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野, 의원에 자율권 줘야

  • 2004-04-22
  • 강원택 (조선일보)

 "與大정국"의 야당 역할

 

黨論풀고 국민이 신뢰할 대안 내놔야

 

극한적 투쟁보단 합리적 감시·비판을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에서 여대야소(與大野小)의 상황은 드물었다. 야당의 의석 수는 여당을 앞지르는 경우가 많았고 정국의 주도권도 종종 야당이 장악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여당은 3당 합당과 같은 정계 개편이나 의원 빼오기 등의 인위적인 방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곤 했다. 선거를 통해 형성된 정당 구도가 이렇듯 여당에 의해 변질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이 때문에 야당의 투쟁적인 모습은 국민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16대 국회에서 보여준 야당의 극한적인 투쟁에 식상한 국민들이 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야당들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은 지금 17대 국회의 구성을 앞두고 소수파로 전락한 야당에 역설적으로 매우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야당들이 연합한 결과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국회 내 재적의원수의 3분의 2를 넘는 거대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본 대로 야당은 그 대가로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대신 47석에 불과해 소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그 과정에서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제1당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야당이 수적 우위만을 강조한 것이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 한 주된 원인이었다.

 

이번 17대 총선 결과가 야당에 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는 이처럼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의원 수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야당이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와 신뢰를 얻어낼 수 있게 된다면 의석 수와 무관하게 야당의 견제력은 얼마든지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다. 즉, 야당의 힘은 극한적인 투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론과 시민 사회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감시, 비판의 역할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야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의석으로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 지도부는 당내 의원들의 규율과 결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 쉽다. 그러나 사사건건 당론으로 묶어 당내 의원들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일은 정치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시대에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당의 통일된 입장을 갖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개별 의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도 높이고 또 ‘스타’ 의원들을 만들어 당의 인기를 높이는 일도 차기 선거를 노려야 하는 야당에는 중요하다.

 

지난 대선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집권당의 실정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 자동적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본 대로 과거처럼 지역주의 때문에 원내 활동의 평가와 무관하게 강세 지역에서 자동적으로 당선을 보장받던 시절도 지나갔다.

 

야당이 국민들의 눈에 신뢰할 만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 차기에도 야당 신세를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야당이라고 해서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정외과 교수

 

△연 구 : 동아시아연구원(EAI) 국회개혁팀 △공동후원 : 조선일보·아시아재단

 

<국회개혁연구팀 명단>

 

박찬욱(서울대·연구팀장), 강원택(숭실대), 김민전(경희대), 김병국(고려대), 김의영(경희대), 박재창(숙명여대), 안종범(성균관대), 이연호(연세대), 임성호(경희대), 장훈(중앙대), 정종섭(서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