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경제개혁과 외발자전거

  • 2003-03-01
  • 예진수 (문화일보)

"혁명은 자전거를 세워놓고 타이어를 바꾸는 작업이지만 개혁은 타고가면서 타이어를 바꾸는 작업이다. 따라서 개혁적 지도자는 대단히 대담하면서도 동시에 용의주도해야 한다. 대단히 이상적이면서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이 펴낸 책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읽는다는 ‘대통령의 성공조건’의 한 대목이다.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이처럼 정곡을 찌른 말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27일 단행된 초대내각 구성에서부터 단숨에 서열과 관행을 깨고나간 노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동아시아연구원이 제시한 ‘대담한’ 지도자상을 보여준다. 과거 내각이 낡은 정치인과 관료로 가득 채워졌던 것과 달리 새 내각은 학자, 관료, 정치인, 시민단체, 기업체 사장, 영화감독 출신 등이 골고루 포진했다.

 

과거 프랑코의 쿠데타로 무너지긴 했지만 1930년대 스페인의 공화정부가 음악가와 학자, 미술사가 등으로 구성돼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 정부라는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 정부 부처 운용에 권모술수나 행정경험보다는 공직자의 힘을 오케스트라처럼 조화시키는 힘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북한 핵문제와 경제침체 등 급변하는 대내외 현실을 감안, 정통관료인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발탁하고 정세현 통일부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앞의 책에서 밝힌대로 대통령의 ‘철저히 현실적’인 선택인 셈이다.

 

급하강하고 있는 경제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개혁성향과 현실감각을 두루 갖춘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기용했지만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살아나지 않을 경우 경제활력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기준에 맞게 기업 투명성을 개선하고 변칙적인 지배권 강화를 막는데 굳이 검찰이 칼을 뽑아들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재벌기업의 편법 경영권 상속은 기존의 금융세제를 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문제다.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등 제도 개혁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검찰 수사처럼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보다 근원적인 병폐를 바꿀 수 있다. 결국 조세정의 실현을 통해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더 커지며 기업들도 제도 개혁 추세에 맞춰 스스로의 관행을 바꿔나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는 외발 자전거와 같아 갑자기 멈출 경우 다시 달리기 위해 바퀴를 돌리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올해 경제운용 방향 자체가 기업 투자 활력을 통한 경제성장률 5%대 달성이다.

 

만약 기업 투자 위축으로 예상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할 때는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배 및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원도 줄어든다. 침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예산을 동원해야 하며 빈민층이나 장애인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해 투입해야 할 세원(稅源)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이미 한국경제가 폐쇄경제에서 벗어나 국경없는 메가컴피티션(초경쟁) 시대가 된 마당에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싼 세금과 온갖 인센티브를 내세워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중국이나 태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일본과 대만 등이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산업공동화 문제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 출범 초기 한 민간경제연구소가 김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햄릿형 지도자로 분류했다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난마처럼 얽힌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결단력과 도덕성을 갖춘 카리스마적 대통령상이 요구된다. 하지만 기업들과 불확실성이 산적한 경제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모습도 지도자의 덕목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