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어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4년 6월에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국가안보패널(National Security Panel: NSP)을 구성하였다. 이후 국가안보패널은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2011),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n복합과 공진》(2013), 《1972 한반도와 주변 4강 2014》(2015),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등 일곱 권의 책을 출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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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4]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서봉교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중국경제, 중국금융 담당).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삼성금융연구소 해외사업연구팀 수석연구원(중국금융 담당), LG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중국 경제 담당)을 역임하였다.   이동률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1996년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대중국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패널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대외관계, 중국 소수민족, 중국의 민족주의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중국 미래를 말하다》(편저), 《중국외교연구의 새로운 영역》(공저), 《중국의 영토분쟁》(공저), “중국 정부의 티베트에 대한 중국화 전략: 현황과 함의” 등이 있다.         I. 서론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즈음한 2020년을 겨냥하여 “균형되고 조화로운 소강사회의 전면적 실현”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난 30여 년간 지속해 왔던 고도성장 기조를 유지해 가면서 동시에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성공의 위기’들을 효과적으로 해결 또는 관리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2012년 등장할 5세대 지도부는 이전과 달리 개혁 후기의 다양한 사회적 위기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예컨대 이념적 취약성, 부정부패로 인한 정통성의 위기, 양극화 등으로 인한 사회통합의 위기, 에너지,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한 성장 지속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11년 3월 열린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회의에서 확정된 ‘12.5 규획’(規劃)에서는 이러한 국가적 과제가 구체적으로 상정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10년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을 안정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국내 정치경제적 과제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2012년과 2013에 걸쳐 진행될 5세대 정치엘리트로의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새롭게 구성될 5세대 정치엘리트는 이전 세대와는 체제 속성과 정책성향에서 어떠한 지속성과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인지?   둘째, 중국이 향후 10년에도 서구식 정치개혁을 유보한 채 소위 “중국식 정치개혁”, “중국식 발전방식”을 통해 정치안정과 체제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서구적 시각에서 볼 때 중국이 지난 30년간 “정치개혁 없는 성장”이 지속된 것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향후 중국은 이 문제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셋째, ‘12.5 규획’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민생활 개선”과 “사회건설 강화”를 통해 지난 30여 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되어온 사회 양극화, 부정부패, 실업 등 불안정 문제를 해결 또는 관리하면서 균형성장을 실현해 갈수 있을지?   중국 체제의 지속과 안정 여부는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지속되지 못할 경우 성장신화에 묻혀 있던 다양한 위기 요인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경제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는 상당부분 경제외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 체제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변수이며 중국의 경우에는 특히 정치 엘리트들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5세대 정치엘리트 역시 합의를 통한 정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요컨대 중국의 권력정치의 안정성과 균형성장은 상호 유기적 영향을 주면서 향후 중국 공산당체제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II. 5세대 정치엘리트의 등장과 특징   1. 5세대 정치엘리트 등장 전망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중국의 권력교체, 특히 장쩌민(江泽民)에서 후진타오(胡錦濤)로의 권력이양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큰 틀에서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이미 권력의 중심에 진입해 있는 5세대 리더십으로의 권력교체는 큰 변동이 없이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특유의 권력교체가 정착되는 단계에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 9인 체제도 정착되고 있다. 16차 당 대회에서 7인에서 9인으로 증가하였고, 17차 당 대회에서도 9인 체제가 유지되면서 제도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시진핑(習近平)이 향후 2012년 가을 18차 당대회와 2013년 봄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각각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으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진핑은 2002년 후진타오가 장쩌민을 승계하기 위해 밟아온 과정과 절차를 답습해가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2007년 10월 17차 당 대회에서 리커창(李克强)과 함께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된 데 이어서 2008년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부주석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마침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그간의 논란을 잠재우며 5세대 최고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하게 되었다.   17차 당 대회에서는 권력승계와 관련 이전과는 다른 실험을 했다. 기존의 1인 낙점, 지명 방식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의 2인 경쟁 구도로 변화한 것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체제까지는 개혁개방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고, 덩샤오핑에 의해 낙점된 후계체제였다. 새롭게 등장할 5세대 정치엘리트들은 계파간 타협의 결과 2인 경쟁구도로 귀결되고 있다. 향후 이들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과 성향을 지닌 2인이 총서기와 총리를 분담하는 투톱체제를 구성한다는 차원에서 중국 엘리트 정치에서 이례적인 시도이다.   5세대의 2인 경쟁체제가 새로운 시도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계파간 타협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계파간 대립보다는 협의와 타협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시진핑의 개인적 리더십과 새로운 지도부의 성격 등을 고려할 때 후진타오 체제보다도 더 집단지도체제(collective leadership)의 성격이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정치국 상무위원 9인이 각각 책임영역을 분담하는 집단 지도체제가 보다 강화될 것이며, 따라서 정책결정이 특정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보다 복잡하지만 정교해질 가능성이 있다.   리청(Li Cheng)은 중국공산당내의 ‘태자당’(太子黨)과 ‘상해파’ 중심의 ‘엘리트그룹’(The Elitist)과 ‘공청단’(共靑團)출신 중심의 ‘대중그룹’(The Populists)의 두 개 파벌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Li 2010). 사실 중국 정치엘리트내의 파벌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쉽지 않다. 파벌간 대립과 갈등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이 표면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후진타오 체제에서도 파벌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지난 9년간 정책적 이견이 일부 노정되었을 뿐 파벌간 갈등이 심각하게 표출될 사례는 거의 없다.   요컨대 역설적이지만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국내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위기 인식이 크면 클수록 정치엘리트 내부의 단합과 안정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중동의 재스민 혁명 역시 중요한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엘리트 내부의 안정화는 중국이 다양한 정치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분열은 위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덩샤오핑의 말을 인용한 후진타오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중국문제의 관건은 정치국,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달려 있는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태산과 같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新華網 2007). 이는 결국 중국 체제의 안정성은 엘리트 정치에 달려 있고, 엘리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 승계이고, 권력승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안정은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권력 엘리트 내부에서 체제 유지에 대한 위기감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권력 교체는 물론이고 정책적 이견으로 인한 내부 분열, 또는 갈등의 대외적 노출이 야기할 있는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일단 정치엘리트들간의 내부 단합을 중요한 가치로 상정하고 있고, 혹시 내부적으로는 이견이 발생하더라도 이것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은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이후 예정대로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구축된다면 외견상 과거 어느 체제보다도 이질성이 강한 조합이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로 볼 때 향후 10년이 중국 부상의 성패와 방향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기회의 시기라는 데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공통의 인식이 갈등을 봉합하고 조정하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정치 엘리트 집단 내에 공멸의 위기 공감대와 함께 공생의 기대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후진타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던 것이 ‘민생’ 이었고, ‘12차 5개년 경제발전규획’의 키워드 역시 민생 이었던 것으로 봐서 기본적으로 5세대 엘리트 역시 민생 정치를 지속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현재 공산당이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위기의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위기 공감대가 엘리트의 단결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5세대 정치엘리트의 특성과 정책 방향   중국 정치엘리트의 성격 변화는 중국 공산당의 체질 변화와 연동되어 진행되어왔기에 향후 중국의 정치변화를 전망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공산당은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던 혁명당에서 개혁기에는 개혁을 통해 발전을 추동하는 행정당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정치정당으로서의 변화가 예상되는 과도기적 과정에 진입하고 있다(鄭永年 2007, 32-41). 장쩌민 시기에 이른바 “삼개대표론”을 공식 지도사상으로 당장(黨章)에 새로이 포함시킨 것 자체가 바로 공산당이 기존의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그리고 혁명당에서 집권당으로의 변신이 불가피해진 현실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당의 체질 변화와 함께 공산당 지배엘리트의 성격 또한 변화해 왔다. 마오쩌둥 시기에는 혁명가들이 지배엘리트였다면 덩샤오핑 시기와 장쩌민 시기에는 기술관료와 전문가들이 지배엘리트로 충원되었다. 정치정당으로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도기에 위치한 후진타오 시기를 거쳐 새로이 등장하는 5세대의 정치엘리트들은 기존의 이공계통의 교육 배경을 지닌 기술관료와는 달리 인문사회계열의 교육을 받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정치가와 사회 관리자들로 충원되고 있다.   5세대 엘리트들은 대체로 건국 후 출생하여 10대에 문혁을 경험했고, 20대인 70년대 초중반, 즉 문혁 후기, 개혁개방을 모색하는 격동기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개혁개방과정을 통해 주로 지방정치무대에서 경제적 성과를 실현하여 입지를 강화하고 2007년(17대)에 정치국원으로 본격적으로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한 엘리트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아울러 4세대가 기술 관료라고 한다면 이들은 주로 인문사회계열을 전공한 행정관료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 . 5세대 지도부는 대체로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민생안정을 주된 정책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건국 이후 출생하여 문혁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소위 “잃어 버린 세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중견간부시절 1989년 천안문 사건을 경험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정책방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이런 공통의 경험으로 인해 단합과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 당내 분열은 결국 당 체제의 와해와 중국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위기 공감대를 내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개혁개방 이후의 엘리트 그룹으로서 이전 어느 세대보다도 강한 자신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5세대 정치엘리트의 등장은 10년만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기본적으로 정책의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우선, 비록 기존과 같은 전임자의 낙점 방식이 아닌 경쟁 방식을 통한 권력이양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적 절차가 결여된 상황에서 안정적인 권력계승이 유지된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정책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연속성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즉 중국의 권력 계승에서 여전히 전임자의 영향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계속)

서봉교·이동률 2012-04-04조회 : 15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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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2]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소재 동서연구소(East-West Center)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안보와 국제관계 이론이다. 저서로는 Power Shifts, Strategy, and War가 있으며, 주요 학술 논문으로는 “Causes of North Korean Belligerence,” “Ties That Bind?: Assessing the Impact of Economic Interdependence on East Asian Alliances,” “A Nuclear North Korea and the Stability of East Asia” 등이 있다.         I. 서론   본 논문에서는 2025년 아시아에 어떤 성격의 안보질서가 자리 잡을 지에 대해 전망하고 한국에게 가장 적합한 안보전략을 모색한다. 논문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2025년 아시아에는 네 개의 강대국이 존재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일류강대국으로서 각자 세력권을 형성하고 상호경쟁하며 역내정치를 주도할 것이다. 해공군력 면에서 우세한 미국은 해양지역에서, 우월한 육군력을 갖춘 중국은 인접 대륙지역에서 리더십을 행사할 것이다. 이류강대국인 인도와 러시아는 주도세력은 되지 못하지만 독자적으로 운신하며 주변지역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균형자가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조력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중국 견제에 나설 것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한국에게 최선의 선택은 지정학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인접대륙국가(중국과 북한)에 대한 균형정책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해양국가인 미일과 역할분담을 통한 군사협력을 추진하며 자체 육군력과 공군력 양성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인도 또는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제휴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   이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본고의 나머지부분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2장에서는 미래 아시아의 세력판도를 전망한다. 이어 각국 정책의 상호작용 결과로 형성될 안보질서의 성격을 파악하고(제3장), 미래 안보구도에 가장 적합한 한국 안보정책을 모색한다(제4장).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연구결과를 요약하고 함의를 제시한다.   II. 세력판도   2025년까지 아시아에는 4강 체제가 자리 잡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일류강대국이며 러시아와 인도가 이류강대국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국가도 잠재적 패권국이 될 만큼 월등한 국력을 보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약하면, 아시아의 세력판도는 균형 잡힌 다극체제(balanced multipolarity)일 것이다(Mearsheimer 2001, 334-359).   1. 잠재력   [표 1]은 국내총생산과 종합국력을 지표로 사용해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잠재력을 추산한 것이다. 여기서 잠재력(latent power)이란 군사력을 양성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자원(경제력, 인구, 기술, 천연자원 등)을 의미한다(Mearsheimer 2001, 60-67). 잠재력에서는 미국이 정점에 서있고 중국이 근접할 것이다. 이 두 국가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할 것이다. 인도와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현저히 뒤지지만 이들에 저항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것이다. 러시아와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잠재력을 보유할 것이라 전망된다.   [표 1] 2025년 아시아 주요국의 잠재력 전망   출처: International Futures ver. 6.54   2. 군사력   안보영역에서 세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군사력이다. 이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타 국가들에 대해 현저한 우위를 점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특히 해공군력에 있어) 미국이 중국보다 우세할 것이나, 육군력에서는 중국이 앞설 것이다. 인도와 러시아는 이들 일류강대국보다 많이 약하지만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육군력과 핵전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잠재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지 않아 강대국의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1) 미•중 전략균형   군사력 면에서 중국이 전반적으로 미국에 비해 열세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력의 열세로 인해 중국의 국방비지출은 미국에 못 미칠 것이다.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2025년 군사지출액은 최소 654억불에서 최대 1,973억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미국의 군사비는 5,839억불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 2025년까지의 국방지출 누적액에 있어서도 미국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할 것이다. 중국이 과거 소련처럼 국민총생산의 더 큰 비율을 국방 분야에 장기간 투입해 군사비 격차를 줄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군사우선 정책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사회적 불만을 제고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군사지출의 열세는 국방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액을 제한함으로써 군수산업의 낙후성을 초래할 것이며, 그 결과 첨단무기와 군사기술의 수입의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파트너는 대부분 기술력에 있어 미국과 그 동맹국에 뒤처지기 때문에 해외의존을 통해서는 군사기술상의 현격한 격차를 극복하기 어렵다. 국방비와 기술력의 열세는 특히 자본•기술 집약적인 핵전력의 열세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 중국이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출 수는 있겠지만 대등한 전력(nuclear parity)을 보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Lyon 2009, 17).   중국은 특히 해공군력에서 미국에게 뒤쳐질 것이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강한 육군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은 해공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없다. 그간의 꾸준한 전력증강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군이 중국 군의 십분의 일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Ross 2009, 56). 해군함대는 육군장성이 지휘하는 군구에 나뉘어 배속돼있다. 최고 군통수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에 소속된 현역장성 대부분과 군구(軍區) 최고지휘관 전원이 육군출신이라는 사실도 해공군에 대한 비교적 낮은 정책적 관심을 여실히 드러낸다(정성장 2011; Minnick 2010). 중국은 러시아와 인도 등 인접 대륙강국을 견제하고 주변 중소국을 통제하기 위해서 상당한 육군력을 보유해야 한다. 대륙으로부터의 뚜렷한 군사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중국군의 삼분의 이는 지상군이 점하고 있다(Ross 2009, 56). 지금은 비록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전통적 라이벌이며 잠재적 경쟁국인 인도와 러시아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는 없을 것이다(Tow 2001, 27-32). 특히 국경과 관련한 분쟁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군사적 대비는 필수적이다 . 또 주변국 문제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미얀마 문제로 인도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중국은 인도와 긴장관계에 있는 이 접경국가들에 대한 군사지원을 계속해왔으며, 인도는 이에 대해 깊이 우려하며 경계하고 있다(Swaine 2005, 279). 구소련의 일부였던 중앙아시아를 놓고는 러시아와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게 될 위험이 있다. 인접중소국들에 대한 영향력 유지 및 확대를 위해서도 육군력이 필요하다. 이 국가들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중국에 협력하고 있기보다는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는 중국의 침투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인 저항이 강화되면서 폭력적인 소요사태까지 낳고 있다(Higgins 2010). 그리고 티베트와 신장지역 등 독립을 갈망하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변경지역을 통제하기 위한 육군력도 필요하다 .   이에 반해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국방비를 해공군력 육성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경제력 면에서 뒤처진 중국이 미국의 해공군력을 따라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여러 지역에 군사력을 분산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유럽을 비롯한 타 지역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를 중시함으로써 이러한 약점을 최소할 수 있을 것이다 . 미국은 근래 해군력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배치하고 있다(O’Rourke 2012, 40-42). 또 아시아의 군사기지를 활용하여 지리적인 거리가 주는 불이익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비해 보다 많은 지역동맹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해양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도서국가라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해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전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국가들은 미국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할 것이다. 반면에 중국에게는 강한 해군력을 갖춘 동맹국이 없다. 중국해군은 해외군사기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전력투사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025년까지 중국이 주요 해외기지를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제일 후보지로서는 원유파이프라인을 건설 중이며 해군시설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긴밀한 군사협력을 해온 미얀마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육군력에서 미국에 대해 우세를 점할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은 강한 육군을 육성해야 할 중대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강대국과 인접하고 있지 않으므로 중국만큼 육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국은 육군력 양성에 필수적인 인적자원에 있어서도 미국보다 우세하다. 2025년에 중국 인구는 14억을 상회하는 반면에 미국 인구는 3억 5천만에 불과할 것이다(International Futures ver. 6.54). 이처럼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결의와 자원기반을 가지고 있으므로 양자 육군력 경쟁에서 미국에 앞설 것이다.   (2) 러시아와 인도   러시아와 인도는 총체적 군사력에서 일류강대국들에 현격하게 뒤처질 것이다. 랜드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중국의 2025년 국방지출은 인도의 지출액의 최소 2배에서 최대 7.3배에 달할 것이다 . 최강국인 미국과 인도의 격차는 물론 이보다도 클 것이다. 인도보다 약한 경제력을 지닌 러시아는 훨씬 더 뒤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도와 러시아는 강력한 육군력과 핵전력을 보유함으로써 강대국의 지위를 점할 것이다. 인도는 향상된 경제력과 대등한 인구를 활용하여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육군력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에 인도의 인구는 약 13억 9천만 명으로 중국의 인구(14억 1천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International Futures ver. 6.54). 아울러 인구구성에서 20세에서 34세까지의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중국에 비해 높을 것이다(Wolf, Jr., et al. 2005, 18). 인도는 장비현대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및 자체개발 신형전차를 배치하는 등 육군력의 질적 향상에도 매진하고 있다 . 또 향상된 기술력과 재력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핵 억지력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사정거리를 연장한 신형 탄도미사일을 개발 배치하고 있다.   러시아도 인구와 재력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효과적인 군사기술과 핵전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자위능력과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감소 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는 핵심전력인 육군력에서 중국에 대한 수량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이미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고 비대칭 원칙하에 군대를 육성하고 있다(에피모프 2011, 124). 그럼에도 2008년부터 시작된 여단중심 편제와 장교단 감축을 근간으로 한 포괄적 군 조직개편과 예산 증대를 통한 장비 현대화가 성공한다면 질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McDermott 2011; 에피모프 2011, 133). 또한 러시아는 육군력의 전반적 열세를 우세한 핵전력으로 만회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Kipp 2011). 이렇듯 강한 의지와 현재의 양적•질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을 비롯한 역내강대국들에 대해 우세한 핵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계속)

이동선 2012-03-26조회 : 1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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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3]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조교수. 연구 및 교육 관심 분야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국제통상정책, 동아시아 영토분쟁 등이다. 구민교 박사는 동아시아의 여러 해양 분쟁들을 분석하고 새로운 해양질서의 가능성을 모색한 Island Disputes and Maritime Regime Building in East Asia: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New York: Springer)를 출판하였다. 그 밖에 Pacific Review, Pacific Affairs,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Asia-Pacific, Asian Perspective, European Journal of East Asia Studies, Global Asia,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등 유수의 국제학술지에도 여러 논문을 게재해 왔다. 구민교 박사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동 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후 미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제정치경제 석사를 취득하였고 2005년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동아시아 영토분쟁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구민교 박사는 미 남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국제문제연구소(CIS), 한국학 연구소(KSI), 및 국제관계학과(SIR)에서 2년 간 포닥 연구원 및 전임강사로 근무하였으며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조교수(2007년-2010년)를 역임하였다.         I. 서론   해양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안보(traditional security)와 인적•물적 자원의 운송과 관련된 해로(sea lines of communication: SLOC), 자원개발, 환경 등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non-traditional security)가 동시에 만나는 복합적(complex)이고 다층적인(multi-layered) 공간이다. 해양은 복합을 지향하는 2010년대 한국 외교정책의 당면 과제를 점검하고 미래의 전망을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영역이기도 하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한다. 물론 한국 외교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세계의 지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미래에도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반드시 바다를 지배할 것이고, 우리의 전통적/비전통적 안보는 그 해양대국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강력한 영토성(territoriality)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제국주의 침략의 가해국과 피해국들이 공존하는 지리적 공간과, 이들 간의 해묵은 반목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시간적 맥락 속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 비해 영토국가(territorial state)의 원칙과 국가주권 불가침(non-intervention of state sovereignty)의 원칙에 더 집착해 왔다(Moon and Chun 2003). 실지회복주의(irredentism),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 또는 영토민족주의(territorial nationalism)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온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저변에는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로는 방어적인 영토성이 놓여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역내에서 경합적 영토성이 전면적인 물리적 충돌로 비화된 경우는 없었다. 내륙의 경계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토문제가 여전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해결되지 않은 분야가 남아 있다. 바로 도서(島嶼) 및 해양 경계에 관한 분쟁이 그것이다(구민교 2011).   전 세계적으로 해양분쟁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북서태평양, 동해,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으로 구성되는 동아시아 해양지역을 들 수 있다(Park 1983a, 1983b, 1983c, 1983d; Kim 2004; Valencia 2008, 2010; Koo 2009; Van Dyke 2009). 동북아 지역의 경우 독도, 첨각열도/조어도, 그리고 북방영토/남쿠릴 열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일중 및 러일 간의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외교적 대립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울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촉발된 일련의 외교적 긴장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서해상에 잠재되어있는 남북 및 미중 간의 갈등은 미묘한 힘과 이해관계의 역내 균형을 언제라도 깨뜨릴 수 있다. 중국의 보다 노골적인 영유권 주장이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자극하고 있는 남중국해 역시 서해와 동해 및 동중국해 못지않게 위험스러운 지역이다. 지난 2011년 5월 중국 순시선이 남중국해 상에서 베트남의 석유 가스 탐사선 케이블을 절단하면서 야기된 중국과 베트남 간의 분쟁은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또한 동년 여름에는 이해 당사국들이 동 지역에서 잇따라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기도 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얼마 동안은 미국의 막강한 해양 투사력(maritime projection power)이 동아시아 해양질서의 안정성을 제공해 왔지만 이제는 중국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해양문제는 다양한 국제정치적•경제적•법적 맥락에서 진화해 왔다. 보다 구체적으로 영유권 문제, 자원개발 문제, 경계획정 문제, 환경보호 문제를 중심으로 다층적인 이슈 구조를 형성해 있다. 최근의 역내 해양분쟁들의 특징은 그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대변되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의 전이현상이 있다. 하지만 보다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동아시아의 도서 및 해양분쟁들은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 상의 영해(territorial water) 및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 등의 경계획정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되어 왔으며, 역내 국가들 간의 지속되는 갈등은 곧 국제 해양 레짐의 한계를 반영한다. 즉, 동아시아의 해양문제는 일련의 사건들(events)과 제도(institution), 그리고 추세(trend)의 교차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복합적 해양정책의 수립을 위해서는 이러한 다층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절은 사건-제도-추세의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균형, 특히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라는 구조적 변화가 기존의 동아시아 해양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또한 지금까지 전개된 해양 관련 국제규범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규범적 중재자로서의 <유엔해양법협약>의 의의를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특히 동 협약의 규범적 및 실천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주요 조항들의 모호성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구체적인 분쟁 해결에는 많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동아시아 해역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 대립도 동 협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제3절은 동북아 3국, 즉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이 채택하고 있는 기선 방식 및 경계획정 원칙을 분석한다. 아울러 역내 해양 거버넌스의 주요 수단으로서의 양자간 잠정조치들(bilateral provisional measures)의 의의와 한계를 검토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4절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영유권 문제에 대한 동결 선언에 기초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역내 해양환경 보호, 항행의 안전 도모 등 비전통적 안보의 확보를 위한 역내 다자간 해법을 모색한다. 아울러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의 역내 확산 방지를 위한 다자간 협의체로서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사태 이후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확산방지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의 의의와 한계를 알아본다. 끝으로 제5절은 동아시아 해양질서의 미래를 조망하고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II. 전환기의 동아시아 해양질서   1. 미중 간 패권경쟁의 심화와 새로운 해양역학의 등장   동아시아, 특히 해양지역에서 힘과 이해관계의 복잡한 균형은 더 이상 한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웃 강대국들 사이에서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 Nations: ASEAN)은 남중국해 상의 해양분쟁을 다룸에 있어 내정불간섭주의(non-interventionism) 등에 따른 구조적인 한계를 보여 왔으나 최근 들어 어느 정도 제도적인 탄력성과 순응성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미국을 통해 지역패권의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 하면서 자국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장기불황과 정치 리더십 부재에 따라 전통적인 해양세력으로서의 지위를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한편, 중국의 더욱 공격적인 해양정책과 해군력 증강은 동아시아 지역을 매우 불안하게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역 해양질서의 새로운 균형을 찾고 있지만 자신들이 설계하지 않은 제도나 규범에 얽매이는 것에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변국들에게 새로운 불확실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이 이전의 미온적 태도에서 탈피하여 최근에 다시 동아시아의 해양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환기의 동아시아 해양질서는 역내의 유동적인 지정학 및 지리경제학적 요인들로 인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부상하는(rising), 그리고 더욱 독단적인(assertive) 중국과 다시 관여하고는(re-engaging) 있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ambivalent) 태도를 취하고 있는 미국이 있다. 동아시아 해역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주요 사건들의 예를 들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2008년 7월), 남중국해상에서 미 해군 관측선 임페커블(Impeccable)호에 대한 중국의 도발(2009년 3월) , 북한의 도발에 의한 천안함 폭침사건(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 중일 간의 희토류 분쟁(2010년 9월) , 중국 순시선에 의한 베트남 석유 가스 탐사선 케이블 절단으로 야기된 중국과 베트남 간의 분쟁(2011년 5월), 첫 항공모함 바랴크호의 성공적 시험운항에 따른 중국의 항공모함 시대의 개막(2011년 8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사건들에서 중국이 관련된 빈도와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후술하는 <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 제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역내 해양역학(regional maritime dynamics)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 경제 전반에 걸쳐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적 인센티브는 중국과 주변국들 사이의 정치외교적 긴장을 완화시켜왔다. 반면에 냉전시대의 전략적 통제와 같은 구속이 없는 상황 속에서 중국은 이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해양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전문가들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추세로 미루어 중국이 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게 자신의 힘을 직간접적으로 시위함에 따라 그 주변국들은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해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조치, 즉 군비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Holmes and Yoshihara 2010; Kato 2010; Van Dyke 2009; Valencia 2008, 2010).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그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만 관심이 있었고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에 대한 열망은 적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떠오르는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중국은 지정학적 열망과 영토적 열망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해양질서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다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동아시아 해양분쟁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실지회복주의적 야망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왔다. 경제적 고려 또한 중국의 마찰적인 해양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송하는 해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우선순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3년 중국이 원유 순수입국이 되면서 에너지 문제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Koo 2009).   중국과 주변국들의 관계 악화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 재등장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가을에 발생한 중일 간의 첨각열도/조어도 분쟁은 미국의 간섭에 대한 중국의 깊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게 미국이 일본의 안보 이익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재차 인식시켰다. 이를 계기로 2010년 초부터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불거진 미일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잠정적으로 봉합되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최대 라이벌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과 많은 부분에서 빠르게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다자협상에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분쟁의 국제화를 시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베트남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부분적으로 부응하여 미국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는 서사군도와 남사군도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립을 지키겠지만 미국의 항행의 자유가 침해된다면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Valencia 2010).   다음 절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해양을 둘러싼 미중 간의 새로운 경쟁은 일국의 EEZ에서 타국이 어떤 형태의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국제법적 논쟁과 맞닿아 있다. 지난 2001년 미 해군의 EP-3 정찰기와 중국의 전투기 간의 충돌, 2009년 미 해군 관측선 임페커블호에 대한 중국의 도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EEZ에서 행해지는 미국의 군사적 행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세적 행동은 두 강대국을 위험한 대립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 다음 절에서 다루는 바와 같이 <유엔해양법협약>상 EEZ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 국가는 모든 생물과 비생물 자원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고 다른 국가에 의한 과학적 연구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타국의 EEZ에서 자국 함정이 조사활동을 하는 것은 <유엔해양법협약>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 원칙에 따라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중국은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를 ‘해양 과학 연구’라고 특징짓고, EEZ에서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연안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일본과 베트남의 EEZ 내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일방적인 조사 및 감시활동과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매우 논쟁적이다(Koo 2010).   미중 간의 이러한 대립은 천안함 폭침 사태 이후 한미 양국의 합동 해상훈련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천안함 사태 발발 후 미국과 한국이 일본 열도와 한반도 주벽 수역에서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를 포함한 대규모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할 것을 발표하였다. 양국은 원래 서해에서도 훈련을 실시하기로 계획했었으나 중국의 극렬한 항의로 갑작스럽게 취소 되고 말았다. 중국은 이른바 대부분이 중국의 군사 작전지역과 EEZ에 포함되는 이 지역에서의 해군 훈련에 미국이 참가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선제적인 해군 훈련을 실시하였다. 사실 중국은 서해에서 한국과 EEZ 경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EEZ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한편, 2010년 11월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갑작스런 포격 후에 미국과 한국은 중국의 큰 방해 없이 서해에서 조지 워싱턴호를 포함한 합동 해군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침묵은 앞으로의 행동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미중 간 외교적 마찰은 동아시아의 반 폐쇄해에서의 상호 수용 가능한 군사적 행동의 범위를 두고 이해당사국들 모두가 만족스러운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Koo 2010).   이러한 배경 하에서 국내외 외교가에는 지난 2011년 7월 22-23일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18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ASEAN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구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남중국해 문제가 최대의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의 중요성은 자명하며 모든 국가가 그 수혜국이 되어야 한다”는 전향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한발 물러섰고, 따라서 관련국들의 원칙적 입장이 담긴 외교적 수사 이상으로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행동을 주목해오던 미국은 중국과 ASEAN이 남중국해 긴장 해소를 위한 행동규범 지침에 합의한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는 2010년 7월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ARF 회의에서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고 발언해 미중 간 대립이 촉발되었던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이었다...(계속)

구민교 2012-03-26조회 : 1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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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2009년 9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교수, 서울대학교)이 진행해 온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프로젝트의 최종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변화와 중국의 부상 가능성 속에서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 살펴보고, 이러한 변환의 흐름 속에서 한국 외교가 추진해야 할 대전략을 모색하기 위하여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프로젝트를 ‘안보,’ ‘경제,’ ‘환경,’ ‘문화’라는 네 영역을 중심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안보   경제위기 이후 국제 군사안보질서 변화 : 미국의 대응과 안보적 함의 이상현(세종연구소)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망  고봉준(충남대학교)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반도 안보질서의 변화  황지환(명지대학교)   경제   '복합 네트워크 시기' :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김치욱(세종연구소)   위기 이후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 손열(연세대학교)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 이재승(고려대학교)   탈위기 지구질서와 환경의 국제정치 :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현재와 미래 신범식 (서울대학교)   문화   경제위기 이후 21세기 세계 문화질서 김준석(가톨릭대학교)   경제 위기 이후 지구화 과정과 문화 영역의 변화 추이 : 시민권, 다문화주의, 민주주의, 종교 박성우(중앙대학교)          EAI 국가안보패널 소개 EAI 국가안보패널은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아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 제시를 위하여, 2004년 5월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반도-동아시아-글로벌’ 세 층위에서의 복합적 분석을 위해, 국가안보패널은 그동안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북핵위기와 한반도 평화》(2006), 《동아시아공동체 :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라는 네 권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고봉준, 김준석, 김치욱, 박성우, 손열, 신범식, 이상현, 이승주, 이재승, 황지환 2011-03-17조회 : 15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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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1] 탈위기 지구질서와 환경의 국제정치 :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현재와 미래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한국슬라브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러시아 외교정책과 유라시아 국제관계이다. 주요 논저로는 《21세기 유라시아도전과 국제관계》(편저)(서울: 한울아카데미, 2006), 《러시아의 선택: 탈소비에트 체제전환과 국가•시장•사회의 변화》(공저)(서울: 서울대학교,2006), Russian Nonproliferation Policy and the Korean Peninsula (공저)(Carlisle: U.S. Army War College, 2007), “Russia's Perspectives on International Politics”(Acta Slavica Iaponica, 2009)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이 글은 세계경제 위기 이후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환경 국제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21세기 인류의 삶을 예측함에 있어서 가장 심대하면서도 광범위한 도전이 제기될 환경 분야에서 인류는 특히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대응체제를 구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실천적 질문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현상들이 출몰하고 이에 대한 대응에 급급해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화석연료의 소비를 바탕으로 건설해 온 문명의 기초를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변화와 그에 대한 대응을 위한 노력의 장으로서 환경의 국제정치가 과연 이러한 도전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환경 국제정치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은 이 과제의 난이성을 잘 보여준다.   첫째, 원칙적으로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mitigation)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동의하지만 이는 곧 개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누가 얼마나 부담을 질 것이냐는 질문은 매우 심각한 논점이 된다. 보편적 위협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과 국가 중심적 이익 다툼이 모순적으로 연결되는 쟁점 영역이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의 장이다.   둘째, 기후 변화로 야기되는 문제는 ‘전지구적’ 범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역시 지구적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대기 온도가 상승함으로써 야기된 기후변화가 각 지역별로 미치는 영향과 재해는 상이하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대응체제가 차별화되어 나타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단순한 기온과 해수면 상승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지역별로 상이한 다양한 피드백에 의해 홍수, 기근, 태풍 등의 다양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 2007). 따라서 지역별 해법의 차별성과 우선순위가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져올 피해는 각 국가 및 사회가 그에 대하여 얼마나 잘 적응(adaptation)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적응의 능력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경제력이 낮은 후진국이 더 작을 것이기에, 이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훨씬 높은 취약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후변화가 국가별 수준에서 나타나는 부와 경제력의 불평등의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성격은 환경의 국제정치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및 저개발국 사이의 이견 및 대립 전선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넷째,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많은 연구들이 각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과 책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흥미로운 점은 계급과 자본에 따른 배출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진국의 상위 10% 인구가 하위 10% 인구보다 7.5배, 개도국의 하위 10% 인구보다 155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부유한 계층보다 가난한 계층이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취약성이 훨씬 높다. 따라서 기후변화 및 환경의 국제정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구상의 불평등을 놓고 벌어지는 ‘지구적 정의’(global justice)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Adger, et. al. 2006, 131-154).   결국 기후 변화는 지구, 지역, 선•후진국, 계층 등의 논점을 포괄하는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공간정치학(spatial politics)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Barnett 2007, 1361-1363), 다층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대한 대응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만 진행될 것이 아니라 국제적 및 지구적 노력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는 성격을 지니며, 자연스럽게 환경의 국제정치는 강대국중심주의나 단편적 국제주의 또는 녹색좌파운동 등과 같은 기존의 배타적 방식만으로 풀어가기 어렵다. 또한 환경문제는 그 이슈에서도 과학기술, 무역, 안보 등과 동시적으로 연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환경의 국제정치는 복합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국제정치의 복합성은 2008년 말 세계를 강타한 금융 및 경제위기를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범위의 세력 변동을 배경으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의 향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의 틀 속에서 진행되어 온 지구적 노력은 세계 경제위기 가운데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회의〉(15th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15)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펜하겐 회의는 이전 노력에 비하여 다음과 같은 차별성을 보인다. 우선, 그간 기후변화대응체제 형성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이 지구적 정치과정으로 복귀하고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됨으로써 새로운 리더십 형성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이고, 둘째, 그간 쌓여 온 환경 분야의 지구적 불평등 구조와 그 입장 차이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며, 셋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하 교토체제 중심의 지구적 노력과 이를 개편하려는 노력의 대립이 선명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런 새로운 도전들을 해결하느냐 여부에 따라 국제정치는 전통적인 강대국 중심의 이익갈등을 특징으로 하는 ‘일상으로 복귀’(return to normalcy) 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지구거버넌스를 형성하게 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Foreign Affairs July/August/1996; Washington Post June/17/2009; Giddens 2009). 과거의 근대적 대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지구적 환경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길로 나설 것인지 이제 세계는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지구적 내지 국제적 노력의 현황을 살피고 미래를 전망해 보기 위하여, 우선, 세계경제위기가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코펜하겐 회의를 전후하여 나타난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의 대립구도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대국정치의 특징과 지구거버넌스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기후변화의 국제정치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대하여 예측해 보도록 할 것이다.   II. 세계 금융∙경제위기와 기후변화대응 체제   세계 금융•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의 형성에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첫째, 세계 경제위기는 각 국가들의 경제를 심각히 위축시킴으로써 기후변화대응체제가 경제회복 및 성장에 미칠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를 한층 고조시키고 확산시켰다. 금번 세계 경제위기는 취약한 국가나 지역으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는 양상을 보였던 과거 금융위기와는 달리 세계경제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의 경제를 동시에 침체시킨 파괴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그간 전개되어 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기반으로 한 교토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에 복귀한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 형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다. 환경거버넌스 구축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미국 민주당 정부의 출범과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의 확산이라는 절호의 조건이 만들어 낸 기회는 세계 경제위기라는 풍랑을 만나 적지 않은 추동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지구적 노력이 정점에 도달할 즈음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둘째,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형성을 위한 최대 난제 중의 하나인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립각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 경제위기로 인한 세계경제활동의 침체가 석유 소비를 줄임으로써 오일 가격을 하락시켜 안정화시켰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기후변화대응체제에 대한 노력의 필요성을 단기적으로 감소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가 요구하게 될 온실가스 배출억제 조치들이 가져올 경제성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으며, 특히 이러한 저탄소 체제가 준비되어 있지 못한 개도국들의 우려와 반발이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이들의 경직적인 태도는 기후변화 협상과정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타협을 어렵게 만들었다. 기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틀 속에서 교토체제는 선진국들의 의무적 감축(mitigation) 조치를 규칙화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포스트교토체제는 이 의무적 감축조치에 대한 더 넓은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가 커진 것은 향후 협상 과정에 대한 대단히 부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셋째, 세계 경제위기가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정치과정에서의 리더십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세계 경제위기 특히 2010년 이후 불거진 유럽의 금융위기는 기존 교토의정서 중심의 기후변화대응체제를 앞장서 이끌어 온 유럽연합 (European Union: EU)의 리더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의 추진력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을 들어 일부에서는 세계 경제위기의 실질적 패자가 유럽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간 기후변화대응체제 논의의 주도권을 행사해 온 유럽은 여러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Schreurs and Tiberghien 2007; Peichert and Meyer-Ohlendorf 2007). 극심한 경제위기 피해로 인해 긴축정책 추진 및 출구전략 마련이 필요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기후변화대응체제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에 의한 새로운 리더십 구축을 위한 노력이 절반만 성공한 점 및 개도국 입장을 대변하는 거부권력자(veto power)로서 중국의 부상은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과정에서의 리더십 구축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과정의 지도적 역할을 감당할 국가들이 자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또 이 정치과정의 리더십이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대응체제의 지구적 프로세스를 끌어갈 추진력은 약해 보인다...(계속)

신범식 2011-03-16조회 : 1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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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8]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이재승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초청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일민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과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에너지•자원•환경센터장을 맡고 있다. 에너지 관련 주요 논저로는 Energy Conservation in East Asia: Toward Greater Energy Security (2010, 공저), "EU's Green Energy Strategy: The Policy Responses to Renewable Energy and Climate Chang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2010)," “Energy Security and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Korea Journal of Defense Analysis, 2010), “한국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의 재고찰: 해외자원개발과 녹색성장을 중심으로 (〈국제관계연구〉, 2009)” 등이 있다.         I. 서론   1.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제 에너지 관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화석연료 사용 증가세를 일시적으로 감소의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세계 석유 수요의 감소는 1993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현상이다(Ruhr 2010). 2008년 여름 배럴 당 140달러를 넘어서던 국제 유가는 같은 해 말 40달러 대로 급락하였고, 최근 80달러 대를 회복하였다. 국제유가는 경제회복세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금융위기가 최종 에너지 수요 및 현금 유동성을 감소시킴으로써 에너지 투자를 위축시켰으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림 1]은 최근 급격히 증가한 국제유가의 변동 폭을 보여준다.   [그림 1] 국제유가의 추이 (2000-2010, 단위:$)   출처: EIA Statistics 2010   한편 금융위기는 정치적인 기조 변화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 정책기조를 도입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왔다. 실제로 금융위기 자체가 에너지 가격의 상승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정점 대비 급격히 하락한 상태에서, 향후 에너지 수급 모델에 있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시간을 제공했다는 데에서 국제 에너지 질서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가져 온 것은 분명하다. 또한 향후 고유가 체제 및 화석연료 고갈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청정에너지 체제를 강조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환이 이루어진 것도 주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한국 등이 모두 녹색성장 기조를 통한 고용의 창출 및 경기 회복을 금융위기의 극복 방안으로 천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 에너지 이슈의 성격   에너지 자원은 국제시장에서의 단순한 교역 상품뿐만 아니라 주요한 전략적 자산이 됨에 따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전략적 고려는 민간 주체를 넘어서 국가중심적인 국제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주요 에너지 생산국의 국영기업들은 기존 및 미채굴 유전의 절대적인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해 나가고 있다. 수요국 역시 주요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을 사활적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에너지 안보의 차원에서 수급 문제를 다루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문제에는 안보적 요소와 시장적 요소, 그리고 상위정치적 요소와 하위정치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이들 요소들의 관계는 다층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이재승 2005). 에너지 관계에 있어서는 많은 경우 안보관계와 경제관계가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참여하는 주체들간의 역학관계 역시 이 두 가지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국제 에너지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밝혀내는 데는 정치적 결정론 및 경제적 결정론 모두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국제 에너지 관계는 이슈별, 주체별로 다원화된 다층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3.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구성   국가 중심적인 에너지 체제 하에서 기존의 에너지 국제협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특히 소비국간 및 생산자-소비자들간의 협력이 미비하였다. 본 연구는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의 특징을 고찰함에 있어서, 왜 소비자들간 및 생산자-소비자들간의 에너지 국제협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는가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저유가 체제의 지속과 같은 시장 구조의 차원, 국가이익이 우선시된 에너지 안보 전략의 추구 (e.g. 현실주의, 중상주의적 접근), 그리고 국제에너지 관계에 있어서 리더쉽과 거버넌스 부재 등의 요인들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 국제협력의 조건과 가능성이 보다 명확히 부각될 수 있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협력의 조건에 있어 공공재의 창출 (예: 거래비용, 법적-제도적 장치)과 거버넌스의 형성에 강조점을 둔다.   또한 본 연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이 등장한 녹색 에너지의 기조와 정책들이 과연 새로운 에너지 거버넌스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고찰한다. 이는 다분히 당위론에 기반한 낙관주의적인 녹색 에너지 협력 논의를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향후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의 모습을 구체화하고자 한다.   II. 국제 에너지 수급 전망과 에너지 안보의 도전   1. 국제 에너지 수급 전망   국제 에너지 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의 전망에 따르면 국제 에너지 수요는 2030년까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일차 에너지 수요는 2007-2030년 사이 연평균 1.5%씩 총 40% 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IEA 2009a). 아시아 지역의 개도국, 특히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가 이러한 수요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 되며, 중동 지역이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들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은 에너지 수요의 급격한 증가를 동반하고 있으며, 비효율적인 에너지 관리 및 각종 보조금으로 인해 구조적인 취약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현재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은 단순히 공급의 불안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흥개도국들을 중심으로 한 수요의 증가와 기존의 공급량과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에너지 정책 결정자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불확실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기준 시나리오(reference scenario)에 의하면 화석연료는 여전히 가장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며, 2007-2030년 사이 에너지 증가의 75%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석유는 2030년 에너지원 구성비(energy mix)에 있어 현재의 34%에서 30%로 비중이 감소하나 여전히 가장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비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국가들의 석유 소비 증가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가스의 경우 기존 가스전에서의 생산은 감소하고 있으나 미국의 쉐일 가스(Shale gas)를 비롯한 비전통적 가스의 발견으로 공급량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석유 보다는 덜 경쟁적인 수급 구조를 가질 것으로 보이나, 동시에 전세계적인 수요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IEA 2009a).   가스와 석탄에 대한 수요는 특히 발전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보이며, 신재생에너지 역시 빠른 성장세를 보여 발전분야에 있어 수력을 제외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07년 2.5%에서 2030년 8.6%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원자력, 탄소포집 및 저장능력을 갖춘 시설에서의 전력 생산은 총 발전량의 약 60% 정도를 차지하게 되며, 이는 현재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처럼 전체 에너지 구성비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증가할 것이나, 총량에 있어서 화석연료는 2030년 87%로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기준 시나리오는 예측하고 있다(IEA 2009a). 이러한 비중은 온실가스 절감을 전제로 한 대체 시나리오(450 시나리오) 에서 일부 변화되어 상대적으로 신재생에너지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화석연료의 비중은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적인 구성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2, 3, 4]는 이러한 국제 에너지 수급 전망을 보여준다...(계속)

이재승 2011-03-07조회 : 1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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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49] 경제위기 이후 21세기 세계 문화질서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김준석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의 역사적 재조명: 미국,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유럽연합”(〈국제정치논총〉, 2008), “규범권력과 유럽연합”(<국제지역연구>, 2009), “유럽정체성의 규범적 기초”(〈국제지역연구〉, 2009) 등이 있다.         I. 경제위기, 미국주도 세계질서의 상대적 쇠퇴, 문화질서의 변환   경제의 변화와 문화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관련 짓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세계 문화질서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혹은 미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매우 희미하게 인식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위기의 발발과 지속, 그리고 이것이 가져온 미국주도 세계질서의 상대적인 쇠퇴는 문화 분야에서 잠재적으로나마 일정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또 그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것은 논의의 초점을 흐릴 뿐이다. 이는 사실상 정확한 답변이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본 장에서는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모든 이들이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문화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문화는 문명, 종교, 지식, 정체성, 가치, 규범, 넓은 의미에서의 제도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세계 문화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볼 때 경제위기로 인한 국제적인 힘의 분배에서의 변화는 이전까지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던 문화와 열세에 있던 문화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위에 있던 문화는 힘의 축소와 함께 상대적으로 움츠러들면서 좀 더 큰 결속력을 보이게 되고, 열세에 있던 문화는 힘의 상대적인 증가와 함께 좀 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 간의 상대적인 위상의 변화가 전면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 정체성, 세계관이 긴장 속에서 일정하게 공존하는 상태가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9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큰 관심을 모았던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 충돌론’ 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그 이론의 단순성과 결론의 과격함으로 인해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해 더 이상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만큼 그에 제기된 수많은 비판이 문명충돌론을 재론하는 것을 터부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제기된 모든 단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명충돌론은 여전히 중요한 이론이고, 적어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문화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매우 유용하다. 특히 많은 이들은 헌팅턴이 문화/문명을 본질주의적인 관점(primordialism)에서 이해한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이론을 거부해 왔는데, 그러한 비판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와 문명의 ‘물화’(物化)에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사회학적, 포스트모던적 반(反)본질주의 문화개념이 과연 국제문화의 분석에 적합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피터 카첸스타인(Peter Katzenstein)이 헌팅턴 식의 본질주의를 상당히 완화한 형태의 문명 개념을 국제정치 분석의 중요한 개념 틀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첸스타인에 따르면 단일한 문명적 핵심을 가정하는 대신 문명의 중층성, 다차원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문명 내에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다양성을 인정할 경우 문명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과학 개념일 수 있다. 우리는 카첸스타인의 접근법을 통해 헌팅턴식 본질주의와 포스트모던적 탈본질주의 사이의 적절한 타협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Katzenstein 2010).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아래에서는 주로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미국과 중국이 세계문화질서 내에서 각자의 영향력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특히 양국 간 ‘문화경쟁’을 ‘문명표준’(standard of civilization)을 둘러싼 경쟁의 차원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서구 문화권의 변환: 미국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북미와 유럽 대륙의 서구 문화권 국가들은 보편적 문화의 전파자, ‘문명 표준’(standard of civilization)의 확산자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을 유지해 왔다. 그 전반적인 양상에 관해 어느 정도의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적어도 20세기 이전까지 세계 여러 지역 간 문화의 전파는 서구에서 비서구지역으로의 일방통행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문명 표준국으로서 '바람직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규범들을 비서구권 국가들에 제시했고, 이들 비서구권 국가들은 그러한 규범들을 때로는 강압과 체념 속에, 때로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16~17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장하여 자리 잡은 근대적 국제정치 체제의 규칙과 규범 역시 유럽 열강들의 해외진출과 함께 새로운 문명 표준으로 비유럽권 국가들에 확산되었다.   이러한 서구 문화권 국가들의 문화 전파자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은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대전의 발발, 미소 간 냉전 대립, 탈식민화와 제3세계 운동 등의 영향으로 일정 정도 잠식되고 약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말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우위가 확인되고 미국이 국제질서 주도국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함에 따라 서구 국가들은 다시 서구식 문명표준의 확산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이래 효과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재정긴축과 무역자유화, 사유화와 탈규제 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Structural Adjustment Program: SAP)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정책 모델로서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가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세계은행(World Bank)와 같은 국제금융기관을 통해 반(半)강제적으로 각 국가들에 의해 채택되거나 혹은 주로 미국의 대학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 공동체의 지적 헤게모니를 통해 자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보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서구 문화권 국가들은 탈냉전 시대 들어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rule of law)와 같은 제도와 규범의 확산을 시도해 왔다. 특히 민주주의의 증진과 확산은 많은 서구 국가들의 중요한 외교정책 어젠다로 채택되었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대통령 혹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미국의 외교정책 전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고, 탈냉전 시대 들어서는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와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행정부가 그러한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정당화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증진은 많은 유럽 국가들의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이기도 하다. 1990년 냉전이 막 종언을 고하고 있던 당시 유럽안보협력회의(Commission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 회원국 정상들은 ‘새로운 유럽을 위한 파리 헌장’(Charter of Paris for a New Europe)을 채택하여 ‘민주주의를 우리 회원국들의 유일무이한 정부형태로 확립하고 강화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또 나토와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민주주의를 새로운 회원국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에 포함시킴으로써 다수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신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서구 문화권 국가들이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명 표준을 옹호하는 것이 단순히 이들이 더 많은 경제적 지배 혹은 더 많은 안보와 평화를 확보하기 원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Ayers 2009). 문명 표준의 전파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 이들 서구 국가들에 의해 하나의 ‘문화 권력’으로 행사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Hobson 2008; Clark 2009). 즉, 서구 국가들의 문명 표준은 문명화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이러한 과정이 새로운 국제 규범의 창출과정으로 이해되기를 원할 것이다. 혹은 국제사회의 규범적 통합이 보다 더 심화되는 과정으로 간주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비서구권 국가들의 관점에서 서구 국가들의 문명표준 제시는 명목상으로나마 엄격하게 유지되었던 국가들 간 평등의 원칙을 포기하고 배제와 차별의 원칙을 도입하려는 조짐으로 읽힐 수 있다. 혹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문명화된 사회와 야만적인 사회의 구분을 부활시키려는, 국제사회를 소수의 특권적 국가와 그 이외의 국가로 구분하려는 시도로 비춰질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차원의 금융경제위기가 도래하면서, 또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잠식이 그러한 경제위기와 직간접적으로 맞물려 진행되면서 서구 문화권 국가들이 문명 표준을 제시하는 방식에도 일정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지난 20여 년 간 추진해 온 민주주의의 증진과 확산 정책이 명백한 한계에 직면하면서 이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전쟁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민주화임을 천명한 이라크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민주주의의 증진을 위해 군사력의 사용조차도 용인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적인 미국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정책의 대상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매우 선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자 ‘반(半)봉건적인 독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민주주의와 인권원칙의 확산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다. 반면에 현재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민주화’된 국가라는 점이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부분적으로나마 반영되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물론 여기에서 외교정책에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갈등과 절충이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어떤 국가도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적인 국가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증진 정책은 그 레토릭의 강력함이 실제 정책 내용과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그리고 여기에 정책의 주체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점이 더해져서, ‘오만하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초당적인 합의사항이던 민주주의 증진정책이 정책의 과도함을 비판하는 민주당 중심의 정치세력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부담을 짊어지더라도’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공화당 중심의 세력 양자 간의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는 점도 매우 뼈아픈 변화로 꼽히고 있다(Rachman 2009, 121)...(계속)

김준석 2011-03-07조회 : 1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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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0] 경제 위기 이후 지구화 과정과 문화 영역의 변화 추이 : 시민권, 다문화주의, 민주주의, 종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성우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는 "플라톤의 〈메네크세노스〉와 아테네 제국의 정체성 그리고 플라톤의 정치적 삶" (〈한국정치학회보〉, 2007),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갈등과 조화: 미국헌법에서 원본주의(originalism)의 논쟁의 의미와 역할" (〈한국정치학회보〉, 2006), "행복(Eudaimonia)의 정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에 나타난 철학적 삶과 정치적 삶의 의미"(〈한국정치학회보〉, 2005) 등이 있다.         I. 서론   1. 문제제기   오늘날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상호 연결망의 범세계적인 확대, 심화, 가속화를 경험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 인구의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정보, 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가 촘촘히 연결되는 지구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연결망은 정치, 군사, 경제, 정보, 기술,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총망라한다. 이 중 문화 영역은 지구화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지구화로 인한 문화 영역의 가장 큰 영향은 문화적 차이(cultural difference)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문화적 차이는 종종 국민 국가적 정체성과 그 속성에 귀속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 국가 내에서도 젠더, 종교, 정치적 정체성, 소수자 집단, 토착인 등 다양한 차원에서 문화적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도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는 존재했으나 지구화는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문화적 차이가 새롭게 드러내거나, 새로운 문화 차이의 요소들을 가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구화 과정 속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는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을 동시에 드러낸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확산, 인구의 잦은 이동 등으로 문화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전파되어 공간의 차이에 따른 문화적 차이는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거에 국지적으로 머물러 갈등을 야기하지 않았던 문화적 차이가 이제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됨으로써 문화적 차이와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구화는 분명 전 세계의 시공간을 압축시켰고, 이로 인해 우리는 문화적 동질화와 이질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지구화로 인해 문화적 차이의 양면적 경향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인식은 소위 문화에 대한 근대적 접근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근대적 문화 개념에 따르면, 지배적인 문화가 일률적으로 ‘표준화’되고, ‘합리화’되며 다른 문화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피한 발전 방향이라고 보았다. 반면, 지구화 과정의 문화 개념에 따르면, 특정 지배 문화가 일방적으로 표준화되고 합리화되기보다는 기존의 문화가 끊임없이 교체되고, 새로운 문화로 대체되는 방식으로 문화가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지구화로 인해 문화적 차이가 표출되는 방식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이제 전통적인 근대적 접근방식으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근대적 접근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은 문화를 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문화적 차이나 전파 그리고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지구화 과정 속에서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세 가지 시각   지구화 과정 속에서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시각, 둘째, 문화적 동질화 과정을 중심으로 한 시각, 셋째, 문화적 혼성화(hybridization) 경향을 중심으로 한 시각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시각들은 모두 지구화 과정을 전제로 비교적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을 염두에 둔 시각이지만, 그 기본적인 가정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이론적, 철학적인 사조(思潮)를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문화를 불가피한 충돌과 갈등의 과정으로 보는 첫 번째 시각은 문화의 개별적인 주체성(individual subjectivity)에 역점을 두고 있는 낭만주의적 근대성 개념에 의존하고 있으며, 문화를 동질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두 번째 시각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성이 한 방향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universalism)적 세계관과 계몽주의(Enlightenment)에 의해 뒷받침된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혼성화 과정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근대적 사조로 한정할 수 없는 소위 탈근대적 사고를 지향하고 있다. 이제 이같이 이론적으로는 근대적/탈근대적 사고에 바탕을 둔 세 시각이 각각 지구화 과정을 겪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   문화를 충돌과 갈등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충돌은 이제 비교적 널리 알려진 테제이다. 9•11 테러나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경제위기가 있기 훨씬 전 헌팅턴은 1993년 이미 앞으로 다가올 세계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문명의 충돌이 될 것이며, 이는 국제정치에서 점차 서구 중심적 국면에서 벗어나 서구와 비서구간의 문명충돌, 그리고 비서구 간의 문명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Huntington 1993). 그의 논증은 이슬람 세력에 집중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걸쳐 전개되어 온 이슬람과 서구의 군사적 긴장이 아직도 늦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것은 ‘유교권과 이슬람권의 군사적 연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와 중동간의 무기의 흐름을 통해 두 세력이 연계하고 있으므로 서구권은 보다 단합해서 이를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뿐 아니라 동유럽과 라틴아메리카까지 포함하여 단합해야 하고, 러시아와 일본은 보다 긴밀히 협력해야 하며, 유교권과 이슬람 국가 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서구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충돌론은 저자의 명성과 주장의 생소함으로 인해 한 동안 학계에서 논란거리가 된 바 있으나, 대부분의 주장이 현실에서 설명력과 예측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이제는 거의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헌팅턴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주장은 문화를 보는 하나의 시각으로서 자리 매김 될 수 있고, 이런 시각은 지구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헌팅턴의 테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문화를 갈등의 새로운 경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민족과 타민족을 구분하는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한 집단과 다른 집단의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으로 파악된다. 즉 문화는 인간의 다양성을 구분하는 집단적인 결정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이중 언어’, ‘이중 문화’, ‘다문화적 관례’ 등은 문화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적 문화 교류, 다국적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 이주나 교역을 통해 생기게 되는 문화적 전파 등은 이 시각에서는 문화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문명충돌론이 상정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시각은 한 공간 안에 문화적 차이가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문화는 집단을 구분하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위체이고, 국제정치이론에서 흔히 비유되는 ‘당구공 모델’로 정의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 개념은 인류학적 접근에서 수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인류학적으로 문화는 학습되고 공유되는 행위 패턴이나 신념체계이다. ‘학습’이란 일순간에 충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다. 또 사회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공유’가 특정한 공간과 역사에만 한정될 수 없다. 사회성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학습’과 ‘공유’를 통한 행위와 신념으로 이해할 때 문화는 특정 영토와 특정 역사의 한계를 초월하며, 늘 개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헌팅턴에 의해 대표되는 문명 충돌론 그리고 문화적 갈등의 불가피성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전제를 깔고 있다. 헌팅턴 자신도 이미 민주화라는 제3의 물결을 제시한 바 있다. 적어도 민주적 담론의 차원에서는 문화적 이질성이 후퇴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두 번째로,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로 종종 명명되는 ‘문화적 동질화’ 테제는 비교적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 특히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으로 인해 사회가 동질화를 겪고 있다는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 맥도날드화란 사회학자 리처(George Ritzer)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식당의 원칙들이 점차 미국 사회의 부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회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Ritzer 1993, 19). 맥도날드 원칙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버(Max Weber)의 용어를 빌자면, 맥도날드가 제공하는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등의 원칙들이 형식적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의미에서 전 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이와 같은 합리화 과정은 자본주의화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매개체는 역시 다국적기업이다. 다국적기업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지구화 과정에서의 자본주의화는 곧 미국화(Americanization)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미국화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세계적인 문화 미디어의 영향력이나 소비자주의의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지구화로 인한 문화적 동질화가 제국주의적 속성을 내비칠 수 있다는 해석은 맑스 식의 자본주의화 해석과 많은 공유점을 갖는다. 문화의 동질화를 맑스 식으로 자본주의화와 문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게 되면, 문화적 동질화는 많은 저항과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Alfino, et al. 1998 ; Smart 1999).   그러나 문화적 동질화와 이에 따른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학자들은 경제적 차원의 지구화가 곧바로 문화적 동질화를 낳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문화적 혼성화 경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러시아에서의 맥도날드화는 신속성, 효율성, 예측가능성이라는 형식적 합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러시아에 맞는 소위 ‘지방화’(localization)를 거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Talbott 1995). 러시아에서 맥도날드화는 짧은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다는 합리성이나, 싼 가격의 합리성, 그리고 일률적인 메뉴선택이라는 예측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구적 지방화’(global localization) 혹은 ‘지구지방화’(지방지구화, glocalization)으로 명명하며(Ohmae 1992), 경제적 차원의 지구화, 즉 자본주의화가 문화적 차원에서 곧바로 문화적 동질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초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문화적 차원에서 지구화는 한편으로는 동질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화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화는 결국 문화의 혼성화(hybridization)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이다(Comaroff and Comaroff 2001; Jameson and Miyoshi 1998; Appadurai 2001).   세 번째 접근 방식으로서 문화적 혼성화(hybridization)는 기본적으로 순혈주의의 터부를 깨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국민 국가적 정체성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경계의 애매함이나 경계의 투과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성화 테제는 사실 지구화의 진행과 함께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이다...(계속)

박성우 2011-03-07조회 : 13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