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페이퍼
[인공지능 시대의 국제정치] ④ ‘인공지능(AI)’ 국제 연대: 쿼드와 오커스 그리고 중견국 연대를 중심으로
박재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Editor's Note

박재적 연세대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AI 중심 전략 전환이 미국 주도의 기술·안보 질서를 재편하며 쿼드와 오커스를 핵심 플랫폼으로 강화하고 있음을 분석합니다. 그는 중국·러시아의 AI 연대 확대와 중견국의 ‘소버린 AI’ 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규범 경쟁과 다층적 연대가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중견국 간 협력이 미·중 기술패권 구도 속에서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으며, 향후 AI가 국제적 위계 형성의 결정 요인으로 부상할수록 이러한 연대의 실효성이 중요한 전략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국제정치


동아시아연구원 국가안보패널(NSP)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가 국제정치 전반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조망하고, 주요 국가들의 인공지능 전략을 분석하기 위한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군사, 안보,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등 전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정치의 근본적 성격뿐 아니라 국가 간 세력 배분 구조에도 중대한 변동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늘날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인공지능은 각국이 국가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전략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국가들은 자국의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고, 효율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산업 경쟁력과 안보 역량을 동시에 제고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주요국이 어떠한 인공지능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전략이 군사·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나아가 이러한 움직임이 어떠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독자적인 인공지능 발전 전략을 마련하여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국제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급속한 확산이 가져올 사회적·윤리적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 제도와 글로벌 협력 메커니즘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각국의 인공지능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변화하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함과 동시에 정책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국제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Ⅰ. 서론

 

2025년 1월 20일에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와 달리 인공지능(AI)을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임기 말에야 제한적 수준의 AI 정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선 국면부터 AI 의제를 전면에 올렸고, 출범 직후 3일 만에 바이든 행정부의 AI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110)을 폐기한 뒤 기업 친화적 성격의 새로운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이는 규제·위험관리 중심의 기존 접근을 사실상 접고, 민간의 자율성과 혁신 촉진을 우선순위로 삼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한 조치였다. 이어 2025년 7월 23일에는 「경쟁에서의 승리: 미국의 AI 실행 계획(Winning the AI Race: American AI Action Plan, 이하 AI Action Plan)」을 공식 발표하며 재집권 후의 AI 정책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AI Action Plan은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제3축(Lead in International AI Diplomacy and Security – Export American Allies and Partners)이 AI 외교 및 연대와 직결된다. 핵심은 미국산 AI 제품·솔루션의 동맹·파트너국 확산을 통해 미국 중심의 보안·기술 생태계를 글로벌 표준으로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침은 연대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산 하드·소프트웨어 채택을 강요 또는 견인하는 성격이 강하다. 2017년 미국이 중국 화웨이를 제재할 때는 중국산 제품의 배제를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산 제재를 넘어 미국산 채택 압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즉, 국제표준의 미국화와 기술 확산의 주도권을 통해 미국의 AI 패권을 공고화 하겠다는 의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AI 연대를 강화하려 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중국과 러시아도 AI 연대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Ⅱ. 미국의 AI 연대: 쿼드와 오커스

 

미국은 AI Action Plan에서 AI 동맹/연대 외교의 심화를 표명했는데, 이미 '인공지능에 대한 글로벌 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on AI, GPAI)’, 쿼드(Quad), 오커스(AUKUS) ‘제2축’,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나토(NATO),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민주주의 정상회의 등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다양한 다자 플랫폼 전반에서 AI 의제를 다루고 있다.[1] 이 중 핵심은 쿼드와 오커스이다.

 

1) 현황

 

미국은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오커스(미국·영국·호주)를 AI·첨단기술 협력의 허브로 활용하고 있다. 쿼드는 이미 AI-ENGAGE(농업), BioExplore(생물다양성) 등 응용 협력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며, 2021년 출범한 핵심·신흥기술 작업반(Working group) 등을 통해 의제별 연계를 진척시키고 있다. 2트랙 차원의 ‘쿼드 기술 네트워크(Quad Tech Network)’도 2020년 12월 가동되어 지속적인 정보교환 및 공동 연구의 기반을 넓히고 있다. 호주국립대 국가안보대학원, 인도의 옵저버연구재단(Observer Research Foundation), 일본의 정책연구대학원대학(National Graduat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미국의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 등이 참여하고 있다. 쿼드(Quad) 국가들은 ‘고위급 사이버 그룹’을 구성해 4국의 관련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그룹은 주요 기반시설의 안전 확보, 보안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사이버 위협으로부터의 회복력 제고 등을 목표로 공동 대응과 기술 협력을 추진한다.[2]

 

쿼드는 네 나라 모두가 민주주의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는 점에서 중국의 기술 권위주의 모델에 대한 규범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사이버–AI 연계 관점에서 감시·검열·허위정보 등 AI 남용을 방지하고, 개방·접근·안전의 기술 생태계 확보를 공동 목표로 삼는다. 2025년 7월 개최되었던 쿼드 외교장관 회의는 AI, 반도체, 기술 표준, 사이버 보안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협력을 핵심 의제로 채택했으며, 해저케이블 보안을 중점 협력 분야로 지정했고, 미국은 중국 기술이 포함된 해저케이블의 미국 연결 제한 방안을 준비 중이다.[3] 또한 4국은 AI 전문역량에 있어 상호보완성을 갖는다. 미국은 기계학습, 자연어처리에서 전문역량이 높고, 호주는 언어학, 이론 컴퓨터과학, 인도는 데이터마이닝, 데이터과학, 일본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에 강점이 있다. 이러한 차별적 비교우위는 연대 시너지를 창출할 기반이 된다.

 

한편, 오커스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중 핵심 국가인 미국, 영국, 호주의 협력이다. 전통적으로 파이브 아이즈는 냉전 기간부터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민군겸용기술 공동개발과 민감 정보공유를 이끌어 왔다. 다섯 국가는 정치·문화·언어적 정체성 공유를 바탕으로 오늘날 사이버안보·첨단기술 보호 메커니즘으로까지 협력의 영역을 확장했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의 51번째 주’ 발언으로 미국과 캐나다 관계가 급랭하면서, 파이브 아이즈 응집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뉴질랜드의 경우 1980년 중반 뉴질랜드의 반핵 정책으로 인한 ‘미국·호주·뉴질랜드 동맹(ANZUS) 위기’이래 5개국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이브 아이즈 중에서도 오커스 3국(미·영·호)의 협력이 파이브 아이즈의 핵심 축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오커스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제1축’은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원자력 잠수함을 제공하기 위한 협력이고, ‘제2축’은 세 나라의 첨단기술 공동개발 및 상호운용 강화를 목표로 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합의된 오커스(AUKUS)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계획대로 지속될지 여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2025년 6월 초에는 미국 측의 오커스 재검토 언급도 있었다. 하지만, 6월 중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계기 개최된 미국과 영국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스타머 총리가 오커스의 지속 추진을 확인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20일 백악관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회담을 하고, 호주에 대한 원자력 잠수함 제공 절차를 더욱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따라서, ‘제1축’의 추진은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 전망이다.

 

반면, ‘제2축’은 8개 기술·기능 분야로 구성되며, 2025년까지 AI, 사이버, 양자컴퓨팅, 해저기술 협력이 우선 가동되고, 이후 극초음속, 전자전, 혁신, 정보공유로 협력의 범위가 확대된다. 협력의 범위뿐만 아니라 참여국 역시 확대될 전망이다. 2024년 9월 17일 오커스 3주년 공동성명은 캐나다·뉴질랜드·한국과의 ‘제2축’ 협의를 명시했다. 2025년 9월에는 일본이 처음으로 오커스 ‘제2축’ 활동에 참여해 무인기 AI 연구 협력을 논의했는데, 이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의 군사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의 방위산업 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최근의 전략 환경과도 맞물린다. 오커스 3국과 일본의 무인기 AI 연구는 일본이 영국·이탈리아와 별도로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사업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기술적 기반으로 평가된다.[4]

 

2) 제약 요인과 과제

 

쿼드는 민주주의 연대라는 상징성과 플러스(+) 포맷의 개방성이 강점이지만, 인도의 전략적 유보가 상수다. AI가 미·중 기술패권의 중심축으로 부상할수록, 인도가 쿼드를 AI 연대의 플랫폼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와 인도의 러시아 산 원유 구입으로 붉어진 미국과 인도의 최근 불협화음도 이러한 우려를 키운다. 근본적으로 인도는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는 달리 문화적, 역사적으로 미국과의 정체성 공유 정도가 낮은 한계가 있다.

 

오커스 ‘제2축’은 미국의 수출통제 제도, 특히 ‘국제 무기 거래 규정(ITAR)’으로 인해, 기술·장비 이전이 지연되거나 차단되는 제약이 있다. 영국은 ITAR로 인해 소모되는 연간 비용이 국방예산의 약 1%에 달하고, 호주 역시 매년 수천 건의 허가 지연을 겪고 있다.[5] 이에 보잉, 안두릴과 같은 일부 기업은 호주 현지에서의 ‘연구·개발(R&D)’로 ITAR 제약을 우회하려 하고 있다.[6] 미국 국무부가 2024년 8월 영국과 호주를 대상으로 일부 완화를 단행했지만, 핵추진·양자 내비게이션 등 전략적으로 민감한 분야는 여전히 규제 테두리 안에 있다. 오커스를 통한 AI 협력이 실질적으로 진전하기 위해서는 제도 장벽의 추가 완화, 3국 방산 협업 효율화, 나아가 기초연구의 과감한 통제 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 AI Action Plan의 제3축이 미국산 AI 수출 확대와 더불어 컴퓨팅 자원 수출통제 강화 의지를 담고 있어, 오커스 ‘제2축’을 미국 AI 연대의 핵심 플랫폼으로 만드는 데에는 아직 제도적인 제약이 남아 있다.

 

Ⅲ. 중국, 러시아, 인도의 AI 연대

 

미국에 대응해 중국도 일대일로(BRI), 상하이 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등의 네트워크에서 AI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일례로 시진핑 주석은 2025년 9월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AI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7] 아울러 AI 발전은 상호 연계와 공동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언급하며, ‘냉전식 사고’에서 벗어나 협력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중국은 유엔 등 다자 플랫폼에서의 논의에도 힘을 싣고 있다. 2023년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내놓은 데 이어, 2025년 7월 26일에 개최된 ‘세계인공지능대회(World Artificial Intelligence Conference, WAIC)’에서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 신설 제안과 ‘글로벌 AI 거버넌스 행동계획’을 발표하며 대안 규범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AI 연대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다층적인 글로벌 협력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8] 첫째,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인프라와 AI 기술 구축을 지원하는 ‘디지털 일대일로’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해당 국가들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둘째, 자국이 개발한 AI 모델과 기술을 무료로 공개함으로써 전 세계 개발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오픈소스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국제 AI 생태계에서의 표준과 영향력을 주도하고자 한다. 셋째, 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신흥 경제권과의 기술 협력도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신규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AI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BRIICS 회원국들과의 협력 심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BRICS 및 기타 신흥국들과 공동으로 AI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국제적 차원의 AI 협력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BRICS 국가들과 AI 관련 학회, 기관, 연구개발 조직이 참여하는 국제 연합체를 구성한다면, AI 분야의 공동 연구와 기술 협력이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구체적인 협력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9]

 

한편 인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는 GPAI 참여국 확대를 매개로 미국과 중국 중심의 규범경쟁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제3 세력 구축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인도와 같은 역내 다수 국가가 ‘AI 주권 확보(소버린 AI)’를 기치로 AI 생태계 구축을 서두르더라도, 자본·기술·데이터·인재 등 핵심 요소에서 미국 및 중국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이 때문에 개별적인 노력을 뛰어넘는 중견국 다자 연대의 필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Ⅳ. 중견국 AI 연대의 가능성?

 

미국의 동맹국과 안보 우호국은 ‘소버린 AI’와 미국이 구축한 (또한 설정하고 있는) 표준의 수용 사이에서 선택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중국산 제품의 보안성 취약을 우려하여 미국산 제품의 도입을 선택하더라도, 미국산 제품의 보안성과 신뢰성을 둘러싼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즉, 미국의 동맹국과 안보 우호국들이 주권·표준·안보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선택과 우선투자의 난제를 맞닥뜨리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우선, 동맹 경시 때문에, 미국 주도 AI 연구와 투자 네트워크의 응집력은 낮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며 나토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고, 2025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밴스 부통령의 강압적 태도가 동맹국들의 반발을 촉발했다. 더불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대러시아 사이버 작전의 일시 중단을 지시했다는 보도는 동맹의 우려를 키웠다. 이는 마이클 왈츠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이버 억제 대상국에서 러시아를 배제하고 중국과 이란만 지목했던 것과 겹치며 동맹국의 불신을 증폭시켰다.[10]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이 캐나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51번째 주” 발언으로 캐나다를 조롱하여 미국과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인 캐나다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11]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역내 중견국이 개별적인 자강 전략과 병행하며 중견국 AI 연대를 모색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12]

 

실제로 역내 중견국 간 양자, 삼자 협력 확대가 감지된다. 2025년 8월에 개최된 일본과 인도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인도에 대한 68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였다. 동 회담에서 양국은 ‘신뢰할 수 있는 AI’ 국제표준 공동개발을 골자로 한 인도–일본 AI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2026년 2월 인도가 개최할 ‘AI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글로벌 규범 선도자를 자임할 가능성도 있다.[13] 또한 2025년 9월에 개최된 일본과 호주의 외교·국방 장관 2+2회의는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토대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체계를 구축하는데, 양국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인도도 2025년 8월 고위급 회담을 통해 반도체·AI·청정에너지 등 첨단 분야 전략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드 참여국인 호주·인도·일본의 AI 공동연구·투자 수준은 매우 낮다. 세 나라의 공동연구는 전체의 4% 미만, 투자 연계는 1% 이하로 추정되는데, 주된 이유는 데이터 거버넌스 차이·역량 격차·지정학 우선순위 불일치이다.[14] 예컨대 인도는 2019년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서 일본이 제안한 ‘오사카 트랙’ 서명을 거부했다.

 

한국, 인도,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주요 중견국들은 핀테크와 모바일 기술에서 이미 높은 성취를 보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AI 도입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15] 그러나 AI 인프라의 미국 및 중국에 대한 의존은 기술적 자율성을 제한하며, 이러한 격차는 성장과 삶의 질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의 경우 인재와 자본의 유출로 영향력이 더욱 약화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연산능력, 데이터, 인재를 공동으로 확보하고 연구·제품 개발을 협업하는 지역 차원의 연대가 필요하다.[16]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2025년 10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아세안 주도 다자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아세안 간 디지털 전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Ⅴ. 전망 및 인도·태평양 질서에 대한 함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지경학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다양한 (소)다자 협력이 중층적으로 협력, 연계 또는 경쟁하고 있다.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도 양자 동맹과 함께 쿼드·오커스 등 소다자 협의체가 부상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출범 뒤 자국우선주의 심화로 미국 주도 자유주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중견국의 자강·연대 담론이 확대되고 있다.

 

역내 국가가 질서의 수동적 수용자를 넘어 일정한 규범·제도·기능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중견국 이상의 역량과 함께 소지역 리더십 및 지역 간 네트워크의 연결자(broker)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역내에서 그럴수 있는 중견국은 일본·한국(동북아), 인도네시아(동남아), 호주·뉴질랜드(남태평양), 인도(인도양)를 꼽을 수 있다. 어느 중견 국가가 단독으로 역내 안보 질서 구축 및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역부족이지만 ‘소다자 연합을 구성하면 미국과 중국에 대해 일정한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 연대는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내부의 중견국 연대라는 성격을 지니기에, 한편으로는 미국 네트워크를 보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을 완화하는 균형 기제가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AI 분야에서도 중견국 연대의 필요성은 명확하지만, AI의 기술·인프라적 특성상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의 압도적 인프라 우위 속에서 역내 중견국들은 오히려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즉, 중견국 연대가 진영 연대의 논리에 함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향후 AI가 국제적 위계의 핵심 결정요인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견국 AI 연합이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AI 영역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중견국 협력에도 부정적 파급효과가 불가피하다. 앞서 살펴본 중견국 간 낮은 수준의 투자와 연구 협력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준다. 중견국들이 직면한 이러한 현실적 제약하에서 미국의 AI Action Plan은 ‘포괄적 연대’라기보다 미국 중심의 AI 질서를 제도화하려는 전략적 구상에 가깝고, 쿼드와 오커스 내 AI 협력 역시 미국 주도 AI 연대를 뒷받침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견국들 사이에서 AI 분야 공동투자와 연구 협력의 규모는 실질적으로 확대되지 않고 있어, 중견국 연대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1]김상배, “미중 인공지능 패권경쟁과 한국: 국제정치의 전환과 중견국의 국가전략,” 국가전략, 31(2), 2025. p. 113

 

[2]Mandeep Singh, “AI-driven threats heighten regional focus on cyber defense,” Indo-Pacific Defense Forum, August 12, 2025.(https://ipdefenseforum.com/2025/08/ai-driven-threats-heighten-regional-focus-on-cyber-defense/)

 

[3]연합뉴스, “미, 해저케이블에 중국 기술 사용 금지 추진…"보안 우려," 2025년 7월 17일.(https://www.yna.co.kr/view/AKR20250717028700009)

 

[4]류호 “"오커스, 일본에 '무인기 탑재 AI' 공동연구 타진... 중국 견제 목적," 한국일보, 2025년 3월 4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415540000973)

 

[5]오정미, “미국 상무부, 안보협력 동맹국인 오커스(AUKUS) 대상 수출통제 완화,” 수출통제 Issue Report, 전략물자관리원, 2024년 5월 3일; “미국, 방산협력 측면에서 수출통제 목록 정비 등 필요,” 해외연구동행 Report 2025-22, 2025년 7월 21일.

 

[6]Rajiv Shah, “US export rules need major reform if AUKUS is to succeed,” The Strategy, 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 February 16, 2023.

 

[7]이동규, “2025년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중국의 의도와 한계” 이슈브리프, 아산정책연구원, 2025년 10월 2일.(https://asaninst.org/data/file/s1_1/222742fa858281cd85cc5db0e71d3150_UHky3TuA_56dc1199bdd7d5c4749bc1e2950bcd35a829461d.pdf)

 

[8]이윤선, “[AI의 정치사회학] 미래 패권 좌우할 미·중 AI 세계대전,” 자유일보, 2025년 5월 6일.(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197)

 

[9]이경아, “푸틴, 중국·인도 등과 'AI 동맹' 추진...미국 패권에 도전,” 사이언스 투데이, 2024년 12월 12일.(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2412121136489802)

 

[10]Michael Shoebridge, “The ‘5 Eyes’ & Trump: problems of trust & mistrust,” Strategic Analysis Australia, March 21, 2025.

 

[11]The Economist, “Donald Trump v the spies of Five Eyes,” March 16, 2025.

 

[12]Hans Horan, “Indo-Pacific Allies May Rethink US Intelligence Sharing After Gabbard, Patel Appointments,” The Diplomat, March 1, 2025.

 

[13]최윤정, “‘트럼프 우선주의(Trump First)’와 인도의 인도-태평양 재조정,” 세종포커스, 세종연구소, 2025년 9월 15일.(https://www.sejong.org/web/boad/1/egoread.php?bd=1&itm=&txt=&pg=28&seq=12397)

 

[14]Husanjot Chahal, Ngor Luong, Sara Abdulla and Margarita Konaev, “Quad AI,” Issue Brief, Center for Security and Emerging Technology, May 2022.

 

[15]Justin Lim, “AI 생산성 전쟁이 시작됐다 — 아시아 중견국, ‘AI 인프라 주권’의 기로에서다!,” Asean Daily News, 2025년 4월 16일.

 

[16]전게서

 


 

저자: 박재적_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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