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국가이익뿐 아니라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외교안보 분야의 어젠다 설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4년 6월에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국가안보패널(National Security Panel: NSP)을 구성하였다. 이후 국가안보패널은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 그물망국가 건설》(2006),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2008), 《21세기 신동맹: 냉전에서 복합으로》(2010), 《위기와 복합: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2011),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n복합과 공진》(2013), 《1972 한반도와 주변 4강 2014》(2015),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등 일곱 권의 책을 출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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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3] 미중데탕트와 일본: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교섭의 국제정치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겸 원장.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도쿄대학교, 와세다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방문교수를 거쳤고, 현재 동아시아연구원 일본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 연구분야는 일본 및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다. 최근 연구업적으로는 “지역공간의 개념사 : 한국의 ‘동북아시아’”, “한미FTA와 통상의 복합전략”, “동아시아에서 지역다자경제제도의 건축경쟁”, “Japanese Market Opening Between American Pressure and Korean Challenge” 등이 있다.         I. 들어가며   중화세계의 변방인 일본이 메이지유신과 근대화로 급부상하면서 시작된 중국과 일본 사이의 백년 경쟁은 1972년 국교정상화로 역사적 전기를 맞이하였다. 주은래(周恩來)의 표현에 따르면 진나라 이래 2000년의 우호관계란 긴 “정상상태”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신시대를 모색해온 양국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략적, 군사적 경쟁을 벌이는 “비정상 상태”로 빠져들고 있고 따라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협하는 주요인으로 자리잡았다.   1972년 이전 일본의 대중관계는 1945년 패전 6년후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동아시아에 냉전체제가 형성되면서 미국의 대중정책, 미일관계에 의해 구속받았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포위 전초기지화 압력에 직면하여 대만과 중국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해야 했다. 1952년 대만(중화민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지만 대만과 국교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대륙중국과는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하여 경제적 관계를 축적해가는 실용주의 정책을 함께 펼쳤다. 그러나 1957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수상의 타이베이 방문으로 중국은 정경분리 원칙을 파기하였다. 60년대 장기집권한 사토 에이사쿠(佐藤英作) 정권은 기본적으로 친대만파인데다가 당시 최대 외교과제인 한일 국교정상화교섭과 오키나와 반환에 몰두하여 문화대혁명으로 혼란스런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서지 못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바꾼 역사적 사건은 1971-1972년 미중 데탕트이다. 전후 중일관계의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미중대립이었기에 미중관계의 신국면이 열리면서 일본과 중국은 신시대를 열 기회의 창과 마주하게 된다. 중소관계의 악화에 따라 중국의 주적이 미국에서 소련으로 교체되면서 새로운 안보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중국 정부와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상대적 쇠퇴의 추세를 돌려놓으려는 미국의 닉슨(Richard Nixon) 정권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데탕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1971년 7월 15일 키신저(Henry Kissinger) 방중 발표는 미국의 급속한 대중접근을 전혀 예상치 못한 당시 일본사회에 ‘닉슨쇼크’라 불릴 정도의 충격을 주었고 친대만, 친미성향 사토 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또한 10월 26일 중국대표권 문제 표결로 대만이 유엔(United Nations: UN)에서 축출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동시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선정된 사건은 국내정치적으로 일본에 큰 반향을 가져왔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변화 속에서 1972년 7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정권이 탄생하고 중일관계 개선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러나 정작 교섭을 주도한 측은 주은래(周恩來) 수상을 필두로 한 중국이다. 1971년 미중 간(키신저과 주은래) 진행된 상당히 솔직한 대화 속에는 주은래의 적나라한 일본관과 강한 대일경계의식이 표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과 수교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전략적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일본은 무엇을 원하였는가? 중일수교가 갖는 역사적, 전략적 의미는 무엇인가? 기존의 여러 중일국교정상화 연구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해 왔다(Lee 1976; 金熙德 2002; 添谷芳秀 2003; 毛里和子 2006; 高元明生•服部龍二 2012; 손기섭 2012; 최은봉•오승희 2012). 이 글은 중일수교 교섭 과정에서 미중 양국의 대일전략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FRUS)와 일본측 수교교섭문헌으로 《記錄 考證 - 日中國交正常化ㆍ日中平和友好條約締結交涉》(石井明 外 2003) 두 일차자료 분석을 중심으로 하여 중일접근이 썩 달가울 수 없는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 다루기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일본과 중국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분석한 다음, 1972년 일-중-미 관계의 현재적 함의를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II. 중국의 대일전략   1971-1972년 미중 대화에서 일본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주은래이다. 그가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미국이 아시아로부터 철군하는 경우 일본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여기서 양국 지도자들이 토로한 대일전략은 대단히 흥미롭다. 주은래는 일본위협론을 다음과 같이 제기한다.   일본인에게는 팽창주의적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제적 확장은 필연적으로 군사적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어서 […]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대를 모두 철수시키면 아시아를 통제할 전위로서 일본의 능력을 강화하는 게 미국의 목적인 것이 아닌가 (毛里 2004, 1971/07/09)   주은래는 “일본군국주의자의 야망”을 걱정했다. 일본이 대만으로부터 자국의 생명선인 말라카 해협까지 군사적으로 진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한국으로부터 미군철수 이후 일본군이 한반도로 진출하지 않을까 등 수차례에 걸쳐 우려를 표명한 후, 일본위협론을 간단히 펼친다. 일본의 천황제는 “군국주의를 지탱하는 시스템의 기초”로서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일정책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이런 인식하에 미일안보체제 강화를 강하게 비난하였다.   주은래의 일본 군국주의론은 단순한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끊임없이 일본위협론을 제기하며 1970년대 초반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음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 군국주의 세력과 절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류 정치세력 즉,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주도한 보수본류는 전전의 군국주의 전통과 거리를 두는 한편 미일동맹으로 안보를 미국에게 위임하고 대신 경제성장을 신보수의 핵심 이념으로 삼고 매진하는 창조적 전략을 추구해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Pyle 2008). 다만 1970년대 들어 사토 정권이 요시다 노선으로부터 탈선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 예컨대 1969년 닉슨-사토 코뮤니케와 당시 일본에서 진행 중이던 제4차 방위력정비계획 등을 전전회귀의 징표로 볼 수도 있었는데, 이조차 후일 역사를 비추어 볼 때 그릇된 판단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일동맹과 전수방위의 틀 속에서 제한된 군비확장의 경우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은래가 일본을 군국주의 부활로 경계하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대만문제에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이래 일본은 대만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사토 정권은 대만에 총액 1억5천만달러 규모의 엔 차관을 공여하여 대만의 수출지향형 산업화를 견인하였고 양국간 무역규모도 급속히 확대되었는데, 중국정부는 이를 “경제침략”이라 비난하였다. 안보 측면에서도 오키나와 반환을 확정한 닉슨-사토 코뮤니케 제4항에서 미일 양국은 대만지역에 대한 평화와 안전의 유지가 일본의 안전에 극히 중요한 요소라는 이른바 ‘대만조항’을 천명해 아시아지역 내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일본이 분담하려 한다는 인식을 중국에 줌으로써 반발을 샀다. 대만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축소(retrenchment)에 따른 힘의 공백을 일본이 메울 가능성을 중국은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대만 등 이 지역에서 미국이 철퇴하기 전 일본의 무장세력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과 대만은 장개석(蔣介石)이 맺은 조약, 이른바 평화조약을 유지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이를 강조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毛里 2004, 1971/07/07).   요컨대, 중국이 미중 데탕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일국교정상화는 직접적으로 걸리는 과제가 아니었다. 반면, 미군철수에 의한 힘의 공백을 일본이 메우게 될 때 초래될 대만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었고, 따라서 미국의 대만방위를 일본이 대신 담당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여 일-대만 관계를 단절시키는 과제가 중요하게 떠오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일본의 잠재적 위협성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야 했다.   주은래의 집요한 일본위협론에 키신저는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친 이론에 따르면 우리[미국]가 일본으로부터 철수하면 일본의 재무장을 허락하고 태평양 저편에서 일본과 중국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의 정책은 아니다. 사실 일본이 대대적으로 재군비에 나서면 1930년대 정책을 되풀이할 지도 모른다(毛里 2004, 1971/07/09).   미국의 정책은 “일본이 공격적 정책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는 이른바 ‘병마개(bottle cap)론’을 펼쳤다. 1972년 2월 22일 닉슨은 정상회담에서 “보증은 할 수 없지만 우리[미국]는 일본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정책으로 일본이 한국 및 대만에 대해 모험을 걸지 못하도록 저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반복했다(毛里和子 2006, 64 재인용, 1972/02/22).   반면 주은래는 평화를 원하는 ‘일본인민’에 기대를 걸면서 동맹에 의한 병마개론이 아닌 일본의 중립화를 역설하였다. 이에 대해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주은래와 키신저]는 일본의 팽창주의가 위험하다는 데 합의하였으나 이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 중국은 이 문제에 대해 강한 선입관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일본의 재군국주의화를 우려하면서 미일간 군사협력을 견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 나[키신저]는 그들이 원하듯 일본이 중립화하면 조악한 민족주의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毛里和子 2006, 65 재인용) 사실 키신저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듯이 일본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중국이 전통적으로 세계적 시야를 갖고 있으나 일본의 시야는 부족에 머물러 있고 장기적 비전이 없기 때문에 강한 일본과 강한 중국 중 후자가 팽창주의적이지 않다”며 자신은 “일본에 [순진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확언하였다(毛里和子 2004). 그에게는 일본보다 중국이 신뢰할 만한 국제정치 게임의 파트너였던 것이다.   닉슨의 일본관도 다르지 않았다. 1972년 2월 베이징 방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로부터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만약 미국이 일본에 안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일본은 첫째 생산성 높은 경제에 기반해 전쟁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자국 군사력 증강을 경주할 것이고, 둘째 미국의 대체제로 소련에 접근하는 선택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毛里和子 2006, 64 재인용). 미국은 자국과 안보관계를 맺고 경제지원을 받아 온 일본 및 기타 국가들이 중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정책을 취하지 못하도록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은래는 수차례에 걸쳐 일본을 불신하는 키신저와 닉슨의 태도를 확인하였고, 미국이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므로 일본의 야심을 통제하려 나설 것이라 믿었다. 이 가운데 주은래는 대일전략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일본 인민들에게 거대한 변화가 있기 때문에 현재 일본이 1930년대의 일본과는 다르다며, 미중이 일본정부의 팽창주의 정책을 좌초시키고 평화정책을 돕는다면 사태는 개선될 것이라 말하였고, 또한 미일동맹이 병마개 역할을 하는 한 일본이 대만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는 크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이제 중국은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통해 소련을 견제하는 동시에 대만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중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주은래의 기본인식은 미중 데탕트와 같았다. 중소대결 구도 속에서 미소 상호견제를 이용하여 미중관계를 풀어 나아갔듯이 중일관계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였다. 따라서 국교정상화 실현의 최대 과제는 일본의 의향에 있었다. 과연 일본이 미국이 하지 못한 대만과 단교를 선언하면서 중일 수교로 나올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계속)

손열 2014-02-16조회 : 16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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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4]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21세기 외교전략: 보통국가의 다차원화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미국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이다.         I. 21세기 일본 외교의 도전: 세계적 세력재편과 국내정치의 변동 사이에서   2010년대 일본 외교는 중대한 기로에 있다. 2012년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헌법 개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추구하는 한편, 외교안보정책의 포괄적 기본 지침인 국가안보전략의 채택과 그 제도적 기반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발족시키는 등 매우 의욕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영국, 러시아, 호주는 물론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에서 북핵 위협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독도와 센카쿠(尖閣)/댜오위다오(釣魚台)에 대한 한국 및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2013년 4월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정을 시사하는 아베 총리의 발언,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서 나타나듯이 최근 일본 외교는 주변국과의 갈등은 물론 국내외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보수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베 내각의 이러한 행보는 중국의 부상으로 상징되는 세계 및 지역 질서의 재편과 국내정치적 변화의 국면에서 일본 외교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외교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일본 국내의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된 적은 1980년대 말을 포함하여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전후 일본 외교정책의 기조로 오랜 기간 견지되었던 요시다(吉田茂) 독트린은 고도 경제성장과 국제적 쟁점에 대한 수동적 태세를 요체로 하였다. 요시다 독트린이 장기간 일본 외교정책의 기조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고도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이를 체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대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력을 국제무대에서 행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걸프전(Gulf War)을 계기로 경제외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시기 일본 외교가 ‘무임승차론,’ ‘수표책 외교’(checkbook diplomacy), ‘카라오케(カラオケ) 외교’ 등으로 비하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일본은 미국이 결정한 정책 노선의 테두리 안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의 경제적 기여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국내에서 치열하게 제기되었다(Inoguchi and Jain 2000). 세력 재편의 변화에 대한 불안, 국제정치의 근본적 성격 변화, 급변하는 지역 안보 환경,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열망 등이 고도 경제성장과 외교정책의 수동성을 축으로 하는 요시다 독트린의 전면적 변화를 촉진하였던 것이다.   경제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일본은 지역과 국제 차원에서 자신의 입지를 적극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Green 2001). 오자와 이치로(小沢一朗)가 “보통국가론”을 주창하면서 탈냉전 시대의 일본 외교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오자와는 “군사를 포함하여 적극적인 국제 공헌을 추구함으로써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小沢一郞 1993).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1999년 주변사태법 제정, 2001년 테러대책특별조치법, 평화유지활동(peacekeeping operations: PKO)협력법 개정, 그리고 2003년 이라크지원특별조치법 제정 등을 통해 국제적 공헌을 증대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발 빠르게 마련해 나갔다. 그러나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 등에서 나타나듯이 보통국가화의 귀착점이 미일동맹의 강화였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2013년 재집권한 아베 내각은 일본 외교정책 기조의 변화를 다시 한번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이 직면한 도전은 국내 정치변동과 국제정치적 차원의 세력 재편이 동시에 전개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국내적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이념 지형에 기반한 “새로운 대전략”(new grand strategy)을 수립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며(Samuels 2007), 대외적으로도 탈냉전 시대에 중국의 부상과 북핵 위협에 대한 외교적 적응이 절실하다(Pyle 2007). 또한 탈냉전 초기의 국제 및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이 구조적이고 점진적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면, 21세기 일본이 직면한 도전은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2000년대 초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언젠가 중일관계의 변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우려였다면,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2010년대 일본이 대처해야 할 대중국 문제는 매우 구체적일 뿐 아니라, 즉각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문제 역시 6자 회담이 가동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였던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다. 이처럼 2010년대 일본은 구조적 변동에 대한 깊은 전략적 고려를 하는 가운데, 현안 문제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엄중한 현실에 처해 있다.   일본 외교는 국내정치 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09년 8월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480석 가운데 208석의 절대안정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면서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킬 때만 하더라도 새로운 정치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을 정책화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면서 2012년 12월 다시 자민당에게 정권을 내주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일본 정치는 빈번한 총리 교체로 ‘정치 리더십의 실종’(political leadership deficit)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5년 6개월 간 재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퇴임 이후, 2006년 9월 1차 아베 내각에서부터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이 재출범하기까지 6년여의 기간 동안 모두 7명의 총리가 교체되었으며, 평균 재임 기간은 1년에 미치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89년 이후 중의원과 참의원의 다수당이 엇갈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른바 “뒤틀린 국회”(ねじれ国会)에서 중의원과 참의원의 의결이 상이하여 법안 통과가 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였는데 이로 인해 국회가 입법 기능 부전에 빠지는 현상이 초래되었던 것이다(Ohya 2008).   이러한 국내정치적 상황에서 민주당의 외교적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외교 면에서 민주당의 집권기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난 대미자주노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표방한 데서 나타나듯이, 일본 외교는 자민당의 전통적 외교 노선과 차별화된 새로운 외교적 가능성을 시험하는 데 주력하였다(김젬마 2012). 그러나 하토야마 정부는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는 곧 민주당 정부의 외교적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미국과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사실상 과거 자민당의 외교정책으로 회귀하였다.   아베 내각의 국내정치적 기반은 고이즈미 내각 이후 가장 견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베 내각은 취임 초기 지지율이 70퍼센트에 달하였을 뿐 아니라, 자민당이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294석을 획득하여 여당으로 복귀하는 데 이어, 2013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15석을 획득하고 20석을 획득한 공명당(公明党)과 연합함으로써 양원 다수당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등 그 국내정치적 기반이 매우 탄탄했다.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가동되었다.   그렇다면 아베 내각 외교정책의 성격과 방식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외견상 아베 내각의 외교는 일본의 군사안보 능력 증대와 미일동맹의 강화라는 보통국가론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외교적 수단과 방식은 보통국가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던 과거에 비해 훨씬 다차원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기존 보통국가론은 미일동맹을 재규정함으로써 일본 외교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에 의존하였다. 반면, 아베 내각의 외교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여전히 기본 축으로 하되, 미국의 동맹 파트너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향후 일본은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지역과 세계 안보 체제를 연결하는 적극적 공헌자가 될 것”이라고 피력한 것도 미국 추수(追隨)에서 벗어나 일본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每日新聞 2013/12/11). 또한, 일본은 국내 차원에서는 자체 외교 및 군사안보 역량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지역 차원에서는 아세안 등 주변 국가들과의 전략적 호혜관계를 구축하고, 지구적 차원에서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외교적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2013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아태 지역 내 일본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군사와 안보 등 다양한 차원에서 리더십 행사를 요청받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Wall Street Journal 2013/10/25).   결국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은 목표와 지향 면에서 보통국가론의 확대 발전, 수단과 방법 면에서 다차원적 접근으로 요약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의 초점이 궁극적으로 중국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미일동맹을 재편하고, 국내적으로는 외교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제도적 정비를 시행하는 동시에,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추구하는 다차원적인 외교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II. 세계질서의 변화와 국내정치 변동   중국의 부상은 세계질서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구조적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촉발된 세계 및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에 대응하는 일본의 대외전략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대하는 일본의 입장은 매우 복합적이다. 중국은 경제 규모 면에서 2010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약 5조 9천억 달러를 기록하여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자 동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이 되며 일본을 추월하였다. 외환보유고에 있어서도 중국은 2006년 이미 일본을 추월하였고, 2011년 기준으로 중국이 약 3조 2천억 달러, 일본이 약 1조 1천억 달러를 각각 기록하였다. 중국은 이처럼 거대한 경제규모와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세계질서에 일정한 변화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투자 규모가 2010년 기준 500억 달러를 상회하였다는 점이 이러한 변화를 시사한다. 이처럼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한 2000년대 이후에도 중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관계는 한층 긴밀해져왔다. 2005년 양국 규모가 1천 840억 달러를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1년 약 3천 490억 달러에 달하였다(People’s Daily Online 2012/02/21).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일본과 중국의 교역 규모가 2천 290억 달러에서 2011년 3천 430억 달러로 약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하였다. 일본 국내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경제 상황 속에서 중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관계는 지속적으로 확대•심화 되었던 것이다. 일본에게 있어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 및 세계 차원의 세력 재편을 촉진하는 변화의 요인인 동시에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기회 요인이라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계속)

이승주 2014-02-16조회 : 1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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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Executive Summary

2011년 3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진행해 온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프로젝트의 핵심 정책제안을 담은 Executive Summary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10년대 한국외교가 직면한 과제들을 중장기적으로 전망•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기 위하여 ‘거버넌스,’ ‘안보.’ ‘경제.’ ‘환경’의 4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이슈들 간의 네트워크적인 연결을 고려한 복합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거버넌스클러스터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 외교 과제 전재성(서울대학교), 주재우(경희대학교)   안보클러스터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이동선(고려대학교)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이동률(동덕여자대학교), 서봉교(동덕여자대학교)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구민교(서울대학교)   경제클러스터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김치욱(울산대학교)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이용욱(고려대학교)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클러스터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 정치와 한국 외교 신범식(서울대학교)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신성호(서울대학교)   신 글로벌 에너지 아키텍쳐와 한국의 에너지자원협력 외교 방향 김연규(한양대학교)           2020 한국외교 전략 목표와 10대 강령   3대 전략 목표   1. 동아시아신질서를 위해 “공생 복합네트워크”를 건축한다. 2. 북한문제를 “공진전략”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마련한다. 3. “중견국 외교”로 지구·지역 거버넌스 설계에 적극 참여한다.   10대 강령   1. 동아시아 세력균형 변화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체제적 유연성’을 확보한다. 우선, 한미동 맹을 21세기 세계질서 변화에 맞게 전략적 복합동맹으로 변환하여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한반도, 지역, 지구 차원에서 한국의 위상을 확보한다.   2. 동시에, 중국과 다양한 영역의 협력망을 확대한다. 미중 “신형대국관계”의 형성 과정에서 한미 복합동맹 심화와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내실화를 동시에 추구한다.   3. 일본과 근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3단계 접근법을 시도한다. 단기적으로 현안의 비정치 화, 중기적으로 복합력에 기반한 양자관계 주도, 장기적으로 협력제도화와 정체성 공유를 추진한다. 러시아의 동아시아 지역 내 역할 및 한반도 평화번영체제구축 과정상 역할에 주목하여 한러전략협력관계를 심화한다.   4. 지역 중견국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한국의 영향력을 제고한다. 아세안국가, 호주 및 인 도 등과 협력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대안적 건축을 제시한다.   5. 지역 해양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영유권 문제에 대한 동결 선언을 기초로, 자원공동 개발·해양환경 보호·항행안전 등 비전통안보 영역의 다자협력을 증진하여 해양문제 전 반에 관한 다자 컨센서스를 도출한다.   6.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공진전략”을 추진한다. 1단계로 북한 스스로 핵선군 대 신 비핵안보체제로 진화하도록 돕는다. 북한의 비핵 선경제 모델로의 전환에 남북, 미중, 유엔을 엮는 한반도 복합평화체제 구축을 동조화한다.   7. 공진전략 2단계로 인도적 지원 및 체제전환 지원을 포괄하는 체계적 대북지원을 추진한다. 북한의 정상국가화 및 새로운 남북관계를 도모한다.   8. 한국 및 세계경제의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성장을 위해 무역, 금융, 개발협력 부문을 중심 으로 지식기반 네트워크 외교를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9. 환경/에너지/인구, 문화, 정보/지식 등 신흥 이슈영역에서 지구촌 공생을 위한 거버넌스 설 계에 적극 참여하여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높인다.   10. 외교의 주체가 국내외적으로 복합화되므로, 다양한 행위자들과 쌍방향 소통을 구축하는 맞춤형 공공외교를 지향한다. 대외적으로는 지식, 경제발전 경험, 한류 등 소프트파워 자 산을 활용하여 보편적 이익과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한다. 대내적으로는 중견국 외교에 걸 맞은 외교문화를 정립하고, 남남갈등을 넘어 국내 통합을 이룩한다.   향후 한국은 한반도 차원은 물론, 지역 및 지구 차원에서 한국 스스로의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외 교전략을 정립해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전략적 비전은 동아시아 공생복합네트워크 건설을 위해 미중 간 전략적 불신을 낮추고, 향후 10년 간 동아시아 세력전이를 평화적으로 흡수 발전시킬 수 있는 체제적 유연성을 확보하며, 새로운 지역제도 기반으로 평화적 세력전이 과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과 정에서 한미동맹을 전략적 복합동맹으로 변환시켜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한반도, 지역, 지구 차원에서 한국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서 구체적 이슈에서 협력을 내실화하고 정부 간 관계를 넘어 다차원의 연결망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중이 “핵심이익” 들의 갈등으로 상호 간 전략적 불신이 증폭되고 안보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는 동북아 세력균형의 구조적 변화, 북한 위협의 상존,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한 한일 간접협력관계, 그리고 지역 및 지구 차원의 인간안보 부문 협력 등을 고려할 때 중요한 사안이다. 단기 적으로 과거사, 영토 문제 등이 정치화되어 양국 간 협력을 저해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한편, 중기적으 로 군사, 경제 등의 하드 파워, 지식, 문화, 제도 등의 소프트 파워, 그리고 네트워크 파워 등을 강화하 여 주도적으로 한일 협력 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한다.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 제도화와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유하도록 노력하여 닫힌 민족주의적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러시아는 동아시아 협력네트워크 형성에 협력촉진자 또는 안정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자원, 북러 관계 등 정책수단을 기초로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호주, 인도, 아세안 국가들 역시 지역과 한반도에 중요한 협력 대상이며 중견국들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중요한 파트너이다. 미중 간 전 략 경쟁에서 중견국들이 원하는 지역 전체의 이익을 위해 협력구도를 강화하는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 을 해나가는 한편, 지역 다자주의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동아시아 다자주의 협력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적 균형의 모습을 띠어왔는데 이를 극복하고 공동의 목적을 위한 제도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해양 문제는 경계획정, 자원, 영유권, 해로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의 일방적 또는 양자적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영유권 문 제에 대한 동결 선언에 기초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역내 해양환경 보호, 항행의 안전 도모 등 비전통적 안보의 확보를 위한 역내 다자협력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때, 영토 문제, 어업 문제, 해저자원 개발 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를 가능한 한 분리하여 접근하되, 이러한 각론에서의 협력을 바탕으로 궁극 적으로는 해양문제 전반에 관한 상생의 다자간 컨센서스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계속)

구민교, 김성배, 김연규, 김치욱, 서봉교, 손열, 신범식, 신성호, 이동률, 이동선, 이승주, 이용욱, 전재성, 조동호, 주재우, 하영선 2012-12-02조회 : 1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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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2]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 외교 과제

전재성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동아시아연구원 아시아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술로는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 역사에서 이론으로》, “구성주의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탈근대론과 현실주의의 비판 고찰,” “강대국의 부상과 대응 메커니즘 : 이론적 분석과 유럽의 사례,” “유럽의 국제정치적 근대 출현에 관한 이론적 연구” 등이 있다.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부 중국정치외교담당 교수. 주재우 교수는 미국 웨슬리언대학(Wesleyan University)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국가안보정책연구소, 국립싱가폴대학교, 대만국립정치대학교,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 개스톤 시거 동양학 연구소(Sigur Center for Asian Studies) 등 국내외의 많은 연구소의 방문학자와 연구원을 역임해왔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Asia Times Online(www.atimes.com) 한반도문제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최근 저서로는 단행본 《중국의 대북미 외교안보정책과 통상전략》과 논문 “China’s Relations with Latin America: Issues, Policy, Strategies, and Implications,” “Ideas Matter: China’s Peaceful Rise,” “Mirroring North Korea’s Growing Economic Community Building,” “북한붕괴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옵션,” “중•러 에너지 안보협력과 한국 : 수송문제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짧게는 2010년대, 길게는 21세기 전반기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 간 세력균형 변화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다자주의 협력기제가 결여된 채 권력에 의해 질서가 만들어지는 세력균형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국력배분구조는 여타 지역, 특히 유럽과 같이 다자주의 협력이 안착된 지역에 비해 매우 중요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명백해진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 세력균형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인이다. 개혁개방 이후 연 9퍼센트 이상의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은 동아시아 최대 경제규모 국가가 된 이래 세계질서 형성 과정에서 미국과 견줄 소위 G2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축적된 경제력이 군사 및 문화부분으로 전이되어 중국의 영향력은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로 점차 확대되어 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중국은 소위 핵심이익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자원을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의 성장과는 별개로 미국 패권의 쇠퇴 역시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면서 탈냉전기까지 미국은 동아시아에 동맹네트워크와 밀접한 경제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아시아 질서에 중요한 행위자로 자리잡아왔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단극체제가 안착되는 듯 했으나 9.11테러사태와 이후 미 패권에 대한 다양한 비판, 그리고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패권기초는 심각하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2011년 향후 10년간 국방예산 4,870억 달러를 감축하기로 결정한 이후 국방전략과 재정계획을 전체적으로 재조정하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우세전략 혹은 패권전략은 다자주의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전략으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축소(retrenchment)전략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패권의 쇠퇴, 혹은 패권의 교체는 상대적 게임이다. 미국 국력의 절대적 약화와 중국 국력의 절대적 증가가 곧 패권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중 간의 국력 격차가 줄어드는 것 자체가 동아시아 국가들과 한국의 외교 과제에 많은 도전 요인을 안겨주지만 궁극적으로 미중 간의 패권 교체가 일어난다면 이는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건이 될 것이다. 미중 간 세력변화가 어떠한 종류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분석적으로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   미중 이외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두 행위자인 러시아와 일본 역시 미중 양국보다는 크지 않지만 국력변화를 겪고 있다. 러시아는 원유에 기반하여 경제를 회복하는 추세를 지속하여왔고,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정치리더십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와의 관계를 다시 강화하여 중국과의 경제관계,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에 대한 적극적 개입 등을 강조하고 있고 2012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러시아의 중요성을 환기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지속된 경제침체, 정치리더십 불안, 고령화의 장기적 위협,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전력난 등 많은 어려움에 처해 기존의 경제강국의 모습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급기야 중국에게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규모 세계 2위의 자리를 내주고 국력회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 변화가 동아시아 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것이 한국의 외교전략 과제를 형성하는데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세력균형 변화는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외교이슈에 공통된 중요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과연 탈냉전기 미국 단극체제에서 미중 양극대결구조로 변화할 것인가, 중국패권구조로 결국 귀결될 것인가, 다극체제의 협력과 경쟁의 모습을 보일 것인가, 혹은 다자협력체제가 자리잡아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질서 구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며, 세력전이의 최종적 귀결점이 동아시아지역 모든 국가들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다가 2011년 1월 정상회담 이후 각자가 원하는 동아시아 질서건축, 혹은 아키텍처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려는 구조적 경쟁관계에 돌입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미중의 직접 경쟁과 아키텍처를 둘러싼 구조적 긴장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로서 평화롭고 발전적인 경쟁과 협력이 지속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처지에 있다.   II. 중국의 부상과 미중세력균형의 변화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국가들의 국력발전 속도의 상이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세력균형 논리가 압도하고 있는 체제 속에서 국력의 상대적 발전 속도는 체제속성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절대적 국력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중국의 국력증강으로, 경제적•군사적 국력이 GDP와 국방비 부문에서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상대적 국력으로 보더라도 중국은 GDP로 산정해 볼 때 2000년 세계 6위, 2005년 세계 5위로 세계 2위 자리를 유지한 일본에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방비 지출에서도 일본을 제치고 이미 2위 국가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격차인데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불문가지이고 대략 2020년대 중반 이후 GDP 추월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현재 미국의 국방비 감축 추세로 볼 때 국방비 역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상은 분석적으로 볼 때, 21세기 국제정치에서 중요해진 소프트 파워, 권력 자원의 추세, 국제정치에서 구조적 권력, 국가전략의 변화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므로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힘의 증강이 지역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한 일이다.   1. 경제적 발전   중국은 1978년 경제개혁개방 이후 9퍼센트 이상의 경제성장을 계속해 왔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여 향후에도 5퍼센트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2010년 현재 중국이 일본의 GDP를 추월해 세계 2위의 지위에 올라섰다는 것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중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다시 앞서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중국은 2007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선 이후 3년 만에 다시 일본을 제쳤다. 2010년 중국의 경제규모는 5조 5,880억 달러로 미국의 14조 8,400억 달러에 비해 38퍼센트 수준이지만,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예측에 의하면 2015년에는 미국의 18조 달러에 이어 10조 달러를 기록해 대략 2/3 수준에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GDP로는 미국이 4만 7,920달러인데 비해 중국은 4,170달러로 아직 힘겨운 중하위권 개도국 수준이다.   그러나 명목 GDP가 아닌 구매력평가지수로 보면, 중국의 GDP는 대략 9조 달러로 이미 미국의 60퍼센트 수준이다. 국제시장 환율로 보더라도 양국 간 시장규모 격차는 2000년 8.3배로부터 2010년 2.6배, 그리고 2014년에는 2.1배로 좁혀지는 추세인데, 더욱이 구매력평가지수로는 미국을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볼 수 있다.   장기 전망에 관해서는 1940년대부터 세계 각국의 경제 관련 정보를 분석해온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의 2006년 보고서를 보면, 2020년엔 구매력평가지수에 의한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9.6조 달러로 미국의 28.8조 달러를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2020년의 국내총생산을 시장환율로 계산하면 중국은 10.1조 달러로 미국의 28.8조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의 6.9조 달러와 독일의 5.0조 달러보다는 훨씬 앞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2006; 이재봉 2007).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한반도와 중국 간의 경제적 관계에서도 보다 명확히 나타난다. 1992년 이후 15년간 한중간 교역 규모는 22배 늘어났으며 2007년 교역액은 전년대비 22.8퍼센트가 늘어난 1,45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수출총액이 849.4억 달러에서 1조 2,181.5억 달러로 13배 늘어난 것에 비해 괄목할만하다. 2007년 한국의 대중 수출은 820억 달러, 수입은 630억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는 190억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무역 흑자는 2005년 233억 달러를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최의현 2009).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동아시아 경제아키텍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간 동아시아 및 아태지역의 경제통합 모델은 미국이 추진해왔던 APEC 중심의 아태지역을 아우르는 ‘환태평양 경제통합’(Asia Pacifism), 중국이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형태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3(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Plus Three: ASEAN+3)를 중심으로 추진해온 ‘동아시아국가들만의 경제통합’(East Asianism, or East Asia only grouping),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며 호주, 인도, 뉴질랜드 등 아시아지역 민주시장경제국가들을 포함시켜 ASEAN+6 중심으로 하면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n Summit: EAS)를 모태로 추진하는 ‘범아시아 경제통합’(Pan Asianism)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ASEAN+3 중심의 경제협력이며, 미국이 지지하는 APEC 중심의 경제통합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에서 1998년까지의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매우 급속하게 경제협력의 수준과 폭을 확대해 왔으며, 특히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급속하게 확대해 왔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의 제1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액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한국의 경우, 2009년 대중 무역액이 대일 및 대미 무역액 총액을 넘어설 정도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심화되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생산네트워크 중심기지 역할을 넘어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역내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1990년대 말부터 공세적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정책을 추진하여 아세안(ASEAN), 호주, 뉴질랜드, 홍콩/마카오, 대만, 칠레 등과 FTA를 이미 체결하였고, 한국 및 한중일 FTA 논의를 시작하는 등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아태지역 경제통합 전략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아시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아시아지역과의 경제적 연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이미 2009년 11월 일본 방문시 도쿄의 산토리 홀에서의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일본•호주 등 주요 동맹국 및 아세안과의 관계 강화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여 공식화 등의 방침을 밝힌바 있다. 즉, TPP를 기반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the Asia Pacific: FTAAP)를 형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향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향하는 방향을 보여줄 것이다...(계속)

전재성·주재우 2012-10-18조회 : 1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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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1]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정치와 한국 외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한국슬라브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러시아 외교정책과 유라시아 국제관계이다. 주요 논저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편저), 《러시아의 선택: 탈소비에트 체제전환과 국가•시장•사회의 변화》(공저), Russian Nonproliferation Policy and the Korean Peninsula (공저), “Russia's Perspectives on International Politics”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21세기 들어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을 지닌 국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각축은 환경 국제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싸움이 붙어있는 지점이다. 기후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주요한 국제적 환경외교 영역으로 부상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현재와 미래의 환경 재해들에 대한 경고가 과학자/전문가 그룹에 의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후변화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정부기구들의 대응 활동과 현재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미디어의 광범위한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기후변화 인식도 고양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자유무역질서와 에너지•자원•식량 문제 등과 맞물리면서 환경 외교의 영역에서 벗어나 국제정치 제반 영역에서 핵심적인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0년대에 전개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둘러싼 국가 간 협력과 경쟁의 상호작용은 적어도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 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급성장한 환경 영역에서의 지구적 거버넌스를 재편하고 또한 환경 영역의 의제가 다른 영역과 연계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국제무대에서 기후변화 외교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기후변화 외교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의 파고는 높고도 본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입지에 대한 근본적•미래적 고려와 그에 기초해 잘 고안된 외교 전략의 마련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현황과 쟁점 그리고 전망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향후 1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기후변화의 국제정치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게 될 것이며 어느 정도의 운신의 폭을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이익의 실현을 포함하여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다층적 요구를 조화롭게 실현해 갈 수 있는 어떤 전략적 지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좀 더 개방적이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본고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두고 전개되는 국제정치 구도를 파악하고, 기후변화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대응이 보여준 기회와 도전이 무엇인가를 밝힌 후, 한국 환경•기후변화 외교의 과제와 바람직한 대응 전략을 도출하고자 한다.   II.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현황과 쟁점   1. 교토체제와 포스트교토체제 사이   1988년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과학자들과 정책 입안가들이 처음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모인 이후 기후변화 국제정치는 1988-1991년을 지내며 지구적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기후변화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평가를 위해 기후변화국제패널(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이 설립되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또한 1992년 〈리우 정상회의〉(Rio Earth Summit) 에서 154개국이 조인하여 1994년에 발효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은 현재 192개국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위한 지구 정치의 중심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구 수준에서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향하는 이 협약은 기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 규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협약에 참여하는 23개의 선진국이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했던 점이 긍정적이었다(Elliott 1998; Paterson 1996). 〈리우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래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7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3차 당사국회의〉(3rd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에서는 선진국 및 동구권 국가의 감축의무를 명문화한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어 2005년 발효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최초의 구속력 있는 범지구적 대응체제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UNFCCC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지구적 과정의 핵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Bodansky and Di ringer 2010).   UNFCCC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특별한 절차규정이 없으며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모든 당사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 국가들은 거의 ‘준거부권’(near-veto) 내지 ‘사실상의 거부권’(de facto veto)을 가지며, 따라서 구속력 있는 규칙에 대한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따라서 UNFCCC의 의사결정 과정인 〈당사국회의〉에서의 연합형성과 그 막후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등의 조정 및 중재 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있다(Barnett 2007, 1367; Conca 2006). 국가, 지역기구, NGO, 여러 분야의 전문가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UNFCCC야말로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형성을 위한 노력의 중심이며, 교토체제 형성의 핵심적 기능을 감당해 왔다.   그런데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지 15년, 발효된 지 7년이 지났어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의무 설정 및 그 이행방안과 관련하여 UNFCCC 중심의 범지구적 협상은 아직도 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3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의 실행계획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의 범지구적 기후변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 프로세스인 〈발리행동계획〉이 채택된 바 있다. 〈발리행동계획〉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한 선진국과 후진국의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 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의 원칙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측정, 보고, 검증 가능한”(MRV: Measurable, Reportable, Verifiable) 감축/완화(Mitigation)행동, 개도국들의 적응(Adaptation), 선진국들의 개도국을 위한 관련 기술의 이전 및 재정 지원 등에 관한 원칙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2012년 이후의 포스트교토체제 구축에 대한 협상을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는 〈제15차 당사국총회〉까지 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협상과정은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UNFCCC 중심의 국제정치 과정에서 강대국 간 각축과 선진국-개도국 사이의 경쟁이 최근 한층 강화되면서 〈코펜하겐 당사국총회〉는 아무런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에 급급해 하며 막을 내렸다. 물론 지구적 협상과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코펜하겐 이후 기후변화 국제정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사국총회의 결정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유의하기로”(take note)한 〈코펜하겐 합의문〉(Copenhagen Accord)은 자칫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지구적 협상과정의 동력을 어렵사리 살려내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향후 협상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구원해 냈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의미한 노력만은 아니었다. 우선,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상응하는 능력”(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에 따라 대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 하였고, 장기적으로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시기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맞춘다는 목표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장기 감축에 대한 원칙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에 지구적 및 국가적 배출량의 정점을 달성한다는 원칙도 확인하였다...(계속)

신범식 2012-07-17조회 : 14457
기타
[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Executive Summary

2011년 3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진행해 온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프로젝트의 핵심 정책제안을 담은 Executive Summary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10년대 한국외교가 직면한 과제들을 중장기적으로 전망•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기 위하여 ‘거버넌스,’ ‘안보.’ ‘경제.’ ‘환경’의 4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이슈들 간의 네트워크적인 연결을 고려한 복합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거버넌스클러스터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 외교 과제 전재성(서울대학교), 주재우(경희대학교)   안보클러스터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이동선(고려대학교)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이동률(동덕여자대학교), 서봉교(동덕여자대학교)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구민교(서울대학교)   경제클러스터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김치욱(울산대학교)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이용욱(고려대학교)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클러스터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 정치와 한국 외교 신범식(서울대학교)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신성호(서울대학교)   신 글로벌 에너지 아키텍쳐와 한국의 에너지자원협력 외교 방향 김연규(한양대학교)           환경 : 외교환경 변화와 신세계질서 건축   2010년대 외교환경의 변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세계는 격변의 역사를 겪었다. 9•11 테러,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를 맞이했고, 전통적 선진국의 상대적 쇠퇴와 신흥국의 빠른 부상을 체험하였으며, 지구 거버넌스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로 대표되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나타났으며, 향후 10년도 이러한 조류가 세력배분구조, 세계정치 이슈, 행위자, 권력자원의 차원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적 조류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구 및 지역차원에서 세력배분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은 상대적 정체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 국가들은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테러집단, 기업, 비정부기구, 개인과 같은 비국가행위자의 숫자와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되면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넘어 다양한 행위자들과의 복합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한 외교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셋째, 세계화와 정보화 그리고 인구변화는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확산, 자원고갈, 불균형 등 지구촌에 새로운 문제군들을 던져주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 문제군들과 연계되어 위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위기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 이슈영역간 연계의 양상을 면밀히 파악하고 복합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요청되고 있다.   넷째, 새로운 행위자, 이슈영역의 등장과 관련된 도전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국가중심의 행위자를 네크워크 파워로 강화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의 전통적 하드파워 권력자원을 문화력, 환경력, 지식력, 통치력 등과 같은 새로운 소프트 권력자원과 현명하게 복합화하여 투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거버넌스의 건축   현재의 지구 및 지역질서의 구건축은 세력분포, 행위자, 이슈영역, 권력자원의 새로운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21세기 세계정치는 미국패권의 상대적 쇠퇴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신흥국가들의 지구 및 지역 거버넌스 참여와 함께 다양한 국가•초국가행위자들이 복수의 이슈영역에서 네트워크적으로 연결하여 자율적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조정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겪고 있다. 즉, 21세기 세계질서는 힘의 각축과 세력균형이란 근대 질서와 네트워크를 통한 통치라는 탈근대이행이 중첩되어 복합화되고 있다.   2010년대 세계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건축하여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장기침체의 길로 접어드는 세계경제의 재생을 위해 금융, 무역, 에너지•자원, 개발, 환경 등 이슈영역에서 지구 거버넌스의 재건축,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2010년대에 걸맞은 동아시아와 한반도 신질서의 건축이라는 사활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도전 :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북한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 지구 거버넌스의 공동참여   동아시아 세력배분구조의 변화, 새로운 국제정치 이슈들의 등장, 행위자의 다양화, 권력자원의 변화 등 다양한 외교환경 변화 속에서 2010년대 한국 외교는 세가지 당면과제를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첫째,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동시에 심화되는 속에서 변화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건축 과제, 둘째,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설정하면서 미래의 한반도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과제, 셋째, 통상, 금융, 개발협력, 에너지•자원, 환경 부문 등의 지구 거버넌스 건축에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제다. 특히,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와 북한 김정은 체제의 탈선군화 문제는 향후 전략 수립과 이행에 따라 21세기 한반도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현재 세계질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의 빠른 국력증강이다. 경제력 측면에서 2020년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들의 제1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액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생산네트워크 중심기지 역할을 넘어 서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역내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대하고 있다.   군사력의 측면에서 중국은 연 15퍼센트 이상 국방비를 늘려 왔으며, 2011년 중국(1,200억 달러)은 미국(6,980억 달러)의 1/6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국방비 4,780억불을 감축해야 하는 미국과 군사비 격차를 더욱 줄여 나갈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우주선 개발, 위성 요격, 미사일 및 핵무기 등 전략무기 증강, 최신예 전투기 실전배치, 핵잠수함 및 항공모함 건조 등 군사 현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력의 증강은 두드러지지만 미국 국력과의 상대적 평가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강대국간 단순 경쟁과 패권 경쟁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단순 강대국과 달리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는 한편 국제질서를 생산하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힘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패권 경쟁은 세계질서의 주도권 경쟁을 포함한다. 현재의 미중경쟁이 강대국간 단순 경쟁에 머물게 될지 본격적인 패권 경쟁으로 치닫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의 측면에서 빠르게 부상해도 미국을 대체할 패권국으로 성장할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중국 스스로 패권을 지향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중경쟁의 패권경쟁화는 조심스러운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국력측정 방법도 경제적, 군사적 수치의 단순 비교 이외에 21세기 국력을 크게 좌우할 과학기술•정보•지식 수준 등을 함께 고려하면 미중 간의 국력 격차 축소는 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화가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부담을 무겁게 하여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빠르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에게 유리한 구조적 이익을 가져 옴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패권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군사력의 경우도 단순 군사비 비교를 넘어 자원배분 측면에서 보면 지정학적인 이유로 강한 육군력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은 해공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없는 반면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국방비를 해공군력 육성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해공군력 면에서 우세한 미국은 해양지역에서, 우월한 육군력을 갖춘 중국은 인접 대륙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한편 미국은 국력의 상대적 쇠퇴 속에서 세계 리더십 유지를 위해 고투하고 있다. 미국은 부시행정부 8년의 우세(primacy)전략 혹은 패권전략을 마감하고 오바마 행정부 들어 다자주의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전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9•11 테러 이후 안보위기와 정당성 위기를 겪고 2008년 경제위기까지 겪으면서 기존의 패권전략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아시아 회귀” 선언 이후 동아시아 지역 내 위상과 지위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아시아 정책 목표가 경제성장, 지역안보, 민주주의, 인권증진과 같은 가치이며 주요 정책 수단은 양자동맹, 중국과 같은 신흥국과의 파트너쉽, 그리고 다자주의 기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관여와 협력의 구도를 추구하면서 대중 균형전략의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패권도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중국을 미국의 틀 속에 묶어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탄력적 권위주의체제를 견지하면서 ‘취약한 안정’(fragile stability)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상당기간 유지해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행정적 효율성, 대외정책상의 성과, 그리고 중화민족주의 고양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엄격한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 농민 등 소외계층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소요와 불안정은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 민주화 문제 역시 공산당의 단합과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 당분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다.   중국 경제 역시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 둔화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성장 방식에서 민간소비를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에서 통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외변수의 불안정성도 커다란 위협요인이다.   중국 당과 정부는 정치, 경제적 위기 요인들이 체제의 근본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 이러한 위기를 중국의 부상 실현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대를 갖고 있다. 향후 10년 중국은 전면적 소강사회(全面小康社會) 건설을 목표로 안정된 경제발전과 내수진작, 국내경제불평등 해결 등을 위해 집중할 것이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조기의 과도한 패권경쟁을 추구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이익” 담론을 통해 첫째, 중국의 국가 정치체제(國體), 정권의 구성형식(政體) 및 정치적 안정, 둘째, 중국의 주권 안전, 영토 완정(完整), 국가 통일, 셋째,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가능 발전 보장과 같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 역시 단기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균형전략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의도는 없다. 경제위기로 미국의 지도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전략 차원에서 위기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은 중국의 대전략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협력을 추구하면서 경제 발전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여 패권적 세력전이를 추구할지, 아니면 강대국 간 경쟁관계로 그칠지는 앞으로의 동아시아 신질서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미중 세력전이를 둘러싸고 세력전이론, 공세적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와 같은 기존 국제정치이론들이 낙관론과 비관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중관계는 단기적으로는 전반적 협력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만무기판매, 달라이라마의 미국 방문,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공동해상군사훈련, 남중국해 분쟁 및 센카쿠 분쟁 등에서 보듯, 양국이 구조적 협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상당기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규정한 핵심이익의 문제와 결부된 다양한 현안들에서 전략적 불신과 경쟁이 쉽사리 고조되고 이것이 관련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전략적 경쟁과 불신의 기억이 축적될 경우 세력전이론이나 공세적 현실주의가 지적하듯 장기적으로 미중간 패권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계속)

구민교, 김성배, 김연규, 김치욱, 서봉교, 손열, 신범식, 신성호, 이동률, 이동선, 이승주, 이용욱, 전재성, 조동호, 주재우, 하영선 2012-06-26조회 : 1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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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국가안보패널 보고서]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Executive Summary

2011년 3월부터 국가안보패널(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진행해 온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프로젝트의 핵심 정책제안을 담은 Executive Summary 보고서가 발행되었습니다. 국가안보패널은 2010년대 한국외교가 직면한 과제들을 중장기적으로 전망•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기 위하여 ‘거버넌스,’ ‘안보.’ ‘경제.’ ‘환경’의 4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이슈들 간의 네트워크적인 연결을 고려한 복합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보고서는 아래 NSP Report 시리즈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거버넌스클러스터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 외교 과제 전재성(서울대학교), 주재우(경희대학교)   안보클러스터   아시아의 미래 안보질서와 한국의 대응전략 이동선(고려대학교)   중국 정치·경제의 변화와 안정성 전망 이동률(동덕여자대학교), 서봉교(동덕여자대학교)   김정은의 북한과 공진·복합의 대북정책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0년대 한국 해양정책의 과제와 전망 구민교(서울대학교)   경제클러스터   아시아 FTA의 확산과 한국의 전략 : 양자주의의 다자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김치욱(울산대학교)   변화하는 세계금융질서와 한국의 선택 : 지역과 글로벌의 다자주의 연계 이용욱(고려대학교)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이승주(중앙대학교)   환경클러스터   환경 및 기후변화 국제 정치와 한국 외교 신범식(서울대학교)   인구노령화와 동북아 안보 신성호(서울대학교)   신 글로벌 에너지 아키텍쳐와 한국의 에너지자원협력 외교 방향 김연규(한양대학교)           환경 : 외교환경 변화와 신세계질서 건축   2010년대 외교환경의 변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세계는 격변의 역사를 겪었다. 9•11 테러,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를 맞이했고, 전통적 선진국의 상대적 쇠퇴와 신흥국의 빠른 부상을 체험하였으며, 지구 거버넌스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로 대표되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나타났으며, 향후 10년도 이러한 조류가 세력배분구조, 세계정치 이슈, 행위자, 권력자원의 차원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적 조류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구 및 지역차원에서 세력배분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은 상대적 정체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 국가들은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테러집단, 기업, 비정부기구, 개인과 같은 비국가행위자의 숫자와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되면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넘어 다양한 행위자들과의 복합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한 외교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셋째, 세계화와 정보화 그리고 인구변화는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확산, 자원고갈, 불균형 등 지구촌에 새로운 문제군들을 던져주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 문제군들과 연계되어 위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위기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 이슈영역간 연계의 양상을 면밀히 파악하고 복합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요청되고 있다.   넷째, 새로운 행위자, 이슈영역의 등장과 관련된 도전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국가중심의 행위자를 네크워크 파워로 강화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의 전통적 하드파워 권력자원을 문화력, 환경력, 지식력, 통치력 등과 같은 새로운 소프트 권력자원과 현명하게 복합화하여 투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거버넌스의 건축   현재의 지구 및 지역질서의 구건축은 세력분포, 행위자, 이슈영역, 권력자원의 새로운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21세기 세계정치는 미국패권의 상대적 쇠퇴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신흥국가들의 지구 및 지역 거버넌스 참여와 함께 다양한 국가•초국가행위자들이 복수의 이슈영역에서 네트워크적으로 연결하여 자율적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조정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겪고 있다. 즉, 21세기 세계질서는 힘의 각축과 세력균형이란 근대 질서와 네트워크를 통한 통치라는 탈근대이행이 중첩되어 복합화되고 있다.   2010년대 세계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건축하여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장기침체의 길로 접어드는 세계경제의 재생을 위해 금융, 무역, 에너지•자원, 개발, 환경 등 이슈영역에서 지구 거버넌스의 재건축,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2010년대에 걸맞은 동아시아와 한반도 신질서의 건축이라는 사활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도전 :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북한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 지구 거버넌스의 공동참여   동아시아 세력배분구조의 변화, 새로운 국제정치 이슈들의 등장, 행위자의 다양화, 권력자원의 변화 등 다양한 외교환경 변화 속에서 2010년대 한국 외교는 세가지 당면과제를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첫째,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동시에 심화되는 속에서 변화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건축 과제, 둘째,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설정하면서 미래의 한반도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과제, 셋째, 통상, 금융, 개발협력, 에너지•자원, 환경 부문 등의 지구 거버넌스 건축에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제다. 특히,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와 북한 김정은 체제의 탈선군화 문제는 향후 전략 수립과 이행에 따라 21세기 한반도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미중시대의 동아시아 신질서   현재 세계질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의 빠른 국력증강이다. 경제력 측면에서 2020년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들의 제1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액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생산네트워크 중심기지 역할을 넘어 서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역내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대하고 있다.   군사력의 측면에서 중국은 연 15퍼센트 이상 국방비를 늘려 왔으며, 2011년 중국(1,200억 달러)은 미국(6,980억 달러)의 1/6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국방비 4,780억불을 감축해야 하는 미국과 군사비 격차를 더욱 줄여 나갈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우주선 개발, 위성 요격, 미사일 및 핵무기 등 전략무기 증강, 최신예 전투기 실전배치, 핵잠수함 및 항공모함 건조 등 군사 현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력의 증강은 두드러지지만 미국 국력과의 상대적 평가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강대국간 단순 경쟁과 패권 경쟁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단순 강대국과 달리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는 한편 국제질서를 생산하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힘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패권 경쟁은 세계질서의 주도권 경쟁을 포함한다. 현재의 미중경쟁이 강대국간 단순 경쟁에 머물게 될지 본격적인 패권 경쟁으로 치닫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의 측면에서 빠르게 부상해도 미국을 대체할 패권국으로 성장할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중국 스스로 패권을 지향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중경쟁의 패권경쟁화는 조심스러운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국력측정 방법도 경제적, 군사적 수치의 단순 비교 이외에 21세기 국력을 크게 좌우할 과학기술•정보•지식 수준 등을 함께 고려하면 미중 간의 국력 격차 축소는 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화가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부담을 무겁게 하여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빠르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에게 유리한 구조적 이익을 가져 옴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패권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군사력의 경우도 단순 군사비 비교를 넘어 자원배분 측면에서 보면 지정학적인 이유로 강한 육군력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은 해공군력 양성에 주력할 수 없는 반면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국방비를 해공군력 육성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해공군력 면에서 우세한 미국은 해양지역에서, 우월한 육군력을 갖춘 중국은 인접 대륙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한편 미국은 국력의 상대적 쇠퇴 속에서 세계 리더십 유지를 위해 고투하고 있다. 미국은 부시행정부 8년의 우세(primacy)전략 혹은 패권전략을 마감하고 오바마 행정부 들어 다자주의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전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9•11 테러 이후 안보위기와 정당성 위기를 겪고 2008년 경제위기까지 겪으면서 기존의 패권전략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아시아 회귀” 선언 이후 동아시아 지역 내 위상과 지위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아시아 정책 목표가 경제성장, 지역안보, 민주주의, 인권증진과 같은 가치이며 주요 정책 수단은 양자동맹, 중국과 같은 신흥국과의 파트너쉽, 그리고 다자주의 기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관여와 협력의 구도를 추구하면서 대중 균형전략의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패권도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중국을 미국의 틀 속에 묶어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탄력적 권위주의체제를 견지하면서 ‘취약한 안정’(fragile stability)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상당기간 유지해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행정적 효율성, 대외정책상의 성과, 그리고 중화민족주의 고양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엄격한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 농민 등 소외계층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소요와 불안정은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 민주화 문제 역시 공산당의 단합과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 당분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다.   중국 경제 역시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 둔화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성장 방식에서 민간소비를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에서 통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외변수의 불안정성도 커다란 위협요인이다.   중국 당과 정부는 정치, 경제적 위기 요인들이 체제의 근본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 이러한 위기를 중국의 부상 실현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대를 갖고 있다. 향후 10년 중국은 전면적 소강사회(全面小康社會) 건설을 목표로 안정된 경제발전과 내수진작, 국내경제불평등 해결 등을 위해 집중할 것이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조기의 과도한 패권경쟁을 추구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이익” 담론을 통해 첫째, 중국의 국가 정치체제(國體), 정권의 구성형식(政體) 및 정치적 안정, 둘째, 중국의 주권 안전, 영토 완정(完整), 국가 통일, 셋째,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가능 발전 보장과 같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 역시 단기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균형전략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의도는 없다. 경제위기로 미국의 지도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전략 차원에서 위기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은 중국의 대전략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강대국 간 협력을 추구하면서 경제 발전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여 패권적 세력전이를 추구할지, 아니면 강대국 간 경쟁관계로 그칠지는 앞으로의 동아시아 신질서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미중 세력전이를 둘러싸고 세력전이론, 공세적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와 같은 기존 국제정치이론들이 낙관론과 비관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중관계는 단기적으로는 전반적 협력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만무기판매, 달라이라마의 미국 방문,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공동해상군사훈련, 남중국해 분쟁 및 센카쿠 분쟁 등에서 보듯, 양국이 구조적 협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상당기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규정한 핵심이익의 문제와 결부된 다양한 현안들에서 전략적 불신과 경쟁이 쉽사리 고조되고 이것이 관련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전략적 경쟁과 불신의 기억이 축적될 경우 세력전이론이나 공세적 현실주의가 지적하듯 장기적으로 미중간 패권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계속)

구민교, 김성배, 김연규, 김치욱, 서봉교, 손열, 신범식, 신성호, 이동률, 이동선, 이승주, 이용욱, 전재성, 조동호, 주재우, 하영선 2012-06-26조회 : 1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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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 Report 60] 21세기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변화와 한국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이다.         I. 서론 : 개발협력 복합 네트워크의 등장   21세기 개발협력의 세계정치는 급변하고 있다 . 2002년 멕시코 몬트레이에서 개최된 <개발자금조달을 위한 국제회의>(Monterrey Consensu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inancing for Development)를 통해 개발협력의 확대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것을 계기로 이전 10여 년간 감소 추세에 있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의 규모가 상승세로 반전되었다. 이어 2005년 G8 글렌이글스(Gleneagles) 정상회의는 증가세를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이 추세는 이후에도 지속되어,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s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OECD DAC) 회원국의 ODA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인 1,287억 달러를 기록하였다(OECD 2010). 경제위기의 반복적 발생, 그에 따른 경제 침체, 원조 제공에 국내정치적 지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개발협력의 규모가 감소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다소 부침이 있기는 하였으나 개발협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발협력을 둘러싼 지각 변동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양적•질적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ODA의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통적 강대국들이 상위를 점하고 있어, 개발협력의 세계질서는 일견 커다란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주요 공여국들이 일제히 ODA의 규모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물질적•지적 토대를 제공했던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9년보다 3.5퍼센트 증가한 302억 달러의 ODA를 제공하여 세계 최대의 ODA 공여국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다. 2005년 미국이 이라크에 부채탕감을 위한 원조를 제공했던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미국의 ODA는 2010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영향력의 확대는 개발협력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2010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신장된 경제력에 걸맞은 소프트파워의 증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가운데, 개발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Lum, et. al. 2008) . 중국은 전통적 의미의 원조에 더하여 양허성 차관, 부채 탕감, 투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개도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모두 포함할 경우, 중국은 이미 주요 공여국으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외원조 규모는 2007년 기준 약 310억 달러에 달한다(Lum, et. al. 2008) . 동아시아의 대표적 공여국인 일본 역시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빈번한 정권 교체 등 어려운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0년 ODA의 규모를 전년 대비 11.8퍼센트 대폭 증가시키는 개발협력의 주요 행위자로서 위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개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개발협력의 전통적 선두주자인 유럽 국가들 역시 ODA 제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DAC에 소속된 15개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회원국을 기준으로 할 때, 2010년에는 전년보다 6.7퍼센트 증가한 702억 달러 규모의 ODA를 제공하였다. 이는 OECD DAC 전체 ODA의 약 54퍼센트에 달하는 액수이다(OECD 2010). 특히 EU 국가들의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GNI) 대비 ODA 비율 즉, ODA/GNI 평균은 0.46퍼센트로 미국의 0.21퍼센트와 일본의 0.20퍼센트는 물론 DAC 평균 0.32퍼센트를 큰 폭으로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모범적 행태를 바탕으로 EU 국가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개발협력과 관련한 새로운 국제 규범의 형성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개발협력 패러다임을 선도해 온 유럽 국가, 최대 공여국인 미국, 1980년대 이후 ODA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 신흥 공여국의 대표주자인 중국 등이 국내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개발협력이 갖는 복합적 성격 때문이다. 21세기 개발협력의 복합화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행위자의 증가에 따른 복합화이다. 우선, 개발협력의 전통적 행위자인 국가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존의 주요 공여국에 더하여 중국, 아랍 산유국 등 OECD DAC 비회원국들이 주요 공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흥 공여국들은 기존 공여국과 매우 차별적인 개발협력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원조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수원국 국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불간섭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신흥 공여국의 등장과 그에 따른 새로운 개발협력 패러다임의 대두는 선진 공여국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수립해 온 원조의 기준과 조건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발협력 패러다임과 아키텍처는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Manning 2006)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흥 공여국들이 짐바브웨 같은 ‘악당 국가들’(rogue states)에게 제공하는 ‘악당 원조’(rogue aid)가 국제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Naim 2007) .   비단 국가 행위자만 증가한 것은 아니다. 개발협력에 참여하는 비국가 행위자는 더욱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6년 기준, 원조 관련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의 연간 지원 규모는 146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옥스팜(Oxfam), 케어(Care), 아동구호기금(Save the Children) 등 대규모 NGO의 연간 예산은 7-8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원조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기구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UN 산하에만 약 70개 원조기관이 있는데,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에이즈•말라리아•결핵퇴치 글로벌기금 (Global Fund to Fight AIDS, Malaria and Tuberculosis), 지구환경기금(Global Environment Facility)처럼 특수 목표를 위해 설립된 원조기관들이 대부분이다. 수원국의 상황 역시 복합적이다. 민주화로 인해 지역 NGO가 증가하고 있으며, 지방정부, 지역기업, 금융기관 등이 원조의 배분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행위자의 복잡다기화는 개발협력과 관련한 조정 및 협력의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개발협력의 주요 행위자로서 정부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정부와 비정부 행위자 사이의 파트너십에 기반한 개발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은 행위자들 사이의 조정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개발협력 거래비용의 상승을 초래하고, 원조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저하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방식의 개발협력, 부대조건, 평가방식 등이 도입됨에 따라, 기존 개발협력 체제와의 조화 및 재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조기관의 증가로 인해 개별 프로젝트의 규모는 감소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행위자 수의 증가는 수원국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캄보디아의 경우 매년 400회 이상 공여 사절단이 방문하고 있으며, 니카라과(289회)와 방글라데시(250회)의 사정도 유사하다(Severino and Ray 2009). 결국 다수의 행위자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개발협력 아키텍처가 필요하다(Fozzard et al., 2000; Andersen and Therkildsen 2007).   둘째, 개발협력이 단일한 쟁점이 아닌, 국제정치의 다른 쟁점들과 복합되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원조, 개발, 지속적 성장, 환경 등 다양한 이슈가 상호 연계된 형태로 전개되는 복합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globally integrated economies)이며, 지구 차원의 사회적 양극화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질병, 지구 온난화, 식량위기 등 지구적 차원의 공조가 필요한 새로운 쟁점들이 지속적으로 대두했는데, 모두 개발협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쟁점들이다. 저소득국가뿐 아니라 ‘실패국가’에도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 역시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강조하는 최근의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셋째, 관리의 복합화이다. 쟁점의 복합화는 빈곤 및 불평등 같은 기존의 문제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서로 연계되어 있는 다른 쟁점들이 더 이상 독자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발협력의 문제와 개도국의 발전 문제가 전지구적 차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효과적 관리를 위해서는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G20은 개도국의 개발과 원조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2010년 6월 토론토 회의에서 다자개발은행에 대한 자본증액 및 재원보충 지원약속을 이행하기로 하고, 농업과 식량안보를 위한 대책으로 세계 농업식량안보기금(Global Agriculture and Food Security Program: GAFSP)의 발족을 추진하며, 라퀼라 이니셔티브(L’Aquila Initiative)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개도국의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개발협력이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관리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21세기 개발협력은 행위자의 복합, 쟁점의 복합,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21세기 개발협력은 지구화된 세계에서 다양한 차원의 상호의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원조의 제공, 개도국의 발전, 새로운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수립이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행위자의 증가에 따른 집합행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다양한 개발협력 모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발협력 자체가 21세기 지속 가능한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주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개발협력은 세계 주요국들이 각자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키는 유효한 수단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특히 현재처럼 개발협력의 세계질서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주요 국가들은 개발협력 아키텍처를 재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향후 세계질서의 재구성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계속)  

이승주 2012-05-06조회 : 15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