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어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4년 6월에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국가안보패널(National Security Panel: NSP)을 구성하였다. 이후 국가안보패널은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2011),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n복합과 공진》(2013), 《1972 한반도와 주변 4강 2014》(2015),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등 일곱 권의 책을 출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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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1]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정치와 한국 외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한국슬라브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러시아 외교정책과 유라시아 국제관계이다. 주요 논저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편저), 《러시아의 선택: 탈소비에트 체제전환과 국가•시장•사회의 변화》(공저), Russian Nonproliferation Policy and the Korean Peninsula (공저), “Russia's Perspectives on International Politics”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21세기 들어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을 지닌 국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각축은 환경 국제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싸움이 붙어있는 지점이다. 기후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주요한 국제적 환경외교 영역으로 부상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현재와 미래의 환경 재해들에 대한 경고가 과학자/전문가 그룹에 의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후변화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정부기구들의 대응 활동과 현재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미디어의 광범위한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기후변화 인식도 고양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자유무역질서와 에너지•자원•식량 문제 등과 맞물리면서 환경 외교의 영역에서 벗어나 국제정치 제반 영역에서 핵심적인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0년대에 전개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둘러싼 국가 간 협력과 경쟁의 상호작용은 적어도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 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급성장한 환경 영역에서의 지구적 거버넌스를 재편하고 또한 환경 영역의 의제가 다른 영역과 연계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국제무대에서 기후변화 외교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기후변화 외교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의 파고는 높고도 본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입지에 대한 근본적•미래적 고려와 그에 기초해 잘 고안된 외교 전략의 마련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현황과 쟁점 그리고 전망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향후 1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기후변화의 국제정치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게 될 것이며 어느 정도의 운신의 폭을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이익의 실현을 포함하여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다층적 요구를 조화롭게 실현해 갈 수 있는 어떤 전략적 지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좀 더 개방적이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본고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두고 전개되는 국제정치 구도를 파악하고, 기후변화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대응이 보여준 기회와 도전이 무엇인가를 밝힌 후, 한국 환경•기후변화 외교의 과제와 바람직한 대응 전략을 도출하고자 한다.   II.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현황과 쟁점   1. 교토체제와 포스트교토체제 사이   1988년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과학자들과 정책 입안가들이 처음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모인 이후 기후변화 국제정치는 1988-1991년을 지내며 지구적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기후변화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평가를 위해 기후변화국제패널(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이 설립되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또한 1992년 〈리우 정상회의〉(Rio Earth Summit) 에서 154개국이 조인하여 1994년에 발효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은 현재 192개국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위한 지구 정치의 중심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구 수준에서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향하는 이 협약은 기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 규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협약에 참여하는 23개의 선진국이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했던 점이 긍정적이었다(Elliott 1998; Paterson 1996). 〈리우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래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7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3차 당사국회의〉(3rd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에서는 선진국 및 동구권 국가의 감축의무를 명문화한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어 2005년 발효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최초의 구속력 있는 범지구적 대응체제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UNFCCC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지구적 과정의 핵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Bodansky and Di ringer 2010).   UNFCCC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특별한 절차규정이 없으며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모든 당사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 국가들은 거의 ‘준거부권’(near-veto) 내지 ‘사실상의 거부권’(de facto veto)을 가지며, 따라서 구속력 있는 규칙에 대한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따라서 UNFCCC의 의사결정 과정인 〈당사국회의〉에서의 연합형성과 그 막후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등의 조정 및 중재 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있다(Barnett 2007, 1367; Conca 2006). 국가, 지역기구, NGO, 여러 분야의 전문가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UNFCCC야말로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형성을 위한 노력의 중심이며, 교토체제 형성의 핵심적 기능을 감당해 왔다.   그런데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지 15년, 발효된 지 7년이 지났어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의무 설정 및 그 이행방안과 관련하여 UNFCCC 중심의 범지구적 협상은 아직도 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3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의 실행계획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의 범지구적 기후변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 프로세스인 〈발리행동계획〉이 채택된 바 있다. 〈발리행동계획〉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한 선진국과 후진국의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 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의 원칙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측정, 보고, 검증 가능한”(MRV: Measurable, Reportable, Verifiable) 감축/완화(Mitigation)행동, 개도국들의 적응(Adaptation), 선진국들의 개도국을 위한 관련 기술의 이전 및 재정 지원 등에 관한 원칙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2012년 이후의 포스트교토체제 구축에 대한 협상을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는 〈제15차 당사국총회〉까지 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협상과정은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UNFCCC 중심의 국제정치 과정에서 강대국 간 각축과 선진국-개도국 사이의 경쟁이 최근 한층 강화되면서 〈코펜하겐 당사국총회〉는 아무런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에 급급해 하며 막을 내렸다. 물론 지구적 협상과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코펜하겐 이후 기후변화 국제정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사국총회의 결정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유의하기로”(take note)한 〈코펜하겐 합의문〉(Copenhagen Accord)은 자칫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지구적 협상과정의 동력을 어렵사리 살려내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향후 협상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구원해 냈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의미한 노력만은 아니었다. 우선,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상응하는 능력”(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에 따라 대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 하였고, 장기적으로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시기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맞춘다는 목표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장기 감축에 대한 원칙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에 지구적 및 국가적 배출량의 정점을 달성한다는 원칙도 확인하였다...(계속)

신범식 2012-07-17조회 : 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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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Executive Summary

2011년 3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진행해 온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프로젝트의 핵심 정책제안을 담은 Executive Summary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10년대 한국외교가 직면한 과제들을 중장기적으로 전망•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기 위하여 ‘거버넌스,’ ‘안보.’ ‘경제.’ ‘환경’의 4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이슈들 간의 네트워크적인 연결을 고려한 복합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거버넌스클러스터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 외교 과제 전재성(서울대학교), 주재우(경희대학교)   안보클러스터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이동선(고려대학교)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이동률(동덕여자대학교), 서봉교(동덕여자대학교)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구민교(서울대학교)   경제클러스터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김치욱(울산대학교)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이용욱(고려대학교)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클러스터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 정치와 한국 외교 신범식(서울대학교)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신성호(서울대학교)   신 글로벌 에너지 아키텍쳐와 한국의 에너지자원협력 외교 방향 김연규(한양대학교)           환경 : 외교환경 변화와 신세계질서 건축   2010년대 외교환경의 변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세계는 격변의 역사를 겪었다. 9•11 테러,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를 맞이했고, 전통적 선진국의 상대적 쇠퇴와 신흥국의 빠른 부상을 체험하였으며, 지구 거버넌스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로 대표되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나타났으며, 향후 10년도 이러한 조류가 세력배분구조, 세계정치 이슈, 행위자, 권력자원의 차원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적 조류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구 및 지역차원에서 세력배분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은 상대적 정체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 국가들은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테러집단, 기업, 비정부기구, 개인과 같은 비국가행위자의 숫자와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되면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넘어 다양한 행위자들과의 복합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한 외교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셋째, 세계화와 정보화 그리고 인구변화는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확산, 자원고갈, 불균형 등 지구촌에 새로운 문제군들을 던져주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 문제군들과 연계되어 위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위기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 이슈영역간 연계의 양상을 면밀히 파악하고 복합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요청되고 있다.   넷째, 새로운 행위자, 이슈영역의 등장과 관련된 도전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국가중심의 행위자를 네크워크 파워로 강화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의 전통적 하드파워 권력자원을 문화력, 환경력, 지식력, 통치력 등과 같은 새로운 소프트 권력자원과 현명하게 복합화하여 투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거버넌스의 건축   현재의 지구 및 지역질서의 구건축은 세력분포, 행위자, 이슈영역, 권력자원의 새로운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21세기 세계정치는 미국패권의 상대적 쇠퇴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신흥국가들의 지구 및 지역 거버넌스 참여와 함께 다양한 국가•초국가행위자들이 복수의 이슈영역에서 네트워크적으로 연결하여 자율적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조정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겪고 있다. 즉, 21세기 세계질서는 힘의 각축과 세력균형이란 근대 질서와 네트워크를 통한 통치라는 탈근대이행이 중첩되어 복합화되고 있다.   2010년대 세계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건축하여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장기침체의 길로 접어드는 세계경제의 재생을 위해 금융, 무역, 에너지•자원, 개발, 환경 등 이슈영역에서 지구 거버넌스의 재건축,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2010년대에 걸맞은 동아시아와 한반도 신질서의 건축이라는 사활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도전 :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북한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 지구 거버넌스의 공동참여   동아시아 세력배분구조의 변화, 새로운 국제정치 이슈들의 등장, 행위자의 다양화, 권력자원의 변화 등 다양한 외교환경 변화 속에서 2010년대 한국 외교는 세가지 당면과제를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첫째,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동시에 심화되는 속에서 변화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건축 과제, 둘째,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설정하면서 미래의 한반도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과제, 셋째, 통상, 금융, 개발협력, 에너지•자원, 환경 부문 등의 지구 거버넌스 건축에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제다. 특히,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와 북한 김정은 체제의 탈선군화 문제는 향후 전략 수립과 이행에 따라 21세기 한반도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현재 세계질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의 빠른 국력증강이다. 경제력 측면에서 2020년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들의 제1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액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생산네트워크 중심기지 역할을 넘어 서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역내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대하고 있다.   군사력의 측면에서 중국은 연 15퍼센트 이상 국방비를 늘려 왔으며, 2011년 중국(1,200억 달러)은 미국(6,980억 달러)의 1/6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국방비 4,780억불을 감축해야 하는 미국과 군사비 격차를 더욱 줄여 나갈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우주선 개발, 위성 요격, 미사일 및 핵무기 등 전략무기 증강, 최신예 전투기 실전배치, 핵잠수함 및 항공모함 건조 등 군사 현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력의 증강은 두드러지지만 미국 국력과의 상대적 평가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강대국간 단순 경쟁과 패권 경쟁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단순 강대국과 달리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는 한편 국제질서를 생산하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힘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패권 경쟁은 세계질서의 주도권 경쟁을 포함한다. 현재의 미중경쟁이 강대국간 단순 경쟁에 머물게 될지 본격적인 패권 경쟁으로 치닫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의 측면에서 빠르게 부상해도 미국을 대체할 패권국으로 성장할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중국 스스로 패권을 지향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중경쟁의 패권경쟁화는 조심스러운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국력측정 방법도 경제적, 군사적 수치의 단순 비교 이외에 21세기 국력을 크게 좌우할 과학기술•정보•지식 수준 등을 함께 고려하면 미중 간의 국력 격차 축소는 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화가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부담을 무겁게 하여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빠르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에게 유리한 구조적 이익을 가져 옴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패권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군사력의 경우도 단순 군사비 비교를 넘어 자원배분 측면에서 보면 지정학적인 이유로 강한 육군력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은 해공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없는 반면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국방비를 해공군력 육성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해공군력 면에서 우세한 미국은 해양지역에서, 우월한 육군력을 갖춘 중국은 인접 대륙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한편 미국은 국력의 상대적 쇠퇴 속에서 세계 리더십 유지를 위해 고투하고 있다. 미국은 부시행정부 8년의 우세(primacy)전략 혹은 패권전략을 마감하고 오바마 행정부 들어 다자주의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전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9•11 테러 이후 안보위기와 정당성 위기를 겪고 2008년 경제위기까지 겪으면서 기존의 패권전략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아시아 회귀” 선언 이후 동아시아 지역 내 위상과 지위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아시아 정책 목표가 경제성장, 지역안보, 민주주의, 인권증진과 같은 가치이며 주요 정책 수단은 양자동맹, 중국과 같은 신흥국과의 파트너쉽, 그리고 다자주의 기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관여와 협력의 구도를 추구하면서 대중 균형전략의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패권도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중국을 미국의 틀 속에 묶어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탄력적 권위주의체제를 견지하면서 ‘취약한 안정’(fragile stability)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상당기간 유지해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행정적 효율성, 대외정책상의 성과, 그리고 중화민족주의 고양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엄격한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 농민 등 소외계층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소요와 불안정은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 민주화 문제 역시 공산당의 단합과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 당분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다.   중국 경제 역시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 둔화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성장 방식에서 민간소비를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에서 통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외변수의 불안정성도 커다란 위협요인이다.   중국 당과 정부는 정치, 경제적 위기 요인들이 체제의 근본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 이러한 위기를 중국의 부상 실현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대를 갖고 있다. 향후 10년 중국은 전면적 소강사회(全面小康社會) 건설을 목표로 안정된 경제발전과 내수진작, 국내경제불평등 해결 등을 위해 집중할 것이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조기의 과도한 패권경쟁을 추구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이익” 담론을 통해 첫째, 중국의 국가 정치체제(國體), 정권의 구성형식(政體) 및 정치적 안정, 둘째, 중국의 주권 안전, 영토 완정(完整), 국가 통일, 셋째,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가능 발전 보장과 같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 역시 단기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균형전략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의도는 없다. 경제위기로 미국의 지도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전략 차원에서 위기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은 중국의 대전략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협력을 추구하면서 경제 발전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여 패권적 세력전이를 추구할지, 아니면 강대국 간 경쟁관계로 그칠지는 앞으로의 동아시아 신질서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미중 세력전이를 둘러싸고 세력전이론, 공세적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와 같은 기존 국제정치이론들이 낙관론과 비관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중관계는 단기적으로는 전반적 협력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만무기판매, 달라이라마의 미국 방문,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공동해상군사훈련, 남중국해 분쟁 및 센카쿠 분쟁 등에서 보듯, 양국이 구조적 협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상당기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규정한 핵심이익의 문제와 결부된 다양한 현안들에서 전략적 불신과 경쟁이 쉽사리 고조되고 이것이 관련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전략적 경쟁과 불신의 기억이 축적될 경우 세력전이론이나 공세적 현실주의가 지적하듯 장기적으로 미중간 패권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계속)

구민교, 김성배, 김연규, 김치욱, 서봉교, 손열, 신범식, 신성호, 이동률, 이동선, 이승주, 이용욱, 전재성, 조동호, 주재우, 하영선 2012-06-26조회 : 1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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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Executive Summary

2011년 3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진행해 온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프로젝트의 핵심 정책제안을 담은 Executive Summary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10년대 한국외교가 직면한 과제들을 중장기적으로 전망•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기 위하여 ‘거버넌스,’ ‘안보.’ ‘경제.’ ‘환경’의 4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이슈들 간의 네트워크적인 연결을 고려한 복합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거버넌스클러스터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 외교 과제 전재성(서울대학교), 주재우(경희대학교)   안보클러스터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이동선(고려대학교)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이동률(동덕여자대학교), 서봉교(동덕여자대학교)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구민교(서울대학교)   경제클러스터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김치욱(울산대학교)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이용욱(고려대학교)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클러스터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 정치와 한국 외교 신범식(서울대학교)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신성호(서울대학교)   신 글로벌 에너지 아키텍쳐와 한국의 에너지자원협력 외교 방향 김연규(한양대학교)           환경 : 외교환경 변화와 신세계질서 건축   2010년대 외교환경의 변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세계는 격변의 역사를 겪었다. 9•11 테러,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를 맞이했고, 전통적 선진국의 상대적 쇠퇴와 신흥국의 빠른 부상을 체험하였으며, 지구 거버넌스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로 대표되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나타났으며, 향후 10년도 이러한 조류가 세력배분구조, 세계정치 이슈, 행위자, 권력자원의 차원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적 조류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구 및 지역차원에서 세력배분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은 상대적 정체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 국가들은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테러집단, 기업, 비정부기구, 개인과 같은 비국가행위자의 숫자와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되면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넘어 다양한 행위자들과의 복합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한 외교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셋째, 세계화와 정보화 그리고 인구변화는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확산, 자원고갈, 불균형 등 지구촌에 새로운 문제군들을 던져주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 문제군들과 연계되어 위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위기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 이슈영역간 연계의 양상을 면밀히 파악하고 복합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요청되고 있다.   넷째, 새로운 행위자, 이슈영역의 등장과 관련된 도전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국가중심의 행위자를 네크워크 파워로 강화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의 전통적 하드파워 권력자원을 문화력, 환경력, 지식력, 통치력 등과 같은 새로운 소프트 권력자원과 현명하게 복합화하여 투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거버넌스의 건축   현재의 지구 및 지역질서의 구건축은 세력분포, 행위자, 이슈영역, 권력자원의 새로운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21세기 세계정치는 미국패권의 상대적 쇠퇴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신흥국가들의 지구 및 지역 거버넌스 참여와 함께 다양한 국가•초국가행위자들이 복수의 이슈영역에서 네트워크적으로 연결하여 자율적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조정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겪고 있다. 즉, 21세기 세계질서는 힘의 각축과 세력균형이란 근대 질서와 네트워크를 통한 통치라는 탈근대이행이 중첩되어 복합화되고 있다.   2010년대 세계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건축하여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장기침체의 길로 접어드는 세계경제의 재생을 위해 금융, 무역, 에너지•자원, 개발, 환경 등 이슈영역에서 지구 거버넌스의 재건축,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2010년대에 걸맞은 동아시아와 한반도 신질서의 건축이라는 사활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도전 :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북한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 지구 거버넌스의 공동참여   동아시아 세력배분구조의 변화, 새로운 국제정치 이슈들의 등장, 행위자의 다양화, 권력자원의 변화 등 다양한 외교환경 변화 속에서 2010년대 한국 외교는 세가지 당면과제를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첫째,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동시에 심화되는 속에서 변화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건축 과제, 둘째,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설정하면서 미래의 한반도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과제, 셋째, 통상, 금융, 개발협력, 에너지•자원, 환경 부문 등의 지구 거버넌스 건축에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제다. 특히,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와 북한 김정은 체제의 탈선군화 문제는 향후 전략 수립과 이행에 따라 21세기 한반도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현재 세계질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의 빠른 국력증강이다. 경제력 측면에서 2020년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들의 제1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액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생산네트워크 중심기지 역할을 넘어 서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역내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대하고 있다.   군사력의 측면에서 중국은 연 15퍼센트 이상 국방비를 늘려 왔으며, 2011년 중국(1,200억 달러)은 미국(6,980억 달러)의 1/6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국방비 4,780억불을 감축해야 하는 미국과 군사비 격차를 더욱 줄여 나갈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우주선 개발, 위성 요격, 미사일 및 핵무기 등 전략무기 증강, 최신예 전투기 실전배치, 핵잠수함 및 항공모함 건조 등 군사 현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력의 증강은 두드러지지만 미국 국력과의 상대적 평가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강대국간 단순 경쟁과 패권 경쟁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단순 강대국과 달리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는 한편 국제질서를 생산하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힘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패권 경쟁은 세계질서의 주도권 경쟁을 포함한다. 현재의 미중경쟁이 강대국간 단순 경쟁에 머물게 될지 본격적인 패권 경쟁으로 치닫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의 측면에서 빠르게 부상해도 미국을 대체할 패권국으로 성장할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중국 스스로 패권을 지향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중경쟁의 패권경쟁화는 조심스러운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국력측정 방법도 경제적, 군사적 수치의 단순 비교 이외에 21세기 국력을 크게 좌우할 과학기술•정보•지식 수준 등을 함께 고려하면 미중 간의 국력 격차 축소는 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화가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부담을 무겁게 하여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빠르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에게 유리한 구조적 이익을 가져 옴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패권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군사력의 경우도 단순 군사비 비교를 넘어 자원배분 측면에서 보면 지정학적인 이유로 강한 육군력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은 해공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없는 반면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국방비를 해공군력 육성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해공군력 면에서 우세한 미국은 해양지역에서, 우월한 육군력을 갖춘 중국은 인접 대륙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한편 미국은 국력의 상대적 쇠퇴 속에서 세계 리더십 유지를 위해 고투하고 있다. 미국은 부시행정부 8년의 우세(primacy)전략 혹은 패권전략을 마감하고 오바마 행정부 들어 다자주의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전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9•11 테러 이후 안보위기와 정당성 위기를 겪고 2008년 경제위기까지 겪으면서 기존의 패권전략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아시아 회귀” 선언 이후 동아시아 지역 내 위상과 지위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아시아 정책 목표가 경제성장, 지역안보, 민주주의, 인권증진과 같은 가치이며 주요 정책 수단은 양자동맹, 중국과 같은 신흥국과의 파트너쉽, 그리고 다자주의 기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관여와 협력의 구도를 추구하면서 대중 균형전략의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패권도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중국을 미국의 틀 속에 묶어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탄력적 권위주의체제를 견지하면서 ‘취약한 안정’(fragile stability)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상당기간 유지해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행정적 효율성, 대외정책상의 성과, 그리고 중화민족주의 고양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엄격한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 농민 등 소외계층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소요와 불안정은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 민주화 문제 역시 공산당의 단합과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 당분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다.   중국 경제 역시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 둔화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성장 방식에서 민간소비를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에서 통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외변수의 불안정성도 커다란 위협요인이다.   중국 당과 정부는 정치, 경제적 위기 요인들이 체제의 근본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 이러한 위기를 중국의 부상 실현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대를 갖고 있다. 향후 10년 중국은 전면적 소강사회(全面小康社會) 건설을 목표로 안정된 경제발전과 내수진작, 국내경제불평등 해결 등을 위해 집중할 것이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조기의 과도한 패권경쟁을 추구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이익” 담론을 통해 첫째, 중국의 국가 정치체제(國體), 정권의 구성형식(政體) 및 정치적 안정, 둘째, 중국의 주권 안전, 영토 완정(完整), 국가 통일, 셋째,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가능 발전 보장과 같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 역시 단기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균형전략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의도는 없다. 경제위기로 미국의 지도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전략 차원에서 위기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은 중국의 대전략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협력을 추구하면서 경제 발전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여 패권적 세력전이를 추구할지, 아니면 강대국 간 경쟁관계로 그칠지는 앞으로의 동아시아 신질서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미중 세력전이를 둘러싸고 세력전이론, 공세적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와 같은 기존 국제정치이론들이 낙관론과 비관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중관계는 단기적으로는 전반적 협력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만무기판매, 달라이라마의 미국 방문,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공동해상군사훈련, 남중국해 분쟁 및 센카쿠 분쟁 등에서 보듯, 양국이 구조적 협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상당기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규정한 핵심이익의 문제와 결부된 다양한 현안들에서 전략적 불신과 경쟁이 쉽사리 고조되고 이것이 관련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전략적 경쟁과 불신의 기억이 축적될 경우 세력전이론이나 공세적 현실주의가 지적하듯 장기적으로 미중간 패권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계속)

구민교, 김성배, 김연규, 김치욱, 서봉교, 손열, 신범식, 신성호, 이동률, 이동선, 이승주, 이용욱, 전재성, 조동호, 주재우, 하영선 2012-06-26조회 : 1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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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0]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이다.         I. 서론 : 개발협력 복합 네트워크의 등장   21세기 개발협력의 세계정치는 급변하고 있다 . 2002년 멕시코 몬트레이에서 개최된 <개발자금조달을 위한 국제회의>(Monterrey Consensu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inancing for Development)를 통해 개발협력의 확대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것을 계기로 이전 10여 년간 감소 추세에 있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의 규모가 상승세로 반전되었다. 이어 2005년 G8 글렌이글스(Gleneagles) 정상회의는 증가세를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이 추세는 이후에도 지속되어,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s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OECD DAC) 회원국의 ODA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인 1,287억 달러를 기록하였다(OECD 2010). 경제위기의 반복적 발생, 그에 따른 경제 침체, 원조 제공에 국내정치적 지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개발협력의 규모가 감소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다소 부침이 있기는 하였으나 개발협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발협력을 둘러싼 지각 변동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양적•질적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ODA의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통적 강대국들이 상위를 점하고 있어, 개발협력의 세계질서는 일견 커다란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주요 공여국들이 일제히 ODA의 규모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물질적•지적 토대를 제공했던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9년보다 3.5퍼센트 증가한 302억 달러의 ODA를 제공하여 세계 최대의 ODA 공여국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다. 2005년 미국이 이라크에 부채탕감을 위한 원조를 제공했던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미국의 ODA는 2010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영향력의 확대는 개발협력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2010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신장된 경제력에 걸맞은 소프트파워의 증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가운데, 개발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Lum, et. al. 2008) . 중국은 전통적 의미의 원조에 더하여 양허성 차관, 부채 탕감, 투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개도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모두 포함할 경우, 중국은 이미 주요 공여국으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외원조 규모는 2007년 기준 약 310억 달러에 달한다(Lum, et. al. 2008) . 동아시아의 대표적 공여국인 일본 역시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빈번한 정권 교체 등 어려운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0년 ODA의 규모를 전년 대비 11.8퍼센트 대폭 증가시키는 개발협력의 주요 행위자로서 위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개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개발협력의 전통적 선두주자인 유럽 국가들 역시 ODA 제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DAC에 소속된 15개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회원국을 기준으로 할 때, 2010년에는 전년보다 6.7퍼센트 증가한 702억 달러 규모의 ODA를 제공하였다. 이는 OECD DAC 전체 ODA의 약 54퍼센트에 달하는 액수이다(OECD 2010). 특히 EU 국가들의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GNI) 대비 ODA 비율 즉, ODA/GNI 평균은 0.46퍼센트로 미국의 0.21퍼센트와 일본의 0.20퍼센트는 물론 DAC 평균 0.32퍼센트를 큰 폭으로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모범적 행태를 바탕으로 EU 국가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개발협력과 관련한 새로운 국제 규범의 형성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개발협력 패러다임을 선도해 온 유럽 국가, 최대 공여국인 미국, 1980년대 이후 ODA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 신흥 공여국의 대표주자인 중국 등이 국내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개발협력이 갖는 복합적 성격 때문이다. 21세기 개발협력의 복합화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행위자의 증가에 따른 복합화이다. 우선, 개발협력의 전통적 행위자인 국가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존의 주요 공여국에 더하여 중국, 아랍 산유국 등 OECD DAC 비회원국들이 주요 공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흥 공여국들은 기존 공여국과 매우 차별적인 개발협력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원조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수원국 국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불간섭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신흥 공여국의 등장과 그에 따른 새로운 개발협력 패러다임의 대두는 선진 공여국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수립해 온 원조의 기준과 조건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발협력 패러다임과 아키텍처는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Manning 2006)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흥 공여국들이 짐바브웨 같은 ‘악당 국가들’(rogue states)에게 제공하는 ‘악당 원조’(rogue aid)가 국제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Naim 2007) .   비단 국가 행위자만 증가한 것은 아니다. 개발협력에 참여하는 비국가 행위자는 더욱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6년 기준, 원조 관련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의 연간 지원 규모는 146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옥스팜(Oxfam), 케어(Care), 아동구호기금(Save the Children) 등 대규모 NGO의 연간 예산은 7-8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원조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기구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UN 산하에만 약 70개 원조기관이 있는데,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에이즈•말라리아•결핵퇴치 글로벌기금 (Global Fund to Fight AIDS, Malaria and Tuberculosis), 지구환경기금(Global Environment Facility)처럼 특수 목표를 위해 설립된 원조기관들이 대부분이다. 수원국의 상황 역시 복합적이다. 민주화로 인해 지역 NGO가 증가하고 있으며, 지방정부, 지역기업, 금융기관 등이 원조의 배분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행위자의 복잡다기화는 개발협력과 관련한 조정 및 협력의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개발협력의 주요 행위자로서 정부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정부와 비정부 행위자 사이의 파트너십에 기반한 개발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은 행위자들 사이의 조정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개발협력 거래비용의 상승을 초래하고, 원조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저하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방식의 개발협력, 부대조건, 평가방식 등이 도입됨에 따라, 기존 개발협력 체제와의 조화 및 재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조기관의 증가로 인해 개별 프로젝트의 규모는 감소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행위자 수의 증가는 수원국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캄보디아의 경우 매년 400회 이상 공여 사절단이 방문하고 있으며, 니카라과(289회)와 방글라데시(250회)의 사정도 유사하다(Severino and Ray 2009). 결국 다수의 행위자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개발협력 아키텍처가 필요하다(Fozzard et al., 2000; Andersen and Therkildsen 2007).   둘째, 개발협력이 단일한 쟁점이 아닌, 국제정치의 다른 쟁점들과 복합되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원조, 개발, 지속적 성장, 환경 등 다양한 이슈가 상호 연계된 형태로 전개되는 복합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globally integrated economies)이며, 지구 차원의 사회적 양극화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질병, 지구 온난화, 식량위기 등 지구적 차원의 공조가 필요한 새로운 쟁점들이 지속적으로 대두했는데, 모두 개발협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쟁점들이다. 저소득국가뿐 아니라 ‘실패국가’에도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 역시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강조하는 최근의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셋째, 관리의 복합화이다. 쟁점의 복합화는 빈곤 및 불평등 같은 기존의 문제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서로 연계되어 있는 다른 쟁점들이 더 이상 독자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발협력의 문제와 개도국의 발전 문제가 전지구적 차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효과적 관리를 위해서는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G20은 개도국의 개발과 원조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2010년 6월 토론토 회의에서 다자개발은행에 대한 자본증액 및 재원보충 지원약속을 이행하기로 하고, 농업과 식량안보를 위한 대책으로 세계 농업식량안보기금(Global Agriculture and Food Security Program: GAFSP)의 발족을 추진하며, 라퀼라 이니셔티브(L’Aquila Initiative)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개도국의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개발협력이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관리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21세기 개발협력은 행위자의 복합, 쟁점의 복합,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21세기 개발협력은 지구화된 세계에서 다양한 차원의 상호의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원조의 제공, 개도국의 발전, 새로운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수립이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행위자의 증가에 따른 집합행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다양한 개발협력 모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발협력 자체가 21세기 지속 가능한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주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개발협력은 세계 주요국들이 각자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키는 유효한 수단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특히 현재처럼 개발협력의 세계질서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주요 국가들은 개발협력 아키텍처를 재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향후 세계질서의 재구성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계속)  

이승주 2012-05-06조회 : 1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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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9]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김치욱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연구 분야는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네트워크 세계정치, 중견국가론이며, 최근의 주요 논저로는 “케인스주의의 부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치엘리트의 경제담론 분석,” “네트워크 이론으로 본 미-중 자유무역협정(FTA) 경쟁,”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 변화,” “Toward a Multistakeholder Model of Foreign Policy Making in Korea? Big Business and Korea-US Relations”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2010년대 아시아의 무역관계는 중첩적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네트워크에 의해 규율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전략으로 양자 FTA를 사실상의 다자주의 레짐으로 바꾸는 일종의 양자적 다자주의(bilateral multilateralism)를 제시한다. 1990년대 경제적 기적과 신화를 차례로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2010년대 들어 ‘아시아의 세기’라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World Bank 1993; Krugman 1994; Bhagwati 1998; Kohli 2011; Bowring 2011). 국제정치 무대에서 아시아의 귀환은 행위자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보다 가시화되었고,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과 협력은 향후 아시아 무역질서의 향배를 결정할 동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국가들은 전후 다자주의 무역질서 하에서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에 입각하여 글로벌 공장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유럽이나 북미 등과는 다르게 역내 무역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다자제도를 수립하지 못하고, 대신 중첩적인 양자 FTA를 통해 자유무역을 관리해왔다. 한마디로 양자주의는 아시아 무역질서와 각국의 통상 정책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부상했다(Heydon and Woolcock 2009).   그런데 글로벌 차원에서 세력전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아시아 무역정치에도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한층 증폭되었다. 그동안 아시아의 FTA 무대에서 주인공은 중국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은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을 중심으로 공세적인 FTA 전략을 추진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인 영향권을 구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FTA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적어도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가 아시아에 대한 간여정책의 일환으로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미국의 대 아시아 서진(西進)정책은 클린턴(Hillary Clinton) 국무장관의 발언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TPP협정이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서 장차 다른 무역협정의 본보기(benchmark)로 기능할 수 있으며, 아태지역의 통합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의 기반(platform)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Clinton 2011).   한국은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FTA 게임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한-미 FTA는 2007년 서명된 지 5년만인 2012년 3월에 공식 발효되었다. 미국은 이미 호주(2005), 칠레(2006), 싱가포르(2004) 등 3개 국가와 FTA를 체결(발효)했으나, 동아시아 3대 경제 중 처음으로 한국과 양자 FTA를 최종 성사시켰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은 FTA 협상의 전단계로서 2010년 5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쳤으며 2010년 9월 정부 차원에서 국장급 사전협의를 진행했다. 한국 정부는 2012년 2월 한-중 FTA를 추진하기 위한 첫 번째 국내절차를 개시했다. 한중 양국은 한국의 국내 절차가 마무리 되는 대로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중•일 3자 FTA 협상도 점차 가시화되었다. 3국은 2010년 5월 시작된 산•관•학 FTA 공동연구가 2012년 3월 30일 종료했으며, 2012년 5월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FTA 협상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 도출될 것으로 점쳐졌다. 한국, 중국, 일본은 2012년 3월 21일 투자 자유화,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양자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을 교섭 5년 만에 전격 타결함으로써 3자 FTA 성사 가능성을 높였다.   이와 같이 2010년대 아시아의 무역 게임은 지역 다자제도의 형성 노력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양자 FTA를 중심으로 속도감을 더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글로벌 수준에서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경쟁, 그리고 한중일과 아세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아시아 FTA 게임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임할 수 있는가? 본 연구는 자유무역의 이익을 분배하는 국내 경제적 거버넌스의 구축과 기존의 양자 FTA가 사실상의 다자 무역레짐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소위 ‘양자적 다자주의’를 주문하고자 한다. 양자적 다자주의는 무역 거버넌스 아키텍처가 형식상으로는 양자적인 성격을 띠지만 그 실질적으로는 다자주의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II장은 FTA를 중심으로 짜여진 아시아 무역 거버넌스를 조명한다. III장은 FTA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사회연결망분석법(Social Network Analysis)을 활용하여 아시아 FTA 네트워크의 구조를 밝힌다. 이어 IV장은 한국의 FTA 전략으로서 양자적 다자주의의 필요성과 내용을 밝힌다. V장은 본 연구를 요약하고 양자적 다자주의의 한계점을 논함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II. 전환기의 아시아 무역 거버넌스   전후 아시아 무역질서의 변천 과정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다자주의의 실패와 양자주의의 부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10년대 아시아 국가 간의 무역관계는 양자주의에 의해 규율될 전망이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들이 양자 FTA 대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수준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체제와 함께 지역적인 차원에서도 다자주의를 지향했다(Asian Development Bank 2010).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주도로 아시아의 다자 무역협정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일본 경제학자인 기요시 고지마(小島清)는 1966년 태평양자유무역지대(Pacific Free Trade Area: PAFTA)의 창설을 제안했다. 이 구상은 훗날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nference: PECC)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프로세스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 받았다.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을 구성원으로 하는 PAFTA는 아태 경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했으며 유럽통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제안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소극성과 중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일본과 호주는 1967년에 태평양경제협의회(Pacific Basin Economic Committee: PBEC)를 만들었는데, 양국 간 상업적 협력체로서 제도화의 정도가 떨어지는 민간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띠었다. 1970년대 일중 양자관계가 중요해지고 중국이 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다자협정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잦아들었다(Kojima 1971; Deng 1997). 그러다가 1980년 당시 일본 오히라 수상(大平 正芳)과 호주 프레이저(Malcolm Fraser) 수상의 제안으로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가 수립되어 지역협력의 에너지를 회복했다. PECC는 정부, 재계, 학계 간 3자 포럼으로 정보 교환과 소통을 통해 무역과 개발 이슈에 관한 태평양의 협력을 촉진하고자 했다.   이에 앞서 1967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을 구성원으로 하는 아세안(ASEAN)이 출범했다. 그러나 아세안은 출범 초기 컨센서스 중심의 정치안보 공동체로 인식되었고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6년 발리 정상회의에서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 PTA)을 도입했지만, 대상 상품의 범위가 좁고 회원국의 이행의지가 약하여 역내무역에 대한 영향은 미미했다. 이후 1992년 아세안자유무역협정(ASEAN Free Trade Area: AFTA)을 체결하여 향후 15년 이내에 아세안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2008년까지 아세안 역내관세율을 0.5퍼센트로 인하하는 동시에 각 회원국의 비관세장벽도 점차로 철폐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로 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포괄적인 다자 무역레짐을 향한 노력은 1989년 APEC의 수립으로 가시화되었다. 1993년 미국에서 개최된 1차 APEC 정상회의는 단일시장의 건설이라는 비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개최된 제2차 정상회의에서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 목표를 설정한 ‘보고르 목표’를 채택했다. 1단계로 APEC 회원국 중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선진국들의 경우 2010년까지 역내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고, 2단계로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멕시코 등 나머지 회원국들은 2020년까지 역내 무역자유화에 동참토록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후 연례 APEC 정상회의에서 APEC 경제통합을 심화하는 각종 행동계획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2011년 현재 APEC은 여전히 역내 무역자유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APEC 2011).   아시아 지역에서 다자 무역협정의 공백은 양자 FTA에 의해 채워졌다. [그림 1]과 같이 아시아 국가들은 2011년 현재 250개의 FTA를 이미 체결했거나 협상 또는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FTA의 태반은 양자 협정인데, 1990년 3개에서 170여개로 급증, 전체 FTA의 6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의 양자주의는 역내 다자주의 틀인 APEC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유럽과 북미의 지역주의가 확산되는데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다. 아시아 밖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유럽연합, 미국, 일부 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FTA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양자 FTA 확산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1992년의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를 제외하면 2000년 이전에 양자 혹은 복수국간(plurilateral)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아시아 국가는 없었다. 일본과 한국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여전히 다자주의를 지지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 중 양자 무역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WTO 협상이 지체되고 APEC이 동력을 잃어감에 따라 점차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한국은 1999년 칠레 FTA 협상을 개시했고, 일본과도 준정부간 수준에서 FTA 논의를 시작했다. 일본은 싱가포르가 FTA 카드를 제시했을 때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2002년 서명했다. 이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역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멕시코와의 FTA 협상으로 관심을 돌렸다...(계속)  

김치욱 2012-05-03조회 : 1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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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8]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캔사스 대학(University of Kansas)에서 동아시아학 학사, 남가주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도쿄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방문 연구원, 남가주 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강사, 브라운 대학교 왓슨 국제연구소(Wat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Brown University) 및 동아시아학과 프리만 펠로우, 오클라호마 대학교(University Oklahoma) 중미 연구소 연구위원, 동대학 정치학과 및 국제지역학부 조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The Japanese Challenge to the American Neoliberal World Order: Identity, Meaning, and Foreign Polic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8)가 있고 편서로는 《동아시아 금융지역주의의 정치경제 : 제도적 발전과 쟁점들》 (아연출판부, 2012)이 있다.         I. 들어가는 말   외교정책은 정책적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성되어있다. 정책적 목적은 국가가 국제정치의 장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일이며, 수단은 정책적 목적에 따른 방법론에 해당한다. 종종 국익이란 개념으로 표현되는 정책적 목적의 설정은 국가가 구조적으로 처한 정치, 경제, 안보,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전략적 맥락에 영향을 받기도 하며, 또한 국내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책 수단은 물리적 압박, 협상 및 협력, 설득 등이 있으며 이러한 메커니즘은 일방주의, 양자주의, 다자주의적 형태로 전개된다. 국제정치 질서의 규칙제정자(rule-shaper)가 아닌 규칙준수자(rule-taker)인 비강대국인 경우 정책적 선택의 폭은 상대적으로 넓지 않으며 정책 수단도 제한적일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금융과 통화의 영역은 세계경제질서의 근간으로서 권력, 이익, 아이디어를 매개로 한 경쟁과 협력의 장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자본 자유화와 금본위제가 영국의 패권과 무관하지 않고 2차 대전 후 제도화 된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성립과 몰락, 그리고 신자유주의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발흥은 미국과 G-7으로 불리는 경제 강대국의 경쟁과 협력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Cohen 1966; Kindleberger 1971; Krasner 1982; Ruggie 1983; Keohane 1984; Cox 1996; Strange 1998; Ikenberry 2001). 다시 말해, 지난 150년에 걸친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는 변화와 지속의 역사이다. 변화와 지속은 시장과 국가의 상호성 속에 글로벌, 지역, 국가 차원의 제도화를 통해 나타났다. 제도화의 핵심은 규칙제정(rule-making)과 규칙변환(rule-transformation)의 과정이고(예. 국제기준의 정치, Politics of Global Standards), 규칙은 “Ruler”와 “the Ruled”를 동반한다(Onuf 1989). 브레튼우즈 체제의 중추인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의 제도적 작동방식은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규칙준수자로서 비강대국은 변화하는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에의 적응을 주요 정책적 목적으로 삼게 된다. 다시 말해, 정책적 목적의 선호도가 자율성이 크지 않는 제한적 선택(constrained choice)을 띄게 됨을 의미한다. 이제 막 시작된 21세기 초는 세계도 변했고 한국도 변하였음을 보여준다. 세계경제질서는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고, 한국은 지난 반 세기 동안에 걸친 경제발전의 과실로 국제정치의 장에서 규칙준수자에서 잠재적이나마 규칙제정자의 일원으로 이행하고 있다. 2009년 출범한 세계경제질서 협의체인 G-20에 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향후 1여 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경제질서의 큰 변환기(Great Transformation)로 기록될 수 있고 한국은 ‘적응’을 넘어선 ‘주도’로의 역할 변화기를 맞이할 수 있다.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존의 미국 주도적인 신자유주의적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변화를 글로벌, 지역적 차원 모두에서 요청하고 있다. 먼저 통화 질서를 보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패권은 흔들리고 있고(Helleiner 2009; Eichengreen 2010), 신자유주의 경제 패러다임을 기초로 탄생한 유로도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McNamara 1998; Gillingham 2005). G-2로 부상한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며 달러 의존성을 줄이려고 한다(이용욱 2011). 또한 남미, 아프리카, 중동에서는 지역차원의 통화 동맹을 이미 출범 시켰거나 추진 중에 있다. 동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적 차원에서 역내 환율 안정을 위해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과 한중일 즉,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는 아시아개발은행(The Asian Development Bank: ADB)과 함께 지역통화 설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의 말대로 세계경제는 달러체제의 종식과 함께 복수 기축통화 체제로의 이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Eichengreen 2010).   통화질서가 무역과 투자의 기초로서 결제, 비축, 회계의 기준이 되는 통화의 수요 및 공급의 안정적 운영을 통한 환율의 문제라면, 금융질서는 무역과 투자의 촉진을 위한 자본 자유화 정도를 포함한 자본 시장의 형성 및 발전, 그리고 금융위기 방지와 금융위기 시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금융안전망 확충에 관한 것이다. 1980년 이래로 진행되어온 세계화(globalization)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를 의미하였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IMF 개혁을 필두로 자본 규제론이 힘을 얻고 있고, 지역적 차원에서는 유럽 안정화 기금과 같은 역내 금융위기 방지 메커니즘 설립에 대한 논의가 남미, 아프리카, 중동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구 자본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지역 금융 시장 발전 방안들이 지역중심의 권역별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도 아세안+3를 중심으로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후 제도적 협력 장치의 구성을 통해 지역 금융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제적으로, 금융위기 방지 및 금융위기 시 효과적인 대처방안은 2000년 양자간 스왑(swap) 협정에서 출발하여 2010년 다자화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na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zation: CMIM)를 통해 제도화 되어왔고 아시아판 IMF 인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 AMF) 창설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 아세안+3는 2011년 5월 싱가포르에 CMIM의 자매기관으로서 역내 금융 감시기구인 아세안거시경제감시기구(ASEAN Plus Three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 AMRO)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AMF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역내 금융시장 활성화는 지역 채권시장 발전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2002년 출범한 아시아채권시장 이니셔티브(Asian Bond Market Initiative: ABMI)로 대표되고 있다. 아세안+3는 아시아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기제인 신용보증투자기구(Credit Guarantee Investment Facility: CGIF)를 2011년 5월 발족시켰으며, 역내 채권거래에 대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역내 예탁결제기구(Regional Settlement Institute: RSI)의 설립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금융 및 통화 외교의 구조적 맥락으로 작용할 대변환기의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는 큰 틀에서 보면 서로 관련된 세가지 흐름으로 압축 하여 볼 수 있다. 첫째, 글로벌 차원에서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제도적 틀의 변화와 그 변화의 깊이, 정도, 방향성이다. 둘째, 점증하는 지역 금융 및 통화 시스템의 출현과 공고화 정도이다(Katzenstein 2005; Powers and Goertz 2011). 마지막으로, 글로벌 차원과 지역 차원에서 발전하고 있는 금융 및 통화 질서의 관계적 성격이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차원의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발전이 배타적인 형태를 취해 글로벌 차원과 지역 차원의 경쟁뿐 아니라, 지역간 경쟁체제의 형태로 제도화 될 것 인가?   이러한 국제 금융 및 통화 질서의 대변환기에 한국은 어떻게 글로벌과 동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며 규칙제정자 역할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환율 안정, 금융안전망 확충, 경제 발전을 위한 원활한 자본 공급과 관리가 큰 틀에서 금융 및 통화 외교의 정책적 목표라고 볼 때 어떠한 방법으로 이들을 추구하여야 하며, 동시에 어떻게 최대한 정책 자율성(autonomy)을 확보하여 한국의 선호도를 글로벌 및 동아시아 지역 금융 및 통화 질서에 반영 할 수 있을까?   본 보고서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한국 금융 및 통화 외교가 추구해야 할 정책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비강대국으로서 한국은 다자주의를 정책적 수단으로써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추구하여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중개인(honest broker)역할 수행을 통해 이미 진행중인 동아시아 금융 및 통화 협력의 제도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동아시아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G-20 등의 글로벌 차원의 금융 및 통화 질서의 규칙제정 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다자주의를 통한 지역과 글로벌의 연계 전략이며, 이와 같은 전략적 선택이 다른 전략에 비해 한국의 정책 선호도가 세계경제질서 재확립 시기에 가장 많이 확보되고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지역 다자주의의 공고화를 통해 중국과 일본과의 신뢰 관계 형성과 정책 공조의 경험을 쌓고 정책을 함께 개발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정책 선호도를 구현하는 방안이다. 비강대국이 특정 이슈에 관해 다자주의를 출범시키고 제도적 틀을 짜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이미 작동 중인 다자주의 틀은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왜 다자주의가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기존 연구를 중심으로 논하여 본 보고서의 주요 주장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한국의 금융 및 통화 외교의 주요 대상인 지역차원의 동아시아 금융 및 통화 협력과 글로벌 차원의 G-20의 발전과정, 쟁점 사항들, 그리고 미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본다. 위의 논의를 토대로 한국에 있어서 지역과 글로벌을 아우르는 다자주의 연계 전략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논하고 다자주의 틀 안에서 효과적인 한국의 역할을 위해 정책 네트워크 역량 강화를 제안하며 마무리한다.   II. 왜 다자주의인가?   다자주의는 일방주의, 양자주의와 함께 국가가 외교정책을 실행하는 방법이다. 비강대국의 경우 일방주의는 선택하기 용이하지 않는 방법이며 따라서 양자주의와 다자주의가 선택지인데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자주의가 비강대국의 정책 실현에 양자주의에 비해 우호적일 수 있다. 다자주의가 비강대국에 주는 이점을 먼저 일반론적으로 살펴보고 다음으로 지역과 글로벌을 연계하는 한국의 금융과 통화 외교에서 다자주의의 유용성을 살펴본다.   다자주의는 그 자체로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에게 여러 가지 이득을 준다. 가장 일반적으로, 합의 지향적인 다자주의는 다른 형태의 정치과정에 비해 비강대국의 목소리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들릴 수 있게 한다. 물론 최종 결정된 정책이 다자주의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들에게 언제나 대칭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현실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다자주의 역시 강대국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을 수도 있다(Krasner 1985; Mearsheimer 1995; Grieco 1999).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다자주의는 양자주의에 비해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따른 이득의 분배를 완화할 수 있다(Ruggie 1990; Martin 1998). 다자주의 제도가 제공하는 규범, 규칙, 의사진행 과정을 활용하여 강대국과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Hurrell 2005, 50). 이에 관해 루(Catherine Lu)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Lu 2009, 54-55).   While conflicts, especially over the distribution of goods and burdens, will inevitably arise, under conditions of political friendship among peoples [in a multilateral setting], they will be negotiated within a global background context of norms and institutions based on mutual recognition, equity in the distribution of burdens and benefits of global cooperation, and power sharing in the institutions of global governance rather than by domination of any group.   다자주의는 대변환기에 유리하다. 대변환기란 변화를 향한 다양한 의견과 정책 제안이 새로운 권력과 기존의 권력이 충돌하는 정치의 장에서 전개되는 격동의 시기(turbulent period)를 말한다. 다자주의의 틀은 이러한 변환기에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정보(정책 선호도 및 수단 등)를 공유하게 한다. 토론과 정보의 확충이 언제나 모든 행위자가 동의할 수 있는 좋은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자주의가 제공한 토론을 통해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해결책들이 있는지 논의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각국의 입장이 표출되어 규칙준수자인 비강대국이 한결 수월하게 적응을 위한 정책적 예측을 할 수 있다(Pouliot 2011).   가령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출범한 G-20는 네 개의 클러스터로 구성되어 있다. 클러스터 1은 금융규제개혁(Banking Capital Requirements/Basel III Agreement)으로 은행의 자기 자본률에 관한 문제와 각종 은행 규제에 관해 논의한다(“Bonus Regulations,” “Accounting Harmonization,” “Credit Rating Agencies,” “Bank Tax, International Transaction Tax,” “Derivatives,” and “Hedge Funds”). 클러스터 2는 거시경제정책공조(Macroeconomic Coordination)이다. 거시경제 조정을 위해 논의되는 이슈는 “Sovereign Debt Management,” “Global Imbalances and Currency,” “Currency Valuations and Movements,” “Monetary System”(The Future of the Dollar as Core Currency), “글로벌 금융안정망”(Global Financial Safety Net(Korean Agenda)), “Trading System Coordination”(Prevention of Protectionism and Doha Round Completion) 등 이다. 클러스터 3은 공공재(Public Goods)에 관한 논의를 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의제는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기후/에너지”(Climate/Energy), “식량안보”(Food Security), “혁신/교육, 부패”(Innovation/Education, Corruption) 등 이다. 마지막으로 클러스터 4는 제도화 및 거버넌스 프레임워크(Institutionalization and Governance Framework)인데, G-20 사무국(Secretariat) 설립 여부와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제도(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의 개혁을 다룬다. 이와 같이 다자주의의 틀 안에서 클러스터 별로 세부주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게 된다. 의견의 일치와 불일치 과정 속에서 당면한 문제에 관해 각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공론의 장(a shared framework of interaction)이 생기게 되어 문제 해결의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한 정책적 예측이 높아질 수 있다...(계속)

이용욱 2012-04-26조회 : 1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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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6]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부교수. 신성호 교수는 미국 터프츠 대학(Tufts University) 플레쳐 스쿨(Fletcher School)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 국방부 아태안보연구소 (APCSS) 연구교수, 미국 부르킹스연구소 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워싱턴 동서연구소(East-West Center)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연구관심은 동아시아 안보와 국가전략, 한미동맹과 한반도, 인구변화와 동북아 국제정치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Nuclear Sovereignty vs Nuclear Security: Renewing the ROK-US Atomic Energy Agreement,” “Demographic Peace: Rapid Aging and Its Implication for Northeast Asian Arms Rivalry,” “The ROK-US Alliance in the 21st Century: A Smart Alliance in the Age of Complexity,”《핵 테러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부시와 오바마》등이 있다.         I. 서론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안보 역학관계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실주의자들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성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방 역량을 증가시킴에 따라 안보 딜레마에 빠지면서 경쟁구도가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Friedberg 1993-94; Betts 1993-94; Buzan and Segal 1994; Duffield 2003; Christensen 1999; Wu 2005-06).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부상은 결국 미중간의 패권경쟁과 이 지역에서의 군사대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Mearsheimer 2001). 실제 지난 시기 동북아 지역 내 국방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특히 중국의 국방비 증가는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며 과거 10년간 빠른 군사력의 성장을 보였다. 중국은 2010년 명실상부한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기 이전인 2005년에 이미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국방비 대국이 되었다. 한국은 세계 15위라는 경제규모에 규모에 맞게 지난 10년간 괄목할만한 국방비 증가를 기록하여 세계 12위에 올랐다(SIPRI 2010). 일본의 국방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1퍼센트 유지라는 정책 속에서도, 그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경제 규모를 반영하여 그 절대액수가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SIPRI 2010). 동북아의 군비경쟁은 북한의 핵개발, 한일, 한중 간 역사 및 영토 분쟁, 대만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 민족주의의 증가 등 고질적인 정치, 군사적 문제들에 의해 더욱 증폭되는 경향을 보인다(Christensen 2011; Rozman and Lee 2006, 761-784; Matthews 2003).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강대국 간의 견제, 국가 간 분쟁과 불신,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 다자 기구의 확산과 활성화, 사회 문화 교류 증가,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한 지역 내 협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Pempel 2005; Kurlantzixk 2007; Katzenstein 2005; Katzenstein and Shiraishi 2006). 또한, 일부 구성주의자들은 동아시아 특유의 전통과 문화로 인해 중국의 부상이 서구의 경우와는 달리 지역국가들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 진행될 것이며, 권력 이양이 생각보다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Kang 2003; 2004; Berger 2003, 387-420). 하지만 자유주의나 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실주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있지는 못하다. 현실주의는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이 여전히 증가하는 이유를 묻고 있다. 동북아의 군비경쟁은 과거 유럽 강대국 간 경쟁과 힘의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주류 국제정치이론의 세 가지 주요 요소인 힘, 제도, 이념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경쟁과 협력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론의 토대가 되는 현실은 항상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영향을 줄 다른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Suh, Katzenstein and Carlson 2004, 1-33; Acharya 2008, 57-82). 21세기 국제정치는 국가를 넘어선 개인이나 민간단체,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등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급격한 환경변화나 빈곤과 기아, 지구적 질병 문제는 국가간 전쟁보다 더욱 큰 재앙을 초래하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간 관계도 이제 보다 복잡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근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어온 인구변화는 한 국가의 내부 사회뿐 아니라 국가간 지정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이 최근 미국을 포함한 주요 강대국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인구변화가 이들 국가간의 세력균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요소중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holas Eberstadt)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출산저하와 인구의 노령화라는 현상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인구변화는 이들 국가의 경제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근본요인으로 작용하며 국력의 장기적인 쇠퇴를 가져온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 감소 및 노령화로 인한 효과가 일정기간 잠복기를 거쳐 갑자기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문제가 드러날 시점에서 이를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현재 급속히 진행되는 인구변화는 국제정치에서 주요 강대국간의 세력 전이를 결정짓는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Eberstadt 2010, 58-67; 2003). 하스(Mark L. Haas)는 고령화되는 인구구조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강대국 간의 군사 경쟁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 중국 등 급속한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글로벌 고령화’(global aging)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 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된다(Haas 2007, 112-117).   동북아는 그 어느 지역보다 급속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겪고 있다. 동북아의 급속한 노령화는 각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이들간의 관계, 특히 지정학적 경쟁과 군비증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본 연구는 한중일 삼국의 고령화 추세가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와 경제활동 인구의 위축은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을 둔화 시킬 뿐 아니라 복지비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복지비의 증가라는 두 현상은 서로 상승작용을 통해 국가 재정에 심각한 압박요인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결국 다른 재정지출 특히 군사비 지출과 증가에 중요한 제약요인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군비경쟁이 인구변화에 의해 둔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민주평화(democratic peace)가 아닌 인구평화 (demographic peace)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II.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   1.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고령화   인구의 고령화는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적으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중일의 인구변화를 영국, 프랑스,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 이 지역의 저출산과 노령화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표 1]의 경우 동북아 삼국의 출산율 저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에 인구 유지를 위한 필수 출산율인 2.1을 하회했으며 한국 역시 1980년대부터 출산율 저하 현상을 겪고 있다. 그 결과 한일 양국은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도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보다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 .   [표 1] 국가별 출산율   출처: 유엔, 세계인구전망 (United Nations,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08 Revision Population Database (New York: United Nations, 2008), http://esa.un.org/unpp/index.asp?panel=2, select variant: medium   반면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괄목할만한 경제 발전은 이들 사회의 평균수명이 급속히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표 2]에 의하면 한국, 일본, 중국의 기대 수명이 유럽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 2] 국가별 기대수명(남녀 모두)   출처: United Nations,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08 Revision Population Database (New York: United Nations, 2008), http://esa.un.org/unpp/index.asp?panel=2, select variant: medium   저출산과 기대수명의 빠른 증가 현상은 종합적으로 한중일에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표 3]은 각 국가별로 인구 구조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본이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인구의 7퍼센트 이상이 65세 노령인구가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로 전환된 반면, 한국과 중국은 각각 2000년과 2001년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 일본은 2011년에 인구의 23퍼센트가 65세 이상 노령인구로 구성되면서 21퍼센트 이상으로 구분되는 초고령 사회를 넘어 비교대상 국가 중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가 되었다(Japan Ministry of Internal Affairs and Communication 2011). 2025년에는 한국의 고령화가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으며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고, 중국은 인구의 13.4퍼센트가 고령인구로 구성될 것이다. 2050년에는 일본과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계속)

신성호 2012-04-12조회 : 1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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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55]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북한과 한반도 관련 정책 개발에 대한 자문을 맡고 있다. 김성배 박사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 부임하기 전까지 통일부 정책보좌관(2006),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행정관(2003-2006년)을 역임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북한학과 교수.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위원, 북한경제연구팀장, 기회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과학환경위원회 상임위원, 대통령자문 한중전문가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동아시아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조선일보 <아침논단> 고정칼럼리스트, SBS 외교통일안보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북한경제와 남북경협이며, 최근 연구로는 “북중관계의 변화와 남북경협,” “An Evaluation of the Situation Facing the North Korean Economy Today and Prospects,” “계획경제의 한계,”《북한 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공편) 등이 있다.         I. 미중 복합외교 시대와 새로운 대북정책의 모색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의 대북정책은 세계 및 지역 질서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되어 왔다. 냉전시대 한국의 대북정책이 비록 데탕트와 신 냉전의 교차에 따른 미시적 변화를 보였지만 적대적 공생의 범주를 넘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세계 및 지역 수준의 냉전질서에 기인한 것이었다. <7.7 선언>(1988)으로 대표되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세계적 탈냉전 흐름에 반응한 정책이었으며 한국의 대북정책이 처음으로 봉쇄(containment)로부터 관여(engagement)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도 북핵 문제라는 돌출변수로 인해 온건과 강경을 오갔으나 탈냉전이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그 명칭이 무엇이든지 간에 교류와 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관여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원칙적으로 상생과 공영이라는 모토 하에 기존의 관여정책을 유지하면서도 기왕의 햇볕뿐만 아니라 제재(sanctions)라는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체제의 변화(regime change)를 추구하는 다소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주로 국내 정체성의 정치와 더불어 북한의 권력승계라는 변수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에 주력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관여정책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북한에서 후계체제 구축작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이 실시되고 2010년 들어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발생하면서 관여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정책목표는 대개 수렴하면서도 정책수단의 차이가 부각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문제의식이 안으로는 정체성의 정치에 밖으로는 탈냉전이라는 한계에 머물러 있으며 보수와 진보, 그리고 탈냉전을 넘어서는 세계 및 지역 수준의 격변을 포착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21세기 들어 세계질서는 단순히 탈냉전이라고 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제정치 행위자와 무대 등 모든 측면에서 근원적 변화를 겪고 있다. 탈냉전 초기인 1990년대에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일시 작동하는 듯 보였지만 21세기 들어 중국의 국력이 예상보다 급격히 신장되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불거지면서 미중 두 강대국을 축으로 세계 및 지역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미중관계가 이른바 G2체제, 또는 미중시대라는 말에 어울리게 안정적이고 협력적 관계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경쟁 속에서 불안정하고 갈등적 관계로 귀착될 것인지에 따라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글로벌 파워이자 지역국가라는 중국의 이중적 속성으로 인해 미중관계가 직접적으로 투영될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 무대도 기존의 안보•경제 중심에서 환경•에너지, 정보•지식 등 다양한 무대가 동시에 펼쳐지는 한편 다양한 이슈들이 클러스터화되어 안팎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위기와 미중 간 경제력 격차의 축소로 인해 경제가 핵심적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최대 안보현안인 북핵•북한 문제 역시 이러한 세계 및 지역 수준의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수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흐름은 북핵•북한 문제가 사실상 미중을 위시한 강대국 정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미중이 보여준 상이한 반응과 미묘한 갈등은 미중 양국이 북한문제를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예상보다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6자회담 재개 등 북한문제 관련 합의가 비교적 수월하게 창출된 것은 미중관계의 안정적 관리 차원에서였다. 김정일의 사망 이후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강력히 엄호하고 미국 역시 북한의 안정적 권력승계를 희망한 것도 북한체제의 급변으로 인한 동아시아의 급격한 현상변경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북핵•북한 문제는 한반도의 안보현안이지만 중국 자체의 안정성이나 동아시아의 영토•영해 분쟁 등 여타 안보현안이나 세계경제 위기나 환경•에너지 문제와도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자체의 불안정성이 증대할 경우 북한은 직접적 영향을 받을 것이며 중국이 자신의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주권과 영토문제에서 수세에 몰릴 경우 중국은 북한문제까지도 포함시켜 핵심이익을 확장적으로 정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한편, 북핵•북한 문제는 세계 및 지역 수준의 경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으며 에너지 이슈의 부각은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관여를 증대시킬 것이다.   우리는 향후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세계 및 지역 수준의 역동성이 북한문제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전반적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대외전략을 구사하는데 있어 북한문제와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질서 건축 과정에 직접 설계자로 참여하든, 중견국 외교전략을 구사하든 북한문제와 대북정책이 우리에게 상당히 효과적인 외교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2010년대 대북정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선택과 북한체제의 장래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전망이 요구된다. 당연히 향후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김정은 체제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II.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리더십 유형   김정은은 2009년 1월 김정일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집중적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며 2010년 9월 28일 44년 만에 개최된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위를 차지함으로써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작년 12월 30일 김정일이 남겼다는 소위 <10.8 유훈>에 따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에 추대되었다. 또한, 김정은이 후계자의 지위에 올랐던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 이어 또다시 금년 4월 11일 개최되는 당대표자회에서 당총비서직 자리에도 등극할 전망이며, 4월 13일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회의에서 국방위원장직을 승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이 치열한 권력투쟁과 장기간에 걸친 후계자 수업과 업적 쌓기를 통해 공식으로 후계자 지위를 획득한 ‘쟁취형 후계자’라면 김정은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순식간에 후계자 반열에 오른 ‘간택형 후계자’이다. 김정은의 리더십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그의 권력기반이 확고히 공고화되었다고 속단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착근할 것으로 보는 근거는 수령제•후계제 라고 하는 북한의 독특한 정치제도와 대안적 정치세력이 형성되기 어려운 북한의 정치구조에 있다. 북한은 구소련과 중국의 권력 이양기에 나타난 혼란을 반면교사 삼아 “후계자가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받들어” 모든 문제들을 처리해 나가는 후계제도를 창출하였다 . 절대권력으로서 수령의 정치적 후원을 받는 후계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존재하기 어렵다. 김정일 사후 권력구조로 집단지도체제나 후계자와 지배엘리트가 연합하는 혼합형체제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한 이들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집단지도체제는 본질적으로 북한의 수령제와 배치된다. 북한이 수령제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핵심적 논리가 집단지도체제의 폐해였다(김일성 1996, 109-110). 설사 후계자의 정치적 리더십과 권력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더라도 권력엘리트들은 독자적 연합을 통해 후계자를 견제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기 보다는 후계자와의 지배연합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합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혼합형체제를 주장하는 주된 논거이다. 현재 북한은 장성택, 김경희, 리영호 등 당과 군의 실세들이 김정은을 후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견 혼합형체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혼합형체제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과도적일 뿐이며 결국은 일인지배체제나 집단지도체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정영태•이교덕•정규섭•이기동 2010, 51-52). 그런데, 집단지도체제가 경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북한에 착근하기 어렵다고 할 때 결국엔 김정은 중심의 일인지배체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지 두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평가해 보면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비교적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 지위를 차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최고지도자로서의 역할 수행을 강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새해를 맞아 1월 1일 당•정•군 고위간부들과 공연을 관람하고 설날에는 국가연회를 베푸는 등 북한의 권력엘리트들을 장악해 나가는 모습이다. 2월 16일 김정일 70회 기념행사의 주인공도 사실상 김정은이었다. 김정일 생일에 처음 거행된 열병식에서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박재경 대장 등 군수뇌부는 김정은 부위원장 앞에 도열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한, 김정은은 금년 1월부터 2월까지 10번 이상 군부대를 시찰하고 경제현장을 방문하는 등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수행하던 최고지도자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기반에 이상징후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김정은 체제에 대한 도전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북한의 고질적 경제난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 등에 대응하여 김정은이 효과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단기적으로 수년 내에 정치적 불안정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 이후에도 중장기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선군의 ‘계승’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와 북한의 장기 생존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이라는 구조적 압력이 공존하는 모순적 딜레마 속에서 김정은 체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선군의 계승과 정책전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에 놓일 가능성이 높으나 이는 체제 불안정성만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변화의 압력을 무시하고 제2의 유훈 통치를 통해 선군에 얽매여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는 길이다. 김정은은 앞으로도 선군 정치를 내세워 경제개혁과 비핵화를 외면하고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의 공고화에 치중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선택은 당장의 권력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켜 정치적 불안정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주적 변환을 통해 선경제와 비핵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당분간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유훈 통치’를 전면에 내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서 김정일 시대와의 차별화를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권력 이양기의 특성상 당장 파격적 변화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이러한 미래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한편, 김정은 체제는 이미 부분적으로 아버지 시대와는 미묘하게 다른 리더십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외견상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군부대 시찰 과정에서 군인들과 팔짱을 끼거나 손을 꽉 잡는 등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1월 14일 자강도 만포시 주민들에게 이례적으로 긴 문장의 친필편지를 보낸 것(<조선중앙통신> 2012/1/16)도 북한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공개된 현지지도 수행자 명단이 4~5명에 불과해 수행자가 10~20명에 달했던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 비해 간소화되었다는 것도 눈에 띈다. 군인 및 주민과의 접촉을 강화하기 위해 실무형 수행단을 꾸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서 “군중로선”을 강조했던 김일성 주석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직 최종적으로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미 김일성을 빼어 닮은 외모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의 리더십 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3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에 걸쳐 김일성의 유훈 통치에 의존했고 1998년 헌법개정으로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직에 재추대되면서부터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를 내거는 등 유훈 통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는 2월 16일 김정일 탄생 70주년을 정점으로 점차 애도정국을 마무리하고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백주년을 맞는 경축정국으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여기서도 김정일의 유훈 못지않게 김일성 혈통을 부각시키려는 김정은 체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III. 김정은 시대의 북핵 외교 : 김정은식 등거리 외교?   김정은 체제는 핵과 미사일 문제 등 대외정책에서 이중적 신호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2•29 합의>를 통해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모든 핵활동의 중단을 약속하는 유화적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3월 16일 소위 ‘광명성 3호’라는 장거리 로켓발사를 선언하여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경 대응을 자초하고 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가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문제로서 북미간 <2•29 합의>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지만 미국은 인공위성 발사체는 장거리미사일과 기술적으로 동일한 만큼 <2•29 합의>의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이 실제로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하면 대북 영양제공을 중단하고 추가적 대응조치를 모색할 계획이며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제3차 핵실험 등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광명성 3호’ 발사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경축행사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는 만큼 이를 취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국제사회에 위성발사 참관을 요청하고 핵활동의 중단을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사찰단의 입국을 제안하는 등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계속)

김성배·조동호 2012-04-08조회 : 14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