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아시아 지역의 민주적 거버넌스와 인권 증진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2013년 11월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sia Democracy Research Network: ADRN)를 발족했다. EAI는 국내 싱크탱크의 대표기관인 동시에 아시아 지역 싱크탱크의 직능대표로서 소속된 연구기관들의 민주주의 관련 연구지원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ADRN은 아시아 지역이 직면한 민주주의 위협 요인을 분석하고 민주주의 전환 및 공고화에 기여할 수 있는 실무형 연구과제를 논의하고 확산하고자 창립되었다. ADRN은 연구에 기반한 정책 제시를 목표로 아시아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와 당면과제를 점검하고 지역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실천적 의제를 발굴하고 연구하고 있다. 네트워크에는 한국의 EAI를 비롯하여 대만, 말레이시아,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등 아시아 14개국 22개의 주요 싱크탱크들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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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⑤ 한국 민주주의 위기와 ‘아래로부터의 퇴행’?

Ⅰ. 서론   민주주의 퇴행에 관한 연구들은 퇴행의 원인과 과정을 ‘위로부터의 퇴행(Democratic erosion from the top)’과 ‘아래로부터의 퇴행(Democratic erosion from the bottom)’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위로부터의 퇴행’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퇴행을 정치 권력을 가진 엘리트, 특히 행정부의 수반이 권력을 공고하게 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내리는 전략적 선택의 결과로 본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들이 헌법과 법률의 외형적 형식은 유지하면서도 행정명령의 사용 등에 의한 의회의 무력화, 사법부 장악, 언론 통제, 비판 세력 탄압, 선거 제도 변경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행정부의 권력을 확대하고 견제 장치를 약화시키는 현상에 주목한다(Bermeo 2016; Levitsky and Ziblatt 2018). 이러한 변화는 합법적 절차를 따르는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점진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되어 시민들이 민주주의 약화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고, 퇴행의 과정을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여 시민들의 저항을 무디게 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Bartels 2018; Ginsburg and Huq 2018).   한편 ‘아래로부터의 퇴행’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민주주의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이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체제에 대한 규범적 지지를 보내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가장 정당하고 적합한 정치 체제로 받아들일 때 민주주의는 정치적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할 수 있으며(Lipset 1959), 외부의 강압이나 강제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수용을 바탕으로 유지된다(Dahl 1971). 이러한 정당성은 일시적 성과나 특정 정책에 기반한 구체적 지지(specific support)를 넘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원칙적인 지지와 애착, 즉 포괄적 지지(diffuse support)가 뒷받침될 때 더욱 견고해진다(Easton 1965). 포괄적 지지가 결여되어 있을 경우, 경제적 충격이나 정치적 혼란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내부로부터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가 제도적 경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Classen 2020). 사회 구성원들이 민주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정치적 갈등과 문제가 민주적 절차와 규범 내에서 해결된다고 믿을 때, 즉 민주주의가 “유일한 게임의 규칙(the only game in town)”으로 받아들여질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consolidation)된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경험하고 있는 주요한 사건들은 위로부터의 퇴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여러 징후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영방송 이사진 해임 및 YTN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시비, 그리고 야당이 주도하여 통과시킨 법안들(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에 대한 대통령의 빈번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는 행정부가 입법부의 견제 기능을 약화시키고 언론의 비판적 감시 역할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또한, 감사원이나 검찰 등 권력기관의 운영 과정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선택적 혹은 표적 수사 논란이 제기되는 경우, 이는 국가기관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는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지적한 ‘선출된 독재자’가 사법부나 기타 견제 기구를 무력화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한편 행정부와의 입법 교착을 탄핵소추를 통해 해결하려 한 야당의 선택 역시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의 규범을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사건들은 권력을 가진 엘리트가 합법적인 제도의 틀 안에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위로부터의 퇴행’과 부합한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 산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발행한 2025년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한국은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되는 나라로 분류되었다.[1] 한국은 2021년 보고서에서 세계 17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으나, 2025년 보고서에서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선거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 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해당 보고서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7.75점을 기록했으며, 2020년에서 2023년까지 최상위 단계인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로 분류되었지만 2024년에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국가로 떨어졌다. 해당 보고서에서 한국은 점수가 가장 크게 하락한 10개 국가 중 하나였다. 최근에는 ‘아래로부터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25년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집행과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이들이 서부지검을 습격, 점거하고 시설을 파괴한 사건은 한국 사회에 충격을 가져왔다. 또한 그동안 지속적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이들의 주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목소리와 결합하여 광장에서 표출되고 있다. 국민저항권을 내세우며 법치와 헌정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가 미국, 유럽 등에서 확산되고 있는 극우 세력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위기의식도 생겨나고 있다.   위로부터의 퇴행과 아래로부터의 퇴행은 서로 배타적이기보다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선출된 독재자의 반민주주의적 시도는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약할 때 더욱 성공하기 쉽다. 반면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신념은 엘리트에 의한 위로부터의 퇴행을 제어하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시계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전반적인 시계열적 변화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 문항을 사용했다. “다음 진술 중 선생님의 입장과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시오.” 1)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항상 낫다.’ 2) ‘특정한 상황에서는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나을 수 있다.’ 3) ‘나에게는 민주주의든 독재든 큰 차이가 없다.’ 응답 문항 중 1)은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포괄적 지지(diffuse support)의 척도로 해석될 수 있다(Easton 1965). 반면 2)를 선택한 응답자는 민주주의에 대해 조건부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와 권위주의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3)을 선택한 응답자는 체제 전반에 대한 냉소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본 보고서의 분석 시기는 2003년부터 2025년까지이다. 2003년부터 2022년은 Asia Barometer Survey를 사용하고 있으며, 2025년은 동아시아연구원이 2025년 1월 22일부터 23일까지 실시한 ‘양극화 인식조사’ 자료를 사용한다.   [그림 1]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의 시계열적 변화 2003 ~ 2025   그림 1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포괄적 지지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음을 보여준다. 2003년 조사에서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항상 낫다”고 응답한 비율은 49%에 불과했으나, 2011년 66%, 2019년 71%, 2022년 76%를 기록했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이후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경험하고, 2024년 계엄과 뒤이은 탄핵정국을 거치는 동안에 실시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민주주의가 다른 제도보다 낫다고 응답했다. 반면, “특정한 상황에서는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나을 수 있다”는 응답은 2006년에 36%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1년 20%, 2015년 25%를 기록한 이후 2019년과 2022년에는 17%와 16%를 기록하는 등 10%대 중반으로 떨어졌으며, 2025년 조사에서도 16%를 기록했다. 한편 “민주주의든 독재든 큰 차이가 없다”는 응답 역시 2003년 33%에서 2025년 9%로 크게 감소하였다. 종합하면 그림 1은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 우위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으며,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당성은 시민들의 신념 속에 점점 더 내면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Ⅲ. 세대별 분석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이는 정치적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30여 년 이상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 동안 한국의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여야 간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가능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또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2017년 탄핵 국면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시민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정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쌓아가며 한국 시민들은 민주주의 제도의 가치와 기능을 깨닫고 내면화해 온 것이다. 또한 ‘세대교체 효과’의 가능성도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태어나고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M세대)와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치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군부 권위주의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 세대는 학교 교육을 통해 과거 권위주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적 담론 속에서 성장했다. 또한 이들은 언론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치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접하며, 이전 세대에 비해 더 높은 민주주의 감수성을 키워 왔다.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으면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전반적으로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2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 변화를 세대별로 살펴본다.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1940년~1959년생을 산업화 세대, 1960년대 생을 86세대, 1970년대 생을 X세대, 1980년대 생을 M세대, 1990년 이후 출생자를 Z세대로 구분했다. 그림 2에 따르면, 모든 세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산업화 세대의 경우, 2003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49%였으며, 2022년 76%까지 상승했다. 독재가 나을 수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2006년 38%를 기록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2년에는 17%에 불과했다. 2025년 조사에서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들의 비율은 2022년 조사와 비교할 때 약 3%p정도 감소했으며, 경우에 따라 독재가 나을 수 있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그만큼 증가해서 21%를 기록했다. 86세대의 경우도 산업화세대와 유사한 변화를 보인다. 2003년 민주주의를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은 50%를 기록했으며, 2022년에는 79%까지 증가했다. 2025년 조사에서는 74%로 약 5%p 감소했다. 경우에 따라 독재가 나을 수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2006년 40%로 가장 많았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2년 16%까지 줄어들었다가 2025년에는 18%로 소폭 증가했다. X세대 내에서도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지지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3년 49%가 민주주의를 선택했으며, 2022년에는 해당 비율이 71%로 약 22%p 증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산업화 세대 및 86세대와 달리 2025년 조사에서 X세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더욱 증가했다는 점이다. 2022년 조사에서는 71%만이 민주주의를 선택해서 산업화 세대나 86세대보다 낮은 비율을 기록했지만, 2025년 조사에서는 80%가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2022년과 2025년 사이에 경우에 따라 독재가 나을 수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18%에서 13%로 약 5%p 감소했으며, 민주주의든 독재든 상관없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 역시 감소했다.   [그림 2]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의 시계열적 변화 2003 ~ 2025: 세대별 분석   M세대와 Z세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M세대의 경우 2003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53%가 민주주의를 선택했으며, 해당 비율이 2022년에는 80%로 증가했다. 2022년 시점만 놓고 보면 X세대보다 민주주의에 대해 더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해당 비율은 2025년 조사에 76%로 다소 감소했다. Z세대의 경우 2011년 조사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약 57%로 다른 세대에 비해 다소 낮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M세대가 20대였던 2003년 조사에서 53%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다른 세대와 달리 Z세대의 경우 독재를 선택한 이들의 비율이 21% 이상을 기록한 해가 없다는 점에서 Z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민주주의에 더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세대 교체의 효과도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22년과 2025년 사이에 민주주의 지지가 다소 감소했으나, 경우에 따라 독재가 나을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들의 비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 세대와 86세대에서 계엄과 탄핵을 포함한 정치적 변화가 민주주의 지지 철회와 독재 지지 증가로 이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MZ세대에서는 민주주의 지지 철회가 독재 지지로 전환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Ⅳ. 세대와 젠더에 따른 변화   최근 한국 정치에서 MZ세대 남성의 정치적 보수화, 특히 젠더 이슈와 관련된 보수적 태도, 그리고 ‘공정’ 담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20년 총선, 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대통령 선거 등에서 20대 남성이 국민의힘(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2022년 대선 직후 실시된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의 59%, 30대 남성의 53%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바 있다. 이는 20대 여성의 58%, 30대 여성의 50%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것과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이른바 20대 남성과 여성 간의 젠더 갭(성별 격차)은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진행된 탄핵 국면에서도 확인되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은 전체 참가자 중 3%에 불과한 반면, 20대 여성은 1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나 2016년 탄핵집회 당시 남성의 참여율이 10%대 초중반을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BBC News Korea 2025-02-14).   이러한 맥락에서 그림 3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각 세대 내에서 응답자의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준다. 산업화 세대의 경우, 2025년을 제외하고 남녀 응답자 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 2025년 조사의 경우 2022년과 비교할 때 여성 응답자에게서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남성 응답자의 경우 민주주의 지지는 75%에서 69%로 약 6%p 감소한 반면 독재 지지는 17%에서 28%로 약 11%p 증가했다. 86세대의 경우 이와 상반된 변화가 나타났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민주주의 지지는 78%에서 76%로 2%p 감소하는 데 그쳤으나, 여성 응답자의 경우에는 80%에서 72%로 약 8%p 감소했으며, 독재 지지는 16%에서 20%로 4%p 증가했다. 남성에 비해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변화가 나타났다. X세대에서는 남성 응답자의 태도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2022년 조사에 X세대 남성의 민주주의 지지는 67%를 기록했으나 2025년 조사에서는 84%로 무려 17%p 증가했다. 반면 독재가 낫다는 응답은 22%에서 10%로 12%p 감소했다. X세대 남성은 두 조사 간에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집단이다.   [그림 3]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의 시계열적 변화 2003 ~ 2025: 세대별, 성별 분석   한편 M세대와 Z세대의 경우 응답자 성별에 따른 차이가 2025년 조사 이전부터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M세대의 경우 2015년을 기점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2011년 조사에서 남성 응답자의 67%, 여성 응답자의 68%가 민주주의를 지지하여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여성 응답자의 민주주의 지지는 가파르게 증가한 반면, 남성 응답자의 지지 증가세는 그에 미치지 못해 민주주의 지지를 놓고 젠더 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녀 응답자 간의 차이는 2015년 조사에서 6%p, 2019년 조사에서 8%p, 2022년 조사에서 12%p를 기록하며 계속 증가했다. 2025년 조사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84%가 민주주의를 지지한 반면, 남성 응답자는 69%만이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혀 그 차이가 약 15%p에 달했다. M세대 여성 응답자의 경우 2025년 조사에서 7%만이 독재가 낫다고 응답해서, 조사 대상 집단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Z세대는 남녀 응답자 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집단이다. Z세대가 처음 등장했던 2011년 조사에서 이미 젠더 갭이 존재했다. 여성 응답자의 64%가 민주주의를 지지한 데 반해, 남성 응답자의 경우는 해당 수치가 52%에 불과하여, 남녀 응답자 간의 차이는 약 12%p에 달했다. 흥미로운 점은 2019년 조사에서 남녀 간의 차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Z세대 남녀 모두 76%는 민주주의가 낫다고 응답한 반면, 14%는 가끔은 독재가 낫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변화는 2017년 탄핵 국면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Z세대 여성의 민주주의 지지는 계속 증가하여, 2022년 79%, 2025년 81%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Z세대 남성의 민주주의 지지는 2022년 73%, 2025년에는 63%로 감소했다. 2025년 Z세대 남녀 간의 격차는 18%p에 달한다. M세대와 Z세대 남성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는 ‘20대 남성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지지의 감소가 독재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22년과 2025년 사이 M세대 남성의 민주주의 지지는 5%p 감소했으나, 독재 지지는 불과 3%p만 증가했다. Z세대 남성의 경우도 민주주의 지지는 10%p 감소했으나, 독재 지지는 6%p 증가에 그쳤다. 이는 2025년 조사에서 이전 조사에 비해 독재 지지가 11%p가량 증가한 산업화세대 남성과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Ⅴ. 결론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시민들의 원칙적인 지지와 애착, 즉 포괄적 지지(diffuse support)는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토대이다. 따라서 만약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확신과 믿음이 줄어든다면, 이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아래로부터의 퇴행을 겪고 있다는 증거이자, 위로부터의 퇴행을 저지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그리고 10년 사이 두 번째 궐위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현 시점에서, 본 연구는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지지가 지난 20여 년간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2003년 이후 2025년까지 일곱 차례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한국 시민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산적 지지가 자리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 응답자를 기준으로 볼 때, 민주주의가 어떤 제도보다 항상 낫다는 응답이 2006년에는 43%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76%로 33%p 증가했다. 같은 시기 특정한 상황에서는 독재가 낫다는 비율은 2006년 36%에서 2022년 12%로,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계엄 사태를 겪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25년 1월 조사에서도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전반적인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세대와 성별에 따라 살펴보았을 때, 계엄과 탄핵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산업화 세대 남성, M세대 남성, Z세대 남성들의 경우 2025년 조사에서 과거 조사에 비해 민주주의 지지는 감소하고 독재 지지는 증가했다. 그러나 X세대 남성, M세대와 Z세대 여성 사이에서는 민주주의 지지가 증가하여 전반적인 응답 비율에서는 큰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M세대 남성과 Z세대 남성들의 민주주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 그리고 계엄 국면에서 상당한 감소가 발생했다는 점은 ‘20대 남성 보수화’ 논의와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우리는 M세대 남성의 68%, Z세대 남성의 63%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유일한 게임의 규칙(the only game in town)”으로 꼽고 있으며, 독재를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은 민주주의를 선택한 응답자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최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미국이나 서유럽과 비교할 때, MZ세대 남성에게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크게 감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포아와 모웅크(Foa and Mounk 2016)에 따르면, 미국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진술에 대해 산업화 세대에 해당하는 1940년대 출생자들의 약 60%가 찬성한 반면, M세대에 해당하는 1980년대 출생자들은 약 30%만이 찬성하는 등 젊은 세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감소가 훨씬 뚜렷하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 속에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상당한 회복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바탕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 년 이상 민주적 경험이 축적되는 와중에, 한국 시민들은 정치적 학습을 통해 민주주의를 단순한 제도가 아닌 사회의 근본적 가치로 수용하게 되었다. 2025년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서 세대 및 성별에 따른 다소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린츠와 스테판(Linz and Stepan 1996)이 민주주의 공고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유일한 게임의 규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 민주주의 후퇴가 시민들의 민주적 가치 약화에서 비롯된 ‘아래로부터의 퇴행’이라기보다는, 정치 엘리트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위로부터의 퇴행’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한국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견고한 지지는 향후 한국 민주주의가 위로부터의 퇴행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   참고 문헌   Bartels, Larry M. 2023. Democracy Erodes from the Top: Leaders, Citizens, and the Challenge of Populism in Europ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85–215.   BBC News Korea. 2024. “한국 ‘20대 남성’은 왜 보수화됐나? [Why Have South Korean ‘Men in Their 20s’ Become Conservative?].” February 14.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159vendkl8o (검색일: 2025. 5. 13.)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 1: 5–19.   Claassen, Christopher. 2020. “Does the Public Respond to Government Performance? The Asymmetric and Dynamic Nature of Legitimacy Belief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64, 1: 182–200.   Dahl, Robert A. 1971. Polyarchy: Participation and Opposition.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Easton, David. 1965. A Systеms Analysis of Political Life. New York: Wiley.   Foa, Roberto Stefan, and Yascha Mounk. 2016. “The Danger of Deconsolidation: The Democratic Disconnect.” Journal of Democracy 27, 1: 5–17.   Ginsburg, Tom, and Aziz Z. Huq. 2018. How to Save a Constitutional Democracy.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Crown.   Linz, Juan J., and Alfred Stepan. 1996. Problems of Democratic Transition and Consolidation: Southern Europe, South America, and Post-Communist Europe. Baltimore, M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Lipset, Seymour Martin. 1959. “Some Social Requisites of Democracy: Economic Development and Political Legitimacy.”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53, 1: 69–105.     [1] 2024년 보고서에서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국가로 분류된 42개국 중에는 2014년 우산혁명,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등을 통해 사실상 일국양제가 붕괴된 홍콩, 2017년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야당을 강제 해산하고 사실상 일당독재로 전환한 캄보디아,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시민 저항과 유혈 진압이 반복되고 있는 미얀마, 두테르테 정부 동안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수천명에 대한 초법적인 처형이 발생하고, 최근에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당선 이후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필리핀 등이 포함되어 있다.     ■ 강우창_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강우창 2025-05-15조회 : 6757
워킹페이퍼
[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④ 한국 정치엘리트와 민주주의 퇴행

Ⅰ. 서론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대통령제나 선거제도 등 권력구조의 제도적 결함 때문인가? 정서적 양극화나 민주적 규범 약화 등 대중 선호 차원의 변화에서 생긴 것인가? 이 글은 12·3 비상계엄 이후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서, 제도적 결함이나 대중 선호 차원보다는 정치엘리트의 선호, 행태, 그리고 이를 제약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권력구조나 선거제 등의 정치제도에 결함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제도적 결함은 1987년 이후 대체로 상수로서 한국 정치의 구조적 환경으로 작용했다고 보며, 현재의 상황은 제도적 결함 그 자체보다는 제도적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 혹은 제도적 결함을 악용한 정치엘리트에 의한 위기라고 진단한다.   또한 이 글은 대중 선호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이끌 만할 큰 변화는 없다고 본다. 후술하듯이 소수 강성 지지자의 압박이나 편향된 미디어 사용 등 시민 수준에서의 위기적 징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 5편 강우창의 분석에 따르면, 이념 분포, 정서적 양극화, 권위주의 레짐에 대한 지지, 정책 선호 등 다양한 측면에서 2024년의 대중 선호가 지난 몇 년과 달리 특별히 더 심각하게 민주주의 퇴행을 보여 준다고 진단할 만한 변화가 없다. 즉, 대중의 수요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근거는 약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이 글은 지금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위로부터의 위기’이고 12·3 비상계엄은 정치엘리트 차원에서의 갈등과 문제 해결의 실패가 헌정 질서를 흔드는 위기로 갑작스럽게 분출된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다른 나라들의 민주주의 퇴행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과 유사한 진단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랫(Levitsky and Ziblatt 2018)은 기성정당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엘리트들이 극단주의자를 막아내는 문지기(gatekeeper)로서의 역할에 실패했을 때 민주주의가 붕괴한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민주주의 퇴행을 다룬 바텔(Bartels 2023)의 책 제목은 “민주주의는 위에서부터 부식한다(Democracy Erodes from the Top)”이며, 민주주의 퇴행 연구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정리한 드럭만(Druckman 2024) 글의 소제목 중 하나도 “부식의 주체인 엘리트(Elites as Agents of Erosion)”이다. 크누어(Kneuer 2021)도 선출된 지도자들을 부식 과정의 모터(the motor of erosion processes)라고 비유했다(Kneuer 2021: 1447).   이 글은 한국도 이러한 해외 사례처럼 위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정치 엘리트로부터의 위기가 발생했는지 진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 2장에서는 12·3 비상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주요 정치인들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 린츠(Linz 1978)의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 구분을 사용할 것이다.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민주주의 헌정질서하에서 발생하는 정치인의 당파적 행동은, 민주주의 레짐 자체의 위기를 초래하는 행동과 구분되어서 설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이 가능할 때 누가 왜 반민주적이고 극단주의적 행태를 통해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왔는지 판단할 수 있다.   3장에서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등장 원인을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 초당적 교류의 약화, 인센티브 구조 변화라는 세 가지 틀로 탐색한다. 첫째,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는 보수계열 정당 내부 상황을 의미한다. 수도권 지역구에서의 연이은 총선 패배로 인해, 보수계열 정당에서 중도 성향 의원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축소되고 선거 심판 가능성이 낮은 지역의 강성 의원이 당을 주도하게 되면서 극단주의적 행태가 자제 혹은 견제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었다.   둘째, 원내 진입 이후 정치인의 훈련, 교육 및 소통 과정의 문제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의회민주주의는 타 정당 의원들과 소통하면서 각자의 정치철학이나 정책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일종의 정치적 학습과 대화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다. 만약 과거에 비해서 의회 내 초당적 교류나 학습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면,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민주적 원칙 아래 타 정당의 의원들과 단결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정량적 지표로 국회의원 연구단체의 개수와 구성의 다양성을 확인해 보았다. 1994년에 처음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이후 연도별 국회의원 연구단체 숫자는 증가했지만, 2016년 이후 숫자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또한 20대에 비해 21대와 22대로 갈수록 연구단체 참여 의원의 소속 정당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즉, 초당적 교류와 소통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의 행태를 제약하는 인센티브 구조 변화를 살펴본다. 최근 몇 년 간 정당정치는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과 일부 편향적인 뉴미디어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극단적인 목소리가 당내 여론에서 과대대표되는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 원칙보다 당파적 이익을 우선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오히려 당 내에서 더 큰 지지를 받는 상황이 현재의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Ⅱ. 위로부터의 위기: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   후안 린츠는 민주주의 레짐의 붕괴 원인을 다각도로 다룬 그의 1978년 책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어기는 정당과 정치인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트리는지 설명한다. 그는 정치엘리트들을 민주주의에 헌신적인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겉으로는 민주주의자인 척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 원칙을 어기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라는 두 개의 유형으로 구분해야 민주주의 위기와 레짐 붕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첫째, 승패를 떠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하며, 둘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혹은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전략을 명백하게 거부한다. 문제는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민주주의 질서하에서는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유형 모두 평시에는 민주주의 규칙을 대체로 준수하면서 각자의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쟁하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누가 반쪽짜리인지 관찰이 불가능하다. 린츠는 이런 사전적 관찰 불가능성의 문제는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소된다고 본다.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와 충직한 민주주의자 간 구분은 자신의 소속 정당이나 지지자들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 행동을 했을 때의 반응으로 구별된다. 누군가가 폭력적이고 반민주적 행동을 보일 때, 충실한 민주주의자는 그런 극단주의자가 같은 당 정치인이나 지지자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비판하고, 이들의 행동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견을 표출한다. 반면,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는 자기 편에서 발생한 폭력적이고 반민주적 행동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비판을 피하거나, 묵인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이를 지지하기도 한다.   레비츠키와 지블랫(Levitsky and Ziblatt 2023)은 린츠의 이러한 구분을 사용하여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예시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스웨덴 보수당은 파시스트를 주창하는 민족주의청년동맹 내 청년단원을 출당시켰다. 1981년 스페인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좌우파 모든 진영의 의원들이 쿠데타에 맞섰다. 이러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과 달리, 1934년 프랑스 폭동을 옹호하거나 묵인한 공화연맹당 의원들은 대표적인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이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최근 민주주의 위기 상황은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나누는 첫 번째 기준은 승패와 무관하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선거에서 부정선거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부정선거론자를 암시적으로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듯 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들(김도형 2025; 한예섭 2025)도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첫 번째 원칙을 위반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이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구분하는 두 번째 기준은 폭력 사용에 대한 용인이다. 정치적 갈등의 해결 수단으로 폭력 사용을 주장하거나, 폭력적 수단 사용을 합리화하거나, 폭력적 수단을 쓴 자기 편 사람을 묵인하는 행동 모두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두 번째 기준과 관련해서는 서부지방법원 습격사건을 적용할 수 있다. 2025년 1월 19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 집단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집행과 이에 따른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위한 영장실질심사에 반발하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하여 집기를 부수고 난동을 피우는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만큼 놀라운 일은 한 현역 의원이 이러한 폭력적 행동을 간접적으로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폭동 이전에 이미 했다는 점이며, 이후에도 일부 의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이러한 폭동의 의미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유지웅 2025).   또한, 12∙3 비상계엄 당일 계엄 해제 투표를 둘러싼 행동들도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12∙3 비상계엄은 헌법에 규정한 절차와 요건을 지키지 않은 상태로 선포된 것이고,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에 군을 동원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는 등 명백히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조치였다. 특히, 국회의사당에 헬기와 군이 배치된 것은 정치적 갈등을 군을 통한 폭력적 수단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조치였으므로, 국회는 이러한 폭력적 대결 상황을 종결하고 위기를 막을 헌법적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사유 없이 계엄 해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로 오해를 받을 행동을 한 셈이다.   충실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라는 유형은 한 정치인이 가진 불변의 고유한 자질이 아니다. 각자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즉, 과거에 충실한 민주주의자로 행동했던 의원들이 지금 자기 편의 위기 국면에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로 변했을 수 있고, 반대로 과거에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였다고 해도 노력과 학습을 통해 민주주의 원칙을 수호하는 충실한 민주주의자로 진화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원칙 수호의 헌법적 의무를 가진 정치인들이 어떻게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되었는가? 한때 충직한 민주주의자로 보였던 이들이 어떤 계기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된 것일까? 다음 장에서는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 초당적 교류의 약화, 인센티브 구조 변화라는 세 가지 틀로 그 원인을 살펴볼 것이다.   Ⅲ. 원인 진단   1.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21대나 22대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거나, 서부지법 폭력사태를 조장하거나 혹은 그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린츠가 묘사한 전형적인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극단적 행동의 현상적 근인(近因)은 연이은 총선 실패에 따른 보수계열 정당 내 주도 세력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20대 총선 이후 22대까지 줄곧 수도권 지역에서 보수계열 정당이 패배하면서, 대체로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중도 성향 의원들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선거 심판 가능성이 낮은 지역의 강성 의원이 당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림 1]은 20대, 21대, 그리고 22대 총선에서 주요 양당의 서울 및 경기 지역 득표율을 보여 준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 간 득표율 차이의 평균값은 3.63%(약 4,020표)에 불과했지만, 21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간 득표율 차이의 평균값은 11.77%(약 13,943표)로 커졌고, 22대 총선에서 두 당 간 득표율 차이 평균값은 8.99%(약 11,492표)였다.   [그림 1] 주요 양당의 서울, 경기 지역구 득표율 [그림 2] 주요 양당의 서울, 경기 지역구 의석 수   [그림 2]는 양당이 획득한 서울, 경기 지역 의석 수와 그 차이를 보여 준다. 서울과 경기의 108석 중 민주당이 20대에는 75석, 21대는 92석, 22대는 90석을 차지했다. 현행 선거제도의 낮은 비례성 때문에 실제 득표율의 차이에 비해서 의석 수의 차이가 매우 컸다. 수도권은 지역주의 영향이 낮아서 본선을 통한 심판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전국적인 여론이나 선거 지형에 따라 교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므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의 의원들이 당선되던 지역이다. 보수 계열 정당의 연이은 수도권에서의 패배로 중도 성향 의원들이 사라지거나 이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강경보수 성향 의원들의 주도권이 커지게 되었다. 당 내에서 개혁이나 쇄신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중도 성향의 당대표가 선출된 경우 당내 강경파에 의해 사실상 축출되는 방식으로 당대표가 교체되는 등의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정대연 외 2022; 조미덥∙민서영 2024). 즉, 보수 계열 정당 내에서 극단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동을 견제할 만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2. 초당적 교류와 정치학습 기회 감소   두 번째 원인으로 고려할 부분은 정치엘리트의 정치학습과 정당 간 소통의 부분이다. 국회의 의사결정 제도는 합의제적 모델과 다수결제적 모델이 섞여 있어서 의사결정 비용과 수용의 비용 모두 큰 비효율적인 형태이다(문우진 2016; 전진영 2015). 따라서 개별 의원들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국회 제도에서 초당적 교류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모델이든 궁극적으로 다른 정당과의 소통 없이 입법 성과를 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며, 모든 의사결정은 다른 정치세력과의 대화와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의회정치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다른 소속 정당 의원들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치인들은 갈등적 상황에서도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고도의 정치적 학습을 경험하게 된다. 의원들이 각자 원하는 특정 법안이나 정책을 서로 주고받는 로그롤링(log-rolling)식의 거래 기술을 학습하기도 하지만, 이런 학습 과정 속에서 상대 정당의 입장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기 때문에 오해에 기반한 갈등이 줄어들거나 소통비용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전의 의회정치 상황을 돌이켜보면, 다른 정당과의 초당적 대화나 교류뿐만 아니라 같은 당 내 다른 계파 간 소통도 원활하지 않지 않았다. 의원 간 소통과 초당적 교류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 위기 극복과 정치 안정을 위해서 한시적으로라도 초당적 협력을 하자는 제안은 공허한 메시지에 그쳤을 것이다.   과연 정말 최근 국회의원들이 이전에 비해 초당적 대화와 소통을 적게 했고, 그로 인해 서로 협력할 만한 신뢰를 쌓지 못했을까? 의원 간 신뢰의 정도는 정량적인 지표로 쉽게 확인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의원 간 초당적 교류의 횟수는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초당적 대화와 소통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연구단체로 불리는 공식적인 공부모임의 횟수와 그 다양성을 살펴보았다. 국회의원 연구단체는 1994년부터 국회의원연구단체지원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공식적인 모임으로, 국회의원이 소속정당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연구단체를 구성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이다. 연구단체 구성은 2개 이상의 교섭단체(비교섭단체 포함) 소속 의원 10인 이상으로 구성하고, 반드시 다른 교섭단체 소속 국회의원이 1인 이상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초당적 대화와 협력을 장려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또한 한 국회의원은 3개 연구단체를 초과하여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단체 가입은 의원의 정치적 정책적 관심사를 어느 정도 반영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단체 숫자, 단체 종류 및 참여 의원에 대한 정보는 열린국회 정보공개포털에 공개되어 있다.[1] 단, 의원별로 가입된 연구단체에 대한 정보는 16대 국회부터 공개되어 있다.   [그림 3] 연도별 연구단체 수   [그림 3]은 국회의원 연구단체가 생긴 1994년 이후 2024년까지 등록된 연구단체의 연도별 숫자이다. 1994년 이후 연구단체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했지만, 2016년에 연구단체의 숫자가 75개로 가장 많았고, 이후 20대와 21대로 갈수록 연구단체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물론 동일한 임기 내에서는 초반에 비해 후반에 연구단체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21대나 22대 국회의 연구단체는 20대나 19대보다 적은 편이다.   [그림 4]는 정당별로 연구단체 참여 비율을 보여준다. 20대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참여 비율이 비슷했던 반면, 21대와 22대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의원의 참여 비율이 다소 줄어들었다. 연구단체 내 의원 수의 분포를 봐도 최소 구성 요건인 10명을 겨우 넘긴 11명이나 12명 규모의 연구단체가 가장 많았다.   [그림 4] 정당별 연구단체 참여 비율   국회의원 연구단체에서 중요한 점은 한 연구단체에 얼마나 다양한 정당의 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가이다. 이를 정량화하기 위해서 샤논 다양성 지수(Shannon Diversity Index)를 대수별로 계산해보았다. 샤논 다양성 지수는 한 집단 내 구성 요소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지수로, 보통 생물학에서 종 내 다양성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지수가 높을수록 한 집단 내 종의 다양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림 5]는 각 대수별로 연구단체 내 소속 정당에 따른 샤논 다양성 지수를 계산한 히스토그램이다. 20대에 비해서 21대나 22대에서 다양성 지수가 높은 연구단체 개수가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평균값으로 봐도 20대에서 다양성 지수 평균이 0.25, 21대는 0.23, 22대는 0.21이라서, 20대에 비해 최근으로 올수록 다양성이 하락했다.   [그림 5] 연구단체의 다양성 정도   즉, 국회의원연구단체의 시기별 분포나 정당별 참여 비율, 그리고 샤논 지수로 본 연구단체의 다양성 정도 등 다양한 기준에서 분석했을 때, 21대 국회나 22대 국회가 20대 국회에 비해서 초당적 교류와 대화가 적었다.   3.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마지막으로 정치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를 살펴본다. 정치인의 행태는 궁극적으로 특정 행동을 제약하거나 추동하는 인센티브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충실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는 고정된 기질이 아니라 정치 상황에 따른 유동적 반응이기 때문에, 특정 의원들의 반쪽짜리 민주주의적 행태는 최근 변화된 정당 내 인센티브 구조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많이 언급되는 변화는 소위 말하는 팬덤 정치 혹은 강성 지지층과 편향된 미디어의 영향력이다. 신진욱(신진욱∙이세영 2023: 116)의 지적처럼 팬덤 정치, 정치 팬덤 혹은 강성 지지층 등의 표현은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이 아니며 비교적 최근에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많지 않다. 그러나 팬덤 정치를 소수 집단이 강력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정치과정에 활발하게 개입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시민 참여 방식이라고 매우 넓게 정의한다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 집단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민주주의 정치철학에서 오래된 질문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가 다수 시민의 참여에 의한 대표 선출이라는 면에서 시민의 적극적 참여는 민주주의 레짐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론가들은 시민의 참여 방식과 내용에 따라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경고한다. 달(Dahl 1956)과 같은 고전적 이론가들은 다수의 지배가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을 지적했지만, 반대로 최근 연구는 미국의 티파티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 등을 사례로 해서,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소수의 강력한 참여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상황을 경고한다(Eisenstadt 2002; Levitsky and Ziblatt 2023).   한국에서 언론이나 일부 평론가 등을 중심으로 문파, 개딸, 태극기부대 등의 팬덤 정치 집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흐름이 있다. 이런 관점들은 특정 정치인의 팬클럽이나 강성 당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한 의원에게 문자폭탄이나 전화, SNS 댓글 등 주로 온라인 수단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이런 관점들에 따르면 팬덤 정치는 감성적으로 편향되어 있고(오현철 2021), 제도권 정치를 대체로 거부하며(박상훈 2023), 혐오의 정치문화에 기반한다(김주형 2024). 팬덤 정치가 기존의 정치 매개집단인 정당, 노동조합, 사회운동 등 조직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생긴 결과물이며(박권일 2018),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이승원 2021) 무조건적인 비판은 안일하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지만(천정환 2017), 다수는 대체로 팬덤 정치의 부정적 면을 우려한다.   원론적으로 보면 시민들의 정치과정에 대한 적극적 참여는 권장할 일이다.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관료나 사회 특권층에 의한 정치엘리트 포획을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강한 선호를 가진 소수 집단의 적극적 참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결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참여 강도의 격차이다. 현대 정치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투표와 같은 저비용의 선거과정에만 참여하는 반면, 강성 지지자 집단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과정에도 자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전자와 후자의 참여 강도 차이가 크지 않다면, 강성 지지자층의 존재만으로 반드시 부정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전자의 참여 강도가 매우 낮은 반면 후자의 참여 강도가 매우 높다면, 강성 지지자가 배타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참여 강도의 격차 그 자체만으로 민주적 반응성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정치인은 후자에 더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전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지므로 후자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강성 지지자층이 부정적 효과를 만들어 낼 두번째 조건은 이들이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이나 정책 방향을 지지할 때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서, 혹은 당파적 이득을 위해서 민주적 원칙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영향력에 의해 의원들이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편향적 뉴미디어의 존재는 강성 지지자의 악영향을 증폭시킨다. 최근 일부 편향적인 뉴미디어는 극단적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로 작동한다. 극단적인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당내에서 과대대표되는 구조 속에서 편향적 뉴미디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러한 목소리가 증폭될 때, 정치인은 이러한 부정적 인센티브 구조의 압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소수의 비민주적 강성 지지자 집단이 당파적 이득보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는 충직한 민주주의자를 압박한다면, 다른 정치엘리트들도 쉽게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처럼 행동할 유인에 빠지게 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보다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오히려 당 내에서 더 큰 지지를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 집단 중 일부는 탄핵 투표에 참여한 의원들을 배신자로 공격했으며, 이들이 참여하는 집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에 대한 비난과 혐오만큼이나 탄핵에 찬성한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드러내는 발언자가 있었다(정성식 2024).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보여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적 태도에는 이러한 소수의 강성 지지자들이 만든 인센티브 구조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Ⅳ. 결론   이 글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제도나 대중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엘리트의 선호와 행태, 그리고 이를 규정하는 제약 조건과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에서 찾았다. 린츠가 제시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구분을 통해, 정치엘리트가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보다 당파적 이해와 권력 유지에 집중하며 체제 위기를 촉발시킨 과정을 설명하였다. 3장에서는 보수정당 내 권력 구도의 변화, 초당적 교류와 정치학습 기회의 축소, 소수의 극단적 지지층의 압박을 반민주적 행태를 자극하는 요건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갖는다. 첫째, 현재의 위기가 보수 정당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에 대한 분석이 대체로 보수정당 내부의 변화와 행태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외 다른 정당의 역할에 대한 분석은 빠져 있다. 둘째, 3장의 원인 분석은 대체로 간접적 지표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3장의 2절에서 초당적 민주적 정치학습의 축소를 보여주기 위해서 국회의원 연구단체 현황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회의원 연구단체 내부에서 얼마나 초당적인 대화와 교류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부재하다. 또한 국회의원 연구단체 외 다른 방식의 초당적 대화와 교류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점은 반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원인으로 제시한 세 가지 점 외에 유권자의 정서적 양극화나 정당 외 조직을 통한 동원의 문제 등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다 다루고 있지 못하다. 향후 연구에서는 이들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민주주의 퇴행의 메커니즘을 보다 정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   참고 문헌   김도형. 2025. “부정선거 동조한 국민의힘 새 대변인 “계엄은 과천상륙작전… 尹 한 방 보여줬다””. 「한국일보」. 1월 6일.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614370003904 (검색일: 2025. 5. 14.)   김주형. 2024. “혐오의 정치를 넘어서는 민주적 시민성.” 『지식의 지평』 36: 18-30.   문우진. 2016. “한국 정치제도와 설계방향.” 『현대정치연구』 9, 1: 41-74.   박권일. 2018. “정치 팬덤이라는 증상: 「문빠에 대한 철학적 변론」 비판을 중심으로”. 『자음과모음』 38: 189-200.   박상훈. 2023. 『혐오하는 민주주의』. 서울: 후마니타스.   신진욱∙이세영. 2023. 『한국 정치 리부트』. 서울: 메디치.   오현철. 2021. “문재인 정치팬덤의 복합적 성격.” 『시민사회와 NGO』 19, 1: 3-38.   유지웅. 2025. “’법원 습격’까지 옹호한 여당…짓밟힌 ‘민주주의’”. 「뉴스토마토」. 1월 19일.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51346 (검색일: 2025. 5. 14.)   이승원. 2021. “팬덤 정치와 포퓰리즘: 대안적 정치문화를 위한 기획.” 『문화과학』 108: 105-124.   전진영. 2015.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를 선진화시켰는가?” 『현대정치연구』 8, 1: 99-125.   정대연∙구교형∙이홍근. 2022. “‘이준석 축출’ 밀어붙였다가 대혼란 빠진 국민의힘”. 「경향신문」. 8월 26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208261746011 (검색일: 2025. 5. 14.)   정성식. 2024. ““투표 무효, 국힘 배신자 때문”…탄핵안 통과 참담”. 「경기일보」. 12월 14일.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214580113 (검색일: 2025. 5. 14.)   조미덥∙민서영. 2024. “한동훈, 떠밀려 대표직 ‘사퇴’…국민의힘, 비대위 체제로”. 「경향신문」. 12월 16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62051015 (검색일: 2025. 5. 14.)   천정환. 2017. “촛불항쟁 이후의 시민정치와 공론장의 변화: ‘문빠’ 대 ‘한경오’, 팬덤정치와 반지성주의.” 『역사비평』 120: 386-406.   한예섭. 2025. “권영세, 헌재 때리고 '부정선거론' 옹호? ”사전투표제 재고해야””. 「프레시안」. 2월 6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20614341509573 (검색일: 2025. 5. 14.)   Dahl, Robert.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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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2025-05-15조회 : 3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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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③ 계엄 전후 한국 헌정 민주주의의 위기

윤석열 대통령은 왜 비상계엄 선포권을 발동했나? 비상계엄 선포 이전 국회의 연쇄 탄핵 소추권 발동과 대통령의 연쇄 재의 요구권 발동이 한국 헌정질서와 관련하여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및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Ⅰ. 헌정 위기의 표층: 상호 용인 및 권한 자제 규범 붕괴   헌법은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보장하지 못한다. 모든 법률이 본질적으로 공유하는 개념적 공백 및 의미의 모호성 때문에 헌법 조항에만 의존해서는 민주주의의 독재화를 막아낼 수 없다. 성공적인 민주주의에서는 헌법 조항으로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헌법 조항이 생성하는 비공식적 규범이 정치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에 필수적인 비공식적 규범에는 ‘상호 용인(mutual tolerance)’과 ‘권한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있다. 상호 용인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규범이다. 권한 자제는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로서 정치적 권한이 비록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을 인정하는 규범이다.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 상호 용인 및 권한 자제는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일단 민주주의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규범 위배의 심각성이 가시화한다. 상호 용인 및 권한 자제가 정치 행위를 규제하는 규범으로 작동하기를 멈추면 민주주의가 위험에 직면했다는 신호이다(Levitsky and Ziblatt 2018).   한국 헌법에는 정당의 권한 자제 규범을 생성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국회의 행정부 및 사법부 고위 공무원에 대한 탄핵 소추권(헌법 제65조) 혹은 대통령의 국회 의결 법률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헌법 제53조)이 이에 해당한다.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및 사법부 고위 공무원은 권력 남용 및 오용을 범할 경우 국회가 그 직위 박탈을 위협하는 탄핵 소추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여 과도한 행정권 혹은 사법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헌정 규범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회는 급진적 정책 변경을 담고 있는 법률안을 통과시킬 경우 대통령이 그 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여 과도한 입법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헌정 규범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회의 탄핵 소추권 혹은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 모두 실제로 활용하는 경우가 빈번하지 않아야 그 헌법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Helmke, Kroeger, and Paine 2022).   탄핵 소추권 혹은 재의 요구권을 실제로 빈번하게 발동시킨다면 헌법이 내장한 권한 자제 규범이 사실상 붕괴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에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 정당이 권한 자제 규범을 위반한다면, 그 정당은 ‘헌정 압박 전술(constitutional hardball tactic)’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헌정 압박 전술은 입헌적 수단을 무기화(weaponization)하여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권한 자제 규범을 위배하는 정치적 행위를 뜻한다(Tushnet 2025).   한국 헌법은 정당의 상호 용인 규범을 전제하고 있다. 4년마다 실시하는 국회의원 선거(헌법 제42조) 혹은 5년마다 실시하는 대통령 선거(헌법 제70조)를 유예하거나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상호 용인 규범을 위배하는 함의를 갖는다. 마찬가지로 필요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 상태에서 계엄 선포권(헌법 제77조 1항)을 행사하거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헌법 제77조 5항) 발동을 방해하거나, 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헌법 제111조) 결과를 거부하는 일 또한 한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상호 요인 규범을 부정하는 함의를 갖는다.   만약 정당이 상호 용인 규범을 위반하는 정치적 행위에 나선다면, 그 정당은 ‘헌정 압살 전술(constitutional beanball tactic)’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헌정 압살 전술은 입헌적 수단을 무기화하여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호 용인 규범을 파괴하는 정치적 행위를 뜻한다(Shugerman 2019).   [그림 1] 민주화 이후 국회 탄핵소추 발의 및 대통령 법률안 재의요구 건수 출처: ‘탄핵’ 항목 가운데 ‘대한민국의 탄핵 사례,’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탄핵#대한민국 (검색일: 2025년 3월 24일); ‘거부권’ 항목 가운데 ‘대한민국의 거부권,’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거부권 (검색일: 2025년 3월 24일)   [그림 1]은 1988년부터 2024년까지 민주화 이후 36년 동안 국회의 탄핵 소추 발의 건수와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 건수를 연도별로 막대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짙은 회색의 막대그래프가 국회의 탄핵 소추 발의 건수를, 옅은 회색의 막대그래프가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 건수를 각각 보여 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 33년 동안 행정부 및 사법부 고위 공무원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발의는 총 20건으로 연평균 약 0.6건에 불과했다. 2007년과 2020년 각각 3건의 탄핵 소추 발의가 가장 높은 수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2022년 이후 2년 6개월 동안 행정부 및 사법부 고위 공무원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발의는 총 29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이전 시기 1년에 약 0.6건이었던 탄핵 소추 발의 건수가 윤석열 대통령 임기 이후 연평균 약 11.6건으로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3년 11건, 2024년 18건으로 압도적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 건수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 총 16건이었던 반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총 33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이전 시기 연평균 약 0.5건이었던 재의요구가 윤석열 대통령 임기 이후 연평균 약 13.2건으로 30배 가까이 증가했다. 1989년의 4건이 가장 높은 수치였으나, 2023년 8건, 2024년 25건으로 그 기록을 갱신했다.   탄핵 소추 및 재의 요구 건수의 급증에서 나타난 것처럼 반대당과 대통령 모두 권한 자제 규범을 명백하게 위배하면서 헌법 권한의 ‘과다 활용(over-utilization)’에 나섰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권을 발동하기 직전까지 입헌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촉진하는 헌정 규범 가운데 하나인 권한 자제 규범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붕괴하고 있었던 셈이다.   요컨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발동은 국회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반대당의 행정부 고위 공무원에 대한 연쇄 탄핵 소추권 발동과, 대통령의 입법부 법률안에 대한 연쇄 재의 요구권 발동이 ‘상승작용(escalation)’한 하나의 귀결로 이해할 수 있다. 반대당의 탄핵 소추권 과다 활용이라는 ‘헌정 압박 전술’에 맞서 대통령 또한 법률안 재의 요구권 과다 활용이라는 ‘헌정 압박 전술’로 대치하는 국면이 장기간 이어졌다. 비상계엄 선포권 발동은 장기간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대통령의 ‘헌정 압살 전술’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헌정 질서를 정지시키는 역설적 선택을 단행한 셈이다.   Ⅱ. 헌정 위기의 심층: 국민 서사의 양극화   윤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서 ‘헌정 압살 전술’을 다음과 같이 정당화하고 있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윤 대통령은 반대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 대상으로 지목했다.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촉진하는 헌정 규범 가운데 하나인 상호 용인 규범 또한 이미 무너져 있었던 셈이다(Levitsky and Ziblatt 2018: 8).   상호 용인 및 권한 자제 헌정 규범이 붕괴한 원인을 찾자면 보다 장기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1987년 이후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사회 갈등을 억압하는 정치 체제에서 그것을 개방하는 정치 체제로 이행했다. 억눌렸던 시민 대중의 불만이 아래로부터 분출했고 정치 엘리트는 득표를 극대화하기 위한 쟁점을 위로부터 선별했다. 선거를 반복하여 시민 대중의 불만 표출과 정치 엘리트의 득표 전략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한국의 정당 체제는 그 사회의 중대 정치 균열을 내장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는 종족, 인종, 언어, 종교 등 전근대 사회에서 비롯한 정치 갈등의 수원(水源)이 애초에 부재했고, 계급, 도농, 환경, 인권 등 근대 사회가 배태한 정치 갈등의 수준이 비교적 온건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정당이 정책 경쟁의 대립 축으로 세워야 할 전형적 사회 균열이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셈이다. 한국의 민주화가 사회적 차원에서 내란이나 소요 등 커다란 격동 없이 순탄하게 진전한 까닭이다. 다만 한국 사회는 그 대가를 정치적 차원에서 정당의 ‘파괴적 양극화(pernicious polarization)’로 치르고 있다(송호근 2025).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 이후 한국의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선거 경쟁에서 ‘국민 서사(national narrative)’의 당파적 양극화가 전례 없이 심화했다. 보수 정당의 국민 서사에는 북한과의 화해를 도모한 국민을 배척하고, 진보 정당의 국민 서사에는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한 국민을 배척하는 상호 적대의 감정 논리가 횡행했다.   정치 엘리트의 담론 구조에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국민 서사가 서로 상대를 인정하기 않는 듯한 감정 논리를 투사할 때 한국 민주주의에서 정당 경쟁은 파괴적 양극화로 치닫는다. 진보 정당이 집권하면 보수 정당 지지자들의 적대감이 높아지고, 보수 정당이 집권하면 진보 정당 지지자들의 적대감이 상승하는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감정 대립으로 귀결한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규범과 당파주의의 이익이 충돌할 때 다수의 정치 엘리트들은 ‘선(先) 당파주의, 후(後)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행동 규준으로 삼는다.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의 길목에 접어들었다는 징후이다(Kim 2023).   한국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은 내집단과 외집단이 길항(拮抗)하는 민족주의적 구도에 내집단을 정치 엘리트와 시민 대중으로 대치하는 포퓰리즘(populism)적 구도를 혼종(混種)하는 국민 서사를 투사한다.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혼종의 효과는 한국인들을 ‘국민의힘’ 국민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으로 분열시키고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국민 서사의 당파적 양극화에 다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헌정 압살 전술 선택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과거 반세기 동안 공고화한 민족주의적 국민 서사의 양극화에 토대를 둔 보수 및 진보 진영의 헌정 압박 전술 격화 과정에서 출현했다(Cho and Hur 2025).   Ⅲ. 한국 민주주의의 역행: 당파 분열과 당파 정렬   국민 서사의 양극화를 보다 정치(精緻)하게 이해하려면 당파적 양극화를 당파 분열 현상 및 당파 정렬 현상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 당파 분열은 이념 혹은 감정 차원에서 두 개로 갈라진 진영 간 이질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념적 당파 분열은 진보 가치에 동의하면서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진영과 보수 가치에 동의하면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진영 사이 정책적 차이가 커지는 현상이다. 감정적 당파 분열은 보수 정당에 반감을 가지면서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진영과 진보 정당에 반감을 가지면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진영 사이 정서적 차이가 커지는 현상이다. 둘째, 당파 정렬은 이념 혹은 감정 차원에서 두 개로 갈라진 진영 내 동질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념적 당파 정렬은 진보(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진영의 구성에서 진보(보수) 가치에 동의하는 유권자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감정적 당파 정렬은 진보(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진영의 구성에서 보수(진보) 정당에 반감을 가지는 유권자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이다(김정 2022).   [그림 2] 2012년 및 2022년 한국 유권자 당파 분열: 커널 밀도 추정 출처: 이념적 당파 분열: 동아시아연구원 2012년 총선대선 패널 제7차 조사 1번 배경문항 1 및 동아시아연구원 2022년 대선 패널 제2차 조사 6번 배경문항. 감정적 당파 분열: 동아시아연구원 2012년 총선대선 패널 제7차 조사 6-1-3번 문항과 6-1-4번 문항 및 동아시아연구원 2022년 대선패널 제2차 조사 9-1번과 9-2번 문항. 2012년 자료 https://kossda.snu.ac.kr/ (검색일: 2024. 3. 24.) 주: 이념적 당파 분열: 0은 진보 가치에 대한 동의, 10은 보수 가치에 대한 동의의 최댓값을 나타낸다. 감정적 당파 분열: 0은 보수 정당 호감 점수(0-10)에서 진보 정당 호감 점수(0-10)를 감산하여 얻은 당파적 감정 점수(-10-10)를 0-10으로 치환했다. 0은 보수 정당에 대한 반감의 최댓값을, 10은 진보 정당에 대한 반감의 최댓값을 각각 나타낸다.   [그림 2]는 2012년 및 2022년 한국 유권자의 이념적 및 감정적 당파 분열을 커널 밀도 추정으로 도해하여 비교한 결과이다. 왼쪽의 이념적 당파 분열의 횡축에서 0은 진보 가치에 대한 동의의 최댓값을, 10은 보수 가치에 대한 동의의 최댓값을 각각 나타낸다. 오른쪽의 감정적 당파 분열의 횡축에서 0은 보수 정당에 대한 반감의 최댓값을, 10은 진보 정당에 대한 반감의 최댓값을 각각 나타낸다. 0은 보수 정당 호감 점수(0-10)에서 진보 정당 호감 점수(0-10)를 감산하여 얻은 ‘당파적 감정 점수(-10-10)’를 0-10으로 치환했다.   이념적 당파 분열은 2012년과 비교해 2022년 진보 성향 유권자가 약간 증가했고, 중도 성향 유권자는 감소했으며, 보수 성향 유권자가 약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감정적 당파 분열은 2012년과 비교해 2022년 보수 반감 유권자가 약간 증가했고, 중립 감정 유권자는 크게 감소했으며, 진보 반감 유권자가 약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감정적 당파 분열 및 이념적 당파 분열이 진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두 차원의 당파 분열 모두 쌍봉 분포보다는 단봉 분포에 가깝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시각적으로 확인한 한국 유권자의 이념적 및 감정적 당파 분열은 양극화 현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림 3] 2012년 및 2022년 한국 유권자 당파 정렬: 커널 밀도 추정 출처: 정당지지: 동아시아연구원 2012년 총선대선 패널 제6차 조사 7번 문항 및 동아시아연구원 2022년 대선패널 제1차 조사 9번 문항. 나머지는 [그림 2]와 동일하다. 2012년 자료 https://kossda.snu.ac.kr/ (검색일: 2022. 4. 24.).   [그림 3]은 2012년 및 2022년 한국 유권자의 이념적 및 감정적 당파 정렬을 커널 밀도 추정으로 도해하여 비교한 결과이다. 상단의 이념적 당파 정렬의 횡축에서 0은 진보 가치에 대한 동의의 최댓값을, 10은 보수 가치에 대한 동의의 최댓값을 각각 나타낸다. 하단의 감정적 당파 정렬의 횡축에서 0은 보수 정당에 대한 반감의 최댓값을, 10은 진보 정당에 대한 반감의 최댓값을 각각 나타낸다.   이념적 당파 정렬은 2012년과 비교해 2022년 진보 정당 지지 유권자 구성에서 진보 성향 유권자 비율이 증가한 반면 중도 및 보수 성향 유권자 비율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당 지지 유권자 구성에서 보수 성향 유권자 비율은 크게 변화하지 않은 반면 중도 성향 유권자 비율은 증가했고 진보 성향 유권자 비율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진영 유권자 구성 변화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당 지지 유권자 분포와 보수 정당 지지 유권자 분포 사이에 상당한 규모의 중첩을 관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10년 동안 이념적 당파 정렬이 크게 진전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감정적 당파 분열은 2012년과 비교해 2022년 진보 정당 지지 유권자 구성에서 보수 반감 유권자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반면 감정 중립 및 진보 반감 유권자의 비율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당 지지 유권자 구성에서 진보 반감 유권자의 비율은 크게 증가한 반면 중립 감정 및 보수 반감 유권자의 비율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진영 유권자 구성 변화 때문에 진보 정당 지지 유권자 분포와 보수 정당 지지 유권자 분포 사이에 중첩 규모의 축소를 관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10년 동안 감정적 당파 정렬이 크게 진전했다고 말하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 시각적으로 확인한 한국 유권자의 이념적 당파 정렬은 양극화 현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한국 유권자의 감정적 당파 정렬은 양극화 현상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상의 분석이 뜻하는 것은 한국 유권자의 감정적 당파 정렬에서 파괴적 양극화를 관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 엘리트가 국민 서사의 양극화 담론을 투사하는 표적은 지난 10년 동안 상대 정당을 적대하는 감정을 격화해 온 자기 정당의 지지 유권자들이다. 양대 정당 지지 유권자들 사이에 중첩하는 정도가 감소하고 그들 사이의 감정적 거리가 크게 벌어질 때 정당의 득표 전략은 중도 유권자를 설득하는 전략이 아니라 지지 유권자를 동원하는 전략으로 전환한다. ‘중위 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정당이 중앙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으로 분산하는 셈이다. 반대당의 헌정 압박 전술 및 대통령의 헌정 압살 전술이 선거 득표 전략으로 적실성을 띨 수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Merrill III, Grofman, and Brunell 2024).   Ⅳ. 윤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입헌민주주의   [표 1] 박근혜 및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시기 탄핵 찬성 여론 추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시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시기   2016년 12월 2주 2017년 2월 2주 2017년 3월 1주 2024년 12월 2주 2025년 2월 2주 2025년 3월 3주 전체 81% 79% 77% 75% 60% 58% 보수 66% 63% 50% 46% 25% 26% 중도 86% 85% 86% 83% 60% 64% 진보 96% 95% 95% 97% 96% 95% 여당지지 34% 27% 14% 27% 10% 13% 무당지지 72% 71% 69% 79% 63% 51% 야당지지 99% 96% 97% 97% 98% 96% 출처: 갤럽리포트 데일리 오피니언 239호 (2016년 12월 2주), 245호 (2017년 2월 2주), 248호 (2017년 3월 1주), 606호 (2024년 12월 2주), 611호 (2025 2월 2주), 615호 (2025년 3월 3주). https://www.gallup.co.kr/ (검색일: 2025년 3월 24일)   [표 1]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시기 탄핵 찬성 여론 추이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시기의 그것과 비교한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 심판 시기 탄핵 찬성 여론은 2016년 12월 81%, 2017년 2월 79%, 2017년 3월 77%로 각각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시기 탄핵 찬성 여론은 2024년 12월 75%, 2025년 2월 60%, 2025년 3월 58%로 각각 나타났다. 박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 추이와 비교하면,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은 그 절대값이 약 20%포인트 줄어들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탄핵 소추 이후 4개월 동안 박 대통령의 경우 보수 유권자의 탄핵 찬성 비율이 약 16%포인트 줄어든 반면 윤 대통령의 경우 보수 유권자의 탄핵 찬성 비율은 약 20%포인트 줄어들었다.   다른 한편, 탄핵 소추 이후 4개월 동안 박 대통령의 경우 진보 유권자의 탄핵 찬성 비율은 96%에서 95%로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윤 대통령의 경우 또한 97%에서 95%로 탄핵 찬성 비율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탄핵 여부를 물었을 때는 보수 유권자의 상당수가 ‘선호 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에 나섰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그 이후 보수 진영이 연쇄 대중 집회를 통해 ‘정보 방류(information cascade)’ 효과를 발생시키자 보수 유권자가 ‘선 당파주의, 후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표출하고 행동 규준으로 채택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헌정 파쇄 전술이 보수 유권자의 극우 이동과 관련한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s)을 줄이고 민족주의적 국민 서사의 양극화를 촉진한 귀결이다. 감정적 당파 정렬이 그 정치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부정선거 담론을 기초로 한 선거 불복 논리에서부터 좌파 사법 카르텔 담론을 토대로 한 탄핵심판 불복 논리까지 헌정 질서를 그 기저에서 부정하는 헌정 파쇄 전술의 대중화가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및 대법원의 대통령 내란 혐의 형사 판결 모두 불복할 수 있다는 보수 유권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보수 정당이 편승할 수밖에 없는 연유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중재자로 두고 보수 유권자와 보수 정당이 일종의 ‘파우스트 거래(Faustian bargain)’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보수 유권자 혹은 진보 유권자 어느 쪽도 폭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것과 관련한 정치적 부담이 가벼워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보수 진영 및 진보 진영에서 상승적으로 채택한 헌정 압박 전술의 상승작용 때문에 이미 권한 자제 규범은 상당 수준 붕괴했다. 윤 대통령이 선택한 헌정 압살 전술의 효과 때문에 상호 용인 규범 파괴와 관련한 정치적 비용을 낮게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윤 대통령이 선택한 헌정 압살 전술 및 그 장기 효과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의 역행(democratic backsliding)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   참고 문헌   김정. 2022. “한국 유권자의 정치 양극화와 투표 선택: 2012년 및 2022년 대통령 선거 비교”. 『한국과 국제정치』 38: 169-198.   송호근. 2025. 『적대정치 앤솔러지: 한국 민주주의 무너지다』. 파주: 나남.   Cho, Joan E., and Aram Hur. 2025. “The Perils of South Korean Democracy.” Journal of Democracy 36, 2: 38-46.   Helmke, Gretchen, Mary Kroeger, and Jack Paine. 2021. “Democracy by Deterrence: Norms, Constitutions, and Electoral Tilting.”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66: 267-534.   Kim, Jung. 2023. “South Korea.” in Rachel Beatty Riedl et al. (eds.) Opening Up Democratic Space. Original Research: Case Studies. Washington, D. C.: USAID.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Crown.   Merrill III, Samuel, Bernard Grofman, and Thomas L. Brunell. 2024. How Polarization Begets Polarization: Ideological Extremism in the US Cong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Shugerman, Jed Handelsman. 2019. “Hardball vs. Beanball: Identifying Fundamentally Antidemocratic Tactics.” Columbia Law Review 119: 85-122.   Tushnet, Mark. 2025. “Constitutional Hardball.” in Richard Bellamy and Jeff King (eds.), Cambridge Handbook of Constitutional Theor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 김정_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김정 2025-05-15조회 : 2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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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② 한국 대통령제의 민주주의 퇴행 요인

Ⅰ. 서론: 위기는 권력구조에서 비롯되었는가?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선포한 비상계엄은 단지 한 정권의 통치 실패나 일시적 정국 혼란으로 이해되기 어렵다. 이 사건은 곧이어 극심한 진영 갈등을 겪으면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일련의 헌정적 위기로 확대되었고, 한국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언론이 한 목소리로 지적하듯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개인적 특성의 오류로 발생한 사건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을 단순한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제의 제도적 설계, 정당운영 구조, 정치문화의 특성 그리고 이를 운용하는 정치 행위자들의 통치 행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민주주의의 기능을 마비시키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반복되어온 '강한 대통령-취약한 정당' 구조와, 포퓰리즘적 감정 동원에 의존하는 대결 정치의 반복은 대통령제라는 제도가 가진 위험성과 결합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켜왔다.   이 글은 첫째, 대통령 권력의 구조적 집중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둘째, 정당과 국회는 왜 독립적 정치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는지, 셋째, 이러한 제도 운영이 실제 정치에서 어떠한 민주주의 퇴행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단계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Ⅱ. 민주주의의 퇴행 혹은 위기?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민주주의 퇴행(democratic backsliding)과 민주주의 붕괴(democratic breakdown)는 구분된다. 민주주의 퇴행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복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정이 내부에서 서서히 잠식되는 체제 변동이다. 시민의 지지를 받고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한 정치인들이 합법적 제도 범위 내에서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훼손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행정부 권력이 비대해지고, 야당 괴롭힘이 본격화되며, 국가권력의 선거 개입도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Bermo 2016).   한국 역시 민주주의 퇴행의 틀 내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퇴행의 전형적 조짐이 감지되었다. 행정부의 권력은 커졌지만 의회의 견제에 대한 행정부와 대통령의 반응성은 떨어졌다. 검찰을 활용한 야당 수사는 정치권을 요동치게 했다. 그 결과 민주적 선거 과정에 행정부의 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했다(권혁용 2023). 심각한 것은 이 모든 민주주의 퇴행의 과정이 진영 정치의 형식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서적 양극화는 정당 간 이념적 대립을 대체했고, 선거는 이 진영 간 감정의 대리전으로 변질되었다. 송호근(2025)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시민은 정치의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참여 민주주의는 기능 불능 상태에 빠진다. 게다가 대통령과 야당 간에 법률안 거부권과 탄핵안을 두고 벌어지는 격한 대결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암묵적 규범이었던 제도적 자제와 상호존중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양쪽은 자신에게 주어진 법률적 권한을 거침없이 행사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이념적 양극화에 포획된 결과, 대결적이고 더 나아가 적대적이기까지 한 정치환경은 협치와 타협이 들어설 공간을 앗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틀 안에서 논의되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새로운 차원으로 몰아갔다. 그 동안의 민주주의 퇴행 논의는 모두 합법적 수단을 동원한 점진적 퇴행이라면,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 붕괴 유형에서 발견되는 친위 쿠데타 시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한 민주주의 전복 시도였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민주주의 퇴행 논의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결과적으로 비상계엄 시도는 시민과 국회에 의해 저지되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의 지지로 당선된 정치인도 권력 확대를 위해 친위 쿠데타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모범적 민주화 사례였던 한국 민주주의가 점진적 퇴행도 아니고 폭력적 친위쿠데타에 의해, 짧은 시간이나마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비상계엄 이후 탄핵 과정에서 확인된 정황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더 어렵게 몰고 가고 있다. 정서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가이드라인을 쉽게 넘나들었다. 집권 여당이 노골적으로 부추긴 탓도 있지만, 야당 정치인에 대한 혐오는 명백히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의 탄핵을 수용하지 않는 흐름으로 여론조사에 감지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수사 및 체포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격앙된 일부 극단세력이 폭력을 사용해 법원을 침탈하기까지 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과정에서 극단적 세력에게 포획 당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은 이들을 명백히 선동했다. 헌법기관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극단적 세력이 주류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을 경유해 권력의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측면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Ⅲ. 대통령제의 제도적 취약성과 민주주의의 후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나 구조의 문제인가, 아니면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결함에서 비롯된 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분명 갈린다. 대통령제의 일반적 특성 또는 한국 대통령제의 고유한 성격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 개인의 통치 역량 부족이나 리더십 결함에 주목하는 접근도 존재한다.   우선 구조적 접근을 우선시하는 입장이 있다. 최광은(2025)은 대통령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병리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핵심원인이라고 파악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쿠데타 시도는 특별한 성격을 가진 어떤 대통령의 개인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과 이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인 입법부와 사법부는 우리 헌법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지적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해법은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었다.   반면 윤여준/한윤형(2025)의 접근법은 반대다. 책임 있고 유능한 리더가 등장하면 제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문제는 오히려 통치 철학이나 행정 능력이 부족한 정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는 구조이다. 해법은 제도 개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올바른 통치자의 선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자격 리더’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혼란도 가중된다는 것이 이들의 관찰이다.   송호근(2025)은 이 두 입장을 종합하는 제3의 입장을 제시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독주,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 윤석열 정부의 군사적 비상조치 시도 모두가 대통령제라는 동일한 제도 안에서 반복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도의 병리와 개인의 문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박상훈(2018) 역시 대통령 개인의 행태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고 반복시키는 구조 자체, 즉 청와대 중심 통치 구조와 정당의 종속성 또한 반드시 함께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위자적 관점과 구조적 관점은 비상계엄 선포를 해석하는 입장에서도 뚜렷하게 대비된다. 두 관점의 원인 규명도 다르지만, 이에 따라 강조되는 제도 개선의 우선순위와 재발 방지 방향도 크게 달라진다. 행위자적 관점에서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미숙, 소통 능력 부재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소통능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정치지도자의 양성과 발굴을 대안으로 제시할 것이다. 반면, 구조적 접근법은 비상사태 관련 헌법 조항의 미흡함과 청와대 중심의 통치 방식을 근본 원인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과 법률 정비를 해결책으로 볼 것이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논쟁도 유사한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다. 대통령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보는 입장은 그 집중된 권력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한다. 이들에 따르면 다른 대통령제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 대통령은 헌법적으로 과도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문제의 핵심은 막강한 대통령 권한이 아니라 취약한 정당정치에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들의 관찰로는, 한국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은 지나치게 광범위하지 않다. 양측의 관점 차이와 무관하게, 역설적이게도 한국 정치는 임기 초반에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으로, 중후반에는 '취약한 대통령'의 모습으로 현실에 존재하게 된다 (Bae and Park 2018).   다른 대통령제 국가들의 대통령 권한과 비교했을 때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고 할 만큼 월등히 강한가? 슈거트와 캐리(Shugart and Carey 1992)의 지표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비교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지표이다. 이 지표는 대통령의 권한을 입법적 권한과 비입법적 권한으로 구분한 후, 각 항목을 4점 척도로 계량화했다. 이들이 평가한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입법적 권한이 9점이고 비입법적 권한이 2점으로서 총 11점이다. 대통령 권한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진 중남미 국가들은 브라질 19점, 아르헨티나 19점, 칠레 14점 등이다. 미국은 12점으로서 한국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적으로 ‘제왕적’일 만큼 강하지 않다. 한국 대통령의 권한을 헌법적 차원에서 ‘제왕적’이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명문화된 법적 권한보다 실제 정치적 영향력(de facto)이 훨씬 더 막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공천 개입, 예산 편성 주도, 인사 통제, 여론 형성 등 공식적 권한을 넘어서는 다양한 비공식적 수단을 활용해 정치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여당과의 관계에서는 당 대표를 넘어서는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뿐 아니라 당내 경선 구조 전반에 개입할 수 있다. 아울러, 실질적인 국정 운영이 장관이 아닌 청와대 수석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청와대 정부’ 역시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대통령의 권력 집중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법적으로는 중간 수준의 권한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더라도, 실제 정치 작동 방식에서는 구조적으로 매우 강한 통치력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는 헌법에 명시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서, 실제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속에서 증폭된다. 제도와 리더십 중 어느 하나에 원인을 귀속시키기보다, 양자의 결합 속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악순환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허용된 법적·비법적 권한의 총합,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제도,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정치 행위자의 전략이 결합되며 한국 민주주의는 반복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Ⅳ. 대통령제와 집권당의 관계   한국 대통령은 헌법상 권한 외에도 다양한 비공식적 수단을 통해 집권당을 장악해왔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3김정치” 시기까지 대통령은 집권당 총재로서 당과 정부 모두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비록 노무현 정부 이후 당정분리 원칙이 강화되었지만,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구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집권당 장악은 주로 공천권, 인사권, 예산편성권이라는 세 가지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먼저, 공천권은 공식적인 대통령 권한이 아니다. 다만 실제 정치 현장에서는 공천권이 강력한 집권당 통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지역 정치 엘리트들은 공천을 정치적 영향력 유지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그 결과 국회의원 후보들은 본선 경쟁보다 당내 공천 과정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의중이 자연스럽게 공천 과정에 반영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둘째, 대통령의 인사권은 집권당 통제의 또 다른 핵심적 경로로 작용한다. 한국 대통령은 장차관급 공무원부터 공공기관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사를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다. 특히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임이 가능한 제도적 특성으로 인해, 대통령의 인사권은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통령제 본래의 취지를 크게 훼손한다.   마지막으로, 예산편성권 역시 대통령이 집권당을 장악하는 중요한 통로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순수 대통령제와 달리, 대통령이 예산안 편성의 실질적 주체로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각 지역구 의원들에게 예산 배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의원들에게 지역 예산은 재선 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쪽지예산' 같은 관행을 통해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구현되곤 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이명박 정부의 당·청 일체화 정책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비주류 정치인 공천 배제 사례를 통해 잘 드러났다(Hur 2017).   결론적으로, 한국에서는 명목상 그리고 제도상으로는 당정분리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대통령이 공천권, 인사권, 예산편성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집권당을 통제하며, 대통령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메커니즘이 구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 집중은 한국 정치에서 선거의 중요성을 비정상적으로 증폭시키고, 정치적 긴장과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원인이 된다. 대통령이 인사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선거 결과에 따라 국가 자원과 주요 인적 구성이 전면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낳는다. 그 결과, 선거는 타협과 경쟁의 장이 아니라 생존을 건 전면전으로 전환되고, 정당은 협력보다 정권 장악에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에서의 협치는 사라지고, 정치의 논리는 감정 동원과 적대의 구도로 흘러간다.   정권 교체 시 반복되는 전 정권 인사에 대한 ‘적폐’ 규정과 수사·처벌 역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형성한다. 이는 상대 정파를 범죄집단으로 간주하는 적대적 인식을 강화하고, 여야 모두 충성과 투쟁의 정치를 반복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실제로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정당 지지자 간 사회적 갈등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는데(Silver 2022), 이는 권력구조의 제도적 설계와 극심한 진영 대립이 결합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Ⅴ. 민주주의 퇴행과 반복적 리더십 위기   한국 대통령들은 임기 중후반에 심각한 국정 동력 상실과 지지율 하락을 경험한다. 이른바 '레임덕' 현상은 제도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단임제로 인해 대통령은 장기적인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 어렵고, 의회와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결정적으로 빈번한 총선과 지방선거는 대통령 국정 운영의 동력을 급격히 약화시킨다. 대통령의 권력과 영향력은 취임 초기에 절정에 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연적으로 약화된다. 초기에는 과감한 개혁정책 추진이 가능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정치적 고립과 방어적 국정 운영에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대통령 임기와 의회 선거 일정 간의 구조적 부조화에서 확산된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국회 선거의 분리로 인해 자주 분점정부 상황을 초래한다. 미국 대통령제와 유사해 보이지만, 한국 정치의 취약한 정당 제도와 심각한 내부 파벌 갈등으로 인해 정치적 갈등과 교착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대통령의 국정 주도 의지와 의회의 견제 기능 사이의 충돌은 일상적이며, 여당 내부 분열이나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맞물릴 경우 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대통령은 의회의 견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행정명령과 시행령 등 대안적 수단을 활용하거나 여론 동원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O’Donell 1994). 이러한 접근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인 권력분립과 의회의 위상을 훼손하면서 수평적 책임성을 저하시키고, 대통령 중심의 권력 집중을 심화시킨다. 결과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균형 있는 견제 기능은 무너지고,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깊어진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국민에 의해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형태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책임성이 전제된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성은 주로 대통령과 유권자 사이의 수직적 책임 구조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회와 사법부, 언론과 같은 수평적 견제기관의 실질적 통제력은 제한적이다. 특히 대통령이 높은 여론의 지지를 기반으로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정책 결정을 강행할 경우, 입법부와 정당은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권력분립이라는 대통령제의 민주적 핵심 원칙은 약화되고 민주주의는 위기와 직면한다(박상훈 2018).   현대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 참여 이상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합리적이고 공개적인 토론을 중시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는 이성적이고 심의적인 토론이 감정적이고 적대적인 정치 대결로 대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여론을 활용하여 반대 세력을 압박하거나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할 때, 정치적 담론은 합리성보다는 감정적 대립으로 전락한다. 송호근(2025)은 이러한 현상을 '정서적 동원의 정치'라고 지칭하면서, 숙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Ⅵ. 제도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의 과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행위자, 제도, 구조, 문화적 차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그 양상이 매우 복잡하다. 제도 개혁에 접근할 때는 단순한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있어 개헌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 개헌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한 영역, 그리고 개헌해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를 건드리지 않고도 현행 법률들의 제개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개혁 영역들이 분명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득표율과 의석률 간 비례성을 높이고 선출직 정치인들의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정당체계의 안정을 도모하고 승자독식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핵심 영역이다.   정당법 개정 역시 중요하다. 현행 정당법의 과도한 규제는 각 지역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결사체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전국 정당 외에도 지방선거 참여만을 목적으로 하는 지역정당제는 한국 정치체제의 분권화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직선거법과 정당 내부 규정의 개정을 통해 공천 결정과정을 보다 민주적으로 전환한다면, 대통령과 집권당 사이의 수직적 종속구조 완화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 개정 없이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대통령-총리-의회로 연결되는 정치 주체 간의 권한 설정은 권력구조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비상사태 대응권한, 군 통수권, 예산편성권 등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적 권한의 수정은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대통령-국회의 임기 불일치 문제도 개헌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할지, 중간 평가의 형식으로 국회의원 선거를 정할지 등은 대통령 소속 정당의 원내 권력분포를 좌우할 만한 결정적 요인들이다. 동시선거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지만, 대통령-국회 관계의 책임성을 분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중간선거는 대통령 권한 행사에 제약요인이 될 것이므로 권력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분점정부에서 책임의 불명확함으로 인해 교착상황이 지속되는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정부제 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권력구조를 대폭 개정할 경우 정치권의 신뢰회복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결국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제도적 개혁은 단선적일 수 없다. 헌법 차원의 개정 노력과 법률 차원의 개정 노력이 동시에 차원을 달리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Ⅶ. 결론: 민주주의 위기의 총체적 진단과 대응 전략   한국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는 어느 한 가지 이유로 축소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다. 따라서 특정 대통령의 도덕성 부족이나 리더십 결핍 같은 개별적이고 인물 중심의 분석만으로는 이 위기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현 상황은 대통령제의 내재적 문제, 한국 정치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개인적 역량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은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권력 구조에 있는가, 아니면 지도자의 무능력에 기인하는가”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양자택일적 접근으로는 충분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이론적으로는 삼권분립을 추구하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권력 집중 구조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하며, 대통령 중심의 고립된 의사결정과 경직된 국정 운영 방식을 초래하고 있다.   이 분석은 민주주의 위기의 여러 층위에 초점을 맞춘다. 과도한 대통령 권한 집중과 견제 장치의 무력화, 정당의 제도적 미성숙과 대통령 중심 운영, 반복되는 리더십 위기와 선거 주기의 부조화, 감정 기반 동원 정치의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 정치가 이상적 민주주의 모델에서 상당히 벗어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전략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개헌 없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정치 행위자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와 입법을 통해 정당 민주화를 실현하고, 시민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개헌이 불가피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인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하에 권력구조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대통령-국회 관계의 조정, 의원내각제나 이원정부제의 검토, 선거주기 통일 여부, 불신임 투표제 도입 등이 그 예이다. 셋째, 어떤 제도 개편으로도 단기간 내 해결하기 어려운 문화적 병목, 즉 정치인들의 제도적 절제와 상호존중의 결여, 부정적 당파성에 기대고 있는 정치 양극화, 감정 동원 정치 등에 대해서는 교육, 시민운동, 공론장 복원 등 장기적 전략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는 제도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문화와 태도, 그리고 제도와 현실 간의 끊임없는 조율 속에서 구현된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실천과 조율이 실패해 온 결과이며, 그 극복은 제도, 구조, 문화를 함께 아우르는 총체적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   참고 문헌   권혁용. 2023.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 『한국정치학회보』 57, 1: 33-58.   박상훈. 2018. 『청와대 정부』. 서울: 후마니타스.   송호근. 2025. 『적대 정치 앤솔러지』. 파주: 나남출판.   윤여준, 한윤형. 2025. 『대통령의 자격』. 서울: MG채널.   최광은. 2025. 『대통령제의 종언: 내란을 넘어 제7공화국으로』. 평택: 정직한모색.   최장집. 2003.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울: 후마니타스.   Bae,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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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O'Donell, G. A. 1994. “Delegative democracy.” Journal of Democracy 5, 1: 55-69.   Samuels, D. J., and Shugart, M. S. 2010. Presidents, Parties, and Prime Ministers: How the Separation of Powers Affects Party Organization and Behavio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hugart, M. S., and Carey, J. M. 1992. Presidents and Assemblies: Constitutional Design and Electoral Dynam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Weyland, K. 2020. Populism: A Political-economic Approac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배진석_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배진석 2025-05-15조회 : 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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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① 서론: 민주주의 퇴행의 세계적 확산과 한국

Ⅰ. 민주주의 퇴행의 세계적 확산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행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레짐 유형 분류를 제시하여 연구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두 가지 민주주의 관련 글로벌 보고서가 있다. 첫째는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소재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매년 3월에 발간하는 보고서이다. 2025년도 보고서는 세계 179개 국가를 조사했는데, 세계 시민 개인이 향유하는 민주주의의 수준은 1985년 수준으로, 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으로 보자면 1996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한다(V-Dem Institute 2025). 동 연구소 학자들은 지난 25년을 ‘독재화의 제3의 물결(Third Wave of Autocratization)’이라고 표현한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깨끗한 선거, 법치 분야에서 퇴행이 두드러지며, 지역적으로는 동유럽,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의 퇴행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한다. 이러한 퇴행의 결과, 2024년도에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88개국)가 전제주의 국가(91개국)보다 적어졌고, 전체 조사 지역 인구의 72%가 독재주의 치하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민주주의 국가 군에서도 자유민주주의는 29개국에 불과해 4개의 레짐—자유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 선거독재주의, 폐쇄독재주의—가운데 가장 적은 것이 되어 버렸다.   둘째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매년 3월에 발행하는 Democracy Index 보고서이다. 2025년 보고서는 세계 민주주의 지수 평균점이 지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분석하며, 특히 시민의 자유,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 법치 영역에서의 퇴행 추세를 보여준다(Economist EIU 2025). 이러한 지속적 퇴행의 결과 2024년도 기준으로,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는 25개국으로 167개 조사 대상 국가 및 영토의 15%, 조사 대상지 인구의 6.6%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는 46개로 조사 대상의 27.5%, 인구의 38.4%를 차지한다. 완전하든 결함이 있든 두 종류의 민주주의를 합치면, 전체의 43%, 인구의 45%에 해당한다. 한편, ‘권위주의 레짐(Authoritarian Regime)’의 숫자는 60개로 조사 대상지의 35.9%, 인구의 39.2%이다. 나머지 ‘하이브리드 레짐(Hybrid Regime)’은 36개국으로 조사 대상지의 20.6%, 인구의 15.7%를 차지한다.   이렇게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가 줄어드는 세계적 추세는 민주주의 퇴행 연구를 활성화시켰다. 일군의 연구자들은 민주주의 체제가 과거처럼 군사 쿠데타로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형태보다는 점진적 퇴행 과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선거를 치르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해치는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적 연구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Bermeo는 민주주의 퇴행을 세 가지 유형으로 말한다(Bermeo 2016: 10). 첫째는 ‘언약적 쿠데타(promissory coups)’로, 선출된 정부를 내쫓으면서 그 명분은 민주적 법질서를 방어하기 위함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언약적 쿠데타의 주도 세력은 앞으로 선거를 치러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대표적 사례로 태국이나 미얀마에서의 군사 쿠데타를 들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2021년 2월 1일에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선거를 약속했지만 벌써 5년째 선거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 둘째는 ‘행정부의 비대화(executive aggrandizement)’로 정권 교체 없이 기존의 선출된 정부가 반대 세력 약화를 위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다. 보통은 먼저 입법부나 사법부를 장악해 반대 세력 척결에 이들을 이용한다. 터키나 헝가리를 비롯해 선거를 치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퇴행의 대부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전략적으로 ‘선거를 조작’하는 것으로 과거의 부정선거와는 다른 교묘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여기에는 선거의 공정한 기회를 후보자에게 주지 않거나, 미디어 접근을 방해하거나, 정부 자금을 여당 후보 캠페인에게만 지급하거나, 선거 등록을 어렵게 만들거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자기 편을 심어 두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복수가 결합하여 발생한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네트워크 학자들은 민주주의 퇴행과 복원의 과정에 주목한 연구들을 내놓고 있다. 그 대표적 학자인 Lührmann은 독재화 단계의 진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독재화 위험을 높이는 구조적, 맥락적 도전들이다. 이 단계에서는 경제적 위기, 불평등, 이민 문제, 정치적 양극화, 소셜미디어 등을 둘러싼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다. 이때 민주적인 정당들이나 민주적 과정이 결여되어 있고, 시민들의 민주적 규범이 약하면 두 번째 단계인 반다원주의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반다원주의적 정당과 지도자들이 유권자 동원에 성공해 선거에서 이기면 독재화 시초(onset autocratization)가 일어난다고 본다. 그런데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시민, 시민집단, 정당 등 독재화에 반대하는 결집이 일어나면 퇴행을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복원력이 없으면 마지막 단계인 민주주의의 붕괴(democratic breakdown)에 이르게 된다(Lührmann 2021).   퇴행의 반대 움직임인 복원력의 차원에서는 독재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내는 ‘초기 복원력(onset resilience)’과 독재화가 진행되어도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은 ‘붕괴 복원력(breakdown resilience)’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Boese 등의 연구는 1900년부터 2019년 사이 64개 민주주의 국가의 4,372개 에피소드를 분석했는데, 다행히 98%에 이르는 대부분의 경우 독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화가 일단 발생하면 민주주의 치사율이 커서, 19개 즉 23%의 경우만이 민주주의 붕괴를 피할 수 있었음을 발견한다. 흥미롭게도 이들 64개 에피소드의 6할이 냉전 종식 이후인 1993년부터 일어났다. 이들 연구는 민주적 복원력을 돕는 요인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는데, 사법부의 견제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대로 퇴행을 막고, 퇴행이 일어나더라도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경제 발전은 퇴행이 시작되지 않게 하는 단계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일단 퇴행이 시작되면 경제가 발전한 나라든 아니든 이를 저지하는 데 차이가 없었다. 이들 연구는 퇴행을 저지해 민주주의 붕괴를 막는 데에는 지리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웃에 있고, 오랜 민주화 경험의 역사가 도움이 되었다는 점도 발견한다(Boese et al. 2021).   한국의 사례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퇴행과 복원을 연구하는 데 상당히 의미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퇴행의 움직임과 복원의 움직임은 길항 관계에 있다. 어떻게 방향을 전환하고 어떻게 한 방향의 힘을 몰아가는지, 한국은 주요 사례로 국제적 연구에서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Ⅱ.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   작년 말 세계가 주목한 선진 민주국에서의 퇴행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한국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였기에 계엄령 선포는 국제사회에서도 충격적 사건이었다. 계엄령 해제 이후 한국은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하고 선거를 다시 치러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복원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양분된 대중의 대규모 시위, 법적 절차에 관한 시비, 최초의 법원 난동 사건 등 크나큰 상처를 한국 민주주의에 남겼다. 위에 언급된 보고서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보고서는 1990년대 초부터 자유민주주의로 분류되던 한국을 선거민주주의(세계 41위)로 분류했다. 이코노미스트 보고서도 한국을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세계 32위, 아시아 5위)로 분류했다. 동 보고서는 오랜 기간 한국 민주주의의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 시민 자유는 높게 평가해 왔지만 정치문화는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해 왔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일으키는 요인들이 많겠지만, 국가 권력기관의 차원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정당 간 대립에 따른 입법부 마비, 정치의 사법화, 사법부의 정치화 등의 문제점이, 사회 일반의 차원에서는 정치적 양극화, 사회 갈등 심화, 허위정보 확산, 소수 극단주의 세력의 대두 등이 지적된다. 동시에 퇴행을 저지하는 복원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도 능동적 시민 참여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복원력의 원천이 되어 왔고, 헌법질서 수호에 대한 존중은 퇴행의 한계를 씌워주는 병마개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한국인의 민주화 쟁취에 대한 국민적 자존심 없이는 이러한 퇴행 억지력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계엄령과 이후 혼란스러웠던 수습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경고음을 울렸다.   ‘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연구 시리즈는 이러한 경고음에 대응하기 위한 학문적 차원의 노력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 민주주의 퇴행을 제대로 진단해야 효과적인 해결 방법도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서 권력구조를 바꾸자거나 선거법을 고쳐 정치적 양극화를 벗어나자는 등 제도 개혁에 초점을 둔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개혁이 과연 정당이나 정치인의 행태를 바꿀 수 있을지, 정치문화를 고쳐 나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네 명의 학자들은 그러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제도와 행태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리즈 첫 편인 ‘한국 대통령제의 민주주의 퇴행 요인’에서 배진석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주주의 퇴행 현상이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분석한다.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그에 따른 헌정 위기는 대통령제라는 정치 제도의 구조적 속성, 정당과 시민사회의 비대칭적 발전,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가 결합되면서 발생한 복합적인 결과라고 진단한다. 국제비교 관점에서 한국 대통령제는 헌법적 권한 측면에서는 제왕적이라고 할 만큼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집권당 의원 공천, 예산, 인사, 여론 등을 통해 입법·행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청와대 중심 통치, 수직적 정치 구조, 분점정부 하의 정치적 교착, 단임제의 경직성, 이원적 정통성 충돌 등은 한국 대통령제의 민주주의 퇴행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로 인해 대통령 권력에 대한 제도적 책임성 요구와 견제는 취약하고, 정당은 대통령의 선거 기계로 전락하며, 시민은 감정적 동원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 정치 양상이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도 개혁의 이중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개헌 없이도 달성할 수 있는 수직적 권력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정당 내 민주화, 공천 과정의 투명성 확보, 시민 참여 확대를, 둘째, 헌법 개정을 통한 과제로는 대통령-국회 사이의 권한 조정, 비상권한 제한, 선거 주기 일치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제도, 구조, 정치문화는 서로 결합되어 있기 마련이라 퇴행 요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 재설계, 행동으로 드러나는 실천, 민주주의 문화 확산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시리즈 두 번째 편 ‘계엄 전후 한국 헌정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김정 교수는 계엄 전후의 헌정 위기를 헌법 조항이 생성하는 비공식적 규범, 즉 상호 용인과 제도적 권한 자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저자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발동은 국회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야당의 행정부 고위 공무원에 대한 연쇄 탄핵 소추권 발동과 이에 맞선 대통령의 입법부 법률안에 대한 연쇄 재의 요구권 발동이 상승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는 양측의 ‘헌정 압박 전술’이 장기화되면서 대통령이 발동한 비상계엄 선포는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헌정 압살 전술’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술의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 반세기 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이 격화되는 선거 경쟁에서 ‘국민 서사(national narrative)’를 당파적으로 양극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양대 정당 지지 유권자들 사이에 중첩하는 정도가 감소하고, 그들 사이의 감정적 거리가 크게 벌어지는 정서적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정당의 득표 전략은 중도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야당의 헌정 압박 전술 및 대통령의 헌정 압살 전술이 선거 득표 전략으로 적실성을 띨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양 진영의 이러한 전술로 인해 제도적 권한을 자제해야 한다는 민주적 규범이 상당 수준 붕괴하게 되었고, 윤 대통령이 선택한 계엄령은 상호 용인 규범을 파괴하는 정치적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내게 되어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고 저자는 예상한다.   시리즈 세 번째 편 ‘한국 정치 엘리트와 민주주의 퇴행’에서 박선경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성격을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로 규명한다. 즉, 대중의 인식 변화나 행동 탓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키우고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정치 엘리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 엘리트의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 후안 린츠(Juan Linz)가 제시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분류를 사용한다. 부정선거 주장을 믿고 퍼뜨리는 정치인이 국민의힘에 상당수 있었고, 서부지법 난동사태의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정치인이 극소수였지만 이 당 소속이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당시 여당에 더 많았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가 발생하게 된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제시한다. 첫째는 현상적 원인이다. 반복된 수도권 총선 패배로 인해 보수정당 내 중도 성향 정치인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지역 기반 강경파 정치인이 당을 주도하게 되면서 당내 민주적 자정 기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초당적인 교류와 정치학습 기회의 축소이다. 국회의원 연구단체 현황 분석을 통해 초당적 교류와 학습기회가 줄었음을 확인한다. 셋째는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이다. 소수의 강성 지지층과 편향된 일부 뉴미디어의 압박으로 인해, 정치인은 다수 시민이 아닌 소수 극단적 집단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비상계엄 이후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들은 이를 활용해 정당 내 입지를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시리즈 네 번째 편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아래로부터의 퇴행?’에서 강우창 교수도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이 ‘아래로부터의 퇴행’보다는 ‘위로부터의 퇴행’에 있다고 본다. 후자가 정치 권력을 가진 엘리트, 특히 행정부 수반의 권력의 강화나 확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전자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거나 민주적 체제에 대해 규범적 지지를 보내지 않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일곱 차례의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해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다. 그 결과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꾸준하게 상승해 왔고, 최근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유일한 게임의 규칙’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다만, 산업화 세대 남성, 밀레니얼 세대(M세대) 남성, Z세대 남성들의 경우 2025년 조사에서 과거 조사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감소하고 독재에 대한 지지는 증가했다. 그러나 X세대 남성, M세대와 Z세대 여성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여 전반적인 응답 비율에서는 큰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M세대 남성과 Z세대 남성들의 민주주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고, 특히 계엄 국면에서 상당한 감소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6-7할가량이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견고한 지지는 위로부터의 퇴행을 극복해 나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Ⅲ. 앞으로의 연구 과제   이 연구 시리즈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대통령 탄핵이 8년 사이 두 번이나 발생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외형만 보고 “K-민주주의”라는 말까지 만든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보수정당은 탄핵된 대통령이 모두 보수정당 출신이라는 점을 뼈아프게 성찰하고 보수 대개혁과 재건에 나서야 한다. 진보정당도 입법부 독재라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자당의 힘을 절제하고 경쟁 관계의 정당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 퇴행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모든 민주주의 퇴행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를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법과 제도 개선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위기마다 민주주의 복원의 원동력이 된 대중 시위도, 퇴행 이후의 길거리 동원 견제에서 나아가 퇴행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치 참여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여야의 입장은 바뀌게 마련이고 대중의 지지도 변화하기 마련인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단기적인 당파적 이익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이고 초당적인 정치개혁에 나서서 그야말로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가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실증적인 연구 과제가 되길 바란다.   또한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퇴행에도 주목해야 한다. 학술적으로는 국가 간 달리 관찰되는 민주주의 퇴행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가려내는 비교 연구가 필요하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복원이 이루어지는 여건과 그렇지 않은 여건을 가려내는 일도 중요하다. 2025년이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되돌려 건강한 민주주의로 복원하는 해가 되길 소망한다. ■   참고 문헌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 1: 5-19.   Boese, Vanessa A., Amanda B. Edgell, Sebastian Hellmeier, Seraphine F. Maerz, and Staffan I. Lindberg. 2021. “How democracies prevail: democratic resilience as a two-stage process.” Democratization 28, 5: 885-907.   Economist EIU. 2025. “Democracy Index 2024: What’s wrong with representative democracy?” https://www.eiu.com/n/campaigns/democracy-index-2024/ (검색일: 2025. 5. 14.)   Lührmann, Anna. 2021. “Disrupting the autocratization sequence: towards democratic resilience.” Democratization 28, 1: 22-42.   V-Dem Institute. 2025. Democracy 2025: 25 Years of Autocratization - Democracy Trumped? March 2025. https://www.v-dem.net/documents/61/v-dem-dr__2025_lowres_v2.pdf (검색일: 2025. 5. 14.)     ■ 이숙종_동아시아연구원 시니어펠로우, 성균관대학교 특임교수.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DRN)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hspark@eai.or.kr  

이숙종 2025-05-15조회 : 2737
논평이슈브리핑
[ADRN Issue Briefing] Marcos-Duterte Alliance: Of Broken Ties and Vows

In the Philippines, political alliances are often driven by personalistic ties and mutual benefits rather than ideological alignment. The alliance between President Ferdinand “Bongbong” Marcos Jr. and Vice-President Sara Z. Duterte-Carpio exemplifies this, with both camps leveraging their regional strongholds and familial legacies to maintain political dominance.   Heralded in 2022 as the “Uniteam,” the Marcos-Duterte tandem epitomized the strategic coalition-building often necessary in a fragmented political environment characterized by strong regional identities and political dynasties. This coalition can be analyzed through the lens of maximizing electoral prospects and consolidating power. The Marcos-Duterte alliance was a very strategic merger of the North (Ilocos Region) and the South (Davao Region), aimed at securing a broad electoral mandate.   The unusual strength of their tandem in 2022 stands now in stark contrast with the recent and increasing tensions between the Marcos and Duterte camps. Not only does this breakdown present an important case study in the fragility of political alliances, but also, more importantly, it will have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governance and economic stability in the Philippines.   Marriage of Convenience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Marcos-Duterte alliance is crucial for understanding its current state of disarray.   The Marcos family’s triumphant return to power in 2022 marked a significant moment in Philippine political history (Buan 2022a). Following their ouster in February 1987 during the People Power Revolution, the Marcoses embarked on a long campaign of political rehabilitation, using a combination of authoritarian nostalgia for the purported “golden age” of the Marcos regime, as well as extensive disinformation campaigns to regain public support, aided by a strong social media machinery (Punongbayan 2023).   In contrast, Rodrigo Duterte’s presidency (2016-2022) was characterized by a populist appeal and authoritarian governance style, which deeply resonated with a significant segment of the Filipino population. Duterte’s high approval ratings until the end of his term (Mateo 2022)—despite his controversial war on drugs, widespread human rights abuses, and botched response to the COVID-19 pandemic—underscored a deep-seated appeal of strongman politics in the Philippines.   The formation of the Marcos-Duterte alliance can be understood as a marriage of convenience. For Marcos, aligning with the Dutertes provided access to the latter’s strong voter base in the South, bolstering his electoral prospects. For Sara Duterte, a national position ensured the continuation of her family’s political influence and offered protection against potential legal repercussions from her father’s admіnistration, especially in the wake of the war on drugs. The benefits for both sides were clear.   Another thing that unites Marcos and Duterte is that both are children of past presidents who have used undeniably authoritarian styles of governance. Interestingly, opinion polls show that Filipinos, on the surface, have a consistent desire for democracy. Data from the Social Weather Stations, a polling firm, showed that 89% of adult Filipino respondents in 2022 were “satisfied” with democracy. Tellingly, 60% said that they “always prefer democracy” and a sizable 26% said they “sometimes prefer authoritarianism” (Macasero 2023). These findings highlight a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Filipinos’ democratic aspirations and their tolerance for authoritarian measures. This duality suggests that many Filipinos prioritize effective governance and stability over democratic norms and processes.   Growing Rift   The inherent tensions in the Marcos-Duterte alliance were evident from the outset. The divergence in their political ambitions and governance styles created a fragile coalition, susceptible to internal conflicts and external pressures. Such alliances formed out of convenience rather than ideological alignment are prone to fragmentation.   Just a few days after emerging victorious in the May 2022 polls, Marcos announced that Sara Duterte would be appointed as the education secretary (Buan 2022b). This was quite baffling, because Duterte never announced that she wanted such a post, nor was she an educator to begin with. By all indications, she was ill-fit for the job. Previously, Duterte indicated that she wanted the defense portfolio instead.   Another telling event was the denial of confidential funds to Sara Duterte’s Office of the Vice President (OVP) (de Leon 2023). In 2022, Duterte was able to obtain PHP 125 million (equivalent to USD 2.175 million) worth of usually unaudited confidential funds for the Office of the Vice President. In 2023, she was able to secure an additional PHP 500 million (equivalent to USD 8.7 million) for the same office. For 2024, she aimed for confidential funds for the OVP and the Department of Education. But after severe public backlash,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led by Speaker Martin Romualdez, President Marcos’ cousin) dropped confidential funds including those in Duterte’s agencies. Eventually, Duterte let go of her budget request.   Another source of tension is the ongoing investigations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on the Duterte-era war on drugs (Buan and Bolledo 2024). Although Marcos insists that he does not recognize the jurisdiction of the ICC on Philippine soil, the imminent arrests of Rodrigo Duterte and co-conspirators in the drug war is a trump card Marcos can conveniently use to get back at the increasingly critical Dutertes. (Incidentally, Vice President Sara Duterte was implicated as one of the people being investigated by the ICC.)   Fast-forward to January 2024, President Marcos launched the “Bagong Pilipinas” (New Philippines) slogan, which was met with skepticism and resistance from the Duterte camp. Sara Duterte attended this event briefly, but later flew to Davao City where a “prayer rally” was organized by her father’s supporters. In that event, former president Rodrigo Duterte, his son Baste (currently the mayor of Davao City), and other allies heavily lambasted the Marcos admіnistration. This marked the first significant public display of the rift between the two camps. (Interestingly, President Marcos’ sister, Senator Imee, also attended the Davao rally.)   The subsequent exchange of derogatory remarks between Bongbong Marcos and Rodrigo Duterte further escalated tensions. This public spat highlights the power struggle between both leaders as they seek to assert their dominance and legitimacy in the eyes of their supporters.   Yet another source of cracks concerns foreign policy, specifically on the West Philippine Sea (WPS). To many people’s surprise, President Marcos has adopted a more assertive stance in defending the Philippines’ territorial claims against China’s incursions, strengthening alliances with Western powers and emphasizing international maritime law (Tomacruz 2022). This marks a departure from Rodrigo Duterte’s pro-China approach, which prioritized economic engagement over territorial disputes. Duterte’s “gentleman’s agreement” with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aimed to maintain the status quo in the WPS, but has recently faced criticism for undermining Philippine sovereignty.   Vice President Sara Duterte’s deafening silence on the WPS reflects her alignment with her father’s China-friendly policy (Magsambol 2024b). Marcos, meanwhile, expressed horror at the concessions made by the previous admіnistration, indicating a strategic reorientation towards a more balanced and assertive foreign policy (de Leon 2024b). This divergence highlights a broader ideological and strategic rift within the Philippine leadership, with Marcos favoring traditional security alliances and Sara Duterte maintaining a pragmatic engagement with China for economic gains.   This foreign policy split has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the Philippines’ geopolitical positioning and domestic politics. A unified stance is crucial for national security and economic stability, and the current discord may weaken the country’s international position and create uncertainty among allies and investors. Navigating this complex landscape requires balancing national security interests, economic benefits, and public sentiment. In addition, this foreign policy discord further tests the already tenuous ties of the once-strong Uniteam.   Distractions   The worsening breakdown of the Marcos-Duterte alliance will have profound implications for governance in the Philippines. The infighting undermines the stability and predictability essential for good governance. The use of populist rhetoric and personalistic attacks also detracts from substantive policy debates, eroding the quality of governance discourse.   Amid the political tensions, statistics point to a weakening of the economy on many fronts. Economic growth in the first quarter of 2024 was weaker than expected, owing to slower spending by private households, investors, and the government itself (Rivas 2024b). Inflation is within target, coming down significantly from a 14-year high in January 2023. However, sky-high prices are one reason for the slower growth of consumption spending. The dire spell of El Niño in 2024 has also jacked up rice prices, a significant contributor to food inflation (Rivas 2024a).   The Philippines also faces many other economic risks besides slower growth and stubborn inflation. For instance, the country’s astonishing 90% learning poverty rate (World Bank 2022), if unabated, is set to drag down the future productivity of the labor force, and also the country’s growth rate in coming decades. The Marcos admіnistration’s pseudo-sovereign wealth fund, called the Maharlika Investment Fund, is also posing risks to the banking sector by, for example, taking away capital from state-owned banks—and even the central bank itself (Abrenica et al. 2023).   On top of all these, the Marcos admіnistration and its allies in Congress are also aggressively pushing for amendments to the 1987 Constitution, specifically amendments to provisions restricting foreign investments in select sectors, namely higher education, advertising, and public services. However, analysts warn that lawmakers may be pushing for amendments in contravention of the legal procedures allowed by the Constitution itself. Economists, including those at th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have also warned that there’s very weak empirical evidence in support of economic charter change, insofar as it is being painted by proponents as a means of attracting foreign investments and boosting the economy (Monsod et al. 2024).   It is against these pressing economic challenges that the Marcos-Duterte feud is happening. There is a strong case to be made that the Philippine government (and the Filipino people) will do better to focus their time and energies on these issues rather than petty politics.   Future Prospects   Looking ahead, the prospects for the Marcos-Duterte alliance and Philippine governance are uncertain. The midterm elections in May 2025 will be a crucial test of the resilience of both camps and the broader systеm of governance, and will further distract away from social and economic issues that otherwise demand urgent attention. Early polls also show that Vice President Duterte is among the top choices for the presidency in the 2028 polls (Magsambol 2024a).   Political actors and pro-democracy forces must navigate the complex landscape of regionalism and populism to foster a more stable and inclusive governance framework. The challenge for pro-democracy groups in particular lies in presenting a compelling alternative to the Marcos-Duterte narrative. This involves not only articulating a clear vision for effective governance but also mastering the tools of modern political communication, including social media, to engage and mobilize a diverse electorate.   Belatedly, key opposition figures (who faced defeats in previous elections as they ran for national posts) have realized the importance of mastering social media—something that both Marcos and Duterte camps mastered years ago. This involves cultivating relatable personas that exude positive energies, and not being too antagonistic of government—the kind of content that garners views and likes in the internet age and the so-called attention economy. Whether their efforts will work remains to be seen in the 2025 midterm polls.   Recent turn of events may provide some hope. Amid their feuding, President Marcos and Vice President Duterte’s popularity ratings have taken a hit (de Leon 2024a). From September to December 2024, Marcos’ trust rating dropped by 16 percentage points (a whopping 32 points in Mindanao), while Duterte’s also dropped by 7 points nationwide. Both their approval ratings have also dropped.   This means that the majority of Filipinos continue to trust and approve of Marcos and Duterte. However, there may be indications that Filipinos are growing weary of the ongoing political tug-of-war. Pro-democracy forces will want to take note of this sentiment and effectively respond. But how?   Pro-democracy forces must first focus on building a broad and inclusive coalition to challenge the entrenched political dynasties of Marcos and Duterte. This involves uniting opposition groups, civil society organizations, and grassroots movements under a common platform dedicated to transparent governance, social justice, and economic reforms. Organizations like Akbayan and the International Center for Innovation, Transformation and Excellence in Governance (INCITEGov) are already serving this purpose. But more groups need to step up and coalesce.   Next, leveraging digital and social media platforms is crucial. The opposition needs to adopt similar strategies as their rivals to disseminate their message, counter misinformation, and engage with younger (Gen Z) voters. Creating compelling content and establishing a network of digital volunteers can help sustain an active online presence and compete effectively. Here, pro-democracy forces will want to reconnect with the mass of young volunteers who helped in the 2022 campaign of Leni Robredo, the opposition’s presidential candidate. That “Kakampink” movement (a blend of “Kakampi,” which means ally in Tagalog, and “pink,” the color of Robredo’s election campaign) inspired a boom in volunteerism never before seen in Philippine electoral politics. However, the challenge is to reignite the spark and inspire that group into action once more, after many were pained and disenchanted by Robredo’s defeat.   Grassroots organizing and community engagement will also remain vital. Pro-democracy forces should reach out to marginalized communities to understand their concerns and incorporate their voices into the political discourse. Focusing on issues such as inflation, stagnant wages, underemployment, poverty, healthcare, education, and livelihoods can build a strong support base among neglected voters. Investing in voter education and advocacy is also essential to ensure a well-informed electorate. Campaigns to raise awareness about democratic participation and the significance of voting for candidates who prioritize the public good can empower voters and encourage active civic participation. Through these concerted efforts, pro-democracy forces can challenge the Marcos-Duterte alliance and pave the way for more transparent, accountable, and effective governance in the Philippines.   Challenging political dynasties like Marcos and Duterte will be difficult, but not impossible. Strengthening civil society and encouraging civic engagement can empower citizens to support candidates based on merit rather than personality. But this needs to be complemented by stringent anti-dynasty laws (already embedded in the 1987 Constitution, but not acted upon by lawmakers), robust campaign finance regulations, and greater transparency.   In conclusion, the Marcos-Duterte alliance offers a stark lesson in the volatility of political coalitions built on convenience rather than principle. As the Philippines faces significant economic and social challenges, the nation’s leaders must move beyond petty rivalries and focus on delivering stable, effective governance. The upcoming midterm elections will be a crucial test of resilience for both camps, but also a potential turning point for the country’s political future. It is imperative for pro-democracy forces to seize this moment, mobilize the disenchanted electorate, and champion a vision of governance that prioritizes national interest over personal vendettas. Only by doing so can the Philippines hope to navigate its way out of this political quagmire and build a more prosperous, democratic future for all Filipinos. ■   References   Abrenica, Ma. Joy V., Luzeta C. Adorna, Patricia T. Coseteng, Emmanuel S. de Dios, Marian S. de los Angeles, Noel B. Del Castillo, Benjamin A. Endriga, Laarni C. Escresa, Jonna P. Estudillo, Maria Socorro Gochoco-Bautista, Aleli D. Kraft, Alice A. Lee, Adrian R. Mendoza, Ernesto M. Pernia, Jan Carlo B. Punongbayan, Renato E. Reside Jr., Anthony G. Sabarillo, Orville Jose C. Solon, Gerard P. Suanes, Elizabeth Tan, and Mariel Jances Nhayin P. Yamashita. 2023. “Maharlika Investment Fund: Still Beyond Repair.”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School of Economics Discussion Papers 2023-02. https://econ.upd.edu.ph/dp/index.php/dp/article/view/1551/1035 (Accessed May 17, 2024)   Buan, Lian. 2022a. “36 years after ousting Marcos, Filipinos elect son as president.” Rapp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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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ongbayan, Ph.D., is an assistant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School of Economics and the author of False Nostalgia: The Marcos “Golden Age” Myths and How to Debunk Them.     ■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Jan Carlo B. Punongbayan 2024-05-20조회 : 11328
논평이슈브리핑
[ADRN 이슈브리핑] 2024년 인도 총선 분석

서론   2024년 인도의 의회 선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9억 8,600만 명의 유권자와 600개 이상의 정당이 참여하는 이 거대한 행사는 4월 19일 시작되어, 결과 발표일인 6월 4일까지 44일 동안 이어진다. 또한 이 선거는 미국의 선거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Pradhan 2024).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거대한 행사의 거의 모든 과정이 전자투표기(Electronic Voting Machines: EVMs)를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2개월 동안 약 550만 대의 전자투표기가 동원된다(Business Standard 2024-03-16). 이번 총선을 통해 의회의 하원(Lok Sabha)이 구성되며,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 또는 정당 연합이 총리를 지명하고 향후 5년 간 정부를 운영하게 된다.   선거전 현황   집권당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의 현직 총리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는 3연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2014년 선거에서 30년 간 지속됐던 연립 정부에서 벗어나 인도인민당의 대승을 이끌었다. 이어서 2019년 선거에서도 인도인민당은 하원 543석 중 303석을 차지했고, 여당 연합은 352석을 획득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정부의 경제 성장을 강화하고 복지 약속을 이행하며 빈곤율을 줄이는 등의 성과를 내세우고 있다(PIB 2024). 그의 주요 슬로건은 2047년까지 인도를 선진국에 진입시키겠다는 “Viksit Bharat(발전된 인도)” 계획이다. 인도인민당은 최근의 주 단위 선거에서 세 곳의 핵심 주를 차지하며 12개 주 정부에서 집권하고 있고, 4개 주에서는 연립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여당이 야당에 대하여 압도적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다(Al Jazeera 2023-12-05). 더 중요한 것은, 모디 총리가 2연임 이후로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어 야권이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Mogul 2024).   모디 총리와 여당에 대한 주요 도전 세력은 20여 개의 정당으로 구성된 야권 연합이다. 제1야당인 인도 국민회의(India National Congress: INC)는 INDIA(India National Developmental Inclusive Alliance)라는 이름의 정당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받은 많은 정당들은 인도인민당의 압도적 세력에 대항하여 협력을 결의했다. 하지만 INDIA 연합은 2023년 7월 18일 결성된 이후로 주요 정당 지도자들이 중도 이탈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충분한 재원과 조직력을 확보한 집권 여당과 달리, 야당 연합은 재원을 확보하고 각 정당의 캠페인 간 일관성을 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이번 선거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만들고 있다.   선거 국면의 주요 이슈   선거에 앞서 유권자들이 제기한 주요 현안 및 요구 사항은 소득 정체, 물가 상승, 일자리 부족, 부패, 허위 정보의 확산, 불평등 심화 등에 관한 것이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현재 인도는 실업률 증가와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최근 인도 사회발전연구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Developing Society: CSD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유권자 대부분의 가장 큰 불만 사항임이 밝혀졌다(The Hindu 2024-04-11). 인도 경제는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 만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지는 못하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가 올해 발표한 보고서는 향후 인도의 고용 전망이 어둡다고 지적했다(ILO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실업자 중 청년 실업자의 비율은 82.9%였다. 실업자 중에서 중등 교육을 받은 청년의 비율은 20년 동안 35.2%에서 65.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자연히 각 정당들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경쟁적인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인도 국민회의는 학위를 소지한 25세 이하 견습직에게 연간 10만 루피(약 165만 원)의 봉급을 보장하고, 중앙 정부 산하의 일자리 300만 개를 충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맞서 인도인민당은 청년 일자리 수백만 개를 창출하고 여성 고용을 위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Kumar 2024).   복지 포퓰리즘   모디 총리의 연승을 이끈 주요 요인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한 광범위한 복지 혜택이다. 가스 및 전기 공급, 화장실 시설 확충, 직접 이전(Direct Benefit Transfer: DBT) 방식의 새로운 복지 제도 등은 정부가 견고한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2019-2021년 국가 가족 건강 조사 등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전기, 가스, 화장실 등 가정용 인프라와 서비스가 상당히 증가했다(Vaishnav 2023). 더 나아가 모디가 최근 발표한 여당의 공약에서는 복지 제도가 현행의 두 배로 확대되었다(Hindustan Times 2024-04-14). 인도인민당의 선거 공약은 다양한 복지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인도 국민회의 등 야권도 유권자를 포섭하기 위한 다양한 복지 제도를 약속했다. 최근 46페이지의 선거 공약을 발표한 인도 국민회의는 보편적 의료, 12학년까지의 무료 교육, 도시 빈민층을 위한 고용 제도 등을 약속했다. 지역 정당들도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료 식량 및 교육 등 다양한 복지 제도를 발표했다. 요컨대 각 정당이 경쟁적 포퓰리즘에 기반한 선거 전략을 세우면서 이에 따른 무상 혜택과 복지 제도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잘못된 정보와 선거의 진실성   인도 총선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가짜 뉴스,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및 유권자의 선택을 심하게 왜곡하는 허위 정보(disinformation)의 급격한 증가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는 2019년 선거에서 이미 주된 문제로 부상했지만, 인공지능 및 딥페이크와 같은 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2024년 선거 과정에서 나타날 문제의 규모와 심각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도는 세계적인 허위 정보의 중심지로 여겨지며(Sahoo 2024), 인터넷 접근성 향상 및 저렴한 인터넷 데이터 이용 증가에 따라 2024년 선거는 허위 정보와 선거의 진실성 측면에서 큰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정당과 후보들이 디지털 및 소셜 미디어를 선거 운동에 적극 활용하는 가운데, 인도 선거위원회는 각 정당과 기술 플랫폼 기업에게 잘못된 정보 및 허위 정보의 확산 자제를 촉구하는 지침과 경고를 발표했다(The Hindu 2024-03-20). 선거위원회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선거 기간 동안 어떻게 허위 정보와 증오 표현을 관리하여,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보장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   집권 여당이 누리는 이점(정당 조직, 재원, 유리한 제도 등)과 야당 세력에 대한 공정한 경쟁의 부재는 2024년 총선의 또다른 핵심 쟁점이다(Punwani 2023; Financial Times 2024-04-16). 집권당이 주요 반대 세력과 그 지도부를 겨냥하고 배척하기 위해 모든 국가 기관을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 등에서 선거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The Hindu 2024-03-27). 2014년 모디 정부가 출범한 이래 집행국(Enforcement Directorate: ED), 조세 기관, 중앙 수사국(Central Bureau of Investigation: CBI) 등의 수사 기관은 주요 야당 지도자를 겨냥한 정치적 무기로 전락했다. 한 탐사 보도에 따르면 집행국이 단독으로 심문, 단속, 또는 구속한 정치 지도자는 130명에 이르고, 그 중 115명(95%)이 야당 지도자였다(Tiwary 2022). 특히 델리(Delhi), 자크핸드(Jharkhand) 등의 주지사가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선거 기간 중 집행국에 의해 체포된 사실은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심지어 금융당국은 인도 국민회의의 계좌에서 10억 루피(약 165억 원) 상당의 자금을 동결했다. 설령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 중의 자금 동결 조치는 정당이 선거 운동을 전개하고 거대 여당에 대항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도 국민회의를 비롯한 많은 야당은 재정적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 여당은 현금을 쥐고 야권에 비해 막대한 기관 및 조직상의 이점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 여당은 선거에서 반대 세력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고 있다. 여당은 야권이 집권한 주에서 탈당 공작을 벌이고 주요 지도자를 끌어들이며 때로는 주 정부를 무너뜨렸다. 집행국 및 중앙 수사국 등 국가기관의 선택적 개입은 이러한 공작을 촉진했다(Tiwary 2022).   요컨대 모디 정부가 야당 세력의 경쟁 기회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면서, 근래의 인도 선거는 일방적인 경쟁으로 여겨지고 있다(Ellis-Petersen 2024). INDIA 연합이 “민주주의 수호(Save Democracy)” 운동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측 가능한 결과?   인도와 같이 복잡다단한 정치 체제의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이번 선거의 결과는 예측 가능해 보인다. 선거 전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는 모디 총리와 집권당의 낙승을 예상했다. 모디의 개인적 인기에 힘입어 인도인민당 주도의 연합은 남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석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디아 투데이(India Today)가 실시한 가장 큰 규모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권 연합이 335석, 야권 연합이 160석을 각각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Bhattacharya 2024). 그러나 야권 연합 내 분열과 모디 총리의 지속적인 높은 지지율을 감안하여, 인도인민당은 하원 543석 중 400석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까지 내다보고 있다.   승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여당은 선거 기간 동안의 정국 변화와 남부 및 동부 지역의 비교적 낮은 지지도를 주시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당은 야권의 저명한 지도자를 회유하고 야당의 선거 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한편,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 유명인 및 주요 언론인을 영입하는 공격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NDTV 2024).   결론   5년마다 치러지는 인도의 선거에는 10억 명에 이르는 유권자가 참여하고, 특히 여성 및 소수자의 참여 비중이 점증하고 있다. 이로써 인도는 저소득층 비중이 높고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민주화를 성취하는 성공 사례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인도의 선거 과정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근래 일어나는 정당 간 공정한 경쟁의 훼손, 민주주의 제도의 약화 등에 따라, 인도의 민주주의는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파 인도인민당이 약하고 분열된 야권을 이기고 또 한번 압승한다면, 인도는 반자유주의와 민주주의 퇴행의 위험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     참고 문헌   Al Jazeera. 2023. “Four reasons why Modi’s BJP swept key India regional elections.” December 5. https://www.aljazeera.com/news/2023/12/5/four-reasons-why-modis-bjp-won-key-regional-elections-in-india (Accessed April 18, 2024)   Bhattacharya, Devika, 2024. “Modi 3.0 is Mood of the Nation, survey predicts 335 seats for NDA.” India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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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란잔 사후(Niranjan Sahoo) 2024-04-26조회 : 7009
논평이슈브리핑
[ADRN Issue Briefing] Inside the Summit for Democracy: What’s Next?

The third iteration of the Summit for Democracy (S4D) in Seoul from March 18 to 20 was an improvement on several elements of previous versions of S4D but still inherited some of the challenges. With this third summit in the rearview mirror, it is a good moment to take stock of the concrete impact of the summit itself and the goals of the S4D process in the future. We argue that the S4D has significant shortcomings but still has added value moving forward if the format can be adjusted in a more pragmatic direction.   Review of the Third Summit for Democracy   South Korea taking on the role of host was significant in the evolution of the summit from its origins in the Biden admіnistration. Of course, the US government was still very much involved as the founder of S4D but the South Korean stamp on the event was unmistakable. The desire to host was widely interpreted as based on the current government’s foreign policy upholding democratic values and global cooperation. South Korea’s unique legacy of successful home-grown democratization accompanied by rapid economic development is clearly appealing to the Global South. The timing, ahead of its general elections on April 10 amidst increasing political polarization at home, added an element of precautious summit preparation that contributed to rather weak general interest inside the country.   The summit, focused on ‘future generations’, took place over 3 days: Day 1 ministerial in Seoul, Day 2 with civil society and youth engagement and Day 3 for leaders online. A whole series of side events were also organized both in the lead up to the summit and during the 3 days in Seoul.   Despite the fact that the summit was dedicated to future generations, the lure of discussing technology, especially AI, was too strong to ignore. The Day 1 ministerial, featuring speeches from over 30 ministers (from foreign ministers to ministers of the interior) from all around the globe, was short on youth and long on tech. The South Korean government chose the Tech and Democracy theme from the list of 16 themes linked to the previously established ‘cohorts’ created after the first Summit for Democracy. There was no shortage of voices – from government, civil society and industry – calling for much better coordination and a regulatory approach to ensuring better oversight of technology as an urgent priority. Generative AI was central to the agenda due to the profound impact it is having on political and socio-economic life, but this probably detracted from a broader focus on the future of democracy beyond the digital sphere.   The sheer number of events on day 2 underscored the appeal of S4D to so many organizations, governments and activists. About 800 people, including more than two hundred youth from Korea, participated in the Day 2 Summit. And while 52 sessions were certainly too much for one day, there was something for everyone on the agenda including multiple sessions on 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young people, disinformation, digital tools and the information environment. It was perhaps notable that only one session addressed climate change and the link with democracy. In general, this was a major improvement over previous editions of S4D in that space was given to those who wanted to take it, and credit should be given to the Korean government for taking this route. Yet, at the same time, it also resulted in a fragmentation of the collective experience of a summit. In future, it would be more effective if both days were streamlined or merged in order to better link ministers and government with civil society and youth.   Day 2 was organized by four organizations working together - the Community of Democracies, International IDEA, the Open Government Partnership and the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 that created another layer of management that allowed for ownership beyond the host government. Importantly, day 2 created a clear space for the various thematic ‘cohorts’ – an innovation created between the first summit in 2021 and the second in 2023 – that was missing during the last summit in 2023. It also created space for governments who were not prepared to host or co-host the summit itself to still organize sessions on priority topics.   Day 3 featured short statements by national leaders and was co-hosted by the governments of South Korea, Kenya and Denmark. The day took place online and was wrapped up by a Chair’s summary that highlighted some of the key thematic focus areas dealt with over the course of the 3 days. Apart from a few genuinely new announcements, leaders mostly reaffirmed support for democracy without delving into new commitments at home or abroad.   Reflection Points on S4D So Far   Taking a step back from the 3 days in Seoul, four things stand out for S4D more generally. First, it is clear that the summit continues to mobilize those that care about democratic governance around the world and creates an opportunity for them to meet, network and discuss priorities. That is something of real value to many governments and activists but in a crowded field of events focused on rights and governance – like the OGP summit, RightsCon, Forum2000 or the Copenhagen Democracy Summit – it still needs to demonstrate that its original promise of serving as an overarching forum that can mobilize globally and deliver locally remains a realistic ambition. Therefore, while the summit covered a lot of issues, it is hard to pull out the key message on the state of democracy or, more importantly, what the top priorities are for responding to the challenges of weakening global democracy.   Second, the added value of S4D was originally the explicit focus on international cooperation on democracy and sending a political message about that cooperation. Yet, the summit has lost the political force that made it exciting at the beginning, evolving in a more technocratic direction over time. That political force was not there at S4D2 or in Seoul, perhaps because the preparatory process had much more energy than developing and implementing commitment of participating countries.   Third, the impact of S4D in terms of policy commitments remains marginal and, frankly, deeply disappointing when juxtaposed with the urgent crisis facing democratic politics worldwide. The original focus on commitments during the first summit was a central pillar of S4D but no real mechanism has been identified to drive it forward. This poses a real question for S4D – if it not politically salient and cannot drive policy change, what is its role?   Fourth, the lack of announcement of a fourth summit underscores the fundamental challenge of hosting S4D. The success of the South Korean event was dependent on significant time and funding for the event. Thinking about the role of S4D moving forward must also be accompanied by a realistic vision for the practical elements of the process as well. So, what does this all mean for the future of S4D?   The Future Summit Process   While there was no announcement of a fourth Summit for Democracy, the Seoul Summit did conclude that a Summit process should continue. Most of the discussion of the Summit process was behind the scenes rather than in an open debate. Still, a few the signals about the future come from a combination of the ‘Way Forward’ section of the Chair’s summary and comments by a range of stakeholders most closely involved.   The proposals shared by those key stakeholders for the future Summit process appear to have three main elements. First, it is clear that the Summit process needs to involve leaders. However, the language in the conclusions does not specify a format. Therefore, there is room for creative ideas such as holding a meeting in the margins of the UN General Assembly, adjusting the timing to be less frequent or turning it into a “COP for democracy.”   Second, the conclusions commit to funding the Partners for the Engagement of Civil Society – the Community of Democracies, the Open Government Partnership, International IDEA and the OECD – to act as a secretariat for the new process. This is a critically important step to ensure strong organization of the Summit process regardless of the host government, or even in the absence of a single host country. However, while all four organizations have membership from a range of regions, including outside the ‘Global North’, they will need to do more to be seen as globally representative.   Third, it is likely that the future Summit process will have more open participation than has been the case so far. Some stakeholders spoke about “opt-in” participation, or about relying on civil society or the private sector to represent some countries whose governments are hostile to the democratic renewal agenda. There could also be more weight put on the activities between Summit meetings, not least since participation in any Summit will always have logistical limitations.   Whether by design or not, these steps represent an evolution away from a US-led initiative tied to the Biden Presidency, drawing on lessons from the experience of the three Summits so far. There is more to do to ensure a clear purpose and mandate for the Summit process, but there are signs of an emerging consensus about the role of the Summit process – look for example at the report of this meeting[1] in the UK in the run-up to the Summit.   Taken together, these steps would have the potential to significantly strengthen the process, in three key ways:   ● Governance – a Summit process covering global democratic renewal needs to ensure representation and engagement from all geographic regions and all stakeholders. It also needs a credible decision-making process. Achieving this will be a critical first task for the Secretariat, building on the progress made in the first Summits. They will not be able to do this on their own but can provide clear processes and use their very wide networks to move things in the right direction.   ● Agenda – the potential scope of the democratic renewal agenda is huge, so a lot of thought needs to go into finding the right issues to debate and propose action on. Again, the secretariat will need support from willing governments and others, but a lot has already been learned from the first three Summits that could help the process be much smoother and impactful, including how to collaborate with existing forums working on relevant issues.   ● Effectiveness – the value of the Summit process will come from what happens in between meetings, much as from the Summits themselves. As with many similar global processes, there can be a rich ecosystеm of analysis, debate and initiatives developed in between the Summits. Some of this will need to be reviewed by leaders but a lot can be taken forward in a range of other ways, with leaders meeting to reaffirm the importance of the agenda, profile the key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and to support action on a few issues. The secretariat will be key to organizing this work effectively.   Whether in their comments on democracy at a global level, or on the wide range of sectoral issues, there was no doubt that participants identified very significant challenges to democratic governance in the world. However, the Seoul Summit showed how difficult it is to shape a global discussion on such a broad issue. The decision to maintain a summit process was probably the right one, and the commitment to a secretariat is an opportunity to work out a clearer purpose and a stronger format. The success of the process will depend on strong engagement from groups from all regions, and in Asia, South Korea should clearly be playing a leading role. ■     [1] Wilton Park. 2024. “Summit for Democracy – the future: how to sustain international support.” February 9. https://www.wiltonpark.org.uk/reports/summit-for-democracy-the-future-how-to-sustain-international-support/ (Accessed March 27, 2024)     ■ Ken Godfrey is the Executive Director of the European Partnership for Democracy (EPD).   ■ Anthony Smith is the Chief Executive of the Westminster Foundation for Democracy (WFD).     ■ Typeset by Hansu Park, Research Associate     For inquiries: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Ken Godfrey 2024-03-28조회 : 9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