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부 正體性 먼저 밝혀야

  • 2004-08-11
  • 김병국 (조선일보)

"이대로 가다간 한·미동맹이 2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미국 국방부에서 주한미군 재편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진의 고민이다. 경제는 더 암울하다.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보수(保守)는 그 원인을 참여정부의 "진보성"에서 찾는다. 그러나 문제는 진보성보다는 이념적 모호성에 있다. 참여정부는 민주노동당에 비하면 보수적이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고 성장을 중시하는 이들이 여권에 두루 포진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비하면 진보적이다. 자주와 분배를 주창하는 이들 역시 정부 내에 광범한 권력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서로 이질적인 정파를 양 날개로 삼아 선거에 나서면 "표"를 극대화할 수는 있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열린우리당을 자기 편으로 인식하면서 표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는 양 다리를 걸친 것이 오히려 족쇄가 된다. 양 날개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참여정부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동맹국인 미국에 힘을 보태준다면서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하였다. 아울러 부시 정부가 대(對)테러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주한미군 감축과 그 전력 재편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한 참여정부를 경계한다. 참여정부가 주한미군 재편에 동의하는 것은 자주국방으로 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인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보수"의 길로 들어선 것을 자주국방이라는 "진보"의 수사(修辭)로 재포장하여 보수와 진보를 다같이 만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탁월한 처세술 때문에 미국은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안보전략의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어리둥절하다.

이러한 양면작전은 대테러 정책의 핵심인 북한 문제에 가서 더욱더 혼란스러워진다. 참여정부는 "보수"로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기 위한 베이징 6자회담에 참여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경제봉쇄를 고수할 때 참여정부는 ‘진보’로서 오히려 개성공단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그 결과 미국은 참여정부가 과연 한·미동맹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참여정부가 오락가락하기로는 경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년에는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화두(話頭)였고 "2만달러 시대"가 구호였다. 지금은 갖가지 IT 단지를 하나의 망으로 엮어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839 계획"이 논의되고 "UIB 전략"이 구상된다. 하나같이 재계가 반기며 박수 칠 성장의 비전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재계의 희망을 투자로 이끌어내고 성장의 수사학을 정책으로 가시화할 후속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 분배를 의식하지 않고 성장을 밀어붙이기에는 자신의 진보적 이미지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크다.

그러다 경기침체로부터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자 참여정부는 자신의 정책 부재를 반성하기보다 재계를 탓한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재계가 대통령을 사보타주하고 참여정부를 길들이려는 음모 때문이라고까지 비난한다.

성장이라는 "보수"의 길로 나서려 한 것을 희석시키고 상쇄하려는 "진보"의 보상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재계는 재계대로 참여정부가 과연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고,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이 와중에 "국가 정체성"을 놓고 한나라당과 사상전을 벌이고 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참여정부가 "국가"라는 공동체 전체의 정체성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지금 정작 해야 할 일은 자기 내부의 건강한 노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보수인지 진보인지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안보가 튼튼해지고 경제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