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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2026 인공지능과 세계정치 회고와 전망
배영자
건국대 교수

Editor's Note

배영자 건국대 교수는 2026년에 인공지능이 범용 모델의 성능 경쟁을 넘어 AI 에이전트나 산업 특화 모델의 형태로 일상과 생산 과정에 내장되고 확산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저자는 미국이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Frontier AGI)’을 완성하고 이에 토대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반면, 중국은 전 사회와 산업에 AI를 내장시켜 생산력과 통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내장된 인공지능(Embedded AI)’을 추진하며 발전경로에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전략적 우위에 미치는 시사점과 함께 저변에서 작동하는 서구와 아시아적 코스모테크닉스의 다양성에 주목하면서 이로 인해 양국 갈등이 더 깊어질지 혹은 상이한 기술관에 대한 상호이해와 상호의존성으로 협력의 공간이 열릴 수 있을지를 주요 관전 포인트로 제시합니다. 배 교수는 한국의 AI 기술혁신 역량 고도화와 기술외교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고, 한국 AI 전략이 문명전환과 한국적 코스모테크닉스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


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


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2. 미국

3. 일본

4. 중국

5. 인도·태평양

6. 국제정치경제

7. 인공지능(AI)

8. 국방

9. 북한

10.  유럽


   

1.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미중 경쟁

 

인공지능은 군사안보, 경제성장, 사회문화규범 영역을 가로지르는 핵심 기반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혁명기의 방직기술, 냉전기의 핵무기, 탈냉전기의 컴퓨터와 인터넷 등 이제까지 기술은 직간접적으로 세계정치경제질서에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 기술이 초래하는 변화의 속도와 범위와 깊이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특정 기술과의 비교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섰다.

 

인공지능 기술의 최전선과 이미 도착한 미래를 엿볼 수 있는 CES 2026에서 Agentic AI, Physical AI, Embodied AI, Pragmatic AI, Digital Twin 등 기술 발전 흐름을 대변하는 많은 개념들이 제시되었는데 현실은 주요 연사들의 입이 아니라 현장을 통해 더 잘 드러났다. 인공지능이 더 이상 범용 모델의 성능 경쟁이 아니라, 일상과 생산 과정에 내장되고 활용되고 확산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이 명백해졌다.

 

삼성과 LG는 각각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Your Companion to AI Living)'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정(Zero Labor Home)’ 을 내세우며 Vision AI 컴패니언 플랫폼이나 홈로봇 클로이드를 통해 가정 내 AI 활용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대자동차는 CNET에 의해 올해 CES 최고의 로봇으로 선정된 아틀라스 시연을 통해 물리적 AI가 현실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동시에 아틀라스를 향후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 제조현장에 부품 정렬 및 공정 보조 임무를 수행하도록 투입할 계획을 발표하며 로봇이 보다 주도적으로 정교한 역할을 담당하는 생산시스템으로 전환될 것임을 알렸다. 엔비디아는 연산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끌어 올린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Vera Rubin)을 발표하며 피지컬 AI 시대를 겨냥한 설계의 포문을 열었다. 또 기존 자율주행 기술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로주행, 교통량, 운전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실제 세계를 흉내내는 AI 모델인 코스모스와 결합한 새로운 오픈소스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를 공개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번 CES에서 중국 기업들은 탄탄한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혁신적인 모습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로봇청소기 사로스 로버는 계단이나 고르지 않은 표면도 능숙하게 대응하여 시선을 모았다.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드러낸 CES 2026의 핵심 메시지는, 인공지능이 상상이나 모델 차원을 넘어 실생활에 침투하기 시작했으며, 독립적인 기술 제품의 형태는 물론 가정 공장 도시 수준에서 판단과 조정을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제프리 힌튼 팀의 알렉스넷(AlexNet)을 통한 딥러닝의 부상, 2014년 구글이 하사비스가 이끄는 영국 AI 스타트업 딥마인드 인수, 2015년 샘 올트먼, 그렉 브록만, 일론 머스크 등이 모여 구글의 AI 인재 및 기술 독점을 우려하며 인류 전체를 위한 안전한 AI를 개발하는 비영리 연구소 설립을 논의한 로즈우드 호텔 회동과 OpenAI 설립, 2016년 하사비스팀이 개발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강화학습 및 딥러닝의 승리, 2017년 구글연구팀 인공신경망 트랜스포머(Transformer) 구조 발표 등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거치며 인공지능 방법론과 대결 구도가 형성된 이후, 인공지능 발전의 핵심은 스케일 확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모델의 크기를 키우고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증가시키니, AI가 번역이나 코딩과 같은 가르쳐주지 않은 능력을 스스로 깨우치는 창발(Emergence)이 일어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2022년 말 발표된 GPT-3.5에 1750억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가 장착된 이후 구글, MS, 메타, 그리고 중국 기업들까지 파라미터 숫자 늘리기 경쟁에 뛰어들었고 현재까지 조 단위 파라미터를 가진 모델들이 출시되었다. 여전히 약 100-500 조 가량의 인간 뇌 시냅스 숫자에는 못 미치지만, 기계로서는 유례없는 규모다. 문제는 모델이 커질수록 여기에 들어가는 칩과 학습 비용 및 전력 사용량이 대폭 증가한다는 점이었다.

 

2025년 초 중국 딥시크 등장은 인공지능 경쟁의 축을 파라미터 스케일링에 토대한 학습으로부터 대답하기 전 생각하는 추론과 효율성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 모델의 10분의 1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내는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막대한 데이터나 에너지를 투입하여 지능을 산출해 내는 비싸지만 쉽고 게으른 방식에서 벗어나 최소투입으로 최대 지능을 얻을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지식 압축 및 추론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딥시크가 자신들의 기술적 세부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오픈소스 정책을 채택하면서, 폐쇄적이었던 빅테크 기업들이 압박을 받는 수세적인 입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현재 대규모 언어모델의 파라미터 경쟁은 일정 수준에서 수렴 국면으로 들어섰고, 그 대신 보다 효율적인 모델, AI 에이전트, 산업 특화 모델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은 더 이상 질문에 답하는 기술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목표를 부여받고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으며 2026년 CES는 이러한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주최 측은 이번 회의의 슬로건으로 ‘혁신가들의 등장(Innovators Show Up)’을 표명하며 그동안 실험실의 기술로 여겨졌던 AI가 우리 삶과 산업 현장에 실제 도구로 구현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다양한 국가의 혁신가들이 모여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인류의 미래에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스위스와 같은 중립지대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실제 미중의 치열한 AI 경쟁 속에서도 많은 중국 기업들이 참여하였고 중국 가전기업 TCL의 전시관이 CES의 얼굴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센트럴 홀 정중앙에 자리잡아 시선을 모았다. 오랫동안 이 자리는 삼성이 차지해왔었고 이번에 삼성은 체험몰입도를 높이고자 단독전시관을 마련하며 이 자리를 떠났다. 중국 기업 레노버(Lenovo) 대표가 기조연설을 맡아 연설 도중 무대 위로 젠슨 황이나 립부 탄(Lip-Bu Tan) 인텔 CEO 등을 소환하거나 언급하며 파트너십을 과시한 것도 중립성의 주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웨이, 센스타임 등 미국 상무성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 관계자들이 비자 발급 거부로 행사장에 오지 못했고, 홍콩 정부 사절단이 방미 직전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는 등 무대 뒤에서 미중간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사실 중국 AI 부상을 대표하는 알리바바나 텐센트나 화웨이 같은 기업이 아닌 레노버 대표를 기조연설자로 내세운 것도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 주최측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레노버는 2005년 미국 기술의 자존심이었던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하며 성장하였고 베이징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공동 본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 시장에서 수십년간 PC와 서버를 판매해 왔고 현재에도 엔비디아, 인텔, 마이크로소프트와 가장 밀접하게 협력하여 AI PC를 만들고 있는 미국적인 중국 기업이다.

 

CES 2026은 인공지능 기술이 담론과 상상을 넘어 실질적인 도구로 구체화되며 일상의 풍경으로 들어오는 변화가 가속화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자국이 설계한 거대한 기술적 토대와 산업 생태계 속에서 기술 표준과 인프라를 지배하는 미국의 리더십과, 월등한 하드웨어 제조력과 실행력을 토대로 약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맹렬한 추격이 맞부딪치는 역동성 속에서 기술발전과 세계정치가 밀접하게 얽혀 전개될 것임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복합적으로 얽힌,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소통하고 공존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동거가 기술과 세계정치 지형의 뉴노멀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 미·중 인공지능 정책과 발전 경로 분화

 

2025년 미중관계에서 양국이 각각 보유한 비대칭적 전략 자산인 AI 반도체와 희토류를 둘러싼 갈등이 두드러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첨단 AI 반도체 대중 수출을 강력히 통제하는 가운데 2025년 4월 중국 상무부가 7종의 희토류에 대해 수출허가제 및 통제 강화를 발표하였다. 2025년 중반 미국은 엔비디아 H100급 칩은 여전히 금지하되, 중국 시장 전용으로 성능을 낮춘 H20 계열은 조건부 수출을 허용하는 미세한 조정으로 통제 완화의 메시지를 보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전면 차단하기보다는 선별적으로 규제하면서 공개적 충돌을 자제하는 암묵적 협상 국면에 들어갔다. 2025년 10월 중국이 희토류 및 관련 기술 통제를 다시 강화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추가 관세와 강경 발언으로 대응했고, 이는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APEC 직전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유예하며 유연하게 운용할 여지를 남겼고, 미국은 H20 이외 H200급까지 허가된 중국 기업에 수출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미국내에서 이러한 수출 완화 조치에 대해 안보 및 경쟁력 약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미중은 상호 비대칭 전략자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경쟁을 관리하였다.

 

2026년 인공지능 부문에서 가장 주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향후 인공지능 발전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직후 2025년 1월 ‘미국의 인공지능 분야 리더십 강화 및 장벽 제거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미국의 글로벌 AI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연방정부 정책 기조를 설정하였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혁신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행정부의 안전 관련 AI 정책과 규제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AI 혁신 주도를 우선 순위에 놓았다. 2025년 7월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 AI 행동 계획(Winning the AI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은 연방정부의 AI 전략 로드맵으로, AI 혁신 가속화, AI 인프라 구축, AI 외교 선도라는 3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계획은 인공지능을 국가의 생존이 걸린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과거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경쟁국이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 지배력을 확보하여 미국 안보와 경제의 황금기를 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문서는 인공지능 경쟁을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밝혔듯 AI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며 미국이 이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입장이 담겨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먼저 혁신을 저해하는 모든 관료적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 기술 발전 속도를 극대화하고 미국적 가치를 반영한 오픈소스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AI 혁신 가속화’를 최우선적으로 내세웠다. 이와 동시에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제조 시설을 위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력망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여 지능 정보 사회를 뒷받침할 탄탄한 ‘물리적 AI 인프라 구축’ 필요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미국의 최첨단 AI 기술과 반도체가 적대국에 유출되지 않도록 수출 통제와 기술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AI 외교 및 안보 리더십’을 통해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기술 질서를 공고히 할 것이라 표명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어떤 정책 어젠다 보다 미국의 글로벌 인공지능 리더십 유지에 목표를 두고 미국기업의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인프라 확충 및 외교적 공세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미국의 AI 우위 유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AI 차르 데이비드 삭스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3~6개월에 불과하다고 경고하며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와 같은 강도의 도전에 처해 있다는 위기의식을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인공지능 우위를 공고화하고 미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보다 야심적인 ‘제네시스 미션(Genesis Mission)’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2025년 11월 발표된 대통령 행정명령에 명시된 제네시스 미션은 미국이 인공지능을 과학기술 안보 경제 전반의 전략 기술로 규정하고, 기존의 분절된 연구, 데이터, 컴퓨팅 체계를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행정명령은 현재의 AI 경쟁을 단순한 산업 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견되는 국가적 총력전으로 인식하며, 미국이 개별 부처나 연구소 중심의 점진적 혁신으로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제네시스 미션은 연방정부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 과학 데이터셋과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미국 과학과 안보 플랫폼(American Science and Security Platform)’으로 결집하고, 이에 토대하여 과학 기초모델(Scientific Foundation Models)과 AI 에이전트를 개발 및 운용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 플랫폼은 가설 설정, 시뮬레이션, 실험 설계, 제조 공정까지 포함하는 AI 주도 연구 및 생산 자동화를 달성하여, 에너지 반도체 양자 바이오 첨단제조 등 국가 전략 분야에서 과학 탐구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월에 발표된 행동계획이 일반적인 AI 지원 정책을 담고 있다면, 11월의 행정명령은 미국이 결정적 우위를 유지하고 이끌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묶어 총력전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난다. 미국이 보유한 과학 데이터의 우수한 질과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고려할 때 이것이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결합되면 인공지능 바이오 양자 등 각 분야의 프론티어 기술 혁신을 이끌고 유지하는데 미국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임은 명백하다.

 

2025년 7월 미국의 AI 액션플랜 발표 직후 중국 외교부는 각국이 공동으로 인공지능의 개방적, 포용적, 보편적, 선량한 발전을 추진해야 하며, 대립적 경쟁을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2025년 7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세계 AI대회(WAIC) 슬로건으로 '智能时代 同球共济(Global Solidarity in the AI Era)'를 내세운 것도 미국의 전략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발표된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新一代人工智能发展规划)'에서 AI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 전략 차원에서 논의되었고 이를 통해 AI 발전의 기틀이 성공적으로 마련되었다. 2024년 3월 양회 정부보고 디지털 경제 혁신 발전 항목에서 디지털 산업화를 적극 추진하고 디지털 기술과 실물 경제의 심도 있는 융합을 촉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빅데이터와 AI 부문 연구와 응용을 심화하는 ‘인공지능 플러스(AI+) 행동(人工智能+行动)’이 제시되었다. 2025년 8월 국무원은 ‘인공지능 플러스 행동 심화 실시에 관한 의견(关于深入实施‘人工智能+行动’的意见)’을 발표하며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개하였다. 이는 2024년 보고의 구체적인 실행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AI를 과학연구, 제조, 교육, 의료, 행정 등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특히 전통 산업과 AI 융합을 통해 산업 고도화 및 효율성 향상을 도모하고 새로운 질적 생산력(新质生产力)을 창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기술 표준 및 성과를 공유하고, 중국 중심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제 AI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여 기술 블록화에 대응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모호한 비전 대신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제시했는데 1차 목표인 2027년까지 차세대 스마트 단말기와 AI 에이전트의 보급률을 70%까지 확산시키고, 2030년에는 90%까지 끌어올리며, 2035년에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지능화된 지능 사회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미국이 내건 AGI 프론티어 전략에 맞서 중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다양한 분야에 보다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고 확산시키고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한다. 미국의 최첨단 반도체칩 제재로 인해 초거대 모델 학습에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AI 기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스마트팩토리, 스마트 시티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전통 산업을 AI로 완전히 재구조화하여 생산성 격차를 벌리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2025년 11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5차 5개년 계획 제정에 관한 건의안(第十五个五年规划的建议)'을 발표하였고, 이를 통해 향후 2026~2030년 중국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경제 발전 로드맵이 윤곽을 드러냈다. 제시된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은 내수 중심, 질적 향상과 양적 성장의 균형, 국가안보 중시, 기술자립 및 AI 활용 확대 등 이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5개년 계획에 국가안보가 원칙과 중점 목표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고 경제사회 발전을 안보와 연결하겠다고 명시화하였다. 중국 역시 미국의 위협이나 미국과의 경쟁을 의식하며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기술 자립과 AI 활용 확대를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14차 계획에서 간단히 언급만 되었던 AI 관련 내용이, 15차 계획에서는 AI 전략에 독자적인 섹션을 할애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특히 첨단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고, 중국이 우위를 가진 전통 산업(철강, 조선, 야금 등)을 AI와 결합하여 고도화함으로써 산업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모든 산업 분야를 AI와 융합하는 '인공지능 플러스 행동'을 가속화하여,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지능화 기반으로 재편하는 것을 강조하고 컴퓨팅 파워, 데이터, 모델의 효율적 공급을 위해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혁개방 이후 광둥성에서 낙후된 사양산업을 퇴출시키고 첨단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산업구조정책으로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는 ‘등롱환조(騰籠換鳥)’를 내걸었고 현재 선전은 중국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로 성장하였다. 중국의 인공지능 플러스(AI+)정책이나 제15차 경제계획에서 강조하고 있는 첨단기술산업 육성 및 AI와 전통산업의 융합은 AI 버전 등롱환조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략 자산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발표된 주요 인공지능 계획의 내용과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양국 AI의 지향점에 명백한 차이가 있어 흥미롭다. 미국은 가장 우선적으로 AI 칩 생산에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 보안에 이르기까지 AI 생태계의 모든 층을 수직 통합하는 풀스택 우위를 구축하고자 한다. 여기에 거대 데이터센터와 에너지망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관리하고 국립연구소와 각 부처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 데이터셋을 통합한 플랫폼을 마련하는 한편 정제된 민간 데이터와 합성 데이터를 결합하여 독점적인 고품질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완성한다. 이를 토대로 범용 인공지능(AGI)과 특화된 과학 모델을 가동시켜 과학연구는 물론 모든 영역에서 지능 우위를 확보한다. 외교적으로는 AI의 심장인 반도체와 서버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미국식 AI 풀스택을 동맹국에 수출하면서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한다. 즉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거의 신과 같은 인공지능(Frontier AGI)'을 완성하고 이에 토대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체제를 설계하는 한편 이의 확산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반면 중국은 AI를 특정 기술이나 산업 수준이 아니라 국가와 경제사회의 운영체제로 이해하며 전 사회와 산업에 AI를 내장시켜 생산력과 통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최상의 연구개발 성과나 기술 발전을 추구하기보다 가용한 기술을 활용하여 즉시 적용 가능한 영역부터 확산시키며 보급하는 접근법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수출통제와 첨단 반도체 제약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핵심기술 자립 추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대내적으로는 내수 둔화와 성장 완화에 당면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기술자립과 산업구조 고도화, 첨단 AI칩 개발 도전과 AI와 제조업 융합이 동전의 양면처럼 세트로 채택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이 실물경제 부문에서 압도적 우위를 구축해 왔고 미래 또한 실물 경제의 성공적인 고도화에 달려 있다고 보고, 세계 최고의 제조 역량과 자국이 축적해온 방대한 산업 생산 데이터를 활용하여 AI를 실제 제조 현장에 이식하는 ‘내장된 인공지능(Embedded AI)’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미국 내에도 인공지능을 산업 현장에 활용하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중국내에서도 최고의 인공지능에 도달하기 위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인공지능 발전 경로의 유형화나 차이에 대한 강조는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거대하고 복합적인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작년 하반기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논의되고 있다. 왜 이 시점에서 차이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차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배경에는 미국이 인공지능이나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점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까지 인공지능 경쟁은 하나의 결승점을 향해 가는 경주로 누가 결정적인 전략적 이점을 먼저 확보하느냐의 관점에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AGI의 도래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이것이 최종 목표 지점인지, 여기에 먼저 도달한다고 해서 과연 결정적 우위에 서고 그 이후는 게임오버가 되는 것인지 모두 모호하다.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소련의 미사일 우위를 주장했던 가이더 보고서(Gaither Report)가 핵무기 경쟁의 가속화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현재 인공지능 경쟁에서도 중국의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AI 판 가이더 보고서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내러티브가 잘못된 상황인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이 저임금과 보조금, 기술 모방만으로 이루어졌다는 피상적인 인식에 갇혀 실제 중국에서 진행되어온 항만, 철도, 전력망 등 인프라의 대대적인 확충 및 제조 현장에서 이루어진 지속적인 공정 지식 혁신과 엔지니어적 실행력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고, 나아가 중국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중국은 미국을 단순히 라이벌로만 보지 않고, 미국의 좋은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자국에 맞게 변형하는 학습을 꾸준히 진행해 온 반면 미국은 자신의 체제우위 믿음에 갇혀 중국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얼마나 진지하게 배우려 해왔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문제제기는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칩 설계에는 강하지만, 실제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더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며, 중국이 원자재와 제조를 통제한다면 미국의 기술적 우위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장기전에 대비해 미국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즉 결승점만 보고 달리는 맹목적인 속도 경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기술을 뒷받침할 물리적 기반과 자원 안보 확보와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중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과장되고 과시적인 AI정책 이니셔티브 안에서 실제로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미국 AI 정책의 목표와 방향의 점검을 위한 논의 공간을 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미중 인공지능 발전 경로는 왜 달라지고 있으며 이것이 세계정치질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원인을 간단하게 기술 수준이나 정치체제 수준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서구문명을 대표하는 미국과 아시아문명을 대표하는 중국 기술관의 차이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육휘(Yuk Hui)는 기술이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문명권의 우주에 대한 이해 및 도덕적 실천과 결합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우주(Cosmos)와 기술(Techne)을 묶어 코스모테크닉스 (Cosmotechnics)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서구 근대 문명은 기술을 자연을 정복하거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해 왔고 서구 근대문명 확장과 함께 이러한 기술관이 보편화되면서 결국 현재의 기술 가속주의와 생태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본다. 모든 문명권은 고유한 코스모테크닉스를 가지고 있는데, 예컨대 고대 중국에서 기술은 자연정복이나 효율성보다 ’도(道)’와 ‘기(器)’의 조화를 중시하는 실용적 맥락에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 발전이 서구의 논리에만 갇히지 않고, 동양이나 아프리카의 코스모테크닉스와 공존하며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는 기술다양성(Technodiversity)이 복원되고 각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서로 다른 기술적 미래가 설계되며 기술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행성적 사유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보았다.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발전 경로에 서구적 혹은 아시아적 코스모테크닉스가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코스모테크닉스나 기술다양성 논의가 제기하는 시사점은 현재의 미중 인공지능 경쟁을 단순히 누가 이기느냐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이 경쟁을 하는지, 즉 기술이 우리 삶의 방식과 우주적 질서를 어떻게 다르게 담을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상이한 기술관이나 세계관들간의 상호이해와 협력의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영역에서 중국의 뚜렷한 존재감과 미중의 발전 경로 분화가 기술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발전되고 깊어질 수 있는 지평을 열고 있다.

 

2026년 미·중 인공지능 경쟁은 승자독식의 단일한 기술 패권 질서로 수렴되기보다는, 서로 다른 인공지능 질서가 병존하는 구조로 전개될 것이다. 미중 인공지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 방향의 차이가 더욱 선명해 질 것인지 여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국강병이라는 근대국민국가의 내러티브가 압도적인 미중 인공지능 경쟁판에서 Frontier AGI 와 Embedded AI 가운데 무엇이 전략적 우위를 가져다 줄 지를 희미하게나마 엿볼수 있게 될 지도 궁금하다. 아울러 양국이 보유한 비대칭 전략자산인 최첨단 인공지능 칩과 희토류가 거래되면서 균형의 추가 어떻게 왔다 갔다 할지, 이 과정에서 양국의 갈등이 더욱 불거지게 될지 아니면 양국의 상호의존성과 취약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지도 주목해 볼 만한 포인트이다. 한쪽이 앞서면 오만해져 실수를 저지르고 뒤처진 쪽은 만회를 시도하는 들쑥날쑥하고 역동적인 과정이 당분간 지속되는 가운데 상호 차이에 대한 인식과 학습에 토대하여 새로운 정체성이 구성될 싹이 뿌려지고 자라날 수 있을지도 살펴 보아야 한다.

 

3. 한국의 인공지능 전략

 

글로벌 인공지능 질서 디커플링이 진행되면서 각국 인공지능 전략은 단순히 산업기술 전략 차원을 넘어 변화하는 세계정치경제질서 속에서 자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정체성을 설계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 AI 전략 역시 지정학과 안보, 주권과 경제, 가치와 철학과 정체성이 얽힌 고난도의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먼저 지정학적 및 안보적 층위에는 미중 양강 사이 전략적 선택의 압박과 긴장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담겨야 한다. 우리는 미국 AI 풀스택과 안전 및 규범 체계 확산에서 핵심적인 동맹역할을 요청받고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의 협력도 조심스럽게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이 긴장을 어떻게 관리하며 구조적 틈새에서 우리의 인공지능 역량 강화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느냐가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제이다. 경제적 층위에는 주권과 개방성, 성장과 배분 등 다양한 긴장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데이터, 알고리즘, 인프라의 자립을 모색하는 ‘소버린 AI’의 논리가 논쟁의 여지없이 정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 모델 개발에 따르는 천문학적 비용과 효과, 글로벌 생태계와의 호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어느 부문에서 어느 수준까지 자립을 선택할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동시에 AI 혁신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지만 특정 영역이나 집단에 쏠리는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함께 보편적 이득과 혜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이 둘을 개념 차원이 아니라 현실에서 동시에 추구하고 성취하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이다.

 

문화규범적 층위에서는 지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미국의 프론티어 AI나 권위주의적 통제 도구로 AI를 활용하는 중국식 모델을 넘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반영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AI 모델, 한국적 코스모테크닉스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물론, 한국 역사와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재 진행중인 문명사적 전환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 구체적인 정책들간의 우선 순위와 역동적 관계 및 실제 정책 효과에 대한 사회과학적 감수성과 분석이 종합적으로 요청되는 작업이다. 외세의 침입과 식민지로서의 상처를 극복하고 압축 성장을 이루어내면서 동시에 문화적 감수성과 민주적 규범을 축적해 온 한국이라는 존재의 역량이 AI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야 한다.

 

최근 국가 인공지능 전략위원회에서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한 국가 차원의 실행 전략으로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을 발표하였다. 계획안은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 등 3대 정책 축과 12대 전략 분야로 구성되었고 각 부처가 이행해야 할 구체적 정책 실행에 초점을 두었다. 계획안은 실로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AI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첨단 GPU와 국산 AI 반도체를 기반으로 대규모 및 강소형 데이터센터를 균형 있게 확충하고, 컴퓨팅 데이터 보안을 아우르는 AI 고속도로를 구축한다. 이외 AI 핵심 인재 및 AI 모델 확보, AI 규제 혁신, AI 보안 등도 다루고 있다. 산업부문에서는 제조 데이터를 중심으로 산업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하여 2030년 글로벌 제조 경쟁력 1위를 달성하고, 반도체와 제조 데이터를 결합한 AI 모델과 에이전트 서비스를 고도화해 제조 AI 풀스택을 수출 산업으로 확장한다. 이외 공공 지역 문화 국방 부문의 AI 활용도 강조한다. AI 기본사회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노동 복지 돌봄 등 국민 접점이 큰 영역에 AI를 선제적으로 적용해 기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의 AI 역량 강화를 통해 포용적 AI 활용 기반을 마련한다. 한국의 AI 기본 사회 모델을 국제사회에 확산하기 위한 AI 기본 사회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구축한다. 한국은 민주적 가치와 인권 존중의 원칙 아래 주요국 간 규제 격차를 조정하고 상호운용 가능한 글로벌 AI 표준과 거버넌스를 정립하는 글로벌 조율자(Global Coordinator)로서 국제 규범 형성을 선도하며, 기업의 글로벌 진출, 스타트업 성장, 공동연구를 촉진함으로써 AI 발전의 혜택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기여한다는 점 등이다.

 

전반적으로 계획안은 인프라 확보, 인재 양성과 규제 혁신, 산업 지원 등 인공지능 토대를 마련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고 AI 혁신 안전 포용 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립 확보와 보편적 기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 애쓴 흔적이 묻어난다. 미중 어느 한 편을 명시적으로 선택하기보다 강력한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공지능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AI 기본사회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독자적인 공간을 확장해 나가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 발전의 토대를 공고히하고 성공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인공지능 영향의 폭이 넓은 만큼 국가 전략안에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검토한 이후에 느껴지는 문제점을 간략하게 제시해 본다. 첫째 통합적인 비전의 부재 문제이다. 계획을 읽고 나서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전체 계획의 실질적인 방점이 어디에 찍혔는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획안의 핵심적인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소버린AI, 제조AX, AI 기본사회 등으로 답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과연 통합적으로 묶여 한 차원 더 높은 한국적 코스모테크닉스의 정체성을 담은 비전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론들에 힘이 들어가 있고 이들이 함께 모아지는 응집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각론들은 통합적인 비전 안에서 잘 묶일 때 오히려 의미가 잘 드러나고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AI 기본사회라는 개념도 많은 논의 끝에 채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이 개념을 전체 계획을 대표하는 것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여부이다. 왜냐하면 기본사회와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같은 정책 범주로 묶여 있고 실제로 이 개념을 중심으로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구축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이니셔티브의 주요 내용이 소버린 AI나 중견국 연대여야 하는지 AI 기본사회 인지는 전략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글로벌 AI 이니셔티브가 성공적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옳다고 생각되는 말이나 개념의 선택이 아닌 존재의 현실과 비전을 대표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선택이어야 한다. 셋째 첨단기술과 세계정치의 긴밀한 상호구성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계획은 인공지능 발전의 세계정치적 토대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고 판단된다. 글로벌 협력과 세계정치 요인은 AI 혁신 생태계 구축이나 인공지능 전환 과정에서 고려할 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한국 인공지능 전략은 인공지능 기술외교의 틀에서 전개되고 실행될 수 밖에 없다. 계획은 정작 중요한 부분의 글로벌 협력이나 외교적 고려 및 함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표준 규범 공동연구에서만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외교의 가장 중요한 의제이자 동시에 어떤 외교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인공지능 발전 방향이 규정되는 상황에서 외교와 글로벌 측면이 제한된 이슈로만 접근되는 것은 문제의 소지를 남긴다. 인공지능 전략은 한국이 어떤 국가가 되고 싶은가 혹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풀어내야 한다. 고도화된 기술 혁신 역량과 문명 전환 및 한국 정체성에 대한 독자적이고 고유한 사유의 힘이 결합될 때 한국이 AI G3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2026년에 한국 인공지능 혁신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면서 동시에 인공지능 전략에 관한 논의가 더욱 깊이있게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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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 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 W. W. Norton & Company, 2025.

 


■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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