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투자침체와 탄력성

  • 2004-07-07
  • 이근 (한국일보)

최근 경기 침체의 한 원인으로 투자 부족이 거론 됩니다. 이자율이 매우낮은데도 불구하고 왜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경제학 개념을 사용해 이 같은 상황을 표현하면,‘투자의 이자율에 대한 탄력성이 매우낮다’고 합니다. 탄력성은 지난 주에 설명한기회비용만큼 중요한 개념입니다.

 

"탄력성"이라는 말은 우리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물건 값을 싸게 매기는 대신 매상을 많이 올린다는 "박리다매"라는 말이 있죠. "물건 값을 10% 싸게 하면 매상이 얼마나 더 오를까", 장사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생각해보는 문제입니다.매상이 많이 오르면 그 상품은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이 높은 상품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수요가 비탄력적인 상품이라고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탄력성이 "1"보다 큰가, 작은가 하는 것입니다.

 

탄력성이 1이라는 것은, 가격을 10% 내릴 때 수요도 똑같이 10% 오르는 경우입니다.이럴 때 매상에는 변화가 없죠. 그렇다면 박리다매는 탄력성이 1보다 클때만 써야 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탄력성이 1보다 크다면(즉 탄력적이라면), 가격을 내려 매상을 늘리면 되고, 반대면 가격을 올리더라도 수요는 많이 줄지 않아 오히려 매상은 오릅니다.

 

투자 침체와 탄력성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불황 국면에서 취하는 경제정책중의 하나가 통화를 늘리는 것입니다. 돈을 풀어돈의 가격(이자율)을 떨어뜨리고 그러면 기업들이 돈 빌리기가 쉬워져서 투자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몇 단계의 과정을 기대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가운데 제일 불확실한 단계가 "이자율이 떨어지면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자율에 대한 투자의 탄력성입니다. 현재 한국의 문제는 이 투자 수요의 이자율 탄력성이 워낙 낮다는데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일본의 장기 불황기 때의 상황이 정확히 그랬고 요즘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니 한국이 일본형 장기 불황에 빠진다는 말이 나오는것이죠.투자도 침체됐고, 소비도 죽어있다는 점은 한국과 일본이 똑같습니다. 이는 달리 보면 저축만 하고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바로 이자율에대한 저축의 탄력성이 낮아 이자율이 떨어져도 저축이 줄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경제 정책에서 핵심사항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나라 경제의주요 탄력성 크기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파악 없이, ‘응 투자가죽어있어, 이자율 떨어뜨려’라는 식의 기계적인 정책을 편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실제 이런 일이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결국 투자는 늘지 않고 부동산 붐만 일어났죠. 투자는 이자율 뿐만 아니라향후 경기전망, 좋은 사업 기회의 존재 여부 등에 영향을 받는데 기업들이향후 경기를 불확실하다고 보고, 또 기업하기도 힘들기에 투자를 않는 것이죠. 잔뜩 현금을 사내에 비축한 채 저축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탄력성에는 소득 변화에 대한 수요 변화를 재는 수요의 소득 탄력성도 있습니다. 장사를 한다면, 기왕이면 수요의 소득 탄력성이 높은 아이템을 선정하기 바랍니다.사람들이 부자가 될수록, 수요가 몰리는 그런 상품 말입니다. 이는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격차 설명에도 쓰입니다. 선진국이 생산하는 제품은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수요가 따라 늘어가는, 탄력적인 제품인데 비해 후진국의 농수산물이나 저급소비재는 그 반대이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