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자본의 논리와 혁신

  • 2004-08-31
  • 이근 (한국일보)
과거 운동권에서만 쓰이다가 좀더 넓게 통용되게 된 용어 중에 ‘자본의 논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 상업적 이윤추구에 집착한다는 부정적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어떤 나라든 기업들이 이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나라 국민의 생활 수준은 떨어지게 됩니다.

기업의 이윤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문화도 없습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물건을 팔아 번 돈에서 비용을 제하고 이윤을 남기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상장기업 중 절반이 넘는 기업들의 이윤율이 그 투자 자금의 기회비용인 이자율에 못 미칩니다. 차라리 기업하지 말고 은행에 돈 넣고 이자나 받는 것이 낫다는 것이죠.

그래도 기업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애국자들입니다. 이런 기업인들을 도와주질 못할망정 자본의 논리라는 말로 매도해서는 곤란하죠.

도대체 이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는 경제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에 자발적으로 시장을 통한 거래에 참여하는 것인데, 모두 이득을 보고 손해를 안 보는 상황이 가능한 것일까요.

어떤 이의 이윤은 누군가의 희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 마르크스는 시장에서 모든 것이 등가(같은 가치)로 교환된다고 할 때, 오직 노동만이 자기 자신의 교환가치(자신이 받는 대가)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상품이기에, 이윤이란 사실은 노동자가 만들어낸 가치를 자본가가 빼앗아간 것, 즉 착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제품을 남들보다 더 싸게 만드는 것에 의존하는 이윤과 성장방식은 이런 류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죠. 특히, 과거 60, 70년대 고도성장기와 같이 저임금을 받는 노동이 중요한 성장 메커니즘이었던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죠.

이제 더 이상 저임금국이 아니고 오히려 미국 수준에 육박하는 고임금이 된 지금, 한국은 이미 다른 성장방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즉 착취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윤 창출 방식이 바로 혁신에 의한 것이고, 최근 논의되는 신성장 산업 육성도 이런 맥락에 서있는 것입니다.

혁신이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기에 새로움이 클수록 경쟁대상이 적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이야기는 그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용 보다는 수요와 희소성 즉 혁신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초과이윤 또는 독점이윤인 셈입니다. 이런 경우, 독점이윤은 혁신자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보상입니다.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특허는 이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이죠.

그러나 좋은 혁신일수록 모방자들을 끌어들이게 마련이며 모방품이 출현할수록 최초의 혁신 상품의 상대적 희소성은 감소하죠. 그러면 가격이 떨어져 생산비용에 가까워지고 결국 이윤은 영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이윤을 오랫동안 유지 창출하는 것이 힘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한국이 만들던 새 상품을 금방 중국 등이 모방해서 만든다는 것이죠. 결국 한국은 계속 새 상품을 개발해서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새 모델의 휴대폰을 개발해서 중국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1~2년 팔고 나면 그 이후 모방 제품이 나와 값이 떨어지지만 삼성은 또 새 모델을 내놓을 수 있기에 높은 이윤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