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실패의 정치학] 새집 지어놓고 옛사람 사는 격

  • 2004-05-10
  • 신정록 (조선일보)

정책수석에 부담 집중되며 한계 노출

NEIS·부안사태땐 담당 중복돼 혼선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내려질 경우를 전제로, 제1기 비서실 개편 구상을 다듬고 있다. 정책실장 산하의 정책수석은 정책기획수석(가칭)으로 이름을 바꿔 경제 분야를 전담하는 과거 경제수석 역할을 하고, 신설될 사회정책수석(가칭)은 복지·노동·교육 등 일반 사회 분야를 담당하게 한다는 골자다. 정무수석은 폐지된다. 결국 ‘대통령 비서실이 정부 부처별로 관장하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전 시스템이 복원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1기 비서실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공백·혼선 거듭에 한계 절감?

 

DJ 정권 때만 해도 청와대는 정책기획, 경제, 복지·노동, 교육·문화 등 부처 담당 수석 4명에 비서관만 10여명이었다. 이들은 “장관 위에 군림하면서 권한은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노 대통령 취임 후 이런 폐해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정책수석 1인 및 그 휘하 비서관 3명 체제를 시작했으나 목적과는 달리 숱한 문제를 낳았다. 경제관료 출신인 권오규 정책수석은 경제 분야 전문성에 있어서는 평가를 받았으나 과도한 업무부담과 함께 교육, 노동 등 비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한계를 노출했다는 평이다.

 

예컨대 교육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둘러싼 교육부와 전교조 간 갈등시 청와대 내에서는 정책수석실, 민정수석실, 정무수석실, 참여혁신수석실 등 4개 수석실이 중복 관여했다.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주민 시위 당시에도 정부의 소관 부처는 산업자원부였으나 청와대 내에서는 산업자원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참여혁신수석실의 비서관이 현장에 내려가 있었다.

 

이러다보니 정책수석의 경제보좌 기능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권오규 수석은 전화통화에서 “업무가 너무 과다해 집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전 정책실 행정관은 “누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혼선이 있었고, 또 반대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일이 집중돼 공백도 컸다”고 했다. 어떤 경우 정부 공무원이 청와대 곳곳에 16개의 같은 보고서를 보냈다는 일도 화제가 됐다.

 

이에 따라 경제수석을 독립시킬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 왔으나 청와대측은 받아들이지 않다가 이번에 대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DJ 정권 경제수석이었던 강봉균 의원은 “청와대는 역시 분야를 나눠 책임도 져야 하는데, 사실상 경제수석이 부활된 것은 그런 뜻으로 본다”고 했다.

 

◆ 1기 비서실 설계자들의 진단

 

노 정부 1기의 비서실 조직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박세일 교수(현 한나라당 비례대표 당선자)팀이 공동 집필한 책 ‘대통령의 성공조건’이 권고한 핵심 내용대로 구성한 것이다. 1기 비서실 조직 설계자라 할 수 있는 ‘박세일팀’은 이번 비서실 개편 추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세일 당선자는 10일 말을 아꼈다. “조직도 중요하지만 (그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도 중요하다”고만 했다. 박 당선자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설계한 청와대 모델이 갈수록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집은 새집으로 바꿔 놓고도 거주하는 사람은 구식(舊式)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EAI 원장인 김병국 고려대 교수는 “1기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국무총리가 국정 전반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지는 ‘책임총리’가 돼야 하는데, 그 전제가 충족되지 못했다”면서 “그런 원인 진단 없이 대통령 비서실이 경제 분야, 비경제 분야로 나눠 각 부처를 챙기는 식의 과거 시스템으로 복원하면 국정에 과부하가 걸리고 대통령과 나라가 모두 낭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박세일팀’의 일원으로 작업한 장훈 중앙대 교수는 “모델을 받아들이면서 그 모델의 기본목표나 방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정권 내 인적 권력관계가 그 핵심 개념보다 우위에 섰던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가령 비서실장·정책실장 투톱 시스템이 핵심인데, 그 공식적인 권한과 비공식 권력 또는 신뢰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누가 퇴진하면 그 자리가 없어지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현 한나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우리가 설계한 취지는 대통령은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5~6개 핵심 과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내각에 맡기자는 것이었는데, 그렇게는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