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냐, 이명박이냐. 12월에 실시되는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한나라당 후보가 오늘 오후 결정된다,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대세론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50%를 넘고 이명박·박근혜 지지도를 합치면 70%에 이르고 있으니 한나라당 후보 필승론에 무게가 실릴만하다. 이 같은 지지도 편중현상의 배경에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극도의 실망감이 도사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른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는 누구로 결정되건 정권교체의 기수가 되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오늘의 승리가 ‘최후의 승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12월 본선에서 승리해 한나라당의 10년 염원인 정권탈환에 성공할 때 비로소 오늘의 승자가 진짜 승자가 될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본선 필승후보를 뽑아야 한다” 고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으니 어쩌랴, 바로 경선후유증 때문이다. 이명박 · 박근혜 양측 캠프의 감정은 경선투표 바로 직전까지 서로 난타전을 벌일 정도로 격앙돼 있다. 심지어 상대방을 향해 “동지라 할 수 있느냐” “후보를 사퇴하라” “쿠데타를 하겠다는 거냐” 등등 직격탄을 날렸다.
양측의 감정의 골은 지지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지지후보가 경선에서 실패할 경우 절반 가량이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포기할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SBS·한국리서치·동아시아연구원이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패널 여론조사 결과다. 이 조사결과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을 때 박후보 지지자의 48.9%가,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을 때는 이후보 지지자의 58.9%가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경선후유증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감정의 골만이 우려되는 게 아니다. 경선과정에서 드러났던 한나라당의 약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고질적인 줄서기, 줄바꾸기, 패거리 정치(clique politics)문화가 그대로 온존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읍·면·동 단위 당원에서부터 중간당직자, 국회의원, 심지어 당 원로들까지 이명박줄, 박근혜줄로 갈라져 싸움을 벌였다. 몇몇 뜻있는 국회의원들이 ‘중심모임’을 이끌었지만 보이질 않았다. 1997년, 2002년 대선 때도 똑같았는데 그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패거리 문화는 곧 원칙과 합리의 파괴로 연결된다. 당이 정해놓은 경선 룰이 바뀌는가 하면 경선행사를 캠프가 거부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지난 3개월간 당은 없고 캠프만 설쳐댔다고 해도 한나라당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는 세력싸움’이라고 하지만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민의 마음을 얻기가 힘들어진다.
양측캠프가 상대 약점의 폭로전을 벌이면서 자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소·고발로 검찰에 그 해결을 맡긴 것은 치명적이다. 검찰은 사법기관이긴 하지만 집권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부기구다. 야당 후보가 될 사람의 약점을 집권세력에 맡겼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당장 도곡동 땅 사건에서 보여준 검찰의 태도는 고도로 정치적이었다. 경선 끝난 후에 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으니 자칫 한나라당 후보가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대도(大道)를 어긴 값비싼 대가라 할 수 있다. 막상 검풍(檢風)이 불어닥쳤을 때 한나라당에서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인다고 국민이 얼마나 믿어줄까. 이번의 경우 검풍은 분명히 한나라당이 자초한 자승자박(自繩自縛)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면 국민들의 눈길은 이제 범여권으로 향할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 쇼’ 가 끝났으니 도로 열린우리당의 ‘경선 쇼’ 를 보러 갈 것이 뻔하다. 그리고 어느 ‘쇼’ 가 더 재미있나 비교할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경선무대에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미흡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루빨리 전열을 가다듬어 범여권으로 향하는 국민의 관심을 붙잡아야 한다. 그 방법은 대화합의 팡파르를 울려 국민을 감동시키고 진정한 보수 우파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