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일본 새방위대강의 의미

  • 2004-12-23
  • 박철희 (중앙일보)

일본 미국 통해 중국 견제 시도 한국 미·중 관계 동시 강화 필요


 

일본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의 안전보장 정책 및 방위력 정비의 기본지침을 담은 새 "방위계획의 대강(大綱)"을 지난 10일 결정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 고려대 교수)은 최근 이와 관련한 토론회를 열고 새 방위계획의 대강이 갖는 의미와 한국의 과제를 짚어보았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진행한 토론회에는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김태현(EAI 외교안보센터 소장)중앙대 교수, 박철희·전재성·신성호 서울대 교수, 이태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장훈 중앙대 교수, 한용섭 국방대 교수가 참석했다.

내용과 함의=새 대강에 나타난 핵심 개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국제 안보환경의 개선이다. 새 대강은 국제사회의 안정이 일본의 안보에도 직결된다는 인식 아래 일본 방위와 더불어 국제안보 환경의 개선을 방위정책의 기본 목표로 설정했다. 일본 방위에 한정했던 1976년 대강이나, 지역방위로의 확대를 시도한 95년 대강을 넘어 국제사회의 안정에 일본이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둘째는 통합적인 안전보장 전략이다. 자위대의 역할을 일본 방위에 국한하지 않고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력,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와의 협력을 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언제든지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셋째는 다기능적이고 탄력적인 방위력 구상이다. 자위대를 일본 방위, 재해 대응, 미군과의 협력, 국제평화유지 활동 등 다양한 기능에 맞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새 대강은 전수(專守)방위, 비(非)군사 대국화, 문민 통제, 비핵 3원칙 등 전후 일본방위 정책의 근간을 견지해 나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담긴 내용과 최근의 일본의 움직임을 종합해 보면 일본이 전후 외교안보 정책의 총체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21세기형 적극적 방위정책의 선택이다. 일본에 대한 타국의 소규모 한정적 침략에 대해 유엔이 유효하게 대처할 때까지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방위력을 가진다는 "국방의 기본방침""기반적 방위력 구상"을 폐기하고, 테러 등 국제사회의 새로운 위협과 중국 및 북한 등 주변국가에 의한 위협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유엔 중심주의, 비군사적 평화주의를 벗어나 독자적 방위력 정비 등을 통해 억지력을 가지겠다는 얘기다.

미국과의 글로벌 파트너십 창출을 꾀하는 점도 주목거리다. 냉전 종식과 더불어 지역동맹으로 바뀐 미·일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함께 국제적 안정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미국과 함께 가기를 선택했다. 미국·유엔·아시아 외교를 병렬적 3대 축으로 해왔던 전후 일본의 외교정책이 바뀌는 셈이다. 아시아도 미국을 통해 접근하겠다는 통미입아(通美入亞)형 발상이다.

한국의 선택은=미국과 함께 동맹을 맺고 있지만 한국의 선택이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일본은 미국을 선택해 중국에 맞서려 하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책략이 필요하다. 강화되는 미·일동맹이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20세기 초 영·일동맹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또 북한을 21세기형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것도 과제다.

미국을 선택한 일본에 대항해 중국을 대안으로 생각하거나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구축을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중국 자신이 미국의 대안이 아니라고 하는 시점에서 한국이 나서서 중국을 미국의 대안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일본을 외면할 경우 한국은 역으로 북한이나 중국으로부터 홀대받을 가능성이 크다. 급성장하는 중국을 한국 단독의 힘으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런 만큼 한국은 한·미 동맹을 균형있게 유지해야 한다. 보통국가화하는 일본과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미국과의 동맹은 필요하다. 중·일 간의 전략적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도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한·미동맹을 유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중층적인 전략대화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양국의 인식이 다른 부분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대표집필 박철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