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어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4년 6월에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국가안보패널(National Security Panel: NSP)을 구성하였다. 이후 국가안보패널은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2011),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n복합과 공진》(2013), 《1972 한반도와 주변 4강 2014》(2015),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등 일곱 권의 책을 출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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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0] 경제 위기 이후 지구화 과정과 문화 영역의 변화 추이 : 시민권, 다문화주의, 민주주의, 종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성우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는 "플라톤의 〈메네크세노스〉와 아테네 제국의 정체성 그리고 플라톤의 정치적 삶" (〈한국정치학회보〉, 2007),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갈등과 조화: 미국헌법에서 원본주의(originalism)의 논쟁의 의미와 역할" (〈한국정치학회보〉, 2006), "행복(Eudaimonia)의 정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에 나타난 철학적 삶과 정치적 삶의 의미"(〈한국정치학회보〉, 2005) 등이 있다.         I. 서론   1. 문제제기   오늘날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상호 연결망의 범세계적인 확대, 심화, 가속화를 경험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 인구의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정보, 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가 촘촘히 연결되는 지구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연결망은 정치, 군사, 경제, 정보, 기술,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총망라한다. 이 중 문화 영역은 지구화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지구화로 인한 문화 영역의 가장 큰 영향은 문화적 차이(cultural difference)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문화적 차이는 종종 국민 국가적 정체성과 그 속성에 귀속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 국가 내에서도 젠더, 종교, 정치적 정체성, 소수자 집단, 토착인 등 다양한 차원에서 문화적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도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는 존재했으나 지구화는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문화적 차이가 새롭게 드러내거나, 새로운 문화 차이의 요소들을 가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구화 과정 속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는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을 동시에 드러낸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확산, 인구의 잦은 이동 등으로 문화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전파되어 공간의 차이에 따른 문화적 차이는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거에 국지적으로 머물러 갈등을 야기하지 않았던 문화적 차이가 이제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됨으로써 문화적 차이와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구화는 분명 전 세계의 시공간을 압축시켰고, 이로 인해 우리는 문화적 동질화와 이질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지구화로 인해 문화적 차이의 양면적 경향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인식은 소위 문화에 대한 근대적 접근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근대적 문화 개념에 따르면, 지배적인 문화가 일률적으로 ‘표준화’되고, ‘합리화’되며 다른 문화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피한 발전 방향이라고 보았다. 반면, 지구화 과정의 문화 개념에 따르면, 특정 지배 문화가 일방적으로 표준화되고 합리화되기보다는 기존의 문화가 끊임없이 교체되고, 새로운 문화로 대체되는 방식으로 문화가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지구화로 인해 문화적 차이가 표출되는 방식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이제 전통적인 근대적 접근방식으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근대적 접근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은 문화를 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문화적 차이나 전파 그리고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지구화 과정 속에서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세 가지 시각   지구화 과정 속에서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시각, 둘째, 문화적 동질화 과정을 중심으로 한 시각, 셋째, 문화적 혼성화(hybridization) 경향을 중심으로 한 시각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시각들은 모두 지구화 과정을 전제로 비교적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을 염두에 둔 시각이지만, 그 기본적인 가정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이론적, 철학적인 사조(思潮)를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문화를 불가피한 충돌과 갈등의 과정으로 보는 첫 번째 시각은 문화의 개별적인 주체성(individual subjectivity)에 역점을 두고 있는 낭만주의적 근대성 개념에 의존하고 있으며, 문화를 동질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두 번째 시각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성이 한 방향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universalism)적 세계관과 계몽주의(Enlightenment)에 의해 뒷받침된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혼성화 과정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근대적 사조로 한정할 수 없는 소위 탈근대적 사고를 지향하고 있다. 이제 이같이 이론적으로는 근대적/탈근대적 사고에 바탕을 둔 세 시각이 각각 지구화 과정을 겪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   문화를 충돌과 갈등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충돌은 이제 비교적 널리 알려진 테제이다. 9•11 테러나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경제위기가 있기 훨씬 전 헌팅턴은 1993년 이미 앞으로 다가올 세계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문명의 충돌이 될 것이며, 이는 국제정치에서 점차 서구 중심적 국면에서 벗어나 서구와 비서구간의 문명충돌, 그리고 비서구 간의 문명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Huntington 1993). 그의 논증은 이슬람 세력에 집중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걸쳐 전개되어 온 이슬람과 서구의 군사적 긴장이 아직도 늦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것은 ‘유교권과 이슬람권의 군사적 연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와 중동간의 무기의 흐름을 통해 두 세력이 연계하고 있으므로 서구권은 보다 단합해서 이를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뿐 아니라 동유럽과 라틴아메리카까지 포함하여 단합해야 하고, 러시아와 일본은 보다 긴밀히 협력해야 하며, 유교권과 이슬람 국가 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서구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충돌론은 저자의 명성과 주장의 생소함으로 인해 한 동안 학계에서 논란거리가 된 바 있으나, 대부분의 주장이 현실에서 설명력과 예측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이제는 거의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헌팅턴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주장은 문화를 보는 하나의 시각으로서 자리 매김 될 수 있고, 이런 시각은 지구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헌팅턴의 테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문화를 갈등의 새로운 경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민족과 타민족을 구분하는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한 집단과 다른 집단의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으로 파악된다. 즉 문화는 인간의 다양성을 구분하는 집단적인 결정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이중 언어’, ‘이중 문화’, ‘다문화적 관례’ 등은 문화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적 문화 교류, 다국적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 이주나 교역을 통해 생기게 되는 문화적 전파 등은 이 시각에서는 문화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문명충돌론이 상정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시각은 한 공간 안에 문화적 차이가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문화는 집단을 구분하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위체이고, 국제정치이론에서 흔히 비유되는 ‘당구공 모델’로 정의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 개념은 인류학적 접근에서 수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인류학적으로 문화는 학습되고 공유되는 행위 패턴이나 신념체계이다. ‘학습’이란 일순간에 충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다. 또 사회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공유’가 특정한 공간과 역사에만 한정될 수 없다. 사회성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학습’과 ‘공유’를 통한 행위와 신념으로 이해할 때 문화는 특정 영토와 특정 역사의 한계를 초월하며, 늘 개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헌팅턴에 의해 대표되는 문명 충돌론 그리고 문화적 갈등의 불가피성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전제를 깔고 있다. 헌팅턴 자신도 이미 민주화라는 제3의 물결을 제시한 바 있다. 적어도 민주적 담론의 차원에서는 문화적 이질성이 후퇴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두 번째로,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로 종종 명명되는 ‘문화적 동질화’ 테제는 비교적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 특히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으로 인해 사회가 동질화를 겪고 있다는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 맥도날드화란 사회학자 리처(George Ritzer)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식당의 원칙들이 점차 미국 사회의 부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회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Ritzer 1993, 19). 맥도날드 원칙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버(Max Weber)의 용어를 빌자면, 맥도날드가 제공하는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등의 원칙들이 형식적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의미에서 전 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이와 같은 합리화 과정은 자본주의화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매개체는 역시 다국적기업이다. 다국적기업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지구화 과정에서의 자본주의화는 곧 미국화(Americanization)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미국화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세계적인 문화 미디어의 영향력이나 소비자주의의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지구화로 인한 문화적 동질화가 제국주의적 속성을 내비칠 수 있다는 해석은 맑스 식의 자본주의화 해석과 많은 공유점을 갖는다. 문화의 동질화를 맑스 식으로 자본주의화와 문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게 되면, 문화적 동질화는 많은 저항과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Alfino, et al. 1998 ; Smart 1999).   그러나 문화적 동질화와 이에 따른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학자들은 경제적 차원의 지구화가 곧바로 문화적 동질화를 낳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문화적 혼성화 경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러시아에서의 맥도날드화는 신속성, 효율성, 예측가능성이라는 형식적 합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러시아에 맞는 소위 ‘지방화’(localization)를 거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Talbott 1995). 러시아에서 맥도날드화는 짧은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다는 합리성이나, 싼 가격의 합리성, 그리고 일률적인 메뉴선택이라는 예측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구적 지방화’(global localization) 혹은 ‘지구지방화’(지방지구화, glocalization)으로 명명하며(Ohmae 1992), 경제적 차원의 지구화, 즉 자본주의화가 문화적 차원에서 곧바로 문화적 동질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초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문화적 차원에서 지구화는 한편으로는 동질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화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화는 결국 문화의 혼성화(hybridization)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이다(Comaroff and Comaroff 2001; Jameson and Miyoshi 1998; Appadurai 2001).   세 번째 접근 방식으로서 문화적 혼성화(hybridization)는 기본적으로 순혈주의의 터부를 깨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국민 국가적 정체성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경계의 애매함이나 경계의 투과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성화 테제는 사실 지구화의 진행과 함께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이다...(계속)

박성우 2011-03-07조회 : 13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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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9] 경제위기 이후 21세기 세계 문화질서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김준석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의 역사적 재조명: 미국,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유럽연합”(〈국제정치논총〉, 2008), “규범권력과 유럽연합”(<국제지역연구>, 2009), “유럽정체성의 규범적 기초”(〈국제지역연구〉, 2009) 등이 있다.         I. 경제위기, 미국주도 세계질서의 상대적 쇠퇴, 문화질서의 변환   경제의 변화와 문화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관련 짓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세계 문화질서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혹은 미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매우 희미하게 인식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위기의 발발과 지속, 그리고 이것이 가져온 미국주도 세계질서의 상대적인 쇠퇴는 문화 분야에서 잠재적으로나마 일정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또 그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것은 논의의 초점을 흐릴 뿐이다. 이는 사실상 정확한 답변이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본 장에서는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모든 이들이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문화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문화는 문명, 종교, 지식, 정체성, 가치, 규범, 넓은 의미에서의 제도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세계 문화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볼 때 경제위기로 인한 국제적인 힘의 분배에서의 변화는 이전까지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던 문화와 열세에 있던 문화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위에 있던 문화는 힘의 축소와 함께 상대적으로 움츠러들면서 좀 더 큰 결속력을 보이게 되고, 열세에 있던 문화는 힘의 상대적인 증가와 함께 좀 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 간의 상대적인 위상의 변화가 전면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 정체성, 세계관이 긴장 속에서 일정하게 공존하는 상태가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9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큰 관심을 모았던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 충돌론’ 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그 이론의 단순성과 결론의 과격함으로 인해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해 더 이상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만큼 그에 제기된 수많은 비판이 문명충돌론을 재론하는 것을 터부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제기된 모든 단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명충돌론은 여전히 중요한 이론이고, 적어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문화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매우 유용하다. 특히 많은 이들은 헌팅턴이 문화/문명을 본질주의적인 관점(primordialism)에서 이해한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이론을 거부해 왔는데, 그러한 비판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와 문명의 ‘물화’(物化)에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사회학적, 포스트모던적 반(反)본질주의 문화개념이 과연 국제문화의 분석에 적합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피터 카첸스타인(Peter Katzenstein)이 헌팅턴 식의 본질주의를 상당히 완화한 형태의 문명 개념을 국제정치 분석의 중요한 개념 틀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첸스타인에 따르면 단일한 문명적 핵심을 가정하는 대신 문명의 중층성, 다차원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문명 내에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다양성을 인정할 경우 문명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과학 개념일 수 있다. 우리는 카첸스타인의 접근법을 통해 헌팅턴식 본질주의와 포스트모던적 탈본질주의 사이의 적절한 타협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Katzenstein 2010).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아래에서는 주로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미국과 중국이 세계문화질서 내에서 각자의 영향력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특히 양국 간 ‘문화경쟁’을 ‘문명표준’(standard of civilization)을 둘러싼 경쟁의 차원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서구 문화권의 변환: 미국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북미와 유럽 대륙의 서구 문화권 국가들은 보편적 문화의 전파자, ‘문명 표준’(standard of civilization)의 확산자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을 유지해 왔다. 그 전반적인 양상에 관해 어느 정도의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적어도 20세기 이전까지 세계 여러 지역 간 문화의 전파는 서구에서 비서구지역으로의 일방통행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문명 표준국으로서 '바람직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규범들을 비서구권 국가들에 제시했고, 이들 비서구권 국가들은 그러한 규범들을 때로는 강압과 체념 속에, 때로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16~17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장하여 자리 잡은 근대적 국제정치 체제의 규칙과 규범 역시 유럽 열강들의 해외진출과 함께 새로운 문명 표준으로 비유럽권 국가들에 확산되었다.   이러한 서구 문화권 국가들의 문화 전파자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은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대전의 발발, 미소 간 냉전 대립, 탈식민화와 제3세계 운동 등의 영향으로 일정 정도 잠식되고 약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말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우위가 확인되고 미국이 국제질서 주도국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함에 따라 서구 국가들은 다시 서구식 문명표준의 확산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이래 효과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재정긴축과 무역자유화, 사유화와 탈규제 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Structural Adjustment Program: SAP)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정책 모델로서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가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세계은행(World Bank)와 같은 국제금융기관을 통해 반(半)강제적으로 각 국가들에 의해 채택되거나 혹은 주로 미국의 대학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 공동체의 지적 헤게모니를 통해 자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보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서구 문화권 국가들은 탈냉전 시대 들어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rule of law)와 같은 제도와 규범의 확산을 시도해 왔다. 특히 민주주의의 증진과 확산은 많은 서구 국가들의 중요한 외교정책 어젠다로 채택되었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대통령 혹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미국의 외교정책 전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고, 탈냉전 시대 들어서는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와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행정부가 그러한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정당화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증진은 많은 유럽 국가들의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이기도 하다. 1990년 냉전이 막 종언을 고하고 있던 당시 유럽안보협력회의(Commission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 회원국 정상들은 ‘새로운 유럽을 위한 파리 헌장’(Charter of Paris for a New Europe)을 채택하여 ‘민주주의를 우리 회원국들의 유일무이한 정부형태로 확립하고 강화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또 나토와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민주주의를 새로운 회원국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에 포함시킴으로써 다수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신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서구 문화권 국가들이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명 표준을 옹호하는 것이 단순히 이들이 더 많은 경제적 지배 혹은 더 많은 안보와 평화를 확보하기 원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Ayers 2009). 문명 표준의 전파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 이들 서구 국가들에 의해 하나의 ‘문화 권력’으로 행사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Hobson 2008; Clark 2009). 즉, 서구 국가들의 문명 표준은 문명화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이러한 과정이 새로운 국제 규범의 창출과정으로 이해되기를 원할 것이다. 혹은 국제사회의 규범적 통합이 보다 더 심화되는 과정으로 간주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비서구권 국가들의 관점에서 서구 국가들의 문명표준 제시는 명목상으로나마 엄격하게 유지되었던 국가들 간 평등의 원칙을 포기하고 배제와 차별의 원칙을 도입하려는 조짐으로 읽힐 수 있다. 혹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문명화된 사회와 야만적인 사회의 구분을 부활시키려는, 국제사회를 소수의 특권적 국가와 그 이외의 국가로 구분하려는 시도로 비춰질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차원의 금융경제위기가 도래하면서, 또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잠식이 그러한 경제위기와 직간접적으로 맞물려 진행되면서 서구 문화권 국가들이 문명 표준을 제시하는 방식에도 일정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지난 20여 년 간 추진해 온 민주주의의 증진과 확산 정책이 명백한 한계에 직면하면서 이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전쟁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민주화임을 천명한 이라크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민주주의의 증진을 위해 군사력의 사용조차도 용인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적인 미국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정책의 대상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매우 선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자 ‘반(半)봉건적인 독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민주주의와 인권원칙의 확산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다. 반면에 현재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민주화’된 국가라는 점이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부분적으로나마 반영되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물론 여기에서 외교정책에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갈등과 절충이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어떤 국가도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적인 국가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은 그 레토릭의 강력함이 실제 정책 내용과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그리고 여기에 정책의 주체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점이 더해져서, ‘오만하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초당적인 합의사항이던 민주주의 증진정책이 정책의 과도함을 비판하는 민주당 중심의 정치세력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부담을 짊어지더라도’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공화당 중심의 세력 양자 간의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는 점도 매우 뼈아픈 변화로 꼽히고 있다(Rachman 2009, 121)...(계속)

김준석 2011-03-07조회 : 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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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8]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이재승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초청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일민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과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에너지•자원•환경센터장을 맡고 있다. 에너지 관련 주요 논저로는 Energy Conservation in East Asia: Toward Greater Energy Security (2010, 공저), "EU's Green Energy Strategy: The Policy Responses to Renewable Energy and Climate Chang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2010)," “Energy Security and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Korea Journal of Defense Analysis, 2010), “한국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의 재고찰: 해외자원개발과 녹색성장을 중심으로 (〈국제관계연구〉, 2009)” 등이 있다.         I. 서론   1.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제 에너지 관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화석연료 사용 증가세를 일시적으로 감소의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세계 석유 수요의 감소는 1993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현상이다(Ruhr 2010). 2008년 여름 배럴 당 140달러를 넘어서던 국제 유가는 같은 해 말 40달러 대로 급락하였고, 최근 80달러 대를 회복하였다. 국제유가는 경제회복세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금융위기가 최종 에너지 수요 및 현금 유동성을 감소시킴으로써 에너지 투자를 위축시켰으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림 1]은 최근 급격히 증가한 국제유가의 변동 폭을 보여준다.   [그림 1] 국제유가의 추이 (2000-2010, 단위:$)   출처: EIA Statistics 2010   한편 금융위기는 정치적인 기조 변화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 정책기조를 도입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왔다. 실제로 금융위기 자체가 에너지 가격의 상승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정점 대비 급격히 하락한 상태에서, 향후 에너지 수급 모델에 있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시간을 제공했다는 데에서 국제 에너지 질서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가져 온 것은 분명하다. 또한 향후 고유가 체제 및 화석연료 고갈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청정에너지 체제를 강조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환이 이루어진 것도 주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한국 등이 모두 녹색성장 기조를 통한 고용의 창출 및 경기 회복을 금융위기의 극복 방안으로 천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 에너지 이슈의 성격   에너지 자원은 국제시장에서의 단순한 교역 상품뿐만 아니라 주요한 전략적 자산이 됨에 따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전략적 고려는 민간 주체를 넘어서 국가중심적인 국제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주요 에너지 생산국의 국영기업들은 기존 및 미채굴 유전의 절대적인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해 나가고 있다. 수요국 역시 주요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을 사활적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에너지 안보의 차원에서 수급 문제를 다루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문제에는 안보적 요소와 시장적 요소, 그리고 상위정치적 요소와 하위정치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이들 요소들의 관계는 다층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이재승 2005). 에너지 관계에 있어서는 많은 경우 안보관계와 경제관계가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참여하는 주체들간의 역학관계 역시 이 두 가지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국제 에너지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밝혀내는 데는 정치적 결정론 및 경제적 결정론 모두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국제 에너지 관계는 이슈별, 주체별로 다원화된 다층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3.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구성   국가 중심적인 에너지 체제 하에서 기존의 에너지 국제협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특히 소비국간 및 생산자-소비자들간의 협력이 미비하였다. 본 연구는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의 특징을 고찰함에 있어서, 왜 소비자들간 및 생산자-소비자들간의 에너지 국제협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는가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저유가 체제의 지속과 같은 시장 구조의 차원, 국가이익이 우선시된 에너지 안보 전략의 추구 (e.g. 현실주의, 중상주의적 접근), 그리고 국제에너지 관계에 있어서 리더쉽과 거버넌스 부재 등의 요인들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 국제협력의 조건과 가능성이 보다 명확히 부각될 수 있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협력의 조건에 있어 공공재의 창출 (예: 거래비용, 법적-제도적 장치)과 거버넌스의 형성에 강조점을 둔다.   또한 본 연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이 등장한 녹색 에너지의 기조와 정책들이 과연 새로운 에너지 거버넌스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고찰한다. 이는 다분히 당위론에 기반한 낙관주의적인 녹색 에너지 협력 논의를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향후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의 모습을 구체화하고자 한다.   II. 국제 에너지 수급 전망과 에너지 안보의 도전   1. 국제 에너지 수급 전망   국제 에너지 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의 전망에 따르면 국제 에너지 수요는 2030년까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일차 에너지 수요는 2007-2030년 사이 연평균 1.5%씩 총 40% 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IEA 2009a). 아시아 지역의 개도국, 특히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가 이러한 수요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 되며, 중동 지역이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들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은 에너지 수요의 급격한 증가를 동반하고 있으며, 비효율적인 에너지 관리 및 각종 보조금으로 인해 구조적인 취약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현재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은 단순히 공급의 불안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흥개도국들을 중심으로 한 수요의 증가와 기존의 공급량과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에너지 정책 결정자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불확실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기준 시나리오(reference scenario)에 의하면 화석연료는 여전히 가장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며, 2007-2030년 사이 에너지 증가의 75%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석유는 2030년 에너지원 구성비(energy mix)에 있어 현재의 34%에서 30%로 비중이 감소하나 여전히 가장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비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국가들의 석유 소비 증가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가스의 경우 기존 가스전에서의 생산은 감소하고 있으나 미국의 쉐일 가스(Shale gas)를 비롯한 비전통적 가스의 발견으로 공급량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석유 보다는 덜 경쟁적인 수급 구조를 가질 것으로 보이나, 동시에 전세계적인 수요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IEA 2009a).   가스와 석탄에 대한 수요는 특히 발전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보이며, 신재생에너지 역시 빠른 성장세를 보여 발전분야에 있어 수력을 제외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07년 2.5%에서 2030년 8.6%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원자력, 탄소포집 및 저장능력을 갖춘 시설에서의 전력 생산은 총 발전량의 약 60% 정도를 차지하게 되며, 이는 현재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처럼 전체 에너지 구성비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증가할 것이나, 총량에 있어서 화석연료는 2030년 87%로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기준 시나리오는 예측하고 있다(IEA 2009a). 이러한 비중은 온실가스 절감을 전제로 한 대체 시나리오(450 시나리오) 에서 일부 변화되어 상대적으로 신재생에너지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화석연료의 비중은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적인 구성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2, 3, 4]는 이러한 국제 에너지 수급 전망을 보여준다...(계속)

이재승 2011-03-07조회 : 15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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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7]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승주 교수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Springer, 2008),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Springer, 2010)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세계화 시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발전전략 등이다.         I. 서론   1997-8년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불과 10년 만인 2008년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위기가 동아시아발(發)이었던 데 반해,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발이었다는 점이다. 위기가 미국발이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직접적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기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로 수출의 감소와 경기 후퇴 등 그 간접적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써 서구 선진국과 동아시아 경제가 분리(decouple)되기 시작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한 반면, 양자 간 경제적 연결(coupling)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미국 측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Wolf 2008).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선 G20 정상회의로 대표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G7과 같이 선진국 또는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글로벌 거버넌스와 달리,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G20의 형성 과정에 대거 참여했다. 또한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개혁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의사결정권이 증대되는 중요한 변화도 초래되었다. 이 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참여의 통로를 확대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구적 차원뿐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 특히 동아시아 금융질서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과거 지역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직면했던 아시아 금융위기와는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교적 신속하게 지역 차원의 대응책을 실행하였다. 이는 지난 10여 년 간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융 협력을 추진해온 결과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양자간 통화교환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CMI) 등 금융 협력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협력의 경험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국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경쟁과 같은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hian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zation: CMIM)라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금융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 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을 검토하고, 새로운 금융 거버넌스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 전망을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다음의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첫째,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동아시아 금융 질서가 발전되어 온 과정을 검토한다. 둘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을 고찰한다. 셋째,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을 국가적 수준과 글로벌 수준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넷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금융 질서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다섯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질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II. 2000년대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의 전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성격과 범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지역적 또는 외부적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등 기존의 지역 기구는 금융위기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을 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이 시기부터 동아시아를 지역적 범위로 한 협력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MacIntyre et al. 2008). 199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과 한국,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가 출범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Stubbs 2002). 아세안+3(APT)는 2000년대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내용적 측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까지 동아시아 지역 협력은 주로 무역 자유화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는데, 금융 위기를 계기로 금융 분야의 협력에 대한 노력이 급진전되었다(Amyx 2004).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급속하게 확산됨에 따라, 역내 국가들은 처음으로 금융 분야에서 지역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위기에 처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요구한 것 역시 지역 차원의 정부 간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고조시켰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 협력과 관련 다음과 같은 필요성을 공감하였다. 위기가 재발할 경우, 지역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신속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역내 국가들의 환율 안정과 감시를 위한 지역 차원의 협력을 모색하며, 동아시아의 금융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또는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Higgott 1998).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는 대체로 네 가지 방향에서 발전해왔다: (1)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통한 긴급 유동성의 제공; (2) 아시아채권시장이니셔티브(Asian Bond Market Initiative: ABMI)와 아시아채권기금(Asian Bond Fund: ABF)을 통한 역내 채권 시장의 육성; (3) 아시아 통화단위(Asian Monetary Unit: AMU)과 같은 공동 통화의 도입을 위한 협력; (4) 감시, 정책 대화(policy dialogue), 트랙 II 교류를 통한 역내 국가 간 커뮤니케이션의 증진이 그것이다(Grimes 2009). 아시아 금융위기의 발생 직후인 1997년 11월 아세안+3(APT) 정상회담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출범을 위한 논의의 시발점이었다(Amyx 2004; Park and Wang 2005). 이후 수 차례의 논의를 거쳐 향후 금융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목적으로 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2000년 5월 아세안+3(APT) 재무장관 회의에서 발효되었다(Chey 2009).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역내 16개 중앙은행들이 체결한 양자 간 통화교환협정이다. 처음에는 365억 달러 규모로 출범하였고, 이후 그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9년 6월에는 920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림 1]에 나타나듯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공식적으로는 양자 간 통화교환협정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원화된 구조를 취하였다. 첫째, 한국과 중국 및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각각 총액 80억 달러와 60억 달러에 달하는 통화교환협정이 체결되었다. 교환의 방식도 양 당사국이 대등하게 40억 달러와 30억 달러를 교환하되, 달러화가 아닌 자국의 통화를 교환하도록 하였다. 둘째, 한국과 일본 간 통화교환협정은 총액 210억 달러에 달하는 최대 규모이며, 이 가운데 일본이 130억 달러, 한국이 80억 달러를 상대국에 제공하도록 설정되었다. 또한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를 기반으로 한 교환의 규모는 60억 달러, 달러화의 교환 규모는 150억 달러이다. 셋째, 한∙중∙일이 아세안 국가와 체결한 협정에서도 상당한 차별성이 나타난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직접 경험하였던 한국은 동남아 주요 국가들과 달러화를 교환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반면, 중국은 양자 간 교환이 아닌 사실상 일방적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 형태를 취했다. 일본은 일부 국가와는 통화의 교환을, 일부 국가와는 일방적인 지원을 하는 중간 형식을 취했다. 이와 같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구체적 운영 방식은 국가 별로 매우 상이하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운영체제에서 또 주목할 점은 20 퍼센트 규정이다. 이 규정은총 교환 규모 가운데 20 퍼센트 에 대해서는 자금 제공국이 아무런 조건을 부과하지 않고 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한 규정이다. 다만, 20 퍼센트를 초과하는 유동성을 제공해야 할 경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는 이른바 ‘IMF-link’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은 유동성 지원 시 까다로운 조건을 부과하였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상당한 차별성을 보이면서도, 동아시아 국가 간 금융협력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기존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추구하는 원칙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복합적인 목표를 추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계속)

이승주 2011-02-22조회 : 1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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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6] 위기 이후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손열 교수는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교수, 도쿄대학 외국인연구원,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일본 정치경제,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등이 있다. 최근 저술로는 “동아시아 경합하는 국제사회 구상” (〈세계정치〉 2009), “소프트파워의 정치 : 일본의 서로 다른 정체성” (〈일본연구논총〉 2009), “Japan Between Alliance and Community” (East Asia Institute Issue Briefing 2009), “Japan's New Regionalism: China Shock, Universal Values and East Asian Community,” (Asian Survey 2010, 50:3) 등이 있다.         I. 서론   무역은 국부를 증진하는 주요 수단이다. 무역 중심의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무역은 외교정책 수단이기도 하다. 교역상대국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 국가가 적국이면 비경제(diseconomy)를, 우방국이면 긍정적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를 가져다준다(Gowa and Mansfield 1993). 따라서 전자에게는 무역을 통제하여 견제하고, 후자는 무역을 확장하여 우호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무역을 통해 상대국의 부가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국가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국의 성장노선(수출선)을 자국의 수입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그 국가를 구조적으로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Hirschman 1945). 무역패턴을 전략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외교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이렇듯 무역은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국가들은 국제무역체제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구성하고자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무역질서는 전간기 주요국간 경쟁적 보호주의의 결과로 세계대전을 치렀다는 인식 속에서 일종의 지구공공재로 받아들여졌으나 다른 한편으로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이익을 담는 것이기도 하였다. 자유무역은 경쟁우위국가(즉, 패권국)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Krasner 1985). 미국은 관세무역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체제 속에서 일련의 라운드를 주도하면서 무역자유화를 꾸준히 추진하였다. 반면, 미국은 서유럽이 국내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주의적 규제를 추진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였고, 일본과 한국이 경제성장을 위해서 중상주의적 정책을 취하는 것도 용인하는 이른바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를 추구하였다(Ruggie 1982). 냉전이란 지정학적 고려 때문이었다(Ikenberry 2004).   냉전이 끝나고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구화(globalization)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서 이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구화를 의미하는 언어이고 패권의 상징이었다. 자유시장, 작은 정부, 대외개방이란 자본주의 표준을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미국은 한편으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을 활용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자유무역정책을 추구하였다. ‘자유무역’은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 원칙으로서 경제∙제도적 개혁, 부패타파, 자유의 습관(habits of liberty)을 고양하는 수단이므로 이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White House 2002, 21-22). 다시 말해서, 단순히 무역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을 넘어서 국내체제도 특정하게 변화, 수렴시키겠다는 것으로서, 이제 내장된 자유주의는 부정되었다. 더욱이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의 과도한 개입이 결과적으로 기구의 효능을 감퇴시킴에 따라 워싱턴 컨센서스 전도사로서의 기능 역시 약화되면서, 자유무역은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하는 핵심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워싱턴 컨센서스란 미국적 질서를 확산하려는 노력은 무역의 차원에서도 도전을 받게 된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시애틀 회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론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였고, 곧이어 2001년 도하(Doha)선언도 정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속에서 미국의 경쟁국들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유럽국가들은 경제통합을 통해서 단일경제권을 형성하였고, 동아시아 국가들도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의 망을 확대, 심화시켜왔다(Dent 2007). 이에 대해 미국은 2002년을 전기로 국제기구를 통한 질서/레짐 구축으로부터 지역 및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전략을 전환하게 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무역질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및 소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은 상대국에 대한 서로 다른 경제적, 전략적 이해가 관련되기 때문에 이를 전체적으로 엮어 특정한 레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아키텍쳐와 고도의 추진 전략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21세기 경제의 공간은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적으로 통합되는 상호의존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생산네트워크와 그 속에서의 산업내(intra-industry), 산업간(jnter-industry) 무역이 다양한 경제행위자들을 촘촘히 연결해 나가는 경제공간인 만큼 권력장의 속성 역시 전통적 국제정치와 일정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자유무역협정(FTA) 경쟁의 본질은 한 국가가 타국가를 강요하여 편 가르고 줄 세우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여 자기의 이익을 실현하는가 하는 네트워크 경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네트워크 경쟁은 구성원(노드)이 네트워크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규정하는 능력, 즉 네트워크의 플랫폼을 설계하는 능력(architectural power), 둘째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 중개하는 능력(positional power), 셋째,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능력(social power), 끝으로 이런 대외적 시도에 대한 국내적 지지를 동원하는 능력에 달려있다(Grewal 2008; 김상배 2009; Kahler 2009).   이 글은 주로 동아시아 지역을 주 대상으로 하여 미국적 질서의 구축과 재구축, 이에 대한 도전의 동학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기구를 통한 미국의 세계무역레짐 구축 전략을 기술한 다음, 둘째, 역내 권력이동의 추이와 본질의 분석, 셋째, 2008년 위기를 계기로 전개되는 새로운 정치경제 동학의 분석, 끝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엮일 지역무역체제의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향후 지역 무역질서는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심화를 통해 중국 중심으로 짜이는 무역네트워크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항네트워크의 도전으로 네트워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쟁력은 네트워크 플랫폼을 여하히 설계하여 역내국가들을 끌어들이는가에 달려있다.   II. 미국의 패권질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침   워싱턴 컨센서스는 자유시장(free market)이란 가치를 전세계적으로 구현하는 이념 프로그램이다. 애당초 이는 워싱턴에 소재한 기구(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미 재무부)들이 중남미국가들에게 제공한 정책제안의 최소 공통분모로서 자유화 경제개혁프로그램을 의미하였으나(Williamson 1989), 이후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라는 보다 포괄적인 경제이념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정책 매니페스토(policy manifesto)로 확장되어 사용되어왔다. 여기서 무역은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자유로운 무역으로 국내제도를 개혁하고 시장기제가 작동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자유무역은 부의 증진수단인 동시에 법치와 민주정부를 추동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현하는 정책수단인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상을 풍미한 시기는 냉전종식 이후인 1990년대부터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세계무역질서를 ‘열린 국경, 열린 무역, 열린 마음’으로 표현하였고 나아가 빌 클린턴은 시장민주주의 공동체를 주창한다. 자유 즉,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시장경제를 핵심가치로 공유하는 세계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비전이지만 곧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였다. 클린턴기의 미국의 정책은 상품, 서비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모두에게 상호이득이 된다는 자유무역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 하였다. 오랜 맹방인 일본이 시장개방의 타겟이 되었고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과 함께 미국은 지역적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란 제도적 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장개방을 추구하였다. 미국은 1993년 보고르(Bogor) 목표, 1996년 자발적 조기자유화조치(Early Voluntary Sectoral Liberalization: EVSL)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역자유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성기는 1997년 동아시아금융위기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반 금융자유화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더 많은 국제자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국제적 압력 즉,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파 때문이었다. 개방에 따른 내부적 부적응 즉, 관리, 감독체제의 미비와 비대칭적인 - 불균등한 - 자유화의 결과로 동아시아는 금융위기에 함몰되었고, 이들에 구제금융을 공여한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대가로 강도 높은 워싱턴 컨센서스 이행조건을 강요하였다. 예컨대, 한국은 고금리, 긴축정책을 넘어 금융시장 구조조정, 자본거래자유화, 기업지배구조 개혁, 노동시장개혁과 함께 무역자유화까지 포함한 전방위 신자유주의개혁을 요구 받고 이행해야 했다. 요컨대,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적절한 수용으로 야기되었고 위기극복을 위해 이를 더욱 철저히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재미있게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가혹한 이행조건은 역으로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통화기금(IMF)를 기피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가혹한 이행조건을 받지 않으려는 까닭이었다. 동아시아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지 않기 위해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임으로써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World Bank) 두 국제기구가 추진한 워싱턴 컨센서스 프로그램에 대한 이념적 반발이 대두되었다. 특히 시장개방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부 선진국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개도국의 논리, 시장원리주의에 따른 사회적 가치의 실종을 비판하는 유럽의 목소리, 환경과 노동 가치를 희생한다는 선진국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의 비판이 어우러지면서 1999년 〈시애틀 WTO 회의〉는 파행을 맞이하였다. 미국적 질서에 대한 최초의 조직적인 대규모 반기이었다.   이어서 2001년 〈도하라운드〉 역시 자유무역에 대한 반기로 점철되었다. 무역에 개발이슈를 연계시키고, 농업, 서비스, 환경,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하였으나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대립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2003년 〈칸쿤 회의〉 역시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끝나게 되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추진이 지구다자기구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인식한 미국은 지역다자 및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서 추진하기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그 핵심인물은 졸릭(Robert Zoellick)이었다. 당시 미국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대표로서 그는 이른바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란 언어로 새로운 무역정책을 표현하였다. 지구다자협정, 지역,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상호보완적이고 상호강화적 형태로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전세계의 무역자유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Zoellick 2002). 여기에는 자유무역이 단순히 경제적 부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함께 깔려있다. “개방무역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자유의 습관을 강화한다”는 부시의 메시지처럼, 무역은 비극적인 9.11 테러사태를 전기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미국의 목표를 추구하는 하나의 중요수단으로 간주되었다(White House 2002).   구체적으로 졸릭은 무역을 통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범주의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첫째, ‘비대칭적 상호주의’(asymmetric reciprocity)로서 시장권력의 비대칭성으로 협상력을 확보하여 미국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상대국 시장을 개방한다. 둘째, 포괄적 무역협정의 촉매제 혹은 벤치마킹이 되는 선례 혹은 모델을 구축한다. 셋째, 상대방의 국내 시장주의적 개혁과 민주제도를 지원한다. 넷째, 지역의 주도국가와 전략적 파트너쉽을 강화한다.   히갓(Higgott 2004)에 의하면 부시정부의 일방주의는 자유주의-이상주의적 근본주의라는 희한한 이념적 조합에 기초하고 있으며, 경제정책에 있어서 ‘지구화의 안보화’(securitization of globalization)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적 정책을 전략적 목표 하에서 추진하고자 하였고 이를 지지하는 제도적 장치는 ‘초당적 무역촉진권한’(Bipartisan Trade Promotion Authority of 2002)이었다. 의회가 행정부에 무역협상에 대한 신속지원(fast-track)권한을 부여하여 “보다 개방적이고 균등하며 상호적인 접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서 당시 테러와의 전쟁이란 상황적 맥락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은 요르단, 칠레, 싱가폴, 호주, 모로코, 오만, 바레인,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엘 살바도르, 과테말라, 혼두라스, 니카라과,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그리고 한국이었다. 또한 교섭중단 국가로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있다. 이들은 한국과 호주를 예외로 하면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은, 따라서 경제적 가치보다는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여 선정한 국가들이다. 미주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지역을 견고하게 확보한다는 전략적 고려,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맥락에서 선정되었다(Sohn and Koo 2010). 예컨대, 미국은 말레이시아와 자유무역협정(FTA) 교섭을 시작하면서 “말레이시아는 온건한 무슬림국가로서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이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은 안보적 차원에서 중요한 정책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계속)

손열 2011-02-22조회 : 1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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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5] ‘복합 네트워크 시기’(Complex Network Moment) :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세종연구소 지역연구실 연구위원. 김치욱 박사는 미국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가톨릭대 아태지역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했다. 관심 분야는 미국 대외경제정책, 국제금융정치, 중견국가론, 동아시아 정치경제,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며, 최근 논저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형성과 미국의 네트워크 권력: 국제투자협정을 중심으로" (〈세종정책연구〉, 2010), "외국 금융자본 유치와 금융선진화의 성공조건" (《시장경제와 외국인투자 유치》, 2010), "국제정치의 분석단위로서 중견국가: 그 개념화와 시사점" (〈국제정치논총〉, 2009), "미국의 Gs 창출과 패권의 네트워크화 전략" (〈세종정책연구〉, 2009), "국제금융제도 개혁과 중견국가: G20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2009), "G20의 부상과 중견국가 한국의 금융외교" (〈국가전략〉, 2009)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잇달면서 세계경제질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두 위기는 그 원인은 다를지 모르지만 전후 서구가 주도해온 세계경제질서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이러한 서구의 정치경제적 지도력에 대한 회의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패권이 중국과 아시아 및 신흥시장으로 급속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앞으로 미-중 간 패권이전에 따른 국제경제질서의 전면적인 개편 가능성을 점친다. 경제이념 측면에서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유용성이 의문시되었다면, 이번 위기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노출시켰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래 처음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발생했다는 역사적 의미 외에도, 미래 국제경제질서의 향배에 관한 궁금증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2009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위기 이후 세계의 형성’(Shaping the Post-Crisis World)을 주제로 삼았고, 미국 시사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도 2010년 ‘세계의 미래’(The World Ahead) 특집호에서 국제정치의 주요 경향과 미국 및 신흥국가의 새로운 위상에 대해 조명했다. 위기 이후의 세계경제질서는 정당성 위기 단계를 거쳐 과도기(interregnum)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점치기 어렵다 .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급효과에 관한 논점은 미국과 중국 경제력의 향방, 경제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퇴조 여부, 그리고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양식의 변화로 요약된다.   본 논문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측면에 초점을 맞춰 금융위기의 국제정치적 결과를 고찰한다. 금융위기가 전후 자유주의 국제주의 2.0(Liberal Internationalism 2.0)에 ‘권위의 위기’(crisis of authority)와 함께 ‘거버넌스의 위기‘(crisis of governance)를 동시에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Ikenberry 2009). 이 글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의 거버넌스는 일종의 ‘복합 네트워크 시기’(Complex Network Moment)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복합네트워크는 전통적 국제정치 행위자인 국가들의 경쟁과 협력 이외에, 정부간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s: IGOs), 정부네트워크(Inter-governmental Networks: IGNs), 초정부네트워크(Trans-governmental Networks: TGNs), 그리고 초국가 네트워크(Trans-national Networks: TNNs) 등이 세계경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일정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하는 거버넌스 양식을 말한다.   미국과 서구는 이라크전쟁과 금융위기를 통해 각각 군사적, 경제적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찾아온 미국의 단극시기(unipolar moment)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고, 유력한 대안으로 G2(미국∙중국), 3극(미국∙EU∙중국), 다극체제 등이 거론되었다. 동시에 정보화와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극성(polarity)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퇴색되었다. 대신 다양한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과 이들의 네트워크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는 다원적인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사실 세계질서의 변환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전부터 여러 차례 논의되었다. 소위 ‘신세계질서’ (new world order)의 도래는 1차대전 후 우드로 윌슨, 2차대전 후 윈스턴 처칠, 냉전 종식 후 조지 부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고든 브라운과 버락 오바마 등에 의해 선포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신세계질서는 서구의 승리를 기념한 것이라면, 21세기의 신세계질서는 서구의 패배를 자인하는 성격이 짙다. 이러한 변환의 동력은 다름 아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 등 소위 ‘나머지의 부상’(Rise of the Rest)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경제질서의 물질적 기반의 재편을 가속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G20 정상회의를 국제경제협력의 최고 포럼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했다. 특히 G20은 국제경제의 새로운 네트워크적인 거버넌스 모드라는 점에서 국가 간 능력배분과 경쟁 구도의 변화에 더해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복합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물론, 세계경제 거버넌스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이 논문의 복합네트워크는 국가 행위자의 역할 확대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합적 상호의존론(complex interdependence)이나 초정부주의(transgovernmentalism)와 차이가 있다. 복합적 상호의존론(Keohane 1972; 1977)은 국제정치에서 비국가 행위자의 상대적 위상 강화에 주목한다. 초정부주의(Slaughter 2004)는 국가행위자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현실주의적인 상위정치보다는 하위정치 행위자로서 다양한 정부기관 네트워크의 역할을 강조한다. 세계정치의 중심이 ‘정부에서 거버넌스’(government to governance)로 이동하면서 다국적기업, 비정부기구 등 새로운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제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일차적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Underhill 2008) . 슬로터(Slaughter 2004)는 ‘신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초정부 네트워크’라면서, 법원, 규제기관, 공정거래기구 등 하위 정부기관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등장에 주목한다. 나아가 이들 네트워크는 위계적이고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되었던 국가를 대신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초정부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가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중심으로 복귀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Altman 2009). 단적인 예로 국제경제협력의 최고 포럼으로 지정된 G20정상회의는 전형적인 국가 중심적인 제도다(Cooper 2010, 744). [그림3]에 예시된 기타 3G (Global Governance Group), C10 (Committee of Ten African Ministers of Finance and Central Bank Governors), G24 (Intergovernmental Group of Twenty-Four on International Monetary Affairs and Development), 브릭스(Brazil, Russia, India, and China: BRICs) 등도 모두 정부간 네트워크로서 최근 세계경제 거버넌스 개혁에 있어서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논문의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통화스왑 등 양자주의적인 방식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다자적인 틀에 초점을 맞춘 복합적 다자주의(complex multilateralism)와도 차별성을 띤다.   아래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읽어내기 위해 먼저, 기존 주류 국제정치이론에서 국제질서 변화의 핵심 동인으로 간주되는 물질적, 이념적, 제도적 토대가 금융위기로 인해 어떠한 도전에 직면했는지 살펴본다. 이어 3장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아키텍처로서 복합네트워크의 개념을 설명한다. 4장은 G20을 중심으로 정부간기구(IGOs), 정부네트워크(IGNs), 초정부네트워크(TGNs) 등이 하나의 거버넌스 망(網)을 이루는 과정을 분석한다. 결론으로 5장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네트워크화가 국제정치학과 한국 외교에 주는 이론적 정책적 도전을 논한다...(계속)

김치욱 2011-02-22조회 : 1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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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4]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반도 안보질서의 변화

명지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황지환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 at Boulder)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연구관심은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동북아국제관계 및 안보문제이며,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주요 논저로는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and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IRI Review, 2008), “Offensive Realism, Weaker States, and Windows of Opportunity: The Soviet Union and North Korea in Comparative Perspective” (World Affairs, 2005), “전망이론을 통해 본 북한의 핵정책” (〈국제정치논총〉, 2006) 등이 있다.         I. 세계금융위기와 한반도 안보질서   최근의 세계경제는 금융위기로부터 점차 회복되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그 성격이나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예외적인 것이어서 위기의 장기적인 영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는 장기적으로 지정학적인 세계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반도 역시 그 영향에서 예외적일 수 없다. 현재 금융위기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을 가져오며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Renard 2009). 특히 금융위기의 회복과정에서 미국보다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어 향후 동북아 질서에는 지정학적인 변화를 통한 세력균형의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연평균 10%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며 지역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전 세계를 통해 미국을 상대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동북아 안보질서는 이제 성장하는 중국의 영향력과 미중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미중관계의 변화가 가지는 영향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동맹이나, 북한문제, 동북아평화의 질서를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지구적 차원이나 동아시아 차원보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관계의 변화라는 변수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따라서 냉전의 종식이후 미국의 단극적(unipolar) 질서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한반도 주변 안보질서는 근본적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 하에서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을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세계금융위기이후 변화하는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에 바탕을 두고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안보환경을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냉전의 종식 이후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한반도 주변의 주요한 안보이슈인 한미동맹, 북한문제,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질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이슈들은 냉전의 종식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황지환 2007). 한미동맹은 21세기 미국의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재조정을 경험했다. 북한 문제는 1990년대 초반 이래 핵 위기와 정권생존의 문제를 야기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커다란 도전이 되어 왔다. 또한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한 안보환경에 대해 동북아 국가들은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처럼 냉전의 종식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경험한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은 최근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정학적 세력판도의 변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재조정의 시기에 와 있다. 따라서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의 지정학적인 세력판도가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분석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 주요한 변수는 한반도 주변에서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차원에서 미국의 상대적 약화 가능성과 중국의 상대적 부상 여부이다. 미중관계의 변화는 동북아에서 미일관계와 중일관계의 변화를 야기시킬 것이며, 이는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에 핵심적인 변화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인 변화가 한반도 안보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더구나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태와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가 위기국면으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인 변화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II. 한미관계의 미래   1. 미국의 외교안보전략과 한국   2010년 5월 발표한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보고서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다(NSS 2010).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세력분포가 변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The world as it is today)를 보고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이 직면한 ‘있는 그대로의 세계’란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조차도 혼자 힘으로는 글로벌 차원의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도전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국가들이 새로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며 새로운 ‘영향력의 중심지가 출현’(emerging centers of influence)하고 있다고 국가안보전략(NSS)는 인식하고 있다.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경향은 2010년 2월 발표된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 QDR)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QDR 2010). 게이츠 국방장관이 강조하였던 '균형 전략'(balanced strategy) 개념이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재균형’(rebalancing)으로 정교화되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점은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이 부시행정부 때와는 달리 상대적 힘의 쇠퇴를 반영하여 기존의 하드파워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변화는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와 균형 및 국제제도의 위상회복, 다자적 접근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이상현∙하영선 2010).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의 상대적인 영향력의 감소를 반영하여 국제협조를 가장 중요한 정책적 기반으로 제시하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특히 세계금융위기의 와중에 G20이 최고의 국제경제포럼으로 부상하면서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더 많은 지구적, 지역적 역할을 맡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새로운 중심 국가들이 세계질서를 위해 더 많은 공헌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에 의해 촉진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나머지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은 새로운 중심 국가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에도 상당한 역할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한미관계의 변화에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다. 세계금융위기가 한미관계의 변화를 새롭게 촉발시킨 것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동맹의 변환과정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모시킨 것은 사실이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반테러전쟁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를 외교안보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강조하며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GPR)과 동맹변환 및 해외기지의 재조정을 핵심적인 현안으로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 역시 주요한 변환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결과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 기지의 재조정, 전략적 유연성 및 전시작전통제권 등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재조정 과정을 거쳐 왔다(황지환 2007). 이처럼 지난 10여년간의 한미동맹 변환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과 정책을 재조정하는데 주요한 초점이 두어졌다면, 최근의 한미동맹의 변화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글로벌 질서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재정의하는 데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신성호∙하영선 2010). 2010년 한국이 의장국이 되어 G-20 회의를 개최하고 2012년 제 2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를 개최할 정도로 국가역량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동맹변화는 일견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2. 한미전략동맹과 한국의 역할   2009년 6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사이에 채택된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청사진을 담고 있다(외교통상부 2009/6/16). 이 선언에서 한미 양국은 동맹의 “공고한 토대를 바탕으로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양자 지역 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미동맹을 재조정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대한민국은 동맹에 입각한 한국방위에 있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은 한반도와 역내 및 그 외 지역에 주둔하는 지속적이고 역량을 갖춘 군사력으로 이를 지원할” 것을 합의하였다. 또한 한미는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확산, 해적, 조직 범죄와 마약, 기후변화, 빈곤, 인권 침해, 에너지 안보와 전염병 같은 범세계적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평화유지와 전후 안정화, 그리고 개발 원조에 있어 공조를 제고”하며, “G20와 같은 범세계적인 경제 회복을 목표로 한 다자 체제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 따라서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한국과 미국이 “모든 수준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공동의 동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한미동맹의 변화과정에서 이 선언이 가지는 의미는 한국방위의 한국화와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한국의 역할 증대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미래상은 한반도에서는 한국이 안보의 중심이 되고 미국이 지원하는 방식을 지향하며, 글로벌 차원에서는 한국의 역할이 한반도를 넘어서서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협력해 가는 모습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동맹의 변화과정은 기존의 한미안보협의회의(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SCM)나 전략대화(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ship: SCAP)와 더불어 작년 7월 처음으로 개최된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인 ‘2+2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의 청사진을 담은 새로운 전략적 마스터 플랜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미동맹은 한국이 미국에 절대적으로 안보를 의존하는 비대칭적인 동맹(asymmetric alliance)으로 규정되었지만, 한미동맹은 이제 한국이 적극적으로 역할확대를 모색해 나가는 보다 대칭적인 동맹(symmetric alliance)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계속)

황지환 2011-02-07조회 : 1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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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3]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망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 군사학과 교수. 고봉준 교수는 미국 노트르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미국 외교안보 정치를 중심으로 한 국제안보, 군사기술 및 개념 확산, 그리고 군비통제 등이 있다. 최근 저술로는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현실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동향과 전망〉, 2009), "군사력 증강의 정치학” (〈한국정치학회보〉, 2008), “공세적 방어: 냉전기 미국 미사일방어체제와 핵전략" (〈한국정치연구〉, 2007)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2008년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 효과를 미친 금융 위기가 동아시아의 군사안보 질서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금융 위기 이후의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변화를 전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는 전 세계적 영향력 유지를 목표로 하는 미국과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 그 상호작용, 양국 전략적 선택의 물적 기반을 이루는 자원동원 능력 및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형성될 것이다. 특히 미국 발 금융위기는 중국보다 미국의 자원동원능력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우려를 야기하여 전체적으로 냉전 이후 20여 년간 유지되어 오던 소위 단극적 세계질서의 정당성 및 신뢰도를 약화시켰다. 특히 금융위기 촉발 이후에도 중국이 지속적으로 고도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동시에 최대의 미국채권 보유국이 되면서 경제 부문에서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이 동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을 보다 공격적으로 주장하게 되면서 명목상으로는 보다 갈등이 부각되는 미중관계를 형성하는 배경이 된다고 평가되고 있다. 즉 동아시아의 군사안보질서가 금융위기 때문에 급격한 세력전이나 전통적인 세력균형정치의 부활 등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금융위기의 영향력은 간접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 행위자들의 인식과 자원동원능력에 보다 포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부터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에서 이미 가장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였는데, 미국발 금융위기는 바로 이러한 초기 논쟁의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Mastanduno 2002; Johnston 2004; Goldstein 2003; Christensen 2001). 그간 미국 중심의 단극적 체제의 지속을 관찰하면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세력균형론(Waltz 2000; Mearsheimer 2001; Paul 2005; Pape 2005), 단극질서론(Wohlforth 1999; Brooks and Wohlforth 2002; Lieber and Alexander 2005), 세력전이론(DiCicco and Levy 2003) 등 다양한 이론적 관점에서 21세기 국제정치의 중장기적 전망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최소한 세계적 수준에서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강조하던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대결 양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평화적 부상’과 관련된 많은 논쟁이 입증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군사안보 부문에서 기존의 개념인 권력투쟁과 세력 균형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동아시아에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으로 다 포착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상이한 이념과 경제 및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하던 냉전 시기와는 달리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대립은 그 이면에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의 공조라는 상쇄 요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 지역의 두드러진 경제 성장이 일정 정도의 통합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시장평화론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통해 제공되는 경제 이익이 국가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됨에 따라 이의 공유를 위해 국가 간 관계의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Gartzke 2007). 경제 부문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양자 또는 다자 관계의 진전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런 측면이 과거와 같은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대립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익상관자’(stake holder) 와 ‘화평굴기’(和平崛起)개념이 시사 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은 양자 간에 대립과 갈등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 간 협력에 공동의 이익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양국은 1990년대 후반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설정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서는 ‘포괄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일환으로 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상호 군사훈련의 참관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2010년 초 대만에의 미국 무기판매를 이유로 중단되기 이전까지 해군을 위주로 한 해상에서의 합동 구조 훈련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군사적 교류를 유지하여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반을 고려한다면 동아시아에서 점증하고 있는 군사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아시아에 잠재되어 있던 전통적 갈등 요인이 금융위기 이후에 전면에 부상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국의 군사력 강화 추세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주목되던 바이나, 중국 경제력의 상대적 강화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현 질서의 유지를 원하는 미국은 중국의 상대적 강세를 방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중국은 전통적 의미에서 대미 균형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 내의 핵심 이익 수호를 내세우는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에의 접근성 확보라는 미국의 이해 대립은 새로운 충돌의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 내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정립되고 있는 동맹의 네트워크 역시 역내 군사안보질서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위기가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독립변수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각국의 자원동원 능력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 지배력의 한계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양국의 지역 전략과 군사적 준비태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는 미국의 역외균형 플러스 전략과 중국의 역내 질서 관리자 전략이 교차되는 상황에서 양국의 국내외적 자원동원 능력의 부침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영향은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될 수는 없다.    금융위기와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의 상관관계를 검토하기 위해 2절에서는 최근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특징을 국방비의 증가, 동맹의 재조정 및 다자네트워크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검토한다. 3절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군사안보 차원에서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양국의 전략적 태도와 준비태세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의 대응에 대해 검토한다. 결론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는 지역 내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선택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과 중국의 자원동원 능력 및 역내 하부구조를 구성하는 주요 국가들의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II.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특징   1. 국방비 점증 추세   민간연구기관에서 발행한 〈SIPRI 2010〉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국방비는 냉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왔는데, 2000년에 그 총 규모는 1,220억 달러였으나 2009년에는 2,090억 달러로 증가하여 전 세계 국방비에서 13%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였다(2008년 불변가격 기준). 국방비의 절대적 규모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이 동아시아 지역의 상위지출국에 속하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국가들도 국방비를 꾸준히 증액시켜 왔다.  아울러 국방비 규모가 가장 작은 국가 중의 하나인 캄보디아의 경우도 최근에 태국과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국방비를 확충할 계획을 선언한 바 있다. 즉 동아시아 각 국의 국방비 증가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관찰되어오던 하나의 추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미국 및 러시아의 최근 10년간 국방비 추이를 [표1]에 정리하였다...(계속)

고봉준 2011-02-07조회 : 14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