킹페이퍼]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시리즈: ① 서론_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

민주화 이후 한국은 7인의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들은 실책을 거듭하며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퇴임 이후 대체로 불행한 말로를 보냈다. 현 대통령의 경우도 그리 후한 점수를 받고 퇴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둔 지금, 대통령의 실패는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반복되는 대통령의 실패를 바라보며 『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 집필진은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에 주목하게 되었다. 국민에게 굳게 약속 한 일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거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는 등 대통령이 저지르는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어떤 상황이 대통령을 훨씬 더 쉽게 실패하게 만드는가? 이 책의 집필진은 실패의 역사를 분석하여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조건을 찾고자 한다.   이 책은 실패하는 대통령의 세 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첫 번째 실패조건 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문제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표현처럼 국가권력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고 청와대가 그 권력을 행사한다. 제1부가 다루듯이 거대한 행정부 조직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의회와 정당이 무력화되는 현실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오늘날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저지르는 여러 실패는 권력의 독점에 따른 의사결정 문제와 실행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실책으로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빠르게 실망으로 바뀌고 대통령의 권위는 엄청난 손상을 입게 된다.   두 번째 조건은 날로 심화되는 국내 정치 분열과 진영 대결 구조이다. 한국 정치는 정치적, 이념적 양극단으로 나뉘어 대결하고 있고, 중간층/중도층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는 진영 논리를 부추겨 대통령의 주요 정책 추진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한다. 주요 정책은 국회에서 정치적 교착과 마비 속에서 표류하거나 날치기로 통과되어 정당성에 상처를 입는다. 제2부가 지적하듯이 대통령은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의회에서 합의 기반을 넓히고 내각을 통해 협치하는 대신 지지 기반을 결속시켜 여론을 움직이고 사법부와 권력기구를 정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정파적 대결을 부추기곤 한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깊어지면서 정책의 효능이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대통령이 다루어야 하는 업무의 복합성과 불확실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혁명에 따라 산업은 복잡다기하게 진화하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와 기후변화의 충격이 사회적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세계 질서 재편 흐름은 어려운 전략적 선택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정부의 역량이 따라가려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막중하다.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어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정부기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며, 대통령 곁에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이 포진해야 한다. 제3부에서 보듯이 대통령이 정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수장이 되거나 독선과 아집으로 정부를 지휘하는 경우 실패의 가능성은 커진다.   이렇듯 대통령의 실패조건을 뒤집어 말하면 성공조건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성공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권력을 나누어야 성공한다. 차기 대통령은 스스로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을 내각과 여당, 국회에 적절히 분산하여 배분해야 한다.   둘째, 분열된 국민을 통합해야 성공한다.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국회에 합의 기반을 넓히고 내각을 통한 야당과의 협치로 화합과 공생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셋째, 전문성과 실행 능력을 갖추어야 성공한다. 대중과의 소통과 이벤트 등을 통해 좋은 인상과 영감을 주는 것보다 정책 추진 능력이 중요 하다. 대통령은 정부 내 조직들의 역량과 한계를 면밀히 파악하고 그들의 지식과 자산을 극대화하여 이끌어가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권력 집중에서 분산으로, 정치적 분열에서 통합으로, 소통과 이벤트에서 전문성과 실행 능력으로 혁신적 전환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 비로소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     ■ 저자: 손열_ 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019(32):6),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세계 금융위기, 질서 변환, 한국의 경제외교』(2020), 『BTS의 글로벌 매력이야기』(2020, 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손열 2021-12-21조회 : 13742
논평이슈브리핑
[EAI 대선 특별 논평] ④ 대통령은 시대를 읽는 통찰력을 가져야

*이 글은 지난 8월, EAI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시한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에서의 기조발언을 정리한 것입니다.   I. 서론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UN을 비롯한 각지로부터 선진국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비판으로 가득하다. 안타깝게도 한국 국민들로부터 “○○○ 같은 대통령이 한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의 목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어떻게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1987년 이전의 대통령과 민주화 경험 이후의 대통령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얼마나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는가. 그로 인해 우리는 차기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며 지식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차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성공조건은 무엇인가.   II. 실패한 대통령으로부터 배우다: “시대 변화와 국민 인식 변화를 읽어야 한다”   건국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던 때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시절부터 대한민국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정부 수립에 앞장섰다. 특별히 한국전쟁을 견뎌내고 한미동맹을 맺어 경제를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국가 발전의 기초를 닦은 것은 역사적 업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3선 개헌(1953년)을 자행하며 권력을 추구하다 스스로 몰락을 자초해 버렸다. 주목할 만한 업적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물을 설치한 셈이다. 4.19 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은 아쉽게도 한국 정치사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 후에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큰 공을 세웠으나 70년대 초 유신체제를 만들고 인권을 유린하는 억압정책을 펼치는 등 결국에는 본인의 삶마저도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또한 이승만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업적을 이루었으나 성공적인 대통령이라 평가하긴 어렵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대통령의 역할을 최소한 수행했을 뿐, 그들 또한 끝이 좋지 못했다. ‘국민 대통령’이라 칭송받던 김영삼 대통령은 IMF 구제 금융 사태를 초래하여 한국의 정치 사회 구조를 묘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사태를 짧은 기간 내 수습했다는 성공담을 수반하는 지도자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준비된 대통령이었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여론이 찬반으로 나뉜다. IMF 사태 수습은 대통령의 능력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의 전폭적 구제책과 우연히 형성된 중국 시장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본인을 몰아간 대통령으로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에서 ‘기적을 이룬 리더’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참에 대통령에 도전하였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올해 유력 정당 대선 후보들처럼 의회에서 정치 경력을 쌓아온 대통령 후보를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후보가 되어 대통령직에 앉았던 사례들을 보고 있다.   역대 대통령을 돌아보면서 던진 수많은 질문 중에는 ‘왜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이 별다른 업적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는지’와 같은 질문이 있다. 이에 답하기 위해선 1987년 이전의 대통령과 민주화 경험 이후 대통령 사이에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87년 이후 대통령들은 이전과 달라진 경제 상황과 사회 구조, 국민 의식과 행태를 인지하지 못한 채 국정 운영에 나섰다. 그리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왜 한국이 IMF 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IMF 사태를 초래한 경위는 이러하다. 그는 과거 군사 정권 시절 누렸던 경제성장률을 이룰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과거의 논리 속에 갇혀 지냈다. 경제성장률을 높게 유지하는 방책으로 재벌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재벌에 적용했던 규제를 풀어주었다. 금융도 투자도 재벌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자, 자연스레 과잉 부채와 과잉 투자, 과잉 시설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이하였다.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일반 국민의 인식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실패한다는 결론을 낳았다.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겪게 된다. 한나라당이 여전히 재벌과 기득권층을 옹호했던 반면, 민주당은 서민적 면모를 드러내며 표심을 샀으며 결국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또한 재벌을 움직이지 않고서 경제를 끌고 갈 수 없다는 단편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신자유주의와 함께 일반 국민의 기대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서민 대통령’을 뽑았는데도 서민의 사정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나라 살림살이를 지켜보며, 국민들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새로이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치자 국민들은 또다시 정부에 지지를 철회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출마 선언 때부터 후보 지명 연설 때까지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당선 이후에는 창조경제를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잡았고 결국엔 재벌을 찾아가 그들이 직접 창조경제 연구센터 등을 만들게 했다. 이 또한 본질적으로 자신이 대통령이 당선된 시대의 상황을 제대로 고민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국정 운영에 나섰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확고한 국가 경영관이 없는 상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시대와 국민 의식 변화를 읽지 못하는 대통령의 실패 사례의 뿌리는 민주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70년대 상황이 60년대 상황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논리로 국정을 운영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는데 나에게 어떻게 저항을 하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국민의 인식 변화를 힘으로 제어하려 했다. 국민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고 언론을 비롯한 사법부, 권력기관 통제가 지속하면서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대통령 편의대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하니 불행이 싹트기 시작한 셈이다. 대통령은 권력기관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시대와 국민 의식의 변화를 읽는 본연의 업무에 더 충실해야만 했다.   III. 숲을 보고 큰 그림을 그려라   민주화 이래 한국은 대외적으로 완전히 개방되었다. 국제사회와의 소통 또한 일상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대통령이 지녀야 할 기본 소양 또한 몇 가지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 외교안보, 과학기술, 교육과 국민 다양성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전문성을 갖추고 중요한 개념을 숙지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경험한 코로나 19 사태는 대통령에게 시대적 통찰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전에는 ‘외부로부터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것’만이 안보의 분야에 속했으나 지금은 바이러스 하나도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대응해야 할 정도로 안보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어떻게 ‘내적 안보’를 이룰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대통령이 필요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자영업자를 위기로 몰아넣은 현재의 경제적 난관은 과거 수차례 겪은 금융위기 때와 다른 처방전을 요구한다.   지식 정보화 트렌드 또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의 지식수준은 높아졌고 정보 접근권 또한 매우 개선되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이전처럼 국민을 속이기 힘들어졌다. 공정이나 정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엽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한 적절치 못한 전략이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바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는 통찰과 전문성이다. 모든 걸 다 알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국내외 정세를 막론하고 숲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     ■ 저자: 김종인_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관철시킨 장본인. 이 조항은 ‘김종인 조항’이라 불리며 우리 헌법 가운데 특정인의 이름으로 별칭을 갖는 유일한 조항이기도 하다.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 당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수천만 평을 매각토록 하여 부동산 가격을 단번에 안정시키며 ‘소방수’로 불렸다. 경제 참모의 영역을 뛰어넘어 한소-한중수교와 외교 사안까지 해결하며 ‘만능 수석’이라 불리기도 했다. 재정·조세 분야 전문가로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새천년민주당,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역임하여 ‘여의도의 포레스트 검프’라 불린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를 연달아 맡아 위기에 빠진 정당을 일으켜 세우며 매번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닥터 K’, ‘경제 할배’라는 찬사를 받았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여러 정부에서 총리 후보 등으로 거론돼 ‘지상紙上 발령 최다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다. 1940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대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교수 재직 중 부가가치세 실시 문제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후 근로자재형저축, 사회의료보험 도입 등에 기여했다. 일제강점기 민족 변호사이자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기틀을 만든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한국 정치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통한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김종인 2021-12-15조회 : 10266
논평이슈브리핑
[EAI 대선 특별 논평] ③ 2022년 대선과 전환적 리더십

[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와 대선캠프, 정치권, 미디어, 인플루엔서를 예상 독자로 하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세 번째 보고서로 장훈 중앙대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선거민주주의로 압착될수록 당파적 선거 정치가 과열된다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로 인해 정작 주목해야 할 경제, 사회 이슈가 부차적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전환적(transformative)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환적 리더십의 등장 배경으로 기성 정당들의 카르텔 체제 심화와, ‘미국 주도, 중국 참여’라는 세계화 흐름의 퇴조, 디지털 초연결성과 SNS 사용과 정치적 부족주의 강화라는 삼중의 시대상을 제시합니다. 특별히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가 기성 정치에 순응해온 인물이 아닌 그에 역행하며 도전을 해온 인물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리더를 뽑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입니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퇴조 속에 민주주의는 점차 선거민주주의로 위축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흐름이다.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현대 민주주의는 그간 자유, 평등, 인권, 환경 등의 다양한 사상들을 흡수하며 비교 불가한 호소력을 널리 발휘해왔다. 민주주의의 승전보가 울려 퍼진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지만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민주주의는 아시아와 유럽, 남미에서 줄곧 후퇴해왔다.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과 양상은 실로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흐름은 자유와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포괄하던 민주주의가 어느새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는 경쟁으로서의 선거민주주의로 압축, 위축되고 있는 점이다. 대통령이나 의원이라는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서의 선거라는 메커니즘만 앙상하게 존중받을 뿐, 그밖에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장치들은 미국을 비롯한 브라질, 헝가리, 폴란드, 스페인 등 세계 곳곳에서 후퇴하고 있다. 권력분립은 흔들리고 법치주의는 끝없이 추락 중이다.   선거민주주의로의 위축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내년 봄 우리는 방대한 권력을 가진 대표자(대통령)를 새로 선출하는 선거를 맞게 된다. 민주주의가 선거민주주의로 압착될수록 선거 경쟁은 사활적이고 과열되기 마련이다.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이른바 부족전쟁으로서의 선거정치가 과열될수록 근본적인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체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전략과 심화하는 경제 사회 양극화에 대한 정책들은 부차적으로 밀려나고 당파적 사투가 무대를 주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필자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전환적(transformative) 리더십의 등장이 요구되는 선거라는 관점에서 그려보고자 한다.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일하게 전 시민이 참여해서 뽑는 리더이다. 또한 입법부와 사법부로부터의 견제를 넘어서는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직위다. 때문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전환적 리더십을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제의 역사를 되돌아보거나 200여 년의 대통령제 역사를 가진 미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기성의 낡은 질서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전환적 리더십은 매우 드물었다. 200여 년의 미국 역사에서 기존의 정치 경제체제의 구조를 임기 동안에 대대적으로 갈아엎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이는 링컨, 루스벨트 등 극히 소수의 인물들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기념관이 있는 대통령은 단 4명에 불과한데, 이는 순서대로 초대 대통령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이다.)   내년 3월 대선은 후보들의 능력이나 성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구조적으로 전환적 리더십이 등장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그 까닭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대적 전환의 구조적 요건으로서 기존 질서의 와해이다. 둘째는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핵심전략 산업의 보여주듯 미국 주도, 중국 참여의 세계화 흐름의 변화이다. 셋째는 전환적 리더십의 충분조건으로서 리더들의 반(反) 기성체제적 성격이다.   먼저 구조적 요건으로서 기존 질서의 와해부터 살펴보자. 1987년 민주화, 1990년대 후반의 세계화, 2000년대 이후의 정보화가 우리 삶을 지탱해온 핵심적 질서의 기둥들이라면 이러한 기둥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동시다발적으로 주춧돌이 흔들리면서 와해되고 있다. 구질서의 와해는 당연히 새로운 질서를 향한 모색과 탐험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1987 민주화 체제의 와해에 관해서는 수많은 분석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 핵심을 기성 정당들의 카르텔체제 심화와 그에 따른 정치적 대표의 무기력화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많은 정당들이 명멸해왔지만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은 기성 정당들의 독과점이 강력하게 유지되어왔다는 점이다.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당명을 수차례 바꿔왔지만 그 뿌리는 1987년 민주화 출범 당시의 제1, 2, 3당이다. (당시의 제1당과 3당의 결합이 국민의힘의 뿌리이다.)   이들은 신규 진입이 지극히 어렵도록 설계된 정당법과, 정치 신인과 청년, 무소속 후보들에게 지극히 불리한 선거법, 정치자금법을 방어막 삼고 자신들만의 독과점 체제, 카르텔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에 도전하는 신생 정당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져 가거나 양대 정당에 흡수되어왔다.   카르텔 정당 체제의 존속은 당연히 일반 시민들과 정당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는 대표의 실패로 이어졌다. 양대 정당은 새로운 인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생각과 사상을 대표하지 않는다. 기존 문법에 부응하고 충성하는 인물과 생각만이 제도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다. 그 결과, 기성 제도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불만이 나타났다.   기성질서 와해를 설명하는 두 번째 관점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되던 미국 주도, 중국 참여의 세계화 흐름의 퇴조이다. 김영삼 정부의 주도로 시작된 한국 경제의 세계화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한 성장을 이끌어 냈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통상국가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되어왔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미국 주도의 세계화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핵심전략 산업의 디커플링은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떠받치던’ 개방된 체제로서의 20세기 세계화의 논리와 주체, 양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우호적인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지구적 공급망을 재편하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중국은 이러한 재편 작업에 맞서거나 혹은 대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생산, 무역, 금융, 디지털 연계망이 구축되고 있는 중이며, 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가리킨다. 그때, 현명한 선택은 한국의 글로벌 기업 뿐만 아니라 그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민간 행위자들, 그리고 정치 리더십의 인식과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셋째, 2000년대 김대중 정부 중반부터 본격화된 정보화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동력이었고 한국인을 24시간 디지털 네트워크에 연결된 삶으로 밀어 넣었다. 정보화 또한 요즘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트위터로 대표되는 24시간 연결된 소셜미디어는 경제 양극화를 증폭시키는 정치 양극화를 초래했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삶이 늘 누군가와, 혹은 전 세계의 정보에 연결되는 공간으로 축소된 것은 정보화의 밝은 결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초연결성은 정치적 부족주의의 등장을 불러왔다. 에코 챔버, 필터 버블이라는 개념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개인들은 점차 자신과 생각과 취향,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을 끊고 자신들의 정치적 부족, 안온한 집단 내에서 말하고 듣고 쓴다.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 등에서 잇따라 확인하였듯이, 정치적 부족주의에 따른 정치 양극화는 민주주의에 큰 도전 과제이다. 한국 사회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축복으로만 여겨졌던 디지털 초연결성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권력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코로나라는 글로벌 보건위기에 대한 대응하느라 디지털 모니터링(국가에 따라서 디지털 감시라고도 불림)은 일상이 되었고 이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의 급격한 위축과 국가권력의 급격한 팽창을 불러오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힘겨운 과제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의 구조적 전환은 곧 구 질서를 퇴출하고 새로운 (무)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실험과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갈림길은 당연히 전환적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 상황이 대전환을 요구할 때 정치 리더십이 늘 그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리더십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기성의 권력체제와 질서에 깊이 연관된 인물보다는 그에 반기를 들어온 인물만이 구조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 즉 대전환기라는 구조 속에서 전환을 이뤄내는 리더는 기성 정치질서에 깊이 연관된(affiliated) 인물보다는 기성 정치질서에 반기를 드는(oppose) 인물이라는 것이다.   내년 대선에 나서는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는 공통적으로 기성 정치질서에 순응해온 인물이라기보다는 그에 역행하며 도전을 해온 인물이다. 두 후보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없으며 정당들이 장기간에 걸쳐 키워낸 리더가 아니다. 또한 두 후보 모두 자신의 소속 정당의 주류의 정책이념이나 인적 네트워크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두 후보는 모두 사실상 주요 정당이 대통령 후보로서 아웃 소싱한 대선 후보들에 가깝다.   달리 말하자면, 두 후보는 모두 대전환을 시도할 배경과 캐릭터를 갖추었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두 후보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허약함, 구 질서의 붕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로 모아진다. 주요 후보들의 구 질서 붕괴에 대한 인식이 결국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민들은 이번 대선이 앞서 논의한 삼중의 전환기에 부합한 리더를 뽑는 선거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     ■ 저자: 장훈_ 중앙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전공분야는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외교 등이며, 48대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에는 미국 민주주의 재단 레이건-파셀 펠로우로 활동한바 있다. 저서들 가운데 <20년의 실험>과 <세계화 2막>(공편저)은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중앙일보에 "장훈 칼럼" 매월 연재하고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For inquiries: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장훈 2021-12-09조회 : 10382
멀티미디어
[제2회 MBN-동아시아연구원 외교전략 심포지엄] 차기 정부의 대외 전략은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손열)은 MBN과 공동으로 <제2회 MBN-동아시아연구원 외교전략 심포지엄: 차기 정부의 대외 전략은>을 11월 30일(화)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개최하였습니다. 패널들은 신 정부가 당면할 대(對)미중 외교의 복합화, 북한 비핵화와 북한 문제의 21세기적 해결, 한일 외교의 신구상, 코로나 이후 질서의 새로운 문명 표준을 이끌어 갈 선도 외교라는 4대 과제와 성공적인 외교 전략에 대하여 심도 깊게 논의하였습니다.   본 심포지엄은 사전 신청한 현장 참석자와 실시간 온라인 청중이 함께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그램 프로그램 8:40-9:00 개회사 손 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연세대학교 교수 환영사 류호길 MBN 대표이사 축 사 이인영 통일부 장관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이광재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9:00-9:15 여론조사 발표 손 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연세대학교 교수 9:20-10:35 제 1세션 <외교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사회 손 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연세대학교 교수 정창원 MBN 부국장 패널 위성락 前주러시아 대사,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 김성한 고려대학교 교수, 前 외교부 차관, 국민의힘 캠프 외교안보 정책 자문 10:35-10:45 Coffee Break 10:45-12:00 제 2세션<신정부의 공생 외교 재건축> 사회 하영선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패널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 폐회사 하영선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21-11-30조회 : 8804
논평이슈브리핑
[EAI 대선 특별 논평] ② 대통령의 성공조건: 협력하고, 분산하고, 존중하라

[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와 대선캠프, 정치권, 미디어, 인플루엔서를 예상 독자로 하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두 번째 보고서로 이대근 우석대 교수ㆍ前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론통일 상황에서 국정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배제하고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 분열 정치를 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분열 정치는 격렬성 때문에 권력 강화의 효과가 있는 듯하지만 사실상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습니다. 선악 대결 구도를 조장하고 '대안'을 마련하려 하지 않아 정치 참여 비용을 높이고 민주주의의 활력을 떨어뜨립니다. 이에 저자는 정치 '분열' 대신 '협력'을 권고하며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권력이 아닌 국회를 비롯한 여러 정치 주체들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정부를 강조합니다.     I. 문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역대 대통령은 모두 불행을 겪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한국 현대 정치사를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로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국정이 실패의 연속극이었다면 산업화, 민주화, 인권의 신장, 삶의 조건 개선을 설명할 수 없다. 실패한 대통령이 성공을 불러왔다는 말은 닭이 오리 알을 낳았다는 이야기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역대 대통령이 모든 일을 다 망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성공한 대통령을 꼽으라면 선뜻 누구라고 지목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통령 문제가 아니라,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까다롭고 성마른 시민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대통령은 예외 없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퍼진 이유가 과도한 시민 요구로 인한 것인지, 너무 적은 국정 성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작용한 결과인지 미처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우리 앞에 또 하나의 정부가 끝나가고 있다. 우리는 현 정부를 평가하고, 다음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압박 속에 있다.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도 실패 사례에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임기 말 지지율로 따지면 문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다. 하지만 11월 현재 다른 숫자를 보면 다른 측면이 보인다. 임기 말 정당 지지율, 대통령 후보 지지율, 정권교체 지지율 모두 야당 쪽이 높다. 세 숫자 모두 문재인 대통령 평가를 반영하고 있다. 여당 후보 지지율은 후보 개인 경쟁력의 정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현 정권에 대한 평가도 일정 부분 반영한다. 이 숫자들은 시민이 적어도 이 시점에 문 대통령에 실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5년 전 압도적인 다수 시민은 촛불을 들어 하나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새 정부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문재인 정부는 ‘국론통일’ 상황에서 국정을 맡는, 전례 없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랬던 정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나의 정부가 정말 실패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견뎌야겠지만, 지금 임기 말을 지켜보는 시민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문 대통령의 5년은 다음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은 잘 말해주고 있다. 누가 다음 정부를 맡든 기대와 실망의 반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II. 오만한 ‘신성 권력’에서 성찰하는 ‘세속 권력’으로   문 대통령에 관한 많은 문제는 권력의 오만함에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다수 시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이 축복이 아니라 악재였을지 모른다. 촛불혁명론은 문재인 정부를 자만에 빠뜨렸다. 민주화 주도세력이라는 자부심에 촛불 시민의 위임을 받았다는 생각이 더해져 자신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신성한 존재라고 여긴 것 같다. 신탁이라도 받은 듯한 오만한 집권세력의 눈에 야당은 성스러운 과업 수행에 방해되는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야당은 주요 현안을 두고 협력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접촉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금기였다. 야당의 악마화였다.   문재인 정부에 맡겨진 권력은 신화화되고 추상화된 촛불 시민의 신성함 때문이 아니라 실존하는 시민들의 이익을 위임받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다. 현실의 시민은 촛불 시민이 아니다. 그들은 욕망하는 존재이고 이익을 두고 갈등하는 복합체이다. 그럼에도 집값 폭등의 구조를 통제하지 못하는 정권은 집을 사려는 시민(그들의 눈에 촛불 시민 답지 않아 보이는 시민)을 모욕하고, 시민에 책임을 전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실현하는 주체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신성의 제단에 바칠 개혁의 성과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선한 권력이라는 자기 인식에 걸맞게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정당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좋다는 발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몇 가지 일을 했다. 다수 시민의 공적 이익을 위해 써야 할 권력 자원을 대통령 측근 그리고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있는 특정인을 위해 소진했다. 무리한 ‘조국 지키기’는 문재인 정부의 잠재적 지지층을 조국 지지와 반대로 분열시켰고, 지식인 사이 탈 문재인 정부 행렬을 촉진했다. 문재인 정부 지지와 비판 이유를 가치, 이념, 노선, 정책도 아니고, 시민의 삶과도 아무런 인연이 없는 조국 문제로 좁힘으로써 시민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에도 민주당은 야당의 한계 때문에 얻은 반사이익으로 총선에 승리했다. 그러나 집권세력이 총선 직후 한 일은 ‘한명숙 명예회복 운동’이었다. 부패행위로 징역 2년을 살고 나온 한명숙이라는 개인의 명예를 위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낭비한 것이다. 시민의 신임을 배신하는 행위였다.   권력은 현실의 시민에 의해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재위임된다는 점에서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유동하는 존재다. 때문에 시민의 이해, 요구, 정서에 응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한 권력자가 되려면 항상 긴장하고 성찰하며 변화하는 시민 요구에 응답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III. ‘분열 정치’에서 ‘협력 정치’로   문 대통령은 박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다수파 연합을 통해 국정을 이끄는 쉬운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로 들어섰다. ‘민주당 정부’라는 명분 아래 야당을 배제한 소수파 전략을 택한 것이다. 야당 배제는 차이와 차별로 정당화했다. 차이는 이념, 정책, 쟁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감정 유발을 통해서 부각됐다. 그리고 이 부정적 감정은 자연히 정치 언어를 혐오 표현으로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차이는 협력할 수 없을 만큼 크지 않다. 이념과 정책, 쟁점에서 집권세력과 반대세력 간 차이가 크다는 관념은 허구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일 때 반대하던 정책을 도입하고 야당일 때 주장하던 정책을 포기한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듯 말이다. 그럼에도 집권세력이 격렬하고 과격한 대결을 마다하지 않고 분열을 일으킨 것은 그렇게라도 해야 지지자들에게 차이라는 환상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열은 차이의 증거가 아닌 차이 부재의 증거이다.   분열 정치는 당내 결속을 필요로 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내부 분열 때문이라고 믿은 집권세력은 내부 단결을 위해 당내 이견을 억압하고 대안적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 밖으로는 대통령 열성 지지자를 조직해서 국정 기반으로 삼았다. 집권세력이 복숭아라면, 대통령은 보호해야 할 복숭아 씨앗, 열정 지지자는 그 씨를 보호하는 단단한 껍질, 당은 열성 지지자를 감싸는 과육 역할을 했다.   분열 정치는 즉각성, 격렬성, 가시성 때문에 권력 강화의 효과가 있는 듯하지만 임기 말에 확인되듯이 상당한 부담을 안겨준다. 우선 대통령과 정당, 지지자들이 양 진영으로 결집해서 대결하는 분열 정치 상황은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막는다. 민주당이 언론통제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조작 기사에 징벌적 배상을 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하려 한 것이 좋은 예다. 야당과 언론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여당이 주춤하자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타협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아야 했다. 타협은 배신행위로 간주되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부동산 정책, 임대차 3법과 같은 민생 법안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야당과 충분히 협의하고 숙고를 거쳐 도입했다면 일부 부작용이 생겼더라도 정부를 향해 비난이 집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열 정치는 정부 책임성도 약화시킨다, 결집한 지지자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도 통치가 가능하다고 믿으면 시민 요구에 따라 국정 방향을 재조정하고 정책 대안을 잘 다듬으려는 유인을 낮추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결속도 좋은 결과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 같은 내부 갈등은 피할 수 있었지만 경직성으로 인해 시민 요구에 대한 반응성을 떨어뜨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같은 경직성은 상호 견제를 통한 자율 교정, 자기 조절의 기회도 앗아갔다.   분열 정치는 선악의 대결 구도를 조장해 시민들로 하여금 악마와 천사 가운데 고르게 하는, 오도된 선택을 유도하고 서로 예의 없는 태도와 언어 사용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이는 다시 정치를 선택 가능한 대안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죽거나 살아남거나 하는 식의 사생결단을 해야 하는 일로 만들어 정치 참여의 비용을 높이고 민주주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목숨을 건 정치는 민주주의를 죽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야정협의체 가동이 대화의 증거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 대화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있다. 역대 정부가 여야정협의체를 가동했지만 야당과 진지한 대화로 발전한 적은 전혀 없다. 일상적인 분열 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드물게 여야 대표들과 만나는 공식적 의례는 대화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것은 분열 정치를 은폐하는 수단이자 분열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핑계의 장이며, 다른 방법에 의한 대결이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요구를 쏟아내고 이를 거부했다고 상호 비난전으로 막을 내리는 이벤트는 무용하다. 대통령은 의례와 형식을 넘어 여야 지도자들과 실질적 협의를 해야 한다. 국정 현안에 관해 사전 사후 야당 지도자와 협의하고 조언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연합정치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한때 설치를 검토했던 국민통합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방식인 통합위원회 설치는 분열 정치의 아웃소싱이자 위험의 외주화이다. 외주화는 통합에 관심 없다는 정치선언이다. 통합은 국정을 책임진 자의 책무이지 경쟁 정당에서 영입한 인물에 맡길 일이 아니다.   정치 분열이 사회 분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집권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치는 대표의 체계이다. 분열 정치는 분열 사회를 대표한다. 그러나 정치는 사회의 기계적 반영물이 아니다. 정치는 사회의 기대와 희망, 미래도 대표해야 한다. 정치는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설득하고 이끄는 책임을 맡고 있다. 정치인이 ‘사회 분열로 인해 정치 분열도 피할 수 없다’는 운명론에 의존한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정치 분열이 사회 분열의 결과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정치 분열이 사회 분열의 원인일 수도 있다. 대중은 정치 엘리트 담론과 논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정치 분열과 사회 분열은 서로를 촉진하고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가 경쟁하는 두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결집한 채 서로 적대하는 정치적 양극화를 불러왔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정치 분열을 중단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책무는 정치 지도자에게 있다.   정치 지도자는 선거 과정 중에도, 아니 선거 과정이기 때문에 이견을 다루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통치능력이기도 하다. 당파성이 강한 일부 세력의 큰 목소리가 다수 여론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지만 적지 않은 시민이 상호 존중과 예의를 기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IV. 권력 집중에서 권력 분산으로   청와대 앞 광장에는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보통 정부 정책이나 조치에 불만이 있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지난 11월 청와대는 경제수석 비서관을 갑작스럽게 경질했다. 요소수 품귀 사태 책임을 물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청와대가 그동안 크고 작은 국정 현안을 결정하고 책임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관련 부처의 장·차관이 아닌 경제수석이 책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사실 세상은 더이상 국무회의나, 현안 관련 장관회의 따위에 관심이 없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비서관회의가 국정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   대통령제는 본래 권력 집중이 아닌 권력 분산을 위해 설계된 제도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관료조직의 비대화, 쏠림 문화로 인해 집행기관인 행정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행정부가 입법부, 사법부보다 우위에 놓이고 3권 간 균형도 잃었다. 사실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가 예외 없이 입법부를 통제하고 판사의 행정부 고위직 임명 등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성은 훼손했다. 행정기관이지만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검찰, 감사원에 관한 통제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고위 판사를 청와대 비서관으로 영입하고 감사원과 청와대 간 인사교류로 감사원을 지배하려 했다. 대통령 가족 및 측근을 감시하는 청와대 특별 감찰관은 5년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 검찰개혁은 방향을 잃었다. 검찰개혁은 권력이 된 검찰을 분권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대통령 권력 보호를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 결국, 검찰개혁은 기득권 검찰 권력과 정치 권력 간 권력 대 권력의 충돌로 끝났다. 대통령 권력 사용의 정당성도 검찰개혁의 정당성도 모두 훼손되었다.   다당제를 위한 부분적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일종의 분권적 제도였다. 정당도 국가 정책에 관한 결정권자, 혹은 거부권 행사자이다. 유력 정당이 양당이 아닌 3~5개로 는다면 더 많은 결정권자가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권력 분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검찰개혁의 왜곡이 그렇듯 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집권당이 선거용 위성정당을 통해 소수당에 돌아갈 몫을 차지함으로써 권력 분산 아닌 권력 집중으로 귀결되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지만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선거가 있고, 단임제가 있는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 집중은 시한부에 불과하다. 권력 집중만 믿고 일방 강행하는 국정의 결말은 분명하다. 스스로 권력 견제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항상 견제와 균형의 긴장감 속에서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사법부, 국회, 감사원, 검찰, 언론, 청와대 특별 감찰관과 같은 권력 내외부의 다차원적인 감시망 안에서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 당내 이견 그룹도 억제할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반대를 제도화한 체제이다. 조직된 반대를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소수파는 항상 소수파로 남아 있지 않다. 반대세력·이견 집단과 타협하려는 자세 없이는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다.   V. ‘국민과 함께’에서 ‘국회와 함께’로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슬로건대로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였는지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회와 함께 하는 정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국회는 여소야대였다. 야당 협력 없이는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 수 없는 조건이었다. 국회는 시민에 의해 선출된 시민 대표기관으로 대통령과 함께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받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수레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국가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21대 총선 전 ‘국회를 우회하는 국정’, 즉 대통령 행정명령에 의한 통치를 했다.   21대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 국회와의 관계를 전환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를 고집했다. 여소야대 국회 때는 여소라는 이유로, 여대야소 국회 때는 여대라는 이유로 야당을 배제한 채 ‘국회 없는 국정’을 했다. 여당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여당이 독차지함으로써 야당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민의 국회 불신은 대체로 입법 내용보다 입법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수당이 소수당 설득 없이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시민은 매우 부정적이다. 여당의 법안 처리가 강행, 날치기, 단독 처리라는 언어로 통용되는 현상이 잘 말해준다. 국회 의사 결정 방법은 점진적으로 다수당 의사에 따르는 다수제에서 소수당과의 협의를 전제로 하는 합의제적 성격으로 변화해왔다. 다음 정부는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향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이 재집권하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와 같은 여대야소가 계속된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과 협력하지 못했던 기억을 되살려 일방주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야당이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 전반기와 같은 여소야대 국회가 된다. 문재인 정부가 국회를 우회함으로써 초래했던 부작용과 혼란을 원치 않으면 국회와 대면하고 야당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 야당 몫을 나눠주고 야당과 함께 짐을 나눠져야 한다.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는 집권자가 국민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권위주의, 혹은 포퓰리즘의 위험성이 있다. 집권자가 추상명사로서의 국민을 호명하고, 대표 없는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통치 행위는 매우 불길하다. 국민이 스스로 뽑아 대표자를 보낸 국회를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VI.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겠다”라고 다짐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꼭 그랬으면 하는 희망을 품은 적이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정부 하나쯤 가질 때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의구심까지 말끔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과연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요즘 다시 같은 물음 앞에 서 있다. 다음 정부는 누구나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일을 해낼까? 안타깝게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성공하기 좋은 여건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임기 말에 이르러 출범 때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분열과 대립,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대선 과정에서 탄생할 다음 정부는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주요 정당의 두 후보 모두 복잡한 갈등 상황을 조정하고 반대세력과 대화하며 타협해 본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어떤 난관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낙관 속에 출범해 안이해진 정부보다 비관 속에 탄생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정부가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다음 대통령이 과거 정부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핵분열 에너지보다 핵융합 에너지가 더 크다. ■     ■ 저자: 이대근_ 우석대학교 교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경향신문에서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냈고 우석대학교로 옮겼다. 그의 글은 한국 정치의 여러 부분을 포괄한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매서운 비판은 잘 알려져 있다.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의 선택이 어떻게 시민들의 기대와 엇갈렸는지에 대한 분석도 날카롭다. 한미 관계, 한일 관계 등 외교정책, 그의 전공인 북한과 남북 관계에 대한 글은 그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친다면 그의 글을 챙겨 읽고자 하는 열의를 계속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글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인간과 정치에 대해 그가 갖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바 크다. 지은 책으로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리얼 진보』(공저)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이대근 2021-11-26조회 : 9579
논평이슈브리핑
[EAI 대선 특별 논평] ① 한국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차기 대통령의 과제

[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와 대선캠프, 정치권, 미디어, 인플루엔서를 예상 독자로 하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 양극화를 넘어 통합과 공생을 주문하는 ‘차기 대통령을 위한 안내서’를 곧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오랫동안 한국정치를 통찰해온 대표적 지식인들을 모시고 [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로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질 최대 유산으로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를 꼽으며, 촛불 시위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역사청산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시위’에 ‘혁명’이라는 정치적 옷을 입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과제 달성을 위해 국가 권력의 비대화와 개인의 자유 축소,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기 대통령이 지난 정부와 대통령의 실패를 냉정히 성찰하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를 제안합니다.     I. 대통령의 유산: 민주주의 후퇴   전 지구적 현상으로 주목받는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는 차기 대통령이 마주할 커다란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 민주주의는 양극화와 국가 권력의 비대화, 개인의 자유 축소로 후퇴하였다. 촛불 시위 이후 집권한 대통령과 정치 주도층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정부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산적한 정책 과제 – 경제 회복, 일자리 확충, 격차 축소, 복지 확대, 부동산 안정, 한반도 평화 – 등을 추진하는 데 험난한 정치적 조건을 물려받을 것이다. 이 글은 촛불 시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을 점검하며, 당면한 극단적 양극화를 포함한 주요 쟁점들을 돌아보고, 지난 정부와 대통령의 실패를 냉정히 성찰하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촛불 시위가 촛불 혁명이 되기까지: 적폐청산과 역사청산   문재인 정부를 엄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2016년 촛불 시위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문 정부가 스스로를 ‘촛불 정부’로 부를 만큼 그 의미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 이행 및 공고화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우리는 촛불 시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87년 민주화 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이행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민주화 이론가들은 지난 세기 70, 80년대 여러 나라에서의 민주화를 권위주의 체제의 집권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합의에 의해 민주화를 성취한 ‘협약에 의한 민주화(pacted transition)’ 라고 특징 짓는다.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군부의 탈정치화를 통한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상호 인정하는 협약에 기초해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러 정치학자들은 민주화 이후 출현한 정당 체제를 ‘1987년 체제’라 부른다. 그해 10월 구체제의 정당 대표와 민주화 세력의 정당 대표 간의 협약으로 ‘민주헌법’이 제정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이행이 실현되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와 이듬해 있었던 제13대 총선(1988년 4월)은 민주주의 이행을 제도화한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였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보수-진보 간 민주적 경쟁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2016년 촛불 시위가 동반한 반정부 시민운동이 당시 대통령(박근혜)의 탄핵을 이뤄내자 보수-진보 간 경쟁체제는 전환점을 맞기에 이르렀다. 민주당 정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2017년)와 2018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구체제 척결,’ 즉 적폐청산과 역사청산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고 그에 따라 향후 정책 방향을 결정지었다. 적폐청산은 박근혜 정부를 포함한 보수 세력이 헤게모니를 누렸던 이전 시기를 구질서로 정의하며 광범위한 민주주의 재건축을 핵심 주장으로 한다. 촛불 시위를 마치 ‘제2의 민주화 운동’처럼 해석하여 한국 정치가 최근까지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복구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견 수긍할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후자, 역사청산이었다. 역사청산은 민주화 이전의 군부 권위주의와 보수 엘리트만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는 식민지 유산의 청산과 반일운동을 군부 권위주의와 보수 엘리트 심판과 연계하는 작업으로, 사실상 한국 현대사를 다시 쓴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의 정신과 가치, 해방 이후 분단국가 건설과 냉전 시기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 결여를 한꺼번에 연결하려는 복합적인 작업이었다. 한국 역사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간과하고 한국 사회를 ‘권위주의 세력과 비권위주의 세력,’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보수와 진보,’ ‘분단에 책임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민족주의자와 반민족주의자’ 등으로 단순화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행위였다.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하자, 80년대 민주화 이후 “촛불 혁명” 이전 박근혜 정부를 포함하는 보수 정부들과 80년대 민주화 이전의 군부 권위주의와 관련된 보수 정부들, 지배 엘리트들이 역사청산과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설정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과거청산과 역사청산을 앞세운 광범한 개혁정책은 두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80년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협약에 의한 민주화”의 파기했다는 점이다. 당시 협약의 대상이었던 권위주의적 보수세력을 청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80년대 민주화이 후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던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라는 사회와 정치의 전면적인 양분화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새로 구축하는 것은 물론, 깊이 양극 분화된 한국 사회를 다시 협력 가능한 범위 안으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촛불 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필연적으로 깊이 분열될 수밖에 없게 됐다. 편 가르기 행태(양극화)가 정치갈등과 정치경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개혁자’와 ‘개혁 대상,’ ‘아(我)’와 ‘피아(彼我)’라는 분류, 양분화 작업 또한 계속되었다. 개혁자가 도덕적인 평가자와 심판자로서 정당성을 주창하고 있는 동안, 사회 한편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풍자적 말이 심판자들의 도덕적 진실성과 권위는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임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심판의 대상으로 범주화된 사람들은 심각한 혼란과 균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는 문재인 정부의 운동론적이고 민중주의적(populist)인 민주주의관을 통해 뒷받침됐다. 문 정부는 촛불 이후 민주주의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응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장려하면서, 운동의 관점에서 ‘민주적 시민 대 기득권자’의 구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제도권 정치에 대한 혐오, 정당정치와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입법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6.10항쟁 기념사에서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위해 (...) 직장과 가정으로 민주주의가 확장되고, 그것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고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을 바로 “깨어있는 시민”, “개념 시민”, “민주 시민” 등으로 호명하고 있다. 그들은 ‘제도 밖에서 행동하는 인민 개념’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정치이론과 정치사를 연구한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Jan-Werner Müller)는 이러한 시민 개념을 ‘도덕화한 反다원주의자’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또는 다른 각도에서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가 말하는 ‘총체적 시민’(total citizen)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 국가’(total state)에 상응하는 현상의 동전의 양면이라 하겠다. 한 개인이 인간의 사적, 공적 생활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은 곧 정치 참여로 온 사회를 정치화하는 “과도한 정치화” (over-politicization)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을 축소하고 다원주의를 허용치 않는 상황,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존립하는 공간이 소멸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III. 국가 권력의 확장과 개인의 소멸   문재인 정부가 던진 특정한 민주주의관과 그에 기반한 개혁 과제 추진은 양극화와 더불어 국가 권력의 확대라는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켰다. 국가 권력의 확대는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고 이끌어가는 원리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이기도 한데, 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유주의 문제와 충돌하게 된다. 자유주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 내재한 자유주의의 약함이라는 문제와 관련있다.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와 달리, 한국 사회는 개인의 권리 보호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를 내면화할 정치적 경험과 역사적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민주화 이전 냉전 시기 구체제 하에서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자유주의를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자유주의는 이름만 존재했을 것이고, 계속해서 관심의 대상 밖에 머물렀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냉전 자유주의’를 냉전 이전의 서구 자유주의 이념과 동일시했고, 진보 진영은 자유주의를 냉전과 분단의 기저 이념으로 여겨 부정적으로 해석하였다. 자유주의에 관한 오해는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기반을 갖추지 못한, 혹은 자유주의가 약한 민주주의만을 구현하는 데 그쳤다. 그에 따라 자유주의적 헌법의 효능과 지배를 가능케 하는 이념적 기반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 사회는 통치자나 정부가 법의 지배를 따르지 않는 것을 두고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자의적 권력 행사(tyrant) 또는 전제정(despotism)이라 부른다. 이 말은 서구의 정치사나 현실정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독재나 군부 권위주의라는 말은 널리 쓰여도, 법의 지배 유무를 핵심으로 하는 정부 형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명칭이 없다.   한국 헌법은 (모든 헌법이 기초를 두고 있는 제헌헌법을 두고 말한다면) 법조문 상으로는 완벽하다. 당대 최고의 헌법인 미국과 독일 헌법을 이상적으로 취합 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하여 대통령중심제를 이루고 있다. 동시에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정신을 따라 정당의 역할, 사회 경제적 문제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냉전, 분단국가, 전쟁은 개인의 권리 보호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철학과 규범이 설 수 있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여지를 허용치 않았다. 현대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약칭이고, 법과 제도는 그 원리를 이상적으로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의 정치사는 그것과는 커다란 괴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지난 80년대 민주화를 권위주의 체제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자유주의를 회복하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설립하려는 체제변화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민주화는 ‘속에서 누리지 못한 자유주의를 회복하자’라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민중의 소리를 구현하자”는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민주화는 민족 문제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이기도 했다.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뒷받침하고, 그것과 병행했던 민주주의, 민주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민주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최대 정의적(maximalist) 민주주의관”과 친화성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 이해 방식이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촛불 시위를 “촛불 혁명”으로 정의하도록 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이 앞에서 언급한 문재인 정부의 운동론적, 포퓰리즘적 민주주의관으로 이어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취약한 자유주의 조건하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국가(권력)의 확장이라는 조건을 유지하고 실현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권위주의적 위협에 항시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국 이래 한국의 국가 권력은 냉전과 분단국가라는 시대적 조건을 유지하면서 사회와 경제로부터 뚜렷하게 자율성을 누렸다. 더욱이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시장에 국가 권력이 깊이 개입하는 발전지향형 또는 발전주의적 국가(developmental state)를 추구하면서 자율적 결사체 위주의 다원적 권력이 자리 잡기 어려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갔다. 그리하여 법적 규범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좀처럼 스스로 강화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관행은 제1공화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문재인 정부 집권 중 한층 더 강화되었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 권력의 확장과 정당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입법권과 사법권의 취약성은 삼권분립을 약화시키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마치 국가 권력의 행사와 구조 자체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라 작동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화된 조건처럼 보인다. 이 가운데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가 개혁의 주체가 되고 조타수가 될 때, 대통령 권력의 행사와 운영방식은 개인의 일상적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가 권력이 더욱 팽창한 상황 속에서, 시민의 자율적 영역과 사적 생활공간의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IV. 차기 대통령에게 전하는 말: 자유주의 정신은 키우고, 청와대와 정부의 권력은 줄이고   차기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커다란 장애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와 국가 권력의 비대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조건하에서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나?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과업에 대해 몇 가지 제안사항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은 자유주의 정신과 법의 지배를 존중하여야 한다. 한국에서도 많이 읽힌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엘 지브라트(Daniel Ziblatt)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붕괴되나> (2018)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법으로 명기되지 않은 두 가지의 권력 행사의 규범으로 “자제”와 “관용”의 중요성을 말한다. 여러 요소들 가운데 저자들은 특히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한다. 하나는 정부 부서 가운데 가장 강력한 부서인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이 다른 두 부서인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해 자신의 권력 행사를 “스스로 자제할 것”을 강조한다. 다른 하나는 정당들 사이에서 적대적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 정당을 “상호 관용”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정부라는 오늘날의 한국 상황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3분의 2에 육박하는 압도적 다수 의석의 정부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입법을 강행한다고 할 때,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은 곧 혼란에 빠지거나 마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마비 현상은 이미 20대 국회와 압도적 수적 우위를 점한 민주당 지배하의 21대 국회에서 쉽게 목격된다. 집권 여당인 문재인 정부 하에서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 권력은 내각의 책임과 역할을 벗어나 청와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정책 분야에서 양극화를 창출하거나 그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저지하려면 차기 대통령에게는 권력 확대를 자제하는 마음가짐이 극히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위해 향유할 수 있는 권력은 인사권부터 예산 배정과 편성, 검찰, 국세청, 감사원,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 관장까지 실로 엄청나다. 그러므로 그에게 귀속된 그/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정책적, 정치적 성과를 얻으려는 유혹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작동하도록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한 권력 행사를 자제하고 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 5년 임기 동안 그럴싸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제시하여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려 하지 말고 청와대 권력을 내각으로 이양하여 스스로 축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민정수석실의 폐지는 이런 노력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대통령과 경쟁 관계에 있는 정당과 비판세력들을 관용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야당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협치’를 강조하며 진보정당과 보수정당, 여야당 간의 협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양극화를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 하에서 협치라는 말은 공허한 언어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치의 조건을 탐색하고, 그것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태도와 규범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협치라는 말은 공허한 듣기 좋은 소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상대 정당, 정치적 경쟁자들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존중하고 관용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자율성, 특히 강력한 대통령 권력을 향유하는 집권 여당이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이 정당 후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이 대통령에 의해 행위하는 조건이 된다면,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등의 양분화는 이제 더이상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회와 경제가 요구하는 것을 ‘대표’하여 ‘민주적으로’ 법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고 그에 진력하기 위해서는 제한적 국가(limited state)를 실현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뿌리를 더 튼튼히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새로이 선출될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 ■     ■ 저자: 최장집_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민중에서 시민으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정치의 공간』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최장집 2021-11-17조회 : 1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