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미국 1년 <하> 韓美관계의 과제
2005-02-23 (한국일보 기자)

2004 한미관계
 

우리가 서울 광화문 일대를 촛불시위의 물결로 뒤덮었던 격정의 순간들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과연 우리는 1년 전의 감성적 열기를 식히고 좀더 차가운 이성으로 한미관계를 바라보게 되었는가. 이번 한국일보여론조사 결과는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전략적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들 상당수(61.4%)가 주한미군을 한국 안보에 필요한 요소라고 인식하고 있는 점, 그리고 이라크 추가파병이 우리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과반수가(59.8%) 동의한 점이 그렇다.

 

이는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지난 1년 동안 북핵, 주한미군 재배치, 이라크 파병 등에 관해 국론분열 직전까지 가는 논쟁을 거치면서 한미동맹의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학습과정’을 거친 결과라고 생각된다.‘제2차 북핵위기’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2003년초 미국은 주한미군 재배치 의사를 전해왔고, 이로 인해 국민들은 주한미군이 과거 반세기 동안 행해왔던 역할에 대해 냉정히 되돌아 볼 수 있는시간을 가졌다.

 

2003년 3월 단행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지만, 명분을 둘러싼 범세계적 논란 속에 미국측으로부터 날아온 한국군 파병요청은 우리 사회에 ‘자주 대 동맹’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가졌다.

 

이러한 학습과정의 결과 대북 햇볕정책을 지속ㆍ강화하기(28.4%)보다는햇볕정책과 강경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여론(57.1%)이 압도적인 우세를점하게 되었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지지여론(44.7%)이반대여론(48.6%)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여론이과반수(54.9%)를 차지하게 된 것도 북핵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안이함의 표출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이 확고하고 주변국들이북핵에 반대하는 한 결국 북한이 핵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략적 사고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는 한미관계를 낙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미국(46.3%)을 북한(25.1%)보다도 통일에 장애가 되는 세력으로 인식하고있는 점,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대해 국민 절대다수(87.5%)가 개정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은 아직도 상당수 우리 국민들이 미국을 전략적 차원에서 인식하기 보다는 ‘이미지’에 바탕을 둔 감성적 차원에서 접근하고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동맹국으로서의 미국을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9ㆍ11이후 노골적으로 초강대국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미국이 우리 국민들에게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가 던지는 한미관계의 과제는 무엇인가? 국민들이한미관계를 중장기 전략적 차원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국정부가 한미동맹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시급하다.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한미동맹이 지속된다는 것은 미국이 계속 동북아에지리전략적 이해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동북아에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특히 미국의 힘을 이용하여 중ㆍ일간의 패권경쟁을 억지함으로써 한국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미동맹은 통일한국이 제3국의 불필요한 개입을 우려하지 않는 가운데통일과정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따라서, 양국정상이 빠른 시일내에 가칭 ‘한미 신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한위협 소멸이후의 한미동맹의 비전과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해야만 한미동맹을 우리의 국가이익에 맞게 전략적으로활용해 나가고 국민들의 인식도 제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