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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경주 APEC과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그리고 북한의 복잡한 속내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ditor's Note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2025 경주 APEC에서 진행된 한미, 한중 및 미중 정상회담이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외교 어젠다를 던졌다고 진단합니다. 저자는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원료를 확보한 것과 최근 북한의 외교 성과들을 다소 상쇄하는 것으로 보이는 회담 결과에 북한의 속내가 복잡할 것으로 주장합니다. 박 원장은 이 같은 유리한 외교 환경이 조성된 시기에 포스트-APEC을 위한 국민적 지혜를 모을 것을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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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양자외교에 능했다. 1990년을 전후로 세상이 바뀌었고, 냉전 구도가 허물어지는 국제질서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기존의 양자외교는 물론 다자외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분단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자산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안보 이슈를 다루는 다자무대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결국 전 세계 인구의 40%, 글로벌 GDP의 60%를 차지하는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은 무척 매력적인 무대였던 것이다. 한국은 호주, 미국, 캐나다, 일본 등과 지혜를 모아 1989년 창립 시점부터 APEC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5년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경주에서 풀어 놓은 한국 외교의 보따리를 앞으로 어떻게 알차게 주어 담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원래 큰 다자 외교 판이 벌어지면, 앞뒤로 다양한 양자 외교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게 국제 무대의 관행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APEC 기간 동안 총 13차례의 양자 정상회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서도 이번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11년만에 한국을 찾은 시진핑 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성과와 한계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국익 차원에서 향후 안정적인 한미중 관계의 정착은 한반도 운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 및 한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외교 어젠다를 던졌고, 이를 지켜본 북한의 속내는 매우 복잡할 것으로 짐작된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이후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핵연료 추진 잠수함 확보에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 중 공개 발언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했고,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최종 승인한 바 있다. 처음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조선소에서의 건조를 전제로 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현재 한미 양 정부는 한국에서의 건조에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에 한계가 있어 북한이나 중국의 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중국과 북한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개 반발할 수 있는 발언이었는데, 중국 정부는 다음 날 동북아 지역에서 NPT 체제가 유지되기를 희망한다는 간단한 내용의 입장을 밝힘으로써,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북한의 복잡한 입장과 계산이다. 북한은 아직 이와 관련한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짐작건대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할 논리적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NPT체제 안에서 핵보유가 인정된 나라지만, 북한은 지난 30여년 동안 NPT 체제의 규칙을 어기고,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수많은 기만을 반복하면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사례이다. 한국 정부가 시도하는 핵추진 잠수함은 핵연료의 군사적 이용을 의미하므로, 한미 양국 간 원자력협정의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여전히 재래식 무기의 탑재를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NPT 체제의 의무 사항을 위배하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잠수함의 성공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핵연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을 향해 자체 연료 생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서, 향후 한미 간 정교한 협상 과정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모를 리가 없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역시 한반도와 같은 협소한 작전 구역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비대칭 전력이 분명하므로, 그간 북한이 핵무기를 통해 유지하던 비대칭 무기의 독점적 지위가 상실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둘째, 한중정상회담 역시 북한에게는 적지 않은 전략적 고민을 안겨주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9월초 전승절 행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과 천안문 광장에 나란히 모습을 나타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함께 북중러 3국 정상이 함께 회동함으로써, 북한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외교안보적 공간을 확보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진핑 주석이 11년만에 한국을 찾았고, 한중 정상회담에서 AI를 포함하여 양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미래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하게 되었다. 북중 간에 작동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이해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중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버티게 만든 든든한 버팀목이자, 특히 지난 2018년 북미 간 정상외교 국면에서는 1년반 만에 북중 지도자가 무려 5차례나 만나면서, 전략적 협력을 깊게 확인한 바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중러 삼국 협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공고하다고 믿었던 시점에서 한중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다.

 

셋째, 경주 APEC 회의에서는 미중 간 정상회담도 개최되었다. 이 역시 북한으로서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궁극적으로 통일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국가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이 시작하는 오른쪽 끝이고, 동시에 태평양이 시작하는 왼쪽 끝이다. 이곳에서 대륙의 거인 중국 지도자와 태평양의 거인 미국 지도자가 만났다는 사실은 마치 두 초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동시에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북한을 상대로 한 한국의 월등한 지위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평양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일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한 문제를 포함한 한국의 거의 모든 국가이익은 성공적인 한미중 관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근대 등장 이후 모든 국가는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는데, 하나는 경제발전이라는 목표, 다른 하나는 정치발전이라는 목표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자원이라곤 사람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50여개 국가를 대표하는 성공적인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을 이룩했다. 한국 GDP의 80% 이상이 교역을 통해 창출된다고 봤을 때,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유지는 한국의 입장에서 너무도 중요하고, 이런 관점에서 이번 경주 APEC을 통해 한국 정부가 거둔 성과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와 연계된 성공적인 외교 정책의 추진이 관건이다. 결국 외교도 내치(內治)의 연장일 수밖에 없으니, 포스트-APEC을 위한 국민적 지혜가 더 절실한 순간이다. ■ 

 


 

■ 박인휘_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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