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여중생 사망 1주기 여론조사:20~30代 反美정서 누그러져

  • 2003-06-12
  • 이내영 외 (중앙일보)

비극적인 여중생 사망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국민 일반의 반미감정이 고조돼 일련의 촛불시위는 물론 대선 정국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 지난해 늦가을부터 겨울의 일이다. 새 정부 들어서 이라크 파병과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북핵 위기는 풀리지 않은 채 주한미군이 재배치될 것이란 논의가 그 사이에 있었다.

 

반미감정과 한·미관계에 대한 여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번 여론조사는 반미감정이 뚜렷하게 약화된 반면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태도가 뚜렷하게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SOFA 문제를 보면 지난해 말 63.5%에 이르렀던 `전면 개정` 지지비율은 30%나 줄어들었다. 반면 `부분적 개선`을 지지하는 의견이 19%나 늘어나 현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부분적 개선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단계적 철수`와 `즉각 철수`를 합쳐 51%에 이르렀던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도 상당히 누그러져 현재는 40%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할 때 미국탈피 자주외교를 지지하는 의견은 28%에서 17.6%로 줄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20.4%에서 32%로 늘었다. 또한 미국에 대한 호감도에서도 미국을 나쁘게 생각하는 비율은 8.8% 준 반면 좋게 생각하는 의견은 12.4%포인트 늘어났다.

한·미관계에 관한 이런 태도의 변화를 주요 집단별로 교차분석을 통해 추적해보면 연령대에서는 20∼30대, 대선 지지후보별로는 노무현 지지층, 그리고 진보적 이념성향을 가진 국민 사이에서 변화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령대별로 20∼30대에서 변화가 가장 분명하다. 20대의 경우 지난해 12월에는 66%가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했지만 현재는 55%만이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하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는 견해도 지난해 12월에는 20대 12%, 30대 10%에 불과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0대 22.7%, 30대 27.3%로 크게 늘어났다.

 

대선 후보지지별로 보면 노무현 후보 지지층의 한·미관계에 대한 태도의 변화 폭이 이회창 후보 지지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후보 지지층은 지난해 12월에는 55%가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43%만이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미동맹의 강화를 주장하는 의견도 지난해 12월에는 노무현 후보 지지층의 19.5%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29.4%로 증가했다.

 

진보적 이념성향을 가진 국민 사이에서도 한·미동맹의 강화를 지지하는 의견이 지난해 12월에는 16.9%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28.9%로 증가했다.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 여론이 6개월 만에 빠르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난해에 고조된 반미감정이 여중생 사망과 촛불시위, 그리고 대선정국이라는 상황에서 국민의 감정적 분노로 표출된 측면이 크며, 이후 국민들이 냉정을 되찾고 한·미관계에 대한 신중한 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이라크 전쟁과 파병 논쟁, 북한 핵위협의 진행과정, 한·미 정상회담,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 무디스사의 국가신용등급 조정 등을 거치면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학습이 한국 국민 사이에 일어났고, 그 결과 한·미관계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현실적인 의견을 갖게 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 이숙종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