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어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4년 6월에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국가안보패널(National Security Panel: NSP)을 구성하였다. 이후 국가안보패널은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2011),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n복합과 공진》(2013), 《1972 한반도와 주변 4강 2014》(2015),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등 일곱 권의 책을 출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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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9]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김치욱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연구 분야는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네트워크 세계정치, 중견국가론이며, 최근의 주요 논저로는 “케인스주의의 부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치엘리트의 경제담론 분석,” “네트워크 이론으로 본 미-중 자유무역협정(FTA) 경쟁,”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 변화,” “Toward a Multistakeholder Model of Foreign Policy Making in Korea? Big Business and Korea-US Relations”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2010년대 아시아의 무역관계는 중첩적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네트워크에 의해 규율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전략으로 양자 FTA를 사실상의 다자주의 레짐으로 바꾸는 일종의 양자적 다자주의(bilateral multilateralism)를 제시한다. 1990년대 경제적 기적과 신화를 차례로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2010년대 들어 ‘아시아의 세기’라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World Bank 1993; Krugman 1994; Bhagwati 1998; Kohli 2011; Bowring 2011). 국제정치 무대에서 아시아의 귀환은 행위자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보다 가시화되었고,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과 협력은 향후 아시아 무역질서의 향배를 결정할 동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국가들은 전후 다자주의 무역질서 하에서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에 입각하여 글로벌 공장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유럽이나 북미 등과는 다르게 역내 무역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다자제도를 수립하지 못하고, 대신 중첩적인 양자 FTA를 통해 자유무역을 관리해왔다. 한마디로 양자주의는 아시아 무역질서와 각국의 통상 정책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부상했다(Heydon and Woolcock 2009).   그런데 글로벌 차원에서 세력전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아시아 무역정치에도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한층 증폭되었다. 그동안 아시아의 FTA 무대에서 주인공은 중국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은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을 중심으로 공세적인 FTA 전략을 추진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인 영향권을 구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FTA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적어도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가 아시아에 대한 간여정책의 일환으로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미국의 대 아시아 서진(西進)정책은 클린턴(Hillary Clinton) 국무장관의 발언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TPP협정이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서 장차 다른 무역협정의 본보기(benchmark)로 기능할 수 있으며, 아태지역의 통합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의 기반(platform)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Clinton 2011).   한국은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FTA 게임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한-미 FTA는 2007년 서명된 지 5년만인 2012년 3월에 공식 발효되었다. 미국은 이미 호주(2005), 칠레(2006), 싱가포르(2004) 등 3개 국가와 FTA를 체결(발효)했으나, 동아시아 3대 경제 중 처음으로 한국과 양자 FTA를 최종 성사시켰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은 FTA 협상의 전단계로서 2010년 5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쳤으며 2010년 9월 정부 차원에서 국장급 사전협의를 진행했다. 한국 정부는 2012년 2월 한-중 FTA를 추진하기 위한 첫 번째 국내절차를 개시했다. 한중 양국은 한국의 국내 절차가 마무리 되는 대로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중•일 3자 FTA 협상도 점차 가시화되었다. 3국은 2010년 5월 시작된 산•관•학 FTA 공동연구가 2012년 3월 30일 종료했으며, 2012년 5월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FTA 협상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 도출될 것으로 점쳐졌다. 한국, 중국, 일본은 2012년 3월 21일 투자 자유화,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양자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을 교섭 5년 만에 전격 타결함으로써 3자 FTA 성사 가능성을 높였다.   이와 같이 2010년대 아시아의 무역 게임은 지역 다자제도의 형성 노력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양자 FTA를 중심으로 속도감을 더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글로벌 수준에서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경쟁, 그리고 한중일과 아세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아시아 FTA 게임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임할 수 있는가? 본 연구는 자유무역의 이익을 분배하는 국내 경제적 거버넌스의 구축과 기존의 양자 FTA가 사실상의 다자 무역레짐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소위 ‘양자적 다자주의’를 주문하고자 한다. 양자적 다자주의는 무역 거버넌스 아키텍처가 형식상으로는 양자적인 성격을 띠지만 그 실질적으로는 다자주의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II장은 FTA를 중심으로 짜여진 아시아 무역 거버넌스를 조명한다. III장은 FTA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사회연결망분석법(Social Network Analysis)을 활용하여 아시아 FTA 네트워크의 구조를 밝힌다. 이어 IV장은 한국의 FTA 전략으로서 양자적 다자주의의 필요성과 내용을 밝힌다. V장은 본 연구를 요약하고 양자적 다자주의의 한계점을 논함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II. 전환기의 아시아 무역 거버넌스   전후 아시아 무역질서의 변천 과정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다자주의의 실패와 양자주의의 부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10년대 아시아 국가 간의 무역관계는 양자주의에 의해 규율될 전망이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들이 양자 FTA 대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수준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체제와 함께 지역적인 차원에서도 다자주의를 지향했다(Asian Development Bank 2010).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주도로 아시아의 다자 무역협정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일본 경제학자인 기요시 고지마(小島清)는 1966년 태평양자유무역지대(Pacific Free Trade Area: PAFTA)의 창설을 제안했다. 이 구상은 훗날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nference: PECC)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프로세스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 받았다.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을 구성원으로 하는 PAFTA는 아태 경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했으며 유럽통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제안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소극성과 중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일본과 호주는 1967년에 태평양경제협의회(Pacific Basin Economic Committee: PBEC)를 만들었는데, 양국 간 상업적 협력체로서 제도화의 정도가 떨어지는 민간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띠었다. 1970년대 일중 양자관계가 중요해지고 중국이 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다자협정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잦아들었다(Kojima 1971; Deng 1997). 그러다가 1980년 당시 일본 오히라 수상(大平 正芳)과 호주 프레이저(Malcolm Fraser) 수상의 제안으로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가 수립되어 지역협력의 에너지를 회복했다. PECC는 정부, 재계, 학계 간 3자 포럼으로 정보 교환과 소통을 통해 무역과 개발 이슈에 관한 태평양의 협력을 촉진하고자 했다.   이에 앞서 1967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을 구성원으로 하는 아세안(ASEAN)이 출범했다. 그러나 아세안은 출범 초기 컨센서스 중심의 정치안보 공동체로 인식되었고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6년 발리 정상회의에서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 PTA)을 도입했지만, 대상 상품의 범위가 좁고 회원국의 이행의지가 약하여 역내무역에 대한 영향은 미미했다. 이후 1992년 아세안자유무역협정(ASEAN Free Trade Area: AFTA)을 체결하여 향후 15년 이내에 아세안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2008년까지 아세안 역내관세율을 0.5퍼센트로 인하하는 동시에 각 회원국의 비관세장벽도 점차로 철폐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로 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포괄적인 다자 무역레짐을 향한 노력은 1989년 APEC의 수립으로 가시화되었다. 1993년 미국에서 개최된 1차 APEC 정상회의는 단일시장의 건설이라는 비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개최된 제2차 정상회의에서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 목표를 설정한 ‘보고르 목표’를 채택했다. 1단계로 APEC 회원국 중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선진국들의 경우 2010년까지 역내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고, 2단계로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멕시코 등 나머지 회원국들은 2020년까지 역내 무역자유화에 동참토록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후 연례 APEC 정상회의에서 APEC 경제통합을 심화하는 각종 행동계획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2011년 현재 APEC은 여전히 역내 무역자유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APEC 2011).   아시아 지역에서 다자 무역협정의 공백은 양자 FTA에 의해 채워졌다. [그림 1]과 같이 아시아 국가들은 2011년 현재 250개의 FTA를 이미 체결했거나 협상 또는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FTA의 태반은 양자 협정인데, 1990년 3개에서 170여개로 급증, 전체 FTA의 6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의 양자주의는 역내 다자주의 틀인 APEC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유럽과 북미의 지역주의가 확산되는데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다. 아시아 밖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유럽연합, 미국, 일부 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FTA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양자 FTA 확산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1992년의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를 제외하면 2000년 이전에 양자 혹은 복수국간(plurilateral)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아시아 국가는 없었다. 일본과 한국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여전히 다자주의를 지지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 중 양자 무역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WTO 협상이 지체되고 APEC이 동력을 잃어감에 따라 점차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한국은 1999년 칠레 FTA 협상을 개시했고, 일본과도 준정부간 수준에서 FTA 논의를 시작했다. 일본은 싱가포르가 FTA 카드를 제시했을 때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2002년 서명했다. 이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역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멕시코와의 FTA 협상으로 관심을 돌렸다...(계속)  

김치욱 2012-05-03조회 : 14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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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8]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캔사스 대학(University of Kansas)에서 동아시아학 학사, 남가주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도쿄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방문 연구원, 남가주 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강사, 브라운 대학교 왓슨 국제연구소(Wat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Brown University) 및 동아시아학과 프리만 펠로우, 오클라호마 대학교(University Oklahoma) 중미 연구소 연구위원, 동대학 정치학과 및 국제지역학부 조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The Japanese Challenge to the American Neoliberal World Order: Identity, Meaning, and Foreign Polic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8)가 있고 편서로는 《동아시아 금융지역주의의 정치경제 : 제도적 발전과 쟁점들》 (아연출판부, 2012)이 있다.         I. 들어가는 말   외교정책은 정책적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성되어있다. 정책적 목적은 국가가 국제정치의 장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일이며, 수단은 정책적 목적에 따른 방법론에 해당한다. 종종 국익이란 개념으로 표현되는 정책적 목적의 설정은 국가가 구조적으로 처한 정치, 경제, 안보,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전략적 맥락에 영향을 받기도 하며, 또한 국내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책 수단은 물리적 압박, 협상 및 협력, 설득 등이 있으며 이러한 메커니즘은 일방주의, 양자주의, 다자주의적 형태로 전개된다. 국제정치 질서의 규칙제정자(rule-shaper)가 아닌 규칙준수자(rule-taker)인 비강대국인 경우 정책적 선택의 폭은 상대적으로 넓지 않으며 정책 수단도 제한적일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금융과 통화의 영역은 세계경제질서의 근간으로서 권력, 이익, 아이디어를 매개로 한 경쟁과 협력의 장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자본 자유화와 금본위제가 영국의 패권과 무관하지 않고 2차 대전 후 제도화 된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성립과 몰락, 그리고 신자유주의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발흥은 미국과 G-7으로 불리는 경제 강대국의 경쟁과 협력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Cohen 1966; Kindleberger 1971; Krasner 1982; Ruggie 1983; Keohane 1984; Cox 1996; Strange 1998; Ikenberry 2001). 다시 말해, 지난 150년에 걸친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는 변화와 지속의 역사이다. 변화와 지속은 시장과 국가의 상호성 속에 글로벌, 지역, 국가 차원의 제도화를 통해 나타났다. 제도화의 핵심은 규칙제정(rule-making)과 규칙변환(rule-transformation)의 과정이고(예. 국제기준의 정치, Politics of Global Standards), 규칙은 “Ruler”와 “the Ruled”를 동반한다(Onuf 1989). 브레튼우즈 체제의 중추인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의 제도적 작동방식은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규칙준수자로서 비강대국은 변화하는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에의 적응을 주요 정책적 목적으로 삼게 된다. 다시 말해, 정책적 목적의 선호도가 자율성이 크지 않는 제한적 선택(constrained choice)을 띄게 됨을 의미한다. 이제 막 시작된 21세기 초는 세계도 변했고 한국도 변하였음을 보여준다. 세계경제질서는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고, 한국은 지난 반 세기 동안에 걸친 경제발전의 과실로 국제정치의 장에서 규칙준수자에서 잠재적이나마 규칙제정자의 일원으로 이행하고 있다. 2009년 출범한 세계경제질서 협의체인 G-20에 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향후 1여 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경제질서의 큰 변환기(Great Transformation)로 기록될 수 있고 한국은 ‘적응’을 넘어선 ‘주도’로의 역할 변화기를 맞이할 수 있다.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존의 미국 주도적인 신자유주의적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변화를 글로벌, 지역적 차원 모두에서 요청하고 있다. 먼저 통화 질서를 보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패권은 흔들리고 있고(Helleiner 2009; Eichengreen 2010), 신자유주의 경제 패러다임을 기초로 탄생한 유로도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McNamara 1998; Gillingham 2005). G-2로 부상한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며 달러 의존성을 줄이려고 한다(이용욱 2011). 또한 남미, 아프리카, 중동에서는 지역차원의 통화 동맹을 이미 출범 시켰거나 추진 중에 있다. 동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적 차원에서 역내 환율 안정을 위해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과 한중일 즉,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는 아시아개발은행(The Asian Development Bank: ADB)과 함께 지역통화 설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의 말대로 세계경제는 달러체제의 종식과 함께 복수 기축통화 체제로의 이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Eichengreen 2010).   통화질서가 무역과 투자의 기초로서 결제, 비축, 회계의 기준이 되는 통화의 수요 및 공급의 안정적 운영을 통한 환율의 문제라면, 금융질서는 무역과 투자의 촉진을 위한 자본 자유화 정도를 포함한 자본 시장의 형성 및 발전, 그리고 금융위기 방지와 금융위기 시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금융안전망 확충에 관한 것이다. 1980년 이래로 진행되어온 세계화(globalization)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를 의미하였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IMF 개혁을 필두로 자본 규제론이 힘을 얻고 있고, 지역적 차원에서는 유럽 안정화 기금과 같은 역내 금융위기 방지 메커니즘 설립에 대한 논의가 남미, 아프리카, 중동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구 자본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지역 금융 시장 발전 방안들이 지역중심의 권역별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도 아세안+3를 중심으로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후 제도적 협력 장치의 구성을 통해 지역 금융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제적으로, 금융위기 방지 및 금융위기 시 효과적인 대처방안은 2000년 양자간 스왑(swap) 협정에서 출발하여 2010년 다자화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na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zation: CMIM)를 통해 제도화 되어왔고 아시아판 IMF 인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 AMF) 창설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 아세안+3는 2011년 5월 싱가포르에 CMIM의 자매기관으로서 역내 금융 감시기구인 아세안거시경제감시기구(ASEAN Plus Three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 AMRO)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AMF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역내 금융시장 활성화는 지역 채권시장 발전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2002년 출범한 아시아채권시장 이니셔티브(Asian Bond Market Initiative: ABMI)로 대표되고 있다. 아세안+3는 아시아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기제인 신용보증투자기구(Credit Guarantee Investment Facility: CGIF)를 2011년 5월 발족시켰으며, 역내 채권거래에 대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역내 예탁결제기구(Regional Settlement Institute: RSI)의 설립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금융 및 통화 외교의 구조적 맥락으로 작용할 대변환기의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는 큰 틀에서 보면 서로 관련된 세가지 흐름으로 압축 하여 볼 수 있다. 첫째, 글로벌 차원에서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제도적 틀의 변화와 그 변화의 깊이, 정도, 방향성이다. 둘째, 점증하는 지역 금융 및 통화 시스템의 출현과 공고화 정도이다(Katzenstein 2005; Powers and Goertz 2011). 마지막으로, 글로벌 차원과 지역 차원에서 발전하고 있는 금융 및 통화 질서의 관계적 성격이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차원의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발전이 배타적인 형태를 취해 글로벌 차원과 지역 차원의 경쟁뿐 아니라, 지역간 경쟁체제의 형태로 제도화 될 것 인가?   이러한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대변환기에 한국은 어떻게 글로벌과 동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며 규칙제정자 역할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환율 안정, 금융안전망 확충, 경제 발전을 위한 원활한 자본 공급과 관리가 큰 틀에서 금융 및 통화 외교의 정책적 목표라고 볼 때 어떠한 방법으로 이들을 추구하여야 하며, 동시에 어떻게 최대한 정책 자율성(autonomy)을 확보하여 한국의 선호도를 글로벌 및 동아시아 지역 금융 및 통화 질서에 반영 할 수 있을까?   본 보고서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한국 금융 및 통화 외교가 추구해야 할 정책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비강대국으로서 한국은 다자주의를 정책적 수단으로써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추구하여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중개인(honest broker)역할 수행을 통해 이미 진행중인 동아시아 금융 및 통화 협력의 제도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동아시아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G-20 등의 글로벌 차원의 금융 및 통화 질서의 규칙제정 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다자주의를 통한 지역과 글로벌의 연계 전략이며, 이와 같은 전략적 선택이 다른 전략에 비해 한국의 정책 선호도가 세계경제질서 재확립 시기에 가장 많이 확보되고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지역 다자주의의 공고화를 통해 중국과 일본과의 신뢰 관계 형성과 정책 공조의 경험을 쌓고 정책을 함께 개발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정책 선호도를 구현하는 방안이다. 비강대국이 특정 이슈에 관해 다자주의를 출범시키고 제도적 틀을 짜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이미 작동 중인 다자주의 틀은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왜 다자주의가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기존 연구를 중심으로 논하여 본 보고서의 주요 주장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한국의 금융 및 통화 외교의 주요 대상인 지역차원의 동아시아 금융 및 통화 협력과 글로벌 차원의 G-20의 발전과정, 쟁점 사항들, 그리고 미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본다. 위의 논의를 토대로 한국에 있어서 지역과 글로벌을 아우르는 다자주의 연계 전략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논하고 다자주의 틀 안에서 효과적인 한국의 역할을 위해 정책 네트워크 역량 강화를 제안하며 마무리한다.   II. 왜 다자주의인가?   다자주의는 일방주의, 양자주의와 함께 국가가 외교정책을 실행하는 방법이다. 비강대국의 경우 일방주의는 선택하기 용이하지 않는 방법이며 따라서 양자주의와 다자주의가 선택지인데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자주의가 비강대국의 정책 실현에 양자주의에 비해 우호적일 수 있다. 다자주의가 비강대국에 주는 이점을 먼저 일반론적으로 살펴보고 다음으로 지역과 글로벌을 연계하는 한국의 금융과 통화 외교에서 다자주의의 유용성을 살펴본다.   다자주의는 그 자체로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에게 여러 가지 이득을 준다. 가장 일반적으로, 합의 지향적인 다자주의는 다른 형태의 정치과정에 비해 비강대국의 목소리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들릴 수 있게 한다. 물론 최종 결정된 정책이 다자주의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들에게 언제나 대칭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현실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다자주의 역시 강대국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을 수도 있다(Krasner 1985; Mearsheimer 1995; Grieco 1999).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다자주의는 양자주의에 비해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따른 이득의 분배를 완화할 수 있다(Ruggie 1990; Martin 1998). 다자주의 제도가 제공하는 규범, 규칙, 의사진행 과정을 활용하여 강대국과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Hurrell 2005, 50). 이에 관해 루(Catherine Lu)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Lu 2009, 54-55).   While conflicts, especially over the distribution of goods and burdens, will inevitably arise, under conditions of political friendship among peoples [in a multilateral setting], they will be negotiated within a global background context of norms and institutions based on mutual recognition, equity in the distribution of burdens and benefits of global cooperation, and power sharing in the institutions of global governance rather than by domination of any group.   다자주의는 대변환기에 유리하다. 대변환기란 변화를 향한 다양한 의견과 정책 제안이 새로운 권력과 기존의 권력이 충돌하는 정치의 장에서 전개되는 격동의 시기(turbulent period)를 말한다. 다자주의의 틀은 이러한 변환기에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정보(정책 선호도 및 수단 등)를 공유하게 한다. 토론과 정보의 확충이 언제나 모든 행위자가 동의할 수 있는 좋은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자주의가 제공한 토론을 통해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해결책들이 있는지 논의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각국의 입장이 표출되어 규칙준수자인 비강대국이 한결 수월하게 적응을 위한 정책적 예측을 할 수 있다(Pouliot 2011).   가령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출범한 G-20는 네 개의 클러스터로 구성되어 있다. 클러스터 1은 금융규제개혁(Banking Capital Requirements/Basel III Agreement)으로 은행의 자기 자본률에 관한 문제와 각종 은행 규제에 관해 논의한다(“Bonus Regulations,” “Accounting Harmonization,” “Credit Rating Agencies,” “Bank Tax, International Transaction Tax,” “Derivatives,” and “Hedge Funds”). 클러스터 2는 거시경제정책공조(Macroeconomic Coordination)이다. 거시경제 조정을 위해 논의되는 이슈는 “Sovereign Debt Management,” “Global Imbalances and Currency,” “Currency Valuations and Movements,” “Monetary System”(The Future of the Dollar as Core Currency), “글로벌 금융안정망”(Global Financial Safety Net(Korean Agenda)), “Trading System Coordination”(Prevention of Protectionism and Doha Round Completion) 등 이다. 클러스터 3은 공공재(Public Goods)에 관한 논의를 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의제는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기후/에너지”(Climate/Energy), “식량안보”(Food Security), “혁신/교육, 부패”(Innovation/Education, Corruption) 등 이다. 마지막으로 클러스터 4는 제도화 및 거버넌스 프레임워크(Institutionalization and Governance Framework)인데, G-20 사무국(Secretariat) 설립 여부와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제도(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의 개혁을 다룬다. 이와 같이 다자주의의 틀 안에서 클러스터 별로 세부주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게 된다. 의견의 일치와 불일치 과정 속에서 당면한 문제에 관해 각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공론의 장(a shared framework of interaction)이 생기게 되어 문제 해결의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한 정책적 예측이 높아질 수 있다...(계속)

이용욱 2012-04-26조회 : 1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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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6]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부교수. 신성호 교수는 미국 터프츠 대학(Tufts University) 플레쳐 스쿨(Fletcher School)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 국방부 아태안보연구소 (APCSS) 연구교수, 미국 부르킹스연구소 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워싱턴 동서연구소(East-West Center)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연구관심은 동아시아 안보와 국가전략, 한미동맹과 한반도, 인구변화와 동북아 국제정치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Nuclear Sovereignty vs Nuclear Security: Renewing the ROK-US Atomic Energy Agreement,” “Demographic Peace: Rapid Aging and Its Implication for Northeast Asian Arms Rivalry,” “The ROK-US Alliance in the 21st Century: A Smart Alliance in the Age of Complexity,”《핵 테러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부시와 오바마》등이 있다.         I. 서론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안보 역학관계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실주의자들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성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방 역량을 증가시킴에 따라 안보 딜레마에 빠지면서 경쟁구도가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Friedberg 1993-94; Betts 1993-94; Buzan and Segal 1994; Duffield 2003; Christensen 1999; Wu 2005-06).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부상은 결국 미중간의 패권경쟁과 이 지역에서의 군사대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Mearsheimer 2001). 실제 지난 시기 동북아 지역 내 국방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특히 중국의 국방비 증가는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며 과거 10년간 빠른 군사력의 성장을 보였다. 중국은 2010년 명실상부한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기 이전인 2005년에 이미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국방비 대국이 되었다. 한국은 세계 15위라는 경제규모에 규모에 맞게 지난 10년간 괄목할만한 국방비 증가를 기록하여 세계 12위에 올랐다(SIPRI 2010). 일본의 국방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1퍼센트 유지라는 정책 속에서도, 그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경제 규모를 반영하여 그 절대액수가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SIPRI 2010). 동북아의 군비경쟁은 북한의 핵개발, 한일, 한중 간 역사 및 영토 분쟁, 대만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 민족주의의 증가 등 고질적인 정치, 군사적 문제들에 의해 더욱 증폭되는 경향을 보인다(Christensen 2011; Rozman and Lee 2006, 761-784; Matthews 2003).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강대국 간의 견제, 국가 간 분쟁과 불신,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 다자 기구의 확산과 활성화, 사회 문화 교류 증가,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한 지역 내 협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Pempel 2005; Kurlantzixk 2007; Katzenstein 2005; Katzenstein and Shiraishi 2006). 또한, 일부 구성주의자들은 동아시아 특유의 전통과 문화로 인해 중국의 부상이 서구의 경우와는 달리 지역국가들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 진행될 것이며, 권력 이양이 생각보다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Kang 2003; 2004; Berger 2003, 387-420). 하지만 자유주의나 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실주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있지는 못하다. 현실주의는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이 여전히 증가하는 이유를 묻고 있다. 동북아의 군비경쟁은 과거 유럽 강대국 간 경쟁과 힘의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주류 국제정치이론의 세 가지 주요 요소인 힘, 제도, 이념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경쟁과 협력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론의 토대가 되는 현실은 항상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영향을 줄 다른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Suh, Katzenstein and Carlson 2004, 1-33; Acharya 2008, 57-82). 21세기 국제정치는 국가를 넘어선 개인이나 민간단체,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등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급격한 환경변화나 빈곤과 기아, 지구적 질병 문제는 국가간 전쟁보다 더욱 큰 재앙을 초래하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간 관계도 이제 보다 복잡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근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어온 인구변화는 한 국가의 내부 사회뿐 아니라 국가간 지정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이 최근 미국을 포함한 주요 강대국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인구변화가 이들 국가간의 세력균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요소중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holas Eberstadt)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출산저하와 인구의 노령화라는 현상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인구변화는 이들 국가의 경제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근본요인으로 작용하며 국력의 장기적인 쇠퇴를 가져온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 감소 및 노령화로 인한 효과가 일정기간 잠복기를 거쳐 갑자기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문제가 드러날 시점에서 이를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현재 급속히 진행되는 인구변화는 국제정치에서 주요 강대국간의 세력 전이를 결정짓는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Eberstadt 2010, 58-67; 2003). 하스(Mark L. Haas)는 고령화되는 인구구조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강대국 간의 군사 경쟁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 중국 등 급속한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글로벌 고령화’(global aging)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 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된다(Haas 2007, 112-117).   동북아는 그 어느 지역보다 급속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겪고 있다. 동북아의 급속한 노령화는 각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이들간의 관계, 특히 지정학적 경쟁과 군비증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본 연구는 한중일 삼국의 고령화 추세가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와 경제활동 인구의 위축은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을 둔화 시킬 뿐 아니라 복지비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복지비의 증가라는 두 현상은 서로 상승작용을 통해 국가 재정에 심각한 압박요인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결국 다른 재정지출 특히 군사비 지출과 증가에 중요한 제약요인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군비경쟁이 인구변화에 의해 둔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민주평화(democratic peace)가 아닌 인구평화 (demographic peace)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II.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   1.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고령화   인구의 고령화는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적으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중일의 인구변화를 영국, 프랑스,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 이 지역의 저출산과 노령화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표 1]의 경우 동북아 삼국의 출산율 저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에 인구 유지를 위한 필수 출산율인 2.1을 하회했으며 한국 역시 1980년대부터 출산율 저하 현상을 겪고 있다. 그 결과 한일 양국은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도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보다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 .   [표 1] 국가별 출산율   출처: 유엔, 세계인구전망 (United Nations,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08 Revision Population Database (New York: United Nations, 2008), http://esa.un.org/unpp/index.asp?panel=2, select variant: medium   반면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괄목할만한 경제 발전은 이들 사회의 평균수명이 급속히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표 2]에 의하면 한국, 일본, 중국의 기대 수명이 유럽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 2] 국가별 기대수명(남녀 모두)   출처: United Nations,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08 Revision Population Database (New York: United Nations, 2008), http://esa.un.org/unpp/index.asp?panel=2, select variant: medium   저출산과 기대수명의 빠른 증가 현상은 종합적으로 한중일에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표 3]은 각 국가별로 인구 구조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본이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인구의 7퍼센트 이상이 65세 노령인구가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로 전환된 반면, 한국과 중국은 각각 2000년과 2001년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 일본은 2011년에 인구의 23퍼센트가 65세 이상 노령인구로 구성되면서 21퍼센트 이상으로 구분되는 초고령 사회를 넘어 비교대상 국가 중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가 되었다(Japan Ministry of Internal Affairs and Communication 2011). 2025년에는 한국의 고령화가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으며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고, 중국은 인구의 13.4퍼센트가 고령인구로 구성될 것이다. 2050년에는 일본과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계속)

신성호 2012-04-12조회 : 1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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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5]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북한과 한반도 관련 정책 개발에 대한 자문을 맡고 있다. 김성배 박사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 부임하기 전까지 통일부 정책보좌관(2006),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행정관(2003-2006년)을 역임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북한학과 교수.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위원, 북한경제연구팀장, 기회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과학환경위원회 상임위원, 대통령자문 한중전문가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동아시아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조선일보 <아침논단> 고정칼럼리스트, SBS 외교통일안보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북한경제와 남북경협이며, 최근 연구로는 “북중관계의 변화와 남북경협,” “An Evaluation of the Situation Facing the North Korean Economy Today and Prospects,” “계획경제의 한계,”《북한 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공편) 등이 있다.         I. 미중 복합외교 시대와 새로운 대북정책의 모색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의 대북정책은 세계 및 지역 질서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되어 왔다. 냉전시대 한국의 대북정책이 비록 데탕트와 신 냉전의 교차에 따른 미시적 변화를 보였지만 적대적 공생의 범주를 넘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세계 및 지역 수준의 냉전질서에 기인한 것이었다. <7.7 선언>(1988)으로 대표되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세계적 탈냉전 흐름에 반응한 정책이었으며 한국의 대북정책이 처음으로 봉쇄(containment)로부터 관여(engagement)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도 북핵 문제라는 돌출변수로 인해 온건과 강경을 오갔으나 탈냉전이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그 명칭이 무엇이든지 간에 교류와 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관여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원칙적으로 상생과 공영이라는 모토 하에 기존의 관여정책을 유지하면서도 기왕의 햇볕뿐만 아니라 제재(sanctions)라는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체제의 변화(regime change)를 추구하는 다소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주로 국내 정체성의 정치와 더불어 북한의 권력승계라는 변수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에 주력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관여정책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북한에서 후계체제 구축작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이 실시되고 2010년 들어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발생하면서 관여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정책목표는 대개 수렴하면서도 정책수단의 차이가 부각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문제의식이 안으로는 정체성의 정치에 밖으로는 탈냉전이라는 한계에 머물러 있으며 보수와 진보, 그리고 탈냉전을 넘어서는 세계 및 지역 수준의 격변을 포착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21세기 들어 세계질서는 단순히 탈냉전이라고 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제정치 행위자와 무대 등 모든 측면에서 근원적 변화를 겪고 있다. 탈냉전 초기인 1990년대에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일시 작동하는 듯 보였지만 21세기 들어 중국의 국력이 예상보다 급격히 신장되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불거지면서 미중 두 강대국을 축으로 세계 및 지역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미중관계가 이른바 G2체제, 또는 미중시대라는 말에 어울리게 안정적이고 협력적 관계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경쟁 속에서 불안정하고 갈등적 관계로 귀착될 것인지에 따라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글로벌 파워이자 지역국가라는 중국의 이중적 속성으로 인해 미중관계가 직접적으로 투영될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 무대도 기존의 안보•경제 중심에서 환경•에너지, 정보•지식 등 다양한 무대가 동시에 펼쳐지는 한편 다양한 이슈들이 클러스터화되어 안팎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위기와 미중 간 경제력 격차의 축소로 인해 경제가 핵심적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최대 안보현안인 북핵•북한 문제 역시 이러한 세계 및 지역 수준의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수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흐름은 북핵•북한 문제가 사실상 미중을 위시한 강대국 정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미중이 보여준 상이한 반응과 미묘한 갈등은 미중 양국이 북한문제를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예상보다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6자회담 재개 등 북한문제 관련 합의가 비교적 수월하게 창출된 것은 미중관계의 안정적 관리 차원에서였다. 김정일의 사망 이후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강력히 엄호하고 미국 역시 북한의 안정적 권력승계를 희망한 것도 북한체제의 급변으로 인한 동아시아의 급격한 현상변경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북핵•북한 문제는 한반도의 안보현안이지만 중국 자체의 안정성이나 동아시아의 영토•영해 분쟁 등 여타 안보현안이나 세계경제 위기나 환경•에너지 문제와도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자체의 불안정성이 증대할 경우 북한은 직접적 영향을 받을 것이며 중국이 자신의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주권과 영토문제에서 수세에 몰릴 경우 중국은 북한문제까지도 포함시켜 핵심이익을 확장적으로 정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한편, 북핵•북한 문제는 세계 및 지역 수준의 경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으며 에너지 이슈의 부각은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관여를 증대시킬 것이다.   우리는 향후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세계 및 지역 수준의 역동성이 북한문제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전반적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대외전략을 구사하는데 있어 북한문제와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질서 건축 과정에 직접 설계자로 참여하든, 중견국 외교전략을 구사하든 북한문제와 대북정책이 우리에게 상당히 효과적인 외교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2010년대 대북정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선택과 북한체제의 장래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전망이 요구된다. 당연히 향후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김정은 체제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II.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리더십 유형   김정은은 2009년 1월 김정일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집중적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며 2010년 9월 28일 44년 만에 개최된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위를 차지함으로써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작년 12월 30일 김정일이 남겼다는 소위 <10.8 유훈>에 따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에 추대되었다. 또한, 김정은이 후계자의 지위에 올랐던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 이어 또다시 금년 4월 11일 개최되는 당대표자회에서 당총비서직 자리에도 등극할 전망이며, 4월 13일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회의에서 국방위원장직을 승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이 치열한 권력투쟁과 장기간에 걸친 후계자 수업과 업적 쌓기를 통해 공식으로 후계자 지위를 획득한 ‘쟁취형 후계자’라면 김정은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순식간에 후계자 반열에 오른 ‘간택형 후계자’이다. 김정은의 리더십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그의 권력기반이 확고히 공고화되었다고 속단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착근할 것으로 보는 근거는 수령제•후계제 라고 하는 북한의 독특한 정치제도와 대안적 정치세력이 형성되기 어려운 북한의 정치구조에 있다. 북한은 구소련과 중국의 권력 이양기에 나타난 혼란을 반면교사 삼아 “후계자가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받들어” 모든 문제들을 처리해 나가는 후계제도를 창출하였다 . 절대권력으로서 수령의 정치적 후원을 받는 후계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존재하기 어렵다. 김정일 사후 권력구조로 집단지도체제나 후계자와 지배엘리트가 연합하는 혼합형체제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한 이들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집단지도체제는 본질적으로 북한의 수령제와 배치된다. 북한이 수령제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핵심적 논리가 집단지도체제의 폐해였다(김일성 1996, 109-110). 설사 후계자의 정치적 리더십과 권력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더라도 권력엘리트들은 독자적 연합을 통해 후계자를 견제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기 보다는 후계자와의 지배연합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합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혼합형체제를 주장하는 주된 논거이다. 현재 북한은 장성택, 김경희, 리영호 등 당과 군의 실세들이 김정은을 후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견 혼합형체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혼합형체제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과도적일 뿐이며 결국은 일인지배체제나 집단지도체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정영태•이교덕•정규섭•이기동 2010, 51-52). 그런데, 집단지도체제가 경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북한에 착근하기 어렵다고 할 때 결국엔 김정은 중심의 일인지배체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지 두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평가해 보면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비교적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 지위를 차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최고지도자로서의 역할 수행을 강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새해를 맞아 1월 1일 당•정•군 고위간부들과 공연을 관람하고 설날에는 국가연회를 베푸는 등 북한의 권력엘리트들을 장악해 나가는 모습이다. 2월 16일 김정일 70회 기념행사의 주인공도 사실상 김정은이었다. 김정일 생일에 처음 거행된 열병식에서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박재경 대장 등 군수뇌부는 김정은 부위원장 앞에 도열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한, 김정은은 금년 1월부터 2월까지 10번 이상 군부대를 시찰하고 경제현장을 방문하는 등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수행하던 최고지도자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기반에 이상징후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김정은 체제에 대한 도전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북한의 고질적 경제난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 등에 대응하여 김정은이 효과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단기적으로 수년 내에 정치적 불안정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 이후에도 중장기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선군의 ‘계승’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와 북한의 장기 생존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이라는 구조적 압력이 공존하는 모순적 딜레마 속에서 김정은 체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선군의 계승과 정책전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에 놓일 가능성이 높으나 이는 체제 불안정성만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변화의 압력을 무시하고 제2의 유훈 통치를 통해 선군에 얽매여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는 길이다. 김정은은 앞으로도 선군 정치를 내세워 경제개혁과 비핵화를 외면하고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의 공고화에 치중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선택은 당장의 권력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켜 정치적 불안정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주적 변환을 통해 선경제와 비핵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당분간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유훈 통치’를 전면에 내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서 김정일 시대와의 차별화를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권력 이양기의 특성상 당장 파격적 변화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이러한 미래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한편, 김정은 체제는 이미 부분적으로 아버지 시대와는 미묘하게 다른 리더십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외견상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군부대 시찰 과정에서 군인들과 팔짱을 끼거나 손을 꽉 잡는 등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1월 14일 자강도 만포시 주민들에게 이례적으로 긴 문장의 친필편지를 보낸 것(<조선중앙통신> 2012/1/16)도 북한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공개된 현지지도 수행자 명단이 4~5명에 불과해 수행자가 10~20명에 달했던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 비해 간소화되었다는 것도 눈에 띈다. 군인 및 주민과의 접촉을 강화하기 위해 실무형 수행단을 꾸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서 “군중로선”을 강조했던 김일성 주석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직 최종적으로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미 김일성을 빼어 닮은 외모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의 리더십 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3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에 걸쳐 김일성의 유훈 통치에 의존했고 1998년 헌법개정으로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직에 재추대되면서부터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를 내거는 등 유훈 통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는 2월 16일 김정일 탄생 70주년을 정점으로 점차 애도정국을 마무리하고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백주년을 맞는 경축정국으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여기서도 김정일의 유훈 못지않게 김일성 혈통을 부각시키려는 김정은 체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III. 김정은 시대의 북핵 외교 : 김정은식 등거리 외교?   김정은 체제는 핵과 미사일 문제 등 대외정책에서 이중적 신호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2•29 합의>를 통해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모든 핵활동의 중단을 약속하는 유화적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3월 16일 소위 ‘광명성 3호’라는 장거리 로켓발사를 선언하여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경 대응을 자초하고 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가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문제로서 북미간 <2•29 합의>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지만 미국은 인공위성 발사체는 장거리미사일과 기술적으로 동일한 만큼 <2•29 합의>의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이 실제로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하면 대북 영양제공을 중단하고 추가적 대응조치를 모색할 계획이며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제3차 핵실험 등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광명성 3호’ 발사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경축행사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는 만큼 이를 취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국제사회에 위성발사 참관을 요청하고 핵활동의 중단을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사찰단의 입국을 제안하는 등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계속)

김성배·조동호 2012-04-08조회 : 1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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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4]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서봉교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중국경제, 중국금융 담당).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삼성금융연구소 해외사업연구팀 수석연구원(중국금융 담당), LG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중국 경제 담당)을 역임하였다.   이동률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1996년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대중국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패널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대외관계, 중국 소수민족, 중국의 민족주의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중국 미래를 말하다》(편저), 《중국외교연구의 새로운 영역》(공저), 《중국의 영토분쟁》(공저), “중국 정부의 티베트에 대한 중국화 전략: 현황과 함의” 등이 있다.         I. 서론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즈음한 2020년을 겨냥하여 “균형되고 조화로운 소강사회의 전면적 실현”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난 30여 년간 지속해 왔던 고도성장 기조를 유지해 가면서 동시에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성공의 위기’들을 효과적으로 해결 또는 관리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2012년 등장할 5세대 지도부는 이전과 달리 개혁 후기의 다양한 사회적 위기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예컨대 이념적 취약성, 부정부패로 인한 정통성의 위기, 양극화 등으로 인한 사회통합의 위기, 에너지,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한 성장 지속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11년 3월 열린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회의에서 확정된 ‘12.5 규획’(規劃)에서는 이러한 국가적 과제가 구체적으로 상정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10년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을 안정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국내 정치경제적 과제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2012년과 2013에 걸쳐 진행될 5세대 정치엘리트로의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새롭게 구성될 5세대 정치엘리트는 이전 세대와는 체제 속성과 정책성향에서 어떠한 지속성과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인지?   둘째, 중국이 향후 10년에도 서구식 정치개혁을 유보한 채 소위 “중국식 정치개혁”, “중국식 발전방식”을 통해 정치안정과 체제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서구적 시각에서 볼 때 중국이 지난 30년간 “정치개혁 없는 성장”이 지속된 것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향후 중국은 이 문제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셋째, ‘12.5 규획’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민생활 개선”과 “사회건설 강화”를 통해 지난 30여 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되어온 사회 양극화, 부정부패, 실업 등 불안정 문제를 해결 또는 관리하면서 균형성장을 실현해 갈수 있을지?   중국 체제의 지속과 안정 여부는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지속되지 못할 경우 성장신화에 묻혀 있던 다양한 위기 요인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경제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는 상당부분 경제외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 체제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변수이며 중국의 경우에는 특히 정치 엘리트들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5세대 정치엘리트 역시 합의를 통한 정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요컨대 중국의 권력정치의 안정성과 균형성장은 상호 유기적 영향을 주면서 향후 중국 공산당체제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II. 5세대 정치엘리트의 등장과 특징   1. 5세대 정치엘리트 등장 전망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중국의 권력교체, 특히 장쩌민(江泽民)에서 후진타오(胡錦濤)로의 권력이양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큰 틀에서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이미 권력의 중심에 진입해 있는 5세대 리더십으로의 권력교체는 큰 변동이 없이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특유의 권력교체가 정착되는 단계에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 9인 체제도 정착되고 있다. 16차 당 대회에서 7인에서 9인으로 증가하였고, 17차 당 대회에서도 9인 체제가 유지되면서 제도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시진핑(習近平)이 향후 2012년 가을 18차 당대회와 2013년 봄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각각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으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진핑은 2002년 후진타오가 장쩌민을 승계하기 위해 밟아온 과정과 절차를 답습해가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2007년 10월 17차 당 대회에서 리커창(李克强)과 함께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된 데 이어서 2008년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부주석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마침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그간의 논란을 잠재우며 5세대 최고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하게 되었다.   17차 당 대회에서는 권력승계와 관련 이전과는 다른 실험을 했다. 기존의 1인 낙점, 지명 방식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의 2인 경쟁 구도로 변화한 것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체제까지는 개혁개방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고, 덩샤오핑에 의해 낙점된 후계체제였다. 새롭게 등장할 5세대 정치엘리트들은 계파간 타협의 결과 2인 경쟁구도로 귀결되고 있다. 향후 이들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과 성향을 지닌 2인이 총서기와 총리를 분담하는 투톱체제를 구성한다는 차원에서 중국 엘리트 정치에서 이례적인 시도이다.   5세대의 2인 경쟁체제가 새로운 시도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계파간 타협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계파간 대립보다는 협의와 타협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시진핑의 개인적 리더십과 새로운 지도부의 성격 등을 고려할 때 후진타오 체제보다도 더 집단지도체제(collective leadership)의 성격이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정치국 상무위원 9인이 각각 책임영역을 분담하는 집단 지도체제가 보다 강화될 것이며, 따라서 정책결정이 특정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보다 복잡하지만 정교해질 가능성이 있다.   리청(Li Cheng)은 중국공산당내의 ‘태자당’(太子黨)과 ‘상해파’ 중심의 ‘엘리트그룹’(The Elitist)과 ‘공청단’(共靑團)출신 중심의 ‘대중그룹’(The Populists)의 두 개 파벌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Li 2010). 사실 중국 정치엘리트내의 파벌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쉽지 않다. 파벌간 대립과 갈등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이 표면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후진타오 체제에서도 파벌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지난 9년간 정책적 이견이 일부 노정되었을 뿐 파벌간 갈등이 심각하게 표출될 사례는 거의 없다.   요컨대 역설적이지만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국내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위기 인식이 크면 클수록 정치엘리트 내부의 단합과 안정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중동의 재스민 혁명 역시 중요한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엘리트 내부의 안정화는 중국이 다양한 정치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분열은 위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덩샤오핑의 말을 인용한 후진타오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중국문제의 관건은 정치국,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달려 있는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태산과 같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新華網 2007). 이는 결국 중국 체제의 안정성은 엘리트 정치에 달려 있고, 엘리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 승계이고, 권력승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안정은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권력 엘리트 내부에서 체제 유지에 대한 위기감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권력 교체는 물론이고 정책적 이견으로 인한 내부 분열, 또는 갈등의 대외적 노출이 야기할 있는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일단 정치엘리트들간의 내부 단합을 중요한 가치로 상정하고 있고, 혹시 내부적으로는 이견이 발생하더라도 이것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은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이후 예정대로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구축된다면 외견상 과거 어느 체제보다도 이질성이 강한 조합이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로 볼 때 향후 10년이 중국 부상의 성패와 방향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기회의 시기라는 데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공통의 인식이 갈등을 봉합하고 조정하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정치 엘리트 집단 내에 공멸의 위기 공감대와 함께 공생의 기대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후진타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던 것이 ‘민생’ 이었고, ‘12차 5개년 경제발전규획’의 키워드 역시 민생 이었던 것으로 봐서 기본적으로 5세대 엘리트 역시 민생 정치를 지속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현재 공산당이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위기의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위기 공감대가 엘리트의 단결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5세대 정치엘리트의 특성과 정책 방향   중국 정치엘리트의 성격 변화는 중국 공산당의 체질 변화와 연동되어 진행되어왔기에 향후 중국의 정치변화를 전망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공산당은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던 혁명당에서 개혁기에는 개혁을 통해 발전을 추동하는 행정당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정치정당으로서의 변화가 예상되는 과도기적 과정에 진입하고 있다(鄭永年 2007, 32-41). 장쩌민 시기에 이른바 “삼개대표론”을 공식 지도사상으로 당장(黨章)에 새로이 포함시킨 것 자체가 바로 공산당이 기존의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그리고 혁명당에서 집권당으로의 변신이 불가피해진 현실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당의 체질 변화와 함께 공산당 지배엘리트의 성격 또한 변화해 왔다. 마오쩌둥 시기에는 혁명가들이 지배엘리트였다면 덩샤오핑 시기와 장쩌민 시기에는 기술관료와 전문가들이 지배엘리트로 충원되었다. 정치정당으로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도기에 위치한 후진타오 시기를 거쳐 새로이 등장하는 5세대의 정치엘리트들은 기존의 이공계통의 교육 배경을 지닌 기술관료와는 달리 인문사회계열의 교육을 받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정치가와 사회 관리자들로 충원되고 있다.   5세대 엘리트들은 대체로 건국 후 출생하여 10대에 문혁을 경험했고, 20대인 70년대 초중반, 즉 문혁 후기, 개혁개방을 모색하는 격동기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개혁개방과정을 통해 주로 지방정치무대에서 경제적 성과를 실현하여 입지를 강화하고 2007년(17대)에 정치국원으로 본격적으로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한 엘리트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아울러 4세대가 기술 관료라고 한다면 이들은 주로 인문사회계열을 전공한 행정관료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 . 5세대 지도부는 대체로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민생안정을 주된 정책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건국 이후 출생하여 문혁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소위 “잃어 버린 세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중견간부시절 1989년 천안문 사건을 경험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정책방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이런 공통의 경험으로 인해 단합과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 당내 분열은 결국 당 체제의 와해와 중국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위기 공감대를 내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개혁개방 이후의 엘리트 그룹으로서 이전 어느 세대보다도 강한 자신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5세대 정치엘리트의 등장은 10년만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기본적으로 정책의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우선, 비록 기존과 같은 전임자의 낙점 방식이 아닌 경쟁 방식을 통한 권력이양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적 절차가 결여된 상황에서 안정적인 권력계승이 유지된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정책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연속성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즉 중국의 권력 계승에서 여전히 전임자의 영향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계속)

서봉교·이동률 2012-04-04조회 : 15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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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2]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소재 동서연구소(East-West Center)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안보와 국제관계 이론이다. 저서로는 Power Shifts, Strategy, and War가 있으며, 주요 학술 논문으로는 “Causes of North Korean Belligerence,” “Ties That Bind?: Assessing the Impact of Economic Interdependence on East Asian Alliances,” “A Nuclear North Korea and the Stability of East Asia” 등이 있다.         I. 서론   본 논문에서는 2025년 아시아에 어떤 성격의 안보질서가 자리 잡을 지에 대해 전망하고 한국에게 가장 적합한 안보전략을 모색한다. 논문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2025년 아시아에는 네 개의 강대국이 존재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일류강대국으로서 각자 세력권을 형성하고 상호경쟁하며 역내정치를 주도할 것이다. 해공군력 면에서 우세한 미국은 해양지역에서, 우월한 육군력을 갖춘 중국은 인접 대륙지역에서 리더십을 행사할 것이다. 이류강대국인 인도와 러시아는 주도세력은 되지 못하지만 독자적으로 운신하며 주변지역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균형자가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조력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중국 견제에 나설 것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한국에게 최선의 선택은 지정학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인접대륙국가(중국과 북한)에 대한 균형정책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해양국가인 미일과 역할분담을 통한 군사협력을 추진하며 자체 육군력과 공군력 양성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인도 또는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제휴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   이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본고의 나머지부분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2장에서는 미래 아시아의 세력판도를 전망한다. 이어 각국 정책의 상호작용 결과로 형성될 안보질서의 성격을 파악하고(제3장), 미래 안보구도에 가장 적합한 한국 안보정책을 모색한다(제4장).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연구결과를 요약하고 함의를 제시한다.   II. 세력판도   2025년까지 아시아에는 4강 체제가 자리 잡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일류강대국이며 러시아와 인도가 이류강대국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국가도 잠재적 패권국이 될 만큼 월등한 국력을 보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약하면, 아시아의 세력판도는 균형 잡힌 다극체제(balanced multipolarity)일 것이다(Mearsheimer 2001, 334-359).   1. 잠재력   [표 1]은 국내총생산과 종합국력을 지표로 사용해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잠재력을 추산한 것이다. 여기서 잠재력(latent power)이란 군사력을 양성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자원(경제력, 인구, 기술, 천연자원 등)을 의미한다(Mearsheimer 2001, 60-67). 잠재력에서는 미국이 정점에 서있고 중국이 근접할 것이다. 이 두 국가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할 것이다. 인도와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현저히 뒤지지만 이들에 저항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것이다. 러시아와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잠재력을 보유할 것이라 전망된다.   [표 1] 2025년 아시아 주요국의 잠재력 전망   출처: International Futures ver. 6.54   2. 군사력   안보영역에서 세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군사력이다. 이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타 국가들에 대해 현저한 우위를 점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특히 해공군력에 있어) 미국이 중국보다 우세할 것이나, 육군력에서는 중국이 앞설 것이다. 인도와 러시아는 이들 일류강대국보다 많이 약하지만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육군력과 핵전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잠재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지 않아 강대국의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1) 미•중 전략균형   군사력 면에서 중국이 전반적으로 미국에 비해 열세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력의 열세로 인해 중국의 국방비지출은 미국에 못 미칠 것이다.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2025년 군사지출액은 최소 654억불에서 최대 1,973억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미국의 군사비는 5,839억불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 2025년까지의 국방지출 누적액에 있어서도 미국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할 것이다. 중국이 과거 소련처럼 국민총생산의 더 큰 비율을 국방 분야에 장기간 투입해 군사비 격차를 줄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군사우선 정책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사회적 불만을 제고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군사지출의 열세는 국방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액을 제한함으로써 군수산업의 낙후성을 초래할 것이며, 그 결과 첨단무기와 군사기술의 수입의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파트너는 대부분 기술력에 있어 미국과 그 동맹국에 뒤처지기 때문에 해외의존을 통해서는 군사기술상의 현격한 격차를 극복하기 어렵다. 국방비와 기술력의 열세는 특히 자본•기술 집약적인 핵전력의 열세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 중국이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출 수는 있겠지만 대등한 전력(nuclear parity)을 보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Lyon 2009, 17).   중국은 특히 해공군력에서 미국에게 뒤쳐질 것이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강한 육군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은 해공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없다. 그간의 꾸준한 전력증강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군이 중국 군의 십분의 일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Ross 2009, 56). 해군함대는 육군장성이 지휘하는 군구에 나뉘어 배속돼있다. 최고 군통수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에 소속된 현역장성 대부분과 군구(軍區) 최고지휘관 전원이 육군출신이라는 사실도 해공군에 대한 비교적 낮은 정책적 관심을 여실히 드러낸다(정성장 2011; Minnick 2010). 중국은 러시아와 인도 등 인접 대륙강국을 견제하고 주변 중소국을 통제하기 위해서 상당한 육군력을 보유해야 한다. 대륙으로부터의 뚜렷한 군사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중국군의 삼분의 이는 지상군이 점하고 있다(Ross 2009, 56). 지금은 비록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전통적 라이벌이며 잠재적 경쟁국인 인도와 러시아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는 없을 것이다(Tow 2001, 27-32). 특히 국경과 관련한 분쟁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군사적 대비는 필수적이다 . 또 주변국 문제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미얀마 문제로 인도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중국은 인도와 긴장관계에 있는 이 접경국가들에 대한 군사지원을 계속해왔으며, 인도는 이에 대해 깊이 우려하며 경계하고 있다(Swaine 2005, 279). 구소련의 일부였던 중앙아시아를 놓고는 러시아와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게 될 위험이 있다. 인접중소국들에 대한 영향력 유지 및 확대를 위해서도 육군력이 필요하다. 이 국가들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중국에 협력하고 있기보다는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는 중국의 침투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인 저항이 강화되면서 폭력적인 소요사태까지 낳고 있다(Higgins 2010). 그리고 티베트와 신장지역 등 독립을 갈망하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변경지역을 통제하기 위한 육군력도 필요하다 .   이에 반해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국방비를 해공군력 육성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경제력 면에서 뒤처진 중국이 미국의 해공군력을 따라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여러 지역에 군사력을 분산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유럽을 비롯한 타 지역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를 중시함으로써 이러한 약점을 최소할 수 있을 것이다 . 미국은 근래 해군력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배치하고 있다(O’Rourke 2012, 40-42). 또 아시아의 군사기지를 활용하여 지리적인 거리가 주는 불이익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비해 보다 많은 지역동맹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해양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도서국가라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해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전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국가들은 미국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할 것이다. 반면에 중국에게는 강한 해군력을 갖춘 동맹국이 없다. 중국해군은 해외군사기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전력투사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025년까지 중국이 주요 해외기지를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제일 후보지로서는 원유파이프라인을 건설 중이며 해군시설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긴밀한 군사협력을 해온 미얀마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육군력에서 미국에 대해 우세를 점할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은 강한 육군을 육성해야 할 중대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강대국과 인접하고 있지 않으므로 중국만큼 육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국은 육군력 양성에 필수적인 인적자원에 있어서도 미국보다 우세하다. 2025년에 중국 인구는 14억을 상회하는 반면에 미국 인구는 3억 5천만에 불과할 것이다(International Futures ver. 6.54). 이처럼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결의와 자원기반을 가지고 있으므로 양자 육군력 경쟁에서 미국에 앞설 것이다.   (2) 러시아와 인도   러시아와 인도는 총체적 군사력에서 일류강대국들에 현격하게 뒤처질 것이다. 랜드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중국의 2025년 국방지출은 인도의 지출액의 최소 2배에서 최대 7.3배에 달할 것이다 . 최강국인 미국과 인도의 격차는 물론 이보다도 클 것이다. 인도보다 약한 경제력을 지닌 러시아는 훨씬 더 뒤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도와 러시아는 강력한 육군력과 핵전력을 보유함으로써 강대국의 지위를 점할 것이다. 인도는 향상된 경제력과 대등한 인구를 활용하여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육군력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에 인도의 인구는 약 13억 9천만 명으로 중국의 인구(14억 1천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International Futures ver. 6.54). 아울러 인구구성에서 20세에서 34세까지의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중국에 비해 높을 것이다(Wolf, Jr., et al. 2005, 18). 인도는 장비현대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및 자체개발 신형전차를 배치하는 등 육군력의 질적 향상에도 매진하고 있다 . 또 향상된 기술력과 재력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핵 억지력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사정거리를 연장한 신형 탄도미사일을 개발 배치하고 있다.   러시아도 인구와 재력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효과적인 군사기술과 핵전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자위능력과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감소 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는 핵심전력인 육군력에서 중국에 대한 수량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이미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고 비대칭 원칙하에 군대를 육성하고 있다(에피모프 2011, 124). 그럼에도 2008년부터 시작된 여단중심 편제와 장교단 감축을 근간으로 한 포괄적 군 조직개편과 예산 증대를 통한 장비 현대화가 성공한다면 질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McDermott 2011; 에피모프 2011, 133). 또한 러시아는 육군력의 전반적 열세를 우세한 핵전력으로 만회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Kipp 2011). 이렇듯 강한 의지와 현재의 양적•질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을 비롯한 역내강대국들에 대해 우세한 핵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계속)

이동선 2012-03-26조회 : 1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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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3]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조교수. 연구 및 교육 관심 분야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국제통상정책, 동아시아 영토분쟁 등이다. 구민교 박사는 동아시아의 여러 해양 분쟁들을 분석하고 새로운 해양질서의 가능성을 모색한 Island Disputes and Maritime Regime Building in East Asia: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New York: Springer)를 출판하였다. 그 밖에 Pacific Review, Pacific Affairs,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Asia-Pacific, Asian Perspective, European Journal of East Asia Studies, Global Asia,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등 유수의 국제학술지에도 여러 논문을 게재해 왔다. 구민교 박사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동 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후 미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제정치경제 석사를 취득하였고 2005년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동아시아 영토분쟁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구민교 박사는 미 남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국제문제연구소(CIS), 한국학 연구소(KSI), 및 국제관계학과(SIR)에서 2년 간 포닥 연구원 및 전임강사로 근무하였으며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조교수(2007년-2010년)를 역임하였다.         I. 서론   해양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안보(traditional security)와 인적•물적 자원의 운송과 관련된 해로(sea lines of communication: SLOC), 자원개발, 환경 등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non-traditional security)가 동시에 만나는 복합적(complex)이고 다층적인(multi-layered) 공간이다. 해양은 복합을 지향하는 2010년대 한국 외교정책의 당면 과제를 점검하고 미래의 전망을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영역이기도 하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한다. 물론 한국 외교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세계의 지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미래에도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반드시 바다를 지배할 것이고, 우리의 전통적/비전통적 안보는 그 해양대국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강력한 영토성(territoriality)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제국주의 침략의 가해국과 피해국들이 공존하는 지리적 공간과, 이들 간의 해묵은 반목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시간적 맥락 속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 비해 영토국가(territorial state)의 원칙과 국가주권 불가침(non-intervention of state sovereignty)의 원칙에 더 집착해 왔다(Moon and Chun 2003). 실지회복주의(irredentism),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 또는 영토민족주의(territorial nationalism)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온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저변에는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로는 방어적인 영토성이 놓여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역내에서 경합적 영토성이 전면적인 물리적 충돌로 비화된 경우는 없었다. 내륙의 경계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토문제가 여전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해결되지 않은 분야가 남아 있다. 바로 도서(島嶼) 및 해양 경계에 관한 분쟁이 그것이다(구민교 2011).   전 세계적으로 해양분쟁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북서태평양, 동해,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으로 구성되는 동아시아 해양지역을 들 수 있다(Park 1983a, 1983b, 1983c, 1983d; Kim 2004; Valencia 2008, 2010; Koo 2009; Van Dyke 2009). 동북아 지역의 경우 독도, 첨각열도/조어도, 그리고 북방영토/남쿠릴 열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일중 및 러일 간의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외교적 대립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울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촉발된 일련의 외교적 긴장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서해상에 잠재되어있는 남북 및 미중 간의 갈등은 미묘한 힘과 이해관계의 역내 균형을 언제라도 깨뜨릴 수 있다. 중국의 보다 노골적인 영유권 주장이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자극하고 있는 남중국해 역시 서해와 동해 및 동중국해 못지않게 위험스러운 지역이다. 지난 2011년 5월 중국 순시선이 남중국해 상에서 베트남의 석유 가스 탐사선 케이블을 절단하면서 야기된 중국과 베트남 간의 분쟁은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또한 동년 여름에는 이해 당사국들이 동 지역에서 잇따라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기도 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얼마 동안은 미국의 막강한 해양 투사력(maritime projection power)이 동아시아 해양질서의 안정성을 제공해 왔지만 이제는 중국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해양문제는 다양한 국제정치적•경제적•법적 맥락에서 진화해 왔다. 보다 구체적으로 영유권 문제, 자원개발 문제, 경계획정 문제, 환경보호 문제를 중심으로 다층적인 이슈 구조를 형성해 있다. 최근의 역내 해양분쟁들의 특징은 그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대변되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의 전이현상이 있다. 하지만 보다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동아시아의 도서 및 해양분쟁들은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 상의 영해(territorial water) 및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 등의 경계획정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되어 왔으며, 역내 국가들 간의 지속되는 갈등은 곧 국제 해양 레짐의 한계를 반영한다. 즉, 동아시아의 해양문제는 일련의 사건들(events)과 제도(institution), 그리고 추세(trend)의 교차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복합적 해양정책의 수립을 위해서는 이러한 다층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절은 사건-제도-추세의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균형, 특히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라는 구조적 변화가 기존의 동아시아 해양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또한 지금까지 전개된 해양 관련 국제규범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규범적 중재자로서의 <유엔해양법협약>의 의의를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특히 동 협약의 규범적 및 실천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주요 조항들의 모호성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구체적인 분쟁 해결에는 많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동아시아 해역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 대립도 동 협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제3절은 동북아 3국, 즉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이 채택하고 있는 기선 방식 및 경계획정 원칙을 분석한다. 아울러 역내 해양 거버넌스의 주요 수단으로서의 양자간 잠정조치들(bilateral provisional measures)의 의의와 한계를 검토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4절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영유권 문제에 대한 동결 선언에 기초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역내 해양환경 보호, 항행의 안전 도모 등 비전통적 안보의 확보를 위한 역내 다자간 해법을 모색한다. 아울러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의 역내 확산 방지를 위한 다자간 협의체로서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사태 이후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확산방지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의 의의와 한계를 알아본다. 끝으로 제5절은 동아시아 해양질서의 미래를 조망하고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II. 전환기의 동아시아 해양질서   1. 미중 간 패권경쟁의 심화와 새로운 해양역학의 등장   동아시아, 특히 해양지역에서 힘과 이해관계의 복잡한 균형은 더 이상 한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웃 강대국들 사이에서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 Nations: ASEAN)은 남중국해 상의 해양분쟁을 다룸에 있어 내정불간섭주의(non-interventionism) 등에 따른 구조적인 한계를 보여 왔으나 최근 들어 어느 정도 제도적인 탄력성과 순응성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미국을 통해 지역패권의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 하면서 자국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장기불황과 정치 리더십 부재에 따라 전통적인 해양세력으로서의 지위를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한편, 중국의 더욱 공격적인 해양정책과 해군력 증강은 동아시아 지역을 매우 불안하게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역 해양질서의 새로운 균형을 찾고 있지만 자신들이 설계하지 않은 제도나 규범에 얽매이는 것에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변국들에게 새로운 불확실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이 이전의 미온적 태도에서 탈피하여 최근에 다시 동아시아의 해양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환기의 동아시아 해양질서는 역내의 유동적인 지정학 및 지리경제학적 요인들로 인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부상하는(rising), 그리고 더욱 독단적인(assertive) 중국과 다시 관여하고는(re-engaging) 있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ambivalent) 태도를 취하고 있는 미국이 있다. 동아시아 해역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주요 사건들의 예를 들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2008년 7월), 남중국해상에서 미 해군 관측선 임페커블(Impeccable)호에 대한 중국의 도발(2009년 3월) , 북한의 도발에 의한 천안함 폭침사건(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 중일 간의 희토류 분쟁(2010년 9월) , 중국 순시선에 의한 베트남 석유 가스 탐사선 케이블 절단으로 야기된 중국과 베트남 간의 분쟁(2011년 5월), 첫 항공모함 바랴크호의 성공적 시험운항에 따른 중국의 항공모함 시대의 개막(2011년 8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사건들에서 중국이 관련된 빈도와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후술하는 <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 제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역내 해양역학(regional maritime dynamics)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 경제 전반에 걸쳐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적 인센티브는 중국과 주변국들 사이의 정치외교적 긴장을 완화시켜왔다. 반면에 냉전시대의 전략적 통제와 같은 구속이 없는 상황 속에서 중국은 이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해양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전문가들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추세로 미루어 중국이 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게 자신의 힘을 직간접적으로 시위함에 따라 그 주변국들은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해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조치, 즉 군비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Holmes and Yoshihara 2010; Kato 2010; Van Dyke 2009; Valencia 2008, 2010).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그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만 관심이 있었고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에 대한 열망은 적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떠오르는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중국은 지정학적 열망과 영토적 열망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해양질서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다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동아시아 해양분쟁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실지회복주의적 야망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왔다. 경제적 고려 또한 중국의 마찰적인 해양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송하는 해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우선순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3년 중국이 원유 순수입국이 되면서 에너지 문제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Koo 2009).   중국과 주변국들의 관계 악화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 재등장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가을에 발생한 중일 간의 첨각열도/조어도 분쟁은 미국의 간섭에 대한 중국의 깊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게 미국이 일본의 안보 이익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재차 인식시켰다. 이를 계기로 2010년 초부터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불거진 미일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잠정적으로 봉합되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최대 라이벌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과 많은 부분에서 빠르게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다자협상에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분쟁의 국제화를 시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베트남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부분적으로 부응하여 미국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는 서사군도와 남사군도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립을 지키겠지만 미국의 항행의 자유가 침해된다면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Valencia 2010).   다음 절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해양을 둘러싼 미중 간의 새로운 경쟁은 일국의 EEZ에서 타국이 어떤 형태의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국제법적 논쟁과 맞닿아 있다. 지난 2001년 미 해군의 EP-3 정찰기와 중국의 전투기 간의 충돌, 2009년 미 해군 관측선 임페커블호에 대한 중국의 도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EEZ에서 행해지는 미국의 군사적 행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세적 행동은 두 강대국을 위험한 대립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 다음 절에서 다루는 바와 같이 <유엔해양법협약>상 EEZ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 국가는 모든 생물과 비생물 자원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고 다른 국가에 의한 과학적 연구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타국의 EEZ에서 자국 함정이 조사활동을 하는 것은 <유엔해양법협약>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 원칙에 따라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중국은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를 ‘해양 과학 연구’라고 특징짓고, EEZ에서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연안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일본과 베트남의 EEZ 내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일방적인 조사 및 감시활동과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매우 논쟁적이다(Koo 2010).   미중 간의 이러한 대립은 천안함 폭침 사태 이후 한미 양국의 합동 해상훈련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천안함 사태 발발 후 미국과 한국이 일본 열도와 한반도 주벽 수역에서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를 포함한 대규모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할 것을 발표하였다. 양국은 원래 서해에서도 훈련을 실시하기로 계획했었으나 중국의 극렬한 항의로 갑작스럽게 취소 되고 말았다. 중국은 이른바 대부분이 중국의 군사 작전지역과 EEZ에 포함되는 이 지역에서의 해군 훈련에 미국이 참가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선제적인 해군 훈련을 실시하였다. 사실 중국은 서해에서 한국과 EEZ 경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EEZ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한편, 2010년 11월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갑작스런 포격 후에 미국과 한국은 중국의 큰 방해 없이 서해에서 조지 워싱턴호를 포함한 합동 해군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침묵은 앞으로의 행동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미중 간 외교적 마찰은 동아시아의 반 폐쇄해에서의 상호 수용 가능한 군사적 행동의 범위를 두고 이해당사국들 모두가 만족스러운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Koo 2010).   이러한 배경 하에서 국내외 외교가에는 지난 2011년 7월 22-23일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18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ASEAN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구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남중국해 문제가 최대의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의 중요성은 자명하며 모든 국가가 그 수혜국이 되어야 한다”는 전향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한발 물러섰고, 따라서 관련국들의 원칙적 입장이 담긴 외교적 수사 이상으로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행동을 주목해오던 미국은 중국과 ASEAN이 남중국해 긴장 해소를 위한 행동규범 지침에 합의한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는 2010년 7월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ARF 회의에서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고 발언해 미중 간 대립이 촉발되었던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이었다...(계속)

구민교 2012-03-26조회 : 1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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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2009년 9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교수, 서울대학교)이 진행해 온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프로젝트의 최종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변화와 중국의 부상 가능성 속에서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 살펴보고, 이러한 변환의 흐름 속에서 한국 외교가 추진해야 할 대전략을 모색하기 위하여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프로젝트를 ‘안보,’ ‘경제,’ ‘환경,’ ‘문화’라는 네 영역을 중심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안보   경제위기 이후 국제 군사안보질서 변화 : 미국의 대응과 안보적 함의 이상현(세종연구소)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망  고봉준(충남대학교)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반도 안보질서의 변화  황지환(명지대학교)   경제   '복합 네트워크 시기' :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김치욱(세종연구소)   위기 이후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 손열(연세대학교)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 이재승(고려대학교)   탈위기 지구질서와 환경의 국제정치 :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현재와 미래 신범식 (서울대학교)   문화   경제위기 이후 21세기 세계 문화질서 김준석(가톨릭대학교)   경제 위기 이후 지구화 과정과 문화 영역의 변화 추이 : 시민권, 다문화주의, 민주주의, 종교 박성우(중앙대학교)          EAI 국가안보패널 소개 EAI 국가안보패널은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아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 제시를 위하여, 2004년 5월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반도-동아시아-글로벌’ 세 층위에서의 복합적 분석을 위해, 국가안보패널은 그동안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북핵위기와 한반도 평화》(2006), 《동아시아공동체 :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라는 네 권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고봉준, 김준석, 김치욱, 박성우, 손열, 신범식, 이상현, 이승주, 이재승, 황지환 2011-03-17조회 : 15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