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어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4년 6월에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국가안보패널(National Security Panel: NSP)을 구성하였다. 이후 국가안보패널은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2011),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n복합과 공진》(2013), 《1972 한반도와 주변 4강 2014》(2015),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등 일곱 권의 책을 출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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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5] ‘복합 네트워크 시기’(Complex Network Moment) :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세종연구소 지역연구실 연구위원. 김치욱 박사는 미국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가톨릭대 아태지역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했다. 관심 분야는 미국 대외경제정책, 국제금융정치, 중견국가론, 동아시아 정치경제,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며, 최근 논저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형성과 미국의 네트워크 권력: 국제투자협정을 중심으로" (〈세종정책연구〉, 2010), "외국 금융자본 유치와 금융선진화의 성공조건" (《시장경제와 외국인투자 유치》, 2010), "국제정치의 분석단위로서 중견국가: 그 개념화와 시사점" (〈국제정치논총〉, 2009), "미국의 Gs 창출과 패권의 네트워크화 전략" (〈세종정책연구〉, 2009), "국제금융제도 개혁과 중견국가: G20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2009), "G20의 부상과 중견국가 한국의 금융외교" (〈국가전략〉, 2009)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잇달면서 세계경제질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두 위기는 그 원인은 다를지 모르지만 전후 서구가 주도해온 세계경제질서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이러한 서구의 정치경제적 지도력에 대한 회의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패권이 중국과 아시아 및 신흥시장으로 급속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앞으로 미-중 간 패권이전에 따른 국제경제질서의 전면적인 개편 가능성을 점친다. 경제이념 측면에서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유용성이 의문시되었다면, 이번 위기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노출시켰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래 처음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발생했다는 역사적 의미 외에도, 미래 국제경제질서의 향배에 관한 궁금증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2009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위기 이후 세계의 형성’(Shaping the Post-Crisis World)을 주제로 삼았고, 미국 시사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도 2010년 ‘세계의 미래’(The World Ahead) 특집호에서 국제정치의 주요 경향과 미국 및 신흥국가의 새로운 위상에 대해 조명했다. 위기 이후의 세계경제질서는 정당성 위기 단계를 거쳐 과도기(interregnum)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점치기 어렵다 .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급효과에 관한 논점은 미국과 중국 경제력의 향방, 경제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퇴조 여부, 그리고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양식의 변화로 요약된다.   본 논문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측면에 초점을 맞춰 금융위기의 국제정치적 결과를 고찰한다. 금융위기가 전후 자유주의 국제주의 2.0(Liberal Internationalism 2.0)에 ‘권위의 위기’(crisis of authority)와 함께 ‘거버넌스의 위기‘(crisis of governance)를 동시에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Ikenberry 2009). 이 글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의 거버넌스는 일종의 ‘복합 네트워크 시기’(Complex Network Moment)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복합네트워크는 전통적 국제정치 행위자인 국가들의 경쟁과 협력 이외에, 정부간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s: IGOs), 정부네트워크(Inter-governmental Networks: IGNs), 초정부네트워크(Trans-governmental Networks: TGNs), 그리고 초국가 네트워크(Trans-national Networks: TNNs) 등이 세계경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일정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하는 거버넌스 양식을 말한다.   미국과 서구는 이라크전쟁과 금융위기를 통해 각각 군사적, 경제적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찾아온 미국의 단극시기(unipolar moment)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고, 유력한 대안으로 G2(미국∙중국), 3극(미국∙EU∙중국), 다극체제 등이 거론되었다. 동시에 정보화와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극성(polarity)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퇴색되었다. 대신 다양한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과 이들의 네트워크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는 다원적인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사실 세계질서의 변환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전부터 여러 차례 논의되었다. 소위 ‘신세계질서’ (new world order)의 도래는 1차대전 후 우드로 윌슨, 2차대전 후 윈스턴 처칠, 냉전 종식 후 조지 부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고든 브라운과 버락 오바마 등에 의해 선포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신세계질서는 서구의 승리를 기념한 것이라면, 21세기의 신세계질서는 서구의 패배를 자인하는 성격이 짙다. 이러한 변환의 동력은 다름 아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 등 소위 ‘나머지의 부상’(Rise of the Rest)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경제질서의 물질적 기반의 재편을 가속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G20 정상회의를 국제경제협력의 최고 포럼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했다. 특히 G20은 국제경제의 새로운 네트워크적인 거버넌스 모드라는 점에서 국가 간 능력배분과 경쟁 구도의 변화에 더해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복합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물론, 세계경제 거버넌스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이 논문의 복합네트워크는 국가 행위자의 역할 확대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합적 상호의존론(complex interdependence)이나 초정부주의(transgovernmentalism)와 차이가 있다. 복합적 상호의존론(Keohane 1972; 1977)은 국제정치에서 비국가 행위자의 상대적 위상 강화에 주목한다. 초정부주의(Slaughter 2004)는 국가행위자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현실주의적인 상위정치보다는 하위정치 행위자로서 다양한 정부기관 네트워크의 역할을 강조한다. 세계정치의 중심이 ‘정부에서 거버넌스’(government to governance)로 이동하면서 다국적기업, 비정부기구 등 새로운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제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일차적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Underhill 2008) . 슬로터(Slaughter 2004)는 ‘신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초정부 네트워크’라면서, 법원, 규제기관, 공정거래기구 등 하위 정부기관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등장에 주목한다. 나아가 이들 네트워크는 위계적이고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되었던 국가를 대신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초정부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가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중심으로 복귀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Altman 2009). 단적인 예로 국제경제협력의 최고 포럼으로 지정된 G20정상회의는 전형적인 국가 중심적인 제도다(Cooper 2010, 744). [그림3]에 예시된 기타 3G (Global Governance Group), C10 (Committee of Ten African Ministers of Finance and Central Bank Governors), G24 (Intergovernmental Group of Twenty-Four on International Monetary Affairs and Development), 브릭스(Brazil, Russia, India, and China: BRICs) 등도 모두 정부간 네트워크로서 최근 세계경제 거버넌스 개혁에 있어서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논문의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통화스왑 등 양자주의적인 방식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다자적인 틀에 초점을 맞춘 복합적 다자주의(complex multilateralism)와도 차별성을 띤다.   아래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읽어내기 위해 먼저, 기존 주류 국제정치이론에서 국제질서 변화의 핵심 동인으로 간주되는 물질적, 이념적, 제도적 토대가 금융위기로 인해 어떠한 도전에 직면했는지 살펴본다. 이어 3장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아키텍처로서 복합네트워크의 개념을 설명한다. 4장은 G20을 중심으로 정부간기구(IGOs), 정부네트워크(IGNs), 초정부네트워크(TGNs) 등이 하나의 거버넌스 망(網)을 이루는 과정을 분석한다. 결론으로 5장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네트워크화가 국제정치학과 한국 외교에 주는 이론적 정책적 도전을 논한다...(계속)

김치욱 2011-02-22조회 : 1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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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6] 위기 이후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손열 교수는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교수, 도쿄대학 외국인연구원,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일본 정치경제,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등이 있다. 최근 저술로는 “동아시아 경합하는 국제사회 구상” (〈세계정치〉 2009), “소프트파워의 정치 : 일본의 서로 다른 정체성” (〈일본연구논총〉 2009), “Japan Between Alliance and Community” (East Asia Institute Issue Briefing 2009), “Japan's New Regionalism: China Shock, Universal Values and East Asian Community,” (Asian Survey 2010, 50:3) 등이 있다.         I. 서론   무역은 국부를 증진하는 주요 수단이다. 무역 중심의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무역은 외교정책 수단이기도 하다. 교역상대국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 국가가 적국이면 비경제(diseconomy)를, 우방국이면 긍정적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를 가져다준다(Gowa and Mansfield 1993). 따라서 전자에게는 무역을 통제하여 견제하고, 후자는 무역을 확장하여 우호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무역을 통해 상대국의 부가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국가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국의 성장노선(수출선)을 자국의 수입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그 국가를 구조적으로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Hirschman 1945). 무역패턴을 전략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외교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이렇듯 무역은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국가들은 국제무역체제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구성하고자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무역질서는 전간기 주요국간 경쟁적 보호주의의 결과로 세계대전을 치렀다는 인식 속에서 일종의 지구공공재로 받아들여졌으나 다른 한편으로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이익을 담는 것이기도 하였다. 자유무역은 경쟁우위국가(즉, 패권국)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Krasner 1985). 미국은 관세무역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체제 속에서 일련의 라운드를 주도하면서 무역자유화를 꾸준히 추진하였다. 반면, 미국은 서유럽이 국내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주의적 규제를 추진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였고, 일본과 한국이 경제성장을 위해서 중상주의적 정책을 취하는 것도 용인하는 이른바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를 추구하였다(Ruggie 1982). 냉전이란 지정학적 고려 때문이었다(Ikenberry 2004).   냉전이 끝나고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구화(globalization)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서 이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구화를 의미하는 언어이고 패권의 상징이었다. 자유시장, 작은 정부, 대외개방이란 자본주의 표준을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미국은 한편으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을 활용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자유무역정책을 추구하였다. ‘자유무역’은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 원칙으로서 경제∙제도적 개혁, 부패타파, 자유의 습관(habits of liberty)을 고양하는 수단이므로 이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White House 2002, 21-22). 다시 말해서, 단순히 무역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을 넘어서 국내체제도 특정하게 변화, 수렴시키겠다는 것으로서, 이제 내장된 자유주의는 부정되었다. 더욱이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의 과도한 개입이 결과적으로 기구의 효능을 감퇴시킴에 따라 워싱턴 컨센서스 전도사로서의 기능 역시 약화되면서, 자유무역은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하는 핵심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워싱턴 컨센서스란 미국적 질서를 확산하려는 노력은 무역의 차원에서도 도전을 받게 된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시애틀 회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론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였고, 곧이어 2001년 도하(Doha)선언도 정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속에서 미국의 경쟁국들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유럽국가들은 경제통합을 통해서 단일경제권을 형성하였고, 동아시아 국가들도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의 망을 확대, 심화시켜왔다(Dent 2007). 이에 대해 미국은 2002년을 전기로 국제기구를 통한 질서/레짐 구축으로부터 지역 및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전략을 전환하게 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무역질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및 소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은 상대국에 대한 서로 다른 경제적, 전략적 이해가 관련되기 때문에 이를 전체적으로 엮어 특정한 레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아키텍쳐와 고도의 추진 전략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21세기 경제의 공간은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적으로 통합되는 상호의존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생산네트워크와 그 속에서의 산업내(intra-industry), 산업간(jnter-industry) 무역이 다양한 경제행위자들을 촘촘히 연결해 나가는 경제공간인 만큼 권력장의 속성 역시 전통적 국제정치와 일정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자유무역협정(FTA) 경쟁의 본질은 한 국가가 타국가를 강요하여 편 가르고 줄 세우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여 자기의 이익을 실현하는가 하는 네트워크 경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네트워크 경쟁은 구성원(노드)이 네트워크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규정하는 능력, 즉 네트워크의 플랫폼을 설계하는 능력(architectural power), 둘째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 중개하는 능력(positional power), 셋째,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능력(social power), 끝으로 이런 대외적 시도에 대한 국내적 지지를 동원하는 능력에 달려있다(Grewal 2008; 김상배 2009; Kahler 2009).   이 글은 주로 동아시아 지역을 주 대상으로 하여 미국적 질서의 구축과 재구축, 이에 대한 도전의 동학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기구를 통한 미국의 세계무역레짐 구축 전략을 기술한 다음, 둘째, 역내 권력이동의 추이와 본질의 분석, 셋째, 2008년 위기를 계기로 전개되는 새로운 정치경제 동학의 분석, 끝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엮일 지역무역체제의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향후 지역 무역질서는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심화를 통해 중국 중심으로 짜이는 무역네트워크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항네트워크의 도전으로 네트워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쟁력은 네트워크 플랫폼을 여하히 설계하여 역내국가들을 끌어들이는가에 달려있다.   II. 미국의 패권질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침   워싱턴 컨센서스는 자유시장(free market)이란 가치를 전세계적으로 구현하는 이념 프로그램이다. 애당초 이는 워싱턴에 소재한 기구(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미 재무부)들이 중남미국가들에게 제공한 정책제안의 최소 공통분모로서 자유화 경제개혁프로그램을 의미하였으나(Williamson 1989), 이후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라는 보다 포괄적인 경제이념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정책 매니페스토(policy manifesto)로 확장되어 사용되어왔다. 여기서 무역은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자유로운 무역으로 국내제도를 개혁하고 시장기제가 작동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자유무역은 부의 증진수단인 동시에 법치와 민주정부를 추동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현하는 정책수단인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상을 풍미한 시기는 냉전종식 이후인 1990년대부터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세계무역질서를 ‘열린 국경, 열린 무역, 열린 마음’으로 표현하였고 나아가 빌 클린턴은 시장민주주의 공동체를 주창한다. 자유 즉,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시장경제를 핵심가치로 공유하는 세계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비전이지만 곧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였다. 클린턴기의 미국의 정책은 상품, 서비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모두에게 상호이득이 된다는 자유무역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 하였다. 오랜 맹방인 일본이 시장개방의 타겟이 되었고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과 함께 미국은 지역적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란 제도적 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장개방을 추구하였다. 미국은 1993년 보고르(Bogor) 목표, 1996년 자발적 조기자유화조치(Early Voluntary Sectoral Liberalization: EVSL)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역자유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성기는 1997년 동아시아금융위기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반 금융자유화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더 많은 국제자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국제적 압력 즉,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파 때문이었다. 개방에 따른 내부적 부적응 즉, 관리, 감독체제의 미비와 비대칭적인 - 불균등한 - 자유화의 결과로 동아시아는 금융위기에 함몰되었고, 이들에 구제금융을 공여한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대가로 강도 높은 워싱턴 컨센서스 이행조건을 강요하였다. 예컨대, 한국은 고금리, 긴축정책을 넘어 금융시장 구조조정, 자본거래자유화, 기업지배구조 개혁, 노동시장개혁과 함께 무역자유화까지 포함한 전방위 신자유주의개혁을 요구 받고 이행해야 했다. 요컨대,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적절한 수용으로 야기되었고 위기극복을 위해 이를 더욱 철저히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재미있게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가혹한 이행조건은 역으로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통화기금(IMF)를 기피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가혹한 이행조건을 받지 않으려는 까닭이었다. 동아시아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지 않기 위해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임으로써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World Bank) 두 국제기구가 추진한 워싱턴 컨센서스 프로그램에 대한 이념적 반발이 대두되었다. 특히 시장개방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부 선진국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개도국의 논리, 시장원리주의에 따른 사회적 가치의 실종을 비판하는 유럽의 목소리, 환경과 노동 가치를 희생한다는 선진국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의 비판이 어우러지면서 1999년 〈시애틀 WTO 회의〉는 파행을 맞이하였다. 미국적 질서에 대한 최초의 조직적인 대규모 반기이었다.   이어서 2001년 〈도하라운드〉 역시 자유무역에 대한 반기로 점철되었다. 무역에 개발이슈를 연계시키고, 농업, 서비스, 환경,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하였으나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대립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2003년 〈칸쿤 회의〉 역시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끝나게 되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추진이 지구다자기구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인식한 미국은 지역다자 및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서 추진하기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그 핵심인물은 졸릭(Robert Zoellick)이었다. 당시 미국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대표로서 그는 이른바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란 언어로 새로운 무역정책을 표현하였다. 지구다자협정, 지역,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상호보완적이고 상호강화적 형태로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전세계의 무역자유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Zoellick 2002). 여기에는 자유무역이 단순히 경제적 부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함께 깔려있다. “개방무역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자유의 습관을 강화한다”는 부시의 메시지처럼, 무역은 비극적인 9.11 테러사태를 전기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미국의 목표를 추구하는 하나의 중요수단으로 간주되었다(White House 2002).   구체적으로 졸릭은 무역을 통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범주의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첫째, ‘비대칭적 상호주의’(asymmetric reciprocity)로서 시장권력의 비대칭성으로 협상력을 확보하여 미국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상대국 시장을 개방한다. 둘째, 포괄적 무역협정의 촉매제 혹은 벤치마킹이 되는 선례 혹은 모델을 구축한다. 셋째, 상대방의 국내 시장주의적 개혁과 민주제도를 지원한다. 넷째, 지역의 주도국가와 전략적 파트너쉽을 강화한다.   히갓(Higgott 2004)에 의하면 부시정부의 일방주의는 자유주의-이상주의적 근본주의라는 희한한 이념적 조합에 기초하고 있으며, 경제정책에 있어서 ‘지구화의 안보화’(securitization of globalization)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적 정책을 전략적 목표 하에서 추진하고자 하였고 이를 지지하는 제도적 장치는 ‘초당적 무역촉진권한’(Bipartisan Trade Promotion Authority of 2002)이었다. 의회가 행정부에 무역협상에 대한 신속지원(fast-track)권한을 부여하여 “보다 개방적이고 균등하며 상호적인 접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서 당시 테러와의 전쟁이란 상황적 맥락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은 요르단, 칠레, 싱가폴, 호주, 모로코, 오만, 바레인,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엘 살바도르, 과테말라, 혼두라스, 니카라과,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그리고 한국이었다. 또한 교섭중단 국가로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있다. 이들은 한국과 호주를 예외로 하면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은, 따라서 경제적 가치보다는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여 선정한 국가들이다. 미주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지역을 견고하게 확보한다는 전략적 고려,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맥락에서 선정되었다(Sohn and Koo 2010). 예컨대, 미국은 말레이시아와 자유무역협정(FTA) 교섭을 시작하면서 “말레이시아는 온건한 무슬림국가로서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이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은 안보적 차원에서 중요한 정책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계속)

손열 2011-02-22조회 : 1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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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7]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승주 교수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Springer, 2008),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Springer, 2010)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세계화 시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발전전략 등이다.         I. 서론   1997-8년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불과 10년 만인 2008년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위기가 동아시아발(發)이었던 데 반해,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발이었다는 점이다. 위기가 미국발이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직접적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기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로 수출의 감소와 경기 후퇴 등 그 간접적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써 서구 선진국과 동아시아 경제가 분리(decouple)되기 시작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한 반면, 양자 간 경제적 연결(coupling)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미국 측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Wolf 2008).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선 G20 정상회의로 대표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G7과 같이 선진국 또는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글로벌 거버넌스와 달리,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G20의 형성 과정에 대거 참여했다. 또한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개혁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의사결정권이 증대되는 중요한 변화도 초래되었다. 이 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참여의 통로를 확대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구적 차원뿐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 특히 동아시아 금융질서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과거 지역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직면했던 아시아 금융위기와는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교적 신속하게 지역 차원의 대응책을 실행하였다. 이는 지난 10여 년 간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융 협력을 추진해온 결과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양자간 통화교환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CMI) 등 금융 협력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협력의 경험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국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경쟁과 같은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hian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zation: CMIM)라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금융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 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을 검토하고, 새로운 금융 거버넌스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 전망을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다음의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첫째,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동아시아 금융 질서가 발전되어 온 과정을 검토한다. 둘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을 고찰한다. 셋째,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을 국가적 수준과 글로벌 수준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넷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금융 질서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다섯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질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II. 2000년대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의 전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성격과 범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지역적 또는 외부적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등 기존의 지역 기구는 금융위기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을 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이 시기부터 동아시아를 지역적 범위로 한 협력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MacIntyre et al. 2008). 199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과 한국,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가 출범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Stubbs 2002). 아세안+3(APT)는 2000년대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내용적 측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까지 동아시아 지역 협력은 주로 무역 자유화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는데, 금융 위기를 계기로 금융 분야의 협력에 대한 노력이 급진전되었다(Amyx 2004).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급속하게 확산됨에 따라, 역내 국가들은 처음으로 금융 분야에서 지역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위기에 처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요구한 것 역시 지역 차원의 정부 간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고조시켰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 협력과 관련 다음과 같은 필요성을 공감하였다. 위기가 재발할 경우, 지역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신속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역내 국가들의 환율 안정과 감시를 위한 지역 차원의 협력을 모색하며, 동아시아의 금융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또는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Higgott 1998).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는 대체로 네 가지 방향에서 발전해왔다: (1)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통한 긴급 유동성의 제공; (2) 아시아채권시장이니셔티브(Asian Bond Market Initiative: ABMI)와 아시아채권기금(Asian Bond Fund: ABF)을 통한 역내 채권 시장의 육성; (3) 아시아 통화단위(Asian Monetary Unit: AMU)과 같은 공동 통화의 도입을 위한 협력; (4) 감시, 정책 대화(policy dialogue), 트랙 II 교류를 통한 역내 국가 간 커뮤니케이션의 증진이 그것이다(Grimes 2009). 아시아 금융위기의 발생 직후인 1997년 11월 아세안+3(APT) 정상회담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출범을 위한 논의의 시발점이었다(Amyx 2004; Park and Wang 2005). 이후 수 차례의 논의를 거쳐 향후 금융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목적으로 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2000년 5월 아세안+3(APT) 재무장관 회의에서 발효되었다(Chey 2009).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역내 16개 중앙은행들이 체결한 양자 간 통화교환협정이다. 처음에는 365억 달러 규모로 출범하였고, 이후 그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9년 6월에는 920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림 1]에 나타나듯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공식적으로는 양자 간 통화교환협정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원화된 구조를 취하였다. 첫째, 한국과 중국 및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각각 총액 80억 달러와 60억 달러에 달하는 통화교환협정이 체결되었다. 교환의 방식도 양 당사국이 대등하게 40억 달러와 30억 달러를 교환하되, 달러화가 아닌 자국의 통화를 교환하도록 하였다. 둘째, 한국과 일본 간 통화교환협정은 총액 210억 달러에 달하는 최대 규모이며, 이 가운데 일본이 130억 달러, 한국이 80억 달러를 상대국에 제공하도록 설정되었다. 또한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를 기반으로 한 교환의 규모는 60억 달러, 달러화의 교환 규모는 150억 달러이다. 셋째, 한∙중∙일이 아세안 국가와 체결한 협정에서도 상당한 차별성이 나타난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직접 경험하였던 한국은 동남아 주요 국가들과 달러화를 교환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반면, 중국은 양자 간 교환이 아닌 사실상 일방적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 형태를 취했다. 일본은 일부 국가와는 통화의 교환을, 일부 국가와는 일방적인 지원을 하는 중간 형식을 취했다. 이와 같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구체적 운영 방식은 국가 별로 매우 상이하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운영체제에서 또 주목할 점은 20 퍼센트 규정이다. 이 규정은총 교환 규모 가운데 20 퍼센트 에 대해서는 자금 제공국이 아무런 조건을 부과하지 않고 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한 규정이다. 다만, 20 퍼센트를 초과하는 유동성을 제공해야 할 경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는 이른바 ‘IMF-link’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은 유동성 지원 시 까다로운 조건을 부과하였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상당한 차별성을 보이면서도, 동아시아 국가 간 금융협력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기존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추구하는 원칙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복합적인 목표를 추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계속)

이승주 2011-02-22조회 : 1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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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2] 경제위기 이후 국제 군사안보질서 변화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이상현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국제관계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국제정치와 안보, 한미관계, 북한 문제를 주로 연구하며, 최근 논저로는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공저)(서울: 동아시아연구원, 2008), 《지식질서와 동아시아: 정보화시대 세계정치의 변환》(공저)(파주: 한울, 2008),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공저)(성남: 세종연구소, 2008), 《한미동맹의 변환》(공저)(성남: 세종연구소, 2008),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Lee Myung-bak Government: The Vision of ‘Global Korea’ and Its Challenges”(The Korean Journal of Security Affairs, 2009),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와 대북정책 전망”(<국방정책연구>, 2009), 《외교환경과 한반도》(공저)(성남: 세종연구소, 2009), 《조정기의 한미동맹: 2003~2008》(공저)(서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09)등이 있다.         I. 서론   글로벌 차원에서 현재 진행되는 여러 변화는 국제 군사안보질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국제체제는 국제관계의 행위자 및 지역간 힘의 배분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21세기 국제질서의 변화를 이른바 ‘나머지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으로 표현한다(Zakaria 2008). 이는 중국, 인도 등 국제정치에서 규모는 크지만 그 동안 경제적으로 침체해 있었던 거대국가들이 세계화의 영향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국제질서에서 미국 패권의 상대적 위축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쇠퇴라기보다는 중국과 인도 등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이고, 그 결과 국제질서는 이제 ‘포스트 아메리카’(Post-Americanism) 시대로 전환하는 중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U.S.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NIC)의 세계질서 전망 보고서인 《Global Trends 2025》도 2025년까지의 향후 국제질서가 더욱 복합적으로 변하고,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이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지배적인 국가’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5년경 국제질서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 행위자의 등장과 함께 세계화로 인한 경제발전, 인구 증가, 지역적 발전 격차 등으로 인해 더욱 다극화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초국가적 안보 어젠다가 등장하는데, 식량, 에너지, 물 등이 고도의 신 전략자원으로 등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각축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기후변화, 신기술, 에너지 배분 등을 둘러싼 대립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러, 국제갈등 및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확산은 여전히 중요한 국제안보의 문제로 남을 것이고,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의 결과 테러조직은 존속할 것이며, 첨단기술의 손쉬운 획득으로 이들의 테러역량도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념적 대결은 사라지고 세계화의 후유증과 글로벌 세력판도 변화가 주된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NIC 2008).   글로벌 질서의 미래에 관한 여러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와 중국의 부상이다. 자료의 출처와 추계 방식은 다르지만 대체로 여러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비중은 서서히 줄어드는 반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부상국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의 추정에 의하면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총량으로 볼 때 대체로 2030년경이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해 세계1위로 등극할 전망이다(Goldman Sachs 2007).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말로 이미 일본을 추월해 세계2위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 한 편에서는 미국 패권의 쇠퇴가 논의되면서도 미국을 빼고는 국제질서를 논할 수 없다는 시각도 건재하다.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발행인 요제프 요페는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미국의 패권 쇠퇴설을 10년마다 되풀이되는 근거없는 유행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미국의 힘과 사명감을 대신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현실엔 변함이 없다며 이런 미국을 ‘디폴트 파워’(default power)라 규정했다. 즉, 미국은 국제 질서의 기본 축인만큼 미국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논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에 따르면 2008년 미국은 국방비로 6070억 달러를 썼다. 전 세계 국방비의 약 40%에 해당하는 이 액수는 2~10위 국가들의 국방비를 다 합친 것(4767억 달러)보다 많았다. 요페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부유해지기 전에 늙어버릴 것이라고 요페는 내다봤다. 유엔 '세계인구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중위연령(인구를 일렬로 세웠을 때 정가운데 위치한 사람 나이)은 2005년 현재 33세에서 2050년 45세로 급격히 높아질 전망이다. 반면 미국의 중위연령은 2050년에 41세로 강대국 중 가장 젊어질 것으로 예측된다(Joffe 2009). 거기에다 각종 소프트파워까지 감안하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러한 글로벌 차원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향후 국제 군사안보질서의 유형과 미국의 대응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이하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질서의 성격 변화, 군사안보 위협 형태의 변화, 그리고 중국의 급부상과 군사현대화에 따른 미국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II. 21세기 군사안보 위협의 변화   탈냉전, 9.11, 국제금융위기 이후까지 전반적인 국제안보환경의 변화에서 핵심은 주요 행위자간 힘의 변화, 전쟁 양상의 변화, 경제구조의 변화, 지역통합으로 인한 주요 행위자의 등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머지의 부상’과 결부된 복합적 국제질서, 다중심•무중심 네트워크형 국제질서 등장은 군사안보 위협의 형태와 대응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 단극(unipolarity), 무극(non-polarity), 그리고 G2시대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G-7/8 체제는 이제 G-20 체제로 확대되었다. 시장이 세계화되면서 이제는 경제와 외교를 구분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금융과 시장은 더 이상 하위정치가 아니라 이미 상위정치(high politics)가 되었다(Burrows and Harris 2009, 35-37). 탈냉전 이후 국제정치 구조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냉전 종식 후 국제정치 학자들은 미국이 단극의 순간을 맞았다고 진단했다(Krauthammer 1990, 91). 그러한 단극체제는 ‘순간’(moment)으로 끝나고 국제체제는 새로운 질서로 변하고 있다. 단극시대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G2시대’로 서서히 이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제 세계는 무극질서에 들어섰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리처드 하스(Richard Haas)는 21세기 국제질서의 특징을 무극(non-polarity)이라고 규정한다. 그러한 질서는 하나나 둘, 혹은 여러 국가들이 지배하는 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힘을 가진 많은 행위자들로 구성된다. 20세기의 국제질서는 다극체제에서 시작해 양극체제로, 그리고 냉전 종식과 함께 단극체제로 이행해왔다. 하지만 국제체제 속에서 힘의 분포가 분산되면서, 무극체제는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진 여러 중심으로 구성되는 특징을 보인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미국 외에도 중국,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인도, 일본, 러시아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외견상 다극체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국제질서가 고전적 의미에서 다극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여러 개의 힘의 중심이 존재하지만, 그 중 상당수가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상 오늘날 국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국민국가가 힘의 독점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 하스의 설명이다. 오늘날 국민국가는 위로는 지역 및 국제적 조직으로부터, 밑으로는 각종 준군사조직으로부터, 그리고 옆으로는 각종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와 기업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힘은 ‘여러 곳에, 여러 손에’ 분산돼 있다(Haas 2008). 오늘날 미국의 우위는 여러 면에서 도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상대적 약화와 전반적인 반미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대신할 라이벌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전히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간 힘의 격차가 너무 크고, 다른 한편 미국이 적대 연합 결성을 초래할 만큼 다른 나라들의 국가이익을 위협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의존해야 하는 물자와 사람, 기술, 투자의 자유로운 흐름을 유지하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그런데도 단극체제는 끝났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역사적 요인이다. 국가가 발전하듯이 다른 조직들도 발전한다. 기술과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이들 조직의 부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둘째는 미국의 정책 때문이다. 미국은 전후 질서를 복구하면서 몇 개의 힘의 중심을 구축했는데, 그것이 미국의 힘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원인 중 하나이다. 이라크전쟁처럼 미국의 힘을 지나치게 소진한 ‘제국주의의 과잉 전개’(imperial overstretch)도 이에 기여했다. 셋째, 국가나 다른 조직의 성장, 혹은 미국 정책의 실패 외에도 세계화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세계화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것―이메일, 마약, 온실가스, 상품, 사람, 바이러스, 심지어 무기―의 탈국경 흐름을 양과 속도 면에서 크게 팽창시켰다.   무극체제의 속성은 새로운 위협요인과 취약성을 낳고 있다. 이란이나 북한 같은 핵확산 사례, 에너지, 테러리즘 등은 대표적 요인들이다. 이러한 무극의 시대에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네트워크시대의 국제질서는 강대국 위주의 현실주의 정치 시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양상들을 내포하고 있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적 시각이 있다. 우선 전통적 국제정치 주류이론인 현실주의 입장, 즉 구조적 현실주의와 패권안정이론에서 국가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 간 힘의 배분상태다. 국제 제도와 레짐은 강대국간 세력균형의 부산물로서, 국제레짐의 형성은 패권의 존재 유무에 달려있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갖고 있는 패권국이 존재하는 단극체제에서 국제레짐은 형성되고 유지되지만, 그 패권국이 쇠퇴하면 국제레짐도 쇠퇴하게 된다. 따라서 패권국은 소위 ‘안정자’(a stabilizer)로서 세계경제체제의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Kindleberger 1973, 305). 한편, 제도주의자들은 국제정치의 구조에 집중하는 패권안정이론과는 달리 국제레짐이 제공하는 긍정적 기능과 효과를 강조한다. 이들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국가들이 제도적 효용을 얻기 위해 국제레짐을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기능주의적 접근법을 취한다(Keohane 2005). 따라서 다자주의의 특정 형태보다는 국가간 협력을 저해하는 거래비용과 정보비용을 감소시키는데 있어서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즉 국제제도의 형성 주체는 공통의 이익을 공유한 여러 국가들이다. 이들은 국가들의 무임승차로 인한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제제도를 창출한다. 국제제도 창설을 위한 국제협력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숫자가 임계점을 넘기만 하면, 국제제도는 형성될 수 있다. 이 임계점은 소수 국가의 연합이나 패권국의 참여로 충족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제도는 주요국가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상황에서 패권국이 아닌 국가들의 협력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일단 형성된 국제제도는 이후 국가 행위에 영향을 미쳐 국제협력이 지속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네트워크 권력론 시각은 21세기 국제질서의 새로운 속성인 네트워크화에 초점을 맞춘다. 네트워크는 ‘이로운 협력을 가능케 하도록 서로 연결된 행위자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Grewal 2003, 89-98; 2005, 128-144; 2008). 이때 네트워크의 중심 요소는 표준(standard)이다. 표준은 한 네트워크에 속하는 구성원을 서로 연결하는 특정 방식으로서, 구성원 간 협력을 촉진하는 공유된 규범 또는 관행을 의미한다. 네트워크권력은 특정 네트워크의 표준이 그 네트워크 구성원 또는 비구성원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이다...(계속)

이상현 2011-02-07조회 : 1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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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3]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망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 군사학과 교수. 고봉준 교수는 미국 노트르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미국 외교안보 정치를 중심으로 한 국제안보, 군사기술 및 개념 확산, 그리고 군비통제 등이 있다. 최근 저술로는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현실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동향과 전망〉, 2009), "군사력 증강의 정치학” (〈한국정치학회보〉, 2008), “공세적 방어: 냉전기 미국 미사일방어체제와 핵전략" (〈한국정치연구〉, 2007)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2008년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 효과를 미친 금융 위기가 동아시아의 군사안보 질서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금융 위기 이후의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변화를 전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는 전 세계적 영향력 유지를 목표로 하는 미국과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 그 상호작용, 양국 전략적 선택의 물적 기반을 이루는 자원동원 능력 및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형성될 것이다. 특히 미국 발 금융위기는 중국보다 미국의 자원동원능력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우려를 야기하여 전체적으로 냉전 이후 20여 년간 유지되어 오던 소위 단극적 세계질서의 정당성 및 신뢰도를 약화시켰다. 특히 금융위기 촉발 이후에도 중국이 지속적으로 고도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동시에 최대의 미국채권 보유국이 되면서 경제 부문에서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이 동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을 보다 공격적으로 주장하게 되면서 명목상으로는 보다 갈등이 부각되는 미중관계를 형성하는 배경이 된다고 평가되고 있다. 즉 동아시아의 군사안보질서가 금융위기 때문에 급격한 세력전이나 전통적인 세력균형정치의 부활 등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금융위기의 영향력은 간접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 행위자들의 인식과 자원동원능력에 보다 포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부터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에서 이미 가장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였는데, 미국발 금융위기는 바로 이러한 초기 논쟁의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Mastanduno 2002; Johnston 2004; Goldstein 2003; Christensen 2001). 그간 미국 중심의 단극적 체제의 지속을 관찰하면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세력균형론(Waltz 2000; Mearsheimer 2001; Paul 2005; Pape 2005), 단극질서론(Wohlforth 1999; Brooks and Wohlforth 2002; Lieber and Alexander 2005), 세력전이론(DiCicco and Levy 2003) 등 다양한 이론적 관점에서 21세기 국제정치의 중장기적 전망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최소한 세계적 수준에서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강조하던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대결 양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평화적 부상’과 관련된 많은 논쟁이 입증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군사안보 부문에서 기존의 개념인 권력투쟁과 세력 균형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동아시아에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으로 다 포착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상이한 이념과 경제 및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하던 냉전 시기와는 달리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대립은 그 이면에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의 공조라는 상쇄 요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 지역의 두드러진 경제 성장이 일정 정도의 통합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시장평화론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통해 제공되는 경제 이익이 국가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됨에 따라 이의 공유를 위해 국가 간 관계의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Gartzke 2007). 경제 부문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양자 또는 다자 관계의 진전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런 측면이 과거와 같은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대립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익상관자’(stake holder) 와 ‘화평굴기’(和平崛起)개념이 시사 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은 양자 간에 대립과 갈등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 간 협력에 공동의 이익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양국은 1990년대 후반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설정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서는 ‘포괄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일환으로 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상호 군사훈련의 참관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2010년 초 대만에의 미국 무기판매를 이유로 중단되기 이전까지 해군을 위주로 한 해상에서의 합동 구조 훈련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군사적 교류를 유지하여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반을 고려한다면 동아시아에서 점증하고 있는 군사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아시아에 잠재되어 있던 전통적 갈등 요인이 금융위기 이후에 전면에 부상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국의 군사력 강화 추세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주목되던 바이나, 중국 경제력의 상대적 강화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현 질서의 유지를 원하는 미국은 중국의 상대적 강세를 방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중국은 전통적 의미에서 대미 균형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 내의 핵심 이익 수호를 내세우는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에의 접근성 확보라는 미국의 이해 대립은 새로운 충돌의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 내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정립되고 있는 동맹의 네트워크 역시 역내 군사안보질서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위기가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독립변수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각국의 자원동원 능력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 지배력의 한계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양국의 지역 전략과 군사적 준비태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는 미국의 역외균형 플러스 전략과 중국의 역내 질서 관리자 전략이 교차되는 상황에서 양국의 국내외적 자원동원 능력의 부침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영향은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될 수는 없다.    금융위기와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의 상관관계를 검토하기 위해 2절에서는 최근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특징을 국방비의 증가, 동맹의 재조정 및 다자네트워크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검토한다. 3절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군사안보 차원에서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양국의 전략적 태도와 준비태세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의 대응에 대해 검토한다. 결론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는 지역 내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선택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과 중국의 자원동원 능력 및 역내 하부구조를 구성하는 주요 국가들의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II.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특징   1. 국방비 점증 추세   민간연구기관에서 발행한 〈SIPRI 2010〉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국방비는 냉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왔는데, 2000년에 그 총 규모는 1,220억 달러였으나 2009년에는 2,090억 달러로 증가하여 전 세계 국방비에서 13%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였다(2008년 불변가격 기준). 국방비의 절대적 규모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이 동아시아 지역의 상위지출국에 속하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국가들도 국방비를 꾸준히 증액시켜 왔다.  아울러 국방비 규모가 가장 작은 국가 중의 하나인 캄보디아의 경우도 최근에 태국과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국방비를 확충할 계획을 선언한 바 있다. 즉 동아시아 각 국의 국방비 증가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관찰되어오던 하나의 추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미국 및 러시아의 최근 10년간 국방비 추이를 [표1]에 정리하였다...(계속)

고봉준 2011-02-07조회 : 1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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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4]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반도 안보질서의 변화

명지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황지환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 at Boulder)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연구관심은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동북아국제관계 및 안보문제이며,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주요 논저로는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and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IRI Review, 2008), “Offensive Realism, Weaker States, and Windows of Opportunity: The Soviet Union and North Korea in Comparative Perspective” (World Affairs, 2005), “전망이론을 통해 본 북한의 핵정책” (〈국제정치논총〉, 2006) 등이 있다.         I. 세계금융위기와 한반도 안보질서   최근의 세계경제는 금융위기로부터 점차 회복되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그 성격이나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예외적인 것이어서 위기의 장기적인 영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는 장기적으로 지정학적인 세계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반도 역시 그 영향에서 예외적일 수 없다. 현재 금융위기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을 가져오며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Renard 2009). 특히 금융위기의 회복과정에서 미국보다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어 향후 동북아 질서에는 지정학적인 변화를 통한 세력균형의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연평균 10%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며 지역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전 세계를 통해 미국을 상대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동북아 안보질서는 이제 성장하는 중국의 영향력과 미중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미중관계의 변화가 가지는 영향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동맹이나, 북한문제, 동북아평화의 질서를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지구적 차원이나 동아시아 차원보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관계의 변화라는 변수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따라서 냉전의 종식이후 미국의 단극적(unipolar) 질서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한반도 주변 안보질서는 근본적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 하에서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을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세계금융위기이후 변화하는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에 바탕을 두고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안보환경을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냉전의 종식 이후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한반도 주변의 주요한 안보이슈인 한미동맹, 북한문제,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질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이슈들은 냉전의 종식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황지환 2007). 한미동맹은 21세기 미국의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재조정을 경험했다. 북한 문제는 1990년대 초반 이래 핵 위기와 정권생존의 문제를 야기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커다란 도전이 되어 왔다. 또한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한 안보환경에 대해 동북아 국가들은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처럼 냉전의 종식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경험한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은 최근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정학적 세력판도의 변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재조정의 시기에 와 있다. 따라서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의 지정학적인 세력판도가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분석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 주요한 변수는 한반도 주변에서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차원에서 미국의 상대적 약화 가능성과 중국의 상대적 부상 여부이다. 미중관계의 변화는 동북아에서 미일관계와 중일관계의 변화를 야기시킬 것이며, 이는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에 핵심적인 변화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인 변화가 한반도 안보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더구나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태와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가 위기국면으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인 변화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II. 한미관계의 미래   1. 미국의 외교안보전략과 한국   2010년 5월 발표한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보고서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다(NSS 2010).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세력분포가 변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The world as it is today)를 보고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이 직면한 ‘있는 그대로의 세계’란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조차도 혼자 힘으로는 글로벌 차원의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도전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국가들이 새로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며 새로운 ‘영향력의 중심지가 출현’(emerging centers of influence)하고 있다고 국가안보전략(NSS)는 인식하고 있다.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경향은 2010년 2월 발표된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 QDR)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QDR 2010). 게이츠 국방장관이 강조하였던 '균형 전략'(balanced strategy) 개념이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재균형’(rebalancing)으로 정교화되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점은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이 부시행정부 때와는 달리 상대적 힘의 쇠퇴를 반영하여 기존의 하드파워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변화는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와 균형 및 국제제도의 위상회복, 다자적 접근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이상현∙하영선 2010).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의 상대적인 영향력의 감소를 반영하여 국제협조를 가장 중요한 정책적 기반으로 제시하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특히 세계금융위기의 와중에 G20이 최고의 국제경제포럼으로 부상하면서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더 많은 지구적, 지역적 역할을 맡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새로운 중심 국가들이 세계질서를 위해 더 많은 공헌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에 의해 촉진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나머지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은 새로운 중심 국가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에도 상당한 역할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한미관계의 변화에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다. 세계금융위기가 한미관계의 변화를 새롭게 촉발시킨 것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동맹의 변환과정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모시킨 것은 사실이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반테러전쟁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를 외교안보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강조하며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GPR)과 동맹변환 및 해외기지의 재조정을 핵심적인 현안으로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 역시 주요한 변환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결과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 기지의 재조정, 전략적 유연성 및 전시작전통제권 등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재조정 과정을 거쳐 왔다(황지환 2007). 이처럼 지난 10여년간의 한미동맹 변환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과 정책을 재조정하는데 주요한 초점이 두어졌다면, 최근의 한미동맹의 변화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글로벌 질서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재정의하는 데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신성호∙하영선 2010). 2010년 한국이 의장국이 되어 G-20 회의를 개최하고 2012년 제 2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를 개최할 정도로 국가역량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동맹변화는 일견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2. 한미전략동맹과 한국의 역할   2009년 6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사이에 채택된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청사진을 담고 있다(외교통상부 2009/6/16). 이 선언에서 한미 양국은 동맹의 “공고한 토대를 바탕으로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양자 지역 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미동맹을 재조정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대한민국은 동맹에 입각한 한국방위에 있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은 한반도와 역내 및 그 외 지역에 주둔하는 지속적이고 역량을 갖춘 군사력으로 이를 지원할” 것을 합의하였다. 또한 한미는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확산, 해적, 조직 범죄와 마약, 기후변화, 빈곤, 인권 침해, 에너지 안보와 전염병 같은 범세계적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평화유지와 전후 안정화, 그리고 개발 원조에 있어 공조를 제고”하며, “G20와 같은 범세계적인 경제 회복을 목표로 한 다자 체제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 따라서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한국과 미국이 “모든 수준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공동의 동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한미동맹의 변화과정에서 이 선언이 가지는 의미는 한국방위의 한국화와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한국의 역할 증대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미래상은 한반도에서는 한국이 안보의 중심이 되고 미국이 지원하는 방식을 지향하며, 글로벌 차원에서는 한국의 역할이 한반도를 넘어서서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협력해 가는 모습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동맹의 변화과정은 기존의 한미안보협의회의(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SCM)나 전략대화(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ship: SCAP)와 더불어 작년 7월 처음으로 개최된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인 ‘2+2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의 청사진을 담은 새로운 전략적 마스터 플랜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미동맹은 한국이 미국에 절대적으로 안보를 의존하는 비대칭적인 동맹(asymmetric alliance)으로 규정되었지만, 한미동맹은 이제 한국이 적극적으로 역할확대를 모색해 나가는 보다 대칭적인 동맹(symmetric alliance)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계속)

황지환 2011-02-07조회 : 15766
단행본
21세기 신동맹 : 냉전에서 복합으로

복합의 21세기를 읽어라   오늘날 우리는 복합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냉전시대 미소 중심의 양극과 탈냉전 미국 독주의 단극, 그리고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의 상대적 퇴조와 중국의 부상을 비롯한 새로운 중진 세력의 등장은 G8에 이어 G20으로 상징되는 국제질서의 다극화로 나아가고 있다. 변화는 단순히 다극화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기구,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공동체, 국제비정부기구나 다국적기업과 같은 초국가적 행위자, 지방정부나 시민조직 등이 국제 무대에 실질적 행위자로 등장함으로써 복합성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등장인물뿐이겠는가? 국제정치의 무대 또한 다차원화, 복합화 되고 있다. 과거의 안보나 경제 중심의 단순무대에서 벗어나 안보·번영·환경·문화의 중앙무대, 정보지식의 기반무대, 통치의 상층무대로 이루어진 3중 복합무대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복합의 시대는 단순히 갈등과 협력 중의 택일이 아니라, 갈등과 협력, 위기와 발전, 협력과 번영 그리고 공생이 서로 얽히고 설키어 공존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더 이상 ‘적과 동지’ 식의 냉전적 사고로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21세기 동맹, 생존과 번영의 복합 그물망 짜기   복합의 시대에 동맹전략의 해법은 다양한 행위자와 중층적 이슈들을 망라하는 그물망식 접근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 일변도, 혹은 군사 중심의 접근 방식으로는 복합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더구나 여전히 냉전적 분단의 상황에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새로운 복합 그물망 동맹전략에 대한 이해와 개발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존전략에서 가장 큰 축이었던 한미 군사동맹을 21세기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 군사동맹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다양한 주인공들과 중층적 무대를 포괄하도록 그물망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그물망의 개발도 필요하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물망을 최대한 넓혀서 전략적 우호협력 관계를 사실상 21세기형 동맹관계로 키워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 또한 복합 그물망 속에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신동맹의 그물망 속에 북한이 정상적으로 위치해야만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적 그물망 치기와 함께 치밀하고도 견고한 국내 그물망이 필수적이다.   《21세기 신동맹 : 냉전에서 복합으로》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외교안보연구팀인 “국가안보패널”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집단 토론과 연구의 결과를 묶어 마침내 세 번째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EAI 국가안보패널에 소속된 학자 총 11인이 참여한 이 책은 오늘날 복합동맹의 등장을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한반도의 실천적 과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복합동맹과 동맹의 역사에 대한 총론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신동맹전략에 대한 심층 분석, 동아시아의 일본과 중국, 그리고 유럽과 러시아 및 중동지역의 동맹정책과 변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냉전의 유산이 해결되지 않은 분단의 현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가 교차하는 한반도의 국제정치적 위치 속에서, 피아의 구분이 아닌 중층적 복합동맹이라는 새로운 대외 구상은 필수적이다. 21세기의 생존과 번영을 지탱해 줄 “복합”의 화두를 던짐으로써 보다 창조적이고 현실적인 논의와 함께 생산적 정책개발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차       1부 서 序 1장 21세기 복합동맹_형성과 전개 | 하영선 2장 동맹의 역사 | 전재성   2부 미국 3장 21세기 미국의 동맹질서 구상_역사를 통한 조망 | 마상윤 4장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정책 기조와 주요 아젠다 | 이상현 5장 미국의 안보실행전략 | 이동선 6장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및 한반도 동맹정책 | 신성호   3부 동아시아 7장 21세기 일본의 동맹전략_권력이동, 변환, 재균형 | 손 열 8장 21세기 중국의 동맹정책_변화와 지속 | 조영남   4부 유럽과 중동 9장 21세기 미국과 유럽 동맹관계의 변환 | 김준석 10장 21세기 러시아의 동맹 및 우방 정책의 변화와 전망 | 신범식 11장 중동 지역의 세계관과 동맹 | 인남식   부록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단행본의 원고를 일부 공개합니다.

하영선 2010-11-15조회 : 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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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32] 21세기 중국의 동맹정책 : 변화와 지속

조영남(趙英男) 교수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9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중국 북경대학(北京大學) 현대중국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중국 남개대학(南開大學) 정치학과 방문학자,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Harvard-Yenching Institute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Local People’s Congresses in China: Development and Transition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21세기 중국이 가는 길》(파주: 나남, 2009),《중국 의회정치의 발전》(서울: 폴리테이아, 2006),《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정치》(파주: 나남, 2006),《중국 정치개혁과 전국인대》(서울: 나남, 2000) 등이 있다. 최근에는 주로 중국의 의회제도, 법치(法治), 국가-사회관계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1. 서론   2008년 5월 27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하는 날, 중국 외교부 진강(秦剛 2008) 대변인은 한 • 미동맹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 미 군사동맹은 역사가 남긴 산물”로 “냉전시기의 군사동맹을 가지고 당면한 안보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그는 “중국은 상호신뢰, 상호이익, 평등, 협력의 신안보관(新安全觀)을 수립할 것”을 주장하며, 아시아 지역에서 “국가 간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간의 신뢰를 증진하며 협력을 강화하여 공동으로 지역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유일하고 유효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중국 대변인의 발언은 한국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하는 날에 맞추어 나왔다는 외교상 결례라는 문제와 함께, 중국이 이례적으로 한 • 미동맹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된 미•일동맹에 대해, 또한 1999년 코소보Kosovo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등 역할을 계속 확대 및 강화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에 대해 신안보관에 근거하여 비판한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한•미동맹에 대해 이처럼 한국 대통령의 방문에 맞추어 비판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 이런 비판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한국 외교가 친미(親美)로 선회하고, 그런 정책전환의 일환으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처럼 성격이 변화되어 대(對) 중국 견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을 중국이 우려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과 냉전시기의 유물인 북•중동맹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미동맹을 “역사가 남긴 산물”로 비판하는 중국 정부의 입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처럼 한•미동맹을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것이 타당한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중국 대변인의 발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연구과제를 제기한다. 즉 개혁기 중국은 어떤 동맹정책을 추진해왔고, 향후에 그것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 안보질서가 한국•일본•태국•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 등 5개국이 포함된 미국 주도의 양자동맹체제 즉, 소위 ‘바퀴 축과 살’hub and spokes 체제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은 자국의 안보를 확고히 하면서 세계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해왔는가? 또한, 중국은 북•중동맹에 대해 어떤 정책을 추진해왔고, 향후 그것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중국의 변화하는 동맹정책은 한반도 및 아시아 안보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은 이 같은 중국의 동맹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런데 중국의 동맹정책에 대한 기존 연구는 매우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단적으로, 개혁기 중국 외교, 특히 탈냉전기 변화하는 중국의 강대국외교, 주변국(아시아)외교, 다자외교, 공공외교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비교적 많지만 중국의 동맹정책을 전문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다. 중국의 동맹정책에 대한 기존 연구도 주로 미•일동맹의 강화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나 한•중 수교 이후 변화한 북•중관계를 분석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중국 동맹정책에 대한 연구 부족은 국제정치학에서도 동맹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스나이더(Snyder 1990)의 지적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중국의 동맹정책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것은 일차적으로 개혁기 중국 외교에서 동맹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개혁기 중국 외교의 핵심원칙은 ‘비동맹’(不結盟)이었고, 지금까지 중국은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감안해도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첫째,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중국 외교는 미•소를 중심으로 한 동맹 또는 준(準)동맹정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개혁기에 왜 비동맹원칙을 천명했으며, 실제로 중국은 이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타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전체 외교정책의 한 분야로 또한 다른 정책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동맹정책을 추진하는데, 미 • 일동맹의 강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중국의 동맹정책을 분석하는 것은 관점의 협소화라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중국 외교 전체의 관점에서 중국의 동맹정책은 어떤 내용과 의의를 갖고 있고 실제로 그것은 어떻게 추진되었는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중국이 단순히 미 • 일동맹의 강화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자국 외교정책의 조정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동맹정책을 추진해왔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맹정책 분석과 관련하여 필자는 타즈하 폴Thazha V. Paul 등이 제기한 ‘연성균형’soft balancing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은 탈냉전기 지구적 차원global/sys-tem level이나 지역적regional/subsys-tem 차원 모두에서 전통적 현실주의가 주장하는 경성균형 즉, 패권국가인 미국을 겨냥한 다른 강대국들의 군비증강과 동맹형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이들은 탈냉전기 국제정치의 이런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성균형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세력균형 개념의 확장(경성균형, 연성균형, 비대칭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연성균형은 부상하는 또는 잠재적인 위협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강대국 간에 형성하는 암묵적 비공격적 연합을 가리킨다. 연성균형을 위해 각국은 암묵적 이해 또는 공식적 동맹이 아닌 협약ententes을 체결하거나, 국제제도를 이용하여 임시연합을 구성하여 위협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이런 예로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동유럽 국가와 나토NATO의 협력,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인도의 협력,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1990년대 후반기의 중•러 협력,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유엔United Nations: UN 안보리에서의 협력 등을 들 수 있다(Paul 2004, 3-4, 14-16; Fortman, Paul and Wirtz 2004, 369-370). 연성균형 개념은 아직 몇 가지 문제―예를 들어, 연성균형과 단순한 국가 간 제휴alignment의 차이, 연성균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제시 부족 등―가 있지만, 탈냉전기 중국의 동맹정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기존의 다른 어떤 개념이나 이론보다 적절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런데 연성균형 개념을 개혁기 중국의 동맹정책에 적용할 경우에 문제가 있다. 폴에 의하면, 연성균형은 탈냉전기 지구적•지역적 차원에서 나타난 몇 가지 조건 즉, 미국 주도의 유사 단극체제의 형성, 증가하는 경제적 세계화, 공동의 적으로서 초국가적 테러리즘의 대두 등의 조건이 형성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Paul 2004, 16). 그런데 뒤에서 상세히 분석하겠지만, 중국은 이 같은 지구적•지역적 차원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1980년대 초부터 이미 비동맹 원칙 하에 전통적 현실주의의 세력균형 정책(즉, 군비증강과 동맹형성) 대신에 연성균형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연성균형 정책이 지구적•지역적 차원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내적 차원domestic level의 변화에 의해서도 충분히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 연성균형 정책은 지구적•지역적•국내적 차원의 다양한 요소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덩(Deng 2008: 6-7, 270, 275)은 탈냉전기 중국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과거 중국의 외교정책뿐만 아니라 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세력균형 정책과도 분명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은 동아시아의 패권국가인 미국에 대해 내적 또는 외적 균형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중국은 산적한 국내문제의 해결,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이익의 극대화,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자국 권력과 긍정적 인식의 확대를 위해 국제지위 제고 전략을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덩의 연구는 중국의 동맹정책을 전문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대해 현실주의적 세력균형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상의 주장과는 달리 로스(Ross 2004)는 세력균형 정치의 관점에서 탈냉전기 중국외교를 분석한다. 그는 탈냉전기 동아시아에는 미•중 양국이 주도하는 양극체제가 형성되었고, 양국은 서로에 대해 경성균형hard balancing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군사적 우위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군사동맹 강화, 군사력 전진배치, 국방비 증액, 전략핵 우위 확보(특히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국방비 증액과 군사능력 증강(전략 미사일 현대화 등), 경제적 기초 강화, 그리고 미국 권력을 제한할 국제적 지원 확보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그에 따르면 미•중 양극의 세력균형체제는 양국 간 무기체제의 전문화(미국은 해양강국이고 중국은 대륙강국)와 지역적 격리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이고, 동시에 이 체제는 아시아 지역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로스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탈냉전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 또는 패권체제가 아니라 미•중의 양극체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로스와는 달리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 또는 유사 단극체제near-unipolarity를 주장한다(Goldstein 2003b; Mastanduno 2003). 또한, 중국의 군현대화와 군비증강을 미국에 대한 경성균형 정책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렇게 보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중국의 군비증강을 자국 방위(특히 대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제한적 역량강화로 본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균형 정책을 분석하면서 그 정책의 한 축인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 즉, 동맹형성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내적 균형에만 초점을 맞추어 결론을 도출한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미국의 세력균형 정책을 분석할 때에는 내적 균형(군비증강)과 외적 균형(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체제 강화)을 동시에 분석하면서 중국을 분석할 때에는 이를 생략한 것은 문제이다.   이 논문은 개혁기 중국의 동맹정책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사항을 분석하려고 한다. 우선, 이 연구는 개혁기 중국 외교정책의 조정과 그에 따른 동맹정책의 변화를 분석할 것이다(제2장과 제3장). 여기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외교정책의 핵심 이론으로 등장한 신안보관에 대한 분석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 국내적 요소의 변화 즉, 공산당 노선의 변화, 국제정세의 재인식과 새로운 외교방침의 채택, 외교정책의 새로운 이론(신안보관)의 등장 등에 의해서도 연성균형 정책이 형성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임기응변식의 즉자적 대응이 아니라 일정한 외교방침과 이론에 근거하여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동맹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연구는 미•일동맹의 강화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분석할 것이다(제4장). 미•일동맹은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최대의 안보 위협요소이다. 따라서 미•일동맹의 강화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정책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중국의 동맹정책이 변화된 지역 안보환경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구체적인 사례 분석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첫째는 북•중동맹에 대한 분석이다(제5장). 북•중동맹은 현재 중국의 유일한 군사동맹이며,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중국이 주도한 쌍무동맹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상하이협력기구(上海合作組織),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에 대한 분석이다(제6장). 이 기구는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기초로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보 및 기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주도적으로 만든 지역 다자안보기구이다.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중국이 어떻게 다자주의적 방식을 통해 미•일동맹의 강화에 대응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연구는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다. 최근까지 한•미동맹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중국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한•중관계의 발전으로 한•미동맹에 대해 중국이 주목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둘째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을 보조하는 주변적 요소일 뿐이다(張威威 2007; 石源華•汪偉民 2006). 향후 한•중관계의 변화와 한•미동맹의 강화, 특히 대 중국 견제 역할의 강화 여부에 따라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우려는 전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고, 그런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미•일동맹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이 글은 개혁기, 특히 탈냉전기 중국은 현실주의적 세력균형론에서 말하는 경성균형이 아니라 폴 등이 말하는 연성균형 정책을 추진해왔고, 향후 단기간 내에도 이것이 변화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할 것이다. 먼저, 이론적 측면에서, 중국은 1980년대 초부터 ‘비동맹원칙’에 기초하여 전통적 현실주의 동맹정책을 외교방침에서 배제했고, 1990년대에 제기된 신안보관에 의해 이것이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실제 외교 면에서, 자국에게 가장 심각한 안보위협 요소로 인식된 미•일동맹의 강화에 대해 중국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군사력 증강, 미•일 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 지역 다자안보체제의 제창 등을 통해 탄력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 밖에도 중국은 주도적으로 북•중동맹을 ‘혈맹’에서 단순한 국가 간의 협력관계로 약화시켰었고, 러시아와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형성하고 상하이협력기구를 설립하는 등의 공동협력을 통해 미국의 동맹체제에 대응해왔다.   마지막으로 동맹과 관련된 몇 가지 주요 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스나이더(Snyder 1997, 4-5)에 따르면 동맹은 세 가지 성격을 갖는다. 즉 동맹은 첫째, 군사 또는 안보 목적의 결사이고, 둘째, 국가 간에 이루어지며, 셋째, 동맹국 밖의 국가를 겨냥한다. 이에 따라 동맹은 “국가 안보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특정한 조건에서 동맹국 밖의 국가를 대상으로 무력의 사용 또는 비사용에 대한 국가 간의 결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동맹을 유효하게 하는 수단으로는 합동 군사계획, 제3국과 분쟁중인 동맹국에 대한 지지 표명, 동맹 맹세의 공개적 천명 등이 있다. 한편 동맹은 크기에 따라 양자동맹과 집단동맹으로, 의무관계에 따라 일방동맹(보장)•쌍무동맹•다자동맹으로, 대칭관계에 따라 평등동맹과 불평등동맹으로, 목적에 따라 공격동맹과 방어동맹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군사지원을 포함하지 않는 특별한 동맹 유형으로는 중립협약과 불가침조약이 있다(Snyder 1997, 12-13). 이 논문은 이 같은 스나이더Snyder의 용법에 따라 주요 개념을 사용할 것이다...(계속) 

조영남 2009-12-28조회 : 14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