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보고

  • 2004-05-04
  • 이내영 (조선일보)

이념이란 개인의 의식과 행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신념체계 혹은 가치성향을 의미하는데, 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념성향은 그 사회가 겪었던 역사적 경험과 갈등의 산물이다.

2004년 조선일보·한국조사연구학회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통일 후 체제에 대한 국민의식 변화다.

자유시장경제든 사회주의경제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진보적 통일관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2002년 9.8%에서 금년엔 31.1%로 크게 증가했다.

이런 진보적 통일관은 세대와 지지 정당에 상관 없이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 및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견해는 작년의 26.5%에서 금년에는 21.2%로 줄었다.

이 결과는 햇볕정책의 성과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최근 핵 재개발 등으로 인한 북한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렇게 볼 때 ‘체제를 불문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진보적통일관을 북한 체제에 대한 동경으로 연결지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남한식 통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유시장경제 및 사회주의경제와 제3의 길까지 포함한 다양한 통일방식의 모색을 원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하는 의견도 높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내 인권과 관련된 인식의 향상으로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국가보안법의 존속 의견이 줄어들고, 진보적 통일관은 늘어나는 최근 추세로 볼 때 국민들이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우려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결과는 매년 세대별 이념성향의 차이가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성향을 -50(진보)~ 50(보수) 척도로 측정했을 때, 2002년에는 20대(1.3점)와 50대 이상(8.4점)의 차이가 7.1점이었으나, 2003년에는 20대 -2.2점, 50대 이상 7.1점으로 차이가 9.3점이었고, 2004년에는 20대 -3.3점, 50대 이상 6.9점으로 차이가 10.2로 늘어났다.

세대별 이념성향의 차이가 뚜렷하고 확대되고 있는 추세는 지난 대선 이후 등장한 세대 균열이 상당 부분 이념 균열과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대갈등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현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정당 지지자별로 이념성향의 차이가 커진 점도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현상인데, 아마도 탄핵정국과 총선의 영향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국민들이 생각하는 각 정당의 이념적 성향의 차이도 비교적 큰 것으로 나타났다. -50~50 척도에서 한나라당 14점, 열린우리당 -8.5점, 민노당 -16.6점 등으로 조사되었다.

이렇게 국민들이 정당 간의 이념적 성향의 차이를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고, 정당 지지층 간의 이념성향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난 이번 조사 결과는 정책과 이념 대결의 정당 경쟁이 일어날 객관적 조건이 유권자 수준에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향후 정당들이 정책과 노선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게 되면, 정당 경쟁이 지역을 뛰어넘어 이념과 세대 대결을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