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부·기업 '나만 잘하면 돼' 하다간 망한다

  • 고동우 기자 (경남도민일보)

정부·기업 '나만 잘하면 돼' 하다간 망한다 
 
정한울 박사 보고서 '반기업 정서의 결정 요인'

 

정부와 시장(기업)의 관계는 보통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묘사되어 왔다. 정부 주도냐 시장 주도냐, 규제냐 자율이냐

그간의 이분법적 논쟁 구도를 떠올려보면 될 것 같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 정한울(정치학 박사) 사무국장은 이런 통념

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고서 '반기업 정서의 결정 요인'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재벌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이념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다르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즉 진보적일수록 대기업

에 비판적이며, 보수적일수록 친화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한울 박사 보고서의 기초 자료가 된 글로브스캔·동아시아연구원·사회적기업연구소의 지난해 3월 국민(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여론조사 결과 역시 대체로 이런 '상식'과 일치한다.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고학력·저연령·고소득층은 대

기업에 대한 신뢰가 낮았던 반면, 새누리당 주요 지지층인 저학력·고연령·저소득층은 예의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보

였다.

 

2002년 이후 꾸준히 나아지던 대기업 신뢰도가 지난해 추락한 것도 눈에 띈다. 2002년 35%, 2005·2007년 38%, 2012년

44%에 이르던 신뢰층 비율은 2013년 36%로 10여 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실시한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인데, 정 박사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경

제민주화'어젠다가 한국 사회 전면에 떠올랐고 대기업 불신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과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상황과 분석은 학력·연령·소득 같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 변수나 기업 자체의 노력(일명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등보다 정치적 변수가 대기업 신뢰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 주도냐 시장 주도냐, 규제 강화냐 규제 완화냐 잦은 논쟁이 벌어지지만 핵심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전국노점상총연합 주최 '졸속 규제완화 반대 및 노점 규제철폐' 시위 장면. /

연합뉴스


기업신뢰도 좌우하는 정부신뢰도

 

정치적 변수 가운데서도 보고서가 특히 주목한 것은 지지 정당이나 이념 성향이 아닌 '정부에 대한 태도'다. 기업에 대한

태도와 정부에 대한 태도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 통념대로라면 반비례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각종 경제·민생

쟁점이 부각될 때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주도냐 시장 주도냐 대립 구도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

문이다. 정한울 박사의 말이다.

 

"진보적 이념은 대체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선호하는 반면, 보수적 이념은 대체로 작은 정부-기업의 자율성을 강

조했다. 정부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존의 정부-기업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유럽의 정

부 규제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과 미국처럼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논쟁으로 이어지

고 있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부와 기업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결정되지만, 두 입장 모두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양 극단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앞서 여론조사 결과는 다른 현실 인식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 신뢰와 대기업 신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그

림>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반비례 관계가 아닌 정비례로 나타난 것이다. 응답자들의 다수는 정부(대기업)를 신뢰할수록

대기업(정부)을 선호하고, 대기업(정부)을 신뢰하지 않으면 정부(대기업) 또한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를

'매우 신뢰하는' 응답자의 73%가 대기업을 신뢰한다고 답했고 정부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응답자의 88%는 대기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정부-기업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던 기존 해석과 달리 국민들 다수가 정부-기업 관계를 공동

의 협력 관계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분석 기법 중 하나인 '순서회귀분석'을 통해 다른 요인들을 통제한 조건에서 분석한 결과도 같았다. 즉 개인의 사회

경제적 배경변수나 CSR 효과보다 정치적 변수가 대기업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고, 그 정치적 변수 가운데서도

정부에 대한 태도가 지지 정당·이념 지향보다 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문제는 실질적인 해법

 

보고서의 조사·분석 결과는 정부·정치권과 기업에 새로운 '정치적 함의'를 던져주고 있다고 정한울 박사는 주장한다. 이

를테면 기업 입장에서 사회공헌 활동 등에만 주력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 극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 불평등·양

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대기업의 탐욕과 횡포가 국민적 이슈가 되고 그에 따라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 등

이 의제로 부상하면 어떤 자체 노력을 해도 이미지 전환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재벌 대기업이 양산하는 각종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이미 기업 또는 시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정부 못지않거나 심지어 그를 뛰어넘었다고 인식하고 있

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기업 주도냐, 정부 규제 중심이냐의 낡은 인식 구도"를 하루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기존 관성

대로 자기 정치 이념에 꿰맞춰 어느 한쪽을 '진리'로 강조하며 정쟁을 일삼기보다는, 실질적이고 효능감 있는 해법 마련

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제도를 만들든, 기업을 설득해 스스로 움직이게 하든 아니면 압박·강제를 하든 그 수단은 그리 중요

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정 박사의 분석대로 "정부나 기업이 단독으로 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회 문제의 등장으로 상호 간의 공동 책임을 중

시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게 맞다면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와 노력을 경주하는 협

력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정부 및 기업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비결이 있"음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